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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보다 우선하는 공공생활(公共生活) 교육

아이들은 언제나 호기심이 크게 발동하여 어디서나 이것저것 만져보는 습관이 있다. 공공장소에 가면 새로운 환경에 모든 것이 새롭고 즐거워진다. 자유분망(自由奔忙)해지는 것이 정상적이고 당연하다.

공공장소인 식당이나, 여러 사람이 모인 장소에서 천방지축(天方地軸)으로 뛰어 놀고 있는 아이를 볼 수 있다. 언제 어떤 사고가 발생할지 모른다. 사고가 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 수 있다.

어떤 부모들은 자녀의 기를 꺾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방치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너무 이기적인 생각이다. 공공질서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부모다. 개인보다 공공이 우선한다는 교육의 기회를 놓치는 부모다.

아이들이 만지면 안 되는 새로운 것들도 많다. 위험한 물건을 잡거나 선택하려고 할 때 무조건 빼앗으려 한다면 안 놓으려고 하다가 오히려 다칠 수도 있다. 관심이 더 큰 대치 품을 안겨주어야 순순히 물러난다.

어린 아이들에게 무조건 침착하고 조용히 있으라고 한다는 것은 무리한 요구다. 어른들도 꼼작 안하고 몇 십분 동안 있는 것이 어려운데 참을성을 아직 연마하지 못한 아이에게 조용히 있기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이다.

어린 아이들의 지구력과 판단력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무조건 저지보다 혼자 조용히 놀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나들이 할 때는 새로운 장난감이나 그림책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집에서 떠나기 전 아이에게 처음 접할 수 있는 적합한 새로운 책, 새로운 장난감 등을 준비해 혼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아무것도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스마트폰을 잠시 들려줘도 좋다. 스마트폰에 있는 어린이 게임도 좋지만 어린이를 위한 좋은 프로그램을 선택해 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아이들도 어떤 욕구가 충족되면 새로운 것을 찾게 된다. 같은 장난감을 오래 가지고 놀지 못하는 것은 새로운 것을 더 이상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놀이의 모든 것이 파악되어 새로운 호기심이 사라지고 새로운 욕구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놀이로서 가치를 다했다고 본다. 놀잇감, 장난감은 단순한 것부터 시작하여 복잡한 단계로 진행 될 필요가 있다.

성취감이나 자신감을 갖게하기 위하여 쉬운 것부터 단계적으로 시작하자! 종이접기, 색칠하기, 조립품 완성하기 등을 실행하면서 손재주를 익히고, 창조에 대한 기쁨, 완성에 대한 자긍심, 성취감, 참을성 등이 연마되면서 소질과 개성이 길러진다고 본다.

요즈음은 전문성이 세분화돼 있다. 부모가 무엇은 되고 무엇은 안 된다는 사고를 버리자! 우리가 언제 연예인을 지금처럼 좋아하게 됐는가? 우리가 언제 운동 잘하는 것을 좋게 받아들였는가? 우리가 언제 장사꾼이 되는 것을 좋아 했는가?

대부분 부모들은 공부 잘해 고급 공무원이 되고, 유명한 학자, 연구원, 정치가가 되어야하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오늘날 그렇게 되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한 가지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기르면 이 사회에서 훌륭히 일익을 담당하고 자기가 하는 일에 만족하면서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부모가 바라보는 자식의 행복 된 삶은 부모의 대리만족을 위한 삶은 더욱 아니다. 자녀가 어린 시절 여러 가지 경험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할 일이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지나쳐 자식들의 앞날을 제시하거나 결해 주려고 한다.

부모의 모순된 행동이다. 그만큼 올바른 부모 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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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하원칙(六何原則)과 긍정적인 삶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자아의식과 상상력에 따른 가치관을 정립하고 삶(목표)을 수행하기 위한 행동과 태도의 원천이 되는 의식체계(paradigm)를 올바르게 만들어 살아야 한다.

우리는 어떤 특정한 기획(企劃)을 만들고, 시간을 정해 규칙적인 적극적 행동만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막연하게 행동할 것이 아니라 육하원칙(六何原則) 중 언제(when), 어디서(where), 무엇(what), (why), 어떻게(how)5가지를 면밀하게 검토하고 결정해 행동했을 때 매우 좋은 결과가 성사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일을 대충 검토하고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만 믿고 착수부터 하여 많은 시행착오가 따른다. 뿐만 아니라 시행착오가 반복되면 의욕이 떨어져 중도에 포기하기 쉽다.

어린 자녀들에게 무엇을 요구할 때 막연히 말해서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부모는 늘 공부하라는 주문을 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제시를 하지 못하면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아이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성인들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대학생들에게 어떤 주제에 대하여 숙제(report)를 요청할 때 A그룹은 날자와 시간을 지정하고, B그룹은 제출할 것만 강조했다면 그 결과는 확연히 달라진다.

다음 수업에 A그룹은 95% 이상이 기한 내에 숙제를 제출하나, B그룹은 53% 정도만 숙제를 제출하고 나머지 학생은 다른 학생들이 제출한 숙제를 접하고 언제까지 제출해야 하는지 재차 확인한다고 한다.

이처럼 하나의 의식을 행할 때 시간과 기획을 면밀히 정할수록 긴장감을 가지고 실천하게 된다. 커다란 목표일수록 순차적으로 면밀한 여러 단계의 계획과 실천이 필요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장기적인 어떤 목표를 향하여 막연히 실천하는 것보다 여러 단계로 나누어 단기적인 목표를 면밀히 정하고 실천해 나가는 것이 효과적이다. 공해라!”가 아니라 학교에서 돌아오면 바로 숙제를 해라!” 그리고 몇 시간 동안 놀이를 할지도 구체적으로 정해 알려야 한다.

시간을 잘 활용하는 시간계획을 만들어 운영해도 좋은 성과를 올리기가 쉽지 않다. 단시간 내에 성과를 올리는 습관이 꼭 필요하다. 이것이 집중교육의 기본이다. 집중력이 향상되지 못하면 공부나 작업의 능률이 떨어져 뒤처지게 된다.

다시 말하면 어떤 일을 위해 늘 시간계획과 집중력으로 실행할 수 있는 습관이 돼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습관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리고 늘 부정적인 인식보다 긍정적인 인식을 강조해야 한다. ‘놀지 않겠다.’ ‘화내지 않겠다.’는 식의 부정적 결심은 에너지를 충전하기 어렵다. ‘공부 해야겠다.’ ‘일 해야겠다.’로 긍정적인 사고로 시작하고 행할 때 적극성이 생기고 에너지가 충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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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를 바탕으로 제도와 문화 기반

우리가 저성장 시대에 진입했다고 말들 한다. 올해가 지나면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가 올 것 같았지만 그렇지 못하다. 국민소득 3만 달러시대를 맞이하려면 신뢰를 바탕으로 제도와 문화의 기반이 먼저 구축돼 있어야 한다.

세계의 경제발전을 살펴보면 훌륭한 지도자를 만나 국민소득 2만 달러시대까지는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의  경제성장을 위해 통상적으로 교육, 투자, 연구개발만 뒷밭침이 잘되면 지속적 경제발전이 이룩 되는 줄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과거 공산주의 시대는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넘지 못하고 붕괴됐다. 공산주의의 한계다. 요즈음 그리스가 3만 달러시대의 문턱을 넘어섰다가 지속하지 못하고 2만 달러시대로 주저앉았다. 이탈리아가 3만 달러시대의 문턱에서 멈춰 섰다. 공통점을 찾는다면 신뢰가 바탕이 되는 제도와 문화기반을 튼튼하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가재정을 생각지 않고 과다한 복지로  문제가 됐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상대적 빈곤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지만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가족 모두가 경제적 활동을 해야 겨우 이웃을 쫒아갈 수 있다. 삶이 쉽지 않다. 그럼으로 자칫하면 지름길을 찾게 되는데 사기(詐欺), 기만(欺瞞), 부정부패(不正腐敗), 중상모략(中傷謀略), 임기응변(臨機應變), 심지어 절도행각(竊盜行脚)까지도 성행하게 되어 사법부만 바쁘게 되고 사회는 정체되거나 몰락하게 된다.

그런 사회에 믿음이 존재하기 어렵다. 우리는 신뢰를 바탕으로 제도와 문화가 형성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가지 못하면 더 이상 발전하고 성장할 수 없다. 경제규모가 커지면 정부와 기관이 주도하는 경제정책만으로 국민의 역량을 이끌어낼 수 없다.

이런 경제 환경에서 수직적 통솔로는 노동생산성이 떨어지고, 고비용(高費用) 저효율(低效率)시대가 된다. 몇몇 사람의 정책 결정으로 밀어 붙이고, 독려하고, 대증요법(對症療法)으로 헛발질해서 될 경제규모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대부분 기업체는 사주나 몇몇의 임원이 수직적 통솔로 이끌어간다. 누구나 회사의 일원이라면 기업정책과 지도방법에 대해 이의가 있을 때 의사를 타진할 수 있어야 하지만 수직적 운영체계에서는 용납되지 않는다.

모든 국민이 자발적 역량을 키우고, 창의성을 함양(涵養)해야 하는 환경조성이 국가의 책무다. 정부가 다른 무엇보다 부정부패를 일소하여 정직하고, 공정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데 총력을 기울인다면 신뢰적 믿음을 바탕으로 제도와 문화가 형성되면서 경제발전이 지속될 것이다.

우리는 믿을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오늘 나온 소식을 보면 우리나라 조선업의 대표 격인 대우조선,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의 영업 손실이 47,509억 원이라고 한다. 이들 중 회계부정으로 영업 손실을 감춰왔다니 경악할 일이다. 이런 일이 감독원의 감사로만 해결해서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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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적 가치와 행동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자신이 가장 중요시하는 가치에 따라 행동으로 옮겨질 때 그 사람의 덕목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내면적 가치(價値)와 행동이 일치하지 못한다면 위선(僞善)일 뿐이다.

인간이 삶이나 세계에 대하여 옳고 그름, 좋고 나쁨 등의 가치를 분별하는 관점이나 기준에 자신의 에너지를 투자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을 기만하는 행위다. 자신의 내면적 가치에 공감하지 못하는 행동을 한다면 양심을 져버린 행동이다.

내면적 가치행위보다 편리함을 취한다면 순간적으로는 고통과 공허함을 넘길 수 있다. 그리고 마음이 불안해지고 초조해지면 초콜릿을 먹고, 담배를 비우고, 술로 달래면서 임시방편으로 불편함을 해소하려 한다.

우리가 내면적 가치에 충실하려면 진실성, 성실성, 신념, 안정감, 책임감, 공정성, 정직성, 인내, 균형감각, 공감, 용기, 헌신, 충성심, 상대에 대한 배려, 개방성, 순수함 등에 대한 양심이 작용해야 한다.

이러한 바탕에서 자기 양심에 따라 내면적 가치를 실행하게 되면 우리는 어떤 일에도 열정과 헌신할 수 있는 인내심의 에너지를 충만하게 얻을 수 있다.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바램(욕구)이 크게 되면 애증(愛憎)이 교차되면서 점점 커진다. 그렇게 되면 부모가 기울인 노력에 대해 허망함을 갖게 되어 괴롭고 열정도, 인내도 한계점을 들어낸다.

그러게 되면 자녀는 자녀대로 내적가치에 대한 흥미를 잃고 외적인 가치에 의존하기 쉽다. 그럼으로 자녀가 비록 내적가치에서 흔들리더라도 내면적 가치를 충실하게 실행하도록 용기를 주고,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안겨 주어야 한다.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탐색하게 해야 한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을 합리화하려고 하고 자신까지 속일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다. 그래서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인식 밖으로 밀어낸다. 성공적인 내재가치를 실현하려면 고통스런 감정을 먼저 옆으로 제쳐두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모든 것을 부정적인 감정보다 긍정적인 감정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실상을 바라보는 여러 가지 렌즈 중 오직 하나를 택해 세상을 바라보기 쉽다. 그리고 내가 보는 것만이 진실이고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한 가지 입장만 고수하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고 그 자체가 환상일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오류에 대한 다른 사람의 지적과 비평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그보다 어떤 치욕감과 더 나아가 혐오감을 느끼기 쉽다.

상반된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이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는 것이고, 자존심에 대한 치명적 위협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렇게 되면 자신을 보호하는 쪽으로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쏟게 된다.

한발 물러나서 거시적으로 다른 면을 볼 수 있도록 넓게 조망할 수 있는 균형감각을 키워야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데 여러 가지 관점과 입장이 있을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일단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용해 놓고, 천천히 진실을 분석해도 늦지 않는다. 살면서 진실과 대면하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길이기도 하다.

우리가 어려운 문제에 봉착(逢着)하면 우선 두려움에 묶이게 된다. 그 두려움을 벗어나야 개선방법을 찾을 수 있다.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고 어쩔 수 없는 한 받아들일 각오를 해야 두려움에서 벗어나 개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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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교육의 필요성

우선 평생교육(Life-long Education)이란 무엇인가? 폴 랑그랑(Paul Lengrand)1965년 유네스코에서 항상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데서 나온 말이다.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데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지 기존의 제도권 내에서 실행되고 있는 학교교육만으로 우리의 삶이 해결될 수 없다. 과거 농경사회 중심에서는 세상의 변화가 느렸기 때문에 누구나 사회생활에 불편함이 없었다.

그러나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교육공간의 폐쇄성, 교육시기의 폐쇄성, 교육내용의 폐쇄성, 교육방법의 폐쇄성 등을 뛰어넘지 못한다면 살아남기 어렵다. 그래서 평생 동안 위해 부단한 새로운 교육이 실행되어야 이 세상에 적응하며 도태되지 않고 자기의 기본권을 유지할 수 있다.

아직도 유치원이 만 5세경에 실시되고 있는데 만 4세경으로 끌어내려야 한다. 그 이유는 자라나는 아이들이 과거의 환경과 많이 바뀌어 더 영리해지고 교육할 수 있는 능력이 월등하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교육시기를 정해 학년제는 페쇄(閉鎖)되는 것이 마땅하다. 아이들에게 수업능력과 관계없이 정해진 교육시기와 교육단계를 만들어 획일적인 교육을 실행하고 있는 현 교육제도는 수정돼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학원중심의 교육이 된다.

다양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의 능력에 따라 지적성장이 빠른 아이가 있고, 늦는 아이가 있다. 모두를 동일한 교육환경에서 기른다는 것은 참다운 교육목적에 어긋나는 행위다. 지적으로 조숙(早熟)한 아이는 월반(越班)을 시키고, 지진아(遲進兒)는 그에 알맞게 유급(留級)시켜 적합한 교육과정이 실행돼야 한다.

시간만 지나면 학년(學年)이 올라가는 교육제도야말로 모두에게 손해를 끼치는 교육제도다. 수시로 다양한 절대평가에서 누구나 알맞은 등급(等級)에 맞추어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

학원이 지적능력을 확보해주기 위해 앞서간다. 그러나 학원중심의 교육이 앞날을 망친다. 교육이 지적교육만으로 사회를 이끌어 갈 수 없다. 오직 지적평가에 따라서 진학한다면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훌륭한 인간이 되는 데는 우선 건강하고, 난 사람보다, 든 사람보다 가슴이 따뜻한 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건강을 먼저 꼽는 이유는 생존해 있지 못하면 모두가 물거품이기 때문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이 세상에 오지 존재할 때만이 존귀하다. 건강을 지키고 인간답게 살다가는 것이 답이다.

그리고 같이 살며 서로 협동하는 삶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평생 동안 배우고 익혀야 한다. 처음 대하고 접하는 것은 모두가 낯설다. 일상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매일 달라지는 컴퓨터, 스마트폰, 주변장치, 어느 하나 제대로 알지 못하면 용이하게, 편리하게 사용할 수 없다.

나는 어려서 초등학교 시절 처음 접한 자석식 전화에 두려웠고, 회전문,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컴퓨터, 스마트폰 등등을 처음 대할 때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이다. 배우고 익혀야 하는데 조금만 게을리하면 늘 뒷 자석으로 밀린다.

지난 번 미국의 국내 여행하며 비행기 예약하는데 컴퓨터를 쓸 줄 모르면 좌석예약이 어렵고, 비행기 타기 전 받아야하는 탑승권(Boarding pass)을 얻는데 기계작동 방법을 모르면 남의 신세를 져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미국 산호세에서 캐나다 록키 마운틴을 여행하기 위해 아주작은 비행기를타고 시애틀을 가야했는데 실내공간이 좁아 손방마져 붙여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시애틀 공항에 도착해 손가방을 찾는과정에서 같이 간 아내를 잃고 말았다. 아내가 머저 비행기 통로를 빠져나가고 나는 뒤애서 손가방을 찾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늦게 나가보니 아내가 없어졌다. 아내는 나를 기다리다 바로 나오지 않차 큰짐 찾는 곳( baggage claim)으로 간줄 알고 그 곳으로 갔다는 것이다. 나중에 그 곳에서 아내를 찾을 수 있었다.

여행할 때도 과거와 많이 달졌다. 공항에 가서 비핼기 표를 사고 좌석배치를 받고, 탑승권을 받아 승선하는 시대가 아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같은 돈을 지불하고 원하는 시간에 비행기, 좌석을 얻을 수 없다

평생 동안 그때그때 배우고 익히지 않으면 패배자(Loser)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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