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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포구 신포동 장어구이 거리의 낭만

합포구 신포동 장어구이 거리의 낭만
 
 
연이은 무더위로 피로 누적과 지친 기력을 내색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많은 사람들이 무더위를 이겨내고 기력을 회복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지만, 역시 보양식을 섭취하는 것이 가장 사랑받는다. 사람들이 즐겨 먹는 보양식의 종류도 참 다양한데, 최근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특히 인기가 있는 장어에 대한 관심이 높다. 장어는 면역력을 증진 시키고 아이들의 성장 발육에도 도움이 되는 식재료다. 

신포동 장어구이 거리는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신포동 1가에 장어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운집해 있어 창원 지역의 음식 문화를 대표하는 테마 거리 중 하나이다. 2012년 말 기준 장어구이 거리에 자리 잡은 장어 요리 전문점은 마산 소방서 인근에서 남성 수산 센터까지 22개 점포가 성업 중에 있다.
며칠전 창원시에 살고있는 지인과 신포동 장어골목에서 장어구이를 먹으며 즐긴 시간을 소개한다.
 
장어골목14.jpg
창원시 마산합포구 신포동 장어골목에는 밤이 시작되면 시민들이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며 모여들기 시작한다.
 
신포동 장어골목은 창원 마산지역의 바닷가 포구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장어맛집들이 모인 거리. 여름에는 여름밤바다 보러왔다가, 겨울에는 몸보신하려 왔다가... 계절을 안가리고 바닷가에서 먹는 장어구이 거리로 시민들에게 인식시키고 있는 먹거리 명소이다.

 
장어골목3.jpg
마산합포구 신포동 앞바다와 장어골목
 
신포동 장어골목은 창원 마산지역의 바닷가 포구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장어맛집들이 모인 거리. 여름에는 여름밤바다 보러왔다가, 겨울에는 몸보신하려 왔다가 자연스럽게 들릴정도로 계절을 안가리고 바닷가에서 먹는 장어구이 거리로 시민들에게 인식시키고 있는 먹거리 명소이다.
 

장어골목5.jpg
스테미나 음식의 대표격인 장어
 

장어의 종류1-먹장어.jpg
먹장어
먹장어는 흔히 술안주로 사랑받는 바로 그 곰장어(꼼장어)다. 일반적인 장어 생김새와 달리 턱과 꼬리지느러미가 없고 원시적으로생긴 원시어류이다. 바다 갯벌에 서식하며 껍질은 품질좋은 가죽제품으로 사용하는 장어이다. 양념과 소금구이 처럼 주로 구이요리로 많이 먹고 안주로 인기가 높다. 그런데 이 먹장어는 식감이 않 좋아서 고추장 양념을 해서 먹을 수 밖에 없다.

 
장어의 종류1 - 뱀장어(민물장어).jpg
민물장어
‘뱀장어’는 민물장어라고도 하며, 바다와 강을 오가는 회유성 어류다. 연어는 성장한 후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돌아오지만, 뱀장어는 유생기(幼生期) 실뱀장어 때 강으로 올라와 5-12년 정도 살다가 산란을 위해 깊은 바다로 떠나 심해(深海)에서 알 낳고 수정 후 생을 마감한다. 민물장어로 손꼽히는 풍천장어의 의미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강은 서해 쪽으로 향해있다. 바람이 바다에서 강으로 강하게 불어 들어오는 강과 바다가 만나는 하구를 바람 風, 내 川자로 지형을 의미하는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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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장어
붕장어는 일본말로 아나고이다. 몸투의 측면을 따라 작고 흰 구멍 여러 개가 점선처럼 길게 있다.  지방이 체중의 10%로 뱀장어의 절반 수준이다. 기름이 적고 뼈째 잘게 회를 친 이른바 ‘세꼬시’로 썰어놓은 회맛은 씹을수록 입 안이 고소하다. 탕을 끌이기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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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장어
갯장어를 ‘참장어’라고 부르며,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은 ‘하모’다. 하모는 ‘물다’는 뜻의 일본어 ‘하무(はむ)’에서 왔고, 갯장어는 ‘이빨이 개 이빨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붕장어·먹장어(곰장어)·뱀장어가 사시사철 먹는 생선이라면, 갯장어는 살이 제대로 오른 여름이 제철이다. 여름 보양식으로 갯장어가 손꼽히는 까닭이다. 잔뼈가 많아 다듬고 요리하기가 어렵다. 잔칼집을 무수히 내어 뼈를 부수는 세꼬시나 유비키 사부샤부가 일본에서 개발되었다.


장어골목6.jpg
 
신체의 기력회복을 돕는 데 훌륭한 음식인 장어는 풍부한 DHA 성분을 가지고 있어 두뇌 건강과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되며,  황산화작용을 통해 활성 산소를 제거하여  항암효과에도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아울러 난소 작용을 활성화시켜 피부미용과 노화방지에도 탁월해 남녀노소에게 모두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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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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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념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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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포동 앞바다와 아이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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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포동 앞바다 방파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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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포동 앞바다 방파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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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포동 앞바다의 방파제앞을 통과하는 휘황찬란한 조명의 유람선
 

신포동 장어구이 거리는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신포동 1가에 장어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운집해 있어 창원 지역의 음식 문화를 대표하는 테마 거리 중 하나이다. 2012년 말 기준 장어구이 거리에 자리 잡은 장어 요리 전문점은 마산 소방서 인근에서 남성 수산 센터까지 22개 점포가 성업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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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눈으로 야경을 즐기는 속에 장어구이를 즐기면 밤깊어가는 줄 모른다. 장어구이와 소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여름방 도심에서의 낭만적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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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바닷바람을 밤깊어가는 신포동 장어구이 거리

 

사시사철 즐길 수 있는 장어 요리지만 제철인 여름에는 이 긴 거리가 사람들로 가득하다. 가게마다 설치된 수족관에는 보기만 해도 힘 좋아 보이는 장어들이 서로 등과 배를 맞대고 있다. 신포동 장어구이 거리에 위치한 가게마다 조금씩 조리법과 가격은 다르지만 싱싱하고 힘 좋은 장어를 재료로 사용한다는 데는 차이가 없다. 마창대교의 야경과 넘실거리는 마산항의 바다를 보며 식도락을 즐기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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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총에서 재차 확인된 ‘이사지왕도’ 명문

신라시대 적석목곽분(돌무지덧널무덤)인 경주 금관총에서 '이사지왕도'(爾斯智王刀)라는 글자가 새겨진 칼집이 출토됐다. 금관총 유물에서 '이사지왕'(爾斯智王)이라는 명문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로, 지난 2013년 금관총에서 나온 환두대도(環頭大刀, 둥근고리갖춤 쇠칼)를 보존 처리하는 과정에서 '이사지왕'이라는 명문이 나온 바 있다. 
 
금관총에서 출토된 환두대도-2013,7.jpg
 
2013년 7월 환두대도에서 찾아낸 '이사지왕'(爾斯智王) 명문
 
금관총1.jpg
금관총 위치도-천마총이 있는 대릉원 맞은편에 있다.
 
금관총.jpg
금관총 
국립중앙박물관은 국립경주박물관과 함께 진행한 금관총 발굴 조사 중 6월말 수습한 칼집 끝 장식에서 '이사지왕도'와 '십'(十)이라는 명문을 찾아냈다고 30일 밝혔다.
 

2015년 발굴 금관총.jpg
지난 6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경주박물관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박물관 자료 공개 사업의 하나로 조사한 금관총의 발굴 성과를 공개했다

이사지왕도(斯智王刀)1.jpg
      발굴 당시 칼집이 놓인 상태


금관총 출토 칼집서 ‘이사지왕’ 글자 확인.jpg
2015년 7월 금관총 발굴 조사 중 찾아낸 '이사지왕도'와 '십'(十)이라는 명문

박물관은 이사지왕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신라 상고기 왕 중 하나로 보고있다. 정확히 그중 누구인지를 추정할 수는 없지만, '도'(刀)라는 글자가 추가로 확인되면서 논쟁거리 중 하나였던 칼의 주인이 이사지왕(爾斯智王)이라는 점은 확실해졌다고 덧붙였다.
 

김대환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금관총(金冠塚) 주인공과 이사지왕의 관계에 대해서는 "칼의 주인이 밝혀졌다고 해서 금관총에 묻혔던 사람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아울러 '爾斯智王刀)(이사지왕도)' 글자의 반대편에 새겨진 명문 '十(십)'은 주술적인 의미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칼의 주인이 이사지왕(爾斯智王)이라는 점은 '금관총'이라 이름붙은 피장자의 신원을 밝힐 수 있는 대단한 명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금관총을 비롯한 황금유물은 신라시대 대규모 적석목곽분이 유행했던 마립간(麻立干) 시대의 산물로 여겨진다. 마립간 시대라 하면, 17대 내물(재위 356~402년)~18대 실성(402~417)~19대 눌지(417~458)~20대 자비(458~479)~21대 소지(479~500)~22대 지증(500~514년) 사이를 뜻한다. 그렇다면 '이사지왕(爾斯智王)'은 이 6명의 마립간 가운데 한 명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이사지왕이 금관총에 묻힌 주인공일까. 문제는 '이사지(爾斯智)'라는 왕 이름이 어느 고대 문헌에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짜 왕인지 귀족의 명칭인지, 무덤 주인공은 맞는지 등을 놓고 견해가 분분했다. 김대환 학예연구사는 "그동안 금관총 주인공과 이사지왕의 관계, 칼의 주인과 이사지왕의 관계를 두고 다양한 견해가 나왔으나 이번 발굴로 칼의 주인이 이사지왕이라는 점은 명확해졌다"며 "하지만 이사지왕이 누구인지, 무덤 주인공이 맞는지 등은 아직까지 알 수 없다.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금관총 가는고리 금 귀걸이 1쌍.jpg

가는고리금귀걸이

굵은고리 금 귀걸이.jpg

굵은고리금귀걸이
 

이번 조사에서는 칼집 외에도 가는고리 금귀걸이 1쌍(2점), 굵은고리 금귀걸이 1점, 가는고리 금귀걸이 1점, 유리구슬 수백 점 등  많은 양의 부장품이 추가로 발굴됐다. 이 중 가는고리 금귀걸이는 지금까지 신라 고분에서 처음 발견된 특이한 형태라 주목된다.

이와 함께 조사단은 무덤에 남은 구조와 목질 흔적을 통해 관이 묻혔던 덧널의 위치도 알아냈다. 금관총 나무덧널은 커다란 나무기둥을 세워 가로 9m, 세로 8m로 구획한 돌무지 구조 안에 가로 7.2m, 세로 6.2m, 깊이 0.4m의 구덩이를 파고 강돌과 자갈을 깐 구조 위에 만들어졌음이 확인됐다. 또 나무덧널 안에 나무널이 있다고 기술된 일제강점기 보고서 내용과 달리 폭 2.4m인 내부 덧널(내곽)과 폭 4.2m인 외부 덧널(외곽)의 이중 구조로 축조된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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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1년 9월 일제가 출토하여 대대적으로 자랑한 금관총왕관
 
금관총은 1921년 9월 주택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금관이 출토되면서 알려졌으며 이 때 출토된 금관 등 황금유물들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일제가 만든 발굴보고서는 "금관총 황금유물들은 1877년 중앙아시아에서 확인된 옥수스 출토품들을 능가하는 수준"이라고 감탄했다. 일제는 그러면서 "우리 '일본 영토'에서 처음 발견됐고, 전세계적으로도 가장 두드러진 고분발견의 예"라고 자랑했다. 그로부터 90여년 후 지난 2월23일부터 정식 발굴 조사가 처음으로 이뤄졌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덧널 주위에 나무기둥을 세운 구조는 천마총, 황남대총에서는 볼 수 없는 것으로 앞으로 밝혀내야 할 중요한 연구 과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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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아이 마음 뺏는 키덜트 전시회

어른 아이 마음 뺏는 키덜트 전시회
 
부산시와 (재)부산문화재단은 지난 7월 17일부터 8월 9일까지 사상인디스테이션(CATs)에서 ‘취미의 재발견Ⅰ- 나는 키덜트’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어 관심있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고 있다. 어제 지역 청소년과 함께 다녀온 키덜트 전시회장의 모습을 소개한다. 키덜트란 키드(Kid)와 어덜트(Aduit)의 합성어로 아이들 같은 감성을 지닌 어른을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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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회는 생활 속에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문화예술동아리 활동을 활성화하고, 동아리간 상호 교류와 협력의 네트워크를 구축해 문화도시 부산의 기반을 만들어 가기 위한 '시민 생활문화동아리 축제 지원'사업의 첫 마당이다.
 
전시회는 동심 가득한 어른들의 세계를 보여줄 '취미의 재발견Ⅰ- 나는 키덜트'와 8월 11일부터 8월 23일까지 전시 예정인 '취미의 재발견Ⅱ- 나도 예술가'로 구성된다. '나는 키덜트'에서는 일상 속 키덜트 아이템인 레고 창작물, 건담 프라모델, 옛날 장난감 등과 함께 '나도 예술가'에서는 시민들의 수집품, 사진, 그림 등 생활문화와 관련한 아이템 들을 한자리에 모아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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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의 재발견Ⅰ- 나는 키덜트' 전시장 내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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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 가득한 어른들의 세계를 보여주는 '취미의 재발견Ⅰ - 나는 키덜트' 전시회에서 정교한 레고 작품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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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게 해주는 창작레고 전시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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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동호회 브릭딕셔러니의 30여명 회원들이 만든 대규모 스타워즈 디오라마라고 하는 '스타워즈 사이드 스토리' - 어마어마한 사이즈와 디테일로 스타워즈 라인업의 제품군과 창작물을 표현하면서 멋진 장면을 만들어 탄성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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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조립품은 장난감이라는 차원을 넘어 어엿한 취미로 자리잡고 있는 세상이다. 늦은 결혼탓도 한몫하겠지만 유년시절을 그리면서 예사 정성이 아니면 조립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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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장남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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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애들에게 인기 높았던 RC자동차 종류들-RC 자동차 수집 :: 올드RC_부산 송인수, 손정화, 강성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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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머리와 큰 눈이 특징적인 블라이스 인형(Blythe doll) 은 1972년 디자이너 앨리슨 카츠만 (Allison Katzman)이 만든 인형으로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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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태권V로봇과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코너

한편 '시민 생활문화동아리 축제 지원'사업은 이번 전시회를 시작으로, 오는 8월 15일 영화의전당 야외광장에서 개최 예정인 "전 국민 춤추기 프로젝트 : '춤출까예'"의 공연 마당을 거쳐, 10월 2일부터 10월 4일까지 부산시민공원 일원에서 개최 예정인 '시민 생활문화예술축제'의 어울 마당까지 시민들이 주인이 되고, 또 관객이 되는 생활문화예술의 확산을 위한 열정을 계속 뿜어낼 계획이다
이번 생활문화예술축제 'I AM A KIDULT’의 개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목

생활문화예술축제 'I AM A KIDULT’

기간

2015.7.17() ~ 8.9()

시간

10:00~18:00 (입장 가능 시간 17:30까지)
매주 수 20:00까지 연장운영 / 매주 월요일 휴관


장소


CATs 사상인디스테이션
부산광역시 사상구 사상로 190 (괘법동) 

분야






- 창작레고 전시 : 브릭딕셔너리, 브릭팀_코리아, 브릭뮤지엄

- 건프라 : 정진욱
- 블라이스 인형(Blythe doll) : 김은영, 이수인
- 문방구 탐방 수집 : 이근민
- 너프(NERF)건 수집 : 이성수
- RC 자동차 수집 : 올드RC_부산 송인수, 손정화, 강성달


 
[부산일보의 관련영상] 동심에 빠진 어른 '나는 키덜트'

https://youtu.be/tZn0dYJEJEI
 
사본 -수요낭만콘서트-앞[1][2].jpg
 
사본 -수요낭만콘서트-뒤[1][1].jpg
삼락천분수대에서 개최 예정인 음악연주회
현대인의 로망인 문화생활-그러나 야근이나 회의 등 바쁜 업무로 매번 미루기만 해왔다면 시간을 투자해보자.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7월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인 오늘 만큼은 꼭! 문화생활을 즐겨보도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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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엘레지속의 주인공 이야기

 
해운대 엘레지속의 주인공 이야기
 
한국인의 피에는 한(恨)이 녹아 있다. 슬픈 분위기의 전통가요, 엘레지(elegy)는 한의 정서와 잘 어울린다. 우리의 부모 세대가 엘레지를 좋아한 것은 한 많은 그들의 인생이 노래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해운대 엘레지」「용두산 엘레지」「황혼의 엘레지」등 등 1960년대는 애절한 곡조가 심금을 울리는 엘레지 전성기였다. 그 속에 「해운대 엘레지」란 가요는 뭍 사람들의 아련한 추억속에세월의 벽을 넘어 오늘도 노래방 어디에선가 불려지고 있다. 「해운대 엘레지」를 탄생시킨 작사, 작곡, 노래의 주인공 세사람과 가사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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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의 해운대 해수욕장
 
첫번째 이야기- 해운대 엘레지 
「해운대 엘레지」는 전체 3절의 장절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1절은 사랑의 맹세와 다짐에도 연인이 떠났음을 서러워하는 내용, 2절은 다시 만날 수 없는 연인을 잊기로 하고 미련을 버리겠다는 내용, 3절은 실연당한 연인이 정든 해운대를 떠나겠다는 내용을 각각 담고 있다. 1961년 가수 손인호가 불렀으며, 백영호가 작곡하였고 한산도가 작사하였다. 1958년 발표된 「해운대 엘레지」는 해운대 대중가요의 원조라 할 수 있다. 해운대의 엘레지는 여기서 싹텄다.
  
손인호가 「해운대 엘레지」를 부른 것은 순전히 장소성 때문이다. 해운대 백사장엔 그리운 님이 있고 애틋한 정이 흐른다. 손인호의 미성은 애조띤 가사와 선율에 실려 왠지 모를 그리움에 사무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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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해수욕장의 해운대 엘레지 노래비
 
「해운대 엘레지」는 전체 3절의 장절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1절은 사랑의 맹세와 다짐에도 연인이 떠났음을 서러워하는 내용, 2절은 다시 만날 수 없는 연인을 잊기로 하고 미련을 버리겠다는 내용, 3절은 실연당한 연인이 정든 해운대를 떠나겠다는 내용을 각각 담고 있다. 1961년 가수 손인호가 불렀으며, 백영호가 작곡하였고 한산도가 작사하였다. 1958년 발표된 「해운대 엘레지」는 해운대 대중가요의 원조라 할 수 있다. 해운대의 엘레지는 여기서 싹텄다.
 
손인호가 「해운대 엘레지」를 부른 것은 순전히 장소성 때문이다. 해운대 백사장엔 그리운 님이 있고 애틋한 정이 흐른다. 손인호의 미성은 애조띤 가사와 선율에 실려 왠지 모를 그리움에 사무치게 한다 
  
해운대 엘레지(1958) 

                   작곡 : 백영호, 작사 : 한산도, 노래 : 손인호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헤어지지 말자고 

맹세를 하고 다짐을 하던 너와 내가 아니냐
세월이 가고 너도 또 가도 나만 혼자 외로이 
그때 그 시절 그리운 시절 못 잊어 내가 운다

백사장에서 동백섬에서 속삭이던 그 말이 
오고 또 가는 바닷물 타고  들려오네 지금도
이제는 다시 두 번 또 다시 만날 길이 없다면 
못난 미련을 던져 버리자 저 바다 멀리 멀리

울던 물새도 어디로 가고 조각달도 기울고 

바다마저도 잠이 들었나 밤이 깊은 해운대
나도 가련다 떠나가련다 아픈 마음 안고서 
정든 백사장 정든 동백섬 안녕히 잘 있거라 

 

해운대 백사장 과 동백섬에서 헤어지지 말자는 절대사랑의 맹세가 세월에 의해 무너진 어느 훗날, 해운대백사장에 찾아와, 떠나버린 옛사랑을 추억하는 남자의 아린 심정을 잘 나타낸 노래이다. 바다, 백사장, 동백섬 등 노랫말의 소재가 해운대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해운대는 1960~1970년대에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신혼 여행지였을 뿐 아니라, 젊은이들 사이에 여행해 보고 싶은 선망지이기도 하였다. 당시 해운대를 찾은 사람들은 유일한 호텔이었던 극동호텔을 기억한다. 

전체 3절 가사 가운데 제2절은 아예 기록되지 않았고, 제3절 '조각달도 기울고'는 '조각달도 흐르고'로, '나도 가련다'는 '나는 가련다'로, '안녕히 잘 있거라'는 '안녕히 잘 있게나'로 잘못 기록되어 있다. 가사 오류에 관해서는 이미 지역 전문가들과 언론이 문제를 지적한 바 있으나, 아직까지 해운대구청의 보완 작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2000년대 이후 지방 자치단체에서 앞다투어 기념비 설립에 추진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일들이다.

 

 

두번째 이야기- 작곡가 백영호

부산 출신 대표 가수 현인의 노래비가 영도와 송도에 나란히 있는 것 처럼, 부산 출신 대표 작곡가 백영호의 작품이 새겨진 노래비 두 개도 해운대에 서로 멀지 않은 거리에 세워져 있다.

 

남북으로 길게 펼쳐진 해운대 백사장 한 가운데쯤에 서 있는 「해운대 엘레지」노래비에서 우선 부산 작곡가 백영호의 자취를 확인할 수 있다. 해운대구청이 제작한 이 노래비는「해운대 엘레지」가 발표된 지 40년 만인 지난 2000년에 세워졌다. 또 다른 백영호 작품이자 가수 이미자의 대표곡이기도 한 「동백 아가씨」노래비가 있다. 기념물이 세워질 만한 곳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 다소 엉뚱한 장소(해운대구 우2동 동부올림픽타운 118동 부근 대로변)에 있는 이 노래비는 「해운대 엘레지」노래비와 같이 2000년에 건립되었다. 백영호가 2003년에 타계했으니, 운 좋게도 생전에 노래비가 건립된 경우이다. 현인 노래비는 모두 2002년 현인 타계 이후에 세워졌다

 

백영호(白映湖: 본명;白永孝 1920~2003) 부산 대신동 출신으로 당시 음악인들 대부분이 그랬듯 가족들의 만류로 공식적인 음악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만주 신경음악학원을 수료, 음악공부를 한것이 전부였다. 해방 후인1947년 코로나레코드에 입사하였다. 1953년 부산광역시 서구 남부민동 소재의 미도파레코드에서 문화 부장 및 전속 작곡가로 활약하면서 백설희·방운아·정향·신해성 등 미도파레코드 전속 가수를 통해 작품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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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인수가 부른 "추억의 소야곡"
백영호는  첫 히트곡으로 당대 최고의 가수였던 남인수가 불렀던 "추억의 소야곡"으로 이노래는 작곡가 백영호가 진주에서 요양 중이던 가수 남인수를 찾아와서 취입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하여 취입한 내력이 있으며,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과 더불어 대표곡 중의 한곡으로 남아있다. 작곡가 백영호는 30대 중반에 첫 출세작을 내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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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백아가씨 재킷

 

1964년 4월 당대 최고의 배우 신성일·엄앵란 주연의 영화 <동백아가씨> 개봉을 앞둔 김 기 감독은 주제곡을 삽입하기 위해 작사가 한산도(본명 한종명)에게 영화의 줄거리를 압축한 가사를 의뢰한다. 한산도는 몇 번의 퇴고를 거쳐 작사를 마무리하고 작곡가 백영호에게 전달한다. 가사를 넘겨받은 백영호는 몇차례 기타를 튕겨보다가 떠오르는 악상을 그대로 오선지에 옮겨 명곡 '동백아가씨'를 완성한다. 가사를 받은지 두시간 여만이었다. 실제로 영화 <동백아가씨>는 크게 흥행을 못하고 간판을 내렸다가 노래가 유명해지면서 재개봉해 매진사례를 이어갔다.

 

약력 및 주요작품 발표년도
 -1920년 부산 출생
 -만주 신경 음악학원 수료
 -1950년대 ‘추억의 소야곡’ 발표
 -1960년대 ‘동백아가씨’, ‘추풍령’, ‘황포돛대’, ‘여자의 일생’ 발표
 -1970년대 ‘비 내리는 명동’, ‘아씨’, ‘여로’, ‘어머님 생전에’ 발표
 -1994년 서울정도 600년 자랑스러운 서울시민 상 수상
 -1999년 옥관 문화훈장
 -1997년 백영호 기념관 건립(유족)
 -한국음악저작권 협회 이사
 -한국음악 저작권협회 고문
 -서울 중구문화원 이사
 -2003. 5. 21 오전 11시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폐렴 등 합병증으로 별세(향년 83세)

우리나라 대중음악에 끼친 영향은 백영호의 곡을 노래한 가수들의 면면만으로도 가늠할 수 있다. 남인수·이미자·배호·남상규·현미·김상희·하춘화·남정희·문주란·김영임·나훈아·주현미·문희옥 등 20~30년을 거스르면서 거쳐간 가수만 203명에 이른다. 특히 '동백아가씨’, ‘울어라 열풍아’, ‘황포돛대’, ‘여자의 일생’, ‘아씨’, ‘여로’, ‘임금님의 첫사랑’ 외 수백여 곡을 불렀던 가수 이미자의 음악인생에서 땔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또 "해운대 엘레지", "추억의 소야곡", "추풍령", "황포돛대", "동숙의 노래", "잊을 수 없는 여인", "서울이여 안녕", "여자의 일생" 등 100여곡을 히트시키고 55년동안 4000여곡을 작곡했다. 또한 5000여 곡의 노랫말을 지은 원로 작사가 반야월 선생과 더불어 각각 작곡과 작사 부문에서 최다 작가 타이틀이 붙었는데 이는 깨기 힘든 기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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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 박경권 원장의 서울의원 내에 있는 "백영호 기념관"
연락처:경남 진주시 상대동 297-22  ☎ 055-758-3679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다 1991년 처가가 있는 진주 상대동에서 개업한 백영호의 장남 백경권 원장. 아버지와는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그는 줄곧 아버지 음악과 가까이 있었다. 1997년 병원 안에 아버지 백영호가 작곡한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비롯한 수많은 명곡들의 LP판 등과 백씨의 유품들로 꾸민 '백영호 기념관'을 만들었다. 틈틈이 환자들을 위한 연주공간이 되기도 하는 그 곳에서 백 원장이 직접 선친의 히트곡을 피아노로 연주한다. 환자들에게 심신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려는 선친의 생전 뜻이기도 하다.
 
 
백영호 음악과 인생.jpg
        2009년 출간된 백영호의 음악과 인생 

 

1960~80년대 국민의 사랑과 애환을 담은 곡조로 위안을 주고 심금을 울렸던 작곡가 백영호의 인생과 음악이야기를 담은 <백영호 음악과 인생>이 2009년7월 나왔다. 장남 박경원이 쓴 이 책에는 백영호 선생이 1971년 펴낸 <백영호 101명곡집 '마음의 노래'>에 실린 곡을 갈무리하고 55년에 이르는 작곡인생 속 남겨진 흔적들이 옮겨져 있다. 아울러 기념관 개관 10주년을 맞아 기념음반도 내놓았다.

 

백영호 기념관개관10주년 기념음반.jpg

 작곡가 백영호선생 기념관 개관10주년 기념음반으로 2009년 유작을 모은 작곡집-무료로 제공하여 많은 인기를 끌었다.

 

'여자의 일생(이미자)' '동숙의 노래(문주란)' '나의 쥴리엣(현인)' 등 열아홉 곡을 우선 앨범에 실었다. '동백아가씨'는 이미자의 LP 음원과 함께, 소리꾼 장사익·재즈가수 말로·크로스오버가수 임태경의 리메이크 곡을 앞·뒤·가운데에 실었다

 

둘째 아들 백경국 씨는 사천에 모신 선친 비문에 적어 놓은 것처럼 대중음악 작곡가 백영호는 한국인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당신의 모습은 지금 가고 없어도 아름다운 당신의 소리 빛은 온누리에 퍼져 영원할 것입니다."

 

 

세번째 이야기- 작사가 한산도

 그 옛날 고달픈 삶의 애환으로 우리의 대중음악이 만들어지고 민중에게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1930년 최초의 직업가수인 채규엽의 등장으로 우리 가요계는 활기를 띠었다. 그 후 일제의 모진 압박 속에서도 우리 가요는 꾸준히 발전했고 1945년 해방이 되자 일본에 체류 중이던 황해도 박연 출신의 작사가 야인초(草 : 본명 김봉철)가 1946년 귀국해 영도구 남항동 코로나레코드를 설립했다.


 

한산도1.jpg

작사가 한산도(韓山島)로 널리 알려진 작고가이자 가수 한종명은 본명이 한철웅이다

 

1948년경 이곳에서 야인초 작사·백영호 작곡의 "고향 아닌 고향"을 가수 한산도가 한종명이라는 예명으로 녹음했다고 한다. 그러나 레코드사가 소규모였으므로 당시 야인초는 미도파레코드에서 녹음 기사로 더 많은 활약을 하였다. 1950년대에 한종명이란 예명으로 천리여정 왕검선 길손 청춘 에레지 하와이안 코리안 송 등을 발표했다. 이 중 "고향아닌 고향"은  전후 부산에서 크게 히트한 노래이다. 당시 인기 절정의 선배가수는 현인,박재홍 등이었고 손인호,방운아,남백송,허민 등이 후배 내지는 비슷한 연배라고 한다.

 

작곡가 한산도(韓山島)이자 가수 한종명(韓鐘鳴)은 본명이 한철웅(韓鐵雄)이며 1931년(호적 1932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출생했다. 어린시절 일본에서 잠깐 체류 하였다가 해방후 부산 사상구에 정착하여 사상에서 부산중학교를 졸업했다.
 
추억의 소야곡.jpg
         작사 한산도, 작곡 백영호, 노래 남인수 "추억의 소야곡"

작사가로써 한산도(韓山島)는 작곡가 백영호와는 손잡고 히트한 첫 작품이 1955년에 가수 남인수(南仁樹)가 불렀던 "추억의 소야곡(追憶의 小夜曲)"이다.  
 
추억의 소야곡(追憶의 小夜曲)
                           작사: 한산도, 작곡: 백영호, 노래:남인수 

다시 한번 그 얼굴이 보고 싶어라 몸부림 치며 울며 떠난 사람아
저 달이 밝혀주는 이 창가에서 이
밤도 너를 찾는 이 밤도 너를 찾는 노래 부른다


바람결에 너의 소식 전해 들으며 행복을 비는 마음 애달프구나
불러도 대답 없는 흘러간 사랑
차라리 잊으리라 차라리 잊으리라 맹서 섪구나

 

다시 못 올 옛 사랑이 안타까워라 못 생긴 내 마음만 원망하건만.
그래도 못 잊어서 이 한밤에도
그 이름 불러보는 그 이름
불러보는 서글픈 밤아

 

소야곡이란 성악의 세레나데 (serenade)나 기악의 녹턴 (nocturn)이란 용어를 한자로 옮긴 것으로서 야상곡(夜想曲)이라고도 불렀다. "추억의 소야곡"이란 저녁 ()에 추억에 잠겨 부르는 노래라는 뜻이다. 가사에서 저 달” “ ()” “서글픈 밤이란 표현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
 
그 후 작사가로써 한산도(韓山島)는 작곡가 백영호와는 콤비를 이뤘으며, 두 사람의 대조적인 성격처럼 좋은 하모니를 이뤄내는데 성공했다. 한산도하면 백영호가 생각나고 두사람을 떠올리면 이미자(李美子)가 연결된다.이 세사람 가인(歌人)의 만남은 불후(不朽)의 명작을 알리는 출발점이었고 훗날 가요사의 큰 획을 긋는 계기가 된다.
 
우리 가요의 백미라 할 "동백아가씨"를 비롯 "울어라 열풍아", "여자의 일생", "추억의 소야곡","지평선은 말이 없다","빙점","동숙의 노래" 등등 그들의 콤비 작품은 내는 쪽쪽 히트했으며 두사람의 손을 거친 작품은 무려 500여편에 이른다.
 
1960년대 가요계는 작사가 한산도의 이름으로 도배되었고, 서민적으면서도 깊이 있는 한산도의 작품은 음반가에서 별칭하기를 '황금덩어리'라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 영광의 뒷켠에 아롱진 한산도의 눈물과 암울한 세월을 아는 이 또한 그리 많지 않다. 
 
25년간의 투병생활. 하반신 마비로 문밖 출입을 못한 한산도의 25년 세월은 가히 귀양살이 였다. 6,25 이전 공을 차다가 왼쪽 다리를 다치고 2년간 고생했던 관절염이 재발 급기야는 두다리를 아예 쓰지 못하게 되었고  어쩌면 그 은둔의 세월이 주옥의 작품으로 보상되었는지도 모른다.
 
잘 나가던 그 시절 함께 작품을 한 작곡가 백영호는 레코드사에서 환대를 받았으나 한산도는은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시련을 겪어야 했는데 거동 못하는 자신의 몸탓이라며 서운함을 떨쳐냈다.
 
작사가로는 남인수의 추억의 소야곡 손인호 해운대 에레지 이미자 동백 아가씨 등을 남겼으며 작곡가로는 진송남의 덕수궁 돌담길 바보처럼 울었다 등을 발표해 그의 타고난 음악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갈현동에서 지내다 말년에 수원으로 이사한 뒤, 1998년 7월31일 지병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슬하에 두 형제를 두어 장남은 화가이고 둘째는 구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네번째 이야기 - 가수 손인호 
1950년대부터 ‘라디오’와 ‘스크린’을 동시에 장악했던 미남(美男), 미성(美聲)의 가수 손인호는 '얼굴 없는 가수'로 통한다. 1955년 결혼한 부인도 몇 년 뒤에야 가수인줄 알았다니 당시 사회상이라고 하지만 얼굴없는 가수임을 잘 나타내주는 일회인셈이다.
 
그가 브라운관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 2001년, 75세 때 가요무대 특집방송 ‘얼굴 없는 가수 손인호 편’에서 아들 손동준과 함께였다. 2003년, 뒤늦게 연예협회 가수위원회에 입회, 77세 되어서야 비로소 가수에 적을 둔 셈이고 이어 40여년만의 신곡 '휴전선아 말해다오‘를 발표했다
 
손인호는 ‘해운대 엘레지’를 비롯해  ‘나는 울었네’ ‘울어라 기타줄’  ‘하룻밤 풋사랑’ ’한 많은 대동강’ ‘비 나리는 호남선’...  같은 우리의 50~60년대를 대표하는 숱한 노래들을 히트시키며 정상에 서있는 동안에도 방송무대에 전혀 서지 않았고 심지어 일반무대에서 조차 거의 볼 수 없었다.
 
당시 일반 대중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그의  본 직업은 영화 녹음기사였다. 가수로써는 약 150여곡의 노래들을 발표했지만 영화 녹음기사로써는 무려 2천여 편 이상의 영화 녹음작업을 한 인물이다.  

 

대종상과 손인호.jpg
대종상 시상식에서 녹음기술상을 받고 대종상 수상자들과 함께 찍은 손인호(왼쪽 2번째)
 
돌아오지 않는 해병’ 그리고 ‘로맨스 빠빠’ ‘빨간 마후라’ ‘미워도 다시 한번’ 등이 모두 그가 녹음작업을 한 영화들로 그는 대종상 녹음상 등을 무려 일곱 차례나 수상했을 만큼 영화녹음작업에 있어 독보적 위치에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 시대를 대표하는 가수 손인호씨가 가수로써 받은 상은 단 한차례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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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인호의 해운대엘레지 LP자켓

 

1927년 평북 창성에서 출생한 본명이 손효찬(孫孝燦)인 그는 창성보통학교 6학년 때, 수풍댐 건설로 마을 일대가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가족 모두 만주 長春으로 이주해 생활했다. 해방 후 신의주로 옮긴 손인호씨는 평양에서 열렸던 이북 도민 전체 노래자랑대회인 "관서콩쿠르대회" 에 참가, "집 없는 천사" 를 불러 1등을 차지한다. 이 때 심사위원장으로부터 "가수가 되려면 이남으로 가야 소질을 살릴 수 있다" 는 권유를 받고 남행을 결심, 해방 이듬해인 1946년 12월 여섯 살 터울의 형과 단둘이 서울로 내려온다.

 

그는 당시 작곡가 김해송씨가 이끌던 "KPK악단" 에서 실시한 가수모집에 응모, 참가자 3백 명 중 1등을 차지해 악단생활을 시작했고 이어 윤부길씨가 이끌던 부길부길쇼단에서 가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곧이어 한국전쟁이 터지자 그는 군예대에 들어가 "군번 없는 용사" 로 전쟁터를 누볐다. 제대 후 공보처 녹음실에 입사한 그는 '대한뉴스 녹음을 담당하며 아울러 영화 녹음기사로 활동을 시작한다. 그 무렵 많은 음악인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작곡가 박시춘씨로 이 인연으로 그는 노래 두 곡을 받아 취입하게 되는데, 그 곡이 바로 "나는 울었네" 와 "숨쉬는 거리" 이다. 휴전 이듬해인 1954년의 일이다.

 

이후 그는 신세기레코드 를 거쳐  오아시스레코드에서 1956년, 바빠 1년 이상 미루다가「비나리는 호남선」 을 발표해 자유당 시절 대통령 선거에서 급서한 해공선생의 추모곡으로 뜨거워 작사가 손로원, 작곡가 박춘석과 함께 당국에 불려가 곤욕을 치뤘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1959년에 발표된 반야월 시, 김부해 곡, 박재홍 노래의「유정천리」가 1960년 대통령 선거에서 조병옥 박사가 또 급서하여 국민의 개사로 불려진 스토리로 이어진다. 

 
이어  "사랑찾아 칠백리", "하룻밤 풋사랑", "이별의 성당고개" 등을 히트시켰다. 1957년  말에 도미도레코드로 이전, "짝사랑", "물새야 왜 우느냐", "이별의 부산항", "청춘등대", "향수의 블루스", "남행열차" 등의 히트곡을 쏟아내었고, 1958년 빅터레코드에서 "해운대 엘레지"를 발표하여 크게 히트시켰다.1960년대 중반까지도 "돌아가자 남해 고향", "한 많은 명사십리" 등을 취입하여 히트시켰다.

 

손인호가 부른 "해운대 엘레지"(한산도 작사·백영호 작곡)는 해운대와 관련된 노래 가운데 대중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노래다.

 

 

손인호와 해운대엘레지1.jpg

2006년 해운대구청 초청으로 해운대를 방문하고 노래비를 둘러보는 손인호

  

손인호는 "해운대 엘레지" 노래 발표 이후 50년 뒤 2006년에야 노래비로 초대 받아 처음으로 해운대를 방문했다고 한다. 1950~1960년대에 톱 가수 위상이면서도 '얼굴없는 가수'라는 별칭은 녹음기사로 분망해서 무대에 서지 않아서이고 1955년 결혼한 부인도 몇 년 뒤에야 가수인줄 알았다니 당시 사회상이 저렇다고 하지만 얼른 이해가 안되는 대목이다. 

 

75살 된 2001년 처음으로 'KBS 가요무대'에 출연함으로써 얼굴이 있는 가수가 됐다. 1980년대 중반까지 영화녹음작업을 했으며, 현재 그는 원로가수거목회, 만나리, 뿌리회 등 가수친목회에서 활발히 활동중이다. 대한민국 영화녹음 발전사의 산증인이자 탁월한 실력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고있는 가수 손인호는 올해 87세로 최근 '손인호팬클럽'이 결성되어 그를 사랑하는 많은 팬들과 함께 모여 조촐한 만남의 자리를 가지고 있는 가운데 개인리사이틀 열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수려한 용모의 아들 손동준이 그를 이어 가요계에 얼굴을 비치고 있다.  "해운대엘레지"의 마지막 증인으로 오래오래 국민과 함께하길 기원해 본다.

 

[관련영상]

[포피채널] 영상해설과 함께하는 '비내리는 호남선, 나는 울었네'의 가수 손인호 리사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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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블 글들의 몰래나들이 유감

조블 글들의 몰래나들이 유감
 
기사 검색 중 우연히 방문한 다음 카페 "호숫가 ** "라는 곳에서 조블의 인기 글들을 볼 수 있었다, 초아님, 리버룸님, 그리고 저의 글이 밤 마실 가듯 나들이를 하고있는 것이 아닌가. 다음 카페 "호숫가 ** "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정서를 찾거나 삶의 활력을 찾는 곳으로 어울려 쉴 수 있는 추억 만들기를 하며 친목이 목적이라고 카페 프로필에서 소개하고 있다. 동 카페는 1152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러개의 카테고리 중 "그곳에 가면"에 조블의 기사를 볼 수 있다. 
 
호숫가쉼터-그곳에 가면 캡쳐화면.jpg
다음카페 호숫가**에서 캡처한 조블 추천기사의 몰래나들이 모습
** 윗 캡쳐내용을 클릭하면 확대된 글씨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동 카페 카테고리 "그곳에 가면"을 캡쳐한 내용과 같이 글쓴이가 동 카페의 회원으로 되어있다. 유감스럽게도 어디에도 출처를 찾아 볼 수 없다. 따라 이곳 카페 회원들은 카페회원이 쓴 글로 알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평소 전국을 누비며 소개하는 고택이나 사당, 무덤들에 관한 기사나, 국내,외 두루 섭렵하며 여행기를 쓰고있는 리버룸님의 기사는 수년동안 쌓은 내공으로 쓴 수준 높은 전문가 글들이다. 이러한 글들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남들에게 소개하고 싶어 질 것이다. 공통적인점은 조블 추천 기사로 블로그뉴스로 소개된 내용을 복사해온 것으로 보인다. 
 
조블에서 흰구름님의 영상은 인터넷에 언제던지 볼 수 있을 만큼 널리 퍼져있는 실정이다. 그만큼 흰구름님의 영상물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증거임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실제 블로그에 올라 온 글과 사진은 고수가되면 어렵잖게 퍼 갈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복사해 온 글일지라도 최소한 출처는 밝혀야 하지 않을까. 미치 자신이 쓴 글로 위장하여 올리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남의 글을 존중해주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넷예절을 만드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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