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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가장 후회되는 5가지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요양원에서 말기 환자들을 보살피며 살아온 간병인 브로니 웨어(Bronnie Ware)가 쓴 죽기 전에 <가장 후회되는 다섯 가지(The top five regrets)>에서 그 내용을 알아본다.

1.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했다.

2. 직장생활에만 일을 너무 열심히 했다.

3. 감정표현이 솔직하지 못했다.

4. 친구의 소중함을 잊고 살았다.

5.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한 삶을 살지 못했다.

첫째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했다는 후회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환경에 지배를 받기 쉽기 때문에 이것저것 따져보고 무엇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할까? 우선순위를 정해놓고 자신이 꼭 해보고 싶은 욕망을 접어야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사회에서나 경제적 풍요로움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당연하다. 절대적 빈곤(먹을 것, 입을 것, 거처할 곳)은 사람의 생존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적 빈곤을 타파하기 위한 생각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경제적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생각하게 된다.

다행히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이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포기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경제적 가치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서 찾을 수 있는 세상이 앞에 펼쳐져 있다는 것을 간과하기 쉽다.

옛날에는 예능활동 쪽에 관심을 갖게 되면 밥도 못 빌어먹는다.”라면서 부모들이나 가까운 어른들이 못하게 했다. 지금은 어떤가? 물론 연예활동을 해서 누구나 빛을 보는 것은 물론 아니다.

우리의 직업은 시대에 따라 선호도가 다소 차이가 나지만 가장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법관, 의사, 대학교수, 공무원 등등이 있다. 누구나 그런 직장을 얻게 되면 자신은 물론 처자식을 굶기지 않게 될 수 있다. 가장 안전한 삶의 길이라고 누구나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부류의 직업을 갖는다고 누구나 행복한 삶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가 해보고 싶었던 일을 접고 이해타산에 의해 그런 직업을 선택하면 일생동안 무엇인가 잘못된 삶에서 살아간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죽기 전에 후회하는 마음으로 남게 된다.

둘째 어떤 직장이나 생활하면서 치열한 경쟁 속에 들어간다. 누구보다 일을 잘 해야 되고, 누구보다 앞서 승진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게 되면 가정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가정은 물론 친척도, 친구도, 이웃도 가까이할 겨를이 없게 된다. 그래서 남이 말하는 출세는 하게 되지만 때로는 가정도 잃고, 친구도 잃고, 이웃도 잃고, 자신의 건강마저 잃고 삶에 대한 혐오감을 느끼게 된다.

속담에 마지막 웃는 자가 승리자.”라고 했다. 그런데 결국은 마지막에 웃을 수 없게 되어 후회하게 된다.

셋째 감정표현이 솔직하지 못했다는 것은 외적이 삶에 허덕였다는 뜻이다. 내면적으로 그렇지 않은데 눈치를 봐야하고 시류에 야합하다보니 솔직한 자기감정을 표하지 못해 결국은 자기기만이었고 떳떳하지 못해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았다는 의미다.

내적으로 충실해야 함에도 노력하지 않고 지름길을 찾았다가 늦게 후회 한다. 모든 과정을 무시하고 좋은 결과의 추구에 매달려 때로는 약속()도 어기고, 남을 회유하고, 때로는 공갈 협박도 사용해서 목적을 달성했는데 늘 마음한쪽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된다.

감정표현이 솔직하지 못했다는 것은 양심껏 살지 못했다는 의미다. 지금 우리의 교육형태(pattern)가 양심을 앞세우지 못하고 과정보다 결과만을 강조하는 시대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검은 고양이 건 흰 고양이 쥐만 잘 잡으면 된다.”라는 생각이 앞서면 결과가 좋으면 어떤 짓을 해도 무방하다는 사고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 죽을 때 잘못된 삶이었다고 후회한다.

넷째 친구의 소중함을 잊고 살았다. 넓은 의미로 이웃을 멀리하며 자기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살았다는 의미다. 이해관계에서 다소 손해가 된다면 가까이 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 세상은 무엇이든 양면을 갖고 있다는 것을 간과했다. 우리의 삶에서 늘 이익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늘 손해만 보는 것이 아니다. 언제는 손해보고 언제는 이익이 된다.

인간 만사 새옹지마란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찾아오고, 나쁜 일이 있으면 뒤에 좋은 일이 찾아온다.

만물은 변화하지 않고 고정된 것이 없다. 성주괴공(成住壞空) 모여서 생기고 잠시 머물었다가 흩어져 없어진다는 뜻이다. 늘 같은 일만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좋고 나쁨이 같이 있다.

빛과 그림자가 늘 같이 있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강해진다. 호사다마(好事多魔) 좋은 일에는 많은 나쁜 일도 같이 있다.

다섯째 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지 못했다는 것은 첫 번째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해보지 못했다는 것과 대등소이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해봤다면 즐겁고 행복한 삶이었다.

늘 눈치보고 살아왔다는 의미다. 외적인 주변의 환경에 따라 끌려가며 살았다는 것은 자신의 자유가 그 만큼 유린됐다는 의미다. 자신의 자유가 제한되고 협소해진다면 행복할 수 없다.

이 다섯 가지가 우리의 삶에서 주의해야 될 일이지만 모두라고 할 수 없다. 우리가 형편에 따라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없을지라도 어쩔 수 없는 한 현실에 적응하고 순응하고 살아야 한다. 늘 불만족스런 마음에 얽매여 있으면 그 것이 또한 불행이다. 인간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데서 비롯된다.

자녀들이 원하는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원인을 확실히 이해시켜야 한다. 자녀가 인정하지 못하는 진로의 선택은 성장에 방해가 된다. 현실을 받아들이며 개선할 방법을 찾도록 지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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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민주사회에서 직업의식

자본주의 민주사회에서 갖는 강한 개념이 직업의식을 경시(輕視)하게 하고 있다. 자기가 선택한 직업의식이 흐려지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다.

우리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투쟁의 대부분 돈 때문이다. 일부 의사(醫師)들의 집단행동에서 또 하나의 자본주의 사회 병폐(病弊)로 직업에 대한 본분(本分)을 망각하는 행동을 볼 수 있다.

의사들이 돈 때문에 집단행동으로 의료행위를 거부한다면 자본주의 맹점이 하나 더 늘어나는 경우다. 의사는 생명윤리에 따른 봉사직업 이라고 말 한다. 의사가 될 때 인류봉사에 헌신할 것을 엄숙히 선서 한다.

그런데 오늘날 의대를 가는 동기의 대부분(?)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보다 잘살기 위한 직업의 선택이 아니라고 단언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런 사고방식에서 출발한 의사들이 스스로 생명윤리의 봉사직업이라고 말한다면 펄쩍 뛰다가 다리가 부러질 것 같다. 의사는 어진 덕을 베푸는 인술(仁術)의 소유자라 했다.

오늘날의 자본주의속에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숭고한 생명을 담보로 돈을 번다면 인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의사를 택한 동기가 불순하다.

이 사회에서 의사가 부()룰 창출하는 직업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딸을 가진 부모가 의사사위를 최우선적으로 선호하는 본다면 그렇다. 어느 직업보다 딸의 생활이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보장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라고 간난에 쪼들리며 사회에 봉사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주위에서 남부럽지 않게 생활할 수 있다면 만족해야 한다. 그리고 더 많이 봉사할 수 있는 길에 뜻을 두어야 한다.

제약회사에서 약품선택에 대한 리베이트(rebate)의 돈을 받아야 하고, 병원 시설비를 충당하기 위해 생명을 담보로 수가를 부풀리거나 과잉진료 행위를 해야 한다면 의사의 직업을 떠나야 한다.

무엇을 못해 인간의 생명을 담보로 돈을 벌어야 하는가? 천당을 지키고 있다는 예수나 석가모니, 마호메트 어떤 성인도 그들이 찾아오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서울 아산병원 이승규 박사와 같이 생체간이식 수술의 세계 권위자가 된다면 명예는 물론 부도 그 뒤를 따를 것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직업을 갖고 열심히 일해야 삶의 보람을 느낀다.

정신적 영적인 성장의 보람을 얻어야 진실한 삶이다. 거부(巨富)가 된들 얼마나 호의호식하고 만족하며 살겠는가?

인제대 백병원 백낙환 이사장은 수술하면서 무엇을 요구해야한단 말인가?”라고 반문한다. 그는 병원을 세우면서 의술로 세상을 구한다는 인술제세(仁術濟世)를 늘 생각해 왔고 한다.

그는 돈을 많이 벌었는데 개인재산은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전부다. “재산은 사는데 불편이 없을 정도만 있으면 그만이라고 했다. 그 불편의 기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각자 다르겠지만 쌓아 놓고 살지는 않겠다는 의미다.

그는 어느 정도의 재산을 갖고 있을까? 부산의 사택(105.6아파트)이 전부라고 한다. 나머지는 인술제세를 위해 쓰고 있다. 자기가 갖고 있는 직업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하면 돈은 뒤에서 저절로 따라온다.

자신의 능력에 알맞는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돈에 대한 집착이 본분을 넘어선다면 잘못이다. 자녀들에게 돈을 쫒지 않는 삶을 살도록 지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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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규제법이 탄생하는 세상

 

지금 정부에서 그동안 규제법의 문제 때문에 제거하기 위한 활동이 시작돼 있는데 또 다시 한쪽에는 규제법이 생긴다. 우리가 살다보면 일시적으로 그래서 안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러면 서둘러 규제법을 만들게 된다. 그리고 나중에 이것이 걸림돌이 되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대학입시 교사추천서에 새로운 규제법이 만들어졌다. 어학성적을 공인하는 토익(TOEIC) 점수나 교외 경시대회에서 수상한 실적을 추천서에 기재하면 0점 처리하는 법이 생겼다. 2015년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세상에 이런 추천서도 있는가?

추천이란 남보다 모범이 되고 훌륭한 일을 해서 책임지고 소개하는 것이다. 그런데 모범적 성과를 올린 사항을 추천서에 기재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점수까지 0점 처리한다는 것은 모순(矛盾)이다.

크게 보면 교육목적에 어긋난다. 우리가 초중고등 대학교의 과정을 정한 것은 보편적 인재를 잘 기르기 위해 만든 제도에 불과하다. 능력이 모자란데 선행학습이 나쁜 것은 사실이나 능력에 따른 수준별 조기교육이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자연의 이치에서도 같은 환경에서 자라지만 잘 자라고 못 자라는 것은 자연법칙에 의해서다. 농사에서 잘되는 것을 뽑아 제거한다면 그 농사가 잘될 수 있을까?

다만 그런 정책을 입안해야한 교육부의 사교육에 대한 특별조치를 이해할 수 있지만 원칙에 위배된 행위다. 마치 회사에서 노조가 준법투쟁을 하는 것과 같다. 법을 잘 만들어 놓고 지키지 않는 회사에 대해 법을 지켜달라는 투쟁을 한다는 것은 정상적인 회사라고 할 수 없다.

더군다나 어린 학생들이 이해할 수 없는 규제를 만든다는 것은 교육적으로도 역행하는 행동이다. 다만 스스로 노력해 학업의 발전을 가져와야지 부모의 등살에 밀려 획득한 결과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이는 부모의 잘못이지 어떻게 학생에게 불이익을 불 수 있는가?

자발적 노력의 결과인지 부모의 억압된 행동인지 분별할 수 없다고 공부를 못하게 하는 처사는 정도를 가야할 교육부에서 할 일이 못된다. 커날 수 있는 능력의 학생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규제는 비판 받아야 한다.

규제법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결과에 중점을 둘 것이 아니라 과정을 봐야 한다시행착오가 많다면 문제가 계속될 수 있다. 근원적인 규제를 찾아야 한다

1980년부터 우리 고등학교 학생들이 국제수학올림픽에 참가하기 시작하여 90년에 10위권, 2000년에 3위권, 2012년에 1등을 했다. 점진적으로 최고봉에 올랐는데 이를 무시하는 교육정책이 어디 있나? 국제경쟁력에서 밀리면 선진국대열에 오를 수 없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학구교육을 배워야한다고 틈 있을 때마다 언급한다. 우리 학부형들의 교육열을 배우자는 것이지 학원과외 방식을 배우자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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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집착(執着)에서 벗어나자!

 

젊은 시절에는 우리의 존재가 항시 그대로 영원할 것 같이 생각되지만 그렇지 않음을 일찍 알아야 한다. 만물(萬物)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끝없는 욕심과 집착(執着)이 도사리게 되어 고뇌에 부닥치는 것은 무상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석가세존께서는 제자들에게 늘 무상함을 강조하셨다. 바다의 파도가 생겼다 사라지고 사라지면 다시 생기며 반복하는 것을 쉽게 관찰할 수 있어 우리의 삶과 비교해 볼 수 있다. 이것이 하나의 윤회설과 같다.

우리의 삶이 그렇다. 세상에 태어나 잠시 머물면서 성장하다가 병들고 그렇지 않아 천수를 다하더라도 100년 전후에는 죽어서 사라진다.

모든 유기체와 무기체는 인연에 따라 모여서 형상(形相)이 만들어지고, 잠시 머무르고, 형상은 다시 흐트러져 없어진다. 이를 성주괴공(成住壞空) 이라 했다.

우리가 말하는 생물(유기체)만 그러한가? 무생물(무기체) 또한 그러하다. 태어나서 머물고, 변화하여 결국은 소멸된다. 이를 생주이멸(生住異滅)이라고 했다. “태어난 것은 반드시 결국 없어진다.” 라고 해서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고도 한다.

그 뿐인가 인연으로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다시 만난다.”는 뜻으로 회자정리(會者定離) 또는 이자정회(離者定會)라고 한다. 종합해보면 만물은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즉 일체무상(一切無常), 흔히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고 한다.

우리의 삶이 그러한데 많은 사람이 영원할 것으로 착각하여 죽음을 말하면 기분나빠한다. 그러나 어떻게 살다가 죽느냐가 문제이지 죽는다는 것은 거역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늘 죽음을 상상한다면 잘못 염세주의에 빠질 수도 있지만 과욕(過慾)을 억제하고 순리대로 살아갈 수 있게 한다. 순리대로 산다는 것이 물론 쉽지는 않다.

삶의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난다는 것은 해탈(解脫)이요 열반(涅槃)이다. 평범한 인간이 해탈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은 모래에서 바늘 찾기보다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치를 깨닫고 잠시라도 집착을 내려놓을 줄 안다면 자신의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만큼 삶에서 자유롭게 평화롭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누가 자유를 구속당하며 살기를 원하겠는가? 집착을 벗어나려면 성주괴공, 생자필멸의 뜻을 되 색이며 깊이 사고하고 행동해야 한다. 물론 어느 정도 집착해서 얻는 것도 있지만 지나치면 얻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괴로움으로 이어지면서 속박 속에 살게 된다.

조선 말기의 의학자로 사람의 체질과 성질에 따라 치료를 달리해야 한다는 사상의학론(四象醫學論)을 제창한 이제마(李濟馬) 선생은 비박탐라(鄙薄貪懦)라고 했다. 일반인을 보면 비천한자는 권세를 얻기 바라고, 경박한 자는 명예를 얻기 바라고, 가난한 자는 부자가 되기 바라고, 지위가 낮은 자는 고관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러한 유혹에서 벗어나 홀로 설수 있으면 무병장수하여 행복해진다. , 호현락선 천하지대약야(好賢樂善 天下之大藥也)라 해서 행동을 어질게 하면 이 세상에 그보다 더 좋은 약은 없다.‘

문제는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대해서 순리에 따라 신에게 맡겨야 한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최선을 다해보지도 않고 성주괴공을 논한다는 것은 또한 의미 없는 삶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가 최선의 삶으로 인식 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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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병의 근원이 되는 산소 부족 방지

우리는 산소가 없으면 잠시도 살기 어렵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터무니없는 이야기 같지만 숨을 쉬어 산소를 공급하지 못하면 모든 세포의 활동이 중지되기 때문이다.

산소가 부족하면 제일 먼저 두뇌의 산소 부족으로 정신이 혼미해지고 두통이 심하게 일어난다. 심하면 생명을 잃게 된다. 숯불로 골치가 아프고, 연탄 중독으로 목숨을 잃는 것은 일산화탄소의 작용으로 인체의 모든 세포에 산소공급이 차단되며 괴사현상이 생기고 심장이 멈춘다.

혈액이 잘 공급되지 않으면 바로 산소결핍이 찾아와 죽게 된다는 상식이다. 혈액이 하는 일은 각 세포에 산소, 영양을 공급하고 신진대사에서 나온 페기물의 운반작용이다.

우리 몸에서 세포의 수가 가장 많은 곳이 두뇌다. 사람은 뇌와 심장이 일직선상에 있을 때 심장의 박동이 가장 정상적으로 움직여 준다. 우리가 피곤하거나 아플 때 피로를 회복하기 위해 누워 있어야 하는 이유 중에 하나다.

자녀가 아프면 편하게 뉘어 주어야 한다. 베개를 목에 굴곡이 생기지 않도록 낮게 해 주어야 한다. 옛날 말에 고침단명(高枕短命)이라고 했다. 높게 베개를 베면 수명이 짧다진다고 한다.

혹 높이 베개를 베는 분이 있다면 점차적으로 낮게 고쳐나갈 필요가 있다. 높이 베지 않으면 잠이 안 온다는 것은 습관에서 오는 감각이다.

독일 사람들은 특히 숲을 사랑했고 보리수나무 밑에서 잠을 자면 뇌가 발달한다고 믿고 있다. 아마도 보리수나무에서 산소공급이 잘되기 때문일 것이다.

독일에는 지금 숲 유치원이 있다. 물론 자연을 배우면서 삶의 터전을 만들어 주지만 풍부한 산소를 호흡할 수 있는 여건에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우리는 아이들이 좋은 공기 속에서 자랄 수 있도록 환기도 자주하고 습도와 온도도 잘 맞춰주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에 특별히 마음을 써야 한다.

아이들이 인공적인 화공약품 처리로 만든 콘크리트, 철근, 합판, 실내장식 등으로 지은 집에서 살면서 아토피 피부염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어려서 초가집, 기와집에서 커날 때 갖지 못하던 질병이다.

문명의 이기인 자동차, 공장매연, 심지여 인체에 해로운 담배연기 등등 미세먼지를 포함한 공기오염의 주범이다. 산소공급이 그만큼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면역력이 약한 어린 자녀의 건강이 잘 입히고 잘 먹이는 것보다 좋은 공기를 공급할 수 있어야 튼튼하게 자랄 수 있다. 집안의 환기 등 산소공급이 원활하게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꼭 필요하다.

늙어서 허리 아프고 무릎관절이 아픈 이유도 산소공급의 부족으로 쉽게 퇴화되기 때문이다. 적당한 운동으로 근육을 튼튼하게 하고 산소공급을 원활히 해주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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