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메뉴

기본 메뉴

사용자 성격

커뮤니티


블로그 통계

방문자수

  • Today 35
  • Yesterday 43
  • Total 324815

활동지수

  • 인기도 1764
  • 친구 116 명
  • 퍼가기 112 개

기타 정보


즐겨찾기 | 관심 친구

  • 게시판 형식으로 보기
  • 앨범 형식으로 보기
  • 포스트 형식으로 보기

'희망'이란 두 글자

'희망'이란 두 글자                   


절벽 가까이 나를 부르셔서 다가갔습니다.

절벽 끝에 더 가까이 오라고 하셔서 다가갔습니다.

그랬더니 절벽에 겨우 발을 붙이고 서 있는 나를

절벽 아래로 밀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나는 그 절벽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때까지

내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 로버트 슐러 (서진규의 '희망' 서문) -


우리가 어떠한 곤경에 처해 있어도

버리지 말아야 할 소중한 것이 있으니

바로 '희망' 이란 두 글자 입니다.

지치고 힘들수록 가슴에 품어야만 비상할 수 있습니다.

절망 끝에 반드시 '희망'이 찾아온다는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지금 실패했다고 좌절하거나 낙담하지 마시고

다시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시길 빕니다.

힘내세요!


행복하시고
좋은 하루되세요.


클릭

많은 추천 부탁드리며, 광고클릭으로 생기는 수익은 불우이웃을 돕는데 사용됩니다.

포스트 제어

| 메일 | 인쇄

이 포스트에 대한 행동


[퍼온글]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


만담가인 우쓰미 케이코씨의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재미있다.

"내가 웃으면 거울이 웃는다"였다.

우쓰미씨는 이 말을 좋아해서,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나도 나만의 격언을 가지고 있다.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나 먼저 웃음을 보이는 삶을
살고 싶다고 나 자신을 타이른다.

클릭

많은 추천 부탁드리며, 광고클릭으로 생기는 수익은 불우이웃을 돕는데 사용됩니다.



- 가네히라 케노스케의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 中에서 -
퍼온글 원본 :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pts47 작성]

포스트 제어

| 메일 | 인쇄

이 포스트에 대한 행동


[김종수시시각각] 다시 보는 ‘섬기는 리더십’

관련핫이슈

시중에 소리소문없이 많이 퍼진 유행어 중에 “이게 아닌 게벼∼?”란 게 있다. 느리고 어눌한 충청도 사투리 발음으로 끝을 살짝 추어올려줘야 말맛이 제대로 난다. 기대를 많이 했는데 예상보다 결과가 시원찮을 때 슬쩍 던지는 말이다. 뭔가를 선택했는데 그게 잘못된 것으로 판명났을 때 스스로를 자책하는 말로도 쓰인다. 가벼운 실망감과 약간의 책임 회피를 동반한 두루뭉술한 어법으로 쓰임새가 꽤나 넓고 다양하다. 굳이 우겨서 들어선 길이 엉뚱한 곳이거나, 벼르고 맛본 음식이 별로일 때 쓰면 딱 제격이다.

그런데 요즘 이 말이 유난히 자주 들린다. 등산길이나 음식점에서 심심찮게 들려오는 새 정부에 대한 품평에서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큰 것일까. 역대 최대의 표차로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출범 석 달도 안 돼 20%대로 주저앉았다고 한다. 줄어든 숫자가 문제가 아니다. 지지율이야 떨어질 수도 있고, 앞으로 잘하면 또 올릴 수도 있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졌다고 대통령을 그만둘 것도 아니고, 일을 못할 것도 없다. 그러나 정부가 돌아가는 모양새가 영 ‘아니올시다’인 것이 문제다. 한창 기세등등 뻗치고 나아가도 시원찮을 판에 사사건건 우왕좌왕, 지리멸렬이다. 도무지 출범한 지 겨우 두 달이 갓 지난 새 정부라고 봐주기가 어려운 모습이다.

이 대통령을 찍었건 안 찍었건 일단 대통령으로 뽑힌 이상 잘 해나가기를 바랐던 게 대다수 국민의 마음이었을 터다. 그런데 두 달간 하는 품새를 보니 “어라, 이게 아닌 게벼?”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이 대통령을 찍었던 사람들의 의심은 불안감과 실망감으로 변한다. 이 대통령을 찍지 않았던 사람들의 의심은 곧장 거부감과 반대심리로 이어진다. 야당과 일부 진보세력은 미국산 쇠고기 협상 파문을 빌미로 본격적인 이명박 정부 때리기에 나섰다. 그야말로 장이 선 것이다.

이유는 많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부터 불거진 돌출 발언, 새 정부 조각과 청와대 수석 인선에서 보인 인사의 난맥상, 끊이지 않는 부처 간 불협화음과 조정능력의 부재, 총선 공천과정의 혼선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의 불화, 거칠고 서투른 공공기관장 교체, 그리고 급기야 반대세력들을 총결집시킨 쇠고기 협상 파문에 이르기까지. 꼽자면 한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과연 이런 이유만으로 민심이 등을 돌렸을까. 아니다. 고작 두 달간 잘못을 해봐야 얼마나 했을 것이며, 실수라고 해봐야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겠는가. 그것 때문이 아니다. 정작 실망한 것은 미래가 안 보인다는 것이다. 이 정부가 하자는 대로 하면 잘 될 것이란 믿음이 꺾이고 있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당선 일성은 “국민을 섬기겠다”는 것이었다. 새 정부는 지난 두 달간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는가. 국민에게 무얼 어떻게 하겠다고 소상하게 설명하고 설득했는가. 그렇지 않았다. 그저 대통령을 좇아 아침부터 밤늦도록 이리 뛰고 저리 뛰었을 뿐 무엇 하나 제대로 준비해 마무리지은 게 없다. 대통령이 직접 경찰서를 방문해야 범인이 잡히고, 손가락으로 꼭 짚어줘야 전봇대가 뽑힌다. 그나마 내놓는다는 정책은 뜻이 좋으니 무조건 따르라는 식이다. 1970년대식 물가대책은 국민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대통령 전상서에 가깝다. 이걸 국민을 섬기는 정부라고 할 수는 없다.

‘타임’지는 1930년대 대공황기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장장 12년간 미국을 이끌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을 20세기 최고의 지도자로 선정했다. 그러면서 그의 성공 비결은 국민을 감동시킨 친밀한 신뢰감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루스벨트는 재임기간 중 무려 1000번이 넘는 기자회견과 대국민담화를 통해 국민의 마음에 다가갔다. 그렇게 국민의 신뢰를 얻었기에 나라를 절체절명의 대재앙에서 구할 수 있었다.

이 대통령은 광우병 논란 끝에 정부의 위신이 만신창이가 되고 나서야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실수는 바로잡으면 되고, 성과는 앞으로 내면 된다. 그러나 믿음을 잃으면 죽도 밥도 안 된다.

 

김종수 논설위원

포스트 제어

| 메일 | 인쇄

이 포스트에 대한 행동


[퍼온글]그리움과 사랑이 하나가 되어






스티븐님은 나의 오라버님이시다.

나이차가 많은 탓에 늘 어렵기만 한 나의 오라버님이시지만

외로움에 방황하던 나의 청년기 시절

아버지 보다도 더 따뜻하고 든든한 사랑으로 삶의 지주가 되어 주신분이다.

오늘의 내가 있도록 발판이 되어주신분...

세월이 흐를수록 오라버님을 향한 고마움에 가슴이 메인다.

30 여년전 어느날

오라버님은 캐나다 라는 멀고 먼 나라로 훌쩍 이민을 떠나셨다.

일찌기 내 어머니는 어린 네남매를 남겨둔채 저세상으로 가셨고

소녀시절 나의 언니는 동생들을 남겨둔채 미국으로 떠나셨다.

그럼에도 블구하고 여전히 이별에 익숙해 있지 않았던 철부지 나...

이제 난 누굴 의지하며 살아야하나...

허지만 살아야했다.

오라버님이 내게 가르쳐주었던 삶의 방정식으로

외로움을 이겨나가는 길을 스스로 찾아야 했고...

홀로 그리움을 가슴에 삭이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우리 남매의 기약없는 긴 이별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이십년이 지난 어느 겨울, 길었던 우리의 이별의 끝은 찾아왔다.

그립던 누이를 만나기 위해 오라버님은 캐나다로 부터 날아오셨다.

우리 남매는 20년만의 상봉에 그저 끌어안고 울기만 했다.

오랜세월 가슴에 담았던 그리움은

그 길고 길었던 이별의 서러움은...

그날 소나기가 되어 우리둘의 가슴을 적셨다.

눈물로 나와 마주보며 서 계신

나의 사랑하는 오라버님은

어느새 고혹을 훌쩍 넘은 중후한 모습으로 변하셨으나

내기억속의 변함없는 삼십세 오빠 그대로 이셨듯이

고혹의 문턱앞에 서있었던 나역시

떠나는 발길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던 그 옛날

스무살 안스러웠던 누이, 그모습 그대로였으리라...




그러나 서로가 미국 남부과 캐나다 북부 이역만리에 떨어져 살기에

우린 애틋한 남매의 정을 가까이에서 나눌길이 없다.

"오~ 혜경이야?"


오라버님이 불러주시는 내이름....

캐나다 국경너머 저편으로부터의 낮고 부드러운 음성은

오히려 그리움의 계곡아래로 날 더 깊이 빠뜨린다.

오빠는 아시나요

이 누이에게 외로움을 이기는 방정식은 가르쳐주셨지만

그리움을 삭이는 방법은 가르쳐 주시지 않으셨다는것을...

이제 우리모두 황혼길을 걷고 있는데

남은 삶의 시간동안 저 국경을 넘어 우린 몇번이나 더 만날수 있을까....

그러나 현실이라는 ...

신이 인간에게 허락한 이 영역을 넘기 어려운 안타까움은

비단 나혼자만의 것은 아니리라....




그런데...

평생 이 안타까움만 간직한채 살았을 우리남매에게

왕복 8000 킬로미터의 긴 거리를, 30 여년의 긴 공백을 ,

단 한번의 클릭으로 단숨에 해결해주는 고마운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조인스 블로그 이다.

아마도 작년 가을이었던듯 싶다...

건강상 이유로 반 은퇴하여 시간적 여유가 생긴 오라버님께서

내 블로그에 들어오시기 시작하셨다.

오랜세월동안 오라버님과 서로의 사적인 생활과 생각들을

자세하게 교류하며 살아오지 못했기에

나의 또다른 모습이랄수 있는 블로그를 보여드린다는게

같은 형제라 할지라도 여간 민망하고 쑥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라버님께서는 자주 내 블로그에 오셔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는것 같았다.

내가 블로그를 무척 재미있게 꾸려간다는 칭찬도 해주셨다.

어느날 나는 지나가는 말로 권유를 드렸다.


"오빠도 블로그 시작해 보실래요?"


"에이~ 하긴.....뭘...

그냥 네글이랑 다른 사람들 글을 읽어보는것만으로도 재미있는데 난..!"



여가시간의 대부분을 성경책을 읽으며 보내신다는 나의 오라버님은

블로그 라는것을... 하실 시간도, 흥미도 없을꺼라 난 여겼다.

그러나 비회원이신 오라버님을 위해 내모든 폴더를 전체공개로 오픈하였다.

내 블로그의 총량때문에 꽤 많은 날들을 내글 읽기에 시간을 보내시던 어느날

오라버님께서 조인스 블로그에 가입 신청을 하셨다는 메일이 왔다.


"여러 블로거들의 좋은 글들을 읽어보니 나도 블로그가 하고 싶어지더구나.."


"와우!! 정말이세요? 잘하셨어요!!"





어쨌든 가입신청 한지 근 5개월 만에 회원 자격을 얻으셨으니

조인스 블로그가 해외 동포들에게 있어 얼마나 높은 문턱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블로그 초창기에 쉽고 빠르게 회원가입이 되었던 나로서는

그 어려움을 알턱이 없었던 것이다.

그 높은 문턱이 때로는 넘을수 없는 벽이 되어 많은 해외 동포들이

회원가입을 못한채 지금도 조인스 블로그 담밖에서 서성이는 분들도

계시다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다.

나는 오라버님의 어려움에 대해 조블 반장님께 탄원서도 올리고,

내 블로그에 포스팅도 올리며

해외 동포 가입 문제점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등 애를 쓴 결과

힘들게 힘들게 조인스 블로그 마을에 입성하게 되셨다.


"빰빠라밤~~~~환영합니다....스티븐님!!!"




영광의(?) 입성 그날 이 동생은 오라버님을 위하여 팜파레를 크게 불었건만

어째 스티븐님의 블로그는 아무런 메아리도 없이 늘 조용하기만 했다.


"오빠...글좀 올리시지 그러세요"


"아냐..내가 한글 타자도 못치지만

허리가 안좋아 의자에 오래 앉아있질 못해...

글을 쓰고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냥 당분간 회원들 글만 읽으련다."



그러나 오랜 침묵이 민망하셨던지

어느날 자신의 뜻을 적은 글을 영문으로 올리셨다.

2007년 11월 26일

드디어 조블에 처녀글을 올리신것이다.


"쓰기보다는 읽기를, 말하기보다는 듣는것이..."



왠지 이글이 오라버님 블로그의 첫번이자 마지막 게시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운 느낌이 왔다.

"오빠, 제 블로그를 닫는한이 있어도 오빠의 글을 번역해드릴테니

블로그 하시려 했던 초심을 포기하지 마시길 바래요..."


난 오라버님께 계속 격려하는 말씀을 드렸다.




드디어... 지난해 겨울의 문턱에서

오라버님의 회고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장성한 두딸에게 아버지의 뿌리를 알게하고 싶으신 그마음이...

사랑하는 조국을 등지고 떠나 외로운 타국의 땅에 심은 꿈의 나무가

지금의 푸른 나무로 키워지기 까지의 오랜 인고의 세월들이...

그속에 주옥같이 펼쳐지고 있었다.

난 오라버님의 회고록들을 번역하며

남몰래 수없이 눈물을 흘려야했다.

스믈일곱 나이에, 어머니 없는 외로운 십대 동생들을 보살펴야 했던

젊은 장남의 고뇌를...

젊은 가장의 고뇌를...

그리고 인간적인 깊은 고뇌를 보았다.

내가 평생 갚아도 못 갚을 오라버님의 사랑.. 은혜...

오라버님은 동생들을 보살피는일은 당신의 기쁨이었다 하시지만

난...오늘에서야 느끼게 되었다...

그 기쁨속에 숨어있던 마음의 무게 또한 얼마나 컸었을가를...

그리고 그무게에 짓눌리면서도

밝은 미래가 올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도록 용기를 주셨던

오라버님의 숭고한 정신을...




나역시 한글 타자를 체계적으로 배운적이 없어

여전히 두손가락 독수리 타법으로 자판을 두드린다.

그러나 오라버님의 글을 번역하여 올리는 일은

내 자신의 글을 쓰는일보다 더 즐겁고 행복하다.

왜냐면...블로그로 인해 내가 또다시

사랑하는 오라버님의 삶속에 들어올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대부분의 형제들은 성장해가면서 자매끼리나 형제끼리보다

특히 둘사이에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경우엔

남매끼리 가까워 지는 경우가 드믈다.

그러나 오라버님과 나는 블로그를 통해 우리 지난 삶의 어느때보다

더 가까운 남매가 되었을 뿐 아니라

나아가 서로에게 또하나의 조블 벗이 되었으니

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하지 않을수 있을까...

이제나 저제나 오라버님의 새글소식을 기다리는 나는

오늘도 "스티븐 의 블로그" 문앞을 서성인다.


"오빠...새글 준비는 잘되가고 있나요...

다음엔 어떤 글을 쓰시려 하나요?"


.
.
.
.
.
.


우리 남매의 그리움과..사랑을 하나로 묶어준

조인스 블로그에 깊은 감사를 남기며....







Una Furtiva Lagrima / Izzy Cooper
(남몰래 흘리는 눈물)

포스트 제어

| 메일 | 인쇄

이 포스트에 대한 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