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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

자녀들을 대할 때 무의식적으로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고, 보편적 사회적 기대에 저울질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부모의 입장에서 사회적 지위와 체면, 권위 등을 마음속에 깊숙이 깔고 자신들을 위한 조건적 사랑을 하기 쉽다.

자녀들의 정체성, 개성, 독립성, 가치관에 중점을 두고 돌보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기대충족을 위한 간섭이 될 수도 있다.

자녀들이 처해있는 자체를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잣대로 바라보면서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시키려 하기 쉽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화를 내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어느 부모도 영아를 상대로 화를 내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영아로부터 어떤 바람도 기대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3 세정도만 돼도 부모 자신의 뜻에 어긋나면 화를 낸다. 자기가 바라는 대로, 기대하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자녀들의 행동에 대하여 부모의 잣대로 측정하면서 긍정적인 말과 충고를 하지만 자녀들에게 전달되는 내용은 너는 형편없는 놈이야! 너는 능력이 부족해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부정적인 생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자녀들이 훌륭하게 행동하기를 바란다면 피상적인 해결책만 제시할 것이 아니라 부모들 자신의 인식이 본인 중심에서 자녀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오직 자녀들 자신이 해법을 찾고, 자신이 노력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으로 끝내고 간섭을 금하고 옆에서 지켜봐야 한다.

사회적 틀에 맞는 인간으로 만들려는 의식적 보호 등 조건적 사랑을 중지해야 한다. 자녀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스스로 노력하여 진전된 가치가 아무리 적고, 느리더라도 인정해주고 함께 기뻐하는 부모 본연의 역할만 해야 한다. 우리가 손자손녀를 바라볼 때는 그렇게 된다. 어째서 손자손녀들이 자녀를 키울 때보다 더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질까? 어떤 기대가 없거나 적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거나 체면이 깎기는 일이 아니라 자녀가 극복할 수 있는 과정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녀가 근본적으로 지극히 정상적이란 생각을 갖고 도와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자녀 자신만이 가진 방식과 노력에 의해 자신감을 스스로 깨우쳐 공부, 교우관계, 체력증진, 재능, 지혜를 얻어 갈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부모는 외면적 위주의 사고보다 내면적 위주의 사고가 훨씬 중요하고 효과적임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자칫 1 차적인 내면적 사고와 행동보다 2 차적인 외면적 사고에 먼저 치중하기 쉽다.

외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어떤 전략, 기술, 지름길을 찾는 방법, 설득법 등이 우리의 삶에서 우선이라고 믿어왔다면 외면적 사고를 접고, 먼저 내면적 신뢰와 믿음을 중심으로 스스로 씨 뿌리고 가꾸어 결실을 얻어야 한다는 원칙 중심의 삶이 되도록 자녀를 도와야 한다.

다시 말해 결국 인간은 먼저 정식하고, 성실성한 내면적 성품의 근본적 강인한 삶을 성공으로 이끌어준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다음에 대인관계에 필요한 각종 기법(技法), 기술(技術), 화술(話術), 남을 대하는 표정관리, 의사소통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방법 등등의 외면적인 사고는 2 차적으로 필요한 것들임을 자녀들에게 알리고 지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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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가장 중요한 정직, 성실, 책임감

 이 세상에 필요한 인재를 찾는다면 명석하고 창의적인 능력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바탕에 늘 인간이 갖추어야할 윤리와 도덕성이 우선해야 한다.

우리는 더불어 사는 사회적인 동물이다. 인간의 지능과 재능이 특출한 천재, 수재라고 판단되는 아이들일수록 특히 정직하고 공정하여야 하며 성실해야 한다.

정직한 정서가 결핍(缺乏)되면, 준법, 소통, 공감, 협동 등 사회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직하지 못한데 어떻게 법을 지키고, 공감하고, 협동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정직성이다.

우리가 살면서 터득한 진실은 재주가 성실한 인성보다 앞서 성공할 수 없다.’는 보편적인 사실이다. 성공하는 데는 건강한 육체, 훌륭한 성품, 탁월한 지능과 재능이 필요조건이다.

정직하고 성실하지 못하여 믿음을 주지 못한다면 주위에서 사랑과 도움을 받을 수 없다. 혼자살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협력하고 힘을 합쳐 보다나은 시너지 효과를 획득하며 사는 사회가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인륜과 도덕을 저버리고 재능을 앞세워 혼자만 성공하겠다는 외톨이로 산다면 참다운 삶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비록 지능과 재능이 부족할망정 덕망 있는 정직한 인간, , 된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살줄 아는 사람을 이웃으로 좋아한다.

이 세상에서 재주가 많아 사회의 여러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난 사람, 많이 배우고 지식을 축적한 든 사람, 정직하고 공정하고 덕망 있고 성실한 인간성을 갖고 있는 된 사람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사회는 난 사람보다, 든 사람보다 가슴이 따뜻하고 남에게 믿음을 주는 된 사람이 많아야 한다. 지금 우리사회가 머리 잘 굴리고 이재(理財)에 밝은 난 사람, 무엇이든 잘 아는 지식중심의 든 사람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풍토에 젖어있고 가슴이 따뜻한 된 사람을 가장 멀리하고 있다.

그러나 최후의 승리자는 된 사람이 차지하게 된다. 상급학교의 진학은 물론 직장을 얻는데도 지식중심에서 선별을 하고 있다. 지식이 많다고 지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공부를 계속하고, 업무를 잘 처리하기 위해 아는 것이 많은 지식인 아니라 우선 더 중요한 것이 정직과 공정, 성실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상대방을 믿는다는 것은 상대방을 이해했다는 의미다.

성실함으로서 책임감이 강하게 된다. 영유아 시절부터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도록 습관화 되어야 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줄 수 있어야함을 의미다.

특히 사회생활, 직장생활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고, 책임감을 다하는 된 사람이 난 사람, 든 사람보다 필요한 인재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이나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는 정직하고 성실하며 긍정적인 사고에 전문성을 갖추고 창의적 능력이 있다면 금상첨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를 창조하면 모든 것에 만족할 수 있으리라고 믿으며 항상 노력하지만 아무리 채워도 마음 한쪽에 끊임없이 공허함을 금할 수 없는 것이 부다.

바로 여기에서 신앙에 기대여 정신적으로 신성하고 영원한 구원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 신에게 의지해 자신의 정신적 영적성장을 위해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만이 진정한 삶일 수만 없다.

자칫 나를 중심으로 자신의 영달과 천국으로 가기위해 예수나 세존께 의지하는 것은 외적인 욕망만을 키우게 된다. 예수님,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이해하고 실행하여 자신의 믿음을 키워나가면서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행복해 지는 사랑이 중요하다.

법을 이해하며 행동하지 못하고 법에 의존해서는 희망이 성취되지 못한다. 예수님이나 부처님께 의존하여 천국으로 갈 수는 없다.

천국을 꿈꾼다면 그분들이 펴낸 설법을 이해하고 믿음으로 정직하게 그대로 행했을 때 기대할 수 있다. 믿음이란 의존적 행동이 아니라 그 뜻을 이해하고 자신이 내면적 행동으로 옮기는 정직성이다.

우리의 급속한 경제적 성장에서 정신적 성장이 따라오지 못해 불행한 물질적 사회구조로 이끌리고 있다. 후진국 형의 범죄가 늘어난다. 사기나 횡령, 배임죄가 날로 증가한다.

2007년 기준으로 진실을 말해야 할 국회나 법정에서 위증죄가 매년 평균 20만 건씩 늘어나고 있다. 전체 범죄의 26%를 차지한다.

배임죄가 이웃 일본의 171, 없는 일을 꾸며 남을 모함하고 고발하는 무고죄가 217, 몇 년 전 삼성경제연구소의 발표에 의하면 사회갈등지수는 OECD 27개국 중 터키, 폴란드, 슬로바키아에 이어 네 번째로 높게 나타났다.

오늘날 가짜 백수오 때문에 207여개의 여러 기업이 어려움을 격고 있다. 이유는 정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뿐인가? 국립대학은 물론  대학 교수들마저 여구비를 자기 돈처럼 관리하고 사용한 금액이 수천에서 수억이 되다고 감사원의 발표가 있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시민사회운동, 도덕재무장운동, 민주사회운동 등 성인을 상대로 계속되는 계몽운동은 아무리 많이 생겨도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려면 어린 시절부터 정직성, 공정성, 성실성, 책임감을 기러주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커나는 자녀들을 중심으로 잘 길러 30년 후 좋은 사회가 건설될 수 있도록 모든 사회가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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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의 운명이 결정되는 이유

 

영유아들은 의존적 수용단계에 있던 어린 시절부터 보고, 듣고, 생각하여 분별하고, 행동하며 삶을 지속한다. ‘생각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습관을 낳고, 습관을 품성을 낳고, 품성은 운명을 좌우한다.고 늘 주장한다. 이 운명이란 어려서부터 그려지는 자신의 삶에 대한 지도(패러다임)를 수 없이 수정하여 그려보고, 생각하고, 행동해서 얻어진 품성으로 형성된 결과이다.

그 패러다임이 영유아시절 의존단계의 교육환경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 시작되고 만들어져 가지만 인간만이 갖고 있는 자아의식과 상상력, 그리고 양심에 따라 끝임 없이 교정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 번 그려진 그 지도(paradigm)를 수정하기란 그렇게 쉽지 않기 때문에 잘못 그려지지 않기 위해 어린 시절 교육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것이다.

현재 자신의 운명이란 자신의 선택과 무관하게 정해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어린 시절부터 그려진 자신의 지도에 따라 행동으로 옮겨지는 결과이다.

좋은 품성에 따라 행동의 결과를 얻었다면 선하게 되고, 좋지 못한 성품에 따라 행동했다면 악한 운명으로 작용한다.

우리는 종종 선한 자가 손해보고, 실패하며 악한 자가 번영하고, 외면적인 성공으로 존경 받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정직하고 정의로운 행동이 이 사회에서 손해를 초래한다는 생각에서 정의로운 법칙이 작용하는 사실을 부정하기 쉽다.

그래서 심지어 편법을 동원하고, 지름길을 택하는 것이 삶을 풍요롭게 해주고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는 정의와 도덕은 존재한다. 그런 천박한 결론으로 인해 정의로운 삶을 깨닫지 못하여 고쳐지지 않는다면 바람직한 삶이라고 할 수 없다.

다만 우리 앞에 전개되는 최종결과가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만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일 년 농사는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을 거쳐 가을이 돼야 결실을 맺게 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인간은 늘 변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현재 선한 자가 과거에도 선했었다고 할 수 없고, 현재 악한 자가 과거에도 악했었다고는 말할 수도 없다. 현재 악한 자가 과거에는 선했을 수도 있고, 현재 선한 자가 과거에 악했을 수도 있다.

현재 정직하고 정의로운 사람이 불행에 처해 있다면 과거에 잘못 뿌린 씨앗의 결실을 맺게 되는 순간으로 생각해야 한다. 현재 선하고 정의로운 행동의 결과는 바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먼 훗날 좋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 앞에 많은 일이 쌓여있어 많은 일을 해가면서 편한 생활을 애타게 바랬다. 그래서 그 바람대로 일거리가 없어졌다. 그런데 매우 즐거울 거라고 생각했던 안일한 생활을 맞고 보니 너무도 무료하고 환멸을 느끼게 된 후에 과거에 일이 많았을 때가 행복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과거의 욕구와 행위가 현재의 상태를 초래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어떻게 부정직하고, 악하게 살아야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악한 행동은 악을 낳으며 선한 행동은 선을 낳는다고 굳게 믿어야 한다.

자녀들에게 어려서부터 정직, 근면, 성실, 고결함을 통해서만 행복해질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위대한 법칙은 각자의 눈물로 얼룩진 운명이든, 미소 짓는 운명이든 자신이 뿌려놓은 결과에 의해서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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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교육의 결정적 시기를 강조하는가?

오늘은 부처님 오신날, 석가탄신일(日)  이다. 석가는 BC 624년 4월 8일(음력) 해뜰 무렵 북인도 카필라 왕국(지금의 네팔 지방)에서 태어나 많은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캐우침을 주셨다.  석가모니, 예수, 공자, 마호멧 등 모든 성인들께서 자비와 사랑을 전했음에도 어리석은 인간들은 배움을 게을리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오늘 어느 조간신문을 펼쳐들었지만 석가탄신일에 대한 기사가  전혀 없다. 다른 기사들보다  성인의 탄신과 더불어 쓸 내용이 그렇게 없단 말인가? 왜 휴일로 정했을까? 한 번쯤 대중에게 세존의 사상을 전해야 되지 않을까?  

나는 영삼이(0세부터 3세까지 아이들) 시절부터 교육환경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수없이 강조하고 있다. 교육에는 결정적 시기가 존재하기 때문에 교육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 그럼으로 영상이 시절부터 잘 돌보자! 라는 영삼이 스타트(KIDS START)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192010월 인도의 캘커타 지방에서 일어난 일을 알아보자! 싱 목사부부는 동굴에서 이리(여우)에게 길러진 두 자매들을 발견해 되려와 인간회복을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이유는 교육의 결정적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다.

인도 어느 부족은 여자 아이를 낳으면 버리는 풍속이 있었다. 버려진 여자 아이들이 이리(여우)의 도움에 의해 길러졌고, 발견 당시 나이가 두 살과 일곱 살 정도 길러진 것으로 추정됐던 여자 아이들은 인간사회로 돌아왔지만 두 살 아기는 일찍 세상을 떠나 인간회복 교육의 결과를 보지 못했다.

일곱 살 아이는 인간사회 환경에서 걷는 것, 먹는 것, 말하는 것 모두가 충분히 교정되지 못했다. 10년이 지나서 17 세에 겨우 45개의 단어를 익혔을 뿐이고 지적 인지도는 일반 3 세 아이들 정도밖에 안됐다.

밤이 되면 야수의 습성을 그리워하고 이리의 울음을 울었으며, 인간사회에서 전혀 적응하지 못하고 17세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또 다른 예를 보자! 1987년경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옥사나 말라야라는 아이는 3 세경에 버려져 5년 동안 개와 함께 살다가 19958세경에 구제되어 고아원에서 인간사회의 적응훈련을 받았지만 22세가 되어도 대소변을 잘 가리지 못했으며, 10단위 아래의 덧셈과 뺄셈을 할 수 없는 4 세 이하의 지능을 갖게 되어 일생을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상태에서 살았다. 8 세가 넘어 구제되었는데도 그의 두뇌발달은 멈췄다는 의미다.

옥사나 말라야는 인간사회로 돌아왔지만 때때로 개들과 생활을 그리워했고 살며시 풀밭에 나가 개처럼 기어 다니고 짖어댔으며, 개들과 같이 스킨십을 가지면서 입 맞추고 핥아주는 행동을 하며 행복해 했다.

위의 두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유아시절을 개나 야수와 같이 생활하면서 그 환경에 적응된 유아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인간사회를 배워야할 시기()를 놓친 결과이다.

인간으로서 성장할 결정적 시기에 좋은 환경을 잃어버리면, 장성한 후에 배워서는 인간사회의 일상생활마저 어렵다는, 아니 안 된다는 교훈이다.

인간이 부모로부터 태어나기만 하면 자연환경에서 스스로 성장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증명이다. 비록 부모의 유전요소를 간직했을지라도 태어난 후 주어진 교육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인간은 성장이 크게 달라진다.

늑대(이리)7 세 정도 되도록 돌봐준 여자아이는 인간사회에서 17 세로 생을 마칠 때까지 말도 제대로 못 배웠고, 잘 걷지도 못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네발로 걷는 짐승을 보고 자란 아이는 걷는 시기를 놓쳤기 때문에 두발로 잘 걷지도 못하고 네 개의 손발을 사용했으며, 말을 배울 시기를 놓쳤기 때문에 말을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다.

그 뿐인가? 건강의 기본적인 토대도 마련되지 못해 수명을 다하지 못했다. 이미 7 세 정도에 이르기까지 인간사회의 환경에서 격리되어 자란 결과 그 후 지속적인 많은 교육을 제공했지만 인간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해 인간으로서 사회생활을 할 수 없었다.

옥사나 말라야는 3 세경까지 부모 곁에 있었기 때문에 간단한 말은 할 수 있었으나 감정표현을 잃어버리고, 대인관계가 불가능해 일생동안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살아야 했다.

몬테소리 여사는 영삼이(03)시절을 창조적 시기라고 표현했다. 이 시기에 신체적 근육, 지능, 감정, 언어, 행동 등 인간의 기본적 형태가 형성돼 간다. , 인간의 개별적 기본형태의 모든 것을 주위에서 비판 없이 받아들여 하나의 새로운 객체가 창조된다.

아이들이 처해 있는 자연적, 사회적, 문화적 환경을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습득해 나가는 의존단계를 갖게 된다. 이때 자녀들이 가능한 한 다양한 사물을 접하고 다채로운 자극의 경험을 얻기 위한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어른들의 한정된 생각으로 무시하지 말고 무한한 욕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영삼이 시절부터 의식의 창조, 역량의 창조가 시작되는 시기이고, 인간의 영혼이 싹트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3 세경이 되면서 독립심과 의존심에서 갈등이 생긴다. 어느 때는 스스로 해보고 싶고, 어느 때는 도움을 받고 싶은 마음이 내면에서 수시로 충돌을 일으키면서 자신감을 익히기도 하고, 남의 도움이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14 세경이면 독립단계가 시작된다. 사춘기라고 표현한다. 이런 과정에서 부모들이 적기(適期)에 도움을 주어서 안정, 사랑, 믿음, 의지, 인내 등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기초를 닦아야 한다.

자녀가 스스로 해 보겠다는 생각도 부모가 뒤에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안정감에서 용기를 낼 수 있다. 특히 영삼이 시절의 감성발달의 결정적 시기 있다.

생후 3 개월 정도의 아이 앞에서 어머니의 웃음 띤 얼굴을 대하면서 방긋방긋 웃으며 감정반응을 하면서 놀지만, 잠시 화난 얼굴로 몇 초간 대면하고 있으면 아이의 얼굴이 무표정해진다.

어머니가 다시 웃음 띤 얼굴로 대해보지만 한참동안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서 무표정한 감정을 지속한다. 영삼이 시절부터 양육하는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좋은 예다.

영삼이 시절은 절대적으로 어머니 밑에서 자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이 시기에 자신을 보호해주고 길러주는 사람이 자주 바뀌는 교육환경은 불안정하여 감성발달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애착장애아로 발전할 수 있다.

감정표현이 잘 안 되고, 화가 나면 감정조절이 잘 안 된다. 특정한 말이나 행동에 집착하고, 어른에 대한 불신감이 팽배해서 대인관계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이런 생활이 6 세가 넘도록 교정해주지 못하면 일생을 그렇게 살아야 한다. 이런 사실을 아직도 모르는 부모가 많다.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면 커서 인생이 결정되는 것으로 착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부모가 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결혼 적령기의 남여들에게 알도록 집중적으로 교육해야 하지만 어느 교육기관도 이러한 사실을 알려주지 못하고 있어 안쓰럽다.

대학에서 어는 특정학과에서만 유아교육에 대한 강의를 받을 것이 아니라 모든 학과에서 적어도 한 학기이상 부모가 되기 위한 교양과목으로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야 한다. 혹 나이든 분들이 이글을 읽는다면 가까운 부모가 되어야할 적령기 자녀들과 이웃 에게 널리 알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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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너그러움만이 좋은 교육은 아니다.

이미 의존단계를 지나 독립단계에 접어들었음에도 자녀들을 기르다 보면 부모들의 생각에는 아직 어리고 철없다는 생각에서 독립성을 뒤로하고 의존하도록 대처한다.

5 세정도가 되면 아직 의존단계에 있지만 독립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준비단계의 시기라고 보아도 된다. 언제나 잘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스스로 할 수 있는 경우도 응석을 부린다. 때로는 응석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때가 있다.

스스로하기에 좀 버거운 경우를 제외하고 충분히 할 수 있는 행동을 대신해달라고 조른다면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 자녀가 감기 등 질병에 걸려 모든 것을 대신해주고 나면 질병이 완치됐어도 어린양이 남아 있게 된다.

조금 안쓰럽지만 엄하게 고쳐주지 않으면 독립심이 낮아지게 된다. 자신이 해야 할일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는 의존적 심리가 커지면서 잠재되어 성장해서도 조금만 어려우면 포기하고 스스로하려 하지 않는다.

자주 게으름을 피우면 집중력이 생길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집중력을 길러주지 못하면 시간관리가 안 된다. 생존경쟁이 심한 사회에서 집중력이 모자란다면 업무의 능률이 크게 떨어진다.

직장생활에서 노동생산성이 떨어져 다른 사람보다 오래도록 근무시간을 보내야 한다.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이 OECD 국가 중에서 뒷자리를 차지하는 이유가 어린 시절 부모의 집중력 교육이 부족한데서 오는 것으로 생각된다.

집중력이 부족해도 중학교까지는 그런대로 버틸 수 있지만 고등학교, 대학생활에서 집중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학업성적도 떨어지고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못한다. 고등학교까지는 그런대로 좋은 성적을 얻어 진학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우수한 학생들이 미국 일류대학에 진학하여 적응하지 못해 낙오되는 학생이 거의 40%에 육박한다. 시간 관리와 집중력의 부족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협력해서 시너지효과를 얻을 수 있는 상호협력단계에 있어 공부를 제외한 클럽활동 등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음에도 불고하고 교과공부에 매달려 시간을 보낸다면 다른 학생들과 어울릴 여유가 없다.

대학생활이 교과공부로 끝나지 않는다. 학점을 좋게 받아야하지만 교과학점에만 매달린 대학생활은 사회의 많은 길 중에 선생님으로 가는 길밖에 없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시간 관리를 할 수 있는 집중력을 길러 주어야 한다. 책상 앞에 앉아만 있으면 공부하는 것으로 알고 전혀 간섭하지 않는다. 그러나 집중력을 기르기 위해 시간표를 작성하여 그 시간 내에 마치고 다른 일 즉, 놀기, 운동하기, 봉사활동 등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적당히 행동하거나 대충 넘어가는 행동을 너그럽게 대해서는 안 된다. 잘못된 일을 했을 때는 따끔한 훈계가 필요하다. 일예를 들어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깼다면 왜 돌을 던지게 됐는지 원인부터 밝혀가며, 잘못된 행동에 제제를 가해야한다.

이웃집 유리창이라면 잘못을 사과하도록 하고, 보는 앞에서 부모가 대신 변상해 주는 것을 똑바로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어려서 잘못된 행동이라고 너그럽게 훈계도 없이 넘어간다면 자녀의 가슴속에 개운치 않는 찌꺼기가 남아있게 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해주지 않는 법을 배우게 된다. 너그럽게 용서해주는 방법을 익힌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잘못을 어물쩍 넘어감으로서 자신이나 공동생활에 크나큰 손해를 발생하게 한다.

나는 군대에서 상사가 부하의 잘못을 너그럽게 대하다가 큰 사고가 터져 자신을 비롯해 부대가 힘들었던 일을 기억한다. 엄한 상사의 명령에 잘 복종하지만 너그러운 상사의 명령에 제대로 복종하지 않아 일을 그르친다.

사회에 진출하여 말단 사원으로 일할 때는 문제가 없지만 상사가 되었을 경우 부하의 잘못을 적절히 지적해주지 못하면 자신은 물론 회사에 크나큰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

그리고 부하의 잘못을 정확히 지적하지 않으면 상사로서의 존경도 받지 못한다. 그저 너그럽고 마음씨 좋은 아저씨로 남게 되기 쉽다. 그렇다고 늘 엄해야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먼저 너그러움, 관용을 베풀어야 하고, , 서로의 감정계좌가 많이 쌓여 있어야 다음에 엄격하게 꾸짖을 수 있게 된다. 먼저 관용은 없고 꾸짖음만 강하다면 서로의 돈독한 사이가 될 수 없다.

이 원리는 부모와 자녀 간에도 적용된다. 부모와 자녀 간에 감정계좌가 높지 않으면 자녀의 잘못을 엄하게 꾸짖어도 효과가 없다. “매를 아끼면 아이들을 망친다.(Spare the rod and spoil the child)”는 영국 속담은 맞는 말이지만 전제조건이 꼭 필요한 것이 부모와 자녀 간의 감정계좌가 높을 경우에만 해당된다. 그렇지 않고 감정계좌가 마이너스일 경우 자주 체벌을 가하면 자녀의 일생을 망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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