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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에 대한 조건적 보상의 위험성

우리는 자녀들에게 흔히 이야기하는 조건 없는 사랑을 가르쳐야 된다고 말한다. 반대급부를 바라는 사랑, 조건을 전제로 한 이기적인 사랑은 또 다른 하나의 좋지 못한 욕망을 키울 뿐이다.

자녀들이 좋은 일을 하고, 말을 잘 듣고, 공부를 잘하고, 어려운 일을 해냈다고 해서 부모가 어떤 물질적, 금전적 보상을 해 줌으로서 조건적 행동을 알게 모르게 가르친다.

잘했다고 칭찬하는 것은 자존감과 용기, 새로운 동기를 부여하지만 어떤 물질적으로 보상하는 방법을 병행할 때 이기적인 태도로 잘못 받아들일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자녀의 훌륭한 행동으로 금전이나 어떤 선물을 줄때는 그 이유를 확실히 자녀들에게 알려야한다. 자녀가 잘해서 그 행위에 대한 보상이나 선물이 아니라 자녀의 잘한 행동에 부모가 너무 기뻐서 부모가 기쁘고 고맙다!’는 의미라는 개념을 확실히 말해 주어야 한다.

누구나 선물을 받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선물을 받는 것이 어떤 행동의 반대급부(反對給付)의의 조건부로 이루어진다면 자녀들에게 좋지 못한 태도를 길러주게 된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도 훌륭한 행동에 대해 포상하고 표창도 한다. 그 것은 우리 사회에서 모범된 행동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임을 강조해야 한다. ‘무엇을 행하면 내게 어떤 보상이 따른다.’는 생각으로 이해한다면 잘못된 길로 가기 쉽다.

선행을 해서 다른 사람에게 베푼 사랑의 기쁨보다 다른 물질적 보상에 대한 기쁨이 더 커지면 잘못된 길로 가기 쉽다. 조건부 행동은 좋지 못한 행동을 수반한다. 칭찬 받기위해, 포상받기 위해 부당한 행동까지도 넘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번에 공부 잘하면 xx해 줘요!’라는 조건을 제시하며 공부를 한다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아야 한다. 이미 조건부 행동에 길들여졌다고 봐야 한다. 공부하는 목적이 다른데 있다. 어떤 행동은 왜 해야 되는지 원칙을 벗어나는 행동이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며 키울 때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돼서 손자손녀를 사랑하는 느낌이 더 강하다. 여러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손녀들이 자식을 키울 때보다 더 기쁘고 즐거운 강한사랑의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부모시절에는 잘 길러야겠다는 자녀들에 대한 어떤 의무감, 기대감이 매우 크다. 밑바탕에는 잘 자라서 부모보다 훌륭해졌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도사리고 있는 강한 조건적 사랑이다.

그러나 조부모는 손자손녀들에 대한 기대와 조건보다 그 자체의 순수한 사랑이다. 그래서 그 사랑하며 받는 느낌이 훨씬 크고 강하다.

우리는 사랑에 대한 조건이 알게 모르게 작용하여 서로의 관계를 짓누르고 있다. 사랑의 조건이 만족해지지 않을까봐 두려워한다. 사랑의 감정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임을 잊게 만든다.

이해관계에서 사랑을 주고받는다면 진실한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사랑을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불만족 때문이다.

자신이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이 상대방에게 사랑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받기 전에 먼저 사랑을 베푸는 행동을 행하도록 부모가 모범을 보여주면서 영유아 시절부터 본받도록 해야 한다.

대가족제도에서 가족의 행동을 보면서 사랑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좋다고 강조한다. 대부분 잘못된 길로 빠져든 청소년은 가족제도가 무너져 있는 어리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다.

어린 시절 부모나 선생님의 사랑이 결핍되면 그 불안예감이 일생동안 따라 다닌다. 어린 시절 부모와 선생님은 우상이고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할 때 믿음과 사랑을 듬뿍 심어주지 못하면 모든 사람에게 사랑과 믿음을 얻을 수 없다는 불안예감이 깊이 심어진다. 성장하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가 매우 어렵게 된다.

사람을 믿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이 굳어지면서 받는 고통과 아픔에 대하여 적절한 해소 방법을 찾지 못한다. 그 고통과 아픔에서 방어하던 그 행동이 옳은 선택이었다고 합리화하려 하고, 다른 사람과 자신을 분리시켜 스스로 사랑, 친근감, 애정 등을 갖는데 불가능하게 되어 정신치료를 요하게 된다.

우리가 물건을 판매할 때 소비자에게 진심으로 좋은 물건을 소개한다면 판매가 잘되지만 좋지 못한 물건을 소개하면서 너는 나한테 속고 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매상이 오르지 않는다고 한다. 이심전심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부모가 진실하게, 성실하게, 성심껏 자녀들 앞에서 행동하는 것이 좋은 교육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진실한 삶이란 끊임없이 엄중하게 자기 자신을 양심에 따라 성찰하며 원칙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하는 삶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문제의 근원이 자신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안에 있다는 것부터 인식하면서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신의 성찰이 매우 고통스럽기 때문에 회피하려고 하지만 진실한 삶이란 다가오는 문제를 외면적인 환경에 있다고 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내면에서 수용해야한다.

가끔 친구사이에서 별일도 아닌 데 서운한 마음으로 헤어지는 일이 있다. 전화를 해달라고 메시지를 보냈는데 응답이 없다면 처음에는 너무 바빠서 전화하지 못할 것이라고 이해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화가 난다. 결국 사랑의 마음을 닫아버리고 스스로 상처를 입는다.

상대방이 전화를 잃어버려 메시지를 못 받을 수도 있고, 통화지역을 벗어나 있을 수도 있다. 보낸 사랑을 되돌려 받을 수 없다는 조건적 상념에서 감정계좌의 잔고가 떨어진다.

만약 며칠 후 그 친구가 어떤 사고로 이 세상을 영영 떠났다면 왜 조건 없이 다시 전화지 못했을까? 후회하면서 상처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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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고 고운 신념(信念)과 상념(想念) 키우기

신념(信念)이란 믿어 의심치 않는 마음의 자존감이다. 신념은 선악의 시비를 가리고 판단하는 마음이다. 신념은 자존감을 높여주어 삶의 원동력이 된다.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확고한 신념의 기준은 어디에서 올 수 있을까? 부모, 가족, 이웃과 같이 살아가는 환경에서 쌓인 감정의 바탕에 두고 있다. 때문에 감정의 바탕이 다르면 신념도 다르게 된다. 신념을 바탕으로 마음속에 떠오르는 여러 가지 생각을 상념(想念)이라 한다.

밝은 신념과 상념을 갖게 되면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타인에 대한 피해의식보다 늘 감사하는 쪽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유아시절부터 부모님, 어른, 친구들이 무엇을 해줄 때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느끼고 말하도록 지도해야한다.

자녀들이 이 두 마디만 자주 익숙하게 사용해도 학교나 사회의 공동생활 속에서 왕따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 두 마디를 자주 사용하지 못하면서 꼭 말로 표현해야 아느냐고 반문한다.

어른이 주는 물건을 받을 때는 머리를 약간 숙이며 두 손으로 받도록 한다. 머리를 숙이는 것은 감사함을 표하는 것이고, 두 손으로 받는 것은 상대에게 경의를 표하는 행동이다. 그런 행동이 전혀 비굴한 행동이 아니다.

고마움을 표시하는 행동이 너무 형식적이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고 마음속에 묻어 둔다면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도 감사함을 표하지 못하여 상대방에게 고마워할 줄 모르는 무례한 사람이라고 인식될 수 있다. 감사의 표시를 못해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는 것이 나쁠 수 없다. 우리는 말과 행동으로 표현해야 상대방이 쉽게 이해한다.

자신이나 남의 좋은 점을 찾아내고 긍정적으로 고맙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상대방에게 믿음이 전해진다. 세상이 험악해서 믿지 못할 세상이라고 다른 사람이 베푸는 선의의 행동을 의심하고 방어적인 태도를 자녀들에게 강조하게 된다면 신념이 마음속에 자리 잡지 못한다.

늘 좋은 신념과 상념을 긍정적으로 간직하도록 돌봐주어야 한다. ‘너는 이것을 해낼 수 있다.’ ‘너는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암시를 계속해서 ! 나는 해낼 수 있구나!’ ‘! 나는 훌륭하게 될 거야!’ 라고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함으로서 내면적인 영향력을 키워갈 수 있다.

신념이 곧 믿음이고 믿음이 내면적인 영향력에 의해 행동으로 발전한다. 무엇이든 된다고 생각하면 될 수 있고, 할 수 있다고 늘 생각해야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행동하여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

피그말리온의 효과(Pygmalion effect) 라고 보아야 할까? 간절히 바라면 얻을 수 있다. 음식을 먹을 때도 이것은 네 몸에 좋은 거야!’ 감기가 걸려있을 때도 이 약을 먹으면 감기가 쉽게 났게 될 거야!’라고 말해 주는 것이 좋다.

그래야 ! 감기가 났겠구나!’하고 신념과 상념을 갖도록 해 몸에서 좋은 에너지가 생겨나 쉽게 나을 수 있다. ‘너는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희망을 준다면 커가면서 훌륭하게 되리라는 생각에서 바르게 살려고 노력한다.

너는 커서 부자가 되겠다.’고 말해 준다면 재물에 관심을 갖고 용돈을 아끼고 저축하며 증식시키려고 노력하고 행동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밝고 고운 신념과 상념은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고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전한 생각과 행동은 행복을 맞게 한다.

병자가 의사를 의심하면 병은 아무리 좋은 약을 처방해도 효과가 없다. 종교계에서 정신적인 병자에게 목사나 신부가 안수기도(按手祈禱)만 해도 병이 나을 수도 있다. 우리의 몸은 자생적 치료가 가능할 수 있지만 안 된다는 의식 속에서는 치료가 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성공하는 데는 머리가 좋고, 지식과 학식이 높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밝은 신념과 상념으로 노력한 결과다. 자신의 밝은 신념과 상념은 파장을 일으켜 행복해지도록 이끌고, 자신은 물론 이웃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람, 동물, 심지어 식물일지라도 이웃의 좋은 영향이 크게 미친다는 것이 여러 실험에 의해 증명되고 있다.

일본의 어느 농부는 토마토 밭에 가면 늘 감사함을 크게 말했는데 그해 좋지 못한 기후관계로 다른 농장의 수확이 형편없었지만 평년보다 3배의 수확을 올렸다. 일본농협에서 자세히 조사했지만 3배 수확의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

어느 사람은 30대에 대학 총장이 됐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빨리 총장에 오를 수 있었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이 학교 교수로 부임해 오면서 바로 이 대학의 총장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늘 해왔다. 모든 학교생활에서 총장의 입장으로 바라보며 행동했다. 그래서 총장이 된 것을 그렇게 놀랍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박종하씨가 쓴아프리카에서 온 암소 9마리에서 보면 어떤 수학과 2학년 학생이 지각을 하고 칠판에 적혀있는 2개의 수학문제를 숙제로 알고 며칠간 끙끙대어 한 문제를 풀었지만 다른 한 문제는 풀 수가 없어 고개 숙이고 교수님께 리포트를 제출했을 때 교수는 깜짝 놀랐다.

아니 학생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었지?’ 이 문제는 세계 석학들이 해결하지 못한 2 문제를 학생들에게 소개했을 뿐이다. 지각한 학생은 학생들에게 교수가 숙제로 제시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문제해법은 유명한 학술지에 실렸고 훗날 유명한 수학자가 됐다고 한다.

아마도 석학들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라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예기불능(豫期不能)의 사고로 풀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와 같은 학생들이 풀 수 있는 문제라고 긍정적인 사고가 발동하여 훌륭한 결과를 얻게 한 것이다.

기공(氣功)에서 염력(念力)을 활용해 병을 치료하는 방법도 신념(信念)이 깊어 치유되는 효과다. 우리는 자녀들을 돌보면서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깊은 신념으로 돌봐주어야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

신념과 상념에는 밝은 것과 어둔 면이 존재한다. 우리는 믿는 대로 생각하고 믿는 대로 행동하여 좋은 결과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굳게 믿어야한다. 반대로 어둔 신념과 상념은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너는 할 수 없을 것이야’ ‘너는 안 돼.’ ‘왜 그렇게 하려고 하니? 하지 마!’라고 부정적인 신념과 상념을 강조하면 어떤 행동에 앞서 ! 나는 안 되겠지?’ ‘나는 할 수 없을 거야!’ 라는 잠재적 생각을 갖게 되어 될 수 있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시작부터 포기하게 된다.

어둡고 왜곡된 심념과 상념은 고통과 질별까지도 유발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냉동 창고를 청소하려고 들어갔다가 우연히 문이 잠긴 것을 알고 여러 번 시도 했으나 나가는데 실패했다. 그래서 나는 머지않아 얼어 죽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냉동 창고 속에서 점점 추위를 느껴 얼마 후 죽고 말았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그를 발견했을 때 사인(死因)을 알 수 없었다. 그는 동사(凍死)가 아니었다. 질식할 정도로 비좁은 냉동 창고도 아니었다. 그 냉동 창고는 며칠 전 이미 고장이 나서 냉동장치가 작동되지도 않고 있던 창고였다.

그는 스스로 죽을 것이라고 부정적 불안예감을 굳게 믿었기 때문에 죽었다. 동사하리라는 공포 때문에 건강에 대한 저항력이 급격히 떨어져 죽음에 이른 것이다.

언제나 긍정적인 생각은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와 반대로 부정적인 생각은 부정적 결과를 낳는 스티그마 효과(Stigma effect : 낙인효과)라고 하는 것도 있다.

우리는 자주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라고 하지만 실은 건강한 정신에 건강한 육체를 보존할 수 있다.’ 어른들은 말이 씨가 된다.”고 늘 말씀하셨다. 말을 했다는 것은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게 되어 그런 결과를 낳게 된다.

특히 나쁜 것을 상상하거나 나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믿는 것은 나쁜 방향으로 결과를 낳게 된다. 질병, 고통, 사고(事故) 등이 일어나는 것은 어둔 신념과 상념에서 출발한다.

흔히 운동이나 시험을 앞두고 징크스를 이야기한다. 한번 잘못된 일을 상기하여 머리에 담아두고 생각하면 같은 결과가 또 찾아온다. 나는 학창시절에 중고등학교의 배구선수로 활약했다. 평상시 연습 게임을 가질 때는 상대학교와 겨루어 여러 번 이겼는데 시합에만 들어가면 지고 만다. 문제는 시합에 임하는 선수들의 마음이다.

결정적인 시합에서 과거 그 학교에 승리한 적이 없다.”는 과거를 상기하고 알게 모르게 이길 수 없는 상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과가 그렇게 됐다는 것을 늦게 알았다.

유아들이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하는 것은 언제인가 어린이집에 대한 좋지 못한 경험 때문에 좋지 못한 신념과 상념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원인을 해결해 주지 않으면 배가 아프거나 머리가 아플 수 있다. 꾀병이 아니다.

영어를 알아듣기 어려울 때 미국에 조기유학을 보냈는데 학교에 가면 늘 아파 양호실을 찾아야만 했지만 학교수업이 끝나고 어머니가 기다리는 교문을 나설 때는 전혀 아프지 않았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린 아이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학교수업이 얼마나 두렵고 고통스러워 스트레스를 받았겠는가? 어른들도 이러한 어둡고 좋지 못한 환경에 사로잡혀 있다면 질병과 고통에서 헤어날 수 없게 될 것이다.

과거 누구에게 좋지 못한 상념이 있다면 용서하고 사랑으로 승화시켜야 질병에서 해방될 수 있다. 용서는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행동이다. 자신이 편한 마음을 갖기 위해서 용서가 필요하다. 용서하지 못하면 일생동안 자신의 마음속에 고통으로 안고 간다.

우리는 정신적 어려움이 있을 때 정신과의사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정신과 의사를 찾는 것을 정신병자로 인식하여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본다. 서양에서는 정신적 어려움이 있을 때 정신과 의사를 찾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정신과 의사를 찾는 것은 사회상담원 정도로 인식돼야 한다. 정신적 작은 고통이 인생을 망칠 수 있다. 우리가 바르고 좋은 신념을 갖기 위해 어려움이 있을 때 정신적 상담원인 정신과 의사를 자주 찾아야하는 사회가 돼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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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인식체계의 예절과 습관

 

가난한 환경에서 살다가 풍요로운 사회에 가보면 적응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나는 1960년대에 군대생활을 했다. 논산훈련소에서 기본교육을 마치고 부대배치 대기 중 미군식당에서 식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식사시간이 되면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빵과 음료수가 무제한 제공되고 있어 처음에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됐다. 우리는 너무 어렵게 살아왔기 때문에 그런 먹을 것이 풍부한 환경에서 살아보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빵과 음료수는 금방 동이 났다. 처음에는 떨어지면 채워 놓더니 나중에는 채워지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고나니 빵과 음료수는 제자리를 찾았다.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빵과 음료수를 탐하지 않게 적응됐기 때문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라고 하지만 그렇게 쉽지가 않다.

유럽의 식당에 가면 그 들은 입고 간 코트를 식당입구에서 벗어놓고 들어간다. 이런 관습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는 쉽게 동화되기 어렵다. 식당에 벗어놓은 신발마저 책임질 수 없다는 환경에서 자란 우리들의 습관이 선뜻 고쳐질 수 없어 코트를 들고 들어가 식당의자에 걸쳐놓게 되는데 그들에게 이상한 눈총을 받게 된다.

환경에 따라, 습관에 따라 습득된 인식체계(paradigm)가 쉽게 변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자신들이 살아온 환경과 경험에서 형성된 인식체계가 만들어낸 일종의 색안경과 같다. 그 색안경을 쓰고 이 세상을 바라보며 그게 옳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 뿐인가? 유럽여행 중 제일 싫어하는 것이 화장실 갈 때 요금을 내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화장실이 개방돼 있지만 유럽에서는 돈을 내야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 문화가 대부분이다.

화장실을 깨끗이 청소하고 관리하는 데는 인건비와 관리비가 들어가기 때문에 사용료를 받는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것에 익숙하지 않아 얼마 되지 않는 사용료의 지불을 기피한다.

따져보면 그렇게 많은 돈을 내는 것도 아니다. 우리 돈으로 약 50원 정도다. 많은 돈이 아닌데도 평소에 익숙하지 못해 거부감이 생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식체계를 바꾸는데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어느 지방이나 나라에 따라 환경이 다르고 습관이 다르고, 삶의 방식이 다르다. 도덕과 윤리마저 그 내용과 형식이 지역의 사회 환경에 지배를 받는다.

이 세상을 살면서 주위나 자신이 만든 색안경을 쓰고 그 색깔로 세상을 바라보며 그 색깔이 늘 옳게 여겨지기 때문에 객관적인 실체를 보기가 어렵다. 색안경을 벗어보려는 시도조차 행하기 쉽지 않다.

우리는 기본원칙에 따른 근원적 사고라고 할 수 있는 정직성, 공정성, 성실성, 존엄성, 평등성, 자유 등 영구불변의 가치가 유지되어야 함에도 불고하고 조그만 이해관계에서 원칙에 위배되는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하면서 자기가 정해놓은 성공적인 삶을 향해 살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 수 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한다면 각자의 생각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받아들이고 행동할 수 있지만 양심에 따른 기본원칙이 존재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우리가 손대지 않고 코를 푼다든가, 속임수로 부자가 된다든가, 씨 뿌리지 않고 추수하는 방법이 일시적으로 성공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영원할 수는 없다는 것은 누구나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때로는 정직하고, 규칙을 지키고, 예의를 바르게 행동하면 손해 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자기의 양심을 속이지 않은 삶이 자신에게 큰 보람과 좋은 결실을 맺게 한다.   

예의라는 것도 표면적으로 본다면 형식에 불과하다. 그러나 본질을 들여다보면 다른 사람에 대한 존경과 배려, 사랑의 표현으로 마음속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우리가 정하는 규칙은 어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자유로운 활동범위를 다소 억제하는 것 같다. 공정한 규칙이라고 하지만 때로는 규칙에서 모순이 발견되기도 한다.

일례로 오늘날 스마트 폰이 매우 발달하면서 적응하지 못하는 노인들에게 오히려 고통을 안겨준다. 오늘날 예약문화가 형성돼 젊은이들은 문명의 이기인 스마트 폰을 잘 활용해 발 빠르게 행동함으로서 노인들이 늘 뒷전으로 밀려난다.

같은 평등한 조건에서 모든 예약제도가 시행된다고는 하지만 노인들이 젊은이들의 행동을 앞지르기는커녕 뒤따라가기도 어렵다. 멀리 가야하는 노인들이 기차의 입석을 차지해야 하는 모순이 찾아온다. 아니 입석조차 얻을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잘못된 사회 환경이다.

극장에 가도 좌석은 현금대신 신용카드로 결재한다. 노인들이 우왕좌왕하는 동안 좋은 좌석은 끝이 난다. 아니 같은 스마트폰을 쓰더라도 젊은이들과 경쟁할 수 없다.

깊은 생각 없이 마련된 규칙을 언뜻 바라보면 대단히 공정한 것 같다. 누구나 필요한 사람이 공정한 경쟁에서 배려 없이 정해진 규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노인 좌석을 만들어 놓는 등 크게 배려 하는듯한 규정도 있다. 그러나 이런 배려가 오히려 잘못된 사고(思考)에서 나왔다. 그래서 노인들을 제대로 배려하지 못한다. 젊은 사람들이 볼 때 노인은 노인석으로 가서 앉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바람직한 예절이라면 노인 좌석을 없애고 젊은이들이 노인을 보면 자리를 양보하는 예의가 더 좋은 삶의 예절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점점 늘어나는 노인들을 위한 좌석이 점점 늘어나야 한다. 그렇다고 노인석을 점점 늘리게 되면 젊은이들이 부당하다고 불평할 수 있다.

인위적인 사회적 규칙을 정한다기 보다 자연의 이치에 따르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노인이나 불편한 사람에게 양보하는 사회라면 구태여 지정석을 정해 놓지 않고 자리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서로 양보하지 않기 때문에 만들어진 편법이다. ‘젊어서 자리를 양보하면 그 자리가 늙어서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회라면 지정석과 같은 효율적이지 못한 규칙이 필요 없다.

우리나라의 새로운 법이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리고 그 법이 걸림돌이 되어 사회발전을 저해하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법을 인정하지 못하여 모든 재판이 대법원까지 가야 끝이 난다. 아마도 3심제도가 아닌 5심제도 그 이상이라면 재판천국이 될 세상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법으로 해결하려는 세상이 돼간다. 잘못된 세상이다. 성문법보다 불문법이 더 효율적이다. 법망을 피해 살려고 하지 말고 양심에 따라 사는 근본적 삶을 추구해야 한다. 그래서 예의범절이라는 것이 생겼고 기본질서를 지키는 아름다운 삶이어야 한다. 자녀들에게 올바른 예의를 가르쳐야할 이유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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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스스로가 인정해야 하는 잘못

자녀가 어떤 잘못을 했을 때 우리는 급한 마음으로 보통 자녀의 결점과 잘못을 먼저 지적하기 쉽다. 그것도 화난 얼굴로, 또는 매우 비판적인 태도로, 고압적 자세로, 자녀들이 위압감을 느끼게 한다. 마치 그래야 잘못이 개선될 것으로 착각한다.

부모는 자녀들의 옳지 못한 행동을 접하게 되면 화가 치밀고 자녀보다 우위에 있다는 생각 때문에 해서는 안 될 꾸지람, 폭언을 하게 된다. 다시 말해 자녀에 대한 인격을 무시하게 된다.

내가 이렇게 화를 냈으니까 잘 알아들었겠지! 생각하지만 감성적이고 아직 논리적인 사고가 부족한 어린 자녀들에게 이해되지 않는 행동에 불과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해야 하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어린 자녀들의 잘못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말고 한번쯤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한발 물러서 생각할 여유를 가져야한다. 한바탕 화풀이를 한다고 상황이 달라지거나 좋아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화를 참지 못하여 과격한 꾸지람을 할 수도 있다. 그럼으로 잘못에 대한 본질을 잊게 하고, 대화의 단절을 가져오며 갈등의 골이 깊이질 뿐이다. 서로의 좋은 감정계좌의 잔고만 축나게 된다. 부모는 화부터 내지 않는 습관이 절대 필요하다.

한발 물러나서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기 위해 평상시 필요한 사전준비를 해야 한다. 순간적인 감정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사전에 어떤 지침을 늘 마음속에 가지고 있어야한다.

늘 침착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자녀들의 좋은 점을 찾아 칭찬을 해주고 다음에 그런데 이러이러한 점은 이렇게 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라고 제안해서 불안감을 갖지 않고 자기스스로 잘못과 부족함을 충분히 느끼도록 해야 한다.

먼저 결점과 단점을 지적한다면 아이들뿐 아니라 누구라도 우선 방어적인 마음이 생겨 부모가 들려주는 지도가 먹혀들지 않게 된다. 급한 마음으로 결점과 잘못에 대한 단언적, 선언적 표현의 지적은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도 주의해야한다.

나쁜 행동이나 결점을 점차적으로 교정해 가기위해 매사를 아직도 멀었다.’고 부정적인 표현을 하는 것 보다 매우 좋아졌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훌륭한 결과를 얻을 수 있겠다.’라고 긍정적인 표현이 중요하다.

먼저 칭찬해야할 부분을 찾고 칭찬을 아끼지 않아야 경청하여 반성하고 개선할 용기를 갖게 된다. 먼저 칭찬이 아이들을 적극적이고 진취적으로 만들어 존재감을 키워가는 원동력이 된다. 학식과 재능이 넘쳐도 용기가 없다면 스스로 행동이 연약하고 무능하게 된다.

공부는 잘하지만 적극적 실천과 활용이 미약하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용기를 내어 아는 것을 지혜롭게 행동으로 실천해야 힘이 된다. 물론 앎이 첫째요, 실천이 둘째다. 이것이 모든 창조의 두 단계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자녀가 확실한 천재성이 보인다면 칭찬을 절제해야한다. 무엇이든 잘한다고 칭찬이 지나치면 오만하게 되어 안하무인이 되기 쉽다. 오히려 자만심을 키우게 되어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우리는 머리를 숙여야 배움을 얻을 수 있다. 영어의 이해하다, 알아듣다(understand)란 단어를 보자! ‘아래로 내려선다.’란 뜻이다. 겸손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의 지혜를 얻지 못한다.”는 격언을 알도록 해야 한다.

오만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하기 쉽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지 못한다. 겸손이 사라지면 사회에서 리더가 될 수 없고 남과 어울릴 수 없게 된다.

존재감이 약화되면 겸손하지 못하고 공격적이 되고 상대방의 방어적 자세를 결코 누그러뜨릴 수 없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의존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의존하지 못하면 누구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늘 상대방에 대한 방어를 준비하게 된다. 방어적 상태에 있는 상대방을 자기편으로 참여시킬 수는 없다.

자주 화를 낸다면 친구로 사귀기도 어렵고, 협조를 얻을 수도 없다. 여기서 겸손이란 자신의 자존심, 자존감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우선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해서 환심을 얻어야 자기의 뜻을 펼 기회가 찾아온다는 의미다.

겸손이란 누구든지 알 수 있고,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에는 아무 때나 먼저 나서지 말라는 의미다. 그러나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에는 자기의 능력과 최선(最善)을 다 발휘해야한다.

잘 알면서 모른다고 자신을 낮게 표현하고 행동하는 것은 결코 겸손이 아니다. 동양에서 어느 정도 이해되지만, 서양에서는 누구도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서양에서는 상대방이 공식석상에서 많은 칭찬을 했는데 약간의 겸손은 필요하지만 절대적으로 부정적 언사를 사용하면 오리려 칭찬한 사람이 당황하게 된다. 칭찬한 사람을 거짓말쟁이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살다보면 꼭 지켜야 할일이 발생한다. 가지고 놀던 장난감은 스스로 치우고 정돈하기, 식사 후 이 닦기, 외출하고 돌아오면 손발 씻기, 등등의 규칙을 자녀들과 함께 정해 놓으면 처음에는 스스로 하고 싶어 하지만 그때그때 칭찬이 없으면 그 힘을 점점 잃어간다.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공공시설인 전철, 지하철, 버스, 식당, 도서관 등에서 여러 사람이 같이 사용할 때 지켜야할 여러 가지 예의와 규칙을 알려주고 행동해야할 사항을 세밀히 알려 주어야한다.

공공장소라고 어린 아이들을 꼼짝도 못하게 묶어놓을 수는 없다. 어린 아이들의 인내심은 오래 갈 수 없다. 때문에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새로운 책이나 간단한 새로운 놀잇감의 준비다.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잠시 스마트폰을 쥐어 줄 수도 있다.

3, 4세가 되면서도 부모로부터 늘 불만스럽게 대접 받았던 아이들은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과격한 행동으로 돌출될 수 있다. 생떼를 쓰고, 자기 머리를 찧는 등 자해를 하면서 부모의 관심과 부모를 굴복시키려는 행동을 할 수도 있다. 그런 행동에 힘으로 제압해서 결코 교정되지 않는다.

이런 행동의 원인을 찾고 치유해야 한다. 부모의 사랑이 부족해서 오는 행동이다. 욕구불만을 그렇게 행동해서는 결국 자기가 손해라는 것을 알도록 해야 된다. 그렇다고 불쌍하다, 안쓰럽다. 무섭다.’ 생각해서 요구를 들어주게 되면 나쁜 버릇으로 유혹되어 점점 심해질 수 있다.

어머니가 자신에게 관심을 갖지 않게 될까봐 어머니를 때리고 괴롭히는 경우도 있다. 어른들끼리 수다를 떠는 중에 아이들의 요구를 무시하게 되면 아이들은 점점 더 큰 소리로 요구하고, 울부짖게 된다.

그때서야 관심을 갖고 즉시 해결해 주면 아이들은 ! 큰소리로 요구해야 해결되는구나!’ 그래서 다음에 더욱 큰소리로 울부짖게 된다. 이는 스스로 독립해 활동할 수 없을 때 강한 의존적 심정에서 출발한다. 어머니의 사랑을 인정받고 싶은 행동이다.

자녀들의 행동에 대해 늘 독립심을 길러주고, 인정받고, 존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 무엇을 스스로 하려고 할 때 위험하고 터무니없는 행동이 아니라면 너는 훌륭히 해낼 수 있을 거야!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나는 네가 잘 할 수 있으리라 믿고 사랑한다.’라고 믿음과 용기를 보내 주어야한다.

진정한 사랑은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나쁜 행동을 했을 때 설명하고 설교해서 이해를 구한다거나, 타협하거나, 타이르거나, 대안을 제시하여 행동을 멈추게 해서는 근본적으로 교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때로는 부모들이 잘못을 엄하게 꾸짖고, 설득하고, 대안을 제시하게 되면 해결되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은 일시적인 해결방법이지 스스로 잘못을 납득하고 해결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확실히 고쳐지지 않는다.

그러면 안 돼!’ ‘얌전히 있어야 돼!’ ‘떠들면 매 맞는다!’ ‘가만히 있어야 돼!’ ‘엄마는 그렇게 하면 싫다!’ ‘말 잘 들으면 과자 사줄게!’ ‘말 잘 들으면 업어줄게!’ ‘말 잘 들으면 사탕 하나 더 줄게!’ 등등 행동하지 말라는 명령이나 설득, 대안으로 일시적 교정은 되지만 근본적으로 왜 그렇게 하면 되고, 안 되는지 스스로 납득하여 알지 못한다. 결국 스스로 자기 잘못을 잘 알지 못해 교정되지 않는다.

엄하게 꾸짖으면 힘이 약해서 굴복할 것이고, 설득하면 잘 이해가 안 되지만 부모가 싫어하는 것 같아 행동을 멈추게 되지만 스스로 잘못을 깊이 깨달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완전한 문제해결로 보아서는 안 된다.

세계적으로 가장 존경받는 리더십의 권위자 스티븐 코비, 아동심리학자 엘리자베스 버거, 멜라니 클라인 등도 자녀교육에 대한 이론은 누구 못지않게 정립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다른 사람 앞에서 강의를 해왔지만 정작 자기 자녀들의 어긋난 행동 앞에서면 당황하고, 울고, 웃는 평범한 부모와 다름이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만큼 어린 자녀를 옳게 기른다는 것이 쉽지 않다.

모든 것을 늘 자녀의 눈높이 중심으로 옮겨 생각하고 행동해 볼 수 있도록 유도해야 된다. ‘다른 애가 그렇게 행동했다면 너는 어떻겠니?’ ‘어떠어떠한 행동은 너라면 어떻게 하겠니?’ ‘네가 생각하기에 그런 행동이 어떻겠니?’ ‘네가 엄마라면 어떨까?’라고 아이의 중심의 생각을 물어보아 스스로 문제의 중심에 서서 잘못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반성하고 잘못된 행동을 고칠 수 있다.

좋은 습관을 기르는데 내면적으로 올바른 욕구, 올바른 인식, 올바른 행동이 반복되어야한다. 그러나 성숙해가는 영유아들 자신이 욕구, 인식, 행동이 바르게 일어나는지 확신할 판단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부모님들의 올바른 지도가 절대 필요하다.

좋은 습관과 행동으로 자존감을 어린 시절에 키우지 못하면 청소년시절 아니 성인이 되어도 자신을 존귀하게 생각지 못한다. 자존삼이 삶을 강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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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요구에 냉정한 판단과 행동

부모는 자녀의 행동에 대하여 어떤 보상이나 질책(체벌포함)을 통한 교육보다 자녀의 발달과정에서 적합한 개별화된 환경을 제공함으로서 스스로 선택하고 안정된 자유와 기쁨 속에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한다.

요즈음 젊은 부모는 아이들에 대해 어떤 행동이든 제지하면 기를 죽인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잘못 인식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터무니없는 요구를 한다고 생각 될 때 바로 과감하게 저지해야한다.

만 세살이 되면 비록 신체적 발달은 어리게 보이지만 생각은 어른과 거의 같다고 봐도 된다. 자세히 설명하면 자기 행동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시기다.

자녀의 요구를 무조건 꺾는 것보다 이유와 타당성을 설명하고 잘 타이르면 이해할 수 있고, 알아듣도록 설명한다면 부모의 교육을 잘 따르게 될 수 있다. 잘못된 행동이 일어나면 곧바로 즉시 단호하게 금하도록 해서 함부로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

어린 자녀들의 잘못을 시간이 흘러 다 잊은 후 잘못을 타이르거나 이해시켜 보려는 것은 잘못이다. 때때로 영유아의 요구를 처음에 들어주지 않다가 너무 보채면 들어주기 쉬운데 그렇게 되면 끝까지 떼를 쓰는 나쁜 버릇을 심어주게 된다.

부모는 처음 자녀의 행동을 심사숙고하게 판단하여 들어줄 수 없는 요구는 끝까지 안 되는 것으로 일관해야한다. 조금 떼쓰면 측은하게 생각되어 잘못된 요구를 들어준다면 다음은 보다 강한 요구가 시작된다.

강하고 냉정하게 요구를 제지하는 부모의 행동은 자녀가 미워서가 아니라, 기를 꺾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잘못된 행동이나 생각을 바로잡아 주기 위함이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지체 없이 당장 일깨워 주어야한다.

슈퍼마켓 등에 같이 가서 충동적으로 갖고 싶어 하는 것을 모두 만족시켜 줄 수는 없다. 시간이 걸려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확실히 구분해주고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야 된다. 사주는 것도 왜 사주는지 이유를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

불필요한 것을 사달라고 떼를 쓰게 되면 처음에 거절하다가 소란스러워, 주위의 다른 사람들을 의식해, 들어주게 된다면 다음에 더 크게 떼쓰게 되는 나쁜 버릇을 길러주게 된다.

때문에 시장이나 마트에서 물건을 구매할 때 미리 같이 목록을 서로 이야기하며 작성하고 목록에 없는 것은 사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 목록에 있는 것만 사는 행동을 미리미리 알려주고 보여주어 충동구매를 하지 않는 행동의 교육이 꼭 필요하다.

억지 부리는 자녀들에게 공포감을 주어서는 안 된다. 울고 떼쓰는 동안 숨어버려 공포감을 주는 것은 좋은 방법이 못된다. 부모에게 버림받는 깊은 상처는 두렵고 믿을 수 없는 세상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각인되어 양보할 줄 모르게 되고. 두려운 감정의 끈을 풀려고 하지 않게 된다.

조그만 잘못이라고 그대로 넘어가거나 가볍게 환기시키고 지나치면 내성이 길러져 점차 더욱 심하게 꾸짖어야한다. 옛말에 호미로 막을 데 가래로 막아야한다.”고 한다. 우리가 아플 때 약을 집중적으로 먹지 않고 먹다말다 하면 내성이 생겨 지병이 되고 고치기 어렵게 된다.

아이들도 조그만 잘못은 타이르데 엄하게 하고, 심히 잘못 되었을 때 냉정하고 따끔한 꾸중을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체벌하겠다는 엄포도 좋지 않다. “너 자꾸 그러면, 또는 너 떼쓰면하고 협박적 저지도 좋지 못하다.

잘못을 적당히 얼버무리고 넘어가지 말고 정확하고 확실하게 알 수 있도록 지적하는 것이 좋다. 특히 윤리와 도덕적인 문제에서는 더욱 단호해야한다.

지하철 등 공공시설에서 다른 사람에게 불편한 행동을 계속한다면 조용히 타이르고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중간에 내려 따끔하게 제지해야한다. 목적지에 가지 못하고 왜 내려야 했는지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잠깐만 참았더라면 잘할 수 있었는데 노력하지 않았다는 가능성을 알려주면서 꾸짖어야한다. “크면 달라지겠지또는 어려서 그런 거야!”하고 적당히 넘어가면 커서도 같은 잘못을 반복하게 된다.

학교 수업시간에 늦는 학생에게 정확히 지적해주지 않고 넘어가면 다음에도 지각을 하고, 그 영향이 다른 학생에게 오염되어 지각하는 학생 수가 늘어나게 된다. 지각한 학생의 이유를 확실히 해 두어야 그 다음 수업이 완만하게 진행될 수 있다.

어떤 잘못이 있을 때 너는 00을 잘할 수 있었는데 노력을 게을리 했구나! 너는 00을 잘할 수 있어! 나는 너를 믿는다. 최선을 다해보자!”라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서 스스로 무엇이 모자랐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스스로 깨닫게 된다면 교육은 성공이다.

중요한 것은 부모에 대한 좋은 감정계좌의 잔고가 많이 쌓여 있을 때 자녀의 조그만 잘못도 엄중하게 꾸짖을 수 있다. 부모와 좋은 감정이 소진돼 있을 때는 꾸중의 효과가 없다. 오히려 부모를 멀리하려고 해 교육에 실패할 수 있다.

그리고 따끔한 꾸짖음 후에 마음이 가라앉으면 차분하게 감싸주어 미워서 꾸짖은 것이 아님을 알게 해야 한다. 즉 늘 사랑하고 있음을 말과 행동으로 전해야한다.

그럼으로 꾸짖음에 의해 줄어든 감정계좌의 잔고를 다시 채워 놓을 수 있어 감정관계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평상시 아이들과 같이하는 시간을 많이 갖고 유쾌하고 즐거움을 선사해야 감정관계가 좋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늘 사랑하고 있다는 표현을 전해야한다.

그리고 조그만 일에도 칭찬이 필요하다. 말을 잘 들었을 때도, 새로운 행동을 했을 때도, 잘했다는 표정이 역력할 때, 칭찬을 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너무 바쁜 시간을 보내더라도 늘 칭찬을 준비해야한다. 아들은 칭찬을 먹고 자란다.

칭찬방법은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부각시켜야 하고, 그리고 자녀들이 잘해서 부모가 고맙다는데서 결말을 지어야한다. 잘한 그 자체의 칭찬보다 부모의 마음이 즐거워져서 고맙다는 것을 강조해야 된다. 그것이 타인의 고마움을 배우게 하는 방법이다.

정체성이 올바른 습관으로 자녀를 키우기 위한 어떤 것이 교육에 필요할까?

정직하고 성실한 습관

예의를 잘 지키는 습관

관용과 사랑을 실천하는 습관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생활습관

자신감, 자존감을 키우는 습관

인내와 끈기로 역경을 극복하는 습관

포용과 겸손, 감사할 줄 아는 습관

책임감을 다하는 습관

경제관념이 확실한 습관

건강하게 살아가는 습관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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