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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존재감 높여주는 교육

사람이나, 식물이나, 동물이나 길 드리기는 모두 다 필요하다. 동물은 먹이를 주면서 길 드리지만 사람은 자존감을 높여주면서 교육한다.

자아(自我)를 인식한다는 것은 자기통제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사람은 자아의 존재가치를 발견했을 때 내면으로부터 즐거움과 행복을 느낀다. 자녀들은 자기 행동에 대한 인정과 칭찬을 받고 자존감을 느끼며 커간다.

정체성(正體性)이란 다른 사람과 달리 독립된 자신만의 생각, 자신만의 견해, 자신만의 열정, 자신만의 취향 등을 가지고 정서적 결속을 맺게 되는 존재감으로 살아간다.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지 않으면 밖으로 나와 독립된 사회생활을 원활히 해낼 수 없다.

똑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난 형제들이 다른 개성을 갖고 자라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과거와 달리 오늘날은 자라나는 시대와 환경이 너무도 빨리 변화하기 때문이다.

첫 아이는 부모의 관심이 크고, 가족중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클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세 번째 아이는 첫째보다 부모의 관심은 다소 적어지지만 본받을 형이나 언니가 있어 많은 영향을 받게 되는 교육환경에서 자란다. 또한 시대의 변천과 부모의 육아 경험도 한 몫을 한다.

육상경기에서 단거리 달리기를 잘하는 선수는 대부분 맏아들, 딸이 아니라 둘째, 셋째 그 아래 아이들이라고다. 어린 시절 형이나 언니를 힘겹게 따라다니면서 달리는 신체적 능력을 기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해관계에 깊이 빠져 있지 않은 영삼이 시절부터 정직성과 공정성, 근면성 그리고 자존감(存在感)을 길러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강조한다.

자녀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으로 오감을 풍부하게 경험하면서 이타적 성품을 기를 수 있는 환경, 개성을 존중하는 환경, 자녀들에 대한 심한 간섭이 없는 독립적 환경, 부모의 행동이나 말씨가 모범적인 환경, 신체적으로나 정신적 지주가 돼줄 수 있는 환경, 자녀들이 늘 정직함을 바탕으로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믿음의 환경, 자기 행동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환경 등 이다.

때로는 인위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자기를 알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양보다 서양 아이들이 부모의 제지를 잘 지키는데 그 이유는 어려서부터 그만한 훈련이 잘됐기 때문이다.

자기 행동에 대한 잘못을 자각할 수 있는 시기라면 먼저 잘못을 이해시키고 그에 합당한 인위적인 제재(制裁)가 필요하다. 자녀들이 스승이나 부모님의 가르침에 올바르게 행동을 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불이익이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시켜 주어야 한다.

자녀들이 어리다고 권위주의에 의한 힘으로 제압하려한다거나 체벌하는 것으로 지도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자녀들의 잘못을 교정하는데 설득하고, 제안하고, 이해부터 시키려는 노력은 일시적인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완전한 해결 방법이 못 된다.

늘 자녀가 문제의 중심에 서서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감정적으로 느낌을 받아들였을 때라야 해결 될 수 있다. 부모들은 자신의 생각중심에서 자녀들을 교정하려 들지 말고 주체가 늘 자녀들임을 명심해야한다. 스스로 자기 마음속에서 사리에 맞게 순응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유아시절 욕망을 채우기 위해 정직보다 먼저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거짓말이다. 의식발달 과정에서 도덕적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예의고 무엇이 잘못인지 아직 알기 어렵다.

어릴 때 진실과 거짓, 선과 악을 구분하는 지혜를 많이 얻도록 지도해야 한다. 지식을 아무리 많이 간직하도록 지도해도 이런 지각 즉, 분별력 있는 지혜가 모자란다면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는 사실을 거짓으로 말 할 수도 있고, 거짓은 아니지만 진실을 빼놓고 말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기적인 생각이 깃들기 전에 정직성을 반복적으로 깊이 심어 정정당당하고 정의로운 행동이 습관화 돼야한다.

우리는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거짓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직접 거짓말을 한 것만큼 자신이 자유로울 수 없다. 무엇인가 감추어야할 부담도 있고, 진실을 감추기 위해 새로운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

진실을 감추기 위해 정력을 낭비할 수도 있다. 정직하면 정직 할수록 정직하기 쉽고, 거짓말을 하면 할수록 더욱 거짓말을 해야 한다. 용기 있는 사람만이 진실하게 말하고 행동하여 뒤따르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음을 자녀들에게 늘 알려야한다.

자녀의 잘못된 행동에 대하여 어떻게 제재 할까?

잠시 벽을 보고 서있게 하거나 생각하는 의자를 정해놓고 앉혀 자유를 구속 하고, 자기 행동에 대해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준다.

자녀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물건의 사용을 일시적으로 금지(압수)한다.

재미있는 놀이를 일시적으로 중단시킨다.

주기적으로 주는 용돈을 일시적으로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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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와 학원의 큰 차이점 이해

아이들은 생명의 기본이라는 식(), (), ()가 해결되면 성장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며 때가되면 알맞게 자란다고 생각하기 쉽다. 부모가 없어도 세월이 흐르면서 성장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부모나 멘토(선생님)가 없어도 교육환경만 잘 구비된다면 스스로 배우고 익힌다나름대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마치 돌보지 않은 들꽃과 같이 어느정도의 환경이 구비된다면 자라고 열매도 맺는다. 그러나 더 좋은 환경으로 인도하고 돌본다면 더 좋은 결실을 얻게 된다는 것을 경험에서 알 수 있다.

그러나 자라는데 그렇게 좋은 교육환경이 구비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스스로 자란다는 것과 키우고 기른다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 키우고 기른다는 것은 인위적으로 교육적 환경이 주어진다는 의미다.

그래서 우리는 학교를 세우고 인위적인 교육환경을 만들어 준다. 우리가 자연에서 그대로 농사를 짓지 않고 논밭을 일구어 시비(施肥)를 하고 씨를 뿌려 가꾸어야 풍요로운 열매를 거두어 드릴 수 있는 것과 같다. 이것이 교육의 필요성이다.

부모나 선생님만이 자녀나 제자가 자신들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선생님이 자기보다 못한 학생을 배출했다면 제자가 아니라 견습생을 기른 꼴이 된다.

어떻게 선생님보다 더 훌륭한 제자로 성장할 수 있는가?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영유아를 지도하는 선생님은 자기의 영유아 시절보다, 청소년을 지도하는 선생님은 자기의 청소년 시절보다, 대학생을 지도하는 교수는 자기의 대학시절보다 더 훌륭하게 길러주어야 진정한 교육자다.

아무리 감정이 메마른 시대라고 해도 제자의 훌륭한 성장에 보람을 느끼지 않는 스승이 누가 있겠는가? 스승과 제자와의 관계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와 다름없어 감정적으로 가장 밀접한 관계가 유지 된다.

오늘날과 같이 경제 제일주의가 지배할 때 금전적 이해관계로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형성된 것으로 착각하는 세상이 됐다. 부모나 아이들마저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손해 보는 쪽은 학생들이다. 이런 경제적 이해관계에 의해 맺어진 스승과 제자라면 불행한 관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해관계가 사라지면 사제관계도 사라진다.

스승은 그런대로 유지되지만 제자는 바르게 성장할 수 없게 된다. 손해관계를 따져본다면 학생 쪽이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스승은 부모 이상의 영향력을 주게 되는 관계인데 사제지간의 관계가 형성되지 못한다면 불행한쪽은 학생이다.

자녀의 훌륭한 성장을 바라는 부모라면 스승과의 관계를 경제적 이해관계로 몰고 가서는 안 된다. 존경심이 없는 관계에서 배움이란 얄팍한 지식만을 얻어갈 뿐 삶의 지혜를 얻을 수는 없다, 존경까지는 안 가더라도 감정의 소통이 없는 이해관계에 머무는 사제지간의 관계라면 삶을 살아가는 동안 전혀 도움이 안 된다.

학교생활을 떠나 학원에 다녀보면 이해관계에서 끝나고 사제관계나 친구관계도 없다. 학원이야말로 목적이 정해졌다. 돈을 주고 평상시 모자란 지식을 얻기 위함이다. 완벽한 이해관계다.

학원은 과외공부를 위한 곳으로 여겨져 시간에 맞춰가서 얻을 것을 얻고 끝나면 돌아온다. 친구도 생기지 않고, 선후배도 없다. 우리의 삶에서 끈끈한 인연이 맺어지지 않는 곳이다.

왜 그렇게 될까? 학원에 가는 이유가 오직 모자란 지식의 보충으로 한정돼 있고, 우리 삶의 성장을 위한 곳으로 인식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학교와 큰 차이가 있는데 오늘날 학교는 졸업장을 얻기 위한 곳이 됐고, 오히려 지식은 학원에서 채워준다.

그렇다면 무한히 성장해야할 감성, 인성의 인간관계는 어디에서 맺어지고 배울 수 있을까? 친구는 어디에서 맺어질까? 자신의 정체성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학교란 그런 삶을 얻는 곳이다. 원래의 학교 품으로 되 돌려지는 사회가 돼야 한다. 학교가 수준별 학습을 할 수 없게 된 것은 학부모들의 책임이다. 학교에서는 등급별 수업을 할 수 없게 하면서 학원에 보낼 때는 등급별 수업을 듣게 한다.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을 한반에 같이 놓고 수업을 한다면 선생님은 어느 기준으로 학습을 시켜야 할까? 낮은 수준으로 수업을하면 알고 있는 학생이 지루해하고, 높은 수준으로 수업을 하면 모르는 학생이 지루해 한다. 그러다 보니 학생 모두가 학원을 찾아야 한다. 

그저 졸업장을 얻기 위해 거쳐 가는 곳으로 이해되면 곤란하다. 부모나 학생들의 생각이 학교 원래의 본 모습인 종합적 성장의 장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학교는 졸업장을 얻기 위한 곳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인간으로 자라는 과정의 한 단계를 이끌어 주는 곳이다.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가 학습만을 위한 장소로 생각해서는 큰 잘못이다.  

그 곳에서 삶의 토대가 마련된다. 어린 시절 이해관계 없이 감성적으로 맺어진 친구가 일생동안 진정한 우정을 나눌 수 있다. 대학이나 사회에서 맺어지는 관계는 다분히 이해관계가 작용하여 진정성 있는 관계가 못되고 이해관계가 사라지면 친구관계도 그만이다. 그런 학교생활이 본연의 모습을 찾지 못하고 한원 중심의 학생시절을 보낸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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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공감적 이해와 경청

경청 하려면 감정적으로 성숙해야할 필요가 있다. 높은 수준의 인내, 솔질함, 공감적 이해심이 없으면 경청할 수 없다. 자녀를 기르는 사람은 영유아가 마음을 밖으로 드러내 놓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도록 환경의 조성이 필요하다.

영유아시절 책을 많이 읽도록 하자! 놀이를 통한 종합적 교육을 하자!” 등등 여러 가지를 제시하지만 아무리 좋은 교육의 목표를 앞세워도 자녀가 쫒아오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부모, 선생님을 불신하고 가까이 하지 않는 환경에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다. 영유아의 호소를 경청하고 가슴으로 받아드릴 수 있는 대화의 상대가 되려면 공감적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

공감적 이해를 위해 우선 말이 통해야 한다. 대화의 효용가치를 절감해야한다. “꼭 말이 필요하냐?”고 하지만 어린 자녀들과 의사소통을 위해 말과 표정이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성경에 태초에 말씀으로 대자연과 우주를 창조하셨다고 하지 않았는가?

자녀들의 말을 잘 들어주고 가슴으로 이해해 준다는 것은 자녀들에게 믿음과 존재감을 싶어준다. 부모가 자녀들을 귀중하고 존귀하게 여기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는 표정이 가장 좋은 구체적인 언어 표현이다.

물론 말 대신 행동으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정확한 의사를 이해하는데 우선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좋다.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말과 표현을 통해 자신이 사랑 받고 있음을 온 몸으로 느끼게 되어 정신적 성장을 가져오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귀중하다고 느끼면 느낄수록 귀중한 것에 대해 의미를 깊게 인식하게 된다. 부모가 기대하는 만큼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어린 자녀들은 무엇인가 배우기 위해 많은 생각을 하고 천진난만한 입을 통해 언어표현을 하려고 한다. 부모는 자녀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녀들이 사고하고 있는 상태를 알게 되면 될수록 더욱더 쉽게 잘 가르칠 수 있다.

부모가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발전해가는 과정을 인정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되면 기꺼이 부모의 말에 순종하게 된다. 믿음이 커지면서 부모의 가르침을 더 열망한다.

배우면 배울수록 더욱 훌륭하게 자라고 기대했던 것처럼 육체적 정신적 성장을 하게 된다. 서로의 순환적인 언어행동에서 서로 주고받는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믿음이 커져간다. 서로간의 감정계좌에 감정 잔고가 높아가게 된다.

자녀들이 영유아 시절이 지나고 청소년이 되어도 부모가 경청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부모로부터 존중받고 싶은 심정은 어린 시절과 다를 바 없다.

일반적으로 경청하는 것은 상대방을 신뢰하고 있다는 뜻이다. 존경하고 있다는 뜻이다. 상대방이 경청하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다. 경청하면서 말하는 사람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은 자신의 사고를 확대시켜 지식과 지혜를 얻게 된다.

나는 학생들 앞에서 강의 할 때 학생들이 집중해서 경청해 주면 더욱 신이 나서 열강을 하지만 학생들이 경청해 주지 않는 기색이 보이면 강의를 중단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일반적으로 상대방의 말을 무시하는 경우, 맞장구치며 듣는 체만 하는 경우, 어떤 특정한 부분만 선택적으로 듣는 경우, 일부만 집중하여 듣기만 하는 경우, 공감적으로 경청하는 경우, 등등이 있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공감적 경청이다.

경청할 때는 말하는 사람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아야 한다. 창밖을 본다든가, 다른 물건을 만지작거린다든가, 딴전을 피우는 것은 말하는 사람을 당황하게 할 수 있다.

자신에게 유익하지 않다면 끝까지 경청하지 않고 싫증, 권태, 다른 생각, 의례적인 자세 등을 취하기 쉽다. 귀로 듣는 것보다 눈으로 듣는 습관이 필요하다.

공감이란 상대방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이 일치되는 과정이다. 동감은 분위기에 맞춰 표현되는 상호감정의 반응이다. 공감이란 상대방을 감정적으로, 지적으로 깊고 완전하게 이해하는 행동이다.

스티븐 코비는 공감적 경청이란 상대의 내면에 들어가 그의 방식대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의 우뇌와 좌뇌를 동원해서 가슴을 통해 감정과 의미, 행동까지도 경청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감적 경청만이 상대방의 마음을 열 수 있다.

오늘날 무한 경쟁적 사회에서는 자신이 상대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자신의 진실을 숨기고 이야기할 때가 많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공감적 이해보다 반응(reaction)하려는 쪽에 비중을 두고 듣게 된다.

잘못된 표현은 없는가? 반박할 거리는 없는가? 어떻게 반응할까? 그렇게 되면 상대방의 의견을 이해하기 어렵게 되고 자신의 의견만 고집하는 꼴이 되어 대화는 단절되고 마음의 문은 닫히고 만다.

만약 자신의 신상문제를 누가 이야기한다면 누구나 신경을 모아 듣게 된다. 혹 자신의 약점이 노출되지는 않을까?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지는 않을까? 등등으로 걱정과 함께 어떻게 반박해야 할까? 등등에 초점을 맞추어 듣게 된다면 경청할 수 없다.

상대방의 생각을 확실히 알지 못하면 자기 의사를 정확히 결정할 수도 표현할 수도 없다. 상대방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 위해 용기와 인내는 물론 내면적 안정감을 갖도록 노력해야한다.

경청할 수 있는 훈련도 유아시절에 쌓아지도록 해야 한다. 경청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자녀들이 밖에서나 안에서나 어떤 연유로 감정이 상해 억울함을 호소할 때도 부모가 경청하지 않고 즉시 잘잘못을 평가해서 결론을 먼저 전달하는 것은 금물이다.

우선 아이들의 입장에서 무조건 동조하고 이야기를 경청해야한다. 친구와 다투었거나 억울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당했을 때 그 사유를 친근하게 들어주고, 그 잘잘못을 불문하고 아이들의 입장에서 일단 동의를 표하며 맞장구를 쳐준다면 우군(友軍)을 얻었다는 생각에서 숨김없이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하게 된다.

흥분된 에너지를 모두 발산하고 마음을 가라앉게 한 후 마지막에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이 있었다면 지적해 고치도록 타이른다면 잘못을 깨닫고 바로잡을 생각에 미칠 수 있다.

다시 말해 전후사정을 자세히 호소하도록 아이들 편에서 경청하여 흥분과 화가 가라앉고 풀리면 그때 평가를 해서 옳고 그름을 전해도 늦지 않는다.

우리는 보통 자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객관적인 판단에서 바로 잘못된 점을 평가해 지적하기 쉽다. 마치 감기 들었다는 아이들의 말만 듣고 진단 없이 처방하는 것과 같다.

네가 OO한 것은 잘못이고, 혼날만한 행동을 했다.”고 결론적 이야기를 먼저 한다면 비록 자기의 잘못을 인정한다 해도 다시는 부모님에게 마음을 열고 털어놓지 않게 되고 혼자서 고민을 해결하려고 하게 된다.

이러한 행동은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 누구나 스스로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잘못이 고쳐지지 않게 된다. 소통되지 않으면 부모와의 관계는 소원(疏遠)해 진다. 감정계좌의 감정 잔고가 늘어나지 않는다.

경청하는 것이 사랑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모 자식 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간에 신의가 쌓이고 돈독한 관계가 유지 될 수 있다. 부부간에, 사회생활에서 동지 간에, 심지어는 회사에서 상하 간에도 적용된다.

바른 말을 잘하는 부하를 좋지 않게 생각하는 것은 의견개진 방법을 잘못 택했기 때문이다. 상사에 대한 잘못을 지적할 때도 직설적인 지적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비판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면 네가 감히 상사에게 그렇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을까?”라고 받아들이며 자기의 잘못보다 권위와 자존심을 상하게 만든 부하의 비판적인 행동에 초점이 맞추어져 좋은 충고라고 받아들이기 이전에 괘씸한 감정이 앞서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이러한 말씀도 좋지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을 참고해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라고 상대방의 의견을 개진(開陳)하고 결정은 상사에게 맡기는 방법으로 접근해서 최종결정이 상사자신에게 있다고 생각되도록 권한다면 흔쾌히 경청하게 된다.

권위와 자존심을 살려주고 당사자가 스스로 판단해서 잘못을 인정할 수 있도록 주도권을 넘겨준다면 오히려 충고를 고맙게 생각한다.

결혼 생활에서도 상대방의 말을 경청한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가슴을 활짝 열고 경청해야한다. 이십년, 삼십년 넘게 해와 달 만큼이나 떨어져 다른 환경, 다른 사고방식으로 성장했는데 결혼했다고 인식체계(paradigm)가 일치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낭만적인 사랑만 기대할 뿐 상대방을 경청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상대방이 자신의 인식체계에 들어와 일치하도록 강요한다면 결혼생활의 원만함은 바랄 수 없고 파탄으로 간다.

경청한다는 것은 깊은 믿음과 사랑의 표현이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며 ! 그런 면이 있었구나!”하고 이해하고 응답하는 것이 믿음을 키우고 감정계좌의 잔고를 높이며 정신적 성장을 할 수 있는 방법이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의심 없이 들어주는 상대가 부부관계다. 먼저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무조건 상대방의 감정에 동조해서 같은 편이 되어주고 스트레스가 다 풀리도록 맞장구를 치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이 혹 듣게 되면 웃기는 부부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상대의 화나 스트레스가 풀린 후에 객관적인 판단에서 상대방의 잘잘못을 평가하고 지적해 준다면 고마워한다. 부부간에도 감정을 그렇게 다스리지 않는다면 대화가 단절되기 쉽다. 하물며 미숙한 아이들은 어떻겠는가?

우리는 보통 상대방의 말을 자기 경험에 비추어, 자기 틀에 맞추어 듣게 된다. 자기경험에 의한 탐색, 추측, 판단하여 충고하고 조언 하려한다. 특히 부모가 자식들의 의견을 듣게 될 때 흔히 생길 수 있다. 이것은 논리적인 행동이지 감정이나 정서적인 경청으로 진정한 이해를 위한 행동이 아니다.

자기 마음속에 가득 찬 억울함, 슬픔 등의 분노를 하소연할 수 있는 상대가 있어야 스트레스를 풀 수 있고 정서적 안정을 가져와 건강을 해치지 않는다.

분노만이 아니라 매우 기쁜 감정도 발설하지 않으면 건강에 나쁘다. 들어줄 사람이 없다면 신을 향해서라도 소리쳐야한다. 그런 심정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행동하기 전에 화난 감정으로 가득 찬 에너지를 행동보다 말로서 소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누구나 터질 것 같은 심정을 토하고 신선한 공기로 환기시켜야 마음이 가라앉게 된다.

이러한 언덕, 버팀목이 돼주는 것은 아이들의 기()를 살려 줄뿐만 아니라 용기를 가지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어떤 일을 추진할 수 있는 추진력을 길러준다. 이러한 버팀목은 가장 가까운 어머니요 가족이다. 언제나 두 팔을 벌려 맞이해 주어야한다.

누군가를 향해 치밀어오는 분노를 있는 대로 상대방에게 표출한다면 매우 험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중요한 것은 분노를 마음속에 간직하지 않고 풀 수 있는 방법을 길러 주어야한다.

남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예의이며 자기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된다. 또한 남의 의견을 잘 경청해야 상대방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상대의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면 의견의 일치도, 요구의 관철도 이룰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경청하기 위해 자신이 높은 수준의 인내심, 이해심, 정직함이 있어야한다. 어떤 반응을 준비할 의도를 갖고 들으려하지 말고 이해하려는 의도를 갖고 경청해야한다.

자칫 경청하는 것 그 자체가 의견충돌에서 굴복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상대방의 의견을 잠시나마 차분히 경청한 후에 그것을 받아들일지 거부할지 결정해도 결코 늦지 않는다.

이 세상의 대부분이, 아니 모두가 상대적으로 형성돼 있음을 상기할 때 상대의 의견을 확실히 이해하고 파악하지 못하면 생산적 대화를 할 수 없다.

경청해야 하는 것은 상대의 생각을 알아차릴 수 있을 뿐 아니라 경청하는 태도에 따라 상대방의 심경도 변화를 가져온다. 경청하면 상대방은 자신을 신뢰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더욱 알아듣기 쉽게, 더욱 열성을 가지고 자기 뜻을 설명해 준다.

공감적인 감성의 태도는 엄청난 매력을 지닌다. 먼저 긍정적으로 이해하려고 할 때 의사소통이 가능해 진다. 경청하기 위해 내면적 안정감이 필요하다. 그리고 경청하려는 인내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부모님들은 어린 아이들에게 큰소리 내지 않고 적은 소리로 들려주는 것을 잊지 말아야한다. 작게 말해야 들으려고 정신을 가다듬는다. 큰 소리로 말하면 불안하고 경청하려는 집중력이 약해진다.

문화가 발달할수록 대화의 크기는 작아진다. 여러 사람이 많이 모여 사는 사회 환경에서 너무 크게 대화가 이루어지면 이웃에 방해가 되어 작게 말해야 되는 예절도 있지만 큰 소리로 말하게 되면 주위가 산만해 질 수 있어 대화의 집중력이 떨어진다.

한 나라 안에서도 문화적 차이에 따라 대화 소리의 크기가 다름을 경험했을 것이다. 작게 이야기하는 습관을 길러주는 것이 우선 집중적 경청과 공감적 경청을 할 수 있는데 좋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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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세심한 관찰력의 강화

 

아이들은 영삼이 시절부터 매우 관찰력이 강하다. 삶을 위해 무엇이든 배워야하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물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행동을 깊이 관찰하고 따라 배우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자생력이 활동이 커져가기 때문에 4계절이 있는 지방에서 자란 아이들의 지능도 높아진다.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4계절이 있는 나라 사람들이다.

아이들은 2세 전후부터도 자세히 관찰하고 어른들의 행동을 모방하며 학습한다. 자녀들에게 세심한 관찰력을 더욱더 북돋아 주기 위해 주위를 두루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갖도록 지도할 필요가 있다.

일예를 들어보겠다. 어른들이 습관적으로 컵에 물을 받아먹을 때 깨끗한 물을 먹기 위해 일차적으로 받은 물로 컵을 부셔낸 후 물을 받아먹는 행동을 하게 된다.

그런 어름들의 행동을 보아왔던 어린 자녀가 직접 물을 받아먹도록 하면 시킨 일이 없지만 어른의 행동을 그대로 모방해서 똑같이 행동한다. 아이들이 왜 일차적으로 받은 물을 흔들어 버려야하는지 이유를 모르지만 어른들의 행동을 모방해서 그렇게 행동한다.

이러한 깊은 관찰력은 커가면서 그 잠재력이 약화되기 쉬운데 어릴 때 더욱더 세심한 배려로 관찰력이 발전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좋다.

꽃이 피면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꽃의 이름과 종류와 생김새 등을 깊이 관찰하도록 설명해 준다. 꽃의 색상, 꽃잎의 모양, 꽃의 암술과 수술, 꽃가루, , 씨방까지 알아보는 세심한 관찰학습을 함으로서 세밀한 관찰학습법을 배운다.

사물을 정확하고 면밀히 관찰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삶을 윤택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한다. 물리학자 뉴턴은 자연현상을 일반 사람과 같이 흘려보지 않고 세밀한 관찰을 했다.

일반인은 사과가 떨어지는 것은 늘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뉴턴은 왜? 라는 깊은 생각으로 만류인력을 찾아냈다. 바람의 속도를 알기 위해 스스로 순풍과 역풍에 대해 수없이 체험해 본 사람이다.

갈릴레오(Galileo)는 교회에서 흔들리는 샹들리에를 보고 진자의 등시성찾아냈고, 발명가인 제임스 와트는 끓는 주전자의 들썩이는 뚜껑에서 증기의 힘을 발견해 증기기관차를 만들어 냈다.

허준은 여러 야생식물의 약효를 관찰하고 기록하여 동의보감을 남겼다. 이러한 깊은 관찰력과 통찰력은 지적활동을 충만하게 해준다.

유아가 가지고 있는 관찰력을 깊이 연마할 수 있도록 기회 있을 때마다 일깨워 주고 도와주어야한다. 사물의 이름, 크기, 색상, 무늬, 모양 등등을 지나치지 말고 자주 아이들에게 물어보고 무엇이 다른지 비교하고 구별할 수 있도록 요구함으로서 관찰력을 기른다.

유아시절에는 퍼즐 맞추기, 숨은 그림 찾기, 닮은 그림 찾기, 잘못된 그림 찾기 등으로 공간지능의 증진은 물론 세심한 관찰력과 상상력을 기르도록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관찰력을 향상시키는 데는 몇 가지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첫째 영유아의 경험과 지식 정도를 알고 수준에 맞는 질문을 해야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과 같이 자녀의 지식수준에 맞지 않는 동 털어진 질문은 흥미를 잃게 한다.

둘째 관찰하는 명확한 목표가 있어야한다.

퍼즐을 맞추기 전에 먼저 완성된 그림의 모양을 관찰시키고 맞추는 행동을 스스로 해보도록 시킨다. 어린이 프로그램은 몇 번의 TV채널을 찾아야하는가? TV음향은 어떻게 커지고 작아지는가?

레고 장난감의 모양 맞추기에서 어떤 다양한 모양을 먼저 보여주고 처음에는 같은 모양을 만들도록 하지만 새로운 모양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

셋째 체계적으로 사물을 관찰하도록 한다.

물건을 쌓을 때 큰 것을 밑에 놓아야한다. 잠금장치의 비밀번호는 순서대로 눌러야 문이 열린다. 순서를 지켜야 목적이 달성된다. 그대로 보여주고 행동하도록 요구할 것이 아니라 이유를 알게 한다.

넷째 모든 것을 시작부터 끝까지 다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기초가 되는 사용법(manual)까지만 알려주고 나머지는 자신들이 찾도록 한다.

레고(LEGO)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데도 그렇다. 꼭 보여준 모양만 만들도록 할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보도록 한다. 나는 3차원 컴퓨터 그래픽을 하면서 어린 시절에 3차원 모델링(Modeling) 방법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초등학생쯤 되면 컴퓨터의 베이직 프로그램(Basic program)을 배울 수 있도록 하여 논리적 사고를 기를 수 있게 하면 배우 바람직하겠다고 생각해 왔다.

다섯째 세상에 많은 집합개념을 통해 관찰한다.

모든 사물에는 공통점이 있다. 크기, 길이, 모양, 색상 등은 물론 형성된 재질, 특성 등에서 공통점을 찾는다. 다리가 둘인 동물, 넷인 동물, 뿔이 있는 동물, 장난감이 나무와 플라스틱 그리고 쇠로 된 것 등등을 관찰하고 분류하여 집합개념을 익힌다.

여섯째 글을 쓸 수 있게 되면 관찰기록을 하도록 한다.

관찰기록을 하려면 더욱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물을 집중하여 보게 된다. 뿐만 아니라 먼저 관찰했던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찾아보고 발견할 수 있는 분별력의 힘이 길러진다.

레고(LEGO) 장난감 같이 많은 경우의 형태 조작방법을 가지고 있는 장난감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한 설명서를 첨부했더니 독일이나 영국에서는 판매량이 급증했으나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별다른 영향이 없었다고 한다. 무엇을 의미 하는가? 여기서 과거부터 서양보다 동양의 과학발전이 늦어진 이유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관찰력을 소홀히 하고 있어 과학발전에 서양보다 뒤졌다. 우리는 세밀히 관찰하는 것을 오히려 싫어한다. 꼼꼼하게 처리하면 대충하지 뭘 그렇게 쫀쫀하게 그러느냐?”고 비양한다.

남자는 대범하고 큰일을 해야 된다는 생각에 세밀하게 파고드는 사람을 쩨쩨한 좁살영감이라고 몰아 세웠다.

물건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매사에 꼼꼼히 처리하지 않으면 불량률이 늘어난다. 명품이 되는 데는 품질이 우수해야 하는데 대충 처리해서 다른 제품과 경쟁에서 앞서갈 수 있겠는가?

모든 사물을 볼 때 면밀하고 세밀히 관찰하는 습관을 길러 주는 것이 영유아시절부터 시작돼야한다. 교육이란 알고 싶어 하는 잠재력이 존재할 때 키워주어야 한다.

그저 그렇다고 깊은 관심 없이 생각하면 잠재력의 발달 시기는 지나가고 모든 것을 보이는 그대로 당연하게 생각한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물건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수직으로 떨러지는 것으로 보이고, 기차 밖에서 보는 사람은 사선(斜線)으로 떨어짐을 알게 된다. 사물을 그저 그러려니 생각하고 본다면 관찰력은 성장하지 못한다.

교육이 지금과 같이 암기력으로 얼마나 많은 지식을 얻어 좋은 평가받기 위한 교육은 지양돼야 한다. 어떻게든 많은 지식을 얻어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 아니라 지식을 통해 어떤 지혜를 얻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연마한지 평가해야 한다.

어린 시절에는 그 지혜를 얻기 위해 무한한 감수성을 갖고 있다. 우리의 삶은 감수성이 풍부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 이 감수성의 성장은 어린이절에 만들어진다는데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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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의 인내(忍耐)는 어떻게 길러질까?

아이들이 참을성이나 규칙을 배우지 못하면 성장하면서 외톨이가 된다. 친구를 사귀기도 어렵고, 같이 협동해야할 때 참가하지 못한다.

우선 자녀들에게 어떻게 참을성을 길러줄 수 있을까? 부모는 어렸을 때부터 꼭 필요한 요구사항이라도 즉시 들어주지 말고 정해진 시간까지 기다리도록 하여 참을성을 길러주는 계기를 마련해야한다.

무엇을 원할 때 며칠간의 말미를 만들어 기다릴 줄 알게 함으로서 이 세상에는 쉽게 되는 것이 없고, 때로는 오래 동안 참아야 이롭게 된다는 생각을 뇌리에 깊이 심어주어야 한다.

호아킴 데 포사다 엘런 싱어가 쓴마시멜로 이야기에서 보면 4세의 어린 나이에 침이 넘어가는 마시멜로를 하나 맛있게 먹고 나머지 하나를 더 먹기 위해 혼자 15분을 참을 수 있었던 아이들은 훗날 성공한 삶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에서 우리의 삶에서 기다림(참을성)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자녀들이 요구하는 어려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쉽게 즉시 들어주고, 과정의 잘못을 즉시 지적해 주지 않고 감싸 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어려운 과정 없이 얻어지는 결과는 소중함을 느낄 수 없다. 문제는 참을성이 불편함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어려운 과정을 인내하여 좋은 결과를 얻어 즐거움으로 바뀐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 요점이다.

인내심은 반복되는 조그만 참을성에서 성숙된다. 마치 우리 몸에 근육을 발달시키려면 반복되는 운동이 한동안 필요한 것과 같다. 근육이 발달해야 골격을 튼튼하게 유지시키는 것처럼 인내는 우리의 어려운 삶을 지탱해 준다.

인내하라는 것은 손해 보는 피해자가 되라는 것도 아니고 무기력해지라는 것도 아니다. 가혹한 환경을 무조건 견디라는 뜻도 아니다. 주도적인 생각으로 지혜와 역량을 발휘해서 뛰어넘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포기하거나 체념하지 말고 한 발짝 물러나 순응하면서 인내로서 받아드리고 재도전할 수 있는 힘을 기르자는 것이다.

자녀들에게 인내를 위해 믿음을 키워주는 것이 필요하다. 자연에 순응하는 긍정적인 믿음이 인내의 열쇠이다. 운명에 순응한다는 것이 굴복하거나 나약해지는 포기의 상징이 아니다. 오히려 잘될 것이라는 믿음의 확신으로 찾아가는 선택이다.

대부분의 모든 삶이 평화로운 마음으로 살아가도록 돼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석가모니께서는 인생은 고해(苦海)”라고 말씀하셨다. 있는 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해하지 못하고, 믿음을 버리고 포기하는 상황은 자신이 만드는 체념의 행동일 뿐이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행동이다.

인정하고 순응한다는 것은 희망을 버리고 등을 돌려 단념하라는 것이 아니라 선택권이 자신에게 있음을 알고 받아들여 최선의 과정을 택하여 의미 있는 삶의 결과를 찾아가는 행동이다.

인내로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며 순응해야 다시금 평화로운 삶의 의미를 찾게 된다. 마치 훌륭한 비행기 조종사가 자신의 의지보다 관제탑의 지시를 잘 받아들여야 안전하게 이륙하고, 착륙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첫돌이 지날 때면 어느 정도 사리를 분간하기 시작한다. 아이가 배고파 할 때 우유를 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기다리게 한다.

음악을 들려줄 때도 어떤 절차와 과정이 있어야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듯이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참을성이 필요함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 맛있는 음식이 시간을 가지고 어떻게 요리되는지 과정을 보면서 기다도록 해야 한다.

조금 더 커서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이면 요구하는 장난감을 즉시 사줄 것이 아니라 생일날을 약속하거나, 어느 정도 지속적인 심부름을 잘해야 된다든가, 매일 아버지 구두의 먼지를 터는 실천 가능한 일을 했을 때 대가(代價)가 아닌, 이해관계가 아닌 부모의 고마운 마음의 표시임을 강조하며 감사함을 알게 하고, 자녀가 잘했을 때 부모가 갖는 고마움의 표시로, 감사의 표시임을 강조하며 용돈을 주어 저축하고 필요할 때 쓸 수 있도록 경제관념과 같이 참을성을 길러 준다.

약속한 날짜가 돼야 꼭 필요한 것을 사주는 방법으로 기다리는 힘, 약속에 대한 신의, 노력해야 얻을 수 있다는 노동의 중요성, 하루하루 돈이 모아져야 큰돈이 된다는 경제관념까지도 인식하게 한다.

가엽다고 약속한 것을 깨뜨려 약속이 성사되기 전에 자녀가 원하는 것을 쉽게 얻을 수 있게 한다면 그간의 교육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아이들이 어리지만 아침 유치원에 가기 직전에 떼를 쓰면 부모가 원하는 것을 들어준다는 것을 허용하게 된다든가, 거짓말을 하면 부모가 잘 속아 넘어 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의 상황 판단을 잘못하면 인내에 대한 교육은 수포로 돌아가고, 자라면서 참을성은 길러지지 않고 꾀만 늘고, 거짓말 행각이 시작된다.

서양에서 부모들은 가정에 필요한 책상, 의자, 책꽂이 등 물건을 집에서 자녀들과 함께 만들어 쓰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는 동안 어떤 과정이 있어야 결과가 얻어진다는 것을 알게 할 수 있다.

자녀들과 많은 시간을 같이 할 수 있어 감정의 소통과 함께 협동성, 창조성, 인내성, 논리성, 손재주의 기능성 등 종합적인 놀이와 교육으로 꼭 권장하고 싶다.

집에 공작세트가 있으면 가족과 함께 자주 사용하면서 결과를 위해 반듯이 과정이 꼭 필요함을 인식할 수 있고, 자녀의 기본적 생활교육에 매우 좋은 교육과정으로 활용될 수 있다.

요즈음 젊은 부부는 자녀의 잘못을 꾸짖어야 할 때, 아이가 욕구충족을 참지 못할 때, 곧바로 시정을 요구하지 못한다. 아이의 기를 꺾는 행동이라고 잘못 판단하기 때문이다.

자녀의 잘못이 있을 때는 즉시 꾸짖어야지 모아 두었다가 나중에 이것저것 잘못을 제시하고 시정하려 한다면 이미 아이들은 그 때의 잘못을 모두 잃어버린 상태에 있기 때문에 전혀 효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왜 내가 이유 없이 혼나는지 두려움만 커질 뿐이다.

잘못을 고치거나 참을성을 교육하기 위해 체벌이나 과격한 언사로 꾸짖는 다면 오히려 무엇을 잘못했는지 핵심은 잊어버리게 되고 두려움과 반항심을 불러일으켜 감정계좌의 잔고만 줄어드는 좋은 교육방법이라고 할 수 없다.

감정계좌가 많이 쌓였을 때 벌을 가하더라도 벌을 받을 준비가 된다. 벌을 받을만하다는 인식을 했을 때만 잘못이 교정 된다. 특히 참을성을 길러주기 위해 설득, 제안, 설교는 되지 반성하는데 효과가 없다.

인내 뒤에 찾아올 수 있는 즐거움과 해냈다는 자긍심을 맛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통과 시련을 즐거움으로 승화시켜가면서 인내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어야한다.

자녀들에게 규칙을 잘 지키도록 하는 것은 참을성을 길러주는 방법이다. 규칙을 잘 지키는 것은 자신의 능력을 빠르게 확대시키고, 통제력이 커가며, 자존감이 커지면서 이 사회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조건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신의를 저버리는 것이요, 사교성이 결려된다. 규칙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은 참을성이 결려돼 있다는 의미다. 참을성 없이는 정해진 규칙이나 약속을 지킬 수 없다.

부모는 어려서부터 식사, 간식, 잠자기 등 되도록 규칙적으로 시간을 정해 실행 하는 것이 좋다. 행동하기 전에 기다릴 줄 알게 하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은 왜 안 되는지 이해를 시키면서 약속과 규칙을 익혀야한다.

자녀들의 기를 꺾어서는 안 된다고 해서 모든 요구를 즉시 들어주는 것은 참을성을 제거해 버리고, 내가 원하면 무엇이든지 얻을 수 있다는 자만심에 빠져 좋지 못한 요령(要領)을 중시하게 된다.

슈퍼에 가기 전에 꼭 필요한 물건의 목록을 자녀와 함께 정하고 같이 가서 물건을 고르거나 진열 상태를 설명해 주고, 필요 없는 물건을 즉흥적으로 골랐을 때는 제자리에 되돌려 놓아야 하는 것을 알려주고, 계산할 때는 순서를 기다리는 등 조그만 생활규칙이 있는 것을 알려 주어야한다. 이때마다 친절한 설명이 꼭 있어야한다.

버스나 전철을 이용하면서 질서와 순서 지키기, 타는 순서 지키기, 운전기사에게 고마움의 표시 등을 부모가 모범적으로 실행하면서 알려야한다.

우리는 흔히 바쁘다는 생각에서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신호위반을 한다든가 교통질서를 지키지 않게 된다면 나중에 왜 질서를 지켜야하는지 알릴 수 없다.

자녀들의 기를 죽인다거나 자신감을 잃게 해서는 안 된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규칙을 안 지켜도, 기다리는 규칙을 지키지 않아도, 예의를 지키지 않아도 내버려 두면서. 나중에 커서 철이 들면 다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철이 들기 전에 철저하게 그때그때 교육하지 않으면 커서 규칙이나 예의에 벗어난 행동을 할 때도 전혀 마음의 거리낌을 모른다. 오히려 희열을 느끼게 되고, 다른 사람의 지적에 반항하고 교정할 수 없게 된다.

커가면서 점점 부모의 말을 듣지 않게 되고,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무시하게 된다. 친구나 동료는 멀리하게 되고, 세상이 왜 나만 이상하게 보는가? 자기의 잘못된 행동을 전혀 깨닫지 못하여 외톨이가 된다.

자녀가 잘못했다고 체벌은 금해야 한다. 체벌은 아무리 부모라도 가하는 사람의 감정이 앞서기 쉽고, 자녀는 무서움에 일시적 복종을 하지 잘못을 스스로 뉘우치게 되지 않는다.

부모의 체벌이 잦아지면 면역이 생기고, 다음에 먼저보다 더한 체벌이 요구되며 감정계좌의 잔고가 저하 되면서 부모와의 믿음이 깨지고 반항심과 적개심이 길러진다.

체벌을 자주하면 잘못이 있을 때 무엇이 잘못 됐는지 본인의 반성보다 체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찬다. 본인의 잘못을 생각하기에 앞서 두려움에 대한 반항아가 되기 쉽다.

남과 비교해서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상대적 빈곤으로 허덕이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아이들을 이끌어 주어야한다. 인내는 열정으로 극복해야한다. 열정을 가지고 상대적 빈곤도 극복하도록 해야 한다.

새로운 경험에서 오는 갈등, 돈으로 살 수 없는 외로움과 어려움에 대한 대처방법을 생각하고 해결하는 역량, 어려워도 참을성 있게 행동해야 된다는 인내심. 정직하고 공정함은 모두가 젊어서 경험해야한다. 인간은 어려움 속에서 성장한다는 사실을 체험으로 자녀들에게 일찍 알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고생이 되는 여행을 권장하는 것도 여행 중 즐거움도 있지만 집을 떠나 어려움을 경험하게 함으로서 가정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사회인으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여행은 아무리 풍족한 여행경비를 가지고 떠나도 낟 설고 고생스런 기회를 맛보게 된다. 여행 중 어려움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되고, 그 어려움 속에서 부모의 고마움을 알게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열심히 일해서 늙으면 세계여행이나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데 나는 이 생각이 잘못 됐다고 지적하고 싶다.

늙어서 여행하는 것은 들어간 비용에 비해서 얻는 이득이 별로 없다. 시간을 죽이는 행동 이상의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다. 나이 들어 돌아서면 잊어지는 기억상태에서 정보도 축적(蓄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행은 돈이 많아도 고달픈 것이다. 늙어서 기력이 약한데 무슨 즐거움이 그렇게 크겠는가? 투자에 비하여 얻는 것이 적고 피로만 엄습한다.

, 여행의 기억이 오래 남아 있어야 즐거움이 오래가지만 흐릿한 기억은 곧바로 사라져 추억을 더듬고 기쁨을 간직할 수 없는데 무슨 보람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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