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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잠으로 유도하는 호흡법

쉽게 잠으로 유도하는 호흡법

 
무더워진 날씨 혹은 불면증으로 인해 쉽게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또한 아무리 침대에서 눈을 감고 있어도 좀처럼 잠들지 못하는 밤이 있다. 뭔가 걱정거리가 있거나, 다음날에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거나 하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거꾸로 머리가 선명해져 버리는 일도그래도 언젠가는 잠에 떨어져 가는 것이지만, 너무 이 시간이 길면, 역시 초조감이 들어 충분한 수면을 방해하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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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사람이 68시간의 수면을 필요로 하지만, 4할의 사람은 충분한 수면 시간을 확보할 수 없다. 수면 부족이 겹쳐지면, 기분뿐만 아니라 생산성이나 모티베이션, 창조성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다.

 
잠자기 전에 심호흡을 하는 것은, 안면(安眠)을 위한 유효한 수단의 하나인 것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쉼으로써, 근육의 긴장이 풀리고, 신체의 피로나 Damage를 회복하는 방향으로 향하게 하는 자율신경(부교감신경)Switch를 넣기 때문이다. 이 들이마시고 내쉼으로의 반복으로, 신체를 Relax시키는 것이 우선, 대전제(大前提)수면제 없이도 1분 안에 쉽게 잠이 드는 흥미로운 호흡법이 공개돼 눈길을 끈다.

 

DR. Andrew Weil 2.jpg
앤드류 와일(Andrew Weill) 박사
   

지난 20159월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하버드 의대 출신으로 대체의학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앤드류 와일(Andrew Weill) 박사의 신개념 호흡법을 소개했다. 일명 '4-7-8 호흡법'으로 불리는 이 호흡법은 몸의 긴장감을 낮춰 빨리 잠들 수 있게 도와준다.앤드류 와일 박사는 "'4-7-8 호흡법'은 일종의 신경계 천연 진정제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손쉽게 따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1. ‘후우소리를 내면서 입으로 숨을 완전히 내뱉는다.  

2. 입을 다물고 4초간 코로 숨을 들이마신다. 이때 주의사항은 숨을 천천히 마셔야 한다.  

3. 그 상태로 7초간 숨을 참는다.  

4. 다시 후우소리를 내며 입으로 8초간 숨을 내뱉는다.  

5. 이 과정은 1회로 총 3차례를 반복하면 된다.

 

와일 박사는 호흡법을 할 때 코를 통해 끝까지 숨을 들이쉬고 입을 통해 끝까지 숨을 내뱉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호흡할 때 혀는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이어 날숨이 들숨에 비해 2배 더 길므로 4, 8초를 꼭 지키기보다 페이스에 맞춰 날숨을 2배 더 길게 하면 된다하루 최소 2, 6~8주간 이 호흡법을 연습하면 1분 안에 잠들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앤드류 와일 박사는"이 호흡법은 스트레스 완화와 불안장애에도 효과적이며" "'4-7-8 호흡법'은 폐에 더욱 많은 산소를 공급해 부교감신경계통을 안정시켜 수면에 도움을 주는 방법이다"고 덧붙였다.

 

4-7-8호흡법은 수면용만이 아니고,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긴장을 푸는데 유효한 수단으로 이용 된다의식적으로 천천히 호흡하는 것을 마음에 두면, 평소의 초조감도 토하는 숨과 함께 해소되어 갈 것이다. 중요한 회의나 프리젠테이션 전에 불안을 느끼면 우선은 호흡을 조정할 것.

 

아주 간단한 의식만으로, Stress-free의 생활을 보내는 것도, 푹 자는 쾌면도 생각대로 할 수 있다는 4-7-8호흡법우선은 당장 오늘밤부터 시작해보자.

 

참고로 유튜브에 소개되어 약 3백4십만회 조회된 앤드류 와일 박사의 영상은 다음과 같다.

Asleep in 60 seconds: 4-7-8 breathing technique claims to help you nod off in just a minute

https://youtu.be/gz4G31LGy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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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의 속을 태우는 가뭄

농민의 속을 태우는 가뭄
 
 
오늘도 무심한 하늘에는 비 소식없이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부산경남도 가뭄의 직접적인 피해를  보고있다. 상수원인 부산 회동수원지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6개월만에 저수량이 천만톤이나 줄어 들었다. 회동수원지 상류지점에는
계속되는 가뭄으로 수원지 바닥이 그대로 드러난 가운데 마치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져 있다. 한달 전보다 수위가 3미터나 낮아졌고, 저수율도 47%에 불과하다. 회동저수지는 가뭄속에 예년에 없었던 현상을 보이고 있지만 약과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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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류가 바닥을 보이는 회동수원지

경기도의 한 골프장에서는 해저드, 즉 인공 연못의 물 1만 톤이 주변 농가로 긴급 급수될 정도로 물 부족이 심각하단 얘기다. 경기 일대 농업 용수를 공급하는 마둔 저수지의 경우 수위가 68미터까지 내려갔다. 용수 공급이 중단되는 한계선까지 2미터 밖에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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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히 급수된 골프장 물

이렇게 저수율 심각 단계로 들어선 지역이 경기와 충남 외에 강원, 전남까지 확대됐다. 앞으로 열흘 이상 비가 오지 않을 경우 식수 공급 차질도 우려된다. 가뭄으로 인한 피해 사례를 22일자 KBS보도를 인용하여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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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율 바닥을 심각한 저수지

수확철을 맞은 농작물 피해 역시 전국으로 확산중으로 양파 주산지인 전남 무안에서는 물을 먹지 못한 양파는 정상 크기의 절반 수준에서 생장을 멈췄다.
울산 울주군은 종아리까지 자라야 할 부추가 노랗게 시들어 버리는 현상에 애를 태운다. 바다와 인접한 충남 당진에서는 간척지 염도가 높아져 모내기 포기 농가가 속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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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율이 심각한 지역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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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무안의 양파 생육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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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당진의 염해로 인한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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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량 감소가 예상되는 감자, 양파, 마늘
 
이처럼 물마름, 염해, 시들음 현상 등으로 여름 작물 생산량은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고랭지 감자는 14%, 마늘은 5%, 양파는 9% 정도 수확량 감소가 예상된다고 한다.

농가마다 혹독한 가뭄에 맞서기 위해 양수기, 물탱크, 스프링클러 등 비상 급수 장비와 함께 트랙터, 굴착기와 같은 관수 장비가 절실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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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 피해 면적은 여의도 18배라고 한다

지금까지 가뭄 피해 지역은 5,450ha로 여의도 면적(290㏊)의 18배에 달하는 규모이다. 정부는 가뭄 경보 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가뭄의 피해는 농민뿐만 아니라 산업단지 지역의 공업용수 피해가 확대될 수 있다. 나아가 도시민들의 수돗물 공급에도 차질을 빚게 마련으로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가뭄과 홍수는 조선시대까지만해도 연례행사처럼 겪어오면서 백성들이 많은 피해를 겪어야만 했다. 『국역증보문헌비고(누리미디어, 2000)』의 기록을 보면, 조선시대 490년 동안 총 100회의 가뭄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평균적으로 5년에 한번 꼴로 가뭄이 발생했음을 알 수 있으며, 2년 연속 가뭄은 15회, 3년 연속 가뭄 4회, 4년 연속 가뭄 1회, 6년 연속 가뭄 2회 등 해를 거듭해 가뭄이 발생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효종 8년(1657)부터 현종 3년(1662)까지, 현종 7년(1666)부터 현종 12년(1671)까지는 6년 동안이나 연속해 가뭄이 지속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가뭄과 홍수를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극복하였까? 우선 과거에는 비가 내리지 않고 가뭄이 극심하게 되면 비가 내리도록 일종의 제사 형식의 주술적 행위를 하여 비가 내리도록 마음을 담았다. 이는 생존을 위해 고대부터 내려오는 형식으로 가뭄이 심하면 왕 또한 음식을 먹지 않고 무고한 백성들을 풀어 주기도 하였다. 또한, 가뭄이 극심할 때면 임금은 임금대로, 관리들은 관리대로 자기의 소임을 다 했는지, 사치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고 원한이 맺힌 사람들이 있나 살펴봤으며, 기우제를 지냄으로써 하늘의 노여움을 풀고자 했다.
 

그러나 가뭄을 이처럼 소극적으로만 대처한 것은 아니었다. 가뭄을 극복하기 위해 수리사업을 일으켰고 평상시에도 수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지방의 수령들을 감찰했다. 또한 전국적으로 농서(農書)와 농정(農政)에 대한 신기술 및 정책을 수렴하고자 했으며, 중국과 일본에서 농사에 이용하고 있는 수차(水車)를 도입하려는 노력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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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민합동 한해작업(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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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가뭄대책 양수작업(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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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지구 한해작업(1968)

 

현대에 들어와서 1960년대부터 정부는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추진에 따라 수자원 종합개발계획을 수립하여 가뭄에 대한 효과적인 해결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또한 한해가 발생하면 전 국민의 관심과 동참을 독려하고 한해방지를 위한 인식을 확산시켰다. 저수지를 건설하고, 양수기를 보내고, 소방차 등을 동원하고, 한해민을 위한 전국적인 성금모금과 TV특별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등 한해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과 지원운동을 벌였다.
 
6월22일 오후 개최된 현정부의 가뭄대책은 가뭄 해소시까지 국무조정실의 통합물관리 상황반과 농식품부의 농업가뭄대책 상황실을 중심으로 관계기관이 긴밀히 협력하여 가뭄피해가 최소화 될 수 있도록 총력 대응해 나갈 예정이다.
 
농업용 저수지 저수율은 42%로 평년(59%)보다 17%p가 낮은 수준으로, 모내기는 마무리 상태(98%)이나 모내기 이후 경기‧충남‧전남 등 일부지역에서 물 부족으로 마름현상이 발생하고 밭작물은 시들음 등 생육저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7월까지 강수량이 평년보다 적을 경우 가뭄피해 확산이 우려된다. 이에 정부는 가뭄발생지역에 물 공급을 위한 긴급 급수대책을 추진중이며, 가뭄 확산에 대비하여 추가대책을 마련‧추진할 계획이다.
 
그동안 가뭄대책비 125억원과 특별교부세 265억원, 지방비 등을 투입하여, 물 부족지역에 관정개발 1,876공, 간이양수시설 설치 181개소, 하천굴착 2,153개소, 저수지 준설 186개소 등 긴급 급수대책을 추진해 왔다. 앞으로도 가뭄이 확산될 것에 대비하여 관정, 간이양수시설 등 용수원 개발을 위해 가용재원을 활용하여 추가 지원도 강구한다
 
아울러, 중장기적으로 기후변화에 따른 상습 물부족지역의 작목선택, 급수체계·재배방식 변경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다. 효율적 물관리를 위해 재배방식 다각화(이앙→무논·건답·이랑직파), 물 관리 개선(관행→간단관개) 등 물 절약 농법 확산하는 한편, '18년 쌀 생산조정제 도입과 연계하여 논 타작물 재배 확대, 가뭄·염해에 강한 벼 품종 개발을 추진할 계획이다.
 
전국 다목적댐 저수율(36.3%)은 평년(35%)의 104% 수준으로, 댐 간 연계운영 및 실수요량 공급위주의 운영을 통해 6월 말까지 비가 오지 않더라도 전국 다목적댐의 용수공급에는 차질이 없을 전망이다. 다만, 보령댐 저수율(8.9%)은 평년(35.2%)의 25% 수준에 불과하여 ’경계‘ 단계로 관리 중이며, 도수로 가동(3.25~), 급수체계조정(6.1~) 등의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매년 반복되는 가뭄에 근본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항구대책도 속도를 낼 계획이다. 그동안 추진해 오던 저수지 신설 등 기존 농촌용수개발사업, 대단위농업개발사업(영산강 Ⅳ지구)은 완공 위주로 집중 투자하는 등 속도감 있게 추진할 계획이며, 소요예산은 추가 확보해 나갈 예정이다.
 
저수지·양수장 등 수리시설 확대를 위한 농촌용수개발(83지구, 39.8천ha)은 완공 위주로 집중 투자('17년 : 11지구 5.3천ha 준공)하고, 올해 가뭄이 심한 전남 무안(해제면)·신안(지도읍) 지역(2.1천㏊)에 '19년 영농급수를 위해 사업추진을 앞당겨 추진한다.
 
이처럼 정부대책을 보면 전국 다목적댐 저수율 덕분인지 언론에 보도되는 심각함을 읽기어렵다. 대책방안들이 신속하게 실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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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들어가는 농작물을 보며 하늘만 쳐다보는 농민의 안타까움을 풀어줄 것은 매년 6월이면 찾아드는 장마를 꼽을 수 있다. 계속되는 더위로 인해 늦어지는 장마전선은 다음 주 후반 경 북상하면서 6월29일(목)~30일(금) 제주도를 시작으로 7월 초에는 내륙으로도 점차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며칠남지 않은 6월이 농민들을 비롯 급수에 애태우는 도서지역민들에게 잔인한 달로 기억되지 않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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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수국의 계절

지금은 수국의 계절
 
세계 각국의 수국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수국축제가 태종대유원지 안에 자리한 태종사 경내에서 이번 주말부터 열릴 예정이다. 축제기간에 앞서 가 본 태종사 수국 모습과 함께 수국의 내력과 꽃말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나라 최대의 수국 꽃 군락지인 부산 영도구 태종대유원지에서 개최하는 제12회 태종대 수국축제는 6월 24일부터 7월 2일까지 관광객의 발길을 기다린다. 수국축제에서는 40여 년간 가꿔온 200여 종의 수국과 일본, 네덜란드, 태국, 인도네시아 등 세계 각국에서 가져와 키운 수국들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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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사 수국꽃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
수국축제는 여름, 특히 장마철을 대표하는 꽃인 수국의 개화시기에 맞춰 해마다 열린다. 반음지 식물인 수국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태종대와 생태학적으로 가장 잘 어울리는 식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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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국꽃 배경으로 사진찍는 학생

수국(水菊)은 비단에 둥근 공과 같은 꽃을 수놓아  즉 비단만큼 아름답다는 뜻의 수구화(繡毬花)가 변하여 수국이 되었다. 중국과 일본에서의 이름은 자양화(紫陽花)인데 백낙천이 그의 시에서 처음 붙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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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사 수국꽃

백낙천이 어느 조그마한 고을의 군수가 되어 갔을 때다. 고을 안에 있는 소현사라는 절에 들렸더니 주지가 반기며, "참 잘 오셨습니다. 저기 꽃이 탐스럽게 피었는데 처음 보는 꽃입니다. 꽃이름도 모르겠습니다. 무슨 꽃인지 아시겠습니까?" 하고 묻자 백낙천이 살펴보니 과연 처음 보는 꽃이었다. 곧 그는 한 수의 시를 지어 주지에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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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사 수국꽃

어느 해였을까?
천인의 제단에 심어졌던 꽃이
이 절로 옮겨 온 것은
비록 이 꽃이 인간 세상에 있지만
사람들이 이름마저 모르니
그대와 더불어 자양화(紫陽花)라 이름 짓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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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사 수국꽃
 
수국의 학명(Hydrangea macrophylla for. otaksa)에는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독일의 식물학자인 주카리니(Zuccarini, 1797~1848)는 젊은 나이에 식물조사를 위하여 일본에 왔다가 오타키라는 기생과 사랑에 빠졌다. 그 후 오타키가 변심하자 가슴앓이를 하던 주카리니는 수국의 학명에다가 변심한 애인의 이름을 붙였다. 그녀의 이름 오타키에다 존칭을 붙여 오타키상이라 하였는데 이것이 오타크사(otaksa)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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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사 대웅전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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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옆 의자에 놓인 작은 불상과 수국
수국의 학명(Hydrangea macrophylla for. otaksa)에는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독일의 식물학자인 주카리니(Zuccarini, 1797~1848)는 젊은 나이에 식물조사를 위하여 일본에 왔다가 오타키라는 기생과 사랑에 빠졌다. 그 후 오타키가 변심하자 가슴앓이를 하던 주카리니는 수국의 학명에다가 변심한 애인의 이름을 붙였다. 그녀의 이름 오타키에다 존칭을 붙여 오타키상이라 하였는데 이것이 오타크사(otaksa)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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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사 수국꽃
 
꽃 색이 다양해서 ‘칠변화수국’이라고도 불린다. 이름처럼 다양한 꽃 색을 보여준다. 꽃을 자세히 보면 가짜 꽃과 진짜 꽃이 있다. 가짜 꽃(헛꽃, 암술과 수술이 없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은 곤충을 유인하기 위해서 다양한 색을 만든다. 그러나 진짜 꽃(참꽃, 열매를 맺는 꽃)은 가운데에 있다. 수정을 하고 난 뒤에는 꽃잎이 180도로 뒤집혀 버린다. 즉 ‘나는 결혼한 꽃이에요’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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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사 수국꽃
 
수국의 꽃 색깔을 보면 보라색, 핑크, 파랑, 흰색 등 여러 종류의 색깔이 있는 만큼 꽃말도 다양하게 있다.  어버이날 선물이나 결혼식 장식 꽃으로도 많은 인기를 모으고 있는 수국의 꽃말을 소개한다. 재미로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1. 좋은 의미의 꽃말 

① 건강한 여성

② 참을성 애정

③ 가족의 단란함 가족유대


"강한 유대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이미지가 떠오르는 꽃말이 특징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건강한 여성
이것은 프랑스의 꽃말이다. 유럽 토양은 알칼리성이 많아 수국은 알칼리성 토양에서 빨간색 또는 분홍색으로 물들기 쉽다. 프랑스에서는 수국이 꽃피는 계절인 6 ~ 7 월경은 매우 온화한 계절이다. 빨강이나 핑크 등의 사랑스러운 색상의 꽃 + 기분 좋은 기후 = 건강한 여성이라는 이미지에서 이 꽃말이 붙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족의 단란함, 가족유대
이것은 수국의 작은 꽃잎 (꽃받침)이 몰려들어 피어있는 모습에서 붙여진 꽃말이다. 꽃의 특색으로 인해 사실 마이너스 이미지의 꽃말이 많은 수국이지만, 한편으로 '단결' '화기 애애'등의 따뜻한 해석이 많은 것 같다. 가족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웨딩장식 꽃과 부케로 인기가 많은 것은 납득이 간다

참을성 있는 애정
수국은 꽃 장식용으로 개화 기간이 길고, 보슬 보슬 내리는 장마 빗속에 가만히 견디며 피어있는 모습에서 이 꽃말이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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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사 수국꽃


2. 수국의 마이너스 이미지의 꽃말
긍정적 인 꽃말뿐만 아니라 마이너스 이미지의 꽃말도 일부 있다. 조금은 비슷한 의미의 것은 정리하여 소개한다.

마이너스 의미의 꽃말
변덕・바람기・변절
당신은 아름다움에 냉담하다
교만 ・ 무정 등으로 좋지 않는 이미지가 떠오르느데 하나씩 살펴보자.

변덕・바람기・ 변절
왠지 뜨끔 해지기도 하는 꽃말이다. 이것은 수국의 색이 변화하는 특징에서 태어난 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국은 꽃이 피면 색상 밝은 연두색에서 ⇒ 엷은 크림색 ⇒ 연한 파랑 ⇒ 뚜렷한 파랑 ⇒ 약간 보랏빛을 띤 파랑 ⇒ 불그스름한 보라색으로 색상이 변화하는 꽃이다. 색상이 변해가는 모습을 마음이 변해가는 것 같이 본 것이다.
단순한 변심이라기보다는 "더 아름다워지기 위해 색이 변해 가는 것 '라는 생각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쪽의 해석이 더 멋지다 ~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변절은 "주의(主義)나 주장, 신념 등을 바꾸는 것 '이라는 의미이다.
 
당신은 아름다움에 무관심하다
이것은 수국의 아름다운 파란색과 남색의 꽃 이미지에서 태어난 꽃말이다. 파란색이나 남색 등은 '차가운 색(Cool)'이라고 되어 있다. 차가운 색(Cool)은
은 "청순함, 지적, 시원한, 신비"라는 아름다운 이미지 외에, "정신, 냉담, 접근하기 어려운'이라는 차가운 이미지가 있다. 바로 "당신은 아름다움에 냉담하다"의 꽃말이 해당되는 색상이다.
 
교만 ・ 무정
이것도 위의 "당신은 아름다움에 냉담하다"뿐만 아니라 수국 색의 이미지에서 붙여진 꽃말이라고 알려져 있다. 덧붙여서 ...
 
수국의 원종인 학문 수국의 꽃말은 '겸손'이다.
수국과는 또 분위기가 다른, 매우 우아한 학문 수국에 딱 맞는 꽃말이다

 흰 수국의 꽃말은 '관용'
이것은 파란색과 빨간색의 수국이 '변덕'등의 변화하는 이미지에서 흰색은 변화를 받아들이는 ...라는 의미라면 멋지다 ~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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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사 수국꽃

수국 잎은 차로도 마신다. 수국차를 흔히 ‘이슬차’라고 부른다. 수국차는 은은한 단맛과 박하를 닮은 향을 내는데, 카페인과 칼로리가 없어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다. 또한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심한 열이 날 때, 심장을 강하게 해주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수국 줄기는 말려 차로 만들어 먹거나 단것을 금해야 하는 당뇨병 환자가 설탕 대용으로 쓰기도 한다. 또한 혈액순환 효능을 가지고 있어 여름 더위를 이기는 데에도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체적으로 화려하면서 꽃 하나하나는 수수한 형형색색의 아름다움까지 간직한 수국, 수국이 피어 있는 산이나 길가에서 여름을 느껴보길 바란다. 여름장마 시작을 알리는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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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의 말을 전하고자 합니다. 건강으로 인해 예고없이 한달여 기간 동안 쉼에 따라 조블 가족님들께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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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영과 목메기

 
자운영과 목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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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유채꽃이 펼쳐진 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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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꽃과 노랑나비

봄의 강변 고수부지는 온통 노란색으로 물들인다. 노란 유채꽃이  피어있을 때면 어느새 노랑나비들이 살랑대며 내려앉는다. 노란 꽃과 노랑나비는 연분을 만나기라도 하듯, 달콤한 밀애의 순간으로 빠져들고 만다. 자운영이 가득 피어있는 논에 어미를 찾는 송아지가 있고, 보리밭 고랑 사이로 종달새 날아올라 하늘에서 우짓는다.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나 만이 간직하고 있는 5월의 어릴적 풍경이다. 이러한 풍경을 담은 시조가 생각나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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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영이 핀 들판
예전엔 지천을 피었던 자운영은 보기 힘든 꽃이된지 오래다. 자운영이 핀 논을 그대로 갈아 엎으면 천연 거름이되기에 이로운 들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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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영의 분홍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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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원 식물인 자운영에 꿀을 따는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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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일렁이는 보리밭
 
목메기3-2006년 충남농협 서산 목장 한우 TV CF 광고 촬영 현장속.jpg송아지의 내력을 기록한 귀표 달고있는 송아지 (출처: 충남농협 한우광고)
춘일(春日) 
                          정 훈(丁 薰)

노랑 장다리밭에
나비 호호 날고

초록 보리밭 골에
바람 흘러가고

자운영 (紫雲英) 붉은 논둑에
목메기는 우는고
 
작가 정 훈(丁 薰,1911-1992 )은 현대 시조시인으로 1911년 대전시 은행동() 출생. 호는 소정(). 휘문고보()를 나와 일본 메이지대학() 문과 중퇴. 1938년에는 동인지 '자오선'에 '6월공'이라는 작품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했다. 그의 대표 시집은 1949년에 발표한 '머들령'이 있다. 1960년 이를 표상으로 '머들령 문학회'가 발족돼 시내 문학하는 학생들이 모여 공부했다. 서거 10주년이었던 2002년부터 '정훈 문학상'이 제정되었고, 금산으로 향하는 국도 상 터널이 '머들령' 이름을 사수하고 있다.
자운영4.jpg
 
옛날에 보리를 많이 심지 않은 평야지대에서는 땅 힘을 돋우기 위하여 자운영을 심었다. 자운영은 콩과의 두해살이풀(월년초)로 꽃이 아름다운 식물이지만 뿌리에 뿌리혹박테리아가 붙어서 공중질소(空中窒素)를 고정시켜 녹비로 재배했다. 그래서 모를 심기 전에 자운영을 갈아엎어서 벼의 밑거름으로 사용했다. 논을 갈아 엎기 전의 자운영이 만발한 모습은 장관이었다. 자운영이 심어진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빛깔과 꽃무리들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세월따라 사리지고 만 춘일속의 자운영과 목메기도 기억속에서 오래토록 살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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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전선 사수 영웅 월튼 워커장군

낙동강전선 사수 영웅 월튼 워커장군


6.25 때 대한민국 운명이 풍전등화이던 낙동강 전선을 사수한 미8군사령관 월튼 워커(Walker)장군을 기리는 특별 인물 기획전이 부산의 유엔평화기념관에서 2016년 6월25일 부터 올해 6월 10일까지 열리고 있다. 워커장군은 국가보훈처에서 2012년 12월 이달의 6.25전쟁 호국영웅으로 소개한바 있다. 하지만 맥아더 장군에 비해 덜알려진 인물임에 따라 6.25 때 그의 활동상항을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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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총 4부로 구성돼 있다. 
제1부 '월튼 워커 장군의 삶'에선 타고난 군인으로서 1·2차 세계대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워커장군의 용맹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제2부 '미국 제8군 사령관, 워커 라인을 지키다'에선 낙동강 방어선전투진행 상황을 실물지도로 살펴보며 두 달 간의 북한군의 총공세를 막아낸 워커장군의 천부적인 지략과 대한민국 수호의지를 느낄 수 있다. 
제3부 '워커장군을 추모하며'에선 워커장군의 뛰어난 공적을 기리기 위해 대한민국 곳곳에 조성된 뜻 깊은 추모의 현장을 살펴볼 수 있다. 
제4부 '그의 아들 쌤 워커'에선 미육군 역사상 유일하게 아버지와 아들이 대장에 진급한 워커가문의 걸출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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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튼 워커 장군의 특별 인물 기획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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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튼 워커 장군의 특별 인물 기획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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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튼 워커 장군의 특별 인물 기획전3

워커장군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있던 대한민국을 수호해 낸 영웅이지만 그의 공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1년에 걸친 전시기간을 통해 워커장군의 대한민국과 세계평화 수호의지를 느끼며 잊혀져가는 6·25전쟁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목적을 특별 인물 기획전을 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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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튼  워커(Walton Harris Walker)장군

월튼 워커(Walton Harris Walker, 1889년 12월 3일 ~ 1950년 12월 23일)는 1912년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제1차 세계대전에서 기관총부대의 중대장으로 참전한 것으로 군 생활을 시작했으며 이때 은성무공훈장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조지 패튼이 지휘하던 제3야전군 산하의 20군단장으로 참전했는데 빠른 기동성과 활약으로 그의 부대는 "유령 군단" 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아프리카에서 롬멜 장군의 전차부대에 승리를 거둬 중장으로 승진한 월튼 워커장군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전세가 어려워지자 곧바로 대구에 미8군사령부가 설치되면서 7월 13일, 초대 미8군사령관 겸 지상군사령군으로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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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강 방어선 -1950년 9월

w.h. walker 2-대구에서 방어작전을 짜고있는 워크중장.jpg

대구의 미8군 임시사령부에서 방어전을 진두 지훠하는 워커장군

 

w.h. walker 3-낙동강방어선을 시찰하고 있는 워크중장.jpg

낙동강 전선을 시찰중인 워커장군

 

w.h. walker 4-낙동강방어선을 시찰하고 있는 워크중장.jpg

낙동강 지류인 금호강 방어선을 시찰중인 워커장군

w.h. walker 4-한군전쟁 당시 최전방 전투에 참전한 외아들 샘 대위와 함께.jpg

한군전쟁 당시 최전방 전투에 참전한 외아들 샘 대위와 함께

그리고 낙동강 전선에 참전했는데 중장이라는 높은 계급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전선 최전방에 맨 앞에 서서 부하들을 진두지휘했다. 또한 대위이던 외아들 샘 워커 역시 한국전에 참전하여 최전방에서 싸웠다
 
낙동강전투당시 미국 정부에서는 한국의 정부요인 및 피난민을 합친 62만명의 인원을 배에 태워서 서사모아 제도에 위치한 어느 섬으로 이주시키고 망명정부를 구성하는 계획이 있었다. 이른바 New Korea Plan으로 당시 미국정부가 8군사령관을 통해, 한국군 육참총장에게 영천방어선이 붕괴되면 이승만대통령과 함께 서사모아로 가서 망명정부를 구성할것을 요청했다는 기절초풍할 제안이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것. 
 

사모아 map.png
지도 사모아섬
 
당시 일본에 있던 맥아더 사령관 역시 남한을 포기하는 것을 고려했었다. 본국에서 준비한 New Korea Plan도 그렇고 당시 상황에 비추어볼 때 이미 남한은 승산이 없다고 보였으니 그럴만도 하다. 실제로 맥아더의 낙동강 시찰도 워커 중장의 낙동강 사수 이후에 이루어졌다. 덧붙여 미국 정부 역시 한국전쟁 초기 유엔군의 전면 철수를 주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워커 중장은 맥아더에게 남한 사수를 강력히 주장하였다. 맥아더는 일본에 있었고 워커 중장은 한국에 있었다.
최전선에서 직접 낙동강 전선을 사수하는 입장이었던 워커 중장은 한국 장병들을 만나서 이런 말을 전한다.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끝까지 한국을 지키겠다.
그리고 미국 장병들에게 아래와 같은 명령을 내린다.
"우리는 절대 물러설 수 없다. 물러설 곳도 없고 물러 서서도 안 된다. 낙동강 방어선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후퇴란 있을 수 없다.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한국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 
이 무렵 워크 중장이 낙동강전선의 미군 장병들에게 내질렀던 전설적인 명언은 "Stand or die." 지켜라 (그렇게 못하겠으면) 죽어라.
워커 장군은 북한군에 밀려 내려온 장병에게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하라고 명령했다. ‘지키느냐 아니면 죽느냐’는 자세로 북한군을 45일간이나 붙들어 둠으로써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이 이뤄질 계기를 마련했다. 그 와중에 계획에 없던 맥아더의 낙동강 전선 시찰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 시찰 이후에서야 맥아더 사령관의 인천 상륙작전 구상이 가능해졌고, 사령관을 도와서 인천상륙작전까지 성공시키는 무훈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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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전선에서 국군의 무공에 감명을 받은 워커장군

낙동강전선을 사수할 때 한국군은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육탄으로 적을 막아내며 전략거점을 방어해 나간 국군의 필사적인 투혼에 워커장군은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국군에 대하여 믿음직한 동반자로 인식되었다고 한다.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세가 순식간 역전당한 후 서울의 재 함락이 예견되던
1950년 1223일 10시, 워커장군은 훗날 육군 대장이 되는 아들인 샘 S.워크 대위의 은성무공훈장 수상을 축하해주기 위해 가던 중 의정부(현재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596-5자리)에서 교통 사고를 당했. 그가 타고 있던 지휘관 지프는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보병 6사단 2연대 소속 한국군 스리쿼터 차량과 충돌하여 전복, 야전병원으로 긴급후송되었으나 안타깝게도 숨을 거두었다. 
 
 
워커 장군의 유해는 미군 역사상 최초로 곧바로 본국으로 송환되었는데, 이때 맥아더 장군은 아들에게 아버지의 유해를 모시고 귀국하라고 지시한다. 그런데, 이때 샘 워커 대위는 총알이 빗발치는 한국에 남겠다고 버틴다. 자신의 부대원들을 두고, 혼자만 떠날 수는 없다는 이유였다. 결국 맥아더 장군의 명령에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 아버지 장례식을 치렀다. 이듬해 195112, 알린턴 국립 묘지에서 화장되었으며, 대장으로 추서되었다. 월튼 워커 중장의 죽음으로 공석이 된 8 군 사령관직은 매슈 리지웨이 중장이 후임으로 취임하였다. 샘 워커 대위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자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샘 워커 대위는 이후 장군의 반열에 올랐고, 전후에도 한국에 대한 애정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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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차량인 스리쿼터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이 한국 사병을 포살하라고 명을 내렸지만 구속되고 처벌을 받게 되었으나 고인의 가족들이 한국정부에 그 병사를 처벌하지 말 것을 탄원하여 구제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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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튼 워커장군의 아들 샘 워커로 부자가 모두 대장 계급에 올랐다.
 
샘 워커는 한국전쟁에서 낙동강 방어를 위해 최선을 다한 끝에 방어에 성공하였으나 그 이후 교통사고로 순직한 월튼 워커 외아들이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소위로 임관하였으며 한국전쟁 당시 이미 대위로 진급한 상태였다.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 베트남 전쟁에도 참전했다. 이렇게 크고 작은 전쟁에 참여한 샘 워커는 결국 1977년에 당시 미국 육군 역사상 가장 젊은 나이(52세)에 대장으로 진급하였다. 이로써 워커 부자는 미국 육군 역사상 유일하게 모두 대장 계급에 오른 부자가 되었다. 미군 전체로는 미국 해군의 존 매케인 부자(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조부-부친)가 각각 1949년과 1967년에 4성 장군으로 진급한 전례가 있으므로 두 번째 사례였다.
 
현재 워커 장군의 흔적은 그의 이름을 딴 서울 광진구에 있는 워커힐호텔과 ‘워커힐(워커의 언덕)’로 남아 있으며 이곳에 워커장군 기념비가 있다. 대구에는 ‘캠프 워커’라는 미군부대가 있다. 서울 도봉구에 전사지(戰死地)보존 표지석이 건립되었고 워커를 기리는 동상은 용산 미8군사령부에 세워져있다.
 
광진구에 있는 쉐라톤 워커힐 호텔은 1960년대 초 월튼 워커 장군의 이름을 딴 호텔로 미군 대상 위락시설로서 이곳에 워커를 기리는 기념비 및 동상도 세워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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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힐 호텔의 워커장군 추모 기념비 제막식1(출처:워커장군 추모기념사업회)
 
윌튼워커장군 동상제막1.jpg워커힐 호텔의 워커장군 추모 기념비 제막식2
 
1987년 10월5일, 워커힐 호텔에 워커장군 추모 기념비 제막식에는 장군의 외아들인 샘 심스 워커대장과 그의 부인, 정일권 국무총리, 강영훈 전총리, 유재흥 전 국방장관, 지갑종 유엔한국참전국협회장, 박정기 전 한전사장, 릴리 주한 미국대사 등과 김리진회장이 참석했다. 이들 참석자들은 모두 6.25 참전용사이거나 워커장군의 낙동강 방어전 전공을 잘 알고있는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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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라톤 워커힐에 세워져있는 워커장군추모기념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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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라톤 워커힐에 세워져있는 워커장군추모기념비 2

쉐라톤 워커힐 본관 정문 산자락에 세워진 비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있다.
 " 오늘 우리가 장군을 특별히 추모하는 것은 한국전쟁 초기 유엔군의 전면 철수를 주장했던 미국조야의 지배적인 분위기 속에서 유독 장군만이 홀로 한반도 고수를 주장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을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공산화를 방지하여 우리의 오늘을 가능케한 그 공덕을 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2013년 10월 2일 월튼 워커 기념비를 방문한 월튼 워커 2세와 샘 워커 2세..jpg
2013년 10월 2일 월튼 워커 기념비를 방문한 월튼 워커 2세와 샘 워커 2세
2013년 10월 2일, 서울 광진구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에 위치한 월튼 워커 기념비를 방문한 월튼 워커 2세와 샘 워커 2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함께 6.25전쟁에 참전하였던 월튼 워커의 손자이자 샘 워커의 아들들인데 조부와 부친처럼 직업 군인의 길을 걸었다. 그들은 조부와 부친의 참전을 가문의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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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세운 워커장군 전사지
워커장군 추모기념사업회는 2009년 12월3일, 워커장군 탄생일을 기념하여 전사지인 의정부 현장(현 서울시 도봉구 도봉1동 596-5)에 전사지(戰死地)보존 표지석을 건립했다. 표지석에는 6.25를 아는 사람들에게 가슴 뭉클한 글귀가 새겨있다.

“나는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한국을 끝까지 지킨다.”(I will stay here to protect korea until my death)

이말은 워커장군이 낙동강 전선을 사수하기 위해 ‘워커라인’을 설정한 후 유엔군과 한국군을 독려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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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6월 월튼 워커장군의 동상 제막식1
월튼 워커장군의 동상 제막식이 2010년 6월 23일 오전 서울 용산 미8군사령부에서 거행됐다. 행사는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미대사, 서진섭 한미동맹친선협회장, 이희원 대통령 안보특별보좌관, 정승조 제1군야전사령관 등 양국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특히 서진섭 한미동맹친선협회 회장과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는 축사를 통해 워커 장군의 희생정신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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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튼 워커장군의 동상 제막식2
 
동상 건립 추진에서 그 배경을 살펴보면  '한국전쟁의 영웅'이었고 한국과 국민사랑을 실천한 월튼 워커장군에게 한국 국민의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뜻으로 '한미동맹친선회' 주관으로 동상을 건립하고자 수년간 노력했으나 지난 정부에서의 정서상 추진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부산 유엔군묘지 부근으로 추진하다가 무산되고 다시 대구의 최초 미8군기지에 설치하고자 한 계획도 승인되지 않았다. 새 정부가 바뀌면서 다시 추진계획이 협의되다가 현재의 미8군사령부가 위치한 용산기지내에 건립하기로 최종 협의됨에 따라 그 착공식(2008.6)을 가졌으며 드디어 제막식(2010.6)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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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튼 워커장군의 동상
한미동맹친선협회가 제작한 워커 장군의 동상은 높이 3m, 폭 11m의 크기이며 미8군사령부 건물의 북서쪽 모퉁이 부분에 세워졌다. 2008년 6월 당시 조각가 강대철(33)씨가 만들었으며 건립비는 회원들의 성금 등으로 총 10억여원이 소요됐다. 이 동상은 용산에서 평택으로 미군기지를 옮기는 첫번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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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링턴국립묘지의 워커장군 묘비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국립묘지 34번 묘역. 비석번호 ‘34 86-A’. 6·25전쟁 때 미8군사령관을 지낸 월턴 워커 장군(1889∼1950·사진)의 비석이다. 가로 33㎝, 높이 61㎝로 작고 소박하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크고 웅장한 비석에 비해 초라하다. 맨아래 새겨진 ‘DSC’(수훈십자훈장·서열 2위의 육군훈장)와 같은 문자들이 장군의 위상을 짐작하게 할 뿐이다.

‘6·25전쟁 영웅’ 워커 장군의 묘소는 알링턴국립묘지 내에서도 외곽 쪽에 있다. 정문에서 걸어 남쪽으로 10분가량 가야 하는 곳이다. 일부러 찾지 않는 이상 들르기가 쉽지 않다. 

'Stand or die'란 발언으로 인해 본국 의회에서 논란을 일으켜서 한참 욕 먹어가면서도 한국을 꼭 지켜야 된다고 전쟁을 반쯤 포기한 상부와 사령관을 설득
​한 워커장군. 한국 장병에게는 내가 죽더라도 한국을 꼭 지켜줄 컷이라고 하면서 한편으론 미군 장병들한테 못 버틸 거 같으면 죽어버려라고 소리쳐가면서 한국을 지켜주었던 워커장군. 하늘에서 발전된 오늘의 한국을 본다면 그가 선택한 무한한 한국 사랑의 길이 옳았던 것임을 알고 기뻐하리라 생각된다.
​유엔평화기념관에서 워커장군에 대한 특별 인물기획전을 보면서 한국인 모두가 잊지않고 늘 감사해야 할 장군임을 다시금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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