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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평균 25세 젊은층이 봉기, 민생 파탄 낸 신정체제에 염증

이란 혁명 40년, 끝나지 않은 후폭풍
이란의 테헤란 대학 구내에서 지난달 30일 한 여학생이 최루탄 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반정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 5일 테헤란에서 친정부 시위대가 미국 성조기를 불태우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란의 테헤란 대학 구내에서 지난달 30일 한 여학생이 최루탄 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반정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 5일 테헤란에서 친정부 시위대가 미국 성조기를 불태우고 있다. [AP=연합뉴스]

산유국 이란의 80여개 도시에서 지난해 12월 28일부터 한 주 넘게 시위·소요 사태가 이어졌다. 외신들은 최소 21명이 숨지고 3700여 명이 군경과 정보기관 등 공권력에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이번 사태는 지난 2009년 당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석연치 않은’ 재선 직후 벌어졌던 대규모 시위 이후 최대 규모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 9일 “적어도 3명의 구금자가 에빈·카리작 등 테헤란 감옥에서 구금 중 사망했다”는 현지 인권운동가들의 말을 전했다. 이들 교도소에선 2009년에도 구금자들의 폭행·강간·피살 사건이 발생했다.
 
체제 측 입장은 너무도 다르다. 이슬람 시아파 율법학자 출신인 이란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와 하산 루하니 대통령은 사건 원인을 ‘외부 공작’ 탓으로 돌렸다. 루하니는 지난 9일 “이란이 계속 혼란스럽기를 바라는 ‘지역의 누군가’와 ‘시오니스트 체제’”라고 말했다. ‘지역의 누군가’는 사우디아라비아, ‘시오니스트 체제’는 미국과 이스라엘이다. 하메네이는 배후세력으로 파리에 본부가 있는 이란 반체제 조직 ‘무자헤딘에할크(MEK)’도 지목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이란인 망명자들이 지난 7일 혁명 이전 이란 국기를 들고 반정부 시위 지지집회를 열고 있다. [EPA=연합뉴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이란인 망명자들이 지난 7일 혁명 이전 이란 국기를 들고 반정부 시위 지지집회를 열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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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사태로 구금된 사람들의 평균 나이가 25세임을 볼 때 이번 사태는 젊은층이 변화를 요구하며 봉기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특히 시위가 루하니 대통령이 긴축 예산을 발표한 직후 시작됐다는 점은 예사롭지 않다. 시위는 애초 높은 실업률과 물가 폭등, 경기 침체 등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를 규탄하면서 시작됐지만 진압이 과격해지면서 최고지도자와 기득권을 쥔 종교세력, 신정 체제 비판으로 성격이 변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정체제는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의 유산이라는 점에서 이번 시위는 젊은 층이 ‘혁명체제 피로증’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란 당국은 시위가 진정됐다고 발표했지만 젊은 층이 체제 불만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불씨는 계속 남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이란 혁명의 과정과 성격을 알아보는 것은 시위 사태의 본질에 접근하는 지름길이다. 마침 지난 7일은 78년 이란 혁명이 시작된 지 40년이 되는 날이다. 77년 10월 소규모 시위로 시작했던 샤(이란 군주)의 폭정에 대한 항의 시위는 이날 대규모 시위로 전국적인 ‘시민 저항운동’으로 확산했다. 민주화와 종교 세력이 서로 손잡고 힘을 모으면서 시위는 더욱 확대됐다. 78년 8~12월 대규모 시위와 파업으로 전국이 마비됐다. 국민 분노는 군경의 진압으로 막을 수 없었다. 견디다 못한 이란의 마지막 샤인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는 79년 1월 16일 마침내 망명을 떠났다. 이로써 고대 페르시아 제국부터 2500년간 유지되던 이란 군주제는 사라졌다.
 
새로 들어선 이슬람공화국의 헌법이 명시한 권력체계는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것이었다. 민주선거로 뽑은 대통령과 국회의 통치를 이슬람 율법학자인 최고지도자와 헌법수호위원회가 감독하는 ‘신정 체제’다. 세속과 종교의 ‘하이브리드’ 체제다. 혁명을 주도했던 민주화 세력과 힘을 보탠 종교계가 타협한 결과다.
 
이란에서 반정부 시위는 일단 수그러들었지만, 원인인경제 불안과체제 불만이 여전해 언제라도 재연할 가능성이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란에서 반정부 시위는 일단 수그러들었지만, 원인인경제 불안과체제 불만이 여전해 언제라도 재연할 가능성이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란 국민은 혁명을 통해 ‘정의·평화·번영’을 꿈꿨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혁명 직후인 79년 11월 4일부터 81년 1월 20일까지 1년 2개월 이상 계속됐던 테헤란 미국대사관 점거·인질 사태는 이란과 서방과의 관계 약화로 이어졌다. 인질사태 와중에 시작된 이란-이라크 전쟁(80년 9월~88년 8월)으로 8년 동안 최다 추산 50만 명의 군인이 전사하고 40만 명이 부상했으며 1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숨졌다. 경제적 손실은 5610억 달러에 이른 것으로 추산된다. 혁명과 이런 희생은 이란의 정체성 형성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란을 가보면 거리와 모스크마다 지역 내 남녀 희생자의 사진들이 담긴 현수막이 걸린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희생자를 기리고 내부적인 단합을 꾀하고 현장이다. 이를 통해 이란에서 ‘혁명’은 ‘이슬람’보다 더욱 강렬한 단어로 자리 잡았다.
 
정치적 타협으로 종교 세력에 힘을 실어준 결과 이들의 요구에 맞춰 사회 전반에서 종교 통제가 이뤄졌다. 여성들은 집밖에 나설 때는 무조건 히잡을 쓰고 머리카락을 가려야 하며 몸매가 드러나는 옷도 금지됐다. 거리에선 종교경찰이 돌아다니며 이를 위반하는 사람을 경찰서로 강제 연행한다. 이란은 ‘감시와 처벌의 판옵티콘’ 같은 사회가 됐다.
 
이에 따라 사회적 스트레스 해소법이 은밀하게 확산했다. 이란은 겉으로는 엄숙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파티의 나라로 명성이 높다. 내부적으로는 집 문을 닫아걸고 남녀가 노출이 심한 옷으로 갈아입고 DJ를 불러 춤과 음악을 즐기는 심야 파티를 몰래 여는 게 일반적이다. 외부적으로는 휴가철이면 인근 터키의 지중해 관광지 안탈리아나 외국인에겐 알코올 음료를 파는 아랍에미리트(UAE)의 두바이 등 걸프 지역의 관대한 국가로 몰려가 파티를 여는 것으로 이름 높다. 이는 사회적인 불만을 개인적으로 해소하는 배출구였다.
 
이란 지도자

이란 지도자

문제는 유엔 제제로 이란이 경제난을 겪으면서 리알화 가치가 폭락하자 국민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해외여행이 갈수록 어려워졌다는 사실이다. 유엔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이란에 대해 2006년부터 경제 제재를 하다가 역사적인 ‘이란 핵합의’로 2016년 이를 중단했다. 핵합의로 이란인들은 경제가 나아지기를 기대했지만 이에 반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집권으로 불투명한 상황을 맞고 있다. 이처럼 이란 경제가 기대만큼 나아지지 않자 300만 명이 넘는 실업자들의 불만이 가중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기존 사회 체제에 대한 불만을 품기 시작했다. 특히 ‘혁명과 종교 낙하산’들이 이권과 일자리의 노른자위를 독점하는 상황에 대해 혁명 이후 태어난 신세대인 젊은 층의 체제 불만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2009년 대선에 불만을 품은 젊은이들은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며 ‘부정선거’라고 항의했다. 이들은 그해 11월 옛 미 대사관 앞에서 열린 미 대사관 점거인질사건 기념행사에서 ‘미국에게 죽음을’이라는 전통적인 구호를 외치는 사이에서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여성들에게 시대착오적인 복장을 강요하면서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있는 신정 체제의 모순에 항의한 셈이다.
 
이란은 어떤 나라

이란은 어떤 나라

지난해 12월 28일부터 이란에서 전국적인 시위가 벌어진 것도 이러한 이유가 가장 큰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젊은이들은 이란 정부가 국민의 살림살이를 돌보는 대신 혁명 이념과 이슬람 시아파의 패권을 위해 해외 분쟁에 개입해 매년 수십억 달러를 펑펑 쓰는 현실에도 불만을 터뜨렸다. 이란은 이슬람 시아파가 수니파와 싸우는 시리아 내전, 예멘 내전에 군사적으로 개입해 무기와 탄약은 물론 병력까지 공급하고 있다. 여기에 드는 자금은 천문학적 규모로 추산된다.
 
이란 정부의 이런 활동은 넓은 의미에서 ‘이슬람 혁명’의 수출 기도로 볼 수 있다. 이란은 군주제를 몰아낸 이슬람 혁명 이후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이를 지역의 다른 나라에 수출하려고 애써왔다. 이를 통해 혁명을 더욱 공고화하고 지역 패권국가로 자리 잡으려는 의도도 있다. 이란의 이슬람 정부는 지정학적으로, 역사적으로, 이슬람 종파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숙적으로 여겨왔다. 군주제 국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실은 이란식 이슬람 혁명의 확산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 UAE·쿠웨이트·바레인 등의 왕실과 손잡고 이란에 대항해왔다. 이란이 중동패권을 계속 추구하려면 계속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럴 수록 국민의 불만은 당연히 커지게 된다. 이란의 신정 체제가 혁명수출을 통한 패권추구와 국민의 삶의 질 향상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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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1.13 00:47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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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으로] 우리가 양반다리로 밥 먹는 이유는? 밥상으로 돌아본 한국의 지난 100년

    왜 한국인은 이렇게 먹을까

    왜 한국인은 이렇게 먹을까

    왜 한국인은
    이렇게 먹을까
    주영하 지음
    휴머니스트
     
    한국인은 끼니 때가 되면 으레 방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는다. 이윽고 시킨 음식이 나온다. 반찬은 대부분 ‘도자기 유사품’인 멜라민 식기에 담겨 나오지만 밥그릇 재료는 대개 스테인리스다. 우리는 이를 모두 한 자리에 동시에 올려놓고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먹는다. 밥과 국을 제외한 반찬은 공유하는 게 원칙이다. 현재 한국에서 한국인이 식사하는 방식의 평균적인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런 식사법은 언제 어떻게 왜 형성되고 자리 잡았을까?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민속학 담당교수이자 음식문화학자인 지은이는 현재 우리의 먹는 방식의 상징성과 역사성에 주목한다. 지은이는 현재 우리의 식사법은 지난 100년간 급속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변화를 겪은 사회사를 반영한다고 지적한다.
     
    예로 신발을 벗고 방에 들어온 뒤 자리에 앉아 식사하는 방식은 조선의 주거 공간에 영향을 받았다. 1550년 ‘호조낭관계회도’라는 그림을 보면 관리들이 신발을 벗고 실내에 앉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은이는 실내에서 신발을 벗고 지내는 풍습이 조선 가옥의 특성에서 기인한다고 해석한다. 조선 시대 가옥은 두 채 이상의 건물이 모서리 부분에서 직각으로 연결된 꺾음집이 대부분이어서 방과 방, 방과 마루 사이를 쉽사리 오갈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일단 한번 실내에 들어오면 계속 신발을 벗은 채 다른 공간으로 옮겨 다닐 수 있었다.
     
    반면 의자에 앉아서 식사하는 서유럽과 중국에서는 신발을 신고 방에 들어와 생활하고 식사하는 풍습이 정착했다. 특히 중국에서는 명나라 이후 한족 사이에서 독립된 일자형 건물 네 채가 중앙에 마당을 두고 ‘ㅁ’자 형태로 연결된 사합원이란 주택이 일반화했다. 이런 형태의 가옥에서는 다른 방이나 건물로 이동할 때는 신발을 신어야 했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언제부터 한 상에 여럿이 먹기 시작했을까? 조선조에선 바닥에 앉아 식사하다 보니 통영반·해주반·나주반 같은 소반에 독상을 차려 먹는 식사방식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당시 풍속화를 보면 밥과 국, 반찬이 놓인 소반을 한명씩 받아 식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다 개화기 이후 둘이 먹는 겸상, 여럿이 먹는 두레상이 확산하기 시작했다. 노비제 철폐, 일본식 교자상의 유행 등 다양한 사회변화가 원인으로 작용했다. 한국사회 변천사도 함께 파고든다. 역사적 근거를 일일이 찾아 문화적인 분석을 가하는 방식이 집요하다. 결국 식사방식은 생활양식의 반영임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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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1.13 00:02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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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유 깔고 앉은 이란 1인당 GDP가 5000달러도 안되는 이유

    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지난달 28일부터 전국적으로 시위가 벌어지자 소강상태를 맞고 있는 이란. 세계적인 산유국에서 왜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일까?
    이란의 상황을 데이터로 살펴보자.
    지난 2016년 2월 이란의 쿰에서 열린 총선 투표장에 나온 여성들이 신분증명서를 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2016년 2월 이란의 쿰에서 열린 총선 투표장에 나온 여성들이 신분증명서를 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란은 국토 면적은 164만 8195㎢로 세계 17위에 해당한다. 한반도의 6.5배에 이르는 넓은 국토다. 인구는 2018년 1월 기준으로 8111만 명이다. 세계 18위의 규모다. 페르시아 만(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 국가들은 아라비아 만으로 부름) 연안 국가 가운데 가장 많다. 덩치가 꽤 있는 나라다. 
    이란 곳곳에서 볼 수있는 순교자 사진 현수막. 이슬람 혁며과 이란-이라크전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해당 지역이나 모스크에서 추모하고 기리며 영웅시하는 현수막이다.

    이란 곳곳에서 볼 수있는 순교자 사진 현수막. 이슬람 혁며과 이란-이라크전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해당 지역이나 모스크에서 추모하고 기리며 영웅시하는 현수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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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너지 자원 매장량은 그야말로 천문학적이다. 원유 확인매장량은 세계 3위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2016년 통계 기준으로 1572억 배럴에 이른다. OPEC 회원국 전체의 12.9%를 차지한다. 가스 확인매장량은 세계 2위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월드팩트북 2016년 기준으로 34조200억㎥에 달한다. 
     
    이란군이 훈령 중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이란은 중동의 미사일 강국이다.[AP=연합뉴스]

    이란군이 훈령 중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이란은 중동의 미사일 강국이다.[AP=연합뉴스]

    하지만 국내총생산(GDP)은 국제통화기금(IMF)의 명목 금액 기준으로 3767억 5500만 달러다. 세계 29위밖에 되지 않는다. 1인당 GDP는 4683달러로 세계 96위다. 석유를 깔고 앉고서도 가난한 나라라는 이야기다. 
    이란 수도 테헤란이 굽어보이는 언덕 위에 이란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과거 군주제 시절 국기에서 군주를 상징하는 사자를 빼고 대신 아랍-페르시아 문자로 '알라'라는 글씨를 꽃봉오리처럼 디자인했다.

    이란 수도 테헤란이 굽어보이는 언덕 위에 이란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과거 군주제 시절 국기에서 군주를 상징하는 사자를 빼고 대신 아랍-페르시아 문자로 '알라'라는 글씨를 꽃봉오리처럼 디자인했다.

     
    요약하자면 이란은 확인매장량 기준 원유 세계 3위, 천연가스 세계 2위의 자원 대국이지만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29위, 1인당 GDP는 4683달러로 세계 96위 수준이다. 석유와 가스가 넘치는데 국민은 가난하다는 이야기다. 정부의 무능한 정책이 한몫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1979년 이란의 이스람 혁명을 상징하는 장소인 수도 테헤란의 아자디(자유) 타워. 혁명 당시 수많은 시위대가 모였던 장소였다.

    1979년 이란의 이스람 혁명을 상징하는 장소인 수도 테헤란의 아자디(자유) 타워. 혁명 당시 수많은 시위대가 모였던 장소였다.

     
    경제성장률을 보면 2015년 ?1.8%였다가 2016년 6.4%로 좋아졌다. 하지만 2017년에는 다시 4.0%로 떨어졌고 2018년 전망치도 4.1% 정도다. 경기 침체에 따른 고통은 고스란히 새로 일자리 시장에 나온 젊은이들이 지고 있다. 실업률은 2016년 12.7%나 된다. 구직자가 330만 명을 넘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물가상승률은 2016년 기준 6.8%에 이른다. 국민이 생활고를 호소할 수밖에 없다.
    이란의 과거 영광을 상징하는 페르세폴리스. 아케메네스 제국의 종교 및 의전 수도였다. 이슬람혁명 후의 이란도 이 같은 패권국가가 되는 꿈을 꾸고 있다. 시리아 내전, 예멘 내전 등에 개입하며 숙적 사우디에 끝없이 맞서고 있다. 여기에는 매년 수십억~수백억 달러의 돈이 들어간다.

    이란의 과거 영광을 상징하는 페르세폴리스. 아케메네스 제국의 종교 및 의전 수도였다. 이슬람혁명 후의 이란도 이 같은 패권국가가 되는 꿈을 꾸고 있다. 시리아 내전, 예멘 내전 등에 개입하며 숙적 사우디에 끝없이 맞서고 있다. 여기에는 매년 수십억~수백억 달러의 돈이 들어간다.

    더욱 놀라운 점은 '기업 하기 좋은 국가 순위'에서 이란이 세계 120위에 올라 있다는 사실이다. 한 마디로 기업을 경영하기 지극히 어렵다는 이야기다. 인허가 과정 등에서 부정과 비효율이 판친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관료주의와 비효율성, 종교계 특권이 더해져 이란 경제에 활력소를 불어넣을 기업 활동이 위축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란의 어뢰. [AP=연합뉴스]

    이란의 어뢰. [AP=연합뉴스]

     
    이란은 중동 지역에서 그나마 제조업이 발달한 나라다. 산업구조를 보면 2016년 기준 농업 9.1%, 제조업 39.9%, 서비스업 51%로 이뤄졌다. 이 정도 구성비면 상당한 생산력이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교역 내용을 보면 이를 파악할 수 있다. 2016년 기준 이란의 수출은 875억 달러에 이른다. 중국 22.2%, 인도 9.9%, 터키 8.4%, 일본 4.5%의 비율로 수출했다. 품목은 석유가 80%지만 석유화학은 물론 자동차(6만 대 정도)도 상당히 수출 효자다. 나머지는 전통의 상품인 과일과 견과류, 양탄자가 차지한다. 
     
     
    수입은 621억 달러에 이른다. 특이한 것은 구성이 아랍에미리트(UAE) 39.6%, 중국 21.4%, 한국 4.7%, 터키 4.6% 순이라는 사실이다. UAE는 중계 무역이 대부분이므로 이란의 수입선에서 한국은 중국 다음의 2위라는 이야기다. 수입 구성을 보면 산업용 중간재(46%), 생산재(35%), 소비재(19%)로 이뤄졌다. 석유와 가스는 물론 연간 100만~160만 대를 생산하는 자동차 산업도 있고 튼튼한 농업도 있는 등 이란은 잘만 운영하면 국민이 윤택하기 살기에 충분한 바탕이 있다. 
     
    이번 시위 과정에서 대학생들은 이란의 최대 문제로 정부가 패권경쟁에 천문학적 자금을 쓰는 동안 국민의 삶은 초라해졌다는 사실을 꼬집었다. 이란 정부는 1979년 이슬람 혁명을 중동 각지에 수출해 군주제를 타파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군주제 국가들도 그리 만만치 않다. 충돌이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이란은 매년 수십~수백억 달러를 들여 시리아 내전, 예멘 내전 등에서 숙적 사우디아라비아와 맞붙어왔다. 시위대의 요구는 이런 '이데올로기적인' 전쟁에 돈을 쓰지 말고 국민이 먹고 사는 문제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란의 최고지도자인 알리 하메네이. [AP=연합뉴스]

    이란의 최고지도자인 알리 하메네이. [AP=연합뉴스]

     
    하지만 이란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미국 등이 개입해 시위 사태가 벌어졌다는 상투적인 선전에 나서고 있다. 미봉책과 선전술로 사태의 본질을 덮으려 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민의 삶을 국가 아젠다 우선순위에 놓고 경제를 대대적으로 개혁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젊은이들은 일자리 부족과 종교인 특권, 그리고 내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국민의 삶보다 혁명 수출을 앞세우는 ‘비실용적 상황’에 분노한다. 청년 분노조절에 이란 미래가 달렸다고 할 수 있다. 40년 전 벌어진 이슬람 혁명도 이러한 ‘생활의 불만’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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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1.12 19:23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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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세안·인도와 윈윈하려면 … 한류 일방 진출보다 파트너 돼야

    신시장, 남쪽으로 가자 <하> 상생 교류 
    지난해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식품박람회인 ‘코엑스 푸드 위크 2017’에서 전통 의상을 입은 모델들이 아세안 10국의 식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식품박람회인 ‘코엑스 푸드 위크 2017’에서 전통 의상을 입은 모델들이 아세안 10국의 식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경제와 외교에서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한국이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를 비롯한 이른바 ‘남방’ 국가들과 국제협력을 확대하는 일은 만만치 않은 도전이다. 우선 거액 투자를 앞세운 중국·일본이나 글로벌 헤게모니 국가인 미국 등과 경쟁하기부터 버겁다. 사회적 인프라 건설을 열망하는 동남아 국가들로선 대규모 투자와 지원을 선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를 극복하려면 대규모 협력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한국형 국제협력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충고한다. 서로 협력해 현지 사정을 고려한 맞춤형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월드뱅크(WB) 등 국제기구의 자금을 끌어들이는 방식이다.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은 중·일과 달리 동남아와 역사적 앙금이 없어 동남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과 점령의 과거사 문제가 있는 일본보다 유리한 입장인 측면도 있다”며 “한국이 필요할 때만 손을 내미는 존재가 아닌 지속해서 협력하는 파트너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동남아와 인도 등과 4차 산업혁명을 활용한 미래형 첨단산업 개발협력도 가능하다고 진단한다. 한국은 이미 국제적으로 IT(정보기술) 강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를 활용해 다른 국가와 협력해 전자 상거래, 스마트 공장 등의 분야를 함께 개척할 수도 있다. 훌륭한 공과대학이 있는 싱가포르·인도 등은 좋은 상호 협력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김영선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은 “특히 동남아와는 일방적인 상품·한류 시장 확대가 아닌 상호 이익과 존중에 기반을 둔 상생 관계 형성이 필요하다”라며 "그래야 지속적인 상호 발전이 가능해진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도전 과제는 한국과 사뭇 다른 동남아와 남아시아의 역사와 전통, 제도와 문화다. 지역 내부에서도 국가별로 서로 규범과 지향점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좋게 말하면 다양성이지만 우리 입장에선 기준이 제각각이고 시기별로도 혼란스럽다. 특히 이들 지역의 경영 환경은 글로벌 스탠더드와도 사뭇 판이하다.
     
    인도 동부 오디샤주에 120억 달러(약 13조원)를 투자해 인도산 철광석을 원료로 열연강판 등을 만드는 제철소 건립 계획이 10년 넘게 지지부진한 것도 이와 관련이 크다. 중앙정부는 투자를 환영했지만, 이주비용과 환경 훼손 등을 빌미 삼은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들의 반대로 제철소 건설은 오랫동안 난항을 겪고 있다. 개발이나 성장보다 지역 주민의 불만에 더욱 신경을 쓰는 현지 특성에 대한 보다 정밀한 연구와 국가차원의 대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부산외국어대 김홍구 태국어과 교수는 "해외 투자 시 가장 우선하여 검토해야 할 것 중 하나는 한국 상황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파악하고 현지 눈높이에 맞추는 것이다”라며 "이를 위해서는 현지 상황을 면밀히 조사해 검토하고 시행착오를 줄이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가장 좋은 방법은 서로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상호 협력 전략을 제시하고 설득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국가별로 서로 다른 이들 지역의 법률과 관례 등을 정부 차원에서 연구하고 정보를 비축해 현지 국제협력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미얀마포스코의 고금만 법인장은 "이곳은 정확한 통계 확보가 어렵고, 정부 인허가 등이 예측 불가능한 점 때문에 사업이 쉽지 않다”라고 토로했다. 행정과 법률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도 많다 보니 사업절차가 미뤄지는 경우도 다반사라는 설명이다. 따라서 정부 차원에서 현지를 연구하고 정보망과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해 국제협력 사업을 펼치는 민간단체나 기업을 지원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현지인과 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은 기본이다. 베트남에서 골프장갑을 생산하는 ‘하동’의 허호석 부사장은 "베트남은 인간관계를 중시하기 때문에 우선 사업 파트너와 신뢰를 쌓고 장기적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가장 경계할 점은 경제력이 있다고 다른 문화를 깔보는 거만한 태도이며, 가장 신경 쓸 점은 직원들과의 밀접한 스킨십”이라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삼성의 베트남에서의 ‘현지 협력’ 중심의 사업 방식이 눈길을 끌고 있다. 삼성전자는 베트남을 스마트폰·가전제품 생산기지로 삼으면서 현지 기업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부품공급망(서플라이 체인)을 구축해 동반성장 전략을 펼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베트남 협력사는 200여 개로 전체 글로벌 협력사의 5% 수준인데 이들이 현지 생산 제품에 들어가는 부품의 50% 이상을 공급한다.
     
    외교부 당국자는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이 추구하는 ‘사람 중심, 사람 지향’ 이념은 한국 정부의 국정철학과 궤를 함께한다”며 "인적 협력 중심의 한국형 국제협력 모델을 개발해 접근하면 환영과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취재팀=채인택 국제전문기자, 최익재·강혜란·손해용·박유미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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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1.08 01:0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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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도 동남아 눈독 … 방콕까지 고속도로 추진

    신시장, 남쪽으로 가자 <하> 상생 교류 
    동남아는 중국도 눈독을 들인다. ‘일대일로’ 사업의 일환인 초대형 인프라 사업을 앞세워 접근 중이다. 중국 남부 윈난(雲南) 성 쿤밍(昆明)에서 각각 베트남 북부 하이퐁과 태국 수도 방콕까지 잇는 고속도로 건설이 대표적이다. 쿤밍에서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과 방콕을 거쳐 남단의 싱가포르까지 연결되는 종단철도 건설도 추진한다. 중화경제권의 동남아 확장은 시간문제다.
     
    인도차이나 반도를 동서로 가로질러 베트남의 다낭·호찌민 항구에서 미얀마의 다웨이·몰라먀잉 항구를 연결하는 고속도로와 쿤밍-미얀마 원유 파이프라인 건설도 계획 중이다.
     
    문제는 중국이 남중국해에 해상기지를 건설하고 해상영유권을 주장하는 데 대해 베트남·필리핀·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은 반발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일부 내륙국은 원조·경제협력·인프라 제안 때문에 중국에 기울고 있다.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이 아세안에 대한 교류 강화 정책을 펼 때 중국·일본과 경쟁한다는 의식을 버리고 한국형 국제협력 모델을 개발해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다”라고 충고했다.
     
    ◆ 취재팀=채인택 국제전문기자, 최익재·강혜란·손해용·박유미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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