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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에게 올바른 책임감의 한계를 알게 한다.

자녀들에게 자신의 위치와 현실을 정확히 알리고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주어 책임감을 갖도록 한다. 어린 자녀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할 때 곧바로 지적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너무 책임감을 강조하다보면 성장해서 자신의 잘못이 아닌 경우도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데 유의해야 한다. 책임 있는 행동을 강조하다 보면 자칫 모두가 자신의 책임이라고 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게 만든다.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의 고통과 손해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강한 강박감 속에 갇히게 되어 때때로 자신에게 불필요한 책임감으로 상처받기 쉽다. 다른 사람들의 잘못이나 불행해지는 것이 모두 자기 탓으로 돌리는 성향이 깊게 뿌리박힐 수 있다.

그러한 강박관념에서 빨리 벗어나게 해야 한다. 그럼으로 자기의 잘못에 대한 한계 내에서만 책임을 지도록 강조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책임 한계를 확실히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잘못된 일에도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고 억매여 깊이 빠지는 것은 큰 잘못이다.

이러한 생각은 사회생활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는데 큰 지장을 가져온다.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모든 책임을 떠맡아 책임지려고 한다. 매우 바람직한 행동 같지만 자신을 학대하게 되어 삶이 매우 어렵게 한다.

때에 따라서 너무 야박한 것 같지만 책임의 한계를 분명히 긋는 것이 좋다. 인간에게는 짊어질 수 있는 능력의 한계가 있다. 자기의 책임을 다하기도 어려운데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짊어진다는 것은 자신을 망가지게 할 수 있다.

사회생활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게 되고 자신의 자유를 속박 할 수 있다. 때문에 자녀들에게 주위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원칙에 따라 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늘 강조해 주면서 책임의 한계를 알려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기 자신에게 주어지는 일을 해내기 어려울 때 다른 사람이나 주위의 여건 때문에 구속 된다는 것은 삼가야 한다. 그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원칙적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주도적인 삶을 살려면 때로는 정중히 거절할 줄도 알아야한다. 도움을 거절하는 것은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도 있어 그 때마다 정중하고 겸손하게 해야 한다.

저를 믿고 부탁해준데 대해 대단히 감사하다. 꼭 도와주고 싶고, 도와주어야 당연 하지만 지금 저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들이 쌓여있어 시간이 없다. 여유가 없다. 매우 미안하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다음에 그런 기회가 있다면 꼭 도와 드리겠다.”라고 정중히 거절해야한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우선 자신에게 책임이 있지 않은지 초점을 맞추고 분별하고 개선하도록 노력함으로서 자아성찰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문제에 대하여 자신을 정당화하려 하지 않고, 방어하려 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려 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금지하는 언어표현을 할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자녀들에게 설명하고 이해 되도록 하여야한다. “누구처럼 무엇을 하라!, 누구처럼 무엇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누구처럼 공부 좀 더 열심히 하라!, 더 열심히 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현재상황과 비교하여 점점 나아지는구나! 공부가 힘들지? 먼저보다 성적이 많이 올랐구나! 조금만 더 노력하면 좋은 점수를 얻겠구나!”라고 상대적이 아니라 절대적 인정과 칭찬이 필요하다.

상대적으로 남과 비교하는 것보다 자신의 현재 상태를 알도록 격려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다. 배움을 통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도록 격려성 말이 필요하다.

모자란 면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되면 자존심이 상하다가 자신의 가망성을 상실하게 되고, 늘 다른 사람의 지배아래 의존적인 삶을 살게 되어 스스로 하고자하는 의지가 약화 된다. 책임감과 자존감이 무너진다.

누구나 자라면서 주어진 환경에 따라 경험하지 못한 것은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다른 환경에서 자란 또래 아이들이 잘하는 것을 부러워하여 자녀들에게 ○○처럼 너도 잘해야 된다!”라고 강요한다면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당황할 수밖에 없다.

어머니의 의지대로 간섭하게 되어 의존적인 마마보이(mama boy)가 되고, 스스로 행동할 수 없어 누군가 이끌어주어야 하는 티춰보이(teacher boy)가 된다. 책임감 없이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인간은 모든 면에서 상대적 빈곤을 거론할 때 모멸감과 좌절을 느낀다. 형제간을 비교해서 모자란 점을 지적하거나 이웃 또래들과 비교해서 모자란 점을 거론하여 기를 죽이거나, 친구의 강점과 비교하여 모자란 점을 지적하는 것이 청소년 시절이라면 때로 자극이 될 수도 있지만 논리적 사고력이 미약한 어린 영유아들에게는 먼저 자존심이 꺾이고 거부감이 생기기 때문에 아무런 효과를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좌절감을 갖게 한다.

비록 모자란 면이 있다면 스스로 자기만의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느긋하게 기다려줄 필요가 있다. 아직 준비되지 못한 자녀에게 긍정적인 말과 충고를 행해도 실제 전달되는 내용은 너는 아직 능력이 없어!”라고 인식하게 된다.

주위에서 자녀의 모자람에 대해 왈가왈부 할 때 부모가 나서 대신 혼내주는 것도 자녀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부모님들도 나의 모자람을 인정하는구나!” 라고 느낀다.

이 세상은 다양하기 때문에 우선 다른 사람이 잘하는 것만을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자녀들이 잘하는 것을 먼저 찾아 칭찬하고 모자란 것을 나중에 지적해야 노력할 마음가짐이 생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 상대적 빈곤을 지적하지 말고 자녀들 자신의 진전된 행동을 인정하고 격려해서 자존감을 높여주고 자신이 존귀함을 느껴야한다.

부모에 대한 좋은 감정계좌의 잔고가 없는데 계속해서 훈계하고 독촉하는 것은 격려가 아니라 잔소리로 느끼게 된다. 잔소리로 느꼈다면 부모의 훈계나 지도가 먹혀들지 않는다.

먼저 감정계좌의 잔고를 높여준 후에 훈계한다면 그 잔고가 낮아져도 꾸중을 수용할 수가 있다. 감정계좌의 잔고를 높일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자녀들과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이 부모로부터 소중한 존재감의 인식을 받을 때다.

뼈 빠지게 헌신적으로 자녀들을 돌보는 부모가 있다. 성장해서 스스로 자신을 충분히 돌볼 수 있는 독립단계의 자녀들을 껴안고 물심양면으로 돌봐주는 부모들이 있다. 불필요한 부모의 고통이다. 나약한 자녀를 만들 뿐이다.

부모의 온정을 버리라는 뜻은 아니다.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며 후에 인정 많고 가족을 극진히 염려해주는 부모가 되고자 다짐한다.

그리고 부모가 되어 인정 많고 헌신적인 사랑을 주는 부모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노력을 하게 된다. 그것이 자녀를 잘못으로 이끌게 되는 힘이 된다.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독립성을 기르고, 스스로 행동하고 책임질 수 있는 역량을 기르도록 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잊게 된다.

스스로 독립해서 정신적 영적성장을 해야 자신에 대한 책임감, 자존감을 갖게 된다. 내면적인 성품 위주의 사고에 의해 행동할 수 있는 주도적인 자기발전의 역량을 기를 수 있게 해야 함에도 불고하고 의존적인 사람이 되도록 한다면 주위 환경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자기의 가치관과 원칙에 따라 행동하지 못하게 된다.

청소년이 되면 누구나 의존적 생활을 접고 독립적 의지를 키워가야 한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주어진 독립적 의지에 따라 결정하고 행동하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그렇게 행동하려는 것을 우리는 사춘기가 찾아왔다고 한다. 자녀의 독자적 행동을 위험하다고 반대하게 되면 독립성을 저해하게 된다. 일생동안 치명적인 상처가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자녀의 독자적 행동을 막아설 필요가 없다.

다른 사람의 간섭이나 눈치를 보고 행동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서 행동하는 의존적인 삶은 자신을 불행하게 한다. 상대방의 영향에 의해 행동하면 자신의 삶이 고달프고 자신의 자유가 줄어들고 속박된다.

그런 환경에서 적응돼 습관화 되면 자신도 약한 상대방을 만나면 복종하도록 조종해야 안심하는 감정에 얽매여 상대방을 고통스럽게 한다.

특히 자녀들이나 아내에게 복종하고 의지하도록 요구하고, 자기 주위에 붙잡아 두고 조종하면서 그 것이 사랑으로 착각한다.

반대로 아내에게 의지하여 의존적인 삶을 살면서 아내가 없으면 나는 살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자기의 아내, 자기의 남편이 혹 나를 버릴까봐 집요하게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자기의 모자란 부분을 충족하기 위한 강한 의존성이다. 그러면서 그것을 지극한 자신의 사랑으로 착각한다.

작은 약속도 잊지 말아라!

비판하지 말고 솔선하는 안내자가 되라!

문제를 만들지 말고 해결사가 되라!

상대의 단점을 아프게 말하지 마라!

자신의 실수를 변명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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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트에 대한 행동


자녀에게 키워 주어야할 자신감과 자존감

자녀들에게 부모가 먹을 것, 입을 것, 거처할 곳을 마련해 주고 있으니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된다고 의무를 강요하는 것보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하여 스스로 공부해야 하는 의미를 부여하여야 하는데 자신감과 자존감을 키워준다면 스스로 즐거운 마음으로 공부하게 될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좋은 의미와 동기를 부여해 주어야한다. 내가 공부를 왜 해야 할까? 정신적 영적인 성장을 위해 성취감과 자신감을 맛볼 수 있는 동기와 의미의 부여가 필요하다.

그러나 의존시대에 살고 있는 영유아들이 스스로 의미를 깨우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독립단계에 진입할 때까지 부모의 훌륭한 뒷바라지가 그래서 필요하다. 논리적 이성발달이 부족한 시기에 스스로 깨닫게 될 수는 없다. 그저 감성적으로 주위 환경과 부모의 행동을 비판 없이 모방할 뿐이다.

아이들은 배우기 위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받아들이는 시기여서 좋지 못한 환경에 처하면 나쁜 습관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어른들의 나쁜 습관처럼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다.

작은 일을 큰일로 만들기 전에 부모나 보호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부모는 늘 자녀들과의 약속을 이행하며, 다른 또래들과 상대적으로 비교하지 말고, 자녀들의 행동을 관찰하여 행동이 현재가 과거보다 조금이라도 좋아졌다면 곧바로 인정하고, 칭찬해 주어 자신감과 자존감을 키워 주는 것이 중요하다.

풀밭도 자주 다녀야 길이 나듯 인정받고 자존감을 반복하여 높여가면 좋은 습관이 몸에 배게 된다. 자녀를 바른길로 갈수 있게 하는 데 한두 번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21번 이상 반복되어야 습관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자존감 또한 한두 번의 인정과 칭찬으로 얻어질 수 없다. 자녀의 자존감은 피어나는 꽃잎과 같이 약해서 상처받기 쉽고 상처받게 되면 아름다움을 상실하게 된다.

영유아를 철부지로 생각하여 자주 자존심에 상처를 주면 성격은 물론 신체적 건강까지 상처를 줄 수 있다. 인정과 격려를 받지 못하면서 성장한다면 오직 방어하려는 생각에 치중하여 정직해지기 어렵고, 과격해지고, 우울해지고, 심리적 장애를 갖게 된다.

좌절감, 절망감, 원망, 불신, 상처, 속박, 참을성 부족, 회피, 부정적인 생각, 이 모두가 자존감을 약화시킨 원인이다.

반면에 믿음, 자부심, 소중함, 용기, 기쁨, 당당함, 사랑, 어려움의 극복, 긍정성, 유혹탈피, 인내 등등은 자존감을 키운다. 어린 시절 어떻게 하면 자녀가 자존감을 키워갈 수 있을지 부모의 세심한 행동이 필요하다.

우리의 일반 부모들은 학교 가는 아이들에게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얌전하게 공부 잘해라!" 이렇게 막연한 강요, 명령으로 말 한다. 어린 자녀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다.

그러나 유태인 부모는 자녀에게 꿀을 한 숟가락 떠 먹여주며 "공부란 꿀처럼 달콤하고 맛있는 것이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이해가 안 되면 공손하게 질문을 해서 알도록 하면 이 꿀처럼 맛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왜 공부해야 하는지 동기를 알려준다.

경청하고 알고 싶어서, 진실을 확인하고 싶어서, 질문할 줄 아는 자녀가 되길 바란다. 이렇게 학습의 의미를 그려보며 스스로 알려고 행동하도록 구체적 동기를 부여해준다. 공부해야할 동기와 의미를 부여한다면, 미래를 그려보고 공부해 즐겁게 느껴질 것이다.

마음속으로 그려볼 수 있는 재능이 영삼이 시절부터 길러진다. 무엇이든 모르면 물어보는 시기가 영유아 시절이다. 귀찮다고 질문하지 못하게 싹을 자르는 행동이 어른들의 잘못이다. 무엇이든 머릿속에 그려보며 영상화하는 습관이 용기를 증가시켜준다.

열심히 공부해야 된다!”는 교사와 부모님의 강조는 공허한 의무감만 증폭시키면서 이해하지 못해 공부가 싫어지게 된다. 어느 것을 이해하려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무엇을 알게 됨으로서 다음 단계의 어떠한 것을 알 수 있다는 기대와 흥미를 불어 넣어야 공부하고 싶은 의지가 생긴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무엇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무감을 심어 주는 것이 보통 우리의 일상생활 이다. 왜 그럴까? 결과가 어떻든 그런 방법이 자녀를 지도하기 쉽기 때문이다.

자녀들의 장래에 대해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한다고 의무감을 강조하는 것보다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공부할 환경을 부모들은 조성해 주고 스스로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한 마음, 상상력을 심어주도록 노력해야 하며, 의미와 동기를 부여해 주는 것이 더욱 바람직스럽다.

누구나 마음이 시키는 대로 일을 한다는 것보다 의미 있는 것은 없다. 그러기 위해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환경을 만들어 주고 공부하는 이유를 알려야한다. 주도적인 학습방법을 일찍 익힐 필요가 있다.

자녀가 어떠한 사람이 되기 위한 환경을 조성해 준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다. 의사가 되기를 원한다면 의사가 하는 일과 보람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들을 수 있게 하면서 의사를 존경하는 마음을 갖도록 해야 한다.

막연히 의사가 사회에서 존경받고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라고 갑자기 강요하는 것은 준비되지 않은 자녀들에게 고통일수 있다. 비록 의사가 돼도 자기 직업에 만족할 수 없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책임감, 부담감을 자녀들에게 너무 강조하다보면 삶의 문제에서 모든 것을 자기 자신의 책임이라고 강하게 각인될 수도 있다.

그런 책임감의 잠재력이 성장해서 자기의 책임이 아닌 것까지 죄책감에 휘말려 책임지려하는 경향이 있다. 이 또한 문제다. 정신과 의사들은 이를 정신증의 일종으로 진단한다.

한편 어리다고 헌신적으로 도와주면 응당 자신이 내적으로 책임져야 할 문제까지 자신이 해결하지 않고 외적인 환경에서 찾아 자신의 현실적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외적인 해결방법을 찾다보면 성격장애 상태인 사람이 된다. 정신과 의사들은 이를 성격장애증으로 규정한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양쪽의 성향을 다 가지고 있지만 극단적인 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면 일생을 고통스럽게 살게 된다.

보통 사람은 자신의 문제점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노력하여 정상으로 돌아 올 수 있지만 성격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문제의 근본 원인이 자신보다 외적환경 즉, 세상이 변해야한다고 믿고 있어 치유되기 어렵다.

어느 쪽이든 부모가 이러한 극단적 지각을 갖고 있다면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할 수 있을까?

전자의 경우 자신을 못살게 굴면서 자녀들이 능히 독립적으로 행동해야할 것까지 책임지려고 한다. “모두가 나의 잘못 이다.” “내가 잘했다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세상의 모든 잘못이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후자의 경우 모든 것을 자신 이외의 환경 때문이라고 생각되어 다른 사람들을 못살게 한다. 자녀들을 잔인하게 다루기 쉽다. “애들이 나를 미치게 한다.” “아직도 아버지와 이혼하지 못하고 사는 것은 너희들 때문이다.”라고 자신 이외의 환경 즉, 배우자, 자녀, 친구, 부모, 사회, 국가의 책임이라고 떠넘긴다.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완강히 부정하게 된다. 어린 자녀들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능력이 부족하여 당황하게 된다. 커가면서 그러한 부모의 행동을 알게 모르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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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트에 대한 행동


후회 없는 삶을 위하여

누구나 자기에게 찾아온 기회를 어떤 이유로 포기하고 돌아설 때 후회의 씨앗을 심게 된다. 기회는 늘 찾아오지 않는다. 우리는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가끔 했어야 했던 일, 해서는 안 됐던 일에 대해 후회를 할 때가 많다.

그런데 언제 후회를 많이 하게 될까? 어떤 행동을 후회할까? 우리는 양심에 따라 가슴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지 못했을 때 후회한다.

가슴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이유를 크게 본다면 내적 용기가 없어서, 외적환경이 뒷받침 되지 않아서 그렇게 된다.

물론 환경적 뒷받침이 없어 불가항력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행동을 못했다면 그렇게 큰 후회라고 할 수 없지만 자신이 용기가 보족했거나 없어서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는 크게 다가온다.

가슴이 시키는데 두려움에 망설이다가 기회를 잃었을 때 커다란 후회를 갖게 된다. 먼저 이렇게 하면 안 될 것이다. 망신만 당할 것이다. 부질없는 행동이다. 내 능력이 부족할 것이다. 기회가 아니다. 등등 결과에 대한 부정적인 예기불안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먼 훗날 그래도 한번 시도해봐야 했는데 하고 후회한다.

우리는 가슴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행동하고 후회하는 것이 훨씬 났다는 것을 자녀에게 알려야 한다.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을 때 용기를 내어 행동하고 후회하는 것이 의미 있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최선을 다했는데 만족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면 후회될 것이 거의 없다. 그러나 용기가 없어 행동하지 못하고 후회한다면, 자신이 다른 길 위에 서 있음을 깨달았다면,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금 의미 있는 삶속에 뛰어 들어야 한다.

아직도 후회를 회복할 기회가 있다면 주저 없이 용기를 내야 한다. 늦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른 기회라고 하지 않던가?

후회를 극복하는데 자신에 대한 부드러운 관용이 필요하다.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면 타인도 용서할 수 없다. 자신의 후회를 너그럽게 치유해야할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

먼저 후회되는 행동에 대하여 그 당시는 최선의 방법이었던 것으로 인정해버린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후회를 받아들이고 놓아버리는 지혜이다.

특히 자신의 삶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후회의 앙금과 매듭을 떨치고 풀어야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다는 상상력을 동원해야 한다. 상상력은 인간만이 가진 특권이다.

외부의 영향력에 의해 살아가는 것보다 자신의 내부적 결정에 따라서 삶을 살아갈 때 보람과 더 많은 자유를 느낀다. 우리는 사랑을 받을 수도 있고 못 받을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도록 영향력을 미치게 스스로 행할 수 없지만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는 행동은 얼마든지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다.

지난 과거를 반추하고 미래를 꿈꾸며 가장 중요한 것이 현재 순간순간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현재가 과거로 남고, 현재가 미래를 약속할 수 있는 디딤돌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매여서 현재를 놓치고, 일어나지도 않을 미래에 매여서 현재를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가지고 온 것이 없듯이 세상과 이별할 때도 가져갈 것은 하나도 없지만 무엇인가 남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이 개인을 위한, 가족을 위한 것일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갈 수 있다면 더욱 보람된 삶이었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이 확신할 때 힘이 모자라면 과감히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거절(no!)을 몇 번 받았다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 KFC의 프랜차이즈 체인(franchise chain) 창립자는 300번 거절을 당했고, 유비가 제갈량을 군사(軍師)로 쓰기위해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했다. 유비의 삼고초려는 통신도, 교통수단도 매우 어려운 시절이다. 지금처럼 교통, 정보통신이 발달한 사회에서는 3번이 아니라 30300번 이상을 요청해도 좋다.

확실한 신념이라면 수천 번이라도 이루어질 때까지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노력 없이 꿈은 이루지지 않는다.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 무한한 노력의 시간이 필요하다.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작은 꿈은 몇 시간 이내에, 며칠 이내에, 몇 달 이내에 몇 년 이내에 이루어질 수 있지만 큰 꿈은 10여년이 걸린다. 아니 그보다 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투자하는 시간에도 효율이 같을 수 없다. 노력여하와 상관관계가 있고, 투자하는 시기가 중요하다. 앞서 어린이의 잠재력에는 체감법칙이 적용된다고 했다.

재능, 체능 모두가 어릴수록 잠재력이 크고 시간도 적게 걸린다. 효율적인 성공은 더욱 찬란하다.

두려움은 누구나 느끼는 자연스런 감정이다.

두려움이 인생의 자체를 위협할 수는 없다.

도움이 필요할 때 거절을 두려워 주저하지 말고 요청하라!

부정적 비판에 감사하고 되먹임(feedback)으로 활용하라!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중하게 여기고 긍정적으로 인정한다.

자신의 마음에서 시키는 대로 일을 해야 한다.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긍정적인 사고로 베풀어야 한다.

주어진 현재 순간의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예기불안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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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트에 대한 행동


내면적 삶이 외면적 삶보다 우선해야 한다.

일체유심조(唯心造)란 말과 같이 인생의 모든 문제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공을 위해 모두가 노력한다.

그런데 그 성공은 외면적 환경위주에서 찾으려 하는 사고보다 내면적 성품위주의 사고와 행동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 내면적 사고와 외면적 사고의 두 단계가 다 중요함을 명심하고 있을 때 바람직한 성공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내면적 사고와 행동이 충실하지 못하고 외면적 사고로 추구하다보면 성공하기 어렵다.

언제나 포기하지 않는 마음, 스스로 긍정적 사고를 가질 수 있도록 격려하고 희망을 불어 넣어 일차적으로 내면적 삶에 충실히 하여야 한다.

중요한 것은 첫째 용기를 북돋아주고 내면을 강화해야하고, 둘째 외면적 전략과 적극적 사고가 뒤 따라야 한다. 자녀가 외면적환경에 의기소침(意氣銷沈)하여 자신감을 잃어갈 때 결코 혼내주거나 부모가 아는 방법을 제시하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태어난 자녀가 첫돌이 되면서 기어 다니다가 일어서 걷기를 배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끊임없이 일어서고 발작을 떼어놓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볼 수 있다.

아이가 몇 발작 옮겨보고 어머니에게 확인한다. 아직도 엄마가 지켜보고 있는지 확인하고 안심한다. 엄마가 웃어주기만 해도 넘어질까 하는 불안감을 떨쳐내고 에너지를 재충전하여 걸음마를 스스로 계속한다. 만약에 엄마가 안 보인다면 불안감이 엄습하고 에너지는 고갈되어 힘을 잃는다.

그러나 주저앉고 넘어지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부단히 스스로 노력할 수 있는 것은 엄마가 지켜보고 있다는데서 힘이 충전된 때문이다. 나중에 어떻게 됐나? 걷기에 익숙하면 달려보려고 시도한다.

머지않아 뛰고 달리게 된다.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안된다고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로 넘어지지만 안쓰럽다고 일으켜주고 붙잡아준다면 걷는 방법을 자신이 터득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된다.

우리가 점점 자라면서 뜻대로 되지 않는 경험이 늘어나게 되서 포기하는 방법을 배운다. 포기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는 것은 절실한 바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용기를 내는 것보다 포기하는 것이 더 쉽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녀에게 꿈은 이루어진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강조해주고, 가능성을 제시하고,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돌봐야 한다. 우리는 왜 꿈을 포기하게 될까? 두려움 때문이다.

새로운 힘을 재충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적인 주도적 삶보다 외적인 의존적 삶이 더 쉬워 의존하려는 힘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늘 다른 사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생후 12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는 아기가 넘어지고, 주저앉는 것을 두려워했다면 어떻게 스스로 일어나 걷게 될 수 있겠는가? 두려움은 꿈을 포기할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두려움은 오직 상상일 뿐이다. 마음속에 부정적 생각이 도사리면 두려움이 생긴다. 그런 상상은 자신만이 행동을 멈추게 할 수 있어 이를 극복하도록 도와야 한다.

앞서 말했지만 두려움이 현실로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데도 불고하고 환상에 사로잡히게 된다. 부모는 자녀의 두려움의 환상을 깨도록 도와주는 것이 도리다.

부모는 과거 자녀가 잘 해냈던 일을 상기시키고, 능력을 인정해주고, 칭찬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믿게 하고, 자존감을 키우고, 새로운 도전에 긍정적인 사고로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걱정이 생기면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도록 지도하고 새로운 개선점을 찾아 극복하는 방법을 습관화해야 한다. 두려움은 포기의 이유가 될 수 없기에 두려움을 새로운 꿈으로 바꿔주어야 한다.

자녀에게 모든 일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고 부단한 노력이 필요함을 기회 있을 때마다 늘 일깨워 주어야 한다. 우선 목표나 꿈을 원대하게 갖도록 하고, 세부적으로 잘게 쪼개어 우선순위를 두고 간단하고 단순한 것부터 일정한 격식을 갖추어 치르는 의식(儀式)을 통해 자신감을 맞보게 해야 한다.

한 번에 한 가지씩 실천함으로서 큰 목표가 두려움 없이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늘 목표가 이루어질 수 있는 상상을 하면서 과정이 즐거워야 한다.

최선을 다하고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절망에 빠져들지 않게 용기를 북돋아 주어야 한다. 목표가 완전히 달성되지 못하더라도 포기해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자녀들에게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위험을 무릅쓰고 스스로 시도해 보는 태도는 보람된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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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이 힘”인가?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아는 것을 실행해야 힘이 된다.’ 우리는 자연을 통해, 사회를 통해, 부모를 통해, 선배나 동료, 선생님을 통해, 많은 문헌을 통해, 모르던 것을 지식으로 축적해 가지만 올바르게 생각하고 실행했을 때만이 지혜가 되고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된다.

물론 안다고 다 실행하지는 못한다. 코치와 선수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코치는 잘 알고 있지만 실행에 옮길 수 없어 선수에게 실행에 옮기도록 제안하고 지도한다. 다시 말하면 실행한자만이 성공으로 갈수 있다.

그 것도 어릴수록 가능성이 크다. 늘 이야기 하지만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어려서 키워주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잠재력은 약화된다는 체감법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녀들이 어려서 알게 하는데 그치지 말고 스스로 실행할 것을 빼놓지 말고 지도해야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가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창출하기 위해 행동하기 쉽다. 많은 부를 축적하고, 많은 것을 소유하고 삶을 살아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 늘 추구하지만 꼭 그런 것만으로 행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늦게 깨닫게 된다.

부가 오히려 행복을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고통을 안겨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경제적 어려움이 수치감과 연결 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자신을 알아보도록 외적인 겉치장에 치중하기 쉽다.

좋은 집에서 살아야 하고, 좋은 차()를 타야하고, 좋은 옷을 입어야 하고, 고급 레스토랑을 들락거려야 한다. 이런 외적인 행동에 매달려가며 오히려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의미가 거기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이 세상을 하직해야 할 황혼기에 깨닫게 된다. ‘삶의 의미를 일찍 깨달았다면하고 후회하지만 시간은 되돌려질 수 없다.

결국 행복은 인간관계에서 찾아야 했다. 결혼, 자녀, 가족, 친지와의 화목, 친구와의 우정 등등 인간의 유대관계에서 행복이 찾아온다.

부는 삶의 수단이지 목적일 수는 없다. 강을 건너가려고 배를 저어 가는데 물이 스며드는 것을 보고 열심히 물만 퍼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면 배가 어디로 떠내려가는지 목적지를 상실하게 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생물이나 무생물까지도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다. 생성괴멸(生成壞滅) , 모든 것은 생겨나고 시간이 지나면 상실 된다. 석가세존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모두가 무상(無常)할 뿐이다.

그렇다고 이 세상에 태어난 생명이 쓸모없는 삶이라고 잘못 생각해서는 안 된다. 겨울이 가고 새봄이 되면 새싹이 돋아나 자라고, 잎이 피고 꽃이 피어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이 과정이 있어야 결과가 온다.

그런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고군분투(孤軍奮鬪)의 역경을 거치고 크게 자라는지 깊이 바라보아야 한다. 거저 되는 것은 없다.

누군가 행복은 어려움과 함께 한다.”고 했다. 있어야 행복이 찾아온다. 어려운 과정이 없었다면 행복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인간 자신이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것보다 자연계에 있는 동식물의 삶에서 배우고 모방한 것들이 우리 주변에 무수히 많다.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모든 문화가 그렇게 형성됐고 앞으로도 자연에서 지혜를 배우고 얻게 될 것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전해 주고 있다. 우리 또한 자연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부모님에게서 얻어진 생명이 자신의 것이라고 함부로 헛되지 않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깊이 있게 생각해야 한다. 단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는데 수많은 과정을 거처 형성 된다는 숭고함을 알고 느껴야한다.

세존께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세상에서 오직 나만이 존귀하다.’는 것은 어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단 하나의 소중한 생명임을 말하고 있다.

내가 없다면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세상의 온갖 것을 다 버리고 마지막 까지 지켜야 하는 것이 있다면 자신의 귀중한 생명이다. 내일 자신의 삶이 상실 된다 해도 오늘의 의미 있는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

배움이 계속된다는 것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행동이다. 삶의 의미는 사람에 따라, 시기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포괄적인 삶의 의미가 아니라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누구나 구체적인 삶의 과제가 있다. 특정한 일과 사명이다. 지금 삶에 대한 절실한 책임감을 양심에 따라 느껴야 한다.

배움을 얻는다는 것이 자신의 삶을 사는 과정임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삶이 자연에 보탬이 되고, 영향력을 주어야 한다. 이것이 영적인 삶이다.

살아가는 세상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행복해지기 위한 정신적 영적인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는 늘 배우며 삶의 지혜를 얻으려고 이 세상에 왔다는 역설적 주장을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지혜가 자기를 위한 행동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치게 할 수도 있다. 자신을 위함보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랑의 베풂이 더 숭고한 의미 있는 삶이다. ? 더 큰 보람과 행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우리가 맨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자기성찰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왜 사느냐?’는 질문을 자주 던졌다.

현재 자기가 어떤 사람이고, 이곳에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늘 물어봐야 한다. 자신에게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면 내면적 지혜와 역량을 키워갈 수 없다.

현재 자기 가슴속에서 울어 나오는 명령을 깊이 생각하고 받들어야 한다. 다른 사람 또는 환경에 따라 휘둘리는 삶이 되지 않는 주도적인 삶을 찾아야 한다. 자연 속에서 인간관계도 형성된다.

우리는 자주 는 누구이며 왜 사는지 존재 이유를 확인할 때 양심이 자신을 바르게 인도하도록 불러 세운다. 양심만이 일상생활에서 궤도를 벗어나려는 자신의 존재를 의미 있는 삶의 방향으로 인도한다. 양심은 자신의 잘못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회개하도록 되돌려 세워준다.

혼자 사는 의 시간도 있지만 대부분 다른 사람과의 어울리는 우리라는 상호협력관계에서 삶의 대부분을 맞이한다. 그동안 삶에서 여러 가지를 얻지만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진정으로 소유하고, 간직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무엇일까?

물질적인 면에서 보면 태어날 때 가진 것 없이 세상에 온 것처럼 모두를 남기고 가야한다. 그러나 인간은 무의미하게 생을 마감할 수도 있지만 정신적 영적인 성장을 위한 그 무엇을 다른 누구에게인가 남기고 전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의미 있는 삶을 찾아주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삶의 의미를 배우면서 불행한 이유는 삶의 복잡한 관계 때문이 아니라 단순한 진리를 접어두고 불안, 공포, 기대, 욕구, 집착의 심리가 만들어낸 허상에 얽매여 외면적인 환경에 중점을 두고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우리가 늘 숨을 쉬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 왜? 라는 물음을 던져보지는 않는다. 늘 숨을 쉬지만 때로는 의도적으로 숨을 쉬어야 할 때가 있다. 마찬가지로 그저 살아있어 사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해봐야 한다.

정직하고 편안하고 안정된 마음으로 삶의 방향과 목표의 지침을 결정하고 지혜와 역량을 발휘하며 정신적 영적인 성장이 될 수 있도록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죽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자신을 위한 의미 있는 삶이다. 살아있는 동안 외부의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주도적인 삶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늘 강조한다. 다른 사람이 살아온 관행에 따라, 주위 환경의 지배에 따라, 외면적 환경에 따라 삶을 사는 것은 의미 있는 삶이라고 할 수 없다. 자신의 자유를 속박한 삶이다.

혹 내면적 삶보다 외면적 환경을 더 중요시하면서 과거 자신의 삶이 만들어낸 인식체계가 옳은 삶인지 늘 뒤돌아보아야 한다. 삶이 다할 때까지 보다 높은 정신적 영적인 성장을 위해 배우고 늘 자신과 남을 위한 방법을 개선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원칙중심의 의미 있는 삶은 자신과 사물, 타인과의 존재관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자신의 내면적 양심에 따라 세워져야지 외면적인 환경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

이 세상은 모두가 상대적 관계에서 판단되지만 그 중심은 양심과 원칙에 따른 내면적 자신의 잣대를 간직하고 훌륭한 상대적 분별력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처음부터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정직하게 시작하여 많은 생산관리 과정을 거치고 생산의 목적에 도달해야한다. 자신이 일차적으로 씨를 뿌리고, 잘 가꾸는 노력으로 보람도 얻고 좋은 결실을 얻는다는 것은 자연법칙이다.

대인관계. 성격개발, 전략과 사고를 위한 교육은 어떤 외면적인 요소를 찾기 위한 이차적인 행동이다. 이는 하나의 수단으로 의도적인 냄새가 풍겨 상대방에게 신뢰와 믿음을 상실하게 된다.

때로는 일차적으로 양심에 따라 정직하고 공정하게 사는 것이 손해 볼 수도 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성실하고 정직한 성품으로 행동해야 끝이 아름답게 된다.

그 일차적인 성공에 대한 노력의 시작이 영삼이 시절이다. 때문에 부모들은 의존단계인 영삼이 시절부터 자녀들이 바람직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내면적으로 안정 되고, 올바른 지침과 지혜의 역량을 길러 성공적인 삶의 행위를 뒷받침 할 수 있게 먼저 도와야한다.

먼저 지름길을 찾게 하고, 요령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 삶의 의미를 찾는 데는 꿈을 간직해야 한다. 그 꿈을 실행하기 위한 강한 의지가 필요하며 구체적 과제를 실행함에 있어 성실한 도전정신이 필요하고, 의미 있는 삶을 짊어질 의무와 책임을 느껴야한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적극적 행동으로 무엇인가 창조하고 완성해야 한다. 스스로 행함으로써 의미를 얻고, 어떤 선()이나 진리, 아름다움을 맞아 체험하는데서 의미를 얻고, 피할 수 없는 어떤 시련(試鍊)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어려움을 극복할 태도를 취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얻게 된다.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Victor Frankl)은 아우슈비츠 죽음의 수용소에서 가치관에 따라 삶의 의미를 잃지 않고 인간 존엄성의 승리를 보여주었다.

박사는 언제나 가스실로 보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실낱같은 희망에서 자살하지 않고 미래를 꿈꾸며 극한적 상항을 견뎌낼 수 있었다.”고 했다.

어떠한 어려운 여건도 다른 사람을 완전히 제한하고 굴복시킬 수는 없다. 아무리 어려운 여건에 처해 있어도 늘 긍정적인 사고에서 힘을 얻어야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는 참고 견디면 미래의 장미 빛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는 수용소애서 살아 나갈 수만 있다면 가족이나 누군가가 나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으며, 자신이 누구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있음을 잃지 않았다.

누구나 자신을 기다리고 고대하는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은 자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체험을 바탕으로 독특한 정신분석 방법의 이론을 정립하여 새로운 의미치료법(logotherapy)을 제창하고 실의에 빠진 환자의 치료로 많은 공헌을 했다.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보다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데 강한 힘을 갖는 것이 인간이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아야 봉사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도록 해야 한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땅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한 찬란한 봄을 기다릴 수 있고, 새로운 성장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에 살아간다. 쉽게 포기하지 말고 끈질기게 인내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긍정적인 사고로 훈련되어야한다.

주어진 운명에도 자유롭게 반응할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삶의 의미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믿음을 강화해야한다.

니체(Nietzsche)의 말처럼 삶의 이유를 아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그 방법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통령이 되었던 만델라(Mandela)27년이라는 긴 세월을 감옥에 있으면서 나는 언젠가 자유인이 되어 두발로 풀밭을 밟고 햇빛 속을 걷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우리는 자신이 울타리를 겹겹이 치어놓고 그 속에 살면서 넓은 밖을 외면하고 있기 쉽다. 문제는 그 울타리가 어떻게 둘러 처져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미 있는 삶을 위해 자신이 쳐놓은 울타리를 스스로 벗어나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한다.

의식하지 않아도 숨을 쉴 수 있듯이 안주하지 말고 스스로 의미 있는 삶을 찾아 용기 있게 나서야한다. 이 세상에 올 때 가진 것이 없었으나 이 세상을 떠날 때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남겨야 한다. 그것이 숭고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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