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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名品)과 잘못된 과시욕구(誇示慾求) 사회

명품(名品)이란 무엇인가? 장인(匠人)의 솜씨로 만들어진 물건쯤으로 해석함이 옳지 않은가? 우리의 삶에서 최소한 먹고, 입고, 거처할 수 있는 절대적 빈곤이 해결된다면 보다나은 삶의 질적 향상을 위해 문화적 욕구에서 얻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명품이 인간의 내적인 성숙도의 모자람을 채워주는 역할과 과시욕, 허영심을 충족시켜주는데 한몫을 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실용적인 내용보다 명품을 이용해 근사하게 포장을 함으로서 그 가치 이상으로 보이도록 치장해보자는 속물적(俗物的) 근성의 발로(發露).

국제적으로 유명한 컨설팅 업체인 맥킨지 앤드 컴퍼니(Mckinsey & Company)의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은 명품 친화적인 럭셔리 프랜들리(Luxury friendly) 국민으로 분류되고 있다.

전 세계 명품구매도 조사에서 한국이 46%, 중국이 44%, 일본과 미국이 6%, 유럽연합이 5%라면 그 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머지않아 우리보다 중국이 앞서갈 것 같다. 역사적으로 중국의 사치풍조가 더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상대가 가질 수 없는 물건을 소유하고 있다는 특권층 의식, 자부심(自負心)이 너무 강하다. 자신의 체면(體面)을 대단히 중요시 하는 국민이다. 우리는 왜 이런 국민이 됐을까?

우리는 아마도 과거 중국을 통해 형식과 허례허식(虛禮虛飾)에 대한 사회적 풍토를 배워왔기 때문이 아닐까? 일본은 우리민족이 많이 건너가 형성된 국가이지만 우리민족과 같이 중국의 영향을 적게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일찍이 바다를 통해 서구문명을 받아들여 우리와 생화습관이 매우 다르다.

일본이나 서양인이라고 명품을 싫어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우리처럼 실용성을 배제하고 소유의 허영심, 과시요구(誇示慾求)가 크지는 않다. 서구 일반 사람들의 복장을 보면 얼마나 검소한지 알 수 있다.

우리처럼 명품을 걸치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복장도 매우 검소하다. 우리 학생들은 누구나 명품을 입고 등교한다. 마치 명품을 입어야 학교에 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학생들의 허영심보다 부모의 허영심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옷뿐 아니라 소지품도 비싸고 좋은 것만을 소유해야 하는 것처럼 인식된 사회다. 커나는 아이들이 명품을 걸치고 활동의 제약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일부계층의 허영심과 과시욕 때문에 명품의 가치보다 물건 값이 더 오르고, 또 올라야 잘 팔리는 베블런효과(veblen effect)까지 한국에서 발생한다. 어떻게 보면 물건의 가치 이상의 돈을 지불하는 과소비적 결과가 나타난다.

호텔이나, 고급식당에 가면 손님이 타고 온 자동차나 차림새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는 풍토가 존재하는 한국이다. 잘못된 사회풍토, 다시 말하면 잘못된 교육풍토의 산물이다.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겉치장으로 판단의 근거를 삼는 아주 좋지 못한 분별력을 발휘한다.

영유아 시절, 초중고등 학교 시절부터 자녀들이 기능성 명품의 옷과 소유물을 입거나 갖지 않으면 우습게 여기는 풍조 때문에 가난한 부모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는 사회다. 겨울철이면 어떤 명품인 고가의 아웃도어 재킷(outdoor Jacket)을 자녀에게 입히지 못하면 애석해하고 부끄러워하는 사고 때문에 어떤 지정된 교복으로 착각할 만큼 똑같이 명품을 입어야하는 풍조가 일어난다,

특히 겨울철이면 많은 외출복이 고가의 아웃도어 재킷으로 넘쳐난다. 심지어 외국에 패키지여행(Package tour)하는 모습을 보면 바로 한국인임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모두가 명품을 걸치고 여기저기 몰려다니는 특이한 모습 때문이다.

독일의 어느 명품 아웃도어 재킷을 생산하는 업체가 한국에 전용매장을 낼 것을 요구하는 것을 처음에 거절했다고 한다. 조그만 나라에서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너무 성화에 한국시장을 둘러보고 생각이 달라졌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길거리에서 아웃도어 재킷을 입고 다니는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잘못된 사회가 아닌가?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다른 것보다 적어도 34배 값비싼 명품의 라벨이 붙어있는 옷을 입어야 품위가 유지된다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겨울에 어울리고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외출용(아웃도어 재킷)이면 되지 한겨울에 몇 번이나 비를 맞을 기회가 찾아온다고 등산전문가들이나 필요한 고가의 방습(防濕), 방수(防水) 기능까지 포함된 필요 이상의 품질을 요구하며 옷을 구입해야 할까?

특정계층에 소속돼야 자신의 가치가 올라간다고 생각하고 또 주위에서 그렇게 인정해준다. S대학 출신이라면 모자란 행동을 해도 실수라고 보아주고, 고급 승용차를 타고, 명품을 걸쳐야 귀인으로 대접받는 속물근성의 사회가 언제 올바르게 제자리를 잡을지 걱정이다.

서울대학교대학원 등 일부 일류대학원에서 시행하는 <최고경영자 과정>이 개설돼 있다. 이 과정은 공부가 목적이어서 다니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성공했다는 사람들의 모임이 된다. 대부분 사업체장 및 임원, 군 장성, 정부 투자기관장 및 임원, 3급 이상 공무원, 언론기관장 등등 우리사회의 지도자급에게 입학자격을 준다.

그런데 대부분 명문대학 출신이 아니다. 우리나라 명문대학 출신이 이 과정에 입학하는 사람은 아주 적거나 아예 없다는 통계가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사회에서 말하는 명문대학 출신이 돼 보겠다는 심사가 아닐까? 명문대학 출신의 서열에 들기 위한 욕망이 작용했고 학교는 이런 심리를 이용해 경제적 실리를 얻기 위함이다.

유럽국가에서는 명품을 자랑하면 자존감이 부족한 속물로 본다. 그래서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자기에게 어울리는 치장을 한다. 누구도 겉모습에 따라 차별화하고 대우를 달리하는 풍토가 없다.

우리는 학교 교육도, 사회의 영향력이 큰 방송매체에서도 허례허식의 형태를 바로잡지 않으면 우리의 삶이 불행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렇게 생각하면 행동도 그렇게 되어 불행한 사회가 된다.

어려서부터 부모들이 자신과 자녀들을 위해 명품을 사용하고, 마치 다른 사람과 차별화된 의식으로 자랑삼아 보라는 듯이 으스대고 우쭐거리는 것을 보면서 커간다면 그렇게 닮아간다. 일생을 잘살아 간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실망감이 너무 크게 찾아와 자살을 하거나 크게 망가질 수 있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인성교육에서 인간을 내면적 가치보다 외적인 면모를 보고 중요하게 평가하는 뒤바뀐 잘못된 사고방식을 주입시키는 꼴이 된다. 우리는 외면적 가치보다 내면적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인성교육이 꼭 필요하다.

이제는 세계적으로 먹고 살만한 나라라는 인정을 받고 있다. 현재 우리 자신이 명품에 대한 선호도의 풍토를 바로잡아 어린 시절부터 올바른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의도적인 교육이 꼭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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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을 지키는 소양(素養) 교육

견물생심(見物生心)이란 인간의 자연스런 마음이다. 좋은 것을 보면 갖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좋은 것을 보았는데 소유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이 세상에 누가 있겠는가? 다만 내가 취해서 될 것이 있고, 그래서는 안 되는 분별력이 필요하다. 이런 분별력 또한 어려서부터 길러져야 한다.

우리는 길가에 떨어진 지갑은 임자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돈이 떨어져 있으면 임자가 없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돈이란 어떤 특정한 사람만 소유해야하는 전유물(專有物)의 성격이 아니라 사회의 공유물로 조건에 따라 돌고 돌아 잠시 점유(占有)할 수 있을 뿐이다.

길가에 떨어진 돈을 줍게 되면 마치 횡재(橫財)로 착각한다. 어떤 반대급부(反對給付)의 노력에 의하지 않고 손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엄격히 따지고 보면 반대급부 없이 들어온 돈이라면 자기 것이 아니다. 잘못 되면 법적인 처벌도 받게 된다.

한국 어머니가 아이들과 같이 길을 가다가 돈이 떨어져 있으면 빨리 주워 넣어라!"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서양 사람은 조금 다르게 말한다. 독일 어머니는 건드리지 마라!”라고 한다. 이것이 아들에 대한 교육의 차이다.

떨어져 있는 돈은 일시적으로 어느 누구의 소유에서 벗어났지만 임자가 있음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떨어져 있는 돈은 지갑에 있는 돈과 달리 소유성이 희박하여 아차하면 그대로 소유하려는 실수를 하게 된다.

털어진 돈이라고 먼저 줍는 사람이 임자일 수 없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어떻게 교육하는 것이 정석일까? 서양 사람들처럼 행동하는 것이 옳은 교육이다. 잃어버린 사람이 찾아와 찾아갈 수 있는데 우리처럼 주어서 경찰서에 신고하도록 하는 것은 잘못된 교육이다.

돈 뿐 아니라 어떤 물건도 내 것이 아닌 이상 그 자리에 그래도 놔두어야 임자가 찾아가기 쉽다. 오늘날 스마트폰 가격이 일백만원 대에 이르면서 한 번 잃어버리면 찾기가 쉽지 않다.

일 천원자리였다면 쉽게 돌려주고 일백만원자리는 쉽게 돌려주지 않는 다는 것은 물건에 대한 견물생심에서 일어나는 차이 때문이다.

한발 앞서 남의 스마트 폰을 슬쩍 가져가는 도둑질이 흔히 일어나는 세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남의 양심을 더럽히도록 계기를 만들어 준 잃어버린 사람의 잘못이 더 크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나쁜 마음을 갖도록 원인제공을 한 것이 물론 잘못이지만 일부러 그런 행동을 할 사람은 없다. 결론은 원인제공자보다 견물생심의 욕구를 억제하지 못한 사람의 행동이 더 잘못됐다고 봐야 한다.

오늘날처럼 인터넷이 발전하여 텔레뱅킹(tele-banking)을 많이 하다보면 실수로 돈이 잘못 송금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 잘못이 화근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잘못해서 송금됐다고 연락해도 자기 통장에 입금 된 것은 내 것으로 착각하여 돌려주지 않아 소송이 발생하는 세상이다.

아무 욕심을 내지 않고 돈을 주인에게 돌려주었다면 고맙다는 인사를 받지만 내 것처럼 사용하려면 형벌을 받을 수 있다. 형벌을 받을까봐 마음대로 못 쓰는 행위를 안쓰러워 할 것이 아니라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은 양심에 호소해보면 바로 알 수 있는 일이다. 그 뿐인가? 오히려 남의 돈을 속임수로 낚아가는 금융사기인 피싱(phishing)이 있고 또는 나아가 직접 전화로 속이는 보이스피싱(voice phishing)도 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양심에 거리끼지 않는 행동을 위한 연습이 필요하다. 정직하고, 공정하고, 배려하고, 서로 양보하고, 협조하는 삶이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노력과 계속되는 반복 학습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것도 혼자보다 모든 사람들이 같이 행동해야 더 쉽게 배울 수 있다.

정의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자녀들의 행동을 돌보는 부모님들의 각고의 노력이 꾸준히 계속되어야 한다. 한 번 잘못 날아간 화살은 되돌릴 수 없다. 활시위를 떠나기 전에 화살의 방향과 힘을 잘 쓰도록 알려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고 사회의 책무다. 늘 이야기 하지만 나무가 어린 새싹일 때 잘 길러야 바르게 자라고 재목이 될 수 있는 이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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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주(無所住), 무소유(無所有)의 삶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란 책이 오래 동안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했다. 무슨 뜻인가?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한곳에 매여 있지 말고 마음을 낼 지어다!”와 다른 것 같지만 같은 의미라고 보고 싶다. 우리는 좋은 생각을 했다면 실행에 옮겨야 한다.

일반인이 무소주(無所住), 무소유(無所有)란 의미대로 욕심을 내려놓기란 쉽지 않다. 어떻게 무소주, 무소유 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이미 그는 도인(道人)의 경지에 이른 분이다.

우리는 어떻게 바램의 집착을 끊어 버릴 수 있단 말인가? 좋은 부모를 만나고, 좋은 배필을 만나야 하고,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좋은 집에도 살고 싶고, 좋은 차도 갖고 싶고, 좋은 옷을 입고 싶고, 잘 먹어야하는 이런 희망을 접고 살아갈 수 있는가? 어느 정도 욕망에 충족해야 살맛이 나지 않겠는가?

경쟁에서 뒤지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이 다윈의 진화론이다. 경쟁이란 영어단어 Competition은 라틴어에서 함께 추구하는 것이란 의미라고 한다. 경쟁을 멈추라는 말이 아니다. 경쟁 없이 발전도 없다. 지금처럼 남을 내치는 경쟁이 심한 세상도 없다. 원래 경쟁(Competition)의 의미처럼 서로가 윈(winwin)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상호협력 할 수 있는 시대적인 움직임이 절실히 요구된다.

우리는 흔히 남을 배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의 소유감을 충족하지 못하고 나눔을 갖는다는 것은 많은 수양이 필요하다. 자기 욕심을 내려놓고 남에게 베푼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석가모니는 왕궁을 나왔고, 기원정사(祇園精舍)에 기거하시며 몸소 탁발(托鉢)하심은 우리에게 시사(示唆)하는바가 크다. 마음의 무소유다. 교만함을 보이지 않았다. 그 정도의 지위에 올라 있으면서 기원정사에서 손수 1km 넘는 길을 걸어 나가 제자들과 똑같이 탁발하지 않았던가? 범인이 차마 쫓을 수 없는 경계에 들어 계셨다.

그러나 혜민 스님의 멈춰야 한다는 경지(境地)는 과욕을 부리지 말자는 의미리라! 오직 자신만을 위해 타인을 괴롭히거나 유해한 행동의 무한경쟁을 멈춰야 함을 생각해야 한다.

물론 인간은 다른 사람이 괴롭히지 않아도 스스로 상대적 빈곤에 의해 고민하고 괴로워 할 수도 있다. 아니 그렇게 하게 된다. 이는 자신의 능력과 처지를 넘어서려는 탐욕에서 일어난다.

우리는 자신의 삶에서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지 않는 것을 지키지만 해도 대단한 경지에 이른 상태다. 몇 사람만 그렇게 사고하고 행동하기보다 더불어 사는 모두가 그렇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좋은 정의로운 사회가 된다.

여기서 인류사회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공헌하지 말자!”는 의미가 아니다.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삶에 보탬이 되는 행동이야 말로 배려와 사랑의 보시(布施). 다만 모두가 온유하게 참고, 욕심을 버리고, 공짜를 바라지 말고, 계율을 잘 지키며 정진하고, 배려하고, 사랑하며, 최선을 다해 서로 협력하고 살도록 마음을 낸다면 바로 천국과 같은 세상이 될 것이다.

어려서부터 이러한 마음가짐의 교육을 받지 못하면 커서도 행할 수 없다. 늘 강조 하지만 어린 시절 바람직한 교육이 시행되어야 한다. 떡잎부터 잘 돌봐야 좋은 재목으로 커 갈 수 있는 자연이치와 같다. 올바른 교육의 결정적 시기를 놓치면 후회만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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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비만(肥滿)이 여든까지 간다.

어릴 때 나타나는 비만이 여든까지 간다. 비만의 원인은 과다한 영양섭취와 운동부족에서 온다. 우리 몸은 뼈와 근육 일반적인 살로 이루어져 있다. 문제는 일반적이 살이다. 살은 우리 몸에 언제인가 필요로 할 영양공급을 대비해 쓰고 남은 영양분을 저축하게 되는데 이것이 피하지방이다.

그런데 피하지방이 너무 많이 쌓이게 되면 오히려 신체를 해치게 된다. 여기에서도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표현과 상통한다. 너무 많으면 부족함만 못하다. 우리는 비만해지기 전에 몸을 돌보지 않으면 고질적 질병을 얻게 되어 후회한다.

우리가 가난할 때는 전혀 염려되지 않던 것이 좀 잘살게 되면서 주위에 기름진 먹거리와 인체에 이롭지 못한 음료수를 많이 섭취하여 축적되고 비만을 낳게 된다. 우선 맛있는 음식을 찾게 되면 칼로리가 많은 음식을 많이 먹게 되는데 기름진 음식이 식성을 자극해서 더 많이 먹게 된다.

더욱이 우리 생활이 편리해지면서 운동 등 야외활동은 줄어들고 많은 영양 섭취는 다 소화해 내지 못하여 몸속에 축적 된다. 어른은 물론 아이들도 비만해지면 어린이 당뇨병, 어린이 고혈압 등 성인에서 많이 발생되든 병이 찾아온다. 이러한 비만은 전적으로 부모의 무관심에서 발생하기 쉽다.

문제는 어린이 당뇨, 어린이 고혈압 등의 질병이다. 성인 때와 달리 잘 낳지도 않고 치료도 어렵다는데 있다. 정신질환으로 발전할 수도 있고, 자신감이 상실되어 좌절감, 우울증으로 시달릴 수 있다.

부자 집 어린이보다 가난한 집 어린이들에게 비만이 많은 것은 자신이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부모가 모두 밖에 나가 경제활동을 하는 동안 마음껏 기름지고 불량스런 인스턴트식품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한 번 입맛에 물들면 자제력이 약한 어린이의 비만은 고쳐질 수 없다. 특히 지방세포는 굶는다고 없어지지 않고 쪼그라들어 있다가 기름진 음식을 먹게 되면 다시 활동하여 비만으로 가기 때문에 고쳐지지 않는다.

운동장이 없거나 협소한 도시 아이들은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공간도 부족하고, 경쟁에 이기기 위한 공부가 계속되면서 육체적 운동이 부족하고, 기름진 먹거리가 늘 눈에 들어와 억제하지 못한다. 특히 인스턴트식품이 어린 아이들의 건강을 해친다.

음료수는 어떤가? 목말라 갈증이 찾아오면 생수(生水)나 끓인 보리차 등이 우리 몸에 제일 좋은 음료수지만 도시나 농촌이나 가공된 음료수가 유혹한다.

청량(淸凉)음료수라면 생수를 말한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그 의미를 달리 해석하는 생활이 의외로 많다. 청량 음료수라면 생수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과일주스와 가공된 탄산음료수 등을 생각한다.

그러나 가공된 음료수라면 청량하다고 할 수 없다. 눈에 과일이 직접 보이는 어떤 과일주스도 기분만 좋게 할뿐 인체에 전혀 유익하지 못하다. 과일이 둥둥 떠 있어 영양가 있는 음료수라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과일주스 등 첨가된 음료수는 살균을 위해 순간적 고열로 가열시켜 그 안에 포함된 영양가는 모두 파괴된 상태다.

그리고 첨가된 설탕 등은 많은 칼로리를 공급한다. 설탕 대신 다른 화학 첨가물을 넣었다면 인체에 이로울 것도 없다. 생수를 마시는 것과 전혀 다르다. 목마르다고 물로 된 커피 홍차 등을 마시고, 탄산음료를 마시는 것은 수분공급과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부모는 어린 시절부터 기름진 음식이나 음료수에 입맛이 습관화 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특히 인스턴트식품은 가까이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고 가끔 한두 번 먹는 것조차 못 먹게 하는 것은 무리다.

친구들과 어울리는데 까다롭게 생수만을 고집한다면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정서적으로 더 나쁜 영향을 주게 된다. 인간사회에서 외톨이가 되지 않으려면 주위환경에 따라 즐겁게 같이 어울려야 한다.

그리고 어린 시절이 지났는데도 간식을 많이 하는 것은 좋은 습관이라고 할 수 없다. 일부 청소년에게 공부하는동안 간식을 자주 제공하는 부모들이 있는데 전혀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주전부리에 익숙해지면서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

사람이 일반적으로 삼시세끼 식사를 잘한다면 영양부족을 초래하지는 않는다. 수시로 간식을 하게 되면 밥맛이 떨어지고 때에 적당히 먹지 못하고 또다시 간식을 요구한다. 특히 과자류를 많이 간식으로 취하는 것은 치아는 물론 면역성도 떨어지고 인체에 불균형을 가져와 좋지 않다.

간식의 습관이 건강에 결코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초등학교쯤이면 간식을 하지 않도록 지도하는 것이 일생의 건강을 지키는 일 중에 하나다. 우리는 골고루 적당히 먹고, 적당히 운동하는 습관이 우리 몸의 건강을 유지해 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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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전용 “국어기본법”개정 요구

광복 직후 한글과 애국심이 결합되어 한글학회 중심으로 한글 전용론이 나오고 한자사용 폐지운동이 전개되면서 급기야 2005국어기본법을 제정하여 명실 공히 한글전용시대가 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다. 그래서 지금 모든 공용문서는 한글전용으로 해야 한다

오늘에 와서 뒤돌아볼 때 한문(漢文)을 멀리한 것은 그렇다 해도 한자(漢字) 멀리한 것은 크게 잘못된 정책이었다. 한글에 대한 과대평가 아니 한자에 대한 과소평가였다. 깊이 통찰하지 못한 단견이었다.

우리의 언어가 한자의 음()과 훈()을 빌어서 쓴 말이 일상용어만 해도 50%가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우리의 전통문화가 한자에 기초를 두고 발전해왔는데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데 한자를 밀어내다보니 우리의 전통문화를 배격한 꼴이 되었다.

오늘날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일상용어 사용은 물론 전문용어 표기에서 난해함이 계속되고 있는 이유는 한자사용을 멀리했기 때문이다. 한글만으로 표기해도 기성세대는 이미 한자를 알고 있어 그 뜻을 한자로 미루어 짐작하고 그 의미를 확실히 인식할 수 있지만 한자를 익히지 못한 신세대는 그 의미를 확실히 알기에는 어려움이 매우 크다.

다행히<어문정책추진위원회>가 결성돼서 한글전용화 정책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정하기 위해 헌법소원을 냈다고 한다. 아직도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 같다. 헌법소원보다 국가에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잘못 생각하고 판단하여 과거와 같이 한문(漢文)을 사용하자는 어문화 정책(語文化 政策)으로 가려는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마치 한자를 배워 한문체로 된 사서삼경(四書三經) 등의 고전을 익히기 위한 정책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우리의 언어표현을 정확히 알고 어휘를 늘려가는 데 한글과 한자(漢字)를 병행하여 익히기 위함이다.

쉬운 표음문자(表音文字)의 한글과 확실한 뜻을 오래도록 변함없이 알 수 있는 표의문자(表意文字)를 병행해 사용할 수 있어 이보다 확실하고 완벽한 언어표현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대단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 언어 환경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휘의 뜻을 정확하게 안다는 것처럼 지식을 넓히고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없다. 다시 말해 한글과 한자를 혼용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난해한 경우 한자를 병기해서 정확한 의미를 표현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자도입을 반대하는 한글학자들은 기미독립선언문처럼 한문투성이 시절로 돌아가자는 주장인지 반문하고 있는데 그런 의미가 아니다. 또한 한자를 병기하면 문서분량이 늘어나는 것을 염려하는데 그런 염려보다 얼마나 어휘의 올바르게 인식하고, 의미를 전달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지 방법을 찾는 것이 더더욱 중요하다.

난해한 의미로 표현되는 경우 한자를 병기한다면 의미가 명확해질 수 있다. 한자에서 온 많은 우리말 중에 똑같은 발음이나 똑같이 기록하면서 뜻이 전혀 다른 것들이 매우 많다. 오해되지 않을 정도에서 한자를 병기해 사용하자는 주장이다. 시간은 금()이다. 이것이 시간을 절약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어휘의 의미가 불분명해 사전을 찾는 수고를 덜 수 있다.

한자(漢字)를 익힌다 해서 <이조실록>, <난중일기> 등을 읽고 알도록 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여러 번 말하고 있지만 한자를 익히는 것이 한문을 배우자는 의미와는 다르다.

한자를 배우도록 하자!’는 목적이 한문(漢文)을 배워 고전을 읽자는 의미가 아니라 한자를 배워 지금의 언어체계에서 명확한 의미를 바로알고 바로 사용하자는데 있다.

한자(漢字)를 배워 한문(漢文)을 익힐 수 있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가 될 수도 있지만 그 것은 한학자가 할 일이다. 그렇게 발전할 수 있는 길도 열릴 수 있다. 이웃나라인 중국, 일본의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도 될 수 있다. 물론 그런 의미로 한자를 배우자는 그런 목적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시급하게 해야 할 일중에 하나가 흘러넘치는 외국용어 남용문제가 있는데 국어순화운동이 필요하다. 그렇게 된 이유의 일부는 한글전용으로 표현할 때 어휘가 부족하고, 이해가 부족함이 한몫하고 있지만 지식인임을 자처하기 위한 잘못된 사고방식 발로(發露) 때문이다.

우리 생활에서 새로운 우리의 확실한 언어가 생기기 이전에 외국어 표기방식이 유행처럼 쉽게 파고들고 있다. 특히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더욱 그렇다. 물밀 듯이 몰려오는 외래문화를 순수한 우리말로 감당하기 어렵기도하다.

의제(議題), 기획(企劃), 학교지역(學校地域) 등으로 표현하면 쉽게 알 수 있는 것을 특히 정치권이나 공무원사회에서 이상한 풍조가 생겨 어젠다로드맵이니 스쿨존이니 하는 말을 공용어로 쓰는 태도가 큰 문제다.

앞서 말했지만 우리처럼 글이나 언어표현에서 표의문자나 표음문자를 같이 쓸 수 있는 민족도 국가도 거의 없다. 한글처럼 익히기 쉽고 대부분의 발음을 적을 수 있는 글자도 없다.

한글의 위대한 가치를 어느 누가 모르는가? 다시 말하지만 소리글인 한글과 뜻글인 한자를 알 수 있다면 표현의 의미를 확실히 할 수 있어 의사전달이 명확하다. 일예로 한자 없이 오래 사용하다보면 풍비박산(風飛雹散)을 풍지박산으로 잘못 알게 되는데 이런 것이 한자를 병기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변화가 일어난 잘못된 표현이 생긴다.

한자를 써서 국가발전이 안 된다면 이웃 일본은 벌써 망했어야 옳고, 한글전용을 해야 발전한다면 북한은 왜 지금과 같은 처지에 놓여있게 됐을까?

우리는 인간의 능력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다. 우리 생활에서 꼭 필요로 하는 그자 수가 그렇게 많지 않다. 컴퓨터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한글 2350, 한자 4,888자를 익혀 쓴다고 해서 인간의 두뇌에 과부화가 걸리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해가 빠르고 표현력이 발달 될 수 있다. 한자를 기록할 줄 알면 더 좋겠지만 보고 분간해 읽을 수만 있어도 분별력이 높아지고 어휘의 의미를 확실히 알 수 있게 된다.

한자가 어렵다고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글자도 아니다.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에 한자 1,000자 정도를 배우는 것은 부담도 되지 않는다. 일찍 어려서 배워야 한자의 어려움을 알지 못하고 배운다. 한글만 대하던 중고등학교의 경우 한자를 대하면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고 생각 하게 된다.

어려서 지도보기, 퍼즐(puzzle)게임 등의 놀이를 많이 해야 공간지능을 발달시킬 수 있듯이 한자 또한 두뇌의 공간지능 발달에도 아주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본다. 이런 공간지능의 발달도 어릴수록 강하고 나이가 들수록 약화된다는 체감법칙이 적용된다.

한글을 배우기 전에 한자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해야 한다. 그러면 결코 한자가 어렵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우리가 영어를 배우고 독일어를 배우려면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독일어를 먼저 배우고 다음에 영어를 배운다면 영어가 어렵게 느껴진다. 어려서 비교할 수 없을 때 좀 어려운 한자를 먼저 익힌다면 결코 한자가 어렵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공부도 결정적 시기가 있다. 때를 놓치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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