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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과 외나무다리의 무섬마을

고택과 외나무다리의 무섬마을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에는 강물이 산에 막혀 물돌이동을 만들어 낸 곳이 회룡포와  무섬마을이 있다. 물 위에 떠 있는 섬이라 하여 무섬마을이라 불리는 경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수도리(水島里)는 이름 그대로 내성천(乃城川)이 마을의 3면을 감싸안고 흐르고 있으며 그 가운데 섬(島)처럼 떠 있는 마을이다. 풍수지리학상으로는 매화 꽃이 피는 매화낙지, 또는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연화부수(蓮花浮水) 형국이라 하여 길지(吉地) 중의 길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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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이 휘감아 돌아가는 모습의 무섬마을

마을뒷산은 자연구릉지로 소나무, 참나무 위주의 자연식생이 형성되어 있고, 반남박씨 선조의 묘소가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마을의 하류지역은 경작지로 이용 중이고, 마을 앞 내성천변에는 8,000평 이상의 자연 모래사장이 분포되어 있다.
 
 
안동 하회마을을 연상시키듯 휘감아도는 강을 감싸안은 자연의 정겨움이 가득한 가운데 수도리 전통마을의 고가들은 우리 선조의 숨결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문수면 수도리는 고택과 정자로 이루어진 전통마을로 옛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30년 전까지 마을과 외부를 이어주던 유일한 통로, 외나무다리가 마을의 대표 상징물로서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중요민속문화재 제278호로 지정되었다.
 
무섬마을의 역사는 166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마을의 서편 물건너 마을 (마럼)에서 반남박씨(潘南朴氏) 입향조(入鄕祖)인 박 수(朴 燧 :1641∼1699)가 이곳에 처음 터를 잡은 후 그의 증손녀 사위인 선성김씨(宣城金氏) 김 대(金 臺)가 영조 때 다시 무섬에 들어왔다. 이 무렵부터 반남박씨와 선성김씨가 함께 세거(世居)해 오늘날까지 두 집안의 집성촌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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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섬마을 입구에 있는 영주 무섬마을 안내도

무섬마을은 옛날부터 유교를 숭상하여 학문을 중히 여겨 많은 선비들이 배출되었으며 또한 경제력이 뛰어나 영주에서 이름 있는 부자 마을로 불리어 왔다.  집수가 가장 많을 때는 120호가 넘는 큰 마을이었다. 무섬마을 안에는 특이하게도 농토(農土)가 없고 지금 집이 없는 공터는 전부 집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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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섬마을 고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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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섬마을 고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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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섬마을 고택3-마루에 바가지를 펼쳐 놓은 모습에 저절로 눈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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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섬마을 고택-기와집만 있는 것아니라 정겨운 초가집도 있다.

1934년 이때에는 마을 앞 제방이 없어 수해로 강물이 범람하여 많은 집들이 침수되고 파괴되었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가 진행된데다 1988년 7월 큰 홍수에 1972년도 새마을 사업으로 쌓았던 마을 앞 제방이 무너져 또 다시 침수되었다. 그 후 마을 주민들이 각지로 젊은 세대들은 전부 떠나가고 흩어져
줄어들면서 마을의 규모가 점차 줄어 한때는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가 시행한 ‘영남 북부 유교문화권사업 정책’으로 전통마을로 지정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되찾았다.

40여 가구 전통가옥이 지붕을 맞대고 오순도순 마을을 이루는 무섬마을은 수백 년의 역사와 전통이 오롯이 남아있다. 40여 가구 전통가옥이 지붕을 맞대고 오순도순 마을을 이루는 무섬마을은 수백 년의 역사와 전통이 오롯이 남아있다.
 
반남박씨 입향조인 박 수가 마을에 들어와 건립한 만죽재(晩竹齎)를 비롯해 총 9개 가옥이 경북문화재자료 및 경북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으며, 역사가 100년이 넘는 가옥도 16채나 남아있어 조상들의 자취와 숨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 해우당고택(경상북도 민속자료 제92호)
  • 만죽재고택(경상북도 민속자료 제93호)
  • 영주 수도리 김덕진가옥(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17호)
  • 영주 수도리 김뢰진가옥(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18호)
  • 영주 수도리 김위진가옥(문화재자료 제360호)
  • 영주 수도리 김규진가옥(문화재자료 제361호)
  • 영주 수도리 김정규가옥(문화재자료 제362호)
  • 영주 수도리 박덕우가옥(문화재자료 제363호)
  • 영주 수도리 박천립가옥(문화재자료 제364호)
이 중에서 만죽재(경상북도 민속자료 제93호)와 해우당(경상북도 민속자료 제92호)는 옛 선비들의 단아한 격식이 느껴지는 고택이다. 특히 경북 북부지역의 전형적인 양반집 구조인 ‘ㅁ’자형 전통가옥이 늘어서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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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죽재고택(晩竹齋古宅)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93호
경북민속자료 제93호 만죽재 고택은 반남 박 씨의 종가로 300년의 세월을 담은 무섬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가옥이다. 이 가옥은 무섬마을의 입향시조인 박 수(1641~1709) 선생이 마을에 입향하여 1666년에 건립하였다. 배치구성은 안마당을 중심으로 ㄷ자형 안채와 一자형 사랑채가 口자형을 이루고 있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6칸 규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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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죽재 입구
 
만죽재3.jpg
만죽재 동편
 
만죽재4.jpg
만죽재 안채 

안채 평면구성은 대청 3칸을 중심으로 좌측에 상방 1칸, 고방 반칸, 문간 반칸이 연달아 놓여 있다. 문간은 안마당쪽으로 벽체없이 개방시키고 서쪽에 널문을 달아 옆마당으로 통하게 했다.


대청 우측은 안방 칸반, 정지 칸반이 연이어 있고, 정지 상부에는 안방에서 이용하는 다락이 설치되어 있다. 중문 좌측은 사랑채부분으로 사랑방 2통칸, 마루방 1칸에 이어 마루방 뒤쪽에 못방 1칸을 두었다. 사랑채 전면은 얕은 기단에 통주의 두리기둥을 세우고, 툇마루에 계자각 헌함을 돌렸다.

 

중문 우측은 상부다락을 설치한 마구 1칸이 있다. 기단은 강돌에 시멘트 모르타르로 상면을 마감하였고, 그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았다. 기둥은 사랑채 전면만 두리기둥이고, 나머지는 네모기둥을 세웠다. 안대청 상부가구는 간결한 3량가이고, 사랑채는 전퇴 5량가로 사랑채의 격식을 높였다. 지붕은 사랑채부분만 독립된 팔작지붕이고, 나머지는 맞배지붕에 골기와를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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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운 박기양(朴箕陽) 글씨 만죽재(晩竹齋) 편액

당호(堂號)는 만죽재(晩竹齋)의 내력을 살펴보면 박수 공(公)의 7세손 제익(齊翼 1806-1841)은 자신의 호(號) 섬계(剡溪)를 따서 섬계초당(剡溪草堂)이란 현편을 내걸었다. 그 후 제익(齊翼)의 손자 승훈(勝薰 1865-1924)은  호(號) 만죽재(晩竹齋)를 현판으로 걸면서 섬계초당 현판을 내리었다. 만죽재(晩竹齋) 편액의 글씨는 유학자 석운 박기양(朴箕陽, 1856~1932)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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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밖에서 본 해우당고택(海愚堂古宅-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92호)
해우당 고택(海愚堂古宅)은 마을 삼면을 휘감아 흐르는 내성천에 놓인 수도교를 건너면 제일 먼저 시야에 들어오는 □자형 가옥이다. 이 고택은 고종16년(1876) 의금부 도사를 지낸 해우당 김낙풍(1825-1900)선생이 1875년 선생이 건립한 것이다
 

경북북부지방의 전형적인 “ㅁ” 자형 구조 가옥으로 전면의 대문을 중심으로 좌우에 큰사랑과 아랫사랑이 있다. 배치구성은 평탄한 대지에 배산하여 북서향한 평면구성은 대청 3칸(6통칸)을 중심으로 좌측에 상방 2통칸, 우측에 안방 2통칸을 배치하고, 안방 앞으로 정지 칸반·고방 반칸을 연달아 배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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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당 고택(海愚堂古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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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판 해우당은 흥선대원군의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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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당 고택(海愚堂古宅) 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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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당 고택(海愚堂古宅) 고방

건물의 배치구성은 평탄한 대지에 배산하여 북서향한 정면 5칸, 측면 6칸 규모이고, 사랑채 우측 1칸이 돌출된 편날개형이다. 평면구성은 대청 3칸(6통칸)을 중심으로 좌측에 상방 2통칸, 우측에 안방 2통칸을 배치하고, 안방 앞으로 정지 칸반·고방 반칸을 연달아 배열하였다. 정지는 안마당쪽으로 개방되어 있고, 정지와 고방상부에는 통칸에 우물마루를 깐 다락을 두었다.

 

상방 앞쪽으로는 상방정지 1칸, 중방 1칸, 고방 1칸으로 좌익사를 꾸몄다. 상방정지는 안마당쪽으로 벽체없이 개방시키고 상부에는 상방에서 이용하는 다락이 설치되어 있다. 사랑채는 중문을 중심으로 좌측에 작은사랑 1칸, 마루방 1칸을 두었고, 우측에는 큰사랑방 2통칸에 연이어 마루방 1칸을 들었다.사랑방 2칸중 후면 한칸은 ㄱ자로 꺾어 책방 1칸을 두었고, 안마당 사이에는 벽장 반칸과 안채로 통하는 비밀통로 반칸이 설치되어 있다. 마루방 뒤쪽에는 빈소방(못방) 1칸을 두었는데, 마루방과 빈소방은 □자형 평면에서 우측으로 1칸 돌출되어 있다. 큰사랑채는 작은 사랑채보다 다소 지대를 높여 통주의 두리기둥을 세우고 툇마루에 계자각 헌함을 돌렸다.

 
이 가옥의 평면구성에서 주목되는 것은 먼저 넓은 대청공간의 배치와 다양하고 조리있게 배치된 수장공간의 활용이다. 또 하나는 안채와 사랑채가 대각선상에 배치되는 것이 통례이나 여기서는 안채와 사랑채가 직선형으로 배치된 점이 특이하다. 기단은 얕은 자연석 쌓기에 상면을 모르타르 덧마감을 하고 그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았다. 기둥은 안대청 전면과 사랑채 툇기둥만 두리기둥이고, 나머지는 네모기둥을 세웠다. 상부가구는 안대청이 5량가이고, 큰사랑채가 전퇴 5량가이다. 지붕은 큰사랑채만 별도의 팔작지붕으로 꾸몄고, 나머지는 맞배지붕에 골기와를 이었다.

  무섬 마을에는 위에 소개한 해우당고택(海愚堂古宅)과 만죽재고택(晩竹齋古宅) 등을 비롯해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춘 口자형 가옥, 까치구멍집, 겹집, 남부지방 민가 등 다양한 형태의 구조와 양식을 갖춘 40여 채의 가옥이 있어 전통주거민속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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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섬마을 외나무다리- 빗속에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사람들

무섬 마을로 드나드는 유일한 통로는 외나무다리였다. 농사를 지으러 오가기도 하고, 장보러 나가기도 했으며, 가마 타고 시집 오거나 상여가 나갈 때도 요긴하게 쓰였다. 구조는 간단했다. 통나무를 절반으로 쪼개어 의자처럼 다리를 붙이고 물에 박아 넣으면 그만이었다. 흔들거리는데다 너비가 한 자도 채 되지 않아 익숙하지 않으면 떨어지기 십상이었다.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과정에서 다리의 균형이 맞지 않아 실족하는 사례가 발생하는 만큼 조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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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를 몰고 다리를 건너는 마을 주민(출처: 무섬마을홈)

1979년 자동차도 다닐 수 있는 총연장 180m, 폭 5.5m의 콘크리트 다리인 수도교가 놓이면서 외나무다리는 사라졌다. 그러다가 2005년 마을의 옛 모습을 복원하면서 외나무다리가 다시 돌아왔다. 조상들의 삶을 후손들에게 보여주자’는 생각에서 옛날 방식 그대로 다리를 만들었다. 새로 복원된 외나무다리는 폭 20~

25cm에 길이 150m, 높이는 하천바닥에서 60cm로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다. 이 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것이 바로 이 외나무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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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섬마을 외나무다리-2
 
다리의 중간 중간에는 마주 오는 이를 피해갈 여분의 짧은 다리인 ‘비껴다리’가 놓여있다. 서로 마주보고 건너오던 사람들은 이 비껴다리에서 서로 길을 양보하고, 때로는 그곳에 걸터앉아 한담(閑談)을 나누는 등 무섬마을의 정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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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과 외나무다리


외나무다리는 지난 350여 년간 무섬마을을 이어준 유일한 통로로 애환 어린 추억의 역사를 지녔다. 이 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것이 바로 이 외나무다리다.
S자형의 외나무다리는 외섬마을의 상징물이 되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쯤 다리를 건내며 아름다운 추억을 쌓아간다.


강변의 넓은 백사장과 외나무다리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었는데 최근 관광환대 부문 중 숙박 분야에서 '2015 관광의  별'을  추가로 달았다. 물과 섬을 잇는 다리 처럼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는 축제 등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거리가 운영되고 있는 무섬마을은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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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가 아름다운 내성천

모래가 아름다운 내성천


낙동강 천삼백리를 이루는 여러 지류 가운데 내성천(乃城川) 만큼 아기자기한 천(川)도 없다. 소백산맥의 남쪽 기슭 경북 봉화군 물야면(物野面) 오전리(梧田里)의 선달산(先達山:1,236m)에서 발원하여 영주 문수면(文殊面) 수도리(水島里)에서 삼면을 휘돌아 물도리 무섬마을을 시작으로 하류부인 예천땅을 지나면서, 명승 제19호 예천선몽대(醴泉仙夢臺一圓), 16호 예천회룡포(醴泉回龍浦)를 빚고 남서쪽으로 흐르다가 용궁(龍宮) 남쪽 풍양면(豊壤面) 삼강리(삼강리)에서 낙동강 본류로 합수되는데, 삼강나루에는 낙동강 마지막 주막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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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은 낙동강 지류의 하나로, 본류 길이는 110.69㎞, 유역 면적은 1,815.28㎢이며, 금천(錦川)·한천(漢川)·서천(西川)·남원천(南院川)·단산천(丹山川)·낙화암천(落花巖川)과 같은 지류로 이루어져 있다 내성천은 우리나라에서도 손꼽히는 모래하천으로 내성천의 회룡포가 2009년 국토해양부가 주최하고 한국하천협회가 주관한 가장 아름다운 하천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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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로 이루어진 내성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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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로 이루어진 내성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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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로 이루어진 내성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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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로 이루어진 내성천4 - 언덕의 숲과 냇물과 모래밭이 만나이루는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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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로 이루어진 내성천4 - 맑은 물속의 모래가 보석처럼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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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래로 이루어진 내성천5 - 야생동물도 내성천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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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가 흐르고 쌓인 아름다운 내성천 - 맑은 물속에 흰수미자가 살고 이다.
 
내성천 유역에 분포하는 지층은 선-캄브리아기의 변성암류와 쥬라기의 화강암이 주로 분포하고 있다. 이곳의 화강암은 중립-조립질 흑운모화강암으로서 풍화작용을 깊이 받아 완만한 경사와 지형을 이루고 있으며 영주분지 일대에 넓게 분포하고 있다. 이러한 암층의 분포는 우리나라에서 모래밭이 가장 발달한 하천이라는 내성천 특징의 배경이 된다. 내성천은 상류를 제외한 모든 지역의 하상이 모래로 되어 있으며, 낙동강 본류에 공급하는 모래를 공급하는 중요한 하천이다.​(출처; 네이버백과사전)

​한마디로 내성천을 정의 한다면 '모래강'이라고 할 수 있다. 맑은 물과 모래를 공급하여 낙동강을 모래강으로 만드는 역할을 하는 생명의 보고인 생태하천이다. 내성천에는 두께 20미터 정도의 두터운 모래톱이 발달한 곳도 있다. 모래톱은 자연 정화라는 중요 기능을 수행한다.

​내성천이 흐르는 곳이 어딘들 아름답지 않으랴만 옛날부터 즐겨 찾는 대표적인 장소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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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 용궁면 대은리의 회룡포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대은리에 위치한 예천 회룡포는 내성천이 용이 비상하는 것처럼 물을 휘감아 돌아가는 지형으로, 내성천 및 낙동강 상류 일대에 나타나는 수많은 감입곡류 지형의 전형을 보여준다. 하천과 그 외부를 둘러싸고 있는 가파른 경사의 산악지형 그리고 농경지와 마을이 어우러져 경관적 가치가 뛰어난 곳이다. 이러한 천연조건이 보존가치가 높아 문화재청에서 명승지 제16호(2005년 8월 23일)로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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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선몽대
 
선몽대 일원은『예천읍지』에 수록된 약 450여 년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곳으로, 선몽대 일대는 기러기가 내성천에서 풍부한 먹이를 먹고 백사장에서 한가로이 쉬는 형이라고 하여 풍수상‘평사낙안형平沙落雁形’이라 전하고 있다. 선몽대와 선몽대 숲, 그리고 그 앞을 흐르는 내성천과 하천 앞에 넓게 펼쳐진 백사장이 함께 어우러져 한국의 전통적 산수미를 보여주는 예천 내성천 유역의 대표적 경승지의 하나이다. 2006년 11월 16일 명승 제19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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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섬마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에 있는 무섬마을은 안동의 하회마을, 예천의 회룡포, 영월의 선암마을과 청령포와 같이 마을의 3면이 물로 둘러 쌓여 있는 대표적인 물돌이 마을이다.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과 영주천이 합수되어 태백산과 소백산 줄기를 끼고 마을의 삼면을 감싸듯 휘감아 돌아 마치 섬처럼 육지속의 섬마을로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한채 살아가고 있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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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사진으로 본 내성천- 높고 낮은 골짜기 사이로 흐르는 천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내성천은 모래톱이 잘 발달하여 우리 하천의 원형질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한 하천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정도의 아름다운 생태 모래강을 이루고 있다. 또한 내성천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사행하천으로 이곳은 다양한 야생동물들의 주요 서식처이고 생태계의 보고다. 내성천에는 흰수마자를 비롯하여  멸종위기종인 흰목물떼새, 수달, 흰꼬리수리 등 다양한 멸종위기 종들의 안전한 서식처이고, 희귀조류인 멸종위기종 먹황새가 해마다 찾아오는 곳이 바로 내성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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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의 흰수마자1
 
​흰수마자는 내성천의 생태계를 대표할 수 있는 깃대종(flagship species)으로 흰수마자의 생존 여부가 내성천의 생태환경의 변화의 척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자원공사에서는 영주댐 하류 미호교 부근에 2014년10월과 2015년 5월 두번에 걸쳐 흰수마자 치어 5,000마리를 방사했다. 이렇게 방류한 흰수마자는 인공증식을 통해 태어난 치어로 국내 최초로 흰수마자 증식복원기술 확보에 성공한 순천향대학교 (주)생물다양성연구소와 수자원공사(K-water)가 2014년부터진행해 온 사업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2015년 최종 생태조사에서 방사한 치어 중 단 한 마리만이 발견된 사실이 지난 2015년 국정감사에서 심상정 의원을 통해 밝혀지기도 했다. 

회전_흰수마자 그림1.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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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의 흰수마자2

이중에서 흰수마자는 낙동강을 비롯 금강, 임진강에서 서식하는 한국고유종으로 바닥에 모래가 깔린 여울부에 살며 주로 깔다구 등 수서곤충의 유충을 먹고 산다. 학술적으로 매우 진귀한 종이고 분포 범위도 좁을 뿐만 아니라 희소하게 출현하고 있어 환경부의 특정야생동식물로 지정되었다.

'몸은 대체로 길고, 후반부로 갈수록 가늘다. 머리는 대체로 위아래로 납작하고 배쪽은 편평하다. 입은 주둥이 밑에 있고 아래에서 보면 반원형이다. 턱은 아래쪽에 있고 입수염은 4쌍이며 모두 길고 희다. 측선은 완전하지만 전반부는 배쪽으로 약간 휘어 있고 후반부는 직선이다. 눈은 비교적 크고 머리 옆면 중앙에 있으며 등쪽에 위치한다. 등쪽은 어두운 갈색을 띠고 배쪽은 밝은 색이다. 체측 중앙에는 동공 크기보다 약간 작은 검은 점이 5∼6개가 일렬로 배열되고, 등쪽에도 몇 개의 검은 점이 있다. 모든 지느러미에는 반문이 없고 기조막은 투명하다'.(출처: 생물자원정보 - 담수어류, KIS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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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수조속의 흰수마자
 
흰수마자는 1935년에 일본인 식물학자 모리 타메조(森 為三、1884-1962)에 의해서 경북 영주의 내성천에서 처음 발견돼 신종으로 보고 됐다고 한다. 그래서 학명이 'Gobiobotia naktongensis (Mori 1935)'로 낙동강 수계의 내성천이 바로 흰수마자의 고향인 셈이고, 모래의 강 내성천이 주된 서식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내에 서식하는 곳은 낙동강(예천, 안동, 상주, 군위, 의성, 선산, 성주, 고령, 창녕, 밀양, 진주, 의령, 김해), 금강(공주) 및 임진강에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 금강과 임진강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낙동강수계에서만 보고되고 있으며 그 중 가장 서식환경이 좋은 곳이 모래강으로 이뤄진 바로 내성천인셈이다.
 
근래들어 환경단체와 종교단체에서 내성천 지키기 일환으로 영주댐 담수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히고 있는 실정이다. 즉, 댐으로 인해 모래가 사라지게되면 아름다운 모래강이 없어지고 끝내 내성천에 서식하는 멸종위기 1급인 흰수미자는 자취를 감추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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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방환경청과 한국수자원공사는 지난해 11월 내성천의 모래 변화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이 조사는 지난 국정감사 때(2015년) 지적된 내성천의 하상 변화와 멸종위기종 1급 어류인 '흰수마자'의 서식에 미치는 영향 등을 파악하기 위해 이뤄 졌다.

금빛 모래톱과 멸종위기 동물의 서식처로 유명한 내성천의 고운 모래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변화의 원인을 두고 환경단체는 내성천 상류의 영주댐 공사를 지목했고, 환경 당국은 극심한 가뭄 영향이라는 등 서로 다른 분석을 내놓으며 논란을 빚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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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드라마 '추노'의 촬영현장이었던 무섬마을앞의 내성천 모래밭
 
​근래들어 영주댐을 건설을 계기로 내성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내성천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내성천을 둘러 본 사람들은 하나 같이 천혜의 자연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내성천의 모래가 잘 보존되기를 원하고 있다.
 
댐건설로 물부족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래강으로 이름난 아름다운 내성천을 잘 보존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관계당국에서는 댐 운용과 환경의 조화를 찾는 솔로몬의 지혜를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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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살리기의 마침표, 영주댐

4대강 살리기의 마침표, 영주댐

작년 11월18일 올해 완공 예정인 영주댐과 모래강으로 아름다운 내성천및  전통마을로 옛모습 그대로 지키고 있는 무섬마을을 답사하는 기회가 있었다. 동 프로그램에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참가하였다. 이를 세 차례로 나누어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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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채우기 직전의 영주다목적댐건설공사 현장모습 
 
영주댐은 2009년 6월까지 송리원댐으로 불려져 왔으나 영주시의 요청에 따라 마을이름보다 대표성이 있는 영주댐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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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댐 바로 아래의 모습

영주댐(榮州댐)은 영주시 내성천에 들어서는 댐으로 2000년대에 지어진 국내 댐중에서 저수용량이 가장 많고 사업비가 가장 큰 댐이다. 영주다목적댐은 4대강살리기 수자원 확보 사업에 포함된 댐으로 높이 55m, 길이 400m, 총저수용량 1억8천100만t 규모, 사업비 8천724억원으로 소요도었다. 지난 2009년 12월 착공되었으며 2013년에 본 댐이 완공되었고 2015년 12월부터 담수를 시작하여  2016년 년말 댐 건설이 완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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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채운 상태를 나타낸 영주댐조감도
 
댐건설이 완료되면 최근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이상 기후에 대비해 홍수 시 7천500만t의 물을 조절해 영주, 예천 등 경북북부 낙동강 연안지역의 홍수 피해를 크게 경감하게 된다. 또 영주·상주 등 지역에 생공용수 약 1천만여t을 공급해 지역발전의 기반을 확보하게 되고, 수력발전을 통해 연간 16.3 GWh의 녹색 에너지를 생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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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의 영주댐 위치도-2009년 6월이전에는 송리원댐으로 불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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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포구곡이라 불리우는 내성천과 위성사진속의 붉은 선이 영주댐 위치이다.

영주댐이 들어선 자리는 운포구곡(雲浦九曲)이라고 해서, "매우 심한 곡류를 형성하는데 6번의 S자를 그리고 4개의 물돌이 마을이 형성된, 하늘이 깍아 만든 천혜의 곡류인 곳"이다. 1736년 당시 그곳에 살던 와은(臥隱) 장위항(張緯恒; 1678∼1747)이 그 아름다움을 경탄해 운포구곡시를 지음으로써 비롯됐다고 한다. 감입곡류(嵌入曲流) 하천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는 내성천의 비경을 간직한 그 한가운데 영주댐이 들어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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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월 초순의 사진에는 물채우기에 들어간 영주댐 모습을 볼 수있다

2016년에 물을 채워서 평은면 금광리·강동리 및 면사무소 및 평은초등학교와 중앙선 승문역 - 옹천역 구간이 수몰될 예정이다. 원래는 2013년에 물을 채우기로 했지만 공사비리로 연기되었다. 다른 도시나 시내로 나가지 않고 평은면내로이사가고자 하는 주민들을 위해 영주호 이주단지가 건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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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댐 둑과 뒷편 산속의 사찰 -댐완성 시 사찰에서는 멋진 풍경을 즐길것 같다

영주댐에는 처음으로 댐 주변 일주 도로가 조성되어 있다. 수변도로는 댐을 출발해 내성천 동편 도로를 따라 강동리-평은리-두월리까지 갔다가 강서편 도로를 따라 내림리-신천리-금광리로 돌아오는 길이다. 내성천변 산자락을 따라 999구비를 돌아야 일주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영주댐 이설도로의 총 길이는 부체도로(연결도로) 포함 총 51Km이며 동(東)도로는 1차로로 폭 4~5m이고, 서(西)도로는 2차로로(자전거도로 포함) 폭 8~10m”라면서 “전 구간 중 소공원이 8개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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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 금강마을의 1000년 전 고찰 금강사 터 발굴 현장.

영주시 평은면 금광리(金光里) 평은역 앞 내성천 건너편에 금강마을이 있다. 이 마을의 금강사 절터는 모래강 내성천의 절경인 운포구곡 중 제7곡 금탄(錦灘)과 제6곡 구만(龜灣) 그리고 제5곡 운포(雲浦)가 3면을 감싸고 있고 그 형상이 회룡포처럼 회돌이 지형으로서 하늘이 내려준 보석같이 아름다운 곳이다.
 
금강사 터의 우물터에서 발굴된 유물들.jpg
금강사 터의 우물터에서 발굴된 유물들. (사진출처:한국문물연구원)

고려말에 몽고군의 침입으로 불타 사라진 금강사는 수몰로 인해 800년만에 유래와 역사가 출토되었으나 이내 물속에 잠기는 비운을 맞게된다. 금강사터 유적발굴은 2014년에 완성될 영주댐 공사가 지연되는 사유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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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댐 바로 마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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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몰지역에 산과 산을 연결하는 두 개의 출렁다리(보행교량)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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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완성에 즈음하여 명소가 될  왼쪽의 출렁다리
 
금광 이주마을은 수몰되는 금광2리에서 내성천 건너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으며, 동호 이주단지는 동막마을 골짝 안쪽에 자리 잡았다. 마을 앞으로 새로운 도로가 생겼고 산자락 아래 도로변에 자리 잡은 집들은 지붕이 뽀족한 서양식집들이다. 내성천 옛길에서 쳐다보면 산 중턱에 마을이 두둥실 떠 있는 것 같다.  이곳에서 산과 산을 연결하는 두 개의 출렁다리(보행교량)가 설치된 모습은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담수가 되고 수상 시설물들이 들어서면 금광이주단지는 전망이 좋아 많은 사람들이 찾아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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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MBC 창사특집 다큐멘터리 <댐 아리랑>
 
지난해 11월14일 방송 된 안동MBC 창사특집 다큐멘터리 <댐 아리랑>은 영주댐 건설로 사라지는 영주 금강마을과 내성천 모습을 카메라에 담담하게 담았다. 수몰을 앞둔 마을의 주민들은 대대로 400년 넘게 지켜온 고향의 산천과 이웃을 그렇게 떠나보낸 지난 2년은 아픈 이별의 연속이었다. 그 뒷면에는 조상 대대로 살아왔던 주민 645가구가 정든 보금자리를 떠났기 때문이다
댐아리랑 - 안동MBC 창사45주년 특집다큐멘터리 ; https://youtu.be/x1fRuvyukXg
 
홍수와 가뭄을 줄임, 각종 용수를 확보, 환경개념을 도입, 생태개념을 접목, 문화개념을 연계 등을 포함한 이른바 영주댐은 댐건설의 5세대를 거친 최초의 댐을 목표로 하고있다. 하지만 환경단체를 비롯 종교단체에서는 영주댐이 건설되면 모래는 더 이상 흐르지 못하고 낙동강 모래 공급에도 영향을 줄 수밖어 영주댐공사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자못 높다.
 
    

4대강 살리기 사업에 있어 첫번째 댐이자 마무리가 될 영주댐은 반대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하여 천혜의 내성천 모래유실을 줄여 나갈 방안을 모색하여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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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 만나는 상선약수(上善若水)

작품으로 만나는 상선약수(上善若水)
 
구청회의 참석 길에 남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구청 갤러리에서 전시중인 예당 작품전을 구청둘러 보았다. 서각, 전각, 캘리그라피 작품을 전문으로 하는 예당 김상용의 여러 작품 중에 눈에 띄는 작품이 있었다. '상선약수(上善若水)' 란 제목으로 유당 남도영의 시 '물은 나의 스승이다' 전문을 캘리그라피 기법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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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당의 작품 '상선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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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선약수의 내용 확대
 
작가는 가장 이상적인 삶을 살아가려면 물의 형태로 살아가라는 상선약수(上善若水)의 깊은 의미를 작품으로 표현 한 것이다. 이 작품을 보면 첫인상이 냇물이 흘러 가듯한 느낌을 받으며 맑은 냇물속을 들여다 보듯 글을 읽어 가면서 시인이 왜 물이 나의 스승이라고 하였던지를 알 수있게 해준다. 이 작품속의 '물은 나의 스승이다'는 유당 남동영의 시로 전문은 다음과 같다.

 
물은 나의 스승이다
                                         유당 남도영

 

물은 뭇 생명을 살린다.
그러나 만물을 생장시키고도
그 댓가를 전혀 바라지 않는다.

물은 낮은 곳으로 임한다.
낮은 곳으로 흐르지만,
강이 되어 도도이 흐르다가
큰 바다에서는 하나로 융합한다.

물은 평등하게 수평을 이룬다.
언제나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화동(和同)의 세계로 같이 어우른다.

어떤 모양이나 상황에도 구속되지 않고 순응한다.
삼각통에 들어가면 세모 되고,
원통에서는 둥글다.
또한 욕심을 내거나 경쟁하지 않고
무심히 자기의 길을 간다.

물은 정상궤도를 유지시켜준다.
물은 불을 동무삼아 인체에서는 심장과 놀고
지구에서는 지하의 불과 놀면서 (3 : 7)
무한하고 일정한 운행을 하고 있다

물은 오염된 것을 정화시킨다.
어떤 더러운 물질이 오더라도
바다에 이르면 깨끗하게 걸러서 동화된다.

물은 무색(無色) 무취(無臭)하고 투명하다.
색깔과 형체가 없으므로
소금을 타면 짜고, 설탕을 타면 달다.
걸림없이 자유자재하다.

물은 어떤 폭력이나 구속에도 굴하지 않고
무저항으로 임하지만 자유롭게 흐른다.
또한 유약하나 만물의 습도를 조절하며
하늘에 올라 비가 되기도 하고
수소탄도 되었다가 <쓰나미>를 불러오기도 한다.

물은 과거로부터 어어져 오지만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고
미래를 추구하지도 않는다.
다만 <지금, 여기서>
자기의 길 길을 갈 뿐이다.??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했던가.
물은 나의 큰 스승이다.
대 자유인으로 살려하거든
물처럼 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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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8월 반기문 UN사무총장이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54번째 생일을 맞아 선사한 자필휘호 상선약수(上善若水)’가 새삼 세인들의 주목을 받은 바있다상선약수(上善若水)의 어원을 살펴보면 노자로부터 시작된다. 노자 도덕경 8장의 핵심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법한 상선약수로 정리할 수 있다. 우선 8장의 전문을 해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上善若水니라. 水善利萬物而不爭하고 處衆人之所惡니라. 幾於道니라.
(상선은 약수니라. 수선리만물이부쟁하고 처중인지소오니라. 고로 기어도니라.)
"지극히 착한 것은 마치 물과 같다. 물은 만물에 좋은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곳에 처하니, 그런 까닭으로 에 가깝다 하리라." 

 

노자는 생명과 자연을 중시하는 대표적인 사상가이다. 노자는 “사람은 땅에 의존하고 땅은 하늘에 의존하며 하늘은 도에 따르며 도는 자연에 있다”고 하였다. 결국 자연이 최상위 개념으로 무위자연은 꾸밈이 없이 자연에 따른 삶을 산다고 해석되어 진다. 상선약수(上善若水)란 이 세상 최고의 선은 물과 같으며 물은 언제나 만물을 이롭게 하건만 자기의 공이라 내세우지 않고 뭇사람 싫어하는 곳도 즐거이 임하나니 이것은 궁극의 도(道)에 가깝다 할 수 있다.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상징되는 노자의 도(道)는 한마디로 세상의 이치를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생래적으로 터득해야 한다는 진리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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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모든 만물에게 무수한 혜택을 주지만 다투지 않고 낮은 곳으로 향한다. 이는 부쟁의 정신(화합과 단결)과 겸손의 미덕을 보여준다. 또한 막히면 이를 애써 거스르지 않고 돌아가는 순응의 이치를 가지고 물은 깨끗하거나 더러움을 마다하지 않고 스며들어 모두를 정화하는 포용의 정신이 있으며 동그란 통이나 모진 통 어디에도 자신을 바꾸어 들어가는 융통의 지혜를 갖는다. 또한 물은 부드럽지만 끊임없이 흘러 바위도 뚫는 강인함을 통해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인내)는 진리를 일깨우고 작은 물이 모여 장엄한 물줄기를 형성하는 용기와 헌신을 통해 전체를 위한 행동을 보여주고 그리고 최종적으로 모든 것을 어루만지고 받아들이는 대하를 이루어 이상적인 세계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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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상선약수'에 포즈를 잡아 준 예당 김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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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당으로부터 받은 좋은 글 1점
 
이처럼 사람은 물의 지혜 즉 겸손, 공평, 분수, 포용, 청결, 협력, 지조 등을 배워 실천할 때 만인의 존경을 받고, 물처럼 위대한 존재가 된다. 이것이 노자의 물의 철학이다. 오늘날과 같이 개인주의, 이기주의, 배타주의가 만연한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상선약수의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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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의 수난

동백꽃의 수난
 
 
지난해 년말부터 예년에 비해 따뜻했던 날씨로 인해 일부 동백꽃이 일찍  피기 시작하였다. 노란 꽃밥만 수줍게 모습을 드러낸 동백꽃! 한 겨울속에 화사한 자태로 붉은 꽃망울을 터뜨린 동백꽃은 낙동강제방을 찾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진홍빛으로 피어난 동백들을 보면은 그야말로 처연한 아름다움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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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난하였던 날씨탓에 일찍 핀 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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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까지 볼 수 있었던 아름답게 핀 동백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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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까지 볼 수 있었던 아름답게 핀 동백2
 
영하 8도의 강추위가 몰아치는 낙동강하구 낙동강제방의 체감 기온은 강바람으로 인해 정도가 더욱 심하다. 지난주초 까지만 해도 일찍 피었던 동백꽃이 주말의 한파로 그 진홍의 아름다움도 매서운 동장군의 위력에 꺾이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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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봉우리만 맺혀 한파에 피해없는 동백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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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장군의 위력에 피해를 입은 동백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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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잎 속에 시든 꽃송이가 보인다.
 
화무십일홍이라지만 매서운 동장군의 위력 앞에는 동백꽃인들 어쩌랴! 날씨로 인해 시든 동백꽃이 애처롭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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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입은 동백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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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동장군의 위력에 꺾이고야만 동백꽃 

시들은 동백을 보면서 무릇 제계절에 피어야 하는법거늘 일찍 핀 것을 탓해야겠다. 하지만 제탓이라고 하기보다 이상 기온으로 것이니 환경을 파괴해 온 사람들의 잘 못이 더 클것이다. 지구촌의 온난화 영향으로 동백꽃의 수난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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