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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감에서 출발하는 삶의 기반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안정감, 지혜, 방침(방향), 역량이 구비돼야 한다. 지혜는 지식의 습득에서 나오고, 방침은 판단력에서 나오고, 역량은 노력에서 얻을 수 있다그중 가장 중요한 기반인 안정감이 무너지면 다른 요소들은 아무것도 이룰 수 없게 된다. 특히 어린 시절에는 안정감이 제일 중요한 삶의 요소다.

영유아시절은 절대의존시대에 살고 있다. 언제든지 부모의 버팀목이 받쳐주어 집 안에서나 집밖에서 불안정한 걱정을 하지 않고 생활할 수 있어야 정서적 안정과 긍정적인 힘을 길러줄 수 있다.

정서적 믿음, 정직성, 인내성, 독립성, 자기 정체성, 리더로서의 자질 등등 삶에 꼭 필요한 요소를 연마하기 위한 튼튼한 기반을 잡아주는 데는 안정감 꼭 필요하다. 자녀들은 안정감을 기반으로 이해력, 판단력, 분별력의 지혜를 얻게 되고, 의사결정과 행동을 다스리는 기본원칙에 따라 정직하게 행동하는 능력과 자질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함축해 말한다면 안정감은 믿음을 낳고, 믿음은 지혜를 낳고, 지혜는 명확한 방침과 역량의 촉매가 된다.’ 이러한 삶의 요소인 안정감, 지혜, 방침(방향), 역량이 조화와 균형을 형성하여 활성화될 때 좋은 성격, 균형 잡힌 성품, 성실한 인품을 만드는 훌륭한 도구가 된다.

아이들을 기르는 부모를 비롯한 후견인은 자신이 언제나 정서적으로 늘 안정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도움을 주어 삶의 기반을 든든하게 다지는 버팀목이 되어 주어야 한다. 불안하고 화난 얼굴로 자녀들을 대한다면 정서적 불안을 안겨주게 된다.

영삼이 시절 안정감을 해결하지 못하면 공격성이 길러진다. 생존을 위한 안정성의 결려는 곧 자기방어를 위한 수단으로 작용해 공격성을 찾게 된다. 그뿐 아니라 적극성이 결려되고 자신감이 줄어든다. 따라서 명랑하고 쾌활한 성품을 기르기 어렵다.

따라서 영삼이 시절 안정감은 절대적이다. 그러한 안정감을 보장해줄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 부모다. 적어도 3 세가 되기까지는 부모가 직접 돌봐주는 육아기간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안정성을 보장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어머니가 정신적 질병을 앓고 있다면 격리해서 보육원에 보내는 것이 오히려 좋겠지만 아무리 보육시설이 잘되 있어도 자녀들에 대한 모성애의 민감성을 누구도 대신할 수는 없다.

자녀들의 불안한 상태를 따뜻하고 민감하게 반응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어머니를 대신해 더 훌륭히 해낼 수는 없다. 비록 어머니의 사회활동이 개인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커다란 보탬이 될 수 있을 지라도 자녀를 생산했다면 적어도 영삼이 시절까지는 자녀와 함께할 수 있는 사회적 보장이 필요하다.

자녀들이 자라 반사회적 행동으로 발전하는 것을 예방하는 것은 먼 장래 국가전체의 유익한 배려다. 스웨덴이나 독일과 같은 나라는 사회민주주의가 발달하여 육아휴직을 3년으로 했으며 그 후 부모의 복직을 보장하고 있다.

90년대 들어와 연구결과에 의하면 영삼이 시절 아동발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는 어머니의 사랑과 흥미다. 특히 사랑을 듬뿍 받고 어린 시절을 보내야 자존감이 커진다. 사랑이란 의미는 아껴주는 행위를 말한다. 어느 누가 어머니보다 큰 사랑을 아이들에게 전할 수 있겠는가?

부모는 경제적으로 절대적 빈곤만 해결될 수 있다면 먼저 자녀를 양육할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가 생존을 위한 삶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부()가 창출되어야 하지만 그 보다 자녀들의 장래에 대한 배려가 앞서야 한다.

바람직한 삶이 부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교육수준, 사회적 신분, 자녀들의 장래를 책임질 일이 더욱 중요하다. 때문에 국가나 사회가 3 세 이하의 자녀를 둔 부모들이 잘 보살펴줄 수 있도록 제도화 되어야 한다.

다시 반복하지만 자녀들의 정서적 발달은 영삼이 시절 익숙해진 감성발달의 영향을 일생동안 가장 많이 받게 된다는 사실이다. 영삼이 시절 안정되고, 감성적 발달의 탄력성이 뛰어나게 자란다면 일생동안 행복해질 수 있는 조건을 구비한 것이다.

3 세 이하의 영유아들이 보육시설에 꼭 보내져야 된다는 정책은 잘못된 정책이다. 어쩔 수 없어 보육원이나 어린이집에 보내지는 것은 불가항력이지만 그만큼 가정생활에서 자녀에게 많은 정서적 안정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국가나 사회에서 자녀가 3 세 이전에는 부모 자신이 돌볼 수 있는 정책수립이 어떤 보육정책보다 우선해야함을 모두가 인식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이 영유아를 어린이 집에 보내어 나라에서 주는 경제적 혜택을 받고 있는데 나만 빠지면 크게 손해 보는 듯한 생각을 한다면 크게 잘못이다.

자녀들의 장래를 생각해서 되도록 어머니가 어린 시절 양육해야 한다. 지금처럼 탁아개념의 복지제도는 지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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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아 주어야 한다.

과거 동양과 서양에서 교육의 목표가 좀 달랐다. 동양은 석가모니, 예수, 마호메트, 공자 등의 성인(聖人)들에게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전인적(全人的)인 군자(君子) , 학식이 높고 덕행이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서양의 교육목적은 어떻게 다른가? 과거 서양에서는 위대한 성직자가 되기를 원했다.

오늘날 동서양을 불문하고 우선 훌륭한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참된 사람이 되어야하다.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고조선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 정신으로 시민사회에 동참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교육을 지향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무엇보다도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물질적 해결을 너무 강조하다보니 부자(富者)가 되길 바라는 쪽으로 교육의 쏠림현상이 심화돼 간다. 물론 식(), (), ()에 대한 절대적 빈곤이 해결돼야 하지만 이러한 물질적 질의 향상을 추구하는 문화적 발달이 삶의 전부인양 착각한다. 어떻게 보면 인간성의 상실이다.

물론 생존을 위해 최소한 식(). (), ()가 해결되어야 한다. 이것이 해결되지 못하는 가난이 찾아오면 불행을 몰고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 , 주에 대한 물질적 문화발달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정신적 발달을 빼놓고 진정한 삶의 문화라고 할 수는 없다.

오늘날 생존을 위한 삶이 어려워지면서 교육 또한 경제적 부를 제일먼저 추구하는 쪽으로 치우는 경향이 있다. 물론 생존의 토대위에 정신적 삶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 생존적인 물질문화만을 높이기 위한 삶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부자가 되기 위한 노력만을 경주하다가 인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삶의 허무함을 느껴서는 안 된다. 인간은 생존을 위한 삶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정신적인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잊기 쉽다.

, , 주의 절대적 빈곤이 해결 됐다면 정신적으로 참된 삶을 최고의 목표로 살아야 한다. 정신적 깨달음을 얻고 괴로움과 속박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법륜스님은 아주 쉽게 설명하시고 있다.

캄캄한 밤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 불을 밝히는 순간 모든 것이 한눈에 환하게 들어오는 현상을 깨달음과 같다.”고 설명하시고 있다. 200여 년 전 벤자민 프랭클린은 부유함이란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 현실에서 정신적으로 풍요로움과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돈을 많이 갖는데 집착하고 혈안이 될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진 번뇌와 망상을 벗어나 최대한 즐기고 그때그때 만족감을 찾고 느낄 수 있어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요즈음 흔히 버킷리스트(bucket list)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일생동안 자기가 해보고 싶은 것을 작성해보고 실천해 보는 것이 후회 없는 삶이라고 말한다. 왜 이런 버킷리스트가 필요함을 인식했을까? 자기가 원하는 내적인 삶을 살아온 것이 아니라 늘 주변 환경에 떠밀려 외적인 삶을 살고 자기의 참다운 인생을 찾지 못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 현상이다.

2008년 미국의 신용경색의 여파로 세계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독일의 5대 보호에 들던 갑부가 경제적 고통을 참지 못하고 자살해 세상의 화재가 됐다.

여러 번 이야기 하지만 부()란 그 시대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남보다 많이 가지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어야 그 시대에 풍요로움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상대적으로 국민소득의 평균치보다 많이 가지고 산다면 부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의 끝없는 욕심으로 부자가 되기 위한 금전적 노예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교육이 자녀들에게 필요하다. 돈이란 어느 정도 부지런히 노력한다면 모을 수도 있다. 그러나 큰 부자가 된다는 것은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예부터 부자는 하늘이 내린다고 했다.

유럽식 자본주의, 합리주의, 성과주의에 집착하고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남을 믿고, 배려하고, 보살피고, 도우며 노력(경영)하는 삶을 산다면 어느 정도 돈은 부차적으로 자연히 따라온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 반대방향으로 이끌리고 있다.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괴로움을 느끼면 더 비탄한 삶에 빠지기 쉽다.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어 많은 부를 축적했더라도 만족하지 못하고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면서 새로운 괴로움이 시작된다.

생존을 위한 삶이 차후에는 괴로움으로 바뀌기 때문에 삶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석가모니께서도 말씀하셨다. 너무 부에 전념하여 괴로움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해소하고 수용한다면 더 이상 삶이 고통만을 주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생존을 위한 물질적 삶과 정신적 삶이 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부단한 노력과 인내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정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자녀들에게 용기와 지혜를 얻도록 훈련하여 정신적 성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재능과 역량을 길러낼 수 있도록 도전적 정신을 부단히 길러야 한다.

정신적, 영적 성장의 삶이 생존을 위한 물질적 삶보다 앞서갈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생존을 위한 물질적 삶이 정신적, 영적 성장의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물질적 생존의 삶이 우선임을 잊지 말아야 하지만 그 속에 너무 깊이 빠져 헤어나지 못한다면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생존을 위한 물질적 어려움을 두려워 회피하지 말고 당당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회피하고 쉬운 길을 찾다가 오히려 더 어려운 지경에 이른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살아야하는지 진정한 삶의 의미를 잠시라도 회피해 보려고 술, 마약 등 약물을 통해 일시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에 빠지면 헤어날 수 없다.

자기가 존재하는 본질적 이유를 잃는다는 것은 인생의 본질이 훼손되는 것과 같다. 본인의 정체성은 자신을 둘러싼 가정, 사회, 크게는 국가의 문화적 배경과의 관계 속에 존재한다. 이를 부정하게 되면 삶의 의미와 그에 따른 삶의 열정이 계속될 수 없다. 그것은 절망이다. 내일이 없다는 삶은 퇴폐적 나락으로 굴러 떨러져 가게 한다. 삶을 포기한 상태가 되고 만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어른들은 책임감을 갖고 어린 시절부터 물질적 성장에 필요한 쪽으로 너무 치우치지 말고 정신적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재능과 역량을 습득시켜야 한다.

그 좋은 방법으로 정신과 의사였던 스캇 펙(Scott peck)은 다음과 같은 4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즐거운 일을 뒤로 미루고 먼저 하기 싫은 것부터 먼저 해결하는 습관을 갖는다.

둘째, 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책임진다.

셋째, 진실 된 정신적 삶에 더 헌신한다.

넷째, 삶의 목적, 의무, 책임, 방향 등에서 유연성과 결단성이 융합된 균형감각을 훈련으로 연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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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에서 생기는 소통과 화합

더불어 사는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기 위해서는 항시 남과 소통과 화합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가정이나 회사에서 생활하며 서로의 의견일치를 보아야 할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의사소통이 잘 안되어 교육이나 업무가 침체되거나 잘못 굴러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의사소통과 화합이 원활할 수 있을까?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기술 자체를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서로가 소통과 화합의 기회를 갖기 위해 믿고 상호협력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져야 한다.

어떤 조직에서 새로운 상황이 발생했지만 시간이 없다고 스마트폰을 통해 주고받기만하고 서로의 만남을 생략하여서는 신뢰가 쌓이지 않는다. 어떤 일을 추진하게 되면서 자주 만남의 기회를 만들지 못하면 믿음이 견고하지 못하여 상호협력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경우가 생겨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수도 있다.

우리가 서로 만나서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고, 상대를 존중해서 신뢰가 쌓일 때만 소통과 화합이 충분해질 수 있다. 한마디로 서로가 만남으로서 믿음이 쌓여 신뢰할 때만 소통과 화합이 가능하다. 우리는 서로 자주 만남에서 상대를 더 잘 이해하고 의사소통이 잘 될 수 있다. 그래야 명확한 관계를 이끌어낼 수 있다.

때로는 상대를 깜짝 놀라게 해서 즐거움을 맞보는 경우도 좋지만 교육이나 업무에서는 깜짝 놀라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깜짝 놀랄 일이 발생했다는 것은 상대방이 모르는 사이에 좋은 결과나 나쁜 결과가 얻어지는 상황인데 좋은 결과보다 나쁜 결과로 나타날 가능성이 더 크다.

한번 잘못된 결과를 새롭게 수정하거나 고친다는 것은 많은 희생, 기회비용, 노력이 있어야 한다. 방향과 힘(역량)을 잘못 잡아 한번 날아간 화살의 궤적을 수정하기란 불가능하다.

일예로 방송 프로그램 중 규모가 큰 드라마 등을 제작할 때 각 스텝이 맡고 있는 준비상황이나 과정에서 상호간 연결된 흐름을 서로 잘 알고 있어야 시간과 비용이 절약된다.

스텝 각자가 맡은 일들이 있지만 서로 연관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 곳이 잘못되면 다른 곳까지 그 영향이 미쳐 방송 시간이나 날짜 이내에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없는 상황에 쫓길 수도 있다.

허둥대다 프로그램의 절정(climax)과 종결을 완벽하게 처리 못해 의도했던 내용을 시청자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 태산을 쌓으려면 마지막 한 삼태기의 흙이 필요한 것과 같다. 우리는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정직함이 꼭 필요하다. 솔직히 사실을 알려야 새로운 대비책을 준비할 수 있다. 서로가 현재의 진행상황을 잘못 알아 깜짝 놀랄 일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 원활한 소통과 화합의 최상이다.

늘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자녀를 대할 때도 너는 배고프니? 나는 배고프지 않다.” “너는 OO가 좋으니? 나는 OO가 좋지 않다등 다른 사람이 내 마음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늘 인식시켜 주어야 한다.

내가 아닌 상대의 상태에 관심을 많이 갖도록 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면 상대방의 상태를 아무 것도 알아낼 수 없어 친구가 될 수 없다.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 수 없다면 다른 사람도 자기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

관심을 갖고 인내하고, 솔직하고, 이해하며, 공감적인 경청으로 상대에게 좋은 감정계좌의 잔고를 높여줄 수 있다.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자신에 대한 상대방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하지만 상대방을 잘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실패하게 된다.

아이들이 영유아시절을 벗어나 독립단계로 넘어가면서 자녀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놀이를 찾아 놀게 된다. 물론 부모가 만들어준 환경범위 내에서 일어나는 행동이지만 독립적으로 행동할 때가 있는데 부모가 자녀의 마음을 읽어주지 못하고 다른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자녀들은 자동차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싶어 하는데 책을 읽어 주겠다고 다가 슨다면 자녀들과 의견이 합치되지 않아 책 읽어주기는 흥미를 잃어 실패한다. 자동차 놀이에 부모가 동조하면서 감정을 다스려 주어야 나중에 책읽기에도 동조하게 될 수 있다.

아무리 자기의 자식이라도 본인의 의사를 무시하는 행동은 신뢰를 잃게 하고 부모자식 간의 끈이 약해지거나 끊어져 소원하게 된다. 늘 감정계좌가 플러스 상태로 유지될 때 신뢰가 쌓이고 지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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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림 되는 부모의 자녀 양육법

우리는 부()와 빈곤(貧困)이 자녀들에게 대물림 된다는 데는 관심이 많지만 부모의 양육방법이 자녀들에게 대물림 된다는 것을 잘 모르는 부모가 많다. 어려서 자신의 부모가 어떻게 보여주고 대해주었는지 모든 행동이 잠재해 있다가 자식을 낳고 기를 때 부모의 양육방법이 그대로 작용된다는 것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어린 시절에 좋았던 것과 좋지 못했던 것들을 구분해 상기하고, 자기 자녀를 기르는데 타산지석으로 삼게 된다. 그래서 지금 자신이 자녀에게 행하는 행동을 객관적으로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연구에 따르면 어린 시절 자기 부모가 대해준 영향이 잠재해 있다가 자녀의 육아방법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무의식적으로 즉, 잠재의식에 의해서 자녀를 대할 때 자기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좋지 못한 육아방법을 답습하고 있지는 않은가 늘 생각해봐야 한다.

부모로부터 잘 물려받은 육아방식과 잘못 배운 육아방식을 구분하고 의식적으로 자녀교육에 활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극단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만 잘못된 육아방법의 예로 어려서 부모에게서 학대받고 자란 사람은 자기 자녀를 학대하기 쉽다.

변덕스러운 부모 밑에서 자란 부모는 자녀에게 변덕스럽게 대할 수 있다. 무심코 자녀에게 대하는 행동들이 과거 자신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행동임을 간과하지 못하고 자녀와 좋지 못한 관계가 유지 된다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고 잘못된 양육방법을 물려받지 않았는지 늘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시집살이 심하게 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심한 시집살이를 시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나는 며느리에게 좋은 시어머니가 돼야지!’ 다짐했지만 나는 그보다 더한 시집살이도 견디어 냈단다. 그까짓 정도야 어떻겠는가!’라고 생각되어 며느리를 힘들게 시집살이를 시키게 된다.

이런 사고가 자기에게 잠재된 패러다임이다. 좋지 못한 패러다임을 갖고 있다면 바꿔야 한다. 패러다임이 과거와 다르게 조금만 바꿔도 커다란 변화가 나타난다. 물론 자기가 쓰고 있는 색안경이 어떤 색상인지조차 모르고 있다면 현재 자신의 나쁜 패러다임을 갖고 있는지 알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다. 자신을 돌아보는 신중한 과정이 필요하다.

자신의 내적성품을 알아차리고 패러다임을 바꾸려면 원칙중심에 근거를 두고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 원칙에서 무엇이 다른가? 의도적 관찰이 반드시 필요하다. 부지불식간에 나타나는 어떤 잠재력은 의지력보다 강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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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완벽할 수는 없다.

대부분 부모는 자기가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들이 성취했으면 하는 생각을 알게 모르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한 부모의 행동은 자녀가 초등학생만 돼도 커다란 기대와 부담을 안겨준다. 그리고 자녀들이 남달리 잘하는 것이 있다면 자랑스러워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부모들이다.

늘 공부를 잘하는 자녀들은 부모가 남들에게 자랑하는 모습을 보고 자라게 된다. 그런 부모를 보면서 비록 학급에서 일등을 하는 자녀들조차 항상 불안한 부담을 안고 등교한다. “부모를 실망시키면 어떻게 하나!” “일등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려 잘하는 공부가 즐거움을 주기보다 마음을 더욱 우울하고 침울하게 한다.

대체로 우리는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쉽지 않다. 그 누구보다 성실하고 기량이 뛰어난 선수였던 골프의 여제 애니카 소렌스탐(Annika Sorenstam)은 몇 번을 망설이다 은퇴하면서 늘 일등을 지켜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려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녀의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돈독한 가족관계인데 골프 때문에 아이를 낳아 기를 시기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골프를 우승에 연연하지 않고 즐겼다면 은퇴를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은 물론 주위에서 그렇게 자유로운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놓아주지 않았다.

부모는 아이들의 심적인 부담을 덜어주어야 한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학창시절 일등과 오등, 십여 등 사이에 무엇이 그렇게 큰 차이가 있단 말인가? 오히려 일등보다 이등, 삼등이 마음에서 여유로울 수 있어 좋다. 우리가 모자람 없이 꽉 찼다는 것은 만족하기보다 다음 상황을 생각할 때 오히려 많은 부담을 준다.

산의 정상에 오르기 전에는 기대와 희망이 있고, 정상에 오른 순간 느끼는 만족감은 아주 잠시일 뿐 다음은 내려 가야할 걱정을 해야 한다. 그래서 산은 7부 능선이 가장 아름답고 좋다고 한다. 또한 가을 단풍은 80%가 물들었을 때 절정이라고 한다. 단풍이 100%가 되면 모두 떨어질 날이 가까워져 단풍의 생명력을 잃는 상태가 되고 만다.

커나는 자녀들이 최고가 되기 위해 계속된 긴장과 걱정은 정서적으로 불안하게 할 수 있어 좋을 수 없다. 인간은 생각 되는대로 행동하고 그렇게 되기 쉽다. 생각은 늘 행동하도록 독려하기 때문이다. 정서가 불안하다고 생각되면 늘 불안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세상에 태어난 인간들이 악()하기보다 선()하게 살아가는 이유는 태어나서 악하게 될 환경보다 선하게 될 환경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태어나 절대의존 시대를 거치면서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선()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라면서 선한 삶이 행복한 삶임을 늘 보고 들어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때로는 자녀들이 최고가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욕망을 수용하기 힘들 때 반항아로 발전하기 쉽다. 내적인 힘을 길러야 되는데 외적인 유혹에 억매이기 때문이다. 외적인 유혹에 억매이면 정직함이 이탈해 원칙의 중요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성적을 올리기 위해 커닝(cunning)을 생각하고 실천할 수도 있다.

미국 대통령시절 아브라함 링컨의 아들이 공부를 그렇게 잘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담임 선생님께 보낸 편지에서 커닝해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보다 정직한 낙제생이 더 명예롭다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전했다.

오늘날 우리의 자녀들이 내적인 힘을 길러 정직성, 공정성, 성실성 등을 소홀히 하지 않는 풍토가 성숙 돼야 더욱 좋은 사회로 나갈 수 있다. 내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완벽하기를 바라는 것은 큰 부담을 주고 감당하지 못하여 외적인 힘에 기대려 하게 된다. 그래서 쉬운 지름길을 찾고, 요령을 찾고, 외도(外道)를 택하기 쉽다.

사춘기가 되어 반항이 시작되는 것은 자신의 자립심, 독립심을 키우고 지키겠다는 몸부림인데 부모들이 미더워하지 않기 때문에 간섭하여 갈등이 생긴다. 부모의 염려 때문에 사춘기 자녀의 자립심, 독립심을 꺾어야할 필요가 있을까?

자녀의 행동이 완전하지 못하다고 해서 부모의 관심과 간섭이 많아지면 반항하고, 그렇지 않고 순응하며 자라면 자신의 자립심이 약화돼 매사에 의존적이고 열등감과 불안감에 시달린다. 사춘기에도 고분고분 부모님 말씀을 잘 듣고, 전혀 문제가 없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렇지만 누구나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이들이란 매사에 서투른 것이 정상적이다. 어른인 부모의 입장에서 완벽하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두려움을 키워주는 행위가 되기 쉽다.

나는 왜 외모, 노래, , 운동도 다른 사람보다 월등하게 잘하지 못할까? 사회에 진출해서도 돈, 명예, 사회적 지위 등을 남과 비교하고 능력이 늘 모자란다고 생각되어 자신을 학대하고 싫어하게 된다. 이런 자존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지 않도록 자신감과 자존감을 키워 줄 수 있는 부모의 지도(指導)가 필요하다.

자녀들에게 분발할 것을 요구하기 위해 모자람을 지적하고 다른 사람들과 상대적 비교로 마음을 상하게 하여 늘 부정적인 생각에 의해 예기불안(豫期不安)을 안고 살지 않도록 유념해야 한다.

흔히 부모들은 자녀의 부정적인 행동만을 발견하고 꾸중하기 쉽다. 이는 부정적인 사고를 강요하는 것과 같다. 또한 자녀에게 자극을 준다고 형제, 이웃 아이들과 비교해서 잘 못하는 점을 꼬집어 내어 승패적인 사고를 깊이 심어주기 쉽다.

부모의 생각은 분발해서 열심히 노력하라고 설득하지만 분발에 앞서 기분이 나쁘게 되고, 부모가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먼저 들게 된다. 설득보다 납득하도록 격려하고 지도해야 한다. 설득은 말하는 사람이 주도적이지만 납득은 듣는 사람이 주도적이다.

자칫하면 나는 누구누구보다 모자라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쓸모없는 인간이야!” 자신감을 잃고 체념하며 자포자기(自暴自棄)하기 쉽다.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을 심어주어서는 자존감을 키워줄 수 없다.

인간은 모든 것에 완벽할 수가 없다. 용모, 자기가 가지고 있는 능력 등이 다른 사람에 비해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자존감이 강하다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너는 눈이 짝짝이다. 코가 삐뚤어졌다. 키가 작다. OO도 모르느냐?”등등의 약점을 들춰내 지적할 필요가 없다. 약점을 잡아 놀려댄다면 당하는 아이는 자존감이 약화되고 불필요한 열등감에 시달린다.

자녀들이 잘하는 일에는 칭찬이 적거나 없고, 잘못하는 일에 가혹한 꾸지람을 가한다면 스스로 무능한 패배자로 인식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마음을 닫게 된다. 다른 사람 앞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늘 자신감을 잃게 되어 소심하게 된다.

파도타기를 잘하려면 파도에 역행하지 말고 파도의 흐름에 맡겨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 주어야 한다. 자신을 믿고 의연하게 대처하면 좋은 품성이 저절로 증진된다.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자존감을 간직하고 다양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고 도리다.

자녀에게 먼저 긍정적인 칭찬방법을 익혀야 한다. 옆에서 느긋이 지켜볼 줄 아는 부모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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