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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야할 합리적인 이유 찾기

이 세상은 하나도 상대적으로 관련돼 있지 않은 것이 없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연기법(緣起法)에서도 상관관계를 강조하신다. 모든 현상이 생기고 소멸하는 법칙과 현상은 무수한 원인과 조건이 서로의 관계해서 성립한다.

그래서 만물은 인연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고 말한다. 인연에 의해 한쪽이 이로우면 다른 한쪽이 해롭게 되는 경우도 있고, 한쪽이 이익을 보면 다른 쪽은 손해를 보고, 저쪽을 도우면 이쪽도 따라서 이익을 받는 경우도 있다. 흩어졌다가 모이고 모였다 흩어진다. 눈에 보이는 물은 아래로만 흐르는 줄 알았지만 수증기로 변해 위로도 올라간다.

다른 한편 사람이 졸고 있으면 옆 사람도 졸리기 쉽고, 한 집이 행복하면 이웃도 행복해진다. 개인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국가도 그렇게 된다. 대중심리가 균형을 잃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크게 흔들린다. 마치 도미노(domino)법칙과 같다고 할까?

어떤 전제국가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면 인접한 나라들에게 민주화 운동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도록 영향을 준다. 2011년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무너지면서 그 영향이 이집트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 영향이 지금도 이라크의 피비린내 나는 내전으로 발전했다.

우리는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내린 판단으로 후회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나답지 않게 어떻게 이렇게 행동했을까? 정신이 나갔었나봐!’라고 후회하게 되는 것은 기분이 좋지 않았을 때 잘못된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위환경에 따라 기분의 변화가 일어난다. 좋지 못한 환경에 처해 있을 때는 균형감각을 잃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 어렵게 된다. 기분이 침체돼 있을 때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기 쉽다.

우리는 늘 자신의 감정 상태를 뒤돌아 볼 줄 알아야 한다. 특히 어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잊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한 번쯤 생각해보고 좋은 기분이 아닐 때는 결정을 보류할 필요가 있다.

너무 기분 좋은 흥분 상태에서도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 어렵지만 특히 좋지 못한 기분에서 더욱 주의해야 한다. 부정적인 감정 즉, 기분이 나쁠 때 중요한 결정을 한다면 후회하기 쉽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의 기분 상태를 의식하지 못한다.

자녀들에게 이러한 자신의 감정을 냉철히 돌아 볼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런 훈련 또한 어린 시절부터 익혀가야 한다. 주의할 것은 기분이 나쁜 이유와 원인을 깊이 파고들지 말고 잊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나간 나쁜 기억을 되살려 또 다시 좋지 못한 감정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현명한 행동이라 할 수 없다.

나쁜 기억이 분명하고 생생할수록 나쁜 감정은 확대 재생산된다. 그저 부정적인 일은 속에 담아두지 말고 무시하고 떨쳐버리는 습관이 필요하다. 기분 좋지 않은 일을 속에 담아두고 있으면 짜증이 나고 화가 나게 된다. 그로 인하여 아무런 지혜도 이끌어낼 수 없게 되어 일을 그르치기 쉽다.

기분이 침체된 상태에서 경험하는 감정은 오로지 부정적인 감정 쪽으로 갈 뿐이다. 생각이 좁아져 수동적이고, 방어적이고,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고, 그런 감정 상태를 근거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대부분 자기 주위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활하는 사람은 늘 평화롭고 편안하다. 그렇지 못하면 늘 삶이 불만에 가득 차 있어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혹 좋지 않은 말을 들었다면 흥분하지 말고 상대방이 그럴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래도 이해가 안 되면 무시해버리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좋다.

상대가 화내기를 바라고 막말 같은 행동했는데 내가 화내지 않으면 그 화가 말한 사람에게로 되돌아간다. 세존께서는 어는 부자 집에 탁발(托鉢) 할 때 주인이 저속한 욕을 하며 시주를 거절했을 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주인집에도 선물을 가지고 방문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데 주인이 받기를 거절하면 그 선물은 누구의 것이 될까요?” 라고 물었다. 집 주인은 그야 당연히 방문자의 것이지!”라고 말하면서 크게 깨달았다.

상대가 욕이나 비난하는 것을 수용하지 않고 무시해버리면 화낼 필요가 없어진다. 분노의 상태가 오래가지 않고 심각성도 훨씬 쉽게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리석은 결정이나 과장된 반응 때문에 일을 그르치지 않고 또 다른 후회할 일이 생기지 않게 된다.

물론 상대방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자신에게 화내고 비난할 수도 있다는 이해와 인정이 된다면 분노를 더 쉽게 삭일 수도 있다. 그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이해하는 감정의 내성을 기른다면 자신이 편해질 수 있다.

그리고 기분이 좋지 않은 사람을 충고하려들지 마라!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충고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우선은 맞장구를 쳐주고 시간이 지난 후 잘잘못을 구분해 충고한다면 고맙게 생각한다. 이것이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방법이다.

마음이 편할 때 우리는 자신이 행복하야 할 이유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행복해질 수 있다. 마치 웃음이 어떤 강요에 의해서 이끌어낼 수 없고 거기에는 반듯이 웃어야할 이유가 존재해야 한다. 다시 말해 해복은 추구해서 얻을 수 없고 행복해야 될 이유를 찾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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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失手)와 의도적 범죄(犯罪)

세상을 살다보면 범죄(犯罪)에 해당하는 행동을 할 때가 있다. 의도는 없었으나 실수로 법()을 위반할 때도 있고, 계획적으로 법을 어기는 사람도 있다. 때로는 우리가 불의(不義)를 보고 방관(傍觀)하는 경우도 있는데 크게 보면 그런 태도역시 범죄에 속한다.

평범한 삶이 매우 중요하지만 인간은 평범한 삶으로 살기가 쉽지 않다. 특히 오늘날처럼 생활경쟁이 심화되는 사회에서 평범하게 균형과 조화롭게 살다보면 자칫 무능력자로 낙인 되기 쉽다. 남다르게 살아가는 방법이 평범한 삶보다 우월해 보일 수도 있지만 훌륭한 삶이 쉽지 않다.

교육자로 알려진 루소(Rousseau)는 자식들을 버린 비정의 아버지였고,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를 탄생시켰지만 자신은 45년간이나 가정부를 부렸으며, 헤밍웨이는 훌륭한 작가였지만 거짓말쟁이로 알려졌고, 노르웨이 헨리크 입센(Henrik Ibsen)은 극작가이자 여성해방운동의 선구자라고 했지만 여성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고 후세에 평한다.

인간은 실수로 산불이나 문화재를 태우고 사고를 일으켜 범죄자가 되기도 하지만 의도적인 강간과 살인범으로 범죄자가 되기도 한다. 결과를 보면 같은 범죄자들 이지만 다음행동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현격한 차를 볼 수 있다.

같은 형무소에 있으면서 실수에의한 범죄자는 크게 뉘우치지만, 의도적인 범죄자는 뉘우치기보다 왜 내가 법망을 피해가지 못하고 형을 받게 되었는가에 중점을 두고 생각하며 다음에는 어떻게든 범죄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공부를 한다고 한다.

오늘날 정직한 사람이 바보취급 받고, 공정하게 행동하면 요령부족으로 바보같이 몰아가는 사회가 됐다. 도덕적 불감증에 걸려들어 남을 속이고, 짓밟아야 출세하고 부자가 돼서 떵떵 거리고 살아가는 삶을 부러워하는 사회가 됐다. 의도적 범죄자가 부러운 세상이 됐다면 무엇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사회다.

우리가 많이 하고 있는 놀이(game) 중에 짝짓기 게임이 있다. 짝을 짓지 못하면 죽는 게임이다. 우리 사회가 끼리끼리만 살려고 한다. 학연, 지연, 혈연을 너무 심하게 찾는다. 그러다보니 의도적 범죄자가 될 수 있는 패거리 문화가 형성돼 간다. 능력과 소신에 따른 지도자 사회가 아니라 끼리끼리 상조하는 패거리 사회다.

자연법칙에 순응하는 가위바위보 게임처럼 평등한 정서를 어린 자녀들에게 길러주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 심하게 학연, 지연, 혈연의 감정에 치우쳐 산다. 나라의 기관장, 장관자리까지도 지역안배를 따진다. 어떻게 보면 공평하고 평등한 행위 같지만 지도자로서 능력에 부합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자연법칙을 보더라도 모두가 똑 같이 살아갈 수는 없다. 공동으로 어울려 사는 사회에는 파레토(Pareto)의 법칙이 존재한다. 파레토 법칙이란 집단의 20%80%를 좌우한다는 자연법칙이다.

우리 사회의 경제적 빈부를 예로 든다면 부자와 가난한자가 20 : 80 이라는 비율로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개미들의 사회도 열심히 일하는 개미는 20%이고 80%는 일하지 않는다. 일하는 개미 20%만을 모아 떼어 놓으면 그중에서 20%만 일하고 나머지 80%는 일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정직하고 공정한 사회가 아니라면 이런 파레토법칙이 적용되지 못하여 갈등이 야기된다. 극심한 빈부격차가 일어나면 불만이 늘어나고 불행한 사람이 많아진다. 부자들을 바라볼 때 정직하고 공정하게 열심히 노력해서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사기, 횡령, 술수, 권세로 부자가 됐다고 본다면 어떻게 부자를 존경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스스로 인정하겠는가?

서구 선진국은 그래도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 미국의 슈퍼에서 같은 물건인데 값이 다른 경우를 발견한다. 쌀 때 들여온 것은 싸게, 비쌀 때 들여온 것은 비싸게 구분해 판매한다. 우리 사회에서 상상하기도 어려운 상도덕이다. 우리는 그렇게 정직하게 사업하면 마치 바보라고 매도하기 쉽다. 그런 경우를 보지도 듣지도 못한 사회에 살아왔기 때문이다.

미국에 사는 어떤 교포는 필요해서 잠시 써야 하는 물건을 사다 쓰고 더 이상 쓸 필요가 없으면 가게에 도루 가져가 환불을 받는다고 한다. 도덕적으로 어긋난 행동이다. 그러나 정직한 신뢰사회를 악용하는 경우가 있다.

일례를 들어본다면 아들이 미국에 주재원으로 이사를 갔는데 벽에 못을 박아야할 일이 생겼다. 그런데 어디가 지지대가 있는지 알 수 없어 걱정하니까 이사 짐을 나르던 분이 친절하게 말해주더란다. 가게에 가서 못 박을 곳을 찾을 수 있는 감지기가 있으니 사서 쓰고 더 필요 없으면 환불 받으면 된다고 알려주더라는 말을 들었다. 악용하는 처사다.

믿음이 없는 사회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은 늘 불행한 감정으로 살아간다. 불행한 감정은 쉽게 질병을 일으켜 병들도록 하고, 세상을 불행으로 끝나게 한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우선하는 것이 안정감이다. 남을 의심하고 산다는 것은 불행한 삶이다. 어린 시절부터 정직하고 공정해서 신뢰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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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만이 갖는 자아의식, 상상력, 양심

 

자칫 조건과 환경에 휘말려 살다보면 때로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환경에 따라 인간으로서 감히 범할 수 없는 자신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행동을 할 때가 있다. 인간으로서 존재의 본질을 깨닫고 존재감을 유지해야 한다.

다른 동물과 달리 사람만이 특별히 가지고 있는 자아의식, 상상력, 양심에 따라 때로는 잘못된 정체성을 바로 잡아 갈 수도 있다. 인간은 그저 존재할 뿐이 아니라 스스로 배우고, 분별하고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존재다. 스스로 자아의식에 의해 어느 순간에도 생물적, 심리적, 사회적 조건에 굴하지 않고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가 된다.

폴란드 아우슈비츠 유태인 수용소에서 그악한 나치의 추종자인 J박사란 사람은 단 한명의 유태인이라도 살인 가스실에서 도망가지 못하게 할 정도로 지독한 살인마였다. 독일의 나치가 패망하면서 러시아 군인들에 의해 체포되고 악명 높기로 유명한 모스크바의 루비앙카 감옥(監獄)의 독방에 투옥됐다.

그런데 그는 과거의 잘못을 깨닫고 크게 변했다. 그 당시 루비앙카 감옥에서 같이 옥살이를 했던 오스트리아 외교관 한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J박사는 그 감옥에서 방광암으로 40세쯤 죽었는데 그가 죽기 전까지 같이 감옥에서 생활하는 죄수들에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헌신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많은 죄수들로부터 오히려 존경받는 사람으로 기억되는 삶을 살고 갔다.

그렇다면 그런 인간의 정체성이 어떻게 180도 변화를 일으켰을까?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자아의식과 상상력, 양심을 통해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한 사실이다. 인간은 선()과 악()의 잠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어 어느 쪽을 택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선인도, 악인도 될 수 있다는 증거다.

인간은 어떤 계기로 부정적이고 악의 굴레로부터 스스로 긍정적이고 선한 방향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창조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죄인들에게 반성할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우리가 자신의 올바른 선()에 대한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악()의 정체성을 체험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간접경험을 통해 권선징악(勸善懲惡)을 스스로 알 수 있도록 어려서부터 교육을 통해 깨우치도록 일깨워 주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컴퓨터 게임 등에서 상대를 공격하고 말살해야 승리할 수 있는 쾌감을 키워간다면 심성이 악하게 발전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은 삶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을 때 순간적인 쾌락을 추구하게 된다.

서구 사람들은 한국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초록 병의 정체를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괴로우면 왜 술을 마셔야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삶이 즐거울 때 술을 찾는다.

마음이 슬프거나 괴롭고 낙담했을 때 술과 담배를 피우게 되는 것은 새로운 삶의 의지를 갖기 위함이라기보다 일시적 슬픔을 잊기 위함이다. 어떻게 보면 시간적 치유를 위한 방법도 될 수 있겠지만 전혀 문제의 해결이 될 수 없다.

우리는 드라마에서 그런 광경을 자주 대하게 되는데 시청자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게 된다. 오히려 술에 의해 심신이 망가질 수 있다. 전혀 해결책이 못된다. 우리 드라마에서 그런 표현방법은 없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생활에서도 추방해야할 행동이다.그럴 때는 따끈한 차 한 잔을 놓고 평소에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다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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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相生)하는 초과이익공유제(超過利益共有制)

이 세상의 대부분 국가에서 자본주의를 받아들여 물질적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개인이나 집단이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일의 목표가 투자에 대한 이윤(利潤)의 추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의 활동목표는 어느 무엇보다도 투자를 해서 이윤을 남기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그런데 그 이윤추구에서 개별적으로만 잘 살기 위한 행동을 하다 보니 서로 망하는 경험하기 시작했다. 일시적인 이윤추구가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조금씩 알기 시작했다. 잘 나가는 기업도 10여년 정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다.

그 이유는 무리한 기업의 이윤추구에 있다. 세계 500대 기업이 수시로 바뀌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바로 자본주의 맹점인 과대한 이윤추구를 위한 행위에서 이루어진다.

생자필멸(生子必滅)이 자연법칙이지만 개인은 물론 기업이 얼마나 오래도록 망하지 않고 성장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우리의 관심사다. 우리는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서로 돕고 상호협력 해야 오래 동안 살아갈 수 있음을 조금씩 깨닫게 됐다.

요즈음 우리나라에서 먼저 시도하고 있는 상생(相生) 자본주의(資本主義)’라고 할 수 있는 정책이 시작됐다. 기업을 운영하면서 연관된 개인이나 하청업자(下請業者) 등과 상생(相生)’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기업이 이윤을 독식(獨食)하지 않고 관련된 하청업자와 공생하자는 운동이다.

그동안 자본주의사회는 무자비(無慈悲)했다. 대기업들이 납품하는 하청업자들은 망하든 말든 자기들의 이윤추구에 몰두했다. 어떤 기업은 하청업자가 망하면 그 타격을 막기 위해 파견근무로 생산관리를 지도하거나 관리하면서 겨우 목숨만 연명하도록 경영했다. 아마도 이번 국회를 통과한 원샷 법이 이를 방지하는 법도 포함된듯하다.

정운찬 전 총리가 동반성장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이익공유제(profit sharing)를 주장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 대기업은 이익의 일부를 참여한 하청업체와 공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나는 오히려 대기업의 일부이익을 공유하기보다 더 구체적으로  초과이익 공유제가 실시됐으면 한다. 기업이윤의 목표를 초과됐다면 직원들에게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보너스를 관련 하청업체까지 포함하도록 하면 좋겠다.

보다 인간적인 자본주의라면 서로가 상생할 수 있도록 이윤을 독식하려하지 않고 나누어야 한다. 서로가 지속 가능한 상생자본주의를 형성해야 한다. 단기 이익에 치중했을 때 위기를 맞아 무너진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갑을(甲乙)’관계에서 벗어나 서로 돕고 상생할 수 있는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기업은 지배구조를 벗어나 사회적 가치 창출에 눈을 돌려야 한다. 상호협력 시스템을 도입한다면 시너지효과가 일어나 창조기업 시스템이 결성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한경쟁으로 사회가 발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무한경쟁은 한계가 있다. 무한경쟁에서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 비리(非理)의 발생이다.

어떤 수단방법을 활용해서라도 살아남기 위해 부정한 비리를 저지른다. 우리나라에 만연한 비리는 하나 둘 열거할 수가 없다. 요즈음 가장 크게 터지는 원전비리(原電非理), 군납품비리(軍納品非理) 등을 볼 수 있다. 모두가 잘못된 자본주의에서 비롯된다.

부패논쟁(issue)은 전 세계의 70%가 격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만 표출된 것은 아니다. 특히 권력의 집중과 자본의 집중이 심화된 나라에서 부패의 고리는 자연스럽게 자생한다. 정부가 공공이익을 위해 창조경제보다 우선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상호협력 하는 방안을 정책의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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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독서는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

자녀가 책을 읽는 방법을 익히기 위해 몇 단계가 있다. 일반적인 독서단계는 의존단계, 기초단계, 독립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기초단계에서는 독서를 위한 준비단계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 부모가 책을 읽어 줄때는 글자를 익히기 위함이 아니다. 책을 좋아하게 할 수 있게 하는 단계다. 생후 8개월부터 말을 익히기 시작하여 두 돌이 되면 일상용어를 알게 된다.

간단한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때부터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다. 책의 그림을 보고 부모가 알려주는 그림과 내용을 일치시키는 시기다. 마치 책장을 스냅(snap) 사진을 찍듯이 전체를 한꺼번에 읽게 된다.

아무리 반복해 읽어주어도 실증이 없다. 인지능력이 발달하면서 스냅으로 읽는 페이지가 언제든지 새롭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들려주는 책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상상력을 동원해 읽게 된다.

이런 시기가 약 2년 정도 걸린다. 4세 정도 전후해서 그림과 글자가 같이 있는 책에서 글자라는 기호를 점점 익히게 된다. ‘! 책에는 글자라는 기호가 있구나!’ 알게 되면서 글자에 흥미를 느낀다.

바쁜 마음에 억지로 글자를 익히도록 독려하지 말고 스스로 알 수 있도록 글자에 흥미를 북돋아 주는 것으로 끝낸다. 글자에 흥미를 느껴 모르는 글자를 물어볼 때까지 기다린다.

우리는 글자의 기호인 알파벳(alphabet)부터 익히게 하려고 , , , 등을 시작할 필요가 없다. 완성된 글자를 익히면 된다. 논리적으로 글자의 자모(子母)를 조합해 글자를 알 단계가 아니다. 우리 한글은 자모로 만들 수 있는 글자 수는 11,000개 정도가 되지만 잘 쓰지 않는 글자가 많고 실제 2,350자 정도만 익힌다면 우리생활에서 모든 표현이 가능하다. 그래서 우리가 평상시 사용하는 일반 컴퓨터의 한글은 완성형 2,350자로 이루어진 서체(font)들이 들어 있다.

다시 말하지만 어린 아이들에게 구태여 자모가 결합해서 글자가 되는 것을 알릴 필요도 없고,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 중심으로 익히도록 지도해야한다. 조금만 노력하면 한글의 어려운 받침이 없다면 쉽게 읽어갈 수 있게 된다.

글자를 읽을 수 있다고 뜻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글자의 형태를 익히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낱말을 익히고 만 5세 정도가 지나면 글자는 자모가 모여서 단어를 만들고 그 단어마다 뜻이 있음을 알게 된다. 스스로 책을 읽기 위한 읽은 준비기간이다.

어려서 일찍 글자를 익혔다고 자녀가 스스로 책을 읽도록 하는 것은 무리다. 읽어보려고 할 때 그 순간순간 글자를 알려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글자를 안다고 부모가 책을 읽어주는 것을 끝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억지로 책을 읽도록 독려하면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여 싫증을 느끼게 되고, 책 읽기를 싫어하는 어린 시절이 기억되어 차후 성장해서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6세가 되면 논리적 사고가 발달하여 간단히 자기의사를 분명하게 말할 수 있고, 간단한 문장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시기다. 이미 한글이라면 어려운 받침까지 충분히 구분할 수 있게 될 시기다. 그럼으로 어휘를 충분히 넓힐 수 있는 기회의 시기다. 그러나 스스로 책을 읽을 시기는 아니다. 책을 스스로 읽고 의미를 확실히 이해하려면 적어도 14세정도가 돼야 한다.

그 이전에 다양한 어휘를 익히기 위해 많은 경험이 필요한 시기다. 책을 읽어주면서 의미를 익혀 간다면 어휘가 기하급수로 늘어날 수 있다. 부모는 다양한 어휘를 넓히기 위한 지도가 꼭 필요한 시기다. 어휘가 부족하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선생님 말씀을 잘 알아듣지 못해 지진아(遲進兒)가 될 수 있다.

7세 정도에서는 여러 가지 구문(構文)을 익히게 되고, 쉬운 문장을 독해(讀解)하게 된다. 혼자 독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그렇다고 아직 독서를 독려할 시기는 아니다. 문맥에서 모르는 단어를 유추(類推)해 낼 수 없는 시기다.

10세 정도 되면 독서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시기다. 문장을 비교해 의미를 구분할 수 있고, 하나의 작품을 읽고 개념을 소화하게 되는 기초단계다. 부모나 선생님이 읽어주는 책의 내용을 파악할 수는 있지만 아직도 자신이 읽어 완전한 뜻을 알 수 없다.

자신이 읽고 이해하고 분별할 수 있는 시기는 14세 정도가 돼야 한다. 그러나 생후 8개월부터 책 일어주기 등 충실히 돌봤다면 14세 정도에서 수만 단어의 어휘를 습득할 수도 있다. 여기까지 부모가 참여하는 독서기간이다.

중학교 2학년정도부터 고등학교 과정의 독서는 독립단계에 이른 시기다. 이때부터 자녀 스스로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서능력이 생겨 책읽기 독립단계에 도달한다.

독립단계의 독서를 분석독서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책을 모두 읽을 수는 없고 또 그렇게 무모한 읽기를 시도할 필요도 없다. 그러기 위해 골라 읽기를 할 줄 알도록 다음과 같은 지도가 필요하다. 수없이 많은 책들 중에 어떤 책을 골라 읽어야할지 알아야 한다.

1, 책의 제목, 부제목, 서문 등에서 내가 읽어야할 책인지 아닌지를 주제를 분별하여 파악한다.

2. 책의 큰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목차를 본다.

차를 몰기 전에 목적지가 정해지면 지도를 살펴보듯 목자를 보면 무엇을 찾아 읽어야할지 분별이 된다. 목차를 공들여 정성껏 읽어보지 않으면 필요한 책인지 분별하기 어렵다.

3. 책 표지에 써 놓은 문구를 읽어본다.

책의 논점을 정확하게 요약해 놓은 경우가 많다.

4. 색인표를 본다.

색인표가 없는 책도 있지만 대부분 전문서적을 포함해 잘 만든 책은 색인표가 있다. 색인표에서 책의 범위, 인용문헌 등을 알 수 있다.

5. 흥미 있는 몇 개의 장()을 선택하여 시작과 끝을 살펴보면 읽어야할 책인지 알 수 있다.

6. 책에 들어 있는 그림, 삽화 등을 살펴보면서 전체적으로 훑어본다.

이런 방법으로 책을 고르면 읽을 책인지 안 읽어도 되는 책인지 알 수 있다.

이렇게 선택한 책을 읽기 시작하면 다음 단계를 실행하여야 한다.

1. 책을 읽으면서 키워드(key word)를 찾고 주요한 부분에서 저자의 주장과 내용인 명제(命題)를 찾는다.

2, 저자의 주장의 옳고 그름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수긍이 가지 않는 것은 버리고, 가슴에 와 닫는 것은 기록한다. 책에서 진실성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미사여구를 늘어놓아도 진실성이 결려되면 좋은 책이라 할 수 없다.

3. 기록된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내 것으로 만든다.


이상과 같은 독서법을 실행한다면 읽어야할 책을 찾고, 찾으면 분석적으로 숙독(熟讀)하여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분석하고, 평가하고, 응용하여 창조적인 단계로 발전할 수 있어야 한다.
일례로 수학공부를 한다면 연산과정을 기계적으로 공식에 대입해서 과정과 결과를 얻어내는 기계식 암기보다 개념과 원리를 찾아 해결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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