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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사람에 생명을 불어넣는 사람

 
흙사람에 생명을 불어넣는 사람
 
낙동강 물길따라 프로그램 중 낙동강 강서 지역의 삶을 찾아서- 세번째로 평강천 인근 강동동 천자도에셔 흙사람과 도자기를 빚는 허경혜(許京惠·62) 작가의 공방인 소담재(小潭在)를 찾았다. 
 
흙사람허경혜-1.jpg
 
소담재(小潭在)란 작은 연못이 있는 곳이란 뜻이며 흙을 소재로 옛사람의 활력을 느낄 수 있는 공간과 아름다운 예술을 만나는 전시및 문화공간의 장으로 운영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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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을 갖고있는 세가족의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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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표정의 3가족
소담재 건물앞의 소박한 정원 구석 구석에는 흙으로 빚은 군상이 자리잡고 있다. 세가족이 밝은 표정으로 이웃을 맞이하고, 할머니들이 둘러 앉아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고, 가족을 위해 열심히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작가가 표현하고하는 것이 무엇인지 눈치를 채게해준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잊혀져간 낙동강 하구에서 살아 온 인정넘치는 이웃사람들의 따뜻한 삶을 담아낸 것임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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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러앉은 여인들로부터 온갖 이야기가 들려 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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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안위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는 어머니
모과 한덩이를 오려놓아 계절감각을 살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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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를 앞두고 바쁜 와중에 활짝 웃으며 반갑게 맞아주는 허경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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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도에 정착하기까지 걸어 온길을 설명해 주고있는 허경혜작가
전시공간에는 사랑과 희생으로 가족을 이끌어 온 다양한 어머니의 모습을 비롯해서, 인정많고 한편으로 수답스럽기도한 할머니, 천진스럽게 뛰노는 아이들, 좌선하는 스님, 걸망을 메고 탁발하는 스님 등 흙으로 빚은 작품들이 곳곳에 놓여있다. 한편 작업장의 작업대위에는 도자기류 들이 가득 놓여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허경혜 작가는 사상구 모라동에서 직물공장과 목욕탕을 운영하였던 집에서 4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귀염받으며 컸다. 평소 마을 사람들에게 영농법을 가르쳐 존경받았던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게된다. 어머니가 가업을 이어받아 남성여고와 동아대원예과를 졸업할 때까지 어려움없이 지내다 결혼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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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사람과 도자기 작업공간
1982년 나이 서른살 때 일본으로 유학가는 남편을 따라 나고야를 갔다. 나고야 백화점에서 문화학교를 운영하던 지점토 인형작가 사토미키 선생을 만나면서 인생이 바뀌게된다. 단숨에 빠져 사토미키 선생에게 흙사람 빚는법을 배워 1985년 귀국했다. 오직 흙사람만들기에 몰두하면서 한국인의 얼굴을 담기위해 스승을 찾기도 하였으나 결국 인체해부학이나 정밀묘사법을 책으로 스스로 익혔다. 그러나 흙사람 제작에 몰두하면서 소원해진 남편과 이혼을 하면서 시련을 맞는다. 두 남매를 데리고 사하구 괴정동, 김해공항 뒷골목 등지로 생활비가 적게 드는 곳을 찾아 전전했다. 1977년에는 파밭으로 유명한 명지동으로 작업실을 옮겼다가 2003년 현재의 강동동 천자도에 정착하게되었다.

 
낙동강가로 오면서 마음의 평정을 찾고 작품의 소재를 여기저기서 발견한다. 묵묵히 자신의 일만 해온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을 소재로 담아내었다. 어려운 가운데 묵묵히 걸어 온 인고의 세월이 지나 작품이 완성되어가면서 다양한 전시회출품과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이에따라 작가로서의 지위도 얻게되면서 작품도 팔리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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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작품들로 가득한 전시공간
즐겨찾는 지리산자락 산청 금수암에서 사찰요리대가인 대안스님을 만나 21일 금식묵언에 들면서 자신을 바로보는 혜안을 찾기도 했다. 그 뒤 혜안스님의 사찰음식수련회에 참가하면서 요리법을 배워 천자도 작업터에 소담재(小潭在)이름의 음식점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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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음식을 전문으로하는 식당 소담재 내부
최근  허경혜 작가는 또 이곳을 떠나야 하는 문제를 안고있다. 에코델타시티 개발로 곧 소담재가 헐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녀는 낙동강을 떠나기 싫어 인근 명지국제신도시를 보고 있지만 신도시 쪽은 워낙 땅값이 비싸 고민이 크다. 천자도 들녘을 보고 나무도 키우고 작품을 하며 노후를 보내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게 됐다. 더는 시골의 정서를 느낄 수 없다는 게 제일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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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陶茗 허경혜 특별전 "흙속에 보살의 미소" 팜플렛
도명 허경혜는 1987년 지점토 공예개인전을 개최한 이래 이번 전시회까지 총16회의 개인전과 초대전을 가진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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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에서 열리고 있는 도명 허경혜 특별전- 흙속에 보살의 미소
 
이번 주 18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조게사에서 '흙속에 보살의 미소'란 특별전이 열린다. 초대장에 (전략) "흙속에는 부처가 있고 제 자신의 얼굴이 있습니다. 그리고 흙속에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보살의 미소가 있습니다. 흙속에서 보살의 미소를 찾고 싶은 모든 분들을 초대합니다"  라고 인사말을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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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만의 희망 록봉민속교육박물관(하)

천성만의 희망 록봉민속교육박물관(하)
-강서구에 살아가는 사람들
 
강서구 천성동 주민들은 록봉민속교육박물관이 섬마을인 가덕도 천성동에 들어온 이후 어린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볼 수 있고, 학생들 이 마을을 방문함으로써 지역 홍보 효과를 가져왔다며 마을에서는 꼭 존치되어야 할 시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록봉민속교육박물관을 운영에 따른 시설임대료로 약 8천여만원(가산세 포함)을 지불해야 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안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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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봉민속교육박물관
 
이처럼 천성동 주민들에게 희망을 주고있는 록봉민속교육박물관을 운영하는 염춘자(71)이사장은 남편의 유지를 받들어 시행한다는 사명감으로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있다. 박물관 개관과 운영에 온몸으로 던지고 있는 염춘자(71) 이사장이 걸어 온길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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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물길따라 프로그램에 참가자들에게 박물관 개관에 따른 내력을 설명하는 염 이사장

염춘자 이사장은 부산이 고향으로 성지초등학교와 전포동에 있던 수도여중을 졸업하고 경남여고에 다녔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되어야지 하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방송통신대에 진학해 유아교육을 전공했고, 2008년 동아대 교육대학원에서 유아교육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0년 스물일곱 살 때, 네 살 위의 밀양 출향인 손진옥(孫晋玉)과 결혼했다. 결혼한 그해, 부산진구 가양동에서 가야미술학원을 개원했다. 그림을 좋아했던 부군과 취미가 같았던 그녀의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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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찬히 설명하는 가운데 난관을 겪을 부분에서 울먹이기도 한 염 이사장

10년 넘게 미술학원을 하던 그녀는 1985년 미술학원 인근인 태화 현대아파트(태화고무 터)에 초원유치원을 개원하면서 본격적인 유치원 운영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해 12월에 개금동 개원초등학교 옆에 개원유치원을 세웠다. 유치원 안에 그동안 수집했던 교육자료와 민속자료를 전시할 공간도 따로 꾸몄다
 
옛날 교구와 생활용품은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불러왔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의 학습만큼이나 생활주변의 소소한 것들이 소중함을 일깨우고 싶었다. 아이들이 주변의 작은 것도 예사로 넘기지 않고 관찰하는 습관을 스스로 키워갔으면 했다. 수업을 하면서 화보나 그림을 보여주게 되는데 아이들의 이해를 돕기에는 부족함을 알게되었다. 그래서 실물 자료야말로 가장 좋은 교육자료임을 깨닫고
부부는 유치원을 운영하는 틈틈이 전국을 누비며 교육자료와 민속자료를 수집했다. 남편은 딱총에 쓰는 화약 딱지 한 장을 십만 원에 사들이기도 하는 등 교육자료 수집하는 일에 앞장서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이때 있었는 일로 얼음냉장고를 예를 들었다. 어디선가 얼음냉장고를 구입해 온 다음에 값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평소답지 않은 행동에 눈치를 챘으며 얼음냉장고 구입 후 몇개월동안 물품구입에 뜸햇을 만큼 고가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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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고가에 구입해 온 얼음냉장고.
냉장고 표면에 부착된 마크를 보니 1940년에 만든 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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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냉장고 문을 열어 보이며 당시의 일화를 들려주는 염 이사장
 

이렇게 수집한 자료가 늘어남에따라 자료를 활용해 어린이들에게 학습자료로
펼쳐놓을 공간이 필요했다. 1990년부터 전국에 문을 닫는 초등학교가 늘어나면서 폐교를 활용해 자료박물관을 꾸미기로 하였다. 2000년 8월 폐교하는 경남 함양군 봉전초등학교를 무상 대부로 입찰받아 '봉전민속박물관'을 개관했다. 박물관 환경 개선에는 아들 둘과 함께 네 식구가 한마음 한뜻으로 매달렸다.
 
그러는 중에 2003년 3월 남편이 돌연 과로사로 세상을  떠는 시련을 겪게된다. 어린이 교육의 꿈을 실현하도록 곁에서 부단히 힘이 됐던 남편이었기에 그녀의 충격은 매우 컸다. 한쪽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허전함을 박물관 운영에 매진하며 메워나갔다. 2007년 함양군에서 학교를 비워달라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해와 영문도 모른 채 쫓겨나듯 학교를 떠났다. 보상 한 푼 받지 못한 채 첫 번째 꿈을 접고 마는 두번째 시련을 겪게된다.
 
그 후 2011년 3월 강서구 천성초등학교 폐교 소식을 우연히 듣고 학교시설과 환경을 답사하고 이곳에 교육자료박물관을 설립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공기 좋고 환경이 수려한 천성만은 남편과 가족의 꿈을 실현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부산시교육청으로부터 경쟁 입찰을 통해 지난 2011년 6월 연간 임대료 4천400여만 원을 내고 넘겨 받았다. 아이들이 떠난 학교를 교육자료박물관으로 리모델링하여 남편의 호(鹿峰)을 딴 "록봉민속교육박물관"을 개관하게 되었다. 남편의 유지를 이을 수 있는 교육박물관이 탄생한 것이 남편이 다시 살아온 듯 기뻤다.
 
농촌에서도 이제 사라지고 있는 옛 농기구와 생활용품을 전시한 '재미난 민속관', 1980년대 이전의 장난감만 모아 놓은 '추억의 놀이관', 찬바람에 언 손을 호호 불며 물을 긷던 두레박 우물과 옛 물펌프를 직접 해 볼 수 있는 '전통 체험관' 등을 갖추고 박물관 앞 운동장은 자전거 타기, 널뛰기, 굴렁쇠, 투호, 제기차기 등의 체험 놀이터로 꾸며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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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나라 토요문화학교 프로그램

남편의 유지를 받드는 뿌듯함 뒤에는 부산광역시 교육청으로부터 임대료 청구에는 큰 난관에 봉착하게된다. 올해에 납부해야 할 대부료와 연체료 등 8천여만 원을 내야한다. 현재 한 사람당 입장료 5000원의 수입으로는 태부족인 것이다.
정부는 폐교를 수의계약을 통해 임대한 뒤 교육용으로 사용할 경우 매년 납부해야 하는 폐교의 대부료 50%를 감면해주는 특별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대부료 감면 대상은 특별법 제정 이후에 수의계약을 통해 계약을 체결한 교육용 시설에 한정하고 있어 특별법 이전에 개관한 록봉민속교육박물관은 제외되어 안타까움을 사고있다. 정부가 폐교를 제대로 활용하겠다고 정책을 만들어 놓고서는 시민들을 힘들게 해서야 될까. 간단하게 소급적용하면 될 것인데...
 
록봉민속교육박물관은 오늘도 이곳을 찾는 어린이들과 함께 매일매일 새로운 꿈을 키워주고 있다. 염춘자 이사장은 "경영난이 심화되고 있지만 후학 양성에 도움이 되는 한 박물관을 계속 운영하고 싶다"는 뜻을 강한 다짐을 들려주었다
현재 자신은 이사장직으로 한발 물러 섰고 아들 손혁(44)씨가 관장직을 맡고 있으나 그의 열의는 식지 않았다. 낙동강의 도도한 물길이 멈추듯 교육가로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여생을 바치리라 다짐하는 염춘자 이사장은 행복하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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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만의 희망 록봉민속교육박물관(상)

 
천성만의 희망 봉민속교육박물관(상)
​-낙동강변 강서구의 사람들1

부산문화재단에서 실시중인 시민강좌 '낙동강 물길따라' 프로그램에서 강서
지역의 인물을 만났다. 그 첫번째로 가덕도 천성마을의 록봉민속교육박물관을
방문하여 염춘자(71) 이사장을 만났다. 먼저 록봉민속박물관을 소개하고 이어
염춘자 이사장의 걸어 온 길을 후편에 소개하고자 한다.

​2011년 11월 26일에 개관한 록봉민속교육박물관은 토지 1만78㎡, 건물982㎡의 폐교된 옛 천성초등학교를 리모델링했다. 전시관실, 체험관실, 생활관실, 야외체험 학습실 등으로 탈바꿈, 2000여 점 이상의 근·현대사 민속교육 전시품들이 테마별로 마련됐다. 이에 따라 록봉민속교육박물관은 유·초등학생들의 창의적인 자연학습활동을 위해 자연 환경 중심의 다양한 체험 교실을 갖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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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록봉민속교육박물관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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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동장에서 염춘자 이사장이 방문팀을 맞고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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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협회 회원관 표지
록봉민속교육박물관의 염춘자​(廉春子·71) 이사장의 안내로 서편 출입문을 들어섰다. 제1실에 풍금과 대형 주산 따위가 있는 추억의 학교관을 만난다. 제2실은 오래된 라디오, 환등기 등이 전시된 신기한 전자관이고, 제3실은 갓과 물레 따위가 있는 재미난 민속관이다. 제4실은 여성들을 위한 문화체험관이다. 제5실은 전통문양 등을 그려보는 체험관이고, 제6실은 실제 우물을 파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올리는 체험도 할 수 있었다. 제7실은 열린도서관으로 벽시계와 도자기 등을 전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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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의 소리-풍금을 연주해 주는 염춘자 이사장
록봉민속교육박물관의 염춘자​(廉春子·71) 이사장의 안내로 서편 출입문을 들어섰다. 제1실에 풍금과 대형 주산 따위가 있는 추억의 학교관을 만난다. 제2실은 오래된 라디오, 환등기 등이 전시된 신기한 전자관이고, 제3실은 갓과 물레 따위가 있는 재미난 민속관이다. 제4실은 여성들을 위한 문화체험관이다. 제5실은 전통문양 등을 그려보는 체험관이고, 제6실은 실제 우물을 파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올리는 체험도 할 수 있었다. 제7실은 열린도서관으로 벽시계와 도자기 등을 전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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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갑(筆匣)
붓을 넣어 두는 작은 함 모양의 가구를 말하는데, 갑은 특정한 물품만을 담기 위해 만들어졌고 뚜껑이 얇은 판으로 된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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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등기와 필름
오른쪽의 환들기에 눈을 대고 보면 그림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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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 나온 각종 가전제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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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다오와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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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족답식탈곡기- 발로 페달을 밟아 벼를 탈곡하는 무동력탈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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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서 논일할 때 겉옷안에 입었던 전화줄로 만든 여름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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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물의 껍질을 벗기는 농기구인 매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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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으로 만든 담는 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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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서 소량의 곡식을 빼앟때 사용한 농기구로 이름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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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름음냉장고를 사진삑는 방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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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음냉장고 내부를 열고 내부를 보여주는 염춘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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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 장식물이 사라진 가마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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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세월동안 돌고 돌았던 우마차의 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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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벽시계가 걸려있는 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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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물을 설치,두레박으로 물을 푸는법을 시연하는 염춘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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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도 한쪽면을 진열장으로 만들어 다양한 종류의 물품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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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도 한쪽면을 진열장으로 만들어 다양한 종류의 물품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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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떡메의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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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로 이용한 곡식을 퍼고 담는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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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험교육차 방문중인 어린이들

록봉민속교육박물관은 청소년들에게는 문화체험 교육장으로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성인들에게는 추억으로 빠져드는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가덕도의 보물 중 한 곳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산 가덕도는 영도의 1.6배로 부산에서 가장 큰 섬이다. 어장이 많아 예로부터 낚시꾼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었다. 지금도 주말이면 가덕도는 낚시꾼에다 등산객들로 넘쳐난다.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곳이 됐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가덕도의 가치를 잘 모른다. 체험 교육장으로 활용하할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을 지속적인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체험 교육장으로 활용하할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염춘자 이사장의 열정은 뜨겁기만하다. 하지만 작년한해만 8천만원 가랑의 비용을 물어야하는 현실적인 문제는 가며 기 위해서는 2천점이 넘는 자료를 해석하고 활용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수립하는 과제를 안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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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건조물-낙동강칠백리식당

근대건조물-낙동강칠백리식당
 
부산의 서쪽인 낙동강을 경계로 고층 빌딩이 즐비한 북구인 구포 지역과 달리 강서구 대저 지역은 공장 건물과 주택들로 이뤄져있다. 1970년대의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대저에는 부산시에서 지정한 근대건조물 2 가옥이있는데 그 중 한 가옥인 낙동강칠백리식당을 탐방한 내용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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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시간대라 손님들의 차량이 입구에 늘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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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입구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전후로 일본인들은 낙동강 하구의 대저도 지역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당시 삼각주의 하천 부지는 지번과 지적이 없어 주인 없는 땅이나 다름없었다. 1908년 일본의 동양척식주식회사가 대저를 중심으로 강변에 둑을 쌓아 홍수 피해를 임시로 막고 이 땅을 그들의 소유로 만들면서 본국인 일본의 농부들을 이주시켰다. 일본은 초기 쌀부족으로 한국에서 쌀을 수입했다. 그러나 1920년 이후 일본쌀 개량으로 쌀이 남아도는 상황이 됨에 따라 대저 지역도 쌀 농사에서 배수가 좋은 사질토에 맞는 배농사로 전환했다. 1920년대에는 경남 전체 배 생산의 40%를 차지할 만큼 대단했다. 이렇게 재배한 배를 국내는 물론 만주로,일본으로 '구포배'라는 이름으로 수출·판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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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에서 부착해 놓은 근대건조물 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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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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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에서 본 정면
일제강점기 시대에 주민들을 착취한 일본인 지주들이 거주하던 가옥과 창고, '대저배'를 저장하던 곳간들이 원형을 유지한 채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그런 가운데 근대건조물로 선정된 양덕운씨 가옥의 경우, 이 건물의 일본인 후손이 다녀갔단다. 집안에 보물인(?) 수 놓은 보자기를 찾아 갔다. 양덕운씨가 부담없이 그냥 주었는데 그 후손은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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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뒤에서  본 모습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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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뒤에서  본 모습2
부산문화재단 주관 제4기 시민아카데미 '낙동강 물길 따라' 여섯번째 강좌에서 강서구 현장을 탐방하였다. 그 첫번째가 강서구 대저1동 공항로 1347번 길에 자리한 적산가옥인 낙동강칠백리식당이었일제강점기 1926년에 지어진 본식 가옥이다. 흔히 볼 수 없는 2층의 기와지붕에 문지방이나 흙마루가 없이 불쑥 튀어 나온 현관이 우리 한옥과는 다른 점이었다, 대저 일대 일본인 대농장주들의 회의장소로 사용된 듯하다고 해설을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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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품격을 떨어 뜨리는 왼쪽편의 본 모습
88년 된 건물의 외관구조와, 정원을 카버하는 수령이 100년 남짓한 소나무가 멋진 조화를 이뤄 아름답게 보인다. 하지만 본체에서 이은듯한 서쪽 부속건물의 허접함에다 사진에서와 같이 부분적으로 훼손된 부분이 보이며 방치 해놓은듯한 정원도 매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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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서 본 정면
건물주가 일본 건물에 대한 이해와 관리를 제대로 하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것은 답사한 사람들의 공통된 마음이다.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는데다 단체 탐방이다보니 내부를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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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덕운 씨 가옥 
참고로 오늘의 탐방에서 빠졌지만
가까운 강서고등학교 옆길로 들어서면 역시 남다른 집이 한 채, 바로 양덕운 씨 가옥이다. 목조건물로 2층의 기와에 맞배지붕에 가깝지만 처진 그 끝을 팔 작으로 살짝 멋을 부렸고, 여러 그루의 오래된 소나무로 가꿔진 정원이 본식 집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처럼 강서구 대저동에는 모두 12가옥의 적산가옥이 남아 있다.
 
낙동강칠백리식당-11.jpg
"산맥보다 줄기찬 역사가 흐른다. 역사보다 깊푸른 숨결이 흐른다..(후략) "유안진의 시 '낙동강의 이름으로 '를 낭독하는 현장탐방팀
 
부산시는 일본식 가옥인 '낙동강칠백리 식당'을 근대건조물로 지정해 역사적 자원으로 남겼다. 부산시는 역사적 보존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을 위해 낙동강칠백리 식당을 비롯하여 양덕운씨 가옥과 동아대 석당기념관, 백제병원, 부산대 인문관, 옛 미 하야리아 부지 내 미군 장교 클럽 등 6곳을 2012년 7월에 ‘부산시 근대건조물’로 최초로 지정했다.
 
이번 탐방에서 건물 내부를 둘러 볼 수 없어 아쉬움이 많았다. 이곳 낙동강칠백리식당은 대나무속에 돼지고기를 넣고 장작구이를 한 메뉴가 이 식당의 자랑이라고 한다. 그래서 다음 기회에 식사하러 와서 내부를 살펴 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다음 코스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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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오전 11시' 부산을 향해 추모 묵념!!

'내일 오전 11시' 부산을 향해 추모 묵념!!
 
'11월 11일 오전 11시 부산 남구 대연동 유엔기념공원 추모행사에 동참해주세요.'
 
Turn Toward Busan-1.png
11일 오전 유엔기념공원에서 열리는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 추모행사에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 행사는 전 세계인들이 한국전쟁 참전 유엔군의 영령이 잠들어 있는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향해 매년 11월 11일 오전 11시 한국시간에 맞춰 1분간 묵념과 추모행사를 갖는 것으로, 2007년부터 매년 같은 시간에 진행되고 있다. 숫자 '1'은 전 세계가 '하나(One)'가 된다는 의미다.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 추모행사를 처음 시작한 것은 지난 2007년 11월11일. 6.25 전쟁 참전용사였던 캐나다의 빈센트 커트씨의 제안으로, 매년 11월11일 오전 11시 한국시간에 맞춰 1분간 묵념과 추모행사를 열게 되었다.
2007년부터 캐나다, 영국 등 영연방 4개국을 중심으로 개최되었고, 2008년부터 국가보훈처가 주관하는 정부행사로 진행했다. 한편 11월 11일은 세계 1차 대전 종료일이자 영연방 국가현충일(Remembrance Day)이다. 또 미국은 제대군인의 날(Veterans Day)로 제대군인의 희생과 헌신에 추모하고 감사하는 날이다.
 
국가보훈처는 추모행사를 '단일 추모행사의 최다 추모 동참'행사로 추진, 기네스에 등재키로 했다. 부산시도 이번 행사가 부산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보고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보훈외교 브랜드로 정착시키겠다는 방침으로 다양한 홍보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Turn Toward Busan-2.jpg
 
특별히 이번에는 부산유엔평화기념관 개관에 즈음해 21개 유엔 참전국 및 참전협회 대표단이 참여하게 된다. 이와 관련, 전 세계 네티즌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는 1분 분량의 동영상 ‘묵념 동참 스페셜 미디어’를 제작해 유튜브에 올리는 한편, 이벤트 홈페이지(www.turntowrdbusan.com)를 개설해 유엔참전국 국민들이 행사 참여 의사 표시와 함께 개인 사진을 올리도록 하는 캠페인도 벌리고 있다. 턴 투워드 부산 홈페이지(www.turntowardbusan.com)에는 10일 오전 현재 전 세계 2천600여 명이 자신의 사진을 게재하고 국경을 초월한 추모행사 동참 의지를 밝히는 등 세계인들의 마음은 이미 부산으로 향하고 있다. 
 
영국의 기네스협회는 캠페인 참가자 사진이 10만 장을 넘으면 ‘단일 추모 행사의 세계 최대 온라인 포토 앨범’으로 규정하고, ‘턴 투워드 부산’을 글로벌 추모행사로 공식 인정할 예정이다
 
이러한 행사는 두말할 필요 없이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이룩한 대한민국의 성공 역사는 죽음을 무릅쓰고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자국의 젊은이들을 유엔군의 이름으로 파병한 참전국들의 결정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지난해 7·27 정전협정 60주년 기념연설을 통해 “6·25전쟁은 무승부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승리였다”며 “5000만의 한국인이 누리는 자유, 활발한 민주주의,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는 한국이 전쟁에서 승리한 데 따른 유업”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11월11일11시! 우리 젊은이들이 지극히 소비 지향적인 ‘빼빼로데이’ 치르기에 열광하기보다는 11시 정각에 경건한 묵념의 시간을 갖도록하자.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부산유엔묘지로 향한 1분 간의 시간 투자는 6·25전쟁 참전국 국민들의 마음을 얻는 데 큰 효과를 발휘하게 됨이 틀림없을 것이다.
 

참고로 ‘TURN TOWARD BUSAN’ 온라인 추모 캠페인 방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턴투워드부산 홈페이지( www.turntowardbusan.com)에 접속 => 사용언어 선택(한국어 /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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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벤트 참여하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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