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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유아 시절부터 시작되는 오감(五感)의 자극

영아(嬰兒)란 대개 만 1세까지를 말한다. 그 이후 유아(幼兒)의 성장은 개성이나 체질에 따라 각각 다르게 성장한다.

영유아기는 사물을 지각하는 개념을 형성하는 시기로 오감을 통해 어떤 환경에서 자라느냐에 따라 성장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게 된다.

기본적인 육아법을 토대로 각각 영유아에게 알맞은 시기에 적절한 교육방식을 취하여야 한다. 그중에서 청각, 미각과 촉각이 먼저 지각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영아기를 거처 유아기로 진행되는데 어떤 분들은 영아기와 유아기를 구분하지 않고 있다. 영유아기를 통틀어 먼저 청각(聽覺), 미각(味覺), 촉각(觸覺)이 발달하는 시기로 그에 알맞은 교육환경을 제공해야 뇌세포의 발달기반이 조성될 수 있다.

태아에서 형성된 140억 개정도의 뇌세포는 영아시절로부터 후기 유아시절로 진행되면서 뇌신경망을 발전시켜 가게 된다.

이 시기에 많은 뇌신경망을 만들어 줌으로서 서로 연결되는 뇌신경망을 이용하여 일생동안 뇌세포를 잘 활용할 수 있는 두뇌발달로 바람직한 삶을 영위할 기본을 형성하게 된다.

그래서 이 영유아 시기가 두뇌발달의 매우 중요한 시절이 된다. 이 영유아 시기에는 오감을 통한 다양한 자극을 받음으로서 뇌신경망이 많이 형성되고 정서적인 안정과 신체적 반사기능이 어떤 교육을 통해 활발히 발전을 지속할 수 있게 된다.

느낌에 의한 지적기능 즉, 신체적인 오감에 의한 감각기능을 활성화시켜 주는 것이 꼭 필요하다. 많이 훈련이 필요한 신체적 기능으로 오감인 미각, 청각, 시각, 촉각, 후각에 의한 행동을 끊임없이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어 행동에 옮기도록 하고,

부모와의 교감에 따라 기쁨을 얻어 즐거움이 계속 되어야 한다. 부모의 기쁜 감정을 늘 칭찬으로 표현해 준다. 이러한 칭찬의 방법으로 행동에 대한 구체적인 칭찬이 필요하다.

무엇이 어떻게 돼서 칭찬할 가치가 있는지 바로 그때그때 구체적인 행동의 과정과 결과에 대한 칭찬이어야 한다. , 자녀들에게 어떤 특정한 자극을 주어 행동하게 하는 동기부여(動機賦與)에 따른 구체적인 과정과 결과를 칭찬해야한다.

너는 전에 이렇게밖에 못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해서 훌륭했다. 전보다 OO을 더 잘했다. OO에 대해 노력해서 고맙다.”라고 칭찬해야 한다. 늘 칭찬은 구체적이고 긍정적으로 해야 한다.

이것은 잘했는데 저것은 못했다.”다고 말한다면 칭찬으로 들릴까? 아니다. 하나의 꾸지람이다. 아인슈타인은 수학은 잘했는데 다른 과목은 낙제점수를 받고 있을 때 그의 스승인 헐츠(Heltz) 선생님은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네는 수학점수가 100점이구만 천재야!’ 다른 과목도 수학처럼 해보게! 그러면 모두 100점을 받을 거네.”

그리고 영삼이 시절부터 눈높이에 맞추어 어른의 모범적 행동을 보여주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사물의 변화를 경험함으로서 상상력을 길러준다.

첫돌 정도에서 까꿍 놀이, 물건을 보자기에 숨겼다가 꺼내는 놀이 등 예측할 수 있는 힘, 이것이 상상력의 시초이다.

물론 3, 4세가 되면서 수를 세는 것이나, 글자의 모양을 익혀 사용할 줄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3세가 되면서 부모님이 관심을 조금만 기울여도 한자이나 한글을 읽을 수 있게 지도할 수 있다.

글자를 알면서 어휘의 확장이 빨라진다. 다만 강요해서 글자를 알게 하고 쓰게 한다는 것은 어려운 과정이다. 그러나 듣고, 보고 익힐 수 있는 능력은 생후 8개월부터 시작해도 무리가 없다고 한다.

일반 부모들이 5세 이전에 한글을 익히는 것이 자녀들에게 무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6세 이후에 글을 익힌 자녀들의 5060%가 초등학교에서 지진아가 될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또한 일평생 글을 읽는 속도도 느리게 된다. 자녀들이 남아든 여아든 첫돌이 될 때는 사물을 구별하는 기능을 갖게 된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 본인에게 좋은지 나쁜지 판단하고 우선 자기에게 불리하면 두려움을 갖기 시작한다.

두려움을 일찍 자주 경험하고 있다면 정서발달은 물론 여러 가지 교육의 효과를 얻기 어렵게 된다.

일예로 불협화음은 영유아의 공포를 자아낸다. 낯선 불협화음을 듣게 되면 대개 불안해하고 공포감에 울음을 터트리는데 빨리 어른의 품으로 안아주어서 공포,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어야 정서적 불안감이 제거된다.

본능적으로 아기가 혼자 있으면 불안해하고, 어둔 곳, 큰소리, 처음 대하는 물건 등에서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혼자 두면 불안을 느끼게 한다.

대체로 조용하고 한갓진 곳에 잠을 재우게 되는데 깨어날 때 보호자가 없어 불안감이 증폭되면 정서적으로 좋지 않게 된다.

어머니의 따뜻하고 포근한 가슴에 안기여 젖을 먹는다는 것은 정서적으로 가장 안락한 환경이다. 다시 말하지만 어머니가 젖을 먹인다는 것이 모유의 영양학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을 느끼는 정서적인 면이다.

비록 젖이 나오지 않아 우유를 먹인다 해도 아주 편안한 자세로 아기를 가슴에 감싸고 먹이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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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에게 달려 있는 교육의 장래

세상에서 어머니만큼 자녀의 교육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은 없다. 다시 말해 국가나 민족의 장래는 어머니들에게 달려 있다.

아버지가 가정의 지도자(Leader)라면 어머니는 관리자라고 늘 주장해 왔다. 지도자인 아버지가 가정을 이끌어가는 목적과 방향을 제시한다면 관리자인 어머니는 목적에 도달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지도하는 관리를 맡아주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교육이 잘되는 나라는 어머니들의 철저한 관리자적 위치 때문이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교육을 이야기할 때는 늘 한국을 예로 들고 한국을 배우자! 라고 외친다. 그는 한국의 교육열이 한국전쟁 당시 폐허된 나라가 지금의 중진국의 대열로 이끌었다는데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올 여름 미국을 방문해 미국의 교육환경을 보고 깜짝 노랬다. 초등학교에서는 재정문제로 예능교육이 빠졌고, 수업일수가 줄어들어드는 등 교육에 고전하는 모습을 보았다.

선생님들의 봉급이 지나지게 적어 생활이 불안해 두 가지 직업을 가져야 했고, 학업에 필요한 재원이 부족하여 학생들이 집집마다 필요한 물품을 학교에 가져가야 하고, 심지어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물품을 판매하여 교육의 재원을 확보하는 현상이 보였다.

미국의 교육환경이 왜 이렇게 열악하게 됐을까? 그 원인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교육환경이 열악한 것만은 사실이다. 선생님의 대우가 좋지 않은 자본사회에서 훌륭한 교사를 학교에 유치할 수 없고, 기부문화에 의존하고 있는 교육재정 현실에 놀랄 뿐이다.

우리는 그래도 좋은 교육환경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편이다. 다만 어머니들이 가지고 있는 의식(패러다임)을 조금 수정한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머니의 의식개선은 우선 자녀들의 학습평가 방법을 달리보아야 한다고 본다. 세계의 42%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지능검사에서 우리보다 평균 12점이나 뒤진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훌륭한 과학자를 배출할 수 있는 데는 어머니들의 힘이 크다. 유태인 어머니들은 자녀를 학교에 보내면서 자녀의 무한한 잠재력을 키울 수 있도록 지도한다.

학교에 갈때 모르는 것이 있으면 선생님께 질문하고 잘 배우라!”는 부탁을 한다. 우리 어머니는 어떤가?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얌전히 있으면서 많이 배우라!”는 말을 한다.

유태인의 어머니들은 자녀들의 잠재력과 호기심을 길러줌으로서 각자의 개성을 살리고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데 반하여 우리 부모님들은 선생님께 의존하여 어떻게든 많이 배우기를 원한다.

아는 것이 힘이다(scientia est potentia).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아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알고 있는 것을 어떻게 실천하고 활용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학교에서는 어머니들이 원하는 지식을 제공하는데 급급하다. 학교 성적이라는 것이 얼마나 지식을 쌓았는지 평가하는데 중점을 둔다. ? 상급학교에 진학하고, 직장을 얻는데 얼마나 알고 있는지 주로 객관적인 지식평가를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사회적 잘못이다. 얼마나 알고 있는지 상대평가의 잣대를 들이 대는 사회적 통념 때문이다. 믿음이 적은 사회에서 주관적 평가보다 객관적 평가가 더 공정해 보이기 때문이다.

무슨 근거로 자녀들의 진학과 직장이 결정됐는지 그 이유를 따진다. 그 이유는 믿지 못하는 사회풍조 때문이다. 어떤 다른 이유로 진학되고 직장을 얻게 되었는지 의심하는 사회다. 주관적인 개념이 성립될 수 없는 사회의 병폐다.

 의심하지 않고 주무부처에서 행한 결과의 사실을 믿어 줄 수 있는 사회풍토가 조성되지 않는 한 객관적 지식평가에 의해서 좌우되어야 한다.

또 한 가지는 자본주의에 너무 기울어져 있다. 돈이면 다 되는 사회다. 그러기에 돈을 잘 벌 수 있는 직업과 권위적인 직책을 원한다. 엘리트들이 법대, 상대, 의대를 지원하고 나머지가 공대로 간다. 과학을 등한히 한다. 우대받지 못한다. 기초과학이 든든하지 못하면 그 사회는 사상누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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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설의 최우선은 안전에 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인위적인 구조물을 만들어 편리하게 이용한다. 자연인 육지, 바다, 하늘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그를 활용하고 이용한다. 그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면 안전(安全)이다.

자연을 다듬고, 가꾸고 꾸며서 우리 생활을 윤택하게 바꿔 갈 때 자칫 잘못하면 어떻게하면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될까부터 생각하기 쉬운데 가장 최 우선으로 꼽아야 할 것이 안전(安全)이다.  

우리는 대부분의 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 다른 것보다 안전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래서 우리는 인재(人災)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실은 자연재해(自然災害)를 제외한면 대부분 인재일 수 밖에 없다.

우리 삶의 기반이 되는 중요한 시설로 집, 도로, 항만, 철도, 통신, ·학교, 병원, 상수·하수 처리 시설 따위를 총망라해도 가장 중요한 것이 안전이다. 왜? 우리가 생존하지 않는다면 모두가 필요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금 번 우리 뇌리를 떠나지 않게 하는 세월호 참사, 성남 환풍기 참사 등등은 빙산의 일각이다. 평상시 우리는 언제 어떤 참사가 닥쳐올지 잘 알지 못하고 있다.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안전사고는 그저 아슬아슬하게 지나갈 뿐이다. 

모든 시설의 최 우선은 하나도 안전, 둘도 안전이다. 생각지 못한 천재지변이  언제 일어날지 모를지언정 그에 대비하는 안전이 무엇보다도 최우선이어야 한다. 하물며 사람이 만든 시설은 꼭 안전을 우선해야 한다.

하루 수십만명이 지나다니는 서울 명동의 인도는 3분의 2가 환풍구로 덮혀 있다고 한다. 이 비싼 땅을 환풍구와 인도를 겸해서 사용해야 하는 당위성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런 효율적인 시설이라면 최우선으로 안전성을 강조하고 그에 적합한 시설기준이 마련돼 있어야 한다. 그러나 환풍구에 대한 시설 규정도 없다고하니 다시한 번 생각할 문제다. 어찌 명동의 환풍구 뿐이랴! 우리가 편리하게 사용하기 위해 만든 지하철의 수없이 많은 환풍구 또한 철저하게 안전점검이 필요하다. 

나는 지나는 행인들이 담배꽁추를 너무 많이 버려진 것을 보고 시민정신의 결려만 생각했지 사람이 빠질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못했다. 행여 일시적으로 무거운 차가 모르고 들어섰다가 매몰되는 상황을 생각하니 아찔하다.  

이 번 성남 환풍기 참사를 계기로 우리 주변의 모든 시설의 안전점검이 꼭 필요하다. 이제까지 안전했는데 무슨일이 있겠는가 하고 넘겨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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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파레토 법칙을 인정하고 살자!

이 세상에 태어나 다 같이 더불어 사는 우리는 모두가 고르게 잘 살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자연법칙이다.

애석하게도 사회적 구조는 20 : 80의 법칙이 존재한다고 한다. 1897년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파레토(Pareto)는 우리사회의 소득분포를 연구한 결과 파레토 법칙(Pareto's law)이 존재하고 있음을 찾아냈다.

우리 사회의 소득분포는 소수인 20%가 전체소득의 80%를 좌우한다. 이 법칙은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자연계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

본 이론에서 약간 차이는 있지만 파레토 법칙을 빈부의 차이로 쉽게 설명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부자와 가난한자의 구성이 20 : 80으로 형성돼 있다는 설명이 된다.

이 법칙은 인간만이 아니라 무리지어 사는 다른 동물사회에도 적용된다고 한다.

사회생활을 하는 모든 집단에서 지배계급인 부유한 자, 유능한 자가 20%, 그렇지 못한 자가 80% 비율로 구성돼 있다고 해석해도 틀린 것은 아니다.

이런 현상에 대한 자연법칙이 존재함을 모두가 인정(認定)하고 수긍(首肯)할 수 있도록 자녀들에게 알려야 한다. 다만 20% 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인정하는 마음자세가 필요하다.

자연법칙인 파레토의 법칙을 모두가 인정하고 상대적 빈곤을 이겨낼 수 있는 정신적 수양이 절실히 필요하다. 부자가 있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아니 그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다.

백화점이나 호텔의 고객 중 20%만을 잘 관리하면 성공한다고 한다. 개미사회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개미는 전체의 20%라고 한다.

그런데 그 일 잘하는 개미 20%만 따로 모아놓으면 또 그 중에서 20%만 열심히 일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사람도 10사람 중 2사람의 리더가 8사람을 이끌고 도우며 협력한다면 모두가 더불어 잘 살 수 있다.

문제는 20%80%의 격차를 어떻게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연구하고 노력해야 한다. 실은 부자와 가난한 자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 그것도 문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경제민주화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경제의 민주화란 자유 시장경제를 말한다. 부자를 다스려 가난한자에게 경제적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크게 잘못이다.

빛이 있어 그림자가 생기고,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 자연법칙이다. 그림자를 없애려고 빛을 가린다면 캄캄한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

오히려 정의로운 사회경제를 말해야 한다. 경제활동은 물론 모든 활동의 기회균등, 정직한 사회 결과보다 광정을 중요시하는 풍토 등 정의로운 사회가 되도록 환경을 제공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분법적(二分法的)인 사고고, 제로섬의 법칙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부자를 매도하고 경멸하는 사고는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어갈 뿐이다. 모든 것이 상대적 상관관계에서 얻지는 데 불과하다.

삶에 대한 최선을 다하고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면 결과는 신에게 맡겨야 한다. 정신적으로 물질적인 상대적 빈곤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모든 것을 독식(獨食)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명성(名聲)이 높은 자는 명예(名譽)에 만족하고, 돈이 많은 사람은 부()로서 만족하고, 운동선수는 선수로 만족하고, 정치가는 백성을 잘살게 만들어 주는데 보람으로 만족하고, 각자의 위치에서 만족한 행복감을 느낀다면 좋은 삶이라고 본다.

자고로 이 세상에는 물 좋고 정자(亭子) 좋은 곳이 없다.”고 옛 성인들이 말해왔다. 이 세상은 모든 것을 만족하게 골고루 다 갖추어 살 수 없다는 말이다.

자연법칙에서 시사(示唆)하는 것처럼 전체를 보면 한쪽으로 치우쳐지지 않고 평형이 유지된다는 의미다. 끝도 없이 흐르는 강물이 마르지 않고 바다가 넘치지 않으면서 평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자연의 이치인 순환 때문이다.

절대적 빈곤을 벗어났다면 물질적 부자가 되지 못한 것을 한탄하지 말고 자기의 장점이 무엇인가 찾아 갈고닦아 정서적 마음을 다스려 만족할 줄 알아야 행복한 삶은 누릴 수 있다.

절대적 빈곤을 벗어났다면 정서적 마음의 부자가 되는 것이 현명한 삶이다. 생존의 삶(living)에 억매이면 훗날 후회하게 된다. 그래서 정서적 마음의 삶(life)을 생존의 삶보다 우위에 놓고 싶다.

부유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에 부자가 될 수 있었다는 고마운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을 도우면서 삶의 보람을 느끼고, 가난한 사람은 부자들을 인정하고 존경하면서 상호협력 해 시너지효과를 높여야 한다.

물질적 부가 결코 인생의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생존을 위한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뜻이다. 시민사회에서 사회적 덕망과 지위, 창조적 성취에서 참다운 보람된 삶을 살아갈 때 부수적으로 물질적 부가 따라와야 한다.

사회에서 부도덕 한 삶으로 부가 일시적으로 축적되는 경우가 있다. 사악하게 벌어들인 부가 행복할 수 없고, 그렇게 벌어서 생존을 위해 어떻게 얼마나 사용할 것인가? 쾌락?, 호의호식?, 얼마나 행복한 기간이 지속될 수 있을까? 그러한 행복은 일순간에 불과할 뿐이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에 많은 부를 축적하지만 그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부를 축적하기 위해 늘 괴로워한다. 특히 양심을 속여 얻어지는 부는 얻지 못했을 때보다 마음의 가난 속에 살면서 불행을 맞이한다.

목마를 때 물을 마시는 그 순간이 행복하고 머지않아 사라진다. ? 생존을 위한 물질적 욕구의 만족은 순간에 불과하고 늘 허전한 삶의 구석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오직 생존을 위한 삶이란 허무하다.

물론 물질적 가난과 부를 바라보는 사람의 상대적 관점에 따라 만들어진 마음에 불과하다. 가난과 부는 시대에 따라서 환경에 따라서 기준의 척도가 달라진다.

실은 가난과 부에 대한 설명을 하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을 쓰는 목적이 아니다. 그러나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영삼이 시절부터 좋은 교육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어 전혀 다른 관점은 아니다. 가난이 삶에서 불행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절대적 빈곤에서 탈피하면 적당한 선에서 부를 쫒는 행동보다 정신적으로 풍요를 바라는 진정한 정서적 삶을 추구하는 것이 더 현명한 삶이다.

물론 거부(巨富)나 재벌이 되기 위해서는 하늘의 뜻이 있어야하고, 꼭 큰 부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장사, 상업분야에 어려서부터 일찍 발을 드려 놓아야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 않고 명예와 권력을 부와 같이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또 다른 욕심이며 설혹 그렇게 된다고 해도 그것은 오래갈 수 없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요 법칙이다.

부자도 되고, 명예도 얻고, 권력을 같이 얻어 행복할 수 없다. 모든 것을 다 누리려는 것은 행복에 대한 인간의 욕심에 불과하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열심히 큰돈을 모아 정원이 근사한 저택도 마련했다. 그러나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밤낮없이 동분서주해야 하는 생활을 해야 했다.

어느 날 일을 일찍 끝내고 예정에 없이 자기 집에 들렸을 때 그 집을 관리하던 관리인이 잘 다듬어진 정원에서 자기 부인과 차를 나누는 다정한 광경을 목격하고 이 집은 내 집이 아니라 관리인의 집.”이라고 생각됐다. 자신의 삶이 잘못 되었음을 뒤돌아보고 깨닫는 순간이다.

절대적 빈곤(가난)인 식(), (), ()가 해결되면 다음은 상대적 빈곤을 극복해야 한다. 물질적 부가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유발하는 것은 행복요인 중 10% 미만이라고 한다.

순수한 교육에서 얻어지는 정신적 깨달음의 행복이 50%, 나머지 40%는 가정과 친척간의 화목, 친구간의 우정, 사회 공동체 활동, 생산적인 활동, 운동이나 취미 등이라고 한다.

우리의 삶에서 10%의 만족을 위해서 90%의 만족을 희생해 버리는 삶이 현명한 행동일 수 있겠는가? 이 세상을 등질 때 허무함을 느낄 뿐이다.

국민 소득이 8천 달러 내지 15천 달러가 될 때까지 사람들의 행복지수는 물질적 부에 비례해서 올라간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15천 달러의 국민소득 시대가 물질적 행복지수의 정점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소득이 2만 달러, 3만 달러가 넘어가면서 오리려 행복지수는 하향하게 된다고 한다.

우리의 삶에서 행복지수가 10%인 물질적 풍요를 위해 일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잘못된 삶이다. 가장 미미한 행복이 물질적 부에서 얻어진다고 해서 경제적 마인드를 터부시하는 것은 아니다.

어려서부터 경제관념이 희박하면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기 힘든 절대적 빈곤층으로 떨어지기 쉽다.

인생에서 절대적 빈곤이 해결될 수 있다면 행복의 충분조건으로 보아야 한다. 행복하기 위해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사악하게 벌어들인 큰 부는 가족의 평화를 깨고 오히려 고뇌의 연속일 뿐이며, 삶을 정리할 때 편안히 갈 수 없다. 보람되고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란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 풍요에서 온다.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나려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교육이 어려서부터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보람된 삶을 위해서 물질절인 면보다 정신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지만 절대적 빈곤에서 정신적 풍요를 얻을 수 없다는데 주목해야 한다.

경제적 풍요로움이 결코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부자가 되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집착하지 말자는 것이지 아이들에게 부자가 되면 불행해진다. 친구를 잃는다. 부는 죄악이다.”라고 가르쳐서는 안 된다.

경제는 현실이고 생존의 기본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경제에 대한 교육이 꼭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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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에서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봐야한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윤회(輪廻)는 주로 정신적 의식변화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오히려 물리적인 면에서 인연(因緣)과 윤회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크게 본다면 비록 생겨난 그 형체는 멸()하지만 그 결과 다른 것이 생성되도록 돕고, 다시 생성된 것이 멸하여 또 다른 새로운 것을 잉태한다.

생자필멸(生者必滅), 사자필생(死者必生) , 이 세상에 생겨난 모든 것은 반드시 없어질 수밖에 없고, 없어지면 반드시 새롭게 태어난다. 우리는 단순히 없어지면 멸했다 하고, 생성되면 태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하나의 형상의 변화에 불과하다. 한쪽에서 바라보면 늘 생겨나고, 다른 한쪽에서 보면 늘 멸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순환에 불과하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변화할 뿐이다. 비행기를 타고 여행할 때 식사 때가되면 손님들에게 식사를 제공한다. 준비해간 많은 음식물이나 음료수를 손님들이 다 먹어 없어졌으나 그렇다고 비행기의 무계가 가벼워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크게 전체를 놓고 볼 때 무계가 달라진 것이 없고 다만 변화가 일어났을 뿐이다. 전체를 하나로 본다면 죽는다는 것이 새로운 존재의 시작을 의미한다. 새롭게 생길 뿐이다.

우주까지 넓혀서 생각할 필요도 없이 이 지구만을 국한해 생각해 그중 사람을 본다면 인구가 늘어날 때도 있고 줄어들 때도 있다.

인구가 늘었을 때는 사람 아닌 다른 무엇이 줄어들었을 것이며, 인구가 줄었다면 다른 무엇이 더 생성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인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생물과 무생물의 인연관계(因緣關係)가 다 그렇다.

지구 안에는 무수히 많은 생물과 무생물이 존재한다. 어느 것은 사라지고 어느 것은 새롭게 생겨난다. 지구의 전체의 질량은 질량불변의 법칙에 의해 변함이 없다고 그렇게 추정할 수 있다. 더 확대해 우주로 넓혀 생각한다 해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추론이 가능하다.

우주(universe)란 전체, 논리수학에서 1을 의미한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의 합()은 하나일 뿐이다. 부분적으로 보았을 때 생멸이 보일 뿐이다.

이것이 좁은 의미에서 순환이고 윤회라고 하지 않는가? 바다에 파도가 생겼다가 없어지고 생겼다가 없어지는 것이 윤회와 같다고 설명할 수 있다.

우리가 이 지구상에서 과학의 발전으로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보지만 이 지구상에 있는 것을 찾아내어 분해하고 조합한 결과에 불과하다.

이 지구에서 좋은 것만 찾아내어 사용하게 되면 한쪽에 남는 것은 해로운 공해물질이 쌓이게 된다. 과거에 없던 공해가 발생하는 것은 인간이 지구에서 인간에게 편리하고 이로운 것들이라고 생각해 쏙쏙 빼내어 사용하는 과정이나 결과로 얻어진다.

의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강한 독성을 가진 병균이 등장한다. 이 세상은 가위, 바위, 보의 게임과 같이 굴러가야 오래 지속(持續)될 수 있다.

우리사회도가 가위, 바위, 보의 법칙에서 질서가 유지 될 때 살기 좋고 평화로운 세상이 된다. 이 법칙이 깨지고 극도로 양분되는 어느 날 지구는 우리가 말하는 멸망이 오고다시 뒤섞여 평형을 되찾게 될 것이다.

요즘 와서 삶의 양극화 현상이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평형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극심하게 한쪽으로 치우쳐 기울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것이 경제적인 것만이 아니다.

사회제도나 체제 따위를 새롭게 뜯어 고치는 것을 개혁(改革)이라 한다. 불평형(不平衡)을 개선하거나 개선되면 다시 평형을 이루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이 지구상에 석탄과 기름이 어디서 왔는가? 수백만 년 전에 울창했던 숲(나무)은 파묻혀 석탄이 되고, 지구상이나 바다에 있던 동물은 파묻혀 기름이 됐다고 하지 않는가?

지금까지 기술한 것은 물질적 세계에 중점을 두고 바라본 상대적 변화에 관한 것들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성적을 상대평가로 재단하면 제로섬의 법칙이 적용 되지만 절대평가로 행한다면 그렇지 않다. 때문에 교육에서 정확한 기준에 의해 절대평가로 개인의 내재적 능력(실력)을 인정해야 한다.

상대적 평가는 무의미하다고 봐야 한다. 그 집단에 대한 외적인 상태의 인정에 불과하여 이분법에 따라 바라보는 좋지 못한 인성을 길러주게 한다.

인간은 서로가 화합해야 각자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결합해서 더 큰 시너지효과를 가져다준다. 서로가 승승(winwin)하는 사고방식으로 사회를 바라보며 살도록 자녀를 교육해야 한다.

인간은 태어나 의존단계, 독립단계를 지나 상호협력단계로 발전해 가야한다고 나는 주장한다. 개별적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배우고 닦아야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서로가 개별적 능력을 결합했을 때 각자가 가지고 있는 능력에 대한 합보다 더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일찍이 그런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사회공동생활을 한다. 각자 악기를 잘 다룰 줄 알면 독주에서 최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서로 협력해야 오케스트라의 진가를 찾아낼 수 있는 것과 같다. 그것이 시너지효과라고 한다.

물질적 부는 삶의 수단이지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물질적으로 절대적 빈곤이 해결된 사람은 상대적 빈곤에서 혜여나지 못해 고민하지 말고 절대적 빈곤층을 구제하는데 일조하는 것이 보람된 삶이다.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났다고 생각될 때 자신이 이미 부자임을 인식해야 한다. 자신이 부자라고 풍요롭게 생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자신이 부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늘 상대적인 관점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여행을 하면서 바(bar)에 앉아 값나가는 음료수를 마시는 대신 물을 마시고, 호텔을 떠나기 전 자기가 사용한 방을 치워주는 종업원을 위해 몇 달러 더 팁을 놓고 나와 보라! 자신이 부자로 느껴지며 흐뭇해질 것이다. 이것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방법이다.

이해관계를 전제로 행동하지 않고 남에게 베푸는 행동으로 마음을 채우는 것이야말로 흐뭇함과 깨달음의 경지로 다가갈 수 있다.

성인(聖人)들은 그 베풀었다는 것조차 마음에 두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것이 불법에서 말하는 아상, 인상에 얽매이지 않는 방법이다.

어려서부터 행복할 수 있는 균형감각을 자녀에게 알려준다면 그 보다 더 좋은 교육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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