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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잠재력이 강한 민감기(敏感期)에 상응하는 교육

언어, 운동, 감각 등에 대한 민감기(敏感期)에 처해있는 영유아 시절 상응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여야 하며 이러한 성취 욕구에 알맞은 행동과 학습(놀이)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부단히 돌봐주어야 한다.

다시 말해 싫어하지 않는 한 새로운 교육환경을 지속적으로 제공해 주어야 한다. 영유아시절에 배울 기회를 방치하는 것이 가장 나쁜 교육이라고 했다.

영유아시절은 양육되어야 할 시기로만 착각해서 그 외에는 방치하여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태에 두어서는 안 된다.

무한히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는 이 시기에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 것이 결정적 시기를 지나치고 있는 것이다. 잠이 깨여있는 동안 올바른 교육이 반복적으로 지속돼야 한다.

영삼이 시절부터 천성적으로 갖추고 있는 잠재력이 신체발달과 재능발달이 더불어 펼쳐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만 어떤 경우나 단계적 학습으로 싫증을 느끼지 않도록 하고 능력에 반하는 선행학습은 삼가야 한다. 자녀의 행동에 부모나 어른들이 일일이 반응해 주어 즐거움을 보일 때 새로운 지능, 감정, 운동, 언어 등에서 다양하고 풍부한 발전을 가져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녀가 품고 있는 감정통장의 잔고를 높여가기 위해 많은 경험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새로운 품격의 지도를 그리기위한 시작이다.

보다 훌륭한 새로운 지도(地圖)를 작성하기 위해 심사숙고해서 지도(指導)해야 한다. 잘못된 지도가 그려지면 삶의 목표는 찾을 수 없고 미아가 되어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게 된다. 인간의 삶에 대한 시간과 기회는 영원하지 않다.

1907년 이탈리아의 마리아 몬테소리(Maria Montessori) 여사는 로마의 빈민가에어린이 집(Children's House)을 만들고 자기의 이론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몬테소리 여사 자신은 아이들로부터 배웠다.”고 했다. 무엇을 배우기 위해 몰입(沒入)하는 아이들의 특성을 발견한 것이다. 아이들은 지능과 재능, 정서, 사회성, 질서, 안정감까지 모두가 주위환경에서 스스로 습득하는 강력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영유아들은 좋은 환경만 제시하면 강인한 노력으로 스스로 학습하게 되는데, 방해하지 말고 조력자로 남아 기다려 주면 끊임없이 노력하고 체험에 의해 깨닫고 배운다는 것이 몬테소리 여사의 주장이다.

몬테소리 여사는 집단교육보다 개별교육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했다. 아이들의 개개인에게는 각자 능력과 발달 과정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전인 1762년 루소에 의해 집필된에밀에서 근대교육의 이념을 담고 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개별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는 지금도 경제적 이유로 학교에서 일제수업(一齊授業)을 할 수 밖에 없는 교육환경이지만 영유아뿐만 아니라 청소년 교육도 되도록이면 능력별, 개별적인 교육이 실시되어야 바람직하다.

우리 조상들은 학당, 서원에서 여러 제자들에게 개별적인 학습을 실행했다. 어린 아동으로부터 성장해 결혼한 제자들까지 한데 모아 놓고 각자의 능력별 학습을 실행했다.

학문(學問)이란 배움을 묻고 대답하는 활동이다. 일제수업보다 개별학습에서 문답(問答)이 더 많이 형성될 수 있다.

정리한다면 사람은 영유아의 수용단계를 거쳐, 소년기의 표현단계로 이어지고, 청년기의 개척단계로 발전된다. 수용단계에서 인간의 기본원칙에 입각한 사고와 행동을 수용하지 못하면 표현단계, 개척단계의 발전은 크게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시작이 좋아야 끝이 좋다.”는 격언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영유아에게는 스스로 모방하고 배우려는 강력한 힘이 있지만 오감을 활용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해 있다면 스스로 성장할 수가 없다.

자녀를 기르는 부모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 한다.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부모 자신이 공부하고 수신(修身)해야 한다. 자녀를 잘 키운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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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교육에서도 "시작이 좋아야 끝도 좋다."

"시작이 좋아야 끝도 좋다."는 것은 모든 세상 원리에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세상의 이치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식물을 관찰해보면서 될성부른 식물은 떡잎부터 다르다.”라고 말 한다. 이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경험에서 배운 지식이다.

, 떡잎이 건실해야 튼튼하게 자라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삶의 체험으로 알고 있다. 떡잎이 좋은 식물이 잘 자라 좋은 결실을 얻는데 확률이 컸기 때문에, 아니 확실하기 때문에 좋은 떡잎의 식물을 골라 잘 가꾸려고 한다.

동물 또한 다를 바 없다. 그런데 한동안 그 이치를 자녀교육에서 잊고 있었다. 나 역시 영삼이 시절의 교육환경이 매우 중요함을 늦게 깨달았다.

일생동안 영유아시절의 교육이 중요함을 학문적으로 배우지는 못했다. 왜 이렇게 중요한 것을 이 사회에서 특별히 교육하지 않을까?

자녀를 낳아서 건강하게 영삼이 시절을 보내고 유치원, 초등학교, 대학으로 진학하면서 열심히 공부하면 우리가 바라는 자녀의 성공여부가 결정되는 것으로 굳게 믿었다.

우리는 대부분 청소년 시절의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 아마도 지금 여러 부모님들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분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음을 늦게 알았다는 것은 자식에 대한 바람직한 교육의 결정적 시기를 잃었다는 의미다. 작게는 개인적 발전의 손실이지만 크게 본다면 사회, 국가, 인류의 발전에 공헌하지 못한 것이 된다.

모든 아이들은 영삼이 시절부터 강한 잠재적 천재성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그 잠재적 천재성을 찾고 개발하고, 유지해 주지 못하는 것은 어른들의 책임이다.

주위가 깜깜하고 맑고 쾌청한 깊은 밤에 끝없이 펼쳐지는 하늘을 우러러 보지 않고는 우주의 무한함을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이 세상에 태어난 아이들은 어른들의 무지한 그늘에 가려지지 않고 무한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의무가 어른들에게 있다.

공자(孔子)의 말씀과 같이 청소년 시절에는 배움에 진력하고(學業), 성인이 되면서 자신의 뜻을 세워(立志) 스스로 절대적 빈곤을 해결하고(生業), 중년이 되면 오직 물질적 부와 환락에 유혹되지 않고(不惑), 중년을 넘기면 하늘의 뜻을 깨달아(知天命) 이치에 순응하며(耳順) 사회에 무엇인가 공헌을 할 수 있어야하고, 더 늙으면 어떤 행동도 세상의 법도에 어긋남이 없어(不踰矩) 모든 사람의 귀감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인생의 바람직한 삶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영유아 시절에 길러진 튼튼한 초석이 구비돼야 한다. 보석으로 말한다면 무엇보다도 어린 시절 좋은 원석을 얻어야 후에 가공해서 훌륭한 보석으로서의 가치를 갖게 된다. 영삼이 시절에 좋은 원석을 구해놓지 못한다면 아무리 세공의 귀재라도 값진 보석을 만들어 낼 수가 없다.

노벨 수상자들이 하나같이 제일 많은 가르침을 받은 곳이 유치원이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을 상기해보자! 영삼이 시절을 포함한 유아시절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약하기 때문에 가장 바람직한 교육환경이 주어져야할 필요성이 대두 된다.

어른들의 영향력을 가장 많이 받고 자라는 어린 시절이기 때문에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해야한다는 중요성을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어린 시절 기본바탕에 충실해야 그 다음에 연결되는 청소년기를 맞아 스스로 훌륭한 신념, 비전(vision)을 키워갈 수 있기에 잘 돌봐주어야 한다.

, 제 갈 길을 개척할 수 있도록 어려서 자질을 길러주고, 장점과 끼를 찾아주고, 될 수 있다는 희망,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어야 한다.

그러기위해 부모는 늘 곁에서 상담자가 되고, 다정한 친구가 돼야 한다. 깊은 관심으로 도와주고 기회를 부여하데 간섭은 하지 말아야 한다.

간섭은 왜 하는가? 부모들이 생각하고 있는 한계에서 아이들의 행동이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은 아이들 개체를 인정하기보다 자기 자신의 기준에서 합당한 지도를 하고 싶어 한다. “나는 비록 OO하지만 너는 OO하게 돼야 한다.”는 욕망 때문이다.

물론 인생의 선배로서 지도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자기 자신의 뜻을 실현하고자 함은 자녀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는 행동이다. 선배로서 충분히 기회를 주고 최종적 결정은 스스로 하도록 옆에서 바라봐야 한다.

우리의 문화가 발전되는 것은 자연환경으로부터 시작해서 인위적인 삶의 추구를 위한 부단한 노력으로 형성되는 것이고 또 이어져 발전한다.

이미 만들어진 문화를 영유아들이 보고, 듣고, 생각하고, 행하면서 그 문화 속에 살아간다. 그리고 문화의 발전을 꾀한다.

우리의 교육은 한 시대 속에 살면서 삶, 문화, 문명을 지속시키면서 개개인의 개성적 인격을 만들어 간다. 영유아들은 어떤 자연환경, 어떤 문화, 어떤 문명에 태어나는가에 따라서 그 환경에 잘 상응하는 행동방식을 스스로 터득하여 행동하게 된다.

그런데 그러한 문화와 문명을 익히는데 영유아들은 본질적으로 자생적 자기형성의 힘 즉, 잠재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이때 낡은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인도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조성해 주는데서 만족해야 한다.

이러한 잠재력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영삼이 시절부터 잘 돌보고, 그 결정적 시기가 한정돼 있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대쳐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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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는 든 사람, 난 사람보다 된 사람이 되도록 돌봐야 한다.

여러 번 강조하고 있지만 명석한 두뇌와 창의력에 의한 창조적 활동의 바탕에는 늘 인간에게 갖추어져 있어야할 윤리와 도덕성이 갖추어진 인성(人性)이 구비돼 있어야 한다.

우리는 홀로 사는 사회가 아니라 더불어 사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아니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적어도 자연이 주는 혜택에 배반하지 않는 삶이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는 자존감을 갖고 산다. 내가 '누구인데'라고 생각하는 것. , 자신의 양심과 자아의식체계 속에 자신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합리적이고 옳다는 주장을 하게 된다.

물론 객관적일 수도 있지만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고집하면서 다른 이론에 대해서 필연적으로 불신하는 아상(我相)을 갖기 쉽다. 나아가 자기에게 가까운 우리만이 옳다는 자아의식에 따라 상대를 구분하려는 인상(人相) 또한 존재하게 된다.

인간의 삶에서 인성(人性)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은 이런 아상과 인상 등의 아집(我執)에서 다소 벗어날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지능과 재능이 특출한 천재, 수재라고 판단되는 아이들일수록 자기중심적 사고에 집착하여 일반인에게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로 분류되기 쉽다.

사회생활에서 재주가 인성을 앞서가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보편적인 사실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우선 인성교육에 의해 좋은 성품을 길러야 함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된다. 다시 말해 모두가 바라는 성공은 인성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성공이란 무엇인가? 성공에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내적인 성공과 외적인 성공이다.

내 자신이 바라는 것이 이루지면 내적인 성공이고, 남이 바라는 것을 해냈다면 외적인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 대내외적으로 사랑받고 인정받는 결과가 진정한 성공이다.

중요한 것은 외적인 성공보다 내적인 성공이 더 자신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의 내적인 성공에 대한 가치관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물론 성공은 시대적 가치관에 따라서 기준이 달라질 수 있지만 그러나 성공이란 나를 포함한 모두가 바라는 바람직한 삶으로 이끌려지는 성공이여야 한다.

성공하는 데는 영삼이 시절부터 건강한 육체, 훌륭한 성품, 탁월한 지능과 재능을 발전시켜야 함이 필요조건이고, 영삼이 시절과 유아시절을 발판으로 청소년 시절로 이어지며 지속적인 탐구와 노력을 다하여 바람직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힘을 길러주어야 충분조건이 된다.

삶의 지혜란 무엇인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총 동원하여 삶에서 중요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분간하는 힘이다. 언행의 일치, 순수, 근면, 성실, 겸손, 용기, 사랑과 믿음 등의 덕목을 양심에 따라 기르는 좋은 성품과 습관을 갖도록 노력하는 것이 지혜를 활용하기 위해 필요하다

그런데 공공생활에서 인륜과 도덕을 저버리고 지능과 재능만을 앞세운다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된다. 지능과 재능을 기르는 데만 중점적인 교육으로 치닫게 되면 균형을 잃은 교육이 된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사고에 빠지기 쉽다. 이는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진해야 된다는 뜻이 된다.

잘못되면 도덕적 가치관이 상실되고 지능과 재능만이 발달하여 조직 폭력배의 두목이 될 수도 있고, 사기꾼이 될 수도 있다.

사회의 지탄을 받는 대상이 되는데 지능과 재능이 발달돼야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지능과 재능을 높이기 위한 교육에 매진할 수 있겠는가?

사회에서 요구되는 성품은 비록 지능과 재능이 다소 부족할망정 덕망 있는 인간, 인격적으로 된 사람을 원하게 된다. 지능과 재능에 앞서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사회는 많이 배워 지식이 축적된 든 사람, 재주가 많아 사회의 다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난 사람, 덕망 있고 인간성이 훌륭한 된 사람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 사회는 든 사람, 난 사람보다 된 사람이 많아야 좋은 사회구조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 대학원으로 연결되는 동안 지식중심의 든 사람을 선택하도록 너무나 편협한 방향의 교육이 성행한다.

진학은 든 사람 위주의 높은 지식을 요구하고, 직장 또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 우선 평가한다. 평가기준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지식평가 쪽으로 치우쳤다.

문제는 얼마나 알고 있어야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는지 평가할 것이 아니라 학교는 학업을 지속할 수 있는 학력을 소지하고 있는지 자질평가로, 직장 또한 업무에 필요한 자질평가로 끝내고, 최종 결정은 인성평가로 결정하는 교육제도와 사회제도가 요망된다.

그런데 인성평가란 매우 어렵고, 객관성이 부족하다는데 문제가 있다. 잘못하면 정실(情實)에 이끌리기 쉽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무엇보다 앞서 재화(財貨)를 많이 획득할 수 있어야 능력 있는 사람으로 평가한다. 이런 물질적 부()를 무엇보다 앞세워 생각하는 사고 때문에 된 사람보다 든 사람, 난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경향으로 잘못 흘러간다.

물론 물질적 부가 필요하다. 인간이 태어나 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절대적 빈곤이 불행을 불러 온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절대적 빈곤이 해결됐다면 부에 집착하다 이승을 떠나는 것보다 인간답게, 보람 있게 의미 있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이 지구상에 왔다가 잠깐 머물고 가지만 정신적, 영적 성장으로 자신은 물론 남들에게 무엇인가 도움이 되는 삶이 의미 있는 삶이다.

그렇지 못하면 후회스런 삶이 된다이 세상을 떠날 때 후회스런 삶이 되지 않는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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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삼이 시절부터 편향된 교육은 위험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보편적 기치를 추구해야 한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전문성도 필요하지만 사회로부터 홀로 떨어져 살게 된다면 아무리 유명해도 불행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우리가 과거 천재, 영재로 유명한 삶을 산 사람들 중 불행한 일생을 보냈다고 생각되는 분들이 참으로 많다. 또한 수명이 짧았던 사람도 많다. 어느 것이 현명한 삶일까?

불행한 일생이지만 유명해지는 인생이 옳은 삶일까? 무명인이지만 주어진 생명이 다하도록 사회에 어울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면서 행복한 일생을 영위하는 것이 옳은 삶이 아닐까?

나는 후자의 경우를 행복한 삶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사람이 죽어서 명예를 남기기 위한 삶을 위해 일생동안 하고 싶은 일도 못하고 살았다면 오히려 불행한 삶이다.

영삼이 시절부터 주어진 환경이 어떤 편협한 상태로 살아가도록 놓아둔다면 세상을 보는 눈에 색깔이 들어있는 색안경을 씌워주는 결과가 된다.

한번 잘못 쓴 색안경을 벗기 까지는 많은 노력과 깨달음이 필요하다. 한번 쓰게 된 색안경을 벗어던지는 데는 인식체계(패러다임 : paradigm)가 바뀌어야 하는데 그게 그렇게 쉽지 않다는데 있다.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인식체계는 옳든 그르든 우리의 태도와 행동의 원천이 된다.

일예로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 사람들이 그림을 그릴 때 늘 하늘을 회색으로 칠한다는 사실을 보라! 구름이 맑게 걷힌 파란 하늘을 잘 보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에 파란 하늘을 그릴 수 없다.

탄광촌 아이들도 맑은 시냇물을 본적이 없어 늘 시냇물은 검은 색상으로 표현한다. 이런 현상이 편협하게 된 교육환경이다.

자녀들이 의존단계에 있을 때 좋은 교육환경을 골고루 제공해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재삼강조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보아 잘못된 색상의 안경을 썼다고 지적하지만 이미 익숙해진 안경을 벗고 세상을 보기란 쉽지 않다.

다른 색상이나 무채색 색상의 안경을 쓰게 되면 불안감과 부자연스러움 때문에 되돌아가려고 한다. 마치 자폐증 환자 늘 다니던 길만 고집하고 다른 길은 다닐 수 없는 길로 인식하는 것과 같다.

특히 예술분야에서 천재성을 발휘했지만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되는 분들이 많다. 영유아시절부터 부모의 욕심 때문에 고립되고 한쪽으로 치우친 편협한 교육환경에서 자라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여러 사람과 어울릴 기회가 적은 환경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위한 편협한 삶을 살아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예능분야에 재능을 가진 분들은 자기중심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환경에서 자라기 쉽다는데 부모님들은 유의해야 한다.

재능이 뛰어난 천재, 수재를 교육함에 있어 어려서부터 여러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고 편협한 잘못된 교육환경에서 정진하도록 한다면 오히려 불행해지는 것은 아닌가?

특히 천재나 영재일수록 영유아시절의 교육에서 적절한 사회교육에 관심을 기우려야 한다. 우리 인간은 집단생활을 하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홀로 아니 몇몇이 어울려 살아가기에는 너무도 넓고 좋은 세상이다. 독립시대에 머물지 않고 서로 상호협력 할 때 시너지효과를 얻을 수 있는 세상이다.

남달리 뛰어난 머리의 소유자는 일반 사람들과 쉽게 어울릴 수 없기 쉽다. 또래들과 활동하기에는 지능의 격차로 시시하고, 나이 많은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상대해주지 않기 때문에 사회성을 기를 수 없는 환경이 되고 외톨이가 되기 쉽다.

그럼으로 머리가 아닌 체력적인 운동을 통한 사회성을 길러주어야 한다. 머리가 좋다고 다른 아이들에 비해 체력이 월등한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운동할 기회가 없어 연약하기 쉽다. 체력에 의한 육체적 활동은 또래들과 언제든지 어울려 놀고 지낼 수 있다.

과거 천재들의 수명은 대개 짧았다. “천재는 단명하다.”고 단정하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천재성에 치중하다가 시력을 저하시키고, 영양공급과 체력단련을 등한히 했기 때문에 신체적으로 허약하기 쉬워 질병에 약할 수밖에 없다.

천재라면 더욱 오랜 삶을 영위하여 인류에게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도록 충분한 영양과 신체적 연마로 건강을 돌봐야 한다.

천재나 영재는 집중력이 강하여 자신의 일에 몰입(沒入)되면 체력을 관리할 기회를 잃어버린다. 우리의 삶에서 체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순간순간 잊고 살게 된다. 주위 사람들의 보살핌이 없으면 건강도 잃고 사회생활에서 외롭게 살 수밖에 없다.

여기서 천재나 영재에 대한 교육을 이야기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자녀들의 교육관점에서 말하고 싶다.

부모의 잘못된 판단이 얼마나 자녀들에게 옳지 못한 삶을 살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지 늘 부모자신의 패러다임을 살펴야 한다.

과일을 따 먹기 위해 오를 나무를 잘못 지정해 줬다면 내려와야 하는 매몰비용(sunk cost)까지 부담시키는 꼴이 된다.

절대의존단계인 영유아 시절에는 한 우물을 깊은 파도록 할 것이 아니다. 나무뿌리가 깊고 넓게 자리 잡지 못하면 크게 자랄 수 없고, 크게 자라더라도 바람에 오래 지탱할 수 없다.

기초가 튼튼하게 다양한 방면으로 머리가 발달해야 함에도 불고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교육은 편협한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살도록 하는 것이다.

수학을 좋아한다고 수학적 지능만 길러준다면 다른 기능을 넓혀야할 기회를 잃게 한다. 의존단계를 지나 독립단계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특성을 개발하고 더 깊이 연구할 분야를 스스로 찾도록 해도 늦지 않는다.

독립단계에서도 과거 한 때는 자기 전공만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공부하면 됐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한 가지 전공만으로 크게 발전할 수 없어 만족할 삶을 살아갈 수 없다.

전공분야와 연관된 분야를 함께 공부해야 한다. 그럼으로 상호협력단계에서 쉽게 적응할 수 있고 융합하면서 시너지효과를 얻을 수 있다. 때문에 부전공을 몇 개씩 택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늘 그랬지만 오늘날 세상은 자심의 전공 이외에 다른 모든 것들과 서로 연관돼 있다. 혼자보다 서로 협력해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시너지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 상호협력단계보다 독립단계가 가장 중요한 단계로 바라보며 끝낸다는 것은 옳지 않다.

상호협력단계가 독립단계보다 못하다는 착각으로 독립성을 추구한다는 미명(美名)하에 이혼도 하고, 자식을 버리고, 부모를 버리고, 친구를 버리는 무모한 행동을 하게 된다.

구속과 속박에서 벗어나겠다는 행동이다.

해방되고 싶다. 자기주장을 하고 싶다. 자신만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 등등의 주장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신이 희생된다는 느낌을 갖는데서 온다.

자신의 정서와 감정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손상 받고 자기 자신의 통제밖에 있다는 사고 때문이다. 실은 자신의 의존성이 외적인 이유보다 자신의 내부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독립단계에서 성숙한 사람만이 상호협력단계로 쉽게 들어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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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영삼이 시절에는 주입식교육이 필요한가?

지식을 얻기 위한 주입식 암기교육이 교육방법으로서 좋지 않다고 하지만 교육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다. 우리와 같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지식평가를 하고 있는 사회에서는 더욱 많이 사용된다.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이 물론 중요하지만 그에 그치지 않고 지혜로 발전시켜 올바른 행동에 옮길 수 있어야 제대로 된 교육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알고 지혜로 발전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더욱이 지혜를 얻어 올바르게 행동하기는 더욱 시간이 많이 걸린다.

영삼이 시절은 지혜까지 요구되는 시기가 아니다. 먼저 안다는 것이 중요한 시기다. 따라서 지식교육은 이미지인식 교육방법으로 주입식 암기방법을 택해도 무방하고 또 권장할만하다.

여기서 말하는 주입식 암기방법이란 인식할 수 있는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기회를 많이 만들어 어휘를 확장시켜 주자는 동기다.

그렇다고 억압하여 어른의 생각을 심어주자는 것은 아니다. 영삼이들에 대한 지식교육은 논리적인 교육이 아니라 감성적 재능교육 방법이 필요하다. 놀이를 통해서든 다른 방법을 통해서 주어지는 교육은 영유아의 눈높이에서 스스로 깨우치도록 많은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모든 교육이 억압되고 강압에 의해 실행되어서는 안 된다. 억압과 강압은 교육효과도 적을 뿐만 아니라 배우는 자체를 싫어할 수 있다.

지식을 넓혀 주는 과정에서 이해와 판단력이 부족한 영삼이 시절은 스스로 양질의 교육내용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부모나 어른들이 양질의 교육내용을 취사선택에 의해서 주입식 인식교육이 실행되어야 한다.

이 시기는 무엇이든지 스스로 받아들이려하는 잠재력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적기(適期)에 양질의 교육내용을 제공해야 한다.

우리가 많이 이야기하는 논리성의 개발교육은 영삼이 시절이 지나 6세 이후 좌뇌가 담당할 때 길러주어야 하는 방법이다.

6세가 넘으면 우뇌의 감성적 사고보다 좌뇌의 논리적 사고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이때부터는 억압식, 주입식 교육을 삼가야 한다.

영상이 시절은 많은 것을 받아들여 뇌신경망이란 뇌세포 간에 길(bus)이 만들어지는 작업 활동이 많아야 한다.

문헌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크게 뇌간, 소뇌, 대뇌로 구분한다. 뇌간은 기본적인 심장박동, 호흡 등을 통제하는 일을 하는데 파충류들도 갖고 있다고 한다.

그 다음 소뇌는 근육조절을 담당하는데, 영유아시절에는 발달되지 못하면 운동신경이 자유롭지 못할 수 있다. 신체적 균형감각, 순발력 등이 증진되도록 오감을 통해 많은 육체적 활동인 율동이나 재미있는 게임을 통해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대뇌는 사고, 정서, 기억 등을 관장한다. 이 역할은 뇌중에서 가장 최근까지 발달된 부분이라고 한다.

대뇌는 추상적인 사고(思考)를 담당하는 전두엽, 감각과 정보를 담당하는 두정엽, 시각을 다스리는 후두엽과 기억, 청각, 언어를 담당하는 측두엽 등으로 나뉜다.

또한 대뇌를 크게 좌우로 분리해서 구별하기도 한다. 각각 다른 임무를 맡고 있다고 하나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 그 기능에 대해서 하는 일은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야하기 때문에 이 정도에서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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