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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 백두대간과 태백산맥

먼 옛날 우리 선조들이 뿌리내린 한반도는 백두산을 정점으로 긴 시간을 타고 부족국가를 통합, 국호를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를 거쳐 왜구의 침략을 수없이 당하며 조선 中末년을 지나면서 지도층의 당쟁과 일본에 대한

안이한 생각으로 무기력하게 합병당한 후 ‘조센징’이라며 민족적으로 온갖 멸시와 수모를 받으면서 간교한 日帝

政策의 제물이 되었다.

 

老客이 - 日帝 强占期 남자는 强集兵, 징용, 여자는 '몸뻬라는 간이바지를 입게 하여 근로봉사, 위안부로 동원당하

지 않기 위해 피신하던 시절, 일본 교장선생이 아침 조회 때 日本刀를 차고 동남아 정복 기념으로 고무공과 말린

바나나 한 개씩 주며 ‘內鮮一體’이니 조선말 대신 일본말과 글을 쓰라‘ 훈시 듣든 -

 

초등학교 4학년 때, 해방-光復을 했고 그 뒤 자라며 우리글과 역사를 배우면서 우리의 진실을 알아갈 즘, 발등의

6.25 전쟁, 5.16혁명, 민주화 산고를 거쳐 차츰 衣食住表가 안정되면서 우리국토 명칭에 대해 관심 갖게 되었다.
한반도의 등줄기, 한국의 주 산줄기 이름과 관련, 허심탄회 아래 셋 중 어디에 낙점하겠습니까?

 

1. 태백산맥 [ ]

2. 백두대간 [ ]

3. 먹고 살기 바쁜데 태백, 백두 관심 없다 [ ]

 

中略

11년 전 백두대간을 종주할 때 추풍령 구간의 ‘금산’이 거대한 채석장으로 변신. 통체로 잘려나가고 있었다.

종주기에 현장 고발하고 ‘백두대간보존회’‘국회 이미경 의원’등등.. 우여곡절을 거쳐 2003년 12월31일 국회

에서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이 제정 공포되어 2005년 1월1일 시행, 2005년 9월9일 백두대간 보호지역

이 지정 고시되었으나, 牛耳讀經,

 

몇 년 후 강화도 마니산 산행 후 고속버스로 歸釜 중 추풍령 직전 左窓으로 2/3 절개된 백두대간 금산이 계

속 잘려나가는 처참한 흉상을 발견, 자신의 한계를 느꼈고, 보다 큰 충격은 전통명칭인 백두대간이 아직도

공인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어이없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뒤 관련 산림청에 백두대간 공칭 민원 제의하니 ‘산림청에서는 백두대간 보호의 일환으로 국토지리정보

원에 백두대간 표기를 요청하여 2006년부터 발행되는 지형도에 백두대간 지명이 표기될 것’으로 설명하여

잘 풀릴 것으로 기대했는데, 국토지리정보원은 명칭뿐인 중앙지명위원회로 떠넘기고

 

산림청 홈페이지 "한국의 명산"의 산맥표기 수정 건은 산림청 홈페이지 개선작업에 반영하여 전통 산줄기

명칭을 사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여 반영하겠다며 뒤로 물러앉았다.

 

맥이 빠져 한동안 탈기, 뜸을 준 뒤 국지정보원에 그 동안의 진행상황을 문의하니 지난 태백산맥 명칭 근거

를 誤答[태백산맥 등으로 고시된 것은 삼국유사, 동국여지승람 등 역사적 기록 등을 고려하여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고시절차를 거쳐 결정된 사항입니다.]에 대한 궁색한 변명으로‘태백산맥 등이 1200년대‘삼국

유사’, 1400년대 ‘동국여지승람’에 기록 운운한 건 예로 들었다.‘는 억지 동문서답.

 

그리고 학계, 단체, 공공기관, 국민들이 상호 공감하고 수긍하는 절차를 거쳐 국가지명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가결 변경 된다.’는 소리에 오답은 밀쳐두고, 변경이 아니고 ‘복구’라 東問 했는데

 

부족한 답변으로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며, 지명 심의시 관련 사료 바탕으로 지명의 타당성 검토, 기

초자료인 주요 사료의 이름을 언급하였다며 묻지도 않은 어이없는 西答으로 지명정비절차를 장황하게

설명. 그리고 2011. 8. 12. 오랜만에 東問에 東答이 아래와 같이 올랐다.

 

+++ 선생님! 평소 국토해양부에 관심과 애정을 가져주시어 감사드립니다.

백두대간과 관련하여 다시 한 번 질의하신 사항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알려 드리겠습니다.

 

1번 관련 입니다.

지명을 제정하는 경우에는 역사적 사료, 행정기관자료 및 지도 자료 등을 토대로 지명을 심의하고 있음

을 알려 드리고자 사료의 이름을 언급한 것입니다.

 

2번 관련입니다.

일제 강점기 일본에 의해 왜곡된 지명의 경우에는 선생님의 의견과 같이 역사 확립 차원에서 반드시 변

경 되어야 한다는데 동의합니다.

 

다만 백두대간 등 산맥명칭과 관련하여 다수의

연구(97년-백두대간 실태조사 및 합리적인 보장방안 연구, 04년-한반도 산맥체계 재정립연구:산줄기 분석을 중심으로 등),

심포지움(03년-한반도의 산지 체계, 07년-한국의 산맥),

토론회(07년-한반도 산맥체계 정비에 관한 토론회) 등이 실시된 바 있으나, 이러한 연구 및 토론회를 통한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은 새로운 산맥체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보다 더 많은 연구와 검토가 이루어진 이후에 변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

론이 도출된 상태입니다.

 

따라서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 합의가 이루어지면 산맥의 명칭이 변경될 수 있도록 방안을 강구할 계획입니다.

회신내용에 대하여 추가 질문이 있으실 경우 국토지리정보원 국토조사과(031-210-2693)로 문의하시면 성심 성의껏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선생님의 진심어린 국토사랑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귀 댁에 항시 행복과 즐거움이 깃드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예를 봐 방안, 강구, 계획에서 실천까지 앞으로 또 몇 년이 걸릴지 몰라 그 사이 일본으로부터 ‘자국의 뿌리와
전통을 보존할 줄 모르는 ’냄비국민‘으로 오판 받아 또 다른 멸시와 수모 등을 방지 하기위해 국민으로써 알아야 할 건 알아야 한
다는 뜻에서 아래와 같이 학습 정리한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의 고스락 兵使峯(2,744m)에서 시작, 지리산 天王峯에 이르는 길이 약 1,470km의 큰 산줄기, 이를 축으로
한반도의 모든 물줄기가 東流와 西流, 낙동, 낙남, 호남정맥의 南流로 갈라진다는 백두대간[白頭大幹], 대간 상의 주요 산은
포태산(胞胎山:2,289m), 두류산(頭流山:2,309m)동쪽 해안선을 끼고 남쪽으로 추가령(楸哥嶺:752m)으로 이어 좌로 동해를
바라보며

금강산(金剛山:1,638m), 진부령(陳富嶺:529m), 설악산(雪岳山:1,707m), 오대산(五臺山:1,563m), 대관령(大關嶺:832m),
두타산(頭陀山:1,352.7m)을 거쳐 태백산(太白山:1,566m)에 닿아 남서쪽으로 돌려 소백산(小白山:1,439.5m), 속리산(俗
離山:1,058m)으로 뻗어 내려 추풍령(秋風嶺:221m), 황악산(黃岳山:1,111.4m), 삼도봉(三道峰:1,177m), 덕유산(德裕山
:1,614m), 지리산(智異山:1,915m)까지의 큰 산줄기다.

글로벌시대의 국가 브랜드로 안성맞춤인데 단군신화시대부터 뿌리 백두산에서 큰 줄기 백두대간을 타고 끈기 있게 韓民族

의 智勇藝를 전수시켜 세계 어느 민족보다 다방면 고속 고도성장을 해왔지만....


일부 관리 지도층의 책임감부제, 도덕적 해이, 가진 자의 의무 증발- 높은 신분, 많은 재산 등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다른 사람들을 유념해야한다는[노블리스.오브리지noblesse oblige]정신퇴색에 윗물 영향 받아 아래로
복지부동 적당주의 부정부패가 만연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앞선다.

*백두대간이라는 말은 조선 후기 실학자 신경준(申景濬·1712-1781)이 저술한 것으로 알려진 산경표(山徑表)에 처음
나온다. 백두대간은‘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山自分水嶺)’는 개념을 중심으로 산의 흐름을
정한 것이기 때문에 산줄기가 계곡이나 강에 의해 끊어짐 없이 이어져 실제 확인 된 이 땅의 모든 산줄기가 江河川을
건너지 않고 백두산으로 간다는 것이다.
[GPS로 촬영한 백두대간 위성사진은 이를 입증한데 반해 태백산맥 등은 여러 곳 단절.]

 

*다시 우리나라 지도 제작 년대 순으로 요약하면

1. 우리 선현들의 제작한 소중한 역사적 문헌인 1402년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를 비롯

1432년(세종14)세종의 명에 따라 맹사성(孟思誠) ·신장(申檣) 등이[신찬팔도지리지(新撰八道地理志)]를 찬진(撰進),

그 후 明에서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가 들어오자, 양성지(梁誠之) ·노사신(盧思愼) ·강희맹(姜希孟) ·서거정(徐居正)

등이 성종의 명으로 이 체제를 본 따,《신찬팔도지리지》그 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만들고, 1481년

(성종 12)에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50권을 완성.

 

2. 1769년 영조 때의 실학자 여암(旅菴) 신경준(申景濬)이 작성 간행한 한국의 산줄기를 즉 대간, 정맥을 나타낸 도표-

산경표[山經表] 필사본은 조선의 산맥,[山經]체계를 도표로 정리한 책, 1770년 영조의 명을 받아 동국문헌비고를 집

하기 이전인 1769년에 옛 부터 발전 해온 郡縣邑지도를 근간으로 하여 그 때까지 축적된 지리학적 지식과 정보를 학

문적인 체계를 갖추어 족보형식으로 편찬한 우리나라의 지리정보 종합서.

 

3. 표의 기재 양식은 상단에 대간(大幹)·정맥(正脈)을 표시하고 아래에 산(山)·봉(峰)·영(嶺)·치(峙) 등의 위치와 분기

(分岐) 관계를 기록한 山自分水嶺 원칙아래 전국을 답사하여 만든 자료를 정리, 백두산을 根幹으로 남쪽으로 뻗어

지리산 천왕봉까지 내려오는 큰 산줄기가 백두대간, 이를 종단 축으로 하여 동·서·남·북으로 뻗친 대간(大幹)과 정맥

(正脈) 지맥(支脈)의 분포를 기재.

 

4. 그 후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는 김정호(金正浩)가 1861년(철종 12)에 전해 내려 온 소중한 자료로 우리나라 전도

를 제작하여 초간본을 찍어 냈으며, 1864년(고종 1)에 다시 간행 그 뒤 1913년 최남선(崔南善) 편으로 광문회(光文會)

에서 신활자로 간행한 것이 각처에 소장.

 

이 땅의 산줄기가 백두산과 통한다는 개념은 우리의 전통 지리인식의 바탕. 「택리지」의 이중환과 「대동여지도」의

김정호, 「성호사설」의 이익이 모두 여기에 기초하여 지도와 지리서를 썼다.

 

그러나 조선 말년, 지도층의 무기력과 파쟁으로 국력쇠약, 열강이 넘보고 그중 간악한 日帝의 술수와 협박으로 강제
합병의 强占期中 日帝에 의해 조선의 역사와 정신이 분탕질당하면서 백두대간의 개념은 일직암치 골방으로 유폐, 사
라졌다.

1900년과 1902년에 일본의 조선침략정책의 일환으로 실시된 광물탐사사업의 학술 책임자였던 ‘고토분지로’는 탐사보
고서를 펴낼 때 조선의 지리개관과 조선지질도를 첨부, 지질 구조선에 입각하여 산줄기를 이어갔기 때문에 그네들이
말하는 태백산맥, 우리들의 백두대간은 토막 나고 태백산맥은 강을 건넜으며 그들이 즉흥적으로 작명한 태백, 소백산
맥 등의 이름만이 공식적으로 활개 쳤다.

백두대간은 정부나 어느 정권이 만들어낸 지명이 아니고 이 땅에 우리 민초들이 취락하면서 외세와 투쟁, 무수한 공방
을 거듭하며 피땀으로 지켜내려 온 - 민초들의 애환과 한이 농축된 이름으로 이 나라의 흥망성쇠를 듣고 지켜본 수많은

작은 이면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대들보 산줄기, 우리민족의 혼이 정신이 들어있는 名實 상부하는 소중한 우리국토의

브랜드다.  

 

한데 한 나라의 역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부정하고 강금 시켜놓은 日帝가 즉흥적으로 작명한 山脈 名을 국제적 흐름 운운

하며 광복 67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원상복구에 난색을 표하는 일부 이 나라의 지질학자의 뱃장과 그 밖의 학자들의 우유

부단을 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수많은 대결 속에 일상을 보내는 오늘의 나날, 졸속이 아닌 신중한 세 가지 방안과 해결책을 설문형식으로 제시한다.

1908년 日帝는 당시의 우리나라 지리교과서였던 '고등소학지지'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야스쇼에이’의 산맥도 개념인 '한

국지리'를 강제로 우리나라 교과서에 도입하였다. 이 山脈圖는 산경표의 전통지리개념과 전혀 다른 지질 구조에 잣대를

맞춘 地質의 構造線 즉, 땅속의 岩石과 지질줄기를 기본개념으로 한 것이다.

 

현행 태백산맥 등 산맥체계는 국제적 추세라는 地質構造體系로 실학의 ‘전통 인문 지리학’에서 분리, 독립시켜 국제흐름
이라는 自然地理學의 地質, 水文學, 專門分野로 분가 [대한민국 白頭大幹圖]의 別途地圖 명칭으로 [대한민국 地質圖]를
마련 교육 연구 육성 발전시켜야한다.

이의 방법은 地名變更이 아닌 原狀復舊, 지명위원회가 아닌 행정부가 입법부로 바로 특별 위임입법청구(원), 몇 년 전 입
법부가 ‘백두대간 보호에 관한 법률’을 입법 공포했듯이 국회책무로 의원입법수행 하면 된다.

멸시하지도 멸시받지도 않는 세상을 꿈꾸는 누리꾼들의 냉철한 판단을 기대하며 객관적으로 아래와 같이 설문하니 동의,

동감하는 문항에 낙점 댓글 바랍니다.

 

 

# 설 문

1. 백두대간은 천 수 백 년 전부터 백두산자락에 우리 민족이 취락, 외세와 투쟁, 무수한 공방을 거듭하며 피땀으로 지켜

내려 온 - 민초들의 애환과 한이 농축된 이름으로 이 땅의 흥망성쇠를 듣고 지켜본 수많은 이면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대

들보 큰 산줄기이름, 우리민족의 혼이, 정신이 스며있는 名實 상부 소중한 우리국토의 브랜드이며 생태계의 연결 보존 관

리에도 유리하다. [ ]

 

2. 日帝강점기중 일제가 우리 지하자원을 수탈하기 위한 지질조사 하면서 즉흥적으로 작명한 태백산맥 등을 지질학회도

인정, 근대사에 들어와 국력의 척도가 되는 공업화에 각종 지하자원 추적 채굴에 필수조건인 지질구조, 산맥 흐름을 판단

기준을 삼는 산맥체계, 국제지질학계[國際地質學聯合, 國際水文學會]의 잣대도 무시할 수 없는 세계적 추세이니 국제지

질학계의 기준에 따라 현행대로 지질구조 체계의 태백산맥, 소백산맥 등으로 계속 표기해야한다. [ ]

 

3. 상반되는 1, 2항에 대한 절충안으로 宗孫인 백두대간은 자연과학의 人文地理學에 속하니 자연스럽게 전통을 이어받아

大東輿地圖를 현대화하여 ‘대한민국 白頭大幹圖’로 만들고 지하의 물리, 지질, 생물학적 고찰을 받는 태백산맥 등의 산맥

체계는 自然地理學에 속하니 논쟁 없이 ‘지질구조학회’자체에서 이원 전문화 논의 산맥 작명하여 ‘대한민국 地質圖’ 를 만

들어 교과서에 등재, 교육 공용 공칭한다. [ ]

 

4. 이제 산꾼들 만의 장[場]이 아닌 해외 교민을 포함 전 국민, 각계각층 지도자들의 국토사랑, 나라사랑, 내고장사랑,

자연환경, 뿌리敎育場으로 개혁, 몇 년 전 ‘백두대간보호에 관한 법률’(환경위원장 이미경)을 의원입법으로 통과 시켜

듯 백두대간을 전통명칭으로 원상복원 한다는 내용의 委任立法, 議員立法 등으로 빠른 시일 내 국회에 상정 통과시켜

우리문화의 줏대로 탈바꿈해야 한다. [ ]

 

 

설문 1항목 : 山經表 山自分水嶺에 의한 백두대간으로 복원

설문 2항목 : 현행 국제추세라는 地質構造體系의 태백산맥으로

설문 3항목 : 1항목 實學認定, 2항목 地質構造學 分家, 전문화로 발전시킴

설문 4항목 : 산꾼場만이 아닌 전국민자연사랑, 나라사랑 敎場으로 탈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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