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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공짜가 없어야 한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라는 말은 진리에 가깝다. 공짜는 주어서도 안 되고 받아서도 안 된다. 특히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일찍 공짜의 심리를 키워주는 것은 여러 가지 교육면에서 나쁜 결과를 가져 온다.

첫째, 자본주의 무한경쟁시대에 살아남지 못한다. 경제의 개념을 확실히 심어줄 수 없다. 인간은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행동한다.

노력하지 않고 사람의 욕망을 만족 시키는 재화(財貨)를 얻을 수 있다면 누가 열심히 일하겠는가? 삶에서 노동의 대가에 대한 중요성을 알기 어렵다.

둘째, 재화에 대한 절약습관을 망가뜨린다. 잘 살아 가려면 얻는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서는 안 된다. 노력하지 않고 얻어지는 재화는 노동의 가치에서 생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까운줄 모르고 낭비하는 좋지 못한 습관이 형성된다.

부자 3대 가기 어렵다.”는 속담이 있다. 1 대는 열심히 일하고 절약하여 부자가 된다. 2 대는 아버지의 피나는 노력과 절약정신을 옆에서 일부 보고 배웠기에 그래도 재화의 낭비를 덜 해 유지된다.

그러나 3 대는 재화를 얻는데 얼마나 어려운지를 전혀 모르고 절약하는데 익숙하지 못하여 수입보다 지출을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 3 대째가 되면 부자는 망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내세(來世)에 늘 그리워하는 천국에 간다면 영원한 태평성대를 누릴 것 같다. 만약에 죽어서 신이 된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고 인간으로 천국에 들어가 고통 없는 파라다이스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천국에서 자살률이 꽤 높게 올라갈 것이다.

자기가 노력하지 않고 얻은 천국은 보람도 없고, 재미도 없고, 살맛이 날리 없다. 어떻게 단언할 수 있을까? “하던 짓도 멍석 깔아주면 하지지 않는다.“는 속담과 같은 이치다.

우리가 배고플 때 음식 맛이 좋은 것이지 배부를 때는 처다 보기도 냄새도 싫다. 다이아몬드(diamond) 귀금속이 산업용으로 쓰일 때 빛이 나는 것이지 손가락에 끼웠을 때 값 비싼 가치 때문에 위세, 우월감을 만족시킬지 몰라도 아무런 효용가치가 없다.

인간은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부족하게 느껴질 때 어려운 노력이라도 감수 한다. 어린이에게 모든 것을 부모가 대신해준다면 자신이 구태여 노력할 필요성을 모르고 의존심만 커간다.

사물의 소중함을 모른다. 요구하면 언제든지 얻을 수 있는데 절약할 필요성을 느낄 수 없다. 재화의 낭비벽이 생긴다. 요즈음 지하철에서 습득된 고급물품까지도 찾아가지 않는 세상이다. 부모에게 다시 사달라면 되는데 구태여 귀찮게 찾아갈 필요가 없다는 사고다.

멀쩡한 거지에게 밥을 주지 말라!”는 말이 있다. 밥을 쉽게 얻어먹을 수 있는데 왜 어려운 일이나, 하기 싫은 짓을 하겠는가? 밥을 얻어먹을 수 있어 영원한 거지로 살아간다.

일정한 직업이나 거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빈둥빈둥 노는 낭인(浪人)의 경험을 한다면 새로운 일자리를 얻기 힘 든다고 한다. 조그만 희망과 용기는 사라지고 거지 생활처럼 편리하게 살 수 있는 생활에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면 누구나 평등원칙에 따라 살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다. 같은 씨앗을 밭에 뿌렸는데 어떤 씨앗은 좋은 조건에 떨어져 싹이 터 잘 자라고, 그렇지 못한 조건에 떨어져 씨앗은 싹조차 트지 못하고, 비록 싹이 터서 자라보지만 볼품없게 된다.

농부의 경험에 의해 잘 자라는 놈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모두 제거 당한다. 이것이 자연 이치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성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 사회의 빈부차가 커지면서 일반복지나 선택복지가 생겨난다.

어떤 사람은 부모 잘 만나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잘 먹고, 잘 입고, 잘 쉬면서 자랄 수 있고, 그렇지 못한 집안에 태어나 일생동안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을 어떻게 평등한 사회라고 할 수 있겠는가?

()도 하지 못하는 것을 인간이 할 수 있는가? 그러나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인간은 자아의식에 따라 개선점을 찾아볼 수 있다. 사람은 스스로 생각할 수 있고, 스스로 행동할 수 있어 다른 동식물과 달리 언제나 노력 여하에 따라 역전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인간사회는 새로운 기회를 주기 위해 도와주고, 제공하는 복지정책이 있다. 그런데 이 무상복지 정책을 평등개념으로 제공해서는 안 된다.

공산주의가 일을 많이 하거나, 적게 하거나, 하지 않거나 공평하게 분배하자는 것 아닌가? 생각할 줄 아는 인간만은 공평분배 또는 무상분배를 교묘히 악용한다. 다른 사람보다 더 노력하지 않고, 놀고 분배받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한다.

적어도 노력했을 때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복지정책의 하나로 65세 이상은 그동안 사회를 위해 세금내고 공헌했으니 지하철의 무임승차 제도를 도입했다.

언뜻 보면 그럴 사한 정책이다. 그러나 잘못이다. 무임승차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보다 노령수당을 지급하고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공짜로 타지 않게 해야 한다. 누구나 공짜라면 불필요한 승차를 가져온다. 때문에 재화가 낭비된다. 몇 백 원이라도 지불해야 공짜의 폐단을 막을 수 있다.

미국의 일리노이즈 주립대학(ISU)을 방문했을 때 학생이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비디오카메라 등을 빌리는데 시간에 따라 대여금을 지불해야 한다.

처음 우리는 등록금을 냈는데 장비사용료를 내지 않고 학습할 수 없다는데 의아하게 생각했다. 알고 보니 꼭 필요한 학생만 빌려가게 되고, 대여시간을 지킴으로서 많은 사람이 장비를 사용할 기회를 제공함은 물론 공짜개념을 불식시켜 건전한 학습문화를 형성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국가가 아무리 부강해도 공공질서, 불필요한 낭비, 의타심 등을 조장하지 않기 위한 좋은 사회를 이룩하려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무상복지 정책은 지양(止揚)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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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스톤 웨스트 썸 간헐천( Yellowstone west thum gaysor basin)

  지난 여름 미국을 방문했다. 시간이 있어 몇군데 관광을 할 수 있었다. 가지고 간 캠코더에 영상을 담아왔다. 정리하다 보니 올리지 못한 남은 동영상을 발견하고 새삼스럽게 작업했다. 잊었던 추억을 되살리 수 있어 기쁘다.   
  미국의 옐로스톤 웨스트 썸 간헐천( Yellowstone west thum gaysor basin)은 옐로스톤 남쪽에 위치한 옐로스톤 호수(Yellow stone lake)를 끼고 형성됐다. 옐로스톤 호수는  고도가 2,400m, 주변둘레가  160 Km, 최대 수심이 130m에 달하는 큰 호수다.
  주변에는 침엽수가 욱어져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는데 그 가에는 여기저기 간헐천이 20여개나 있고, 간헐천에 따라 깊이가 매우 깊어 검은 못(Black pool)이란 이름도 갖고 있다. 너무나 신기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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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상대를 인정하는 교육

어린이가 논리적으로 죄의식을 이해하기란 매우 어려움이 많다. 종교인들은 과거 아니 지금도 신()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것을 죄()라고 규정 한다. 그런데 신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기독교에서는 에덴동산에 살던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은 데서부터 인간의 죄가 탄생했고, 그로부터 인간은 죄인으로 살아간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신의 뜻을 어디까지 확대 해석해야 할까? 민주국가에서는 국회에서 정해진 법을 어겼을 때 죄를 물어 벌로 다스린다. 그런데 그 국회의 법률은 어떤 사람이 논하여 정하고 늘 정당하다고 할 수 있는가? 법 또한 시대에 따라, 문화에 따라 변화한다.

과거 영국국회는 영국 국민이 아닌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당연시하고 국민의 의무라고까지 주장했다. 지금도 지구의 한쪽에서는 끊임없이 자신들의 뜻에 반하는 나라나 민족을 적()으로 간주하여 억압하고 심지어 목숨을 빼앗는다. 이것은 강자의 횡포로 볼 수밖에 없다.

유대교와 이슬람교에서는 돼지고기를 금하고, 힌두교는 쇠고기를 금하면서 신의 뜻이라 한다. 이런 논쟁으로 수십만 명이 학살되는 비극을 야기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생각할 때 참 어이가 없다. 아직도 그러한 교리는 살아 있다. 과거 결혼한 부부가 성관계 후에 성당이나 교회에 나오는 것을 금하고, 미국의 어느 주법(州法)은 부부가 일요일에 키스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했었다.

어른들이 이런 합당하지 못한 죄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그 환경에서 자라는 어린이에게 죄의식을 알리는 것이 쉽지 않다. 우리는 누구나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행복하고, 굶주림보다 배부른 것이 행복하고, 고용인이 되는 것보다 고용주가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행복이란  것은 우리의 감정에서 느껴진다. 풍요로운 사회에서 살아간다고 해서 모두가 다 행복하지는 않다. 자신이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조금 우위에 있을 때 행복한 감정을 갖기 쉽다. 그러나 그것도 잘못된 사회적 관념에서 얻어진 감정이다.

우리는 가난이 결과적으로 불행해 질수 있기 때문에 누구나 부자로 살기를 원한다. 여기서 말하는 가난이란 절대적 빈곤을 말한다. 절대적 빈곤 즉, 최소한의 먹을 것, 최소한의 입을 것, 최소한 쉴 곳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이 절대적 빈곤은 생존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해결돼야 한다. 그렇다고 절대적 빈곤이 해결 되고 우리가 말하는 그 이상의 생활문화가 발전되면 될수록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꼭 그렇지도 않다.

왜 그럴까? 의, 식, 주의 상대적 빈곤에서 늘 허덕이는 잘못된 사고(思考) 속에서 자란 환경교육 때문이다. 우리는 절대적 빈곤이 해결됐다면 더 많은 상대적 빈곤 때문에 허덕이지 말아야 한다. 아니 자제할 수 있어야 한다. 고대 마케토니아 알렉산더(Alexandros) 대왕은 그리스, 페르시아 대제국을 정복하고 동방의 인도까지 원정했다. 그는 그렇게 대단했지만 코린트에 살던 금욕의 철학자 디오게네스(Diogenes)의 소원인 "햇빛을 가리지 말아달라!"는 한마디에 총총히 물러서야 했다.

우리는 지금  디오게네스가 살던 시절보다 물질적으로 더 풍요로운 사회가 됐다. 당연히 모두가 행복해야 하지만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 1960년대 후반까지 우리는 필리핀의 도움까지 받고 지낼 만큼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 시절보다 풍요로움을 맞이했지만 축복으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더 늘고 있다. 왜 그럴까? 상대적 빈곤감이 늘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국가는 수원국(受援國)에서 원조국(援助國)으로 바뀔 정도로 잘 사는 나라로 성장했지만 개인의 빈부격차가 커졌기 때문에 상대적 빈곤을 자주 느낀다. 물론 개인의 격차가 커졌지만 전반적인 사회적 인프라(Infrastructure)는 매우 좋아졌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살기 좋아진 것은 절대적인 것이지 개인적인 상대적 감정으로 쉽게 느낄 수 없다.

우리의 삶에서 상대적 비교에 의해 남보다 높은 위치에 있지 않으면 감정적으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더욱이 상대적 빈곤을 느낄 때 사회가 아무리 풍요롭게 돼도 자신만은 불행한 감정을 갖게 된다.

이러한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은 잘못된 기존의 사회교육환경으로 너무나 현재의 자신을 남과 비교하고 남보다 못하면 괴로워하는 인식을 깊이 심어준 때문이다. 자기 능력에 따라 살아가는 자신의 위치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능력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와 이유를 확실히 알고 수긍하며 처신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노인들이 장수하면 누구나 기뻐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상대적 빈곤을 강하게 감지하면서 축복으로 여겨지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남과 비교해서 실행되는 무한 경쟁적 교육이 상대적 빈곤을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우리가 자녀들을 교육할 때 이점을 관과 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자연의 경관이 빼어나게 좋다고 말할 때를 생각해보자! 자연 생태가 풍요로우면서 높고 낮은 산이 어울려야 하고, 들과 강이 어우러져야 한다. 아름다운 경관이란 한결같지 않고 여러 형태가 같이 어울려 있는 상태 즉, 언발란스(unbalance)의 미()에 있다. 객관적 관점에서 이세상은 다양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좋게 느낀다.

이 세상은 모든 것이 같을 수도 없고 같아서도 안 된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상대적으로 나을 수도 있고 모자랄 수도 있다. 서로 다른 것을 마음으로 이해하고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현실을 바로보고 수긍(首肯)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어려서부터 교육해야 자신을 알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자신의 발전을 위한 희망을 버리라는 의미는 아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좋은 말로 경쟁에 뒤져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교육하지만 뒤집어보면 어떻게든 상대에게 양보하고 배려해서는 안 된다는 강한 의미를 부여하는  교육 행위다. 그렇지 않아도 자아의식에서 상대에게 밀려서는 안 된다는 것 쯤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런데 자기중심적 삶을 살 것을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고 강력하게 요구하면서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 배려하라! 양보하라! 이타적 삶을 강조하는 이율배반적(二律背反的) 교육을 한다면 어린 자녀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런 사고방식으로 교육하면서 어떻게 어린 자녀들이 자라서 행복한 삶을 살도록 바랄 수 있을까? 절대적 빈곤이 해결됐다면 자신의 현 위치에서 수긍하고 적응하며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자신과 상대를 인정하려면 정의로운 사회가 돼야 한다. 일예로 부정과 부패에 의해 부자가 된 사람을 어떻게 존경하고 이해하면서 상대적으로 내가 가난한 것을 인정할 수 있겠는가

정직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돼야 자신이 정당하게 노력했음에도 부족하다면 자신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정의롭게 사는 세상이라면 세상은 늘 변화하기 때문에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생긴다. 누구에게나 기회는 늘 찾아온다. 그리고 현재의 자신을 인정할 때 행복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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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지 마라!” 권하는 노벨 수상자의 이유는?

2011년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열렸던 제5회 아시안 사이언스 캠프(ASC)에 과학 부문 노벨상 수상자 7명이 함께 참석하여 아시아의 젊은 과학도에게 더 크고 넓은 세상을 알리기 위해 모여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많은 조언을 했는데 그들마다 각기 다른 조언을 했다. 어떤 분은 창의성을 기르기 위해 아무것도 믿지 말라! 항상 의심하라!”고 조언했고, 기성인이 시키는 대로 하지 말고 나만의 공부를 강조하기도 했다. 심지어 책을 읽지 마라!”는 충고도 있었다.

신성철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서 어떤 계기로 과학자가 됐는가?”의 질문에 대부분 자기 주위의 환경에서 찾았다. 그 만큼 자라는 교육환경이 중요하다. 그런데 교육환경만 제공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분야를 갈구(渴求)하는 행동이 필요했다.

그 간절히 바라는 목마름은 어린 시절부터 주위의 사물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늘 ?”라고 생각하는 습관이 들도록 부모나 선생님들의 조력이 필요하다.

사회자가 창의력을 어떻게 기를 수 있는가?”라고 물었을 때 이스라엘의 생화학자 아론 치에하노베르(Aaron Ciechanover)아무것도 믿지 마라!” 그리고 책을 읽지 마라!”고 했다. 이 뜻은 기성인들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의미다. 이 말씀은 아무 책이나 읽지 말고 잘 골라서 읽어야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책속에 길이 있다고만 늘 주장해왔다. 누구나 간접경험에 의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독서를 많이 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미숙함을 갈고 닦아 깨우침에서 지혜를 얻어야 한다.

문제는 책을 읽고 습득한 내용을 늘 꼭 그런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의문을 한 번쯤 품을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아서 콘버그(Arthur Kornberg)씨는 치열한 경쟁시대에 외우고 공부하는 데 시간을 투자하지 말라! 창의성을 잃게 한다.”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가장 좋지 못한 교육방법을 꼬집은 것 같아 동감한다. 필요 없이 많은 것을 외우도록 강요하는 많은 학습이 우리 교육의 병폐(病弊).

수학 같이 논리와 원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여할 과목도 공식을 외우고 대입해 답을 얻는 교육방식을 교육한다. 창의성을 어디서 기를 수 있겠는가? 모 이스라엘 대사가 자녀의 3학년 수업참관에서 "84개 있으면 합이 얼마일까?" 84 번 더해서 답을 얻는 것을 보고 나중에 선생님께 한국에는 "구구단"이 있어 외우면 8 x 4 = 32 임을 쉽게 알 수 있다고 권하니 선생님께서 우리는 컴퓨터 계산기가 있어 두드리면 금방 답이 나온다고 하셔서 매우 부끄러웠다는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또한 아서 콘버그씨는 이런 말씀도 했다. 저는 아주 성실하게 연구를 해왔습니다. 그 성실함이 뜻밖의 선물(serendipity)로 보답 받은 것뿐이지요. 성실히 한다면 여러분에게도 그런 행운이 찾아올 겁니다.”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일본 고바야시 마코토(小柴昌俊)씨창의적 사고는 크게 분석과 융합의 과정에 있다.”고 했다. 논리적이고 연속적인 분석과 비연속적인 통찰력의 융합을 강조했다. 과학적 분석은 노력으로 도달할 수 있지만, 융합적인 사고는 영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1+1 = 2가 아니라 5100도 될 수 있다는 시너지 효과를 강조하고 있다.

인간은 태어나 의존단계를 거쳐 독립단계에서 끝내지 말고 상호협력단계까지 성장해야한다. 그리고 한 가지만 깊게 파고들 것이 아니라 넓게 비교연구가 새로운 영감을 얻게 하기 때문에 폭 넓고 다양한 연관관계의 연구가 좋다는 의미다.

대만의 노벨상 수상자 리위안저(李遠哲)씨는 노벨상을 목표로 공부하지 마라! 어떻게 좋은 과학자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하라!” “1 등은 한 명밖에 없지만 모두가 좋은 과학자가 되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

또한 일본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고바야시씨도 노벨상을 목표로 삼는 것은 문제다. 노벨상은 결과의 보상으로 따라오는 것이지 목표가 돼선 안 된다.”라고 결과론적인 충고했다.

물론 원대한 목표를 정하고 노력하는 것은 좋지만 ()을 받기 위해, 명성(名聲)을 위해, 권력을 위해, 부자가 되기 위한 목표를 정한다는 것은 이해관계에 깊이 얽매이게 되어 자칫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행동하기 쉽다. 그러면 실패한다.

우리는 자녀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결과적으로 행복이 찾아오는 것이지 쟁취하는 것이 아님을 늘 말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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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는 지혜

대부분 사람은 눈앞에 있는 일에 매달리고, 고민하고, 행동하기 쉽다. 앞일을 넓게 보지도 않고 당장 눈앞에 놓인 좋은 문제에만 급급해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속담에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라고 한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어떤 코스에 따라 식사하게 되는 경우 앞에 나오는 음식에 너무 욕심을 내면 나중에 나오는 더 좋은 음식을 더 먹을 수 없다. 전체적으로 어떤 요리가 나오는지 미리알고 있어야 후회 없는 식사를 할 수 있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고해(苦海)”라고 숙명적인 생각을 해왔다. 그러나 꼭 그렇다고 동의할 수 없다. 과거나 현재의 삶이 불행한 원인은 우선 생존을 위협하는 가난과 질병 등 자연을 비롯한 주위환경을 다루는 인간의 능력이 미숙해서 오는 고통이다.

가난은 불행을 불러 올 수 있다. 난이란 정의를 해본다면 최소한 먹고, 입고, 쉴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되지 않은 절대적 빈곤을 말한다. 우리는 절대적 빈곤이 해결 됐음에도 더 잘 먹고, 더 잘 입고, 더 잘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끝없는 인간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을 우리는 문화라고 칭한다.

그런 과정에서 인간은 제일 먼저 끝없는 욕심에서 상대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행동하기 쉽다. 그것이 곧 싸움의 시작이다. 개인 간은 물론 집단적 행동도 불사한다. 그래서 우리의 역사는 끝없는 전쟁의 역사로 점철됐다.

제국주의적 사고방식이 세상을 지배해왔다. 힘의 논리로 우월한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다른 나라나 민족을 정복하는 침략주의 경향이 한때를 지배했다. 힘없는 나라와 민족을 굴복시켜 지배하면서 모든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성, 민주주의적(民主主義的) 사고방식이 발전되면서 오늘날 전쟁을 억제하고 서로가 평화롭고 자유롭게 지내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힘이 없으면 자유와 평화를 유지하기 어렵다.

때문에 우리는 더 행복한 개인적인 삶보다 부국강병(富國强兵) 정책이 우선한다.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기 위한 노력보다 강한군대, 강한 병기, 인명살상을 위한 투자를 경쟁적으로 한다.

때로는 몇 사람의 정치적 야망 때문에 많은 국민이 세뇌(洗腦)되어 전쟁에 참여한다. 독일의 나치정부, 일본의 천황정부 등이 대표적이다. 그들이 말하는 많은 적군을 괴멸 시킨 장군의 동상을 세우고 경배(敬拜)하도록 종용한다. 물론 침략자들을 물리친 장군은 길이길이 잊지 않고 경배해야 마땅하다.

침략적 열망과 야욕이 강한 정치인들이 많은 집단사회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작게는 집안에서 자신의 야욕과 결부되어 자녀의 적성과 관련 없는 진학을 강요한다든가, 합창단에서 자기목소리를 뽐내려고 크게 노래 부른다든가, 토론을 하는데 자기주장만 하다가 결론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우리 사회에도 현존한다.

인간 뿐 아니라 모든 동물이 태어나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는가에 따라서 사고방식과 행동이 결정된다. 우리는 태어나 성장하면서 어떤 환경 속에 젖어 살아왔는지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그 범주를 벗어나기란 십지 않다.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자아의식, 상상력, 양심에 따라 충분히 고려하여 그런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음에도 시야를 넓히지 못하면 개미 쳇바퀴 돌듯 우리의 삶과 역사가 계속된다.

하나의 산을 놓고 동서남북에 살면서 자기중심적 사고로 산 뒤에 사는 사람은 앞산, 산 앞에 사는 사람은 뒷산, 산 서쪽에 사는 삼은 동산, 산 동쪽에 사른 사람은 서산이라고 주장한다. 자신의 편협적인 지식만이 옳다고 주장하면 늘 다른 사람들과 대립하게 된다. 그런 사고방식이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서쪽 바다를 서해, 동쪽바다를 동해라 불렀다가 이웃나라와 지명다툼을 한다. 산 이름을 정하고, 바다 이름을 정했더라면 대립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같은 산이지만 금강산, 봉래산, 개골산, 풍악산이라고 보는 시각에 따라 정해놓고도 서로 그 의미를 이해한다면 불필요한 주의주장으로 다툴 일이 없다.

이 세상은 모두가 상대적 양면(兩面)을 갖고 있다는 사실과 이치(理致)를 알도록 자녀를 지도해야 한다. 같은 불이지만 화부(火夫)의 불은 잘 타도록 해야 하고, 소방수(消防手)는 불을 잘 끌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예는 수없이 많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게 하는 교육이 문제다. 이런 현상에서 자녀들에게 많은 경험으로 세상을 넓게 전체를 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모든 사물은 양면이 있음을 알도록 한다.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생각도록 한다.

남의 말에 공감적 경청할 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고 공감할 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상황을 이해하고 용서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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