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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니 코미디영화 같았던 65년 한국은행 강도사건

 

한낮에 벌어진 대담한 은행 강도사건, 다들 아실 겁니다. 지난 20일 오토바이 헬멧을 쓴 건장한 남성이 서울 잠원동 새마을금고에 들어가 50대 남성 고객을 인질로 삼고 은행직원을 위협해 2400여 만원의 현금을 배낭에 챙긴 후 오토바이를 타고 유유히 사라졌죠. (아래는 범인을 담은 CCTV 영상)
은행강도.png

 
벌건 대낮에 총(가스총으로 추정)을 든 은행강도라니. 뭔가 할리우드 영화 속 한 장면 같지 않은가요. 하지만 이미 40년 전인 1965년 이보다 훨씬 더 영화같은 총 든 은행강도 사건이 한국에서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바로 '광주 한은지점 갱 사건'으로 알려진 5인조 은행강도 사건입니다.
당시 석간신문이던 1965년 12월 30일자 중앙일보 사회면엔 '대담한 새벽의 범행'이라는 시커먼 제목과 '최대 규모 광주 한은 지점 갱'이라는 부제가 붙은 기사 하나가 등장합니다. 그날 새벽 한국은행 광주지점(아래 사진)을 턴 '갱단'에 관한 내용입니다.
한은 광주지점.jpg
 
 색안경과 흰색 마스크를 쓴 3명의 '갱단'은 담을 넘어 한은 광주지점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를 수위가 발견하죠. 기사에 따르면, 수위 정씨가 "왜 담을 뛰어넘어오느냐"고 갱들을 나무라자 갱들은 둔기로 정씨를 때려 실신시킨 다음 숙직하던 한은 직원 3명을 칼로 위협해 6600여 만원(현재 가치 60억원 상당)의 원화와 외화를 챙겨 달아났다고 합니다. 수위와 직원 4명을 모두 금고 안에 가둔 채로 말이죠. 오전 7시쯤 출근한 숙직실 '식모'가 텅빈 숙직실을 이상하게 여겨 은행 안으로 들어갔다가 금고 안에 갇힌 직원을 발견, 경찰에 신고하면서 이 대담한 은행강도 사건이 세상에 알려집니다.
범행 현장 주변은 눈이 내린 상태였는데 누군가 발자국을 없애려 이 눈을 다 쓸어버린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다이너마이트 도화선이 발견되기도 하죠. 대체 누가 겁없이 이런 사건을 벌였을까요. 강도들이 북한 사투리를 썼다는데, 혹시 간첩의 소행? 그렇다면 사건이 영원히 미궁에 빠지는 게 아닐까요.
하지만 경찰은 사건 발생 34시간만에 5인조 갱단을 일망타진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사건을 해결했을까요. 답부터 밝히자면, 범인이 바로 경찰 코 앞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알고보니 주범은 당시 한은 청소부였던 심모씨, 그리고 공범 4명은 그의 매부 허모씨 등 일가친척들이었습니다.
경찰은 철야를 하며 한은 직원들의 알리바이를 일일이 추궁했는데 유독 심씨 행적이 수상했습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간첩 소행 같다"거나 "법인이 해안 쪽으로 도망갔을 것"이라고 딴전을 피웠기 때문이죠. 해안봉쇄령을 내리면서도 심씨를 의심하던 중 결정적인 제보가 들어옵니다. 강도사건이 벌어진 30일 오전 5시쯤 사건현장 인근 대인동 유달여관 골목에서 4명의 남자가 리어카에 뭘 잔뜩 싣고 가는 걸 봤다는 목격자가 나온 겁니다. 이곳은 심씨의 공범 조씨 집이 있는 곳이었죠.
여기서 뭔가 이상한 게 있지 않나요. 네, 소위 '갱단'이 은행강도를 해서 탈취한 현금 6600여 만원을 오토바이나 트럭이 아니라 '리어카'에 싣고 날랐습니다.
비록 지점이라고는 하나 한 나라의 중앙은행이 이렇게 쉽게 털린 것도, 그렇게 턴 현금을 강도들이 낑낑 대며 리어카로 옮긴 것도, 지금 돌이켜보면 뭔가 어설픈 코미디 영화를 보는 것처럼 웃기기만 합니다. 하지만 당시 범인들은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완전범죄를 꿈 꾸며 간첩 소행으로 몰기 위해 일부러 다이너마이트 도화선을 현장에 떨어뜨리고 북한 사투리 훈련까지 했을 정도니까요. 본격적인 범행에 앞서 7차례나 한은 담을 넘으며 사전 답사를 하기도 했다죠.
66년 1월 4일 범인의 현장검증에는 희대의 '갱' 얼굴을 보려고 광주시민 수백명이 몰려들었습니다. 당시 언론은 주범 심씨 등을 '갱'이라고 불렀지만 그는 그저 폐병 걸린 34살의 가난한 청소부였습니다. 한달에 1만원의 박봉으로는 자신의 치료비는커녕 7식구 생활비 마련도 어려웠던 차에 유혹에 넘어간 거죠.
그렇다면 2015년 은행을 턴 이 강도는 어떤 사람일까요. 왠지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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