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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적 민중시인> 김남주 - [59회] ‘시와 행동이 분리되지 않은 유일한 시인’

[59회] ‘시와 행동이 분리되지 않은 유일한 시인’

<혁명적 민중시인> 김남주 평전/[13장] 조국은 하나다 2014/10/15 08:00 김삼웅
반년간으로 1989년 1월에 나온 <오늘의 시> 창간호는 ‘주요시집 본격평론’이란 기획으로 김남주 시집 <조국은 하나다>와 백무산 시집 <만국의 노동자여>를 선정하였다. 문학평론가 이동순은 <김남주의 시와 ‘구체적 싸움’의 진정성>이란 제목의 서평에서 치밀하게 분석한다.

“김남주는 지금까지의 우리 주변에서 시와 행동이 분리되어 있지 않은 가장 유일한 본보기이다. 보아라! 그가 감옥에서 외롭게 싸워 왔으므로 군대가 힘으로 세상을 얻으려 획책하던 마상득지(馬上得之)의 시대는 어느덧 떠날 준비를 하고 있지 아니하냐.” (주석 16)

이동순 씨는 차분한 어조로 시인의 <전론(田論)을 읽으며>, <나 자신을 노래한다>, <별>, <별아 내 가슴에>, <아 얼마나 불행하냐 나는>, <그 방을 나오면서>, <조국은 하나다>, <뿌리>, <항구의 여자를 생각하며>, <권력의 담> 등을 부분적으로 인용하면서 평한다.

그는 김남주 시의 정신적 지주(支柱)가 “다산 정약용의 실학적 가치관에 뿌리를 두고” 있는 듯하다고 지적한다.

김남주는 처음부터 그의 시가 위기(爲己)의 것으로 빠져 버리는 것을 가장 경계하였다. 역사는 인간이 만들어 가는 것. 건강하고 튼튼한 역사의 구축도 인간의 참 됨됨이에서 우러나와, 인간과 함께 인간과 더불어 과거의 시간과 동시대의 모든 것을 따뜻하게 끌어안는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그는 믿는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시종일관 위인(爲人)의 정신을 철저히 견지하면서, 단 한 차례도 그것을 벗어나는 법이 없다. 이러한 그의 철저함은 경세치용 학파로서의 다산 정약용의 실학적 가치관에 뿌리를 두고 있는 듯 하다.

가령 그의 다음시를 보자.

한 시대의 굴욕으로 태어나
식민지 감옥에서 15년을 죽고 있는 나는
책 한 권 책답게 볼 수 없고
글 하나 적어둘 종이 하나 없습니다
흙 한줌 사랑으로 만질 수 없고
햇살인들 한 줄기 쪼일 수 있겠습니까
아, 다산이여 다산이여
그대 어둔 밤 조국의 별로 빛나지 않는다면
내 심사 이밤에 얼마나 황량하리오.

- <전론을 읽으며>」의 부분. (주석 17)

김남주는 치열하게 싸웠다. 유신의 밤귀신들과 5공의 낮도깨비들과 맞서 싸웠다. 그래서 ‘싸움꾼’처럼 인식되었다. 이에 대한 이동순의 분석이다.

김남주의 ‘싸움’은 홉스가 풀이한 개인적 세속적 싸움과 전혀 구별된다. 그의 ‘싸움’은 대립과 갈등, 불화를 야기시키기 위한 정치이권쟁탈적 파쟁이 아니라, 해방ㆍ민족자주ㆍ시가 뜨거운 숨결로 뿜어내고 있는 혁명적 열정인 것이다. (주석 18)

김남주의 ‘싸움’과 관련하여 염무웅 씨는 <조국은 하나다>의 <발문>에서 싸움에 대한 ‘순결성’을 든다.

내 생각에 김남주의 싸움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남이 대신하기 어려운 무기는 그의 대책없는 순결성이다. 계산이라든가 경쟁이라든가 또는 질투ㆍ의심ㆍ욕심ㆍ허영 따위 자본주의 사회의 일상화된 정서들이 남주에게는 처음부터 효력없는 폐품으로 무화되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그의 문학적 사고의 감당할 수 없는 강점이다.(⋯) 관념적 왜곡과 논리적 속임수들은 김남주에게 있어 역사와 현실의 냉엄한 실체를 오히려 더욱 극명하게 부각시키는 반사경으로 될 뿐이다. 70년대와 80년대로 이어지는 군사통치의 폭압적 상황은 불가피하게 그를 모순의 가장 심오한 인식으로 몰아갔고 모순에 대한 가장 비타협적 투사로 그를 결정지었다. (주석 19)

김남주가 겨냥하는 ‘적’은 독재자, 제국주의, 사대주의자, 노동자를 착취하는 악덕 자본가, 속류문인, 기회주의정치인, 썩은지식ㆍ언론인들이었다. 특정한 제도이기보다 제도를 악용하는 악당들이다.

다시 이동순 씨의 시평(詩評)으로 돌아가보자.

그렇다! 그의 시야말로 우리 시대에서 ‘피’로 쓴 유일한 시이다. 많은 사람들이 시는 ‘피’로 쓰는 것이라고 수월하게 말한다. 그러나 과연 우리 주위에서 ‘피’로 쓴 시가 얼마나 있었던가. 김남주의 ‘피시(血詩)’는 장차 그의 묘비명이 될 수도 있을 다음 대목에서 뜨거운 가슴속을 완전히 열어서 보여 준다.

나는 이제 쓰리라
사람들이 오가는 모든 길 위에
조국은 하나다라고
오르막길 위에도 내리막길 위에도 쓰리라
사나운 파도의 뱃길 위에도 쓰고
바위로 험한 산길 위에도 쓰리라
밤길 위에서 쓰고 새벽길 위에도 쓰고
끊어진 남과 북의 철길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

- <조국은 하나다>의 부분. (주석 20)


주석
16> 이동순, <김남주의 시와 ‘구체적 싸움’의 진정성>, <오늘의 시> 창간호, 286쪽, 현암사. 1989.
17> 앞의책, 276쪽.
18> 앞의책, 277쪽.
19> <조국은 하나다>, 356~357쪽.
20> 앞의책, 2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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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적 민중시인> 김남주 - [58회] 202편 실린 ‘조국은 하나다’ 출간

[58회] 202편 실린 ‘조국은 하나다’ 출간

<혁명적 민중시인> 김남주 평전/[13장] 조국은 하나다 2014/10/14 08:00 김삼웅
김남주의 대표작이라 할 <조국은 하나다>라는 시집이 출간된 것은 1988년 9월이다. 광주의 도서출판 남풍에서 도합 202편, 375쪽의 ‘남풍신서6’을 달고 나왔다. 저자는 아직 풀려나지 않는 상태였다.

제1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제2부 조국은 하나다
제3부 노동과 그날그날
제4부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제5부 발문ㆍ편집후기ㆍ연보가 실렸다.

편집진은 후기 <‘조국은 하나다’를 펴내며>에서 비장한 어조로 출간의 의미를 새긴다.

“조국통일의 봄바람이 백두에서 한라까지 가멸차에 휘몰아치고 있는 현하 민족사의 전환점에서, 반제 민족해방과 조국통일에의 열망을 누구보다도 정열적으로 가장 격정적으로 노래하고 싸우는 김남주 시인의 푸담하고 실다운 ‘역사’ 앞에 제공하는 기쁨은 실로 벅찹니다”란 헌사가 그것이다. ‘헌사’는 이어진다.

우리는 <함성>지 사건으로 10개월, 남민전사건으로 9년 합하여 10년간에 걸쳐 계속되고 있는 김남주 시인의 고통과 고독과 부자유 - 반민족 집단의 철근과 콘크리트에 포위되어, 사슬에 묶여 숨조차 자유로이 쉴 수 없고, 벽이 가려 하늘조차 볼 수 없는 반백(半白)의 죄인으로 죽어지내야 하는 - 에 주목하면서, 또한 현정권의 비민주적 본질과 기만성을 규탄하면서 시와 혁명과의 관계를 시가 어떻게 우리의 변혁사업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준비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주석 12)

편집후기는 이어서 군사정권 하의 대중매체와 기관ㆍ연구소들의 반민중적 행태를 비판한다.

이들 모든 대중매체들과 기관연구소들은 끊임없이 지배계급의 경제적ㆍ정치적 이익을 대변해 주고 선전해 주는 데 혈안이 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노동자ㆍ농민ㆍ청년학생들이 사회적 모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어떤 발언이나 행동을 하면 ‘급진적’이다, ‘용공적’이다 하여 터무니없는 비난을 가합니다. 그들은 이들의 혁명적 발언이나 행동을 “이성을 벗어난 광태”라하고 “정상적인 사회발전에서 이탈한 폭도”들이라 매도합니다. (주석 13)

시집의 표제시로 실린 <조국은 하나다>는 8연에 이르는 장시다. 시인의 혼과 얼이 배여있다.

조국은 하나다

“조국은 하나다”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꿈속에서가 아니라 이제는 생시에
남 모르게가 아니라 이제는 공공연하게
“조국은 하나다”
권력의 눈 앞에서
양키 점령군의 총구 앞에서
자본가 개들의 이빨 앞에서
“조국은 하나다”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나는 이제 쓰리라
사람들이 오가는 모든 길 위에
조국은 하나다라고
오르막길 위에도 내리막길 위에도
사나운 파도의 뱃 길 위에도 쓰고
바위로 험한 산길 위에도 쓰리라

밤길 위에도 쓰고 새벽길 위에도 쓰고
끊어진 남과 북의 철길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

나는 이제 쓰리라
인간의 눈이 닿는 모든 사물 위에
조국은 하나다라고
눈을 뜨면 아침에 맨 처음에 보게 되는 천정 위에 쓰리라
쌀밥 위에도 보리밥 위에도 쓰리라
나는 또한 쓰리라
인간이 쓰는 모든 말 위에
조국은 하나다라고
탄생의 말 응아 위에 쓰리라 갓난아기가
어머니로부터 배우는 최초의 말 위에 쓰리라
저주의 말 위선의 말 공갈 협박의 말⋯⋯
신과 부자들의 말 위에도 쓰리라
악마가 남긴 최후의 유언장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 (주석 14) (후략)

책에 실린 <남주형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김준태 시인은 이렇게 통절한 마음을 전한다.

이제 형은 감옥을 벗어나 어머니인 국토의 품으로, 미래의 벌판으로 날을 듯 달려가야 합니다. 시인을 더 이상 잠수함 속에 가둬 둘 나라가 아니기에, 시인을 더 이상 잠수함 속의 도끼처럼 가둬 둬선 안될 나라이기에. 남주형은 한라산의 철쭉, 무등산의 갈대, 백두산의 노래속을 날으고 날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남주형!
시인은 무당입니다. 한 민족의 가장 현실적인 무당입니다. 비를 부르고, 꽃을 부르고, 참삶을 부르고, 해방과 통일을 부르는 걸판진 무당입니다. 하오니 그 나라의 무당을 가둬두면, 비가 오지 않고 흉년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민족정신의 흉년, 민족정서의 흉년, 민족노래의 흉년, 아아 생각만 해도 끔찍스럽습니다.

남주형! 이제 우리 모두 그것을 알고 있으니, 형은 감옥문을 열고나올 것입니다. 아아, 사람세상을 위하여, 시민이여! 아아, 민족세상을 위하여 시인이여! 저기 보라꽃들이 훤히 피어 오고 있습니다. (주석 15)


주석
12> <조국은 하나다>, 367쪽.
13> 앞의 책, 373쪽.
14> 앞의 책, 101~102쪽.
15> 앞의 책, 365~3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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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적 민중시인> 김남주 - [57회] ‘무크 녹두꽃’에 옥중서신 실려

[57회] ‘무크 녹두꽃’에 옥중서신 실려

<혁명적 민중시인> 김남주 평전/[13장] 조국은 하나다 2014/10/13 08:00 김삼웅
6월항쟁은 문학ㆍ예술운동에도 거대한 분기점이 되었다. 줄기차게 민중운동을 전개해온 깨어있는 문인ㆍ예술가들이 6월항쟁에 참여하고 변혁을 이끌었다. 각종 계간지와 무크지가 민중시대의 이념적ㆍ이론적 지향성을 제시하며 출간되었다. 박정희ㆍ전두환의 폭압속에서 움츠리고 매장되었던 ‘신문예운동’이 바야흐로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민족해방을 여는 문예운동의 이정표‘를 내걸고 무크지 <녹두꽃>이 1988년 9월에 창간호를 선보였다. 발행인 신형식, 편집위원 시인 신형수, 소설가 전도상, 평론가 백진기 체제로 하는 <녹두꽃>은 “우리 민족의 영웅으로 살아 척양척왜를 외치다 쓰러져 가신 위대한 장군에게 민중들이 붙여준 이름 ‘녹두’와 한 시대의 문화ㆍ예술을 상징하는 ‘꽃’이라는 말을 빌어와 결합한 것이다”라고 ‘책머리’에서 밝혔다.

창간호에는 <김남주 옥중서신>이 실렸다. 그 사이에 지인들에 의해 시집과 인물론이 발간되기는 했지만, 무크지에 ‘옥중서신’이 실린 것은 처음이었다. “이 삼복더위에도 부글부글 끓는 뺑기통 옆에서 조국의 미래와 통일을 걱정하며 밤잠을 설칠 양심수들의 고난과 투쟁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 편한 투쟁의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그 자책감은 폭염을 잊기에 충분한 효과가 있었다.” (주석 6)면서 편집자는 김남주의 옥중시를 싣게된 배경을 밝혔다. 김남주의 기고문은 <혁명가의 투쟁의 그날그날>이란 산문이다.

혁명의 길은 젊잖은 청춘남녀들이 장미꽃 미래를 꿈꾸며 걸어가는 오솔길도 아니고, 내키면 아무대로 달릴 수 있는 반반하고 탄탄하게 다져진 대로가 아니다.

혁명의 길은 때로 무릎까지 빠지는 수렁길이고, 죽음을 불사하고 건너뛰어야 하는 천 길 벼랑의 길이고, 때로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전진해야 하는 가시밭길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혁명의 길은 멀고도 험한 길이다. 이 같은 일시적인, 부분적인 승리의 기쁨과 수없이 많은 패배의 쓰라린, 천 고비 만 고비 시련의 고비를 경과하면서 단련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어떤 전사는 적에게 살해되기도 하고 감옥에서 전 생애를 보내면서 새로운 전사를 탄생시키는 것이다. (주석 7)

에릭 홉스봄은 <혁명가 역사의 전복자들>에서 분명하게 지적한다.

왜 어떤 남성과 여성은 혁명가가 되는가.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주관적으로 원하는 삶이 사회 전체의 근본적인 변화없이는 가능하지 않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이상주의의 영속적인 기초 혹은 우리가 선호하는 용어인 유토피아주의가 존재한다. 이는 인간생활의 일부이며, 사춘기와 낭만적 사람을 겪을 때처럼 특정 시대에는 지식인들에게 지배적인 요소가 될 수도 있고, 사랑에 빠진 상태에 상응하는 우연한 역사적 순간, 말하자면 해방과 혁명이 일어나는 위대한 순간에는 사회에서도 그럴 수 있다. 아무리 냉소적일지라도 모든 사람은 불완전하지 않은 개인적인 삶이나 사회를 꿈꿀 수 있다. 모두들 그런 사회가 멋지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주석 8)

김남주가 그리는 혁명가의 일상은 어떠한가.

그러면 혁명의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은 투쟁의 그날 그날을 어떤 마음가짐과 각오로 보내야 하는가?

- 시간 엄수는 규율엄수의 초보이다. 일 분 일 초를 어기지 말고 약속시간을 지킨다.
- 사생활을 공생활에 종속시킨다.
- 동지를 제 몸같이 위한다.
- 비판과 자기비판을 생활화 한다.
단, 비판의 무기를 동지 공격의 무기로 삼지 말 것이되, 어떤 동지가 과오를 범했을 때, 그가 자기의 친구라 해서, 동향인이라 해서 또는 선후배라 해서 그것을 눈감아 준다거나 하여 비판의 무기를 무디게 하지 말자.
-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먼저 질서와 체계를 세우고 침착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항상 준비성 있는 사람이 된다. 특히 하나의 전투에서 상대를 공격할 때 모든 형태의 인격에 대비하여 완벽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결코 섣불리, 무모하게 상대를 공격하지 말 것이며, 방심이야말로 일을 그르치는 최악의 적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 대중은 혁명을 떠받쳐 주는 기반이고 혁명을 추진하는 원동력이고 혁명을 보호해 주는 철옹성이다. 대중을 사랑하고 신뢰함으로써 대중으로부터 사랑받고 신뢰받는 사랑이 된다.
- 실천은 이론의 토대이고 이론은 실천의 길잡이 이다. 끊임없이 학습하고 끊임없이 실천한다.
- 혁명적 조직 없이 혁명의 승리 없고 조직의 비밀은 혁명의 생명선이다. 최후의 순간까지 조직을 사수한다. (생략)
- 혁명에는 혁명의 고유한 도덕이 있다. 자기 신발에 흙탕물이 묻는 것을 꺼려하거나 자기 손에 피가 묻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는 아예 혁명의 길에 나서지 않는 것이 좋다. (주석 9)

김남주는 이 글에서 브레히트의 <세계를 변혁하라 필요한 것은 이것이다>를 소개한다.

정의의 사람은 누구하고도 자리를 같이 해서는 안되는가?
그것은 정의에 도움이 되는데도
어떤 약이 너무 쓰다고 할 수 있을까
빈사의 사람에게
어떤 비열한 행위도 그때는 해야 하지 않을까
비열함의 뿌리를 뽑아 버리기 위해서라면?
마침내 세계를 변혁할 수 있다면 왜 그대는 악인의 경지에 발을 들여놓지 않는가?
누구인가 그대는? 불륜의 침상에서 학살자의 팔을 껴안아라
그러나 세계를 변혁하라, 필요한 것은 이것이다. (주석 10)

김남주는 말한다.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기 위해 낡은 사회를 소멸시키고자 하는 사람은 낡은 사회의 산물인 자기자신부터 변혁시켜야 한다. 물론 이런 자기 변혁을 관념적으로는 되지 않고, 되더라도 충분하게 되지 않는다. 오직 낡은 사회를 소멸시키고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고자 하는 실천적인 과정 속에서만이 그것(자기변혁)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주석 11)

예의 <녹두꽃>1 에는 김남주의 <전사ㆍ1>과 <전사ㆍ2>라는 두 편의 시가 함께 실렸다.


주석
6> <녹두꽃> 1, 146쪽, 도서출판 톡두, 1988.
7> 앞의 책, 147쪽.
8> 에릭 홉스봄, 김정한 외 역, <혁명가 역사의 전복자들>, 앞표지, 도서출판 길, 2008.
9> 앞의 책, 147~148쪽.
10> 앞의 책, 148~149쪽.
11> 앞의책, 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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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적 민중시인> 김남주 - [56회] ‘감옥살이 이유 어머니께 전해다오’

[56회] ‘감옥살이 이유 어머니께 전해다오’

<혁명적 민중시인> 김남주 평전/[13장] 조국은 하나다 2014/10/12 08:00 김삼웅
감옥은 약한 사람은 허물어지고 강한 사람은 더욱 강하게 만드는 용광로와 같은 곳이다. 이 경우는 주로 양심수들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김남주는 대장부였다. 맹자는 대장부란 무엇이냐는 물음에 답한다.

“부와 명예와 관계하더라도 그 곳에 말려들어 헤어나지 못하는 일이 없고, 가난하고 미천한 처지를 당하여도 본래의 마음이 흔들림이 없고, 권위와 힘으로 압력을 가해와도 자기 뜻을 굽히지 않는 그러한 사람이다.”

당대를 호령하는 부도덕한 독재자, 강한 자에 약하고 약한 자에 강한 권세가, 육척 장신에 별을 번쩍번쩍 몇 개씩 달고도 정도를 걷지 않은 군인⋯⋯. 이런 부류가 대장부일 수는 없다. 육신은 왜소하더라도 불의에 저항하고 당당하게 신념의 길을 걷는 사람이 대장부다. 이런 의미에서 김남주는 대장부에 속한다. 그의 신념, 투지, 실천 그리고 순결성에서 속물문인들과 남다른 바가 적지 않았다. 그는 무사기(無邪氣)한 사람이다.

김남주는 옥살이가 9년차에 접어든 1989년 어느 날 동생 덕종에게 편지를 쓴다. 5년 전에 면회 오셨던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보고 늘 그리면서, 아들이 왜 9년씩이나 갇혀 있는지를 어머님께 이해시켜 드리라는 내용이다.

어머니 건강은 어떠시냐, 5년 전엔가 광주 옥에선가 보고 못 보았다. 보고 싶구나. 그때 모습은 여전히 고우시고 건강해 보였는데 일흔 살이 넘으신 지금은 어떤 모습을 하고 계시는 지⋯⋯.

덕종아, 어머니께서는 내가 이곳에 9년 동안이가 갇혀 있는 이유를 아시더냐? 네가 혹시 가르쳐 드렸느냐?
이를테면 독재정권과 싸우다가 그랬다든지,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다가 그랬다든지 하고 말이다. 아마 어머니는 이런 식으로 말하면 무슨 소린지 구체적으로 모르실 것이다. 독재정권이란 게 나쁜 것이고 민주주의란 게 좋은 것이고 하는 정도겠지.

어머니에게 언제 한 번 가르쳐 드려라. 당신의 자식이 무슨 일로 9년씩이나 아니 15년씩이나 감옥에 갇혀 있어야 하는지를, 그게 자식 된 도리일 것 같다. (주석 1)

김남주가 수배 중에 아버지가 별세하고, ‘금판사’는커녕 똑똑했던 아들이 국보법 등의 어마어마한 죄인이 되어 긴긴 옥살이를 할 때 어머니의 심경은 어땠을까. 아들은 자신의 옥고보다는 어머님의 상심과 어머니가 과연 아들을 이해하고 계실까, 그것이 더 고통스러웠다. 김남주의 편지는 이어진다.

덕종아, 나는 말이다. 독재자 따위는 사실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런 것들이야 동서고금에 흔해빠진 인간 말종들이다. 그들은 한마디로 말하면 어릿광대들이지. 미치광이들이지, 나라 안팎의 자본가들의 재산을, 생명을 지켜주고 그 대가로 패륜행위를 자행하는 권한을 부여받는 괴뢰들이지. 어느 시기에 자본가들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는 일을 서투르게 하면 다시 말해서 어릿광대짓과 미치광이짓을 잘못하면 내쫒기고 마는 불쌍한 인간들이지.

나는 이따위 패륜아들에게 오히려 인간적인 동정까지 느끼고는 한단다. 보아라, 이 아무개, 박 아무개, 전 아무개 등은 죽기가 무섭게, 권좌에서 내쫒기가 무섭게 개, 돼지 취급을 당하는 꼬락서니를, 실컷 못된 짓 하여 쾌락을 만끽하다가 여차하면 한보따리 챙겨가지고 도망치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목적이란다. (주석 2)

그의 글은 독재자와 그 망나니들을 비판할 때이면 얼음처럼 냉정하면서도 칼날처럼 매섭다. 그리고 과학적인 현실 분석이어서 추상성보다 사실성이 강한 편이다. 한 구절을 더 들어보자.

덕종아, 어머니에게 말씀해 드려라. 나는 이따위 개망나니들 때문에 9년 동안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고. 내가 9년 동안 옥살이 하고 있는 것은 이들 산적들을, 개망나니들을 앞세워 그 이면에서 노동하는 민중들의 고혈을 빨아먹고 있는 자본가들을 증오하고 저주하였기 때문이다.

이들 자본가들에게는 조국이 없단다. 조국이 없으니까 동포도 없고 민족도 없단다. 자기들 자본을 지켜주는 자가 자기들 형제고 동포란다. (주석 3)

이 대목에 이르면 권력과 재벌의 충견들이 힘을 받는다. 봐라, “반자본주의자 아니냐!”, “‘국시’인 자본(주의)를 부정하다니 용공ㆍ좌경ㆍ친북 아니냐.” (멍 멍 멍⋯⋯.)

김남주의 편지는 더 이어진다.

어머니에게 얘기해 드려라. 내가 감옥에 9년씩이나 15년씩이나 갇혀 있어야 하는 것은 이 진디기들, 이 거머리들, 이 흡혈귀들을 증오하고 저주했기 때문이라고. 꼬챙이를 낫으로 깍아 이놈들을 찔러 죽이라고 노동자와 농민들에게 호소했기 때문이라고. 이놈들 때문에 우리 민족은 남의 나라의 식민지가 되어 치욕의 대상이 되어 있고, 이놈들 때문에 한 나라가 두동강으로 갈라져 있고, 이놈들 때문에 통일이 안 되고, 이놈들 때문에 민주주의가 안되고 있다고. (주석 4)

김남주의 반민족ㆍ빈민중ㆍ반노동의 ‘자본(가)’에 대한 비판인식과 ‘노동의 소중함은’ 마지막 대목에서 확연하게 설명된다.

덕종아, 인간은 그 노동 때문에 동물과 구별된다. 노동, 특히 육체노동이야 말로 인간을 인간이게 하고 인간의 자질을 높혀 준단다. 나는 그래서 주문처럼 외우고 있단다. “노동에서 멀어질수록 인간은 동물에 가까워진다”는 말을. 노동이 고역이 아니고 생활의 으뜸가는 기쁨인 사회를 만드는 게 내 유일한 희망이란다. (주석 5)


주석
1> <김남주문학에세이>, 124쪽.
2> 앞의 책, 124~125쪽.
3> 앞의 책, 125쪽.
4> 앞의 책, 127~128쪽.
5> 앞의 책, 1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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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적 민중시인> 김남주 - [55회] ‘나의 칼 나의 피’ 두 번째 시집 나와

[55회] ‘나의 칼 나의 피’ 두 번째 시집 나와

<혁명적 민중시인> 김남주 평전/[12장] 감옥 밖에서 석방운동 전개돼 2014/10/11 08:00 김삼웅
김남주의 두 번째 시집 <나의 칼 나의 피>가 1987년 인동출판사에서 간행되었다. 이 해 일어판 시집 <농부의 밤>이 도쿄에서 출간되고, 일본 PEN 클럽이 명예회원으로 추대하였다. 제2 시집에 표제시로 실린 <나의 칼 나의 피>이다.

만인의 머리 위에서 빛나는 별과도 같은 것
만인의 입으로 들어오는 공기와도 같은 것
누구의 것도 아니면서
만인의 만인의 만인의 가슴 위에 내리는
눈과도 햇살과도 같은 것

토지여
나는 심는다 그대 살찐 가슴 위에 언덕 위에
골짜기의 평화능선 위에 나는 심는다
평등의 나무를

그러나 누가 키우랴 이 나무를
이 나무를 누가 누가 와서 지켜주랴
신이 와서 신의 입김으로 키우랴
바람이 와서 키워주랴
누가 지키랴, 왕이 와서 왕의 군대가 와서 지켜주랴

부자가 와서 부자들이 만들어놓은 법이
법관이 와서 지켜주랴

천만에! 나는 놓는다
토지여, 토지 위에 사는 농부여
나는 놓는다 그대가 밟고 가는 모든 길 위에 나는 놓는다
바위로 험한 산길 위에
파도로 사나운 뱃길 위에
사래 긴 밭의 이랑 위에
가르마 같은 논둑길 위에 나는 놓는다
나는 또한 놓는다 그대가 만지는 모든 사물 위에
매일처럼 오르는 그대 밥상 위에
모래 위에 미끄러지는 입술 그대 잠자리 위에
투석기의 돌 옛 사람의 무기 위에
파헤쳐 그대 가슴 위에 심장 위에 나는 놓는다
나의 칼 나의 피를

오 평등이여 평등의 나무여. (주석 16)

고은 시인이 이 시집에 서문을 지었다. “남주의 감옥 8년! 이건 하나의 일생이다. 남주! 그대는 소위 고독이라는 것 조차 세상의 넝마라고 뺑기통에 처넣어 버렸겠구나. 이 무지무지한 사람아!”로 시작되는 서문은 고은 씨의 유려한 그리고 고담한 필체로 전개된다.

70년대 해남 - 광주 시절의 도전적인 순정으로 만들어진 그대의 성난 시는 그 뒤로 비합법적으로만 우리에게 존속되고 있다. 그대의 시를 읽을 때에만 그대는 비로소 관념의 어둠 속으로부터 한 시인의 하얀 이빨들로 웃는 웃음이 되어 우리에게 나타난다. 그 새까만 낯짝으로부터 쏘아대는 하얀 이빨의, 그 광택의 절실성이 마구 달려오는 것이다.

엄숙할 때도 슬플 때도 웃는 그대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70년대 초 재판 최후 진술에서 “좇돼 버렸다”고 내뱉던 그 독설도 멀리서 들려오는 것이다. 아울러 그대 탐구와 그대의 비상투적인 감수성도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오는 것이다. (주석 17)

고은 시인이 김남주 <함성>사건의 최후진술까지 인용한 것으로 보아 재판정에 방청했던 것 같다. 그리고 후배 시인의 행로를 지켜봤다. <서문>은 이어진다.

78년이던가 79년 이던가 그대가 현상수배 되었을 때 그대를 잡아 특진하려는 형사들이 내 집은 물론이거니와 내 어머니가 혼자 살고 계시는 내 고향집 웃방, 아랫방, 벽장까지 다 뒤져댔다 한다. 어머니가 서울의 나에게 “남주라는 사람, 너 아냐? 남주가 살인강도라더라. 너 그런 놈하고 상종 말어라. 나까지 귀찮다”라고 말할 때 나는 느닷없이 눈물이 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대 시의 선배인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나니 내가 82년 감옥에서 나와 벗들을 데리고 특별면회라는 것으로 광주교도소에서 그대를 만났을 때 거기서도 나는 눈물바람을 했다. (주석 18)


주석
16> <나의 칼 나의 피>, 26쪽, 인동출판사, 1987.
17> 앞의 책, <서문>
18> 앞과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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