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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속 가로공원의 봄꽃축제

 
도심속 가로공원의 봄꽃축제
 

도심의 거리에 아름답고 화려한 봄꽃들의 향연이 펼쳐져 사상구의 시외버스터미날 부근을 오가는 시민들의 발걸음을 유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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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축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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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축제장의 꽃들을 안내하는 봄꽃축제 리플렛

‘2017 사상 봄꽃 전시 행사’(사진은 올 해 봄꽃 전시 행사  모습)가 지난 주 4월 21일부터 5월 15일까지 25일간 괘법동 광장로 명품가로공원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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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행사 기간 동안 명품가로공원에는 데이지·팬지·피튜니아 등 30종, 20만본의 초화가 장식·배치된다. 특히 애플아울렛에서부터 르네시떼 앞까지 700m 구간에는 대형 꽃 조형물을 비롯해, 시민들과 함께 꾸미는 ‘재활용 터널’, 다양한 토피어리, 포토존 등이 설치된다. 또 다채로운 체험행사도 진행되며, 초화 판매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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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에도 조명이 들어 와 색다른 볼 거리를 제공한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밤에도 꽃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LED 조명시설(LED 꽃 등 12종)도 설치되어 24시간 즐길 수 있다.

녹지공원과 관계자는 “해를 거듭할수록 아름답고 화려한 봄꽃의 향연인 ‘사상 봄꽃 전시 행사’를 손꼽아 기다리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다”면서 “사랑하는 가족·연인과 함께 꽃향기 그윽한 광장로 명품가로공원에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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쏙 마음에 드는 문자가 야간에 서비스된다

사상구의 시외버스터미날 주변의 명품가로 공원은 서부경남의 관문으로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다. 이곳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봄꽃축제는 일상에 바쁜 시민들에게 비록 짦은 시간일지라도 몸과 마음을 즐겝게 해주는 축제가 틀림없다. 5월초 연휴기간동안 더 많은 시민들이 즐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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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비행기 뜨고 내리는 안전공항

24시간 비행기 뜨고 내리는 안전공항
 

정부(국토교통부)는 김해신공항을 2026년 개항한다는 계획을 지난 10일 발표했다. 부산시는 김해신공항을 정부 계획보다 1년 앞당겨 오는 2025년 개항한다는 목표다. 우여곡절 끝에 발표된 김해 신공항에 대한 개요를 소개하고자 한다. 


 

김해국제공항1.png
사진은 이용객들로 크게 붐비는 김해공항 출국장 모습). 사진제공·부산일보

 

김해신공항은 영남권 신공항에 대한 영남 5개 지자체 간 합의 내용에 따라 세계적인 공항 엔지니어링업체인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이 사전타당성검토 용역을 시행한 결과, 지난 해 6월 최적 대안으로 채택돼 7월부터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약 9개월 간 예비타당성조사를 실시했다. <!--[endif]--> 


예비타당성조사 결과, 총사업비 59600억원, 비용대비 편익비율(B/C) 0.94로 나와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됐으며, 경제성·정책성·지역균형발전적 분석을 종합평가(AHP)한 값은 0.507로 사업 타당성을 확보했다. AHP 0.5 이상이면 사업 타당성이 확보된 것을 의미한다. 특히 사업비가 당초 예상한 41700억원에서 17900억원이 증가한 59600억원으로 늘어나 사업 추진에 보다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김해신공항 건설사업을 통해 현재 김해공항 서편에 연 3800만명 처리 목표로 활주로, 국제선 터미널, 계류장 등 공항시설과 신규 국제선 터미널에 접근하기 위한 도로·철도 교통망이 건설된다. 이는 영남권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항공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법으로, 김해신공항이 건설되면 영남권의 누구나 편리하게 항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국토부는 이른 시일 내 공항개발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발주하고 김해신공항을 차질 없이 진행해 2026년 개항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용역에선 공항개발예정지역 범위, 공항의 규모 및 배치, 건설 및 운영계획 등을 포함한다. 세부적으로는 기본계획 수립(2017)기본 및 실시설계(20182020)본공사 시행(20212025)종합 시운전(2025)개항(2026) 등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김해국제공항2.png

 

부산광역시는 김해신공항을 정부 계획안보다 1년 앞당겨 오는 2025년 개항한다는 목표다. 이와 함께 김해신공항 고속도로(사상해운대 간) 민간투자사업 진행 등 공항 접근성 향상을 위한 교통망 확충에 온 힘을 기울이기로 했다. 김해신공항이 영남권의 관문공항, 국가 제2 허브공항으로서 기능과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넓히는 것이다. 김해신공항이 미래부산 100년을 견인하는 발전의 축이 되고 다음세대까지 편리하게 이용하며 지속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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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공항 확장 계념도

이를 위해 국토부와 부산시는 김해신공항을 영남권 주민 모두가 미주와 유럽 등 세계 전역을 잇는 항공노선을 편리하게 이용하는 영남권 관문공항 사물인터넷(IoT)을 비롯해 스마트시티 실증사업의 모든 노하우가 구현되는 미래형 스마트 공항 하늘길, 바닷길, 육로를 연계한 Tri-port 구축으로 복합물류도시 부산의 내일을 열어가는 물류거점 공항 항공산업도시 부산의 신성장동력을 창출하면서 공항과 연계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일자리 창출공항 서부산 발전을 이끄는 앵커시설 공항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할 계획이다.  


 

김해국제공항3.png

김해공항과 신공항의 활주로, 터미날 비교

특히 공항 개발과정에서 '24시간 운영공항'을 실현하기 위해 소음피해지역 대책 마련을 최우선으로 해결해 나갈 방침이다. 기존 김해공항의 소음권역과 신공항 소음피해 예상지역이 공항개발예정지역에 지정되도록 정부를 설득하고 현실적인 보상과 이주대책이 마련되도록 하는 것이다.이 부분이 풀어야 할 큰 과제를 안고있는 대목이다.
  
정부 계획에 따라 오는 2026년 김해신공항이 개항하면 국제도시 부산 위상도 한층 강화된다. 미주와 유럽 등의 중·장거리 노선 취항으로 영남권 주민이 그 동안 인천공항을 이용해야 했던 불편이 해소된다올해 기준, 국제선 12개국, 42개 도시, 1138/주 운항에서 2026년이면 국제선 40개국, 100개 도시, 3천편/주 운항 시대를 연다.    

 

영남권 관문’ 김해신공항 건설 본궤도.jpg

 

김해공항은 요즘도 항공수요가 많은 시즌에는 김해공항은 여행객으로 만원을 이루고 있을 정도다. 그기에다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7시간 동안은 모든 종류의 항공기가 소음피해로 운항제한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대형항공기의 운항이 가능토록 반드시 반영해야 할 것이다.


국토교통부의 바램과 같이 김해신공항은 영남권 관문공항으로서 영남권 주민들이 보다 편리하게 항공서비스를 이용하게 됨은 물론 지역경제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게 될 것으로 기대해 본다. 24시간 비행기 뜨고 내리는 안전공항을 우리 손으로 건설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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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만에 복원된 백제 금동신발

 
1500년만에 복원된 백제 금동신발
 
문화재청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지난 2014년 12월 나주 정촌고분에서 출토됐던 금동신발을 최첨단 기술과 전통 공예기술을 접목해 복원했다고 지난 4월3일 밝혔다. 문화재청의 보도자료에 의거 이와 관련된 상세한 기사와 사진을 소개하여 우수한 백제문화를 전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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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정촌고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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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정촌고분 1호 돌방 모습
 
나주 정촌고분 1호 돌방 유물출토 모습.jpg
나주 정촌고분 1호 유물출토 모습

나주 정촌고분 1호 돌방 금동신발 출토 모습.jpg
나주 정촌고분 1호 돌방 금동신발 출토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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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정촌고분 1호 금동신발 모습

문화재청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지난 2014년 12월 나주 정촌고분에서 출토됐던 금동신발을 최첨단 기술과 전통 공예기술을 접목해 복원했다고 지난 4월3일 밝혔다. 문화재청의 보도자료에 의거 이와 관련된 상세한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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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1500년전의 금동신발

백제 금속공예의 정수로 평가받는 정촌고분 금동신발은 길이 32㎝, 높이 9㎝, 너비 9.5㎝이다. 한쪽의 무게는 부식물이 포함된 진품이 510g, 복제품이 460g이다. 크고 무거워 피장자를 위한 부장품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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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정촌고분 금동신발 복원과정.jpg
              나주 정촌고분 금동신발 복원과정(아말감 도금과 조립)

이 신발은 발등 앞쪽에 화려한 용 모양 장식이 있고, 발목 부분에는 금동판 덮개를 부착했다. 또 투조(透彫·금속판의 일부를 도려내는 것) 기법과 축조(蹴彫·정으로 점선을 내어 무늬를 완성하는 것) 기법으로 바닥과 옆판에 연꽃과 도깨비, 새 문양을 만들었다.

 
나주 정촌고분 금동신발 문양(연꽃, 도깨비).jpg
나주 정촌고분의 문양(연꽃과 도깨비)

특히 바닥에 있는 도깨비 문양은 부릅뜬 눈과 크게 벌린 입이 특징으로, 연꽃 문양을 가운데에 두고 위아래에 2개가 묘사됐다.

백제 금동신발은 공주 무령왕릉을 비롯해 고창 봉덕리, 고흥 안동고분, 공주 수촌리 등지에서도 출토됐으나, 정촌고분에서 나온 유물이 상태가 가장 완벽하다.
 
연구소는 복제품 제작에 앞서 금동신발을 대상으로 3차원 입체 스캔, 엑스레이, 컴퓨터 단층촬영(CT) 분석을 진행해 두께 0.5㎜의 구리판에 5∼10㎛(마이크로미터, 1천 분의 1㎜) 두께로 순도 99%의 금을 입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어 설계도면 작성, 용머리 장식과 옆판·바닥 등 부재 제작, 문양 만들기, 도금, 조립의 과정을 거쳐 복제품을 완성했다. 도금은 수은과 금가루를 혼합해 금속 표면에 바른 뒤 365℃ 이상의 열을 가하는 전통 기법이 활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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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동신대학교와 업무협력 체결(2017.3.29)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앞서 2015년 금동신발의 문양을 특허로 등록했고, 지난달 29일에는 금동신발 관련 문화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 동신대 산학협력단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아울러 금동신발이 지닌 역사 문화적 가치를 지역 사회와 함께 찾아가는 작업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문화재청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앞으로도 나주 정촌고분과 고흥 야막 고분 등에서 출토된 다양한 문화유산을 지역 사회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국민에게 공유하는 것은 물론, 세계화에도 이바지할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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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비를 아시나요

꽃비를 아시나요 

새봄을 맞아 부산에서 봄 축제가 잇따라 열리고 있는 가운데 봄꽃 명소가 시민을 유혹한다. 


꽃비1-2017.4.5.jpg

부산시는 시민이 쉽게 접근해 즐길 수 있는 명품 봄꽃 길 10곳은 동래·연제구 온천천 길, 사상구 낙동강 제방 길, 강서구 공항로와 낙동제방 길, 해운대구 달맞이길 등이다.


사상·강서구의 낙동강 제방을 따라 심겨진 왕벚나무 길은 전국에서 가장 긴 벚꽃터널(12)을 자랑한다. 


 

꽃비3-2017.4.5.jpg

사진은 45일 사상구쪽의 낙동강 제방길에서 벚꽃비를 즐기는 젊은이의 모습들이다. 그들은 빗속에 벚꽃과 낙화를 동시에 즐기는 정취에 험뻑 젖었을 것이 틀림없다. 이 사진은 송숙희 구청장의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임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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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와 양팽손의 지란지교

조광조와 양팽손의 지란지교
-화순지역답사4
 
기묘사화(己卯士禍)로 능주에 도착한지 한달 다새만에 사약을 받은 정암(靜菴) 조광조 (趙光祖, 1482~1519)의 시신을 거둬 증리 산자락에 장사하고 그 언덕 아래에 죽수사(竹樹祠)란 사당을 지어 홀로 봄·가을에 제사했다. 이듬해 조광조의 유해를 이듬해 조광조의 선영이 있는 경기도 용인의 심곡으로 운구하여 돈독한 의리를 지켰다.
 
서슬퍼런 시절에 개인의 안위보다 먼저 조광조의 시신을 거둬들여 제사했다는 절의(節義)의 스승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 1488~1545)은 어떤 인물인가.
 
 
양팽손 초상.jpg
      학포 양팽손의 초상
본관은 제주로 1488년 9월 19일 전남 능성현(현 능주) 월곡리에서 양이하(梁以河)의 아들로 출생하여 1545년 8월 18일 학포당에서 타계했다. 자는 대춘(大春), 호는 학포(學圃)라 했는데 호는 스스로 붙인 자호다. 고려 말의 충신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1377~1392)의 학문과 사상을 흠모하여 ‘포은을 배운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시호는 혜강(惠康)이다.

일곱살에 전라감사 앞에서 '천지를 헤아리며 일월처럼 밝으리라'고 했을 만큼 일찍 문재를 드러냈다. 계당산 자락 쌍봉사(雙峰寺)에서 독학하다가 열여섯(1503)에 송흠(宋欽)을 찾아가 배웠다. 장성군 삼계면 출신으로 일찍 문과에 급제하고 어지러운 조정을 피해 자원하다시피 남원향교 교수를 맡았을 때였다. 열아홉(1506)에는 경기도 용인으로 6년 연상인 정암 조광조(靜庵 趙光祖)를 방문하여 '지란지교(芝蘭之交)'를 맺었다.
 
스물셋(1510)에 생원시에 장원하고, 스물아홉(1516)에 식년문과에 들었다. 촌스럽다는 비웃음에도 굽힘이 없었고, 승진은 빨랐다. 홍문관 정자(정9품)로 시작하여 1년 만에 사간원 정언(정6품), 곧장 홍문관 교리(정5품)가 되었다. 민생안정을 위하여 긴축재정을 요구하며, 공물을 줄일 것을 주장하였다. 또한 정도전과 양팽손을 비롯한 신지사류들은 도교의 제사를 지냈던 관청인 소격서(昭格署) 철폐를 주장했고 잘못된 중종반정의 위훈자들에게 재산과 노비를 국가로 귀속시키는 이른바 ‘위훈삭제’ 사건이 발생했다. 훈구파와 신진사류들의 싸움에 환멸과 위협을 느낀 중중은 결국 신진사류들을 몰아내고 급기야 귀양길에 오른 조광조는 능주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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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가 머물렀던 초가3칸을 복원한 적중거가
학포가 기묘년인 중종 14년 12월 삭직이 되어 능성의 옛집(월곡)으로 돌아와 보니 정암이 능주에 유배되어 관노(官奴) 문후종의 집에 머물고 있었다. 조광조가 있는 능주읍 남성리와 학포가 있는 월곡리와는 10여리에 불과하다. 때가 12월이라 삭풍이 코끝에 찼지만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 조광조는 큰 위안이 되었다. 이후 거의 매일 만나서 경론을 논하다 25일 만인 1519년 12월 10일 사사(賜死)되는 운명을 맞는다
 
정암은 사약을 받고 남긴 절명시에는 임금사랑과 나라걱정이 절절하다.
애군여애부(愛君如愛父) / 우국약우가(憂國若優家)
임금을 어버이처럼 사랑하고 / 나라 걱정하기를 내 집 걱정하듯 했도다
백일임하토(白日臨下土) / 소소조단충(昭昭照丹衷) 
맑고 밝은 햇빛이 세상을 굽어보니 /  거짓없는 내 마음을 훤하게 비춰주리
서로 믿고 의지했던 정암의 죽음 앞에 학포는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조광조의 시신을 거둬들인 것은 자신의 몸에 해가 미칠 것을 알면서 의로운 일을 행하기란 범인으로선 어려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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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와 양팽손을 배향한 죽수서원

조광조의 시신을 용인 선영으로 옮긴 그해 여름 겨울동안 조광조의 시신을 암매장 하였던 증조산 골짜기에 죽수사(竹樹祀)라는 영당(靈堂)을 지어 자신이 그린 조광조의 초상화를 걸게 하고 문인과 제자를 시켜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이것이 죽수서원(竹樹書院)의 효시이며 그 후 26년만에 태학생 홍인헌, 박겸 등이 상소하여 신원(伸寃)끝에 관작이 봉직되고 1592(선조 2) 대사헌 백석걸(白石傑)의 주장과 이퇴계의 조언으로 문정공(文正公)이란 시호를 내려짐과 동시에 죽수(竹樹) 사액이 내려졌다. 1630(인조 8)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주장과 사림의 건의에 의하여 양팽손과 함께 배향하도록 허락하여 생전에 의리로 맺었던 교분이 죽어서 같은 사우(祠宇)에 모셔져 사동(四同)’이라 하여 존경과 추모를 받게 것이다. 사동(四同)이란 서로 같은 4명의 벗을 말하는데 말은 부화뇌동하지 않으나 뜻은 같고, 행실은 답습하지 않으나 취향은 같고, 벼슬길에 나아가기는 하나 시기는 선후가 같고, 직분은 안과 밖이 다르나 하는 일은 같다.
 
조광조는 생전 양팽손을 평하기를 “마치 지초(芝草 ,상황버섯)나 난초의 향기가 사람에게서 풍기는 것 같다. 비 개인 뒤 가을 하늘이요, 얕은 구름이 막 걷힌 뒤 밝은 달이라, 인욕이 깨끗이 씻어진 사람이다.”고 하였다.
 
학포는 훗날 기묘사화(己卯士禍)를 돌이키며 이렇게 썼다.
“이 분(조광조)과 함께 죽어 충암(忠菴 金淨) 같는 분들을 지하에 가서 만나보지 못함이 애석하다. 이래가지고 어떻게 평일을 서로 다짐하던 사이라고 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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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포당 정면
학포는 2년여 동안 월곡과 쌍봉을 오가다가 학포당이 완성되자 어린 시절을 지낸 쌍봉으로 돌아와 칩거하며 시와 그림으로 세월을 보냈다. 34살의 나이에 중조산(中條山) 아래 쌍봉에 작은 초당을 짓고 학포당(學圃堂)이라 이름하고 ‘춘산 계은사(春山溪隱辭)’를 지어 자기 심중을 표현하였다.

草屋初開江上山 (초막집을 비로소 강 위의 산에 지어놓고)
江干日日釣魚還 (강가에서 날마다 고기를 낚아온다.)
平生擅有玆江勝 (평생 동안 이 강의 승경을 독차지하니)
長謝天公早疱閒 (하늘이 주신 한가로움에 길이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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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포당 현판
학포당은 1521년 이양면 쌍봉리에 지은 서재로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로, 팔작지붕의 기와집이다. 원래는 초당이었으며 이후 유실되자 1922년 14대손 회락이 중심이 되어 중건했다. 뒤편에 면암 최익현이 쓴 ‘학포선생 학포당 유지비’가 있다. 현액은 보성사람 김치주가 썼으며 주련은 학포가 7살 때 지은 ‘천지일월’의 제목에 따라 지은 시와 전라감사가 지어주었다는 답사를 우암 송시열의 글씨를 집자해서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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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암 최익현 글씨  학포 양선생 학포당 유지추모비
학포당내에는 추모비가 있는데  학포당이 훼실되어 버리자 유지(遺址)를 잊지 않고 보존하기 위해 고종 39년(서기 1902년) 학포의 13 대손 쌍봉사람 재경(在慶)이 만들어 옛터에 세웠다. 서기 1922년 학포당을 중건한 후에는 이 비를 당의 뒷담 밑으로 옮겨 놓았다. 글씨는 한말 선비요 우국지사였던 경기도 포천 출신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1833~1906) 이 썼다. 이 비의 후면에는 ‘후학 최익현술문 십삼대손 재경립 숭정후 오 기유 삼월 안격서(後學 崔益鉉述文 十三代孫 在慶立 崇禎后 五 己酉 三月 安格書)’라고 기록되어 있다.

1994년 학포당을 보수하였고, 1995년에 외삼문을 원래대로 지었다. 1996년에 호박돌 담장으로 설치했으며 그 위에 기와를 얹은 모습이다. 담장을 1997년에 담장 보수를 했다. 누구나 오갈 수 있도록 대문을 활짝 열어 놓은 것도 후손들의 배려였다.
 
학포는 인생 후반기 25년을 떠받쳐준 학포당에서 많은 문우들과 교유하고 서화를 즐겨 조선 초기의 선비화가로 우뚝 섰다. 오늘날 그의 유전작은 전칭작(傳稱作)을 포함하여 10점 내외에 불과하나 장르상으로는 산수, 영모, 사군자, 기명절지 등에 걸쳐있다. 회화 작품으로 산수도’, ‘연지도’, ‘묵죽도" 등이 있으며 특히 그의 산수화는 호남 화단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양팽손-산수도3 종이에 먹, 88.2×46.7cm,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jpg

       ‘산수도’, 양팽손, 종이에 먹, 88.2×46.7cm,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산수도〉는 화면 우상단에 학포가 지어 쓴 2수의 제시(題詩)가 적혀있는 것으로 일찍부터 알려진 그의 대표작인데, 일제시대 데라우치총독이 박물관에 기증한 그림이다.

'산수도'에는 “고깃배야 오고 가지 마라. 행여 세상과 통할까 두렵노라’라는 오언시(五言詩)가 씌어 있는데 의롭지 못한 세상과 단절한 그의 심정이 잘 표현되어 있다.

종가집에 소장된 기명절지도에 속한〈연지도(蓮芝圖)〉는 문중 후손이 1916년 서울에 위치한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본가에서 옮겨온 그림이다. 양팽손의 외손인 이이장(李彛章,1708-1764)이 1761년에 쓴 제발이 첨부되어 있어 양팽손이 그림을 잘 그렸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헌자료이기도 하다.
 
1537년(중종 32) 반대파 김안로(金安老)가 죽은 뒤 관직이 회복되어 1544년(중종 39)에 용담(龍潭)현감에 제수되었으나 곧 사직하였다. 

 

죽서서원 위패.jpg

                죽수서원에 모셔진 조광조와 양팽손의 위패

이러한 삶을 살아 온 양팽손에 대하여 학문과 의리가 귀감이 되어 사후에 이조판서로 추증되었다. 1630년(인조 8)에 사계 김장생 등의 건의로 죽수서원(竹樹書院)에 조광조와 함께 배향되었다. 또 죽수서원이 창건된지 80년이 지난 1650년(효종 원년) 경기 용인에 조광조를 향사하기 위한 심곡서원이 세워졌다. 경기도 용인 수지면 상현리의 심곡서원(深谷書院)에도 배향(配享)되었는데, 그 중 심곡서원은 대원군의 서원 철페령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중의 하나이다. 1631년(인조 9)에 학포 양팽손을 향사하는 부조묘가 창건되었다. 

1818(순조 18) 순천 용강서원(龍岡書院)에 추향되었다. 그의 사후 3백년 이상 지난 1863년(철종 14년) 혜강(惠康)이란 시호를 받았으니, '부지런하고 사(私)가 없으므로 혜(惠)라 하고 연원(淵源)이 유통(流通)하므로 강(康)이라 한다'는 뜻으로 한평생 일관된 삶의 태도와 성품을 잘 대변한다 하겠다.

이곳에 있는 은행나무 높이는 35 m이고 둘레 8 m 수령(樹齡)500여 년으로 학포당 창건 후 둘째 아들인 응태(應台)가 심었다고 전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8개의 굵은 가지가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는데 후손들은 이 여덟 가지를 학포의 여덟 아들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1980년 초 태풍에 가지가 하나 부러져 지금은 7개다. 가지가 부러진 뒤 곧바로 종손이 사망하자, 세인들 사이에서 이 나무에 대한 신비감이 더해지고 있다. 전라남도 기념물 제92호로 지정되었다. 58년 간의 삶 동안 올곧은 행동으로 청사(靑史)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긴 그는 행동하는 지식인이었으며 학자이자 문장가이며 문인화가(文人畵家)이기도 했다.
 
16세기 조선화단에서 크게 주목되는 문인화가인 양팽손을 2003년 문화관광부에서 4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하여 소개한바 있다. 정암 조광조와 학포 양팽손의 아름다운 우정을 소재로 문화재 산책 등 체험행사가 오늘에도 이어지고 있다. 2016년 5월 28 일 오후 2 시 화순 남산공원에서 기념행사가 열렸다. 지란지교의 숨결 ! 학포 , 정암을 기억하다 는 주제로 학포부조묘 , 조광조 적려유허비 , 학포당 , 죽수서원 , 영벽정 등 두 사람의 우정에 관련된 지역의 문화재를 대상으로 년말까지 다양하게 진행되었다

이처럼 정암 조광조와 학포 양팽손의 지란지교는 오늘날까지 우리들 곁에 살아 숨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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