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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화성환 피었네

 
화려한 화성환 피었네!

 
손바닥 선인장에 이어 우리집에 또 하나의 못난이 선인장이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외모에 비해 귀부인처럼 화려하기 그지없는 화성환의 아름다운 모습을 조블가족님들께 소개코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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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방치하다 시피 키우는 섬게 선인장 (Echinopsis)인 화성환(花盛丸)이 화분에 심어져 20년 넘게 모퉁이에 자리잡고 있다. 손길 한번 주지 않아도 잘 자라는 특성때문에 천대 받고있지만 곷이 필 때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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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가 30센치에다  높이가 50여 센치미터에 하래부터 중간까지 혹처럼 작은 가지가 나있는 못난이 선인장이다. 선인장 몸체 상단에서 꽃대가 나오드니 일주일만에 나팔모양의 꽃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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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외모에서 어떻게 이런 꽃이 필까 할 정도로 아름다운 자태를 하고 있다. 지름이 20센티가 넘어가는 큰 흰꽃이 마치 날 좀 보란듯 화려한 변신을 하였다. 평소 푸대접 받던 것을 시워라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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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섬게선인장은 원통상의 기둥모양으로 직립하는 형태를 갖고 있으며 표면에 둘기모양을 하고 있다. 가시가 거칠어 섬게와 모습이 비슷하고 종류에는화성환, 단모환, 단성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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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관에 가시가 있어 함부로 만지지도 못하는 탓에 손길이 안가는 선인장이지만 매년 6월 하순이면 일년에 단 한번 꽃을 피운다.험상 굿은 외관에 비하면 나팔과 같이 생긴 둥근 원형의 꽃은 이름답기 그지없어 더욱 사랑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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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도 일순간의 일로 화려한 변신은 이틀밖에 견디지 못하고 시들고 만다. 화무는 십일홍이라지만 이틀만에 져버리는 이 꽃의 숙명인가보다. 비록 꽃은 졌지만 아름다움을 이웃에게 전하여 화성환의 안타까움을 달려주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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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환(花盛丸) 학명 : Echinopsis tubiflora 원산지 : 멕시코 개화시기 : 봄 성게 선인장과 비슷하고, 표면에 둘기모양이고, 가시가 거칠어 성게와 모습이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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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용사 '영도유격부대'이야기

무명용사 '영도유격부대'이야기

  

 

 6·25전쟁 당시 함경도 개마고원 깊숙한 곳까지 침투하여 퇴로도 없는 적진에서 북괴군과 항전하다 장렬하게 산화한 숨은 영웅들의 이야기가 있다. 6.25 65주년을 맞이하여 진정한 영웅들을 기리는 마음으로 그들을 소개한다.

 

태종대공원안에 있는 태종사(太宗寺)옆 산비탈에 '6.25참전 영도유격부대유적지비'라는 빗돌이 외롭게 서 있다. 이빗돌은 6.25 동란에 참전했던 영도 유격부대 생존자33명이 동족상잔의 비극속에서 군번도 없이 다만 전화(戰火)에 휩싸여 조국의 자유수호를 위해 젊음을 바쳐 싸웠고 또한 장렬하게 산화(散華)한 숱한 옛동지들을 되새기고 기리기 위하여 1984년 6월 22일 세워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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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유격부대유적지비 입구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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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에 세운 영도유격부대유적지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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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에 세운 영도유격부대유적지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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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에 세운 영도유격부대유적지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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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에 세운 영도유격부대유적지비4

 

영도유격부대 대원 추모행사 2.jpg

2014년 10월 3일 영도유격부대참전전우회 주관으로 거행된 추모제

 

부산에서도 영도 태종대안에 왜 이런 추모시설을 세웠을까. 그 내력을 들여다보면 무명용사들의 나라사랑 마음과 6.25의 아픈 상흔이 한아름 담겨있다.

 

영도유격대-map1.jpg
영도유격대들이 훈련받은 당시의 태종대배치도

1 게릴라 대원 훈련 지역 2 게릴라 대원 훈련 지역 3 농장 4 사격장 5 초 소 6 의 무 실 7 본 부 8 Backroad 9 연 병 장 10 낙하산 점프 훈련 11 태종대 등대 12 사 격 장 13 작전출동지역 14 군 함

 

영도유격부대는 6·25가 한창이었던 1950년 11월2일 한철민(韓哲珉)육군소령 주도아래 1.4후퇴 때 월남한 함경남북도,강원도 북부지역 등 동해안 3도(道)출신 반공청년 1,200명이 자원 입대하여 창설된 민간인 유격대였다.그들의 힘으로 고향을 다시 찾겠다는 공동목표가 유격대의 활발한 동기가 되었다. 덧붙이면 현지에서도 뜻을 같이하는 동지를 규합하였기 때문에 정확한 인원을 알 수가 없다.

 
 
유도유격대 담당지역.jpg
영도유격대의 북한공격 담당지역을 나타낸 지도
강원북부와 함경남도는 Yellow Dragon, 함경북도 중부는 Blue Dragon, 함경남도 북부와 함경북도 남부는 White Dragon, 함경북도 북부는 Owl부대가 담당했다.
 
상륙용 주정에 탐승한 영도유격대.jpg
USSBegor(APD-127) 상륙용 주정에 탑승한 영도유격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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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유격대원들의 행복한모습

3~4개월 동안 태종산과 부대 인근 천마산 등에서 특수 군사훈련을 받은후 자신이 살던 이북 지역으로 목숨을 걸고 침투하여 유격전술을 펼쳤다. 강원도 북부일대와 함경남·북도지역에 하늘과 바다로 침투해 비정규전 임무를 수행한 부대로 Y부대, 파라슈트부대로 ‘도깨비’, ‘산돼지’부대로 불리었다. 얼마나 신출귀몰 했으면 북괴군이 이를 저지하고자 최전선의 2개사단을 후방에 배치하였다고 한다. 2년1개월 동안 활약하다 1952년 12월 정전협정 전에 부대가 해체됐다. 

 

영동유격부대 무용담의 하나인 장정리전투를 소개한다.

정장리전투 19519월 유격대원들을 소탕하기위해서 인민군은 활기봉 쪽으로 대대병력을 파견 편성하게 된다. 이에 유격대 본부는 16일과17일에 걸쳐 21명의 대원과 35명의 대원을 강하시킨다.

적 대대가 베이스 캠프를 공격할것을 준비하고 적군이 정장리 초등학교에 체재하고 있었다는 정보를 920일에 입수하고 이에따른 새로운 지휘관 지용수 대장은 250여명의 대원을 3그룹으로 나누어 정장리 초등학교 공습을 계획한다. 몇명의 대원은 야영지에 남겨두고 유격대원들은 미군의 공습을 지원해놓은 상태에서 그들의 목적지 20리 전방에 대기 하였다 11시경 4대의 전투기 적 야영지를 공습 한후 유격대원들은 마을을 포위해 들어갔다

정장리는 대략 50가구의 작은 마을이었으며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인 곳이다. 새벽에 전날 아군의 공습으로 초등학교는 부분적으로 파괴되었고 많은건물들이 아직도 타고 있었다. 06:00, 호각 소리가 나고 아침 체조를 하기 위하여 학교 운동장에 일렬로 늘어선 적들은 대략 300여명 이었다..그들이 운동시작하기위해 윗옷을 벗을때 유격대장은 공격을 명령했다. 박격포탄은 적 대형 중앙에 터졌고 마을 주위 3방향 언덕에 매복해있던 대원들은 바추카포, 기관탄총, 수류탄등으로 공격했다. 전투는 대략10시 정도에 끝나게된다. 이전투로 대략 220명의 적군을 사살하고. 그들의 무기를 노획하였으며 아군은 단5명의 유격 대원이 전사하였다


육군전사(陸軍戰史)에 따르면 영도유격부대는 활약 2년1개월에 걸쳐 적군사살 4천8백10명 .각종 군사시설파괴 3백78건. 화기 및 각종노획물 부기지수 의 전과를 올렸던 것으로 나타나있다. 작전 수행 전(前) 부산 태종대에 머리카락과 손톱, 발톱을 묻고 유격 활동을 수행하였는데 1천2백명 대원들 가운데 오직 33명만이 살아 남았다고한다. 그로 보아서도 영도유격부대대원들은 얼마나 위험하고 치열한 유격작전을 펼쳤던가를 짐작하게 해준다.

 

영도 태종대공원의 태종사 위에 본부가 있었던 사실을 계기로 현재 이곳에는 영도유격부대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이 영도유격부대 용사들을 기리는 빗돌에는  다음과 같은 애틋한 사연을담은 글귀가 새겨져 있어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읽는이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적셔준다
 
"군번도 계급도 없었던 대한의 젊은 영도유격부대원들은
한 푼의 보수나 대가 또한 바람없이 다시 못 올 결의로 떠나던 날
태종대 이 소나무 저 바위 밑에서 머리카락 손톱 잘라 묻어 놓고
하늘과 바다로 전후방에 침투하여
숨은 공 세우다 못다 핀 젊음 적중에서 산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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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변에 있는 가락동 국군묘지

낙동강변에 있는 가락동 국군묘지
 
 
20살 안팎의 꽃다운 나이에 한국전쟁에 참전해 숨진 넋들이 묻혀 있는 부산 강서구의 가락동 오봉산 중턱에 있는 국군묘지를 지난 봄철 찾았다. 6.25 전쟁 때에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 고장 출신 서른아홉 분의 유해를 모신 성지다. 6.25 전쟁 65주년을 맞아 이곳에 잠들어 있는 영령들을 위해 가락동 국군묘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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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동 국군묘지1
가락동 출신 젊은이 로서 6.25 전쟁 중 군에 입대하여, 낙동강 전투에 참가하여 싸우다가 전사한 호국 영령 39기(연고13, 무연고26)의 유골과 위패가 당초 동래 범어사에 안치되어 있었는데 1952년 3월부터 3차례에 걸쳐 이곳 오봉산으로 옮겨오면서 1957년에 충혼비를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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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락동 국군묘지의 국군용사충혼탑1
가락동 출신 젊은이 로서 6.25 전쟁 중 군에 입대하여, 낙동강 전투에 참가하여 싸우다가 전사한 호국 영령 39기(연고13, 무연고26)의 유골과 위패가 당초 동래 범어사에 안치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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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동 국군묘지의 국군용사충혼탑2 
1952년 3월부터 3차례에 걸쳐 이곳 오봉산으로 옮겨와 이곳에 있는 문수암에서 위령제를 올린 뒤 1957년에 충혼비를 건립하였다. 그로부터 전사한지 사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인 1993년 6월25일 <국군용사충혼탑>을 새로 세워서 그 뜻을 기리고있다.
이 때 제막된 충혼탑은 전체 높이 6.6m로 기층과 좌대,비문,탑신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조각은 당시 동아대 원승덕(元承德) 교수(조소과)가, 비문은 부산대 김석희(金錫禧)교수가 각각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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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용사 충홍탑의 왼쪽에 기록된 비문
국군용사 충홍탑의 오른쪽에는 이곳에 잠들고 있는 서른아홉분의 참전용사 이름을 새겨 놓았다.
<참전용사>
소위 김작지 상사 이대근 중사 강성도 중사 오영근 중사 정응학
중사 강태호 중사 배흥수 중사 박윤훤 중사 양기환 중사 박찬조
중사 김종길 하사 한율곤 하사 유봉진 하사 김덕조 하사 천용락
하사 김욱기 하사 이성식 하사 문위실 하사 김천식 하사 변종원
하사 김종갑 하사 신종호 하사 김문식 병장 주재한 일병 황의숙
일병 장세용 일병 박근영 일병 박장춘 이병 김봉국 이병 김영태
이병 김판수 이병 김행한 이병 최태규 이병 황정관 무명용사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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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가락동민이 세운 6.25전몰장병충혼비
부산 가락동 국군묘지와 같은 소규모 국군묘지는 전국에 산재해 있다. 6·25 당시 제대로 수습되지 못한 이유 등으로 인해 국립묘지에 묻히지 못한 용사들의 유해는 사후 유족들이 고향 가까운 곳에 하나씩 모셔 오면서 자연스레 조성됐다. 이러한 작은 국군묘지들은 전국에 40여 곳 있으나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립현충원(서울·대전)과 국립호국원(경북 영천, 전북 임실, 경기 이천) 등 8곳만 관리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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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산 기슭에 잠들고 있는 영령들에게 바친 이은상 시인의 비문
<비문>
내나라 구하려고 피를 뿌리신 젊은이들
역사의 책장위에 꽃수를 놓으셨네
조국의 포근한 흙 속에 웃으며 잠드소서
이 은 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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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기의 영령들이 잠들고있는 작은 묘역
다같이 조국을 위해 싸우다가 전사한 참전호국영령들이지만 서울의 현충원이나 대전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는 영령들은 국가로부터 인정받는 대우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호국영령들은 국가가 묘지를 조성하지 않았다는 것과 지방라는 이유로 뒷그늘에 가려져서 국가로부터 바르게 대우받지 못하고 있는 서러운 묘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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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이등병 김영태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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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하사 천용락묘
이 묘역은 2008년 12월 부산보훈청에서 현충시설에 대한 부산시민들의 관심을 일깨우고 방문을 활성화하기 위해 ‘2009년 이달의 현충시설’을 선정하고 ‘1월의 현충시설’로 발표한 사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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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역 아래 가락동마을 방향으로 서있는 소나무와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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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역에 북동쪽 방향으로 서낙동강과 강속의 섬 중사도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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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역에서 동쪽방향으로 대저지역에 칠점산이 사라진뒤 상덕마을에 유일한 산이보인다

나라를 위해 장렬하게 싸운 고귀한 희생의 가치에 무슨 차등이 있으랴만 국군 전사자들의 묘지가 있는 위치에 따라 예우가 다른 게 현실이다. 전몰용사에 대한 엄연한 차별이자 모독이라고 주장하는 유족들의 염원을 하루속히 풀어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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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많은 멀구슬나무

가치많은 멀구슬나무
 
보랏빛 꽃들이 함빡 피어있는 멀구슬나무! 그 멀구슬나무 주위를 지나치면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기분 좋은 강한 향이있기 때문이다. 잠시 발겅음을 멈추고 멀구슬나무 아래 잠시 쉬어가면 한없이 행복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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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라교회 옆에 있는 멀구슬나무
봄철에는 샛잎으로, 오뉴월에는 보라빛 꽃과 진향 향기로 여름철에는 녹음으로, 가을철에는 노란단풍과 노랗게 익어가는 열매로, 겨울철에는 가지마다 열매만 매달려있는 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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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전체가 온통 보라색 꽃으로 뒤덮혀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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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구슬 나무의 밑둥
멀구슬나무라는 이름은 열매로 염주를 만들던 데서 ‘목(木)구슬나무’ 부르던 것이 변해서 된 것이라 하고 혹은 동글동글한 열매 모양이 말똥과 같다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구주목이라고도 하며, 제주도에서 ‘먹쿠실낭, 멀쿠슬낭 ’등으로도 불린다. 잎을 고련엽(苦楝葉), 뿌리와 줄기 껍질을 고련피(苦楝皮)라고 하며, 열매를 고련자(苦楝子), 련실(練實), 천련자(川楝子) 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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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둥의 둘레는 180cm이며,  수령은 약 80~100년 정도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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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어있는 멀구슬나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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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어있는 멀구슬나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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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구슬나무 아래에서 쳐다 본 모습
새로 난 가지 끝에서 피어나는 멀구슬나무의 꽃은 다섯 개의 꽃받침과 꽃잎을 갖고 있다. 가느다랗게 활짝 펼친 다섯 장의 연보랏빛 꽃잎 바깥 쪽으로 조그마한 꽃받침이 있다. 꽃잎 안쪽으로는 짙은 보랏빛이 도는 수술은 10개가 합쳐져 대롱처럼 뭉쳐 곧게 서있다. 그 가운데에 하나의 암술이 있는데 이 꽃이 가지 끝에 무성하게 모여서 꽃차례를 이룬다. 비록 조그마하게 피어나는 멀구슬나무의 꽃이지만 나무 전체에 활짝 핀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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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구슬나무의 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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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마다 온통 피어있는 멀구슬나무 모습
화려한 보랏빛의 꽃 모양만으로도 충분히 인상적인데 더 인상적인 것은 그 작은 꽃들이 풍기는 짙은 향기이다. 생각만 해도 코 끝이 알싸해지는 무척 강한 향기이다. 멀구슬나무 꽃의 향기는 마치 여인들의 몸치장에 쓰는 향수가 뿜어내는 기품있는 향기를 닮았다. 나무 전체에 가득 피어있는 보라빛 꽃의 아름다움에다 멋진 향기를 갖추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물론 진한 향기가 싫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강추하고 싶은 멀구슬나무 꽃구경 즐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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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구슬나무의 꽃봉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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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봉오리에서 꽃이 피기 시작하는 모습
꽃 향기 아니라 해도 멀구슬나무는 특이한 점이 많은 나무로 무엇보다 살충 효과이다. 멀구슬나무는 나무 줄기에 살충 효과를 보이는 성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멀구슬나무 근처에는 모기나 개미와 같은 벌레들이 찾아오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옛날에는 나무 줄기나 가지를 뒷간에 두어 구더기나 해충을 방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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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활짝 핀 멀구슬나무 꽃
이 나무는 높이 15m에 달하는 키가 큰 낙엽활엽수다. 굵은 가지가 사방으로 퍼지면서 원뿔꼴을 하고 있다. 나무껍질은 진한 회갈색으로 세로로 갈라지며 껍질눈이 많다. 잎은 기수 2~3회 깃꼴겹잎으로 가지 끝에 모여서 달린다. 타원형 또는 계란형으로 생긴 작은 잎은 끝이 뾰족하다. 가장자리에 날카롭고 깊게 갈라진 톱니가 있다. 멀구슬나무는 잎이 싱그러워 가로수, 정원수로도 이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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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진 뒤 둥근 열매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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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되면 노랗게 익가는 열매1
핵과인 열매는 9~10월 초록색 구슬만한 열매가 열리는데 겨울 쯤에 노랗게 변한다. 열매 안에는 타원형의 단단한 종자가 있다.겨울에 이걸 먹은 새들이 씨앗이 든 똥을 산에 들에 남겨 번식을 돕는다 그래서 어느 틈에 자라 그늘을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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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되면 노랗게 익가는 열매2
한방에서는 열매를 해열제로, 뿌리는 구충제로 쓰기도 한다. 이러한 연유인지, 옛날 제주도 지방의 여인들이 이 나무의 껍질을 사용하여 원치않은 임신을 하였을 때 낙태를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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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에 매달려있는 멀구슬나무 열매
예전에는 딸을 낳으면 멀구슬나무를 심었을 정도라고 한다. 딸이 시집 갈 때 이 나무를 베어 농짝 같은 가구를 만들어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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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구슬나무 열매는 새들의 먹이로 변한다- 멀구슬나무 열매를 먹는 직박구리

동의보감」에서는, ‘온병, 상한으로 열이 몹시 나고 답답하여 미칠 듯한 것을 낫게 하며 오줌을 잘 나가게 하고 배안의 3가지 충을 죽이며 옴과 헌데를 낫게 한다.’고 적고 있다.

 
나무껍질과 뿌리껍질 속에 카테킨, 마르고신, 바닐릭산 등 성분이 함유돼 있다. 이 나무의 수지에서 나는 냄새는 130여 종의 곤충에게 혐오감을 준다. 미국에서는 방충제를 개발해 친환경 농약으로 사용한다. 인도에서는 멀구슬나무 작은 가지를 칫솔로 사용한다. 치석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일동제약이 치매 치료를 위한 신약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일동제약은 2013년 멀구슬나무의 열매인 '천련자(川�子)'에서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일으키는 물질이 만들어지는 것을 억제하고,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물질을 추출했다"고 2014년 4월27일 밝혔다. 일동제약은 이 물질을 'ID1201'이라 이름 짓고, 제조 방법 등에 대해 한국뿐 아니라 유럽·중국 등에서도 특허를 등록했다. 일동제약 중앙연구소는 ID1201을 이용해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치료할 수 있는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내한성이 약한 탓에 남부지역에 있어 자라는 중부지방 이상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 민간에서와 한방에서 요긴하게 사용되어 온 멀구슬나무가  제약분야의 신약개발로 인해 멀구슬나무의 가치가 한층 높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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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 백년초의 화려한 변신

못난이 백년초의 화려한 변신
  
온 몸에 돋아난 가시로 인해 일년내내 손 한번 가지 않는 못난이 백년초가 화려한 변신을 하였다. 마치 시워라도 하듯 노란꽃을 피어나고 있어 평소 모습과 다르다. 화려한 변신을 시작하고 있는 우리집 못난이 백년초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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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 백년초의 화려한 변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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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 백년초의 화려한 변신2
 
오래 사는 풀이라 하여 백년초(百年草)는 줄기 모양이 손바닥처럼 넓적한 형상을 하고 있어 손바닥선인장, 부채선인장이라고 불리어지고 있다. 잎처럼 보이는 부분은 줄기이고 가시는 잎의 변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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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 백년초의 화려한 변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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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 백년초의 화려한 변신4
 
5~6월에 2~3cm 정도의 황색의 꽃이 일시에 핀다. 윗가장자리에서 직경 2~3cm 정도되는 노란 빛깔의 아름다운 꽃이 피어 관상, 식용식물로도 인기가 높다. 11~12월경 꽃이 피고 진 자리에 생겨난 열매가 자색으로 변할 때 수확을 한다. 열매는 붉은 자색으로 색깔이 유난히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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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 백년초의 화려한 변신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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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 백년초의 화려한 변신6
내건성이 매우 강하여 가뭄에도 좀처럼 죽는 일이 없고 또한 내한성도 강해 서울 이남에서는 월동이 가능하다. 그래서 바쁜 사람들이 기르기에는 안셩마춤이다. 손바닥 선인장은 우리나라에서 재배되고 있는 유일한 자생종은 남해안 일대에서 서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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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 백년초의 화려한 변신7
백년초의 봉긋한 꽃봉오리가 모두 피면 그야말로 아름다운 모습이될 것이다. 평소 못난이 백년초로 푸대접을 의 옆모습으로 만회하기 충분할 것 같다. 옆집의 장미꽃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주말이면 연출할 것다.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것을 생각하면 흐뭇하다.

 
<추신>
주말에 활짝 핀 백년초의 모습을 아래와 같이 추가한다.
노란꽃들이 풍성해져 못난이 백년초의 변신은 더욱 화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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