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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남자라면 아빠, 교수님, 경비실 아저씨 밖에 몰랐다

싸늘하다소매 사이로 찬바람이 날아와 박힌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눈은 발걸음보다 빠르니까눈은 바쁘게 사람들을 훑는다. 정면에서 11, 오른쪽에서 4, 왼쪽에서 6, 오른 편 민원인실 너머에서 3. 동작 그만! 오른쪽 민원인실 쪽이다!

◌◌ 전 회장님, 잠깐

 

같이 들어온 남자가 말을 끊으며 내 앞을 막아선다.

아닌데요?”

 

변호인이신가요?”

 

아니라니까요.”

 

허허, 아니신데 왜

 

지난 1223, 서울 서초동 중앙지방검찰청 1층 로비. 초짜기자에게 떨어진 미션은 검찰 조사를 받으러 올 KB금융지주 전 회장을 뻗치기해 질문하라는 것. ‘뻗치기는 화제의 인물을 무작정 기다려 취재하는 것을 의미하는 기자들끼리의 언어다. 그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그 장소에나타날 거라는 확신이 있을 때 뻗치기가 시작된다. 이날도 납품업체선정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임 전 회장이 검찰에 나타날 예정이었다. 그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어떤 자세로 조사에 임할 것인지, 억울하진 않은지 물어보란 얘기다.

 

하지만 화제의 인물은 기자를 피하기 마련이라, 뻗치기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남의 집 앞에 돗자리를 깔기도 하고 경찰서 문 앞에 서서 열 시간 넘게 기다리기도 한다. 우박과 태풍 같은 천재지변, 목마름, 급한 용변 등 생리현상, 주변 사람들의 타박과 눈치주기 등 고충들은 셀 수 없다. 그러나 처음으로 뻗치기에 임하는 초보기자들의 고민은 아마 같을 것이다.

 

내가 그 사람을 알아볼 수 있을까?’

 

...그렇다. 60대 남자라면 아빠, 교수님, 경비실 아저씨 밖에 몰랐다. ‘55년생’, 그리고 이름 석 자. 포털 사이트가 임 전 회장의 무수한 사진을 보여 주었건만 기자의 눈에 중앙지검을 오가는 수 백 명의 중년 남자는 다 그 아저씨가 그 아저씨같았다.

 

공항에서 연예인을 기다리듯 그의 헤어스타일과 패션에 촉각을 세운다. ‘평소처럼 5:5 가르마를 유지할 것인가, 검찰 조사를 앞두고 새 헤어스타일을 선보일 것인가’.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톰 크루즈처럼 성형수술 주사라도 맞고 오는 것은 아닐까.’ ‘내가 모르는 문이나 사다리가 있지는 않을까’. 온갖 음모설과 망상이 모락모락 피어오를 때 긴가민가 비슷한 사람이라도 보게 되면 심장의 박동은 한없이 급해진다.

 

나름의 관상학은 필수. ‘푸근한 중년 아저씨’ ‘날카로운 눈매’ ‘쳐진 입매등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관찰이다. 상황에 따라서 표정이나 느낌은 인상파의 그림만큼이나 달라지기 때문이다. 부동산운이 있다는 하늘 모르고 솟은 광대’, 관운이 있다는 갑툭튀 이마다년간의 헬스로 다져진 근육질 몸매’, ‘습관적으로 찌푸려진 미간’, ‘입 옆에 점은 그나마 쓸 만하다. 그마저도 좀전처럼 한순간에 여러 사람이 들어올 땐 안면 게슈탈트 붕괴에 빠져 다 잊어버리고 말지만.

 

혐의를 인정하십니까?”

 

무혐의를 입증하실 준비는 되셨습니까?”

 

중얼중얼. 뻗치기 현장에서 수상한 모습으로 중얼거리는 이들은 모두 초짜 기자들. 질문을 까먹지 않기 위해서다. 단 몇 초, 몇 분밖에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허나 기다리던 그 분이 오신다고 말이나 한 마디 해줄까. 실내마저도 싸늘한 영하의 온도 속에서 수십시간을 기다려 본들 그 고충을 알아줄리 없다. ‘그 분의 마음 역시 꽁꽁 얼어있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임 전 회장을 어렵게 알아본 그 날도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댔지만 변호사인 듯 변호사 아닌 변호사 같은 동행자의 등쌀에, 주구장창 애꿎은 임 전 회장의 슴가만 찍고 말았다...

 

사실 뻗치기의 성과는 장담하기 어렵다. 기다리던 사람을 운 좋게 만나도 묵묵부답 지나치면 그만이고 그 기다리던 사람이 능란하게 거짓말을 늘어놓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소환 대상자가 오전 1134분에 들어와 42분에 조사 받기 시작했다고 쓰고 싶고, “파란색 압수수색 물품상자가 5라고 정확히 쓰고 싶은 기자의 욕심이 과도하기만 한 것일까. ‘본 것만 쓴다는 원칙 때문일 뿐이다. 그러니 그 분께서는 굳이 뻗치기 하는 이들을 피하시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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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에서 고춧가루 냄새가 나









버스 위이-? 물대포오-!?”


 


아차 싶지만 이미 입 밖에 나간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습니다. 316, 짐가방을 싸서 일하러 나간 후 연락이 끊긴 둘째딸. 얘가 직장은 잘 다니나 싶어 전화한 엄마에게 졸린 눈을 비비며 버스 위에 있는데 좀 전에 물대포 맞았어라고 말한 게 화근입니다. (...) 발밑으로 붙들고 밀치고 소리 지르는 아비규환 현장이 벌어지는데도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엄마의 질책은 한 단어 한 단어 또렷합니다.


 


418일 저는 광화문 누각 앞에 있었습니다. 광화문 현판 아래서 100여명의 세월호 유족들이 농성 중이고 그 앞엔 코와 코를 맞댄 기동대 버스가 사람이 지나가지 못하게 벽을 치고 있었습니다. 율곡로(광화문 누각 앞 동서로 뻗은 대로)에는 경찰 병력이 수천명 대기하고 있고, 또 한 차례 차벽이 만여명의 시위대가 있는 광화문 광장과 율곡로를 나누고 있었지요. 차벽 두 개를 위아래로 두고 경찰이 샌드위치처럼 낀 양상이라고 보면 편하겠군요. 근데 여기서 뭘 했냐구요?





시위현장은 대부분 수습기자들이 챙깁니다. 진행상황 스케치 뿐 아니라 주최 측과 경찰 측의 인원추산, 폭력상황 여부, 연행인원 등을 꼼꼼히 챙깁니다. 일반적으로 주최 측에서 잡는 인원이 경찰 측 인원보다 3~10배가량 많습니다. 경찰에서는 사람들이 서 있으면 평당 10명, 앉아 있으면 6명 정도로 잡는다고 합니다. 물론 사진을 찍어 머리마다 점을 찍는 방식도 활용하고요. 아직 감이 안 잡히신다고요? 별도의 무대 없이 시청 광장을 선 채로 가득 메우면 2만4000명정도가 됩니다. 일반적으로 주최측은 세를 늘리고 싶어 하고 경찰측은 수를 줄이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양 측의 인원이 크게 차이가 나면 수습기자가 높은 곳에 올라가 ... 인원을 셉니다. 하나 하나씩요. 초짜기자들에게 다른 왕도는 없습니다. 그저 많이 돌아다니며 본 걸 보고하는 것뿐이지요. 최근 논란이 된 차벽이나 경찰 병력에 걸음이 막히면 버스 밑을 기어 나가거나 경찰아저씨들께 명함을 들이밀며 불쌍하게 비는 방법밖엔 없습니다. “아즈씨.. 저 좀 보내주세요 $@&&%$#@%!"


 


이처럼 제가 다른 기자들과 기동대 버스 위에 오른 건 숫자를 세고 폭력 상황이 발생하는지를 지켜보기 위해섭니다. 작은 키지만 어릴 때부터 나무를 타고 암벽을 오르며 기른 솜씨를 발휘해 높이 3미터 가량의 버스 위로 오릅니다. 이렇게 높은 곳에 올라오면 대치선이 출렁이는 게 한 눈에 보입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시위가 격렬해지면서 살수차의 물줄기가 힘차게 물을 뿜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물줄기를 보며 휴대폰과 가방을 품에 안은 채 몸을 웅크리고 물탱크가 비워지기만을 하염없이, 하염없이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지난 51일 오후 11시쯤에도 저는 안국 로터리에 있었습니다. 노동자의 날을 맞아 오후 3시부터 서울광장에서 집회를 열었고 7시부터는 광화문에서 세월호 광장에서 추모제가 열릴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100여명의 유가족들과 1500여명의 시위대가 안국 로터리에서 다시금 경찰과 대치하게 됐습니다. ‘이번엔 올라가지 않으리라다짐했던 마음도 잠시, 펜스가 넘어가고 3차 해산 명령이 떨어지자 다시금 버스 위로 오릅니다. 격해진 현장에서 폭력 상황이 생기지는 않나 보는 겁니다. 눈물을 흘리는 유가족, 겁먹은 얼굴로 시위대를 바라보는 의경, 위험한 곳에서 카메라를 지키는 기자들가까이서 보는 시위 현장에선 사실 어떤 정치적 판단도 어렵습니다. 어떻게 하면 누구도 다치지 않으면서 보다 효율적으로 정치적 의견을 표출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뿐.


 


오후 10시 반경 5차 해산 명령이 떨어집니다. 곧 이어 살수를 시작하겠습니다익숙한 종로 경비과장의 목소리 너머로 또다시 세차게 뿜어져 나오는 물. 오늘따라 버스 높이가 높게 느껴집니다. , 피하지 않고 온 몸으로 맞으리라, 초연한 마음을 다지고 가방을 꼭 끌어 안았습니다. 물은 포물선을 그리며 아름답게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5분가량 이어지던 물줄기가 잦아드는가 싶어 다시 고개를 들고 사람 수를 세기 시작하는데 온 몸에 불이 붙는 것 같았습니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억 억 !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마스크 사이로 불이 번져 모공이 열리는 느낌에 마스크를 벗자, @#@^@^%$#$#@! 하염없이 눈물과 콧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살아온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날, 시위가 격렬해지자 경찰 측에서는 살수액에 캡사이신을 탔습니다. 살수차 3대 중 2대에서 발포된 물대포를 맞은 사람들은 매운 맛을 봤습니다. 공기 중으로 살포되는 탓에 조계사 너머까지 매캐한 매운 연기가 거리를 메웠습니다. 게다가 몸이 쫄딱 젖자 추위로 몸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매운내를 어쩔 수 없어 머리부터 물을 들이붓기 시작했습니다. 집에 계신 엄마 아빠는 모르시는게 나을 일입니다.


 


 


경찰서 옆엔 호텔 같은 숙소가 붙어 있어 매일매일 침구를 갈아주는 걸로 알고 계시는 엄마, 새벽에 형사과 문을 두드리면 형사님들이 안녕하세요, 기자님, 오늘은 폭행1건과 절도1건이 있었어요라고 친절히 말해주리라 생각하는 아빠, 두 달만 더 지나면 다 말씀드릴게요. 그때까진 <다큐 3: 경찰서 기자실의 72시간>, <드라마 피노키오> 같은 건 안 보셨으면 좋겠어요.


 


아가씨 내려와욧! 안 그럼 채증할거야!”


 


아이쿠, 이젠 내려가야 할 것 같습니다. 몇 차례 안면이 있는 형사님이 저를 향해 소리를 지르십니다. 아무튼 위험한데 갔다고 혼이야 나겠지만 소심하게 변명해봅니다. 설령 버스 위에 올라가지 않았더라도 물대포는 피할 수 없었노라고... 가방에서 고춧가루 냄새가 폴폴 올라옵니다. 툭툭 털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갑니다.


 


 


2일 오전 1, 안국 로터리 현장에서 둘째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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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91번 전화한 이유

 
 
 
 

4월 15일, 서울 용산구 D동. 지는 해가 비탈길에 걸터 앉았다. 오후 다섯시였다. 비스듬히 서서 골목 안을 눈짓한다. 건물을 올려다본다. 건물은 책이 잔뜩 꽂힌 책장처럼 쏟아질 듯 서 있다. 뿌연 창문 너머로 금방이라도 집기가 넘칠 것 같다.

‘◇◇여인숙’을 찾아 골목 안으로 걷는다. 길이 좁아 고개를 한참 젖히자 붉은 바탕에 흰 글씨로 ◇◇여인숙이라 쓰인 3층 건물을 찾았다. 창문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창밖으로 손을 뻗어 옆 창문을 열 수 있을 정도다. 그날, 이○○은 자신이 여인숙 4층에 있다고 했다. A경위와 2명은 하는 수 없이 ◇◇여인숙의 문을 하나씩 다 열어 봤다. A경위의 눈에 건너편 4층 건물이 하나 들어왔다. 

그 건물 4층에 이○○이 있었다. 한 층에는 20개 이상의 방이 있고 대부분 1평짜리다. 계단 하나의 높이는 30센티를 넘는다. 1층에서 바라본 문에는 가파른 계단만 보였다. 
 
“뭐하러 왔어? 누구 만나러 왔어?” 4층에 도착하기도 전에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천장에 바싹 붙은 창문을 통해 누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씨를 찾자 눈으로 대각선 방향을 쓱 가리킨다. 난데없이 구식 변기가 보였다. 이씨는 십자 드라이버를 들고 나를 쳐다봤다. 잠깐 물어볼게 있어서 왔다고 하자 말없이 복도로 걸어 나왔다. 깔끔한 츄리닝 차림이었다.
 
그는 내 앞에 두 손을 모으고 가만히 서 있었다. 가장 궁금했던 걸 물었다. 왜 그랬는지 물었다. 그가 우물우물 말을 시작했는데 조음이 정확하지 않아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왜 신고내용이 문장으로 딱딱 떨어지지 않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지난 7일 “사람을 죽였다..며, 되냐...고”했다.
 
경찰은 이씨가 ‘데마찌로 쉬는 날이면 신고 전화를 했다’고 했다. 데마찌는 비가 오거나 자재가 부족해 공사장이 일을 쉬는 날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씨는 3년 전부터 간질을 앓아 일을 못했다. 기초수급자라 받는 50여만원으로 집세 25만원을 내고 생계를 충당했다. 다리가 불편해보여 이유를 묻자 츄리닝을 내려 왼편 골반과 엉덩이를 보여줬다. 무언가로 깊게 패였다가 아문 상처가 보였다. 경찰들은 이씨의 정신에 문제가 있다고 했었다. 그가 방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더니 무언가를 내밀었다. ‘2급 신체 장애 증명’. 아까 보여준 상처가 사고로 얻은 장애라고 했다. 나이를 묻자 다시 방에 든다. 두 손으로 주민등록증을 내밀었다. 경찰은 중요한 사실을 기자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그는 글자를 읽을 줄 몰랐다.
 
기자의 질문에 그가 흰 석고벽에 드라이버로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연필이 아니라 주먹을 쥐듯 일자 드라이버를 쥐었다. 그는 숫자 10개를 그렸다. 3자와 8자를 그릴 때는 멈칫거리기도 했다. 10자를 쓰는데 3분이 넘게 걸렸다. 아는 전화번호는 자기 전화번호와 누나 것뿐이라고 했다. 20개의 숫자가 이씨에게는 벅찼다. 그래서 손 가는대로 하나의 번호를 눌렀다. 이씨는 3월 11일부터 4월 7일까지 총 91회 112번호를 눌렀다. 하루에 1건부터 많으면 15건까지도 됐다. 이유는 다양했다. "대화하고 싶다" "벌금이 나왔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 대부분 소주 한 두 병을 마시고 취한 채였다. 그는 전화를 걸어 들려오는 목소리에 “일하고 싶다” “조카에게 용돈을 많이 줬는데 누나가 아는 체도 안 한다”며 술주정을 늘어놨다.
 
이씨는 허위 신고를 해 경찰 수사력을 낭비하도록 하는 등 위계에의한공무집행방해 혐의로 9일 입건됐다. 경찰관계자는 “검찰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 모르지만 이번엔 형사처벌을 했으면 한다”고 했다. 2008년도부터는 허위신고를 철저하게 단속하라는 내부 지침도 있었다. 초보 기자는 경찰의 노고를 생각하며 “다 잡아 넣어야 되겠네요”라고 열없이 말했었다. 하지만 경찰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날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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