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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요추간판탈출증(허리디스크병)이란?

 제목 : 요추간판탈출증(허리디스크병)이란?

  우리나라에서 소위 "허리디스크병"에 걸렸다고 말하는 것은
척추뼈와 뼈 사이에서 쿠션역할을 하는 원반모양의 디스크가 탈수
되고 변성되고 손상되어 그속에 있는 수핵이 찢어진 섬유테 사이로
빠져나와 허리디스크 자체만의 디스크의 수핵이 빠지거나 돌출하여
신경이 들어있는 척추관 속으로 들어가게 됨으로써, 신경근이나 혹
은 신경이 분포된 척추관 속의 조직들에게 화학적, 기계적으로 나쁜
자극을 주게 되어 엉치와 다리의 신경통을 일으키는 것을 말합니다.

  요추간판탈출증은 디스크 수핵의 변성이 생기면서 동시에 활동
마저 왕성한 30-40대에 많이 발생한다고 하지만 최근에 들어 10대
또는 20대에서도 이 질환의 발생빈도가 증가되고 있는데 그 원인은
무거운 물건을 들어올린다든지 무리한 허리의 운동으로 인한
요추염좌 같은 직접적 외상인 경우가 많습니다.
허리를 앞으로 굽히면 뒤쪽에 있는 척추가 앞으로 가기 때문에 앞
쪽의 디스크 간격이 좁아지게 됩니다. 따라서 디스크내의 수핵은
뒤쪽으로 밀려서 섬유테의 뒤쪽에 긴장을 일으키게 됩니다.
허리를 잘못 회전시키면 섬유테의 비스듬한 섬유들은 운동방향과
반대쪽으로 팽팽히 긴장되게 되는데 섬유테가 찢어져 그속의 변성
되고 탈수된 수핵이 빠져 나가는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허리굽힘과 회전이 동시에 잘못 이루어지는 동작은
격렬한 운동이나 무거운 물건을 드는 행위가 아니더라도 가벼운
화분들기,연필줍기 같은 사소한 행동으로도 디스크에 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허리를 회전시키면 그 회전의 각도와 정도에 비례하여 수핵은 심
하게 눌리게 되며 디스크내의 압력이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허리를 회전시키면서 앞으로 굽히는 자세는 디스크내의
압력이 증가하면서 섬유테가 찢어질 수 있으므로 가장 위험한 자
세입니다.

 제목 : 경추간판탈출증(목디스크병)이란?

   흔히 목디스크병이라고 불리우는 경추간판탈출증은 제 4, 5번 목뼈와
제 6, 7번 목뼈 사이에 잘 생기며(90%) 제 5, 6번 또는 제 7번 경추와 제
1 흉추 상에서도 아주 드물게 발생합니다. 경추간판탈출증때는 어깨, 팔,
손가락 등이 저리고 아픈데 그것은 눌려진 신경근이, 목의 아래쪽 네쌍의
신경근이 경추에서 빠져나와 어깨, 팔, 손가락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경추간판탈출증은 연성과 경성이 있고, 급성과 만성으로 나눌 수 있습
니다. 연성 목디스크병은 뼈의 변화는 거의 없고 물렁물렁한 디스크수핵의
돌출이 주로 주로 문제가 될 때를 말합니다. 경성 목디스크병은 퇴행성 변
화인 골극이나 뼈의 비대화가 신경 통과 구멍인 추간공을 좁혀, 이것이
주로 문제될 때를 말합니다. 경성 목디스크병은 주로 만성적으로 증상을
일으키며, 40대 이후 50-60대에서 주로 발견됩니다. 연성 목디스크병은
급성인 경우가 많은데, 어느 연령층에서나 올 수 있으며, 외상과 관계가
깊습니다. 후측방으로 디스크가 탈출되면 어깨, 팔의 통증과 근육약화가
주증상이지만, 후중앙으로 탈출되면 척수에 직접적인 압박을 가하여 사지
의 운동약화나 배뇨배분장애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신경근의 압박
증상은 급성탈출 후 수일 혹은 수주에 걸쳐 점차적으로 나타나는 만성형도
있습니다. 반신불수처럼 느껴지기도 하여 중풍으로 오해받기도 합니다.

   그 증상은 초기에는 목을 움직일때마다 통증을 느끼고 뻣뻣해집니다.
그러다가 심해지면 목의 통증과 더불어 팔이 저리는 아픔이 나타납니다.
따라서 목이 뻣뻣해지면서 팔이 저리고 때때로 아프면 목디스크병을 의
심해야 합니다. 나중에는 경추뼈의 변성, 디스크의 변성 돌출 혹은 탈출,
경추후종인대의 석회화가 심해지면서 신경근이 본격적으로 압박당하면 목
의 통증보다는 어깨와 팔의 통증이 더 심해집니다.

   디스크 탈출부위에 따라 특징적인 증상이 있는데 제 4,5번 목디스크병
은 어깨 삼각근 부위에 통증이 오고, 제5,6번 목디스크병은 무지와 시지에
동통이 올 수 있습니다. 제 6,7번 목디스크병은 시지와 제3지에 이상을
느낄 수 있으며, 제 7번 경추 제 1번 흉추 사이 목디스크병은 제4지와 새
끼손가락 부위에 동통이 심할 수 있습니다.

 제목 : 쉽게 풀어보는 경추골 해부학

   경추에 있어서 대부분의 해부학은 요추(허리)와 대동소이하다. 허리와
마찬가지로 목다침과 나쁜 자세로 초래된 변성 변화가 목디스크병의 주
원인이다. 허리와 마찬가지로 디스크의 변성변화, 척수사이 관절의 변성,
척추골관절염성변화, 후종인대의 석회침착, 척추관의 협착 등이 어깨와
목과 팔에 통증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허리의 요추간판탈출증 보다는
훨씬 적지만 35세 이후에는 이 경추간판탈출증도 흔한 질환의 일종입니다.

   모든 포유동물은 일곱개의 목뼈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 1경추골(환추)
과 제 2경추골(축추)은 다른 다섯개의 목뼈와는 다릅니다. 제 1경추골은
척추체가 없이 양쪽에 두 개의 편편한 면으로 두개골을 지지하고 있어,
고개를 끄덕일 때 앞뒤로 움직이는 역할을 합니다. 제 2경추골은
제 1경추골의 반지구멍 같은 곳에 붙어, 머리를 좌우로 회전되도록 해줍
니다.

   목의 척추들은 허리와는 다른 해부학적 갖고 있습니다. 아래쪽 경추골
의 양 측방에는 구상돌기라는 것이 있고, 위쪽 경추골에는 구상와가 있어
이들 상하구조가 맞닿는 곳에서 루쉬카관절을 이룹니다. 이 루쉬카관절에
퇴행성 변화가 오면 그 아래위쪽에서 자라난 가시(골극) 또는 골돌기체가
추간공을 좁히기 때문에 여기를 통과하는 신경근이 만성적으로 점차 심한
압박을 받게 됩니다. 목에서는 이 루쉬카관절에서 자라난 골극이 손쉽게
신경을 압박하므로 이 추간공은 허리에서 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갖습
니다.
   흔히 목디스크병이라 불리우는 경추간판탈출증은 제 4,5번 목뼈와 제
6,7번 목뼈 사이에 잘 생기며(90%) 제 5,6번 또는 제 7번 경추와 제 1흉추
상에서는 아주 드물게 발생합니다.

 제목 : 긴장성 근육통증 증후군

   나쁜 자세로 신문을 오래 들여다본다든지, 깨알같은 작은 글을 들여다
본다든지, 어두운 곳에서 전자오락, 만화 보기, 텔레비젼 보기, 오래 사
무 보기, 쉬지 않고 나쁜 자세로 공부하기 등등이 누차 반복되면 목의 근
육은 긴장을 일으킵니다. 목에는 여러겹의 근육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
장 통증을 잘 일으키는 근육은 등세모근, 흉쇄유돌근, 경추늑골근 입니다.

   등세모근은 중의 모자모양이라 하여 승모근이라고도 불리우는데, 넓은
삼각형 모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뒷머리에서부터 등의 열두번째 흉추골까
지 연결되어 붙어있습니다. 그래서 목이 아플때 두통, 경부통, 견갑통,등
허리의 통증을 함께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가장 잘 긴장되어 근육
통이 느껴지는 곳으로 어깨를 맛사지할 때 이완되는 근육이 바로 이것입
니다.

   목에서 흔히 긴장을 일으키는 다른 두 근육은 흉골쇄골유두돌기근
(흉쇄유돌근)과 경추늑골근입니다. 책상 앞에 여러시간 오래 앉아 있을
때 경련되는 근육입니다. 그중에 흉쇄유돌근은 목아래 중앙의 움푹 패인
곳 바로 밑에 있는 흉골자루와 쇄골에까지 붙어있으므로 목이 아픈 사람
이 가슴 복판이 저리고 답답해진다고 호소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긴장성 근육통은 대개 휴식하면서 물리치료, 맛사지요법 등을 시행하
면 금방 좋아집니다. 그러나 만성 경추부염좌라고 부를로 되풀이하여 목
의 근육이 경련되고 긴장되면 목의 인대와 디스크에도 충격이 전달될 가
능성이 있으므로 주의하여야 합니다.

 제목 : 경추간판탈출증의 증상

   흔히 목디스크병이라고 불리우는 경추간판탈출증은 제 4, 5번 목뼈와
제 6, 7번 목뼈 사이에 잘 생기며(90%) 제 5, 6번 또는 제 7번 경추와 제
1 흉추 상에서도 아주 드물게 발생합니다. 경추간판탈출증때는 어깨, 팔,
손가락 등이 저리고 아픈데 그것은 눌려진 신경근이, 목의 아래쪽 네쌍의
신경근이 경추에서 빠져나와 어깨, 팔, 손가락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그 증상은 초기에는 목을 움직일때마다 통증을 느끼고 뻣뻣해집니다.
그러다가 심해지면 목의 통증과 더불어 팔이 저리는 아픔이 나타납니다.
따라서 목이 뻣뻣해지면서 팔이 저리고 때때로 아프면 목디스크병을 의
심해야 합니다. 나중에는 경추뼈의 변성, 디스크의 변성 돌출 혹은 탈출,
경추후종인대의 석회화가 심해지면서 신경근이 본격적으로 압박당하면 목
의 통증보다는 어깨와 팔의 통증이 더 심해집니다. 어깨를 도려 내버리거
나 팔을 끊어내 버리고 싶을 정도로 심한 신경통이 있을 수도 있으나,대
개는 어깨와 팔이 저리고 당기는 만성 통증이며 손가락까지 저릴 수 있
습니다. 목에 통증이 없는 사람이 의외로 많아 흔히 진단이 늦어집니다.

   때에 따라서는 두통을 호소하거나 등뒤의 흉추부가 아프다고 말하기
도 하며 앞가슴이나 옆가슴의 통증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손가락이나 팔
이 시리고 차다고 말하기 때문에 상지에 피가 잘 통하지 않는 레이노드씨병
으로도 오인되며, 어깨가 아프기 때문에 어깨 관절 부위의 류마티스,
골관절염으로 오해되기도 합니다. 고개를 앞으로 숙일 때만 어깨, 팔,손
가락이 저릴 수도 있고, 뒤로 제낄 때만 저리는 수도 있습니다.
목디스크병의 증상은 한마디로 다양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디스크 탈출부위에 따라 특징적인 증상이 있는데 제 4,5번 목디스크병
은 어깨 삼각근 부위에 통증이 오고, 제5,6번 목디스크병은 무지와 시지에
동통이 올 수 있습니다. 제 6,7번 목디스크병은 시지와 제3지에 이상을
느낄 수 있으며, 제 7번 경추 제 1번 흉추 사이 목디스크병은 제4지와 새
끼손가락 부위에 동통이 심할 수 있습니다.

 제목 : 목디스크병은 사지마비를 일으킬 수 있다.

   허리디스크병보다도 목디스크병이 무서운 점은 하반신마비 혹은 사지
마비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입니다. 경추골 후면에 붙어있는 후종인대가
변성되어 석회가 침착되거나  황색인대가 두터워지는 인대비후증이 동반
된 경우에는 특히 척수가 눌려 하반신 마비가 되거나 사지마비가 되는 수
가 많습니다. 경추뼈 사이의 디스크가 파열되어 후종인대를 뚫고 들어가
경수를 눌리는 경우에도 마비가 흔하며, 골극이나 골돌기체(가시뼈) 등이
주로 중앙부로 자라나 돌출되는 경우에도 척수를 눌러 마비가 잘 옵니다.

   마비는 디스크 파열시에나, 경추관협착증이 될 정도로 척추관이 좁아
진 상태에서 가벼운 충격을 받을 시에는 급성으로 오기도 하지만, 대개는
서서히 조금씩 마비가 진행됩니다. 양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기도 하며 압
박되는 형태에 따라서 특히 신경의 표면만 눌렸을 때는 상지와 상체는 전
혀 정상인데, 단지 하지만 마비가 옵니다. 반대로 상지만 힘이 약하고 하
지는 걷는데 별로 지장이 없는 경우의 마비도 있는데 이는 경수의 눌려지
는 형태, 충격받은 형태에 따라 달라집니다.

   양팔이 모두 힘이 없어지기도 하지만 어느 한쪽 팔만 힘이 약화되는
수도 있으며, 대개는 완전마비가 아니라 불완전마비입니다. 걸어다니기
도 하는데, 걷는 모습이 뒤뚱거리고 무엇인가 어설프며 팔을 써서 숟가
락질을 하는데잘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마비되는 모습도 척추손상 때의
마비와 모양이 많이 다르고 기괴하여, 목디스크병으로 진단되지 못하는
수도 있습니다. 목디스크병은 수술로써 고칠 수 있는데, 일종의 불치병
인 척수염이나 척수 자체의 질환으로 보여지기도 하고, 척수종양으로 오
인될 때도 있으므로 수술을 받아보지도 못하는 수가 있기 때문에 정밀한
감별진단이 필요합니다. 마비가 있는 목디스크병 환자는 하루라도 빨리
수술을 해야만 완치될 수 있습니다.

 제목 : 경추간판탈출증(목디스크병)의 치료

   목디스크병의 치료에만은 침술, 지압, 척추교정술의 효과는 거의 없
습니다. 지압이나 교정에 의한 목디스크 치료는 절대 금물입니다. 목을
갑자기 돌리거나 누르며 잡아당기는 등의 지압에 의한 치료 방법을 잘못
사용하면 척수신경의 마비를 통해, 갑자기 전신마비나 반신불수를 일으
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존적 치료
   -대개는 물리치료로써, 경추견인술을 이용하는데 이는 경추 사이의
    신경구멍(추간공)을 잡아당겨 확대시키고 디스크 사이를 넓혀 줌으
    로써 신경의 압박을 감소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경추견인치료가 제
    일 중요하지만 그외에 근육이완제나 진통소염제를 열요법, 초음파
    요법, 전기자극요법 등과 병행하기도 합니다. 신체활동을 제한하고
    동시에 경부칼라(경추보조기)를 착용하여 만족할만한 효과를 올릴
    수 있습니다. 대개 2-3주간 보존요법을 계속하여도 반응이 없이 악
    화되는 경우에는 경추컴퓨터촬영술을 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수술요법
   -여러 보존요법으로도 낫지 않아 계속 증상이 악화되면 수술요법을
    고려해야 합니다.

    (1)간단한 디스크 부분제거술
      앞쪽 목에서 약 5cm가량 피부의 주름살을 따라 절개하여 식도와
      기관지를 옆으로 제긴 후에 간단히 탈출된 디스크의 일부를 제거
      함으로써 치유되는 수가 많습니다. 뼈를 이식하지 않고, 후종인대
      도 연골도 척추체도 손대지 않기 때문에 가장 안전한 방법이며 간
      단한 수술법입니다. 또한 수술 직후의 회복도 대단히 빠른 장점이
      있으며, 수술 후 3일 이내 보행이 가능하고 1주 내지 2주면 퇴원
      이 가능합니다. 주로 뼈의 퇴행성 변화가 없는 연성 목디스크병이
      적응증이 됩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골극이나 약간의 퇴행성 변
      화가 있는 환자에서도 치유효과가 높다는 것이 여러 임상경험에서
      증명되고 있습니다.

    (2)디스크제거술 후 전방추체간 고정술
      돌출되거나 탈출된 디스크를 전방, 혹은 전방측방에서 제거하고,
      아래위의 경추 몸통의 일부, 연골, 골극 등을 갈아낸 뒤에, 장골
      또는 다리의 비골 골편을 채취하여 경추골을 융합시키는 방법입니
      다. 병변부위가 한 장소에 있을 때 가장 좋으나, 최근에는 2-3개
      이상의 병소에도 동시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변성되어 탈출된 디
      스크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고, 신경근을 압박하는 나쁜 뼈를 미
      세현미경으로 밝게 확대된 시야에서 작은 다이아몬드형 공기드릴
      로 직접 정밀하게 갈아내기 때문에 성공률이 확실하다는 장점이
      있으며, 새 뼈를 이식해 주어 목이 단단해 지므로 노동에 지장이
      크게 없다는 장점이 있으나, 회복기간이 보다 길다.

    (3)후방 경유 수술법
      목 뒤쪽의 후궁(척추판과 극돌기)을 절제하여 신경압박을 풀어 주
      는 방법으로, 신경 손상을 일으키지 않도록 외측면까지 후궁을 절
      제한 뒤에 탈출된 디스크도 제거하는 수가 있으나, 후종인대골화증
      , 황색인대 비후증이 동반되었거나, 경추관협착증이 있을 때 또는
      너무 다발성으로 목디스크병이 있을 때도 고려되는 수술방법입니다.
      특히 사지마비를 동반한 목디스크병일 때, 전방경유 수술법과 동시
      에 시행하기도 하나, 이 후방경유 신경감압술을 해야 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제목 : 경추부 후종인대 골화증이란?

   1960년 일본에서 처음으로 후종인대 골화증이 척수신경의 압박으로
신경통과 마비증세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발표한 이래, 우리나라에서
도 많은 사례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 병은 절을 하루에도 수십번 이상
하는 일본인에게 특히 많으며 한국인을 위시하여 동양인에게서 많이 발
생합니다. 목디스크병을 가진 사람 중에 40대가 넘어 50대, 60대인 사람
에게서는 이 후종인대 석회침착증(골화증)이 흔히 동반되어 있는 것을 많
이 볼 수 있습니다.

   후종인대에 석회가 침착하여 단단한 뼈조각같이 두터워지면서 커지는
데 그 변화가 왜 오는지는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반복하여 손상을 받은 상태에서 나이가 들어 퇴행성 변화를 일으킨 것으
로 여겨집니다. 당 대사의 이상이나 내분비계의 이상 등 전신성 요인도
관계된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후종인대 골화증 환자의 80%는 경추골의 퇴
행, 경추간판의 협소화, 경추간판탈출증, 골극 형성 및 골돌기 형성 등이
동반되므로 흔히 목디스크병의 변형처럼 취급되고 있습니다.

 제목 : 목디스크병-일상생활에서 주의할 점

   목을 반복하여 다치거나 목 운동을 무리하게 자주 하면 경추염좌,
경추편타성 손상이 오고, 그것들이 반복되어 변성되면 경추간판탈출증이
나 경추부 후종인대 골화증이 됩니다. 따라서 평소에 이런 목디스크병이
오지 않도록 주의할 점들을 소개합니다.

   -천정의 전구를 바꾼다든지, 높은 곳에서 물건을 내린다든지 할 때 몸
    이 지나치게 신전되지 않도록 의자 등을 받쳐 보는 위치를 높여야 합
    니다. 즉 고개가 제껴지지 않도록 합니다.

   -높은 베개를 피하고, 얕은 베개를 사용하십시오. 특히 목이 아파 치
    료하는 기간 중에는 8-10cm정도의 낮은 베개가 적합합니다. 머리와
    상체와 목이 거의 수평이 되도록 사용합니다.

   -일상생활의 사소한 동작에서도 지나친 머리 숙이기, 목의 기울어짐,
    목 굽히기, 목 제끼기, 목 돌리기를 피하도록 합니다. 예를 들면 뒷
    사람과 이야기하기 위해 고개를 돌린다든지, 음료수를 들기위해 고
    개를 뒤로 제낀다든지 하는 것은 쉽게 충격을 줍니다.

   -고개를 쳐들고 높은 곳의 텔레비젼이나 영화를 보는 것은 피하도록
    합니다. 누워서 높은 베개를 여러개 받치고 텔레비젼을 보는 것도 좋
    지 않습니다.

   -가슴이나 얼굴에 높은 베개나 긴 베개를 받치고 엎드려서 책을 읽는
    것은 목이 제껴지므로 피하도록 합니다.

   -한쪽 팔에만 무거운 물건을 들지 않도록 합시다. 물건을 든 반대쪽
    으로 고개가 제껴지기 때문입니다.

   -소파에 푹 몸을 빠뜨려 텔레비젼을 보거나 이야기를 하면 목이 앞으
    로 제껴지므로 좋지 않습니다.

   -옆으로 누워 잘 때 너무 높은 베개를 사용하면 경추가 휘어집니다.
    또한 베개를 베지 않으면 경추가 반대로 휘어집니다. 따라서 경추가
    등뼈와 수평이 되도록, 머리가 수평이 되도록 베개의 높이를 조절하
    도록 합니다.

   -앉아서 공부하거나 일을 할 때는 가눙하면 목을 바로하여 앉아있도
    록 합니다. 책상에 작업대를 비스듬하게 세우는 것도 한 방편이며,
    책은 무엇인가로 뒤를 받쳐서 책상에 세우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특히, 이미 목에 통증이 있는 사람은 건축 설계사무소에서 볼 수 있
    는 기울어져 비스듬히 세워진 책상이나 책받침대를 사용하도록 합니
    다.

   -목욕탕에서 머리를 감을 때는 고개를 숙이지 말고 감도록 합니다.

   -아기는 앞으로 안지 말고 등에 업거나 륙색같은 아기운반기로 어깨
    에 메는 것이 좋습니다.

 제목 : 자동차로 인한 목디스크병 예방

   요즘 자가운전자의 증가로 교통사고에 의한 목디스크환자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에 운전시 주의할 점들을 소개합니다.

   -운전석이나 조수석에 머리받침(헤드레스트)을 반드시 부착하고 안전
    벨트를 매는 것을 습관화하도록 합니다.

   -차안에서 옆사람과 이야기 한다고 옆을 쳐다보고 있다가, 혹은 뒷사
    람하고 이야기 하려고 뒤를 돌아보고 있다가, 급정거하거나 추돌사
    고가 나면 목을 심하게 다치므로 차를 타면 항상 정면을 보도록 합
    니다.

   -차 안에서 머리를 숙여 책을 보는 것은 목에 충격이 가므로 피하도
    록 합니다.

   -차창 밖으로 머리를 내미는 행위도 위험합니다. 머리를 내미는 동작
    자체가 무리이며, 밀려오는 바람에 노출되기 때문입니다.

   -차를 운전할 때 앞을 계속 보려고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지 않도록 합
    시다. 머리가 앞으로 숙여지기 때문에 경추의 곡선이 거꾸로 되어 버
    리기 때문입니다.

   -두 손은 핸들에 함께 얹어두는 것이 좋으며 무릎이 가볍게 굽혀지도
    록 페달과 운전의자의 거리를 조정합니다. 팔꿈치가 가볍게 굽혀져,
    팔이 뻗어있지 않음으로써 팔을 잘 움직일 수 있을뿐 아니라, 핸들
    의 측면에 두 손을 얹어둘 수 있어 목의 자세가 바르게 됩니다.

 제목 : 목에 통증을 느낄 때의 자가조치법

   ♣목이 아프면 즉시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합니다.
   -가능하면 목을 적게 움직인다.

   -뜨거운 물을 적신 수건을 아침, 저녁으로 15분간 목에 두르거나, 따
    뜻한 물 속에서 근육을 풀어줍니다. 그리고 하루에 두 번 뜨거운 물
    에 목욕을 합니다.

   -목도리나 스카프를 목에 두릅니다. 혹은 둥글게 만 경추칼라(목을 보
    호하는 보조기)를 착용합니다.

   -턱을 치켜들지 않고 바로 잡아당겨 정면을 보도록 합니다.

   -잠을 잘 때는 목칼라는 벗고, 명주 혹은 모슬린으로 만든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잡니다.

   -헤어드라이어를 이용하여 5분 내지 6분간 뜨거운 공기를 목에 보내
    도록 합니다. 두 시간마다 한번씩 반복합니다.

   -진통소염 크림을 가볍게 목에 바릅니다.

   ♣맛사지법
   -공부하다가 혹은 사무실에서 목이 아프면 아주 편안히 책상에 앉아
    서 책상 위에 팔꿈치를 올려놓습니다. 목은 유연히 바로 세우고 손
    으로 목을 감쌉니다. 두 손으로 목을 감싼 채 숨을 천천히 쉬고 10
    초간 흡입하고 10초간 내쉬는 동작을 3초간 되풀이 합니다. 아픈 부
    위를 서서히 살짝 눌러줍니다.

   -양 손바닥으로 목뒤를 감싼 후 모든 손바닥과 모든 손가락 끝으로 극
    도로 조심스럽게, 부드럽게 누룹니다. 그러면 응어리졌던 근육이 풀
    어져 통증이 없어질 것입니다.

   -손가락을 특히 엄지와 시지를 세워 지압을 하는데 가볍고 천천히 합
    니다.

   -두 손으로 온 머리를 감싸고 부드럽게 누르면서 회전시킵니다.

   -한 동작을 10초 정도 지속시킵니다.

 제목 : 요추간판탈출증(허리디스크병)의 원인

  지금까지 디스크병의 발생은 나이가 들어 디스크의 자연적 변성이 한 요
인이 된다고 알려져 왔으나 그것은 잘못된 이론입니다. 디스크내의 퇴행성
변화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차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피부에 주름
살이나 흰 머리칼이 현저해지는 등 결합조직이 뚜렷이 퇴행하는 시기가 되
기 전에는 그렇게 명백한 퇴행성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추간판탈출증이 가장 빈발하는 나이는 30대 말에서 40대 초이며 더구나
전혀 변성이 없는 아주 젊은 층에서도 디스크 탈출증은 명백히 일어납니다

  닥터 파르판은 1970년에 시체를 이용하여 디스크의 섬유테 중에서도 그
바깥을 둘러싼 섬유가 잘 찢어진다는 것을 알아내었습니다. 허리를 구부리
면서 척추에 걸리는 압력이나 비트는 몸짓들이 손상을 일으킨다는 것은 밝
혀졌는데 특히 과도하게 허리를 굽히게 하는 충격을 받았을 때 디스크가
갑자기 탈출된다는 것이 시체실험을 통하여 증명되었습니다. 닥터 아담과
휴톤이 1985년에 부분적으로 시체의 허리를 굽혀놓고 되풀이하여 부담을
주면 점차점차 디스크가 돌출되는 것도 증명하였습니다. 이 연구에서 흥미
를 끄는 것은 젊은 시체의 허리에서 더욱 더 많이 섬유테의 안쪽이 찢어지
는 것을 밝혀낸 점입니다. 늙은 시체의 디스크는 안정되어 수핵이 잘 빠져
나가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허리를 반복적으로, 나쁜 자세로 굽혀 주는
스트레스나, 급작스런 스트레스가 디스크 탈출을 일으키는 주범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임상경험에서 허리를 다쳤다는 뚜렷한 외상은 약 30%의
환자에서만 나타납니다. 이는 사소한 잘못된 동작이나 기억할만한 충격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도 디스크는 손상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제목 : 임신과 요통

   허리에 미치는 임신의 영향은 대단히 관심이 많은 분야입니다. 한 연
구보고에 의하면 한국여성의 55%가 임신 중 요통을 느꼈고 임신 중 요통
증은 대개 임신 6-7개월 이후부터 시작됩니다. 요통의 84%는 참을만한 정
도이고 16%는 고통스럽다고 나타났습니다. 요통은 임신의 진행과 관계없
이 변화가 없는 경우가 67%, 심해지는 경우가 27%입니다. 임신중 요통증
은 자리에 누울 경우 40%에서 증상의 호전을 보이며, 서 있거나 물건을
들 때, 걸을 때 등에는 40%이상에서 요통의 악화를 호소했습니다. 산후
1주 내에서 요통이 없어지는 경우는 50%, 4주 내에 없어지는 경우는 20%,
6주 내에 10%, 28주 내에 10%씩 요통이 소실됐으나, 10%에서는 요통이 지
속됐습니다.

 제목 : 임신 중 요통의 원인과 대책

   임신 말기에 상당한 요통이 흔히 나타나는데 이것은 배 속의 태아의
무게 만큼이나 허리에 더 부담이 가해지는 까닭입니다. 또한 임신하면 비
교적 짧은 기간에 급격한 요추만곡의 심화가 요통의 원인이 됩니다. 자궁
이 커짐에 따라 복벽과 그 내부 장기가 전방으로 전위되게 되고 이는 요
천골의 전방만곡의 변형을 초래하게 되어 요통이 일어나게 됩니다.

   요통의 다른 원인은 임신 중 릴락신이란 호르몬의 분비입니다. 릴락신
의 분비는 임신 전 기간에 걸쳐 일어나는데, 임신 5개월 후에는 허리부분
의 섬유성 조직들이 단단한 자기의 본래 성질을 잃어버리고 호르몬의 분
비로 인해 약해집니다. 이로 인하여 조직들이 느슨해지고 허리를 지탱하
는 힘줄 즉 인대들이 늘어나게 됩니다. 따라서 허리가 약해져 조금만 움
직여도 요통이 생기게 됩니다.

   이렇게 임신으로 인한 생리적인 요통만이 있을 때는 휴식을 취해야 하
며 그 정도의 안정만으로도 통증은 줄어듭니다. 또한 이때는 허리를 지탱
해주고 받쳐주는 콜셋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 이렇게 하면 나중에 분만 후
에도 허리에 지장이 없습니다.

   대부분은 분만 후에는 허리의 조직이 단단해지고 허리에 부담도 사라
짐으로써 요통이 없어지지만 아기를 낳은 후에도 요통으로 인하여 고생하
는 것은 약 10%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결과에서 밝혀진 바입
니다. 따라서 천장골 부위 다시 말하면 주로 엉치부와 골반에 통증이 있
으면서 악화되면, 허리가 자꾸만 뒤로 제껴지고 걸음걸이도 이상해지고,
배가 나오게 되는 산모는 약 2주간 정도 입원하여 골반교정술을 시행한
뒤에, 약 3-4개월간 골반 콜셋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제목 : 임산부를 위한 척추보호운동

   임신중 척추를 보호하기 위하여 복근 강화를 잘 조절해야 합니다. 임
신중 요통을 적절히 치료하기 위한 방법으로 척추보호운동과 좋은 자세
유지법을 배우고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척추보호운동은 임신 중에도
해야 하는데 조금 가볍게 줄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분만 후에는 복
근강화운동을 더 많이 증가할 수 있습니다.

    (1)사지로 엎드린 운동
      허리와 목의 근육을 강화시키는 체조로 고양이처럼 등을 만드는 운
      동입니다. 우선 무릎과 손을 바닥에 대고 엎드리는데, 팔은 뻗고 등
      은 마루와 평행이 되도록 합니다. 숨을 내쉬면서 천정을 향하여 등
      을 둥글게 올리면서 엉덩이는 당겨 말아넣고, 턱은 가슴쪽으로 가져
      갑니다. 이 상태에서 3초간 지속합니다. 그리고 숨을 들이키면서 허
      리가 다시 수평이 되도록 이완시킵니다. 숨은 배로 쉬면서 5번 되풀
      이 합니다.

    (2)다리 뻗기
      먼저 고양이처럼 엎드린 자세를 취하고 숨을 들이쉽니다. 허리를
      마루와 평행하게 둔 상태에서 숨을 내쉬면서 다리를 뒤로 뻗습니
      다. 다리도 마루와 평행이 된 상태에서 머리는 들어서 바로 앞을
      쳐다봅니다. 숨을 들이키면서 마루에 무릎을 댑니다. 쉬고 5번 반
      복한 뒤, 반대편 다리를 5번 시행합니다.

    (3)다리 올리기
      복근, 엉덩이근, 허벅지근의 강화에 도움이 되는 운동으로, 척추도
      스트레칭 됩니다. 우선 마루에 누운 후 몸은 바로 뻗고 오른쪽 다
      리는 왼쪽 위에 둡니다. 그리고 왼쪽 팔꿈치를 굽혀서 왼쪽 손 위
      에 머리를 얹습니다. 다음, 왼쪽 다리는 구부려 무릎이 몸통 앞에
      있도록 하여 허리를 보호하게 합니다. 즉, 골반들기 상태로 만든
      다음 숨을 들이 쉬면서 오른 다리를 마루에서 들어올립니다. 이 상
      태에서 3초간 유지한 다음 숨을 내쉬면서 원래 자리로 다리를 가져
      옵니다. 이 동작을 10번 반복합니다. 다음에 왼쪽 다리 들기를 같
      은 요령으로 반복합니다.

    (4)안쪽 허벅지 스트레칭
      허벅지근육을 스트레칭하면서 척추를 바로 하는 운동으로, 우선 무
      릎을 구부려 세우고 마루에 앉습니다. 발뒷꿈치는 가능한 한 몸에
      가까이 두고, 손가락으로 발가락을 잡습니다. 그리고 숨을 들이쉬
      면서 척추를 바로 펴고, 동시에 골반들기를 하며 엉덩이근육을 긴
      장시킵니다. 이 자세를 3초간 유지한 후 숨을 내쉬면서 무릎을 마
      루쪽으로 천천히 밉니다. 이때 허리는 직립이며 30초간 있다가 다
      시 쉽니다. 다리와 무릎을 몇초간 올렸다가 내렸다가 하면서 근육
      을 이완시키면서, 3번 반복합니다.

 제목 : 임신과 요추간판탈출증

   임신은 주로 천장골 즉 엉치부의 인대와 결합조직에 이상을 일으켜
요통을 초래하지만, 임신이 척추 디스크를 악화시켜 신경통을 야기시키
기도 합니다. 척추뼈 사이에 있는 디스크를 둘러싸고 있는 섬유테가 약
해져서 임신중에는 디스크수핵이 더욱 탈출되어 나가기 때문에 좌골
신경통이 악화되는 수가 있습니다.

   임신으로 인하여 요추간판탈출증(허리디스크병)이 심해진 사람이라면
수술은 하지 않고, 올바른 허리자세를 통한 허리위생법, 침상안정법,
물리치료 등으로만 치료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요추간판탈출증이란 진단
을 받았던 사람이 임신을 하면 일을 하지 말고, 육체적 노동을 줄여서
허리에 스트레스와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임신 전에 허리디스크가 정상이었던 사람이 임신으로 인하여
요추간판탈출증이 될 수 있는 경우는 1: 10000의 빈도로 드물게 일어날
수 있을 뿐입니다.

 제목 : 허리의 산후조리

   흔히 간과되어 버리기 쉬운 것이지만, 분만 후에 허리에 스트레스가
갈 위험이 많으므로 분만한 후의 산후조리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많은 여자들이 임신중에는 잘 조심하여 요통없이 잘 지냈는데 아기를 낳
은 후에 요통에 직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약 40-45%)

   이것은 산모가 평소에 익숙하지 않은 일에 직면하기 때문입니다. 아
기를 목욕시키고 옷을 갈아입히고 기저귀를 갈아채우고, 수유를 하면서
그리고 갑자기 늘어난 빨래감 때문에, 산모는 되풀이해서 허리를 구부리
게 되고 무려 3-4Kg이 나가는 아이를 되풀이 들어올리게 되기 때문입니
다. 더구나 분만 직후에는 산모의 복근이 늘어져 있는 때이므로, 아직 단
단한 복근조절이 미쳐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요통을 느낄 가능성은 더
욱 커지게 됩니다.

   산모가 이런 경우에 봉착하게 되었을 때는 우선, 모든 일상적인 일을
함에 있어서 그 상세한 주의점과 올바른 자세를 숙지하고, 매일마다 허리
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일 좋은 방법은 빠
른시간 내에 척추보호운동을 시작하여 허리를 단련시켜 주는 것입니다.

   또 중요한 점은 아기를 팔에 들어 앞으로 안고 다니는 일을 삼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배낭같이 등에 짊어지는 아기 운반기를 구입하거나, 몸
에 꼭 달라붙도록 아기를 등에 업든지 매든지 해야 합니다. 이때 아기를
들어 올릴 때, 허리를 굽히지 말고 무릎을 굽히고 자신의 몸에 바싹 붙여
서 아기를 들어야 허리에 스트레스가 가지 않습니다. 임신중의 요통이나
산후의 요통은 예방이 가능한 것이며, 이 기간은 앞으로 허리가 아프지
않게 하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제목 : 담배와 디스크병의 관계

   매일 담배를 피우는 것이 폐암이나 심장병, 뇌졸중을 야기시킬 수 있
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허리 아픈 것과 흡연이 무
슨 상관인가? 하고 사람들은 흔히 반문합니다. 그러나 여러 연구결과들은
매일 담배를 피우는 것이 급성요추간판탈출증을 야기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원리로 담배 피우는 것과 요통은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흡연은 만성 기침을 일으킵니다. 만성 기관지염 즉 흡연성 기관지염이 생
기기 때문에 감기에 걸렸다고 착각할 정도는 아니지만 자주 기침을 하게
됩니다. 기침은 복부내의 압력과 디스크내의 압력을 갑자기 증가시킵니다.
따라서 허리 디스크에 기계적인 스트레스를 증가시킵니다. 기침은 허리에
충격을 주게 되는데 감기같은 기침은 일시적으로 끝나지만, 담배 피우는
사람의 기침은 매일 계속되고 반복됩니다. 이 반복적인 기침은 따라서
디스크 파열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담배 피우는 것과 뼈의 미네랄성분이 감소되는 것 사이에는 관
계가 있습니다. 1976년 닥터 다니엘 등이 담배를 많이 피우면 척추뼈의
칼슘 등이 감소된다는 것을 알아내었습니다. 허리의 대부분을 받쳐주는
척추뼈 자체에 눈에 보이는 정도는 아니지만 미세한 골절들이 이 미네랄
성분의 감소로 인하여 야기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퍼석한 뼈는 요통을 느
끼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척추의 골다공증 환자들이 경험하는 것과 비슷
한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흡연은 척추뼈의 혈액순환을 감소시키게 된다는 점입니다.
뼈 자체에 혈액 공급이 줄어들면 척추 디스크의 영양공급이 제대로 안됩
니다. 디스크의 영양공급은 척추뼈의 피에서 스며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
입니다. 흡연이 척추뼈의 피 순환을 줄이게 되니 자연히 디스크는 빨리
변성을 일으키게 되어 요통을 일으킬 만큼 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목 : 술과 커피는 요통과 어떤 관계일까?

   1975년에 닥터 라스킹스가 밝힌 이래로 만성 요통 환자들과 알콜 과
용자 간에는 적극적 관계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고 있습니다. 식사때 알
콜성분의 음료수 특히, 양주, 소주 같은 도수 높은 술은 마시지 않는 것
이 좋습니다. 커피, 홍차, 콜라 같은 카페인이 많이 포함된 음료수도 자
주 마시면 좋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러 연구결과 많은 양의 커피를 마
시면 그러지 않은 사람보다 칼슘이 보다 많이 척추뼈에서 빠져나가 버린
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술을 많이 마시면 신체에서 칼슘이 빠져나갑니다. 칼슘이 많이 배설
되어 버리면 허리뼈가 약해져 요통이 옵니다. 가볍게 마신 맥주 등은
허리의 근육을 이완시켜주고, 스트레스, 불안, 긴장, 피곤, 우울증 등을
약간 감소시켜주기에 일시적으로 요통이 줄어드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
나 술에 취할 정도가 되면 허리를 받쳐주는 방어기전이 사라짐으로써
허리의 인대, 근육, 디스크 등에 쉽게 손상이 가며, 더구나 허리에 손상
이 간줄도 모르고 계속 무리하게 움직여 요통을 더 악화시키는 수가 많
습니다.

 제목 : 요추간판탈출증(허리디스크병)의 증상

  아주 초기에는 디스크가 정상 직경보다 부풀게 됩니다. 왜냐하면 디스크
가 수분을 잃어버리고 아래위 척추뼈의 사이가 좁아지기에 그 사이에서 눌
리므로 디스크가 부풀어 돌출되게 됩니다. 디스크가 부풀었다고 해서 반드시
불편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디스크를 둘러싼 바깥층은 신경이 분포되어 있
지만 디스크 돌출이 서서히 부풀어 오른 정도에서는 마치 밥을 많이 먹었을
때 느끼는 불편함과 비슷합니다. 왜냐하면 디스크의 돌출이 점차적으로 느
리게 생긴 경우에는 신경의 말단이 재생할 시간이 있기 때문에 불편이 미미
한 것입니다.

  그러나 디스크가 갑자기 부푼 경우에는 디스크를 둘러싸고 있는 바깥층이
찢어지고 열리기 때문에 요통이 옵니다. 이 요통은 허리를 앞으로 구부릴때
악화됩니다. 이 점이 척추 사이 관절이 잘못된 경우와 구별 되는 점입니다.
척추관절증후군은 뒤로 허리를 제낄 때 악화됩니다. 디스크 돌출 상태가
아직 신경근을 압박하지 않았지만 허리 통증외에도 다리에 통증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때는 주로 엉덩이나 허벅지만 아프고 종아리나 발등, 발목은
괜찮습니다. 즉 무릎 밑으로는 불편하지 않습니다. 한쪽 다리만 불편한 경
우도 있고, 양측 다리가 불편할 수도 있으나 요통이 더 심하여 다리 통증이
전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디스크 탈출이 보다 현저해져서 척추신경근이 눌릴 때는 허리가
아프지 않는 사람이 50%나 됩니다. 주 증상은 다리가 아파지는 것입니다.
디스크의 단순한 돌출 때는 다리가 아파도 무릎 위까지만인데, 탈출이 심해
진 이때는 무릎 밑에까지 내려가는 것이 특징으로 발, 심지어 발가락까지도
통증이 퍼집니다. 이 방사통은 기침, 재채기 또는 대변을 본다고 힘을 줄때
더 심해집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동작으로 뇌척수액의 압력이 올라가서 신
경근이 한층 더 압박되기 때문입니다. 이 다리의 통증은 신체적으로 안정을
취하고 있으면 완화가 되나 몸을 움직이면 다시 나타나면서 악화되곤 하는데
이 현상이 일반적으로 척추종양과의 감별점이 됩니다. 척추종양은 쉬거나
움직이거나 통증의 차이가 별로 없습니다. 어느 한쪽 다리만 통증이 오는 것
이 대부분이지만 디스크의 탈출이 중심에서 일어나면 양쪽 다리가 동시에 불
편하거나 혹은 번갈아 가면서 아프기도 합니다.

  1.바로 누워서 무릎을 편채 다리를 들어 올리기가 힘들어진다. 45정도 들
    어 올리면 다리가 당기는 방사통 즉 좌골신경통이 생긴다. 정상일때는
    70도 까지는 다리가 당기지 않는다. 만약 아프지 않은 다리를 들어올려
    반대편의 아픈 다리가 더 아파지면 이는 디스크의 탈출이 심한
    요추간판탈출증으로 진단된다.
  2.서서 무릎을 편채 허리를 앞으로 구부리면 다리의 통증이 생기고 허리
    를 굽히기 어렵다.
  3.허리가 앞으로 제껴지는 요추측만증이 오는 사람도 있다. 신경근의 압
    박을 적게하기 위한 자기보호 반응으로써 아프지 않으려고 허리가 비
    틀어지는 것인데, 대개는 옷을 벗고 약간 허리를 앞으로 숙여봐야 확
    진된다.
  4.제 4,5 요추간 수핵이 탈출되어 신경근이 눌린 경우에는 엄지발가락을
    얼굴쪽으로 당기는 힘이 약해지고, 아주 심한 경우에는 발을 위로 당
    기기가 힘들어져, 무심코 걸을 때는 문턱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하기
    도 한다.
  5.제 3,4 요추간 수핵이 탈출되어 신경근이 눌린 경우에는 무릎에서 다리
    를 뻗는 힘이 약해져서, 걸을 때 다리가 순간적으로 절뚝 하기도 하며
    무릎관절 건반사가 약화된다.
  6.제 5요추, 제 1천추 간 수핵이 탈출될 때는 땅을 짚는 발끝의 힘이 약
    해지거나, 발목관절 건반사가 약해진다.
  7.발등 혹은 발목, 종아리, 다리의 뒤쪽 바깥편, 또는 발가락 등의 감각

    이 마치 남의 살처럼 멍멍해지고 둔해지는 느낌이다.
  8.디스크가 중앙으로 돌출한 것이 심할 때는 양 엉덩이의 감각이 둔하게
    느껴지며 대변, 소변을 볼 때 불편을 느끼며, 양 다리의 마비가 생긴다

 제목 : 요추간판탈출증(허리디스크병)을 확진하려면?

   (1)척수조영술(Myelography 허리특수촬영)
허리를 단순히 찍는 X레이를 입체적으로 여섯장을 찍어도 디스크의 탈출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최근까지도 가장 확진으로 많이 사용된 것은
척수조영술입니다. 예전에는 지용성조영제를 사용했기 때문에 굵은 주사침
을 사용함으로써 두통이 생기거나 드물지만 지주막염이 발생할 수 있어서
수술을 꼭 받아야 될 사람만 시행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1980년대 이
후에는 수용성조영제가 개발되어 위험성은 없어졌습니다. 수용성조영제는
척수지주막하에서 자연 흡수되어, 검사 후 빼낼 필요가 없고 신경의 모습을
아주 섬세한 변화까지 나타내며, 22게이지의 가느다란 주사침을 사용하여
주입이 가능해서, 검사 후 두통을 줄일 수 있습니다. 동시에 지주막염이
전혀 생기지 않아 좋은 검사법으로 받아들여집니다.

   (2)척추컴퓨터촬영술(CT)
그런데 이 척수조영술 후에는 하루정도 안정을 취해야 하는 단점이 있기 때
문에 요사이는 척추컴퓨터촬영을 먼저하고, 나중에 필요하면 척수조영술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부분 척수종영술을 하지 않은 채 컴퓨터촬영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신경모습을 뚜렷이 보여준다는 장점 때문에
척수조영술을 먼저 하고 그 조영제가 있는 상태에서 컴퓨터촬영을 하기도
합니다. 척수조영술은 눈에 선명하게 신경의 모습을 알기쉽도록 마치 긴 오
이처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면, 컴퓨터촬영은 오이를 잘게 썰어놓은 것처럼
횡단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검사를 다 해보는 것을 권유하는 의
사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3)척추간판조영술을 한 상태에서 척추컴퓨터촬영(CT discography)
척추컴퓨터촬영술이 허리의 모든 것을 찾아내는 만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디스크내의 모습을 잘 알수가 없습니다. 단지 디스크의
외곽부분의 변화만 알 수 있습니다.디스크의 작은 병변이나 아주 바깥쪽의
병변은 찾아내지 못합니다. 그리고 디스크가 파열되어 수핵탈출이 이동된 경
우에는 디스크내 주사요법이나 경피적 디스크수핵자동흡입술 등은 성공률이
떨어지는데, 척추컴퓨터촬영은 이 디스크의 파열과 수핵의 이동을 밝혀내지
못합니다. 또한 재발성 요추간판탈출증일 때 디스크수핵이 재탈출된 것인지
수술한 흉터인지를 컴퓨터촬영은 구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런 컴퓨터촬
영의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척추간판조영술을 하고
척추컴퓨터촬영을 하는 방법입니다.

   척추간판조영술은 디스크내에 수용성조영제를 1-2cc 주입하여 디스크의
변화자체를 보는 방법이다. 디스크내의 조영제 주입으로 디스크의 변화가
뚜렷이 보입니다. 이 컴퓨터 간판조영술은 특히 디스크내 주사요법의 성공률
을 예언해 줄 수 있습니다. 1987년에 닥터 에드워드는 간판조영술 후에 컴퓨
터촬영을 하여 디스크의 조각이 척추관 내로 이동한 경우를 확실히 알아내어
주사요법에서 제외시킴으로써 디스크내 주사요법의 성공률이 무려 98%였다는
것을 보고하였습니다. 디스크의 조각이나 찌꺼기가 척수관 내로 이동한
요추간판탈출증 환자가 수술을 받지 않으려고 디스크내 주사요법을 억지로
하는 경우에 디스크내 주사요법 성공률은 단지 15%밖에 안되었습니다.

   (4)척추간판조영술(Discography)
디스크내 주사요법, 즉 화학적 수핵용해술을 시행하기 직전에 척추간판의
상태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이용됩니다. 요사이는 경피적 디스크자동흡입술
직전에도 이용되고 있습니다.

   (5)척추자기공명영상술(MRI)
관절의 퇴행성 비대, 황색 인대의 비대 등으로 인하여 척추관이 좁아져 신
경근 증세를 보이는 경우에는 자기공명술이 컴퓨터촬영술보다 뚜렷이 나타

나지 않아 진단이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척추컴퓨터촬영에서도
나타나나지 않는 병변을 확실히 보여주는 경우가 있어 앞으로 기대되는 진
단법입니다.

 제목 : 침술, 지압술, 척추교정술

   (1)침술
최근 요통환자들 사이에 가장 유행하는 대중적 치료법이 침술입니다. 일반적
이고 과학적인 병원 치료를 처음부터 거절하고 침부터 맞는 사람도 많고, 병
원에 다녀봤자 별 뾰족한 수가 없다고 실망하여 그 대안으로서 침술을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침술이 만성통증을 없애는 기전은 두가지로 설명됩니다.
첫째 기전, 1970년에는 패트릭 윌이 "통증은 통과하는 문이 있어 그 문이 통
증을 조절하고 있다"라는 설로 설명하였습니다. 굵은 신경섬유는 촉각과
온도의 감각을 뇌로 전달하고 작은 신경섬유는 통증을 전달합니다. 침술은
굵은 신경섬유를 자극시켜, 신경이 흥분됨으로써, 통증을 느끼게 하는 작은
신경섬유는 문이 좁아서 통과할 수 없게 된다는 설입니다. 이런 "통증의 문
이 열리고 닫힌다"는 이론은 허리 맛사지와 요통을 없애는 기전을 설명해주
기도 합니다. 둘째 기전, 1975년에 엔돌핀이라는 물질이 발견되었는데 침술
이 신경을 자극하여 이 엔돌핀의 생성을 증가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포인트는 침술은 단지 진통을 진정시키는 방법이지 근본적
치료법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침은 명확히 엔돌핀이라는 호르몬의 분비를 자
극하는 것인데, 이 엔돌핀은 자연적인 아편인 몰핀과 비교할 만큼의 진통제
인 것입니다. 그러나 한의사든 침술사든 양의사든 어느 누구도 아직 침술이
요통의 장기간 치료법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침을
맞고 나았다고 말하는 일반적인 허리 통증은 침상 안정, 부드러운
척추보호운동, 적절한 자세유지의 습관 변화 등을 통해서라도 나았을지도 모
릅니다. 또한 일반적인 요통은 자연적인 치유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많습니
다. 그 낫는 과정에서 침술이 통증을 줄여주는 진통제 역할을 했을 것입니
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점은 침술 등이 척추관절의 변성으로 인한 요통인
지, 디스크의 돌출로 인한 요통인지, 요추간판탈출이나 척추관협착으로 인해
신경이 눌려서 오는 요통인지를 전혀 구별하지 않고 같은 치료법을 사용한다
는 점입니다. 물론 허리가 삐었다든지 만성 요추염좌로 인한 만성 요통증에
는 침술이 상당한 효과를 본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문제는 감별진단을 하여
침술을 계속 받을 병들과 침술을 받지 않아야 될 병들을 구별해야 되는데도
무조건 모두 다 원인에 관계 없이 침술을 받는 데에 있습니다. 구별을 하지
않고 침술만 받다 보니, 초기에는 쉽게 고칠 수 있는 질환을 침술에만 의존
하여 방치했다가 악화되어 손도 쓸 수 없는 경우가 되서야 병원을 방문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진단을 받고 침의 효능과 한계를
알고 침을 맞아야 합니다.

   (2)지압술과 척추교정술
지압, 맛사지, 척추교정은 기원 400년 전의 히포크라테스에서 부터 남아메
리카, 중세기의 인도, 이집트, 중국 등에서 다양한 기술의 연구를 보였지만
어떤 치료나 마찬가지로 한계점이 있고 잘못되어 손해보는 경우도 있는 것
입니다. 먼저 지압과 교정술을 하면 51% 내지 90%에서 효과를 보는 경우는
다음과 같은 경우이다. 다리는 전혀 아프지 않고 단지 최근에 허리만 아픈
경우, 구체적으로 요통이 생긴지 9일 이하인 사람은 효과를 봅니다.
다리에 방사통이 있고 좌골신경통이 있으되 역시 오래 되지 않고 급성인
상태이되 신경마비가 없는 상태에서는 효과를 볼 수도 있습니다. 자세가
불량하거나 허리에 만성적으로 무리한 부담이 감으로 하여 만성 요추염좌
등에도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디스크의 수핵이 속에서 빠져나와 신경을
압박하는 척추디스크란 병은 지압으로 대부분 효과를 보지 못하지만 가끔
낫는 경우도 있다. 척추관절이 굳어서 요통이 있응 경우 72%에서 효과를
본다. 허리관절이 잠시 어긋난 급성요추염좌도 효과를 보며 근육통이 있는
경우에도 상당할 정도로 효과를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압이나 척추교정술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경우도 상당히
많습니다. 다쳐서 허리뼈가 골절된 경우나 나이가 많아 뼈가 퍼석퍼석해

진 사람, 골수염, 척추농양 같은 병이 생긴 경우들은 지압 등을 받으면
안됩니다. 발가락이나 발등에 마비가 있는 사람도 위험합니다. 만약
디스크내의 수핵이 이미 탈출하여 신경을 누르고 있을 때, 지압이나 교정술
을 받으면 신경들이 자극받는 수도 있습니다. 즉 디스크병이 수술해야 할
정도로 심해져 지압과 교정술을 받으면 손해를 보기도 합니다. 따라서 중
요한 포인트는 수술받아야 될 정도의 디스크병이나, 뼈의 이상이 있거나
하는 사람과 단순한 요통으로서 교정술을 받아 도움이 될 사람을 명확히
구별해야 된다는 점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뼈가 약한데 누르거나 비틀면
어떵게 되겠습니까? 상한 디스크 내의 수핵이 이미 빠져나가 신경을 목 조
이듯이 조르고 있는데 또 누르거나 자극을 주면 신경은 어떻게 되겠습니
까? 이런 경우 지압과 교정술 때문에 생기는 가장 흔한 합병증은 하반신
마비나 대소변의 장애, 성생활의 불능이 초래되는 요추신경다발마비신경
의 합병증입니다. 결론적으로 지압이나 교정술은 무슨 병인지 알고 시행
하면 좋은 물리치료 방법이 되지만 모르고 하면 위험한 방법인 것입니다.

 제목 : 척추결핵, 척추종양, 척추농양에 대하여

   척추종양과 척추결핵은 우리나라에서 드물지 않은 병으로, 하반신의
마비를 흔히 일으키며 허리디스크병으로 오인되어 치료를 적절히 받지 못
함으로써 심한 신경장애를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1)척추결핵
특히 부신피질호르몬제(스테로이드 제재)를 남용하는 경향이 우리나라 사
람들에게는 있기 때문에 척추결핵이 더욱 문제가 됩니다. 척추결핵이 있는
환자에게 부신피질호르몬제를 사용하면 처음에는 잠시 증상이 좋아질지
몰라도, 곧 질병은 훨씬 악화되고 맙니다. 척추디스크와 척추체에는 결핵
으로 인한 고름이 꽉 차게되고 파손되어 신경마비가 오게 됩니다. 다리도
마비되어 절룩거리게 되고 심지어는 대소변의 장애까지 오게 됩니다.
척추결핵의 초기에는 신경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아 허리만 아픕니
다. 이대 마이암부톨, 리팜핀, 아이나 등을 복용하면 신경마비가 되지 않
는데, 이 시기를 놓친데다가 특히 부신피질호르몬제 등을 남용한 사람은
악화되어 하반신마비란 엄청난 일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일단 악화된
척추결핵은 보통 척추질환과는 달리 앞쪽을 통하여 수술해야만 마비를 풀
수가 있습니다. 후방으로만 수술하여 물론 나아지는 경우도 있지만 앞쪽
으로 수술하는 경우보다 복잡하고 위험합니다. 일단 마비가 오면 하루라도
빨리 수술하는 것이 결과가 양호합니다.

   (2)척추종양
흔히 요추의 변성으로 인한 허리디스크병이나 척추관협착증인 것으로 혼
돈되어 버리는 병에는 버거씨병 같은 혈관계통의 병, 신경섬유종 같은
척추종양, 당뇨병으로 인한 신경장애, 암이나 골다공증 같은 척추체의 이
상 등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척추종양을 디스크병으로 착각하여, 빠른
시간 내에 수술을 해야 되는데도 지연함으로써 신경마비상태에 빠지는 수
도 있습니다. 특히 요통에 대한 보존요법에 2주이상 지나도 빠른 치료효과
를 보이지 않는다면 소변검사, 일반 피검사, 동위원소검사, 가슴사진,간
기능검사, 척추컴퓨터촬영이나 척수특수조영술, 유방촬영술, 생검 등 상세
한 검사들을 서둘러 시행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척추종양은 신경마비가
심해지기 전에 빠르게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3)척추농양
피부에 종기나 조그만 뾰루지가 생기면 예사로이 치료하고 마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혈액을 통해 균이 이동하여 척추에 고름이 고이는
척추농양에 걸리는 수도 있습니다. 이때도 허리만 심하게 아픈 수가 많
습니다. 열도 나지 않고 허리만 아프고 가끔 다리가 저리니 그냥 디스크병
으로 생각하고 일방적으로 신경통약이나 사먹고 세월을 보내면 고름은 점
차 증가하게 됩니다. 이 병은 조기에 진단되면 수술을 않고도 약물치료만
으로 나을 수 있는 병이므로 증상이 보이면 즉시 병원을 찾는 것이 중요합
니다.

 제목 : 허리디스크병으로 오인되는 척추관협착증

   척추관협착증의 증상은 간헐적으로 허리가 아프고, 바로 눕거나 엎드
려 자는 것은 힘들어서 옆으로 누워서 엉덩이나 무릎을 구부린 채 자는
경우가 많으며 허리를 뒤로 제끼면 다리가 저리거나 요통이 생깁니다.
10분이나 20분 동안 조금 오래 걸으면, 어던 때는 100m, 50m만 걸어도 마
치 피가 제대로 통하지 않는 것처럼 다리가 저립니다. 그러나 쭈구리고
앉아 길가에서 가만히 쉬면 좀 괜찮아져 다시 걸어갈 수 있고 걷다가 또
쉬어야 합니다. 이 병은 35세 이상의 연령층에서 시작하여 주로 50대 60
대에서 잘 발견됩니다. 척추 사이에 있는 디스크내의 물렁물렁한 수핵이
빠져나가 척추신경근을 압박하는 요추간판탈출증(허리디스크병)은 대체적
으로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지만, 척추관절 등의 단단한 뼈가 변성되고
비후되어 척추신경을 죄는 척추관협착증은 아직까지 비교적 생소하개 여
겨지고 있습니다.

   척추관협착증의 원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1)척추관협착증은 선천적으로 척추관이 정상보다 좁게 태어난 사람
      이 젊을 때는 이상이 없다가 나이가 35세 혹은 40세 이상이 되어,
      뼈와 인대의 변성이 겹쳐서 일어나는 수가 있는데 35세 전에는 비
      교적 드뭅니다.
   (2)척추관협착증의 가장 많은 원인은 척추의 퇴행성 골관절염으로 허
      리의 관절이 크게 비후되고, 동시에 허리 속의 황색인대가 두터워
      지고, 척추 자체도 퇴행성 변화를 보여 뼈에 가시(골극)가 돋아서
      척추관이 좁아지는 것입니다.
   (3)혼합형 척추관협착증으로 기존의 선천성 척추관협착이나 퇴행성
      척추관협착이 평소에 있어 가끔 허리가 아파오던 사람들이 어느날
      요추간판탈출이 동반되면 갑자기 심하게 다리가 당기고 저리게 됩
      니다.
   (4)척추뼈가 앞으로 미끄러지는 척추전방전위증이나 척추의 협부가
      금이 가는 척추분리증으로 인한 척추관협착증도 19% 정도 되며,
      비교적 흔히 만나는 요통과 좌골신경통의 원인입니다.

   척추관협착증과 허리디스크병과의 차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1)척추관협착증이 있는 사람은 편편하고 단단한 침대에서 더 아파집니
   다. 디스크환자는 탄력이 별로 없는 단단한 요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반면에, 척추관협착증 환자는 몸이 푹 삐지고 허리가 구부러지는 침
   대에서 40도 내지 60도 이상 높은 베개를 베려고 하며 엉덩이와 무
   릎을 구부린 채 자려고 합니다.
(2)디스크의 경우는 허리를 앞으로 굽히기가 힘들지만 협착증은 앞으로
   굽히면 편하거나 통증이 별로 없고 다만 허리를 바로 펴고 서서 걸을
   때 불편합니다. 협착증이 심한 사람은 오히려 허리를 앞으로 숙여 구
   부린 채 걸어야 다리가 편해집니다. 그리고 협착증은 뒤로 허리를 제
   끼기가 불편합니다. 그 이유는 앞으로 숙이면 디스크는 신경이 더 압
   박당하나 협착증은 신경이 더 넓어지기 때문입니다.
(3)척추디스크인지 협착증인지 구별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우선
   방바닥이나 침대바닥에 바로 누워서 무릎을 편 채 다리를 들어 올려
   보십시오. 디스크병은 35도에서 70도 사이에서 엉덩이부터 허벅지 뒤
   쪽 장단지 뒤쪽 혹은 옆쪽, 발등 혹은 발외측 또는 복숭씨가 당기거
   나 아파집니다. 그리고 양 다리는 들 수 있는 각도의 차이가 서로 다
   른 경우가 많습니다. 협착증은 다리 들어올리기가 쉽고 대부분 정상
   이며 제한이 있다고 해도 경미합니다(대개 60도 이상 가능). 그리고
   그 각도는 양 다리가 같을 경우가 많습니다.
(4)디스크나 협착증이나 모두 허리는 전혀 아프지 않을 경우가 있으나,
   협착증인 경우 별로 요통이 심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5)디스크는 좌골신경통이 비교적 계속적으로 있으나, 협착증의 특징은

   보행시에만 하지 내지 둔부 통증이 심해지는 간헐적인 다리저림이 일
   어납니다.
(6)디스크 환자는 뚜렷한 신경증상을 보이는 수가 대부분인데 비하여,
   협착증 환자는 뚜렷한 신경증상이 없으면서도 자신의 다리가 고무로
   만든 것같이 차고 시리고 때로는 저리다고 호소하게 됩니다.

   디스크나 협착증이나 초기에는 자세의 교정, 척추보호운동, 보조기 착
용, 소염제 같은 약물요법, 물리치료 등의 보존요법으로 치료가 되나, 어
느 정도 병이 진행되어 좌골신경통과 요통이 현저해 졌을 때는 그 치료법
이 크게 달라집니다. 척추디스크의 경우 디스크내 주사요법(키모파파인이
란 효소를 주사함으로써 탈출디스크 수핵을 화학적으로 용해시키는 방법)
이나 경피적 디스크수핵 자동흡입술(긴 바늘을 디스크내에 삽입하여 변성
된 디스크를 자동절제하여 자동흡입해 내는 뉴클레오토미 같은 방법)같은
비수술적인 치료법으로 완치가 가능하나, 척추관협착증은 수술로서만이
완치가 가능한 병입니다.

   수술로써 뼈나 인대의 변성된 부위를 고쳐줌으로써, 일단 진단만 붙으
면 오랜 세월을 계속 고생할 필요없이 완치가 가능한 질병입니다.수술은
미세현미경을 들여다 보면서 공기 다이아몬드 드릴로 협착된 부위를 갈
아서 신경구멍을 넓혀 갑니다. 쉽게 말해서 공기 다이아몬드 드릴 등으
로 변성된 척추뼈를 정밀하게 갈아내는 수술로, 성공률이 97%에 이릅니
다. 따라서 성공률이 현저하므로 수술에 대해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습
니다.

 제목 : 척추분리증과 척추골전방전위증

   척추분리증이란 허리에서 척추의 뒷편 후궁판에 결손이 생긴 것을 말
합니다. 그 원인은 확실하지 않지만, 대부분 5세 이전의 어린 시절에 척추
의 후궁이 골절된 결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골절은 붙지 않은
채로 있게 됨으로써, 위의 척추관절과 아래의 척추관절이 분리되게 됩니다.
간헐적으로 허리가 아픈 것이 특징적 증상으로 아래와 위의 척추관절 사이
가 분리 되어 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 척추가 앞으로 미끄러지게 됩니
다. 이것을 척추골전방전위증이라 합니다.

   척추분리증은 어린시절에 생기지만, 그래서 어떤 경우는 외상성으로 어
떤 경우는 선천성이라고 부르지만, 아프다고 느끼는 시기는 대개 20대 후
반부터인 경우가 많습니다. 척추골전방전위증은 뼈가 많이 미끄러진 경우
도 있지만 1cm 정도로 조금 어긋난 경우도 많습니다. 척추뼈가 앞으로 미
끄러져 있는 이 병은 대부분 척추분리증이 동반되어 있으나, 선천적으로
척추관절이 비정상적인 경우도 있고, 척추관절의 퇴행성 변화로 인한 경우
도 50대 이후에는 흔히 보이며, 교통사고나 추락사고 등의 큰 외상으로
인한 경우도 있으며, 척추체 자체의 병으로 인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병이 있으면 요통 뿐만 아니라 다리가 저리고 통증이 오는 수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척추가 분리되어 있는 바로 그 부분으로 신경근이 척
추에서 다리로 빠져 나가기 때문입니다. 이 병이 만약 신경통을 일으키지
않고 간헐적으로 요통만 일으킨다면 좀 불편하다해도 굳이 수술을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메덱스란 허리강화운동기구가 미국 플로
리다의대에서 개
발되어 거의 정상인에 가깝게 회복시켜주므로 척추에 금이
가고 분리되었다고 크게 놀라거나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너무
심하게 앞으로 뼈가 미끄러진 경우에는 더이상 미끄러지지 않도록 뼈를
붙여주는 골융합술이란 수술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청년들은 운동
과 노동을 해야 하므로 뼈가 약간만 미끄러져도 척추골융합술을 받는 것
이 좋습니다.

   만약 이 병이 좌골신경통과 다리에 마비증세를 일으킨다면 그것은 척추
가 분리된 부위에서 뼈가 신경을 찍으면서 압박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감압적 척추수술을 해야만 합니다. 단단한 벼에 의해 기계적으로
압박되기 때문에 약물요법이나 비수술적 방법으로는근본적인 치료가 불가
능합니다. 신경을 풀어주는 간단한 1차 수술인 신경감압술만으로도 요통과
좌골신경통이 없어지는 수가 대부분이나(90%) 어떤 경우에는 이 수술 후
에도 요통이 계속되면서 뼈가 점차 더 미끄러지는 경향이 있습니다(10%).
50대 이후의 나이 든 사람은 오히려 잘 미끄러지지 않으므로 2차로
척추골융합술을 요하는 경우가 비교적 드물지만, 활동을 많이 하게 되는
젊은 층은 뼈가 더 미끄러져가는 경향이 있으므로 2차로 뼈를 붙여주는
골융합술을 요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따라서 젊은 층에서는 수술을 1차,
2차로 나누지 않고 처음에 바로 신경감압술과 척추뼈융합을 동시에 시행
하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골융합술을 시도한 사람은 수술 후 4주 내지 7주간 침대에
누워있어야 하며, 3개월간 안정을 취해야 하고 6개월이 지나서 힘든 일을
해야 합니다. 요사이는 여러가지 수술을 위한 보조기구들이 많이 발전되어
이제는 거의 정상인에 가깝도록회복을 가능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척추
후궁이 골절된 것처럼 금이 가 분리되어 있고 척추뼈가 앞으로 미끄러져
있다고 해서 크게 놀라거나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수술을 하면 거의
정상인과 마찬가지로 일살생활을 잘할 수 있고 직장생활도 대부분은 가능
하기 때문입니다.

 제목 : 골다공증

   골다공증이란 같은 연령과 성별의 정상 사람에 비하여 골의 화학적 성
분에는 변화가 없고 본래 골기질의 감소로 인하여 골질랴의 현저한 감소
를 일으킨 질환으로 골대사성질환 중 가장 흔한 것입니다. 골다공증은 뼈
의 생리적 노화에 여러가지 인자가 작용하여 발병하는 것으로 칼슘, 인
및 단백질의 결핍, 비타민D 결핍, 갑상선호르몬 등 호르몬 장애, 운동부
족 등이 원인이 됩니다.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골의 흡수와 형성이 되풀이
되면서 골량을 일정하게 유지하는데 노년기에 이르면 칼슘의 배설량이 증
가하며, 이를 보충하기 위해 뼈의 손실이 일어나 심하면 골다공증이 생기
는 것입니다.

   골다공증의 초기에 나타나는 증상은 요통이며 대체로 연령이 증가함에
따라 뼈가 약해지기 때문에 병적골절이 일어나기 쉽습니다. 골절을 잘 일
으키는 부위는 척추, 대퇴경부, 팔목주위, 상완골 등으로 적은 힘을 받을
경우에도 생기기 쉽습니다. 골다공증은 남자에서 보다 여자에서 약 4배나
많고 폐경기 이후의 여성은 뼈의 손실 속도가 빨라 골다공증의 위험이 특
히 높습니다. 폐경을 한 여성들은 혈장 칼슘농도가 상승하고 소변 배설량
이 증가하며 뼈의 용출을 증가시켜 이를 보충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 분비 감소에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되며, 에스트로겐
을 공급하면 혈장과 소변 칼슘의 감소와 함께 뼈의 손실도 감소합니다.
골다공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식이요법, 운동요법, 약물요법이 시행되어
야만 합니다.

 제목 : 성생활과 요통

   인간 정서의 관점에서 보면 '성생활'보다 인간 활동에서 더 중요한
행위는 없습니다. 가장 오래된 문화재의 하나로 오스트리아에서 발굴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란 돌로 된 부적은 약 32000년전에 성적이미지로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신라시대의 토우에서도 성적이미지가 많이 나타납
니다. 그만큼 모든 인간의 삶의 뿌리엔 성생활이 중요성을 가지고 있습
니다. 요통이나 좌골신경통이 발생했을 때라도 성생활은 불가피한 활동
인 것입니다.

   그래서 1994년 3월에 <우리들병원 척추건강연구소>에서는 요통 환자
100명(여자 47명, 남자 53명; 20대 9명, 30대 23명, 40대 38명, 50대 26명,
60대 4명)의 성생활에 대하여 조사를 하였습니다. 요통으로 고생했던
기간이 3개월 이내였던 사람은 19명, 6개월에서 1년이었던 사람은 9명,
1년에서 1년 6개월이었던 사람은 19명, 1년 6개월에서 2년이 15명, 2년
이상이 38명이었습니다. 71% 이상에서 1년 이상 요통으로 시달리고 있었
습니다.

   요통이나 좌골신경통으로 인해 성생활에 지장이 있었던 사람은 단지
35%였습니다. 48%에서는 일단 성생활이 가능했으나 불편과 지장이 있었다
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17%에서는 지장이 현저해 성생활이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의사와 '성생활과 요통의 관계'에 대해 의논한 적이 있었던 사람은
불과 13%였습니다. 87%에서는 성행위에 관해 의사에게 물어본 적이 없는데
그 이유는 '부끄러워서'가 61%였고, '진찰실에 간호사등 누군가가 있어서'
가 15%였으며, '의사가 비협조적으로 대하여' 의논 못한 사람이 24%였습
니다.

   * 부부간에 문제점은 없는가?
   허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부부간의 성관계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는
무려 54%였습니다. 그중 34%에서는 기본 가정생활에 별 문제점이 없을
정도로 조금 불편했으며, 보다 소원한 관계가 19%였고, 헤어질 정도로
성관계가 단절된 경우는 3%였습니다. 그중에 어떤 사람은 남편에게 심지어
첩이나 애인을 얻어주겠다고 했으며 어떤 남편은 아내가 아픈 허리로 고생
하니 가까이 가면 안된다고 판단하여 혼자 헤매기를 3년간이나 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성생활이 없으면 부부간의 문제가 많아지는 것이 당연하니
그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어 허리는 더욱 아파지는 악순환이 되는 경우였
습니다.

   * 급성요통과 만성요통에서 침상 안정이 필요한가?
   물론 갑자기 급성으로 요통이 엄습하였을 때는 침상 안정이 3일 정도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3일 이상 누워지내는 것은 척추를 받쳐주는 근육과
인대의 위축이 오고 허리디스크에 영양 공급이 안되어 요통은 오히려 악화
됩니다. 급성요통이라도 3일 이후에는 성생활이 가능하며 오히려 허리를
낫게 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만성적으로 요통이 반복되거나 3주 이상 앓는 경우에는 침상 안정이나
성생활을 금하는 일은 전혀 필요하지 않으며 오히려 적극적 재활운동요법
이 필요합니다.

   * 성생활은 허리치료를 악화시키는가?
   요통을 자주 느끼는 사람들은 흔히 성생활이 요통을 더 악화시킬까봐
걱정스러워 합니다. <우리들병원 척추건강연구소>에서 1994년 3월에 요통
환자 1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45%가 '성생활은 허리병을 더
악화시킨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51%가 '악화는 시키지 않지만 허리를 더
아프게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단지 4%만이 '성생활이 허리병을
악화시키지 않는다'고 믿을 뿐이었습니다. 허리 통증을 느끼는 사람의

파트너들도 많은 수가 '성생활이 허리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파트너의 60%가 겁이 나서 성생활을 참고 있었
습니다. 그중에는 환자인 당사자는 별 걱정을 안하는데 자신의 파트너가
겁을 내어 성생활을 하지 않으려는 경우가 32%였고, 파트너와 환자 자신이
모두 겁을 내는 경우가 28%였습니다. 어떤 경우는 환자 자신이 허리가 아
프다는 핑계로 성생활 자체를 거절하는 것이었습니다. 40%의 환자가 겁이
나서 파트너의 요구를 거절하고 있었습니다.

   * 정서, 심리적으로 성생활은 허리에 어떤 역할을 하는가?
   심한 근육경련이 허리에 엄습했을 때 조차도 육체적으로 가깝게 접근
하여 껴안아 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육체적 친밀감과 위로는 정서적
으로나 심리적으로 허리에 도움을 줍니다. 만약 급성통증이 심하여 성생활이
불가능할 때라도 상호간에 어루만지기 나아가 손이나 입술을 이용한 쓰다듬기
등도 시도해볼만 합니다.

   * 촉각이 통증보다 우선적으로 신경작용을 하는가?
   두 사람이 열려진 마음으로 좋은 관계를 가지고 어루만짐으로서 좋은
기분을 느낀다는 것은 실제 신경계 내에서 통증을 느끼게 하는 통각보다는
어루만지는 촉각이 더 우선적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 허리병을 예방하는 최선의 방법은 허리 체조운동인가?
   허리병이 악화되는 것을 예방하고 다시는 요통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최선의 방법은 침상 안정이나 휴식이 아니라 적극적인 운동입니다. 허리
근육과 복근을 강하게 만들어 주는 운동을 하여 척추를 확고히 떠받쳐주게
하는 길입니다.
   허리근육을 강하게 하는 대표적 체조운동은 허리를 뒤로 제끼는 신전
운동이며, 복근을 강하게 만드는 대표적 체조운동은 골반을 위로 들어
올려주는 골반들기입니다. 이 두가지 운동은 모두 성행위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것입니다. 성행위에서 허리 신전운동과 골반들기운동은 필연적으로
수반됨으로 적절한 성생활은 오히려 허리를 튼튼하게 만들어줍니다. 물론
많이 아픈 경우나 척추 수술을 받은지가 얼마되지 않은 사람은 골반들기나
허리 신전을 최소로 하는 것이 필요할 것 입니다.

   * 척추수술을 받은 사람은 언제쯤 성생활이 가능한가?
   상처만 나으면 언제나 가능합니다. 기준을 보행으로 말하면 수술 후
1.5킬로미터나 2킬로미터를 별로 통증의 악화 없이 계속 걸을 수 있을 때
입니다. 이정도를 수술 후에 걸을 수 있다면 확실히 성생활을 위험도 없이
시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병원 척추건강연구소>에서 조사한 바로는 최소
상처의 미세 수술을 받은 사람은 1-2주내에 가능하고, 중간정도의 수술을
받은 사람은 2-3주에 대부분 가능합니다. 뼈를 붙이는 큰 수술을 받은
사람은 3-4주에 대부분 가능합니다.

 제목 : 요통과 운동-요통, 운동으로 정복합시다!

   요통은 인류의 가장 대표적인 질환중의 하나이며, 과거의 요통은 지나친
노동과 부적절한 영양섭취로 발생했으나, 오늘날의 요통은 80-90%는 잘못된
자세, 부적절한 허리의 사용, 허약한 근력, 운동부족이나 나쁜 형태의 운동
에서 기인하는 경우이며, 특히 운동부족증이 원인이 되어 많이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요통의 중요한 원인은 추간판 탈출증 이외에도 관절염,
심질환,척추와 신경의 결핵, 류마티즘, 부적절한 다이어트, 만성피로, 비만,
임신, 다리길이의 불균형, 담석, 골다공증, 월경 등에 의해서도 나타난다.
이러한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하여 발생하는 만큼, 먼저 정확한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 치료를 시작하는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요통과 경부통은 정확한 원인을 찾아내어 치료한다면 거의 대부분
치료될 수 있으며, 요통의 보편적인 원인이 운동부족증으로 인한 근육의
좌상인 만큼, 자신의 신체 능력에 알맞은 운동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
하며, 자신의 신체 능력을 알기 위해서는 척추전문병원을 방문하여 척추
기능검사를  받으면 현재의 신체능력을 알 수 있으며 이러한 기본검사
이후에 올바른 방법으로 운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치료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우리는 허리에 해로운 운동을 자주 행하게 되는데, 예를
들자면 다리를 편 채로 발가락 닿기와 윗몸 일으키기, 상체를 옆과 뒤로
젖히는 운동, 상체를 비틀면서 발가락 닿기, 누워서 양다리 들어올리기 등이다.
   요통환자에게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형태의 운동 프로그램이 제공되어
질 수 있다.

   첫째 유산소 운동이다
   유산소 운동은 걷기,자전거 타기 계단 오르기 등으로 구성되는데 이러한
   유산소 운동을 함으로 인하여 다음과 같은 이점을 가져올 수 있다
   체중조절, 많은 엔돌핀의 분비, 각 조직으로 영양물질 공급, 통증에 대한
   내성 증가, 적절한 신체 구조로의 개선, 심폐기능의 향상이다.
   둘째 저항성 운동이다.
   저항성운동은 주로 무게를 이용하는 운동인데 부적절한 신체구조물을
   제위치로 되돌려 놓는 것은 물론이며 허약한 근력과 인대 등 척추를
   받치고 있는 조직들을 강하게 만들어 주며 또한 제한되어 있는 관절의
   가동범위 즉 유연성을 증가시키며 근육속의 감각신경을 자극하여 일반적인
   통증 자체를 감소시켜 준다.

   그러나 이러한 무게를 이용한 운동도 자신의 근육형태나 관절의 가동
범위를 무시한 상태에서 운동을 하게 되면 오히려 통증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있으므로 먼저 근육의 형태를 검사하여 자신의 근육형태에 맞는 운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관절의 가동범위도 처음부터 과도한 동작으로
하는것 보다는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움직여 주는 것이
치료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운동은 유산소운동과 저항성운동으로 나누어서 최소한 주일에
2회 내지 3회의 운동 프로그램으로 구성되며 운동 초기에는 주로 유산소
운동으로 기본적으로 저하되어 있는 심폐지구력을 향상시키는데 주력을
하는 것이 이상적이며 4주 정도가 지난 이후에는 저항성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효과적인 치료방법이라 할 수 있다.

   환자들의 지나친 욕심은 처음부터 운동을 많이 하면 빨리 낫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신체능력을 초월하여 운동을 많이 하게 되는데 요통 치료는
무엇보다도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효과 자체를 반감시키게 되며
초기의 과도한 운동은 또 다른 통증을 유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므로
점진적인 운동 프로그램을 이해하고 난 이후에 운동을 시작해야한다.
   어떠한 특정한 질환을 기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도 신체능력을 향상

시키려면 최소한 3개월에서 6개월 정도가 소요되는 만큼 척추질환으로 판명이
되었으면 지속적인 운동을 해야 된다는 것을 명심하는 것이 현명한 생각이라
할 수 있겠다.

   주로 요통은 과다한 운동과 불균형을 초래하는 운동 등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허리 자체를 과신전, 과회전시키는 운동은 금하는 것이
좋으며, 일반적으로 초기의 요통은 스트레칭 체조, 걷는 운동, 척추강화
체조만으로도 치료가 가능하며, 근력의 불균형으로 나타나는 만성적인
요통도 운동으로 치료가 가능한 것이다.
   스트레칭 체조는 굳어 있는 관절, 근육, 인대를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윤활유 역할을 해주며, 걷는 운동은 인체의 근육이 100여개정도
상호 작용을 하므로 다리 근육은 물론 엉덩이, 허리 부위의 근육에 직접적인
영향을 무리없이 전달하므로 모든 치료의 기본이자 종합이라 할 수 있다.
   척추강화체조도 약해져 있는 허리의 신전근육군과 굴곡근을 강화시키며,
제한되어 있는 유연성을 증가시켜 근육을 활성화하여 근육속의 단백질
합성을 도와 통증 자체를 감소시킨다.

 제목 : 스포츠와 허리 건강

   허리의 통증으로 인해 일상생활 또는 운동을 포함한 여가 활동에 지장을
받았던 사람들은 약물과 물리요법에 의지 않고 적절한 운동을 통해 신체의
건강을 도모하려는 생각을 한번쯤 하게된다. 그러나 자신의 허리 상태에
무리한 운동을 시도하면서 통증을 악화시키거나 더러는 역시 운동은 허리에
해가된다는 그릇된 믿음속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허리의 근력과
탄력을 더욱 약화 시키게 된다. 따라서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에게 요통을
피하기위해 운동을 하지말라고 한다면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운동에 취미가 없으며 허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틀어 박혀있는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도 운동은 육체가 조화롭게 움직이게 하는 윤활유가
될 것이라 믿는다. 만성적인 요통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떤 운동을 선택
하여 단련한다면 통증의 강도와 기간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튼튼한 심장과
폐를 가지게 될 것이며 이는 지속적인 운동을 위한 토대가 될것이다.
   그러나 병원치료를 받을 만큼 허리가 불편하지는 않지만 35세 이상이거나
만성적인 요통을 겪는 사람에게는 능력에 맞는 운동과 스포츠활동 전후의
보호운동이 제대로 처방되어야 한다. 어떤 스포츠도 요통환자에 금지된 것은
아니다. 테니스,볼링,골프,그리고 승마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너무 격렬하게
하지말며 경쟁적이 되는 것을 피해야 한다. 또한 지칠 정도로 많은 양의
운동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사항은 운동전후
10분간의 워밍업과 쿨링다운은 운동으로 인한 충격과 통증을 충분히 예방
하리란 사실이다.

   그러면 허리를 위해 어떤운동을 선택 할 것인가?
   우선 개개인이 가진 허리의 특성에 대한 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
경미한 통증이더라도 척추의 어떠한 기능에 문제가 있는지에 대한 척추
기능검사(메덱스,퀸톤,브트렉검사)를 통해 약화된 복근 또는 요배근을 강화
하거나, 비탄력적인 근육을 활성화 시키는 처방이 세워 질 수 있다.
   만약 척추의 근력이 도저히 운동을 수행하기 힘들 정도이거나 부상의
가능성이 있을 경우에는 기본적인 척추근섬유에 대한 트레이닝요법이 필요
하다. 가장 효과적이면서 단시간에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려면 플로리다의대
에서 개발한 메텍스재활운동요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한주일에 2번 정도의
운동량으로 24회 정도 수행했을 때 약 200~300%의 근력 증대및 유연성을
갖게되며 특히 앉는 자세에서 쉽게 통증을 느끼는 사람의 주문제점인 신전
근육의 강화에 탁월하다.
   척추의 근력과 유연성이 어느정도 수준이상인 사람들은 자가로 충분히
허리를 단련할 수있다. 다음에 기술하는 운동은 쉽게 일상생활속에서 접하는
운동이며 척추에 상당한 도움이 되리라는 취지에서 그 특성을 알아 보았다.

  걷기운동(산보): 어떠한 사람에게도 적응증이된다. 심페기능의 강화와 더불어
                하지의 혈액순환과 장운동을 촉진하며 척추의 균형과 지구력에
                이상적인 운동이다. 1km를 10분에 걷는 속도로 매일 30분정도
                걷는 것을 권한다. 이때 흙길과 풀밭길이 더욱 효과적이다.
  수영: 물의 완충작용과 부력으로 허리에 부과되는 하중을 경감시킬 뿐만
       아니라 관절의 손상위험이 전혀 없기 때문에 중장년에 효과적이다.
       배영과 자유영이 가장 좋으며 접영과 평영은 허리 근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피해야 한다. 일주일에 두세번 정도로 20분내지 30분
       정도가 효과적이다. 21도 이하의 차가운 물에서의 수영은 근육을
       수축시키므로 피해야 한다.
  자전거타기: 자전거 페달을 밟을 때 이상적인 골반경사로 직립이 되며
             하체와 둔부에 이르는 근육을 발달시킨다. 다만 의자의
             높이가 몸에 비해 높다면 허리가 과신전 되어 허리에 충격을
             주므로 개개인의 신장에 따라 적절히 조절되어야 한다.
  에어로빅: 허리통증에 효과적인 에어로빅은 보통 알려진 집단으로 빠른
           템포의 움직임을 보이는 과격한 율동이 아니다. 인내심을 길러

           주고 심리적 자신감을 주는 면도 있지만 충분한 스트레칭과
           발바닥을 보호하는 신발이 사전에 준비되어야 한다. 과도한
           허리 회전과 신전으로 인해 척추후관절의 변성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운동생리학과 해부학을 익힌 에어로빅 강사가 필요
           하다. 또한 개개인의 능력을 무시한 동시에 동작하는 동료의
           무언의 압력도 부상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한다.
  스키: 원만하고 리듬감이 있으므로 올바른 골반경사를 유지할 수 있으면
       허리의 부상 위험이 거의 없는 운동이다. 요통이 있는 사람은
       시즌이 되기전에 하체강화운동을 충분히 해두어야 한다. 스키중의
       허리 손상은 피곤으로 인해 스키기술을 효과적으로 조절하지 못했을
       때가 대부분이다.
  테니스: 중년의 사람들에게는 다소 무리한 운동이 된다. 하드코트에서는
         특히 관절의 손상이 오기 쉽고 너무 강한 서비스를 보내려고 하면
         허리의 인대와 관절의 손상을 초래 할 수 있다. 주말 테니스는
         특히 해로와 디스크병을 일으키게 된다.
  골프: 등산과 마찬가지로 걷기운동이 기본이 되며, 잔디의 쿠션효과로
        인해 허리의 충격 없이 충분한 양의 운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해외골프에서 흔한 전동카를 타고 오직 샷에만 열중한다면 전혀
        도움이 될 수 없으며, 경직된 근육을 무리하게 회전시키게 되어
        허리의 부상을 가져오게된다. 지나친 승부욕은 정신과 신체의
        리듬을 잃게하여 인대의 손상을 초래할 수 있다.
 볼링: 만성요통을 가진 사람에게 아주 위험도가 높은 운동이다. 공을
      릴리스할때 볼의 무게가 몸의 한쪽에 걸리게되고 그 반대편 히프
      관절과 허리디스크에 과도한 긴장이 걸리게 된다. 더구나 공을
      던진 후에는 허리가 회전 되기 때문에 디스크와 척추관절에 무리한
      손상이 오게 된다.
 배드민턴: 워밍업과 스트레칭이 충분히 선행되어야한다. 나이 드신 분들이
           주로 많이 하는 경향이 있는데 허리의 과도한 신전과 갑작스런
           방향전환시 주의 해야한다.

 제목 : 운동은 언제 하는 것이 좋은가?

   운동을 아침에 하는 것이 좋은가? 저녁에 하는 것이 좋은가? 바쁜 아침
출근에 쫓기는 직장인들은 자연히 저녁에 운동을 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조기 출, 퇴근제가 확산되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화되었다.

   척추 전문의사로서 '척추디스크'를 중심으로 얘기하자면 아침에 운동하는
것이 저녁에 하는 것보다 좋다. 무거운 물건을 드는 것도 아침이 좋다. 디스크
는 대부분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척추 뼈와 뼈 사이에는 쿳션역할을 하는
두께 약 1cm 정도, 지름 3-4cm 정도의 원반모양의 디스크가 있는데, 그중
80-90%가 물로 이루어져 있다.

   하루내내 앉고 서서 있기 때문에 체중과 중력이 수직적으로 허리 디스크
에 작용하여 저녁의 허리 디스크는 수분이 많이 빠진다. 수분이 많이 빠진
상태이기 때문에 탄력이 없고 쿳션 기능도 떨어진다. 그래서 저녁에 무리한
활동으로 인해 디스크를 둘러싼 섬유테가 찢어져 디스크 수핵이 탈출하는
경우가 많다.

   무거운 물건 들기, 이사하기, 운동하기 등을 아침에 하면 좋은 이유가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다. 아침에는 밤 사이에 수분이 디스크 수핵내로
확산되어 들어가 충분한 쿳션 역할을 하도록 통통해진다. 또한 근육의 젖산
도 줄어 있다.

   그리고 체중이 부하되는 서서하는 운동이 누워서 하는 운동보다 좋다.
혈액내의 칼슘이 뼈 속으로 들어가 뼈가 튼튼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골다공증
이 우려되는 갱년기 이후의 여성은 수영보다는 체중이 실리는 등산이나
계단 오르내리기, 자전거타기, 실내 노젓기운동 등이 좋다.

 제목 : 근육 근막 통증 증후군

   통증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배가 아픈 복통, 머리가 아픈 두통, 이가
아픈 치통, 관절이 아픈 관절통, 허리가 아픈 요통, 신경조직을 따라 아픈
신경통, 이중에서 근육이 아픈 근육통에 대해 알아보자.

   골격에 붙어있는 근육들, 즉 골격근내에 어떤 부위를 건드리면 그 자극
에 대한 과민부위가 당기고, 그 부위가 자극되면 그 발통점의 위치에 따라
특정부위의 근육에 통증이 재현되는 연관통이 나타나는 경우를 임상적으로는
"근육 근막 통증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근육과 근육을 둘러싸고 있는 근막에
병소가 있기 때문이다.

   흔히 등, 허리, 어깨, 목 뒤돌기에 자주 생긴다. 등이 아프고 어깨가 당기고
결린다. 이때 옷을 벗고 <컴퓨터 적외선 촬영>을 하면 통증을 말로써만 나타
내지 않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그 통증 부위가 빨갛게 혹은 누렇게
컬러로 나타난다. 통증을 유발시키는 부위 즉 근육의 일부에 발통점이 생기면
그 부위는 열이 나있는데, 이 열은 아주 미세하여 0.6-1.4℃ 정도의 차이므로
눈으로나 손으로는 알 수가 없다. 그 근육 위의 피부에 투사되는 적외선
열을 찾아내 사진을 찍어 컴퓨터로 합성한 것이 <컴퓨터 적외선 촬영술>로
이 "근육 근막 통증 증후군"의 진단에 쓰인다.

   또 누가 이 발통점을 누르면 그 통증이 발통점에 의해서 유발된다고
하기에는 힘들 정도로 상당한 거리까지 확산되어 연관통이 생기는 것으로
진단을 붙일 수 있다. 이 연관통과 근육통 부위에는 이상감각, 찬 감각,
과민한 감각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디스크병과는 달리 X-ray, CT, MRI,
EMG(근전도 검사) 등의 진단으로 아무 이상이 없다. 컴퓨터 적외선 촬영
이나 촉진에 의해 압통점 혹은 발통점을 찾아 거기에 주사를 놓는 압통점
주사나 운동요법, 냉찜질, 온찜질, 전기자극 주사요법 등이 만성 근육통을
치료하는데 도움이 된다.

 제목 : 상체견인술

   디스크병에서는 위에서 아래로 누르는 중력과 상체의 무게가 언제나
가해지고 있다. 요통이 있을때 대개 누워있으면 통증이 감소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허리디스크에 수직적으로 위에서 누르는 중력과 상체의 무게가
허리에 걸리지 않기 떠문이다.

   위에서 내려가는 이 힘은 척추 디스크 환자를 괴롭히는 힘이다. 즉
디스크병은 수직방향으로 걸리는 무게, 약 40Kg의 부하가 문제이다. 예를
들면 승강기의 갑작스런 정지, 오래 앉아 있기, 서있기 등이 요통을 증가
시키는 것은 수직적으로 상체의 무게가 중력과 함께 허리에 부하되기 때문
이고, 반대로 눕거나 철봉에 매달리거나 누구에게 업히면 허리가 편안해지는
것은 그 상체와 중력의 압력이 허리에서 감소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허리디스크에 부하되는 압력을 줄이는 방법이 초기 디스크병의
치료에서는 가장 중요하다. 이러한 치료 목적으로 시행되는 것이 "견인술"
이다. 견인술의 종류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이중 누워서 골반을 묶어
척추를 아래에서 위로 당기는 골반견인술이나 다리를 묶어서 거꾸로
매달리는 견인술은 효과가 없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일상생활과 맞지않기
때문이다. 앉거나 서서 생활하는 인간의 자세 그대로에서 상체로부터 허리에
걸리는 압력을 제거하려면 상체를 들어올리는 '상체견인술'이 가장 합리적이고
효과적이다.

   방법은 서있는 상태에서 하부고정대를 허리 부위에 놓이도록 하여 장골능
바로 위에 고정시켜놓고, 상부고정대를 명치 부위 즉 흉골 바로 밑에 놓이도록
한 뒤에 상부고정대를 위로 밀어 올리면 상체가 위로 들어 올려져 중력에
반대되고 또 체중에 반대되는 수직견인이 된다. 이 상체견인술은 사실 기원
전에 의성 히포크라테스가 이미 시행해 왔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나무에
매달리기, 윗몸 들어올리기, 철봉에 매달리기 등으로 디스크병 치료에 이용
되어왔다.

   디스크환자는 특히 앉아 있을때, 서있을때 중력이나 상체의 무게가 디스크
압력을 증가시키므로, 상체 들어 올리기, 상체 수직견인술등의 치료를 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해야하며, 앉아 있을때도 자주 일어서서 허리를 뒤로 제끼어
주면 디스크내 압력이 감소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제목 : 요통환자의 재활운동 필요성Ⅱ

    직립으로 생활을 하는 인간은 약 80%가 일생 중 한 번은 요통으로 고생
을 하게 된다고 한다. 이에 우리는 한번쯤 요통은 어째서 발생하는가에 대해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그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우리의 척추는 역학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우리의 평소 생활하는 자세, 습관 등과 깊은 연관이 있다.
그러므로 요통이 생기지 않도록 평소의 바른 생활 습관이 중요하다.

    요통의 1차적 원인으로 요추 부위의 연조직 약화가 자주 거론이 되고
있고 또한 척추 주위의 근육간의 불균형시 척추의 역학적 움직임이 원활
하지 못하게 되면 주위 관절에 과도한 하중이 걸리게 될 분 아니라 주위
근육 약화도 초래되어 요통을 유발할 수 있다. 그러므로 허리 주위 근육의
강화 운동은 요통 환자의 재활 치료 분야에서도 중요한 부분이다.

    또한 일단 요통이 발생하게 되면 올바른 진단에 의해 그 원인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디스크가 과도하게 탈출되었다든가 파열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환자의 치료는 수술이 아닌 보존적 요법으로 치료를
하게 된다.

    요통 환자 치료에 있어서 보존적 요법이란 약물치료, 열치료, 견인요법,
운동요법 등의 여러 가지가 있으나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허리 주위
근육의 유연도를 증가시키고 근육의 강도를 증가시켜 주는 "재활운동 요법"
이다.

    그러면 먼저 어떠한 운동이 허리를 강화시켜 주는 데 가장 유용한 방법
인지를 알아보아야 하고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근육의 종류와 생리학적인
특성도 알아야 한다.

    우리 몸의 근육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보면 제 1형 근육은 근육의
인내력과 관련이 있으며 수축시 산소를 주된 에너지원으로 필요로 하며
수축되는 속도가 느리며 제 2형 근육은 수축 속도가 빠르고 근육의 강도와
관련이 있다. 쉽게 말해서 전자의 근육은 마라톤 선수, 컨트리스키 선수
등에 발달되어 있고 후자의 근육은 100m 달리기 선수, 점프 선수 등에게
발달되어 있는 근육이다.

    그 동안 이 두 가지 종류의 근육을 모두 적절히 발달시켜 허리 주위
근육을 어떻게 강화시킬 것인가에 관한 많은 연구가 있어 왔고 많은 운동
기구가 고안되었다. 운동을 하는 경우 근육을 수축시키는 신경 조절 능력이
증가되어 근육의 많은 운동 단위가 일정한 수축의 강도에 반응을 할 뿐
아니라 이러한 저항 운동에 의해 '골지건반사(Golgi tendon reflex)' 같은
감각계도 발달되어 우리 몸을 과도한 수축으로부터 보호하게 된다.

    이 운동 요법은 물론 수술을 한 환자에게는 수술 후 요통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실시되어야 하며 현재 비록 허리가 아프지 않다고 하더라도
요통의 예방을 위해 허리의 주위 근육을 강화하는 운동을 미리 미리 예방
주사를 맞듯이 해 두는 것이 좋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과연 어떠한 운동이 가장 효과적인가에 대해
의문이 생기게 된다. 그 동안 여러 사람들에 의해 많은 운동 방법이 소개
되었으며 그 기본 원리는 허리 주위 관절의 유연도를 높이고 허리의 굴근
및 신전근의 강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자세 유지 및 움직임에 관여
하는 몸통 근육의 강화 훈련에는 스태틱(Static) 운동이 더 유용하다고 한다.

    유연도를 증가시키기 위한 좋은 운동으로는 스트레칭이 가장 효과적
이라고 하며(Walkin, 1985) 근육의 강화를 위한 운동으로 대표적인 것은
'윌리엄 복근 강화 운동'과 '맥킨지 신전 운동'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은 어떠한 객관적인 기준이 없고 평가도 객관적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점을 보완하고자 여러 가지 컴퓨터화된 기구들이
개발되었다.

    저항 운동의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크게 다이내믹 운동과 등척성
운동으로 나누며 전자는 다시 등장성 운동과 등속성 운동으로 나눌 수 있
다.

    등장성 운동의 경우, 같은 장력을 주면서 운동을 시키는 것으로 여기
에는 각도에 따라 저항의 정도를 변화시키면서 하는 경우가 있는데 내털리
러스 등에서 개발된 기구가 여기에 속하며, 운동하는 동안 계속 같은 저항
을 주는 것으로 유니버설의 기구가 있다.

    등속성 운동의 경우, 운동하는 동안 같은 속도를 유지하는 것으로써
여기에 대표적인 기구가 사이벡스, 바이오텍스, 킨콤 등이다. 등척성 운동은
근육의 수축시 같은 길이를 유지하게 하는 것인데 대표적인 기구로 메덱스
(Medx)가 여기에 속한다. 특히 메덱스는 허리의 가동 범위인 0도에서 72도
사이에서 12도 간격으로 각각의 자세에서 저항 운동에 의해 허리 근육을
강화시켜 주는 것이 특징이다.

    저항에 의한 강화 운동시 첫 3-4주는 신경학적 조절의 발달로 인해
근육의 힘이 강화되며 그 이후부터는 근육의 크기가 커지게 된다. 그러므로
이 운동을 어느 정도 하는 것이 효과적인가를 생각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빈도, 강도, 기간, 훈련 내용 등이 포함된다. 플렉(Fleck)과 크레머(Kraemer)
<1987>에 의하면 1주일에 한 번 요추신경근 훈련이 충분하다고 하며 그
이상 할 수도 있으나 이는 근육의 회복 능력에 따라 조절 가능하다.

    훈련 강도의 경우, 일반적인 강화 운동시에는 8-12회(RM:repetition
maximum)가 적당하다고 하며 여기서 1RM을 한 번 에 할 수 있는 최대
강도로써 RM의 숫자가 커질수록 회당 강도는 작아지게 된다.

    기간은 처음에는 근육의 신경학적 조절 능력이 향상되다가 그 이후
근육의 크기가 커지게 되는데 두 달 정도 훈련시 근육의 크기가 커지고
적어도 12주 정도 훈련시 최대 강도의 힘이 생긴다(Costill 등, 1979).
이떠 근육이 위축되어 있거나 약화된 경우 더욱 효과를 볼 수 있다.

    그 이후에는 갑자기 운동을 그만두지 말고 모든 다른 운동에서와
마찬가지로 점점 그 횟수를 줄이는 정리 운동(Cool Down)과정을 거쳐야
한다.

 제목 : 정기적 운동 통해 요통치료와 재발 예방

            척추손상으로 야기되는 고통

요통은 인간이 경험하는 골근육계의 질환으로  생긴 통증 중에서 양적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질환으로서 온 인류의 약80%가 일생동안에
적어도 한 번은 이 고통을 경험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요통의 경험은 인간의 재앙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견디기가 힘든 질환
이며 이는 고대 이집트  사람들에게도 있었다는 역사적 기록이 있다. 그러
나 대체로 원시적  생활을 하는 아프리카 밀림지대  또는 심산벽지에 사는
미개인들은 주로 쪼그려  앉아서 생활을 영위하기 때문에  요통을 앓는 환
자가 없다고 보고되어 있다. 산업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이 의자생활에
의존하거나 아니면 서서  생활을 꾸려 나가야 하기 때문에 허리뼈(요추)에
가해지는 무거운 압박과  체위 이상에 의한 기계적  자극의 증가로 요통환
자 발생이 크게 증가하여 왔다.
산업재해나 교통사고,  기타 외상에 의해서  척추에 손상을 입어 야기되는
요통 발생은 현재 우리나라에선 증가하는 추세이다. 그리고 척추의 퇴행성
변화와 골다공증 등으로  많은 환자가 요통을 일으키게  되며 기타 내과적
질환에 기인한 요통 환자도 많다. 이 요통은 단순히 의학적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심리,  사회, 경제적인 심각한 복합 문제로  대두됨에 따라 가
정, 사회, 국가적인 문제의 차원을  넘어 세계 보건기구의 관심사로까지 부
각되어 왔다. 따라서 세계 도처에서 이 요통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엄청난
냥의 연구와 수많은 연구 발표가 소개되었지만  아직도 이 요통 원인의 생
리학적 기전이나 복합적 병리가 만족스럽게 규명되지 못하고 있다.

             재활의학적 치료로 80% 이상 치료 가능

요통의 치료는 비수술적  치료와 수술적 치료로 나눌  수 있는데 비수술적
치료의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이 재활의학적 치료이다. 요통의 재활의학적
치료는 척추의 해부학 생리, 생역학 및 생화학을 잘 이해하여야 보다 효과
적인 치료를 거둘 수가  있다. 급성기의 요통은 약6-10주간의 치료로 환자
의 약80%이상이 치유 될 수  있으며 추간판 탈출로 인해 신경증상이 있는
환자도 약3개월간의 재활의학적  치료에 의해서 회복이 가능하다. 전 요통
환자의 1-2%만이 수술적 치료를 받았다고 보고되고 있다.
 급성 요통의 재활의학적 치료는 우선  침상 안정 요법을 바탕으로 소염제
투여와 물리치료로 시작하여 요통이 경감됨에  따라 운동 요법을 추가하여
회복을 촉진시킨다. 급성 요통 치료 원칙은 상처 부위의 염증 악화를 방지
하고 소염시켜 통증완화에 그 초점을 두고 있다. 아급성 또는 만성 요통의
치료는 급성 치료와  반대로 운동 요법이 일차적  치료법이고 약물과 물리
치료는 보조적 치료법이다. 요통  치료에 사용되는 물리 치료 종류는 열치
료, 냉치료, 전기자극치료, 견인치료, 척추보조기 등등이다.
재활의학적 치료의 운동방법은 등척성 운동, 요추 굴곡 운동과 신전운동이
다. 아급성 요통이 치유되지 않고 12주간 이상 계속되면 일단 통증이 만성
화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만성 또는 재발성 요통 환자의  치료는 동통자체 치료만으로 고통이 해결
되지 않는다. 이들 환자들은 요통이 만성화 또는 재발됨에 따라 이 통증에
대한 고민,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간혹  보상의 횡재에 대한 망상 등 등의
사회적, 심리적 복합  문제가 병발되기 대문에 만성  요통 치료 계획엔 이
문제들의 해결책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요통의 재활의학적 치료의  궁극적 목표는 요통을 일으키는  상처를 치유
케하고 나아가서 심한  통증으로 약해진 허리와 하지의  근력 및 지구력을
증가시키며 연조직의 가동성 제한으로 일어난  허리 관절과 하지의 유연성
및 운동  폭의 저하를 개선 및  증진시킴으로써 허리 기능  장애를 최소로
줄여 다시 정상 생활에 참여케 함이다. 그리고 정기적인 운동을 통하여 육

체적 단련을 도모하며  심혈 관계의 적응도를 높여  요통의 재발을 방지케
한다.

           허리 보호 위한 다각적 노력 필요

 요통의 최상 치료는  요통 방지 교육이다. 척추의  해부, 생리, 역학을 잘
이해하도록 환자를  교육시킴으로써 허리 보호를 효과적으로  이행할 수가
있다.
 일상 생활을 꾸려 나가는 과정에서  척추의 생리와 역학에 역행되는 모든
육체적 행위는 요통을 유발한다는  것을 항상 유념하여야 한다. 물건을 들
어 올릴때는 허리를 구부려서 물건을 집으면  안되고 운전을 할 때는 무릎
이 고관절 높이와 비슷하게  되도록 자동차의 좌석을 조절해야 한다. 서서
일을 할 때, 그리고  무거운 물건을 운반할 때 항상 척추에 충격이 가해지
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직장 생활을 할  경우 허리에 부담을 가져오는 모든  요인을 직장 생활과
맞게끔 교정 및  시정하여 요통 발생의 위험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햐애 하
며 요통 유발의 위험인지인 흡연과 비만에 특별히 유의하여야 한다.
 항상 올바른 몸가짐에 유의하고 꾸준한  허리 운동과 계속적인 체력 단련
을 병행함으로써 허리  아픔에서 벗어나게 되고 굳은  허리를 부드러운 허
리로, 약한 허리를 튼튼한  허리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믿고 노력해야 한
다.
 제목 : 급성요통-제 1단계는 기본적인 허리방어단계

   급성 요통은 대부분 사소한 일상생활에서 발생되는 수가 많습니다.
선반에서 물건을 내린다든지, 창문을 연다든지, 신발 신는다고 허리를
굽힌다든지, 화분을 들다가 갑자기 허리에 통증이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이런 급성 요통때 그 해결책을 알고 있어야 초기에 가라앉힐 수
있습니다. 급성 요통을 너무 대수롭지 않게 여겨 그대로 방치하면 허리
가 악화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초기에 즉시 가라앉히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이 기간에는 우선, 스스로 기본적인 허리방어 자세를 취해
야 합니다.

   허리가 아프려고 하는 첫 징후가 나타나면 가능한 빨리, 즉시 엄마
배 속의 태아같은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눕든지 옆으로 눕
든지 하여 가슴쪽으로 무릎을 구부려 주고, 턱도 가슴쪽으로 당겨주는 자
세입니다. 이것의 주 목적은 뻣뻣한 허리 자세를 피함으로써 허리에 더
이상 무거운 중력이 미치지 않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허리가 아픈 사람마다 자신이 가장 편안해 하는 어떤 자세가 있습니
다. 허리가 아플때 추천할 수 있는 자세는 의자 위나 침대 위에 발을 얹
어놓고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눕는 자세입니다. 이때 두개의 베개를 사용
하면 좋은데, 하나는 머리 밑에, 다른 하나는 엉덩이 밑에 바치도록 합
니다. 그리고 윗몸을 의자에 가까이 하여 무릎이 가슴쪽으로 구부러지도
록 합니다. 이것은 거의 태아와 같은 자세가 되는 것인데, 이 자세로 누
워있으면 요통이 없어집니다.

   도저히 누워있을 분위기가 아닐 때는 벽에 기대어 웅크리는 것이 좋
습니다. 벽에 등을 기대는 자세를 보다 잘 취하려면 서서 등을, 벽에 먼
저 댑니다. 그리고 천천히 무릎을 구부리면서 끄러져내리며 앉습니다. 그
것조차 곤란하면 방바닥에 앉아서 양무릎을 세워서 가슴쪽에 기대고 팔
로 감쌉니다. 이런 자세의 기본 목적은 척추에 무게가 걸리지 않도록 하
고, 허리에 부담이 안가도록 하기 위하여, 골반을 구부리고 좋은 복근의
받침을 해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무실에서 허리가 아플 때는 한 다리를 가슴쪽으로 당겨서 발뒷꿈치
를 의자의 시트에 올려놓습니다. 만약에 뒤로 제껴지는 의자라면, 의자를
뒤로 제끼고 한 다리 혹은 두 다리를 책상 가장자리에 얹습니다.

   차 속에서 허리가 아파오면 왼쪽 다리를 구부려서 발을 시트쪽으로 당
겨 놓습니다. 만약 길을 빠져나와 차를 정지시킬 수 있다면 차를 세우고,
차에서 내려 차에 기대고 요통이 없어질 때까지 웅크려 있으십시오. 그런
후 단지 허리를 펴주고 몇 발자국을 걷기만 해도 요통이 없어지는 수가 있
습니다.

   비행기속에서 허리가 아파올 때는 안전벨트를 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허리 뒤에 두개의 베개를 받치고, 발 밑에는 가방 같은 짐을 받쳐서 무릎
이 히프보다 높아지도록 한 다음에 안전벨트를 졸라맴으로써 든든한 받침
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서 있을 때 허리가 아파오면 최소한 골반경사를 시도합니다. 그리고
한쪽 발을 어떤 곳에든지 올려 놓습니다. 그러면 허리근육이 이완되어
허리에 통증이 사라질 것입니다.

   요통이 있을 때 감기가 들어 기침을 하면 통증이 증가합니다. 이때
허리를 보호해줌으로써 허리 디스크가 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재채기나 기침을 할 때 허리를 보호하려면 우선 반듯하게 무릎을 낮추고

구부려 골반경사를 하여야 충격이 허리에 가지 않습니다.

 제목 : 급성 요통-제 2단계는 휴식

   급성 요통에서 절대 명령은 휴식입니다. 우선,가능한 빨리 체중이
척추에 실리지 않도록 편안하게 눕도록 해야 합니다. 중력이 허리에 미
치는 압력을 피하는 방법은 옆으로 눕는 방법입니다. 어디에 눕는 가는
사람마다 틀립니다. 방바닥이나, 침대나 종류에 상관없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고 허리가 이완된다면 좋른 것입니다. 단 허리가 푹 꺼지는 쿠션이
나 지나친 침대나 요는 좋지 않습니다.

   적어도 급성 요통때 일주일은 쉬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만약 병
원에 입원하여 특별한 보존요법을 받을 수 있다면 2-3일만 쉬면 될 것입
니다. 요통의 심한 정도에 따라 물론 회복에 걸리는 시간이 틀립니다.
만약 척추골절이 있다면 오래 걸릴 것입니다. 그리고 허리가 좋아질 때까
지는 모든 운동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목 : 급성요통의 자가 물리치료법

   급성요통이 있을 때 가장 효과를 보는 방법은 얼음찜질입니다. 얼음
찜질의 진통 효과는 찬 기운이 허리 깊숙히 스며들어 신경줄을 차단시키
기 때문에 나타납니다. 더운 찜질보다 찬 찜질이 더욱 깊이 허리의 조직
을 파고 들기 때문에 찬 찜질이 요통에 미치는 효과가 더운 찜질보다 더
좋습니다. 찬 찜질이나 찬 얼음 맛사지가 요통을 없애주고 허리 근육이
엉켜붙어 경직된 것을 풀어주고 허리가 부은 것을 삭여주는데는 특별히
도움이 되지만, 주의해야 할 경우가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찬것에 과민반응이 있는 사람, 즉 레이노드씨병이나 버거씨병
         같이 찬것에 과민반응을 보여 피부가 시퍼래지고 손발이 저리
         는 사람은 얼음찜질을 피해야 합니다.

   둘째,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들은 흔히 찬 것을 참아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류마티스 환자 중에 어떤 사람은 얼음찜질, 찬 맛사지
         에 효과가 좋은 사람도 있습니다.

   셋째, 고혈압이 있는 사람은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찬 찜질이나
         얼음맛사지를 할 때는 피부를 잘 관찰하여 지나치게 얼어버려
         피부가 상하지 않나 관찰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찬 찜질은 여러가지 방법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가장 효과가 좋은 것
은 얼음덩어리를 직접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나무 젓가락이나 나무 막대
기에 얼음을 붙여 사용합니다. 이것은 쉽게 만들 수 있는데, 냉장고 속
으로 종이컵에 물을 채워 넣고 그속에 손잡이 될만한 나무 조각을 넣어
같이 얼면 종이컵을 얼음에서 떼어버리고 얼음덩이를 손잡이를 이용하여
허리에 문지릅니다. 얼음맛사지는 허리가 아픈 부위에 10분 내지 12분간
시행합니다. 처음 3-4분간은 등허리가 달아오르며 얼어붙는 느낌을 느낄
수 있으나 이 3-4분간을 참고 잘 견뎌내어 얼음맛사지를 하면 요통이 현
저하게 없어지고 허리 근육의 경직현상이 풀립니다. 만약 급성 요통인 사
람이 직접 얼음을 허리에 문질러 맛사지를 하는데 견뎌내지 못할 경우에
는 처음에는 찬물찜질을 10분 내지 15분간 준비하고 난 뒤에 직접 얼음
덩이 맛자지를 하면 됩니다.

   찬 찜질이나 얼음맛사지가 더운 물찜질이나 열요법보다 요통이 없어
지는 효과가 훨씬 좋고 급성요통시 나타나는 허리 경직을 잘 풀어주고 효
과도 오래 지속되지만 어떤 사람들은 찬 것을 싫어하고 견대내지 못하므
로 허리찜질을 뜨거운 것으로 해야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더운 찜질도
요통에 효과가 있는데, 열이 피부를 통하여 허리로 들어가 진통역할을 하
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운 찜질은 찬 찜질과 반대로 혈관을 확장시키기
때문에 허리를 더욱 붓게 만들므로 허리를 다쳐서 근육 등이 부은 부분은
더운 찜질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목 : 급성 요추염좌에 대하여

   허리에 담이 들었거나 허리가 삐었다고 말하는 급성 요추염좌는 척추
디스크병이나 척추관협착증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초기에 낫
게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급성 요추염좌는 무거운 물건을 잘못
들 때나, 길거리나 마루에서 넘어지거나, 차에 타고 있는데 뒷편에서 들
이받아 허리가 튕긴다든지 하는 경미한 교통사고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급성 요추염좌는 다치자마자 즉시 허리가 뻐끈해지고 불편합니다.
어떤 때는 허리를 다친 뒤 한참 후에야 근육경련이 생기면서 요통이 오는
수도 있고, 너무 통증이 심하여 꼼짝도 못할 때도 있는데 대부분의
급성 요추염좌는 허리가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며 허리의 어느 한쪽에 아
픔이 더 심합니다.

   요추염좌는 앞쪽의 디스크 수핵을 둘러싸고 있는 질긴 섬유테가 찢어
지거나, 그 디스크를 포함하여 척추를 앞뒤로 둘러싸고 있는 종렬 인대가
조금 손상되는 경우와 뒷쪽의 척추관절이 삐는 경우는 약간 차이가 있습
니다. 척추의 앞부분인 디스크구성 성분쪽을 염좌받으면 나중에
요추간판탈출증의 후유증이 생기고, 척추의 뒷부분인 척추사이 관절구성
성분쪽을 염좌받으면 나중에 척추관협착증의 후유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요추염좌가 단지 허리근육의 섬유들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상한 상
태일 수도 있으며, 척추뼈와 뼈를 연결하는 그리고 척추에서 골반 등 딴
부위와 연결하는 인대들의 부분 염좌일 수도 있는데 이때는 나중에 비교
적 후유증이 덜 합니다.

   급성으로 허리가 삐거나 담이 들었다고 말하는 급성 요추염좌는 일을
하지 말고 반듯이 누워서 쉬어야 합니다. 거기게 얼음찜질이나 온 찜질,
아스피린, 맛사지를 곁들이면 요통은 빠른 시간내에 없어질 것입니다.
만약 도처히 안정치료가 형편상 불가능하다면 큰 고무밴드같이 허리와 배
를 졸라매는 허리보조기를 차야 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탄력이 있는 콜
셋 같은 것들 입니다. 이때 근육이완제, 소염제 등의 약물치료와 물리치료
를 겸할 수도 있습니다.

 제목 : 만성 요추염좌에 대하여

   만성 요추염좌 즉 만성적으로 허리에 담이 들어있는 상태인 이 만성염좌
는 실제 허리가 아픈 원인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이것은 허리에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물리적, 기계적으로 스트레스가 가해져서 오는 것입
니다. 자세가 나쁘다거나 운동부족으로 인한 허리근육의 약화로 인한 것이
많으며, 이 증상은 주로 35세 이후에 많이 발생합니다.

   35세 전에는 척추의 힘줄 인대가 탄력성이 풍부하므로 일상생활에서
아기를 안는다든지, 물건을 든다든지, 일로 인하여 오는 허리의 부담을
잘 견디고, 자세의 불량성으로 오는 부담도 척추의 힘줄 인대들이 튼튼
하여 잘 이겨냅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척추 허리의 관절들도 변성
을 일으켜 결과적으로 척추의 비후성 골관절염을 일으켜 허리가 더욱 약
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원인으로 인하여 약해진 허리에 무리한 스트레스
가 정신과 육체에 만성적, 반복적으로 가해짐으로 오는 요통이 만성
요추염좌입니다.

   이것은 엉치부분, 허리부분 등이 아픈 듯 뻐근하고 불편합니다. 조금 누
워서 쉬면 편해지고 움직이거나 앉아 있으면 불편함을 느낍니다.
만성 요추염좌의 치료는 첫째가 생활의 개선에 있습니다. X레이 사진을 찍
어도 정상이고, 약물치료를 받아도 효과는 잠시이고 또 재발하므로 만성
요추염좌 환자는 생활의 방법과 양상을 바꾸어야 합니다. 척추보호운동을
규칙적으로 하여 허리와 근육의 인대를 강화시켜야 하며 과잉된 체중도 줄
여야 합니다.

 제목 : 급성 요추염좌와 경추염좌의 예방

   교통사고의 증가로 목과 허리를 다치는 분이 많습니다. 차가 급정거
하거나 충돌하였을 때 갑자기 목과 허리가 심하게 앞으로 구부러지거나
심하게 뒤로 제껴지므로 하여 급성 요추염좌, 급성 경추염좌 등을 유발
합니다. 차를 타고 가는데 뒷쪽에서 다른 차가 받았을 때 허리와 목 뒤
를 단단히 받치고 있지 않던 사람은 급작스럽게 허리와 목이 과도하게 뒤
로 제껴짐으로 하여 척추의 여러 군데를 다칠 수가 있습니다.

   첫째, 척추뼈를 서로 붙이고 있는 앞쪽 인대가 찢어지는 경우,
   둘째, 척추뼈 사이의 쿠션인 디스크가 터져나올 수 있으며,
   셋째, 척추뼈의 일부가 깨어져 나오는 경우,
   넷째, 척추뼈의 관절이 서로 어긋나는 것이고,
   다섯째로 척추뼈의 신경이 나가는 구멍이 잘못되어 신경좌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차를 타고 갈 때는 항상 목과 허리를 뒤에 받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승용차의 경우, 의자시트가 낮은 분은 목을 받칠 수 있도록 따로 의
자 뒤에 받침대를 부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반 차량을 이용할 경우,
특히 택시일 경우에는 앞좌석보다 뒷좌석에 앉아 목과 머리를 기댈 수 있
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자기가 타고 가는 차가 다른 물체나 차를 받았
을 때 자신의 목을 갑자기 앞으로 심하게 구부리게 됩니다. 목이 갑자기
가슴쪽으로 심하게 굽어지면
   첫째, 목뼈 관절이 빠지므로 인하여 관절막에 염증이 올 수 있고,
   둘째, 관절낭이 찢어질 수 있으며,
   셋째, 목의 디스크가 뒷쪽으로 빠져 나올 수 있고,
   넷째, 목뼈의 뒷쪽 후방인대가 찢어질 수 있습니다.

   차를 탈 때, 목을 다치지 않도록 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은 좌석의 안
전벨트를 매고, 허리를 의자에 바싹 붙여앉고 바로 앉아서 정면을 똑바로
보고 앉아 바른 자세로 타고 가는 것입니다. 정면을 보고 있는 상태에서
교통사고를 당할 때보다 머리를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향하고 사고를 당할
때가 더욱 더 손상이 크다는 것은 연구결과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차를 탈
때 목과 허리를 다치기 쉬운데 그 다치는 것을 조금이라도 덜 다치게 하
기 위해서는 바른 자세로 정면을 바라보고 타고 가는 것이 보다 안전합니
다.

 제목 : 물리치료법-온천욕과 목욕

   한국, 중국, 일본 뿐만 아니라 그리스, 로마시대에서도 온천욕은 허리
의 건강에 좋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신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
로도 조화를 시켜줍니다.

   온천욕은 2일 혹은 3일 정도 되풀이해야 좋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1주
일에 두번 내지 세번 정도가 적합한데, 먼저 뜨거운 물에 3분, 나중에 찬
물에 1분을 하고 마칠 때는 반드시 뜨거운 물에 3분간 담구어 마칩니다.
냉수와 온수가 교대되면 혈관의 능동적 수축과 이완을 시켜 혈류를 증가시
킵니다. 또한 물 속에서 벽에 등을 기댄 채 다리를 움직이는 운동요법도
할 수 있습니다.

 제목 : 물리치료법-냉찜질과 온찜질

   냉찜질은 일반적으로 2-3일 시간내에 생긴 급성 요통 때 부풀어 오른
허리를 치료하는데 사용됩니다. 손상된 부위의 혈액순환을 감소시킴으로써
종창을 감소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냉찜질을 약 15분 이상 시행하
면 그 효과는 역전하기 시작합니다. 혈관은 다시 확장되고 혈액 순환은
늘어납니다. 따라서 온찜질을 하면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아파지는 환
자에게서만 냉찜질을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온찜질이 통증을 나아지게 합니다. 혈액순환이 증
가하여 피가 더 가면 따라서 동시에 산소 공급이 늘게 되어 근육의 긴장
이 감소합니다. 또한 열은 굵은 신경섬유를 자극하여 통증의 감지를 줄이
게 됩니다. 이때 주의할 점은 피부에 화상을 입을 위험성입니다. 처음에
는 뜨거운 감각을 느끼는데 오래 하다 보면 감각이 무디어져 화상을 입게
되는 수가 있기 때문에 환자 자신이 물리치료시 제일 유의해야 할 점입니
다.

 제목 : 물리치료법-초음파 치료(Ultra sound)

   초음파는 고주파 소리진동을 내보냅니다. 1초에 백만 사이클이 넘는
데, 이것은 심부 조직층에 직접 전파됩니다. 그 결과는 맛사지 효과입니
다. 초음파 치료의 효과는 큰 감각신경섬유를 자극하여 작은 감각신경으
로 전달되는 통증이 더 이상 감지될 수 없게 하는 것입니다.

   초음파는 심부의 흉터조직들을 해소하고 새로운 결합조직의 세포들을
자극합니다. 세포의 새로운 형성은 대칭적으로 균형있게 생성되는데, 탄
력이 있게 되며 이 새로운 조직들을 보다 더 유연하게 해줍니다. 또한
초음파는 화학적으로 각 세포막의 투과성을 변화시킵니다. 투과성이 증
가됨으로써 세포의 노폐물이 사라지도록 하며 세포의 영양소는 보다 효
과적으로 흡수케 합니다. 만약 그 부위가 염증 상태라면 더 빨리 치유되
게끔 해줍니다.

 제목 : 물리치료법-경피적 전기자극요법(TENS)

   동양에서는 침술을 오래전부터 시행하여 신경자극을 주었으며 로마제
국 시절에도 신경 전기자극요법은 있었습니다. 1960년대 말에 현대적인
전기자극요법을 외과적으로 직접 아픈 허리에 전극을 심음으로써 시행되
었는데, 이 결과 수술 않고도 피부를 통하여 전기를 보낼 수 있는 텐스
(TENS)라는 기계를 만들어내게 되었습니다.

   텐스기계는 피부에 겔을 바르고 붙인 전극을 통하여 신경에다 전류를
보냅니다. 이 효과는 침술에서 피부를 뚫고 침이 들어가는 것과 같으나,
단지 침술처럼 침이 몸속으로 들어가지 않고도 신경 자극을 시키도록 전
기가 들어가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텐스를 하면 만성 요통환자의 1/3에
서 치유가 되는 것을 닥터 존 보니카는 보고하였습니다. 이는 침술의 효
과와 거의 같은 성격입니다.

 제목 : 물리치료법-간섭파 치료법

   네 개의 전극이 X형으로 배열된 패드를 척추에 부착하게 되는데, 두개
는 다른 두개와 각각 다른 주파수로 연결됩니다. 이 통증이 있는 부위를
서로 넘어갈 때  간섭 은 이루어집니다. 이 간섭파는 텐스(경피적 신경자
극 전기치료법)기계와 거의 같은 원리로 통증을 완화시켜 줍니다. 신경계
를 자극하여 종창을 감소시키므로, 맛사지 효과와 동통완화 효과를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아주 좋은 치료법입니다.

 제목 : 물리치료법-견인술

   요추간판탈출증에서 보통 15분 내지 20분간 계속 견인을 지속합니다.
척추변성질환인 경우에는 간헐적 견인이 보다 더 효과적으로, 15초간 견인
하고 5초간 이완시키고 하는 식으로 15분간 되풀이합니다. 허리디스크병,
척추관협착증, 자세불량, 만성요추염좌 등에 많이 사용됩니다.

   골반 허리견인술의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경증의 디스크 돌출에서는 음압의 조작으로 탈출된 디스크 수
         핵이 들어가는 수가 있습니다.
   둘째, 골반견인술로 요추의 만곡이 감소되어 허리의 올바른 자세를 유
         도시킴으로써 요통을 감소시킵니다.

 제목 : 통증을 줄인다-맛사지법

   맛사지는 수축된 근육을 이완시켜 줍니다. 이완된 근육에는 보다 더
혈액순환이 증가되고, 증가된 혈액순환은 유산을 포함한 노폐물들은 제
거시켜 줍니다. 수축된 허리근육에는 유산이 증가되고 유산은 요통을 일
으킨다는 것은 과학적인 사실입니다. 수주간 맛사지를 계속하면 근육의
경축이 완전히 풀려서 허리가 계속 부드러워질 수 있으며, 이 맛사지를
받는 동안 올바른 자세와 척추보호운동을 통해 요통을 더욱 줄일 수 있
습니다.

   ♣ 제 1차 맛사지(15분간)
     우선 대상자는 팔을 굽혀 테이블 위에 얹고 이마는 그 팔에 얹고 의
     자에 허리를 쭉 뒤로 뺀채로 엎드리며 앉습니다. 먼저 2분간 허리
     전체에 손을 얹고 미끄러지지 않고 옮기면서 손을 댑니다. 그 다음
     피부에 가볍게 원을 그리며 2분간 스치면서 문지릅니다. 그 다음은
     손을 허리에 꼭 맞도록 두고 엄지로 척추 중간의 극돌기 양 옆을 누
     르면서 올라갑니다. 손은 천추무부에서 흉추부로 미끄러져 올리고
     열번 내지 열두번 반복합니다.

   ♣ 제 2차 맛사지(15분간)
     배에는 얇은 베개같은 것을 놓고 다리 밑에는 두터운 담요같은 것
     을 받친 후에 대상자는 엎드려 있습니다. 시술자는 허리에 손을 지
     긋이 꼭 맞게 댑니다. 옮기며 딴 곳에 손을 대지만 미끄러지지는 않
     도록 합니다. 허리부위를 둥글게 회전하면서 양 손바닥으로 가볍게
     문지르며, 손은 엉치 위에서 흉추부로 가듯이 회전합니다. 그 다음
     허리 전체와 엉치부를 반죽하듯이 으깨듯이 맛사지하고, 지긋이 손
     바닥을 엉덩이, 허리, 등에 대고 누릅니다. 다음 손을 등에 딱 대고,
     엄지는 잔등의 중앙부위의 홈 바로 옆(가시돌기 옆)을 지긋이 누르
     며 허리 아래에서부터 잔등쪽으로 미끄러지게 합니다. 이 동작을 열
     번에서 열두번 반복합니다.

 제목 : 관혈적 척추수술외 디스크병 치료방법

   보존적인 온갖 치료가 효과가 없을 때 그래도 수술을 받기 전에 시도
해 볼만한 방법은 없을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이 디스크내 주사요법
(화학적 디스크수핵용해술)과 경피적 디스크수핵자동흡입술(자동절제술)
입니다. 이 두가지 방법은 파열되어 이동된 디스크병이 아니라면 치료성
적이 좋습니다.

   ♣ 디스크 내 키모파파인 주사요법
      디스크내에 키모파파인이라는 단백질 용해효소제를 주사하여
      요추간판탈출증을 일으킨 수핵을 용해시키는 방법으로 관혈적 수
      술이 아니고 방법이 간단하며 소요시간이 짧은 장점이 있습니다.
      성공률은 평균 80% 정도이며 0.5% 이하에서 과민성 알레르기 반응
      이 일어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 경피적 디스크자동흡입술
      피부를 통하여 직경 2 내지 3mm의 뉴클레오톰이란 특수바늘을
      디스크내에 삽입하여 수핵을 바늘 내에서 안전하게 잘게 자르고 잘
      라진 수핵조각을 진공펌프로 빼내는 안전한 방법이 경피적
      디스크수핵자동흡입술입니다. 관혈적 수술이 아니고 시술이 간단
      하고 소요시간이 짧은 장점이 있습니다. 과민상 반응이 전혀 없는
      안전한 방법으로 치료의 성공률은 평균 77.2%이나, 적응증이 한정
      되어 있는 단점이 있습니다.

 제목 : 디스크내 키모파파인 주사요법

   키모파파인은 단백질 용해 효소제로, 1950년대 말에 실험적으로 사용
된 이래로 수술않고도 디스크를 치료할 수 있다는 장점때문에 널리 이용
되고 있는 치료법입니다. 디스크에서 탈출된 수핵을 주로 구성하고 있는
것은 뮤코폴리사카라이드와 단백질의 복합체 즉 프로테오글라이칸인데,
단백질 용해효소인 키모파파인이 이를 용해시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시
행된 실험 결과에 의하면 키모파파인이 디스크내의 수핵만 녹이며 디스크
의 섬유테, 골단연골이나 신경수막, 척수신경 및 척추뼈에는 아무런 영향
을 미치지 않습니다. 경막이나 추간판내나 복강내 주입시에도 위험은 없
으며 연구에 따르면 추간판 폭의 감소는 주입 1주일 내에 변화가 심하였
고, 이 변화는 4주까지도 지속되었으며 , 디스크내 주사요법 후 증상의
호전은 대개 4주 내에 일어납니다. 디스크내 주사요법을 받은 후의 회복
경과를 시간별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⑴ 주사맞은 직후(0-12시간)
     -주사맞은 직후 요통이 증가될 수 있으나 대부분은 참을만 합니다.
      주사맞은 첫 1일 내지 2일 동안은 허리가 아프지만, 이것은 시간
      이 경과하면 좋아집니다.
     -주사맞은 수시간내에 침대에서 나와 걸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
      수는 금방 못 걸을 수도 있는데 가능한 한 빨리 움직여도 괜찮습
      니다.
     -걸을 때는 허리 콜셋을 차는 것이 좋습니다.
     -다리의 통증, 즉 좌골신경통은 즉시 좋아지는 수가 많습니다. 종
      아리에 경련이 있는 듯한 느낌이나 엉치가 저리는 것 등은 수일 혹
      은 수주 후에 없어집니다. 발의 이상감각은 수주 동안 계속될 것입
      니다.

   ⑵ 주사맞은 후 12시간에서 7일까지
     -1주일 지나면 요통은 별로 심하지 않게 됩니다.
     -대부분의 경우 24시간 내에 콜셋을 차고 걸을 수 있으며 7일 후에
      퇴원해도 됩니다.
     -더 심한 좌골신경통이 첫 수일 내에 생길 수 있습니다. 최근의 연
      구에서 이러한 환자들도 기다리면 대부분 호전되었기 때문에 수술
      을 즉시 결정하면 안됩니다.

   ⑶ 주사맞은 후 1개월 이상 될 때
    -한달이 지나면 요통은 거의 대부분 사라져 버립니다. 따라서 중노
     동 외에는 대부분 직장과 학교에 나가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점차
     서서히 활동을 증가시켜야 합니다.
    -3개월이 지나면 허리의 불편은 계속 좋아져 정상에 가까와집니다.
    -1개월이 되면 다리의 통증이 거의 없어집니다.
    -요약하면 좌골신경통은 수일 내지 수주 사이에 사라지고 요통은 늦
     어도 수주 내지 수개월 내에 좋아집니다. 따라서 주사맞고 적어도
     1개월 전에 다리의 통증이 낫지 않는다고 수술을 섣불리 결정하는
     것은 좋지않습니다. 그리고 요통은 더 오래 가므로 3개월 지날 때
     까지는 그것때문에 수술을 결정해서는 안됩니다.

 제목 : 디스크내 키모파파인 주사요법-적응, 비적응대상

   키모파파인 주사요법의 적응은 요추간판탈출증으로 요추신경근이 압
박당하고 있는 경우입니다. 즉 다음과 같은 5가지의 조건에 맞는 환자만
이 수술을 하지 않고 이 주사를 맞을 수 있습니다.

   ♣ 적응 대상
     ⑴ 엉덩이 통증과 다리의 통증이 요통보다 훨씬 더 불편한 사람
     ⑵ 디스크가 탈출되어 눌려진 신경 분포에 딱 맞아 떨어지는 부위
        가 저리거나 남의 살같은 이상감각이 있는 사람
     ⑶ 바로 누워서 무릎을 편 채 다리를 들어올릴 수 있는 각도가 정
        상인보다 50% 이하 밖에 안되는 사람
     ⑷ 건반사 감소, 발가락이나 발등 또는 발목 등의 마비, 근육약화,
        피부감각의 저하 등의 신경학적 증후 중 두가지 증후가 있는 사
        람
     ⑸ 수용성 요추특수조영술이나 요추간판조영술에 이상이 있거나 혹
        은 요추 컴퓨터촬영에서 확진된 사람

   반면에 디스크내 주사요법을 시술받을 수 없는 경우가 있는데, 다음
과 같습니다.

   ♣ 비적응 대상
     ⑴ 상기 다섯가지 적응증에 해당되어도 사전에 이 약물이 체질에 맞
        는지 피부반응검사를 하게 되는데, 이 키모파파인 피부반응검사
        에서 벌겋게 알레르기반응을 보이는 경우에는 키모파파인 주사요
        법을 시행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분들은 이미 그 약에
        대한 과민반응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에는 관혈적 수
        술을 받지 않고 디스크수핵자동흡입술(뉴클레오토미)을 하면 됩
        니다.
     ⑵ 피부반응검사에서 통과되더라도, 디스크내 주사요법을 하기 직
        전에 요추간판조영술을 반드시 하게 되는데, 이때 조영제가
        디스크내에 정체하지 못하고 새어나오는 정도가 심한 경우에도
        주사요법을 시행할 수가 없습니다.
     ⑶ 척추관협착증, 척추전방전위증, 척추분리증 등과 같이 현저한 뼈
        의 변성이 신경통의 주 원인일 경우
     ⑷ 디스크내에서 탈출 수핵과 섬유소가 조각이 나서 신경관 속으로
        들어가 버린 경우
     ⑸ 디스크탈출증이 너무 오래 되어서 석회가 심하게 침착된 경우
     위의 다섯가지 경우에는 수술요법이 시행되어야만 합니다.

 제목 : 디스크내 키모파파인 주사요법-장점과 합병증

   ♣ 장점
     -시술이 간단하고 안전합니다.
     -성공률이 평균 80%나 됩니다.
     -수술보다도 시술 후의 조리 및 회복 관리가 보다 쉽기 때문입니다.
     -피부나 척수경막 외에 흉터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디스크내 주사요법을 받고 난 뒤 혹시 증상이 낫지 않는다고 하더
      라도, 그로 인해 수술요법을 실시하는데 아무런 손해가 없을 뿐 아
      니라 보다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전신마취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 부작용과 합병증
     -디스크내 키모파파인 주사요법을 받은 환자의 0.5%에서 과민반응
      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극히 드물지만 신경손상이 일어날 수 있는데 이것은 척수경막하에
      주사약이 잘못 들어가면 발생됩니다. 따라서 키모파파인 주사시에
      는 사전에 요추간판조영술을 하여 디스크 탈출이 척추경막내로 통
      과하는지의 여부를 꼭 확인해야 합니다.
     -척추간판염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발생하면 수개월 동안 요통
      이 계속되나, 이것도 치료되는 것입니다.
     -극히 일부는 오심, 구토, 장 운동장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가장 염려되는 합병증은 디스크 사이가 좁아지는 것으로 나중에
      척추관협착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목 : 내시경 레이저주사요법

   1990년부터 구미의 척추의사들이 레이저를 이용하여 디스크병을 치료
하기 시작하였는데 처음에는 내시경을 이용하여 사용되었으나 디스크내
조사시 동반되는 열로 인해 주변조직 특히 신경조직의 손상이 일어날 가
능성이 있었습니다. 이어 1991년 10월 물에 쉽게 흡수되어 광 에너지가
0.5mm 이내의 조직에서 흡수되어 주변조직의 열손상을 줄일 수 있는 홀
미움레이저가 디스크 치료에 이용되기 시작하여 디스크병으로 고생하는
많은 환자들에게 전신마취하에 수술하지 않고 간단한 부분마취라도 쉽게
치료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내시경 레이저 시술기구는 직경 1.7mm의 가는 관속에 식별장치, 조명
장치, 레이저전달장치, 조정장치, 흡입관류장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국소마취하에 내시경 레이저 시술기구를 디스크 수핵 내 삽입하여 수핵
이 레이저로 제거되는 과정, 제거된 수핵량, 돌출된 디스크 수핵을 환자
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관찰하면서 수술합니다. 젊은 연령층의 환자들
은 디스크내 압력이 높고 수핵을 싸고 있는 섬유륜의 탄력성이 그대로 유
지되고 있으며 섬유륜 균열에 따른 디스크 파열의 발생 빈도가 낮고 또한
관절면 비후, 인대 비후 및 골화 등 디스크 주변조직의 퇴행성 변화가 적
기 때문에 내시경 레이저 수술 후 성공률이 높습니다. 또한 퇴행성 변화
나 척추관협착증이 없는 환자에서 높은 성공률을 보입니다.

   시술방법은 전신마취를 하지 않고 국소마취하여 허리 측방에서 내시경
레이저 시술기구를 디스크 내부로 삽입한 후 내시경을 통하여 내시경을
통하여 디스크 내부를 환자와 함께 관찰하면서 레이저 광선을 발사하여
디스크 수핵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조정장치로 접근하기 힘든 부위까지
접근하여 디스크내의 압력을 감압시킵니다. 그리고 흡입 관류장치를 통
해 식염수로 디스크 내부를 세척하면서 안전하게 디스크 수핵을 제거하
면 시술이 진행되면서 다리의 통증이 없어짐을 환자 자신이 느낄 수 있
습니다.

   적응대상으로는 다리 통증이 더 심한 경우와 계속 아픈 경우, 뼈뒤로
이동된 후종인대내의 수핵탈출, 경미한 협착증만 시도 가능합니다. 성공
률은 약 90%이며 입원기간은 하루면 됩니다. 장점은 큰 크기도 가능하며
적용범위가 넓고 섬유테에 구멍이 뚫려 재발율이 낮으며 많은 양의 수핵
이 기화되어 회복이 빠릅니다. 단점이라면 후종인대 밖으로 파열된 것은
효과가 없다는 것입니다.

 제목 : 내시경 레이저 같은 경피적 주사 후 규칙

   내시경 레이저 주사요법, 디스크 자동흡입술 혹은 키모파파인 주사요
법 후의 활동기준은 허리의 통증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사람마다 다르
게 됩니다. 걷기 같은 활동은 허리 통증을 없애는데 도움을 줍니다. 그러
나 만약 활동을 증가시키다가 다리에 통증이 증가한다든지, 요통이 증가
하면 활동을 증가하고 누워서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첫 1주간은 아침에 늦게 일어나십시오. 누워있는 것이 좋으나 오전에
움직였다면 오후에는 반드시 누워서 계속적인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초
저녁에 일찍 잠자리에 들며, 차를 타고 이동하여도 좋으나 직접 운전을
해서는 안됩니다. 앉고 숙이는 것은 자제해야 하는데, 15분 이상 앉지 마
십시요. 서서 있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리고 일어날 때마다 허리를 뒤로
천천히 제껴주면 좋습니다. 어떠한 무거운 물건도 들어서는 안되고, 계단
은 걸어도 되지만 조심해야 합니다. 샤워를 하거나 목욕탕에 들어가도 되
나 너무 오래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누워서 허리를 뒤로 제끼거나 다
리들기, 윗몸일으키기 같은 초급단계의 척추운동을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
다.

   2주째는 첫째주와 같이 생활을 하는데, 그러나 이때부터는 짧은 거리
를 직접 운전을 하여도 됩니다. 서거나 걷거나 하는 활동은 점차 증가시
켜도 괜찮은데 만약 피곤하거나 허리와 다리에 통증이 생기면 무리했다는
신호이므로 누워서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50분 이상 앉아 있지는 말고,
일어나면 허리를 뒤로 제껴주십시오. 가벼운 수영은 해도 되지만, 다른
운동은 해서는 안됩니다.

   3주째에서 6주까지는 2주간의 안정기간이 지났으므로 가벼운 사무일
이나 공부는 시작해도 됩니다. 그러나 되풀이 하여 허리를 굽히고 펴야
하는 일이나 허리를 돌리는 일, 물건을 드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리
고 이때부터는 제 2단계의 척추운동을 시작하도록 합니다. 사무실 근무
나 가벼운 부엌일만 하여야 하고 학생은 학교에서 수업만 듣습니다.

   6주후는 척추재활운동을 시작하고 제 3단계 이상의 척추운동을 시작
합니다. 특히 누워서 윗몸일으키기, 양 무릎 가슴으로 끌어당기기 및 골
반경사가 중요합니다. 매일 10분간만 하면 허리가 튼튼해져 요통의 재발
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8주후는 조금 더 힘든 일을 시작해도 됩니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허리를 돌리는 일, 20Kg 이상을 들어 올리는 일, 10Kg
이상을 팔에 안는 일은 삼가해야 합니다.

   12주후는 힘든 일에 다시 종사해도 되나 허리에 지나치게 무리가 가는
일, 즉 바닥에서 무거운 돌을 들어올리는 일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
부분의 환자들은 3개월이 지나면 모든 일상적인 활동을 지장없이 할 수
있습니다. 격렬한 운동이나 힘든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은 사전에 메덱스를
이용한 허리강화운동을 12주간 하면 좋습니다. 6개월 후면 모든 운동을
할 수 있는데, 단 역도는 너무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는 운동이므로 조심
해야 하며 무게를 제한하는게 좋습니다. 그외에 어떤 운동이든 할 수 있
으나 허리에 부담이 없는 종류가 좋겠습니다. 그 이후에는 특별히 병원을
방문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3개월 이내에 가끔 요통을 느끼는 분이
있는데 걱정이 된다면 언제든지 병원을 방문하여 물리치료나 상담을 받
으십시오.

 제목 : 요추간판탈출증의 수술요법

   -보존요법을 4주 내지 6주간 시행을 해도 낫지 않거나, 디스크내 주사
    요법(디스크수핵화학용해술)이나 디스크수핵자동흡입술(뉴클레오토미)
    을 시행하고 4주 내지 6주간 기다려 보았으나 낫지 않을 때는 수술요
    법을 시행할 것을 고려해 보아야 합니다. 수술요법의 성공률은 평균
    95%이므로 치료법 중에 가장 확률이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만약 마미신경을 압박하는 대량 중심성 디스크탈출일 경우에는 양 다
    리와 대소변을 조절하는 괄약근의 마비가 일어나므로 응급수술을 요
    하는데 이때 신경손상을 일으키지 않고 숫띵을 하는 방법은 탈출된
    디스크간의 아래, 위부분의 후궁을 두 곳 모두 절제한 후에 디스크를
    제거해내야 합니다.

   -디스크내 수핵이 파편화되어 척추관 속으로 이동한 경우에도 수술만
    이 유일한 치료법입니다.

   -디스크탈출은 대부분 측면 탈출이므로 마비가 되는 곳은 발가락이나
    발목입니다. 만약 발목을 위로 제끼는 힘이 약화되어 족하수가 되면
    수술해야 고칠 수 있습니다.

   -만약 요추간판탈출증이 있으면서 골극의 형성이나 황색 인대비후 및
    골화증, 관절비후증이 있으면 다른 방법보다는 수술요법을 통하여 내
    측 관절면 부분절제술, 척추관확장술(후궁절제술) 등을 함께 해야 치
    료가 됩니다.

   -만약 척추의 불안정이 있어 요통을 심하게 일으키거나 척추뼈의 탈구
    가 있으면 디스크제거술 때 혹은 2차 수술로 척추뼈 전방 혹은 후방
    으로 융합술을 시행해야 합니다.

 제목 : 절개수술

   칼로 피부를 절개하고 근육을 박리한 뒤 신경을 둘러싸고 있는 뼈의
일부인 척추후궁판을 제거한 후에 신경을 잡아당겨 탈출된 디스크 수핵
을 덜어내거나 레이저로 기화시키는 관혈적 개방 수술법은 드물지만 신
경유착 같은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고 허리를 약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
다. 그래서 디스크병에 걸리면 보통 약물치료, 물리치료, 운동요법, 교
정요법, 침술 같은 보존요법을 대부분 하고 있으며 실제 그 방법으로 좋
아진 사람들도 많지만 상당수가 아파도 견디며 지내고 있습니다. 본 병
원 척추건강연구소가 2000명의 디스크병 환자들을 추적한 바 그중 8.1%
만의 환자들이 수술요법을 받았고 90%이상의 디스크병 환자들은 운동요
법이나 물리치료법 혹은 한방치료를 받거나 민간요법을 사용하였습니다.

   3개월 이상 척추신경이 탈출된 디스크수핵으로 인해 압박될 경우, 보
존요법을 3개월까지 하여도 디스크병이 낫지 않는 경우에는 근본적인 치
료로 어떤 수술법을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탈출된 디스크 수핵
에 의하여 3개월 이상 척수신경근이 압박당하면 설사 그 후에 낫는다 하
더라도 신경에 흉터가 생겨 그 후 너무나 오랫동안 수시로 다리가 시리고
저린 이상감각이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한번 척수신경근 내부에 돌이킬
수 없는 흉터가 생기면 그 후에 저절로 자연치유된 경우나 수개월동안
낫지 않아 뒤늦게 수술을 잘 받아 통증과 운동마비는 없어진 경우라 하
더라도 뒷끝이 이상한 감각으로 흔히 남기 때문입니다.

 제목 : 최소상처 혹은 경피적 디스크 수술

   관혈적 수술방법의 합병증이나 후유증을 환자들이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 전통적 수술법을 보완하기 위해 칼로 절개하지 않는 비관혈적 수술법
이 여러가지로 개발되었는데, 보통 물리치료, 운동요법 같은 보존요법을
4주내지 6주를 하여도 낫지 않으면 먼저 이 비관혈적 수술법을 고려해야
합니다. 늦어도 3개월 이내에는 해야 하는데, 허리에 비교적 상처를 많이
내어 오래 입원을 해야 하고 만약 뼈를 붙이는 골융합술을 동시에 시행할
경우에는 때로 수혈도 해야 하는 관혈적 개방 수술법에 비하여 새로 개발
된 칼로 절개하지 않는 비관혈적 수술법은 전신마취를 하지 않고 근육이
나 뼈, 신경을 건드리지 않는 방법으로  최소상처 수술법 이라 부릅니다.
또한 피부를 통하여 가는 바늘이나 2.5내지 6mm 정도의 직경을 가진 관을
주사처럼 디스크 속으로 밀어넣는 방법이므로  경피적 디스크 절제술 이
라고도 불립니다.

   최소상처 혹은 경피적 수술법의 종류는 대개 5가지로 나눕니다.
   ⑴ 1985년 부터 디스크 수핵용해술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 방법에서
      극히 드문 부작용으로 있을 수도 있는 알레르기성 쇼크나 신경마비
      를 염려하는 의사들은 다른 방법을 모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⑵ 1987년 부터는 물리적인 방법으로 디스크 수핵을 잘게 썰어서 자동
      으로 흡입하는 디스크 자동흡입술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성공률이
      키모파파인 주사요법 보다 낮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⑶ 1991년 부터는 내시경을 이용하여 상한 디스크 수핵을 보다 정확하
      게 집게로 집어내는 내시경 디스크 절제술이 시행되고 있는데 바늘
      이 디스크 자동흡입술에 사용되는 것보다 굵은 단점이 있으나, 직
      접 탈출된 디스크 수핵을 잡아당겨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⑷ 1992년 부터는 레이저를 이용하여 탈출된 디스크 수핵을 연기로 기
      화시키는 레이저 디스크 감압술이 시행되고 있는데, 케이티피 레이
      저, 엔디야그 레이저도 사용되고 있지만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인
      레이저는 홀뮴야그 레이저라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이 방법은
      디스크의 탈출 크기가 작아야 하고 디스크 내부의 압력이 높은 경
      우에만 한정되어 사용함으로써 적응범위가 아주 좁다는 단점이 있
      으나 바늘이 가늘고 시술이 아주 간단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⑸ 1992년 부터 내시경 디스크 절제술과 레이저 디스크 감압술을 병용
      하는 내시경 레이저 디스크 수술법도 시술되고 있습니다. 이 병용
      수술법은 시술 시간이 길고 경비가 보다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으
      나, 섬유테 바깥으로 디스크 수핵이 빠져 나간 경우나 보다 심한
      후방종렬 인대 밑의 디스크 탈출증까지도 고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제목 : 경피적 디스크 수술의 효과와 단점

   경피적 디스크 절제술 즉 최소상처 디스크 수술법은 9가지 잇점이 있
습니다.

   ⑴ 전신마취를 하지 않고 국소마취를 하기 때문에 전신마취의 위험성
      을 염려하는 노약자들도 시술이 가능합니다.
   ⑵ 피부나 척추조직들에 흉터가 생기지 않으므로 미용상 좋습니다.
   ⑶ 척추를 둘러싸서 척추를 지지해주는 조직들인 근육들과 인대들에게
      손상을 거의 주지 않으므로 요통이 덜 합니다.
   ⑷ 척추후궁판, 척추관절 같은 뼈를 전혀 건드리지 않고그대로 보존함
      으로 척추가 불안정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⑸ 척추신경관을 침범하지 않고 신경을 건드리지 않으므로 신경유착을
      피할 수 있어 그로 인한 다리시림과 저림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⑹ 근육, 뼈 그리고 척수신경의 경막 바깥에서의 출혈이 없으므로 수
      혈이 전혀 필요하지 않아 에이즈나 간염같은 수혈로 인한 부작용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⑺ 척추디스크수핵을 둘러싸고 있는 섬유테 중에서 신경관의 바깥부위
      에 구멍을 내어 신경관 속으로 디스크 수핵이 다시 빠져나가는 것
      을 미연에 방지하므로, 일단 나은 환자에서의 디스크병의 재발율이
      낮습니다.
   ⑻ 시술받은 당일이나 그후 1일 정도 밖에 입원하지 않으므로 전체 지
      출경비나 시간이 오히려 경제적입니다.
   ⑼ 대개는 1주일 이내에 걸어다닐 정도로 회복기간이 짧아 사회복귀가
      빠르므로 생산성도 높습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수술법들도 한계가 있습니다. 독일의 후글랜드박사
의 보고에 의하면 수술로 고쳐야 될 정도의 디스크병 환자의 약 50%까지
경피적 디스크 수술법이 적용되었으나 베를린대학의 마이어교수의 보고로
는 수술을 받아야 될 총 환자의 10내지 15%에서만 경피적 디스크 수술법
이 적용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들병원의 통계에 의하면 수술을 받아
야 될 정도의 총 디스크 환자의 5%만이 단순 레이저 디스크 절제술에 효
과를 보일 적응증이 되었고 15%의 디스크 환자에게만 내시경 혹은 관절경
디스크절제술이 적용될 수 있었고 총 디스크 환자의 25%가 내시경 레이저
병용수술법 적응증이 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시술법으로 효과를 볼 수 없는 경우 즉 적응증이 되지 않는
경우는, 디스크를 덮고 있는 후방종렬인대에 구멍이 나 디스크 수핵이 신
경 안으로 파열되어 들어간 경우로 이때는 시술을 해도 별 효과가 없습니
다. 또 척추관협착증, 척추분리증, 척추골전방전위증 같이 뼈에 이상이 동
반된 경우에도 효과를 볼 수 없고, 탈출된 디스크 수핵이 인대 밑에 들어
있어 사진 상 적응증으로 보여도 디스크 수핵이 변성이 되어 물렁물렁하지
않고 탈수된 경우에도 효과를 보지 못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제목 : 최소상처 디스크 수술법의 자가진단

   자기공명영상술이나 컴퓨터 단층촬영을 하여 탈출된 디스크 수핵이 후
방종렬인대나 섬유테로 싸여 있지 않은 경우에는 최소상처 경피적 수술법
으로 효과를 보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그래서 일단 사진 상에서 탈출된
디스크 수핵이 섬유테나 인대에 의해 내포되어 있어야 적응증이 될 수 있
습니다. 그러나 의사가 그것을 정확히 진단하였다 하더라도 또 다른 시험
검사를 해보지 않고는 경피적 디스크 절제술의 성공률이 낮아집니다. 세
계적으로 여러 의사들의 보고에 의하면 성공률이 50%에서 85%로 다양하나
평균 70내지 75%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다음의 시험검사법 3가지를 한 후
에 적용여부를 사전에 결정하면 수술 성공률이 93%로 높아집니다. 따라서
디스크의 상태를 보여주는 사진만을 가지고 최소상처 경피적 수술법의 적
용여부를 결정지어서는 안됩니다.

   다음의 세가지 검사 중 어느 한가지를 선택하여 검사해 보았을 때
요통과 좌골신경통이 일시적으로 없어졌다가 검사를 마치면 도루 아파진
다면 그것은 구태여 전신마취를 하여 칼로 절개하고 뼈의 일부를 들추어
내는 관혈적 개방수술을 할 필요가 없이 간단하고 안전한
최소상처 경피적 디스크 수술법에 적응증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첫째는 프랑스의 몬테로 박사가 시도한  닥터 몬테로 검사 로 환자의
가족, 친지나 의료인이 환자의 두 팔목을 잡고 환자를 등에 업고 올려보
는 검사입니다. 둘째는 이상호박사가 처음 시도한  닥터 리 검사 로 환자
의 등뒤에서 환자의 가슴을 안고 위로 들어올리는 검사인데, 상기의 두
검사방법은 집에서 가족들이 해볼 수 있는 자가진단법으로, 만약 이 검사
들에서 환자의 다리에 있던 통증이나 저림, 당김이 일시적으로 좋아지거
나 없어지면 그것은 디스크 수핵이 수분이 많아 물렁하다는 것을 나타내
는 것이므로 간단한 경피적 시술로도 디스크병은 충분히 완치될 수 있다
는 의미입니다. 상기의 두 검사를 해볼 때 아무 반응이 없이 계속 아프
면, 그것은 사진 상 탈출된 디스크 수핵이 인대 내로만 국한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경피적 시술에는 효과 없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칼로 절개하는
관혈적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셋째는 이스라엘 스탑홀츠박사가 처음 시도한 것으로 버트트랙이란 윗
몸견인기구를 이용하는 검사이므로 병원에서만 가능한 검사입니다. 특히
환자가 무겁거나 큰 분인 경우에는 사람이 직접 들어 올릴수가 없으므로
버트트랙이란 윗몸견인기구를 사용해야 합니다. 골반 주위에 지주를 고정
한 후에 가슴부위를 지렛대를 이용하여 위로 당김으로써 물렁물렁한
디스크인 경우에는 다리가 이 기구를 차고 있는 동안에는 아파지지 않으
나 풀면 도로 아파지게 됩니다. 이런 경우에는 굳이 절개수술이 필요없이
내시경 레이저 병용시술법 같은 경피적 수술법으로도 충분히 좋아집니다.

   지난 1년간 100명의 환자에게 이 세가지 검사를 하여본바 반응이 양성
인 경우에는 경피적 내시경 레이저 병용수술법의 성공률이 93% 이상이었으
나 그 반응이 음성인 경우에는 경피적 수술법의 성공률이 75%정도 임을
확인하였습니다.

 제목 : 수술 후 조리

   아직 많은 사람들이 디스크 수술 후에는 방에서 오래동안 움직이지 않
고 누워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침상안정은 3일이상 하면 오히려
좋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합병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오래 누워있으면 허리를 받쳐주는 근육이 약해져 버리기 때문
         에 하루에 근육의 약 1% 내지 1.5%가 위축되어 버립니다. 그래
         서 디스크병이 잘 나아도 근육이 약해 요통이 계속 될 수 있습
         니다.
   둘째, 침대에 계속 누워있으면 혈액 순환의 장애가 생깁니다. 만약 10
         일간 누워있으면 약 15%의 심폐기능이 약해져 혈액 순환의 혼란
         이 생겨 혈전증 같은 것도 올 수 있습니다.
   셋째, 디스크 내에는 혈관이 없어 영양이 피를 통하여 들어가지 않고
         움직임에 의하여 디스크 내부로 영양이 확산되어 들어가는데,
         누워만 있으면 재생에 필요한 영양분이 재대로 공급될 수 없습
         니다.
   넷째, 오래 누워 있으면 뼈의 칼슘 같은 전해질이 빠져나가 골다공증
         을 비롯한 요도결석 등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디스크 수술 후에도 점차 활동량을 늘려 2주후에는 본격적인
허리강화운동에 들어가도록 합니다.

 제목 : 획기적 치료법-경피적 경추디스크 수술

   칼로 절개하여 목디스크를 수술하는 관혈적 수술법은 척추강을 직접
열어 수술하는 방법이므로 간혹 신경유착, 경막 외부출혈, 신경손상 혹은
신경허혈증 같은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합병증을 피하기 위하여 1981년 일본의 타지마박사와 1989년
프랑스의 가스땅비드박사는 칼로 디스크를 절개하지 않고 가는 바늘을 앞
쪽 목에서 넣어 집게로 상한 디스크 수핵을 집어내는 방법을 사용했고,
1989년 프랑스의 테론박사는 경피적 목디스크 자동흡입술을, 1991년 독일
의 지베르트박사는 가는 바늘을 통하여 레이저를 쏘는 방법을 개발하였습
니다. 그러나 이들 세가지 방법이 경추간판탈출증의 원인인 상한 디스크
수핵을 충분히 제거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경피적 디스크 제거술과
경피적 레이저 디스크 수술을 병용하는 새로운 시술법을 개발하게 되었습
니다.

   방법은 우선 환자를 전신마취를 하지 않고 침대에 바로 눕힙니다. 앞
쪽 목의 주름살부위에 약 0.5cm 정도의 피부를 절개하고 반대편으로 민
다음 목 디스크 안쪽으로 아주 가는 바늘을 먼저 넣습니다. 그 가는 바늘
을 따라 약 3mm 굵기의 가는 관을 디스크 속에 넣은 뒤에 집게를 사용하
여 탈출된 디스크 수핵을 집어냅니다. 다음에 내시경이 달린 홀뮴레이저
를 그 관속으로 넣어 후방의 상한 디스크 수핵을 증발시키면서 오그라들
게 합니다.

   이 최소상처 목디스크 수술법은 전통적인 관혈적 절개술에 비하여 다
음과 같은 장점이 있습니다.
   - 신경경막 외부출혈이나 신경주위 섬유유착이 생기지 않습니다.
   - 디스크 수핵의 일부만 제거하므로 골융합술이 필요없습니다.
   - 척추불안정이 오지 않습니다.
   - 경추디스크의 앞쪽에 작은 창문을 내어 주므로 신경강속으로 디스크
     수핵이 탈출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 수술시간이 짧고 입원기간이 짧으며 일상생활과 사회복귀 시간이 훨
     씬 짧습니다.

 제목 : 획기적 치료법-현미경 레이저 디스크 수술

   척추에 최소상처만을 내어 정상조직을 최대한 으로 보존하는 최소상처
척추디스크수술이 가능해졌는데, 이는 고밀도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고 수
술부위에 0.15내지 0.3mm 굵기의 가는 광선을 좁은 공간으로도 쏠 수 있는
컴퓨터화된 탄산가스 레이저가 개발되었기 때문이며, 동시에 혈관, 척추조직
, 척추연골판의 손상없이 디스크의 내압을 감압시킬 수 있는 디스크 자동
흡입기가 개발되었기 때문입니다. 미세현미경 레이저를 부착하여 약 10내지
15배 확대된 수술부위 속에 아주 가는 레이저 광선을 쏘는 방법으로 정상
척추조직에 거의 손상을 주지 않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방법은 전신마취하에서 피부를 1.5cm만 절개하고 미세현미경으로 수술
부위를 확대하고 밝은 태양빛에 해당하는 조명 아래서 직경 0.3mm 굵기의
레이저 광선을 이용하여 디스크 탈출된 부위의 유착과 흉터를 분리시킨 후
에 디스크의 섬유테에 직경 2mm의 구멍을 냅니다. 여기에 자동흡입기를 먼
저 넣어 디스크 내부의 상한 수핵을 여러 방향에서 빨아내고 디스크 내부
압력을 감소시킵니다. 그래서 자연히 신경근을 무리없이 쉽게 당겨지게
합니다.

   메스나 글, 수술겸자 같은 큰 기구를 사용하지 않고 머리카락 처럼 가
는 정밀한 레이저를 사용함으로써 시야가 가로막히지 않아 1.5cm의 최소
상처 절개로도 병소부위를 명학히 볼 수 있고 척추관절, 척추물렁뼈, 신경
등에 손상을 주지 않을 수 있고 신경유착, 돌출된 디스크와 주위조직의
유착을 칼이나 둔한 기구로 벗기지않고 정밀한 레이저를 사용함으로써 안
전하고 쉽게 박리가 가능합니다.

   또한  신경을 압박하고 있던 가시뼈, 석회화된 디스크 같은 단단한 조
직도 칼같은 큰 기구를 사용하지 않고 가는 레이저를 사용함으로써 신경
저막의 손상을 완벽히 예방할 수가 있습니다. 기존 수술에 비하여 수술 후
통증이 현저히 감소되어 빠른 회복, 빠른 재활이 가능하며 수술한 그 다음
날 퇴원이 가능하여 입원기간이 2일 정도라는 장점도 갖고 있습니다.

 제목 : 획기적 치료법-내시경 레이저 디스크 수술

   내시경 레이저 디스크 수술법은 전신마취를 않고 약 6mm의 작은 피부
절개만 한 후 내시경으로 위장을 관찰하는 것처럼, 관절내시경으로 관찰
하는데 이때는 직경 6mm 정도의 내시경을 이용합니다. 시술방법은 내시경
으로 척추신경을 확인한 다음 그 신경을 피하여 디스크의 섬유테에 조그
마한 구멍을 냅니다. 내시경으로 확인한 후 후방으로 굽어지는 집게, 직
선 집게 등으로 탈출한 디스크 수핵을 기계적인 방법으로 제거합니다.

   다음 검은 선 처진 부위까지만 기계적으로, 즉 직접적 감압술로 제거
하고 그 안쪽부위는 레이저빔을 발사하여 디스크 수핵을 기화시킵니다.
레이저광선 발사는 식염수를 사용, 디스크 내부를 세척하면서 동시에 내
시경과 엑스레이 모니터로 확인하여 시행하므로 안전합니다. 전통적 수술
은 전신마취를 하고 근육을 옆으로 박리한 뒤에 점선부위의 뼈를 갈아 내
거나 절제한 뒤에 척추신경을 제껴서 탈출 수핵을 제거하는 것이지만,
이 시술은 뼈도 신경도 근육도 건드리지 않고 긴 검은색 직선방향으로
내시경과 레이저를 넣으므로 마치 근육주사 같은 정도의 불편밖에 주지
 않는 새로운 시술법입니다.

 제목 : 국내 카이로프랙틱 치료법의 문제점

성인의 80%는 요ㅌ의 증상이 있으며 이중  16%가 치료를 요할 만큼 요통이
심하다. 요통은 수술시 환자가 부담하는  비용이 과다할 뿐만 아니라 국가에
서 부담하는 경제적인 손실도 크다.
따라서 효율성과 경제성을 고려하는 한편 비외과적인 치료추세에  따라 카이
로프랙틱의학이 이를 해결하는데 있어 첩경이란 인식이 미국  유럽등 선진국
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제도화가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카이로프랙틱의 교육기관 및 자격인증이 없는  상황속에
서 전문적인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은 약7만명의 비의료인들이 단순히  척추
지압술로 잘못  인식하고 카이로프랙틱이란  이름을 내걸면서  요통환자들을
상대로 불법치료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에 따라 응급수술을 받거나 불구가 되는 환자들이 발생하는  등 카이로프
랙틱학문이 사이비의료로 인식되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자 카이로프랙틱의 개념 정립과 함께  사각지대에서 벌
어지는 비의료행위로 국민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를 의학계에서  정식
으로 받아들여 양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미국의 경우 카이로프랙틱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예과3년 본과 4년 모두  7
년간 교과과정을 거치고  국시에 합격해야만 한다. 교과과정은 신경학,  해부
학, 병리학, 방사선학, 엑스레이사용법 등 4천8백60시간을 이수하고 인턴과정
에서 환자 2백명을 반드시 경험하도록  하고 있다. 또 의료보험의 혜택도 있
다.
카이로프랙틱의 치료는 먼저  엑스선 촬영으로 변형된 척추부위를  찾아내고
환자의 연령과 신체상태  등 모든 조건을 점검한 후 카이로프랙틱에서만  사
용되는 여러 특수장비를 이용, 척추를 손으로 교정함으로써 요통,  디스크 등
을 치료하는 것이다. 만약 환자의 증세를 점검하지 않고 치료할 경우 골다공
증이 있는 환자는 뼈가 골절되는 등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 있다.
 미국 LA카이로크랙틱 이주강교수는  전문적인 기술과 지식이 요구되는  카
이로프랙틱이 국내에서는 마치  만병통치인 양 왜곡되고 있으며  비의료인들
이 정확하게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지  않고 마구잡이 식으로  요통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으 상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뼈가 기형인 사람도 있어 이런 디스크 환자의 상태를 파악 다른  종류
의 기술을 사용해서  치료해야 하기 때문에 카이로프랙틱에 대한 철저한  이
해와 교육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예을 들어  상부경추를 무분벼라게 교정할
경우 뇌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는 또 카이로프랙틱 학문은 무조건 비외과적인 치료법만을  주장하지 않는
다면서 추골동맥에 병증이 있거나 척추경직성 환자, 척추신경에 심한 내과적
인 문제가  있는 사람, 류마티즘이 있으면서  상부경추가 선천적으로 변형된
환자, 골수염 환자 그리고 전문의의  판단에 따른 케이스는 외과적인 수술을
권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의학신문 중에서
 제목 : 요통환자를 위한 의자 선택 방법

   - 높은 의자는 허리를 나쁘게 합니다. 왜냐하면 무릎이 히프보다 낮아
     지기에 허리가 쉽게 등받이에서 떨어지게 되며 허리굴곡이 증가되기
     때문입니다.

   - 밑깔개나 싸개의 쿠션이 어느 정도 편안하게 되어있는 것이 좋으나,
     속이 지나치게 두툼하게 채워져 너무 푹신한 것은 좋지 않습니다.
     따라서 몸이 푹 가라앉아 버리는 의자나 소파는 피해야 합니다. 푹
     신푹신하다는 것이 편하리라는 것은 틀린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푹
     신한 것은 허리를 받쳐줄만큼 탄탄한 지주들이 부족해지기 때문입니
     다. 그래서 자신의 몸이 척추를 받쳐줄 수밖에 없게 되어 허리 근육
     과 엉덩이 근육이 자연히 긴장하게 되므로 요통을 곧 느끼게 됩니다.

   - 바닥이 허벅지 전체를 히프보다 약간 더 높이 받쳐줄만큼 충분한 넓
     이를 가진 의자가 좋습니다. 엉덩이만 달랑 걸치는 것은 그 만큼 척
     추에 무게가 많이 걸리는 것입니다. 허리에 걸리는 무게를 바닥, 등
     받이, 발받침, 팔걸이 등을 통해서 가능하면 분산시키는 것이 좋습
     니다. 따라서 등받이가 없는 의자는 좋지 않습니다.

   - 등받이는 약 10도 정도 뒤로 기울어져 있는 의자가 좋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등받이가 직각으로 세워진 의자가 의외로 많은데, 90도로
     직각인 등받이를 가진 의자는 후만된 등을 먼저 닿게 합니다. 그래
     서 허리를 뜨게 합니다. 억지로 허리를 등받이에 붙이면 구부린 자
     세가 되고, 상체가 앞으로 기울면 체중이 엉덩이에서 허벅지로 이동
     되어 좋지 않습니다. 직각의자에서는 허리 뒤에 쿠션을 넣습니다.

   - 의자 끝이 날카롭게 깍이지 않고 앞 끝이 두루마리로 말린 것이나
     곡선진 것을 택하여 허벅지 뒷면이 눌리지 않도록 하면 혈액순환이
     잘 될 것입니다.

   - 높낮이를 조정할 수 있어 허리 길이에 맞게 너무 낮은 것은 척추 근
     육을 뭉치게 하므로 높이고, 너무 높은 의자는 요추 전만이 증가되
     므로 낮추도록 조절되어야 합니다. 네개의 다리를 가진 의자보다는
     다섯개의 다리를 가진 의자가 안정성이 있습니다.

   - 사무실 의자로 가장 좋은 것은 등받이를 세울 수도 있고 뒤로 제낄
     수도 있는 기울기가 달린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이런 의자에 맞는
     기울어진 책상을 함께 갖추는 것이 좋습니다. 안락의자는 기울기가
     있는 것이 좋은데, 히프에서 허벅지를 들어주는 각도가 10도이며 몸
     은 135도 정도 젖히고 머리는 10도 정도 들리면서 허리 아래를 받쳐
     주는 부위가 약간 볼록한 안락의자가 휴식에 가장 좋습니다.

   - 의자에 앉을 때는 우선 히프 관절을 굽히고 무릎도 굽힌 상태로 몸
     을 의자로 낮춥니다. 그러나 이때 허리를 앞으로 숙여서는 안됩니다.
     필요하면 손을 허벅지에 받치면서 앉는데, 먼저 몸을 의자의 앞쪽
     가장자리에 걸쳤다가 손을 사용하여 의자의 등받이까지 밀어넣습니
     다.

   - 의자에서 일어설 때는 먼저 의자 가장자리로 몸을 옮겨서 한쪽 발을
     다른 발보다 앞에 위치시킵니다. 그런 상태에서 다리를 이용하여 일
     어서는데, 중요한 것은 허리를 앞으로 숙이지 않는 상태로 바로 일
     어선다는 점입니다.

 제목 : 올바른 자세-앉는 자세①(학교, 사무실의 경우)

   - 겸손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머리를 숙여 웅크리고 앉아 있거나 등을
     구부정하게 앉아있는 것은 허리에 나쁩니다. 당당하고 건방지게 보
     일지도 모르지만, 허리를 펴고 다리를 서로 걸치거나 목을 바로 세
     운 자세가 좋은 것입니다.

   - 의자 자체를 책상 가까이에 가져갑니다. 그래야 상체를 앞으로 기울
     이지 않게 됩니다. 비스듬히 세워진 독서대나 작업대를 사용함으로써
     앞으로 상체를 기울지 않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타이프
     를 치거나 컴퓨터를 사용할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 몸은 의자 깊숙이 넣도록 합니다. 엉덩이만 의자에 걸치고 앉으면
     요추전만이 증가될 뿐만 아니라 체중이 골고루 걸리지 않아 나쁩니다.
     또 책상으로 몸을 기울이는 것도 허리에 부담을 주므로 주의해야 합
     니다.

   - 책상에서 무릎이 히프보다 높이 있도록 하려면 발받침을 사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발받침이 없으면 전화번호부, 혹은 가방같은 것
     을 발밑에 두어 두 발바닥을 올려 놓으면 허리에 많은 도움을 줄 것
     입니다.

   - 자주 다리를 반대편 다리에 얹어 무릎을 가로지름으로써 적어도 한
     쪽 무릎은 히프보다 높아짐으로써 요추전만이 악화되지 않을 것입니
     다.

   - 공부할 때 계속 앉아있지 말고 자주 일어서서 왔다갔다한 뒤에 다시
     앉는 것이 허리가 안 아픈 방법의 하나입니다. 어떤 의자에 앉았던
     간에 자주 위치를 바꾸어주어서 근육과 관절이 경련을 일으키지 않
     을 수 있습니다. 만약 지금 허리가 아픈 사람이라면 매 20분 또는
     늦어도 30분마다 의자에 일어서서 몇 발자국 움직이다가 다시 사무
     를 보는 것이 좋습니다. 정상인이라도 50분 또는 1시간 이상 계속
     의자에 앉아 있어서는 인됩니다.

   - 그러나 의자를 이리저리 돌리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 의자의 높이를 조정하여 팔꿈치가 책상 표면에서 약 5cm 위에 오도
     록 하는 것이 척추에 좋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는 팔이 책상
     위에 얹히는 것이 좋으므로 책받침대를 사용하도록 합니다.

 제목 : 올바른 자세-앉는 자세②(자동차, 비행기 탈 때)

   - 어떻게 차를 타고 내릴 것인가?
     히프와 무릎을 굽힌 상태로 등이 문을 향한 채 몸을 낮춥니다. 히프
     와 무릎을 더 굽히면 차 속으로 발을 옮길 수 있습니다. 이때도 손
     을 이용하여 허리와 다리를 한꺼번에 차 속으로 돌려 앉습니다. 그
     렇게 함으로써 허리를 비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차 밖으로 나오는
     것은 이 순서를 거꾸로 하면 됩니다.

   - 직접 운전시에 페달에서 의자를 너무 멀리 떼어 몸을 뒤로 제끼거나
     다리를 뻗거나 팔을 뻗는 것은 허리에 나쁩니다. 그렇다고 해서 앞을
     보다 가까이 보려고 몸을 앞으로 구부리거나, 등받이에서 허리를 떼
     는 것은 요통의 원인이 됩니다.

   - 운전석에 앉을 때는 등받이를 약 8-10도 정도 뒤로 약간 젖히고 엉
     덩이와 등에 공간이 없도록 허리를 받쳐주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자동차의 의자시트가 맞지 않으면 허리 뒤에 타올뭉치나 잡지 등으
     로 받쳐줍니다. 그리고 의자는 페달 쪽으로 약간 가깝게 당김으로써
     무릎이 히프보다 약간 높게 되도록 무릎을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 자동차를 탈 때는 :
     최소 1시간마다 정지하여 차 밖으로 나와 허리를 펴 주는 것이 좋
     습니다. 그러나 이미 요통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매 20분 혹은 30분
     마다 차를 멈추고 내려야 합니다. 내려서는 뒷 범퍼에 한쪽 다리를
     올리면 허리 통증이 많이 사라질 것입니다.

   - 고속버스나 기차, 비행기를 탔을 때의 자세는?
     손에 들고 들어가는 짐을 발 밑에 두어서 발받침으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두 개의 베개를 요청해서 허리 뒤에 받칩니다.
     언제나 창쪽이 아닌 복도쪽 좌석을 배정받아서 항상 손쉽게 일어설
     수 있어야 하는데, 창쪽의 좌석에서는 매 30분 마다 일어서서 허리
     를 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목 : 올바른 자세-앉는 자세③(휴식을 취할 때)

   - 방바닥에 앉는 자세는?
     침대 위에 앉거나 목욕탕, 방바닥, 의자 등 어디에 앉거나 앞쪽으로
     다리를 쭉 펴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스님들이 선하는 자세처럼 팔로
     윗몸을 받치면서 허리를 바로 펴고 앉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흔히
     고스톱을 치거나 바둑을 둘 때처럼 허리를 앞으로 기울여 들여다 보
     는 것은 허리에 통증을 일으킬 것입니다. 의자 생활이 허리에 더 좋
     은데, 어쩔 수 없이 방바닥에 앉았을 때는 허리를 베개로 받치거나
     벽에 기대고 혹은 한쪽 무릎을 세우는 것이 좋습니다.

   - 앉은 자세에서 가장 좋은 휴식은 히프 높이보다 약간 뒤로 허벅지를
     받쳐주는 바닥(10도)을 가진 의자나 흔들의자 같은 안락의자인데,
     즉 상체가 135도 제껴지며 머리가 10도 정도 세워지는 자세입니다.

 제목 : 올바른 자세-서있는 자세

   - 군인이 차렷하고 서 있는 자세는 허리에 가장 좋지 않습니다. 허리
     의 굴곡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 목뼈가 약간 뒤로 제껴짐으로 목의
     인대와 근육에 긴장을 주기 때문입니다. 서서 있을 때의 자세는 한
     발이 다른 발보다 앞에 나와있고 무릎은 살짝 굽히는 것이 좋습니다.
     혹은 한쪽 발을 어디엔가 얹어 약간 높이 두는 것이 옳습니다. 오래
     서서 움직이지 않은 채 있다든지 부엌일을 한다든지 할때는 발받침
     을 사용하여 과중한 허리 굴곡을 피해야 합니다.

   - 서 있는 좋은 자세를 깨달으려면 우선 허리를 벽에 기대어 서봅니다.
     발뒤꿈치가 5cm가량 벽에서 떨어진 상태에서 뒤통수가 벽에 닿고 얼
     굴은 수직이 되도록 합니다. 이때 천정이나 창문을 보지 말고 바로
     앞을 봅니다. 그리고 허리 뒤에 빈 공간이 없어지도록 허리를 벽에
     밀어 밀착시킵니다. 그러나 엉덩이 근육을 긴장시키지 말고 숨을 참
     지 않도록 합니다. 이때 골반이 턱쪽 즉 위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느
     끼게 됩니다. 허리를 벽에 바로 밀 때 배꼽 위의 근육보다는 아랫배
     의 근육에 힘이 집중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바른 자세가 오히려 불편하다고 느낄 것입니다. 그것은 수십년동안
     나쁜 자세에 익숙해 왔기 때문입니다. 연습을 통하여 이 바른 자세
     를 배우면 곧 익숙해져 허리의 건강에 도움이 클 것입니다.

   - 하이힐을 신으면 바른 허리의 자세가 정반대가 되어 요추의 만곡이
     증가하므로 가능하면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 서서 일할 때 주의할 점 :
     일상생활에서 서서 앞으로 기대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또한 서서
     일할 때 허리를 구부리면 디스크 환자가 되기 쉬우므로 일하는 탁
     자를 높여 허리를 구부리지 않고도 작업할 수 있도록 변경시킬 필
     요가 있습니다. 서서 빗질이나 걸레질을 하거나 청소기를 사용할 때
     는 한쪽 발을 앞쪽에 두고 손잡이가 긴 자루로 끝을 몸 가까이에서
     쥡니다. 한쪽 발을 조금 앞쪽으로 뗍니다. 다른쪽 다리에 무게를 옮
     깁니다. 이런 식으로 교대로 리듬있게 작은 발걸음으로 앞으로 조
     금씩 움직입니다.

   - 임신 때 서있는 자세 :
     배가 불룩해있는 비만형의 사람이나 임신한 사람은 서면 자연히 허리
     의 굴곡이 증가하게 됨으로 요통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복근을 미리 단련하면 임신한 분은 허리가 아프지 않을 것입니다.
     임신 중이거나 배가 부른 비만형이라도 늦게나마 복근을 단단히 하여
     허리를 보조하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무릎을 구부리고 골반들기를
     함으로써 요추의 만곡을 줄일 수 있습니다. 발받침에 한 다리를 올
     린다든지 한 다리를 앞으로 내밀면 골반이 들리고 무릎을 굽힌 상태
     가 됩니다.

   - 세수하고 양치질할 때 :
     다리를 편 채 허리를 구부리고 세수하거나 양치질을 하면 아무리
     허리가 튼튼한 사람도 얼마가지 않아서 요통을 느낄 것입니다. 하
     물며 한번 허리병을 앓은 사람은 더욱더 쉽게 아픔을 느낄 것 입니
     다. 두 무릎을 낮추거나 한쪽 발을 더 높이 올려놓음으로써 세수,
     양치질, 세발 시에 편안함을 느낄 것입니다.

 제목 : 올바른 자세-드는 자세

   - 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흔히 바닥에 가방을 둔 채 허리를 구
     부리고 서류나 책을 끄집어내려고 합니다. 이런 행동은 허리디스크병
     을 유발시키므로 위험합니다.

   -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집어올릴 때는 한쪽 다리로 몸을 지탱하고 반
     대편 다리는 뒤로 약간 물러선채 양 무릎을 구부린 자세로 집어야
     합니다.

   - 무거운 물건을 들 때는 먼저 무릎을 굽혀서 접근하고 웅크려서 물건
     을 드는데 반드시 물건을 몸에 붙여서 들어야 하며, 걷기 시작하기
     전에 물건의 무게가 몸 앞으로 걸리지 않도록 뒤로 무게가 이동되어
     몸통에 실려야 합니다.

   - 물건을 들 때는 허리보다는 다리의 힘을 많이 이용하고, 방향을 바
     꿀 때는 허리를 돌리지 말고 다리와 발의 방향을 돌려주도록 하여
     물건을 내려놓도록 합니다. 그리고 무거운 물건을 들 때는 한 손에
     물건을 몰아쥐지 말고, 양쪽 팔에 균등히 나누어서 들도록 합니다.

   - 마찬가지로 아기를 안아올릴 때도 허리를 굽히지 말고 무릎과 히프
     의 관절을 이용하고, 무릎을 거의 낮추고 몸에 딱 갖다붙여서 안아
     야 합니다. 또 아기를 몸 앞에 안는 것은 허리의 척추를 측만이 되
     도록 휘게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무게가 걸리므로 허리에 통증을 느
     끼게 합니다. 따라서 배낭같은 아기운반대를 등에 매어 이용하거나,
     전통 한국식으로 등에 업고 다니는 것이 허리에 좋습니다.

 제목 : 올바른 자세-눕는 자세

   - 어떤 잠자리(침대)가 좋은가?
    ·두툼하나 편안한 것이 좋습니다. 마루바닥, 방바닥, 대나무침상같이
      너무 딱딱한 것에 누워 자면 골고루 몸통을 받쳐주지 못하여 오히려
      허리에 해롭고 , 또한 너무 쿠션이 많아 푹 꺼지는 것도 정상적인
      S커브의 척추를 유지하려는 인대와 근육에 무리를 주기 때문에 좋
      지 않습니다.
    ·침대 메트리스는 골고루 체중을 얹는 것이 오래 가므로 두달에 한
      번 정도는 좌우 앞뒤로 방향을 뒤집는 것이 좋고, 넓은 요 위에서
      자는 것이 좋습니다.

   - 잠자는 자세는 어떤 것이 좋은가?
    ·너무 얕은 베개나 너무 높은 베개는 목과 어깨에 부담을 줍니다.
      또 반듯이 누워서 자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척추신경관이 좁아지므로 동통이 유발되기 때문입니다. 태아처럼
      양쪽 히프관절과 무릎을 굽히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러면
      척추신경관이 넓어져 통증이 경감됩니다.
    ·특히 디스크병이나 척추관협착증이 있는 사람은 무릎 밑에 베개를
      넣거나 담요나 이불시트를 말아 넣는다든지 쿠션을 넣는 것이 좋습
      니다. 만약에 허리가 많이 아픈 낮에는 방바닥에 등을 대고 다리
      를 의자같은 데에 올리거나 무릎을 세워서 얕은 베개를 베고 누워
      있으면 5분 내지 10분이 지나면 허리 아픈 것이 없어지는 것을 느
      낄 수 있을 것입니다. 방바닥이 너무 딱딱하면 요를 까는 것이 좋
      습니다.

   - 침대에서 일어나고 눕는 법 :
    ·침대에서나 바닥에서나 바로 윗몸을 일으키는 것은 허리에 충격을
      주는 수가 흔합니다. 따라서 침대에서 일어날 때는 먼저 한쪽 옆
      으로 몸을 돌려 눕히고 무릎을 가슴 쪽으로 당깁니다. 그리고 발
      을 침대가로 내리고 팔을 이용하여 몸을 밀어서 앉습니다. 그리고
      침대에서 내려오는데, 주의할 점은 허리가 앞으로 구부러지지 않
      도록 해야 합니다.
    ·다시 침대에 눕는 방법은 먼저 침대 가장자리에 무릎을 굽힌채 걸
      터앉습니다. 다음에 머리와 상체를 옆으로 눕히면서 다리를 당겨
      가져갑니다. 다음에 무릎을 구부린 채 조심스럽게 몸을 돌려서 바
      로 눕습니다. 바로 누워서는 무릎 아래에 베개나 쿠션을 받칩니다.
    ·방바닥의 요에서 일어날 때도 먼저 무릎과 히프를 가슴 쪽으로 당
      긴 채 옆으로 돌아누운 뒤에 팔과 무릎을 이용하여 기는 자세로써
      천천히 일어나야 합니다. 누울 때도 먼저 무릎과 히프를 낮추어 요
      옆에 무릎을 세워 앉은 뒤에 몸을 옆으로 누이고, 그 다음에 천천히
      몸을 돌려 바로 눕습니다.

   - 옆으로 누워 자는 것은 좋은가?
    ·옆으로 누워서 자는 것은 허리에 좋습니다. 요추전만을 감소시켜서
      척추신경관을 넓혀주기 때문입니다. 단, 높이가 알맞은 베개가 필요
      하며 무릎과 히프를 구부린 자세여야 합니다.
    ·무릎 사이에 쿠션을 여러개 사용하면 혈액순환의 장애나 불편이 없
      이 가장 편안할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로 엎드려서 자면은 안됩니다.
      허리의 만곡을 증가시켜 척추자세가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장이
      나 폐에도 압박이 갑니다.
    ·엎드려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TV를 보아서도 안됩니다.

 제목 : 요통환자의 재활운동 필요성

   직립으로 생활을 하는 인간은 약 80%가 일생 중 한번은 요통으로 고생
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에 요통은 왜 발생하는가에 대해 한번쯤 생각
을 해 보아야 합니다. 요통 발생의 원인으로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그중
에서도 평소 생활하는 자세, 습관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통이 생기지 않도록 평소에 바른 생활습관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통이 발생하면 우선 보존적 치료를 해야 합니다. 요통치료에 있어서
보존적 요법이란 약물치료, 열치료, 견인요법등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허리 주위 근육의 유연도를 증가시키고 근육
의 강도를 강화시켜주는 재활운동요법입니다.

   주로 근육의 강화훈련시 어떠한 저항을 주어 근육 강화를 시키게 되
는데, 저항에 의한 근육 훈련시 그동안 여러 연구결과에 의한 생리학적
효과를 보면 근육 자체의 인내력 및 강도의 증가 이외에 신경학적 조절
력, 형태학적 및 생화학적인 사항이 모두 어우러져 근육이 강화하게 됩
니다. 즉 저항운동을 시킨 경우 강도와 인내력의 증가 뿐 아니라  근육
의 크기, 뼈의 밀도, 결합조직의 밀도도 증가되며 또한 규칙적으로 운동
을 하는 경우 근육을 수축시키는 신경조절 능력이 증가되어 근육의 많은
운동 단위가 일정한 수축의 강도에 반응을 할 뿐 아니라 이러한 저항운
동에 의해 감각계도 발달되어 우리 몸을 과도한 수축으로 부터 보호하게
됩니다.

   유연도를 증가시키기 위한 가장 좋은 운동으로는 스트레칭이 가장 효
과적이라고 하며 근육의 강화를 위해서는 대표적인 것으로
윌리엄 복근강화운동과 맥켄지 신전운동이 있습니다.

 제목 : 척추보호운동

   하루에 10분간 시간을 내어 허리를 단련하는 척추보호운동을 한다면
요통의 재발을 방지할 분만 아니라 예방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운동
은 적어도 2개월 내지 3개월은 계속해야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운동은 급성 통증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급성 때는 휴식을
요하며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따라서 급성 통증때는 시행하지 말고, 통
증이 없어지면 가능한 빨리 이 운동을 시작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 운동
은 급성기 이후의 만성 통증의 치료와 그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다음에 기술할 척추보호운동을 모두 다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중에
본인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것을 적어도 세개부터 여섯개까지 골라서
시행하면 될 것입니다. 어떤 것을 선택하든지 규칙적으로 하루에 10분은
시행해야 합니다. 편리하다면 아침에 5분, 저녁이나 밤에 5분으로 하루
두번 나누어서 시행해도 됩니다. 어쨌든 매일 시행한다는 점이 가장 중
요합니다.

   운동중에는 목 운동이나 허벅지 운동보다 복근 강화운동이 가장 중요
합니다. 평소에 하지 않던 운동이라서 처음에는 약해진 허리보조근육들이
근육통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이때 운동을 멈추지 말고 근육이 보다
단단해질 때까지 계속해보거나, 혹은 격일간 다른 종류의 운동을 선택했
다가 근육통을 일으킨 그 운동을 그 후일에 다시 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 약해졌던 근육이 1일간 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구체적인 척추보호운동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 일반적 규칙을 요
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각 운동을 천천히 시행합니다. 그 각 운동자세로 멈추어서 6초간
      지속합니다. 즉 천천히 여섯을 셉니다.
   ② 각 운동을 6회 반복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익숙해지면 10회까지
      반복합니다. 각 반복 다음에는 6초간 완전히 긴장을 풀고 쉽니다.
   ③ 하루에 10분씩 운동을 하는데, 가능하면 아침, 저녁으로 각 10분
      을 하면 더 좋습니다.
   ④ 프로그램 중에 불편하고, 요통을 증가시키는 것이 있다면 억지로
      시행하지 말고 빼어버려도 좋습니다.
   ⑤ 매일 매일 시행합니다.

 제목 : 척추보호운동①-허리굴곡운동(복근강화운동)

   ♣ 초보단계
     평소에 허리가 약하여 자주 아픈 사람과 만성 요통증은 물론
     척추디스크 수술, 디스크내 주사요법, 디스크자동흡입술 등을 받은
     사람은 특히 통증이 없어진 뒤에 이 초보단계부터 서서히 운동해감
     으로써 재발을 방지할 수 있게 되며 허리에 자신을 갖게 됩니다.

     ⑴ 골반들기
       시작자세 : 바로 누워서 양 무릎을 세웁니다.
       운동     : 우선 복근을 단단하게 아래로 당깁니다. 그러나 숨을
                  멈추지는 않습니다. 이제 히프를 약간 들어올림으로써
                  허리가 바닥에 평평히 닿도록 합니다. 6초간 유지하고,
                  6초간 쉬고 6회 반복합니다.

     ⑵ 서서하는 골반들기
       시작자세 : 벽에 등을 기대어 서고, 발은 벽에서 약 5-15cm 떨어
                  집니다.
       운동     : 배를 끌어당겨 넣고, 엉덩이를 앞쪽으로 들어올립니다.
                  허리를 벽에 붙도록 이 상태로 6초간 유지하고 6회 반
                  복합니다. 이때 머리는 벽에 붙이고 눈은 수평으로 바
                  라봅니다.

     ⑶ 머리 올리기
       시작자세 : 바로 누워서 양 무릎을 세웁니다. 즉 골반들기 상태로
                  만듭니다.
       다음단계 : 양 팔을 공중으로 세우고, 턱을 서서히 가슴쪽으로 당
                  겨 붙여 놓습니다.
       운동     : 마치 일어나 앉으려는 것처럼 머리를 무릎을 향하여 들
                  어올립니다. 바닥에 발이 붙어있어야 하며, 단지 어깨
                  가 바닥에서 살짝 떨어질 정도로 들어올립니다. 6초간
                  유지하고 6초간 쉬며 6회 반복합니다.

     ⑷ 다리 올리기
       시작자세 : 바로 누워서 한쪽 다리는 무릎을 세우고 한쪽 다리는
                  바닥에 뻗은 채로 둡니다.
       다음단계 : 골반들기 상태를 만듭니다.
       운동     : 펴둔 다리를 천천히 세운 무릎 높이까지만 들어올린
                  다음 천천히 마루에 내려 놓습니다. 교대로 다음쪽을
                  시행합니다. 각각 여섯번씩 시행합니다. 처음에는 약
                  30도 내지 30cm높이로 유지하다가 차츰 높이를 증가
                  시킵니다. 다리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것이 아니라 든
                  채 6초간 유지합니다.

     ⑸ 머리와 어깨 들기
       시작자세 : 바로 누워서 양 무릎을 세웁니다.
       다음단계 : 골반들기 상태로 만들고, 두 팔을 수평으로 듭니다.
       운동     : 먼저 숨을 들이킨 후 숨을 내쉬면서 머리와 어깨를 들
                  어 양손이 무릎에 닿도록 합니다. 이 상태를 6초간 유
                  지한 후 천천히 부드럽게 숨을 들이쉬면서 바닥에 눕
                  습니다. 6회 반복합니다.

     ⑹ 말아올리기
       시작자세 : 바로 누워서 양 무릎을 세웁니다.
       다음단계 : 양 무릎을 가슴쪽으로 가져갑니다. 팔은 약간 올립니

                  다.
       운동     : 머리와 무릎을 말아올려, 마치 무릎속에 이마를 넣으
                  려는 듯이 웅크립니다. 이 상태로 6초 유지한 후 바로
                  폅니다. 여섯번 반복합니다.

     ⑺ 팔로 반대편 무릎 밀기
       시작자세 : 바로 누워서 양 무릎을 세운 자세
       다음단계 : 우측다리를 구부린 채 들어 90도로 세웁니다.
       운동     : 왼팔로 오른쪽 무릎을 밀어 복근에 힘이 들어오도록
                  합니다. 이때 양 힘은 균등하므로 무릎이 밀려지면 안
                  됩니다. 6초간 유지하고 6초간 쉽니다. 한쪽 다리에
                  각각 여섯번씩 합니다.

 제목 : 척추보호운동②-허리 신전운동

   일반적으로 척추관협착증이나 척추관절의 퇴행성 변화나 척추관절부위
의 손상이나 이상으로 요통을 느끼는 사람들은 복근 강화운동보다는 이
허리 신전운동에 더 고통을 느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런 사람들은 이
허리 신전운동을 하지 않기를 권합니다.

     ⑴ 수동적 윗몸 제끼기
       시작자세 : 바닥에 엎드리고, 어깨 밑에 손바닥을 놓습니다.
       운동     : 턱은 가슴쪽에 대고 팔굽혀펴기 때처럼 팔에 힘을 주
                  어 머리, 어깨, 가슴을 밀어올려 마루에서 떨어지게
                  합니다. 가능하면 팔꿈치가 바로 펴지도록 합니다.
                  그러나 골반은 바닥에 그대로 붙여둡니다. 이 상태에
                  서 6초간 유지한 후 천천히 비닥으로 몸을 낮춥니다.
                  6초간 쉬고 여섯번 반복합니다.

     ⑵ 발전된 허벅지 들기
       시작자세 : 엎드린 상태에서 양팔은 옆에 둡니다.
       운동     : 무릎을 핀 채, 허리는 휘어지지 않은 채로, 단지 허
                  벅지가 마루바닥에서 떨어지도록 다리를 듭니다. 이
                  때 팔도 동시에 다리쪽을 향하여 들고, 이 상태에서
                  6초간 유지한 후 천천히 도로 바닥에 놓습니다. 6초
                  간 쉬고 각 다리에 여섯번씩 반복합니다.

     ⑶ 능동적 윗몸 제끼기
       시작자세 : 엎드린 상태에서 양팔은 옆에 둡니다.
       운동     : 턱은 가슴에 붙여둔 채, 머리와 가슴을 천천히 마루
                  바닥에서 떼고, 천천히 도로 댑니다. 쉬고 6회 반복
                  합니다. 이때 허리가 뒤로 휠 정도로 상체를 너무 높
                  이 들지 않도록 합니다.

 제목 : 척추보호운동③-사지로 엎드린 운동

   사지로 엎드려서 하는 운동은 척추의 자세를 바르게 할 뿐만 아니라,
요통의 원인이 근육과 인대의 이상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효과를 보이며,
동시에 사지의 혈액순환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⑴ 복근 수축
     손과 무릎으로 바닥을 짚고 엎드려서 몸은 바닥과 평행이 되도록 합
     니다. 숨을 들이쉴 때는 가능한 한 서서히 깊게 호흡하여 배를 부풀
     립니다. 숨을 내쉴 때는 가능한 한 배를 집어넣습니다. 그렇게함으로써
     복근이 수축하도록 합니다.

   ⑵ 산 만들기 운동
     양 손과 양 무릎을 바닥에 대고 등을 둥글게 말아올려 산을 만듭니다.
     다시 천천히 등이 휘어지도록 늘어뜨리는데, 이 동작을 다섯번 내지
     열번을 반복합니다. 다리는 약간 벌리고, 팔은 뻗은채 아랫배를 집어
     넣고 빼는 운동입니다.

   ⑶ 무릎을 팔꿈치에 대기
     양 손과 양 무릎을 바닥에 대고 엎드린채 몸은 바닥과 평행이 되도
     록 합니다. 우선 오른쪽 무릎을 오른쪽 팔꿈치로 가져갔다가, 뒤쪽
     으로 다리를 폅니다. 그리고 다시 무릎을 팔꿈치쪽으로 가져와 무릎
     을 바닥에 내려 놓습니다. 반대편 다리를 시행합니다.

 제목 : 사무실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척추강화운동

   ⑴ 앉았다 일어서기
     의자를 이용하여 운동하는 방법으로, 의자 등붇이를 잡고 쭈그리고
     앉았다가 서서히 바로 일어서는 것인데 이때 발끝은 들고 허리는 곧
     추 세우도록 합니다. 5회 반복합니다.

   ⑵ 허리 굴신운동
     앉은 상태에서 다리를 어깨넓이 보다 넓게 벌리고 두 손을 무릎사이
     에 넣고, 두 손을 마루에 닿게 합니다. 천천히 5회 시행합니다.

   ⑶  기지개 펴기
     허리를 곧추 세운 상태로 앉습니다. 손가락을 서로 끼고 머리 바로
     위로 양 팔을 펴 올립니다. 팔을 구부렸다가 오른쪽으로 기지개 켜
     듯이 올립니다. 다시 구부렸다가 왼쪽으로 기지개 켭니다. 위로 열
     번, 좌우로 각각 열 번 반복합니다.

   ⑷  허리펴기
     허리를 곧추세우고 앉습니다. 양 팔을 펴고 손은 의자 가장자리를
     잡습니다. 숨을 들이쉬면서 등을 펴고 동시에 허리를 의자 등받이
     쪽으로 밀고 팔은 의자를 밀며, 목덜미는 위로 늘입니다. 마치 의
     자 속에 몸을 깊이 넣어버리려는 듯이 합니다. 열번 반복합니다.

   ⑸  무릎을 가슴에 대고 펴기
     허리를 곧추 세우고 앉습니다. 한 다리를 의자 위에 올리고, 팔은
     무릎 높이로 부여 잡습니다. 무릎은 가슴에 닿습니다. 숨을 들이쉬
     면서 앞으로 다리를 밉니다. 같은 힘으로 팔은 잡아당기고 있으므
     로 사실상 움직임은 없습니다. 다섯번 반복하고 다리를 바꾸어 다
     섯번 시행합니다.

 제목 : 목을 강화하는 운동

   만성적으로 목 근육의 긴장이나 목디스크 등에 의하여 경추통이 오는
경우에 이 목을 강화하는 운동을 하면 만성적인 통증이 없어집니다. 이
운동은 길이에는 변화를 주지 않고 양쪽 힘이 등가가 되어 움직임 없이
단지 근육만 단단하게 힘이 들어가게 하는 것이므로, 경추간판탈출증,
경추후종인대석회증 등으로 고생하는 사람들도 운동이 가능합니다.

   ⑴ 뒷쪽으로 힘주기
     시작자세 : 양 손을 다섯손가락 모두 함께 끼어 목 뒤에 댑니다.
     운동     : 머리는 손을 향하여 뒤쪽으로 밉니다. 손은 목이 밀리
                지 않도록 받쳐줍니다. 이 힘을 12초간 유지하고 잠시
                쉰 뒤에 6회 반복합니다.

   ⑵  앞쪽으로 힘주기
     시작자세 : 양 손바닥을 이마에 대고 받쳐, 이마 쪽으로 힘을 줄 수
                있도록 합니다.
     운동     : 손바닥을 향하여 머리를 앞쪽으로 누릅니다. 실제로는
                손이 반대로 받쳐주기 때문에 목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 상태로 12초간 유지하고 쉰
                뒤에 6회 반복합니다.

   ⑶  좌측 우측으로 힘주기
     시작자세 : 오른쪽 손바닥을 컵 모양으로 펴서 오른쪽 머리를 받쳐
                주도록 댑니다.
     운동     : 손을 향해 머리를 밉니다. 이 상태로 12초간 유지, 6초
                쉰 뒤에 여섯번 되풀이하고, 같은 요령으로 좌측으로 힘
                주기를 합니다. 양 힘이 같으므로 절대 목은 좌우로 움
                직이지 않습니다.

 제목 : 목의 긴장을 푸는 운동

   어깨를 이완시키는 운동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정신적, 신체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목은 긴장하게 되어 목덜미, 어깨, 등, 허리까지 통
증을 가져옵니다. 특히 허리가 아픈 사람들, 목디스크병이 있는 사람들,
긴장성근육통과 두통이 있는 분들은 다음 네 가지의 간단한 방법으로 목
의 긴장을 푸는 방법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⑴ 어깨 올리기
     할 수 있는 만큼 높이 어깨를 움추려서 올렸다가 그 상태에서 6초간
     있다가 풀어줍니다. 양측 어깨를 동시에 시행하거나 한쪽씩 교대로
     합니다.

   ⑵ 어깨 뒷쪽으로 밀기
     두손을 모아 배위에서 깍지를 낀 다음, 어깨를 할 수 있는 만큼 뒤
     쪽으로 제껴 양 어깨를 활짝 펴봅니다. 마치 양 견갑골(어깨 날개뼈)
     이 서로 붙으려는 듯이 힘을 뒤로 줍니다. 이 상태에서 6초간 있다가
     풀어줍니다. 가슴을 펼 때 숨을 들이쉬고 힘을 빼 이완할 때 숨을 내
     쉽니다.

   ⑶ 어깨 앞으로 오므리기
     할 수 있는 한 앞쪽으로 양 어깨를 당겨서 오므립니다. 6초간 유지한
     후 풀어줍니다.

   ⑷ 머리 위로 말아올리기
     손가락들을 깍지 낀 후에 머리 위에 얹습니다. 허리는 곧추 세웁니다.
     숨을 들이쉬면서 팔이 누르는 힘과 같은 힘으로 머리를 위쪽으로 밀어
     올립니다. 이완하면서 숨을 내쉬고, 다섯번 반복합니다.

 제목 : 안전한 스포츠를 위한 기본 요령

   어떤 스포츠이든 간에 허리에 통증이 있었던 사람은 허리를 보호하는
척추보호운동을 사전에 충분히 시행해야 됩니다. 따라서 매일 10분씩 시
행하지 못한다면, 1주일에 적어도 네 번은 20분씩 자세를 교정해 주며
허리를 튼튼하게 해주는 척추보호운동을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어떤 스포츠도 요통환자에게 금지된 것은 아닙니다. 테니스도, 골프도,
승마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가장 유의해야 할 사항은 너무
격렬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격일이나 최소한 1주일에 3번 정도는 할
수 있는 스포츠를 선택하여 천천히 시작하고 첨차 서서히 운동량을 늘려
갑니다. 잘못 시행하면, 혹은 나쁜 기술로써 스포츠를 하면 허리를 다치
므로 반드시 올바른 자세와 기술을 충분히 습듯해야 합니다.

   동시에 올바른 허리 자세법을 충분히 숙지하여 스포츠에도 적용시켜야
합니다. 어떤 자세가 허리에 나쁜가? 격렬한 허리 회전, 허리 신전, 허리
굽힘은 척추디스크에 이상을 일으킵니다. 나쁜 자세는 허리를 상하게 합
니다. 경쟁적으로 하는 것은 피하고, 또한 지치는 것도 피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첫째로 내세울 수 있는 규칙은 운동 시작하기 전에 최소한
5분 내지 10분간 점차적으로 몸을 워밍업(몸 데우기)시켜야 한다는 점입
니다. 그러면 운동 중에 충격과 통증을 충분히 예방할 수 있습니다. 제
자리에서 빨리 걷는다든지, 천천히 스트레칭 운동을 한 후에야 스포츠에
임해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마친 후에도 쿨링다운(몸 식히기)을 5분 내
지 10분간 해주어야 합니다.

 제목 : 각종 스포츠들이 허리에 미치는 영향들

   각 스포츠의 움직임에서 허리에 영향을 미쳐 요통을 악화시키는 것은
네 가지의 기본자세 입니다. 이 네 가지의 동작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행
하는 것들로, 그런 동작들이 스포츠를 할 때는 정상허용범위를 넘게 되거
나 수없이 반복되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허리에 부담을 주는 네 가지 동작이나 자세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허리를 앞으로 굽히는 것
    ② 허리를 신전시키며 뒤로 휘게 하는 것
    ③ 허리를 회전시키며 비트는 것
    ④ 들어 올리는 것

    ① 허리를 앞으로 굽히는 것 :
      바로 서 있을 때보다 허리를 앞으로 구부리는 것이 2배 이상 디스크
      에 스트레스를 주는 무게가 걸립니다. 그런 이유로 디스크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가능한 한 지나치게 허리를 구부리는 것은 피해야 합니
      다. 예를 들어 테니스뿐만 아니라 볼을 사용하는 어떤 운동을 하게
      되면 자주 볼을 주어야 합니다. 이때 허리를 구부리지 말고 무릎을
      구부려야 합니다.

    ② 허리를 뒤로 제껴서 신전하는 것 :
      과도하게 허리를 뒤로 제끼는 것은 어떠한 활동이든지 허리의 관절
      에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 테니스, 배드민턴, 배구 등에서 공
      을 높이 던져올리고 서브를 한다면 반복적인 과신전이 되어 허리관절
      에 스트레스가 쌓일 것 입니다.

    ③ 허리의 회전 :
      목의 관절은 원래 돌리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허리의 관절
      은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허리 회전을 무리하게 하면 디스크를
      둘러싼 섬유테의 손상이 올 수 있고, 따라서 디스크의 탈출이 옵니다.
      허리의 회전부담을 주는 스포츠로서 테니스 같은 라켓을 사용하는
      운동이 가장 대표적인 예입니다. 다음으로 골프도 척추에 상당한 회
      전력을 부과합니다. 그러므로 꼭 골프를 쳐야 한다면 각 게임을 짧게
      줄이고 스윙하는 자세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④ 들어올리기
      척추에 무게가 걸리면 디스크와 척추관절에 무리가 갑니다. 압력이
      보다 적게 가도록 들어올리는 기본적인 기술은 다음과 같습니다.
       A.들어올리는 물건을 가능한 한 몸에 붙여서 가깝게 합니다.
       B.무릎을 구부려서, 가능한 한 많이 물건의 무게를 허벅지 근육을
         사용하여 이겨내도록 합니다.
       C.골반경사를 유지합니다.(척추보호운동 참조)
       D.허리를 돌리지 말고 발을 움직여서 몸과 물건을 돌립니다.
      역도는 약한 허리에 부담을 줍니다. 같은 범주에 들어가는 것으로
      사냥과 낚시가 있습니다. 또 승마라든지 오토바이 타기라든지 조깅
      등은 무거운 무게를 허리에 거는 것 같지 않아 보이지만, 뛸 때마다
      허리의 관절에 반복적인 스트레스를 주게 되어 요통을 생기게도 합
      니다.

   대체적으로 허리에 좋은 스포츠는 배영, 횡영, 자유형, 자전거타기,
암벽오르기이며 삼가해야 될 스포츠는 격렬하고 몸끼리 부딪치는 모든 스
포츠, 즉 평영, 무리한 요가,무리한 현대무용, 조깅, 골프, 무리한 에어
로빅과 기계체조나 마루운동, 럭비 등입니다.

 제목 : 정신적 허리 위생법

   정신적 긴장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나타납니다. 두통, 피곤, 요통, 신경통
이 그것입니다. 긴장은 목의 근육, 어깨의 근육, 등의 근육, 허리의 근육에
뭉침을 유발시킵니다. 일단 이런 근육들이 긴장되면 몸을 부드럽게 움직일
수가 없으며 근육통이 심해집니다. 근육이 긴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때, 경직이 일어나고 근육통이 점차 악화되기 전에, 근육을 이완시킬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정신적 허리 위생법 입니다. 비교적 규칙적으로 시간
을 내서 이 정신위생법을 연습하면 근육은 이완되어 두통, 요통, 피로감,
신경통 등이 잘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다음의 단계를 차례로 시행하면 도
움이 될 것입니다.

   1. 매일 15분 내지 20분 정도의 시간을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도록
      합니다. 전화나 텔레비젼 혹은 어떠한 관심을 끄는 물건이 없는 조
      용한 방을 고릅니다. 옷은 헐렁하고 편안하게 입고, 히프와 무릎을
      구부린 채 눕는 자세를 취합니다. 혹은 무릎을 히프보다 높게 하여
      편안히 앉습니다.

   2. 눈을 감습니다. 혹은 천정이나 벽의 어느 한 점에 시선을 고정시
      키고, 집중합니다.

   3. 천천히 깊이 숨을 들여 마시고, 천천히 숨을 내쉽니다.

   4. 숨을 들여마실 때, 오른쪽 주먹을 꽉 쥡니다. 5초간 쥐고 있다가
      손이 맥없이 풀리도록 둡니다. 세번 내지 네번 숨을 쉬고, 3번 되
      풀이 한 후에 왼손을 같은 요령으로 반복합니다.

   5. 오른 주먹을 쥐고 팔꿈치를 구부려서 주먹을 어깨로 가져갑니다.
      동시에 어깨와 목의 근육에 힘을 주어 단단히 합니다. 5초간 유지
      하고 3번 내지 4번 숨쉬면서 쉽니다. 3번 반복하고 왼쪽도 시행합
      니다.

   이 정신의 근육 이완법은 하루에 적어도 한 번 시행합니다.

 제목 : 신발과 요통의 관계

   발에 이상이 있으면 요통을 일으키는 것처럼 좋지 않은 신발을 신으면
요통이 악화됩니다.  가장 나쁜 신발은 하이힐과 슬리퍼입니다. 하이힐은
허리의 관절에 지나친 스트레스를 주고, 슬리퍼같이 전혀 굽이 없는 신발
은 지나치게 발을 조이기 때문에 걸음의 폭이 나빠지고 요통을 일으킵니다.

   신발은 안정성, 탄력성, 충격 흡수력이 있어야 합니다. 바닥은 안정성
이 있으면서 유연하고 나긋나긋해야 하며 동시에 옆으로 미끄러지지 않도
록 단단해야 합니다. 신발의 옆은 발의 모양대로 곡선이 있으면서 발바닥
의 궁륭이 함몰되어서는 안됩니다. 슬리퍼나 샌들은 발의 옆이나 뒷꿈치가
보호되지 않기 때문에 나쁩니다. 신발의 뒷굽은 하나의 큰 부분으로 된 것
으로 5cm 이하의 높이여야 합니다.

   조깅화(운동화)가 가장 좋습니다. 잘 만들어진 조깅화는 보통 신발보다
여러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앞발에 충분한 공간이 있고, 꼭 맞는 뒷굽, 잘
된 양옆의 받침, 발바닥의 쿠션이 되어있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신발은
발이 내전되는 것을 예방합니다. 또한 탄력있는 고무로 구두창이 되어 있
는 신발이나, 부드러운 밑창이 된 구두는 걸을 때 쿠션이 있어 허리 관절
에 충격이 덜 갈 것입니다.

 제목 : 옷은 어떻게 입는가?

   허리의 좋은 건강상태는 옷 입는 것과도 간접적 관계가 있습니다. 혁
대와 허리띠로 지나치게 배를 졸라매는 것은 삼가하는 것이 좋습니다.
몸에 맞게 맞는 속옷을 입으면 감기를 피할 수 있어, 기침으로 인해 허리
에 주는 충격이 오지 않습니다.

   너무 무거운 겉옷은 피합니다. 옷을 벗고 입고 들고 다니는 것 자체가
무거워서 허리에 부담을 줍니다. 엉덩이, 허리, 골반과 배를 넓게 받쳐주
는 콜셋은 괜찮지만 좁은 허리띠로 배의 일부와 허리를 졸라매는 것은 나
쁩니다.

   얇은 속옷을 반듯이 입고 그 위에 주름이 많이 잡힌 면으로 된 겉옷
이나, 겨울이라면 울로 된 가벼운 겉옷이 바람직합니다. 통풍이 잘 되면
서 따뜻하고 얇은 옷, 그리고 지나치게 조이지 않는, 헐렁한 옷이 허리
에 편합니다.

 제목 : 요통환자의 가구 선택 요령

   요통의 원인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역학적 요인에 의한 것이 80% 이상
을 차지합니다. 이는 주로 올바르지 못한 자세습관과 운동부족으로 인한
경우가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요통환자의 경우 겉으로 보기에는 병자처럼
보이지 않는 병의 특성으로 인해 환자로서 취급받지 못하면서 실제로는
심각한 경우로까지 발전하여 주변사람들과의 심리적 갈등으로 인한 심인성
질환도 동반하게 되어 사회생활 적응이 힘든 상황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요통은 단순하지 않은 현대병의 하나 입니다.

   하지만 이같은 요통을 예방하는 것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평소에 자신
의 운동능력에 적합한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걷고, 앉고, 서있는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이 그 예방법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척추의 해부학적 구조는 S자 모양으로 되어있고 이러한 형태를 유지할
때 디스크 압력은 일상적인 정상치를 유지하게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평상시 사용하고 있는 의자나 침대 등 일상가구를 잘못 선택한 경
우 자연스러운 척추의 만곡을 해치는 경우가 있으며 이러한 상황이 장기간
방치되었을 때, 이것이 역학적 요통의 주 원인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이상
과 같은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역학적 요통을 예방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의자나 침대 등이 자연스러운 척추의 만곡을 방해하지 않을 때, 이를
바람직한 가구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청소년기의 대부분을 공부때문에 의자에서 보내고 이후 사회생활을 사
무직으로 하고 있는 경우에 사용하게 되는 의자의 형태는 허리 건강과 밀
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식생활의 개선으로 인해 예전보다 평균 신장이
급격히 달라졌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초, 중고생들의 교실환경은 예전보다 좁아진 느낌입니다. 의자나 책상이
자신의 체격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 이것은 신체의 발달에도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특히 허리에 부담을 주는 자세로 유도하여 심한 경우 병원
에서 치료하여야 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이러한 상황은 의자를 청소년
들의 체격에 적합한 크기로 교체하고 의자의 형태를 척추의 자연스러운
만곡을 유지하는 형태로 제작하게 함으로써 예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정에서 사용하고 있는 침대의 경우 역시 의자와 마찬가지로 척추의
자연스러운 만곡을 해치지 않는 형태와 재질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
다. 그외 경우로는 부엌 싱크대의 높이가 사용하는 주부의 키에 적합하
여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받침대를 사용하여 한 발을 받침대에 걸침
으로써 척추에 가중되는 부하를 감소시키는 방법이 있습니다.

   결국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가구란 가구는 모두 이미 앞에서 이
야기 한대로 자연스러운 척추의 만곡을 방해하지 않는 것으로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으며 물론 여기에는 척추의 역학적 구조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외 요즘 자가운전자들이 많아졌는데 자동차
의 시트 높이도 운전자의 신장과 잘 맞아야 할 뿐 아니라 운전자세에도
신경을 써야 하며 특히 목적지에 도달하여 차에서 내릴 때 한쪽 다리만
밖으로 내민채 몸을 급격히 회전시키면서 내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 또
한 요통을 일으키는 중요한 원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제목 : 자세에 따른 허리부담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에 따라 허리디스크에 걸리는 압력은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에게서 자세에 따라 변화되는 압력을 제 3, 4번 허리디스크
내에 바늘을 넣어 Kg무게로 측정한 것이 다음의 표입니다.

   +--------+--------+----------+----------+--------+----------+
   |        |        |  의자에  | 옆으로   |        | 무릎굽혀 |
   |  자세  |누워있기| 다리올려 | 구부려   | 서있기 |  서있기  |
   |        |        | 누워있기 | 누워있기 |        |          |
   +--------+--------+----------+----------+--------+----------+
   |무게(Kg)|   25   |    35    |    75    |  100   |   150    |
   +--------+--------+----------+----------+--------+----------+
   |        |  서서  |  의자에  |  의자에  |    의자에 앉아    |
   |  자세  |허리굽혀| 앉아있기 | 허리굽혀 | 허리굽혀 물건들기 |
   |        |물건들기|          | 앉아있기 |                   |
   +--------+--------+----------+----------+-------------------+
   |무게(Kg)|  220   |   140    |   185    |        275        |
   +--------+--------+----------+----------+-------------------+

   이 생체역학을 살펴보면 책상에 바로 앉으면 그 부하량은 중간입니다
(140Kg). 그러나 앞으로 허리를 숙이면 그 부담은 엄청나게 심해집니다
(185Kg). 앉아 있는 것보다는 서서 있는 것이 허리디스크에 부담이 덜
갑니다(100Kg). 즉 흔히 많은 사람들이 보다 편안하다고 여기던 자세 즉,
차택상 앞에 구부정하게 앉아 있는 것보다는 서있을때가 훨씬 허리에 주는
스트레스가 적다는 것을 이 연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누워 있을때 걸리는 무게가 가장 적고(25Kg), 앉은 채 앞으로
숙여서 물건을 들 때가 가장 큽니다(275Kg). 이것을 보면 방바닥에 오래
앉아 있으면 허리가 아파지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즉 고스톱 같은
화투놀이, 포커 같은 트럼프놀이, 혹은 바둑 같은 장시간 앉아 있어야하는
놀이들이 허리에 많은 부담을 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책상에 앉아 오래 공부하거나 사무를 볼 때 허리가 아파지는 것은
책상쪽으로 몸이 기울어지기 때문이라는 것도 이 표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의자에 앉아 앞쪽으로 허리 굽히기-185Kg). 특히 허리수술을 받았거나
수술은 아니라도 디스크 화학적 용해술이나 경피적 디스크 자동흡입술을
받을 정도의 디스크 환자였던 사람은 앉아 있다는 것이 허리에 부담을
준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허리를 앞으로 구부려 물건을 들면 220Kg이란 무게가 허리에 걸릴 뿐만
아니라 허리를 보완하는 근육의 작용이 약해져 요통의 주요 원인이 됩니다.

 제목 : 정신적 허리 위생법

   매일매일의 생활에서 당신은 긴장과 스트레스를 갖지 않을 수 없을 것
이다. 성공에 대한 야망, 일을 해야 된다는 의무감,  그리고 마음대로 성취
되지 않는 좌절감을 누구든지 갖기 쉽다. 이러한 정신적  스트레스는 당신
의 육체에 실제로 통증을 일으킨다.

정신적 긴장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타난다. 두통, 피곤, 요통, 신경통이
그것이다. 긴장은 목의 근육, 어깨의 근육, 등의 근육, 허리의 근육에 뭉침
을 유발시킨다. 일단 이런 근육들이 긴장되면 당신은 부드럽게  움직일 수
가 없으며 근육통이 심하게 된다.

  당신의 근육이 긴장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때, 경직이  일어
나고 근육통이 점차 악화되기  전에, 당신의 근육을 이완시킬 수 있는  방
법이 있다. 비교적 규칙적으로  시간을 내서 이 정신 위생법을 잘  연습하
면 근육은 이완되어 두통,  요통, 피로감, 신경통 등이 잘 생기지 않을  것
이다. 다음의 단계를 차례로 시행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1. 매일 15분 내지 20분 정도의 시간을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도록 한다.
조용한 방을 고른다. 그 방에는 전화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다.  혹은 어떠
한 관심을 끄는 물건도 없다.  옷은 헐렁하고 편안하게 입는다. 히프와 무
릎을 구부린 채 눕는  자세를 취한다. 혹은 무릎을 히프보다 높게하여  평
안히 앉는다.

2. 눈을 감는다. 혹은 천정이나 벽의 어느 한 점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집
중한다. 당신의 마음에서 모든 다른 사물과 걱정거리들을 몰아낸다.

3. 당신의 호흡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숨쉬는 소리가 얼마나  규칙적이며,
상냥한가에 대해 집중한다. 한 손을  갈비대 바로 밑의 배에 얹는다. 당신
은 배를 오르락 내리락하며 숨을 쉰다. 계속해서 당신은  자신의 숨소리에
집중한다. 당신이 숨을 내쉴  때, 당신은 천천히 다 내 쉬고, 당신이  숨을
내쉴 때에 당신의 몸에서  긴장이 빠져 나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
이 이완되는 것을  느낀다. 자신이 이완되어 편하게 늘어지도록  내버려둔
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당신은 배가 천천히 올라가면서  풍선처럼 되는
것을 느낀다. 당신은 공기가 코와  폐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공기
가 천천히 빠져나가도록  내버려둔다. 당신은 배가 서서히 내려가는  것을
느낀다. 당신은 숨을 내쉬면서 자신이 이완되는 것을 느낀다.

4.. 당신이  깊고 이완된 호흡을 내쉬면서  자신이 이완되는 것을  느낀다.
느끼기 시작하고, 이것이 좋다고  느낀다. 좋아진 혈액순환으로 인하여 당
신의 체온은 올라갈지도  모른다. 당신은 팔과 다리가 무거워지고  이완된
것을 느낀다. 이러한 느낌들을  의식적으로 상기한다. 낮에도 당신은 자주
이러한 이완을 몸에서 일어나도록 훈련한다.

5. 당신이 숨을 들여마실  때, 오른손 주먹을 꽉 쥔다. 5초간 쥐고  있으면
서 "내 손은 팽팽하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손이 맥없이 풀리도록 둔다.
세 번 내지 네 번 숨을 쉰다. 3번 되풀이하고 왼손으로 반복한다.

6. 오른 주먹을 쥐고 팔꿈치를  구부려서 주먹을 어깨로 가져간다. 동시에
어깨와 목의 근육에 힘을  주어 단단히 한다. 5초간 유지하고 3번 내지  4
번 숨쉬면서 쉰다. 3번 반복하고 왼쪽도 시행한다.

7. 다리, 허리, 머리의 근육을 단단히 한 뒤에 이완시키는  방법을 위와 같
이 시행한다.

8. 당신은 준비가 충분하다고 느낄 때 이 이완법을 마친다. 그러나 당신이
눈을 떴을 때 그 이완된  몸과 정신상태를 그대로 유지한다고 노력하면서
일어선다.

 이 전신의 근육 이완법은  하루에 적어도 한 번 시행한다. 그 결과  당신
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건강해지고 행복해질 것이다.
 이러한 정신적 이완법이 통증을  없애주는 기전은 다음의 세가지로 생각
된다.

1. 근육의 긴장이 통증을 더 악화시키는데, 이 근육의 이완이 되면 통증이
감소되는 것이다. 그러나  훈련 초기에는 이 근육이완의 성취도가  약해서
통증이 좋아진 것을 잘 못 느끼는 수도 있다.

2. 정신의 이완은  당신이 괜찮아지리라는 느낌을 증가시킴으로써  통증이
조절된다.

3. 이완운동은 명확히 자율신경계  특히 교감신경계의 변화를 유도시킨다.
에피네프린이 감소하고 엔돌핀이 증가하여 통증이 완화된다.

 제목 : 척추교정운동의 중요성

우리 인간은  누구나 건강하고 정력적으로  멋있게 살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척추건강의 중요성을 알아야 합니
다.
 척추의 질환은 만병의 근원이 될 수 있으며, 척추교정은 만병의  자연치유
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것으로써 척추의  균형이 정상인 사람은 건강한 사
람인 것입니다.
  척추 교정운동요법은 체육학적 차원에서 약이나  수술을 필요로 하지 않
는, 기존의 의료요법과는 엄연히 다른 학문으로써 척추를 주로하는 교정과
운동을 겸한 신경과 골격, 근육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예방 및 치료의 자연
건강운동요법인 것입니다.
  척추교정운동 요법은  미국의 카이로 푸락틱과  맥을 같이 하고 있으며,
철학과 과학, 예술이 한데  어울어진 종합 치료술로서 순수한 자연건강 운
동요법이며, 체육과학적 차원에서 자연치유력을 향상시키는데 매우 중요한
건강요법인 것입니다.
   옛날에 고여 있는 물은 썩게 마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
도 움직이지 않으면 죽어서 썩어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건강하게
살려면 반복된 운동을  계속하므로 새루운 물이 흐르듯  계속된 운동은 우
리 인체의 혈액순환을  촉진시켜 언제나 건강한 신체를  유지시켜 줄 것입
니다.
  우리의 머리는 우주와 같은 존재로서  보고, 듣고, 생각하는 모든 신경의
본거지로서 생명의  근원이 되는 것이며,  척추는 우리몸의 대들보와 같은
역할로서 머리에서부터 시작되는 모든 신경이  척추를 통하여 전신에 전달
되는 생명선이 되는 것이며,  골반은 우리의 대지와 같은 존재로서 머리에
서 전달된 성적  신경작용에 의하여 사랑의 씨앗이  뿌려지고 자라서 우리
몸이 태어나는 신체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체는  머리와 척추와 골반이 서로  연결되어 한 인간체
가 구성되며, 골격과 근육, 신경이 각개의 기능을 다할 때 우리의 생명체가
영위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체의 척추는 머리에서부터 시작되는  중추신경의 척추 그 24마디
의 각추골의 추간공을 통하여 나와  여기서부터 말초신경 기관으로서의 기
능으로 각  기관에 전달되어, 신체의  내장기관이나 각 골격과 근육기관에
작용하여 우리의 삶을 영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사고들이나 생활습관, 운동중의 부상 또는
삐뚤어지게 앉는다던가 하는  나쁜자세, 출산, 스트레스 등  늙음으로 인한
척추 퇴행성 등으로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척추에 무리를 받게 되
어 여러 가지 척추 변형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일로 인하여 척추가  변형된 것을 변형되지 전에 미리
예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지는 알지만, 이왕 이렇게 변형된 것은 더 이
상은 변형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하여야 하며, 정상으로 고
칠 수만 있다면 고치도록 노력해야될 것입니다.
  척추질환의 여러 가지 증상도 척추  유연성 운동으로 척추를 부드럽게하
여 척추가 가동하는데 장애를 받지  않아야 하며 척추 전만이든, 후만이든,
측만 등 역시도 머리에서 발끝까지의  배쪽의 전방근육과 등쪽의 후방근육
이 저항을 받지않게 늘려주는 운동으로써 등굴리기 운동이나 등 신장운동,
붕어운동 등으로 척추를  유연하게 하여야만 척추병을 예방  및 치료될 수
있는 것입니다.

                     척추와 조혈작용의 관계

  우리 몸 속의 혈액은  골격의 관절두와 척추골속에서 생성되며, 특히 대
부분의 혈액은 척추골속에서 만들어지고  있으며, 우리 몸 속의 유기물 역
시도 골격속에 만들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척추가 똑바르고 튼튼하여야만 건강해질 수 있는 것이며, 척추운
동을 열심히 하게  되면 척추가 중추신경의 자극을  받아 조혈작용이 왕성
하게 되고 자율신경과 미주신경이 원할하게  통하게 되어 내장기능이 좋아
지고, 혈액순환이 잘되어 건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체의 모든 신경은  척추관을 통하여 각 기관에 전달되며, 척추가
만곡되거나 경직으로 인하여 척추가 굳어지게 되면, 조혈작용을 제대로 못
할뿐만 아니라 골기능  저하 및 골다공증등 척추신경  장애로 인하여 내장
기능장애 및 혈액순환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체의 건강을 위해서는 척추의 골격이 똑바르고 튼튼하여야 하며,
축추 유연성 운동 및 척추근육강화운동을 하게 되면, 인체내의 산소공급이
원할히 잘 되고, 조혈작용이  왕성하여 새로운 피의 공급이 잘되고 혈액순
환도 잘되어 건강하게  되며, 여자는 섹시하고 활력있는  사람으로, 남자는
정력이 왕성한 멋있는 사람으로 삶이 열릴 것입니다.

                                           -체력단련지 11월호 中에서
 제목 : 피서지에서 할 수 있는 요통예방운동

   무더운 여름에 요통을 다스리기 위해 집안에 들어앉아 침상안정을 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봅니다. 급성 요추염좌나 급성 요추간판탈출증 조차
도 3일 이상 침상안정을 하는 것은 치료에 별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 1992년
에 여러 척추전문 의사에 의해 규명되어 미국, 캐나다 척추학회는 침상안정
은 급성기에 3일 이내로 하는 것이 좋으며 최대 기간을 1주 이하로 규정하
였습니다. 만성 요통이나 만성 요추간판탈출증은 오히려 활동을 적절히
하는 것이 요통과 신경통의 호전에 도움이 됩니다.

   1. 신선한 공기 속에서 호흡 운동과 빨리 걷기
   - 신선한 공기의 이점은 너무 적게 알려져 있습니다. 침실, 거실, 직장
     사무실에 들어가 오래 앉아 있으면 공기가 너무 탁하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이런 방들은 자주 환기를 시켜주어야 하듯이 특히 허리가
     아픈 사람은 산이나 바다로 나가 신선한 공기를 들여 마시는 것이 필
     요합니다. 규칙적으로 신선한 공기 속을 빠른 속도로 걸으면서 충분한
     산소를 들여 마시면 낫는 과정이 촉진됩니다. 천천히 걷는 것은 호흡
     을 촉진시키지 못함으로 효과가 적습니다. 빨리 걸어야 많은 호흡을
     합니다. 그러나 뛰는 것은 척추에 충격을 줌으로 좋지 않습니다.

   - 구두를 신지 말고 쿠션이 들어 있는 운동화나 맨발로 모래 속을 걸어
     야 효과가 더 큽니다. 호흡은 폐 속 깊이 빨아들여야 합니다. 매연이
     있는 도시에서의 호흡법과는 틀리게 몸 속의 세포를 산소로 채워 넣
     는 느낌으로 깊이 들여 마십니다. 깊은 호흡 운동은 복근을 강화하고
     내장을 움직여줘 요통 호전에 도움이 됩니다. 복부의 근육을 의식적
     으로 힘껏 사용하고 불리고 꺼뜨립니다. 걸으면서 아랫배를 당겨 넣
     고 내불리는 호흡법은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자율 신경계를 활성
     화시킵니다. 변비가 없어져 요통이 감소하는 부수효과도 봅니다. 하
     루에 15분씩 아침, 점심, 저녁에 빨리 걷기와 깊은 호흡법을 신선한
     공기의 바다나 산에서 시행합니다.

   2. 해수욕의 치료효과
   - 바닷물 속에는 포타슘, 칼슘, 마그네슘, 아이오다인 등 풍부한 미네랄
     이 들어 있습니다. 바닷물은 삼투압 효과가 있어서 몸을 바닷 속에
     담그면 아픈 다리가 좋아질 수 있습니다. 부은 다리 속에 있던 수분이
     빠져 나가 무거운 다리가 가벼워질 수 있습니다. 비만인은 체중이
     허리에 과도하게 걸리고 허리의 만곡이 증가하여 요통이 옵니다. 이런
     비만과 체중과다도 바다 속에 들어가면 도움을 받습니다. 바다 속에서
     수영이나 걷기를 함으로써 신체대사가 증가하여 지방이 줄어들기 때문
     입니다. 바다 공기를 마시고 바다에서 목욕하기는 혈액순환장애와
     당뇨병에도 좋습니다.

   - 해변을 걷고 해수욕을 하고 모래사장을 걷는 것은 요통을 악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호전을 시킵니다. 단 수영시 평영보다는 배영과 자유형
     이 좋고 접영은 금물입니다. 접영은 수영선수에게도 요통을 일으킬
     수 있는 과격한 동작이기 때문에 절대로 하지 말 것을 권합니다.
     해수욕을 시작하기 전과 마칠 때는 뜨거운 물로 샤워하거나 데워주기
     를 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입니다. 아니면 뜨거운 모래 속에서 수영
     전후 몸을 데우고 식힙니다.

   3. 피서지에서의 요통예방자세
   - 양 손에 물건을 균등히 나누어 들기는 중요하며 몸 앞에 물건을 들지
     않고 양 어깨에 균등히 무게가 걸리도록 배낭을 등에 매는 것이 좋습
     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허리를 회전한 상태에서 앞으로 숙이지 않는
     것입니다. 허리를 돌린 상태로 물건을 들거나 물건을 줍기 위해 허리

     를 숙이면 순간적으로 허리 디스크를 둘러 싸고 있는 섬유테가 찢어
     지는 경향이 높다는 것을 척추의사들이 사체 실험으로 관찰, 증명하
     였습니다. 한 발을 앞으로 내세운 상태로 서서, 무릎을 굽힌 상태로
     몸을 낮추는 것도 중요합니다.

   4. 피서지에서의 허리 강화운동
   - 배낭이나 모래 언덕이나 바위나 의자를 이용하여 허리를 뒤로 제끼
     는 신전운동과 허리를 앞으로 숙이는 굴곡운동을 하면 좋습니다. 이
     운동은 스웨덴 구텐베르그 의과대학에서 실험한 결과 효과가 우수함
     이 증명되었습니다.

   - 허리 신전운동 :
     배를 상자나 이불더미 혹은 모래 언덕, 배낭 등에 얹고 발을 누군가
     고정한 상태에서 허리를 신전하는 운동입니다. 15초 이상 그대로 유
     지합니다. 한번에 10회씩, 하루 아침, 점심, 저녁으로 3번을 합니다.

   - 허리 굴곡운동 :
     의자, 배낭, 이불더미, 상자 등에 꿇어 앉습니다. 앞으로 허리를 구
     부리고 그 뒤에 바로 폅니다. 이때 허리를 곧추세우며 뒤로 제껴지지
     않도록 주의합니다. 지나치게 앞으로 숙여지는 것을 막을 정도로 숙
     일 때 수평을 유지합니다. 한번 할 때 가능한 한 많이 하고, 하루에
     아침, 점심, 저녁으로 3번을 합니다.

 제목 : 자녀와 함께 집에서 할 수 있는 요통예방운동

   1. 알고 있으면 유익한 요통 상식
   플로리다 의과대학의 연구결과 요통의 원인 중 80%가 허리 주변근육의
약화에 기인한다고 합니다. 근육과 뼈가 자라고 근력이 향상되는 성장기
에 요통을 앓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요통은 30-60세 사이에 집중적으
로 발생합니다. 30세가 지나면 인간은 그 성장의 정점을 지나 특별히 운
동을 하지 않는 한 근력과 뼈의 구조 등이 약화되기 마련입니다. 특히 현
대문명의 발달은 인간의 운동범위를 점차 축소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의 움직임 형태는 대개 앉고, 서고, 걷고, 누운
동작 등입니다. 그런데 일상생활 동작의 대부분은 신전자세 보다는 굴곡
자세로 이루어집니다. 어려서부터 하게 되는 공부 자세는 굴곡자세의 대
표적인 예입니다. 흔히 앞으로 구부리는 굴곡자세는 물건을 든다거나,
공부 한다거나, 사무를 볼 때 흔히 하게 되는 자세입니다. 몸을 뒤로 젖
히는 신전은 오랜 굴곡자세로 인한 피로감을 해소하기 위한 운동의 자세
로서 쓰이는 경우에 국한됩니다. 이처럼 자연스럽게 척추의 신전근은 굴
곡근에 비해 약화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전근의 약화는 신체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요통을 유발하는 원인이 됩니다.

   나이에 따른 체중 증가는 상태를 악화시킵니다. 여기에 사는 동안 받
게 되는 인생의 스트레스가 신체의 조건을 점차 악화시키는 역할을 합니
다. 그 외에도 신체 각 기관의 자연스러운 퇴행도 요통의 원인이 됩니다.
근육은 쓰면 쓸수록 젊어진다고는 하지만 그러한 것도 나이의 벽에 부딪
치면 발전에 한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보다 중요한 것은 젊
은 마음을 유지하면서 젊게 살고자 노력하는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
다.

   어린시절의 바른 자세에 대한 교육과 자신의 신체 조건과 성격에 부합
하는 운동을 선택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강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올바른 자세 습관과 운동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부모들이 먼저 요통의 원인을 올바로 이해하고 있을 필요
가 있으며 이러한 건강상식하에 자녀들에게 올바른 교육을 제시하고 가르
쳐야 할 것입니다.

   2. 어린이에게 가르쳐야 할 바른자세습관
   6세 부터는 놀이 활동이 더욱 많아지면서 사물에 대한 이해가 높아져
자연히 호기심도 많으며 놀이에 집중하는 경향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놀이에도 바르고, 바르지 못한 자세가 있으며 이러한 자세에 따라 자세
습관이 형성되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버릇이 청소년기까지 연장된다는 점
을 생각해 볼 때 어린이의 바른 자세가 일생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매
우 중요한 것입니다.

   ⑴ 올바르지 않은 자세와 생활
     ① 높은 베개를 사용--머리와 몸이 수평이 되도록 베개를 선택합니
                          다.
     ② 엎드려 책보기--책상에서 책을 보게 한다.
     ③ 구부정한 자세로 의자에 앉기 --엉덩이를 의자 뒷면에 밀착시키
                                      고 등을 곧게 세우게 합니다.
     ④ 뒷굽이 딱딱한 신발은 나쁘다.
     ⑤ 물건을 허리 힘으로만 드는 경우--무릎을 구부려 다리 힘으로만
                                        들게 합니다.
     ⑥ 소파에 그냥 아무렇게 눕는다던지 잠자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⑵ 자녀와 함께 하는 요통예방체조

     ▶유연성체조--근육이나 인대 및 관절의 유연성을 살립니다. 어릴 때
                   부터 몸의 유연성을 길러주면 어린이들이 놀이를 하면
                   서 잘 다치지 않게 됩니다.
     ① 엉덩이 굴곡 운동--교대로 무릎을 가슴으로 당겨 뒷근육을 늘려
                          줍니다.(3회 실시)
     ② 누워 허리 돌려 늘리기--바로 누워 무릎을 반대편으로 가볍게 돌
                               려 지긋이 누릅니다. 무리하게 충격을 주
                               거나 누르지 않습니다. 10-12초간, 교대
                               로 3회 실시
     ③ 뒤로 신전하기--엎드려 상체를 뒤로 천천히 신전시켜 10-12초간
                       유지합니다.(3회 실시)
     ④ 서서 허리 굽히기--한발을 앞에 내놓고(교대로) 호흡을 이용하여
                          충분히 코로 숨을 들여마신 후 내리면서 입으
                          로 천천히 내쉽니다. 올릴 때는 정지상태에서
                          먼저 코로 숨을 반정도 들여 마신 다음 배에
                          힘을 주고 천천히 일어섭니다. 10-12초간 3회
                          실시 합니다.
     ⑤ 뒤로 신전하기--어깨 넓이 간격으로 다리를 벌리고 한 발을 앞으
                       로 내밀고 손으로 엉덩이 부위를 감싸고 몸을 뒤
                       쪽으로 천천히 신전시킵니다.
     ⑥ 서서 옆구리 늘리기--어깨 넓이로 다리를 벌리고 먼저 왼쪽 손을
                            골반상단 옆에 대고 왼쪽으로 신전시킵니다.
                            교대로 10-12초, 3회 실시합니다.

     ▶힘기르기--허리의 근력을 강화하면 척추의 자세를 곧게 만들고 쉽게
               오는 피로를 막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① 바로 누워 양 무릎을 세우고 골반경사를 유지한 상태에서 머리
          와 어깨부위를 살짝 들어올려 6초간 자세 유지, 6초간 쉬고,
          6회 반복합니다.
       ② 엎드려 뒤로 팔을 뻗고 상체와 하체를 동시에 살짝 들어올립니
          다.
       ③ 사지를 엎드려서 무릎을 팔꿈치 쪽으로 교대로 당기면서 6초
          힘주고, 6초 쉽니다.(6회 반복합니다)

   이외에도 부모가 자녀와 함께 할 수 있는 요통을 감소해 주는 스포츠
로는 수영과 등산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물 속에서의 운동은 지상에서 하
는 운동보다 훨씬 재미를 느끼게 하며 허리 뿐 아니라전신에 유익한 운동
입니다. 단 접영은 허리에 부담을 주므로 하지 않아야 합니다. 등산은 허리
를 강하게 만드는 운동으로 온 가족이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정다운 시간을
보냄으로서 정신과 육체에 유익함을 주는 좋은 운동입니다.

 제목 : 여행중에 지켜야 할 요통예방수칙

   나쁜 자세로 일하고 공부하고 생활하는 사람들은 늦어도 30대 말이나
40대 초부터는 흔히 허리가 아파 고생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각기 생활
환경이 틀리고 활동하는 일의 성질도 다르지만 요통으로 고생하는 사람
들의 대부분은 대개 나쁜 자세습관이 원인이 됩니다. 요통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나 아직 요통은 없지만 나쁜 자세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좋
은 자세가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림으로써 최대한 요통을 예방할 수 있
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요통의 재발과 악화를 중지시키고 예방하려면 그리고 이
미 나쁜 자세가 버릇이 되어 요통을 앓고 있다면 다음의 네가지 즉 앉기,
서기, 눕기, 물건 들기에 대해서 어떤 자세가 좋은 것인지 반드시 알 필
요가 있습니다. 올바른 자세에 습관을 들여 거동한다면 허리의 근육, 인대,
관절, 디스크 등에 주는 스트레스가 줄어들어 허리디스크병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여행중에 지켜야 할 요통예방수칙은 다음 네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1. 물건 운반 요령
   2. 아이들 동반시 유의 사항
   3. 자가 운전시 유의 사항
   4. 대중교통 이용시 차에서의 바른 자세

   1. 물건 운반 요령
      허리는 가급적 곧은 자세를 유지한 체 자세를 낮추어 다리의 힘으
   로 물건을 들도록 합니다. 물건의 가지수가 많을 때는 가급적 양손에
   균등하게 나누어 들어 신체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합니다. 한쪽으
   로 물건을 드는 습관은 척추측만증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주의하여야
   합니다.

   2. 아이들 동반시 유의 사항
      아이를 안을 때도 마찬가지로 자세를 낮추어 다리의 힘을 최대한
   이용하여 아이를 들도록 합니다. 아무리 튼튼한 사람도 35세 이후에
   허리가 퇴행한다는 점을 명심하여 아이를 안을 때 바른 자세를 유지
   하도록 주의하여야 합니다. 아이를 앞으로 안는 자세보다는 뒤로 업
   는 자세가 척추에 무리가 덜 가는 자세입니다. 최근에 아이를 앞으로
   매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허리에 부담을 주는 자세이므로 가급적
   피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3. 자가 운전시 유의 사항
      자세에 따라 허리디스크에 걸리는 무게는 일반적으로 서있는 것보
   다 편하다고 생각하는 앉는 자세에 약 40%의 무게가 더 걸립니다. 따
   라서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허리에 걸리는 부담은 늘게
   되고 교통체증으로 인한 스트레스의 증가는 허리디스크의 상태를 더욱
   악화시킵니다.
      가급적 운전을 매 2시간마다 멈추고 휴게실 같은 곳에서 허리 신전
   운동과 앞으로 굽히는 굴곡운동, 그리고 허리를 좌우로 움직여주어
   허리에 걸린 스트레스를 감소시켜주는 것이 요통을 예방하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여의치 않으면 앉은 자세에서 가급적 허리
   를 펴고 가능한 움직임의 범위내에서 많이 움직여주는 것이 바람직합
   니다. 움직임이 없는 자세에서는 가급적 자연스러운 척추의 만곡을 유
   지하는 것이 척추디스크에 걸리는 압력을 최소화하는 것이므로 의자가
   불편할 경우 허리부분에 쿠션을 받치는 것도 허리의 부담을 줄이는 하
   나의 방법입니다.

   4. 대중교통 이용시 차에서의 바른 자세
      기차는 비교적 움직임의 범위가 승용차에 비해 제한되어 있지 않으
   므로 허리에 부담을 덜 주는 여행 방법인 셈입니다. 하지만 기차여행
   중에 수면을 취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중에는 허리를 공중에 두어, 좌
   석에 밀착시키지 않고 다리와 등만을 기대는 경우가 있습니다. 꼭 수
   면시가 아니더라도 이러한 자세는 자연스러운 허리의 만곡을 변형시키
   는 자세이며 디스크에 허리를 굽히는 것과 같은 동일한 압력을 허리에
   주게 되므로 이러한 자세는 피해야 합니다.
      고속버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며 단 움직임의 범위가 고속버스의
   경우는 제한되므로 휴게실에 정차할 경우에 차에서 내려, 반드시 시
   원한 공기를 마시면서 허리 신전운동과 굴곡운동 그리고 좌우로 움직
   여주는 운동을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행기의 경우는 앉은 자세를
   유지하는 시간이 한 시간을 넘지 않는 경우에는 비교적 허리에 부담을
   덜 주는 여행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짧은 시간일지라도 허리
   를 좌석에 밀착시키고 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상으로 여행중에 지켜야 할 요통예방수칙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항은 꼭 여행 중이 아니더라도 일반인이 요통을 예방하기
위하여 알아야 할 사항으로 바른자세습관을 가지는 것이 요통을 예방하는
최선의 길이라는 점을 명심하여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개인의 건강상태,
나이 등에 적합한 운동법을 익히고, 가볍게 운동하는 습관을 기름으로써
보다 건강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목 : 요통을 방지하는 평소 생활습관에 대하여

   요통발생의 원인은 크게 네 가지 경우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척추뼈에 변성이 오면서 발생하는 퇴행성 변화에 의한 요통;
선천적인 척추 이상이나 측만증에 의한 요통; 복잡한 산업사회에서 생활
중에 생기는 정신적 긴장, 스트레스로 인한 심인성 요통; 그리고 요통발
생의 80%를 차지하는 역학적 요통을 들 수 있습니다.

   역학적 원인이라는 것은 비만이나 임신과 같은 체중의 과부하, 불량한
자세, 무거운 것을 들다가 다치는 경우 등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역
학적 요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조심한다면 80%나 차지하는 요통 환자의 수
는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모든 병이 그렇지만 척추에 생기는 디스크병은
이상과 같은 역학적 요인에 대한 이해와 그에 대한 실천으로 얼마든지 예
방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생활에 쫑기는 현대인들이 요통이 심하게 오기
전에는 이런저런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는 참으로 안타
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젊었을 때는 건강하였던 사람들도 나이가 들어 3,40대에 이르면서 한
번 쯤은 요통을 호소하게 되며 특히 임신 경험이 있는 여성들의 경우,
40대 이전에 이미 심각한 지경에 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허리병이
역학적 원인에 기인한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평소 요통을 방지하는 평소
생활습관을 들임으로써 이러한 상황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을 제대로 알
고 있는 경우가 드뭅니다. 이것은 역학적 원인에 대한 교육이 잘 되어 있
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취미생활이나 운동습관 혹은 자세습관이 있습니다.
가령 팔자걸음을 걷는다든지 앉을 때 삐딱하게 앉는다든지, 혹은 서있을
때 한쪽 다리에 의존하여 선다든지-그것도 유독 왼쪽 혹은 오른쪽에만-,
그리고 오른손잡이의 경우 오른손으로만 무거운 물건을 든다든지 하는 것
은 바르지 못한 자세습관이며 이러한 것은 역학적 요통을 유발하는 직접
적 요인으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상태가 점점 악화되는 요통 유발동기가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평소 생활 습관으로 요통에 해로운 것으로 음주 습관과 흡연을 들 수
있습니다. 담배는 폐암이나 심장병, 뇌졸중을 유발하는 것 외에도 뼈의
미네랄 성분을 감소시키고 이러한 미네랄 성분의 감소가 척추뼈에 미세
한 골절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적당히 마시는 술은 긴장을 완화하고 스
트레스를 감소시키지만 지나친 경우, 신체에 칼슘이 부족해지고 허리의
근육, 인대, 디스크에 무리가 올 수 있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따라서
젊어서 바른 음주습관을 들이고 담배를 점차 줄여감으로써 요통의 원인
을 제거하는 생활습관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독서, 영화감상, 바둑 등의 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장시간
앉아 있게 되는데 이러한 경우 허리에 무리를 주는 자세는 피해야 할 것
입니다. 서 있는 것보다 앉아 있는 것이 허리에 더 큰 부하를(40%이상)
준다는 것을 안다면 더욱 바른자세로 앉아 있는 습관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운동을 하는 경우 운동에 대한 이해와 자신의 신체조건에 적합한 운
동량을 파악하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평소 운동을 하지 않다가 운동
을 하게 되는 경우 나이의 적고 많음을 떠나서 허리에 심각한 문제를 유
발할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근육이 충분히 이완되어 있지 않
은 상태에서 운동을 할 경우 근육의 이상과 함께 척추 디스크에 무리를
줄 수 있습니다. 바른 운동습관이란 운동 전에 충분히 몸을 움직여 자신
이 하고자 하는 운동에 사전 적응 단계를 거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

다.

   수영을 하기 전에 준비운동을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사실
입니다. 하지만 볼링의 경우는 대부분 준비운동 없이 하는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볼링은 특히 준비운동으로서 허리를 풀어주고 시작해야 하는 운
동으로 한 쪽에 걸리는 무게가 다른 운동에 비해 특히 심하고 허리를 많
이 사용하는 운동인 만큼 오히려 수영보다도 준비운동을 철저히 하여야
하는 운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골프나 테니스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운동이 심폐기능을 강화시키고 신진대사를 활발히 해 건강에 도움을
주지만 준비운동 없이 혹은 자신의 신체조건과 컨디션을 무시한채 행하는
운동은 오히려 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바른 운동습관으로서
준비운동을 하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제목 : 골다공증을 위한 식이요법

   1. 골다공증의 개요
      최근 의학의 발달과 생활 환경의 개선 등으로 인구의 수명이 연장
   됨에 따라 대표적인 노인병이라 할 수 있는  노인성 골다공증 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⑴정의
      골다공증(Osteoporosis)이란 같은 연령과 성별의 정상 사람에 비하
    여 골의 화학적 성분에는 변화가 없고 본래 골기질의 감소로 인하여
    골질량의 현저한 감소를 일으킨 질환으로 골대사성 질환중 가장 흔한
    것입니다.

    ⑵원인
      골다공증은 뼈의 생리적 노화에 여러가지 인자가 작용하여 발병되
    는 것으로 칼슘, 인 및 단백질의 부족, 비타민D 별핍, 갑상선호르몬
    등 호르몬 장애, 운동부족 등이 원인이 됩니다.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골의 흡수와 형성이 되풀이되면서 골량을 일정하게 유지하는데, 노년
    기에 이르면 칼슘의 배설량이 증가하며 이를 보충하기 위해 뼈의 손
    실이 일어나 심하면 골다공증이 생기는 것입니다.

    ⑶증상
      골다공증의 초기에 나타나는 증상은 요통이며 대체로 연령이 증가
    함에 따라 뼈가 약해지기 때문에 병적골절이 일어나기 쉽습니다. 골
    절을 잘 일으키는 부위는 척추, 대퇴경부, 팔목주위, 상완골 등으로
    적은 힘을 받을 경우 생기기 쉽습니다. 골다공증은 남자에서 보다 여
    자에서 약 4배나 많고 폐경기 이후의 여성은 뼈의 손실 속도가 빨라
    골다공증의 위험이 특히 높습니다. 폐경을 한 여성들은 혈장 칼슘농
    도가 상승하고 소변 배설량이 증가하며 뼈의 용출을 증가시켜 이를
    보충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Estrogen) 분비
    감소에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되며, 에스트로겐을 공급하면 혈장과 소
    변 칼슘의 감소와 함께 뼈의 손실도 감소합니다.

   2. 골다공증 예방을 위한 식이요법
    ⑴칼슘의 중요성
      골다공증을 예방, 치료하기 위해서는 칼슘이 충분히 골급되어져야
   합니다. 칼슘은 인체내에 가장 많이 들어있는 무기질로 체내에 보유된
   칼슘의 99% 정도는 인산과 함께 뼈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뼈가
   성장하고 석회화하여 단단해지려면 칼슘과 인의 충분한 공급이 필요합
   니다. 또한 칼슘은 뼈를 만들 뿐만 아니라 정상 신체 기능 유지에 꼭
   필요한 물질이나 우리 몸 안에서 생산되지 않으므로 음식물을 통해서
   섭취해야만 합니다. 뼈는 칼슘을 저장하는 곳이지만 칼슘섭취가 부족
   하거나 장에서 칼슘 흡수가 잘 안되면 뼈에 저장되어 있던 칼슘이 동
   원되고 저장된 양이 줄어들어 뼈가 약해집니다. 그러므로 나이가 들어
   뼈에 칼슘이 부족하여 골다공증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뼈
   가 튼튼해지는 젊은 나이에 충분한 칼슘을 섭취하여 뼈에 칼슘을 저장
   해두어야 하며, 나이가 들어 식욕이 떨어지거나 다른 원인으로 칼슘이
   부족하면 뼈가 더욱 약해지므로 칼슘이 충분한 식사를 해야 합니다.

    ⑵칼슘 권장량
      우리나라에서 정상 성인의 칼슘 권장량은 1일 600mg이고 몸이 많이
   자라나는 성장기에는 800mg 그리고 임신중에는 1000mg, 수유부에는 1100
   mg까지 섭취를 권장합니다. 1일 권장량은 과학적인 기준에 의해 모든
   건강한 사람에게 필요한 영양소량이며, 병이 있거나 약을 먹고 있는
   경우에는 필요량을 개인에 따라 다르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골다공증의

   위험성이 높은 사람에서는 하루에 1500mg의 칼슘을 필요로 하고,
   골다공증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하루에 1000mg의 칼슘을 섭취
   해야 합니다.

    ⑶칼슘을 많이 포함한 식품
      칼슘을 많이 포함한 식품은 뼈째먹는 생선(예:멸치, 미꾸라지,
   양미리, 뱅어포, 통조림된 생선 등)과 우유 및 유제품이며 그외 우렁
   이, 암치, 참치, 대하, 동태, 해삼, 두부, 검정깨, 참깨, 호두, 미역,
   다시마에도 칼슘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짙은 녹색잎 채소에도
   일정량의 칼슘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칼슘은 실제로 우유 및 유제품
   을 섭취하지 않으면 다른 식품으로부터 적당량의 칼슘을 섭취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우유 및 유제품이 소화가 안되는 사람은
   한번에 소량씩, 또는 식사와 같이 우유를 먹으면 증상이 보다 가벼워
   지며, 시판중인 락토분해우유 등을 이용하면 훨씬 도움이 될 것입니
   다.

 제목 : 직장인을 위한 허리건강법

   통계학적으로 우리 인간은 약 80% 가량에서 요통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 몸의 척추의 구조를 알게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척추는 처음 어머니의 자궁속에 있을때는 C자 모양을 하다가 태어
나서 앉고 서고 걷기 시작하면서 옆에서 보았을때는 S자 모양을 이루게 됩
니다. 왜냐하면 척추는 우리 몸의 정가운데에 위치하는 것이 아니고 뒷쪽
에 위치하게 되고 그 앞쪽으로 장기(臟器)들이 자리하게 되므로 불균형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 인간은 높은 비율로 요통을 경험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중노동자보다는 경노동자나 책상에 앉아
서 근무하는 사람이 허리에 통증을 느끼기 쉽습니다. 하루종일 책상에 앉
아서 일하는 사람중 평소에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지 않는 사람의 60%가
요통을 앓고 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같은 요통을 예방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평소 자신
의 운동능력에 적합한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걷고, 앉고, 서있는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이 그 예방법의 전부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면 직장
생활에서 어떤 자세로 일하는 것이 가장 위험한 자세인가를 알 필요가 있
습니다. 그것은 허리를 돌린채 앞으로 숙이는 자세입니다.

   직장에서 이런 자세를 취하는 경우는 흔합니다. 가령 바닥에 떨어진
볼펜이나 종이를 주울때를 보면 대부분 앉은 자리 옆에 떨어지기 때문에
자연히 허리를 옆으로 돌린채 앞으로 상체를 숙여서 줍게 됩니다. 마찬
가지로 책상 아랫서랍을 열때도 한쪽으로 허리를 기울이고 돌린채 서랍을
열게 됩니다. 이때 일어서서 무릎을 구부려 몸을 낮춘 상태에서 서랍을
열면 허리가 구부러지는 위험을 막을 수 있습니다. 물건을 주울때도 그
대로 앉은채 몸을 돌려 주울 것이 아니라 일어서서 바닥에 떨어진 물건
을 정면으로 보면서 몸이 물건을 향해 있는 상태에서 무릎을 낮추어 혹
은 한쪽 다리를 앞으로 내민 상태에서 물건을 줍는 것이 좋습니다. 서있
을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상에서 발을 움직이지 않고 몸만 돌려 책상
모서리에 있는 서류를 줍거나 옆 책상의 서류를 집을때 허리를 쉽게 다
칩니다. 이때도 몸을 돌릴 것이 아니라 발을 움직여 그 서류 가까이 접
근하여 몸이 서류 정면으로 향한 상태에서 집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물건을 들때에는 한쪽으로 허리가 휘어지지 않도록 좌우로 나
누어서 균형이 잡히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즉 직장에서 한손에는 서류
가방을, 다른 한손에는 버버리코트를 드는 식으로 나누어 들어주는 것이
좋다는 뜻입니다. 또한 무거운 물건은 여러 사람과 나누어 들어 무게를
분산시켜야 하고 물건을 들때는 허리를 꼿꼿이 세워야 합니다. 무거운 물
건이라고 앞으로 구부정한채 팔을 몸에서 멀리 뻗은채로 드는 것은 위험
합니다.

   또한 서있을때는 자연스럽게 한쪽 발을 앞으로 내미는 것이 좋습니다.
이때 한쪽 다리를 보다 높은 곳에 올려 놓으면 더욱 좋습니다. 흔히들 취
하는 군인 자세의 차렷자세는 허리에 아주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의자는 등받이가 가벼운 S자 곡선을 가진 것으로 약 8도 내지
10도 뒤로 기울여져 있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허리는 앞으로 약간
만곡되어 있고 등은 약간 뒤로 돌출되어 있어 허리의 생리적인 올바른 커
브를 유지시켜 주지 못하는 의자는 허리를 아프게 하기 때문입니다. 직장
에서 그러한 의자를 사용할 수 없을 때는 쿳션을 허리의 오목한 곳에 바
치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그런 쿳션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책이나 신문
뭉치를 허리에 받쳐도 좋습니다. 허리가 아플때에는 무엇인가에 발을 올
려 놓는 것이 좋습니다. 두꺼운 전화번호부나 서류가방 혹은 책상서랍을
발 밑에 두고 발을 그위에 얹어 놓으면 허리가 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

을 것입니다. 그리고 딱딱한 의자보다는 약간의 쿳션이 있는 것이 좋으며
의자가 너무 높아 발이 땅에 편안히 닿지 않으면 허리가 등받이에서 떨어
져 그만큼 척추에 무게가 많이 걸리므로 자신의 키에 맞는 높이의 의자를
사용해야 합니다. 또한 일할때에는 엉덩이를 의자 깊숙이 넣고 허리와 등
을 등받이에 대어 체중을 분산해야 합니다. 엉덩이만 의자에 걸치고 일하
는 것은 쉽게 허리와 목에 긴장성 근육통을 일으키고 일의 능률도 저하됩
니다.

   운전할때도 주의해야 합니다. 자동차의 시트높이는 운전자의 키와 잘
맞아야할 뿐 아니라 운전자세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의자의 등받이는
약 110도 정도로 뒤로 약간 제쳐주는 것이 허리에 가장 좋고 또한 자신
의 다리 길이를 감안하여 엑셀레이터를 자연스럽게 밟을 수 있도록 의자
를 앞으로 당겨 앉습니다. 특히 목적지에 도달하여 차에서 내릴때 한쪽
다리만 밖으로 내민채 몸을 급격히 회전시키면서 내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 또한 요통을 일으키는 중요한 원인이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운동을 하는 경우 운동에 대한 이해와 자신의 신체조건에 적합한 운
동량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평소 운동을 하지 않다가 운동을 하
게 되는 경우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허리에 심각한 심각한 문제를
유발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근육이 충분히 이완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
서 운동을 할 경우 근육의 이상과 함께 척추 디스크에 무리를 주기 때문
입니다. 바른 운동습관이란 운동 전에 충분히 몸을 움직여 자신이 하고자
하는 운동에 사전 적응단계를 거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운동을 하는 경
우엔 반드시 준비운동을 충분히 하도록 합니다.

   그외에도 평상시 허리강화체조를 꾸준히 하여 허리근육을 강화시켜주
고 음주와 흡연을 삼가하도록 합니다.

 제목 : 상체 견인기구 버테트랙(Vertetrac)

   지금까지 주로 이용돼왔던 골반견인술과 달리 버테트랙을 이용한 상체
견인술은 디스크 치료의 새로운 방법으로, 디스크 내부의 압력을 효과적
으로 떨어뜨려 탈출 수핵이 척추신경근을 압박하지 않도록 해주는 것입니
다. 똑바로 누운 상태에서 몸에 추를 달고 견인시키는 종전의 치료와는
달리 디스크에 중력이 가해 지는 서있는 자세에서 수직방향으로 상체를
견인시킨 후 가벼운 보행으로 관절에 움직임을 주어 정상적인 디스크 형
태로 유도하며 특히 압박된 신경을 풀어 다리가 당기는 증세를 없애고 고
질적인 하체의 통증까지 제거 시킵니다.

   수술을 해야만 하는 부위가 버테트랙을 하므로써 수술을 피할 수 있으
며, 하루에 약 30분 이 기구로 치료하는 동안 편안한 위치에서 걸을 수
있고, 서 있을 수도 있고 앉을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제작돼 자국민(自國民) 5천여명의 임상을 통해 요통을
치료하는 효과가 입증된 상체 견인기는 척추관절과 관절 사이 그리고 피
부의 신장을 통해 동통의 완화와 비정상적인 해부학적 상태를 바로잡아
주는 보존적 치료 장비입니다.

   버테트랙의 특징은 전원(電源)을 사용하지 않으며 간단한 조작법과 절
대적 안정성으로 사용하기 쉬워 병원에 가지 않고 환자 혼자서 집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측만증(Scoliosis)환자의 척추 교정에
효과가 좋습니다.

   버테트랙을 사용할 때 주의할 점은 착용전 가능하면 음식물 섭취를 삼
가하고 착용때 통증이 심하면 사용을 중단하고 치료사에게 물어 문제를 해
결한 후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슴의 압박을 특별히 호소하는 심폐환
자나 염증, 횡돌기 염증성 병변, 4개월 이상의 임삽부, 요추부 좌상 또는
상처가 늘어나 있는 경우 그리고 일반 수술 3개월 이내의 환자는 사용을
금합니다.

 제목 : 재활운동기구 메덱스(MedX)

   메덱스 허리운동기구는 미국 메덱스사와 플로리다 의과대학 척추건강
연구소에서 개발한 컴퓨터화한 기계로 허리의 기능을 검사하고 허리의 힘
을 강화시키는 두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통의 1차적 원인으로 요추부위의 연조직 약화가 자주 거론이 되고
있고 또한 척추 주위의 근육간의 불균형시 척추의 약화적 움직임이 원활
하지 못하게 되면 주위 관절에 과도한 하중이 걸리게 될 뿐 아니라 주위
근육 약화도 초래되어 요통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허리 주위
근육의 강화운동은 요통환자의 재활치료분야에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허리 주위 근육의 유연성과 강도를 증가시키는데 탁월한 효과를 보이
고 있는 메덱스는 여러가지 저항운동 중 등척성운동(근육의 수축시 같은
길이를 유지하게 하는 것)을 시키는 것으로서 허리의 움직임에 관여하는
고관절과 골반 부위를 완전히 고정하여 순수하게 허리의 신전근육만을 강
화시켜 주는 것이 특징입니다.

   임상통계 자료에 의하면, 처음 4주간은 1주일에 두번씩, 그 다음에는
1주일에 1번씩 10분 내외의 운동을 총 12주 실시하였을 때 허리 근력이
약 300%까지 증가하는 놀라운 임상효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로 보존
적인 요법의 치료를 요하는 요통환자와 수술 후의 환자에 대해서 근육약
화를 방지함으로써 요통의 재발을 막아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으며, 허리
근육 강화를 위한 건강 운동기구의 하나로써 일반인에게도 이용될 수 있
는 다양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종류로는 허리외에 목 근육을 강화시키는 경추 신전 및 회전 메덱스,
무릎 근육을 강화시키는 메덱스가 있습니다.

 제목 : 자기 공명 진단 장비 (MRI)

   자기공명 진단장비(MRI)는 강력한 자기장을 이용한 컴퓨터 촬영장비로
서 인체내부를 수술하지 않고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최첨단의 의료장비
입니다.

   검사로 인한 통증이 전혀 없으며 방사선(X선, 감마선)을 이용하지 않
기 때문에 그에 따르는 위험 및 피폭도 없어 불쾌감이나 불안감없이 검사
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특별한 경우 외에는 조영제를 주사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조영제의 부
작용을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제목 : 목과 허리 보조기

   1. 마이애미 급성기 칼라
      마이애미 급성기 칼라는 걸어다닐 수 없는 상태로 중환자실이나 응
   급실 혹은 누워 있으면서 목을 고정시켜야 되는 경우에 사용합니다. 오
   래 누운 상태로 이 칼라를 차도 불편이 없고 피부가 상하지 않으면서도
   경추를 고정시키는 새로운 칼라입니다. 방수처리 되었으면서도 호흡을
   하는 디렉스섬유로 칼라가 싸여 있으므로 수분을 흡수하고 공기가 피부
   로 순환되는 것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환자의 피부가 편안하게, 습기가
   차지 않으며 누워있는 환자에게 맞도록 제작되었습니다. 또한 매일 피
   부를 닦아 줄 수 있도록 편리하게 설계되었습니다.

   2. 마이애미 제이 칼라
      마이애미 제이 칼라는 경추가 안정되어 있는 환자의 고정을 위해 사
   용되는 것으로 앉거나 서서 걸어다니는 환자들이 불편 없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턱의 각도와 후두부의 각도에 딱 맞는 해부구조를 가지고 있
   고 턱 흉골, 후두부, 쇄골에 골고루 분산되는 접촉 면을 가지고 있어 다
   른 칼라에 비해 불편이 전혀 없으며 고정효과도 탁월합니다. 기술적으로
   진보된 소르바텍스 패드를 사용하여 환자의 피부에서 스며 나오는 습기
   를 재빨리 흡수하고 또한 빠르게 기화시킴으로써 피부는 언제나 깨끗하
   고 땀이 없으며 편안합니다. 턱과 후두부의 패드는 쉽게 떼어내어 씻을
   수 있고, 착용한채 방사선촬영이나 자기공명촬영 등을 그대로 할 수 있
   습니다.

   3. 척추보호대 함스(Harms)
      독일의 저명한 척추전문 의사가 개발한 척추보호대는 수술한 사람
   이나 만성 요통증세가 있는 사람들에게 뛰어난 효과를 보여주는 제품
   입니다. 이 보조기의 특징은 여러 방향으로 힘이 분산되는 네오프린신
   신소재와 특수 탄성재질을 사용하여, 허리부위를 눌러주고 지탱시켜
   주므로써 탁월한 안정성과 고정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체형에
   꼭 맞아 편안한 착용감을 느낄 수 있으며, 신체에 따라 조절 착용이
   가능합니다.

 제목 : 운동부하검사(Quinton)

   운동부하검사는 수년간 운동을 하지 않고 있다가 다시 운동을 시작할
때 의학검사를 비롯한 선행검사 결과 특별한 증상이 없는 경우 부하를 가
해서 잠재되어 있는 질환을 파악하여 안전하고 효율적인 운동을 할 수 있
게끔 해주는 최첨단 운동검사장비입니다. 즉 안정시에 잠재되어 있지만,
발견할 수 없었던 이상과 질병을 운동이라는 스트레스(stress)에 의해 발
견하고 평가하는 검사입니다.

   운동부하검사는
   1. 피검자가 견디어 낼 수 있는 운동 강도의 한계 및 순환기능의 운동
      에 대한 적응능력을 파악하고 최대산소섭취량을 측정합니다.
      즉 운동처방에 있어서 안전한계(운동 강도의 상한선)및 유효한계(하
      한선)를 결정합니다.
   2. 운동이 순환기능과 유산소능력에 미치는 효과를 판정합니다.

 제목 : 골절, 골다공증 예방에는 운동이 "최상의 약"

   골절이나 골다공증 예방에는 운동이 '최상의 약'이라는 사실이 속속
입증되고 있습니다. 다음은 <일간스포츠>에 실린 기사 내용입니다.

   최근 영국의 의학전문지 <브리티시 메디컬> 최신호에 발표된 호주의
애들레이드 의학연구소의 A.G.니드박사의 연구보고서는 운동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뼈가 촘촘해지는 것을 확인했다.

   골다공증클리닉을 다니는 남자환자 137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분석에서
운동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뼈가 현저하게 촘촘해져 골절의 위험이 줄어
들었다. 니드박사는 "운동은 근육을 강하게 만들며 동시에 뼈를 튼튼하게
한다. 운동을 하면 뼈가 압력을 받게 되고 이에 대한 반응으로 우리 몸이
뼈에 칼슘을 공급하기 때문" 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효과는 여성에게서
더욱 확실하게 나타난다.

   근착 미국 건강의학전문지 <아메리칸 헬스>에 따르면 미국 토프츠대학
보스턴 영양 연구센터가 최근 발표한 실험결과는 운동의 효과를 보다 더
정확하게 수치로 증명해준다. 62세 폐경기 이후 건강한 여성 238명을 대상
으로 1년간 관찰한 조사 결과 하루에 1.6km 이상을 걷는 경우 그렇지않은
경우보다 다리뼈의 밀도는 7%, 전체 뼈의 밀도와 강도는 평균 4%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때 걷는 속도는 1.6km를 15분에 걷는 정도가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걷기보다 더욱 좋은 것은 흔히 '헬스'로 부르는 역기들기 등의 웨이트
리프팅 운동이다. 1주에 1번씩 45분간 이 운동을 1년간 계속한 경우 50-
70세 사이 여성 39%가 다리와 척추의 뼈의 밀도가 1% 증가했고 골절 등을
예방하는 균형감각이 14% 향상됐다. 또한 운동을 하는 경우 엉덩이와 척추
아래부분의 근육 강도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36-76% 정도 증가했다.
또한 신체의 지방이 준 대신 근육 함량은 1.5-2kg정도 증가했다.

   이 조사를 지휘한 보스턴 영양센터의 엘리자베스 크랠박사는 "나이가
들수록 위험이 높아지는 뼈의 골절과 골다공증 등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강도가 높은 운동이 아니어도 매주 지속적으로 헬스운동을 하거나 걷기
등의 운동을 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고 충고했다.

 제목 : 제2차 경피적 내시경 척추수술 국제 학술대회

   척추수술에 따른 상처를 최소화 하기 위한 방안이 학계에서 꾸준히 추진
되고 있는 가운데 최소 상처 척추수술법에 관하여 집중적으로 논의하기 위
한 <제2차 경피적 내시경 척추수술 국제 학술대회>가 6월 3일 오후 2시부터
7시까지 라마다 르네상스호텔에서 척추수술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스위스
쥬리히의대 한스 죠르그 로이박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습니다.

   이번 국제 학술대회에서는 척추수술의 역사와 발전사를 짚어보면서 수술
상처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치료결과도 양호한 최첨단 수술기법인 "최소 침습적
척추수술법"과 "경피적 목디스크 수술법"이 소개되는 동시에 실제 임상에 적용
함으로써 이 분야 의료진에게 새 지식을 보급하고 많은 관심을 모았습니다.

   척추전문병원인 우리들병원 주최로 열린 이날 국제학술대회에서는 홀뮴
레이저와 내시경을 병용하여 최소 침습적으로 척추수술을 시행하는 경피적
내시경 수술기법등이 집중적으로 다뤄졌습니다.

   특히 홀뮴레이저와 내시경 병용요법은 요추 배부근과 인대와 신경경막
주위 조직의 손상을 최소화 할 뿐만 아니라 디스크내 압력 감압 후의 임상적
측면에서 기존 수술법보다 시술효과가 매우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또 최소 침습적 척추수술에 따른 적응환자의 선별과
주의 및 금기사항, 내시경 수술기법과 수술 전후의 관리법 등 관련 시술법이
종합적으로 다뤄졌습니다.

   초청연사로 참석한 죠르그 로이박사(국제 최소상처 척추수술학회 사무
총장)는 최소상처 척추수술법과 관련, "경피적 내시경 수술은 수술시 신경
자체를 건드리지 않고 수술하기 때문에 신경손상은 물론 근육 인대 등의
손상 위험성이 전혀 없는 매우 우수한 치료법"이라고 소개했습니다.

   특히 로이박사는 최소상처 척추수술을 위해 내시경 기구 등을 직접 개발
하는 등 이 분야의 발전에 크게 기여해오고 있으며, 86년부터 본격적으로
경피적 내시경 수술을 시도하여 현재까지 210 예를 시술, 이중 80%에서
매우 우수한 치료효과를 거두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이 수술법의 적응증은 이동된 파열성 디스크는 제외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며 후방인대내에 포함된 경우가 최소상처 척추수술로 치료 성적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로이박사는 이 수술은 현재 디스크내에서만 사용, 환자의 15%정도에서
적용하지만 진행중인 신경구멍 내시경이 개발되면 디스크밖의 파열디스크
도 제거할 수 있는 등 앞으로는 신경내시경 등으로 수술도 하고 동시에
투약도 할 수 있는 척추분야의 혁명을 일으킬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전망
했습니다.

   한편 이날 이상호원장은 우리들병원에서 처음 개발한 경피적 디스크
제거술과 경피적 레이저 디스크 수술을 병용하는 "목(경추) 디스크 수술법"
을 소개했는데 현재 1백명의 환자에게 적용, 68명의 환자에서 완쾌되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 방법은 앞쪽 목의 주름살 부위에 약 0.5cm 정도의 피부를 절개하고
후두를 반대편으로 민 다음 목디스크 쪽으로 아주 가는 바늘을 넣고 가는
바늘을 따라 약 3mm 굵기의 가는 관을 디스크 속에 넣은 뒤에 집게를
사용하여 탈출된 디스크를 집어냅니다. 이어 내시경이 달린 홀뮴레이저를
그 관속으로 넣어 후방의 상한 디스크 수핵을 증발시키면서 오그라들게

하는 수술법입니다.

   이날 학술대회 중간에 목, 허리 디스크 시술을 직접 실연하여 생중계
함으로써 참석한 많은 의료진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었습니다.

 제목 : 의사가 쓰는 자연요법①-소리내어 웃는 웃음은 명약

    [서양의학은 인체를 가능한 한 미세한 단위로까지 세분, 분석하는
분석론적인 접근법을 취해 왔다. 그 결과 의술의 눈부신 진보를 가져와
인류를 수많은 질병들로부터 구제했다.  반면에 인체를 하나의 통일체로
보고 전체적인 균형 속에서 건강을 추구하려는 노력이 부족했고, 의술을
병원의 전유물로 한정시켰다는 비판이 따랐다.  인간을 흙-햇빛-공기와
같은 자연속의 일부로 파악하는 자연요법은 서양의학의 이같은 한계와,
생활속에서 쉽게 시행할 수 있다는 장점때문에 나름대로 "非제도권의학"
으로서의 영역을 확보해왔다.  그러나, 이를 전파하는 사람들은 의학적
지식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잘못된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많았다.
새 시리즈 "의사가 쓰는 자연요법"은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의 자연요법들
중 의학적으로 검증된 내용들을 엄선해 전달할 것이다.-조선일보 편집자注-]

    "그냥 미소만 짓습니까, 소리내어 웃습니까?" 강직성척추염 환자에게
나는 항상 소리내어 웃기를 권한다.  강직성척추염이란 서로 분리되어
움직여야할 경추(목뼈)-요추(허리뼈)들이 달라붙어 로봇처럼 뻣뻣해지는
병.  처음엔 요추강직으로 허리를 굽히지 못하나, 병이 악화되면 목뼈까지
굳어지게 된다.  그런데 내가 만난 이들 환자는 대부분 잘 웃지 않는 사람
들이었다.  나는 그때마다 "TV코미디를 보며 크게 웃으세요" "유머집
<헬프미 추기경>을 사서 보세요" 라며 소리내 웃는 웃음요법을  처방
하였다.

    웃음으로 과연 병을 다스릴 수 있을까.  미국 캘리포니아의대의 한
교수는 의학전문지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 76년 12월호에서
이 병에 걸렸던 노르만 카슨즈라는 사람의 회복 과정을 소개했다.  환자
500명 중 1명꼴로 회복이 가능하다는 이 병에 걸린 카슨즈는 웃음을 모르고
살아왔던 사람.  마침내 그의 몸은 드라마틱하게 변형돼 거의 팔다리를
움직일 수 없게 됐다.  온몸이 쑤시고 아파 잠을 잘 수도 없었다.  카슨즈는
어느날 병실에서 코미디영화를 보다 너무 우스워 배꼽을 잡고 10분 정도
웃었다.  그러자 통증이 가셨다.  카슨즈는 통증이 나타날 때마다 그
코미디영화를 다시 틀었고, 때로는 간호사에게 유머책을 읽어달라고 부탁
했다.  한바탕 웃고나면 통증이 가셔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는 결국
병을 회복했다.

    불치병이 웃음으로 치유됐다는 사실을 지켜본 의학계는 치료방법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환자 자신의 몸 속에 내재해 있는 자연치유력을
중요하게 여기게 된것이다.  유머치료법, 마음-육체의 의학 등 새로운
시도들이 속속 선보였다.  소리내어 웃는다는 것은 전신을 움직이는 것.
근육, 신경, 심장, 뇌, 소화기관이 총체적으로 작용한다.  손으로 피부와
근육을 마사지하는 것을 외부 마사지라 한다면 웃음은 내장을 마사지
하는 내부 마사지인 셈이다.  소리내어 웃는 것은 또 훌륭한 유산소운동
이다.  윗몸통, 폐, 심장, 어깨, 팔, 복부, 횡경막, 다리 등 모든 근육이
움직인다.  생리학적으로 하루에 1백번-2백번 정도 소리내어 웃으면 10
분간 조깅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갖는다고 알려져 있다.

    소리내어 웃으면 또 통증을 느끼는 신경계를 마비시켜 진통효과를
준다.  웃으면 '엔돌핀'과 '엔케팔린'이라는 2개의 신경 펩타이드의 분비가
촉진되는데, 이것은 통증을 억제하는 물질들이다.

    87년 코간박사는 <행동의학>저널에 '불편을 느낄 때 소리내는 웃음의
효과'란 논문을 발표, 소리내어 웃는 것이 임상에서 환자의 통증을 없애
준다고 발표했다.  그 밖에 소리내어 웃는 웃음은 근육의 긴장을 이완시켜
주고, 교감신경계의 스트레스를 어루만져준다.  심호흡을 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으며, 혈액순환도 촉진된다.  91년 9월, 영국 웨스터 버밍햄

보건국은 마침내 <웃음소리 클리닉>의 개설을 허가했다.  웃음을 질병
치료법으로 인정한 것이다.  웃음은 최고의 약.  하하하, 호호호 소리내어
웃는 건강한 웃음은 우리 마음속의 병 분 아니라 육체의 병도 치유하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새해에는 찡그리지만 말고 소리내 마음껏
웃어보자.
                        - 이 상 호 우리들병원장 , 신경외과 -

 제목 : 의사가 쓰는 자연요법②-부종, 염분 섭취량 줄이면 예방

    [서양의학은 인체를 가능한 한 미세한 단위로까지 세분, 분석하는
분석론적인 접근법을 취해 왔다. 그 결과 의술의 눈부신 진보를 가져와
인류를 수많은 질병들로부터 구제했다.  반면에 인체를 하나의 통일체로
보고 전체적인 균형 속에서 건강을 추구하려는 노력이 부족했고, 의술을
병원의 전유물로 한정시켰다는 비판이 따랐다.  인간을 흙-햇빛-공기와
같은 자연속의 일부로 파악하는 자연요법은 서양의학의 이같은 한계와,
생활속에서 쉽게 시행할 수 있다는 장점때문에 나름대로 "非제도권의학"
으로서의 영역을 확보해왔다.  그러나, 이를 전파하는 사람들은 의학적
지식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잘못된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많았다.
새 시리즈 "의사가 쓰는 자연요법"은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의 자연요법들
중 의학적으로 검증된 내용들을 엄선해 전달할 것이다.-조선일보 편집자注-]

    인간의 육체는 70%가 물.  인간의 몸 속 세포안에, 세포와 세포 사이에
물이 들어있다.  혈관속과 머리속, 척추속 등 물이 들어 있지 않은 곳이
없다.  그만큼 물은 생명을 영위하는 필수적인 요소다.

    우리 조상들이 "하루에 물 두되를 마시면 만병이 사라진다."고 말한
것도 바로 이 이유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의사들도 "하루에 적어도
1.5ℓ 정도의 물을 마셔야 세포속에 축적된 독소를 씻어낼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옹달샘에 고인 물이 썩듯 우리 몸 속에 있는 물도 오랫동안
고여서 흐르지 않으면 「썩은 물」이 된다.  우리 몸 속의 이 썩은 물
때문에 생체효소들은 마비되며, 세포들은 새롭게 재생할 능력을 잃게
된다.  또 독소가 쌓여 인간은 늙고 피곤하며 힘이 없어지게 된다.

    우리 몸 속에 있는 물이 하수구 빠지듯 잘 빠지지 않고, 불필요하게
고여있을 떠 「부종」이 생긴다.  중년여성이 아침에 일어나면 어제 끼고
있던 반지가 손가락에 들어가지 않고, 눈자위는 부어서 부석 부석해지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아침과 저녁 사이에 체중 차이도 크게 벌어지게
된다.  부종의 대표적 증상들이다.

    부종을 일으키는 원인은 많다.  음식에 소금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거나, 호르몬 분비가 변할 때, 임신을 했을 때나 월경 직전에 부종이
생긴다.  그러나 이것은 생리적으로 생기는 일시적인 부종이다.  지나친
동물성 지방을 섭취했을 때도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과다한 수분이
고이기도 한다.

    가벼운 부종은 누구나 가끔씩 경험하지만, 부종을 일으키는 원인이
제거되면 곧 사라지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빈도가
잦고 붓는 정도가 좀 심한 경우에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적절하게
치료하지 않으면 고혈압, 심부전증, 신부전증, 폐수종 등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부종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먼저 염분 섭취량을 줄이고 포타시움이
풍부한 음식을 많이 먹어야 한다.  염분은 부종을 일으키는 主犯(주범)
이다.  그러나 포타시움은 세포막에서 염분과 서로 상쇄(相殺)되기 때문에
부종의 예방-치료에 적격이다.

    포타시움이 풍부한 음식으로는 감자를 들 수 있다.  북유럽 사람들이
신선한 감자를 즙을 내 부은 얼굴이나 손에 바르는 것도 그만큼 감자에
포타시움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선 민들레 잎을 녹즙으로 만들어 마시거나, 잎을 말려 차로
만들어 상복했다.  민들레 잎에도 포타시움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그 외에
참외와 시금치, 바나나, 버섯 등의 야채와 요구르트에도 포타시움이 풍부하며,
신선한 과일주스에도 포타시움이 많이 포함돼 있다.

    몸속에 있는 과다한 수분을 배설해 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우엉뿌리는
자연이 선물한 가장 훌륭한 이뇨제.  우엉 삶은 국을 하루 몇 차례 마셔서
배뇨로 몸 속의 물을 배출해 내면 된다.  우리나라에선 예로부터 소변을 누지
못해 고생하는 사람에게 우엉뿌리 삶은 물을 먹여 소변을 보게 했다.

    소금을 푼 뜨거운 물 속에 배꼽 아랫부분을 담그는 목욕을 하는 것도
노폐물을 배설하는데 효과가 있다.  스위스를 비롯한 북유럽과 이스라엘
사해 주변지역에선 예로부터 이런 방법으로 부종을 치료해왔다.  이들
지역엔 아직도 소금물 좌욕탕이 있는 목욕탕이 많다.

    그러나 이같은 방법을 1주일 이상 계속해도 부종이 가자앉지 않고,
배나 다리를 손가락으로 세게 눌러도 피부가 제대로 탄력을 되찾지 못할
때는 의사를 찾아 부종의 원인을 찾아내야 한다.  특히 임산부의 경우는
반드시 의사의 진단을 받아야 한다.

    신장이나 심장에 이상이 있을 경우엔 이런 방법을 아무리 시행해도
부종이 낫지 않는다.  적절한 시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심장이나 신장의
질병을 악화시키기 때문에 전문의의 진단을 받아야 한다.
                        - 이 상 호 우리들병원장 , 신경외과 -

 제목 : 의사가 쓰는 자연요법③-두부 먹으면 유방암 예방 효과

    [서양의학은 인체를 가능한 한 미세한 단위로까지 세분, 분석하는
분석론적인 접근법을 취해 왔다. 그 결과 의술의 눈부신 진보를 가져와
인류를 수많은 질병들로부터 구제했다.  반면에 인체를 하나의 통일체로
보고 전체적인 균형 속에서 건강을 추구하려는 노력이 부족했고, 의술을
병원의 전유물로 한정시켰다는 비판이 따랐다.  인간을 흙-햇빛-공기와
같은 자연속의 일부로 파악하는 자연요법은 서양의학의 이같은 한계와,
생활속에서 쉽게 시행할 수 있다는 장점때문에 나름대로 "非제도권의학"
으로서의 영역을 확보해왔다.  그러나, 이를 전파하는 사람들은 의학적
지식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잘못된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많았다.
새 시리즈 "의사가 쓰는 자연요법"은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의 자연요법들
중 의학적으로 검증된 내용들을 엄선해 전달할 것이다.-조선일보 편집자注-]

    갱년기 여성에게 찾아드는 각종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에스트로겐
호르몬 요법이 확산됨에 따라 유방암 비상이 걸렸다.  에스트로겐 요법은
골다공증, 노화(老化), 발한(發汗), 불면증, 심장질환, 성욕감퇴 등 여러가지
심각한 갱년기 장애를 예방-치료하는데 큰 효과가 있다.  갱년기 여성에
대한 「만병통치약」격인 에스트로겐은 그러나 유방암 발생을 촉진시킨다는
결정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근 에스트로겐 호르몬 요법에 대한 특집
기사에서 「에스트로겐과 화학 프로게스테론을 사용할 경우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32-46% 정도 높아진다」는 의학전문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의 통계를 인용, 에스트로겐 요법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1971년 미국 닉슨 대통령이 「암과의 전쟁」을 선포한 뒤, 모든 여성에게
암 건진사업을 받도록 했지만, 아직도 3분마다 1명이 유방암으로 숨지고
있다.  암의 예방-치료법이 눈부시게 발달했지만, 유방암 사망자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바로 에스트로겐 때문이다.  이때문에 의학계에선 에스트로겐
요법을 실시하느냐 마느냐 논란도 많았지만, 최근엔 이 방법을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에스트로겐 요법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심각한 딜레마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유방암 발생 가능성이 높은 에스트로겐 요법을
받아야만 하는가?

    이런 고민에 빠져있는 환자에게 나는 항상 "1주일에 3번 두부를 먹으면
된다"며 에스트로겐 요법을 옹호하고 있다.  노란 콩을 이용해 만드는 두부엔
유방암 발생을 억제시키는 '제니스타인'이란 물질이 풍부하게 함유돼 있기
때문이다.

    에스트로겐은 유방세포 표피에서 호르몬 수용체와 결합해 유방암을
일으키는데, 식물속에 많이 들어있는 '이소플라벤'이란 물질이 에스트로겐의
이같은 암 유발작용을 억제시킨다.  약 4천여 종류에 달하는 이소플라벤 중
가장 강력한 유방암 억제물질이 바로 제니스타인.  제니스타인은 유방암을
예방할 뿐 아니라 악성 유방암세포를 정상으로 바꾸는 강력한 치료효과까지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핀란드 헬싱키대학의 헤르만 크루츠교수팀이 두부를 먹지 않는 유럽인과
두부를 일주일에 3번 이상 먹는 일본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놀랍게도
조사대상 일본인 가운데 유방암 환자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크루츠교수는 그 이유를 두부속의 제니스타인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미국 알라바마대학의 스티븐 반즈교수도 노란 콩을 많이 먹는 남미

사람들에게서 유방암이 적은 것은 노란 콩 속의 제니스타인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비타민E와 B6도 유방암 발생을 예방-억제하는데 큰 효과가 있다.
미국 존스 홉킨스대학 연구팀은 임의로 추출한 34명의 유방암 환자중
17명에게는 가짜 약(플라시보)을, 다른 17명에게는 비타민E를 매일 6백
IU씩 두달간 투여했다.

    그 결과 비타민E를 투여한 17명 중 15명에게서 현저하게 유방 섬유종의
치료효과가 있었다.  비타민E는 또한 유방암 발생을 억제하는 에스트리올과
프로게스테론 호르몬의 수치를 높이는데 효능이 있었다.  비타민E는 참깨,
들깨, 호두, 잣, 해바라기씨 등에 많이 들어있다.  이것을 날 것으로 먹으면
효과가 좋다.

    비타민B6는 유방세포내에서 에스트로겐이 독소를 배출하는 것을 막아,
유방암 발생을 억제한다.  비타민B6는 통밀, 통보리, 맥아 등에 풍부하게
함유돼있다.
                        - 이 상 호 우리들병원장 , 신경외과 -

 제목 : 의사가 쓰는 자연요법④-양배추-수박 『치매』예방 효과

    [서양의학은 인체를 가능한 한 미세한 단위로까지 세분, 분석하는
분석론적인 접근법을 취해 왔다.  그 결과 의술의 눈부신 진보를 가져와
인류를 수많은 질병들로부터 구제했다.  반면에 인체를 하나의 통일체로
보고 전체적인 균형 속에서 건강을 추구하려는 노력이 부족했고, 의술을
병원의 전유물로 한정시켰다는 비판이 따랐다.  인간을 흙-햇빛-공기와
같은 자연속의 일부로 파악하는 자연요법은 서양의학의 이같은 한계와,
생활속에서 쉽게 시행할 수 있다는 장점때문에 나름대로 "非제도권의학"
으로서의 영역을 확보해왔다.  그러나, 이를 전파하는 사람들은 의학적
지식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잘못된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많았다.
새 시리즈 "의사가 쓰는 자연요법"은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의 자연요법들
중 의학적으로 검증된 내용들을 엄선해 전달할 것이다.-조선일보 편집자注]

    노년에 접어든 사람들은 흔히 「죽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노망이 들거나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중풍이 드는  게 무섭다」고 말하곤 한다.  사실
자식들을 고생시키고, 그들 앞에서 어린애 같은 행동을 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느날 갑자기 나에게 찾아올지도 모르는 망각과 치기.  이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젊을때부터 조심해야 한다.  치매의 가족력이 있는 사람은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노인성 치매의 원인은 지금껏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고 있었다.  비타민
B12와 C, E가 부족한 상태가 오랫동안 계속되면 치매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의학자들이 규명한 원인의 전부였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뇌세포 속에 알루미늄이 축적되면 치매의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주목되고 있다.  캐나다 멕길대학의 구스타보 부느
박사는 사망한 노인성 치매환자들의 뇌세포 조직을 분석했다.  그 결과,
치매의 원인으로 알려져 오던 비타민 E는 대체로 정상인과 같은 수준인데
반해 중금속 제거제 역할을 하는 글루타티온의 수치가 절대적으로 적고,
뇌세포 속에 다량의 알루미늄이 축적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글루타티온은 시스테인, 글루탐산, 글라이신 등 세개의 아미노산에 황이
붙어있는 물질.  간에서 알루미늄이란 중금속이 걸러지고 분해된 뒤, 전광
석화처럼 빠른 속도로 이 쓰레기를 오줌이나 대변으로 옮겨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 트럭의 역할을 한다.  이 트럭이 작동을 안하면 몸 속에, 특히
뇌세포 속에 알루미늄이 쌓이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치매에 걸리지 않으려면 알루미늄 섭취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알루미늄이 특히 많이 포함돼 있는 것은 우리가 흔히 복용하는 제산제.
속이 쓰리다고 함부로 제산제를 복용하면 치매촉진제를 복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음료수나 음식에도 알루미늄이 미량
포함돼 있으며, 냄비나 프라이팬 등의 알루미늄 식기와 알루미늄 랩을
사용할 때도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알루미늄 섭취를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여러 경로로 통해
들어온 알루미늄이 우리 몸 속에 이미 축적돼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체내에 축적된 알루미늄을 적극적으로 몸 밖으로 배출해 내야 한다.

    축적된 알루미늄을 제독하기 위해선 글루타티온의 수치를 높이는
식이요법을 실시해야 한다.  구스타보 부느박사는 글루타티온의 수치를
높이는 최고의 식품으로 양질의 단백질인 유장을 들고 있다.  유장이란
치즈를 만들고 남은 액체.  미국에선 건강식품점에서 많이 팔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구하기가 쉽지 않다.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양배추.  양배추를 상식(常食)
하면 글루타티온의 수치를 높일 수 있다.  양배추 속에는 글루타티온을
생산하는 효소인 인돌과 디티올티온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글루타티온이 많은 식품으로는 그 외에 브로콜리와 콜리플라워 등이
있다.  미국 에모리 의과대학의 존스박사는 98가지의 음식을 분석하고
글루타티온이 풍부하게 함유된 식품으로 아보카도, 아스파라거스, 수박을
들었다.

    생계란의 흰자도 글루타티온치를 높이는 양질의 단백질이다.  때문에
계란을 먹을 때는 노른자 하나에 흰자 서너개 정도로 배합해서 먹으면
좋다.

    이같이 글루타티온이 많이 함유된 음식 위주로 식단을 구성하면 치매를
예방할 뿐만 아니라 기억력 감퇴까지 예방할 수 있다.

                        - 이 상 호 우리들병원장 , 신경외과 -

 제목 : 의사가 쓰는 자연요법⑤-생굴-비타민C는 '사랑의 묘약'

    [서양의학은 인체를 가능한 한 미세한 단위로까지 세분, 분석하는
분석론적인 접근법을 취해 왔다.  그 결과 의술의 눈부신 진보를 가져와
인류를 수많은 질병들로부터 구제했다.  반면에 인체를 하나의 통일체로
보고 전체적인 균형 속에서 건강을 추구하려는 노력이 부족했고, 의술을
병원의 전유물로 한정시켰다는 비판이 따랐다.  인간을 흙-햇빛-공기와
같은 자연속의 일부로 파악하는 자연요법은 서양의학의 이같은 한계와,
생활속에서 쉽게 시행할 수 있다는 장점때문에 나름대로 "非제도권의학"
으로서의 영역을 확보해왔다.  그러나, 이를 전파하는 사람들은 의학적
지식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잘못된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많았다.
새 시리즈 "의사가 쓰는 자연요법"은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의 자연요법들
중 의학적으로 검증된 내용들을 엄선해 전달할 것이다.-조선일보 편집자注]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희극「한여름밤의 꿈」에는 자는 동안 눈썹에
바르면 깨자 마자 처음 보는 이성과 사랑에 빠지는「사랑의 마약」이 등
장한다.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에도 요힘빈으로 추측되는「미약」에 관
한 기록이 적혀있고, 마야시대 인디언의 기록속에도 그같은 약초가 등장
한다.  우리나라와 중국에선 예로부터 성기능이 저하된 사람에게 인삼과
감초를 복용케 했다.  동서고금의 역사속에 이 같은「비법」이 등장하는
이유는 무얼까?  의식주와 더불어 성관계가 그만큼 중요한 인간의 관심사
였기 때문이다.  특히, 남성에게 있어 성기능 저하는 인생관을 흔들만큼
심각한 고민을 던져준다.  남성의 정자 생산량은 18세 정도에 최고치에
이른 뒤 25세쯤 부터는 점차 감소하게 된다.  여성도 폐경기에 이르면
여성호르몬 분비가 급격히 줄고, 질의 세포가 위축된다.

    다시 젊어질 수는 없을까?  「생명의 즙」이 풍성해지고, 다시금
당당한 남성과 여성으로 되돌리는「사랑의 묘약」은 없을까?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은 생굴이 바로 그「묘약」이라고 믿었다.  어느나라
에서건 옛날엔 사물을 비슷한 모양의 인체와 동일시하곤 했는데, 생굴이
정자를 생성시키는 고환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성기능을
향상시킨다고 믿었다.  그때문에 굴은 로마시대때부터 양시돼 왔으며,
희대의 바람둥이 카사노바는 매일 저녁 식사때 50개씩의 생굴을 먹었다
고 한다.  굴이 이처럼「힘」을 발휘할 수 있는건 그 속에 들어있는
「징크」란 미네랄 때문.  사람은 하루 15㎎ 정도의 징크를 섭취해야
하는데, 징크가 부족하면 정자수가 줄게되고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도 저하된다.  때문에 비뇨기과 의사들은 성기능이 저하된 환자에게
징크를 처방하고 있다.  성기 발육이 부진한 남자 어린이에게 징크를 공
급하자 성기가 정상적으로 자라났다는 연구 논문도 있다.

    석화 1개속에는 약 10㎎ 정도의 징크가 포함돼 있으며, 전을 부칠때
사용하는 굴속에도 석화보다는 적지만 많은 양의 징크가 포함돼 있다.
때문에 미국 뉴욕병원의 이사돌 로젠펠드교수는『성기능이 저하된 사람이
성관계 직전 석화 6개 정도를 먹으면 효과가 있다』고 보고했다.

    성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생굴과 함께 비타민 C가 풍부하게
포함된 음식을 많이 섭취해야 한다.  미국 텍사스의대 윌리엄 해리스
박사는 정자부족증인 남성에게 하루 1천㎎씩의 비타민 C를 60일 동안
복용케 하자 정자수가 60% 정도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같은
대학의 도손박사는 또 비타민 C가 정액 속의 독소를 없애준다고 주장
했다.  비타민 C가 풍부한 음식은 레몬과 귤, 브로콜리 등.  때문에 생
굴을 먹을 때 레몬즙을 뿌려 먹거나 귤, 브로콜리 등을 함께 먹으면 더욱
효과가 좋다.

    그러나 기름진 음식을 함께 먹는 것은 좋지 않다.  미국 유타의대

웨인 마이클박사는 8명의 남성에게 아주 기름진 음식을 먹게 한 뒤 혈중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측정한 결과, 평소 테스토스테론 수치보다 50%
이상 떨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나 성기능이 갑자기 저하된 사람
은 꼭 전문의의 진찰을 받아야 한다.  성기능 저하를 가져오는 동맥경화나
당뇨, 갑상선기능 저하 등의 증상이 있는 사람들은 먼저 이런 증상을 치료
해야 성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

                        - 이 상 호 우리들병원장 , 신경외과 -

 제목 : 의사가 쓰는 자연요법⑥-금실 좋은 性관계는 '좋은 藥'

    [서양의학은 인체를 가능한 한 미세한 단위로까지 세분, 분석하는
분석론적인 접근법을 취해 왔다.  그 결과 의술의 눈부신 진보를 가져와
인류를 수많은 질병들로부터 구제했다.  반면에 인체를 하나의 통일체로
보고 전체적인 균형 속에서 건강을 추구하려는 노력이 부족했고, 의술을
병원의 전유물로 한정시켰다는 비판이 따랐다.  인간을 흙-햇빛-공기와
같은 자연속의 일부로 파악하는 자연요법은 서양의학의 이같은 한계와,
생활속에서 쉽게 시행할 수 있다는 장점때문에 나름대로 "非제도권의학"
으로서의 영역을 확보해왔다.  그러나, 이를 전파하는 사람들은 의학적
지식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잘못된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많았다.
새 시리즈 "의사가 쓰는 자연요법"은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의 자연요법들
중 의학적으로 검증된 내용들을 엄선해 전달할 것이다.-조선일보 편집자注]

    "가장 훌륭한 의사는 희망에서 부터 오는 영감이다"라고 19세기
프랑스의 신경내과 의사 장 마탕 샤르코가 말했다.  아마 그는 인간의 세포가
듣고 느끼고 말한다는 것을 그때 이미 알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첨단의학,
특히 인간의 뇌에서 생산되는 신경전달물질에 대한 연구가 진행될수록
마음과 육체의 연관성이 우리가 생각했던 이상으로 밀접하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섹스의 언어다.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성관계는 세포에
희망을 불어 넣어 질병을 낫게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미국 피츠버그대학
에서는 동일한 치료를 받고 있는 유방암환자들을 정상적인 섹스를 하는
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으로 나누어 치료효과를 조사했다.  그 결과 정상
적인 섹스를 한 쪽의 치료효과가 월등히 좋았다고 보고했다.

    많은 암환자의 자연치유 사례 중에는 종교적 명상이나 성적 흥분이
최대치에 도달해 일어난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이때 암세포를 죽이는
T임파구가 백혈구속에서 순식간에 증가하면서 면역력을 향상시켰기 때
문이다.  이처럼 섹스는 때때로 암을 낫게 하는 놀라운 치유력을 발휘
하기도 한다.

    그러나 섹스는 특히 요통의 치료에 뛰어난 효과가 있다.  한 여성이
주방일을 하다 허리를 다쳤다. 저녁식사때 남편은 아내가 허리가 아프다는
것을 알고 설겆이를 대신해줬고 얼음팩도 허리에 깔아주었다.  아내는
감동했고 로맨텍해진 그들 부부는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부부생활을 했다.
그런데 걱정하던 것과 달리 부부관계 도중 전혀 요통을 느끼지 않았고, 부부
관계 이후엔 씻은 듯이 요통이 낫게 되었다.

    접촉감각은 굵은 신경섬유로 전달되는데 반해, 요통감각은 가는 신경
섬유로 전달된다. 섹스가 요통을 낫게한 것은 결국 굵은 신경섬유가 가는
신경섬유로 전달되는 요통감각보다 우선적으로 전달됐기 때문이다.  사랑
하는 사람끼리의 신체적 접촉은 통중을 잊게 하는데, 「엄마손이 약손이다」
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섹스는 또 허리 근육을 이완시켜 통증을 완화하는 작용을 한다. 보통
허리 통증에는 근육이완제를 처방한다.  미국의 생리학자 웨스트하이머박사는
섹스가 가장 효과적인 근육이완제의 하나라고 보고했다.  그는 섹스를 하면
전신 근육이 이완되면서 혈액순환이 촉진돼 통증이 사라진다고 밝혔다.

    섹스를 할 때의 성적흥분은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의 혈액순환치를
올려, 골밀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미국 여성건강연구소장인 생물학자
커틀러박사는 독신자이거나, 애인과 신체접촉을 드물게 하는 여성보다는
매주 섹스를 가지는 여성의 월경주기가 더 일정하며, 에스트로겐의 혈중

농도도 두배 높아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에스트로겐 호르몬은 칼슘의
흡수율을 높여 골밀도를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섹스를 하면
허리뼈를 튼튼하게 유지할 수 있다.

    뿐만 아니다.  성행위시의 골반움직임은 복근과 척추배근을 단련시키며,
척추를 강하고 유연하게 하는 효과를 갖는다.  허리가 아픈 아내와 부부
관계를 가지면 요통이 더 악화된다고 믿고 금욕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지식이다.  금욕을 하면 부부간의 친밀감도 약해지기 때문에
좋은 치료를 받더라도 효과가 줄어든다.  부드럽고 느리며 잘 절제된 부부
생활은 내분비계의 맛사지이며, 돈도 들지 않고 부작용도 없는 진통제와
소염제다.

                             - 이 상 호 (우리들병원장, 신경외과) -

 제목 : 의사가 쓰는 자연요법⑦- 지방질 너무 피하면 오히려 '病'

    [서양의학은 인체를 가능한 한 미세한 단위로까지 세분, 분석하는
분석론적인 접근법을 취해 왔다.  그 결과 의술의 눈부신 진보를 가져와
인류를 수많은 질병들로부터 구제했다.  반면에 인체를 하나의 통일체로
보고 전체적인 균형 속에서 건강을 추구하려는 노력이 부족했고, 의술을
병원의 전유물로 한정시켰다는 비판이 따랐다.  인간을 흙-햇빛-공기와
같은 자연속의 일부로 파악하는 자연요법은 서양의학의 이같은 한계와,
생활속에서 쉽게 시행할 수 있다는 장점때문에 나름대로 "非제도권의학"
으로서의 영역을 확보해왔다.  그러나, 이를 전파하는 사람들은 의학적
지식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잘못된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많았다.
새 시리즈 "의사가 쓰는 자연요법"은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의 자연요법들
중 의학적으로 검증된 내용들을 엄선해 전달할 것이다.-조선일보 편집자注]

    많은 사람들은 자식들에게 더 나은 교육과 더 많은 유산을 베풀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고 말한다.  어떻게 하면 더 나은 교육을 받게 하고
어떤 유산을 남겨줘야 할까.  더 나은 교육을 받게 하는 지름길은 어릴
때부터 영양을 제대로 공급해 몸을 튼튼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이에게 물려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도 바로 튼튼한 몸이다.

    식생활이 서구식으로 변하면서 비만한 어린이가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
성인병인 동맥경화증 어린이도 늘고 있다.  동맥경화증은 혈중 콜레스테롤치
가 높기 때문이며, 콜레스테롤치를 높이는 주범은 지방.  때문에 어릴 때부터
지방섭취를 줄이거나 아예 채소만 먹이는 부모들도 많아졌다.  극성스런 부모
들은 "여자아이가 날씬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3세때부터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채소만 먹이며 운동을 시킨다.

    미국의 소아과 의사 제이 고든도 그의 최근 저서 < 오늘의 좋은 음식,
내일의 튼튼한 아이>에서 "동맥경화를 예방하려면 어릴때부터 하루 총
칼로리의 17% 이하로 지방섭취를 줄여야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지방섭취가 과도하게 많은 것은 좋지 않다.  요즘 어린이들은
김치나 된장보다 햄버거와 피자의 맛에 익숙해있기 때문에 어린이의 지방
섭취를 일정하게 제한할 필요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어린이나
청소년의 지방감량 다이어트는 영양부족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특히
신중해야한다.  특히 태어나서 만 두살까지는 두뇌의 발달에 지방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지방 섭취를 무조건 막는 것은 좋지 않다.

    카나다 퀘벡 쉐부르크의과대학 영양연구팀의 J.S 보베키박사 부부와
L. 마키박사는 어린이에게 있어 지방과 영양과의 상호관계를 조사하기 위해
3세된 어린이 5백명을 3그룹으로 나눠 실험을 했다.  3년동안 첫째 그룹
아이들에겐 총 칼로리 중 지방을 30% 미만으로, 둘째그룹은 30-40%, 셋째
그룹은 40% 이상 섭취케 했다.  이들을 대상으로 4개월 마다 미네랄과
비타민 등 필수 영양소의 혈중 함량을 조사한 결과, 지용성인 비타민 A,D
와 E의 수치가 첫째 그룹에서 눈에 띄게 낮았고, 둘째 그룹과 셋째그룹
에서도 상당한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보베키박사 등은 "어린이
들의 지방 섭취가 총 칼로리의 30% 미만일 경우엔 비타민 등의 결핍을
초래해,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며 "40% 이상일 때는
비만, 동맥경화 등의 위험이 크기 때문에 30-40%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결론 내렸다.

    핀란드 국립건강연구소는 3-15세의 어린이 1만5천명의 혈액을 뽑아
혈액속의 지용성 비타민이나 미네랄 등 필수영양소 함량을 기록한 후,
15년뒤 그들의 건강상태를 추적, 조사했다.  그 결과 영양이 불충분했던
어린이 중 상당수가 15년 뒤 암이나 동맥경화 등 각종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핀란드 연구팀들은 어릴때 지방 섭취가 너무
적으면 비타민의 결핍을 초래해 건강상의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고 보고
했다.  최근 어린이나 청소년들의 행동성향과 지능이 유전인자 보다 영양
불균형과 더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때문에 부모들은
어린이에게 무조건 지방 섭취를 줄이게 하기 보단 비타민, 미네랄 등 영양소
섭취를 방해하는 탄산음료, 설탕, 단 우유제품 등을 못먹게하고 대신 씨앗
기름, 정어리 같은 등푸른 생선을 먹여 몸에 좋은 불포화지방산을 충분히
공급해야 한다.

                          - 이 상 호 (우리들병원장, 신경외과) -

 제목 : 의사가 쓰는 자연요법⑧-'어린이 경기(驚氣)' 미역-다시마 먹여라

    [서양의학은 인체를 가능한 한 미세한 단위로까지 세분, 분석하는
분석론적인 접근법을 취해 왔다.  그 결과 의술의 눈부신 진보를 가져와
인류를 수많은 질병들로부터 구제했다.  반면에 인체를 하나의 통일체로
보고 전체적인 균형 속에서 건강을 추구하려는 노력이 부족했고, 의술을
병원의 전유물로 한정시켰다는 비판이 따랐다.  인간을 흙-햇빛-공기와
같은 자연속의 일부로 파악하는 자연요법은 서양의학의 이같은 한계와,
생활속에서 쉽게 시행할 수 있다는 장점때문에 나름대로 "非제도권의학"
으로서의 영역을 확보해왔다.  그러나, 이를 전파하는 사람들은 의학적
지식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잘못된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많았다.
새 시리즈 "의사가 쓰는 자연요법"은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의 자연요법들
중 의학적으로 검증된 내용들을 엄선해 전달할 것이다.-조선일보 편집자注]

    별일 아닌데도 깜짝깜짝 놀라거나 아무 이유없이 자주 울어댄다.  잠을
자다가도 툭하면 깨 귀찮게 보챈다.  이와 같은 「어린이 경기」(驚氣)는
일단 '칼슘부족증'을 의심해 봐야 한다.

    칼슘이 부족하면 뇌신경계가 마치 먼지 낀 전선처럼 변해 뇌신경전달
물질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때문에 칼슘이 부족하면 어린이는 정서가
불안해지고, 신경질-폭력적으로 된다.  또 면역력이 떨어져 감기 등에 걸리
게 된다.  이런 경우 어른도 예외는 아니다.

    칼슘은 어린이의 키를 자라게 하고 뼈를 튼튼하게 만드는 필수 영양제.
때문에 거의 모든 어머니들이 아이들에게 칼슘이 풍부하게 함유된 우유나
멸치 또는 칼슘 영양제를 먹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슘부족증에 걸리는
아이들이 많다.  이유는 칼슘은 아무리 잘해줘도 토라지는 아가씨처럼 흡수
가 까다롭기 때문.

    칼슘부족증은 단순히 칼슘이 함유된 음식이나 칼슘 영양제를 먹는 것
만으로 고쳐지지 않는다.  장에서 흡수가 안되는 경우도 있고, 또 장에서
흡수돼도 뼈 속까지 제대로 들어가지 않고 대소변으로 배설되는 경우도 많
다.  이런 고민을 해결해주는 해답이 최근 미국 뉴욕서 열린 제 7회 국제
해초심포지엄에서 나왔다.  일본의 다나까박사는 다시마와 미역 같은 갈색
해초가 다른 어떤 음식보다 칼슘 흡수가 잘된다고 주장했다.  우유나 멸치
속에 든 동물성 칼슘은 25% 정도만 몸 속으로 흡수되나 식물성 칼슘은 흡
수율이 훨씬 더 높다는 것.  따라서 자주 울거나 보채는 아이, 감기에 자주
걸리거나 자다가 쉽게 깨는 경기있는 아이에게 미역국을 끓여 먹이면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갈색 해초는 칼슘 흡수와 관련되는 또 다른 문제점도 해결한다.  칼슘
흡수로 인해 생기는 가장 큰 부작용은 오염물질 섭취.  칼슘은 때때로 음식
속의 오염물질을 끌어안고 인체내로 흡수된다.  대표적인 것이 핵분열로 생
기는 스트론튬-90이란 발암물질.  핵폭발 실험 뒤 발생, 대기에 떠 다니는
스트론튬-90은 지상으로 내려오면서 음식물 속에 들어가 칼슘분자와 쉽게
결합한다.  이것이 칼슘과 함께 몸 속에 들어가면 골수에 탈이 나고 심한
경우 백혈병, 골육종, 골수염 등의 위험도 있다.

    다나카박사는 갈색 해초들은 이미 체내에 축적돼 있는 스트론튬-90을
분해-배출하는 뛰어난 효과가 있다고 보고했다.  다시마나 미역을 씻을 때
나오는 끈적끈적한 액체가 알긴이란 다당류인데, 이것이 스트론튬-90으로
오염된 칼슘분자로부터 금속이온을 떼내 대소변을 통해 배출시키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또 알긴이 스트론튬-90을 떼 낼때 만들
어지는 염(鹽)이 소디움 알기네이트인데, 이 염은 인체내에 축적돼있는
카드뮴, 바리움, 구리, 망간 등의 금속까지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 기능을

한다고 보고했다.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아이를 낳은 산모에게 미역국을
끓여 먹였다.  의학적으로 생각해도 여간 현명한 생활속의 지혜가 아닐 수
없다.

                        - 이 상 호 우리들병원장 , 신경외과 -

 제목 : 의사가 쓰는 자연요법⑨-양파, 콧물-기침 가라앉힌다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2백가지가 넘는다.   이 바이러스들은
세포막을 뚫고 세포속으로 들어가 버리기 때문에 약으로 다스릴 수 없다.
실제로 우리가 약국에서 사 먹는 감기약은 감기를 낫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증상을 완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같은 감기 증상들을 다스리는 데는 약보다 양파가 더 효과적이다.
북유럽 사람들은 예로부터 양파를 이용해 감기의 여러 증상을 다스려왔다.
스위스의 자연요법 의사 포겔박사는 "감기에 걸리면 양파를 뜨거운 물에
담가 그 성분을 걸러낸 물을 많이 마시라"고 권한다.   미국 아이다호대학
스완슨교수(영양학)도 양파의 놀라운 효능을 실험을 통해 확인하고, "감기가
들면 눈을 질끈 감고 가능한  많은 양파를 먹는 것이 좋다"고 주장했다.

     우선 양파는 콧물과 코부위의 통증을 낫게하는 효과가 있다.  양파를
썰면 눈물과 함께 콧물이 나는데, 양파 냄새를 맡아 콧물을 많이 흘리고
나면 이같은 증상이 깨끗이 낫는다.  실제로 유럽에선 양파에서 추출한
<알롬>이란 물질로 만든 감기약이 기침과 콧물 치료제로 애용된다.

     양파는 또 기침을 멈추게 하고, 기관지를 보호하는 작용을 한다.  독일
의 과학자들은 양파 속의 유황복합물이 기관지 염증과 기침을 일으키는
프로스타글란딘이란 물질의 생성을 억제하는 강력한 항천식작용을 한다고
보고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감기가 걸리면 고춧가루를 듬뿍 탄 뜨거운
국을 먹고, 뜨거운 온돌 방에서 땀을 내곤 했다.  이것을 응용해 필자는 개인
적으로 감기에 걸리면 양파즙을 탄 생수를 여러잔 마시고, 습식사우나에 들어
가 땀을 흠뻑 낸다.   놀랄만큼 감기가 뚝 떨어지는 것을 여러차례 경험했다.

     이에 대해 스웨덴의 야레박사는 "사우나의 높은 온도가 감기 바이러스
의 증식을 억제한다"고 설명했고,  미국 캘리포니아의 내과의사 피터스박사는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면 코막힘등의 증상이 낫는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이같은 방법을 사용해도 열이 많이 나고 1주일 이상 증세가
지속되는 경우엔 부비통염, 편도선염, 류머티즘열, 신장염 같은 2차 감염일
가능성이 있다.  이 때는 반드시 병-의원을 찾아 의사의 진단과 처방을 받
아야 한다.

 제목 : 의사가 쓰는 자연요법⑩-흡연자는 비타민C 섭취 늘려라

     담배가 폐암을 일으킨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골초는 물론이고 담배를
피우다 오래전에 끊은 사람도 안심할 수 없다.   지난해 미국 <브링엄 앤
우먼즈 하스피털>은 흡연기간이 5년 미만인 사람 중 담배를 끊은 지 50년
뒤에 폐암이 발생한 사례도 있다고 보고했다.

     우리  몸 속에 들어온 담배연기는 폐세포를  녹슬게 하며, 급기야 암을
일으킨다.  이 과정은 너무나 오랜 세월동안 진행되기 때문에 전혀 예기치
않은 상태에서 「폐암」이란 운명을 맞이해야 할 때가 많다.  젊었을 때
잠깐 피운 담배 때문에 폐암에 걸려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억울한 일.  폐를
튼튼하게 하고, 폐암을 예방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을까.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안은 비타민C이다.  비타민C는 괴혈병을 예방하
고, 감기에 대한 저항력을 높일 뿐 아니라, 폐를 튼튼히 하고 폐암을 억제-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  미국 하와이대학 암연구소가 폐암에 걸린 남자 4백63
명, 여자 2백12명을 조사했다.   비타민C가 풍부한 브로콜리를 많이 먹은 환자
들은 평균 33개월을 살았는데 비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평균 생존기간은
18개월이었다.  연구팀들은 브로콜리 속의 비타민C가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
시킬 뿐 아니라, 폐암세포를 공격하여 파괴시킨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토리노대학 인체종양 의학연구소의 부까박사팀은 비타민C
섭취 없이 하루 20개비 이상 담배를 피운 사람과 비타민 C를 1천-2천㎎
섭취하고 담배를 피운 사람을 비교했다.  그 결과 비타민C를 섭취하지 않은
흡연가들은 기관지 손상이 두드러졌으나 비타민C를 섭취한 사람의 기관지는
비흡연가들과 동일했다.  부까박사팀은 또 오염이 극심한 지역에서 근무하는
경찰관 20명을 대상으로 비타민C와 폐기능과의 관계를 조사했다.  비타민C를
섭취하지 않고 근무한 경찰은 폐기능이 크게 손상된 데 반해 비타민C를 하루
2천㎎이상 섭취한 경찰관의 폐기능은 크게 나빠지지 않았다.

     미국 캘리포니아의대 예방의학교실 멘젤박사는 『담배연기와 매연속의
오염물질이 폐를 녹슬게 하는데 이를 막는 가장 강력한 항산화제(抗酸化劑)가
바로 비타민C다』며 『비타민C는 이미 상처가 나 있는 폐를 아물게 하는데도
효과가 있다』고 보고했다.

     매운 고추를 많이 먹는 것도 좋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폴 로진
박사는 고추속에 있는 카프사이신 성분을 쥐에게 먹인 뒤 담배연기 속에
노출시킨 결과, 기도의 부종이나 기관지 협착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로진박사는 『고대 이집트 기록에 따르면 가래를 삭이기 위해
매운 고추나 마늘, 겨자 등을 처방했다』며 『매운 고추를 먹으면 폐속의
수백만개에 달하는 섬모가 운동을 해 폐속으로 들어간 유해한 이물질을
밀어내기 때문에 폐가 건강해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방법들은 폐암에 대한 궁여지책에 불과하다.   폐암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여기에 그쳐서는 안된다.   미국 국립 암연구소장 클라
우스너박사는 『가장 확실한 방어선은 바로 담배를 끊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목 : 의사가 쓰는 자연요법⑪-두피마사지로 '대머리' 늦춘다

     중년에 접어든 남성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대머리'.  머리카락이
가늘어지면서 빠지기 시작하면 괜히 다른 사람의 시선이 따가워지면서,
대인관계에 자신을 잃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탈모를 방지하기 위한 적극
적인 노력을 하면 대머리가 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최소한 대머리가
되는 시기를 지연시킬 수는 있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두피의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기 때문.  머리카락은 모세혈관 틈에 심겨진 화초와 같다.  물이 마르면
화초가 말라 죽듯, 두피의 혈액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피 속의 각종
영양분이 머리카락에 공급되지 못하기 때문에 머리카락이 빠지게 된다.
때문에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면 먼저 두피의 혈액순환을 촉진시켜야
한다.

     가장 쉽고 효과적인 방법은 두피를 마사지 하는 것.  미국 뉴욕병원의
토머스박사는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는 사람에게 하루 3분씩 2개월 이상
두피 마사지를 시킨 결과, 탈모가 중지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철분, 규소,
비소, 망간, 유황 등이 함유된 두피로션이나 오일로 마사지를 하면 더욱 효과
가 좋다는 것이 로마노박사의 설명이다.

     양파즙으로 두피를 마사지해도 좋다.  스위스에선 예로부터 양파즙으로
머리카락을 관리해 왔는데, 자연요법 전문가 포겔박사는 양파즙을 머리에
충분히 바른 뒤 20분 후에 섭씨 35도 정도의 미지근한 물에 감으면 아름답고
질좋은 머리카락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머리카락이 빠져 고민
하는 사람에게 1주일에 2번정도 양파즙으로 마사지를 시킨 결과, 거짓말처럼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나는 것을 필자는 여러번 목격했다.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창포나 쐐기풀을 삶은 물, 연꽃-라일락-담쟁이
잎을 함께 넣고 20분 정도 우려낸 물에 머리를 감았다.  이 속에도 머리카락
에 필요한 유황, 망간 등 필수 무기물이 풍부하게 함유돼 있어, 탈모 예방 뿐
아니라 머리카락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유지하는데 효과가 있다.  간혹 여성이
머리카락이 빠지는 경우가 있다.  미국 플로리다대학 영양연구소장 마이클
클레퍼박사는 여성탈모는 대부분 소화기능 장애때문이기에 유산균을 섭취하면
2개월 후부터 효과가 나타난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러나 갑자기 탈모증상이
심해지거나, 원형탈모증 증상을 보일 경우엔 전문의를 찾아가 갑상선 기능
저하 등과 같은 다른 원인이 있는지 여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제목 : 의사가 쓰는 자연요법⑪-콩, 고구마 '골다공증' 막아준다

     여성이 폐경기에 접어들면 골다공증에 걸리기 쉽다.   살짝만 넘어져도,
심지어 큰 소리로 웃기만 해도  뼈가 부러진다.  그러나 흔히 생각하듯 칼슘
이 많이 든 음식을 먹는다고 예방되는 게 아니다.

     폐경기 여성이  골다공증에 걸리는 이유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부족하기 때문.  덴마크의 연구팀들은 『에스트로겐이 부족하면 칼슘을 섭취
해 봤자 흡수되지 못하고, 피  속에 들어 온 칼슘도 소변으로 배설되기 때문
에 골다공증에 걸리기  쉽다』고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誌에  발
표한 바 있다.

     때문에 골다공증 예방을 위해선  에스트로겐을 증가시켜야 한다.  그러
나 유방암이나 자궁암의 가족력이  있거나, 혈전증, 고혈압, 동맥경화증 등이
있는 여성에겐 에스트로겐  호르몬 요법이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
다.

     따라서  미국 뉴욕의대  여성건강연구소장 나취골박사는  『우선적으로
에스트로겐 생성을 촉진시키는 자연식품을 섭취하는게 좋다』고 권고했다.

     에스트로겐을 생성시키는 대표적 식품은  콩.  호주 모나쉬의대 왈크비
스트박사는 25명의 폐경기 여성에게  콩가루를 매일 45g씩 먹도록 한 결과,
에스트로겐이 큰 폭으로 증가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콩 한 컵엔 약 3백㎎
의 식물 에스트로겐이 있는데, 이는 합성 에스트로겐 1알에 해당한다.  콩밥,
콩비지, 콩국수, 콩나물, 두유, 된장 등을 많이 먹는 게 좋다.

     당귀와 인삼도 좋다.   미국 코네티컷의대 츙박사는 『식물 에스트로겐
이 다량 함유돼  있는 당귀는 여성 건강약초  중 으뜸』이라고 적고 있으며,
일본 동양의학연구소 요시라박사는  『골다공증 예방을 위해선 인삼과  함께
당귀를 넣고 끓인 물을 상복하는게 좋다』고 말한다.

     골다공증에 영향을 미치는 또  하나의 여성호르몬은 프로게스테론.  산
마나 고구마 속엔  식물 프로게스테론이 많이 포함돼 있다.   미국의 유명한
호르몬학자 존 리  박사는 『고구마 혹은 산마에서 채취한 자연  프로게스테
론을 크림이나 알약으로 만들어 복용케 한 결과, 부작용 없이 골다공증이 예
방-치료됐다』고 보고했다.

     한편 조깅이나  등산, 속보(속보) 등과 같은  체중이 실린 운동을  하면
골밀도가 유지돼,  골다공증 예방에 효과가 있다.   필자는 폐경기에  접어든
아내에게 수년전부터 이 처방을 따르도록 했다.  아내는 30대와 같은 골밀도
를 유지하며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

 제목 : 의사가 쓰는 자연요법⑫-'디스크 통증' 마늘 넣은 우유 마셔라

     흔히 「디스크」라  부르는 추간판  탈출증은 척추 주위의  인대조직이
파열, 척추뼈와 뼈 사이에 있는 디스크(추간판)가 빠져 나오는 현상.  물리치
료나 약물치료를 받아도 잘 낫지 않으면 수술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 전
에 두가지 요법을 함께 실시하면 효과를 보는 경우가 많다.

     첫째는 마늘을 탄 우유를  마시는 것.  스위스의 자연요법 의사 포겔박
사는 디스크로 인한 통증을 호소하는 한 자동차  정비사에게 생마늘 두 알을
으깨어, 우유 1백㎖에 타서  하루 2번씩 마시게 했다.  그러자  3-4일만에 통
증이 가시기 시작했으며, 2주일만에 통증이 완전히 가셨다고 한다.

     이것은 마늘속의 유황과 「아호엔느」란 물질 때문.  디스크가 빠져 나
오면 신경을 압박해 신경염을 일으키는데, 유황성분은 염증을 가라앉히는 효
과가 있다.  「아호엔느」란  디스크로 인한 신경의 혈액순환 장애를 개선하
는 효과가 있다고 보고돼 있다.  우유에 타 마시는 것은 우유에 칼슘이 풍부
할 뿐 아니라, 마늘의 독성을 중화시키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상체를 들어올리는  방법.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디스
크에 걸린 사람의 양겨드랑이 사이에  끈을 묶어 공중에 매댈았다.  그의 처
방은 2천4백년이 지나 과학적으로 증명됐다.

     미국 미네아폴리스  척추건강연구소 버르톤박사는 체중  70㎏인 사람이
앉아 있을 경우,  체중의 2배인 1백40㎏의 압력이 허리에  가해지며, 이 압력
은 척추뼈와 뼈 사이에 있는 디스크를 밀어내는  작용을 한다는 것을 발견했
다.  그러나 상체를 들어올리면  뼈와 뼈 사이가 벌어지면서 -25㎏의 음압이
발생, 디스크를 빨아들이는  작용을 한다고 보고했다.   벨기에의 몽테로박사
는 환자의 등 뒤에서 환자의  가슴을 안아 들어올리거나, 두 팔을 뒷 머리에
깍지 낀 팔을  들어올리는 것을 1번에 10회 정도씩 하루  3번 이상하면 효과
가 있다고 보고했다.  발을 땅에 디딘채,  철봉을 잡고 상체를 끌어당겨도 같
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거꾸로 매달리는 것은 좋지 않다.  텍사스대 건강연구센터의 토
머스 프리버그박사는 거꾸로 매달리면  안구 내 압력이 증가해 녹내장, 시력
저하, 시신경장애 등을 유발할 위험이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

     그러나 4주 정도 이렇게  해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거나, 발목이나 발가
락에 힘이 빠지는 등의 증세가 나타나면 즉시 척추전문의를 찾아야 한다.

 제목 : 의사가 쓰는 자연요법⑬-이유없이 과격한 반항아들,
        인스턴트 대신 '자연식'을

     주의가 산만하고  이유없이 과격한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참을성도 없고, 밤에  잠을 잘 못자며, 때로는 폭력적-비도덕적  행동으로 사
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한다.  「행동항진증」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에
게 인공색소와  향미료가 들어있는 인스턴트  음식 대신 자연식품을  먹도록
하면 효과를 보는 경우가 많다.

     미국 캘리포니아 케년 버드중학교는 학교  급식을 엄격하게 자연식품만
으로 제한, 학생과 학부모들의 불만이 많았다.   이 학교 영양책임자 펨 모벌
리는 고민 끝에 학생들에게 철창  속에 쥐를 가둬 놓고, 한쪽의 쥐에겐 자연
식품과 깨끗한 물을, 다른 한쪽의 쥐에겐 소시지나  도넛, 콜라 등의 인공 식
품을 3개월 동안 먹이는 실험을  하게 했다.  그 결과 인공식품을 먹은 쥐는
▲자신의 꼬리를 깨무는  등의 폭력적 성향을 보이거나 ▲목적없이  창살 주
위를 맴도는 등의 불안  증세를 보이거나 ▲심한 공포심과 불면증에 빠졌다.
그러나 자연식품과 깨끗한 물을 먹인 쥐의 행동엔 큰 변화가 없었다.  이 실
험 뒤 학교 급식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불만이 사라졌다.

     미국 뉴욕주 교육청은  산하 8백3개 공립학교에 학교  급식에 인공색소
나 향미료를 넣지 말도록 지시했다.  구내 매점에서도 이런 인스턴트 음식을
가급적 판매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자 학생들의 수업태도가 몰라보게 좋
아졌으며, 전국적으로 치러진 학력평가 성적이 전년도 보다 15%정도  향상됐
다.

     이에 대해 미국의 소아과의사 페인골드박사는  「아이들이 왜 행동항진
증이 되는가?」란 책을 통해 설탕이나 방부제,  인공색소, 향미료 등이 든 음
식을 먹을 경우, 아이들이  행동항진증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고 있
다.  그는 자세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인공 색소나 향미료 등이
뇌를 자극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행동항진증을 특집으로 다룬 최근 뉴스위크誌는  미국 의사들이 행동항
진증 아이들의 거친  행동을 잠재우기 위해 「리탈린」이란 약을  너무 남용
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뉴스위크誌는  약으로 행동항진증을 다스리기
이전에 아이들의 먹는 음식을 먼저 살펴보라고 권고하고 있다.

     때문에 자녀가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주의가 산만한 경우 자녀들을
책망하지만 말고 그들의 식생활을 먼저 점검해봐야 한다.  아이들이 먹고 마
시는 소시지, 햄버거, 과자,  콜라 등의 식품에 어떤 첨가물들이 들어 있는지
를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가급적 집에서 어머니가 직접 만든 음식을 먹이
고, 따뜻하게 아이들을 감싸줘야 한다.   그렇게하면 말썽만 부리던 아이들의
행동이 눈에 띄게 달라질 것이다.

 제목 : 의사가 쓰는 자연요법⑭-'다이어트'는 붉은 옷 입고 붉은 조명 아래서

     옛 이집트인은 우주에 존재하는 여러가지 빛과  색에는 각각 특별한 에
너지가 있으며, 이  에너지를 이용하면 각종 질병을  예방-치료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중 지금까지 행해지는 것이 붉은  색을 이용한 체중 감량법.  일
부 이집트인은 다이어트를  하는 동안 붉은 색 옷을  입고, 붉은 색 옷을 입
고, 붉은 색 식기를 사용하며,  붉은 조명을 한다.  이들은 붉은 색에서 나오
는 「에너지」가 살빼는 작용을 한다고 믿고 있다.

     지난해 사망한 미국의 인기 점성술작가 린다  굿맨도 이같은 「색 에너
지」 신봉자.   그는 살을 빼려는 사람은 다이어트를 하면서,  체리핑크빛 유
리잔에 물을 담아, 하루 종일 햇빛 속에 놓아  둔 뒤, 저녁에 그 물을 마시라
고 권한다.  살을 빼는 작용을 하는 햇빛 속의 에너지가 체리핑크빛 잔을 통
해 물속으로 전달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

     미국 텍사스여자대학 스카트  하섬교수는 이에 대해 『붉은  색이 칼로
리 소모를 촉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섬교수는 여러가지 조명 밑
에서 전기 자극에 대한 근육의  반응을 실험한 결과, 붉은 조명 밑에서 근육
의 긴장도가 가장 크다는 것을  발견했다.  근육의 긴장도가 높아질 때 인간
은 가장 큰 힘을  발휘하며, 칼로리의 소모가 많아진다는게 하섬교수의 설명
이다.   미국 알버타대학 색채과학연구소 헤리  볼파스교수는 『색의 파장은
인간의 육체적-심리적 기능을  관장하는 대부분의 호르몬을 생산하는 뇌  시
상하부와 송과체에 전달돼, 인간의 행동과 심리를 통제한다』며 『붉은 색이
다이어트를 돕는데 비해 푸른 색은 오히려 살을  찌게 한다』고 설명하고 있
다.

 제목 : 의사가 쓰는 자연요법⑮-'생감자즙' 관절염 가라앉혀

    류마티스 관절염은 인체내   면역 체계 이상으로 관절과  관절을  둘러싼
근육, 인대, 혈관 등에 염증을 일으키는 질환. 치료를 받으면 일시적으로 좋아
졌다, 다시 나빠지기를 반복하는 고질병이다.

    환자들은 소염진통제나 부신피질  호르몬제재 등  각종 약물을  복용해야
한다. 이 경우 소화 장애나 부종, 변비  등 부작용이 따르는 경우가 많다.  부
작용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은  약 대신  신선한 감자를 갈아  짜낸 즙을 아
침 빈 속에 반잔정도 꾸준히 마시면 효과가 있다.

    스위스의 자연요법의사   포겔박사는『관절염으로 인한 통증이 심한   경
우엔 아침-점심 식사   전과 취침 전에 매일  감자즙을  마셔야 하고, 입맛에
맞지 않는 경우엔   따뜻한 물이나 당근 주스를 타 마셔도  된다』며『그  어
떤 관절염 치료제보다   효과가 뛰어나다』고 스위스로 찾아간  필자에게  말
했다.

    미국 코넬의대  몬디박사는『껍질을  깎아  낸 신선한 감자를   사용해야
한다』며『3-6주 즙을 마시    면 효과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감자를 갈아
우유를 조금 탄  뒤,  염증이 있는 곳을 찜질해도 효과가  있고, 당뇨병이  있
는 사람은 녹말을  가라앉힌 뒤 국물만 마셔도 된다. 감자  삶은 물을 물처럼
마셔도 좋다.

    이것은 감자 속의「퀘르세틴」이란  성분 때문. 미국에서 발간되는「음식
-화학-독물학 저널」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프르미카 박사는『감자  속의 퀘
르세틴은 소방수가 불을 끄듯 염증이 생기는 과정을 차단시키며, 미세 혈관의
기능을 정상화시키고, 세포가   산화돼 녹스는 것을 막는다』고 보고했다.  감
자에는 고알칼리성 각종  미네랄과 비타민C가 풍부하게 들어 있다.  관절염에
걸리면 인체가 산성으로 변하기 때문에, 이를 중화시키는 작용도 한다.

    감자즙을 마실 동안은  가능한  한 자연 식품을 먹는 게  좋다. 커피,  탄
산 음료, 초콜릿, 아이스크림 등의 음식은 특히 좋지 않다. 이 속에 숨어 있는
설탕이 통증을 가중시키기  때문. 미국의학체육협회장 로렌스 박사는『관절염
환자에게  설탕을 먹이면 통증이 증가한다』고 보고한 바 있다.

                   <우리들 병원장 이상호 신경외과>

 제목 : 의사가 쓰는 자연요법(16) -'고혈압 환자, 바나나 먹으면 좋다'

    고혈압은 완치가 어려운 대표적 성인병,  신장염,  대동맥경화등이 원인
이 돼 유발된「2차성 고혈압」은 원인 질환을 치료하면 쉽게 다스릴  수 있
지만, 전체 고혈압 환자의 90% 이상을  차지하는「본태성 고혈압」은 뚜렷
한 원인이 없어 치료가 쉽지 않다.

    그러나 고혈압  환자의 70%정도는 최저혈압이 90-105%   정도인 「가
벼운」고혈압 환자. 이런 사람은 약  대신 야채주스, 감자, 고구마, 호박, 바
나나에 많이 들어 있는 포타슘(칼륨)을 많이 섭취하면 효과가 있다.

    혈압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소금 속에 많은  소듐(나트륨).
포타슘은 이  소듐을 몰아내고  혈압을 떨어뜨린다.  성질이 정반대인 포타
슘과소듐은 우리 몸을 장악하려고 서로 밀고 당기는 경쟁관계에 있다. 소듐
이 싸움에서 이기면 세포  속의  물이 바깥으로 빠져나가 혈관속으로  이동
한다. 이때 포타슘도 함께 빠져나가 혈압이 오른다.
그러나 포타슘을  다시 공급하면  소듐을 몰아내,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오
게 된다.

     미국 버몬트의대 조지 웹교수(생리학)는 고혈압 환자에게,  소듐과  포
타슘을 1대3의 비율로  섭취케 한 결과,  2주뒤엔 30%가,  8주 뒤엔 70%가
혈압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인도 연구팀은  고혈압 환자에게 포
타슘이 풍부한 바나나를 주식으로 제공하자,   8주후에 혈압이 16이나 떨어
졌다고 보고했다.

    일본에서는 소금  섭취량이  비슷한 두  마을 사람에게 각각  포타슘의
섭취량을 다르게 한 결과, 포타슘을  많이 섭취한 사람의 혈압이 훨씬 건강
했다고 최근 보고했다. 포타슘은  고혈압으로 인한 뇌졸증의 사망률도 크게
낮춘 다. 미국  미네소타의대 루이스 토비안교수는 고혈압이  원인이 돼 뇌
졸중에 걸린  쥐에게 고단위  포타슘을   먹인 결과,  대조군보다 사망률이
90%나 낮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영국 캐임브리지의대  연구팀이 8백59명의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12
년 동안 추적-관찰한 결과, 매일 오렌지주스   1잔 또는 바나나 1개를 먹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뇌졸중으로 인한 사람보다  뇌졸중으로 인한
사망률이 40%나 낮아졌다. 연구팀은 이것이 포타슘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때문에 하루 5g정도로  소금 섭취를  줄이고, 포타슘이  풍부한 음식을
많이 섭취하면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최저 혈압이 1백30 이상
으로 갑자기 높아지면 눈, 뇌, 심장 등이 손상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즉시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

                   <우리들 병원장 이상호 신경외과>

 제목 : 의사가 쓰는 자연요법(17)-식초 상식(常食)하면 감기 예방

     감기에 유난히 잘   걸리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홍역, 풍진,
부비강염(副鼻腔炎), 폐렴 등  각종 세균성  질환에도  쉽게 걸린다. 세균에
대한 저항력이 약하기 때문. 그러나 사과식초, 감식초 등과 같이  몸에 좋은
산(酸)을 충분히  섭취하면 세균에 대한 저항력이  크게 증가해, 질병에  잘
걸리지 않게 된다.

     미국 버몬트 지방의 자연요법  의사 자비스 박사는 성인  24명을 대상
으로 2년간 매일 소변의  산도(酸度)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소변이 알칼리
성인 사람은 각종  감염성 질환에  걸릴 확률이  크며, 반대로 산성인 사람
은 감염성 질환에  걸리는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 동일한
사람의  경우에도,  육체적-정신적으로 피곤하면  소변이 알칼리성으로, 피
로가 풀리면 산성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산에는 몸에 좋은  산과 나쁜 산이 있다. 몸이 피곤해  유산 등의 나쁜
산이 체내에 축적되면   세균에 대한 저항력이 약화되고,   이 때의 소변은
알칼리성이 된다. 반대로  초산 등과 같이  몸에 좋은  산이 많으면 세균에
대한 저항력이 증가되고,  소변은 산성을 띤다는 게  자비스 박사의 설명이
다.

    자비스 박사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유방염에 걸린 젖소에게  젖소의
몸무게 45kg 당 한 스푼씩의 사과 식초를 하루에 2회씩 먹였다.

    그 결과 젖소의  소변이 산성으로 돌아왔고,  2-3주  뒤 유방염도 치료
됐다. 자비스박사는  또  유난히  감기 등에  잘  걸리는  사람에게 하루에
1-2회씩 1-2스푼씩의 사과식초를   물에 타 마시게 했다. 역시   소변이 산
성으로 변하면서, 감기를  비롯한 각종 감염성 질환에  대한 저항력이 크게
증가됐다고 보고했다.

     평소 신맛을 싫어하는 사람도 몸이 피곤해지거나 하면  새콤한 음식을
찾게 된다.  새콤한 음식 속의 자연 초산이 만성  피로의 원인인 유산 등을
분해시키고, 인체내에서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의 번식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체득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이태리인들은 포도식초를,
우리나라  사람들은 감식초를  예로부터 애용해  왔는데 참으로 놀라운  생
활의 지혜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애용하는 감식초는  초산이 4%이하이므로   그냥
마셔도 되나 냉수, 요구르트,   꿀물, 야채즙 등에 타 마셔도 좋다.   그러나
식초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도 많기 대문에, 이런  사람들은 조심해야 한
다.

                  <우리들 병원장 이상호 신경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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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음악감상입문


      음악감상입문

    유판애언 저
    오동일 역


@[    머리말  @]

 이 책은 음악애호가가 음악을 감상하기 위한 가이드역을 한다는 생각으로
쓴 것이다. 그러나 음악을 감상하는 데 이러한 지식이 꼭 필요한가하면
그것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원래 음악을 맛보려면 자유로이 듣고 자유로이 느끼면 좋으므로 사람에
따라 그 받아들이는 법, 느끼는 법, 심지어 그 평가까지도 가지각색인 것이
당연하다. 그것으로 조금도 지장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지식보다는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기회에 여러 가지 종류의 음악을 많이 들음으로써 음악의
참된 아름다움, 즐거움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 음악을 듣고 있으면 여러 가지 의문도 생긴다. 그것은 음악 그
자체에 대한 사항보다는 오히려 그 음악의 주의에 있는 것에 대한 의문이다.
지금까지 여기에서 말해 온 것은 그 음악의 주의에 관한 설명, 그것도 아주
적은 설명에 불과하다. 이 책을 읽어 주신 여러분에게는 다시 음악의 발달을
말한 '음악사'의 책, 또한 각 시대를 대표하는 많은 음악가의 전기류, 많은
명곡에 대한 해설서, 그 밖의 참고서 등을 마음이 내키는 대로 읽어볼 것을
권한다. 또 음악에 관해서 잘 모르는 말도 많이 나오니까 간단한 음악용어의
사전 등을 갖춰 두면 좋으리라고 생각한다.
  요즈음에는 매일 어디선가 음악회가 열리고 있지 않은 날은 거의 없다.
그밖에 라디오, 텔레비전, 레코드 등으로 음악을 듣고 싶은 사람은 조금도
부자유를 느끼지 않는다. 그 외에 거리에 서 있거나 식당, 극장의
로비에서도, 전국 곳곳에 음악이 범람하고 있다. 그것도 고전에서 현대까지,
또 극히 정도가 높은 것에서 대중적인 것까지, 그리고 동서양을 불문하고
전세계의 음악이 언제든지 귀에 날아들어오는 세상이다. 이것은 현재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문명의 은혜이기도 하며, 또 동시에 하나의 커다란
불행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음악을 자기의 마음을 통해 듣고
자기 것으로 만들기 전에, 먼저 전혀 외계의 하나의 현상으로서 차갑게
보려는 듯한 경향, 그리고 마음대로 골라잡는 바겐세일의 매장을 돌아
다니는 듯한 태도로 음악을 접하는 습관이 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음악을 깊이 체험하거나 잘 생각하기에는 현대인은 너무 지나치게 바쁘다.
체험하지 않더라도 조금도 수고하지 않고 음악을 맛본 기분이 될 수 있는
짜임새가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문명이 낳은 편리함은 어쨌든 그것대로 매우 좋은 일이라고 접어
두고, 음악과 같은 예술은 좀더 몸 가까이에서 볼 필요가 있다. 음악을
전문가나 기계의 손에 완전히 맡겨 버리고 높은 산의 꽃으로만 보고 있지
말고, 이것을 자기 곁에 끌어당겨 생활의 영양소(영양소)로 삼고, 그것을
통해 고금의 명곡이나 세계의 명연주를 감상하기로 하면 어떨까.
  한국에 서양음악이 수입되고 나서 이제 겨우 백년. 아직 제대로 소화도
못하고 있는 동안에 급격히 기계음악이 넘치는 세상이 되었으므로 우리들이
당황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라디오나 레코드로 천하의 명곡을 감상함과
동시에 음악을 구성하는 음을 만드는 법에도 주의를 기울여서, 함께
노래하고, 함께 악기를 울려서 음악의 아름다움을 더욱 깊이 호흡한다면,
설령 음악에 관한 이론이나 지식은 별로 없더라도 좀더 효과적으로 음악을
감상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지은이 씀

@FF
@[    1. 음악은 누구나 알 수 있다 @]
  "나는 음악을 매우 좋아하지만 잘 알 수 없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음악을 들었을 때, 대체 무엇을 마음에 느끼어 이해할 수 있어야만 그
음악을 알았다는 것이 될까.
  "나는 음치여서 음악은 모르겠다"고 혼자서 생각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음치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귀가 전혀, 혹은 거의 들리지 않는, 즉 무언가 병적인 장애때문에 음을
느낄 수 없는 사람도 있다. 머지 않아 그런 불행한 사람들도 아마 어떤
방법으로든지 음을 느끼게 되고 음악을 감상할 수 있게 되는 연구가 완정될
지도 모르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유감스럽게도 그러한 장애자만은 이
문제에서 제외시켜야 한다. 그러면 보통 음치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을
가리키고 있는 것일까.
  음치란 이른바 '가락이 맞지 않은' 것을 말하는 경우도 있다. 즉 귀에는
이상이 없더라도 자기 스스로 무언가 노래를 부르려 하면 전혀 엉뚱한
가락이 되고 마는 사람이 있다. 또 그 정도는 아니라도 정확한 음정을 잡지
못한다. 그러한 사람은 전문 음악가 중에도 의외로 많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도 귀의 감각은 대개 정확하다. 그래서 남의 '가락이
맞지 않은' 것은 잘 알면셔도 막상 자기가 노래할 차례가 되면 무의식 중에,
또는 의식하면서도 어찌 할 도리가 없이 가락을 틀리게 부르고 마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이른바 음치는 발성의 올바른 훈련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며,
음악을 듣고 감상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을 것이다.
  진짜 음치란 음의 높이를 정확히 판단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심리학자는 그런 사람은 매우 드물다고 말하고 있다. 음악을
즐길 수 없을 정도의 선천적인 음치란 이 세상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음치이니까'라고 말하고 있는 사람은 '음악이
나타내는 의미를 모른다'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또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혹은 또 '음악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라는 겸손일는지도 모른다. 또한 음악을 듣는
것은 따분하거나 관심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음치'라고 단정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음악이 나타내는 의미'란 대체 무엇일까. 많은 사람은 음악을 듣고 그
속에서 무언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런 구체적인 것을 기대하기 쉽다.
예컨대 이 음악은 어떤 이야기를 나타내고 있다든지, 어떤 풍경, 어떤
인물을 그리고 있다든지, 또는 좀더 추상적인 것으로, 예컨대 이 음악은
작곡자가 어떤 기분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연인과 헤어진 슬픔을 그린
것일까 혹은 애국의 열정을 그린 것일까 하는 식으로 무언가 우리의 경험에
연결되는 회화적, 문화적인 것으로 음악을 바꿔 놓지 않고서는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작곡자가 이것을 만들었을
때의 심경을 알아내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열심히 상상해 보기도 하며, 또
제삼자의 그럴싸한 해설에서 그것을 구하기도 한다. 그래도 아직 그런
구체적인 것을 포착할 수 없을 때에는 이것은 통 알 수 없는 음악이라고
말한다. 아무래도 음악의 아름다움을 음악 이외의 것에서 구하려 하는 일이
매우 많다고 생각한다.
  음악의 아름다움은 어디까지나 음악 그 자체의 모습으로 느껴져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문학이나 회화와 비슷한 상상을 음악 속에서 찾아내려
한다거나 음악의 아름다움을 인간의 말로 설명하려는 노력이 도리어 음악의
의미를 알 수 없게 만드는 일이 있다.
  악곡은 노래나 연주에 의해 각양 각색의 음의 흐름으로써 그 아름다운을
말해 주고 있다. 음악의 의미란 이 이외의 것이 아니다. 갖가지 음이 여러
가지로 편성되거나 단속되기도 하면서 그 아름다움을 설명하며 진행해 간다.
음악을 감상한다는 것은 이 아름다움을 마음에 느끼어 이해하는 일이다.
  음악의 감상은 먼저 음악의 재료인 '음'을 듣는 데서 시작된다. 어떤
명인이나 거장이 연주하는 명곡이건, 서툰 아마추어의 기예이건, 결국은
우리의 청각을 자극하는 '음'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청각의 자극만으로는
아직 '음악'으로서 감상케 하는 작용이 되지 않느다. 그 자극이 듣는 사람이
지닌 감성, 사상, 경험, 교양, 취미, 거기에 다시 인생관, 윤리관, 종교심
등으로 구성되는 하나의 정신 구조를 통해서만이 비로소 감상이라는 작용이
생기는 것이다. 그 정신 구조가 풍부하면 음악의 감상이라는 활동도
풍부하고 활발하게 된다. 그 정신 상태가 단순하고 소박하다면 감상의
작용도 단순해지고, 만약 이것이 현저하게 한쪽으로 치우쳐 있으면 그
감상도 또한 거기에 따라 일그러진 것이 된다. 예컨대 어린이는 어린이
나름의 단순한 경험이나 지식을 통해서, 또 어린이다운 솔직한 감성을
가지고 감상하며, 지식이나 인생 경험도 풍부하고 깊은 교양을 지닌 사람이
만약 음악을 감상하려 한다면 그 나름대로 깊고 풍부하게 감상하는 작용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음악의 의미'란 어디까지나 음악 그 자체에 있으므로 음악 외에 어떤
의미를 찾을 필요는 없지만, 듣는 사람의 정신 구조가 풍부함으로써 여러
가지 경험이나 연상이 그 음악적 '의미'와 결부되는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이 가령 음악과 관계 없는 연상이라 할지라도 그 음악을 깊이 음미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는 일도 있다.
  예를 들어 지금 어떤 교향곡을 듣고 있다고 하자. 듣고 있는 동안에 문득
어린 시절에 뛰어놀던 고향의 숲이나 언덕이 마음에 떠올랐다고 하자.
음악의 진행과 함께 고향의 추억도 잇달아 차례차례 발전하여 즐거웠던
회상, 슬픈 날의 추억 등이 마음 속을 오갈 것이다. 원래 그 사람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연상은 그 교향곡의 작곡자가 전혀 모르는 바이다.
그렇다고 해서 듣는 이의 마음에 자연히 솟아오른 정서를 부정해 버릴
필요는 없다. 이 경우 감상하는 사람의 기분은 작곡자의 의도에 관계없이 그
'연주된 음의 모습', 즉 음악적인 의미에 단단히 결부된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새삼스레 '음의 모습'으로서 느껴진 것에 무언가 구체적인
연상을 결부시키려고 하는 것은 전혀 무의미하다.
  음악은 어디까지나 스스로 '아는' 것이지 남이 '알게 해 주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슬픈 음악이라든가, 즐거운 곡이라든가 하는 해설 등에
의해서, 자기가 이제부터 들으려 하는 일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해설서에
무엇이라 적혀 있건, 또한 작곡자의 감정이 어떻든 간에, 즐거운가 슬픈가
하는 감정은 실제로 자기가 느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좀더
복잡한 갖가지 음악적인 의미에 이르러서는 정말 자기의 마음의 작용에 의해
아는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음악의 감상, 곧 음악을 알려면 될 수 있는 대로 주의 깊게 잘 들어보아야
한다. 만약 한번 듣고 미처 못 들은 곳이 많다고 생각하거든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들어 보아야 한다. 그리고 듣는 사람의 지식, 교양, 취미 등에
따라 각각 자기식으로 그 음악의 아름다움을 마음에 비추어 볼 일이다.
  음악은 처음부터 회화, 조각 혹은 문학처럼 사물이나 사건을 묘사하려
하는 예술이 아니다. 각자의 기분을 음의 미적인 구성에 의해 말하려 하는
예술이다. 따라서 하나의 같은 악곡이라도 듣는 사람의 마음의 자세에 따라
그것을 느끼는 방법에 대단한 개인차를 나타낸다는 것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음악을 듣는 일은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의 흐름이 여러 가지의
모양으로 변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과는 달리 음악은 인간의 창작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것이며, 그 과정도 긴 역사를 통해 짜 올려져 온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형식상의 약속이나 유형이 존재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이에 관해 다소의 예비 지식을 갖고 있으면, 이것이 간접으로 감상의
작용을 돕는 것이다. 음악을 듣고 있는 동안에 생기는 지식욕이나 의문은
순수하게 감상하려 하는 마음의 작용에 대해 언제나 저항이 되기 때문이다.
무엇이건 어떤 체험을 하는 경우에 조금이라도 사정을 알고 있으면 불필요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뿐만 아니라, 주의력이 잘 미쳐서 대상의 참된
모습을 잘 응시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음악을 '안다'는 비결은 잘 들어보는 일에서
비롯된다. 만약 알 수 없다는 것이 있으면 그것은 지식욕이나 의문이 저항이
되고 있든가, 혹은 아무래도 좋은 일, 즉 음악과 관계가 없는 일을 그 음악
속에서 굳이 추구하기 때문이다. 들어보고 따분하면 따분한 대로, 시시하면
시시한 대로, 이것을 듣고 무엇인가를 느꼈다면 그 느낌을 다시 잘 음미해
본다. 그러면 거기에 여러 가지 의문도 생기고 지식도 구해보고 싶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사전을 펼쳐본다든가 남에게 물어본다든가해서 기회 있을
때마다 그 지식을 흡수하여 의문을 풀어 둘 일이다. 그리고 음악을 여러
면에서 깊이 연구하고, 동시에 자기의 취미를 다양하게 발휘해서 차츰 높고
좀더 풍부하게 음악의 아름다움을 찾아 보자. 음악을 안다는 것은 이론이나
학문이 아니기 때문에 음악 그 자체의 모습을 아는 것이 음악의 기분을
안다는 일이다.
  베토벤은 자신이 '가장 완벽한 작품'이라 말하고 있었던 "미사
솔렘니스"(장엄미사곡) 총보의 첫머리에,
  "이것은 나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다시 듣는 사람의 마음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라는 뜻의 글을 적은 바 있지만, 이는 음악을 안다는 일의 모든 것을
설명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    2. 음악 감사의 방법 @]
  음악의 감상은 먼저 '듣는 일'이 중요함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스스로
노래하는 일, 악기를 연주하는 일, 다시 뭔가 작곡해 보는 일 등 어느
것이나 즐거운 감상의 방법이다. 가능하다면 그것을 모두 실제로 해 보는
것이 음악을 깊이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다.
  명곡이나 대작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좋고, 노래를 부르거나, 피아노를
치거나, 춤을 추기도 하면서 음악을 여러 각도에서 아는 일, 이것이 가장
좋은 감상법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학교 교육의 제도는 국민학교, 중학교의 과정에서 옛날에는 창가를 불렀을
뿐이었지만, 지금은 '악기를 다루는 일' '감상' '창작' 등 각 종목이
나누어져 있음은 특별히 음악의 전문가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고, 국민의
일반 교양을 높이기 위해서 음악에 대해 넓은 의미에서의 감상력을 육성하려
하는 목적에 의한 것이다.
  또 음악은 이론이나 지식으로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간접적인 지식 곧 음악의 역사나 작곡가의 진기 등, 음악의
주위를 둘러싼 지식도 감상에 커다란 도움이 되는 것이다. 악곡에 관한
해설서와 같은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러한 지식이 아무리 많이 있어도 귀로
듣는 음악을 결코 좋게도 나쁘게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음악을 듣고
직접 얻은 감명을 더욱 확실하게 하고 인상을 깊게 남게 하는 일도 되며,
감상의 작용에 저항 요인이 되는 의문을 해명해 주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음악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동기도 되며, 이것도 감상을 한층
즐겁게 하는 지식의 재료로서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면 '감상의 방법'으로서 이것을 '듣는 일'과 '연주하는 일'의 두
가지로 나누어 말하기로 하자.
  @[(1) 듣는 일 @]
  지금 우리 나라에서도 큰 도시에서는 한 달에 적어도 2--3개의 주요한
연주회가 열리고 있다.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음악을 듣고 싶을 때
언제라도 어떤 음악회에 갈 수 있게 된 셈이다. 그러나 모두 사업이나 직장
일에 바빠서 좀처럼 연주회에 갈 시간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음악회에 갈
시간이 없으면 레코드도 있으며 텔레비전과 라디오로도 음악을 들을 기회는
언제든지 있다. 그러나 우리의 주위에 있는 무수한 음악 중에서 뭐니뭔니
해도 실제의 생연주를 듣는 아름다움보다 나은 것은 없다. 육성이나 악기의
연주에서 직접 울려 오는 음악은 뭐니뭐니 해도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음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노래하고 있는 사람, 연주하고 있는 사람과 듣는
사람간에 마음의 교류를 느낄 수 있다. 아무리 성능이 뛰어난 기계라도
연주의 '전부'를 전달하여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현재도 생활이 불편한 고장에 가면 음악회는 좀처럼 없으며 이런
경우에는 라디오나 레코드가 큰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레코드는 또 다른
잇점도 있기 때문에 음악 감상에는 없어서 안 되는 기계로 되어 있다.
규모가 큰 명곡 등은 몇 번이고 같은 것을 되풀이하여 들음으로써 깊이
이해를 할 수 있게 되며, 갖가지 연주의 비교를 연구하는 것도 실제
문제로서 레코드 이외에는 특별한 수단이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라디오나 레코드 등의 기계 음악은 한편으로는 매우 편리한 것인 동시에
또 그 음질이 다소간에 진짜와 다르다는 결점도 있다. 아무리 하이파이나
스테레오라고 해도 진짜는 아니다. 아무리 성능이 뛰어난 재생장치를 갖고
있더라도 진짜가 아니라면, 실연의 아름다움과는 훨씬 거리가 멀 것이며
일반적인 재생기나 라디오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이렇게 되면 결국 음악의
감각적인 미감을 해칠 뿐만 아니라, 앞서 말한 '음악의 참된 모습' 즉
'음악적인 의미'를 불명확하게 한다.
  그러면 이런 기계 음악, 진짜가 아닌 음악에 대해 일반인은 어떤 감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모두 어느 정도 진짜를 알고 있기 때문에 "진짜는
이런 것이다"라는 지식과 경험의 도움을 받아 진짜로 듣는 것과 똑같은
감상의 작용을 지닌, 이를테면 착각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음악은 지식만으로 감상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는데, 라디오나
레코드, 사운드 테이프 등에 관한한 무의식 중에 지식과 경험이 큰 구실을
하고 있다. 즉 기계에 의한 불완전한 '음악적인 의미'를 진짜에 대한
지식으로 보충하여 이것을 완전에 가까운 것처럼 의식한다. 옛날 사람들과는
달리 현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역시 이러한 감상의 작용도 필요하다.
  실제의 연주를 자주 보고 듣는 사람은 레코드나 라디오를 들었을 때 전혀
무의식 중에 그 부족한 점을 경험과 지식으로 보충하고, 기계 때문에
일그러진 구분을 그 체험의 기억으로 수정하여 진짜와 똑같은 '음악적인
의미'를 그 속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 습관이 어느 사이엔가 박혀버린
것이다. 이것은 현대의 음악감상자가 지닌 뛰어난 능력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될 수 있는 대로 '진짜는 이렇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귀를 통한 감상과 동시에 음악에 대한 넓은 지식을 준비함으로써
더욱 그 감상이 세부에 걸쳐 두루 미치고 그 아름다움을 깊이 추구하게
된다. 그 직접적인 지식은 책을 읽을 뿐만 아니라 진짜의 연주를 많이
들을수록 풍부해진다.

@[  (2) 연주하는 일 @]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더욱 즐거운 음악의 감상이 된다.
그러나 이것은 귀로 듣기만 하는 경우와는 달라서 대뜸 천하의 명곡을 손댈
수는 없다. 더우기 끊임없이 노력하여 그 기술을 배우고 향상해가야 한다.
  옛날에는 유럽과 미국에서도 음악을 감상하려 할 때는 이따금 열리는
음악회에 가서 듣는 것과 자신이 악기를 연주한다든지, 또 가정이나 친구의
집에 모여 코러스나 합주를 즐기는 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음악을 감상하는
데는 먼저 기술을 공부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던 중 오르골이나
자동피아노와 같은 기계 장치의 악기가 만들어져서 아무리 게으른
사람이라도 자기의 집에서 몸을 움직이지 않고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1877년에 미국의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하자 이 편리한 기계는 곧 전세계의
주목을 끌었으며, 이윽고 원반형의 레코드가 개발되고 나서 처음으로 이것이
음악 감상의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70년 동안에 레코드는
눈부시게 발달하여 오늘날에는 어떤 산골에 있더라도 레코드와 재생기만
있으면 전세계의 어떤 음악이라도 자기 집에서 듣지 못하는 것은 없을 만큼
감상 재료는 발달했다. 그 뿐만 아니라 라디오, 영화, BG음악 등 도시에도
24시간에 걸쳐 좋아하고 안하고에 상관없이 다양한 음악이 범람하고 있다.
그리고 이 기계 문명이 세상을 구가하고 있는 한편으로는 스스로 노력하고
공부를 해서 악기를 연주할 필요가 없으므로 그 아름다움을 차츰 잊어 가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실은 스스로 노래하고 악기를 연습하고 있는 동안에
악보를 읽는 힘도 향상되어 악곡의 해석력이 생기며 악기의 구조 및 여러
가지 주법과 그 성능 등에 대해 점차 자세히 알게 되어, 고도의 명곡을
레코드나 음악회에서 듣는 경우에도 이 지식과 경험은 매우 도움이 되는
것이다.
  또 노래를 부른다든가, 악기를 연주한다든가, 합창이나 합주를 하기도
하는 것은 예술의 창조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지적이고 미적이며 더우기
운동 감각을 만족시키는 즐거운 놀이이기도 해서 스포츠와 같은 요소도 갖고
있다.
  그러나 또 스스로 음악을 연주하는 일은 거기에 따른 공부와 노력의
고통을 수반하는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리고 올바른 음악 감상을 위한
공부는 어디까지나 본격적으로 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결코 어렵고 무리한
노력을 할 필요는 없다. 시작할 때에 전문가 선생에게 배워 올바른 연습을
해야 한다. 초보자에게는 초보자를 위한 음악이 있으며, 조금 향상되면 또
거기에 따른 곡이 많이 있다. 자기의 수준에 맞추어 가면서 공부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전문 음악가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라든지 "즐기기 위해서 하는 것
뿐이니까"라는 생각아래 적당한 방법으로 익혀서는 결국 좋은 감상이 되지
않는다. 그것으로는 언제까지고 음악의 참된 아름다움을 알 수가 없다.
그것은 낮은 의미의 '즐거움'조차도 되지 않을 것이다. 예술이 단순한
놀이와 다른 것은 바로 이러한 점이다. 음악 감상의 참된 기쁨은 역시
거기에 상응하는 노력을 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다.
@FF
@[    3. '음'의 특성 @]
@[  (1) 고른음과 시끄런음 @]
  약간 오래된 백과사전 등에서 '음악'이라는 말을 찾아보면 '고른 음을
사용하여 회로애락의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 등으로 적혀 있는 것이 있다.
그러나 이 설명은 현대의 음악에 대한 사고방식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첫째로 현대의 음악에서는 '고른 음'만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다. 고른
음에 대해서 시끄런 음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현대뿐만 아니라
옛날부터 어떤 종류의 악기에는 시끄런 음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예컨대
심벌의 음, 박자목, 작은북 등의 타악기에는 시끄런음이 많이 들어 있다.
다시 근대에 와서는 관악기나 현악기에까지 시끄런음을 첨가한 주법도
이용되고, 현대의 뮈지크 콩크레트(musique concrete)나 전자음악 같은 것에
이르면 무릇 귀로 느낄 수 있는 온갖 음은 고른 음이건 시끄런 음이건 모두
음악의 재료로서 무제한 사용하려 하는 사고방식으로 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이미 '고른 음을 사용하여'라는 말은 음악의 정의에서 제외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시 '고른 음', '시끄런 음'이라는 의미는 지금까지 음악적 혹은
물리학적으로 이름붙여진 음의 성질의 종류를 말하는 것인데, 인간의 생활이
복잡해진 현재에서는 '시끄런 음'이라는 말의 의미도 차츰 바뀌어졌다.
한자로도 근년에는 '소음'이라고 적는 수가 많고, 이것은 '들으려 하는 목적
이외의 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예컨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고 있는 A와 B와의 경우, A가 피아노의 연습을 하고 있으면 옆에서
스테레오를 듣고 있는 B에게는 이것이 소음으며, 동시에 A에게도 B가 듣고
있는 스테레오는 소음이 되는 것이다. '고른음' '시끄런음'이라는 음질
자체의 의미와는 전혀 관계없이 사용되고 있다.
  다음에 '희로애락의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이다'라는 사고방식에도 많은
의문이 있다. 대체로 음악은 인간의 감정을 나타내는 것이 목적이나, 아니면
구체적으로 감정을 나타내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 목적인가 하는 것은
19세기 후반부터 이미 갖가지 논의의 대상이 되었는데, 그것은 매우 복잡한
문제이므로 뒤의 항에서 말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현재의 사고방식에 따라
음악이란 '음을 재료로 해서 이것을 미적으로 구성하는 예술'이라고 정의해
두자.
  그러면 그 '음'이라는 것이 지닌 여러 가지 특성과 음악을 구성하기 위해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자.
  인간의 성대, 피아노에 사용되고 있는 강철선, 바이올린이나 기타의 현,
클라리넷의 리드와, 나팔의 마우드피스에서 진동하는 입술, 또 큰북의
몸통에 씌운 가죽과 종이나 방울 등과 같은 여러 가지 발음체에 의해 생기는
음향을 사용하여 작곡가는 아름다운 효과를 나타내도록 계획하고 조립한다.
그리고 그 설계도라고 할 만한 것이 악보이다.
  이 설계도만으로는 아직 음악이 되지 않는다. 이것이 연주가의 손에
넘어가 비로소 아름다운 음악이 되어 듣는 이의 심정에 호소하는 것이다.
물론 옛날부터 작곡가로서 연주가를 겸한 사람도 많이 있지만 그 일은
별도이다. 연주가는 그 설계도를 잘 살펴 작곡자의 계획을 될 수 있는 대로
충실히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이 때 연주가 각자의 취미(미적 가치의
판단)나 주장에 의해 자연히 연주의 개성이 듣는 이의 귀에는 각각 특색있는
음악으로 들리게 된다. 하나의 악보라도 연주하는 사람에 따라서 그
나타내는 효과가 매우 다른 점이 있음은 이 때문이다. 최초의 설계에서 음의
조립이 매우 아름답고 작곡자의 기분을 명확히 나타내어 연주자의 마음에
강하게 전해지도록 작곡된 것이 이름바 명곡이며, 또 이 기분을 충분히
이해하여 이것을 명확하고 아름답게 표현하여 듣는 이의 귀를 충족시켜 주는
일이 이른바 명연주라는 것이다.

@[  (2) 음의 높이 @]
  음은 높고 낮은, 혹은 강하고 약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높다는 것은
발음체의 진동수가 많은 경우이며, 그 진동수가 적어질수록 음은 낮아진다.
흔히 음의 고저를 일반적으로는 강약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높은
소리는 외친다' '낮은 소리는 속삭인다'라고 하는 것은 보통의 대화에서
종종 사용되는 말인데, 적어도 음악의 말로는 이것을 '강한 소리', '약한
소리'라고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커다란 음이란 '강한 음' 을 말하며 작은
음이란 '약한 음'을 말한다. 강한 음과 약한 음은 발음체의 진폭의 대소,
진동시키는 힘의 대소에 의해서 생긴다.
  따라서 여성이나 어린이의 목소리는 남자 성인의 목소리보다는 높은
것이며, 절에서 울리는 범종 소리는 짤랑짤랑 하고 울리는 방울 소리보다
낮은 음이 된다. 또 10미터 떨어진 곳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한 마리의
모기가 우는 소리보다 강하다는 것이다.
  음의 높이가 여러 가지로 변할 때 '가락'이 생긴다. '가락'을 음악의
말로는 선율이라 하며 영어로는 이것을 멜로디라고 한다. 가락은 여러 가지
느낌을 나타낸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가락, 사랑스러운 가락, 고상한 가락,
야비한 가락, 우울한 가락, 원기 있는 가락 등과 같이 듣는 이의 귀로부터
곧 그 느낌이 전달된다. 또 고풍스런 가락이라든가 현대적인 가락이라는
느낌도 있으며 동양풍의 가락, 서양풍의 가락이라는 식으로 구별되는 수가
있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가락'을 지닌 '음악'은 곧 유행된다. 또 곧
좋아하지는 않더라도 자주 듣고 있는 동안에 점점 좋아하게 되는 그런
가락은 이른바 명곡 속에 많이 있다.
  아무리 들어도 좀처럼 그 가락의 느낌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은 단지 그
가락만으로는 쉽게 그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고급 음악도 많이
있지만, 또 완성된 상태가 나쁘거나 시시한 노래로서 좀처럼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의 가요 같은 것을 들으면 너무 단순해서 곧
싫증이 나고 말 것이다. 많은 서양음악은 이 가락이 갖는 의미가 대단히
중요하며, 한국 음악에는 가락보다 그 문학적인 내용을 주로 하는 종류의
것이 많다. 따라서 가락을 만드는 법은 서양음악이 더 정교하고 한국음악은
좀더 대범하게 만들고 있지만, 그 표현 방식과 노래하는 방법은 한국음악이
더욱 미묘한 변화에 차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3) 음의 강약 @]
  음의 강약의 변화도 여러 가지 음악적 효과를 나타낸다.
  리듬은 강약의 규칙 바른 변화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리듬은 인간이 아직
음악이라는 정도의 것을 갖고 있지 않았던 먼 옛날부터 그 감정을 지배하는
중요한 하나의 재료가 되고 있다. 먼 옛날, 사람들은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할 때, 손장단, 발장단 또는 판자조각 등을 두르려 그 리듬을
강조하였고 그 때의 기분을 나타내어 하나의 음악적 효과를 만들어냈음에
틀림없다. 의복이나 기물 등에 무늬를 새기는 데에도 거기에는 일정한 리듬,
이른바 기하학적 무늬라는 시각적 리듬을 가진 것이 많아, 인간의 생활은
모두 리듬으로 지배되고 있다. 생각하면 인간의 호흡도, 맥박도, 걷거나
뛰거나 하는 운동도 모두 리듬을 가지고 있다. 해조의 간만, 천체의 운행,
춘하추동의 한없이 규칙 바른 반복이 모두 리듬적이다. 거기서 태어나는
생활은 아침 저녁의 기도와 세 번의 식사에도 일정한 리듬이 반복되고 있다.
아마 인간이 만들어낸 음악도 가락보다는 먼저 리듬이었다는 생각 또는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음악의 기술적인 진보와 함께 강약의 변화는 단지 리듬을 만들 뿐만
아니라 그 불규칙한 변화에 의해서 더욱 많은 의미를 음악에 부여하게
되었다. 또 감정의 격한 변화와 강렬한 의지의 느낌, 긴장이나 이완의 느낌
등 그러한 것들은 강약의 변화에 의해서 표현되는 일이 많이 있다. 약한
음에서 점점 강해져 가면 차츰 힘이 충실하고 흥분해 가는 느낌을 나타내는
것이다. 작곡가는 강약의 미묘한 변화를 교묘하게 사용하여 인간의 섬세한
활동과 기분을 그리려 하는 것이다.

@[  (4) 음색 @]
  음에는 또 음색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을 '음빛깔'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색이라고 하면 시각상의 말이 되는데, 음에도 편의상 이 색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빛나는 풍부한 음색을 지닌 명인도 있는가 하면,
똑같은 악기인데도 '이가 들뜬 것 같은' 지독한 음색을 들려 주는 서툰
사람도 있다. 같은 높이, 같은 세기의 음이라도 피리 소리, 나팔 소리
오르간 소리는 모두 각각 음색이 다른다. 피아노 같은 기계적으로 정교한
악기도 명인과 아마추어와는 음색이 다르다고 할 정도이다. 사람의 목소리도
문자 그대로 각양각색이다. 달콤한 목소리, 차가운 목소리, 부드러운
목소리, 둥근 목소리, 앙칼진 목소리, 노란 목소리나 하면서 각각 들은
느낌을 미각이나 촉각, 온각 또는 시각에서 받는 느낌으로 비유하여
형용하듯이 음색의 차이도 또한 여러 가지 느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면 음색의 차이는 무엇에 의해서 생기는 것일까. 물리학에서는 그
음에 포함되어 있는 배음의 성질과 양에 따라 여러 가지로 음색이
달라진다는 것으로 되어 있다. 또 배음의 관계뿐만 어떤 음에 다른 종류의
음, 특히 시끄런 음 등이 섞인 경우에 넓은 의미에서 음색의 변화가 되는
일도 있다. 이 자세한 이론은 여기서는 생략하지만, 어쨌든 음에는 여러
가지 음색이 있다. 작곡가는 이 많은 복잡한 음색을 미적요구의 입장에서
선택하기도 하고, 조합하기도 하고, 대조시키기도 하면서 그 음악을
아름답게 채색한다.

@[  (5) 화성 @]
  2개 이상의 각각 다른 높이의 음을 동시에 울리면 '화성'이라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 2개 이상의 음이 서로 다른 높이의 관계에 의해 여러 가지
효과가 생긴다. 그 음악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을 화성법이라든가
화성학이라 하고 작곡가는 먼저 이것을 공부한다. 화성은 영어로
하모니(Harmony)라고 한다.
  개개의 음이 몇개인가 동시에 울림으로써 화성이 되는데, 노래의 경우
코러스로서 두 사람 이상이 각각 다른 가락을 노래할 때, 즉 2개 이상의
서로 다른 멜로디가 동시에 진행하면 어찌 될까. 이것은 개개의 음을 혼합한
경우보다 좀더 어려운 문제인데, 또 한없이 재미나는 효과도 생겨날 것이다.
이 연구는 벌써 천여년 전에 유럽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이것을
'대위법'이라고 하며, 이것도 작곡가의 중요한 공부의 하나가 되고 있다.
화성학도 대위법도 옛날에는 여러 가지 어려운 규칙에 묶여서 전해져
왔는데, 실은 그 규칙을 익힐 뿐만 아니라 많은 천재적인 작곡가들은 항상
그 새로운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의 감정에 대해 얼마나 아름답게
울려퍼지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왔다. 따라서 그 내용도 시대와 함께
변화하고 발전해 가기 마련이다. 대위법과 화성의 발달에 대해서는 다음의
'음악의 양식'이라는 곳에서 역사적인 경과를 간단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처럼 음악은 모든 종류의 음이 여러 가지 수법에 의해서 미적으로
조작되어 있는 예술이다. 성악도 기악도 각각 어느 때는 단순하게, 어느
때는 복잡하게 구성되어 많은 종류의 악곡을 만들어 간다.
  음악을 감상하기 위해서, 이렇게 조직된 많은 음악의 종류에 관해 이하
간단한 해설을 해 가기로 한다.

@[    4. 성악 @]
  노래를 부르는 일은 음악의 가장 원시적인 모습인 동시에 또 가장
복잡하고 미묘한 효과를 지닌 음악이다. 인간의 섬세한 감정을 음악으로서
나타내는 것은 물론 피아노나 바이올린으로도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뭐니뭐니 해도 인간이 노래 부른다고 하는 일에는 미치지 못한다.
노래는 원래 '시'와 '음악'이 혼연히 하나로 결합된 것이다. 혹은 시의
의미를 한층 더 강조해서 이야기하려 할 때, 그것에 '가락'이 붙어서 자연히
노래가 태어난 것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노래는 거의 모든
경우에 '말'을 갖고 있다. 때로는 극히 드물게 말이 없는 노래, 즉
'아-'라든가 '라-'라든가 하는 노래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선 보통으로
생각하면 노래에는 가사가 있다. 말에는 구체적인 의미가 있다. 그 의미에
따라 '가락'이 생기고, 그 말이 갖는 발음의 아름다움까지 이것에 더해져
비로소 '노래'라는 것이 되기 때문에, 음악으로서 이만큼 이것에 더해져
비로소 '노래'라는 것이 되기 때문에, 음악으로서 이만큼 듣는 이에게 그
내용이 잘 이해되는 것은 달리 없다. 듣는 이의 아름다은 음악과 함께 그
시가 지닌 의미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래는
악기만으로 연주하는 음악에 비하면 훨씬 의미가 뚜렷하고 강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임에 틀림없다. 섬세한 정서와 힘찬 박력, 혹은 관능적인
연상을 일으키는 음악은 악기로 연주되는 음악보다 노래로 불려지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또 아무래도 인간의 목구멍에서 나오는 목소리이기 때문에 악기를
사용한 음악에 비하면 스스로 한계가 있다. 음의 고저의 범위도 악기보다
좁고 강약의 넓이에도 한계가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또 '가락'을 부르는
방법만 하더라도 바이올린이나 피아노로 굉장히 빠른 변화를 붙여 마구
연주하듯이 부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한 곡은 악기에 맡겨 두면 좋고,
노래는 역시 가장 인간적인 감정을 지닌 음악으로서, 인간의 신체에서
나오기 때문에 한계가 있으므로 듣는 이에게 가장 많은 공감을 주는
음악이며, 거기에 성악의 가장 아름다운 효과가 있다고 생각된다.
  한국의 전통적인 음악은 옛날부터 악기의 음악보다는 성악이 그
대부분이다. 특히 판소리나 민요는 그 내용에 풍부한 문학이 있으며, 듣는
이는 음악과 함께 그 문학이 이야기하는 정신을 맛보려고 한다. 따라서
노래의 음역을 너무 넓힐 필요도 없고 오히려 한 사람의 안정된 목소리로 그
문학의 정신을 깊이 파내려가 여기에 음악적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서양인은 성악이 기악에 미치지 못하는 점, 즉 음역이라든가
강약의 범위를 될 수 있는 대로 넓혀서 기악과 마찬가지의 능률을 올리려고
하였다. 음의 고저를 넓히기 위해서는 여자 또는 어린이의 높은
소리에서부터 남자의 낮고 굵은 소리까지를 순서 있게 잘 늘어놓아 넓은
음역을 만들어냈다. 또 몇백명이라도 합창을 계획하여 매우 커다란 음을
내는 것도 생각해 냈다. 소프라노, 테너라고 하는 것은 목소리의 높이,
음색, 성격 등에 의해 인간의 소리를 구분한 명칭이다.
  서양에서는 12, 13세기 경부터 여자의 목소리를 그 높이의 순으로 각각
소프라노, 알토, 남성을 테너, 베이스의 4개로 구분했는데, 다시 18, 19세기
경부터 소프라노 다음에 멧조 소프라노, 남성에는 테너 밑에 바리톤을
더해서 모두 6개의 종류로 나누고 있다. 이 호칭은 각국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도 하다.
  그러면 소프라노라든가 테너라고 하는 것은 대체 어느 정도의 음역을 갖고
있으며, 어느 높이까지 나오는 사람을 바리톤이라고 하는가 하게 되면,
이것은 각각 가수의 능력에도 따르고 하나하나의 노래에 의해서도 다르므로,
거기에 엄격한 경계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위에 말한 6종류의 각
성부의 높이와 범위는 대체로 예보와 같이 된다.(그림생략)
  물론 이 각 성부의 가수는 이 음의 범위 이외의 음은 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모짜르트가 "코시 판 투테"(여자는 모두 이런 것)라는 오페라를
작곡했을 때 마침 당시 유명한 소프라노와 알토의 양쪽 음역을 자유자재로
부를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지닌 가수였기 때문에 모짜르트는 이 사람을
위해서 이 오페라 속에 무척 음역이 넓은, 도저히 다른 사람은 부를 수 없을
만큼 어려운 노래를 써넣었다고 한다. 이런 일은 극히 드물게 보는 하나의
예이지만, 악곡에 따라서는 이처럼 소프라노라든가 알토라든가 하는 구분을
때로는 지키지 않아도 좋은 것이다.
  그러나 합창의 경우에는 대체로 예보에서 보는 바와 같이 목소리의 높이에
따라 각각 그루프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이 소프라노라든가 알토라고 하는 것은 음의 높이의 구별인 동시에
그 음색이나 표현되는 성격이나 감정에도 또한 커다란 차이가 있다.

@[  (1) 목소리의 종류 @]
  소프라노
  여성의 가장 높은 소리를 맡고 있는 만큼 가장 밝고 화려하며 다른 성부
속에 들어가도 굉장히 두드러지게 들리기 때문에 합창의 경우에는 가장
중요한 멜로디를 부르는 것이 통례이다.
  오페라의 배역으로서는 젊고 아름답고 정열적인 여주인공의 역을 맡고
있어 이것을 중심으로 극이 진행해 가도록 만들어진 것이 많다. 예를 들면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티"의 비올렛타, "리골렛토"의 질다와
"아이다"의 아이다, 그리고 또 풋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의 미미와 "나비
부인"의 나비 부인 등과 같은 역은 모두 소프라노이다.
  또 소프라노는 때로 무척 화려하고 또한 장식적이며 더우기 기교적인
노래를 부르는 수가 있다. 이것은 콜로라투라(Coloratura)라는 수법으로서,
옛날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발성 기술의 하나이다. 인간의 목소리가 마치
바이올린이나 클라리넷과 같은 악기가 연주하는 것처럼 다루어지고, 때로는
더욱 그 빛을 늘리기 위해 반주 악기 외에 플루트나 바이올린의 독주로
이것을 도와 한층 기교적으로 과장해서 들려 주도록 만들어진 곡도 있는데
이것을 '오블리가토'라고 한다. 목소리의 곡예 같은 곡도 만들어지고 있다.
  콜로라투라 소프라노가 부르는 유명한 노래로서 영국의 헨리 비솝경이 쓴
"보라, 저 다정한 종달새를!"이 있으며, 또 오페라 중에서도 아름다운
여주인공의 노래를 널리 돋보이게 하기 위해 예컨대 도니젯티의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중의 '광란의 장면', 혹은 들리브의 오페라 "라크메"
중의 '종의 노래' 등은 모두 소프라노 콜로라투라의 아름다움을 극도로
발휘한 것으로, 모두 플로트의 오블리가토가 달려 있다.
  같은 소프라노에도 이와는 달리 내면적인 감정의 표현에 중점을 두는
창법, 즉 극적인 효과를 콜로라투라의 외면적, 기교적, 장식적인 것과는
전혀 정반대의 의미로서 화려함과 열정적인 강력함을 갖고 있는 것이다.
  소프라노에는 이 밖에 보이스 소프라노라고 하여 7, 8세의 사내아이가
부르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옛날의 가톨릭 교회의 교회 음악에서 종교적인
의미로 성가대에 여성을 넣지 않는 습관이 있었다. 여인 금제가 되면 합창
속에 소프라노와 알토가 없어지고 말기 때문에 그 대신 변성기 전의
사내아이로 하여금 부르게 한 것이 시초로서, 현재도 그러한 성가대를 가진
교회가 있다. 옛날의 대작곡가 헨델이나 하이든, 슈베르트 등도 10세
무렵까지, 즉 그 변성기까지는 교회의 성가대에서 소프라노로 활약했었다는
것이 저마다의 전기에 적혀 있다. 물론 어린이였기 때문에 음역의 넓이나
음악적인 표현력의 크기, 박력 있는 강약 등에서는 부족했지만, 그 투명한
음색이나 소박하고 사랑스러운 발성은 또한 여자의 목소리와는 다른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멧조 소프라노란 소프라노보다 조금 낮은 소리로서, 약간 폭이 넓은
성질을 갖고 있다.

  알토
  알토(영어로 콘트랄토라고 하는 것도 같다)는 여성의 낮은 소리를
담당하는 것으로서 그 음색이나 성격에서 차분하게 가라앉은 느낌과 또
힘차고 깊은 열정적인 느낌을 받는다.
  오페라의 배역에서는 알토는 나이를 먹은 여성이라든가 모친과 같은 역,
혹은 주역인 소프라노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소박한 하녀와 같은 역을 맡게
된다. 그런가 하면 세상의 쓴 맛, 단 맛을 본 중년 여자, 때로는 산전수전
다 겪은 닳고 닳은 악역도 맡게 된다. 그런가 하면 또 극히 내성적이어서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도 제대로 말할 수 없을 것 같은 여자, 그러나 안에
숨긴 강한 성격의 여자, 이런 여성의 역은 대개의 경우 알토가 맡는다.
실례를 보면 먼저 주역으로는 카르멘. 이것은 정열적인 집시의 젊은 여자로
악당 남자들과 겨루며 뛰어난 솜씨를 발휘하고, 그러면서도 생각하는 것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목숨도 필요없다고 하는 순진하고 강렬한 성격의
소유자. 이런 역에는 힘찬 알토의 목소리가 매우 효과적이다. 다만 카르멘은
멧조소프라노가 부르는 일도 있고, 또 극히 드물게는 소프라노가 연기하는
일도 전혀 없지는 않다. 또한 토마의 오페라 "미뇽"의 주인공으로 내성적인
소녀 미뇽. 이것은 주역이지만 또 한 사람의 화려한 성격의 필리네가
소프라노이기 때문에, 이에 대항해서 온순한 처녀 미뇽의 역은 알토 또는
멧조소프라노가 맡아서 유명한 '그대여 아는가 저 남쪽나라를'을 부른다.
  그렇지만 알토나 멧조 소프라노는 주역이 아니라 조역을 맡는 수가 많다.
"나비 부인"의 가정부 스즈키, "라 트라비아타"의 가정부 안니나,
"아이다"에 나오는 이집트의 왕녀 암네리스 등은 조역이지만 그 노래와
연기는 극의 전체를 긴장시키기 위한 중요한 역할이어서 확고하고
드라마틱한 성격을 풍부하게 발휘해야 한다.

  테너
  독일식으로 말하면 테노르, 이탈리아어로는 테노레이며 남성의 가장 높은
소리이다. 따라서 그 음색은 가장 밝고 탄력이 있으며 때로는 영웅적이고
힘차며 남자의 감미로운과 약함을 지닌 미남의 성격을 갖고 있으므로,
오페라에서는 역시 여주인공인 소프라노에 대해 상대 주역은 테너가 주로
많이 한다. "라 트라비아타"의 알프레도, "카르멘"의 돈 호세, "나비
부인"의 핀커톤처럼 고운 사내의 역은 모두 테너이다. 그리고 어느 것이나
어딘가에 약한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이 공통된 특징이다. 예컨대 "아이다"에
나오는 백전 연승의 강한 장군 라다메스조차도 연인에게 군사 기밀을
누설하여 일생을 망치는 사내이니까 역시 테너의 역이다.
  테너에도 음색이나 성격에 따라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예를 들면
이탈리아어로 '테노레 디 그라치아'라는 것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우아한
느낌을 주는 테너인데 이것은 서정적인 노래를 부르는 데 알맞다. 또
이것과는 반대로 극적이며 강렬한 음색과 표정을 지닌 테노레 로부스토라는
것이 있으며, 내면적인 성격 표현을 장기로 하는 테노레 드라마티코라는
것도 있다. 또 경쾌하고 밝은 성질을 지닌 테노레 렛지에로, 희극에 적합한
테노레 부포라는 것 등이 있어서 각각 그 다른 특색으로 자기가 잘하는
노래의 범위를 정한다. 유럽과 미국, 특히 이탈리아 등은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직업적인 가수가 많고, 특히 테너의 밝은 목소리는 그 용도도
많으므로, 같은 테너라고 해도 이러한 여러 가지 종류나 성격의 특징에 따라
각각 전문 가수가 있다. 한국에는 유감스럽게도 본격적인 테너의 목소리를
갖고 있는 사람이 매우 적기 때문에 혼자서 여러 가지 성질의 것을 구분해
불러야 할 형편이다.
  이탈리아의 민요 "산타 루치아"의 "오 솔레 미오", "돌아오라 소렌토로"
등은 모두 남국의 강렬한 태양을 생각케 하듯 밝고 명랑하여 자유분방한
감정을 갖고 있다. 이런 노래는 소프라노나 바리톤, 베이스 등이 불러서는
어울리는 느낌이 나지 않고 역시 테너에게 어울리는 노래이다.
  오페라에 나오는 유명한 테너의 노래도 역시 이탈리아의 것에 많은데
베르디의 "아이다"에서 라다메스 장군이 부르는 '청결한 아이다', 또
"라트라비아타"에서 알프레도의 '축배의 노래', "리골렛토"에서는 공작이
부르는 '이것이나 저것이나', '여자의 마음' 등은 모두 오페라의 유명한
아리아이다.

  바리톤
  바리톤은 테너보다 낮은 음역을 맡을 뿐만 아니라 목소리의 질이 전혀
다르다. 그것은 폭넓고, 힘차고, 정력적이며 또 착실하고 안정된 느낌이
들기 때문에 오페라의 역으로서는 노련한 성격, 강직한 인간, 사려 깊은
인간, 혹은 용기 있고 또 자신에 찬, 강한 성격을 표현하는 역을 맡는다.
  바리톤의 성격을 오페라 속에 교묘하게 사용한 것은 모짜르트이다.
"피가로의 결혼"에서는 피가로가 말도 잘하고 일도 잘하며 세상 물정에 밝은
남자를 나타내고, "돈 지오반니"에서는 세계 제일의 바람둥이로 세상에서
무서운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하는 대담한 남자 돈 지오반니(돈환)를, 또
"마적"에서는 파파게노라는 익살스럽고 교활하고 유머러스한 성격을
나타내는 바리톤의 성질을 안정된 느낌으로 가장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다.
바그너의 "탄호이저"에서 유명한 '저녁별의 노래'를 부르는 볼프람은 사려
깊은 사나이, 베르디는 "라 트라비아타"의 제2막에서 늙은 부친에게
엄하면서도 자애에 넘치는 '프로방스의 바다와 육지'라는 아름다운 아리아를
부르게 한다.
  또한 바리톤은 차분하고 내성적인 기분을 나타내는 데 알맞기 대문에
조용하고 로맨틱한 노래를 부르면 참으로 아름다운 효과가 있다. 슈베르트의
유명한 가곡집 "겨울 나그네"와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 등의 많은
예술가곡은 바리톤의 안정된 깊은 맛이 있는 표현을 하기 때문에 참된
아름다움이 이해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베이스
  인간의 목소리 중에서 가장 낮은 부분을 노래하는 것이 베이스이다.
합창의 경우에는 문자 그대로 합창의 토대가 되는 곳을 부르는 셈이므로 그
역할도 중요하다. 독창에서는 어둡고 침울하며 또 저력이 있는 느낌을 준다.
  이와 같은 낮은 목소리, 일상 생활에서 별로 들을 수 없는 낮은 음역의
목소리는 오히려 초인간적인 느낌마저 갖게 한다. 또 오페라의 경우에는
국왕이라든가 영주와 같은 주권자의 위력을 지닌 성격, 또한 사려 분별이
있는 노인의 인물을 표현하거나 종교적인 신비감을 수반하는 하느님, 고승,
덕망 있는 은자 등은 반드시 베이스의 역이다. 또 낮고 어둔 목소리는
사람의 공포심을 자아내고 끔찍한 느낌마저 주는 것으로, 사악하고
밉살스러운 정신을 인격화한 악마나 마법사, 또 흉악한 등도 거의 예외없이
베이스가 부른다. 따라서 베이스가 주역을 부르는 일은 좀처럼 없지만, 드문
예로서 무소르그스키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가 있다. 1938년에 죽은
세계적 베이스 가수 샬리아핀은 이 오페라의 주역, 보리스 황제의 역을 가장
훌륭하게 했었다.
  이것으로 6개의 '목소리의 역할'에 대해 각각의 음역, 성격 등을 말해
왔는데, 다음에 이들 목소리를 편성한 경우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한다.

@[  (2) 목소리의 편성 @]
  노래는 혼자서만 불러도 아름답지만, 몇사람이 복수가 되어 합리적으로 그
목소리가 조직될 경우에는 중창이 되고 합창이 되어 풍부한 색채와 명암을
만들고, 혹은 중량감을 수반하여 독창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낳는 것이다.
  몇사람이 함께 노래하면 보통으로는 이것을 '합창'이라고 하는데, 음악
용어로는 그것을 다시 제창, 중창, 합창의 세 종류로 나눈다. 각각 그
방법도 다르고 효과도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둘이서 목소리를 맞추어 같은 가락의 노래를 같은 높이의 조로 부른
경우를 '제창'이라고 한다. 같은 가락을 같은 높이로 부르면 3명이건,
5명이건, 백명이건, 2백명이건 역시 제창이다.
  두 사람이 서로 잘 조화하도록 작곡된 각각 다른 가락을 함께 부르는 것을
'2중창'이라고 한다. 세 사람이 이처럼 다른 가락을 동시에 부르면 이것은
3중창이며, 4중창, 5중창도 각각 같은 방법으로 부르는 것이다.
합창(코러스)에 대해 중창을 앙상블(ensemble)이라고 한다.
  중창은 각 성부를 한 사람씩, 즉 2중창인 경우에는 각각 다른 2개의
가락을 한 사람씩 부르기 때문에 그 한사람씩의 목소리의 색채나 성격을
각각 명확하게 구분해 들을 수 있다. 더구나 오페라의 경우에는 그 이야기에
ㄸ라 각 등장인물의 성격이 매우 뚜렷하므로 이것을 잘 짜맞추어 작곡하면
매우 재미나는 중창을 할 수 있다. 모짜르트 시절부터 오페라 속에는 특히
흥미 깊은 뛰어난 중창이 많이 있다. 예컨대 연인끼리 사이 좋게 서로
이야기하는 2중창도 있는가 하면 빚장이와 싸움을 하면서 부르는 2중창도
있으며, 거기에 중재가 들어가 3중창이 되기도 하고 4중창이 되기도 해서
인물이 늘어남에 따라 그 작곡상의 기교도 복잡해지고, 오페라적 구성도
점점 재미가 있게 된다.
  위에 말한 '중창'의 경우에는 2중창이건 3중창이건 선율을 한 사람이 맡고
있지만 이것이 한 사람씩이 아니라 복수가 될 경우, 즉 A의 그루프가 제1
선율을, B의 그루프가 제 2 선율을 부르게 될 때 그 그루프가 2개이면 2부
합창, 3개이면 3부 합창이라고 하게 된다. 예컨대 4중창의 4개의 선율이
각각 두 사람 이상의 수로 불려질 때 이것은 4부 합창이 되고, 그 각
그루프의 수는 백명씩이 되거나 2백명씩이 되어도 역시 4부 합창이다.
  합창은 여성만으로 이루어진 여성 합창, 남성만으로 이루어진 것을 남성
합창이라고 하며, 이 양자가 뒤섞인 것을 혼성 합창이라고 한다. 가장 많이
행해지는 표준적인 경우에 대해서 보면 여성 합창은 제1소프라노,
제2소프라노 및 알토로 이루어진 3부 합창과 남성 합창은 제1테너, 제2테너,
바리톤, 베이스의 4부 합창. 혼성인 경우에는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의 4부로 각각 구성되어 있다.
  합창은 각 성부가 집단이 되어 커다란 두께를 나타내고 마치 파이프
오르간 같은 효과를 나타내기 때문에 종교음악과는 가장 깊은 관계가
있으며, 옛날부터 서양에는 합창용으로 만들어진 교회음악의 명곡이 많이
있다.
  또 독창에는 거의 모든 경우에 피아노나 관현악의 반주가 붙어서 이것을
화성적으로 장식해 주지만 합창은 그 자체가 이미 화성을 가졌고 여러 가지
목소리의 질에 의한 색채적인 아름다움을 갖고 있으므로 종종 반주 없는
합창곡도 많이 있다. 무반주의 합창곡을 '아 카펠라(a capella)'라고 부르는
것은 옛날 교회에서 무반주 합창만이 행해진 데서 생긴 말로서
'교회풍으로'라는 뜻이다.
  합창음악은 민요나 예술가곡에도 여러 가지 명곡이 있는데 직업음악가는
물론이고 음악애호가들의 그루프에서 불려지게 되었으며, 근대에 와서는
영화음악이나 재즈 그 밖에 포퓰러한 경음악에서도 많이 사용된다.
  오페라 속에서도 예컨대 베르디의 "아이다" 제2막의 개선의 장면에서
불려지는 장대 화려한 대행진곡, 그리고 바그너의 "탄호이저"에서
노래시합의 전당으로 들어가는 기사와 숙녀의 대합창 등은 불후의
명작으로서 친숙해지고 있다.
  또한 교향곡의 대작곡가 베토벤은 그 마지막 대작 "제9번 교향곡"에서
악기만으로는 그의 커다란 구실을 모두 말할 수 없게 되어 마침내 독창,
중창, 합창을 포함하는 대성악곡을 끝악장에 덧붙였음은 교향곡의 역사상
가장 특기할 만한 업적이었다.

@[    5. 성악곡의 종류 @]
@[  (1) 민요 @]
  갖가지 노래 중에서 각기 국가나 민족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생한 것이
민요이다. 민요에는 그 민족 특유의 소박한 감정과 일상생활, 언어, 동작
등이 바탕이 되어, 여기에 시대적 색채가 더해진, 독특한 음악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그 지방마다 커다란 특색이 있다.
  민요의 가락은 각 민족의 언어의 억양이나 일반적인 생활 감정의 특색과
관련이 있다. 민요의 리듬도 그 생활 감정의 특징과 특수한 노동 작업, 민족
무도 등과 관계가 있다. 그러나 또 각 민족이 오래전부터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악기의 특징, 즉 어떤 특수한 음계에만 알맞은 피리라든가, 독특한
리듬을 나타내는 데 적절한 타악기류가 그 민요의 가락이나 리듬을
고정시키고 있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민요에는 그 민족의 생활과 감정이
가장 자유롭고 소박한 형태로 음악화된 것임에 틀림이 없다. 바꾸어 말하면
많은 민족이 각각 옛날부터 갖고 있던 취미나 생활이 음악의 형태로 표현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민요는 민족의 생활에서 직접 태어난 것이기 때문에 시의 내용은 그 생활
환경이나 풍경, 행사 등을 그린 것이 많이 있다. 또 종교적인 노래, 연애의
노래, 시정의 노래, 노동의 노래, 전쟁의 노래, 자장가, 전설이나 이야기의
노래, 무도의 노래, 도박의 노래, 사냥의 노래 등 어느 것이나 그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이 되고 있다. 또 그 가사의 구절이 극단적으로 각 고장의
방언을 사용하고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민요의 가사는 대개는 단순하고
짧은 것이 많지만, 때로는 또 이야기노래풍의 장대한 시를 가진 것도 있다.
  곡은 형식상으로는 간단한 것이 많은데 어느 것이나 짧은 가락을 몇번이고
반복하는 '유절가곡'의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절가곡이란 예컨대 한국에서
보통 불리는 국민학교의 동요, 가곡, 교가 혹은 찬송가처럼 같은 각수와
같은 행수의 구를 1절, 2절, 3절로 늘어놓은 시를 각각 같은 가락으로
반복하는 것으로서, 한국의 "아리랑"이나 "바위 고개"는 모두 이
유절가곡이다.
  본래의 민요는 오랜 시대부터 그 고장에서 누구인지도 모르게 부르기
시작한 것이 많아서, 그 작사자의 이름도 작곡자의 이름도 전해지고 있지
않는 것이 통례이다. 그러나 그리 오랜 것이 아니고 뚜렷하게 알려진 작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그 민족의 정신이나 감정과 일치하여 널리 불려지며, 또
외국인이 이것을 들어도 곧 그 고장에 오래 전부터 있었던 민요처럼 생각할
만큼 그 민족 특유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는 노래는 일반적으로 민요로써
다루어지고 있다. 예컨대 아일랜드의 민요로서 한국에서도 많이 불려지고
있는 "한 떨기 장미꽃"과 같은 아름다운 노래는 18세기 말의 아일랜드의
시인 토머스 무어의 작품으로 되어 있다. 미국의 포스터가 만든 "켄터키
옛집", "고향 사람들", "올드 블랙 조" 등도 미국 민요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민요는 또 시대나 환경과 함계 변하고 있다. 정말 원형 그대로의 민요는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고장에서 노인들이 불러 전해진 것이라든가, 혹은
학문상의 필요로 특별한 방법을 강구하여 원형을 보존하려 했던 경우 외에는
별로 현대에는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또 이 선율만을 따서 음악회용의
독창곡이나 합창곡으로 편곡하고, 피아노 반주를 붙이는 경우도 있다. 다시
그 선율이나 리듬을 따서 이것을 관현악요으로 편곡하기도 하고 탱고나
재즈로 편곡하는 일도 있다. 가요곡의 가수가 오케스트라 반주로 감미롭게
부르는 민요는 민요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할지 모르지만 고장에 전하는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이것은 한편으로 보면 유감스런 일로 생각된다. 그것은 어떤 고장에서
태어나 자란 노래 치고는 너무 다른 느낌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그러한 방법으로 퍼지고 전해져 있기에 뛰어난 민요가 한 지방에 파묻히거나
멸망하지 않고 전세계에서 불려지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민요는 어느
시대에나 그 시대의 예술적인 음악이나 대중적인 음악의 소재로 사용된다.
그리고 각기 시대에 따른 신선한 감각으로써 대중과 접촉하고 시대의 추이,
환경의 변천과 함께 변해 가는 민족의 마음 속에 길이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요가 그 원형을 여러 가지로 바꿔 가는 것은 시대의 추세이며
이것을 막을 수는 없다. 또 그러기에 어느 시대에나 민요는 대중과 함계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새로운 유행가 등이 만들어졌다가는 사라지고
유행했다가는 사라져 가는 모습이 요즈음처럼 템포가 빠른 세상에서는
참으로 어지러울 정도의 양상을 띠고 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이따금
민요조 붐 등이니 하여 민요를 소재로 한 유행가는 다른 많은 유행가를 훨씬
앞질러 히트하고 있다. 그리고 오래된 민요가 이따금 새로 단장을 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감각으로 불려지고 있다.
  그러나 또 이렇게 변해 가면 민요는 처음에 어떤 형태였을까 하는 것이
점점 알 수 없게 되어 버릴 염려가 있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원형이
훼손되지 않은 민요를 그대로 보존하려 하는 운동이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혹은 세밀하게 채보하거나 녹음하기도 하여 이것을 수집 보존하는
일이 중요시되고 있다. 민요가 언제나 그 시대의 시대 감각이나 생활의
환경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양을 바꾸어 가는 것도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근원을 잃지 않도록 잘 연구해서 보존하는 것도
더욱 중요한 일이다.
  지금 전세계의 작곡계에서 '음악의 민족성'이라는 것이 크게 주장되고
있다. 이것은 새로운 음악 속에 민요나 민족무곡을 도입하는 것과 같은
간단한 일은 아니고, 하나의 민족이 먼 옛날부터 갖고 있는 민요나 춤의
음악이 어떻게 태어났는가 하는 것을 잘 연구하여, 그 민족 고유의 음악을
기반으로 해서 거기에 새롭고 자유로운 음악을 쌓아올려 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옛 민요의 충분한 연구와 보존이 필요한 동시에
작곡가에게 새로운 것을 창작하려 하는 의욕과 역량이 강하게 요구되고
있다.
  생각해 보면 베토벤이나 슈베르트의 가곡은 물론이고 그 교향곡이나
실내악곡의 주제가 되고 있는 선율(가락)은 민요에 뿌리 박은 것이 많으며,
민족무곡이나 민요는 고금의 대작곡가들에게 있어 예술의 고향과 같은
것이었다.

@[  (2) 예술가곡 @]
  민요와는 달리 작곡가의 창작에 의해 태어난 가곡을 예술가곡이라고
부른다. 독일어의 '리트'에 해당하는 말이다. 리트(가곡)라고 하면 우리들은
곧 슈베르트를 생각케 된다. 슈베르트는 '가곡의 왕'이라 일컬어지며 불과
32년의 짧은 일생 동안에 주옥같이 아름다운 예술적인 가곡을 6백곡
이상이나 만들어 불후의 이름을 남긴 천재이다. 그 중에는 유명한
"들장미"나 "보리수"와 같은 민요풍의 것도 있으며, 괴테의 "마왕"이나
파우스트 중의 "실을 잣는 그레트헨"에 곡을 붙인 서사시풍의 극적인 곡도
있다. 긴 것도 짧은 것도 있지만, 어느 것이나 시의 의미를 깊이 음미하여
이를 노래의 가락과 피아노의 반주로 나타내고 있다. 그 시와 음악은 흔연히
하나가 되어 섬세한 정서와 힘찬 열정을 남김없이 표현한다.
  가곡의 형식은 크게 나누어 '유절가곡'과 '통작가곡'의 두 종류가 된다.
유절가곡이란 앞의 '민요'의 항에서 말했듯이 운율이 갖춰진 몇 줄의 가사가
몇 절인가 있고 이것을 동일한 선율로 반복해서 부르는 것이다. 즉, 가사는
각각 다르지만, 같은 선율을 반복해서 부를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한번만 노래의 선율을 외어 버리면 그 다음은 그것을 몇 번이고 반복하여
2절, 3절 등, 얼마든지 가사가 있는 만큼 계속 부를 수 있으므로 비교적
부르기 쉬워서, 민요라든가 동요, 가곡, 교가 등은 이 형식에 의한 것이
많다.
  그런데 예술가곡의 사고방식, 즉 시가 지닌 의미나 심정을 음악적으로
그려 가는 것이 가곡이라고 한다면 시가 처음부터 차츰 진행함에 따라 그
심정과 의미도 차츰 변해 가는 경우에, 유절가곡처럼 동일한 선율을
반복해서 부르면 종종 시의 내용과 관계없이 그 선율로 불러야 한다는 일이
생긴다. 시의 의미가 바뀌면 그 선율과 반주도 이것을 잘 표현하도록 바꾸어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해진 하나의 선율을 반복하기만 하는
유절가곡으로는 불편하다. 시시각각으로 변해 가는 시의 내용에 따라 곡도
또한 시시각각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통작가곡'이라고 한다. 그리고
낭만적이고 향기 높은 시는 한결같이 똑같은 선율의 반복이 없고, 언제나
시와 함께 노래의 선율도 바뀌어 가는 통작가곡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예컨대 슈베르트의 리트 등도 그 시에 따라서 각각 여러 가지 형식을
취하고 있다. 단순한 민요풍의 "들장미"나 "자장가"처럼 소바한 느낌을
노래한 것은 유절가곡으로 작곡되고 있지만, 또 "마왕" 등을 들으면 완전히
모양이 바뀌고 있다. 이것은 통작가곡의 형식이며, 괴테의 유명한 서사시의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가락은 하나도 없을 만큼 이야기의 내용과 일치하게
작곡되어 있다. 피아노의 전주 부분부터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의 긴장된
정경을 그려내고 시시각각 변하는 내용을 항상 극적인 박력으로써 밀고
나아간다. 그러나 슈베르트를 비롯한 많은 작곡가들은 하나의 가곡 속에
유절가곡과 통작가곡의 두가지 요소를 부여하거나, 혹은 양쪽을 편성해서
작곡한 것도 많이 쓰고 있다. 어쨌든 시의 내용은 그 의미와 감정을 노래의
가락과 악기의 반주에 의해 잘 어울리게 그려내려고 하는 것이 예술가곡의
중요한 조건의 하나이다.

@[  (3) 가사의 문제 @]
  예술가곡은 이처럼 시의 의미나 심정이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감상할 때 그 시의 내용을 모르고서는 이 가곡의 맛을
절반도 이해할 수 없는 셈이다. 듣는 이에게 있어서뿐만 아니라 이것을
부르는 사람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한국인이 외국의
예술가곡을 감상하기 위해 가사의 번역이라는 문제가 생긴다.
  영어나 독일어, 그 밖의 외국어로 만들어진 노래의 말을 한국어로
번역해서 부르는 일은 종래에도 많이 행해지고 있었다. 그것은 한국인이
외국의 노래를 감상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좀더
깊이 생각해 보면, 예컨대 슈베르트가 괴테의 어떤 시를 읽고 감명을 받고
이것을 노래하기 위한 음악을 썼을 때에는 그 시가 지닌 아름답고 깊은
의미에 감동했음은 물론이지만, 또 그는 그 원 시가 지닌 발음의 아름다움과
그 말의 발음에 의해 드러나는 감정, 또한 발음에서 생기는 리듬의
흐름까지도 그 음악 전체 속에 예정했으리라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이것을 선율은 그대로 두고 말만을 한국어로 바꿔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과연 한국어로 고치면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도 그 의미를 잘
알아, 이 가곡을 맛보는 데는 매우 편리하다. 그러나 거기에는 슈베르트를
감동시킨 '말의 울림'이 전혀 다른 형태로 바뀌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또
역어를 붙이는 방식에 따라서는 선율 속의 섬세한 어세의 강약이 변하거나
모음과 자음과의 관계, 예컨대 특히 자음이 강하게 울리는 독일어와 우리
말과는 그 느낌은 매우 달라진다. 요컨대 원어와 역어가 '문학적'으로는
상당히 가깝다고 할지라도 '음악적'으로는 전혀 별개의 것으로 되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또 번역된 시가 한국어의 시로 잘 되어 있다면 모르거니와
혹시 서툴게 번역된 가사라도 붙여져 있다면 노래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도
몹시 흥이 깨지고 말 것이다.
  그러면 가사를 번역한다는 일이 음악적으로 전혀 의미가 없는가 하면
그것은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음악을 잘 이해하는 사람에 의해 능란하게
만들어진 번역 가사가 붙은 곡 등은 때로는 원어에 못지 않은 아름다움을
갖기 마련이다. 또한 그것을 익숙하게 불러서 완전히 한국의 가곡처럼 되고
만 번역 가사는 충분히 그 원곡의 의미와 심정을 전달하고 있다. 이런 번역
가사라면 노래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잘 알 수 있고, 음악으로서의
아름다움을 손상하는 일도 없다. 그러나 그래도 원곡을 들었을 때와 조금
다른 느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민요 등은 그 재미가 주로 각기 민족성을 강하게 드러낸 선율에 있으며,
또 가사의 의미나 감정을 그다지 엄밀하게 곡과 결부시킨 것도 적고
유절가곡이 많으므로 보통은 번역 가사로 부르는 일이 대부분이다. 또한
전혀 의미가 다른 가사를 붙여서 부르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들이 슈베르트를 비롯해서 외국의 예술가곡을 가능한한
완전하게 감상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예컨대 슈베르트를 듣는
경우,가령 우리가 독일어를 많이 공부하여 그 시를 알고 또 독일인의
전통적인 생활 감정이나 그 환경을 충분히 알았다 하더라도 아직 독일의
예술가곡이 한국인인 우리에게 마음으로부터 이해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면 이것을 가능한 범위에서 잘 감상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의 의미를 미리 번역해 달라든가, 혹은 스스로 공부해서 잘 읽어 본
다음에 '원어'로 능숙하게 불려지는 것을 듣고 감상해 볼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또 스스로 불러서 즐기는 데는 무리하게 서툰 독일어로
부르기보다는 조금 느낌은 달라도 되도록 번역가사를 택해 그 내용을 잘
이해하면서 부르는 것이 좋겠다. 만약 어휘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양
말고 원어로 불러 그 원래의 말이 아름다운 음악과 어떻게 밀접하게
결부되고 잘 조화되어 울리는가 하는 것을 잘 음미해 보면 더욱 좋으리라고
생각한다.
  독일의 예술가곡(리트)에 관하여 여기서는 슈베르트를 예로 들었지만,
슈베르트에 이어지는 독일 낭만파의 작곡가들은 어느 사람이나 뛰어난
예술가곡을 많이 썼다. 멘델스존, 슈만, 브람스, 볼프, 말러 등의 대가들은
모두들 독일의 민요에 뿌리 박은 아름다운 불후의 가곡을 남겼다.
 
@[  (4) 유행가 @]
  유행가는 넓은 범위의 대중의 노래이다. 그리고 항상 그 유행은 변해서,
유행하는가 싶으면 곧 잊혀져 버리고, 잊었다고 생각한 노래가 어느
사이엔가 부활해서 유행하고 있다는 식으로 언제나 대중의 생활, 사회의
변천과 함께 변해 간다. 또 유행가는 각각 독특한 민족성, 국민성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유행가는 시대에 따른 민요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단지 유행가가 민요와 다른 점은 민요는 자연발생적인 것으로 오래 불러서
전해진 것임에 대해, 유행가는 항상 새로 만들어져 세태에 영합하고 종종
상업주의에 이용당하기 때문에 그 생명이 매우 짧다는 것이 그 특색이다.
그러나 물론 가사나 작곡도 뛰어난 것은 오래 불러져 마침내 민요처럼 되는
일도 종종 있다. 또 유행가는 대중의 노래이기 때문에 부르기 쉬운 곡,
이해하기 쉬운 가사를 갖고 있다. 따라서  대중의 교양이 향상되고 취미가
풍부해지면 거기에 따라 유행가도 뛰어난 좋은 노래가 널리 보급되어 긴
생명을 유지하게 된다. 또 세태가 밝고 국민생활이 풍부하면 유행가도 이를
반영하고, 그 반대면 빈약하고 저질의 노래가 유행하는 것은 세계 각국의
예를 보더라도 명백한 일이다.

@[  (5) 종교음악 @]
  서양음악에서 종교음악이라고 하면 거의 모두가 그리스도교 음악이다.
물론 오랜 시대부터 유대교의 음악, 혹은 마호멧교의 음악도 존재했고,
드물게는 그 음악의 요소를 따서 작곡가가 이것을 예술적인 음악 작품으로
만든 예도 있지만, 이른바 대작곡자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은 거의 모두가
그리스도교이며, 그 사람들이 실제의 요구에 따라 쓰거나 또는 후세에까지
각각 교회에서 불려질 만한 대작을 남기려 생각하여 작곡하는 일이
많았으므로, 고금의 명곡이라 일컬어지는 걸작은 모두 그리스도교
음악으로서 전해지고 있는 작품이 많은 것이다. 그러한 명곡은 처음에는
교회에서 엄숙한 의식의 음악으로서 실제로 사용되었던 것이라 하더라도,
오랜 세월 동안에 가장 아름다운 작품만은 다른 명곡들과 함께 교회의
의식에 떠나 음악회나 레코드로 감상용 음악으로서 친해지고 있는 것도
적지않다.
  불교에도 음악은 있다. 경전의 낭독(이른바 경)은 음악적 요소를 다분히
갖고 있지만, 이것이 뛰어난 작곡가에 의해 연주되거나 작곡되기도 하는
습관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극히 좁은 형식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오래된 것을 보존하는 데 그쳤으며, 예술적 음악으로 후세 사람들이
감상하기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러나 근년에 와서 찬불가라든가
불교음악이라든가 하는 창작이 드디어 행해지게 되었다.
  어쨌듯 서양에서는, 특히 그리스도교에 있어서는 사람들의 생활양식,
풍속이나 습관상으로도 음악이 담당하는 역할은 크고, 또 각 시대의
대표적인 대작곡자가 거의 모두 그 음악에 심혈을 기울여 뛰어난 대작을
썼으므로, 종교음악은 모든 서양음악 중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음악이 처음으로 예술적으로 다루어진 것은 멀리 4세기,
밀라노의 사교 성 암브로지우스로 거슬러 올라가며, 더욱 이것이 조직적인
발전을 본 것은 6세기의 로마 교황 그레고리오 1세의 시대부터이다.
@[ #1 그레고리오 성가 @]
  현재도 로마 정교에서 정식 성가로 정하고 있는 것으로서 무반주, 단음의
것이며, 그 선율은 8종류의 고대 선법에 의해 구성되어 있다. 그레고리오
1세 무렵에는 아직 하모니(화성)가 없었고, 지금 불려지고 있는 '그레고리오
성가'도 또한 이른바 단성성가(플레인 찬트)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음악에
조직적인 화성, 즉 다른 높이의 음을 2개 이상 짜맞추거나 2개 이상의 다른
선율을 합리적으로 짜맞추는 방법은 10세기 경에 처음으로 생긴 것이다.
@[ #2 코랄 @]
  16세기 초에 독일의 비텐베르크 대학 교수였던 대종교가 마르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주창하고 나서 처음으로 교회에 들어온 것으로 4부합창에 의한
단순한 성가이다. 오늘날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부르고 있는
'찬송가'가 이것이며 모두 유절가곡을 채용한 것이다. 루터는 음악에
관해서도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코랄과 시와 곡을
모두 많이 만들어 이것을 퍼뜨렸다.
@[ #3 미사곡 @]
  미사는 가톨릭교의 중요한 의식의 하나로서, 이 때 외에는 기도문이
라틴어로 사용되고 있었다. 당초에는 이것이 음악 없이 읽었던 것인데,
후에는 여기에 가락이 붙어 노래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음악이 없는
경우를 '낮은 미사' 또는 '작은 미사'라고 하며, 음악으로 부르는 경우를
'높은 미사' 또는 '대미사'(미사 솔렘니스), 혹은 '노래미사'라고 했는데,
차츰 그 형식, 내용이 정비되어 15세기 경에는 일정한 형식을 가졌고,
일관된 합창음악으로서 작곡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 가사는 모두 라틴어가
사용되고 이 음악을 '미사곡'이라고 한다.
  미사곡은 통상의 경우, 다음의 5개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장 키리에(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제2장 글로리아(영광의 찬가)
  제3장 크레도(신앙선언)
  제4장 상크투스(감사의 찬가) 및 베네딕투스(축복해 주소서)
  제5장 야누스 데이(평화의 찬가)
  그리스도교 초기에는 그레고리오 성가풍의 단선율로 부르고 후에 무반주의
합창곡도 불려졌지만, 근세에 이르러 대관현악이나 오르간의 반주를 지닌
독주, 중창, 혼성합창의 모든 것을 포함하는 대규모의 연주가 되었다.
  바하의 b단조 "대미사", 베토벤의 D단조 "장엄미사"(미사 솔렘니스)등은
현존하는 최대의 미사곡이며, 모짜르트의 "대관식 미사"는 우미하고 화려한
곡의 정취로 유명하다. 또 앞에서 말했듯이 미사곡은 모두 라틴어의 가사를
사용하는 것이 통례인데, 드물게 보이는 예외로서 독일어로 만들어진
슈베르트의 "독일 미사"가 있는데 이것은 명곡으로 불려지고 있다.        
  #4 레퀴엠(진혼곡)
  레퀴엠은 '사자를 위한 미사'로서 그 기원은 미사와 거의 같은 무렵이다.
미사와 마찬가지로 라틴어를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예외로서 브람스는
자기의 죽은 어머니를 위해 유명한 "독일 레퀴엠"(독일어)을 만들었다.
내용은 대체로 미사곡과 마찬가지여서,
  제1장 레퀴엠(requiem 영원한 안식을 주옵소서), 키리에(Kyrie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제2장 디에스 이레(Dies irae 진노의 날)
  제3장 도미네 예수(주 예수 그리스도, 영광의 주여)
  제4장 상크투스(Sanctus 거룩할 진저)
  제5장 야누스 데이(Agnus dei 신의 어린양)
  을 표준으로 하고 그 규모에 따라 좀더 많은 장을 넣는 수도 있다.
모짜르트의 마지막 대작인 d단조의 "레퀴엠"은 실로 12장으로 이루어졌으며
이 밖에 포레, 베르디 등의 작품은 어느 것이나 대걸작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  #5 오라토리오 @]
 성서 속의 이야기를 독창, 중창, 합창으로 대규모로 연주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으로, 그 이야기는 모두 기복에 넘친 흥미 깊은 것들이다.
현재는 이것을 연주회 형식으로 부르게 되어 있지만 15, 16세기 경에는
오페라와 같은 연극 형식으로 상연한 예도 있으므로 우리 나라에서는 이것을
'신극'이라 번역한 적도 있다. 또한 오라토리오는 성담곡이라 부르기도
한다.
  역사상 가장 화려한 오라토리오를 많이 만든 것은 헨델이다. 그는
1720년에 쓴 "에스테를"를 비롯해서 "사울", "이집트의 이스라엘 사람",
"삼손", "마카바이오스의 주더스", "솔로몬"등의 걸작이 있으며, 그
중에서도 "구세주"(메시아)는 불후의 명작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이
"구세주"가 맨처음 연주되었을 때 유명한 '할렐루야 코러스'가 울려 퍼지자
때마침 임석해 있던 영국왕 조지 1세는 너무나 엄숙해서 무의식 중에
기립하여 들었다고 해서 그 이래 영국에서는 연주회에서 이것이 불려질 때
청중은 일제히 기립하는 것이 습관화되었다.
  하이든의 작품에도 "천지창조" 와 "사계"의 2대 걸작이 있으며, 둘 다 그
음악의 아름다움은 종교음악이라는 냄새나는 관념을 떠나 실로 즐겁게
감상되고 있다. 특히 그 "천지창조"가 처음 연주되었을 때, 당시는 적국의
관계에 있었던 나폴레옹 1세도 이것을 듣고 몹시 감격했다고 한다.
@[  #6 패션(수난곡) @]
  그리스도의 수난에 관한 이야기를 말한 음악으로 형식은 대략
오라토리오와 마찬가지로 독창, 중창, 합창에 관현악이나 오르간을 첨가해서
만들어진 것인데, 단지 테너 독창자가 항상 이야기의 추이를 레치타티보로
설명해 가는 점이 특징이다.
  바하의 작품에서 "마태 수난곡"과 "요한 수난곡"의 두 곡은 모두
대걸작이다.
  오라토리오나 수난곡은 미사곡이나 레퀴엠과는 달리 의식의 음악은 아니고
좀더 일반 대상으로 충분히 흥미롭게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 가사도
라틴어가 아니라 각각 그 나라의 말을 사용하여, 듣는 사람은 누구라도 잘
알 수 있도록 불려진다.
@[  #7 칸타타 @]
  이 말의 기원은 16세기경에 이탈리아에서 악기를 울리는 음악을
'소나타'라고 했음에 대해 노래하는 곡을 '칸타타'라고 했던 데서 시작되기
때문에 이 말의 의미는 상당히 넓다. 바하는 종교적인 독창곡이나
합창곡에다 관현악이나 실내악의 반주를 붙인 "교회 칸타타"와, 또
서정적이거나 우스꽝스러운 가사를 가진 독창곡이나 합창곡의 "세속
칸타타"를 많이 썼다. 세속 칸타타란 대중적이고 알기 쉬운 내용의 것이기
때문에 각각 자국어 가사를 사용한다. 베토벤의 서정적인 노래
"아델라이데"도 하나의 칸타타로서 발표된 바 있지만 현대에서는 역시
이것도 예술가곡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칸타타'라는 말을 한국에서 교선곡이라 번역한 적도 있지만 이것은 전혀
의미가 없는 역어이다.
@[  #8 모텟토 @]
  13세기 경부터 시작된 교회용의 독창곡, 또는 합창곡으로서 경전, 기도문
등에서 그 가사를 따왔다. 형식은 자유로와 초기에는 반주 없는
합창곡뿐이었지만 후에 오르간이나 관현악의 반주를 붙인 것이 많아지고,
차츰 발달함에 따라 독창을 포함하는 몇개의 장을 갖도록 만들어졌다.
바하는 앞에서 말한 코랄을 이 속에 사용한 최초의 사람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모텟토라고 하면 매우 차분한 노래처럼 생각되지만 상당히 즐거운
것도 있으며, 모짜르트의 유명한 "알렐루야"라는 아름다운 이탈리아풍의
소프라노 독창곡은 그의 모텟토 "엑술타테 유빌라테" 속의 한 장이다.

@[  (6) 오페라와 악극 @]
  오페라의 기원을 물으면 아마 2천5백년 전의 그리스 비극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페라라는 명칭이 생기고 지금의 오페라와
가까운 형태가 된 것은 지금부터 3백50년 전즘, 즉 16세기 말에서 17세기를
걸쳐 이탈리아에서 그리스 비극의 부흥운동이 일어난 뒤의 일이다.
  당시 플로렌스에서 페리라든가 캇치니라는 작곡가에 의해 시작되었고 그
후 로마와 베니스로 퍼졌으며, 마침내 몬테베르디가 나타나 완전히 오늘날의
오페라의 기초를 구축한 것이다.
  독일에서는 이보다 조금 늦게 쉬쯔라는 사람이, 또 프랑스에서는 라모,
륄리, 영국에서는 퍼셀이 이탈리아 오페라를 직접 간접으로 수입해서 각
나라들의 전설이나 독특한 숫법으로 오페라를 만들었다.
  오페라란 음악과 연극과의 종합예술이라고 하는데 주로 음악을 하는데
주로 음악을 가지고 연기하는 연극일까? 그렇지 않으면 또 연극이 있는
음악일까? 이 의문은 19세기에 이르러 바그너가 나타나고 나서 한참 동안
논의된 것인데, 원래의 오페라란 연극을 가미한 음악의 연주 형태의
일종으로 발달해 왔다. 이것은 무대장치를 하고 의상을 입고 동작을 하면서
노래 부른다고 하는 매우 사치스러운 음악회와 같은 것이다. 노래는 독창,
중창, 합창의 모든 형식을 자유롭고 풍부하게 망라하고 있다. 반주로서는 그
시대의 가장 큰 편성을 지닌 관현악이 사용된다. 노래의 반주뿐만 아니라
관현악만으로 연주되는 서곡과 전주곡, 간주곡이나 발레의 음악, 행진곡
등도 많이 너온다. 또 많은 오페라에는 화려한 발레가 딸려 있다. 그리고
이들 음악에는 한 곡마다 번호가 붙어 있고 그것은 극의 줄거리에 따라
순서대로 배열되고 연주되어 간다. 이 얼마나 즐겁고 규모 큰 음악회인가.
  오페라는 원래 이처럼 연극을 본다기 보다는 음악을 듣는 것이 그 주된
목적이므로, 극의 대본은 별로 잘되어 있지 않더리도 훌륭한 음악으로
이것을 살리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반대로 모처럼 좋은 대본을
가졌었으면서도 그 음악이 재미가 없기 때문에 그것이 완전히 묻혀 버린
작품도 있다. 즉 음악이 좋지 않으면 연극으로서 아무리 재미가 있더라도
오페라로서는 전혀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오페라에서는 가수가 우수해야 하고 합창이나 관현악이 훌륭해야
하며 숙달된 지휘자와 연출자의 기량이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오페라는
'본다'고 하기 보다는 '듣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페라는 어쨌든 연극의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장치와 조명,
의상 등의 무대미술이나 특히 인물의 연기가 서툴러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역시 훌륭한 음악에 조화가 되지 않는 빈약한 장치나 이야기의 줄거리와
모순되는 서툰 연기로는 아무리 노래가 능란해도 별로 좋은 오페라라는
소리는 듣지 못한다. 그러므로 오페라는 음악의 가장 넓은 의미의 연주로서
참으로 어렵고 높은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그만큼 가수에게
있어서나 관현악단과 지휘자, 연출자에 있어서도 일하는 보람이 있으며,
이토록 화려한 음악은 달리 없다는 것이 된다.
  보통의 오페라, 즉 정가극(오페라 세리아)을 그랜드 오페라라고도 하는데
대사는 없고 그 대신에 레치타티보(서창)를 사용한다. 이것은 단순한 대사에
조금 가락이 붙은 듯한 것으로서, 반주도 극히 간단한 화음만을 군데군데
붙인다. 레치타티보에 간단한 화음만을 곁들인 것(옛날에는 이 부분을
관현악이 쉬고 하프시코드나 피아노만으로 연주했음)을 레치타티보
세코(건조 서창 즉 단순한 서창)라고 하며, 관현악의 연주로 극적인
분위기를 그리면서 부르는 것을 레치타티보 아콤파니야토(반주 붙은
서창)라고 한다. 전자의 간단한 레치타티보는 근대의 오페라에서는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
  독일의 오페라에서는 19세기 초까지 레치타티보를 사용하지 않고 보통의
대사로 된 회화를 삽입한 것도 있었다. 예컨데 모짜르트의 "마적", 베토벤의
"피델리오", 베버의 "사탄의 마수"등은 모두 가사가 들어 있다. 이것은
옛날에 독일에서 징시피일(노래연극) 이라는 것이 행해져 대사와 노래를
지닌 극이 대중에게 환영받았던 습관을 도입한 것으로서, 그 후 이탈리아
오페라의 양식이 전성해짐에 따라 이 습관도 차츰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레치타티보는 아름다운 노래와 노래 사이를 연결하여 줄거리를 알기 쉽게
끌고 가기 위해 사용되었는데, 이에 대해 가수가 그의 장기를 보여줄 수
있는 노래를 '아리아'(영창)라고 한다. 아리아가 되면 작곡자는 가수의
전능력을 발휘시킬 만한 아름답고 화려한 노래를 대담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에 오페라의 아리아는 대체로 어려운 것이 많고, 그만큼 뛰어난 가수에
있어서는 노래할 보람이 있는 명곡이 많은 셈이다.
  유명한 아리아가 끝나면 청중은 기뻐하며 그 가수에게 열렬한 박수를
보낸다. 한 때의 가수도 그 박수에 응해 극의 진행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대 앞에 나와 손님에게 인사를 하는 일도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관현악에 신호하여 처음부터 다시 한번 그 아리아를 불러서 들려주는 일조차
있었다. 극을 관람하는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이상한 일이 되는 셈이지만,
이것도 오페라가 극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음악회라고 하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을 말해 주는 것이다.
  중창도 오페라 속에서는 중요하며 유명한 2중창이나 3중창, 4중창 등의
아름다움과 재미는 오페라 애호가에겐 정말 더없이 즐거운 것인데, 어쨌든
두 사람 내지는 3명, 4명이 각각 다른 가사로 다른 선율을 따로따로 부르기
때문에 음악적인 재미는 있어도 가사를 전부를 알아듣지 못해 몹시 무리한
줄거리가 되는 수도 있다.
  그 한 예를 들면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렛토"의 제3막에 유명한
4중창(콰르텟)이 있다. 이것은 4명의 등장인물이 각각 다른 입장에서
따로따로의 가사를 함께 부르고 있다고 하는, 음악적인 복잡한 재미가
베르디의 노련하고 교묘한 작곡 기교를 통해 표현된 것이다.
  지금 그 무대를 구경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무대 오른쪽에
막달레나라는 여자의 집이 있고 방의 내부가 보이도록 되어 있다. 밤중에 그
방에는 불이 켜져 있다. 그곳에 만토바 공작이 서 있다. 여자를 좋아하는 이
귀족은 지금까지 남달리 귀엽게 여겨 사랑했던 질다라는 순진한 처녀를
버리고, 이번에는 이 막달레나를 열심히 유혹하고 있다. "아름다운 여자여,
그대의 상냥한 말을 한 마디만 해 주오."하고 테너 특유의 감미로움과
밝음을 십분 발휘해서 노래하기 시작한다. 유명한 '리골렛토의 4중창'은
여기서 시작된다.
  이 막달레나는 실은 어떤 살인청부업자의 누이동생인데 "그런 달콤한 말을
해도 그 수단에 넘어가지 않아요"하고 얼버무리면서 이 돈환 같은 공작을
속여 주려 하고 있다. 이것은 알토의 목소리로 매우 요염하지만, 감미로운
테너와 조화되어 명랑한 2중창이 된다.
  동시에 무대의 왼쪽 어두운 옥외에서는 이 공작에게 버림받은
질다(소프라노)가 신세 한탄을 하며 슬퍼하고 있는 것을 그의 부친
리골렛토(바리톤)가 조용하게 위로하면서 그 분노의 마음에 복수를 맹세하는
2중창이 이에 얽히고, 동시에 진행하는 두 쌍의 2중창이 합류하면
청중에게는 더없이 아름다운 4중창으로 들리는 것이다.
  이런 부분이 오페라의 정말 즐겁고 재미나는 곳이며 작곡자의 솜씨를 보여
주는 곳이지만, 거기에 더해 4명의 뛰어난 가수들의 아름다운 음악상의
기술이 모두 일체가 되어 오페라를 좋아하는 구경꾼을 감탄시키고야 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줄거리와 등장 인물의 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재미가 있는 것이며, 만약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처음으로 이
4중창을 들은 사람에게는 네 사람이 따로따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도저히
구분해서 들을 수는 없을 것이다.
  오페라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이야기의 내용과 줄거리를 미리
읽고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이야기의 줄거리뿐만 아니라 각 장면에서
연주되는 음악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면 알수록 무대를 보았을 때의 흥미는
깊어진다. 이 장면에서는 어떤 춤의 곡이 있다든가 다음에는 어떤 아름다운
노래가 불려지는가 하는 것, 즉 '핵심'과 같은 것을 알고 있으면 그만큼
재미 있는 셈이다. 또 가수나 그 밖의 출연자에 대해서도 예컨데 저
아리아를 이 가수는 어떤 식으로 부를까, 저 곳의 어려운 3중창을 이
사람들은 얼마나 능란하게 다룰까 하는 식으로 들으면 오페라는 음악회와
똑같은 점에서 흥미가 고조되게 되는 것이다.
  오페라의 가사는 최근에는 각국이 모두 원어로 부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작곡자가 그것을 만들었을 때 사용했던 말대로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약
20년 전에는 각각 사용하는 나라의 말로 번역해서 부르는 일이 많았던 것
같다. 한국인 가수로 상연하는 경우에는 현재도 대개는 한국어 가사를
사용한다. 이것은 얼마간이라도 청중이 알아듣기 쉽도록 하려는 것인데,
앞의 '예술가곡'의 곡에서도 말했듯이 노래는 음악적인 울림으로 보더라도
원래의 가사와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므로 원작과 다른 말로 부르는 것은
예술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는 점과, 또 들어서 처음으로 그 노래의 의미를
안다기보다는 오페라는 처음부터 줄거리 정도는 안 다음에 이것을 듣는다는
식으로 되어 왔기 때문에 설령 개개의 말의 의미는 모르더라도 노래로서,
보다 아름답게 불려지는 데 중점을 두고 감상한다면 오히려 원어로 부르는
편이 좋다는 사고방식이 많아졌기 때문이다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특히 미국처럼 유럽 각국에서 뛰어난 가수가 많이
모여드는 나라에서는 하나의 무대에서 각각 다른 나라의 가수가 자국어로
다른 가사를 동시에 부르는 일도 있다. 생각해 보면 무척 이상한
이야기인데, 원래 오페라의 청중은 단지 능란한 노래에 도취해서 즐거워하고
있으면 좋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각각 조화가 안 잡힌 가사로 부르는
것을 들어도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는 것 같다. 이런 것을 보더라도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은 극보다는 음악 쪽에 중점이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이처럼 오페라는 너무 지나치게 음악을 중심으로
해서 발달해 왔기 때문에 극 쪽은 언제나 소홀해지기 쉽다. 가령 어떤
오페라가 문학적 가치와 연극적인 구성력이나 정신적인 높이가
부족하더라도, 그 음악만 훌륭하게 작곡되어 연주되면 구경꾼은 까닭도 없이
즐거워하고 있다. 문학으로서는 전혀 깊은 맛이 결여되어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음악때문에 오페라로서 성공한 것도 많다. 오페라는
종합예술로서는 너무 지나치게 음악회의 기분에 치우쳐 있다. 그래서 시대와
함께 점점 감상자가 만족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근대의 오페라는 어느
것이나 연극적인 효과를 강화하도록 연구하게 되었다.
  오페라가 정말로 음악과 연극의 종합예술이라면 좀더 문학적으로 높은 것,
연극으로서도 충분히 완성된 형태를 지닌 것이 음악과 함께 만들어지고,
이것이 무대예술의 효과와 일치해서 상연된다면 어떨까. 이것을 진지하게
생각한 것이 19세기 후반, 이른바 '오페라 개혁'의 커다란 이상을 내건
바그너이다. 바그너는 완전한 희곡을 소재로 해서 음악을 그 표현 수단으로
진행하는 참된 의미의 종합 예술이 이런 것이라야 한다고 생각하여 여기에
새로 '악극'을 창시하였다. 그가 이 커다란 일에 손을 댄 것은 꼭 지금부터
백년 전쯤의 일이었는데, 바그너도 처음부터 아극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탄호이저", "리엔찌",
"로엥그린"등, 모두 종래와 같이 오페라로서 발표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로엥그린"은 그의 마지막 오페라인 동시에 사실상 최고의 '악극(무지크
드라마)'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은 형식과 내용을 갖고 있다.
  바그너는 이 이상을 그의 작품 위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냈을까. 먼저
그는 종래의 '서곡'(이것은 오페라 속의 화려한 선율을 접속해서 만든 것)을
없애고 그 대신에 전주곡(프렐류드)을 두기로 하였다. 이로써 그 음악은
단순한 개막의 기분을 떠들썩하게 하는 음악이 아니고, 희곡의 내용을
암시하여 청중의 마음을 어느 사이엔가 극의 진행에 끌어 들이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즉, 그 전주곡의 첫 음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막은 아직 내려져
있다라도 이미 극은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바그너는 라이트 모티브(지도동기) 라는 것을 사용하였다. 이것은
희곡 속에 나오는 중요한 인물,물건, 혹은 관념, 감정 등이 극의 줄거리에서
특히 중요한 것을 하나하나 개성적인 짧은 가락으로 각각 나타낸다. 예컨데
지크프리트의 모티프라든가, 검의 모티프, 가락지의 모티프, 연애의 모티프,
죽음의 모티프라는 식으로 각각 정해진 많은 짧은 선율을 만들어 두고
그러한 것들이 극의 진행과 함께 여러 가지로 활동하거나 편성되기도 해서
음악적으로 발전하여, 음악으로 극을 구성해 가는 것이다.
  또 바그너는 1막의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희곡적 구성 아래 음악은 극의
발전을 중단시키는 일 없이 이끌어가도록 만들었다. 거기서 불려지는 노래만
하더라도 종래의 오페라처럼 레치타티보니 아리아니 하는 구별은 없어지고,
노래도 관현악도 똑같은 중요성을 가지고 극을 만들어내는 요소가 되어
작용한다. 바그너는 이 수법을 '무한선율'(단락이 없는 음악)이라 부르고
있다. 종래의 오페라는 구경꾼이 기뻐할 것 같은 화려한 아리아와 중창이나
합창도, 극으로서 절대로 필요한 것이 아니면 사용치 않는다. 또 오페라에는
거의 대부분이 발레 장면을 삽입했었는데 바그너는 거의 이것을 넣지
않는다.
  그 대신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교향시라도 듣고 있는 것처럼 음악을 멋진
연극과 함께 진행해 갔다.
  바그너는 종래의 오페라에 대해서 이것을 악극(무지크 드라마)이라고
하였다. 악극은 바그너의 극히 높은 예술의 이상과 음악에 대한 강한
신념에서 태어난 새롭게 창조된 형식의 무대예술이다. 이것은 종래의
오페라를 개량했다든가, 그 미비한 점을 보충했다든가 하는 성질의 것은
아니고, 오페라와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바그너
이후, 오페라와 악극이 양립해서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종래의 오페라에는 오페라로서의 즐거움이 있다. 그 모순도,
어리석음도, 오페라 애호가에게는 다시 없는 매력인 것이다. 그 입장에서
말하자면 악극은 아무래도 긴장의 연속으로서 답답하고 이론적이며, 때로는
지루한 것인지도 모른다. 악극에도 또한 발전해야 할 점이 많이 있다.
바그너가 오페라 개혁을 뜻하고 악극을 창시했다고 해서 장래의 것이 모두
악극이 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바그너의 악극이 전세계의 근대
오페라에 헤아릴 수 없는 지대한 영향을 준 것도 사실이다.


@[     6. 기악 @]
  사람의 목소리로 부르는 음악에 대해 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을 기악이라고
한다.
  악기는 인간의 목구멍과는 달리 그 구조가 시대와 함께 급속한 진보를
나타내기 때문에 성악에 비해 기악은 그 작곡에 있어서나 연주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 양식으로 변천해왔다.
  성악은 '말'을 갖고 있지만 기악에는 그것이 없다. 각 악기가 지닌 여러
가지 음색과 특유의 성능과 그 효과가 기악이 말하는 '말'이다. 많은 악기는
각각 그 특성을 발휘하여 작곡자가 말하려 하는 것과 연주자가 이야기하려
하는 것을 멋진 웅변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기악은 인간의 말을 하지 않는
대신에 인성보다는 더욱 교묘한 서술을 하는 악기로서의 특성이 있으며, 또
인간의 목소리보다 훨씬 넓은 음역과 훨씬 큰 강약의 범위, 또 더욱
화려하고 장식적인 효과와 박력에 넘친 음악적 표현을 행할 수도 있다.
  오케스트라나 실내악, 그리고 피아노나 바이올린의 독주곡 등을 감상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악기의 갖가지 특성을 대충 알아두는 것도 헛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악기를 대별하여 현악기(현을 발음체로 하는 악기), 관악기(피리나
나팔류), 타악기(종이나 북 종류)의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일상
많이 쓰이는 피아노나 오르간 등은 발음의 원리로 말하면 이 세 종류의 어느
하나에 속하지만, 어느 것이나 모두 '건반'을 갖고 있는 데서 이것들을
'유건 악기' 또는 '건반 악기'라고 통틀어 일컫고 있다. 건반이란
손가락으로 두드린다거나 누르거나 해서 그 악기를 울리는 장치이다.
피아노는 가장 보통으로 많이 볼 수 있는 악기이므로 먼저 이 종류부터
설명하기로 하자.

@[  (1) 건반 악기 @]
@[  #1 피아노 @]
  피아노는 현대의 독주 악기로서, 또 노래 등의 반주 악기로서 대표적인
것이며,또 가장 널리 일반에게 보급되어 있는 악기이다.
  피아노에는 그랜드 피아노(Grand Piano)와 어프라이트 피아노(Upright
Piano)의 두 가지 형이 있다. 어느 것이나 주철로 만든 커다란 포레임에
나무로 만든 공명판을 갖추고 200개 이상의 강철선을 팽팽하게 매어 각 줄을
펠트로 싼 나무 해머에 전달하기 위해서 옛날부터 그 복잡한 기구는 개량에
개량을 거듭하여 현대의 것은 극히 정교하게 되어있다. 이 기구를
액션이라고 한다.
  해머로 쳐서 음을 낸 현은 손가락으로 건반을 누르고 있는 동안은 아직 그
여운을 울리고 있지만 손가락이 건반을 떠남과 동시에 댐퍼(Dampfer
울림멈춤)가 현을 눌러 그 여운을 멈추게 하는 장치로 되어 있다.
  그러나 손가락을 떼어도 발로 댐퍼(dampfer) 페달을 밟고 있으면 모든
현에서 댐퍼가 떨어져 여운은 길게 울려 공명을 풍부하게 한다.
  또 그 밖에 소프트 페달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을 밟고 치면 전체의 음이
부드럽게 울린다.
  그랜드형의 피아노는 바로 위에서 보면 마치 커다란 새가 한쪽 날개를
펼친 듯한 모양을 하고 있으므로 독일어로는 그랜드 피아노를 특히 '플뤼겔
(날개)' 이라고 부르는 수가 있다. 그랜드 피아노에는 음악회에서 사용하는
콘서트 그랜드라고 하는 대형의 것, 중형의 세미 그랜드, 가정용 베이비
그랜드 등의 종류가 있다.
  가정용으로는 주로 어프라이트형이 쓰이고 있음을 주지하는 바와 같은데,
장소를 많이 차지하지 않고 악기를 옮길 때도 좁은 문으로 들여오거나
내가는데 편리하다. 그렇지만 음량이나, 음색의 아름다운 점에서는 역시
그랜드 피아노에 미치지 못한다.
  피아노는 모든 악기 중에서 가장 넓은 음역을 가지고 있으며 표준형의
것이라도 그 건반수는 88개, 대형의 것은 그 음역이 8옥타브에 달한다. 이
넓은 음역과 함께 오랜 세월 동안 구조가 개량된 결과 음악적인 표현능력이
크다는 점에서는 '악기의 왕자'라고 일컬어질 정도이며 옛날부터 많은
작곡자가 피아노를 위해 실로 많은 명곡의 걸작을 남기고 있다.
  피아노는 1709년에 이탈리아인 크리스토포리(Bartolommeo Cristofori
1655--1731)가 발명했다고 하며 그 후 바하 시대의 독일의 질버만(Gottfried
Silbermann 1683-1753)이 현을 치는 해머의 기구를 크게 개량했으며
시타인이라는 사람이 약음페달을 완성하여 드디어 오늘날의 악기와 같은
구조로 되었다.
  그러나 바하에서 모짜르트 무렵까지는 그 전신인 하프시코드를 본따 철제
프레임이 아니고 튼튼한 목제의 프레임을 사용하고 여기에 놋쇠선을 맨
것이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강철선에 비하면 그 장력도 별로 세지 않았고
따라서 음량도 작았으며, 강약의 가려쓰기나 음색에 이르기까지 아직
하프시코드의 영역을 별로 벗어날 수는 없었던 것이다.
  피아노가 대략 오늘날과 같은 것이 되고 이 악기의 발달과 함께 이
피아노에 대해 대단한 정열을 나타낸 것은 베토벤이었다. 그는 32곡의
불후의 피아노 소나타를 비롯하여 5개의 협주곡과 많은 변주곡과 소곡
그리고 피아노를 넣은 많은 실내악곡을 작곡하여 이 악기에 일찌기 볼 수
없었던 커다란 표현능력을 부여하였다. 또한 베토벤은 당시의 유럽에서
제일류의 명피아니스트였기 때문에 그 연주 기술면에서도 참으로 혁신적인
발달을 가져 왔다. 당시의 고전파의 대가들 중에서 하이든이나 모짜르트가
생각해 보지도 않았을 정도의 화려한 색체적인 효과와 깊은 정서의 표현과
정열에 넘친 힘참 등을 이 악기 위에 나타낸 것이다. 베토벤이 활동하는
동안에 처음으로 철제 프레임과 강철선을 사용했고, 페달의 구조도 완비된
피아노가 나타나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베토벤에 이어 슈베르트, 베버, 멘델스존에서 슈만, 쇼팽, 리스트에
이르러 화려한 피아노음악의 황금시대를 이루었던 것이다.
  현대의 음악에 있어서도 피아노는 독주용으로서는 말할 것도 없고
협주곡과 실내악곡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가장 대중과
친해지고 있는 경음악이나 재즈와 같은 합주에서도 피아노는 없어서는
안되는 악기가 되고 있다. 그 밖에 학교나 가정 등에서도 혹은 교육에, 또는
오락에까지 피아노는 근년에 점점 많이 쓰이는 악기가 되었다.
  음악을 널리, 또 깊이 감상하려 하는 사람은 피아노를 배워 두는 것이
매우 도움이 된다. 스스로 뭔가 악기를 연습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피아노를 생각함이 마땅할 것이다. 피아노는 확실히 무겁고
부피가 커서 운반하거나 놓는 장소 등 상당히 성가신 악기이다. 특히 한국의
가옥에서는 이웃집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가격도 가정용
악기로서는 상당히 비싸다.
  그렇지만 피아노는 바이올린이나 피리 등과는 달리 반주악기를 요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혼자서 즐길 수 있다. 독주에도 좋고, 또 다른 사람의
노래나 악기에 반주를 하는 악기가 되기도 한다. 피아노의 교칙본이나
악곡은 매우 쉬운 것부터 상당히 어려운 것까지 그 범위가 넓고, 그러한
악보는 우리 나라에서도 풍부하게 출판되고 있다. 피아노를 조금이라도 칠
줄 알면 이번에는 뭔가 다른 악기를 손대어 보려고 생각했을 때, 매우
배우기 쉽다는 이점도 있다.
  어린이에게 음악을 배우게 하는 데도 피아노는 가장 적당한 악기이다.
바이올린 등과는 달리 선율이 빗나가는 일이 없고, 아무리 초보자라도
이른바 이가 들뜬 것 같은 불쾌한 음이 나올 걱정도 없다. 또 피리나
나팔처럼 어린이에게 과도한 체력을 요구하는 일도 없다. 그리고 먼저
건반을 눈으로 봄으로써 음계의 구조를 알 수가 잇고, 화음이나 리듬의
관념도 다른 악기보다는 빨리 머리에 넣을 수 있다. 더구나 극히
초보과정부터도 선생님과 연탄(1대의 피아노를 둘이서 치는 일)을 함으로써
단 한개의 악기로 합주의 즐거움을 맛볼 수도 있다. 악보를 빨리 읽는 것과
곡을 해석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도, 피아노의 연습보다 좋은 방법은 없을
것이다. 어린이는 빠르면 3, 4세 무렵부터 피아노를 배울 수가 있다. 배우기
시작해서 한 달쯤 지나면 벌써 간단한 소곡 등을 칠 수 있을 것이다.
@[  #2 클라비코드 @]
  피아노가 발명되기 전에는 일반적으로 클라비코드와 하프시코드가
사용되고 있었다.
  클라비코드는 16세기 초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당시까지 존재했던
모노코드(1현금)를 개량한 것으로서, 건반을 누르면 그 끝부분에
탄젠트(Tangent)라는 작은 금속 기둥이 있는데 이것이 밑에서 줄을 받쳐
올려 소리를 내게 된다. 피아노처럼 줄을 치는 것도 아니고 거문고 처럼
손톱으로 긁는 것도 아니다. 줄을 눌러서 음을 내기 때문에 그, 음량은 극히
작고 음색도 맑지 못하며 음역도 겨우 3, 4 옥타브에 불과하더. 그러나
당시는 이것이 들고 다닐 수 있는 유일한 건반악기이고 화음과 겹음을 내는
것이 가능하며 또 건반의 누르는 법에 따라서는 다소의 강약도 붙일 수
있어서 상당히 널리 애용되었다. 바하는 하프시코드나 피아노보다 오히려 이
클라비코드를 즐겨 사용했다고 하는데, 역시 이 악기는 그 음량이 너무
작아서 현대에 와서는 전혀 실용성이 없게 되고 말았다.
@[  #3 하프시코드 @]
  하프시코드(영어), 클라브생(프랑스어), 쳄발로 또는 클라비쳄발로
(이탈리아어, 독일어) 등등 우리 나라에서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부르고
있지만 어느 것이나 동일한 악기이다.
  하프시코드의 외관은 현대의 그랜드 피아노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그 역사를 더듬어 보면 처음 11, 12세기 경, 아라비아에서 유럽으로
수입된 각종 악기 중에 프살테리움(Psalterium) 이라는 금의 일종이 있었다.
이 프살테리움은 소형의 하프와 같은 모양을 한 목제의 프레임에 금속선,
혹은 거트(양장선) 줄을 몇개 맨 것으로서, 여기에 끈을 달아 어깨에서
가슴에 걸고 손끝이나 작은 채를 사용해서 탄주하였다. 이것이 차츰 대형이
되어 바닥 위에 세워서 치도록 한 것이 지금의 하프의 전신이며, 이것을
평평하게 놓고 2개의 채로 치도록 한 것을 옛날 독일에서는 하크브레트라
했으며 지금도 헝가리 지방에서 지방에서 집시의 합주단 등이 사용하는
쳄발로로 되었다. 또한 지금도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서 쓰이는
찌터(Zither)라는 악기는 이것을 손끝으로 뚱겨서 울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평평하게 놓고 줄을 뚱기는 손톱을 건반으로 움직이는 구조로 한
것을 스피넷(Spinet)이라고 불렀다.
  스피넷은 그 음색도 아름답고 소형이어서 휴대하기도 편리하며, 탁상에
놓고 치는 가정용 악기로서 발달하였으며, 16세기 경부터 노래의 반주
등에도 자주 쓰이게 되었다. 영국에서는 이것을 버지널(Virginal)이라고
부른다. 16세기 말에 엘리자베드 왕조의 전성기에 영국에서는 존 불, 윌리엄
버드 등의 궁정 작곡자가 종종 스피넷을 위해 아름다운 곡을 만들었다.
엘리자베드 여왕도 이 악기를 매우 애호하여 자신도 잘 연주했으므로, 버진
퀸이라 이 여왕의 이름을 따서 영국에서는 이것을 버지널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스피넷은 그 후 차츰 개량해서 대형으로 되었고 그 음역이 4옥타브 이상의
것도 만들어졌다. 건반을 누름으로써 그 손톱(잭)으로 줄을 긁는 장치도
많이 개량되어, 16세기 말 경에는 하프시코드가 완성되게 되었다.
  이 잭은 처음에는 새깃의 축으로 만들어졌지만 후에 가죽제의 것이나
금속제로 되어 풍부한 음량을 갖게 되었다.
  하프시코드는 클라비코드처럼 줄을 눌러서 음을 내는 것과는 달리 줄을
손톱으로 긁어서 울리기 때문에 그 음색은 훨씬 명랑하고 화려하다. 더구나
그 음량은 풍부하여 다른 많은 악기 속에 섞여서 합주해도 잘 조화되고
어울린다. 이것이 완성되고 나서 클라비코드는 거의 쓰이지 않게 되었을
정도이다. 단지 가장 커다란 결점으로 여겨진 것은 그 초기의 것은 강약의
변화를 붙일 수 없었던 점에 있다. 건반을 아무리 세게 눌러도 줄을 긁는
손톱의 길이가 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음량을 변화시킬 수 없다.
따라서 악곡을 연주하고 있는 동안에 강약의 표정을 나타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너무 불편했기 때문에, 후에는 건반을 한 단을 더 설치하여 음색과
음량을 여러 가지로 변화시키거나, 여운을 조절하도록 개량되었다. 처음에는
사진에서 보이듯이 발로 누르는 페달은 없었지만, 이것도 후에는 몇 개의
페달에 의해 음량이나 음색을 바꿀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하프시코드는
극히 정교한 악기로서 전유럽에 보급되었는데, 강약의 변화를 건반의
운동에서 직접 나타낼 수 없는 것이 유일한 결점으로 여겨지고 있던 차에
크리스토포리가 발명한 피아노가 나타났던 것이다. 물론 당시의 피아노는
하프시코드보다 더욱 미완성품이라 연주상의 결점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건반을 두드리는 힘의 강약이 직접 연주의 표정이 되어 나타나는 점이 큰
장점이었기 때문에 이 특색만으로도 많은 음악가에게 주목을 받았던 것이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피아노의 항) 바와 같이 현을 펠트로 싼 목재의 해머로
두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강약의 표정을 뜻대로 낼 수 있다. 그래서 이
새로운 악기에 대해 이탈리아어로 클라비쳄발로 피아노 에 포르테(강약을
지닌 하프시코드)라고 이름을 붙였다. 피아노(약음)와 포르테(강음)를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당시의 음악가들을 놀라게 하고
기쁘게 했었는지 이 새로운 악기의 명칭으로도 상상할 수가 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바르게 말하면 피아노포르테이며 줄여서 피아노라고 말하는데,
그 뜻은 '약음'이라는 말만이 남아 있는 셈이다.
  하프시코드도 모짜르트 이후는 거의 쓰이지 않게 되었지만, 근대에 이르러
고전음악의 부흥과 함께 다시 이 악기는 일부의 진보적인 작곡자들이
애호하게 되었으며, 현대 스페인의 팔랴(Manuel de falla 1876-1946) 등은
이 하프시코드를 위한 협주곡을 썼다.
  또한 최근 재즈 음악이나 일부 경음악에서도 하프시코드가 사용되어
현대와 동떨어진 우아한 음색 속에서 종종 가장 신선한 감각을 추구할 수가
있다.
  어쨌든 하프시코드는 특수한 악기로서, 일반에게 널리 보급될 만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레코드를 통하여 하프시코드의 고전 악곡을 풍부하게 감상할
수도 있다.
@[  #4 첼레스타 @]
  첼레스타도 또한 건반악기의 일종으로서 외관은 작은 상자형 오르간과
비슷하다. 내부에 음의 수만큼 철편을 해머가 치는 것으로서, 마치 종과
같은 음색을 갖고 있으며 그 음은 맑고 부드럽고 또 사랑스럽게 울린다.
별로 음량이 크지는 않고 음역은 겨우 4옥타브, 현재의 가장 큰 것이라도
5옥타브에 불과하므로 독주악기로서는 사용되지 않지만 관현악 속에서 종종
효과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차이코프스키의 유명한 발레음악 "호도까기
인형" 속에서 '별사탕의 춤'에 이 첼레스타를 교묘하게 살려 감미로운
효과를 내고 있는 예가 있다. 요즈음에는 경음악 속에도 이것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첼레스타는 항상 악보에 적힌 음보다 1옥타브 높은 음이
울리게 되어 있다.
@[  #5 오르간 @]
  오르간이라 하면 흔히 유치원이나 국민학교에서 사용하는 오르간, 바르게
말하면 아메리컨 오르간(미국식 오르간) 또는 캐비넷 오르간(상자형
오르간)을 말하면, 이것은 발음체에 리드(혀)를 갖고 있기 ㄸ문에 리드
오르간이라고 한다. 파이프 오르간과 같은 큰 규모의 악기는 보통
가정에서는 사용할 수가 없으므로 19세기 중엽, 미국에서 그 음색을 본따
작은 상자형으로 만든 것이 시초이다. 그러나 구미에서는 단순히
오르간이라고 하면 모두 파이프 오르간을 가리킨다.
@[  가) 파이프 오르간(pipe organ) @]
  현대의 모든 악기 중에서 파이프 오르간만큼 큰 규모의 것은 없다. 높이,
폭이 각각 약 10미터, 무게는 수백톤에 달하는 것도 적지 않다.
  파이프 오르간의 구조를 알려면 크게 나누어 다음과 같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로 오르간의 발음체인 파이프(관)이다. 파이프는 긴 것은 10여미터나
되고, 작은 것은 겨우 몇 센티에 불과한데, 그 파이프의 수는 작은 것이라도
3백개에서 5백개, 대규모의 오르간은 1만개 이상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그
악기의 용적은 대단해서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하는 데는 우선 교회라든가
공회당 등 어쨌든 큰 건축물이라야 한다.
  파이프의 종류는 금속관과 목제관, 그리고 금속관에 리드를 지닌 작은 것
등으로 크게 분류한다. 또 근대의 정교한 오르간은 종, 방울, 징 따위의
타악기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이 많은 파이프에 바람을 보내어 울리는 장치이다. 파이프
오르간의 관을 울리는 공기의 양은 매우 커서, 옛날부터 여기에는 많은
설계자가 골치를 앓았다. 고대 이집트에서 극히 간단한 작은 악기의
경우에는 두 사람이 번갈아 입김을 불어넣어 울린 적도 있지만 후에는
풀무(Bellows 송풍기)가 발명되어 사람의 힘으로 이것을 눌렀다. 이 풀무는
손으로 누르는 것과 발로 누르는 것이 있다. 또 오래 전부터 수압장치로
바람을 보내는 방법도 고안되었다. 높은 곳에 장치한 탱크에 물을 채워 두고
이것을 조금씩 떨어뜨려 그 압력으로 풀무를 움직이는 것이다. 이 인력과
수압의 시대는 1천여년이나 계속되었는데, 19세기 초에 증기기관이 발명되자
이것은 오르간의 송풍장치에 이용되었다. 20세기에 들어오고 나서 오르간의
송풍 장치는 거의 모두 전기 모터에 의존하게 되었다.
  세째로 중요한 것은 건반의 장치이다. 파이프 오르간의 건반은 큰 악기에
5단, 극히 작은 것이라도 2단을 갖추고, 각단에 6옥타브에 걸친 건반이
있다. 이것들은 모두 양손의 손가락으로 누르는 건반이기 때문에 메뉴얼
키보드(Manual Keyboard 손건반, 줄여서 매뉴얼)라고 하며, 또 따로 양발을
사용하여 조작하는 페달 키보드(발로 밟는 건반)가 약 2옥타브 반 정도
설비되어 음악의 최저음부를 맡고 있다.
  건반의 전면 상부 및 양쪽에는 많은 스톱이 있으며 음색의 가려쓰기나
8도의 음을 중복시켜 한층 그 연주 효과를 강화하는 경우에 사용한다.
근대의 오르간처럼 파이프가 수천개에 달하는 대규모의 오르간은 여러 가지
음색을 만드는 스톱이 많이 배열되어 있다.
  또 강약의 표정을 붙이는 장치, 음을 떨게 하는 장치 등은 모두 이
건반이나 스톱을 갖춘 연주대에 붙어 있는데 이 연주대를
콘솔(console)이라고 한다.
  네째로 이 콘솔에 붙인 각종 장치, 즉 음을 내는 건반은 음량이나 음색을
가려쓰는 스톱 등이 손이나 발의 조작에 의해 그 기능을 완전히 발휘하도록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기계장치가 부착되어 있다. 이것은 송풍기와 함께
악기의 뒤쪽에 있는 한 방에 내장되어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 보이지 않는
것이 보통이며, 콘솔에서 행해진 각종 조작을 곧 송풍기의 운전이나
수천개의 파이프에 전달하는 역할을 가진 중요한 부분이다. 근대의 대규모의
악기에서 많은 종류의 다양한 음을 사용하게 되자 스톱과 그 밖의 구조도
점점 복잡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정교한 전기장치에 의해 이른바
전자두뇌처럼 지체없이 정확하게 작용한다.
  오르간음악의 가장 중요한 작곡자는 바하(1685--1750)이다. 바하는 일생
동안에 놀랄 만큼 많은 교회음악을 만들었기 때문에 교회용 오르간곡은
무수히 있지만, 연주회용 오르간 독주곡도 많이 썼다. 또 이 시대에는
라이켄(Jan Adams Reinken 1623-1722)이라든가 북스테후데(Dietrich
Buxtehude 1637--1707)라든가 하는 오르간의 명인과 뛰어난 작곡가가 배출된
이를테면 오르간음악의 황금시대였다.
  바하와 같은 시대의 대작곡가인 헨델은 대오르간과 관현악을 위해 많은
'오르간 협주곡'을 만들어 이 악기의 장대 화려한 연주 효과를 한껏
발휘하였다.
  18세기도 중반이 지나자 관현악의 조직이 크게 발달했으므로 오르간음악은
바하 시대만큼의 융성을 계속할 수는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아직 낭만파
시대의 작곡가 멘델스존, 프랑크, 생상스 등은 각각 오르간을 위한 명곡을
남긴 바 있다. 생상스(1835--1921)는 그의 교향곡(c단조)에서 관현악 속에
오르간을 첨가하여 훌륭한 효과를 거둔 진기한 하나의 예를 만들었다.
왜냐하면 보통의 관현악에서는 오르간을 사용치 않는 것이 오랜 습관이었기
때문이다.
  진짜 오르간 음악을 감상하는 일은 아직 지금의 한국에서는 상당히
어렵다. 그것은 국내에 파이프 오르간의 수가 매우 적기 때문이다.
레코드로는 제법 많은 오르간 명곡이 있으며 라디오로도 드물게 방송되는
수가 있다. 그러한 것들은 오르간의 음색은 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진짜
연주와는 상당히 다른 느낌이 든다. 실연을 들으면 그 최저 음역을 맡은
거대한 파이프가 울려 퍼질 때는 대가람도 흔들 정도의 풍부한 음량을 갖고
있어서, 장려한 음의 소용돌이 속에 온 몸을 담그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현대의 진보된 스테레오 레코드나 라디오 수신기를
가지고서도 아직 이 실감을 얻기에는 이르지 못했다. 파이프 오르간을
설비하는 데는 막대한 돈을 요하기 때문에 새로운 교회, 학교 등에서는
최근에 이것을 대신할 전기오르간을 갖추는 곳이 많아졌다.
@[  나) 리드 오르간과 하모늄 @]
  오르간 항의 처음에서 언급했듯이 우리 나라에서 보통 '오르간'이라
부르는 것은 리드 오르간을 말한다. 5옥타브(60건)의 것이 가장 크고, 작은
것으로는 3옥타브(36건)의 베이비 오르간도 있다. 가장 높은 쪽의 음역이나
가장 낮은 음은 별로 풍부하지 않고 대체로 그 음량이 작아 음악회에서
사용할 수는 없지만, 보통의 가정이나 학교, 유치원 등에서 피아노의
대용으로 쓰이고 있다. 악기의 값이 비교적 싸고 운반하기 쉽다는 것이
특색이다.
  이 리드 오르간의 음색은 맑고 부드러워 평화롭고 밝은 가정의 분위기에
어울리며 어린이도 쉽게 다룰 수 있어서 우리나라에는 오래 전부터 널리
보급되고 있다.
  리드 오르간은 양발로 번갈아 밟는 페달에 의해 풀무를 움직여 공기실에
저장한 공기를 놋쇠제를 리드(혀)에 보내어 음을 내는 것이 보통이지만,
근년에 이르러 페달을 밟는 대신에 소형 전동기를 사용하여 공기를 보내는
방식의 것이 만들어져 널리 사용하게 되었다.
  독일에서 하모늄이라 하고 있는 것은 리드 오르간과 거의 같은 구조인데
주로 강철제의 리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리드를 진동시키는 공기의
움직이는 방향이 그 음색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 외관은 대체로 리드
오르간과 마찬가지이며 음역도 거의 같다.
@[  다) 전자건반악기 @]
  위에서 말해 온 피아노, 오르간 등은 모두 19세기까지 거의 완성되어
있었던 것이지만, 20세기도 중반이 되면서 파이프오르간의 송풍 장치에
전력이 쓰인 것을 비롯해서 다른 건반악기의 발음체에도 전기를 응용하고,
다시 이것을 전기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발명되어 여러 가지 건반악기가
태어났다. 이것이 바로 미국에서 발명된 하몬드 오르간이다.
  그러나 제2차대전 후 세계 각국의 전자 공업은 비약적인 진보를 이룩하여
컴퓨터를 비롯한 많은 통신 공업을 완전히 일변시키고 말았다. 이것을
음악에 응용한 건반악기도 다양하게 나왔으며, 더우기 해마다 새로운 연구와
개량이 가해지고 있다. 앞에서 말한 하몬드 오르간도 지금은 이같은
전자악기의 하나가 되었다.
  또 건반뿐만 아니라 전자의 응용에 의한 신디사이저(신디사이저 항
참조)의 연구도 해마다 새로와지고 음악의 표현 방법의 재료는 점점
풍부해졌다.
  그러나 미래의 음악은 어떨지 몰라도 현재로서 이들 전자악기는 아직 발전
도상에 있다고 생각되며, 주로 포퓰러 음악이나 편리한 가정악기로 쓰이고
있을 정도이며, 이른바 클라식 음악의 무대에 나타나는 일은 거의 없다.
다만 예컨대 파이프오르간의 설비가 없는 연주회장에서 꼭 오르간이 필요한
경우에 대용으로 사용되어 그나름의 효과를 발휘하는 수가 있다.

@[  (2) 현악기 @]
  현을 진동을 울림통에 전달해서 이것을 울리게 하는 원리에 의한 악기는
동양, 서양이 모두 아주 오래 전부터 사용해 왔었다. 예컨대 비파, 호궁,
서양에서는 바이올린과 기타 등 그 종류도 많이 있다. 현재 널리 쓰이고
있는 현악기를 크게 나누면 바이올린의 일족처럼 활로 줄을 문질러서 음을
내는 찰현악기류와 기타처럼 손끝 또는 골무나 채를 사용하여 줄을 뚱겨서
음을 내는 발현악기 등 두 종류가 있다. 관현악에 사용하는 현악기는
하프(수금) 등을 제외하면 보통의 경우는 모두 찰현악기뿐이니까 먼저
이것에 대해 설명키로 하자.

@[  A. 찰현악기 @]
@[  #1 바이올린 @]
  현악기 중에서 가장 널리 보급되어 있다.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등 4개의 악기는 그 모양이나 구조는 대체로 같지만 크기에
차이가 있으며, 따라서 각각의 음역을 분담할 뿐만 아니라 그 음색이나
표정의 성격도 각각 다르기 ㄸ문에 실내악, 관현악 등 합주의 경우에는 이
네가지 악기가 각각 여러 가지 성격을 맡아서 활약한다.
  바이올린의 기원은 이미 2천년 전에 아라비아 지방에서 발생했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오늘날과 같은 바이올린의 모양이나 크기, 그 구조등이
정해진 것은 지금부터 약 4백년 전 이탈리아에서이다.
  당시 이탈리아의 크레모나라는 곳에 아마티(Andrea Amati 1520-80)라는
악기 제작가가 있었는데, 초대인 안드레아 아마티가 만든 바이올린은 현재의
것보다 조금 소형이었다고 한다. 단, 당시는 아직 이 악기의 크기가 일정치
않아서 크고 작은 여러 가지 바이올린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재질은 거의 일정해서 대체로 현재의 것과 같았던 모양이다.
  바이올린은 대개 어느 것이나 다음과 같은 재료로 되어 있다.
  1. 앞판: 낙엽송류
  2. 뒤판: 단풍나무류
  3. 목(네크): 위와 같음
  4. 옆판(사이드 보드): 위와 같음
  5. 머리(헤드): 위와 같음
  6. 지판(핑거 보드): 흑단 또는 자단
  7. 줄감개(너트): 위와 같음
  8. 새들(테일): 위와 같음
  여기에 4개의 양장선을 건너매고, 활에 맨 말꼬리털로 문질러서 음을
낸다. 양장선은 양의 장의 섬유를 말려 아교로 이긴 것으로서, 옛날에는
모든 바이올린이 이것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근년에 이르러 이를 대신하는
강철선을 만들게 되어 오늘날에는 거의 모두 강선만을 사용하게 되었다. 또
활의 모양이나 구조도 지금부터 2백년 전 쯤에 크게 개선한 바 있다. 활에
맨 흰 말털에는 수지를 발라서 켠다. 이들 재료는 바이올린의 일족에
해당하는 악기, 즉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도 모두 같다.
  아마티 일가이며 명공으로 가장 유명한 니콜로 아마티의 제자에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라는 명인이 나타나 매우 뛰어난 악기를 만들었는데, 그보다
조금 늦게 역시 아마티의 제자 중에서 지우젭페 구아르네리라는 명공이
나왔다. 이 세 사람의 바이올린 제작가를 '크레모나의 3거장'이라 부른다.
현대에도 세계에서 귀중하게 여기는 옛 명기는 이들 제조가, 또는 일족의
손으로 만든 것이 많고, 또 그 후 크레모나의 유파를 따라 프랑스, 독일,
보히미아 등지에서도 각각 우수한 악기의 제조가가 나왔다.
  바이올린의 구조는 앞에서 말했듯이 매우 간단하지만 수백년 동안 무엇
하나 부족한 점은 없었고, 극히 부분적인 개량 외에는 거의 아무 것도 손댄
것이 없다. 이렇게 단순하고 오히려 원시적인 구조의 악기일수록 사용자의
솜씨의 좋고 나쁨이 그 연주 효과를 완전히 좌우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즉
바이올린은 매우 어려운 악기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명인이 켜면 이
간소한 작은 악기에서 나오는 음악적인 표현력은 참으로 무한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크고, 그 아름다운 음색으로 웅혼 장대한 감정을, 혹은 경쾌,
발랄한 기분을, 혹은 또 더없이 정치하고 미묘한 심정이나 애절한 감상 등
온갖 정서를 자유자재로 나타낼 수 있다는 점에서 바이올린보다 나은 악기는
없으리라는 생각마저 든다. 옛날부터 "바이올린은 연주자의 몸의
일부분이다" 라고들 하거니와 이 악기의 특징을 잘 파악한 말이다.
  바이올린 음악을 감상하는 사람은 흔히 연주자의 왼손의 손끝이 어지럽게
활동하면서 정확히 현의 급소를 누르는 광경과 열정을 담아 음을 떨게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감탄하지만, 이 아름다운 음이 진짜로 나오는 곳은 오히려
오른손의 활놀림(보우잉)에 있다. 활의 끝쪽, 혹은 자기 손쪽, 또 매끄럽게
현 위를 달리거나 도약하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 음을 낸다. 모든 섬세한
표정과 화려한 색체의 변화는 모두 미묘한 활놀림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더블스토핑이라 하여 2개의 현을 동시에 울림으로써 2중주와 같은 겹음의
효과도 나타내고, 하모닉스(또는 플래절렛)라고 해서 줄에 가볍게 손끝을
대어 켜면 피리처럼 높은 음도 낼 수가 있다.
  또 현을 활로 켜지 않고 손끝으로 뚱기는 것을 피치카토라고 한다. 이
피치카토만으로 켜는 곡도 있을 정도이다. 활로 켜는 경우에도 활털로
문지르지 않고 활의 나무 부분으로 현을 두드려 음을 내는 것을 콜 레뇨(Col
Legno)라고 한다.
  바이올린에는 또 약음기(소르디노, 또는 뮤트라고 부른다)를 사용하는
수가 있다. 이것은 나무 또는 상아, 금속 등으로 만든 빗 모양의 작은
부분품으로 3개 혹은 2개의 발을 가졌는데, 이것을 줄받침 위에 고정시키고
켜는 것이다. 약음기는 단지 음을 약하게 한다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이것을 사용했을 때는 은근하고 수수한 일종의 아름다운 음색을 수반하는
효과를 갖고 있다.
  위에 말한 여러 가지 성능은 바아올린뿐만 아니라 그 일족인 비올라, 첼로
등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특색이다.
  바이올린은 초보자에게는 어려워서 좀처럼 다루기 힘든 악기이다. 첫째,
갓 시작한 단계에서는 쉽게 아름다운 음을 내지도 못해 이가 들뜬것
같다든가 톱날 같다느니 하고 험담을 듣는 것은 모두 이 악기이다. 더우기
만돌린이나 기타처럼 눈으로 보아 알 수 있는 '표시'도 없어서 좀처럼
음정을 바르게 잡을 수도 없다. 초보자는 가능하면 먼저 피아노나 오르간을
배운 다음에 들어가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그러나 바이올린은 장소를
차지하지 않고 휴대에도 편리하며, 더우기 보통의 것이라면 비교적 싼
값으로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처음으로 음악을 배우려는 사람들 중에는
바이올린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
  만약 바이올린을 배우겠다면 처음부터 되도록 교사에게 배워 바른 주법을
습득하도록 유의하지 않으면 곧 싫증이 나서 스스로 이것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대략 기술을 익히게 되면 이 악기는 매우 즐거움을
줄 것이다. 다만 혼자서 켤 때 피아노의 반주가 없으면 매우 힘든 악기인데,
가정에서 친구들과 실내악이라도 할 수가 있다면 더욱 즐거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바이올린의 명곡은 옛날부터 많이 있지만 오늘날 연주회의 프로그램을
보면 거의 모두 17세기 이후의 것 뿐이다. 그것은 이 악기의 성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연주법이 발달하여 갖가지 명곡을 낳은 것이 그
시대부터였기 때문이다.
  17세기에는 이탈리아에 비탈리, 코렐리 등의 대가가 나타났다. 비탈리의
"샤콘느", 코렐리의 "라 폴리아"등은 모두 고풍스러운 변주곡 형식의 느린
무곡인데, 이것을 화려한 바이올린의 기교를 통해 아름답게 나타난 것이다.
  독주 악기로서 화려한 무대를 장식함과 동시에 이 시대부터 바이올린은
오케스트라나 실내악 등 합주음악의 중추를 차지하게 되었다. 실내악인
경우에는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이 나누어 악곡 속에서의 역할을
분담하고 관현악에서는 각각 2개 그루프로 나누게 된다. 제1, 제2라고 해도
특별히 악기가 다른 것도 아니고 또 연주자의 솜씨나 지위가 다른 것은
아니지만, 합주 음악 속에서 바아올린의 성능을 가장 유효하게 사용하기
위해 각기 일을 분담하므로, 이것은 오늘날의 관현악이나 실내악에도 그대로
응용되고 있다.
  18세기가 되자 바이올린의 연주는 한층 그 수준을 높였으며 아직도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해서 번영하고 있었다. 베니스의 비발디라는 작곡가는
승직에 있으면서 '빨강머리 사제'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는데, 이 사람은
바이올린의 명수로서 실로 150곡의 협주곡을 만들었다.
  또 같은 이탈리아에서는 타르티니라는 명인도 나타나 비발디와 함께 이
시대의 바이올린 연주법을 진보시켰다고 한다. 타르티니가 꿈 속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고 하는 "악마의 트릴"(떤음)이라는 곡은 굉장히 어려운 연주
기교와 눈부신 효과를 발휘한 소나타의 하나이다. 그 밖에 같은 시대에
이탈리아에서는 나르디니, 푸냐니, 비옷티 등의 명인 대가가 잇따라 나타나
드디어 바이올린의 명인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19세기의 유럽은 낭만파 음악의 시대인 동시에 '명인형의 시대'이다.
잇따라 나타난 바이올린의 대연주가들은 자기의 뛰어난 연주 기술을 한껏
발휘하여, 바이올린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성능의 한계를 보여 주려고
노력하였다. 그 때문에 당시의 작곡가들도 이들 바이올린의 거장들의 역량을
십분 발휘시킬 만한 아주 화려한 각가지 명곡을 작곡한 것이었다. 독일의
시포어, 다비드, 또 프랑스의 크로이찌, 바이요, 로드, 라퐁 등은 이 시대의
명바이올리니스트들이며 이들은 자기 스스로도 뛰어난 바이올린곡을
만들었는데, 또 이 명인을 목표로 해서 당시의 대작곡가가 바이올린의
명곡을 쓰기도 했다. 베토벤은 유명한 "크로이쩌 소나타"를 작곡하여
크로이쩌에게 바쳤다. 또한 멘델스존은 다비드가 켜도록 유명한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였다.
  이탈리아의 파가니니(Paganini, Nicolo 1782-1840), 밧치니(Bazzini,
Antonio 1818-1897), 벨기에의 비외탕(Vieuxtemps, Henry 1820-1881),
스페인의 사라사데(Sarasate Pablo de 1844-1908), 폴란드의
비에냐프스키(Wieniawski, Henryk 1835-1880), 독일의 요아킴(Joachim,
Joseph 1831-1907), 러시아의 아우어(Auer, Leopold 1845-1903) 등은
19세기의 가장 저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이다.
  독일의 대작곡가 브람스는 요아킴을 위하여 명곡 "D장조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만들었다. 또 스페인의 사라사테가 켜기 위해 프랑스의 작곡가
랄로가 "스페인 교향곡"을 쓴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라사테는
스스로도 스페인의 민족적인 작품을 바이올린곡으로 많이 만들고, 또 헝가리
집시의 민요를 도입하여 예의 "찌고이네르바이젠"을 작곡하였다. 이곡을
들으면 참으로 바이올린이라는 악기의 화려함과 정서의 섬세함에 경탄하게
된다.
 오늘날 바이올린의 명곡은 레코드로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최근의
레코드는 그 녹음이나 재생의 기능이 매우 발달했기 때문에 바이올린 등은
마치 진짜처럼 아름답게 녹음되어 있다. 또 근년에는 레코드에 들어있는
곡목의 수가 매우 풍부해졌으므로, 고전에서 현대까지 명곡이라 일컬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연주회에서도 별로 들을 수 없을 것 같은 진기한 곡까지 모두
레코드에 의해 세계적인 명수들의 연주에 의해 들을 수 있다.
  뒤에 실내악, 관현악의 항에서도 말하겠지만 바이올린은 많은
합주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악기로서 다루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음악,
탱고 등의 음악에도 사용된다. 또 최근에는 생활에 '위안'을 주는 음악으로
'무드 음악'이라는 것이 유행하고 있는데, 이 무드 음악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대개의 경우 관현악 속의 바이올린군이다.
@[  #2 비올라 @]
  비올라는 바이올린보다 한층 대형이고 바이올린의 조현보다 5도 낮게
맞추도록 되어 있다. 프랑스에선 이 악기를 알토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바이올린을 소프라노라고 하면 비올라는 이에 대해 알토의 역할을 한다는
데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이것을 브라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것은 옛날 16세기 경에 이 종류의 여러가지 현악기를 총칭하여
비올(프랑스어), 비올라(이탈리아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소형의 것을
비올리노(작은 비올라), 중형이며 그리고 바이올린처럼 팔로 떠받치고 켜는
것을 비올라 다 브랏치오(팔의 비올라), 또 더욱 대형으로 양 다리에 끼우고
켜는 것을 비올라 다 감바(다리의 비올라)라고 불렀다. 이 중 비올리노는
바이올린의 이탈리아어이다. 또 비올라 다 브랏치오를 줄려서 단지
비올라라고 하며, 비올라 다 감바는 더욱 개량되어서 오늘날의 첼로가
되었다. 물론 명칭과 함께 그 모양도 당시의 것과는 얼마간 달라 모두
바이올린과 같은 외형이 되고, 현의 수도 모두 4개로 통일되었다.
 독일어로 비올라를 브라체라고 하는 것은 이 비올라 다 브랏치오의
브랏치오에서 바뀐 명칭이다.
  비올라의 음색은 그 낮은 쪽은 투명하고 힘차고 또 우아한 느낌이며 높은
쪽의 음은 얼마간 은근한 맛이 있는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이 악기는
바이올린처럼 화려하다든가 빛난다든가 하는 느낌은 적고 다른 악기에 비해
두드러진 존재는 아니기 때문에, 옛날부터 독주악기라기보다는 오히려
관현악이나 실내악과 같은 합주 음악 속에서 그 중간 정도의 음역을
충실하게 하는 악기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모짜르트는 이 비올라의 소박하고 우아한 특성을 좋아하여 실내악 속에서
흔히 그것을 살려 사용했고, 또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2중주곡과 협주곡을
썼다. 또 독일의 낭만파 음악의 거장 슈만의 만년의 작품에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2중주로 "옛이야기의 그림책"이라는 아름다운 모음곡이 있다.
 비올라는 독주악기로서는 별로 화려하지 않고 경음악에서는 전혀 사용치
않는 악기이며 또 악기도 좀처럼 구하기 힘들어서, 한국의 보통 가정에서는
별로 이것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비올라는 온화하고 따뜻한 느낌이 드는
조용한 음의 악기이기 때문에 가정에서 혼자 즐기기에도 좋은 악기라고
생각한다.
  비올라의 악보는 가온음자리표(알토표) 를 사용한다. 이것은 보통
학교에서도 배우지 않고 또 피아노, 오르간, 바이올린 등에도 사용치 않는
낯선 표이므로, 이 점도 비올라가 아마추어들 사이에서는 별로 보급되지
않은 악기가 되고 있는 하나의 이유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익히려고 하면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므로 조금씩이나마 음악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가온음자리표를 대강 읽을 수 있도록 해 두는 편이 편리할
것이다.
  비올라는 지금 말했듯이 보통 음역의 곳에서는 가온음자리표를
사용하지만, 악곡에 따라서 높은 음역의 부분은 바이올린과 같은
높은음자리표를 사용하는 수도 있다.
  다음에 참고삼아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등 각 현악기의
조현을 비교한 악보(다음 페이지)를 실어 두기로 한다.
  그림생략
  (주) A는 각 악기에 고유한 기호에 의한 것이며, B는 이 4종류의
상호관계를 알기 쉽게 나타낸 것이다.
@[  #3 첼로 @]
  첼로는 본래의 이름을 비올론 첼로라고 하는데 이것은 너무 길어서,
줄여서 첼로라고 부른다. 독일어로 '첼', 프랑스어로 '셀'이라는 말도 쓴다.
  첼로는 비올라보다 다시 8도(1옥타브)만큼 낮게 조현한다. 따라서 그
모양은 크고, 다른 악기처럼 팔로 떠받쳐 턱과 어깨 사이에 끼우고 켤 수는
없기 때문에 연주자는 의자에 걸터앉아 양 다리의 무릎에 끼우고 켠다. 그
때 악기를 단단히 바닥 위에 안정시키기 위해 짧은 막대가 달려 있다.
이것은 악기의 끝부분에 있기 때문에 엔드 핀이라고 한다.
  그러나 17세기부터 18세기 초에 걸쳐 첼로의 기교가 아직 별로 발전하지
않았던 무렵의 회화 등을 보면 이 엔드 핀이 없고, 양 무릎으로 악기를
공중에 떠받치거나 또는 조그만 받침대를 발 밑에 놓고 거기에 악기를
세운다든가 해서 켜고 있는 것을 보는 수가 있다. 그러나 근대의 어려운
악곡을 연주하려면 그런 식으로 떠받쳐서는 매우 곤란하므로 오늘날과 같은
엔드 핀을 사용하는 일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18세기까지는 이 악기의 구조가 오늘날처럼 완전하지는 않았고, 앞의
비올라의 항에서 말한 것과 같은 비올라 다 감바, 혹은 바리톤이라 불렀던
악기가 주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 바리톤이란 하이든 시절(18세기 말)까지
사용되었는데 어느 것이나 6현, 혹은 그 이상의 수의 현을 가졌고 각 현의
간격도 4도 음정이며, 더우기 지판에는 모두 오늘날의 기타나 만돌린처럼
지판이 구분되어 있다. 현대의 악기에 비해서 아마도 그 주법은 얼마간
쉬웠으리라고 여겨지지만, 표정이 모자라고 음색도 또한 첼로처럼 빛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 당시는 이 악기에 대해 별로 뛰어난 연주가도 많지
않았고, 작곡가도 또한 그 독주악기로서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일이
적었으므로, 합주 때 더블베이스와 함께 전체의 낮은 음만을 맡고 있었을
뿐이다.
 이러한 경향은 18세기 말 하이든이나 모짜르트의 무렵까지 계속되었는데,
당시는 이미 이 악기도 상당히 개량되고 뛰어난 연주가도 드문드문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모짜르트 등은 뛰어난 작곡가였기 때문에 관현악이나 실내악
속에서도 첼로의 성능을 살리고 더블베이스가 당담했던 것을 분리시켜
독자적으로 활약하게 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하이든의 유명한 "첼로
협주곡" 등은 실은 앞에서 말한 비올라 다 감바, 또는 바리톤을 위하여 만든
작품일 것이라고들 말하고 있다.
  첼로 음악은 19세기 초에 베토벤에 의하여 획기적인 약진을 이룩하였다.
베토벤 자신이 이 악기에 깊은 이해를 갖고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지만
롬베르크, 뒤포르, 링케 등의 명수가 나타난 것도 이 시대의 첼로를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 하나의 이유가 되고 있다.
  베토벤은 첼로와 피아노를 위해 5개의 소나타와 3개의 변주곡을
작곡했으며 그 밖에 많은 실내악곡과 관현악곡에서도 첼로에 중요한 역할을
주었다.
  첼로의 음색은 힘차고 폭넓고 그 저음부는 은근하면서도 호탕하며,
고음부는 빛나고 바이올린처럼 풍부한 표정을 갖고 있다. 그 음역도 널리
사용되고, 악보상으로도 F음자리표, 가온음자리표 (비올라의 알토표보다
다시 3도 낮은 테너 기호), 좀더 높은 음역을 사용할 때는 종종 G음자리표도
쓰인다. 화려한 독주악기로서, 또 관현악이나 실내악에서는 중요한 악기가
되고 있다.
@[  #4 더블베이스 @]
  현악기 중에서 가장 큰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은 더블베이스(독일어로는
콘트라바스)이다. 그 길이는 대략 어른의 키 정도가 되는데, 이것은
일어서서 켜든가 혹은 특별히 높은 의자에 걸터앉아 켤 때도 있다.
  이 악기는 합주, 특히 관현악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저음 악기인데 독주
악기로 사용되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 이유는 이 악기의 음색 때문이다.
  더블베이스의 음은 극히 둔중한 느낌을 가졌고, 어느 음이 울리고 있는지
확실하게 구분해서 들을 수 없을 만큼 낮은 음을 낸다.
  보통은 4현 악기로서, 그 가장 낮은 현은 E음으로 조현하지만 근대에
이르러 좀더 낮은 음을 요구하게 되어 지금은 5현의 더블베이스도 있다.
이것은 보통으로 조현된 4현 밑에 또 하나 가장 낮은 C음에 맞춘 현이 1개
더 추가되었다. 이 악기는 그 모양이 너무 크기 때문에 다른 현악기처럼 5도
음정의 조현으로는 연주가 어려우므로 4도 간격으로 조현하기로 되어 있다.
또 악보에 적힌 음보다도 실제는 1옥타브(8도) 낮은음이 울리도록 옛날부터
약속되어 있다.
  더블베이스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독주 악기로서는 별로 쓰이지 않지만 17,
18세기 경의 실내악곡에서 극히 드문 예를 볼 수 있다. 또 19세기 초에
슈베르트가 "숭어"라는 제명으로 알려진 5중주곡에 더블베이스를
사용했는데, 이것은 당시로서는 물론이고 오늘날에도 진기한 하나의 예가
되고 있다. 슈베르트의 이 곡은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의 5중주이다. 이 진기한 작품에 대해서 당시 이탈리아 태생으로
이 악기의 명수였던 드라고넷티라는 사람이 슈베르트의 뛰어난 작곡법, 특히
더블베이스의 사용법에 관해 크게 칭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왜 더블베이스는 실내악에 사용되지 않았던 것일까. 후에 '실내악'의
항에서 자세히 말하겠지만, 실내악을 듣는 즐거움은 그 하나하나의 악기의
작용을 각각 명확하게 구분해서 들을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그런데 이
악기는 '더블베이스'라는 이름 그대로 첼로의 낮은 음을 강화하고 그 음색을
한층 풍부케 하기 위해 이것과 겹쳐서 사용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독립성을 갖지 않은 악기였다. 따라서 각 악기의 독립성을
즐기는 실내악에서는 별로 사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차츰 연주법이
진보함에 따라 이 악기도 첼로와 떨어져 독립해서 쓰이게 되었다. 그래서 이
더블베이스도 극히 드물게 실내악 속에 쓰이게 되었으며 슈베르트도 이것을
시도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이 악기의 음색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너무나 낮고 더우기 둔중한 데다가 그 모양이 매우 커서
좀처럼 연주하기 어려운 악기이기 때문에 바이올린처럼 화려하고 또 경쾌한
표정을 가질 수가 없다. 현재도 이 악기는 실내악에는 별로 쓰이지 않는
것이 통례이다.
  그러나 관현악은 물론 경음악, 재즈, 탱고 등 거의 모든 오케스트라의
낮은 음 악기로서는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  B. 발현악기 @]
@[  #1 하프 @]
  오늘날 하프라고 부르는 것은 일반적으로 대형의 수금을 말한다. 영어로
하프, 이탈리아어로는 아르파, 프랑스어로 아르프, 독일어로는 하르페라고
한다.
  하프는 역사상 가장 오래 전부터 있었던 악기의 하나로서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의 조각과 벽화에도 남아 있다. 그 모양이나 크기도 여러 가지이며
각각 다른 명칭으로 불려지고 있었는데, 대개 현재의 것보다 소형으로
휴대할 수 있는 것이 많고 극히 간단한 구조의 것이다.
  근대의 하프는 우아한 형상과 장식이 있으며 대개는 화려하게 금빛으로
칠해져 있다. 하프는 보통 47개의 양장선(거트)과 금속선을 매었으며 테의
일부는 커다란 울림통의 역할을 하고 있다. 모든 종류의 악기 중에서 이
하프 만큼 귀족적이고 화려한 외관을 지닌 것은 달리 없을 것이다.
  이 악기는 바닥 위에 세우고 한 쪽에는 이것을 안는 것처럼 해서 양손의
손끝으로 줄을 뚱겨 연주한다. 하프는 밑 부분에 7개의 페달이 있으며, 이
장치에 의해서 여러 가지 조로 바꿀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처럼
정교한 구조를 갖게 된 것은 극히 근대의 일로서, 1801년에 프랑스의
에라르에 의해 페달이 발명한 이후의 일이다. 그 때까지는 손으로 조를
바꾸는 (갈고랑이로 조작한다) 매우 불편한 것이었다. 오늘날에도 가정의
음악에서 드물게 볼 수 있는 아일리시 하프(아일랜드식 하프)는 이
손갈고랑이를 장치한 단순한 것이다.
  하프의 음색은 약간 피아노를 닮았지만 더욱 부드럽고 우아하며 조용한
감정을 갖고 있다. 근대에 이르러 이 악기는 관현악에도 많이 쓰여지게
되었다.
  옛날에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하프의 구조가 오늘날처럼 정교하지 않고
그 음악적인 표현력도 작았으므로 단지 가정의 음악으로 사용될 뿐이고
관현악에 참가하는 일은 거의 없었으나, 베토벤이 젊었을 때 만든 발레 음악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속에서 이 악기를 사용하여 그리스 신화를
상기시키는 효과를 나타냈고, 또 모짜르트는 파리에 체재했을 때 음악을
좋아하는 긴 공작과 그 딸을 위해 하프와 풀루트의 협주곡을 작곡한 바
있다.
  하프는 19세기가 되고 나서 페달 장치가 완비되었으며, 충분히 그
표현능력을 발휘하게 된 근대에 이르자 많은 대작곡가들에 의해서
실내악이나 오케스트라에서 활약하게 되었다. 오케스트라에서는 보통 1대
또는 2대의 하프를 사용하지만, 극단적인 예로는 바그너의 악극 "니벨룽겐의
반지" 속에서 관현악에 8대의 하프를 사용하였다.
@[  #2 기타 @]
  기타는 13세기 경 아라비아 지방에서 발생하여 스페인에 수입되고 차츰
세계로 보급되었다고 한다. 6개의 현을 가졌고, 각 현의 간격은 4도로
조율된다. 단, 그 제2현과 제3현 사이만은 3도가 되고 있다.
  기타는 독주용으로서도 좋고 또 반주 악기로서도 편리한 악기로 근년에
우리 나라 가정으로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음량이 작아 그만큼 한국
가옥에도 적달하다. 일상의 즐거움으로 뭔가 악기를 배웠으면 하고 생각한
경우에 기타는 참으로 좋은 악기의 하나이다. 단, 이 악기도 명곡을 연주해
내려면 상당한 노력과 훈련이 필요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기타는 경음악에도 흔히 사용된다. 이 경우 코드(화음)만으로 반주로서
사용하는 수가 많고, 그 때는 손끝으로 뚱기거나 피크(골무)를 사용해서
화음을 탄주하므로 피크 기타, 또는 코드 기타라고 부르지만 악기는 같은
것을 사용한다.
  단지 독주용(클라식 기타)인 경우는 양장선(거트)를 사용하고, 경음악의
경우에는 주로 금속선을 사용하고 있다. 거트도 최근에는 나일론제의 것을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기타의 악보는 보통의 G음자리표를 사용하지만, 실제로 울리는 음은
악보에 적힌 음보다 1옥타브 낮다고 하는 약속이 되어 있다.
  기타의 음색은 하프를 닮아 부드럽고 조용하며 상냥한 느낌을 갖고 있다.
또 하프보다 더욱 섬세한 표정이 넘쳐 있다. 기타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노래의 선율을 연주하는 일도 있으며, 또 경쾌하고 발랄한 무도곡이나
행진곡을 칠 수도 있다. 옛날부터 연인의 창 밑에 서서 부르는 사랑 노래는
대개의 경우 기타로 반주한다고 여겨지고 있으므로, "세레나데"라고
이름붙여진 노래, 예컨대 유명한 슈베르트의 세레나데와 그 밖에 드리고,
토스티, 토셀리 등 이탈리아 작곡가의 손으로 된 감상적인 세레나데도 모두
그 피아노 반주 부분에 기타와 같은 표정을 모방해서 만들어진 것이 많은 것
같다.
  기타는 만돌린의 음과도 잘 조화되므로 만돌린의 합주 때 흔히 그 낮은
음이나 리듬의 악기로 사용된다. 보통의 관현악에는 극히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기타는 쓰이지 않는다. 그것은 관현악의 많은 악기에 비해
기타는 그 음량이 적어서 주로 가정용 악기로 사용되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경음악에 쓰일 때는 화음이나 리듬을 맡는 수도 많지만, 또 전기 장치에
의해 음을 확대하는 일도 있으며, 그것을 전기 기타 또는 일렉트릭 기타라고
말하고 있는데, 줄여서 '일렉기'라고도 한다.
  스틸 기타라는 것은 기타의 하와이식 주법, 즉 무릎 위에 옆으로 눕히고
금속봉으로 현을 누르고 금속의 손톱으로 대어 치는 방법에서, 더욱 나아가
이 원리만을 채택하여 전혀 다른 모양을 한 악기가 되고 있다. 모두 전기로
확성하여 여러 가지 기발한 효과를 내며, 경음악에서는 상당히 널리
쓰여지고 있다.
@[  #3 만돌린 @]
  만돌린도 처음에는 스페인에서 생겨난 악기라고도 하는데, 일찍부터
이탈리아에서 수입되어 비약적으로 발달하여 이탈리아의 국민적인 악기가 된
바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밀라노와 나폴리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었는데 각각
특색있는 발전을 했으며, 나폴리식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이 세계에 널리
퍼졌으며 우리 나라에서도 모두 나폴리식 만돌린이 사용되게 되었다.
 만돌린은 경쾌하고 사랑스런 음색과 표정을 가졌으며, 대충 연주하는 것은
비교적 쉽게 할 수 있으므로 우리 나라에서는 꽤 오래 전부터 널리 가정
음악에 사용되어 왔다.
  만돌린의 현은 모두 강철선을 사용하고 2개씩 한 음에 맞춰서 4쌍, 즉
8개가 있다. 그 조현은 바이올린과 같고, 이것을 치는 데는 구갑 또는
셀룰로이드제의 작은 피크를 오른손에 쥐고 뚱긴다.
  보통 관현악에서는 만돌린이 사용되지 않지만, 19세기의 독일 작곡가
말러(Gustav Mahler 1860--1911)의 "대지의 노래"와 "제8번 교향곡", 그리고
이탈리아의 카젤라(alfredo Casella 1883--1947) 라는 작곡가가 만든
"기슭의 정원"이라는 모음곡 속에 사용된 예도 있다. 옛날에는 모짜르트가
그 오페라 "돈 지오반니" 속에서 제2막의 세레나데의 반주로서 관현악과
함께 이 만돌린을 사용하여 아름다운 효과를 거둔 바 있다.
  만돌라는 만돌린보다 한츤 더 대형 악기로서 구조나 주법은 만돌린과
같지만, 1옥타브 낮은 음이 나오므로 가온음부의 악기로서 흔히 합주의
경우에 사용된다.
  만돌린 합주에는 이 밖에 만도첼로(만돌라보다 5도 낮다), 가장 낮은 음을
치는 만돌로네, 혹은 키타르로네(Chitarrone) 라는 큰 악기도 있다.

@[  (3) 관악기 @]
  관악기(또는 취주악기)의 개개의 명칭은 한국에서는 여러 나라 말로
제각기 다르게 사용되고 있어서 그 호칭이 일정하지 않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가장 일반적으로 보급되어 있는 호칭에 따라 설명해 두고 마지막에
전부 일괄하여 각국어의 대조표를 실어 두기로 한다.
  관악기는 크게 나누어 피리류(목관악기)와 나팔류(금관악기)의 두 종류가
된다.
@[  A. 목관악기 @]
  피리류는 옛날 서양에서는 모두 목재였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그 일부
혹은 전부가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더라도 총괄하여 목관악기라고 하낟.
  목관악기는 19세기가 되고 나서 그 구조가 매우 진보하였다. 이것은
19세기에 모든 공업이 발달하기 때문이며, 또 그 중기에 뮌헨에 사는 뛰어난
풀루트 주자인 테오발트 뵘이라는 사람이 커다란 개량을 시도한 뒤 이것을
모든 목관악기에 응용하게 되어 그 연주 기술이 눈부시게 향상되었다.
그때까지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그런 어려운 곡도 연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는 모두 뵘(Bohm)식의 목관악기가 쓰이고 있다.
  목관악기는 한국의 가로피리처럼 관에 입김을 불어넣어 울리는 것과 관의
한 끝에 붙인 리드(혀)를 불어서 관을 공명시키는 것이 있다.
  (1) 무황악기(리드가 없는 것): 플루트, 피콜로, 블록플뢰테(Blockflote
리코더), 가로피리, 명적, 퉁소 등.
  (2) 복황악기(2개의 리드가 있는 것): 오보, 잉글리쉬 혼, 버순,
더불버순, 피리, 차르메라 등.
  (3) 단황악기(1개의 리드가 있는 것): 클라리넷 종류, 색소폰 종류.
  리드가 없는 목관악기도 플루트족이나 퉁소처럼 관에 직접 입김을
불어넣어 이것을 먼저 작은 공기실을 통해 가느다란 통로에서 나온 공기로
관을 울리는 두 종류가 있는데, 전자는 동양에서 생겨나 10세기 경 서양에
전해진 것이며 후자는 옛날부터 서양에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후자의 작은
공기실 부분을 블록이라고 하며 블록플뢰테, 플래절렛, 팬 파이프(목신이
갖고 있었다고 전해진 몇 개의 관을 옆으로 늘어세운 피리) 등은 모두
이것에 속한다. 이것으로 보면 후자의 악기는 멀리 그리스 신화 시대부터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가 있다.
@[  #1 블록플뢰테 @]
  블록플뢰테는 영어로 리코더라고도 하는데 최근의 고전음악 부흥의
기운으로 전세계에서 가정 음악에 널리 사용하게 되었으며, 한국에서도
르네상스나 바로크 시대의 음악애호가 간에 종종 연주하게 되었다. 그
단순하고 소박하며 맑은 음색은 현대의 복잡한 세상에서 아름다운 고요함을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 이 악기는 입김을 불어넣기만 해도 음이
나오기 때문에 웬만한 연주라면 비교적 쉽게 할 수 있으므로, 국민학교
등에서 '세로피리'로서 어린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곳도 많아졌다.
  블록플뢰테의 재질은 딱딱한 목재, 주로 회양목, 단풍나무, 배나무,
벗나무, 사과나무, 호도나무 등이 사용되고 있는데, 최근에는 값싸게
양산하기 위해 플라스틱제의 것이 학교의 음악교육 등에 많이 사용된다.
  블록플뢰테는 1개만으로 연주할 수도 있지만, 그것으로는 조금 지나치게
음색이 단순해서 쓸쓸하므로 몇사람의 합주, 즉 거기에 나타나 류트 등의
반주를 곁들인 앙상블이 많이 행해지고 있다.
  그 때문에 유럽에서는 오래 전부터 크고 작은 각종 블록플뢰테가
사용되었다. 음이 높은 순서로 늘어놓아 보면,
  여러 가지 블록플뢰테
  소프라니노-F조
  소프라노-C조
  알토-F조
  테너-C조
  베이스-F조
  그레이트 베이스-C조
  여기서 C조라든가 F조라든가 하는 것은 각각의 크기의 관에서 이들 조를
기본으로 한 길이가 가장 잘 울리고, 따라서 불기 쉽다는 점에서 비롯된 것
같다. 다만 옛날에는 이밖에 D조, G조, B?조 등의 악기도 있었던 모양이나,
현대의 것은 대체로 이 6종류의 악기가 앞에 말한 조로 통일되어 있다.
  오늘날에는 한국에서도 블록플뢰테의 교칙본이나 곡집, 그리고 고전의
명곡에서 쉬운 곡까지 쉽게 입수할 수 있기 때문에 가정 음악으로도
몇사람의 합주로 즐길 수 있다.
  유럽에서는 이 악기보다 늦게 발달한 플루트가 차츰 구조의 개선과
연주기술의 진보에 의해 그 때까지의 블록플뢰테를 대신하는 지위를 차지해
왔다. 음량이 크다는 점, 표정이 풍부한 점에서 플루트는 훨씬 뛰어나기
때문이다.
  블록플뢰테는 바로크 시대의 헨델이나 바하의 시대까지는 많이
사용되었지만, 그 이후에 연주회에서는 별로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되었고
주로 가정용 악기로서 남았으며, 이를 대신해서 플루트의 연주 기술에
대단한 진보를 보이게 되었다.
@[  #2 플루트와 픽콜로 @]
  플루트는 리드(혀)가 없는 가로피리로서 명적 등과 같은 원리로 되었으며,
가장 단순한 구조의 관악기였다. 그러나 이 악기도 19세기가 되고 나서 앞에
말한 뵘이라는 사람에 의해 극히 정교한 기계적 장치를 갖추고 완전한
악기가 된 바 있다. 원래는 흑단과 같은 딱딱한 나무로 만들었지만 현재는
전체를 금속제로 만든 것이 가장 널리 보급되고 있다.
  플루트의 음색은 부드럽고 투명하고 아름다워 상냥하고 순수한 느낌을
나타내고, 또 경쾌하고 좋은 기분을 묘사하는 데 적합하다. 관현악 속에
독주로서 두드러지게 사용되고 있는 예는 비제가 작곡한 "아를르의 여인"
이라는 극음악의 제2모음곡에 하프의 반주를 수반한 플루트의 아름다운
독주가 있으며, 또 드뷔시의 전주곡 "목신의 오후"의 첫부분에 플루트가
독주를 하는 곳이 있다. 그밖에 독주 플루트와 관현악을 위해 만들어진
협주곡도 많이 있다.
  픽콜로라는 것은 이탈리아어로 '작다'는 의미로서 원래는 플라우토
픽콜로(작은 플루트) 라고 해야 하는 것을 줄여서 단지 픽콜로라고 하게 된
것이다. 그 이름대로 플루트의 약 절반 정도는 작은 관인데 그 음은
플루트보다 1옥타브높아서 옛날에는 이것을 옥타브 플루트라고 한 적도
있다. 그 음색은 맑고 빛나고 경쾌하며 때로는 원기 있는 어린이처럼
사랑스런 느낌을 갖고 있다.
  플루트나 픽콜로는 웬만한 연주를 하기가 비교적 쉽고, 또 나팔처럼
시끄럽지가 않아서 가정용 악기로서, 그리고 요즘에는 어린이나 여성들
간에도 취미로서 이것을 배우는 사람이 많아졌다.
  목관악기 중에서 '리드'가 없고 또 옆으로 해서 부는 피리는 플루트와
픽콜로뿐이며, 그 밖의 목관악기는 모두 세로피리이다.
@[  #3 오보와 잉글리쉬 혼 @]
  오보, 잉글리쉬 혼 및 버순과 더블버순의 4종류는 복황, 즉 2개의
'리드'를 가진 것이다. 이 '리드'는 잘 말린 갈대줄기를 얇게 깎아 이것을
2개 합쳐서 실로 단단히 묶어 밑 쪽을 1개의 관으로하여 이것을 악기의
마우드피스에 끼워 넣어서 사용한다. 아악에 사용하는 피리나 '차르메라'
등은 역시 어느 것이나 2개의 리드를 지닌 같은 원리의 것이다. 그리고 이
2개의 리드의 틈 사이로 입김을 불어넣어 울린다. 마치 어린이가 노는
풀피리와 같은 이치로 음이 나오기 때문에 그 음색은 마치 시골티가 나는
소박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오보가 높은 음을 맡는 데 반해서 잉글리쉬 혼은 바이올린에 대한
비올라처럼 중음부를 맡는 악기로서 구조는 오보와 거의 같다. 단지 모양이
조금 크고, 리드를 붙인 관이 약간 구부러져서 취주를 쉽게 하고 있다.
음역은 오보보다 5도 낮고 악보 위에서는 실제로 나오는 음보다 5도 높게
적는 것이 습관이 되고 있다.
  잉글리쉬 혼은 한국에서는 종종 프랑스어로 코랑글레라고 부른다. 오보에
비해서 그 음색은 은근하고 폭넓으며 낮은 쪽의 음역은 다소 거친 느낌을
수반하는 수도 있으며, 목가적이고 전원적인 느낌을 나타낼 대 흔히
사용된다. 롯시니의 오페라 "빌헬름 텔"의 서곡 속에서 목장의 조용한
풍경을 묘사한 부분에서 잉글리쉬 혼이 플루트와 함께 아름다운 독주를 들려
준다. 또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의 제2악장에는 잉글리쉬 혼이
독주하는 유명한 주제가 있다.
@[  #4 버순과 더블버순 @]
  복황목관악기 중에서 가장 모양이 큰 것이 버순이다. 이탈리아어 또는
독일어로 파곳이라 하면 다발로 묶은 장작을 말하는데, 이 악기가 장작을
2개 묶은 듯한 모양을 하고 있는 데서 생긴 이름이다. 독일어로는 파곳,
프랑스어로는 바송, 그리고 우리 나라에서는 여러 가지로 부르고 있다.
버순의 음색은 저음부에서는 둔중하고 은근하며 때로는 신비로운 느낌도
있고, 조금 익살을 부리는 듯한 느낌을 표현하는 수도 있다.
  더블버순은 독일어로는 콘트라파곳이라고 한다. 이것은 보통의 버순보다
다시 1옥타브 낮은 음이 나는 악기이지만, 악보는 실제보다도 1옥타브 높게
적는 것이 습관이 되고 있다.
  이 악기는 현악기 중에서 가장 낮은 음을 내는 더블베이스와 겹쳐서
쓰이는 경우가 많으므로 관현악의 경우에는 별로 두드러지지 않은데, 때로는
이 악기의 독주를 사용하여 특수한 효과를 내는 예도 있다. 프랑스의 근대
작곡가 라벨이 모음곡 (마더 구스) 속의 '미녀와 야수의 대화'에서 이
더블버순을 사용하여 야수의 말과 같은 효과를 내게 하고 있는 것은 매우
재미있는 예이다.
@[  #5 클라리넷과 베이스 클라리넷 @]
  클라리넷의 일족은 그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모두 단황, 즉 1개의
폭이 넓은 '리드'를 갖고 있다.
  이 종류의 단황 목관악기는 오보나 버순보다 훨씬 늦게 발달한 것으로서,
클라리넷이 실내악이나 관현악에 쓰이게 된 것은 18세기 후반 모짜르트
시대부터이다.
  클라리넷의 음색은 밝고 명랑하며 매우 확실한 음을 내는 것이 특색이다.
또 그 투명하고 화려한 음색은 풍부한 표정으로 강하고 날카로운 음을
내는가 하면 부드럽고 조용한 느낌도 낼수 있다. 표정이 자유로운 점에서는
목관악기 중에서 제일의 스타이다. 취주악 (브라스밴드) 에서는 클라리넷이
마치 관현악에서의 바이올린처럼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활약한다.
  클라리넷 일족은 '조옮김 악기' 라고 하며, 실제로 나오는 음의 조와 다른
조의 악보를 사용하는 습관이 있지만 이것은 조금 까다로운 이론이 되므로
여기서는 설명을 생략한다. 단지 관악기는 여러 가지 악기들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 위해 가장 효율이 좋은 관의 길이가 있으며, 그 효율을 충분히
살리기 위해 각기 관악기의 구조에 따라 다른 조의 악기를 사용한다. 그
때문에 악보의 조도 다른 것을 사용해야 할 필요가 생기는 것이다.
  보통 널리 사용되는 클라리넷은 'B플랫조' 또는 'A조'의 두 종류이다.
그밖에 'E플랫조' 클라리넷이 있는데 이것은 크기가 작고 매우 날카로운
음을 낸다. 이것은 취주악에는 반드시 들어가며 관현악에도 가끔 사용된다.
'E플랫'을 독일어로 '에스'라고 하기 때문에 이것을 '에스 클라리넷' 또는
'에스클라' 라고도 한다.
  'B플랫조'의 클라리넷보다 다시 1옥타브 낮은 음이 나오는 악기를 '베이스
클라리넷'이라고 한다. 1옥타브나 낮아지면 그 관도 매우 길어지기 때문에
다루기 편리하도록 앞의 그림처럼 양 끝이 크게 구부러져 있다.
  모짜르트는 당시의 새로운 악기였던 클라리넷의 명쾌한 효과를 좋아하여
이것을 실내악이나 관현악에 사용해서 악기 편성법에 새로운 길을 열었으며,
이 악기의 기교적인 효과를 살린 협주곡도 작곡한 바 있다.
  클라리넷은 목관악기 중에서도 가장 음을 내기 쉬워서 아마추어라도
조금만 연습하면 곧 불 수 있게 된다. 또 어린이라도 국민학교의 고학년이
되면 연습할 수가 있고 음정도 비교적 안정되어 바른 조를 잡기 쉬우므로
가정이나 학교의 음악으로서 참으로 적당한 악기이다.
  클라리넷뿐만 아니라 모든 취주악기 (관악기)는 호흡기가 허약한
사람에게는 적당치 않으므로 그러한 사람은 피아노나 오르간, 혹은 현악기를
택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  #6 색소폰 @]
  19세기 중엽에 벨기에의 아돌프 삭스(Adolph Joseph Sax 1814--1894)라는
사람이 클라리넷을 바탕으로 해서 발명한 것이 색소폰이다. 따라서 음이
나오는 원리는 클라리넷과 마찬가지인데 그 관에 원추형의 긴 금속관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극히 특색 있는 음색과 표정을 낸다. 이것도 또한
조옮김 악기로서 소프라노(B플랫조), 알토(E플랫조), 테너(B플랫조),
바리톤(E플랫조), 베이스(B플랫조)라는 식으로 매우 넓은 음역에 걸쳐 각종
악기가 있다.
19세기까지는 보통 관현악에 별로 쓰이지 않았지만 취주악에서는 각종
색소폰을 많이 사용하고, 또 현대의 재즈 같은 경음악, 혹은 새로운 시대의
양식을 지닌 관현악에는 흔히 사용되고 있다.
  그 음색은 폭넓고 밝고 더욱기 각종 악기에 따라서 각각 특징이 있으며,
더구나 표정이 매우 풍부하다. 너무 지나치게 표정의 변화가 있기 때문에
다른 관악기와 조화시키는 기술이 어렵다고 하여 19세기 까지의 관현악,
특히 독일계의 작곡가들은 거의 이것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프랑스의 비제는
알토 색소폰을 "아를르의 여인"과 "카르멘" 속에서 아름답게 효과적으로
사용하였다.
  색소폰은 처음부터 마우드피스(부는 곳)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금속으로
되어 있지만 클라리넷과 똑같은 원리에 의한 악기이기 때문에 목관악기로
다루어지고 있다.

@[  B. 금관악기 @]
  나팔은 옛날부터 모두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으므로 '금속 관악기' 또는
'금관악기'라고 한다. 다만 그 금속은 대개의 경우 모두 놋쇠이기 때문에
'놋쇠 관악기'라고도 한다. 금관악기는 모두 조옮김 악기이다.
  19세기는 유럽에서 금속공업이 가장 발달한 시대이며 정련법, 단련법,
공작법 등이 모두 18세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진보를 나타내고
있다. 또 각종 기계 장치의 발명이나 개선에도 매우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따라서 가장 근대적인 기계장치를 필요로 하는 금관악기가 이 동안에 옛날의
것과는 훨씬 좋은 성능을 갖게 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으며 그 때문에
작곡법에도 커다란 진전을 보여 준 것이다.
@[  #1 혼 @]
  나팔류 중에서 가장 오래 전부터 관현악에 참가한 악기이다. 호른이란
말은 독일어이고 영어로는 프렌치 혼, 프랑스어로는 코르, 이탈리아어로는
코르노라고 한다. 이 나팔은 옛날에 사냥을 할 때 신호로 사용했던 뿔피리의
모양에서 발달한 것으로서, 가느다란 관을 원형으로 돌린 아름다운 모양을
하고 있다.
  혼의 음색은 폭넓고 부드러우며 투명하고 우미하다. 음색이 부드럽기
때문에 금관악기이지만 목관악기와의 합주에도 잘 어울린다. 베토벤
시절에는 혼을 비롯하여 모든 금관악기에 현재와 같은 피스톤 또는 밸브가
없고 단 1개의 관을 빙글빙글 돌리기만 했기 때문에 연주할수 있는 음의
수에 제한이 있고, 따라서 작곡상으로도 많은 불편이 있었던 셈이다. 그러한
악기를 발트혼이라고 한다. 발트혼(숲의 혼)이라는 이름 그대로 이것은
옛날에 사냥의 신호로 사용했던 것과 동일한 형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자 음을 변화시키는 피스톤이나 밸브의 발명과 함께 모든
금관악기는 그 연주 기술에 커다란 혁명을 가져왔다.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에서는 그 서곡의 첫머리에서 아름다운 혼의
4중주를 들을 수 있다. 또 멘델스존은 세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위해 서곡과 무대음악을 작곡했는데 혼의 독주를 중심으로 한 유명한 녹턴을
넣었다. 베토벤은 혼과 피아노를 위한 F장조의 소나타를 만들었고 브람스는
바이올린, 혼, 피아노를 위한 3중주를 만든 바 있다.
  혼은 나팔류 중에서는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 악기이며, 세계적인 음악가
중에서도 혼을 정말 잘 부는 사람은 적다고 한다.
 
   (관악기명 대조표)
  이탈리아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플라우토  플루트  플뢰테  플뤼트
  오보에  오보  호보에  오브와
  코르노 잉글레제  잉글리쉬 혼  엥글리셰스 호른  코랑글레
  파곳  버순  파곳  바송
  콘트라 파곳  더블버순  콘트라 파곳  콩트라 바송
  클라리넷 바소  베이스 클라리넷  바스 클라리넷테  클라리넷트 바스
  색소포노  색소폰  색소폰  색소퐁
  코르노  프렌치 혼  호른  코르
  트롬바  트럼펫  트롬펫테  트롱페트
  코르넷타  코넷  코르넷  피스통
  트롬보네  트롬본  포자우네  트롱봉
  투바  튜바  투바  튀바
   (여러 가지 금관악기 그림 생략)
  트럼펫  코넷  혼  트럼본  알토  바리톤  튜바  수자폰

@[  #2 트럼펫과 코넷 @]
  트럼펫은 신호나팔처럼 생긴 악기로, 그 음색도 씩씩하고 활발하며
군대적인 느낌을 갖고 있다. 이 악기도 옛날과는 피스톤이 없었으므로 여러
가지 조의 악기가 몇 가지나 있으며, 18세기 경에는 매우 높은 조의 악기도
사용되었지만 지금은 주로 B플랫조의 것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베토벤의 "레오노레 서곡 제3번" 속에 트럼펫의 아름다운 독주가 있는
것은 극 중에 어떤 고관이 등장하는 기분을 나타내고, 또 롯시니의 오페라
(빌헬름 텔)의 서곡에서는 그 끝 곡의 첫머리에서 군대가 행진하는 듯한
용감한 느낌을 트럼펫의 빛나는 취주로 그려내고 있다.
  하이든은 트럼펫과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오히려
진기한 한 예이고, 이 악기가 독주악기로서 활약하기 시작한 것은 근대의
일이다.
  코넷은 그 모양이 트럼펫과 아주 비슷하지만 좀 더 짧고, 그 음색이
부드럽고 부푼 듯한 맛이 있다. 주로 취주악에 사용되는 악기이고
관현악이나 실내악에 쓰이는 일은 극히 드물다.
  코넷은 나팔류 중에서는 비교적 쉬운 악기이므로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상당히 잘 부는 사람이 있다. 금관악기를 연습하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건강한 호흡기와 충분한 폐활량이 필요하지만, 또 바른 치열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도 중요한 조건이 된다.
@[  #3 트롬본 @]
  트롬본은 나팔류 중에서 가장 힘찬 느낌이 드는 악기이며, 장중한 위력과
거칠고 강한 힘을 나타낼 때에 사용된다. 보통의 것은 관을 신축시켜 음의
높이를 바꿀 수 있도록 만들어진 가늘고 긴 나팔인데 이것을 슬라이드
트롬본이라고 한다. 피스톤에 의해 음을 바꾸는 트롬본도 있는데 현재는
별로 쓰이지 않고 있다.
  이 악기가 관현악에 참가하는 경우는 알토, 테너, 베이스 등 세 종류의
악기가 1개의 조로 편성되어 사용된다.
  트롬본은 옛날부터 오페라의 관현악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었는데,
처음으로 교향곡에 등장한 것은 베토벤의 "제5번 교향곡" 이후이다. 그
장려한 피날레(끝곡)로 들어가는 부분에서 처음으로 트롬본이 참가한 위풍
당당한 승리의 가락이 당시의 청중을 매우 감격시켰다.
@[  #4 튜바, 그 밖의 금관악기 @]
  여러 가지 나팔 중에서 가장 낮은 음을 내는 것은 튜바이다. 취주악의
경우에는 크고 작은 여러 가지 튜바가 사용되는데 그 가장 큰 것은
더블베이스 튜바(독일어로는 콘트라바스 튜바) 라고 하며 관현악의
더블베이스에 해당한다. 관현악의 경우에는 단순히 더블베이스를 강화할
뿐만 아니라 트롬본 일족의 가장 낮은 음으로 활약하는 일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 악기는 독주악기로서 독주나 실내악에 들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
  뷰글(Bugle)이라는 말의 의미는 단순히 '나팔' 이라는 뜻이지만,
취주악에서 이 이름으로 불리는 악기는 코넷의 대형의 것이며, 그 음색은
부드럽고 가온음부의 음역을 갖고 있다.
  취주악에는 이밖에 알토 혼, 테너 혼, 바리톤(유포늄이라고도 한다),
베이스, 더블베이스 등 앞에서 말한 튜바와 비슷한 모양의 나팔이 많이
사용되는데, 이러한 것들은 모두 색스혼족의 나팔이라고 불리며, 벨기에의
색스가 취주악용의 악기로 만들어진 금관악기이다. 높은 음부터 낮은 음까지
약 일곱가지 종류의 나팔이 있다.

@[   (4) 타악기 @]
  물건을 두드려 음악이나 춤의 리듬을 강조한다는 것은 먼 옛날부터
행해졌기 때문에 타악기는 바이올린이나 나팔류에 비하면 그 착상은 훨씬
원시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먼 옛날에 여러 가지 타악기로 쳐서 울린
리듬은 어느 시대에나 음악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타악기의
구조나 이것을 다루는 기술은 시대와 함께 점점 발달하여 관현악과 그 밖의
합주에도 근대는 그 종류도 많아지고, 사용하는 방법도 향상되었고
화려해졌다. 타악기는 그 구조에 따라 다음의 네 종류로 크게 나누어진다.
@[  A. 선율타악기 @]
  어떤 '가락'을 낼 수 있는 타악기를 말한다. 보통의 큰북이나 종으로는
노래와 같은 '가락'을 연주할 수가 없다. 선율타악기란 두드려서 음을 내는
것이기는 하지만, 발음체가 음의 고저에 맞추어 순서있게 늘어서 있어
'가락'을 연주할 수가 있다.
@[  #1 실로폰 @]
  영어로 자일러폰(실로폰은 잘못), 독일어로는 크실로폰이라고 한다.
조율된 나무조각을 음계의 순서로 늘어놓고 이것을 채로 두드려 연주한다.
채는 가느다란 등나무로 만들어진 30센티 정도의 막대 끝에 목제,
에보나이트제 혹은 고무제 등의 동그란 구슬을 붙인 것으로, 이 물질에 의해
딱딱한 음, 브드러운 음의 구별이 가능하며 각각 연주의 효과도 다르므로,
전문가는 항상 몇가지 채를 준비하고 한 곡 안에서도 수시로 바꾸어
사용함으로서 여러 가지 효과를 낸다. 때로는 고무 구슬을 다시 펠트로 싸서
매우 부드러운 음을 낼 수도 있다. 발목은 보통의 경우 양손에 한 개씩 들고
사용하지만, 때로는 동시에 3개, 4개의 채를 교묘하게 구분해 사용할 수도
있다.
 현재 널리 쓰이고 있는 실로폰은 마림바 자일로폰이라고 하여 각
나무조각에 1개씩 금속제의 공명판이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음을
풍부하게 하고 음색을 아름답게 한다.
  실로폰은 피아노나 관현악 등의 반주를 곁들여 독주를 하는 것이
통례이지만 근대는 관현악 속의 타악기 군에 참가하여 극히 신선한 효과를
발휘하는 경우도 있다. 프랑스의 작곡가 생상스는 그의 교향시 "죽음의
무도"라는 곡 속에서 이 실로폰을 교묘히 사용하여 해골이 서로 부딪쳐
덜그럭덜그럭 하고 뼈를 울리는 듯한 느낌을 내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실로폰은 가정음악이나 학교음악에서도 흔히 사용되고 있는 악기이며, 그
밝고 경쾌한 음색은 누구나 즐길 수 있고 더구나 어린이도 쉽게 연습할 수
있다. 그러나 잘 만들지 못한 초라한 악기도 있어서 기후나 습도의 변화에
따라 종종 음의 높이에 이상을 일으키는 수도 있으며, 또 이상이 생긴
악기를 깨닫지 못하고 사용하고 있으면 어린이의 올바른 청각을 나쁘게 하는
수도 있으므로 주의 해야 한다.
@[  #2 바이브러폰 @]
  외관은 대형 실로폰과 아주 비슷하지만, 나무조각 대신 울림이 좋은
철편을 사용하며 공명통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하는 전동기의 장치에 의해
여운을 희미하게 진동시킴으로써 멜로디에 서정적인 효과를 준다. 이 작용을
이용하여 경음악 등에도 종종 사용되는 악기이다.
@[  #3 글로켄시필 @]
  철금의 일종이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바이브러폰보다 더욱 작은 철편을
배열한 것으로, 보통의 것에는 공명통이 없다. 매우 높은 음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하는 합주 속에서 연주하더라도 항상 두드러진 효과를
내고 있다. 이것은 금 속의 딱딱한 채로 두드려서 울린다.
  그 음색은 빛나며 밝고 경쾌한 느낌을 갖고 있다. 관현악에도 흔히
사용되므로 오케스트라 벨이라고도 한다. 또 독일어로는 이것을
글로켄시필이라고 한다.
  글로켄시필에는 또 건반을 장치한 것도 있다. 모짜르트의 오페라 "마적"
속에서 2대의 글로켄시필을 사용하여 극히 아름다운 효과를 낸 예도 있는데,
이것은 아마 건반이 달린 것을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독일에서는 옛날부터 이 악기를 군악대의 취주악에 사용하여
픽콜로(피리)와 겹쳐서 쓰는 습관이 있다. 그리고 군악대의 행진 중에
연주하므로 휴대하기 편리하고 또 장식을 겸했다는 의미에서 이 악기를
리라(하프의 일종)의 모양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이것을 리라라고 부르는
수도 있다.
@[  #4 튜블러 벨 @]
  직경이 5cm나 되는 긴 금속제의 관을 커다란 쇠테 속에 음계의 순서로
매어단 것으로, 이것을 목제의 망치로 두들겨 연주한다. 보통은 그 금속관의
맨 위 부분을 두드린다.
  관(튜브)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튜블러 벨이라 부르지만 또
카리용(프랑스어), 혹은 캄파냐(이탈리아어) 라고도 하며 어느 것이나
'종'이라는 뜻이다.
  이 악기는 마치 교회의 종 같은 음색을 갖고 있으므로 관현악에서도
그러한 효과를 나타낼 때 사용된다. 차이코프스키의 유명한 대서곡(1812년)
에서는 마지막 부분에서 러시아의 승리를 축하하는 교회의 종이 떠들썩하게
울리는 부분에 이 악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  B. 가죽타악기 @]
  동물의 가죽을 몸통에 씌워 이것을 채나 손으로 쳐서 울리는 큰북이나
장구는 세계 각국의 민족이 고대부터 갖고 있던 악기이다. 이것은
현대문명인들의 음악에도 그 구조는 얼마간 정교해졌다 하더라도 같은
원리의 악기가 많이 사용되고 있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  #1 팀파니 @]
  이 악기는 이미 천년 전부터 타악기로서 사용되고 있었으며 근대의
관현악에서도 각종타악기의 중심이 되고 있다. 외관이 깊은 남비나 가마솥
모양과 비슷하므로 영어로는 이것을 캐틀 드럼(가마솥형의 북)이라고도
한다.
  팀파니는 보통 2대를 한 쌍으로 해서 사용하고 동고 윗면에 씌운 가죽을
죄이기도 하고 느슨하게 하기도 해서 음의 높이를 바꿀수 있다. 마치 한국의
장구의 끈을 손으로 죄이기도 하고 느슨하게 하기도 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팀파니의 가죽을 조이는 장치는 옛날부터 여러 가지로 고안하여
개량, 진보되어 왔는데, 현재는 여러 가지 기계적인 장치에 의해서 될 수
있는 대로 신속하고 또 정확하게 조율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발로 페달을
밟아 연주하면서도 그 사이에 음의 높이를 변화시키는 정교한 장치도 많이
쓰이게 되었다.
 이 한 쌍(2대)의 팀파니는 그 중 1대는 악곡의 주요한 조에 맞추고 다른
1대는 그 곡의 딸림음(제5도)에 맞추어 연주하는 것이 보통이며 그 밖의
조에 맞추는 경우도 있다. 또 한 쌍뿐만 아니라 3대에서 5대 혹은 그 이상의
수를 사용하는 악곡도 드물지 않다.
  팀파니를 치는 채는 보통의 것은 펠트의 공을 부드러운 양의 가죽으로 싼
것을 많이 사용하지만 드물게는 딱딱한 목제 혹은 에보나이트제의 머리를
가진 채를 사용하는 수도 있다.
@[  #2 큰북, 작은북 @]
  큰북과 작은북은 취주악에서는 필수적으로 사용되며 관현악에도 언제나
참가하는 일반적인 악기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 설명을 생략한다.
  경음악이나 재즈 밴드에 팀파니를 사용하는 일은 좀처럼 없지만 큰북
작은북은 항상 그 리듬의 중심이 되어 화려하게 활약하고 있다.
@[  #3 콩가, 봉고, 기타 @]
  최근에 갑자기 유행하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 제국의 댄스 음악, 예를 들어
쿠바, 브라질 등의 룸바, 삼바, 맘보, 로캄보, 바이욘, 차차차 등, 춤의
음악에는 모두 콩가, 봉고 등의 원시적인 북이 사용 된다. 어느 것이나 채를
사용하지 않고 마치 한국의 장고 처럼 손으로 이것을 쳐서 울리는 점에 다른
서양 악기에서 볼 수 없는 특색이 있다.
  콩가는 직경이 약30센티, 깊이 70, 80센티의 길쭉한 목제의 몸통 윗면에만
가죽을 씌운 것으로서, 그 밑면은 뚫린 채로 되어 있다. 이것을 크고 작은
2개를 수직으로 세우고 윗면을 손바닥으로 두드린다.
  봉고는 소형으로 직경은 15센티에서 20센티 정도이고 깊이도 약
20센티인데, 이것도 대소 2개를 금속봉으로 일정한 간격으로 고정시켜 양
무릎 사이에 기우고 역시 손으로 두드린다. 라틴 아메리카 제국의 음악에는
반드시 필요한 리듬을 함께 연주한다.
  가죽타악기는 이러한 것들외에 각 국, 각 민족이 제각기 독특한 것을
가졌고 각기 민족음악에서는 빠뜨릴 수 없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 중
정규의 관현악에 잘 나오는 것은 탬버린(한쪽에만 가죽을 씌운, 방울이 달린
북), 탕부르 프로방스(tambour de Provence 남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길쭉한 작은북) 등이다. 탕부르 프로방스는 비제의 모음곡 "아를르의
여인"의 파랑돌 무곡에서 눈부시게 활약한다.

@[  C. 금속타악기 @]
  가죽타악기를 총칭해서 '북'이라고 한다면 금속타악기는 한 마디로
'종'류라고 할 수가 있다.
@[  #1 심벌 @]
  독일에서는 베켄(Becken)이라고 한다. 놋쇠제의 원반 모양으로 된 것
2개를 마주쳐서 울리는 것으로 큰북과 함께 사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또한 그 1개를 채로 쳐서 울리는 수도 있다.
  외관은 놋쇠제의 원반 모양인데 그 제법은 가느다란 놋쇠줄을 평면
모양으로 감아 판자처럼 두들겨 늘이고 접합해서 만드는 것이 진짜이다.
따라서 대형의 것은 매우 불규칙한 진동에 의해 시끄런음을 많이 내고, 긴
여운을 내어 특수하고 화려한 효과를 거두기 마련이다. 그러나 값싼
아마추어용 심벌은 놋쇠의 원반을 프레스해서 만드는 경우가 많으므로 그
음의 효과도 진짜가 아니다.
  심벌은 옛날부터 터키의 특산품으로 현재도 우수한 악기를 생산하고 있다.
@[  #2 트라이앵글 @]
  가느다란 쇠막대를 삼각형으로 구부려 이것을 끈에 매어달아 늘어뜨리고
작은 쇠막대로 쳐서 울린다. 모양은 작아도 그 음은 빛나고 또 날카로와
대관현악 속에서도 두드러지게 잘 들린다. 리스트의 "제1 피아노
협주곡"에서는 그 끝악장의 첫머리부터 이 트라이앵글이 화려하게 활약하여
이런 악기의 사용을 별로 경험한 적이 없었던 당시의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또한 트라이앵글은 그 삼각형의 정점에 가까운 곳, 양변이 접근한 곳에
채를 넣어서 빠르게 좌우로 움직여 연속된 방울소리와 같은 효과를 내게
하는 일도 종종 있다.
@[  #3 공 @]
  이른바 징을 말하며 나라에 따라서는 '탐탐'이라고도 한다. 큰 것은
직경이 1미터 이상이나 되며 이것을 튼튼한 테에 매어달아 펠트로 싼 커다란
채로 쳐서 울린다. 그 음색은 매우 깊고 어두워 때로는 처참한 느낌으로
들리기도 한다.
  근대의 관현악에는 종종 이것이 사용되는데,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교향곡)의 끝부분에서 단 1개, 이 공이 조용히 울려퍼지는 부분은 참으로
깊은 감명을 준다.

@[  D. 목제타악기 @]
  잘 말린 경질의 목재를 발음체로 하는 것으로서 앞에서 말한 선율
타악기의 항에서 든 '실로폰'은 여기서도 속하는 것이다. 목제 타악기는 그
발음체의 성질상 어느 것이나 밝고, 특히 여운이 짧은 건조한 느낌의
음색으로 특수한 효과를 낸다.
@[  #1 캐스터네츠 @]
  스페인의 무용수가 양손의 손바닥 속에 쥐고 딱딱 울리면서 춤추는데 흑단
등 딱딱한 나무로 만든 것이다. 이것을 관현악 속에서 사용할 때는 연주에
편리하도록, 또 음량을 늘리기 위해 목제의 자루가 달려 있다.
@[  #2 우드 블록(Wood Block) @]
 네모진 상자 모양, 혹은 원통형의 가운데가 빈 목제타악기로서, 큰북 옆에
붙여놓고 작은북의 채로 통통 두드린다.
@[  #3 목탁 @]
  절에서 두드리는 목탁도 또한 우드 블록의 일종이다. 대소 몇 개를 한
조로 해서 늘어놓고 재즈나 경음악에서 흔히 사용된다.
@[  #4 마라카스(Maracas) @]
 야자 열매의 중핵을 건조시켜 그 안에 콩류나 또는 작은 돌을 넣고 여기에
자루를 달아 양손에 한 개씩 들고 흔든다. 룸바나 그 밖의 중남미 음악에
종종 사용된다.
@[  #5 클라베스 @]
 한국의 딱따기와 비슷하지만 좀더 소형이며 티크와 같은 경질의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마라카스와 마찬가지로 룸바의 연주에는 반드시 사용된다.
@[  #6 귀로(Guiro) @]
 표주박이나 수세미 외의 알맹이를 꺼내고 바깥쪽을 잘 말려, 마치 술을
담는 호리병처럼 만든 표면에다가 두툴두툴 이랑이 지게 하고 이것을
가느다란 강철줄로 긁어서 음을 낸다. 역시 라틴 아메리카 제국의 음악에는
없어서는 안 되는 되는 악기인데, 이러한 여러 가지 타악기는 여러 나라의
민족음악을 찾아보면 더욱 많은 종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     7. 실내악 @]
  실내악이라는 말은 보통 적은 인원의 기악합주라는 뜻이다. 몇
사람까지의 합주를 '실내악'이라고 하느냐 하는 질문을 받은 일도 있지만
특별히 인원수의 제한은 없다. 단지 실내악이란 옛날부터의 습관으로
다음의 두 가지 조건을 갖고 있는 합주를 말하는 것이다.
  (1) 두 사람 이상의 합주일 것.
  (2) 각자가 연주하는 부분은 서로 대등한 의미를 갖고 독립되어 있을 것.
  한 사람이 연주하는 경우에는 보통 실내악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또 그 두 사람 이상 중 어느 쪽이 주인이고 어느 쪽이 종이라는 관계가
아니라 각 악기가 서로 대등하게 접촉하면서 연주하도록 만들어진 악곡을
실내악곡이라 한다.
  예컨대 피아노로 반주되는 바이올린의 독주는 2명의 연주이지만
실내악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바이올린이 주이며 피아노가 반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형을 연주하고 있더라도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2중주인 경우에는 이것을 실내악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 2개의 악기는
서로 대등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단 반주니까 중요하지 않다든가
쉽다든가 하는 것은 아니고, 반주라도 2중주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이며
음악적인 의미로 말하더라도 2중주와 마찬가지로 만들어진 작품도 적지
않지만, 습관상 반주 붙는 독주는 실내악이라고 하지 않는 것이 다. 또 각
악기는 서로 독립된 부분을 따로따로 연주하도록 되어 있어야 한다. 가령
몇 사람이 합주하는 경우, 그 중 두 사람이 아주 똑같은 악보를 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이것은 올바른 의미에서의 실내악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즉 이 두 사람은 서로 독립된 것을 연주하지 않고 같은 것을
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사람 이상의 합주이며 또 서로 독립된 대등한 입장을 가진
합주라면 이것을 실내악이라고 한다.
  따라서 그 원인은 몇 명이 있거나 상관이 없지만 만약 인원수가 너무
많아지면 각자가 담당하는 '독립성'이 엷어져서 실내악의 참된 재미를
줄이게 된다. 그래서 자연히 2명에서 3, 4명, 많아야 5명 정도까지가
실내악으로 가장 아름다운 효과를 낸다고 할 수 있을 것이 다.
  다만 이이상의 인원을 가진 실내악도 조금은 있으며, 그 중의 몇 가지는
명곡으로 오늘날에도 자주 연주된다. 예를 들면 브람스의 현악 6중주곡,
베토벤의 유명한 7중주곡, 슈베르트나 멘델스존의 8중주곡 등인데,
시포어의 9중주곡 같은 것은 이미 지금은 진기한 예가 되고 있다. 이 보다
인원수가 많아지면 이미 '작은 관현악' 의 영역에 물려 주게 된다.
  실내악을 듣는 재미는 각기 다른 주자의 뛰어난 연주 기술을 통해 그
조화의 아름다움과 합주의 능란함을 맛본다는 점에 있으며, 관현악처럼
강렬한 색채나 강렬한 느낌을 구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관현악에서는 얻을
수 없는 섬세한 맛과 내성적인 깊이를 지닌 아름다움과 음색의 맑은
아름다움은 비할 데가 없다.
  대저 실내악이 근세에 발달하게 된 것은 교회나 극장과 같은 넓은 곳에서
연주되는 음악에 대해서, 18세기 유럽의 귀족 사회에서 살롱의 음악으로
즐기는 습관이 성해진 뒤의 일이다. 따라서 고전의 실내악에는 어느 곡이나
다 고상하고 온화하며 친근미가 있으며 감정이 풍부하다는 특색이 있다.
  실내악은 특히 옛날에는 직접 연주를 하면서 즐기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 많았으므로, 가능하면 자기가 직접 연주해 보는 것이 가장 즐길 수
있는 감상법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자기가 맡은 부분이 전체와 조화되어
아름답게 울린다는 것을 경험하는 데는 실내악의 연주에 미치는 것은 없다.
한국은 서양 음악의 기술이 수입된 후 아직 별로 많은 세월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가정에서 실내악을 즐기는 습관이 매우 적고, 따라서 일반
음악애호가들도 실내악을 즐기는 습관이 매우 적고, 따라서 일반
음악애호가들도 실내악은 떫고 난해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최근에는
조금씩 가정에도 보급되기 시작하고 그 애호가도 차츰 많아져 가고 있는 것
같다.
@[  (1) 2중주 @]
  둘이서 연주하는 실내악을 2중주(듀오 또는 듀엣) 라고 한다. 2대의
바이올린이라도 좋고 바이올린과 첼로의 두 사람이라도 좋고 또 관악기의
2중주 등도 있지만 가장 재미가 있고 더구나 명곡이 많은 것은 바이올린과
피아노와의 2중주이다. 이것은 지금부터 약 300년 전에 이탈리아의
마리니(Biagio Marini 1587--1668) 라는 작곡가가 처음으로 바이올린 혹은
그 밖의 관악기 등과 하프시코드와의 2중주를 만들어 본 것이 그 시초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그러나 물론 이것은 극히 오래된 시대의 형태여서
오늘날의 2중주와는 그 형식에 있어서나 음악적 효과에 있어서나 훨씬
소규모의 것이었다. 그후, 역시 이탈리아의 코렐리, 비발디 등의
작곡가들도 이것을 발전시켜 많은 소나타를 쓴 바 있다.
  그러던 중 18세기가 되어 피아노가 실용적인 악기로서 점차 완성된
구조를 가졌으며, 피아노에는 그 전 시대의 하프코드에 비해 훨씬 커다란
표현 능력을 드러냈다. 더구나 하이든 이후의 음악이 근대 양식을 갖춤에
따라서 새로운 소나타의 형식과 합류하여 여기에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대등한 위치에서 2중주를 하게 되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에 의한 2중주의 소나타를 통상 '바이올린 소나타'
라고 부른다. 악곡의 주요한 멜로디를 바이올린으로, 혹은 피아노로 번갈아
가며 연주하고, 또 서로 상대를 북돋아 주면서 마치 이 두 악기가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곡을 진전시켜 간다.
이 바이올린 소나타의 가장 표준적인 형은 다음의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악장 소나타 형식의 빠른 곡
  제2악장 가요형식, 또는 변주곡 형식의 느린 곡
  제3악장 론도 형식, 또는 소나타 형식의 빠른 곡
  각 악장의 형식은 이밖에 예외도 있는데 한 악장을 더 추가시켜서
4악장도 있으며 또 2악장 의 소나타도 있다. '소나타 형식' 에 관해서는
뒤에 말하는 '기악곡의 종류'의 항을 참조하기 바란다.
  바이올린 소나타는 18세기의 후반에서 하이든, 모짜르트 및 베토벤 등 빈
고전파의 작곡가들에 의해 수많은 불후의 명곡을 낳았고 오늘날까지도 자주
연주되는 힘차고 화려한 곡들이 충실한 실내악의 양식으로 되었다.
  모짜르트는 바이올린 소나타를 약 42곡이나 작곡하였다. 이 무렵에
이르러 피아노와 바이올린은 참으로 섬세한 정서를 지닌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걸작으로 꼽히는 것은 C장조(K.296),
B플랫장조(K.378), E플랫장조(K.481), B플랫장조(K.454) 등이다.
  (주) 모짜르트의 작품번호에 한해서 K 몇번이라고 적힌 것이 사용된다.
이것은 모짜르트가 자기 작품에 번호를 붙이지 않았으므로 오스트리아의
모짜르트 연구의 권위자인 루드비히 쾨헬(1800--1877) 이 오랫동안 고심한
결과, 그 전작품을 작곡의 연대순으로 정리하여 여기에 번호를 붙여
1862년에 발표하였다. 그 이래로 모짜르트의 연구가에게 매우
편리해졌으므로 이 번호가 표준이 되었으며 그 이름의 머리글자를 따서 K
몇번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것을 쾨헬번호라고 한다. 그러나 그 후에 가서
발견된 미발표의 작품 등은 K의 추가번호로서 정리되고 있다.

  베토벤에 이르면 다시 기교적으로도 고도해지고 내용도 충실한 바이올린
소나타를 10곡이나 작곡하였다. 그 중에서도 '봄'이라고 불리는
F장조(작품24번), 러시아의 알렉산더 1세에게 바친 c단조(작품 30번의
제2곡)와 크로이쩌 소나타로 유명한 A장조(작품 47번) 등은 특히 유명하다.
  그밖에 슈만, 브람스, 그리크 등의 손으로 된 작품도 오늘날 자주
연주회의 프로그램을 장식한다.
  2중주는 이밖에 첼로 소나타, 플루트 소나타, 클라리넷 소나타 등도
있는데 그 형식은 어느 것이나 바이올린 소나타와 같다.
  2중주는 반드시 소나타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베토벤이
바이올린과 피아노와의 2중주를 위해서 쓴 론도나 변주곡이 있으며 또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유명한 3개의 변주곡도 역시 2중주이다.
@[  (2) 3중주 @]
  3중주를 가르켜 트리오라고 한다. 무엇이건 3개의 악기로 합주하면
트리오인데 옛날부터 가장 그 수도 많고 명곡이라 일컬어지는 작품이 많은
것은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의 3 중주, 이른바 피아노 트리오이다.
  그밖에 현악기만으로 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의 3중주도 있으며,
하이든이나 모짜르트 시절에 가정 음악용으로 작곡한 2대의 바이올린과
1대의 첼로로 된 3중주도 많이 있다.
  피아노 트리오는 각 악기의 연주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훌륭한 명곡이
잇달아 태어나게 되었다. 그것은 세 사람의 연주가가 서로 독주악기로서의
특성을 충분히 발휘하여 서로의 개성을 마음껏 즐기면서 그러면서도
전체적으로 조화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 이 피아노 3중주의 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연주하는 3사람의 연주자는 제각기 훌륭한
독주가로서의 기술과 관록도 있어야 한다. 이 점은 다른 실내악에도
적용되는 일이지만 종종 세계적인 명인에 의해 연주되는 피아노 3중주에서
특히 그런 느낌을 더욱 느끼게 한다.
  피아노 트리오는 위에 말했듯이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의 편성이
표준적이지만 이 가운데 어느 하나의 악기를 다른 관악기 같은 것으로 바꿔
놓는 경우도 있다.
 베토벤이 남긴 7곡과 그밖에 슈베르트, 멘델스존, 브람스, 슈만 등 그
걸작이라 일컬어지는 작품중에는 피아노 3중주곡이 있다.
@[  (3) 4중주 @]
  갖가지 실내악 중에서도 4중주, 특히 현악4중주는 가장 흥미깊은 형태의
음악이다. 4중주를 영어로는 쿼텟트(Quartet), 독일어로는
콰르텟트(Quartett) 라고 부른다.
  2대의 바이올린, 1대의 비올라, 1대의 첼로로 조직된 현악4중주는 가장
이상적인 편성으로서, 하이든 이후의 유명한 작곡가들은 누구나 이
형식으로 갖가지 명곡을 남긴바 있다.
  앞에서 말한 피아노 3중주곡은 그 3대의 악기가 제각기 독주자와 같은
입장에서 서로 그 개성을 충분히 발휘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커다란 조화를
요구하는 성질의 것이지만, 현악 4중주는 마치 관현악과 같은 원리에 의해
조직되고 있다. 이를테면 관현악 속에서 현악 부분을 고스란히 뽑아낸 듯한
작용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서로 각자의 '개성'은 일단 제쳐 두고 4명의
음색이나 표정이 깨끗이 통일되어, 마무리된 하나의 힘찬 표현력을
요구하게 된다. 따라서 이 4대의 악기는 마치 한 사람의 지휘자의 의도에
따라 움직이는 관현악처럼 완전히 하나의 것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옛날부터 유명한 현악4중주단 중에는 20년, 3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도 그
멤버를 별로 바꾸지 않고 계속하여 그 전통과 역사를 자 랑하고 있는 것도
있다.
  피아노 3중주의 경우에는 우선 유명한 연주가나 명인의 이름이 나란히
기재되어 있다는 점에 청중의 커다란 기대가 쏠리기 마련이지만, 현악
4중주의 경우에는 바로 관현악과 마찬가지로 그 단체로서의 기술이나
역사에 흥미가 쏠리는 법이다.
  따라서 그 곡도 피아노 3중주 쪽은 각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독주적이며,
그 형식도 협주곡처럼 3악장으로 된 것이 많지만 현악 4중주는 마치
교향곡처럼 4개의 악장으로 된 것이 대부분이 다.
  제1악장 빠른 소나타 형식
  제2악장 느린 가요 형식, 또는 변주곡 형식
  제3악장 미뉴에트, 또는 스케르조
  제4악장 빠른 론도 형식, 또는 소나타 형식
  이것이 통상의 형식이지만 이 느린 악장과 미뉴에트 악장은 하이든
시절부터 종종 교체되는 일이 있었다. 또 드물게는 3악장만으로 이루어진
곡도 있으며, 베토벤의 후기부터는 대곡일 때는 5악장으로 되어 있는 것과,
악장과 악장이 끊기지 않고 계속해서 연주되는 자유로운 형식의 것도
나왔다.
  이런 형식이 처음으로 갖춰진 것은 18세기 후반의 일이며 하이든의
공적이라고 한다. 하이든은 이러한 형식으로 약80곡이나 작곡하여 그
놀라운 다작 속에서 차츰 이 형식을 완전한 것으로 체계화시켰다. 그래서
오늘날 하이든을 가르켜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부를 뿐만 아니라 '현악
4중주의 아버지'라고도 부르는 일이 있음은 그 때문이다. 하이든의 작품,
또는 여기에 이어지는 모짜르트의 작품들은 모두 명랑하고 감미로운 당시의
궁정 양식으로 작곡되어 있어서 오늘날 에도 널리 애호되고 있는데
현악4중주곡은 베토벤에 이르러 비약적인 발전을 보 이고 있다.
  하이든이나 모짜르트 무렵에는 이러한 실내악은 주로 왕후 귀족의
살롱음악이며, 가정에서 연주하여 즐기는 성질의 것이었지만 베토벤
시대에는 이미 완전히 음악회를 위한 작품으로서 풍부한 내용과 힘찬 연주
효과를 고조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것을 연주하는 기술적인 면도 또한 베토벤 이후에는 매우
어려워졌다.
  4중주의 가장 주요한 형식은 여기에서 말하는 현악4중주인데 2대의
바이올린 중 1대를 플루트나 오보 등의 목관악기로 바꾼 것과 또 그것을
피아노로 바꾼 것에도 여러 가지 작품이 있다. 피아노가 들어간 4중주인
경우에는 이것을 '피아노 4중주'라고 부른다.
@[  (4) 5중주 @]
  5중주에는 현악5중주, 피아노5중주 및 관악기가 들어간 5중주 등이 있다.
  현악5중주는 통상의 현악4중주에 비올라를 또 1대 참가시킨 것이 가장
많고 모짜르트, 베토벤, 브람스 등은 누구나 이 형식에 의해 아름다운
작품을 쓴 바 있다. 이 제2비올라 대신에 제2첼로를 참가시킨 것, 즉 2대의
바이올린, 1대의 비올라, 2대의 첼로라는 편성에 의한 5중주도 있 지만,
이것은 슈베르트의 유명한 C장조를 제외하고는 별로 그 예를 볼수 없다.
  피아노5중주는 피아노와 현악4중주를 짜 맞춘 것으로 슈만, 브람스,
드보르작, 프랑크 등 로맨틱한 음악 속에 걸작으로 애호되는 명곡이 많이
보인다. 이것은 낭만음악의 시대, 즉 19세기 후반에 중후하고 정치하며
힘찬 실내악곡이 사랑받았던 것도 그 하나의 이유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슈베르트의 유명한 피아노5중주곡에 "숭어"라고 이름붙여진 곡이 있다.
이 실내악은 악기의 편성법이 조금 색달라서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로 된 5중주이다. 실내악에 더블베이스를 사용한다는 것은
별로 그 예가 없다. 이것은 더블베이스라는 악기는 독주악기로서 활약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고 좀더 큰 편성의 합주에서 그 낮은 음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슈베르트는 진기하게도 이실내
악곡에 더블베이스를 사용하여 뛰어난 효과를 올렸다. 당시 빈에 왔던
이탈리아의 드라고넷티라는 유명한 더블베이스 주자는 이곡의 악기의
사용법에 관해 대단히 이 것을 극찬했다는 이야기이다.
  또 클라리넷 1대를 현악4중주에 참가시킨 '클라리넷5중주'도
실내악으로서 좋은 효과를 지닌 것인데 모짜르트와 브람스가 각각 명곡을
남긴 바 있다.
@[  (5) 6중주, 그 밖의 중주 @]
  실내악도 6중주 이상이 되면 옛날부터 그 작품의 수도 훨씬 적어진다.
원래 실내악의 재미는 각 악기의 독주적인 아름다움을 통해 전체로 조화가
잡힌 좋은 합주를 감상하는 데 있으므로 악기의 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전체로서는 화려하고 힘차게 되지만, 개개의 악기가 지닌 독립성은 점점
약해져서 실내악으로서의 흥미는 엷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작곡가, 연주자, 청중에게 있어서는 2, 3명에서 4,5명 정도의
실내악이 가장 즐겁다는 것이된다. 그러나 6중주 이상의 인원수의 것도
드물 게 있다.
  6중주는 브람스가 명곡을 2개 남겼다. 어느 것이나 현악6중주로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각각 2대씩 사용하여, 중후한 효과를 지닌
합주이다.
  7중주로서는 베토벤이 30세 무렵에 만든 작품20번의 E플랫장조가 가장
유명하다. 이것은 클라리넷, 버순, 혼이라는 3대의 관악기에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등 4대의 현악기로 편성된 것으로 6개의 악장을
가진 대곡인데 그 감미로운 매력은 굉장하다. 이것은 그 당시 빈에서
대단한 평판을 얻은 곡으로, 많은 악기를 다룬 실내악의 가장 성공한
하나의 예이다.
  8중주로서는 슈베르트, 멘델스존 등의 작품에서 그 뛰어난 예를 볼 수
있지만, 그 효과는 이미 실내악이라기보다는 작은 관현악처럼 되어 있다.
 
@[    8.관현악 @]
@[  (1) 관현악의 발달과 편성법 @]
  현대의 기악합주 중에서 가장 큰 조직을 가진 것은 관현악이다.
  오케스트라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의 극장에서 무대 앞쪽에 있는 무용을
하거나 합창을 하기도 하는 장소의 명칭에서 생겼으며, 후에는 여기에
설치된 객석도 오케스트라석이라 불리게 되었다. 16세기 경 이탈리아에서
그리스 극이 부흥된 뒤, 이 무대와 객석과의 사이에 합창단이나 음악대가
가늘고 긴 위치를 차지하 게 되었으며, 마침내 그 음악대를 가리켜
오케스트라라고 부르게 된 것이었다. 오늘날에는 오케스트라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관현악을 말하지만, 그와 동시에 극장의 앞쪽 관람석의 명칭도
되고 있다. 16세기 말부터 17세기에 걸쳐 이탈리아에서 세계 최초의
오페라가 상연되었다. 이것은 당시의 그 밖의 음악, 즉 교회나 살롱에서
연주되는 음악과는 달리 떠들썩한 극장의 음악이며, 또 극의 내용을
음악으로 나타내려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보다 한층 화려한 음의 색채,
풍부한 울림, 힘찬 표현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처음으로 시도된 것이
오늘날의 관현악의 시초였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최초의 일이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악기의 편성등도 전혀 아무런 계획이 없고 그때 그때에
따라 가지각색이었다.
  처음에는 그 당시 가정 같은 곳에서 흔히 사용하고 있었던 류트,
테오르보 (Theorbo), 작은 하프와 같은 발현악기를 주로하여 여기에 2,
3대의 가로피리를 더한 정도의 것으로서, 지금의 오페라로 생각하면
실내악처럼 작은 것이었지만, 그래도 당시의 구경꾼은 매우 기뻐했었다. 그
후 오케스트라는 오페라의 발전과 함께 진보하여 온 것이다.
  관현악의 발전에 먼저 획기적인 공헌을 한 것은 1567년 이탈리아의
크레모나라는 곳에서 태어난 몬테베르디라는 오페라 작곡가이다.
크레모나라고 하면 후에 세계에서도 유수하게 뛰어난 현악기를 만들어낸
곳이다. 몬테베르디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 활로 문질러서 음을 내는
현악기를 많이 오케스트라에 사용했고, 다시 트롬본, 코넷, 트럼펫 등의
금관악기와 플루트를 비롯, 클라리온이라는 클라리넷의 전신이 되는
목관악기 등을 사용하여 지금까지 들은 적이 없었던 화려한 효과를 올렸다.
바이올린같이 활로 켜는 현악기에 트레몰로라는 주법을 사용하기 시작한
사람이 몬테베르디였다는 이야기인데, 이런 새로운 기술을 곳곳에서
사용하여 당시의 오케스트라가 지닌 표현능력을 크게 넓혔다. 트럼펫이나
코넷에 약음기를 사용하는 일조차도 당시 이미 고려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몬테베르디가 1624년에 "탄크레디와 클로린다의 싸움"이라는 오페라를
작곡해서 상연했을 때는 너무도 그 수법이 새로왔으므로,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은 크게 놀라 당황하 면서 처음에는 연주하기를 거절할 정도였으나,
막상 해 보니 지금까지는 그 누구도 예기하지 못했던 멋진 색채적 효과와
힘차고 극적인 박력에 청중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몬테베르디보다 약 백년 가까이 늦게 나타난 알렉산드로 스카롤랏티라는
사람도 또한 뛰어난 오페라 작곡가였으며, 따라서 오케스트라의 개선에도
힘을 다한 사람인데, 이 백년 동안에 바이올린계의 현악기는 그 제작법과
연주법, 또는 작곡상으로도 커다란 진전을 보이고 있었다. 스카를랏티는 이
각종 현악기군을, 합창인 경우의 목소리의 취급과 마찬가지로 4개의
그루프로 나누어 소프라노에 해당하는 곳에 제1바이올린을, 알토에
제2바이올린, 테너 부분에 비올라를, 그리고 베이스에 해당하는 1군을
첼로와 더블베이스에 맡겨서 인성의 4부 합창을 현악기군으로 연주해
보았다. 그러자 이것은 매우 충실하고 힘찬 효과를 올리는 데 성공했으므로
이 현악합주를 중심으로 하여 여기에 플루트, 버순 등의 관악기를 덧붙여서
색채를 아름답게 했는데 근대의 관현악법의 바탕은 바로 여기서부터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 합리적이며 또 효과적인 악기 편성은 같은 시대에 프랑스에서
활약하고 있던 륄리 (Jean-Baptiste Lully 1632--1687)에 의해서 더욱
개선되었다. 륄리는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태어난 사람인데 성장하여
프랑스에 귀화하고, 루이 14세의 궁정 직속 오케스트라의 총지휘자가
되었다. 그는 국왕의 두터운 신임을 얻어 훌륭한 오페라단을 가졌으며,
새로운 오페라를 많이 만들었다. 오페라 그 자체도, 또 합창 부분에서도
커다란 진보를 보여 주었는데, 그 개막에는 이른바 프랑스식 서곡이라는
장중하고 화려한 곡을 연주하는 것을 비롯하여 발레 장면 등도 많이
넣음으로써 오페라에 있어서의 오케스트라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졌고 그
때문에 한층 이것을 대규모로 조직하여 기술도 향상시켰음은 륄리의 커다란
공적이다.
  그 무렵 오페라와는 별도로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해서 바이올린의 연주
기술이 급속히 향상되있고 작곡상으로도 크게 발전하였다. 바이올린의 대가
코렐 리(Arcangelo Corelli 1653--1713)와 비발디가 잇달아 나타나 이
악기의 고도의 기술을 오케스트라에도 응용하여 협주곡(콘체르토)이나
모음곡을 많이 작곡했으므로 관현악의 효과는 더욱 아름다워지고 표현력도
풍부해졌다. 여기에 가장 장려한 울림을 준 것이 대작곡가인 바하와
헨델이다.
  바하는 교회음악과 실내악에 많은 업적을 남겼는데 오케스트라를
위해서도 4개의 모음곡과 6개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을 작곡했으며
관현악의 수법에 관한 많은 효과적인 시도를 하였다.
  헨델은 많은 오라토리오와 함께 대중적인 오페라를 수없이 만들었다.
이것은 대극장을 중심으로 한 작품이 많았으므로 그 오케스트라의
악기편성도 바하보다 더욱 화려했고, 외면적인 효과도 크게 발휘하여
청중을 감격시켰다. 그 오케스트라는 많은 트럼펫과 트롬본이 북소리와
함께 빛나게 울려퍼졌던 것이다.
  그 무렵 남독일 라인강의 상류에 있는 만하임의 궁정음악가들에 의해서
전혀 새로운 오케스트라의 수법이 발달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시타미쯔(Jogann Wenzel Anton Stamitz 1717--1757), 필츠(Johann Anton
Filtz 1733--1760), 칸나 비히(Christian Cannabich 1731--1798)와 같은
사람들은 수백년 전부터 바하, 헨델에까지 발달해온 음악, 즉 교회음악에서
발전한 장중하고 중후한 음악에서 둘변하여 좀더 밝고 경쾌한 음의
사용법을 생각해 냈다. 이것은 이미 이탈리아에서 번창하고 있었던 아르스
노바(ars nova 신예술파)의 영향에 따른 것인데, 그 음악의 명랑한
즐거움은 대단한 형세로 세상 사람들에게 환영받게 되어 갔다.
  만하임의 궁정에서는 당시 유럽에서도 뛰어난 오케스트라가 있었는데, 이
단체가 먼저 새로운 양식에 의한 악기의 편성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이
악단의 우수 한 연주 기술과 함께 그 무렵에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강약의
변화에 획기적인 음영을 지닌 효과가 나타나게 되었다. 헨델의 시대에는
개개의 연주가가 강약을 붙인다고 하는 기술이 별로 발달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합주 때에 작곡자가 강한 음을 요구하는 곳은 악기의 수를
늘리고, 약한음을 원할 때는 그 수를 줄인다는 간단한 방법밖에 없었던
것이다. 헨델이 어느 곳에서 오페라를 상연했을 때는 10개의 오보를
사용했다는 등의 기록이 있을 정도인데, 이런 일은 바그너의
오케스트라에서 조차도 볼 수 없었던 일이다. 당시는 악보에도 강약의
기호는 거의 없고 단지 '총주'라든가 '단주'라는 문자만으로 수를 증감하여
그 강약성(다이내믹)의 표정을 처리했던 것이다.
  그런데 만하임의 지휘자들은 현악기 주자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복잡한
표정을 요구했다. 종래의 '총주, 단주' 식으로는 약음에서 차츰 강해지는
크레센도(점점 세게)나 그 반대인 디미누엔도(점점 여리게)의 효과는 거의
기대할 수 없었지만, 만하임의 오케스트라는 그것을 손쉽게 해냈다. 또
전체가 약음으로 연주되고 있는 동안에 갑자기 강음으로 바뀌는 스포르짠토
등도 쉽게 할 수 있게 되 었다.
  당시의 청중도 이 새로운 효과에는 몹시 놀란 모양인 듯, 이런 것을
기록한 사람이 있다. "연주중 크레센도의 부분에서는 청중이 모두 일제히
숨을 죽이고 의자에서 허리를 들었다. 또 디미누엔도로 연주할 때는 가슴
속에 가득 들이마신 숨을 토해 냈고, 들었던 허리를 의자에 내렸다." 이
기록은 조금 과장해서 쓴 것이라 하더라도 얼마나 당시의 청중이 만하임의
오케스트라를 듣고 음악적인 새로운 경험에 눈이 휘둥그래졌는가 하는
사실의 일부를 알 수 있다.
  이 만하임 악파의 신선한 여러 가지 수법은 유럽 전체의 음악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 우아하고 섬세하며 또 힘차고 명쾌한 표현력이
작곡가들을 자극하여 더욱 많은 뛰어난 작품을 낳게 된다. 모짜르트가 소년
시대에 만하임을 찾아가 그 곳의 오케스트라를 들었을 때,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런 아름다운 연주를 들었다고 하면서 감격했다고 하는 아야기도
있다.
  오케스트라가 이처럼 섬세한 표현을 하거나, 또 인원수가 많아지면
악곡의 올바른 해석을 단원 각자가 명확하게 파악하여 통일된 연주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자면 지휘자의 역할이 한층 무거워진다. 그 당시까지의
오케스트라는 지휘자가 하프시코드(쳄발로) 를 치면서 전체의 연주를
정리하거나, 바이올린의 수석 주자가 자기도 연주하면서 지휘를 하는 일도
있었다. 그런데 새로운 관현악의 편성은 음의 충실함을 보더라도 완전한
것에 가까워지고 있었으므로 여기에 하프시코드의 음을 첨가할 필요는
없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래사 지휘자가 단원으로 부터 독립하여 지휘봉으로
음악을 진행한 것은 이 무렵부터이다.
  이 시대의 대작곡가 하이든은 교향곡만도 백곡 이상이나 썼을 정도의
다작가로서 '교항곡의 아버지' 라고 불리웠다는 것은 앞에서도 말한 바
있거니와 그는 평생을 통하여 오케스트라의 편성법의 발전과 정비에도
진력하여 오케스트라의 기본을 쌓아 올렸다. 지금의 어떤 대규모의
오케스트라도 하이든의 관혁악이 그대로 확대 증강된 것에 불과하다.
하이든이 그 제1교향곡을 쓴 것은 그가 27세 때의 일인데 그 편성은 다음과
같다.
  목관악기 오보(2)
  금관악기 흔(2)
  현악기 제1바이올린, 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각수명).

  그가 이보다 40년 후, 즉 원숙기에 이른바 '영국 교향곡집'에 사용한
편성은 이 최초의 것에 다시 다음의 악기를 첨가시켰다.
  목관악기 플루트(2), 클라리넷(2), 버순(2).
  금관악기 트럼펫(2)
  타악기 팀파니(1쌍)
  위의 편성이 이른바 2관 편성인데 이 형은 그대로 모짜르트, 베토벤으로
계승되었다.
  하이든의 '영국 교향곡집' 중 "군대 교향곡"이라 일컬어지고 있는
곡에서는 그 밖에 큰북, 심벌, 트라이앵글 등 3종의 타악기가 참가한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로서는 오히려 특별한 경우이며, 이 3종의 타악기는
베토벤이 "제9번 교향곡"에 사용할 때까지는 교향곡에 쓰인 예는 거의
없다.
  이 2관 편성은 당시부터 상당히 긴 기간에 걸쳐 표준형이 되고 19세기에
이르러 슈베르트나 멘델스존 등 낭만파의 작곡가에게까지 계승되지만,
그대로가 아니라 조금씩 확대되어 갔다.
  하이든과 거의 같은 시대에 나온 프랑스의 작곡가 고섹(Francois joseph
Gossec 1734--1829, 우리나라에서는 고섹의 가보트 작품으로 유명)도 또한
관현 악법의 연구에 힘을 쏟 은 사람으로, 그가 1970년에 작곡한 1기의
레퀴엠은 당시의 청중을 아연케하리만큼 새로운 수법을 갖고 있었다. 이
레퀴엠이 처음으로 어느 큰 교회에서 연주되었을 때, 교회에 모인 사람
들의 눈에 비친 것은 파이프 오르간을 등진 음악대의 자리에 현악을
중심으로 하는 보통의 오케스트라가 합 창단에 둘러싸여 있는
것뿐이었으나, 차례로 곡이 진행되다가 이윽고 제2악장 (진노의 날) 끝
부분에 가까워질 무렵 '마지막 나팔이 울려퍼지는 순간'이라는 매우 장엄한
부분에 이르자 갑자기 교회당 밖에서 대기하던 트럼펫, 혼, 트롬본등
금관악기가 일제히 놀라울 정도로 장려한 코랄을 하늘로부터 내려지는
선고인양 불어댄다.
  동시에 교회당 안의 오케 스트라에서는 많은 바이올린이 높은 음역의
트레몰로로 마치 천사의 합창처럼 숭고한 음향으로 이에 응한다. 이 빛나는
연주의 효과는 당시의 관현악법으로서는 유례가 없는 것으로, 확실히
사람들 을 놀라게 했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베토벤은 하이든의 만년의 관현악 편성을 대체로 그대로 이어받았지만,
그가 불후의 9개의 교향곡을 쓰는 동안에 그는 많은 독창적인 수법으로
여기에 새로 악기를 첨가해 왔다. 제5교 향곡에는 당시의 교향곡으로서는
최초의 시도로서 픽콜로, 더블버순, 트롬본 등을 첨가했으며, 또 제3교향곡
"영웅"에는 처음으로 3 개의 혼을 사용하고 "제9번"에 이르러 4개의 혼을
사용하고 있다. 더욱이 각 악기의 성능과 그 역할을 충분히 살려 그
집단과의 관계를 명백히 하고 합주 전체의 기능을 그가 구했던 커다란
예술적 표현에 잘 어울리도록 넓힌 것이었다. 즉 관현악법의 형식상의
혁신이라기보다는 하이든의 2관 편성이 근대 관현악법의 기본으로서 참으로
훌륭한 것이며, 장차 이것이 한없이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여러
가지 불후의 명곡을 통해 확고하게 뒷받침한 것이 베토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베토벤은 오케스트라의 역사상 커다란 업적을 남긴
것이다. 베토벤이 제9교향곡에 사용한 관현악 편성은 다음과 같다.
  목관악기: 플루트(2), 픽콜로(1), 오보(2), 클라리넷(2), 버순(2),
더블버순(1).
  금관악기: 혼(4), 트럼펫(2), 트롬본(3).
  타악기: 팀파니(1쌍), 큰북, 심벌, 트라이앵글.
  현악기: 제1, 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각군).
  여기에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독창자 각각 한 사람과 백명
이상의 합창이 딸린다. 이 악기 편성이 지금도 가장 많은 경우에 사용되는
표준적인 것으로서, 이 가운데 혼과 트롬본은 각각 4대, 3대이긴 하나
편의상 이것을 2관 편성이 근대 관현악법의 기본으로서 참으로 훌륭한
것이며, 장차 이것이 한없이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여러 가지
불후의 명곡을 통해 확고하게 뒷받침한 것이 베토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베토벤은 오케스트라의 역사상 커다란 업적을 남긴 것이다.
베토벤이 제9교향곡에 사용한 관현악 편성은 다음과 같다.
  목관악기: 플루트(2), 픽콜로(1), 오보(2), 클라리넷(2), 버순(2),
더블버순(1)
  금관악기: 혼(4), 트럼펫(2), 트롬본(3)
  타악기: 팀파니(1쌍), 큰북, 심벌, 트라이앵글
  현악기: 제1, 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각군)
  여기에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독창자 각각 한 사람과 백명
이상의 합창이 딸린다. 이 악기 편성이 지금도 가장 많은 경우에 사용되는
표준적인 것으로서, 이 가운데 혼과 트롬본은 각각 4대, 3대이긴 하나
편의상 이것을 2관 편성이라 부르고 있다. 또 흔히 이것을 베토벤형
편성이라고 하기도 한다.
  베토벤의 시대를 하나의 경계로 하여 관현악에서 활약하는 모든 악기는
저마다의 특색에 따라 각각 그 임무가 매우 무거워졌다. 예컨대 지금까지
단지 합주의 낮은 음을 맡고 있던 첼로와 더블베이스도, 그리고 버순이나
혼의 낮은음도, 베토벤의 작품에서는 제각기 명확하게 따로따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따라서 이들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은 하이든의 시대보다도
훨씬 어려운 기술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베토벤의 만년부터 유럽의 음악은 이른바 낭만파 시대가 된다. 낭만파의
작곡가들은 먼저 베토벤의 관현악법을 그대로 이어받아 이것을 발전시키고
더욱 새롭고 생생한 정서와, 힘차고 극적인 감정을 고조시켜 19세기의
화려한 오케스트 라의 황금시대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베토벤의
오케스트라를 직접 계승한 것은 슈베르트, 멘델스존, 슈만, 브람스이며,
이것을 오페라 혹은 악극 위에 크게 키워낸 것이 베버와 바그너였다.
  오페라에서는 무대의 진행에 따라 음악도 매우 커다란 표현력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 화려한 느낌, 환희에 찬 느낌, 처절한 감정, 슬픈 감정
등은 극의 발전과 함께 오케스트라가 관중을 긴장시키거나 흥분시키가도
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작곡가들은 모두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그
관현악을 사용하려고 한다. 그 때문에 옛날부터 오페라라 하면
오케스트라의 편성은 점점 대규모가 되기 마련이다. 예컨대 헨델이나
모짜르트 등의 무렵에도 협주곡이나 교향곡은 대개는 살롱에서 연주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악기 편성은 비교적 작아도 괜찮았지만, 그들이 오페라를
만들 때에는 악기의 종류나 그 수도 훨씬 많이 사용되었다. 베토벤 이
후에는 교향곡도 또한 대극장으로 진출했으므로 그 악기 편성도 오페라의
경우와 별로 다르지 않게 되었는데, 그래도 오페라를 많이 쓴 작곡가는
극적인 효과를 더욱 증대시키기 위해 대규모의 악기 편성을 사용했다.
  바그너는 지금까지의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에 바탕을 둔 오페라가
연극과 음악이 혼연일체가 되어야 할 종합 예술로서는 많은 결점을 갖고
있음을 불만으로 여기고 '오페라 개혁'이라는 높고 원대한 이상 아래 새로
'악극'을 창시하였다.
  바그너는 이 이상을 실현하려면 도저히 종래의 관현악법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 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모든 목관악기, 금관악기를 3대씩, 이른바 3관 편성으로 하였다.
그 위에 잉글리쉬 혼이나 베이스 클라리넷, 튜바, 더블베이스 등을
참가시켰다. 물론 관악기가 이만큼 많아지면 이보다 음량이 작은 현악기의
각 군도 2배 가까이 증원하지 않으면 균형이 잡히지 않는다.
바그너는 이 새로운 3관 편성으로 '악극'을 시작하기 전의 마지막 오페라인
"로엔그린"에 서시도 하여 1850년에 비로소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것으로도
바그너는 아직 만족할 수가 없어서, 후에는 필요에 따라 좀더 관악기의
수를 늘리고 자신이 고안한 바그너 튜바라고 하는 혼과 작은 튜바 중간
크기의 악기를 혼의 수만큼 참가시키기도 하였다.
  바그너보다 조금 일찍 세상에 나온, 헝가리의 대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이기도 했던 리스트와, "환상 교향곡"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베를리오즈는 둘 다 관현 악법의 대가로서, 그 풍부한 체험을 많은
교향곡이나 교향시의 명곡 속에서 실천하고 훌륭하게 이론화하였다. 이
대가들은 표제음악을 많이 만들었다. 표제음악은 오페라나 악극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관념이나 감정, 사상까지도 마치 문학처럼 음악으로
그리려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오케스트라에도 풍부한 색체와 음영 등이
힘찬 묘사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오케스트라의 편성은 점점 커지고 그 효과는 더욱 화려해
졌는데, 거기에는 또하나의 중요한 일이 있다. 작곡가가 아무리 음악의
음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려고 생각해도, 그 머리 속에서 생각한 주문대로의
음을 자유자재로 악기가 내어 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안 된다. 작곡가의
요구는 차츰 커져서 뛰어난 연주가를 모아들이고 뛰어난 연주가는 끊임없이
악기의 구조나 성능에 대해 그 개량을 요구하게 되었다.
  19세기 중엽부터 유럽에서는 금속공업이 매우 발달하게 되었는데, 따라서
관악기도 크게 개량되었다. 예를 들면 독일의 테오발트 뵘(Theobald Boehm
1794--1881)이라는 사람이 플루트의 구조를 연구하여 금속제의 키를 눌러
관에 붙어 있는 구멍의 뚜껑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하는 장치에 대해
커다란 개선을 했으며 플루트 이외의 목관악기에도 이 원리가 응용되어
오늘날의 이른바 뵘식 악기가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또 나팔류, 혼이나
트럼펫 등에도 여러 가지 개량이 가해진 결과, 그 때까지는 도저히 불 수
없었던 어려운 곡과 빠른 곡도 불 수 있게 되어, 관현악에 이 악기를
사용한 경우의 효과로 대단한 진보를 보게 되엇다.
  또 하나는 고전 시대의 오케스트라는 어느 것이나 왕후 귀족이나 부호의
개인 소유인 경우가 많았지만, 19세기 중엽이 되면서 봉건 제도가 차츰
무너지고 새로운 자본주의가 일어났다. 원래 대편성의 오케스트라를
경영하는 데는 거액의 경비가 들기 때문에 개인의 힘으로 지탱해
나가기에는 스스로 한게가 있다. 오페라단이나 오케스트라를 경영하는 자본
형태도 속속 변해가고 있었던 시대이다. 그래서 종래보다 좀더 큰 자본,
대중에 의해 유지되는 대자본이 투입되어 대규모의 오케스트라 편성이
가능해진 것이다.
  바그너의 3관 편성은 마침내 대작인 악극 "니벨룽겐의 반지"에 이르러
4관 편성이 되었다. 이것에 의하면 각 관악기마다 4성부의 화성군을 갖고
그 표현력은 더욱 충실해진 셈이다.
  그 후 구스타프 말러, 리햐르트 시트라우스, 알렉산드르 스크랴빈 등은
점점 대규모의 악기 편성을 시도하고 악기에 따라서는 6관, 8관에 달하는
것도 많이 나왔다. 그러면 말러가 제2교향곡 "부활"에 사용했던 악기의
편성을 살펴보기로 하자.
  목관악기: 픽콜로(4), 플루트(4), 오보(4), 잉글리쉬 혼(2),
클라리넷(3), 베이스 클라리넷(1), E플랫클라리넷(2), 버순(4),
더블버순(1).
  금관악기: 혼(6), 트럼펫(6), 트롬본(4), 튜바(1).
  타악기: 팀파니(6개), 큰북(1), 심벌(1쌍), 작은북(1), 트라이앵글(1),
탐탐(고저2), 글로겐시필(1), 큰종(3).
  건반악기: 파이프 오르간(1).
 무대에서 떨어진 객석 속에 혼(4), 트럼펫(4), 팀파니(1쌍), 그 밖의
타악기 몇대.
  현악기: 제1, 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현악기만으로 70명
이상),하프(2).
  성악: 알토 독창자(1), 합창단(수백명).
  이쯤되면 이미 음악의 아름다움도 그렇거니와 그보다는 이 대규모의
합주를 눈으로 본 장대 호화로운 위용, 대음향이 소용돌이 치는 속에
스며든 관능적인 상쾌함과 같은 사치한 효과를 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윽고 20세기가 되어 그토록 전성기를 맞이했던 낭만주의가
사양길로 접어들자 이러한 대규모의 관현악 편성도 점점 수그러들고,
근년에는 좀더 간결하게 정리되어서, 직절적인 방법으로 좀더 투명하면서도
보다 많은 인상의 깊은 효과를 내는 관현악법을 연구하게 되었다.
  관현악의 연주를 무대에서 보면, 각각 자기가 맡은 악기를 가진 70명에서
백명에 달하는 단원이 배치되어 있다. 그것도 단지 무질서하게 아무렇게나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수백년의 역사와 경험에 의해서 될 수 있는 대로
합리적으로 아름다운 연주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는데 그
방법에는 몇가지의 형이 있다. 다음에 그림과 사진으로 나타내어 보자.
그림A는 유럽에서 많은 악단이 사용하고 있는 형이다. 그림B는 근대 이후
미국에서 시작된 방법으로 지금은 유럽에서도 이렇게 배열하는 방법을
채용하고 있는 교향악단이 있다. 각기 일장일단이 있어서 어느 형이
최상이라고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주로 지휘자의 의견에 따라, 혹은 그
악단의 전통에 따라, 그 어느 하나의 형을 택하고 있다. 이 밖에도 아직
부분적으로 다소 색다르게 배열하는 방법도 있는데, 예를 들어 하프나
첼레스타는 A, B 모두 마주 보아 왼쪽, 혹은 오른쪽의, 전방의 가장자리에
두는 경우도 많이 있다.
  위에 말한 2관 편성, 혹은 3관 이상의 관현악 편성은 일반적으로
교향곡이나 서곡 등도 연주하는 표준적인 것으로서 이것을 '교향악단' 혹은
'교향관현악단'(심포니 오케스트라)이라고 부르는 수가 있다. 또 이보다
적은 인원의 편성이 되면 '실내관현악단'(살롱 오케스트라) 또는
'소관현악단'이라고 부른다.
  표준적인 관현악단의 제1바이올린군(마주 보아 왼쪽 전방) 속에서
지휘자와 가장 가까운 위치의 바깥쪽에 앉아 있는 것이 콘서트
마스터(독일어로는 콘체르트마이스터)이다. 콘서트 마스터는 그 악단의
바이올린 주자 중에서 기술이 가장 뛰어나고 또 다년간 관현악의
연주자로서 경험이 많은 사람이 그 임무를 담당하여 현악기군 전체를
통솔해 가는 것이다. 또한 연주하는 악곡 속에 바이올린을 혼자서만 켜는
곳이 있으면 콘서트 마스터가 이것을 켜도록 되어 있다.
@[  (2) 지휘자 @]
  소편성의 오케스트라를 제외하고 보통 표준적인 관현악단의 연주에는
거의 모든 경우에 지휘자가 있으며 이 지휘자가 그 연주를 통일한다.
  세계 일류의 모든 교향악단은 앞을 다투어 뛰어난 지휘자를 맞아들이고,
그들 노련한 명지휘자에 의해 더욱 더 교향악단의 진가를 발휘하도록
힘쓰고 있다.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의 중앙, 맨 앞의 단위에 서서 악단을 구석구석까지
바라다보고, 여기에서 악곡의 진행에 수반하여 자기의 뜻대로 악단을
움직여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관현악단을 하나의 피아노로
본다면 지휘자는 피아니스트와 같은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피아니스트라도
음이 안맞은 피아노, 음이 잘나오지 않는 낡은 피아노로는 도리가 없다. 또
아무리 좋은 피아노라도 이것을 치는 피아니스트의 솜씨가 나빠서는 역시
소용이 없다. 지휘를 한다는 것은 단원에게 지휘자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음악을 충분히 내게 한다고 하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자면 갖가지
악기의 연주 기술과, 그 성능이나 효과에 대해서도 깊은 이해를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보다 좀더 중요한 것은 연주하려 하는 악곡에 대한
이해이다. 악곡에 대해서 자기가 이해한 음악적인 의미를 커다란
관현악단에 의해 청중에게 잘 알 수 있도록 들려 준다. 그러자면 관현악을
자기의 생각대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안 된다.
그러자면 지휘자는 음악에 대한 많은 지식과 많은 경험을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앞에 예를 든 피아노와 피아니스트와의 관계와는 달리 제각기 한
사람의 구실을 하는 살아 있는 음악가를 몇십명 움직이는 셈이기 때문에
지휘자는 그 인간성과 예술적인 인격이 많은 단원간에 깊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
  지휘자는 17세기 초부터 나타났다고 일컬어지고 있지만, 그 역할의
필요성은 좀더 오래 전부터 인식되고 있었다. 파리의 국립도서관에
남아있는 옛 기록에는 13세기 독일의 미네젱거(Minnesanger, 음유시인의
일종)로 유명한 하인리히 폰 마이센이라는 사람이 그린 합창대와 반주자를
앞에 놓고 긴 막대를 들고 지휘하고 있는 그림이 있다.
  여러 사람이 하는 합창이나 합주의 박자를 맞추고 그 표정을
일치시키려면 아무래도 누군가 잘보이는 곳에 있는 한 사람의 행동을
목표로 해서 이것에 맞추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지휘자는 이 필요에서
생겨난 것이다. 따라서 지휘자는 대개의 경우 그 곡을 만든 사람이라든가,
혹은 단원 모두의 선생격인 사람이 이것을 맡아 온 것이라고 여겨진다.
  지휘자의 역할과 그 필요성이 명확히 인식된 것은 17세기의
이탈리아오페라가 번성해지게 된 뒤의 일이다. 작곡가가 하프시코드 앞에
앉아 이것을 치면서 관현악과 무대 위의 가수들에게 필요한 신호를 주어
이것을 진행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하프시코드를 치는 사이에는 손을
흔들기도 하고 몸을 움직여 신호를 하거나, 때로는 발로 바닥을 쿵쿵 눌러
박자를 짚기도 했을 것이다. 이 하프시코드를 치면서 지휘를 하는 방법은
널리 이탈리아에서 행해지고 그로부터 프랑스로 들어가 륄리, 라모 등의
작곡가들에 의해서도 보급되었으며, 륄리의 제자였던 퍼셀에 의해
영국에서도 행해졌다. 또 독일의 오페라작곡가 쉬쯔(Heinrich Schutz
1585--1672)도 이탈리아에 들어가 페리(Jacopo Peri 1561--1633)라는
사람이 쓴 오페라 "다프네"를 독일에 가지고 돌아가 드레스덴에서 상연했을
때 이 지휘법도 함께 수입했으므로 독일에서도 이것이 보급되게 되었다.
그래서 이 형태의 지휘법은 19세기 초엽까지 유럽 전지역에서 행해졌던
것이며 하프시코드 주자는 따로 있고 지휘자는 긴 막대를 들고 모두에게 잘
보이도록 박자를 짚는 수도 있다. 막대 대신에 악보 등을 가늘고 길게
말아서 드는 수도 있었다. 때로는 이렇게 말은 종이를 양손에 한 개씩 들고
지휘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륄리가 그 많은 오페라를 지휘할 때는 하프시코드 자리에
앉고, 또 궁정 직속의 악장으로서 무도회나 궁정음악회 때에는 지휘봉을
들고 관현악단 앞에서 화려한 지휘를 보여 주었다고 한다. 그 이래로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파리의 음악회에서는 눈부신 지휘봉이 유행하였고,
독일이나 영국에서는 역시 소박한 하프시코드의 지휘가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짓궂은 평론가였던 장 자크 루소는 "유럽에서 파리의
오페라만은 지휘자가 멋대로 막대를 휘두르고, 단원들은 이것에 맞추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 밖의 곳에서는 지휘자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서있지만
단원이 잘 맞춰서 연주하고 있다"고 험담을 했다는 것이다. 화려한 지휘의
원조라고 일컬어졌던 륄리는 어느 때 너무 지나치게 신바람이 나서 절도를
잃고 그 장기인 긴 지휘봉을 크고, 격렬하게 휘두른 순간, 그만 자기의
무릎을 세게 쳐서 상처를 입었는데, 그 상처가 곪은 것이 원인이 되어
1687년 3월에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쨌든 이 시대부터 잠시 동안 지휘봉을 흔드는 일과 하프시코드의
자리에서 지휘를 하는 일은 병행해서, 어느 쪽이든 간에 지휘자의 역활은
합주 전체의 박자나 속도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정확하게 맞춰서 음악을
진행시킨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관현악의 합주를 하는 기술이 시대와 함께 진보하여 단지 박자를 맞추고
강약을 맞추는 정도의 일이라면 지휘자 없이도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을 지나 관현악의 인원수도 30명, 40명 등 대편성이 되고
악보의 내용도 점점 복잡해져 갖가지 감정을 교묘하게 표현하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그 내용을 바르게 '해석'하여 이것을 많은 단원들의 연주 위에
정확하게 나타내는 일이 지휘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되었다.
  이것은 1820년 경부터 갑자기 성해지기 시작한, 이른바 낭만음악의
경향이며 인간의 가진 섬세한 정서나 정열 등을 크게 나타내려 하는 경향의
음악이 자주 만들어지게 되고 나서 점점 중요시되어 관현악의 편성은 더욱
더 증대하여 '표제음악'의 발달과 함께 그 악곡을 '해석'하는 명언도
잇달아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그렇게 되면 지휘자는 언제나 단원의 움직임을 보면서 지시를 해야 한다.
스스로 하프시코드나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뜻대로 지휘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차츰 모든 지휘자가 하프시코드에서 떠나 중앙의 지휘대 위에 서게
된 것이다. 음악사에서는 1829년 5월에 멘델스존이 런던에서 자작의
교향곡을 지휘했을 때, 피아노 옆에 앉아 이것을 이따금 치면서 지휘를
했다는 것이 이 구식 지휘법의 마지막 기록이 되고 있지만, 이 보다 이미
9년 전에 당시의 작곡가이며 명바이올리니스트이기도 했던 시포어라는
사람이 "요즈음에는 교향곡이나 서곡의 연주에 피아노나 하프시코드를
치면서 지휘를 하는 사람은 이제 볼 수 없게 되었다"고 쓴 바 있다.
  현대의 지휘자는 먼저 악곡을 바르게 해석해서 이것을 관현악이나 합창의
연주에 완전하게 나타내어 간다고 하는 음악성과 그 기술이 필요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자면 첫째로 복잡한 악보를 빠르고 정확히 읽고 그
형식상의 표현은 물론, 그 음악이 갖고 있는 의미를 똑똑히 파악하여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형식이나 의미뿐만 아니라 작곡자가 그것을 통해
나타내려 했던 깊은 정신, 사상까지 듣는 이에게 전해서 그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움직일 수 있어야 세계의 대지휘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악보도 지휘자가 사용하는 악보는 관현악의 각 악기의 분담을 모조리
나타낸 것으로, 상당히 복잡한 것이다. 이것을 한 눈으로 쭉 훑어 보면서
피아노로 계속 쳐 볼 정도의 힘이 없으면 좀처럼 지휘자가 될 수 없다. 이
지휘자용 악보를 '총보'라고 하며 영어로는 '소코어(Score)', 독일어로는
'파르티투르(Partitur)', 프랑스어로는 '파르티시옹(Partition)'이라고
한다.
  관현악용 총보는 맨 위쪽에 목관악기, 다음에 금관악기의 각 군을 적고,
그다음에 각종 타악기를 적는다. 여기까지는 그 각 악기의 수까지 알 수
있도록 숫자가 기입되어 있지만, 그 밑에 쓴 현악기의 각 군은 어느 것이나
복수로서 수의 지정은 없어도 보통은 제1, 제2바이올린(각16명),
비올라(14명), 첼로(12명 내지 10명), 더블베이스(10명 내지 8명) 정도라고
해석하면 좋을 것이다. 성악, 합창, 혹은 독주 악기 등이 들어가는
경우에는 현악기군과 타악기군 사이에 이것을 적어넣는 것이 통례이다.
  앞 페이지에 든 '총보'의 한 예는 바그너가 작곡한 오페라 "로엔그린"
제3막 전주곡의 첫머리이다.
@[  (3) 현악 합주 @]
  관현악 속에서 목관과 금관을 제외하고 현악기 군만으로 편성한 합주를
현악합주라고 한다. 영어로는 스트링 오케스트라, 또는 스트링 앙상블이다.
  편성은 제1바이올린, 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콘트라바스) 의 5군으로 이루어지고, 여기에 드물게는 하프,
피아노, 첼레스타와 그 밖의 타악기 등을 첨가시키는 수도 있다. 그러나
본래는 현악기만으로 조직되는 것을 현악합주라고 한다. 그 인원수는
특별히 일정한 규칙은 없고 각 부의 균형이 잘 잡혀 있으면 좋은데, 그
대부분은 전부 20명 내외인 경우가 보통이다.
  현악합주는 모두 같은 개통의 악기뿐이기 때문에 관현악에 비해
색채적으로는 다소 단조롭지만 음색이 맑아서, 우아한 취미를 지닌 음악에
적합하다. 구미에서는 매우 훌륭한 연주 기술을 지닌, 세계적으로 유명한
단체도 많이 있다.
  현악합주로 연주되는 곡목은 헨델, 바하 이전, 즉 18세기 이전의
협주곡이나 모음곡이 많고, 또 모짜르트 등이 현악합주를 위한 세레나데를
여러 곡 쓴 바 있다. 19세기가 되어서도 이 현악만의 음색이 아름다움을
추구하여 차이코프스키의 세레나데 등 외에 그리크, 드보르작, 시벨리우스
등도 명곡이라 할 수 있는 몇몇 작품을 남겼다.
@[  (4) 만돌린 합주 @]
  만돌린과 기타는 가정음악으로서 또 학생의 음악으로서 널리 보급되고
있는데, 이들 발현악기(활을 사용하지 않고 손가락이든가 발목으로 뚱기는
것)만으로 조직하는 합주도 참으로 즐거운 것이다. 이것은 만돌린과 기타
계통에 속하는 악기만으로 합주하는 것이며, 그 편성은 관현악처럼 일정치
않지만, 지금 극히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악기 편성은 다음과 같다.
  제1만돌린
  제2만돌린
  만돌라(만돌린보다 8도 낮은 악기)
  만도첼로(모양이 더 큰 것)
  기타
  키타르로네(더블베이스에 상당하는 저음부)
  여기에 피아노, 첼레스타 등의 건반악기, 또는 하프를 참가시키는 수도
있으며, 또 각종 타악기를 더 하거나 드물게는 플루크 등의 목관악기가
들어가는 수도 있다.

@[    9. 취주악 @]
  야외에서 연주하거나 대열을 싸고 행진하면서 연주하기 위해 옛날부터
취주악기(목관과 금관) 및 타악기로 이루어지는 합주가 널리 행해지고
있는데 이것을 취주악, 영어로는 윈드 밴드, 또는 밴드라고 한다. 이
취주악은 군대의 행진에 사용된 일이 많았기 때문에 보통의 경우라도
밀리터리 밴드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흔히 취주악을 브라스 밴드라고 하지만, 유럽에서는 브라스
밴드라고 함은 특히 브라스(놋쇠)제의 관악기, 즉 나팔류와 타악기만으로
편성된 것을 말한다. 군악대 중에서도 신속한 기동성을 필요로 하는
기마악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금관악대는 보통의 취주악에 비해 음의
느낌이 더욱 강대, 명확하지만, 목관악기가 없기 때문에 멜로디의 섬세한
표정이나 음색의 미묘한 조화가 결여되었다는 점도 있다.
  취주악은 관현악에 비하면 음색도 명랑하고 힘차며, 음량이 풍부하므로
야외 연주에 적합하다. 또 휴대할 수 있는 악기만을 갖추고 있어서
이동하기 쉬우므로, 행진하면서 연주하는 일은 이것이 아니면 할 수 없다.
또 기후에 대해 민감한 영향을 나타내는 현악기(바이올린족)를 포함하지
않으므로 추위와 더위, 건조와 습기의 변화는 물론이고, 때로는 풍설이나
폭풍 속에서도 연주할 수 있다고 하는 커다란 특색이 있다.
  취주악도 때로는 행진이나 이동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일정한 장소, 즉
연주회장이나 공원, 음악당 등에서 연주하는 경우도 있으며, 특히 옥내에서
연주할 때에는 음악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현악의 더블베이스나 팀피니,
혹은 하프 등을 사용하는 일도 드물게는 있다. 연주회장에서 연주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취주악대는 종종 콘서트 밴드라고 불리고 있다.
 취주악은 군대용의 음악으로서 이미 8백년 전부터 행해지고 있었지만,
오늘날과 같은 편성이 된 것은 불과 백년 남짓 한 것으로서 프러시아의
군악장 비츠레히트 이후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그러면 다음에 취주악의 악기 편성에 대해 말해보자. 관현악의 편성은
앞에도 적었듯이 기본적인 형이 상당히 오래된 시대에 정해지고, 이것을
합리적으로 확충 강화한 것이기 때문에 다소의 예외는 있더라도 대체로
일정한 형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취주악은 역사도 새롭고 또 각국의
군악대에 의해 발달했다고 하는 지방적인 특징도 많이 볼 수 있어서
현재에도 나라들에 따라서 그 편성법은 상당히 다르다. 다음에 드는 한
예는 극히 일반적인 것으로, 우리나라의 취주악은 대개는 이 형태를 취하고
있다.
  목관악기: 픽콜로, 플루트, 클라리넷, 소형 클라리넷(E플랫조), 베이스
클라리넷, 버순, 색소폰 각종.
  금관악기: 코넷, 뷰글, 혼, 트럼펫, 트럼본 각종, 유포늄(바리톤), 알토
혼, 테너 혼, 소형 베이스, 베이스 튜바, 헬리코 혹은 수자폰(이 2개는
모두 최저음부, 즉 더블베이스에 해당한 것으로서, 어깨에 비스듬히 걸치고
연주하므로 행진하는 데 편리하다).
  타악기: 큰북, 작은북, 심벌, 트라이앵글, 휴대용 글로켄(종) 등.
  이들악기, 특히 관악기는 각기 같은 종류의 것을 몇명이 연주하므로
전체의 인원은 30여명에서 4, 50명에 달한다. 이상이 대략의 표준이고,
학교 음악 등 소편성의 경우는 15, 6명으로 편성하는 것도 있으며, 또
각국군악대에서 규모가 큰 것은 7, 80명에 달하는 것도 적지 않다.
   위에 든 악기의 명칭에 대해서는 앞에서 설명하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그 대부분은 취주악 이외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 종류의 것이기 때문에
개개의 설명은 생략하였다.
  취주악은 각자 개인의 기술이 좋고 또 뛰어난 지휘자에 의해 잘
훈련되었을 때는 그 합주의 음색이 매우 빛나며, 중후하고 힘찬 하모니,
명확한 리듬 등에 의해 듣는 이의 마음을 복돋우는 듯한 용장화려한 효과를
갖고 있다.
  최근 우리 나라에서도 연주 기술이 크게 향상되어 직업적인 취주악단
외에도 각 회사의 직장악단, 혹은 학교의 취주악단 등도 그 수가 늘어나고
음악을 가장 건전하게 즐기는 방법으로 널리 보급하게 되었다.

 

@[    10. 기악곡의 종류 @]
  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은 성악에 비하면 그 종류도 훨씬 많다. 이것은
악기를 사용하면 가사의 속박도 받지 않고, 또 한계가 있는 '인성'이라는
육체적 능력을 넘어 무한히 자유로운 음의 세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악은 아마도 인류가 발생한 것과 동시에 존재했다고 여겨질만큼
오랜 기원을 가진 것이지만, 악기의 역사는 이에 비해 아직 짧고 더구나
기계를 사용해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시대와 함께 악기의 변천이나 진보
발달도 현지하여, 오늘날의 음악에 사용되는 것과 같은 악기가 완성된 것은
2백년도 채 못된 근대의 것이 많다. 따라서 오늘날의 기악곡은 세계의
음악이 이미 상당한 발달을 이룩하고 나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 현재의 기악곡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형식의 변천이나
작곡상의 수법에까지 미쳐야 하겠지만, 여기서는 단지 가장 주요한 몇
종류의 기악곡을 듣고 그 개략을 설명하는 데 그치려고 한다.
@[   (1) 절대음악과 표제음악 @]
  음악이 표현하는 '의미'에 대해서는 이 책의 처음에서도 말해 두었는데,
여기서 다시 좀더 깊이 생각해보자.
  먼저 음악은 무엇을 표현할 수 있을까. 가장 단순하고 확실한 것은 운동의
속도이다. 빠르다든가 느리다든가 하는 것은 음악 그 자체가 운동의 연속에
의해 확실하게 나타낼 수 있다. 그리고 눈이 핑핑 도는 것처럼 빠른
음악에서는 어수선한 느낌, 혹은 정력적인 느낌을 얻을 수 있다. 또 느린
음악에서는 차분하고 조용한 느낌, 평화로운 안도의 느낌, 또 때로는
권태감이나 절망감 같은 것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음에 음의 높이에 연속된 변화에 의해 만들어지는 멜로디는 우리들에게
아름다운 감정, 우울한 감정, 즐거운 감정, 익살스런 감정, 애수의 감정
등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라고 일반적이라고 믿고 있다. 물론 듣는 사람이 그
때의 심리적인 상태에 의해 동일한 멜로디(가락)를 듣더라도 각각 다른
감정을 일으킨다고 하는 일은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가락'을 들으면 어떤
기분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리고 음악은 강약이라는 역학적인 느낌도 확실하게 나타낼 수가 있다.
음은 운동의 에네르기에 의해 직접 생기는 현상이기 때문에 그 강약은 즉시
음파의 진폭의 대소가 되어 우리에게 강음, 약음으로서 인상지어진다. 단,
단독의 경우보다는 상대적으로 강약이 비교되고 대조된 경우에 인상은 한층
명확해지고, 그로부터 적극적인 느낌, 소극적인 느낌 등을 얻을 수 있다.
리듬도 또한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강약에 의해 생기는 것이다.
  다음에 음색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의 목소리든, 여러 가지 악기의
음악이든, 모두 제각기 음색이 다르다. 음악은 많은 종류의 음색을 구분해서
사용하고 조화시킴으로서 거기에서 생기는 갖가지 느낌, 색채, 그 변화의
묘를 맛볼 수 있다.
  음악이 직접적으로, 또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대략 이 정도이고,
눈에 보이는 '사물'이라든가, 복잡한 '감정'을 묘사하는 것은 듣는 사람의
경험과 연상의 작용에 의존하는 수 밖에 없다.
  가곡처럼 말을 가진 것은 그 말로 설명되지만, 가사를 갖지 않은
기악곡으로 '사물'을 묘사하는 일은 듣는 사람의 많은 체험이나 상상력의
도움을 빌지 않으면 안 된다. "전원교향곡"의 '폭풍우'의 악장은 우리에게
베토벤의 훌륭한 묘사력을 느끼게 한다. '폭풍우'의 역학적인 특징을 강하게
그리고, 더우기 이것을 충분히 예술화하고 있음은 잘 알 수 있지만, 만일
'폭풍우'를 경험한 적도 없고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는 사람에게는 무슨
일인지 알 수 없다. 이 음악에서 처음으로 '폭풍우'를 경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근대 독일의 대작곡가 리하르트 시트라우스의 "가정 교향곡"이라는 것을
들어보자. 이것은 자유로운 형식으로 쓴 교향곡이기 때문에 악장간에 명확한
끊음새는 없고, 40분 이상이나 걸리는 이 대곡이 계속해서 연주되는데, 잘
들어보면 대략 4개의 부분으로 만들어져 있다.
  우선 먼저 첼로가 차분한 선율을 연주한다. 이것은 작곡자가 '아버지'를
나타내는 가락이라 말하고 있다. 작곡자는 이 부친에게 세 가지 성격을 주고
있다. '느긋하고 차분한 아버지' '잘 생각하는 아버지' '적극적인 아버지',
이 세 가지 성격이 각각 다른 짧은 가락으로 표시된다. 과연 저마다의
'가락'은 빠르거나 강약, 곡조에서 받는 느낌으로 그러한 기분이 들지 않는
것도 있다.
  다음에는 '어머니'를 나타내는 가락이 나온다. 처음의 아버지는 첼로만의
낮은 음으로 나왔는데 어머니의 가락은 바이올린, 플루트, 오보와 같은
고음부의 부드럽고 상냥한 느낌의 음색을 지닌 악기를 통해서 나타낸다.
첼로의 낮은 쪽의 음은 보통 우리들이 경험하는 남자의 목소리를
연상시키고, 더구나 이 악기가 낮은 곳에서 짧게 음을 끊어서 켜는 것은
약간 거치른 느낌을 준다. 매우 순박하고 조금 서투른, 소탈한 남자의
느낌을 연상시킨다. 어머니 쪽은 '밝고 유쾌하지만 조금 변덕스러운 아내'의
성격과 '평범한 주부이며 상냥한 마음씨의 아내'라는 두 가지 성격을 갖고
있는데 이것이 역시 각기 짧은 가락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이번에는 오보 다모레라는 악기의 음으로 나타내는 '어린이'이다.
그 아이는 외아들이다. 이 가락은 단순하고 순진한 느낌을 갖고 있지만
이따금 개구장이다운 면모를 발휘해서, 곡 속에서도 이따금 큰 소동이
벌어진다.
  이 "가정 교향곡"은 이러한 가락들을 소재로 해서, 흔히 있는 부모와
자식, 세사람의 오붓하고 평범한 가정의 정경을 그리려 한 것이다. 부친과
모친의 대화, 어린이가 장난을 치거나, 쓰러져서 울기도 한다. 이
사랑스러운 어린이가 중심이 되어 양친의 아주 가정적인 생활이 묘사되고,
그 심리적인 움직임을 음악으로 묘사하여 평화로운 가정과 풍부한 인간성을
말해 주고 있다. 리하르트 시트라우스의 놀랍고 숙달된 작곡 기법과 그
날카로운 색채감 등에 의해 이 곡은 듣는 이에게 즐거운 인상을 준다. 이런
종류의 음악을 표제음악이라고 한다.
  그러면 이 "가정 교향곡"이 표현하는 '사물'이나 '성격'에 대해 좀더
생각해 보자. 여기에 그려진 부친과 모친, 어린이 등은 우리들이 일반
세상에서 흔히 보는 형의 사람들이며, 그런 것을 지금까지 많이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작곡자로부터 그런 암시를 받으면 곧 연상 작용으로 이 설정을
이해할 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표제음악에 대해서도 곧 납득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작곡자가 그 내용을 미리 말로 설명해 두지 않았을
경우에는 이것을 아무리 들어 보아도 우리는 이 속에서 '아버지'도
'어머니'도 '어린이'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 세 사람의 인물이
어떤 생활을 하는가 하는 것 등은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곡에서 받는 인상은 예컨대 그 가락의 아름다움, 몇 가지 주제의 교묘한
대비와 그 발전의 재미, 또 관현악의 필목할 만한 색채적인 아름다움 등에
감탄할 것이다.
  생각해 보면 전세계의 나라들에 '아버지'라든가 '어머니'라든가 하는 말은
각각 확실하게 있다. 그러나 누가 들어도 알 수 있을 것 같은 '아버지',
'어머니'에 상당한 '가락'은 없다. 이 곡에서는 작곡자가 이 '가락'은
아버지이다. 이 '가락'은 '어머니'라고 정하고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에,
과연 그렇구나 하고 알 수 있는 것이지, 만약 그 설명이 없으면 이 '가락'은
아버지도, 어머니도, 어린이도 아니다. 그러나 그 '가락'의 아름다움만은
작곡자의 설명이 있거나 없거나 변함은 없다. 설명하지 않더라도 '가락'의
아름다움은 듣는 이의 판단에 따라 알게 된다. 그 것은 그 '가락' 자체가 그
아름다움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작곡자가 '인간의 말'을 갖고 설명하는
음악이 이른바 '표제음악'이며, '음악 그 자체'가 그 아름다움을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한 경우에는 절대 음악의 입장에서 감상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절대음악과 표제음악은 전혀 별종의 음악은 아니고, 동일한 음악
속에 이 양쪽 면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교묘하게 그 설명과
내용이 결부된 표제음악이라도, 절대음악의 입장에서 아름답다고 납득할 수
없는 것은 결국 좋은 음악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또 처음부터 아무
'표제'를 달지 않은 음악도 많이 있는데, 이것을 들은 우리는 음악 그
자체가 설명하고 있는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음악의
본래의 모습이며, '인간의 말'에 의해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면 재미가 없는
그런 음악은 진짜 좋은 음악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표제음악'의 설명문을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 설명문에 의해 그 음악이 듣는 이를 더욱 강한 감동으로
이끄는 수도 있으며, 한층 깊이 음악을 즐기게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앞으로 예로 든 "가정교향곡"도 그렇지만, 듣는 이는 그
설명문(표제)에 의해 작곡가가 그리려 하는 내용을 잘 이해하고, 더우기
음악 본래의 모습, 즉 절대음악의 입장에서 들어도 아름다운 음악이기
때문이다. 복잡한 사회 생활에 있어서의 갖가지 체험과 문학적, 철학적인
사고방식을 가졌고, 많은 기억이나 연상의 작용을 갖고 있는 현대인은 이
표제에 의해 사고를 음악과 결부해서 발전시킨다. 그리고 사고가 아름다운
감정을 불러 일으켜 이것이 음악의 아름다움에 딱 조화되었을 때에
'표제음악'은 굉장한 박력으로써 듣는 이에게 깊은 감명을 주는 것이다.
19세기 초까지, 즉 베토벤의 무렵까지는 대부분의 음악이 절대음악의
입장에서 작곡되고 또 감상되어 왔다. 그 후에 낭만음악이 성해져 음악은
문학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문학적인 사고방식으로 발전하려 하는 경향이
일어나, 여기에 표제음악이 많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표제음악을 듣는 경우에는 미리 그 표제에 대해 잘 알고 이것을 감상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가령 표제에 대한 지식이 없더라도, 그 음악을 전혀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음악은 그 '표제'의 설명을 기다리지 않고
직접 우리의 마음에 호소하는 아름다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   (2) 소나타와 소나티네 @]
  16세기 말, 오르간 음악이 활발해 질 무렵에 칸쪼네(노래)라는 자유로운
형식의 소곡이 유행하였다. 그러나 이 말은 이윽고 성악곡의 명칭이 되고,
악기로 연주하면 '칸쪼네 다 소나레'(울리는 노래), 즉 '기악을 위한
소곡'이라고 하게 된다. 이 말이 간소화 되어 소나타라는 용어가 생겼다.
따라서 소나타는 17세기 초에는 단지 '기악곡'이라는 의미였고, 특별히
정해진 형식은 아니었다.
  17세기 중엽, 기악이 융성하던 시대에 소나타는 모음곡처럼 몇 곡을
한조로 한 악곡의 명칭이 되었는데, '모음곡'이 한 조의 무도곡집이었음에
반하여 소나타는 무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작곡자의 자유로운 구상과
기술에 의해 작곡되었다. 이 시대의 대작곡가 코렐리(1653--1713)는 '교회
소나타'와 '실내 소나타'의 두 종류를 창시하였다. 교회 소나타는,
  제1악장 매우 느린 곡.
  제2악장 빠른 곡(푸가 형식).
  제3악장 단순한 형의 느린 곡.
  제4악장 매우 빠른 곡.
  이에 대해 '실내소나타'는 대개는 가정적인 합주, 혹은 왕후 귀족의
거실이나 살롱의 음악을 목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이 형식에 더해
무도곡인 알르망드(Allemande 독일 풍의 춤), 가보트, 사라반드 등을 섞어서
연주하거나 듣기도 하며 즐기는 요소를 많이 가미한 것이다. 또 연주에
어려운 푸가 형식 등을 생략하고 경쾌한 느낌을 많게 하였다. 또 일정한
형식을 지키지 않고 악장의 수도 자유로 해 두었다. 위의 두 종류의
소나타를 바로크 양식의 소나타라고 하며 바하나 헨델 등의 소나타도 대개는
이에 따르고 있다.
  18세기가 되어 이탈리아의 비발디, 비옷티 등 바이올린 대가들에 의해
소나타는 더욱 밝고 가정적인 기분의 것이 되고, 그 속에 이탈리아에서
비롯된 이른바 '소나타 형식'이라는 형식을 갖춘 곡을 제1악장에 두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이 '소나타 형식'은 남독일 만하임 악파들의 손에 의해 다시
완성되고 오늘날과 같은 소나타의 제1악장을 이루게 된다. 이 근대 소나타는
보통은 3개의 악장을 갖고 있다.
  제1악장 소나타 형식의 빠른 곡.
  제2악장 가요 형식 또는 변주곡 형식의 느린 곡.
  제3악장 론도 형식 또는 소나타 형식의 빠른 곡.
  이 형식은 빈에서 하이든, 모짜르트, 베토벤 등이 이어받고 18세기 말에서
19세기로 계승되어 오늘날의 소나타의 기초가 되고 있다. 이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소나타'라는 명칭과 '소나타 형식'은 단어상으로는 매우 혼동하기
쉬운 것이지만 전혀 다른 뜻인데, 즉 근대 소나타는 '소나타 형식'이라는
형으로 작곡된 제1곡과 다른 두 곡을 가진, 3악장으로 이루어지는 곡을
말하는 것이다.
  소나타형식이란 두 개의 주제가 되는 '가락'의 미적인 취급법에 하나의
약속을 가진 것인데, 여기서는 그 설명을 생략한다.
  소나타는 원칙적으로는 위에 든 것과 같은 형식을 갖고 있지만, 작곡자에
따라서 많은 예외가 생겼다. 예를 들면 두 개의 악장만을 가진 것도 있으며,
혹은 사이에 미뉴에트 등의 무도곡을 넣어서 4악장을 구성하는 것도 있다.
혹은 모짜르트의 유명한 터키행진곡 소나타처럼.
  제1악장 주제와 변주곡.
  제2악장 미뉴에트.
  제3악장 론도(터키행진곡).
  즉, 이 3개의 악장 속에 '소나타형식'의 곡을 하나도 포함하지 않는 곡도
극히 드물지만 있다.
  '소나티네'란 '작은 소나타'라는 의미이며, 소나타를 그대로 단순화하고
또 소규모로 한 것인데, 피아노 등의 연습곡으로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   (3) 론도 @]
  론도라는 명칭은 이미 13세기 경 남프랑스의 농촌 등에서 행해진, 무도를
수반하는 합창의 명칭으로서, 2조의 팀이 번갈아 노래하고 또 춤추며, 혹은
독창과 합창이 번갈아 되풀이해서 부르는 것이었다. 그 후 이것은 기악곡의
명칭이 되고 무도곡의 하나로서 바로크 양식의 모음곡에 넣은 것도 있다.
오늘날 보통 론도라 말하고 있는 형식은 다음과 같은 형을 갖추고 있다.
  론도 주제 - 제1부주제 - 론도주제 - 제2부주제 - 론도주제 - 코다.
  단, 이 부주제의 수는 3개 또는 4개를 갖는 것도 있으며 단 하나 뿐인
경우도 있다. 또 이 론도 형식과 소나타형식을 절충한 론도 소나타
형식이라는 것도 있다.
  론도는 소나타의 끝악장이나 합주곡의 끝악장에 쓰이는 것 외에, 독립된
론도 형식의 악곡도 많이 있다.
@[   (4) 변주곡(바리에이션) @]
  변주곡이란 하나의 가락을 바탕으로 해서 이것을 여러 가지로 변형시키며
몇 번이고 되풀이하는 것을 말한다. 그 가락을 '주제'라고 하는데, 대개의
경우 이것은 단순한 짧은 가락이다. 즉 변주곡은 먼저 1개의 가락이 나온다.
듣는 사람이 그 주제를 잘 마음 속에 새겨 두면 이 가락은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나오는 것을 알게 되는데 되풀이할 때마다 처음의 형은 아니고,
곡조를 바꾸거나, 장식적인 음이 붙거나, 조를 바꾸기도 하면서 되풀이하는
것이다. 마치 한 인간이 그 때마다 옷을 갈아입고는 몇 번이고 나오는
것처럼 주제 그 자체는 하나이지만 그 되풀이의 변화가 풍부한 점에서
작곡가의 기교의 재미를 감상할 수가 있다.
  변주곡은 17세기 경부터 있었는데, 초기에는 오르간의 낮은 음이 동일한
가락을 되풀이하고 그 반복 때마다 높은음 부분에서는 여러 가지 장식적인
변주를 행해 가는 곡이 만들어졌다. 그 당시는 이것을 파사칼리아라든지
샤콘느라고 불렀는데 어느 것이나 스페인의 옛 춤의 명칭이다.
  18세기 초부터 변주곡의 형도 거의 일정해지고 그 수법도 더욱 정교한
것이 되었다. 변주곡은 독립된 피아노곡 등에도 많이 보이지만, 그 밖에
소나타, 실내악곡, 교향곡, 협주곡 등의 1개의 악장으로서 혹은 독립된
관현악곡으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많이 있다.
@[   (5) 교향곡(심포니) @]
  교향곡은 앞에 말한 소나타(3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를 그대로
관현악으로 연주하는 듯한 형으로 시작되었는데, 그러던 중에 4개의 악장이
보통이 되고 그 초기에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형식을 갖고 있었다.
  제 1악장 느린 서주 - 빠른 소나타형식.
  제 2악장 느린 가요 형식의 곡.
  제 3악장 미뉴에트.
  제 4악장 빠른 소나타 형식의 곡.
  18세기 빈의 대작곡가 요제프 하이든은 백곡 이상의 교향곡을 만들어
'교향곡의 아버지'라 일컬어지고 있는데, 그 놀라운 다작 속에서 현대까지
전해지는 교향곡의 기초를 쌓은 것이다.
  하이든 당시부터 이 교향곡의 형식에도 예외는 있어서 제3악장의
미뉴에트를 생략한 곡도 있다. 또 제1악장의 느린 서주도 생략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하이든에 이어서 나온 모짜르트도 41곡의 교향곡을 작곡했으며
더욱 내용이 충실한 작품을 남겼는데, 이 뒤를 따르는 베토벤은 다시 그
형식을 발전시켜 자유롭고 힘찬 걸작을 수없이 내놓고 있다. 그 최후의
걸작인 "제9 교향곡"은 제 2악장에 스케르쪼, 제 3악장에 아름다운 느린
곡을 두고, 그 끝곡인 제 4악장에는 4명의 독창자와 합창을 참가시켜 사상
최대의 규모를 가진 교향곡을 만들어 냈다.
  교향곡은 원래 절대음악으로서 발달해 온 것이지만, 베토벤의 제 6번
교향곡 "전원"은 표제음악의 시초라고 볼 수가 있다. 각 악장은,
  제1악장 시골에 도착했을 때 생긴 명랑한 감정.
  제2악장 시내의 풍경.
  제3악장 시골 사람들의 즐거운 모임.
  제4악장 폭풍-뇌우
  제5악장 목동의 노래-폭풍 뒤의 기쁨의 감사에 넘친 감정.
  교향곡에 이러한 표제를 설정하는 일은 그 후 낭만시대의 작곡가에 의해
차츰 많아지고, 19세기의 끝 무렵에는 교향곡의 형식도 그 표제가 나타내는
내용에 따라 점점 자유로운 것으로 되어 갔다. 각 악장의 형식은 물론이고
전체를 하나의 악장으로 만들고, 내용의 구성도 다음에 말하는 "교향시"에
가까운 것, 혹은 사실상 교향시라고 부르거나 교향곡이라 해도 구별이 안 될
만한 작품도 점차 많아졌다.
@[   (6) 교향시, 음시 @]
  음악으로서 풍경, 인물, 전설, 혹은 시적(시적)인 상념 등을 그리려 하는
표제음악을 음시라고 한다. 교향시에는 바람 소리, 물결 소리 등을
음악적으로 그린 직접 묘사도 사용되며, 또 일반의 상식으로 곧 그 의미를
연상할 수 있을 것 같은 민요라든가, 어떤 사람의 작품의 일부에서 그
사람을 생각게 하는 그런 간접 묘사의 수법도 사용된다.
  음시는 피아노곡과 그 밖의 독주곡에도 있지만, 교향시라는 것은 대규모의
관현악으로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오케스트라는 독주곡에 비해 표음악적인
묘사를 하기 때문에 그 표현 범위가 넓고, 색채나 명암의 느낌, 힘의 느낌
등을 웅변으로 말할 수 있으므로, 이로써 여러 가지 복잡한 내용을 그려내어
하는 것을 "교향시"라고 한다. 물론 곡에 따라 그 의미는 같더라도,
관현악으로 연주되는 것도 음시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교향시라는 말은 19세기 헝가리 태생의 대작곡가이며 명피아니스트로서도
그 이름이 알려진 프란쯔 리스트에 의해 비롯된 것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리스트는 그 숙달된 관현악법을 충분히 구사하여 13곡의 교향시를 만들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또 가장 많이 연주되는 교향시 "전주곡"은 그 세
번째의 곡으로, 프랑스의 시인 라마르티느 시의 일부를 따서 이를 표제로
하여 음악화한 것이다. 리스트는 이 13곡의 교향시 외에 "단테 교향곡"
"파우스트 교향곡" 등 2개의 교향곡을 쓴 바 있는데, 이것도 각각 몇 곡의
교향시를 교향곡의 각 악장으로 했다는 의미의 곡으로, 종래의 교향곡과는
전혀 취향이 다른 것이다.
  근대 독일의 작곡가 리햐르트 시트라우스도 또한 많은 교향시를 썼다.
"돈 환", "틸 오일렌시피겔의 유쾌한 장난", "죽음과 변용",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그 밖의 곡도 모두 오케스트라의 특히 큰
규모의 편성에 의해 어지러운 음의 효과와 함께 복잡한 시적 내용을
그리려고 힘쓰고 있다.
  음시, 교향시 등은 어느 것이나 표제음악이기 때문에 만약 가능하면 일단
그 표제를 읽고 나서 음악을 들어보는 편이 알기 쉬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표제에 구애되어 음악의 순수한 아름다운, 음악 그 자체의 의미를
상실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들어야 마땅한 것은 어디까지나 '음악'이지
'문학'은 아닌 것이다.
@[   (7) 협주곡(콘체르토) @]
  17, 18세기 즉 바로크 시대에는 협주곡의 대부분은 "합주 협주곡"이었다.
합주 협주곡(콘체르토 그롯소)은 몇 명의 독주자군(이것을 콘체르티노라고
한다)이 다른 많은 인원의 현악 합주(이것을 리피에노(Ripieno)라고 한다)와
함께 합주하는 것이다.
  그 독주자군의 수나 악기의 종류는 곡에 따라 변화는 있지만, 가장 많은
경우 이것은 3명이다. 악기는 2개의 바이올린, 1개의 첼로가 많고, 2개의
오보와 1개의 버순이 이를 대신하는 수도 있다. 이것은 현재의 협주곡처럼
한 사람만의 독주 악기가 스타가 되어 화려하게 활약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
아니라, 주로 합주 전체의 표정을 풍부하게 한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즉
당시는 아직 여러 가지 악기의 연주 기술이 별로 진보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각자의 연주에서 너무 강약의 범위를 넓게 요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곡 속에서 강한 음을 필요로 할 때는 전체가 합주하고, 약한 음을
원할 때는 3명만으로 연주한다고 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헨델의
오라토리오 등을 보아도 이 습관이 남아 있다. 예컨대 그 관현악의 총보에는
오늘날과 같은 강, 약을 나타내는 기호는 거의 없고, 강음에 해당하는
곳에는 '리피에노' 혹은 '투티'(총합주)라고 적어 넣었으며, 약한 표정을
표현하는 곳에는 '솔리'(복수의 독주)라고 적혀 있어 3명이 연주하도록
지정되어 있다.
  따라서 합주 협주곡은 오늘날의 (협주곡)과는 전혀 의미가 다른 것이었다.
독주 협주곡은 코렐리와 같은 시대의 토렐리라는 사람에 의해 비롯되었다고
일컬어지지만, 오늘날과 같은 화려한 독주 협주곡은 역시 만하임 학파
이후의 일이다. 18세기 초의 만하임 궁정의 우수한 기술을 가진 관현악단은
갖가지 새로운 연주의 기교에 의해 아름다운 효과를 발휘했으므로 이미
관현악은 지금까지의 합주 협주곡을 연주하는 수법이 필요없게 되었다.
합주의 인원수를 증감하지 않더라도 강약은 물론이고 섬세한 표정을 붙여
합주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이올린이나 첼로, 플루트, 오보 등의
명인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별로 중요시되지 않았던 독주
협주곡의 재미가 크게 활약하게 된 것이다.
  또 하나는, 종래의 답답하고 장중한 다선율음악의 양식에 반해서 새롭고
명쾌한 단선율음악의 양식을 가장 잘 표현했던 만하임악파는 이 양식의
특색을 협주곡에서 유효하게 발휘한 것이다. 즉 합주부에 대해, 뛰어난
연주기술을 지닌 독주부가 명확하게 빛날 정도로 두드러지게 잘 울리는
구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식도 소나타나 교향곡도 같은 것이 되었다.
  제 1악장 빠른 소나타형식
  제 2악장 느린 가요 형식
  제 3악장 경쾌한 론도 형식
  이 제 2, 혹은 제 3악장에는 변주곡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하이든은 이 형식에 의해 많은 독주 협주곡을 썼다. 그 뒤를 이은
모짜르트는 이 형식으로 더욱 풍부하고 정서에 넘친 명작을 남겼으며, 또
베토벤에 의해 이것은 형식 내용이 더욱 확충되어, 힘찬 작품으로 되었고,
고전 협주곡의 양식은 여기에서 완전히 완성된 것이다.
  협주곡(콘체르토)은 뭐니뭐니 해도 바이올린이나 피아노의 화려하고
빛나는 연주 기술이 중심이 되었으며 특히 19세기 낭만시대에 이르면
피아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등 많은 명인 대가가 나와 제각기 그 현란한
묘기를 겨루게 되었으므로, 이에 따라 협주곡의 양식도 점점 화려하게 또
고도의 기교를 나타내게 되었다. 따라서 그 외면적인 연주 효과가 이 같은
음악으로 매우 중요한 '음악의 의미'가 되고 있다.
  협주곡은 거의 '표제'를 갖지 않는 것이 통례이다. 그것은 위에 말한 바와
같은 이유로, 연주의 기술적인 발전으로 악곡을 형성해 가는 경우가 많고,
그 기술적 발전과 문학적인 관념의 발전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히 드물게는 표제적인 협주곡의 예도 있다. 예를 들면 19세기
전반의 초기 낭만 시대의 작곡가 베버가 쓴 f단조의 피아노 협주곡 등이다.
  이것은 재래의 협주곡 형식을 일단 무시하고 극히 자유로운 수법에 의해
문학적인 내용을 말한 것이다.  3개의 악장이 따로따로 늘어서 있는 종래의
형식을 그만두고, 전체가 1개의 악장과 같은 형을 취하고 내용의 발전에
따라 임의로 형식을 만들어 갔다. 고전파의 작품처럼 주제의 형식적인
반복이나 전개는 문학적 내용과 관계가 없으므로, 될 수 있는대로 이것을
'콘체르트시튀크'라고 하였다. 직역하면 '협주곡의 단편'이며 의미로 말하면
'소협주곡'이라고나 해야 하겠지만, 오늘날의 협주곡이라는 관념에서 본다면
이것은 별로 '작은' 것도 '단편'도 아니다.
  작곡가 베버는 여기에 다음과 같은 표제(설명문)를 덧붙이고 있다.
  "십자군의 출정 때 기사 그라이헨 백작을 싸움터로 보낸 부인은 여러해
동안 남편을 기다리며 그리워하고 있다. 부인은 어느 때 백작이 전쟁에서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는 꿈을 꾸고 슬픔에 젖은 나머지 정신을 잃지만,
이윽고 의식이 회복되어 꿈결에 멀리서 울려오는 군악소리를 듣게 된다.
십자군의 용사들은 당당히 개선하고, 부인은 그리운 남편 백작의 팔에
안긴다."
  이 곡은 상당한 걸작으로 오늘날에도 자주 연주되지만,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은 이유로 이러한 표제음악으로서의 협주곡은 달리 그 예를 별로 볼
수 없다.
@[   (8) 랩소디, 카프릿치노, 발라드 @]
  랩소디는 우리 나라에서는 "광시곡"이라고 번역하고 있으나 별로 적당한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음유시인 랍소도스라는
사람은 주로 역사상의 이야기에 의한 서사시를 노래했는데 그 후 이러한
시에 대해 그 가수의 이름을 따서 랩소디라 이름을 붙였다고 일컬어지고
있다. 19세기가 되고 나서 이 말은 기악곡의 명칭으로 쓰이게 되었다. 이
경우, 원래의 의미는 완전히 없어지고 말았다.
  예컨대 브람스의 피아노곡 "랩소디"는 반드시 특정한 내용을 나타낸
표제음악은 아니고, 단지 작곡가의 마음에 떠오른 자유로운 환상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그린 것이다. 또 리스트의 "헝가리 랩소디" 15곡과 "스페인풍의
랩소디"는 각각 그 고장 특유의 민요풍의 선율, 민족 무곡의 리듬 등을
소제로 하여 이것을 자유로운 형식에 의해 음악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극히 자유분방하게 발전해 가는 음악'이라는 의미에서 "광시곡"이라는
역어가 쓰이고 있는 셈이다.
  브람스는 또 알토 독창, 남성 합창 및 관현악을 위해 괴테의 "겨울의
하르츠 여행"에 의해 랩소디를 한 곡 작곡한 바 있다. 성악에 의한 랩소디는
오늘날에는 오히려 진기하여 이것을 "알토 랩소디"라고 부르고 있는데,
참으로 깊은 맛을 지닌 아름다운 명곡의 하나가 되고 있다.
  카프릿치오는 역어로서는 '기상곡'이라 하고 있는데, 이것은 더욱 까닭을
알 수 없는 말이다. 원어인 이탈리아어의 카프릿치오는 '변덕'이라든가
'마음이 변하긴 쉬운'이라든가 하는 의미가 있는 것 같으며 이것도 결국은
자유분방한 형식과 내용을 지닌 곡이라는 것이다. 주로 화려한 곡이 많아서
옛날에는 기상곡이라는 역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2개의 역어는
지금 다같이 거의 쓰이지 않게 되었다.
  카프릿치오라는 제목의 곡은 17, 18세기 경 프랑스, 이탈리아의
하프시코드 음악에 이 이름을 가진 소곡이 많이 있다. 또 유명한 곡으로는
바하가 그 둘째 형이 여행을 떠날 때 그를 보내면서 만든 "사랑하는 형의
여행에 즈음하여" 라는 제목의 6곡 일련의 카프릿치오가 있다. 이것은
한곡마다 설명문을 붙인 자유로운 형식의 모음곡과 같은 피아노곡이다.
  관현악곡으로서는 차이코프스키의 "이탈리아 카프릿치오",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스페인 카프릿치오" 등이 있으며, 어느 것이나 색채적으로
화려한 효과를 강조하고 있는 점이 특색이다.
  발라드는 "담시곡"이라고 번역한 적이 있었지만, 현재는 발라드라고 원어
그대로 부르는 것이 보통이다. 원래는 이야기를 지닌 시를 말하며,
성악곡으로서는 그러한 시에 작곡된 것도 많이 있는데, 기악곡으로서도
브람스나 쇼팽의 피아노곡과 그 밖에도 몇개가 있다. 피아노곡의 경우에는
표제음악으로서의 어떤 특정된 이야기에 의해 만들어지는 일은 별로 없고,
마치 뭔가 서사시라도 읽고 있는 듯한 감정을 나타내려고 한 것이 많은
듯하다.
  랩소디, 카프릿치오, 발라드, 판타지 등의 명칭은 이론상으로는 일단
구별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실제문제로서 많은 곡을 보면 그 사이에
명확한 형식상의 구별을 둘 수 없는 것이 많다. 즉 작곡자가 이름붙인
제목에 무조건 따르고 있는 셈이다.
@[   (9) 서곡, 전주곡 @]
  서곡의 최초의 형은 17세기 프랑스에서 생긴 "프랑스 서곡"인데, 이것은
처음에 느리고 장중한 서의 부분에 이어 빠르고 화려한 푸가가 이어지고,
마지막에 다시 느린 부분이 나와서 마치게 되는 형식의 것이다. 이것은 당시
프랑스의 오페라 작가 퀼리가 즐겨 사용했던 형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퀼리식 서곡"이라고도 불렀다.
  바하의 시대, 즉 17, 18세기에는 관현악용 모음곡의 제 1곡을 "서곡"
(오버추어)이라고 했는데, 여기에서는 모두 이 프랑스 서곡이 사용되고
있다. 바하가 쓴 4개의 관현악 모음곡은 그 제 1곡으로서 어느 것이나
훌륭한 서곡을 갖고 있기 때문에, 모음곡 전체에 대해서도
서곡(오버추어)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수가 있다. 이 장중한 형식도 후에는
마지막의 느린 부분을 생략하고 빠른 곡으로 화려하게 끝맺은 것이
많아졌다.
  프랑스 서곡과는 달리 18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오페라가 성해졌을 때
"이탈리아 서곡"이라는 것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앞에 말한 프랑스 서곡과는
정반대로 먼저 빠른 곡으로 시작되고, 한가운데에 느린 부분을 삽입하고
다시 빠른 곡이 되어 끝나는 형을 갖고 있다. 모짜르트의 "후궁으로부터의
유괴"라는 오페라의 서곡은 이 형식으로 작곡되어 있다. 역시 모짜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의 서곡도 처음에는 이런 형식으로 만들려고 했으나, 후에
한가운데의 느린 부분을 생략하고 오늘날과 같은 것으로 했다는 것이다.
  이 이탈리아식 서곡은 처음에 신포니아(교향곡이라는 말)로 불리고
있었지만, 후에는 이것도 오버추어(서곡)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바하나 헨델처럼 북독일 또는 영국의 작곡가로서 바로크 양식의 음악을 쓴
사람들은 장중한 프랑스 서곡의 형을 취하고, 남독일의 만하임 악파에 속한
작곡가는 주로 밝은 이탈리아풍의 서곡을 채용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서곡은 오페라나 연극의 개막에는 꼭 필요하게 되었는데
빈고전파의 사람들과 모짜르트나 베토벤의 서곡은 모두 빠른 소나타형식을
채용하고 그 앞에 느린 서주부를 붙이기 시작하였다. 모짜르트의 오페라 "돈
지오반니" 서곡, 베토벤의 "레오노레" 서곡 등은 그 예로서, 마치 당시의
교향곡의 제 1악장과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 느린 서주가 붙지
않은 곡도 많이 있다. 이 형식의 서곡은 19세기 낭만음악의 시대까지
계속되어 많은 명곡이 있다.
  '서곡'은 또 오페라, 연극, 혹은 발레 등의 개막 음악으로서뿐만 아니라
연주회용의 독립된 관현악곡으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베토벤이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쯔 2세의 생일날 음악회를 위해 만든 서곡
"명명 축일"이 있으며, 빈의 요제프시타트 극장의 개관을 축하하기 위해서
쓴 서곡 "헌당식"이라는 것도 있다.
  또 그 후의 시대에는 교향시라든가 음시라든가(앞항 참조) 하는 말을
사용한 표제음악이, 19세기 초엽에는 아직 그 말이 없었기 때문에, 편의상
이것을 '서곡'이라고 이름붙인 적도 있다. 예를 들면 멘델스존이 괴테의
2개의 시를 음악화한 서곡 "고요한 바다의 즐거운 항해"와 스코틀랜드
여행에서 보았던 황량한 풍경을 그린 서곡 "핑갈의 동굴" 등이 있다.
  롯시니 오페라 "빌헬름 텔" 서곡은 '새벽' '폭풍' '고요' '끝곡' 으로
명확히 나뉜 4개의 곡으로 이루어진 모음곡과 같은 형인데, 이것은 특히
색다른 형식의 한 예이다. 단, 모음곡과는 달리 이 4개의 곡은 사이를 끊지
않고 계속해서 연주된다.
  '서곡'과 '전주곡'은 오늘날에는 거의 똑같은 의미가 되고 있지만, 19세기
후반의 많은 오페라의 개막에 사용되었던 서곡은 극 중의 주요한 음악을
접속해서 만들었고, 또 전주곡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극 중의 음악에
상관없이 그 극 전체의 기분을 암시하거나, 혹은 그 음악 뒤에 막이 열린
최초의 장면으로 이어지는 듯한 기분을 가진 것이 많다. 따라서 "전주곡"은
일반적으로 서곡보다는 짧은 곡이 많다고 할 수 있다.
  바그너는 그 초기의 작품, 예컨대 오페라 "탄호이저",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리엔찌" 등에서는 각각 당당한 '서곡'을 만들었지만,
'오페라'라는 명칭을 사용한 마지막 작품 "로엔그린"에서 처음으로
전주곡(프렐류드, 독일어로는 포르시필)이라는 말을 사용했고, 그 이후는
'오페라'라고 쓰지 않고 그의 이상에 따라서 '악극'(뮈지크드라마)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서곡을 그만두고 모두 '전주곡'이라 하고 있다. 또 같은
시대의 이탈리아의 대작곡가 베르디도 또한 그 영향을 받아 오페라
"리골렛도", "라 트라비아타", "아이다" 등에 어느 것에나 짧은 전주곡을
쓰고 오페라 전체의 기분을 나타내려 하고 있다. 현대의 오페라, 혹은
악극의 대부분은 더욱 짧은 전주곡을 사용하든가, 전혀 음악 없이 곧 막을
여는 것도 많아졌다.
@[   (10) 모음곡, 피르티타 @]
  몇 개의 곡을 짜맞추어 일련의 모음곡으로 한 것인데 독주곡에도,
실내악곡에도, 관현악곡에도, 또 드물게는 성악곡에도 있다.
  모음곡은 17세기 경에 시작된 것인데, 그 시대에는 몇 곡의 무도곡을
짜맞추는 것을 통례로 하였다. 그 형식도 차츰 일정해져서 18세기 헨델이나
바하의 시대에는 대개 다음과 같은 순서로 배열하는 것을 표준으로 했다.
  1. 전주곡(관현악곡의 경우에는 서곡)
  2. 알르망드
  3. 쿠랑트
  4. 사라반드
  5. 미뉴에트
  6. 지그
  제 5곡은 미뉴에트 대신에 가보트, 부레 등을 사용하는 수도 있으며, 또
경우에 따라서는 무도곡뿐만 아니라 아리아라는 가요풍의 곡, 변주곡, 그
밖의 소곡을 삽입하는 일도 있었다. 이것이 이른바 바로크 양식의
모음곡인데, 당시의 작곡가들은 이 형식으로 쳄발로(하프시코드)와
바이올린, 플루트, 첼로 독주용의 모음곡, 또 실내악이나 관현악을 위해서도
모음곡을 많이 만들었다.
  '피르티타'라는 것도 모음곡과 같은 뜻이며, 주로 독주 악기용으로
만들어진 경우에 이 이름을 사용했다.
  하이든의 시대에 이르러 소나타나 교향곡과 같은 다악장 형식의 음악이
많이 쓰이게 되자 모음곡은 한 때 별로 만들지 않게 되었지만, 19세기 말,
음악의 대중화에 수반하여 다시 여러 가지 모음곡을 많이 만들게 되었다.
  근대의 모음곡은 그 종류도 많은데, 예를 들어 프랑스 작곡가 마스네의
"알자스의 풍경", "그림과 같은 풍경", 또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등은
가장 친숙해지고 있는 곡일 것이다. 물론 근대의 모음곡은 무도곡을 일정한
순서로 배열한 바로크 시대의 것과는 전혀 달라서 내용, 형식이 모두
자유롭게 되어 있다.
  또 오페라의 음악, 혹은 연극의 부수음악 중에서 인기있는 것들을 모아,
후에 연주회용 모음곡을 만든 것으로는 비제의 "카르멘 모음곡", "아를르의
여인" 모음곡 등이 있으며 그리크의 "페르 귄트 모음곡"도 똑같은 의미의
것이다. 이것들은 4곡 정도씩을 하나의 모음곡으로 하여 제 1모음곡, 제
2모음곡이라 나누는 수도 있다.
  발레 음악을 음악회용 모음곡으로 한 것도 많아서 차이코프스키의
"호도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그리고 들리브의
"코펠리아", "실비아" 등은 언제나 대중적인 음악회에서 프로그램을 장식
하고 있다.
  프랑스 인상파의 작곡가 드뷔시는 형식적인 소나타나 교향곡 대신에 각각
표제음악적인 기분을 나타낸 모음곡을 만들고 있다. 피아노곡 "베르가마스크
모음곡"과 관현악곡 "바다", "녹턴", "이벨리아" 등은 그 예이다.
@[   (11) 판타지(환상곡) @]
  판타지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그 하나는 예컨대 쇼팽, 슈만의 피아노곡 등에서 보는 것과 같은 작곡자의
마음에 떠오는 시적인 환상(환상)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묘사한 것이다. 어느
것이나 낭만적인 기분이 넘치고 꿈처럼 아름다운 작품이다.
  또 음악의 양식은 다르지만 바하의 오르간곡이나 하프시코드용의 판타지,
모짜르트의 피아노곡으로서의 판타지 등은 모두 작곡자의 자유로운 마음의
움직임을 그린 것에 변함은 없다.
  판타지의 또하나의 의미는 어떤 기성의 가락을 주제로 하여 이것을
자유로이 변주하거나 발전시키기도 해서 하나의 기분을 그린 것도 있다.
슈베르트가 자작의 가곡 "방랑자"의 가락의 일부를 따서 피아노 독주곡으로
만든 "방랑자 탄타지" 등은 그 예이다.
  이 의미를 더욱 밀고 나아가 민요의 가락을 바탕으로 한 것, 또는 다른
작곡가의 유명한 음악에서 가락을 따서 판타지로 만든 것도 있으며, 또한
통속적인 오페라의 발췌곡, 민요집 등, 특히 청중을 즐겁게 하는 그런
가락을 접속해서 만든 포부리(접속곡)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즉, 이것을
들은 사람의 머리 속에 그 오페라의 기분이나 어떤 지방의 풍경 등을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이것도 판타지라고 하는 것이다.
@[   (12) 세레나데, 녹턴  @]
  밤의 음악, 또는 해질녘의 음악이라는 의미에서 고전파의 시대 즉 하이든,
모짜르트 등이 쓴 세레나데는 각각 모음곡풍으로, 혹은 작은 교향곡처럼 몇
악장을 지닌 밤의 연회용 음악이다. 따라서 관현악이나 실내악곡이 많고,
때로는 정원 등에서 연주하기 위해 관악기(취주악기)만으로 합주하는 것도
작곡되어 있다. 이것은 어느 것이나 당시 요구를 받고 실용에 제공키 위해
만든 셈이어서 그 내용도 명랑 쾌활한 곡이 되고 있다.
  낭만파 시대, 즉 19세기 이후가 되면 그러한 연회를 여는 왕후 귀족의
시대는 아니게 되고, 세레나데는 주로 서정적인 가곡, 또는 기악의 소곡의
명칭으로 쓰이게 되었다.
  원래 세레나데는 연인의 집 창 밑에 서서 기타 등을 치면서 부르는 사랑
노래의 뜻이 있다. 이 의미의 세레나데와 대중적으로도 친해져서 고금에
애창되고 있는 노래가 무수히 있다.
  녹턴(야상곡)도 세레나데와 대체로 같은 의미의 것인데, 이 쪽은 영국의
작곡가 필드(John field)가 이 이름을 피아노곡에 사용한 이래 주로
피아노 독주용의 낭만적인 소곡의 제목으로 많이 쓰인다. 피아노의 시인이라
일컬어졌던 쇼팽이 많은 녹턴을 쓴 바 있음은 너무도 유명하다.
@[   (13) 무도곡(무곡) @]
  무도곡의 종류는 매우 많아서, 여기에 일일이 설명하지 않겠으나,
고전적인 모음곡 등을 감상하기 위해 그 이름을 열거해 두자. 이들 곡의
형식은 어느 것이나 두도막형식 또는 세도막 형식이다.
  #1 알르망드: '독일풍'이라는 의미로서, 16세기 경 프랑스에서 시작된 바
있다. 프랑스인의 입장에서 본 독일풍의 춤이라는 것이리라. 2 박자이며
힘차고 경쾌한 무곡이다.
  #2 쿠랑크: 보통은 3박자, 때로는 2박자의 것도 있다. 16세기에
프랑스에서 시작된 곡으로 빠르고 경쾌한 춤이다.
  #3 사라반드: 스페인에서 16세기 경부터 행해졌던 무곡으로 3박자의
느리고 장중한 춤. '리 폴리아', '샤콘느', '파사칼리아' 등은 모두 사라
반드와 같은 계통의 것이다.
  #4 미뉴에트: 16세기의 프랑스에서 시작된 것. 3박자의 경쾌한 곡으로,
처음에는 농민들 사이에서 생겨났다고 하나 얼마후 궁정의 무도곡이 되어
우아한 취향을 더하고, 고전무곡 중에서는 가장 넓고 또 오랜 시대에 걸쳐
행해졌다. 하이든 시대에 이 미뉴에트가 교향곡의 제 3악장에 쓰이게
되었다.
  #5 가보트: 16세기의 프랑스에서 시작된 2박자 리듬의 아름답고 경쾌한
춤곡이다.
  #6 파반느: 2박자의 느리고 장중한 춤. 공작이 느긋하게 날개를 펼치고
걷는 듯한 기분을 지닌 무곡의 의미로, 이것도 역시 16세기 경스페인의
궁정에서 행해졌다. 근대 프랑스의 작곡가 라벨은 이 무곡의 형을 빌어(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명곡을 만든 바 있다.
  #7 부레: 16, 17세기 경 프랑스에서 시작된 2박자의 경쾌한 춤. 가보트와
비슷하고, 좀더 빠르게 연주된다.
  #8 지그: 16세기 경 영국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1대의 바이올린을
반주로 하여 선원이나 민중이 추었다고 하는 빠른 템포의 춤인데, 후에는
모음곡의 끝곡으로 쓰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바이올린을 독일어로
가이게라고도 하는데, 지그라는 이름의 기원은 거기서 온 것이라고 한다. 또
일설에 의하면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에 옛날부터 있었던 춤이라고도 하며,
고전무곡 중에서는 가장 그 기원이 불분명한 무곡이다. 박자는 2박자를
기본으로 하고 8분의 6, 8분의 12, 4분의 6 등 악보상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결국 셋잇단음표로 구성된 2박자로서 빠르고 경쾌하게 연주된다.
  #9 시칠리아나: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섬에서 농민간에 생겼다고 일컬어지는
무곡, 8분의 6박자의 우아하고 또 아름다운 가락을 지닌 무곡이다. 바로크
양식의 협주곡이나 모음곡에 그리스도 탄생과 관련된 내용을 지닌 경우에
종종 파스토랄(전원곡)이라는 한 악장이 삽입되는데, 그 경우의 파스토랄은
거의 모두 이 시찰리아나의 형식을 갖고 있다.
  이상으로 각종 고전무곡을 간단히 설명했지만, 이 밖에 민족적 무곡과 또
근대에 시작된 춤도 많은 종류가 있으므로 다음에 그 개략을 말하기로 하자.
  (주) 위에 말한 각종 무곡에서 2박자라고 되어 있는 것은 어느것이나
2박자를 기본으로 했다는 뜻이고 2/2,2/4,6/8,12/8 등을 포함한다.
  #10 타란텔라: 이탈리아 나폴리 지방의 민족적인 춤으로 매우 빠른 템포인
8분의 6박자. 옛날에 나폴리에서 독거미에게 쏘였을 때 그 독을 없애기 위해
이 빠른 춤을 열광적으로 추었던 데서 이런 이름이 생겼다. 그 독거미는
타란토스라고 불렸다.
  #11 살타렐로: 이것도 이탈리아의 민족 무곡으로서 대표적인 것이다.
베를리오즈의 서곡 "로마의 사육체", 멘델스존의 "이탈리아 교향곡"의 끝곡,
또 차이코프스키의 "이탈리아 카프릿치오" 등은 어느 것이나 그 일부에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의미로 이 춤의 리듬이 사용되고 있다.
  #12 폴로네이즈: 16세기 경부터 폴란드의 궁정에서 행해졌다. 처음에는
궁중의 식전의 무곡으로서 예복차림을 한 기사가 카라벨라라는 반달형의
장검을 빼고 추었던 용장한 무도이다. 3박자의 힘찬 리듬을 지닌 곡이다.
폴로네이즈는 헨델, 바하 등에 의해 고전무곡 속에도 사용되고 또 베토벤도
이것을 실내악에 쓴 예가 있다. 또 폴란드 태생의 '피아노의 시인' 쇼팽이
피아노곡으로서 만든 14곡의 포로네이즈는 어느 것이나 명곡이다.
  #13 마주르카: 이것도 역시 폴란드의 민족적인 춤인데, 앞의 포로네이즈는
귀족적이며, 이 마주르카는 농민들 사이에서 생긴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선율도 리듬도 단순 소박하고 야성적인 취향에 넘쳐있다. 3박자로서 명확한
리듬이 필요하다. 쇼팽은 이 마주르카의 형식을 갖고 50곡이 넘는 예술적인
피아노곡을 만들었다.
  #14 하바네라: 쿠바의 하바나에서 시작되었으므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옛날에 쿠바는 스페인의 영토였으므로 이것은 옛 스페인 무곡에서 온
것이다. 4분의 2박자, 탱고와 비슷한 리듬을 갖고 있다. 오페라 "카르멘"에
유명한 '하바네라'의 노래가 있으며 또 생상스의 라벨, 사라사테 등에 의해
아름다운 '하바레나'의 곡이 만들어진 바 있다.
  #15 호타: 스페인의 아라곤 지방의 한 쌍의 남녀가 뛰고 돌면서 추는
춤으로 빠른 3박자의 활기가 넘치는 곡. 사라사테와 팔랴의 명곡이 있다.
  #16 볼레로: 1780년 경에 비롯된 느린 3박자를 지닌 스페인 무곡. 라벨이
만든 관현악곡 (볼레로)는 가장 유명하다.
  #17 판당고: 3박자의 옛 스페인 무곡. 모짜르트는 이것을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속에 아름답게 짜 넣었다. "피가로의 결혼"은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로, 마을 처녀들이 많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연주된다.
  #18 세기달라: 역시 스페인의 안달루시아지방의 경쾌한 민족무곡의 하나.
3박자의 왈츠와 같은 리듬을 갖고 있다. 오페라 "카르멘"의 제 1 막에
유명한 '세기딜랴의 노래'가 있다.
  #19 차르다시: 헝가리의 집시의 춤. 정열적인 멜로디와 강열한 리듬을
지닌, 빠른 2박자의 무곡이다. 느린 도입부 라수(lassu)와 빠른
프리스(friss)로 구성되며 싱코페이션이 있다.
  #20 트레팍: 빠른 2박자의 러시아의 춤. 차이코프스키의 "호도까기 인형"
속에도 있다.
  #21 왈츠: 17세기 경 독일 농민의 무곡 렌틀러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고
하는 4분의 3박자의 춤이다. 실제로 추는 경우에도 쓰이고 또 예술적
작품으로서도 많이 다루어지고 있다. 슈베르트, 베버에서 슈만, 브람스,
쇼팽, 리스트 등과 또 차이코프스키의 작품에도 많은 아름다운 왈츠가 있다.
이 무곡처럼 국경을 넘어 사랑받고, 더구나 생명이 긴 춤도 달리 유례가
없다.
  왈츠는 '원무곡'이라 번역되는 수도 있다. 이것은 옛날에 남녀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서로 빠르게 회전하면서 크게 원을 그리고 추는 데서 이
이름으로 불린 것이었다.
  19세기 말의 빈에서 '왈츠왕'이라 일컬어졌던 요한 시트라우스 일가의
작품은 예술적으로도 높고, 또 실용적인 무도곡으로서도 일세를 풍미한
것이다.
  현대의 왈츠에는 비엔나 왈츠(또는 퀵 왈츠)라는 템포가 빠른 것과
영국풍의 왈츠(또는 슬로우 왈츠)라는 느린 속도의 것이 있다.
  형식은 초기에는 단순한 두도막 형식, 또는 세도막 형식의 것이었으나,
요한 시트라우스 등 빈 음악의 전성시대에는 왈츠도 대규모의 것이 되어
먼저 긴 서주부가 있고 다음에 두도막 형식, 또는 세도막 형식의 왈츠가
3곡에서 5곡 정도 계속되고, 마지막에 이 각 곡을 회고하는 듯한 느낌을
지닌, 긴 코다부를 갖는 매우 큰 형식으로 바뀌었다. 이것을 당시는 특히
대왈츠라고 했는데, 오늘날 음악회 등의 곡목을 장식하는 빈의 왈츠는
대개는 이 형식에 의한 것이다.
  #22 폴카: 1830년 경에 보헤미아의 농촌에서 생겼다고 일컬어지는 이
춤곡은 2박자이며 행진곡풍의 경쾌한 것으로서, 19세기 말까지는 많이
추어졌던 무도곡이다.
  #23 탱고: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시작된 2박자의
춤이며, 하바레나와 같은 계통의 것이다. 이것은 20세기 초부터 남미
식민지에 보급되었고, 특히 아르헨티나에서는 '아르헨티나 탱고'라는 하나의
스타일을 만들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남미에서 독일로 퍼지고 여기서 클라식
음악의 요소를 더한 독특한 아름다운 스타일의 '콘티넨털 탱고'로 되었다.
  #24 래그타임: 20세기 초에 미국 남부의 흑인들 사이에서 생겨난
춤의리듬인 것 같다. 이것은 폭스 트롯트의 기본이 되고 다시 블루스,
찰스턴, 부기우기, 그 밖에 이른바 재즈의 바탕이 되기도 했다. 재즈는 말할
나위도 없이 현대의 대중음악으로서 가장 널리 보급되고 있는데, 재즈가
지닌 요소를 현대의 예술적인 음악 속에 도입한 작품도 많이 태어나고 있다.
@[   (14) 행진곡 @]
  마치(영), 마르쉬(불) (독), 마르치아(이)라고도 불리우는 행진곡은
보통의 것은 세도막 형식이며 2박자를 기본으로 하고, 곡의 앞뒤에 서주부와
코다를 지닌 것도 있다.
  행진곡에는 제전행진곡, 군대행진곡, 장송행진곡, 패트롤등 많은 종류가
있다.
  제전 행진곡(페스티벌 마치)은 대규모의 것이 많으므로 종종 '대행진곡
(그랜드 마치)'이라 불린다. 종교적인 제전뿐만 아니라 오페라 속의 장면에
나오는 것, 또 연주회용으로 만들어진 것 등이 있으며, 이러한 것들은 어느
것이나 대편성의 관현악으로 연주된다. 또 그 중에는 합창을 수반하는 것도
많이 있다. 실례를 들어보자.
  오페라 "아이다" 개선 행진곡(베르디 작곡)
  오페라 "탄호이저" 노래 시합의 궁정에 입장하는 행진곡(바그너 작곡)
  오페라 "예언자" 대관식 행진곡(마이어베어 작곡)
  영웅 행진곡(생상스 작곡)
  슬라브 행진곡(차이코프스키 작곡)
  결혼 행진곡(멘델스존 작곡)
  이상은 모두 대관현악용의 것이며 음악회에서 흔히 연주된다.
  군대 행진곡(밀리터리 마치)은 실제로 군대의 행진곡으로서 사기를
고무함올 목적으로 한 것이 많으므로, 취주악으로 연주하는 것이 통례이다.
따라서 명랑 쾌할하고 힘차며, 리듬도 명확하게 만들어져 있다.
미국의 군악장 수자가 만든 "성조기여 영원하라", "미 중의 미", "사관학교
생도", "워싱턴 포스트" 등은 항상 대중과 친해지고 있다. 또한 독일은 가장
오래된 시대부터 군악의 역사를 갖고 있어서 행진곡의 명곡이라 일컬어지는
것도 적잖게 있다. 슈베르트의 유명한 "군대 행진곡"은 처음에 피아노
연탄용으로 가정에서 친숙해지고 있었으나, 후에 관현악과 취주악으로
연주된다.
  장송 행진곡도 갖가지 명곡이 있다. 가장 유명하고, 관현악이나
취주악용으로 편곡된 것이 실용으로 자주 쓰이는 것은 쇼팽의 b플랫단조
피아노소나타의 제3악장이다. 또 예술작품으로서 뛰어난 것은 베토벤의 제
3교향곡 "영웅"의 제2악장, 또한 같은 작곡자의 피아노 소나타 작품26번은
그 제3악장이 '영웅의 장송'이라 불린다. 극적인 작품의 한 예로서는
바그너의 악극 "신들의 황혼"에 비창한, '지크프리트 장송 행진곡'이 있다.
  패트롤이라는 것도 또한 행진곡의 일종이다. 보통의 군대 행진곡은 마치를
연주하면서 행진해 간다고 하는 기분을 갖고 있음에 대해, 패트롤은 듣는
사람이 어느 일정한 지점에 서있고 악대가 아득히 멀리서 마치를 연주하면서
다가와 그 앞을 통과하고, 또 먼 곳으로 사라져 간다는 기분을 그리고 있다.
예를 들면 베토벤의 "아테네의 폐허"라는 연극을 위해 만든 유명한 "터키
행진곡"은 하나의 패트롤 형식의 마치이다. 또 미카엘리스의 "터키의
순찰병", 미첨의 "아메리카 순찰병" 등도 같은 형의 것이다.
  행진곡의 박자는 4분의 4, 4분의 2, 2분의 2 등 2박자를 기본으로 한 것이
보통이며 8분의 6 등도 종종 쓰이는데, 이것도 2박자로서 연주되고 있는
것이다.

@[    11.음악의 양식 @]
  우리들은 매일 여러 가지 양식을 지닌 음악을 경험하고 있다.
  아침에 교회에서 중세의 찬송가를 들었는가 하면 낮에는 라디오로
재즈음악을 듣고, 오후에는 음악회에 가서 슈베르트의 가곡에 귀를 기울이
고, 집에 돌아오면 텔레비젼으로 포크 송을 듣는다는 식으로 동서고금의
음악이 언제나 우리들 현대인의 주위에는 준비되어 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현대 문명의 은혜를 한껏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것은 매우 편리한 일임과 동시에 극히 잡다해서, 때로는 머릿속을 정리할
짬도 없이 잇달아 갖가지 양식의 음악이 소용돌이 치며 다가오는 것이다.
  인간의 생활 양식은 시대와 함께 항상 쉴새 없이 변하고 머무르는 법이
없다. 예술도 또한 인류의 의식주의 양식이나 사회 상태의 변천에 따라
끊임없이 그 양식을 변화시켜 간다.
  음악예술은 어느 시대에나 민족의 전통이며 종교와 결부되며, 혹은 귀족의
손에, 자본 계급의 손에, 또 민중의 손에 의해 그 시대,  그 국민에게
특유한 양식을 만들어 발전해 왔다. 이 발달의 자취를 더듬는 것은 음악사의
과제이다. 평소에 우리들이 경험하는 음악도 오랜 시대, 넓은 세계의 그
어느 하나의 양식에 속하는 것이며, 또 그것은 반드시 다른 양식의 음악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 관계를 명확히 머리에 넣어 두는 것은 음악을
감상하려 할 때, 그 이해를 한층 빠르게 하고 또 깊게 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자면 음악사를 읽어 인유 사회와 함께 발전해 온 음악과
이것을 오늘날의 양식으로까지 조금씩 겹쳐 쌓아 온 많은 예술가에 관해서,
또 그 가치가 높은 작품에 관해서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는 극히 간단하게 음악의 각 시대에 걸친 양식의 발전에 관해
알아보자.

@[   (1) 고대의 음악 @]
 음악은 아마도 인류의 생활이 시작된 최초부터 생활과 함께 존재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농업이나 어업(어업), 그 밖의 노동에 수반된
노래이며, 연애의 노래, 전쟁의 노래, 혹은 종교와 관계가 있는 노래 등의
형태로 주로 실용적인 목적을 지닌 것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회화,
공예, 연극, 무용 등의 예술과 함께 성장, 발전해 온 것이다.
  처음에는 음악도 이처럼 실용적인 목적을 가진 것이었는데, 바로 고대인이
토기에 새끼줄의 무늬를 새기거나, 방패의 표면에 무언가 기하학적인 도안을
새기기도 하는 것과 같은 장식의 취미가 인간 생활의 문화를 나타내기
시작한 무렵에는 음악도 또한 예술적인 의식을 갖고 혹은 노래가 되고,
원시적인 기악이 되어 행해지기 시작한 것이리라. 그러나 그 시대의 음악에
대해서는 그것이 어떤 선율이나 박자를 지닌 것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민족의 집단 생활이 대규모가 되어 도시나 국가가 만들어졌고, 서력 기원전
약 3천년 경의 고대 바빌로니아의 문화, 고대 이집트의 문화 등은 다소나마
그 유적에 의해 상상할 수가 있다. 동시에 그러한 음악에 대해서도 고분의
벽면에 새겨진 회화나 무늬 등에 의해서 당시의 악기와 그것을 연주하고
있는 모습 등을 막연하게 상상할 수가 있다.
  독일의 유명한 음악사학자 쿠르트 작스(Curt Sachs 1881--1959) 박사, 그
밖의 학자의 손에 의해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시대의 종교음악 등을
복원해서 녹음한 것도 있으며, 대략 기원전 6백년 정도 이후의 음악은
현대의 레코드로 들을 수 있다. 모두 단음, 무반주이고 마치 경을 듣는 듯한
느낌의 독창이나 제창이다. 이것은 옛 그리스 문자로 표현된 악보를
연주하여 음으로 재현한 것이며, 반주 악기에 대해서는 당시의 악보가 남아
있지 않아서, 이것을 제현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단음의 음악은 그리스도 탄생의 시대를 거쳐 9세기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
동안에 6, 7세기가 되면 로마 법황 그레고리오 1세처럼 교회음악에 주력한
권위자도 나타났고, 스콜라 칸토룸(Schola Cantorum 세계 최초의
음악학교)도 창설되어서 음악의 조직적인 연구도 시작되었다. 그러나
화성법에 대해서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수학자에 의해서 그 이론적인 연구는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아직 음악 예술에까지 이것을 응용하기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그레고리오 1세 때에 만들어진 (그레고리오 성가)는 오늘날에도
로마정교의 교회에서 불려진다. 그러나 그 이전의 것은 앞에 말한 특수
연구용 레코드에 의존하는 것 외에는 이것을 들을 수가 없다.
@[   (2) 중세의 음악 @]
  유럽의 중세는 그리스도 음악의 시대이다. 그리고 단음악에서 복음악으로
옮겨져 이것이 완성된 시대이다.
  음악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이 교회에 봉사하고 이것을 중심으로 해서
발달하였다. 10세기에서 12세기 경까지 그리스도교의 사원이나 교회는
이른바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건축물이 잇달아 만들어지고 여러 나라의
왕후는 모조리 그 시주가 되었다.
  음악은 겨우 이 시대에 극히 원시적인 복음악의 실마리를 얻게 된
것이었다. 9세기 중엽 벨기에의 성 아만드의 신부 후쿠발트가
오르가눔이라는 화성법을 고안해 낸 것이다. 이것은 5도라든가 4도라든가의
이른바 완전어울림음을 병행시켜서 만든 것이다. 즉 위의 가락과 아래의
가락이 언제나 5도든가 4도의 간격을 유지하고 진행해 간다. 그리고 그
처음과 끝은 8도(옥타브)가 되는 일도 있다. 후크발트는 이것을 교회의
합창에 사용하였다. 아마 후크발트만 하더라도 지금까지 단음의 선율만으로
부르고 있었던 성가에 화성(하모니)을 붙이는 일은 당시의 굉장히 보수적인
교회음악으로서는 대모험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안전제일로, 노래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느 부분을 놓고 보더라도 5도든가 4도의 완전어울림음이
되고 있으니까 무방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리라. 그러나 아무래도 이것은
유치한 하모니이다. 오늘날에도 5도나 4도의 병행은 너무 지나치게 어울려서
도리어 효과가 나쁘다고 하여 일반적으로는 사용하지 않고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당시의 사람들은 이 합창을 듣고 처음으로 체험하는 이상한 음의
두께에 놀라서 눈을 크게 떳을 것이다. 이 방법은 다소 개량되면서 그 후
3백년 가까이나 계속되었다.
  12세기 경부터 새로운 화성법인 디스칸투스라는 것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2개의 가락이 이른바 반진행하는 것이다. 위의 가락이 올라갈 때는 아래의
가락은 내려간다. 한 쪽이 내려가면 동시에 다른쪽은 올라간다는 방식이다.
이것은 확실히 앞의 오르가눔보다 재미있는 효과를 나타냈다.
  다시 14세기 경이되면 포부르동(Fauxbourdon)이라고 하며 3도, 6도니 하는
것과 같은 불완전어울림화음을 병행시킨 것이 이에 더해졌으므로,
복음합창의 효과는 한층 다양한 색채를 갖추게 되었다.
  건축과 미술은 그 무렵 이른바 고딕 양식이 전성을 이루고 있었다. 교회나
사원의 건축에는 당시의 과학자, 건축가를 총동원하여 가지각색의 역학적인
신기축을 내놓아 영구적이며 또 천국에도 닿을 것 같은 석조의 대가람이
하늘높이 솟아오르게 되었다. 회화나 조각, 그 밖의 조형미술도 모두
교회건축을 위해 그 기술을 겨루었다. 참으로 그리스도교가 있으므로 해서
예술이라는 느낌을 더욱 깊게 하였다. 정교한 스탠드 글라스도 당시의 화학
공예의 정수를 모아 교회의 로즈 윈도우에서 청, 황, 홍, 백, 흑색의
다섯가지 아름다운 빛을 빛나게 하였다. 이런 세상에서 홀로 음악만이 그
권외에 있을수는 없다. 성가의 합창은 이 대가람에 울려퍼지는 듯한 천사의
목소리를 가져오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점점 일어나고 있던 복음악은
가장 커다란 음악적 효과를 올리려고 열심히 연구를 계속하게 되었다.
  악보의 기보법은 전부터 9세기 경에 발달한 네우마가 12세기 경에는
상당히 개량되어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진보된 복잡한 합창곡에는 이
기보법이 이미 불편해졌으므로, 이것이 더욱 크게 개량되어 오늘날의 악보와
비슷한 것이 되었으며, 15세기에 들어서면서 인쇄도 할 수 있게 되었다.
  14세기부터 17세기에 걸쳐 약 3백년 동안은 유럽 문화위에 드디어 빛나는
르네상스(문예부흥) 운동이 전개된 것이다.
  당시의 복음악, 즉 합창의 경우처럼 몇개의 선율이 동시에 진행하는
'다선율식'의 음악도 차츰 복잡하고 아름다운 효과를 내게 됨에 따라 이
많은 음을 정연하게 조직적으로 다루는 그런 가지각색의 약속이나 규칙을
연구하게 되었다. 이것을 '대위법' 이라고 하며, 이 때부터 다시 약
3백년동안을 '대위법 음악의 시대'라고도 한다.
  중세에는 이런 식으로 그리스도교를 중심으로 한, 장중한 합창음악 외에
'음유시인'이 활약하였다. 자기가 시를 짓고 곡을 만들어 스스로 하프를
연주하고 노래하면서 여러 나라를 편력하는 시인들은 먼 고대 그리스가
번영했던 시대에도 있었지만, 이것이 유럽 전 지역, 특히 북구 제국에까지
퍼진 것은 7세기 경부터 12, 13세기에 걸쳐 가장 성하였다. 특히 기사도가
화려했던 10세기 이후에는 종교적인 의미도 더해져서 여러 나라의 귀족이
스스로 이 음유시인으로서 각지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프랑스의
트루바두르와 트루베르, 독일의 미네젱거, 영국의 민스트럴 등은 모두 이
시인들의 명칭이다. 이들은 주로 귀족이나 기사 등 상류 사회의 사람이 하는
일이었지만, 15세기 경이 되면 독일의 시민들 사이에서 마이스터징거라는
즉홍시인이 나타났다. 마이스터라는 것은 평소에는 거리의 제화점, 재봉소,
금속 장식품점 등 상공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의 우두머리를 말한다.
당시 이러한 장사는 모두 도제 제도였으으로 우두머리와 직공, 도제의
관계는 가족과 같은 사이가 되고 있었다. 그래서 독일 곳곳의 중소도시에서
그 우두머리들이 노래의 콩쿠르를 열면 도제들은 모두 자기의 우두머리를
응원하여 떠들썩한 노래시합이 된다. 그 중에서도 독일의 뉘른베르크에서는
가장 성대하게 이 노래 시합이 행해졌으므로, 후에 바그너는 이것을 제재로
한 악극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를 만든 것이다. 흔히 우리 나라에서
노래제목에 마이스터징거를 '명가수'라고 번역하는 것은 이런 의미로 보면
잘못이며, 마이스터징거는 그 '우두머리 가수'라는 뜻이다. 이것은 종교적인
의미에서 생긴것이 아니므로 그 노래의 내용도 시민 생활과 밀착된 제재가
선정되고, 그 시나 곡도 아마 당시는 대중적이고 재미있는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이러한 교회 이외의 음악, 즉 속악이 성해진 사실은 이윽고 유럽의 음악
문화가 화려하게 발전하는 데 대한 중요한 바탕이 되고 있다. 이탈리아의
플로렌스는 르네상스 문화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따라서 건축을 비롯하여
회화, 조각 등의 조형미술에 그 정신문화의 융성을 자랑하고 있었는데, 당시
이 고장에서는 신예술파(아르스 노바)라는 속악의 일파가 있어서 화려한
오페라를 성하게 하고 기악을 발달시켰다. 관현악의 연주도 아직 초기의
것이지만 여기서 시작된 것이다.
  교회의 음악은 장엄 웅대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민중의 음악은 차츰
'즐거움'의 요소를 많이 갖추게 되었다. 즐겁고 밝은 음악에는 아무래도
교회의 합창 양식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기악이 발달하고 가벼운
반주를 지닌 단음의 노래가 환영받게 된다. 수백년이나 음악가들이 고심을
거듭해 온 대위법 음악은 과연 훌륭하고 아름답지만, 많은 가락이 항상
짜맞춰져 복잡하게 진행해 가는 음악은 아무래도 경쾌하다고는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정교한 다선율음악에서, 명쾌한
단선율음악의 이론을 추구하려 하는 노력이 이 플로렌스를 중심으로 해서
일어났다.
@[   (3) 근세의 음악 @]
 르네상스의 화려한 예술 운동은 차츰 안정되고 고정되어 갔다. 참으로 이
문화 운동은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으며 유럽 전 지역에는 엄청난 예술의
재산이 축척되어갔다. 그리고 16세기를 정점으로 하여 새롭고 자유분방한
양식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바로크 양식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음악 쪽에서는 플로렌스의 음악가들이 가지각색의 새로운 경향을 보여
주었는데,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 것은 역시 답답하고 장중한 교회적인
다선율음악에서 좀더 밝고 경쾌한 단선율음악 쪽으로 옮겨 가려 하는
노력이었다. 예컨데 처음으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실증한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부친인 벤첸초 갈릴레이는 아름다운 독창곡을 즐겨
작곡하였고 여기에 명쾌한 기악반주를 붙였다. '명쾌한' 이라는 의미는,
지금까지 노래에 붙여진 반주는 모두 합창곡풍으로, 기악도 모두
대위법적으로 만들어지고 있었지만, 갈릴레이가 시작한 단선율음악에서는 그
반주는 화성적으로, 즉 반주의 음은 옆으로 흐르는 선율의 조합이 아니라
세로로 겹치는 화음의 형을 말한다. 그렇게 하면 그 느낌은 무척 명쾌해지고
독창과 반주가 깨끗하게 분리되어 들리게 된다.  이것은 곧 오페라나
오라토리오의 수법에도 응용되었고 다시 기악곡에도 사용되었다.그래서
오페라는 캇치니에서 카발리에리와 몬테베르디, 카릿시미(Giacomo Carissimi
1650--1674) 등에서 알렛산드로 스카를랏티로 이어져 화려한 오페라로
되었고, 이것이 프랑스와 영국에 수입되어 여기에 17, 18세기의 오페라 융성
시대를 보게 되었던 것이다.
  또 르네상스 이후 악기의 제조법이 매우 진보한 것도 음악의 새로운
양식을 낳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오르간, 클라비코드,
하프시코트(쳄발로) 등도 모두 이 시대에 참으로 정교하고 새로운 것이 되고
그 연주 기술도 현저히 향상되었다. 바이올린을 비롯하여 그 밖의 현악기가
이탈리아의 크레모나를 중심으로 해서 활발하게 만들어졌으며, 뛰어난
대연주가가 많이 나온 것도 또한 이 시대이다. 바이올린의 명연주가로서는
비탈리가 있으며 또 소나타와 합주협주곡을 많이 만든 코렐리(Arcangelo
Corelli 1653--1713)도, 독주협주곡을 처음으로 작곡한 토렐리(Giuseppe
Torelli 1658--1709)도 모두 뛰어난 바이올린 주자였다. 도메이코
스카를랏티(앞에 말한 알렛산드로의 아들)는 쳄발로의 명수였으며, 이에
이어 프랑스에서는 쿠프랭(Francois Couperin 1668--1773), 다캥(Louis
Claude Daquin 1694--1772), 샹보니에르(Jacques Champion Chambonnieres
1602경--1672) 등의 명인이 많이 나타나 모두들 쳄발로를 위한 명곡을 남긴
바 있다.
  오르간 음악에서는 이탈리아에 프레스코발디(Girolamo Frescobaldi
1583--1643)가 있으며 독일에는 북스테우데(Dietrich Buxtehude
1637--1707)라는 대가가 있다. 한편으로는 교회음악에도 이 시대에 일대
이변이 일어났다. 그것은 마르틴 루터 일파의 종교개혁(1517년)이다. 루터는
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사람으로 자기도 류트를 잘 연주했으며 작곡 기술에도
뛰어났었다.
  당시의 교회음악은 모두 로마정교(가톨릭)가 제정한 그레고리오 성가의
선율에 의해 모두 라틴어로 부르게 되어 있었다. 성가뿐만 아니라 온갖
의식이나 예배 방식도 여러나라, 여러 민족의 생활양식과는 관계없이
획일적으로 그 규칙을 지키고 행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루터는 민족이나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고 여러 민족이 제각기 사회생활에 적합한
신교(프로테스탄트)를 세웠다. 신교의 찬송가는 각각 자기 나라 말로 부르고
그 곡도 자기 나라의 민요를 다루거나 새롭고 뛰어난 작곡가를 기용하여
신곡을 만들기도 하였다. 또 긴 예배음악 대신에 짧은 가요 형식의 노래를
채용하였다. 짧아도 이것은 유절가곡이고, 같은 멜로디로 몇장이건
되풀이하는 형이기 때문에 누구나 곧 익힐 수 있다. 그래서 정래의
교회에서는 전문가의 성가대만이 라틴어로 불렀던 것을 이번에는 교회에
모이는 대중이 모두 마음으로부터 부를 수 있도록 고쳤다.
  이러한 종교음악의 개혁은 다시 르네상스 정신의 영향과 바로크 양식의
영향도 받아서, 더욱 아름다운 것으로 발전하는 길이 열였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크 양식의 시대, 또 다선율 음악(대위법)시대의 최후의
대가인 헨델과 바하의 위대한 업적으로 이어져 갔던 것이다.
@[   (4) 근대의 음악 @]
  르네상스의 중심지였던 이탈리아의 플로렌스에서 발달한 단선율 음악에의
취향은 이윽고 베니스와 나폴리로 전해졌고 얼마 후 이탈리아 전역으로 퍼져
하나는 화려한 오페라의 아리아로 발전하고 하나는 밝고 즐거운 기악의
전성으로 이끌어 갔다.
  베니스의 산 마르코 사원의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이며 음악학교의 교장도
겸하고 있었던 비발디는 이 새로운 경향을 한층 풍부한 것으로 하여
바이올린 음악과 합주협주곡을 대성시켰으며, 독일의 바하나 헨델에게
이탈리아 음악의 새로운 시대의 양식에 대한 많은 시사를 주었다.
  이 밝고 풍부한 이탈리아 음악은 새로운 독일의 음악가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며 특히 남독일의 만하임의 뛰어난 음악가 요한 시타미쯔,
안톤 필츠 등을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만하임 악파의 융성을 초래하였다.
  그 무렵 만하임의 궁정에는 40명으로 구성된 당시의 유럽에서 제일이라고
일컬어졌던 뛰어난 오케스트라가 있었다. 시타미쯔는 이 오케스트라의
악장이었으므로 관현악의 연주에 대해 많은 기술을 체험하였으며 이것을
새로운 작곡의 수법으로 도입하였다. 예컨데 강약의 변화에 의한 가지각색의
표현은 이 악단의 가장 뛰어난 연주 기술의 하나였는데, 이것은 곧 작곡상의
중요한 수법으로서 섬세한 감정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작품도 내놓았다.
  만하임 악파는 또 소나타,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곡 등의 형식을 아주
새롭게 해서 이들 악곡의 제 1악장이 되는 '소나타 형식'이라는 훌륭한
형태를 완성하였다. 이 악파를 고비로 하여, 비발디 이전의 이른바 바로크
양식의 소나타나 협주곡, 그리고 근대의 소나타, 협주곡의 양식을 판이하게
구별된다. 그리고 이 완성된 양식은 현대의 음악으로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여기서 '근대'라 부르고 있는 것은 20세기부터의 이른바 근대 음악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좀더 넓은 의미의 18세기 중반부터를 말한다. 그것은
악곡의 형식을 비롯해서 관현악을 편성하는 원리, 기악 연주의 기술등이
근대, 현대로 직접 이어서 발전해 온 요소가 이 시대에 대충 형성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 근대라고 함은 넓은 의미의 근대음악을
말하는 것이다.
  만하임 악파는 대바하의 아들들 몇사람을 비롯, 많은 음악가가 이에
참가해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하이든, 모짜르트, 베토벤도 그 음악의
양식으로 본다면 모두 직접, 간접으로 이 만하임 악파를 이어받은 것이다.
@[  #1 고전파  @]
  만하임 악파에서 나온 사람들과, 그 영향을 받은 작곡가들을 고전파라고
한다. 대바하의 아들들, 장남 프리데만을 비롯해서 에마누엘, 크리스티안
등, 또 디터스도르프, 복케리니, 그리고 하이든, 모짜르트, 베토벤도 또한
고전파의 작곡가이다. 특히 이 세사람은 빈을 중심으로 해서 활동했기
때문에 빈 고전파라고 말하는 수도 있다.
  당시의 예술적 음악은 교회가 아니면 왕후 귀족의 저택 내에서 연주되는
일이 많았다. 고전파 작곡가들의 직장은 이들 귀족 사회였다. 직접 귀족
등에게 고용되어 있지 않더라도 그러한 기분의 음악이 그 시대의 음악의
양식이 되고 만 것이다. 따라서 그 음악은 항상 밝고 명랑하며 우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작곡자의 너무 강렬한 개성은 환영받지 못한다. 누가
어떤 기분일 때에 듣거나 항상 즐겁고 아름다와야 하기 때문이다. 힘찬
정열이나 비창한 느낌 등도 우선 당시의 화려한 살롱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또한 국민성이나 민족성이 너무 노골적으로 나타난 것도 안된다. 이것을
듣는 손님은 아름다운 사교복으로 몸을 장식하고 빛나는 샹들리에 밑에서
차를 마시기도 하고 더러는 졸기도 하는데, 그 동안에 실내악 등이
연주된다. 만약 그 졸음을 깨우는 듯한 강렬한 외침이 나온다거나, 우울한
감정을 일으키는 종류의 것은 설령 그것이 아무리 걸작이라도 낙제이다.
  베토벤이 젊었을 때 작품 1번으로서 세 곡의 피아노 3중주곡을 썼다. 그
첫째와 둘째는 과연 우아한 당시의 궁정 양식의 음악이지만, 세째인 c단조의
곡은 가장 개성적이고 비극적인 느낌을 지닌 것이다. 그러자 그의
스승이었던 하이든이 그 세번째 곡만은 함께 출판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충고했음에도, 베토벤은 이 비평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겨 그것을
무릅쓰고 출판하고 말았다는 일화도 있을 정도이다. 그러므로 아무래도
고전파의 음악은 유형적인 것이 되기 쉽다. 오늘날까지 음악회의 프로그램을
장식하고 있는 하이든이나 모짜르트의 명곡은 과연 대천재의 작품이기
때문에 그 유형적인 무수한 악곡 속에 있어도 역시 후세에 남을 만큼의
가치를 지닌 것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얼마나 비슷한 느낌의 곡이 많은가.
하이든의 백곡을 넘는 교향곡과 80곡에 달하는 현악 4중주곡만 하더라도
지금 연주회에서 다루어지는 것은 그 가운데 아주 일부의 작품에 한정되어
있다. 모짜르트의 아름다운 피아노 3중주곡과 바이올린 소나타 중에서 평소
연주회에 나오는 것은 그 많은 것중의 몇곡일까. 이러한 대작곡가의 작품도
그런 형편이니까, 다른 고전파의 많은 작곡가들이 남긴 몇백, 몇천개의
음악이 어느 것이나 아름답고 즐겁고 온화한 작품이긴 할테지만 매우
유형적인 것 뿐이어서, 오늘날에 와서 보면 하이든이나 모짜르트의 대표적인
곡에 의해 전부 사라져버렸다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이것이 이 시대의
음악, 고전파의 양식이었기 때문이다.
  베토벤처럼 혁신적이고 독창적이며 게다가 솜씨 좋은 작곡가가 이런
유형의 테두리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 없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는
고전주의 속에 자라 그 9개의 교향곡을 비롯하여 많은 작품의 근본은
고전주의의 형식, 내용 아래 창작하면서도, 다음에 오는 낭만파시대의
화려하게 번영했던 백년간의 싹을 이미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다.
@[  #2 낭만파 @]
  베토벤의 일대 동안에 유럽 천지에는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그것은
자유사상의 발흥과 봉건제도의 붕괴가 각국의 정치 위에 크게 실현되어온
일이었다. 귀족이나 대지주의 폭정에 이미 민중은 견딜 수 없게 되어
있었다. 프랑스의 루소와 볼테르, 또 영국의 기번 등이 자유를 부르짖고 전
유럽 사람들에게 커다란 자극을 주었으며, 18세기 중엽부터 독일에서 일어난
낭만문학의 유행은 사람들에게 자유를 구하는 용기와 청신한 활력을 주었다.
  미국이 영국 정부의 식민지 정책에 저항하여 독립운동을 일으키고 마침내
성공한 것도 이 무렵이다.
  프랑스는 가장 위험한 상태에 있었는데, 1789년의 바스티유 감옥의
파괴에서 발단한 역사적인 대혁명은 수행되고, 영화를 자랑했던 루이 16세의
일족을 단두대(단두대)에 보낸 것은 베토벤이 22세 때였다.
  이것은 유럽만의 일이 아니고 전세계가 무엇이건 새로와져야 하는 때가
오고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 혁명의 이어 유럽에서는 미증유의 공포시대에 들어간다. 나폴레옹
1세는 대혁명의 뒷처리에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다.
  지금까지 유럽에서 예술의 보호자였던 귀족들의 그 재력도 권력도 점차
위태로와지기 시작하였다. 음악가도 귀족의 살롱을 나와 도시의 극장이나
공회당에서 민중을 상대로 작품을 발표하거나 연주를 하거나 해야 한다.
살롱에 초대된, 예의범절에 밝은 손님을 상대하고 있었을 때는 비평 등을
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지만, 이미 특권 계급의 도구가 아니게 된 음악은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으러 오는 민중의 비평앞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까지처럼 만인 대상의 무난한, 단지 차의 향기를 북돋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은 유형적인 것은 말살되고 말았다. 거기에 필요한 것은 '개성'이다.
강렬한 개성, 인간의 마음의 밑바닥에서 스며나오는 힘찬 정열과 미묘한
정서의 표현이야말로 민중이 구하고 있었던 것임에 틀림없다.
  이 요구에 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풍부한 인간성의 표현에 그 능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고도의 연주 기술, 잘 울리는 악기, 정교한
구조와 힘찬 표현력을 지닌 피아노, 그리고 수천명의 청중에게 호소할수
있을 만큼의 색채와 음량이 풍부한 오케스트라, 또 그러한 연주를 언제든지
할 수 있게 하는 커다란 자본 능력을 필요로 했다.
  베토벤의 시대를 경계로 하여 이 여러 가지 조건은 착착 실현되어 갔다.
  다만 모든 것이 단번에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예술가에게는 보수적인
사람들도 많고, 아직 옛 귀족계급은 여전히 음악예술에 대해서는 옛날
그대로의 커다란 세력이었던 곳도 있다. 민중이라고 해도 진짜 예술애호가는
주로 그 속의 지식계급이 대부분이긴 했지만, 그러나 이미 세상은 바뀌었다.
살롱에 초대되는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훌륭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고전주의 양식의 음악이 차츰 그 존재 이유를 약화시키고 있음은
이미 시간의 문제이다.
  그러면 음악의 양식은 어떻게 변해갔을까. 먼저 고전주의 시대의
장식취미의 예술보다 좀더 주관적인 인간의 혼의 외침을 듣고 싶다는
요구에서 깊이와 중후한 맛이 있는 악곡이 잇달아 나왔다.
  베토벤 후기의 피아노 소나타나 현악 4중주곡, 또 제9교향곡, 미사
솔렘니스 등은 당시의 젊은 작곡가였던 슈베르트, 멘델스존, 베버 등에게
측정할 수 없는 커다란 감명과 그 영향을 주었으리라고 생각된다. 또한 같은
무렵 프랑스의 베를리오즈는 최초의 본격적인 표제음악인 "환상 교향곡"을
만들고 낭만음악의 새로운 면을 개척한 바 있다.
  섬세한 정서나 순간적으로 변하는 미묘한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보다는
음악으로, 비로소 가장 잘 표현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틀에 박힌
형식을 사용하는 것은 부적당한 경우가 많이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짧은
소곡 속에 한없이 풍부한 시적인 정서를 담을 수도 있다. 슈베르트의
피아노곡 "6개의 악홍의 한 때", "즉흥곡", 멘델스존의 49곡이나 되는
"무언가", 슈만의 "판타지"와 "환상소곡집", 그 밖에 쇼팽과 리스트, 브람스
등의 피아노 소곡 등은 이런 생각이 열매를 맺은 것이다.
  낭만파 음악의 커다란 특색의 하나로 표제음악이 있다. 앞에 말한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도 그 걸작의 하나인데, 같은 시대에 멘델스존의
서곡 "핑갈의 동굴"과 괴테의 시를 음으로 그린 "고요한 바다와 즐거운
항해" 등이 있으며, 베버는 십자군 병사의 삽화 하나를 표제로 해서 f단조의
피아노 협주곡을 썼다. 이 뒤를 이은 리스트의 13곡의 교향시 등은 어느
것이나 문학과 관계를 가진 표제음악이다.
  예술가곡도 낭만파의 풍부한 소산이다. 슈베르트, 슈만, 브람스, 볼프,
리베, 그 밖에 많은 작곡가는 시와 노래와 반주가 혼연일체가 된 뛰어난
예술가곡을 만들어 냈다.
  19세기 낭만파의 시대는 또 명인의 시대라고 일컬어질 만큼 기악, 성악에
우수한 연주가가 많이 나온 때이다. 피아노는 쇼팽, 리스트, 클라라 슈만
등을 비롯해서 멋진 기교와 표현력을 지닌 피아니스트가 잇달아 나타났다.
또 바이올린에서는 귀재라고 일컬어졌던 피가니니를 위시하여 시포어,
비외탕, 비에냐프스키, 사라사테 등. 또한 이들은 많은 뛰어난 문제를
양성하여, 기악 연주의 수준은 이 시대에 일찌기 없었던 진전을 보여 준
것이다.
  관현악은 더욱 색채를 화려하게 했고, 그 악기 편성은 아주 방대하였다.
베를리오즈, 바그너, 리스트, 말러, 리햐르트 시트라우스 등의 놀랄만한
대규모의 편성은 무릇 음악적 표현 능력의 절정에 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서 발달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가능케 한 이유의 하나는 기계 공업의 발달로 악기의
구조가 진보되고 개량이 촉진되어 우수한 악기를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된
점과, 또 하나는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규모가 큰 교향악단의 경영이
합리적으로 행해지기 시작한 점, 그리고 또 음악이 문학이나 회화 등의
내용을 표현하려고 하여 더욱더 오케스트라의 커다란 표현 능력을 요구하게
된 결과이다.
  고전파 시대에는 유럽 중에서도 일류의 문명국 즉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의 중심도시인 베를린, 빈, 파리, 런던, 로마,
등은 그 음악의 양식이 매우 공통되어 있어서 거기에 확실한 민족성의
차이는 별로 없었고, 예컨데 파리의 궁정에서 들을 수 있는 음악은 그대로
빈의 궁정에도 통용된다는 식으로 국민적인 개성은 오히려 희박해져 갔던
것이다. 그러나 이 낭만파의 시대에는 작곡가나 연주가의 개성이 존중받게
된 것과 동시에 나라나 민족의 개성도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 요구되게
되었다. 이것은 낭만파 시대의 말기에 가까와짐에 따라 더욱 성해지고
각국에 국민음악을 수립하려 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그것이 고전파 시대에
문명국의 중심에서 오히려 제외되어 있었던 주변의 나라들일수록 성해졌던
것이다. 즉 러시아, 북구의 여러 나라, 발칸 반도의 여러 나라, 스페인
등이다. 각 민족이 그 전통적인 음악의 요소를 기반으로 해서 그 국민에게
고유한 감정이나 정서를 사양하지 않고 선명하게 드러내어 거기에 강한
개성을 나타내려 하는 것이다. 이것은 낭만파의 음악이 기울어진 뒤에도
현대음악 위에까지 더욱 힘차게 추진되고 있는 특색의 하나이다.
  낭만파 음악은 오페라와 발레와의 무대예술 위에도 극도로 화려한 발전을
보여주었다. 아직 베토벤이 살아있던 1821년에 베버가 최초의 국민작인 낭만
오페라 "마탄의 사수"를 발표한 뒤, 지금까지 이탈리아 양식의 오페라에만
의존하고 있었던 작곡가나 청중도 대단한 오페라열에 들떠서 이탈리아는
물론이고 프랑스, 독일 같은 나라에서는 종종 오페라를 창작하여 상연케
되었다. 그 결과 무대 장치는 점점 규모가 커지고 사치한 의상과 등장
인원의 수, 오케스트라의 편성까지 차츰 대구모가 되기 시작하였다.
무엇보다도 뛰어난 가수가 많이 나온 점, 앞을 다투어 대가극장이 속속
건설된 사실에 의해서 19세기는 '오페라의 시대'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바그너의 오페라 개혁이라는 대작업이 있고 새로 악극이라는
분야로까지 발전한 셈인데, 이것은 앞의 '오페라'의 항에서도 말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낭만주의는 19세기의 후반을 사상 공전의 화려한 음악 예술로 장식한
셈이지만, 또 일면에서는 다소 지나친 재앙도 초래하게 되었다. 그것은
낭만음악이 가장 아름답게 여겨졌던 특색이 지나치게 과장된 사실과, 시대의
추이에 의한 인간의 감각이 하루하루 새로와져간 사실에 의한 결과이다.
  예컨데 개성적, 주관적인 표현도 도를 넘으면 공허한 환상을 쫓게 되고,
개인적인 정서도 너무 이것을 추구하면 건강하지 못하고 병적이 될 우려가
있다. 비르투오소(명인예)만 하더라도 너무 연주가의 개성이 강조되면 악곡
본래의 모습이 일그러지거나 개인적인 취미에 취우쳐 청중은 그 음악에서
공허한 것을 느끼게 된다.
  문학적인 사상이나 정서를 음악으로 표현하려 하는 경우에도 너무
지나치면 음악은 문학의 내용을 설명키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는 사람도 나올 것이다. 음악은 어디까지나 음악을 위해 비로소
존재하므로 그 아름다움은 음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19세기
말이 되면 문학이 없고서는 음악도 존재하지 않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그런 사고방식이 만연해 왔다. 그리고 음악 속에 문학 등을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었던 바하의 음악과 모짜르트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문학은 음악에 있어서 악처와 같은 것이다"라고
그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인연을 한탄하는 사람도 있었다. "바하로
돌아가라"고 하는 이른바 신고전주의도 나왔다.
  그리하여 낭만주의의 음악은 이윽고 과거의 것으로 되어 가는 것이다.
@[  #3 현대의 음악 @]
  낭만파의 어떤 부분은 이처럼 너무도 현실을 벗어난 공상에 빠지거나
주관적인 영웅주의에 흘러 음악의 본질을 잃으려고 해서, 차츰 사람들의
마음으로부터 멀어져 가게 되었다. 청중은 좀더 직접, 감각에 호소하는 그런
음악을 구하고 있다. 머리로 생각하는 음악이 아니라 피부로 느끼는 음악을
요구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인상주의를 비롯한 새로운 수법이
사방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이 20세기에 들어와서도 그 화려했던 낭만파의 음악을 갑자기
잊어버릴 수 없는 청중도 많이 있다. 또한 낭만파의 대가들이 남긴
가지각색의 뛰어난 수법은 이것을 좀더 발전시킬 가능성이 있다. 예컨데
19세기 말까지 배양되었던 대규모의 관현악법이나, 많은 독주 악기의 고도된
연주 기술 등은 그대로 연장하여 진보케 하고 다시 그 특색을 살려 간다면
현대인의 감각에도 충분히 환영받는 요소가 된다.
  또 슈만이나 쇼팽과 같은 낭만파의 대가가 장기로 했던, 순간적인
시적기분을 포착하여 이것을 음악으로 나타내어 가는 간결한 작곡의 목표에
대해 수법의 차이는 있을 망정 그 사고방식은 드뷔시, 무소르그스키등의
인상주의로 계승되어 갔다. 다만 인상주의의 음악과 인간의 인상과의 사이에
문학적인 것의 사고방식을 넣지 않고 직접, 감각적으로 하나의 기분을
구성하는 것이다.
  드뷔시의 음악은 옆으로 흐르는 선이 아니고, 즉 멜로디를 으뜸으로 한
것이 아니고, 세로로 겹친 음이 빚어내는 색채와 명암의 감각이 시간의
경과에 따라 시적인, 혹은 회화적인 기분을 만들어 내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작곡자와 또 동시에 청중의 심정의 참된 모습이 추구된다.
이런 관점에서 드뷔시의 음악을 '수직주의'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즉
멜로디가 으뜸이 아니고 새로로 겹친 음의 하모니로 구성되어 가는
음악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물론 드뷔시의 음악에도 아름다운 멜로디를 지닌
작품이 많이 있지만, 그보다는 음의 감각적인 취급을 좀더 소중히 했다는
것이리라. 그것은 확실히, 작곡자의 현실과 동떨어진 제멋대로의 공상의
세계는 아니고 실제로 피부로 느끼는 음악이다.
  드뷔시는 파리에서 많은 인상파의 화가나 시인과 교제하여 이 새로운
영향을 받았다고 일컬어지지만, 또한 당시의 자연주의 문학도 음악의
사고방식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음악의 이 새로운 경항은 많은 작곡자들을 공명케 하였다. 음악은
지금까지처럼 명확한 관념이나 희로애락의 감정을 그리려고 노력하는 강한
'선'의 흐름에서, 좀더 막연한 기분을 나타내는 색채나 음영의 느낌으로
옮겨 갔다. 따라서 지금까지처럼, 선을 다루는 갖가지 법칙, 즉
조성이라든가 음계의 형이라든가 하는 것은 좀더 자유로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선과 선을 짜맞추는 기술이나 법칙, 대위법과 같은 것에 대한
사고방식도 마찬가지이다.
  주기적인 리듬을 나타내는 박자 관념도 가로의 선이 풀어놓여지고 보면
거기에 옹색한 약속은 아무 것도 없게 되고 만다. 가지각색의 신선한 색채를
새로운 팔레트 위에서 뒤섞어 보면 지금까지 경험한 적이 없는 아름다운
빛깔도 만들어져서, 이미 수백년래의 낡은 화성법 등은 거의 그 원칙을
나타내는 일 밖에는 소용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인상주의의 작곡가들은
색채감이 풍부한 전혀 새로운 화성도 만들어냈다.
  이와 동시에 독일에서는 쇤베르크 등에 의해 새로 표현주의의 음악이
시작되었다. 표현주의는 드뷔시 등의 인상주의와는 반대로 멜로디의 '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낭만파처럼 감미롭고 도취적인
멜로디를 쫓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많은 선이 전혀 새로운 감각을 지닌
대위법적인 수법에 의해 동시에 진행하면서 색채감이나, 그림자와 빛의
느낌을 만들어내어 가는 것이다. 물론 옛날의 엄격한 법칙을 지닌
대위법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다.
  선이 주체가 되면 박자도 중요한 것이 되는 셈인데, 이것도 획일적인
리듬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몇개의 박자를 동시에 짜 맞추어 거기서
복잡한 어떤 감각을 구하기도 한다.
  또 이 새로운 대위적 수법은 멜로디의 '조'를 가장 자유로운 입장에
두어야 하기 때문에 어느 때는 무조가 되고 어느 때는 다조, 즉 많은 다른
조가 동시에 짜 맞춰지고, 또 거기서도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냈다.
  인상주의와 표현주의는 그 표현법에 대한 생각은 이처럼 전혀 다르지만,
결국 그 목적으로 하는 바는 음악 그 자체에서 아름다운 감각과 감정의
표현을 구하므로 19세기의 낭만주의에서 한 발짝 나아간 것임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낭만주의적인 수법이나 취향을 완전히 버렸는가 하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결과에 있어서, 수백년에 걸쳐 음악사상이 걸어 온
갖가지 양식이 많건 적건 모든 시대의 예술양식 속에 깊이 스며들어 영향을
주고 축척되어 왔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다시 가까운 현대음악에 대해서 본다면, 어쨌든 인간의 사고방식이 한없이
자유로와지고, 그 수법도 여러 가지 편리한 악기나 기계의 힘을 빌 수가
있기 때문에 갖가지 잡다한 양식의 것이 나온다. 형식은 점점 자유로와지고
조성, 박자, 화성 등의 관념도 이미 옛날의 것과는 전혀 다른데, 그러한
것들 중에는 새로운 고전주의도 있는가 하면 새로운 낭만주의도 있다고 하는
셈이다. 또 20세기의 미국의 흑인 간에 생긴 재즈음악의 수법이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음악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뭔가 새로운 시대의 정신 생활,
사회 생활에 적합한 감각을 추구하고 청신한 기분을 내려 힘쓰고 있는
점에서는 같다.
  현대음악은 종종 감상자를 당황케 하는 수가 있다. 음악의 아름다움을
맛보기 전에, 먼저 그 너무도 새로운 색다른 수법에 갈피를 못 잡는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고전파나 낭만파의 음악에 길들여진 귀를 깜짝 놀라게
하는 듯한 '틀에 박히지 않은' 수법이 많기 때문이다. 옛 음악으로 부터는
명확히 포착할수 있었던 관념이나 감정을 똑같이 새로운 음악에서도
구하려고 하면 참으로 사정이 달라졌다고 하는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들은 어쨌든 20세기에 태어나 현대 사회에서 생활하고 있는
인간이다. 귀에 익지 않았더라도 역시 현대의 음악이 아니면 채워지지 않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 베토벤의 교향곡이 아름답고 슈베르트의 가곡이 정말
감동을 준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더라도, 지금의 작곡자가 베토벤과
비슷한 교향곡을 만들고 슈베르트를 꼭 닮은 가곡을 써 준다고 하면, 그것은
현대의 청중의 마음으로부터 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역시 현대의
작곡자 중에서도 뛰어난 사람들의 작품이 반드시 현대인의 감정을 높이는
요소를 어느 시대의 작품보다도 많이 갖고 있음에 틀림없다.
@[  #4 전자음악과 뮈지크 콩크레트 @]
  근년에 전자과학의 눈부신 진보와 함께 전혀 새로운 음악의 양식이
생겨났다. 그것은 뮈지크 콩크레트와 전자음악이다. 이미 이러한 것들의
음악회도 있었고 발레와 그 밖의 실용에도 제공되고 있으니까 간단하게나마
그것을 설명해 두기로 하자.
  가) 뮈지크 콩크레트: 1950년 경 파리 국립방송국의 음악감독이었던
피에르 세페르(Pierre Schaeffer 1910- )가 창시한 것이다.
  종래의 음악은 그 재료로서 인간의 목소리든가, 혹은 음악의 소리든가,
또는 그 양쪽을 합해서 사용하였다. 극히 드물게, 예컨데 레스피기의
"로마의 소나무" 속에서 나이팅게일의 소리를 녹음헤서 사용했다거나,
리햐르트 시트라우스의 "돈 키호테" 그 밖의 곡에서 윈드 머신(연극 때
바람소리를 만드는 도구) 등 악기가 아닌 것의 음도 쓰여진 예가 있지만,
우선 거의 모든 음악은 성악과 기악만을 그 재료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세페르의 사고방식은, 음악이 인간의 청각을 통한 예술인 이상,
어쨌든 귀에 들리는 음은 무엇이건 음악의 재료가 된다는 것이다.
바람소리며 비 소리, 폭풍, 파도소리, 화산의 굉음과 같은 자연계의 여러
가지 음향은 물론이고 벌레 소리, 새의 울음소리, 짐승과 그밖에 일체의
돌물이 내는 소리도 사용한다. 또 군중의 웅성거림, 각종 작업의 잡음,
기계의 울림에서 자동차, 항공기의 엔진소리와, 그밖에 총포,
다이너마이트처럼 큰 음에서 컵 속에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와, 물 속의
물고기 소리를 마이크로 모은 음처럼 미약한 음에 이르기까지 무릇 인간의
귀에 들리는 일체의 음향이 음악의 재료가 된다. 그러한 현실음을 사용
한다는 데서 뮈지크 콩크레트를 '구상음악' 이라든가 '구체음악'이니 하고
직역한 적도 있지만, 참된 목적은 아직 다른 데에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성악이나 기악도 참가한다.
  이런 무수한 종류의 음 속에서 작곡자는 그 작품에 필요한 것을 택하여
이것을 그대로 사용하는 수도 있으며, 혹은 전기적으로 변형해서 사용하는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러한 것들은 많은 종류의 음을 녹음하여 모아 두는
라이브러리가 필요해진다. 실제 문제로서 음악회 때에 동물이 언제나 알맞게
울어 준다고는 할 수 없다. 또 좀더 규모가 큰 기계 따위를 회장에 들여
놓을 수 없기 때문에 모두 녹음 테이프에 수록해 두는 것이다.
 지금 가령 비 소리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작곡자는 반드시 이것을 바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일종의 음향으로서 이것을 적당한 높이, 셈여림,
음색 등으로 가공하여 하나의 악기처럼 생각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거기에는 이미 '비'라는 관념이나 연상은 없어지고 만다. 모든 음향을 그런
식으로 사용하는 셈이니까 가령 사자의 소리가 들리더라도 청중은 곧
아프리카의 정글 등을 상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보통의 오케스트라에서
트롬본의 솔로가 나왔구나 하는 정도로 듣고 있는 셈이다.
  모든 음이 전기적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종래에 도저히 인간의 솜씨로는 할
수 없었던 그런 일도 가능해진다. 예컨데 트럼펫의 명인에게 있어서 1초
동안에 1옥타브의 음계가 고작이었다 하더라도 전기적으로 처리하면 이것을
2분의 1초로도, 5분의 1초로도 줄일 수가 있다. 또 대형 피아노로 8옥타브
정도가 고작이었다 해도, 진기적으로 다루어 그 음역을 2배로 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한 테이프의 속도를 변화시킨다거나 음의 필터를
사용하기도 해서 모든 음의 음색을 바꿀 수도 있다.
  어쨌든 인간의 귀에 들리는 무수한 음의 종류를 사용하고 더우기 이것을
여러 가지로 변화시킴으로써 작곡에 사용하는 음의 종류는 몇 만배나 되며,
따라서 이것에 의해 만들어진 음악의 표현능력에 무한한 가능성을 주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뮈지크 콩크레트에도 여러 가지 길점이 있다. 우선 매우 풍부한,
현실음의 라이브러리를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일조일석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긴 세월을 필요로 하며, 만약 작곡자가 요구하는
현실음이 하나도 없다면 그것을 만들기 위해 역시 상당한 수고를 하고
어디선가 만들어 와야 한다. 또 가령 작곡에 필요한 현실음이 전부 갖춰져
있다 하더라도, 이것을 각각 전기적으로 처리하기도 하고, 합성하거나
편집하기도 하고 많은 인원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 너무 오랫 동안 많은
품을 들이고 있노라면 맨 처음 작곡자의 머리에 떠오른 음악의 이미지가
상실되거나 바뀌고 마는 일조차 있다. 이론으로서는 재미있는 착상인 뮈지크
콩크레크도 최근에는 별로 제작되지 않고, 작곡가는 오히려 그 다음에
나타난 전자음악 쪽에 많은 흥미와 기대를 걸고 있는 듯하다.
  뮈지크 콩크레트는 또 적당한 역어가 없기 때문에 보통은 원어로 부르고
있다.
  나) 전자음악, 신디사이저: 이것은 앞에 말한 뮈지크 콩크레트보다 조금
뒤늦게 시도된 것이지만, 전자공학의 놀라운 진전으로 지금은 이 쪽에서 더
많은 연구와 그 성과를 볼 수 있다.
  뮈지크 콩크레트가 인간의 귀에 들리는 것이라면 자연계의 음이건
인위적인 음이건 모두 이것을 음악의 재료로서 사용하겠다는 사고방식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전자음악은 이 생각과 전혀 반대의 입장에서 나오고 있다.
즉, 인간의 목소리도 악기의 음도 사용하지 않는다. 하물며 자연계의 음이나
그 밖에 기성의 음은 일체 그 재료로 하지 않고, 처음부터 모든 음을 새로
만들어 가겠다고 하는 사고방식이다.
  그러자면 먼저 '순음'을 만든다. 순음이란 것은 문자 그대로 아무 것도
섞이지 않은 아주 순수한 음을 말한다. 이것은 처음부터 전기적으로 만드는
수 밖에 방법이 없다. 피아노도, 플루트도, 오르간도, 언뜻 생각하면 상당히
순수한 음 같은 느낌이 들지만, 실은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재각기 많은
배음이라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기에 각각 '음색'이라는 것을 갖고
있으며 피아노, 플루트, 오르간이라고 곧 그 음색에 의해 구분해서 들을 수
있는 셈인데, 만약 이들 악기가 순음이었다면 이것을 음색으로 판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높이의 순음을 만들고, 이번에는 그것을 여러 가지로 합성한다.
그러면 거기에 여러 가지 음색이 생긴다. 그 종류는 몇천만, 몇억이라고 할
만큼 거의 한 없이 많고, 물론 기재의 악기의 음색도 가능하지만, 그보다는
우리들이 아직 한번도 들은 적이 없는 그런 진기한 음색이 얼마든지 가능한
셈이다. 이것은 모두 치밀한 수학적 계산과, 이것을 전자공학에
응용함으로써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것을 하기 위해서는 극히 정밀하고
게다가 대규모의 기계나 장치를 필요로 한다.
  음색만 아무리 많이 있어도 그것이 음악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작곡가는
음의 강약은 물론이고 자유로운 리듬, 음의 감쇠, 혹은 증강의 자유자재로운
변화, 고저의 여러 가지 변화를 이것도 역시 전기적인 처리에 의해 합성해서
만들고, 작곡가가 생각하는 대로의 음악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전자음악의 악보는 처음 보아서는 전혀 알수 없을 만큼 복잡한 것으로서,
악보와 많은 숫자와 정밀기계의 설계도와 같은 것으로 되어 있는 데, 이것도
아직 현재로서는 각 작곡가가 자기가 사용하기 쉽도록 멋대로 고안해서 적고
있는 것 같다.
  전자음악은 연주가라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모두 전기적으로 음이
만들어지고 컴퓨터에 의해 계산되고, 기억되고, 합성되어, 이것이
음악으로서의 목적을 위해 처리되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작품은
테이프와 그 밖의 수단으로 녹음되고, 이것이 또 전기적으로 재생된 것을
감상한다고 하는 일이 많은 것이다.
  작곡가는 자기자신 혹은 전자기술자와 협력하여, 최초의 기획,
작곡에서부터 마지막에 이것이 음이 되어 청중이 들을 때까지의 책임을 지게
되는 셈이다.
  이 작업을 하는 '악기'로는, 얼마간 쓰기 쉬운 형과 장치를 지닌 것을
신디사이저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종래의 피아노나 파이프 오르간처럼
완성된 악기는 아니기 때문에 조금 까다로운 작품이 되면 몇대의
신디사이저를 동시에 사용하거나, 혹은 몇번 녹음을 거듭하기도 해서
작곡하는 일이 많다.
  사고방식으로서는, 앞에 말한 모든 현실음을 사용하는 뮈지크
콩크레트보다 더욱 합리적이고 장래의 발전성도 있지만, 아무튼 기계장치에
많은 경비가 들기 때문에 선뜻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전자공학은 일진 월보의 빠른 개발에 의해 앞으로 어디까지 발전할 것인지
짐작을 할 수 없을 만큼 진보해 간다. 그러면 1년 전의 작품은 이미 낡았고,
5년 전의 작품은 유치해서 도저히 들어줄 수 없다고 하는 그런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과학적으로 보거나 작곡의 기법상으로 보거나, 전자음악은
커다란 장래의 희망을 가지면서, 현재는 아직 개발도상의 예술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장차 그 속에서 불후의 걸작, 천하의 명곡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현재 유능한 작곡가들이 여러 가지 실험과 창작에
노력하고 있는 것이 현상이다.
  이상과 같이 최근의 전혀 새로운 양식의 음악을 극히 간단하게
소개했는데, 여기서 다시 한번 종래의 음악으로 되돌아가 생각해 보자.
6세기경에 생겼다고 하는 최초의 기보법인 네우마에서 개량을 거듭하여
오늘날의 음악은 악보를 갖고 있다. 이것은 일단 완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연주자가 임의로 판단해야 하는 여지를 많이 남기고 있다. 가령 A와
B의 두 피아니스트가 같은 악보를 사용해서 연주했다 하더라도 그 2개의
연주를 비교해 보면 반드시 어딘가에 차이가 있다. 연주가 각자의 해석,
감각, 취미의 차이, 즉 개성이 자연히 혹은 인위적으로 세밀한 부분에서
연주의 차이가 되어 나타난다. 같은 오케스트라로 같은 베토벤의 교향곡을
연주해도 지휘자가 다르면 거기서 나오는 음악에 큰 차이가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 점이 종래의 음악적인 표현에 있어서 재미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만약에 하나의 표준적인 연주가 가장 좋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을 레코드라든가 테이프로 들어야만 한다면 이렇게 시시한 일은 없다.
쇼팽의 피아노곡도, 치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개성을 듣고 이해할 수가
있기에 음악은 즐거운 것이다. 전자음악과 같은 전혀 새로운 음악은 그
즐거움을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전자음악에도 이를 대신하는 즐거움이
장래에는 생길지도 모르는데, 어쨌든 인간이 만드는 예술이 인간성을
부정하지 않도록 미래의 음악에 대해서도 바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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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트에 대한 행동


[퍼온글]이천 오백년 야담

 

李朝 五百年 野談


                      차      례

第 一 話 - 寶娘과 靑湖 - 血痕奇譚   
第 二 話 - 樂浪과 好童 - 悲戀哀史
第 三 話 - 楊書房의 致富 - 抱腹絶倒
第 四 話 - 風流監司 - 節佳妓話
第 五 話 - 哀戀話 - 靑春悲戀
第 六 話 - 異花 雪竹梅 - 復讐奇譚
第 七 話 - 將軍과 義盜 - 名將逸話
第 八 話 - 煩惱僧 - 佛力奇譚
第 九 話 - 悲愴의 賦 - 百濟哀話
第 十 話 - 金議官 叔侄 - 韓末逸話
第十一話 - 李星信의 最後 - 海戰悲話
第十二話 - 阿非知의 九層塔 - 望鄕哀話  
第十三話 - 可憐杜十娘 - 名妓哀話
第十四話 - 公主와 神尺 - 怪夢奇譚
第十五話 - 餘愁 - 落照悲話
第十六話 - 斬首된 별아기 - 愛情悲譚
第十七話 - 千里遠情 - 義俠美譚 .

 

< 제 일 화 > 血痕奇譚(혈흔기담)
寶娘과 靑湖

  < 1 >
  지금으로부터 한 백오십년전쯤 될까.  충청도 어느 조그만 고을이다.
산천경개도 아름다우려니와 어염시수(魚鹽柴水)도 많아서 살기 좋은
곳이었다.
  어느해 여름이다.  이곳에는 다른 과실도 많이나지마는 특히 참외가
맛이 있어서 이 고을 들판에는 참외밭이 많이 있고 그 참외밭을 지키는
원두막이 여기저기 서있어 풍경이 그럴듯 하였다.  이 고을에 장난꾸러기
소년 준구(俊九)와 또 재동으로 유명한 청호(靑湖) 둘이서 밤중에 참외
서리(도둑질)를 하러 갔다.  청호는 준구를 그리 좋아 하지 않으나 준구가
끌어서 심심풀이로 간 것이다.  준구는 공부는 잘 못하지마는 활 쏘기, 칼
쓰기는 잘 하였고 청호는 재동이니만치 선생이 혀를 내두를만치 잘
하였다.    준구의 집은 명문이요, 부자이지만 청호의 집은 생원댁이요,
가난하기 짝이 없었다.  그들은 어두운데 살살 기어서 참외밭으로
들어갔다.  원두막에는 늙은 영감이 지키고 있는데 잠이 든 모양이다.  그
사다리 밑에 오줌독을 갖다 놓았다.  참외 따다가 소리가 나서 영감이
깨어 내려오드라도 오줌독에 빠져서 쩔쩔 매는 통에 도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준구와 청호는 숨을 죽이고 참외를 따서 미리 가지고 온
망태에 넣었다.  그런데 웬걸
   어떤 놈이냐?
  소리치면서 영김이 사다리도 내려온다.  맨 끝에 사다리에서 땅으로
내려오는데 발이 풍덩하고 오줌독에 빠져서
   아이쿠!
하고 부르짖으며 호통을 치는 사이에 준구와 청호는 도망해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따가지고 온 참외를 글방에 가서 동무들과 큰 잔치를
하였다.  이랬으면 좋았을텐데 또 며칠후에 참외 생각이 나고 그래도
다른데 갔으면 좋았을 것인데 그 영감이 오줌독에 빠지는 꼴이 재미
있어서 바로 그 참외밭으로 갔다.  전례대로 오줌독을 사다리 밑에 놓고
참외를 따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뒤에서
   이놈들!
하고 소리치며 한손으로는 청호의 머리꼬리를 잡고 한손으로는 준구의
머리꼬리를 잡으려는 순간 준구는 날쌔게 도망해 버리었다.  그래서
청호만 붙잡히고 말아서 원두막까지 와서 불을 켜갖고 얼굴을 비추어
보더니
   아니 요놈이 유생원 아들 청호로구나.  너 이놈 요전에도 왔지?
하고 단단히 혼을 낼 작정이다.  영감은 그 놈들이 또 올줄 알고 사다리
하나를 따로 만들어 두었다가 다른편으로 내려와서 잡은 것이다. 
   잘못했읍니다.  다시는 아니합죠
   뭣이 어쩌구! 또 한 놈은 뉘집 자식이냐?
   같이 오긴 했어도 몰라요
  청호는 혼자 망신을 당할지언정 동무까지 끌고 들어가기는 싫었다. 
   너 그대신 내일 이 참외밭 주인 영감에게 가서 단단히 사과를 해라,
알겠지
   주인 영감이 누구십니까?
   아니 그것도 모르니! 바로 바로 맹감역댁이다
   예!
  맹감이라면 이 고을에서 뜨르르하는 집안이다.  세도도 대단하려니와
전답이 많고 큰 부자이었다.  그리고 그 성질이 괄괄해서   호랑이 라는
별명에다가 너무 인색해서  맹돼지 라는 칭호까지 겸하였다.
   아차! 잘못 걸려 들었구나?
청호는 속으로 생각했으나 그까짓 참외서리쯤 보통이라고 안심하였다.
하기는 옛날에는 참외서리, 콩서리, 밤서리, 호박서리, 조금 크면 닭서리,
돼지서리까지 있어도 그런 것을 훔쳐다가 먹는 것쯤 보통이요, 죄로
인정하지 아니하였다.  아이들 뿐아니라 어른까지 이것을 한 재미로 하는
풍습이었다.  요전에 영감이 오줌독에 빠지고 참외를 도둑 맞아서 분김에
주인 맹감역에게 말하니
   꼭 그놈들을 잡아오게 내가 만나야겠네
하고 그 꾀를 가르쳐 준 것이다.
   너 내일 꼭 가거라.  안가면 너희집으로 잡으러 갈테니- 
  청호는 겨우 석방이 되어서 집으로 오니 길에서 준구가 기다리고 섰다가

   미안하다.  괜찮았니?
하고 물었다.  청호는 사연을 다 말하니
   저런! 큰일 날뻔했다.  내 말을 제발 말아다구 그집 딸하고 나하고
지금 혼인말이 있단다
하고 죽을 상이다.
   응- 네말은 아니할테니 걱정 말아라
   그 은혜는 갚으마
  청호는 이런 동무와 사귄 것을 후회하였다.  근묵자흑(近墨者黑)으로
나쁜 친구를 사귀면 나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이튿날 청호는
맹감역 집으로 찾아갔다.  전에는 몇번 만나서 서로 안면은 있는 처지다.
벌써 원두막지기 영감께서 연통이 있었는지
   오- 네 놈 왔구나
하고 대뜸 호령이다.
   이리 오너라
  맹감역은 청호를 끌고 안마당으로 들어갔다.  마당 담 밑에
복숭아나무가 있는데 거기다가 청호를 세워놓고 밧줄로 칭칭 얽어 맨 후에
미리 준비했던 채찍으로 때리기 시작하였다. 
   요- 발칙한 놈아- 그래 참외 도둑질도 나쁜데 영감을 오줌독에 빠지게
해서 다리를 다치게 하다니! 요놈 박살을 시키겠다
  맹감역은 채찍으로 청호의 팔, 다리 할 것 없이 닥치는대로 때리었다.
그러나 청호는 울지 아니하였고, 그가 하는 짓이 사람같지 않고 우습게
보였다.  청호의 몸에서는 붉은 피가 칠칠 흘렀다. 
   아버님! 그만 두세요. 용서하세요!
  계집아이가 뛰어나오며 소리쳤다.  청호가 힐끗 보니 자기보다 한두살
아래인 소녀인데 정말 드물게 보는 아리따운 처녀이었다.
   오- 저 처녀가 준구와 혼인 말이 있다는 맹감역 딸이로구나?
  청호는 순간 알아 맞추었다.
   네 이년 들어가- 어딜 나와서 무슨 소리야! 남녀가 유별한데
   그래도 그 도령을 놓아주지 않으면 안들어 가겠어요.  참외 좀
따먹었기로 그게 무슨 큰 죄라고 저렇게 때리셔요.  소녀는 못보겠어요
  당연한 말이요, 또 규중처녀로서는 대담한 짓이다.  청호는 고맙다는 듯
쳐다보는데 서로 눈이 마주치고 이상한 정이 통하는 듯 하였다.  그러나
청호는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머리를 숙이었다.
   너하고 같이 간 놈을 대라.  그렇지 아니하면 더 때리고 여기다가
밤새껏 매 두겠다
   그건 죽어도 말 못하겠읍니다
   뭣이 뭐야!  요 앙큼한 놈 같으니
  채찍이 또 휙- 하고 갈기어졌다.
   아버님!
  맹감역의 딸 보랑(寶娘)은 달려들어서 그 채찍을 붙잡았다.
   아니 너 저리 못가겠니?
  아버지는 호령한다.
   이 채찍을 저를 주시고 저 밧줄을 풀기전에는 못가겠어요.  아버님
이건 너무 과한 망녕이셔요.  죄송하오나--- 
  보랑은 울었다.  맹감역은 할 수 없이 채찍을 딸에게 뺏기고 밧줄을
풀어주며
   오늘은 놔준다마는 다시 그따윗 짓을 하면 용서없다
하고 화등잔만한 눈알을 부라리었다.

  < 2 >
  가을이다.
  어느날 매파가 유생원 집에 와서
   맹감역 댁 규수가 아주 얌전하니 한번 통혼해 보십쇼
하고 권고하였다.  그것은 보랑이 어머니에게 은근히 청혼 이야기를 해서
그 어머니가 매파를 유생원 집으로 보낸 것이다.
   글쎄.  우리같은 한미한 집과 혼인을 하겠소.  그건 하늘에 별따기보다
어렵소.  더구나 맹감역은 호랑이 같은데
   산에 가야 범을 잡지요.  막 닥들여 보십쇼.  안에서는 좋게 생각하니
  이래서 유생원은 떨떠름하지만 맹감역을 찾아 갔다.  맹감역은 아들이
잘못한 것을 사과하러 온 줄 알았더니 뜻밖에도
   저- 황송하온 말씀이오나 제 자식놈이 뭐 변변치는 못하오나 이
고을에서 재동이라 하옵고 또 똑똑하옵니다.  그런데 어떤 매파가 와서
댁에 따님과 혼인하면 좋겠다고 해서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하고 겨우 말하였다.
   뭐 뭣이 어쩌구 어째?
  맹감역의 얼굴이 금방 빨개지면서
   그런 아들은 셋을 뭉쳐 가지고 와도 내 딸과는 혼인할 수 없네.
언감생심에 그런 어림없는 말을 어디다가 하는 겐가.  자네가 미쳤네
그려!
하고 책망하였다.
   예- 저도 그렇게 생각했읍니다만 매파가 하도 와서 조르기에 혹시나
하고 온 것이 올시다
   그런건 꿈에도 생각지 말게- .  아니 그리고 자네 아들놈이 요전 우리
밭에서 참외를 훔쳐 갔다네- .  아니 내가 그래 참외도둑놈을 사위 삼을
줄 아나?
   예?  아니 그런 일이 있었읍니까?
   그놈 아비 한테는 말을 아니했군.  괘씸한 놈 같으니- 장가 보낼테면
참외도둑년이나 골라서 보내게 
  유생원은 극도의 모욕을 당하고 집으로 와서 청호를 불러 놓고 종아리를
때리었다.
  맹감역이 안으로 들어가서 저녁을 먹는데 그 부인이
   저- 유생원이라고 아시죠? 하고 물었다.
   알구말구.  왜?
   그리고 여름에 영감께서 참외 훔쳤다고 때려준 아이도 아시죠?
   그야 알지, 왜 그래?
   그런데 보랑이말요, 늘 그애 칭찬을 하면서- 암만해도 수상해요.
그리고 말유 준구하고 약혼하라고 하면 세길 네길 뛰면서 다른데는 시집
안가겠다고 하니 어쩌면 좋단 말유?
   뭐 뭐야, 미친년 같으니- 아니 어디 하필 사내가 없어서
참외도둑놈한테 가겠다는거야? 준구란 놈은 활 잘 쏘고 칼 싸움 잘하고
씩씩한 사내 대장부인데 그런델 싫다고? 눈깔이 삐었군 그래?
   영감 그 준구는 장래가 좋지 못할게래요.  또 여름에 참외도둑도
그애가 유생원 아들- 청호라든가를 꾀여서 갔대요
   아니 그건 어떻게 알았단 말요?
   글방 동무들의 입에서 나온 말예요.  나도 보랑이도 그 글방 동무의
어머니에게서 들었어요.  보랑은 그 청호가 동무를 위해서 말을 아니한게
정말 사내답고 훌륭하다고 그래요.  그러면서 눈치가 그애를 퍽 사모하는
것같아서 매파를 유생원 댁에 보냈어요
   응- 그래서 유생원이 왔군- 아니 그놈이 준구 말을 아니했다- 그건
기특한데
   기특하고- 말구요.  웬만하면 제 발뺌이라도 할겸 말할게 아네요.
그렇게 채찍으로 맞으면서 죽어도 말 못하겠다는 것을 보셔요.  얼마나
의리있는 남아인가!
   음- 하긴 그렇군- 그러나 그집은 문벌도 없고 밑이 째지게 가난하고
그런데와 창피해서 어떻게 혼인한단 말요.  그런 생각일랑 아예 하지마오
  맹감역은 화가 나는 듯 재떨이에 담뱃대를 탁탁 친다. 
   그야 그 청호가 이담에 잘 되면 괜찮을게 아뇨?
   그까짓 아이가 잘 되면 얼마나 잘 되겠소- 아 한다하는 명문 자제들이
많은데, 그리고 준구아버지와는 친하고 그집도 무관으로 이 고을에서는
쩡쩡 울리는 가문이요.  그런델 내버리고 아니 유생원- 하하하 쥐생원의
쥐새끼하고 혼인을 해? 그런 말은 입밖에도 내지 말우
   그래도 보랑이- 
   아니 그년은 버렸군.  아니 감히 그런 생각을 한담.  혼인이란 부모의
뜻대로 하는 법인데- 앙큼한년- 내 혼을 톡톡히 내 줘야지- 야- 보랑아
  맹감역은 호령을 해서 딸을 불렀다.
  보랑은 아버지 앞에 앉았다.
   너- 이년 그래 어디 남자가 없어서 참외도둑놈하고 혼인을 하려고
하니? 응-
   말씀드리긴 황송하오나 소녀와 혼인말이 있는 준구라는 사내는 참외
도둑대장이라고 하옵니다
  이 말에는 맹감역도 어이가 없고 입이 꽉 막히었다.
   이년 규중 처녀가 아비앞에 말을 또박 또박 건느는 법이 어디 있니?
   입은 하느님이 말하라고 내신 것이라 생각하옵니다.  입은 사내 입이나
아녀자 입이나 같은 것이라고 아뢰나이다
   뭐 뭐뭐 아니 조런 건방진 계집애 좀 보아- 그래도 또박 또박 말
대답이야
   그럼 소녀가 벙어리가 되었으면 아버님 마음에는 좋으시겠나이까?
   아- 조런 말 따위 좀 보아!
  맹감역은 기가 막히고 속으로는 우습고도 딸년이 맹랑하다고
감탄하였다.  계집애라고 얕잡아 볼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자기의
옹고집과 잘못을 약간 뉘우쳤다.
   좌우간 아녀자라는건 얌전해야 하는 법이다.  너는 좀 조심해야 한다.
어디 아비 앞에서 무엄하게- 
   아버지와 딸은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하나이다.  그런데 어찌 해서
아버지에게 말을 못하고 병신처럼 얌전만 하라고 하나이까?
   야! 조런 점점 하는 말따위 좀 봐- 아니 여보 마누라 어디서 저런 딸을
낳고 어떻게 가르쳤기에 저렇게 버르장머리가 없단말요?
   저- 죄송하오나 저는 가만히 요새 생각하오니 아녀자는 너무 사람 값에
못가고 죽은 것 같았어요.  저도 영감과 단둘이 있을때는 뭐 어쩌구
저쩌구 무흠하게 지내면서 남보는데는 점잖을 빼고 여편네는 사내앞에
쥐구멍을 못 찾으니 그게 암만해도 어떻게 잘못된 것같아요
   뭐 뭐 뭣이 어쩌구.  아니 세상이 뒤집힐라구 이러나.  그게 무슨
무도한 말요.  그래서 저년도 그러는군- 허- 뭐 집안이 망하겠꾼 예! 예!
  맹감역은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해서 담뱃대를 흔들면서 나가 버리었다.
   호호호호!
   호호호호!
  어머니와 딸은 마주 웃었다. 
  그때만 해도 옛날이요.  완고한 시절이었지만 여자가 눈뜨고 새 시대 새
세상의 싹이 트려는 징조가 이런 규중에서는 가끔 발로 되는 것이었다.
그렇지!  여자라고 말 못하고 사내앞에 죽어 대령할 것이 무엇인가.
보랑은 일찍 깬 선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머님 아무튼 저는 그 청호한테 시집 못 가면 죽겠어요
   어디 규중처녀가 그런 말을 하는 법이 있니.  혼인이란 그저 부모가
골라서 하는 게란다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이건 아버지나 어머니가 시집 장가 가는게
아니고 제가 가는거예요, 그런데 왜 제가 고르지 못할 까닭이 어디
있어요?
   허- 그건 규중 여자로서는 말할 수없는 게다.  너는 마침 그 청호를
보았으니 말이지 어디 처녀와 총각이 첫날밤 전에야 볼 수 있니.
초례청에서도 눈에 밀로 봉해서 신랑을 못보게 하는 법이다
   아이참 이상도 해라.  그래서 첫날밤에 맘에 안맞으면 어떡해요?
   다 그럭저럭 되고 사는게다
   그게 암만해도 틀린 것같아요
  보랑은 고개를 끼웃거리며 생각해 본다.  이것도 역시 옛날에는
여자로서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보랑은 의아하였다.
  참으로 영리한 소녀이었다.
   그래 어머님도 아버님이 맘에 맞으세요?
   예끼 그런말이 어디 있니.  맞고 안맞고가 어디 있니.  다 인연이요
배필이지
   그러나 뭐 저도 다 알아요.  어머님도 아버님이 마땅치 않은 것을- 
   아니 조런!  호호호!  하기는 네말이 옳다.  아버지는 너무 성미가
괄괄하고 무뚝뚝하고 고집 불통이고
   저것 봐요.  참 어머님은 무슨 재미로 한 세상을 사시는지 몰라요,
저는 그런 사내를 만날까 겁이 나요.  그런데 그 청호라는 도령은 참 크게
될 사람이고 재미있는 사내고 제게 꼭 맞을 것같아요.  이것도 인연이요,
배필이 아녜요?
   글쎄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기도 하다
   그러니 매파를 더 보내고 어머님이 아버님 맘을 동하게 하세요
   호호호!  아니 네가 벌써 그런 앙큼한 말을 하다니, 그래 너 정말
시집가고 싶으냐?
   아무때 가도 갈게 아녜요.  이왕이면 맘에 맞는 이 한테 속히 가야지
않아요?
   호호호!  기가 막혀라- 오냐 내 힘써 보기는 하겠지만 원체 아버지가
저런 바윗덩이라--- 
   너는 무남 독녀 외딸인데 시집을 잘가야 할텐데
   거기만 틀림 없어요
  어머니와 딸은 밤이 깊도록 이야기 하였다.
  이집에는 주인 식구보다 하인들이 더 많았다. 

  < 3 >
  그 이듬 해 봄이다.  갖은 꽃이 만발하였다.  보랑은 마당에 있는
복숭아 꽃이 활짝 피어 붉은꽃 분홍빛 흰빛이 섞인 복숭아꽃이 탐스럽게
되었는데 나비가 훨 훨 날아 들며 춤추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복숭아나무 등걸이에 매여서 매를 맞던 청호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때
눈에 마주친 것 사내답고 아름다운 풍채! 고것은 오매 불망이었다.
처녀로서 봄이 되니 더욱 임 그리는 정이 조발되었다.
   그이도 나를 생각할까?
  그것이 더욱 보랑을 안타깝게 하였다.  그이도 자기를 생각해 주기를
바라고 또 그럴 것같았다.
  이 고을에서 인근읍 청소년들을 모아서 글을 지어 상을 주는 백일장이
열리었다. 
  원님(군수)이 있는 관청 동원 마당에는 차일을 치고 인근읍 청소년들
여러백명이 모이어 와글 와글 하였다.  이것은 정말 한양 서울에서 과거를
보는 흉내요, 연습이었다.  말하자면 요새말로 모의시험이었다.  대청에는
원님을 위시해서 육방 관속이 나열해 앉았고, 인금읍 명문 거족들이 앉아
있다.  그 밖에는 보통 백성들이 마당이 터지게 둘러섰다.
  맹감역도 대청에 참례해서 앉아있다.
  응시하는 무리중에는 준구도 청호도 섞이어 있었다.
  글 짓는 운자가 나오고 청소년들은 지필묵을 꺼내서 글을 짓기
시작하였다.  모두 얼굴을 찡그리고 머리를 끼웃거리며 글을 짜내느라고
야단이다.
  글을 지어서 쓴 종이가 하나 둘씩 대청으로 올라갔다.  글을 꼬누는
관원이 둘러 앉아서 보기 시작하였다.  잘된 것은 관주를 주고 잘못된
것은 접어 넣었다.  관주에는 동그래미 하나 하는 것 둘하는 것 차차로 그
등급이 있었다.  많아야 두셋 관주이었다.
  그런데 유청호의 글에는 알관주가 다섯이 되었다.
  시험관 대표가 일어나서
   장원 급제는 유청호요- 
하고 청호를 나오라고 해서 상을 주고 그 글을 읊었다.  정말 명문
명시었다. 장내는 뒤끓고 마당에 섰는 유생원은 너무 기뻐서 울었다. 
  그중에 놀란 것은 맹감역이다.  참외도둑했다고 나무에다가 밧줄로
동여매고 채찍으로 때리던 아이가 일등이 된 것이다.  더구나 유생원이
청혼하는 것을 책망해 보내고 딸에게도 호령하게 한 바로 그놈이다.
맹감역은 기가 딱 막히고 얼굴이 붉어졌다.
  맹감역은 집으로 와서 안에 들어가 저녁을 먹는데 아내와 딸이 옆에서
시중하면서
   오늘 누가 장원급제를 했어요?
하고 물었다.
   그까짓건 아녀자들이 알아서 뭘 해
  그는 입맛을 쩍쩍 다시면서 다른 말을 아니하였다.
   왜 우리도 글을 아는데 좀 듣고 싶군요
   글쎄 그놈이 급제야
   그놈이라니요?
   아- 왜 저, 유생원 아들 청호말야
  보랑이 움직 하면서
   예?  아- 정말씀이세요.  아이그 어쩌문!
하고 소리쳤다.
   아녀자는 얌전해야 하는 법야
   그럼 기뻐도 죽은척 가만히 있어야 해요?
   허- 또 그따윗말!
   인제 그 청호를 용서하시겠지요?
   그까짓 고을에서 급제한게 소용있니.  정말 한양 서울서 급제를 해서
한림학사가 돼야지
   그렇게 되면 소녀를 그댁으로 보내시겠어요?
   그야 그렇게 하겠지만 그집에서 말을 들어 줄지- 그러나 웬걸 알성
급제를 하겠니?
   저는 꼭 할 것같아요
   글쎄 우리 고을에는 여러해동안 그런 인물이 나지 않았는데- 아니
그놈이 그렇게 재주가 있는줄은 몰랐다.  그놈 때린 것을 생각하니
부끄러워서-----
  맹감역도 그제서야 후회를 하는 모양이다.
   그참 준구는 어떻게 되었어요?
  보랑의 어머니가 물었다.
   그건 뭐 말이 아냐. 그놈야 무관이니까
   무관도 글은 알아야죠
   그렇긴 해

  < 4 >
  가을이 다시 되었다.
  한양 서울에서 과거를 보게 되었다.
  전국에서 수재들이 다 모였다.
  그런데 역시 유청호가 알성 급제로 장원을 해서 한림학사가 되었다.
임금님이 특히 불러서 보시고 이야기까지 하시었다.  이것이야 말로
하늘에 별따기보다 어렵고 다시 없는 영광이다.
  청호가 고향으로 오자 원님이 친히 나오고, 삼현육각으로 주악을 하면서
환영하였다.  이것은 한 고을의 큰 영광이기 때문이다.  구경하는
남녀노소가 구름 모이듯 하였다.
  청호가 집으로 가는데까지 삼현육각을 잽히고 청호는 한림학사의 예복을
입고는 사린교를 타고 군노사령이 호위해서 행진하였다.  (三絃六角 :
거문고, 가야금, 당비파의 세현악기와 북, 장구, 해금, 피리, 두개의
대평소로 된 기악편성 )
  보랑도 그 어머니와 함께 사랑 대청에서 내려다 보았다.  맹감역은
어이가 없는 듯 바라보고 있다.  자기가 그 청호에게 채찍을 맞는 것같은
느낌이었다.  딸을 힐끗 보니 웃으면서도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놈의 참외밭은 공연히 해가지고--- 내년엔 보리나 심어야지
  맹감역은 혼자 중얼거리고 있다.
  며칠이 지나서이다.  맹감역은 유생원 집을 찾아왔다.
   저-- 이거참 말하기는 거북하지만 우리딸과 댁의 아드님과 백년가약을
맺는 것이 어떻소?
  맹감역의 평소의 우렁찬 목소리는 어디로 가버리고 가늘고 떨리는
목소리었다.
   글쎄요.  댁의 따님 셋을 뭉쳐와도 내 아들과는 혼인할 수 없을걸요
   그런 말씀 듣게 되었소.  그러나 과거지사는 일장춘몽으로 돌리고
어떻게 생각을 돌려 보시오
  그러자 청호가 들어와서 절을 하고
   가서 뵈옵는다는게 죄송합니다
   참 이번 과거에서 급제한 것은 감추한 일이요, 큰 영광일세
   다 고을 어르신네들의 덕택이옵지오
   내가 그대를 때렸으니 대신 나를 때려주게.  정말 부끄럽네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소생은 퍽 다행으로 생각하옵니다
   아니 그럼 그것 용서하겠나?
   소생은 그 즉시로 잊어버렸나이다.  그 대신 잊지 못할 것은 보랑
아가씨의 고운 마음씨입니다.  그 채찍과 그 마음씨로 저는 더 열심으로
공부해서 급제까지 아였나이다
   응- 그럼 전화위복이 되었네 그려- 참 그 참외밭은 그만두고 보리를
심게 하였네
   아니올시다.  그건 그대로 두십쇼.  그래서 가끔 그 원두막에 놀러
가서 그때 생각을 하게 해주십쇼.  소원입니다
   아니 그럼 그 참외밭을 온통 자네에게 줌세
   감사한 말씀입니다
   한림학사가 되더니 아주 점잖고 어른이 되었는데--- 참 지금 춘부장과
이야기중일세마는 어째 내 우매한 딸이라도 데려 오겠나- 
   황송하옵니다.  그야 두 어르신네께서 작정하실 탓이지오
   아니 이 댁 규수와 혼인 하겠다는 게냐?
   황송하오나 소자는 벌써 보랑아가씨와 마음으로 약혼하였나이다
   고맙네.  고마워-- 이런 기쁜 경사가 어디 있나.  사실은 거절 당하면
내딸에게 면목이 없어- 아 그년이 청호 아니면 시집을 아니 가겠다는군?
  그 이듬해 봄에 이 고을에서는 전무후무한 혼례식이 거행되었다.
그것은 유청호와 맹보랑의 혼인이었다.  원님과 사또까지 참석하였고,
한양에서 임금님 특사까지 내려왔다.
  첫날밤 신랑이 신부옷을 벗기고 원앙금침에 누울때 보랑은
   이것부터 보셔요
하고 내놓는 것은 피가 묻은 채찍이었다.
   아! 이건 내가 맞던 그것
   예- 저는 이걸 늘 간직하고 잘때면 품에안고 낭군 생각을 했어요.  이
피를 저는 만져 보고 입 맞추고- 부끄러운 말씀이오나-- 
   고맙소 고마워.  이 채찍이 나를 급제하게 하고 그대와 혼인하게 한
것이요  
  그들은 밤깊도록 이야기하다가 한 이불속에 들어가서 봄꿈을 꾸었다.
다시 없는 인생의 행복을 그들은 독차지 한 것 같았다.
  그후 유청호는 벼슬이 점점 높아가 승지 참판으로 판서까지 되고 나중엔
정승이 되었다.  거기에는 유청호의 재덕도 있었지마는 보랑의 숨은
공로가 더 컸다.
  아들딸 오남매나 두고 고향에 가면 그 참외 원두막에는 반드시 찾아
가는 것이었다.
  이것은 뒤에 알려진 것이지만 준구는 산적이 되어 가끔 고을에
출몰하다가 잡히어 옥에 갇힌 것을 청호가 꺼내 주어서 회개하고 무관으로
출세하였다는 것이다.

< 끝 >

 

 

<제 이 화 > 悲戀哀史(비련애사)
樂浪과 好童


  왕자의 몸으로서 그 무슨 야릇한 운명이기에 그리운 고국과 궁성을
등지고 적국인 낙랑으로 망명을 해야 했으며 또 불구대천의 원수인 낙랑왕
최리(崔理)의 딸인 낙랑공주와 불의의 사랑을 맺게 되었던가!  이런
이면에는 필시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곡절과 비련애사가 숨어
있으리니 이제 그 눈물겨운 이야기의 한토막을 더듬어 보기로 하자.
 
  邪戀의 犧牲
  한(漢)나라 오랑캐의 등을 믿고 고구려 국경을 침범한 낙랑군을 일거에
무찌르고 승전고를 울리면서 서울로 개선한 청년장군 왕자호동의 인기는
고구려 방방곡곡에 애국과 환희와 동경의 상징으로서 떨치게 되었다.
그가 궁정으로 개선한 후 승전의 기쁨이 넘치는 궁성에서는 낮이면 왕자의
 승전기념으로 활쏘기와 말달리기가 벌어져 장차에 이룩할 낙랑국 통일의
기운을 더 한층 높이게 하였고, 밤이면 승전잔치가 벌어져 문무백관과
함께 고구려 명문의 어여쁜 딸들은 꽃단장 고이하고 절색호남인
호동왕자의 눈에 들기를 염불이나 하듯 갈망 하였다.
  왕자를 하늘처럼 연모하는 수많은 여성중에서 그를 연모하고 달래어
보고 유인해 본 나머지 마침내는 무서운 간계로써 그를 궁성에서
추방하려는 요부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일세에 미모를 자랑하던 제이왕비
월선궁(月仙宮)이다.
  왕비에게는 수수께끼와도 같은 두가지 비밀이 있었다.
  하나는 궁녀의 소생인 서자(庶子) 왕자호동을 없애버리면 자기의 소생인
어린 왕자가 태자가 될수 있다는 왕위에 대한 욕망이고, 다른하나는 어린
왕자가 태자로 승진함에 있어서 방해가 되는 왕자호동에 대한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불타는 불의의 정욕이었다.
  왕비와 왕자와의 치정, 생각만 하여도 하늘에서 금시 벼락이라도
떨어지고 만세에 웃음꺼리가 될 추하고 무서운 탈선이었건만 왕비에게
있어서는 어린 왕자의 태자 승진은 고사하고 온 천하를 다 주어도 바꿀 수
없는 것이 호동에 대한 도적 사랑인 것이다.
   아! 내가 미쳤나 보다.  그는 어린 왕자의 적이 아닌가?  나는 원수로
미워해야 한다.  그를 궁성에서 추방만 하면 나의 어린것은 태자가 되고
마침내는 고구려의 왕위에 오를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한 왕비는 어느날 밤 대무신왕과 동침하는 자리에서 호동은
행실이 나빠서 자기에게 이상한 눈치를 보내는 것이 하도 수상하더니 필경
위기일발에 욕을 면하였으니 이대로 두었다가는 신성한 왕실의 오명은
고구려의 역사를 더럽힐 것이라고 속삭였다.
  이 말을 들은 왕은 눈알이 뒤집힐듯 놀라기는 했으나 호동에 대한
애국심과 송죽같은 절개를 믿는 그는 이런것은 필시 호동이가 태자가 됨을
시기하는 왕비의 참소로 돌리고 도리어 왕비의 실없는 이야기를 책하였던
것이다. 
  왕이 왕자호동을 믿고 사랑하는 반면 왕비에 대한 왕의 사랑은 오로지
그 육체뿐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아는 그는 왕에 대한 원망보다도
호동이가 더 한층 미워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요즈음 왕자가 낙랑군을 무찌르고 개선한 후에는 호동의 무훈과
인기는 승전고 소리와 함께 온 천하에 퍼졌고 왕실에서는 호동왕자를
태자로 봉하자는 소리가 나날이 높아 갔다.
  이런 소식 저런소식 모두가 왕비에게는 두통꺼리인데다가 요즈음 그의
귀에까지 날아 온 또 하나의 소식은 고구려 명문이며 정승인
막리지(莫離知)의 딸과의 혼담이다.
  어느날 밤 왕비로 부터 호동의 행실에 대하여 뜻밖의 이야기를 들은
왕은 꽃다운 청춘의 왕자의 심정을 잘 알았다는듯이 어여쁜 처녀와의
혼례로써 왕비와의 치정관계를 미연에 방지하자는 아름다운 사랑의
전술이었으나 일이 이렇게 되면 갈수록 왕비의 고민은 더욱 커갔고 그의
질투심과 복수심은 불길일듯 하였다.
  이처럼 태자에 대한 계승문제와 호동에 대한 불의의
편사병(片思病:짝사랑병)으로 나날이 여위여 가는 왕비의 모습울 바라보는
왕은 고구려의 명의를 모두 불러 들여서 갖은 명약을 다 써보았으나
백약이 무효였다.
  왕비의 미모와 어린 왕자를 극진히 사랑하는 노왕은 급기야 왕비의
소원대로 왕비궁에 별거를 시켜 정양케 하였다. 
  금과 옥으로 현란하게 장식한 별궁에서 어린왕자를 재워 놓은 왕비는
얼빠진 사람 모양으로 누워보고 앉아보고 실내를 오락 가락 거닐어 보다가
마침내 그 심정이 폭발되어 시녀를 불러 호동에게 편지를 띄웠다.
  긴급한 사연이 있으니 급히 와달라는 것이었다.
  이제야 때는 왔다.
  사랑의 승리냐?  그렇지 않으면 네가 죽느냐 내가 죽느냐 마지막
승부이다.
  이렇게 생각한 왕비는 설합을 열어 깊이 간직하여 두었던 비수를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품속에 넣고는 잠자는 어린 왕자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며
눈물에 젖은 손길로 쓸어보다가 무거운 걸음을 창곁으로 옮겼다.
  꽃향기 무르익을 반월궁(半月宮)의 달밤은 어느듯 깊어 후원의
꽃동산에서는 새소리도 벌레소리도 끊어져 밤은 죽은듯이 고요하였다.
  이때 아무런 곡절도 모르는 왕자 호동은 시녀의 전갈로써 연성 기침을
하며 터벅터벅 걸어 오자 조심스러이 왕비궁의 문을 여는 것이었다. 
  실내는 캄캄하였다.
   어마마마 저를 부르셨나이까? 
   쉬! 내가 불렀어
   어이하여 불을 안키시나이까? 
   쉬! 대왕께서 옆방에 주무셔
   어이하여 이 밤중에 저를 부르셨나이까? 
   그대가 보고 싶어서 불렀어 자! 이리와
  왕비는 마치 어린 소녀 모양으로 달빛에 어린호동의 얼굴을 동경하듯
바라 보다가 호동의 손을 왈칵 잡아 당기며 자기의 침상으로 강제로
이끌고 가고야 말았다.
   어머니 왜 이러십니까? 
   어머니?  나는 그대의 어머니가 아니다
   그러면 어머니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십니까? 
   이거 왜 이래, 이러기야?  그대는 나의 심정을 알터이지.  잠시라도
그대 없이는 나는 못살 몸이야.  자! 나를--- 나를--- 
   어머니! 어머니! 이몸은 어머니의 아들이 올시다
   듣기싫어, 그대만 나를 생각하여 준다면 내 일생을 그대에게 바치겠어.
 그대가 만일 원한다면 고구려를 탈출하여 어느곳이나 먼나라로
도망이라도 칠테야.  설사 죽어서 지옥에 가는 한이 있드래도 나는 그대의
사랑을 받고 싶어
  왕비는 정욕에 허덕어리며 마치 나무에 서린 배암처럼 두팔을 왕자의
허리에 감고 쓰러지려고 최후의 발악을 하였으나 억센 힘으로써 뿌리치는
찰라 호동의 옷에 매여 달린채 침상에 쓰러지고야 말았다.
  이때였다.
  모든것을 단념하고 복수심에 불타는 왕비는 불현듯 품속에서 비수를
꺼내기가 바쁘게
   도적이야, 도적이야
하고 비명을 질렀다.
  죽은듯이 고요한 밤중에 비명소리를 들은 무관과 시녀들은 모두가 불을
켜 들 사이도 없이 왕비궁으로 달려 들었다.
  옆방에서 깊은 잠에 취한 왕도 비명소리에 깜짝놀라 등불을 켜 들고
뛰어 들기가 바쁘게 웬놈이냐고 뇌성벽력같이 소리를 질렀다.
  등불이 침상 앞으로 가까이 갈때에 그들의 시야에 나타나는 광경은 실로
놀라운 장면이었다.
  머리를 헝크리고 침상에 누워서 비수를 든 왕비와 왕비의 품안에서 빠져
나오는 사나이였다.
  왕은 칼을 빼어 들고 단칼에 사나이의 목을 치려다가 문득 그 얼굴을
쳐다 볼때 눈이 뒤집힐듯 놀라며 八자 수염은 푸들푸들 떨기만 하다가
   아니 이것이 웬말이냐?  네가 호동이가 아니냐!
   오늘도 나의 침실로 숨어 들어 이몸에 욕을 보이려다가 나중에는
이칼로 저 어린 왕자까지, 아, 대왕마마! 이칼로 이몸을 죽여주사이다.
존귀한 왕실을 천추에 더럽히고 천륜을 배반한 저 왕자와, 그 어이 같은
하늘 아래서 사오리까, 자! 어서 이 칼로 이 몸을 죽여 주사이다. 저 어린
왕자도!
  이것이 왕비의 요사스러운 흉계임을 모르는 여러 사람들은 입을 딱
벌리고 뜻하지 아니한 도적의 얼굴을 바라보자 제마다 눈을 부비며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기 시작한다.
  일도(一刀)에 도적의 몸을 치려돈 왕은 씰룩거리며 도적의 얼굴을 쏘아
보다가 비명같은 욕설을 탄환처럼 대체 퍼부었다.
   네 이놈! 이꼴이 대체 무엇이냐?  내 일찌기 네놈의 행실에 대하여
추잡한 소문을 들은바 있었으나 도리어 애꿎은 왕비를 책하였더니 그것이
필시 정말이고나.  미련한 놈! 못난 놈! 바야흐로 태자가 되어 천하의
절색가인과 혼례를 맺을 몸이 그래 넓은 천하에 하필 계집이 없어 네
어미를?  나의 안해를?  에이 왕실을 더럽히고 천륜을 배반한 놈! 내눈
앞에서 썩 사라져라!
  머리끝까지 분노가 치밀어 오른 왕은 칼을 떨어뜨리며 그 자리에 맥이
풀려 쓰러지고야 말았다.
  왕비궁을 나선 호동의 앞길은 캄캄하였다.
  일조일석에 왕자의 몸에서 역적 보다도 더 추한 누명을 쓴 호동은
천하가 넓다하나 하루밤의 잠자리를 의지할 곳조차 없었고, 사람을
만나기조차 무서워지는 몸이었다.
  그의 발길은 저절로 연무장(演武場)으로 향하였다.
  연무장은 높은 산상인데 아침해가 솟아날 때부터 서산에 해가 질 때까지
고구려의 젊은 무사들이 호동왕자의 지도로써 고구려 통일의 기치 밑에
말달리기와 칼쓰기 활쏘기를 훈련하는 곳이었다.
  호동은 연무장의 바위옆에 섰는 고목에 보국통일(報國統一)이란 네
글자를 새겨놓고 고구려의 산야를 굽어 보며 합장한 후 급기야 원수의
나라인 낙랑국으로 망명할 것을 결심하고 밤 사이에 국경으로 달리는 몸이
되었다.
  낙랑하면 그 이름만 들어도 우선 신기(神器) 자명고(自鳴鼓)가 있다는
것과 또 천하의 절색이라는 최리왕의 무남독녀인 낙랑공주의 존재가
신화처럼 뭇 사람에게 동경심을 이르키는 나라이다.

  公主와의 奇遇
  연무장에서 사냥꾼으로 변복을 한 호동이가 고구려 국경을 넘어
낙랑땅의 어느 국경의 산악에 올랐을 때는 어느듯 먼동이 트고 아침해가
밝아오는 것이었다.
  험상한 산골짝 길을 낙랑의 파수군사에게   기어 가며 간신히 피신해 온
호동은 지칠대로 지쳐 바위위에 쓰러진채로 한잠을 자고 나니 어느듯 해는
중천에 떠 올랐다.
  문듯 옆을 바라보니 거기에는 웅장한 절이 있고 절벽 아래를 굽어 보니
거기에는 진달래 핀 바위밑에 신선같은 샘물터가 있다.
  호동의 눈앞에 율동하는 대자연은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고 금시
하늘에서 선녀라도 내려올 듯한 선경이었다.
  풍류를 종아하는 호동은 그가 항상 품속에 지니고 다니는 피리를 끄내어
들고 온갖 새의 노래와 온갖 꽃의 향기에 화답하여 아름다운 곡조를 불기
시작 하였다. 
  이때 황홀한 피리소리에 귀를 쫑깃하고 절의 문을 열고 살금 살금
걸어나오는 꽃같은 처녀 한쌍이 있었으니 하나는 천하에 이름높은
낙랑공주였고 다른 하나는 그의 시녀 샛별이었다.
  두 처녀는 절벽위에서 백학과도 같이 높이 앉아 피리를 부는 선인같은
모습을 우러러 보면서 절벽아래로 다달았을 때 호동은 무슨 인적소리에
소스라쳐 놀란듯 피리를 입에서 떼고 들펀들펀 사위를 살펴 본다.
  공주와 시녀는 당황히 샘물터의 꽃속에 숨어 들어 호동의 일거일동을
엿보고만 있는 것이다.
  호동은 활을 메고 일어서서 큰 기지게를 한후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아! 저 남쪽에 낙랑의 산야가 보이는구나. 저 산과 들을 넘고 넘어
천리길을 가면 낙랑의 왕검성(王儉城)이 있을 터이지---.  아! 원수의
자명고! 자명고만 찢으면 고구려가 통일될 것을---.  그렇지, 자명고실의
열쇠를 낙랑공주가 가지고 있다 하니 공주와 가까이 하면 좋은 수도
있으련만 그러나 하늘의 별따기지---.  아! 피로하다.  오늘은 저 절에
가서 하룻밤의 잠자리를 청하여 보리다
  이렇게 중얼거리며 절앞으로 간 호동은
   스님 계십니까.  스님 계십니까
  불러 보며 몇번이나 옷깃을 바로 잡는다.  안에서 목탁소리가 뚝 멎으며
백의를 걸친 승려가 당황이 나오더니 호동의 아래와 위의 행색을 흘겨보며
입에 손을 대고
   쉬! 웬 사람이요?
   소인은 지나가던 사냥꾼으로 하룻밤의 자리를 청하러 왔나이다
   아니 될 말씀! 지금 우리 절엔 대왕님께서 행차하여 불공을 드리고
있소.  어서 다른 암자로나 가보시요
하고는 두말도 없이 안으로 사라진다.
  대왕께서 행차라니 그러면 최리왕이 왔단 말인가?
  그렇지 최리는 필시 고구려를 정복하려는 야심을 품고 국경의 진지를
순찰 나왔구나.
  이런 생각이 돌자 호동은 금시 칼집에 손을 대며 이 기회에 원수를
갚으려고 문쪽을 노려다보다가 자명고를 찢기 위하여는 그에게 충성을
가장하고 공주에게는 사랑을 가장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하는 생각이
머리위에 벙긋하자 그는 빙그레 미소를 띄우며 샘물터로 한걸음 두걸음
발걸음을 옮기었다.
  호동은 바위위에 피리를 얹어 놓고 그리고 샘물을 뜨려하니 표주박이
없다.
  앞뒤를 두리번거리다가 그는 하는 수없이 느티나무 잎사귀를 하나 따서
둘둘 말아 표주박을 만든 후 물을 떠서 마시려 하니 입까지 닿기전에 물이
주르르 흐른다.
  이때 꽃속에서 간드라진 웃음소리가 난후 꽃같은 여인이 수집은듯
고개를 돌리고 표주박을 살며시 내여 미는 것이었다. 
  꽃속에서 나타나는 미지의 여인은 이땅에서 사는 여인이라는니보다 어느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선녀와도같이 황홀하였다.
  표주박을 사이에 두고 주고 받는 떨리는 손과 손--- .  말없이 바라보는
눈과 눈에는 숨은 정열의 불꽃이 뛰었다.
  호동은 공주를 바라 보다가 샘물을 마신후 표주박을 돌려 주고는 말없이
한걸음 두걸음 걸어 간다.
   저--- ,  저--- ,  잠간만--- 
  공주는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견디지 못하여 재빠르게 달려
가며 간신히 말을 건네었다.
   무삼 일이오니까?
  호동은 가는 길을 멈추어 뒤돌아 서며 다시 공주를 바라 본다.
   저--- , 저--- , 그대는 누구시며 어느곳에 사시온지? 
   이몸은 사냥꾼의 몸집인데 어찌 정처가 있아오리까.  하늘에 떠 도는
구름과도 같이 오늘은 서쪽 내일은 동쪽 산이나 들이나 자는 곳이
사냥꾼의 집이로소이다
   집이 없다고요? 오호호--- 어찌면--- 
   안녕히 계십시오
   저--- 저 그대의 이름은?
   제 이름은--- 저--- 저--- 아슬라--- 
   아슬라?  아슬라!  아슬라---
  호동은 하룻밤의 잠자리를 얻고자 암자를 찾아 떠나 간다.
  공주는 떠나가는 호동을 안타까이 바라보며 혼자 말로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어쩌면 저렇게 잘 생겼을까?  아무리 보아도 범상한 사나이는 아니야.
샛별아 너는 어떻게 보았니?
하는 것이었다.  시녀 샛별은 아양을 떨며
   대장부다운 그 풍채와 어글어글한 그 눈 키가 후리후리 큰데다가 활을
멘 그 자태, 어찌보면 어느나라의 장군과도 같고 또 어찌보면 나이가 젊고
수줍은듯한 높은 인품이 어느 나라의 왕자와도 같은 기상인가 하옵니다
   네 눈이 바로 보았다.  그이가 사냥꾼이 아니고 어느 나라의
왕자였다면 얼마나 좋을가--- .  어이하여 저렇게 잘난이가 이런 험상한
두멧골에 사냥꾼으로 태여 났을까?  천하에 인물이 잘났다는 고구려 왕자
호동도 저만치는 못 생겼을거야
   공주님은 언제나 고구려 왕자 호동 호동--- 하시는양이 아무리 보아도
좀 이상해요.  오호호-- 공주님!
   그런 철없는 소리 마러라.  호동은 우리 낙랑국의 원수이며 부왕의
원수가 아니냐.  호동왕자하면 말만 들어도 이가 갈린다
  공주와 시녀는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샘물터로 가서 그옆 바위
위에 앉으려 할때 놀라운 것을 보았다.
  그것은 호동왕자가 잊어버리고 간 피리였다.
  공주는 무슨 보배를 다루듯이 조심 조심 들어서 품에 안아 보고 볼에
비벼보며
   그 사나이는 이 피리를 놓고 갔으니 다시 올터이지.  샛별아 너는 잠간
비켜 주어, 나는 꽃속에 숨어서 그가 와서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보기로
할테야
하는 것이었다.  샛별은 방긋 웃으며 절안으로 들고 공주는 꽃속으로 살금
살금 들어 간다.
  풍악을 좋아하여 가야금을 잘 하는 공주는 피리에도 능하여 호동이가
불던 그 곡조를 따라 부는 것이었다.
  이때 피리를 찾으러 샘물터까지 터벅 터벅 온 호동은 꽃속에서 흘러오는
피리소리에 놀라운 표정으로 어리둥절하여 서 있을 때 꽃속에서 살며시
솟아나는 것은 미소를 띄운 공주의 활홀한 얼굴이었다.
  공주는 꽃속에서 나와 피리를 내어 밀며
   대장부의 피리에 소녀의 입술을 대였아오니 저 샘물로 깨끗이 씻어
드리리오리다
하고 샘물터로 사뿐 사뿐 걸어간다.
   아--- 아--- 아니오이다.  그냥 주소서
   왜 그럴까요?
   글쎄 왜 그럴까요?
  피리를 사이에 두고 긴사이 말없이 바라만 보는 왕자와 공주의 손은
파들 파들 떨고 있었고 별처럼 빛나는 눈동자들은 서로 수줍은 그 무엇을
애원하듯 불꽃만 뛰고 있었다.
  이처럼 서로 누구인지도 모르게 알게 되고 급기야 정이 들고 사랑의
싻이 트게 된 공주는 부왕 최리에게 아슬라란 사나이를 등용할 것을
간청하니 완고한 왕도 금이야 옥이야 사랑하는 무남독녀인 공주의
소원인지라 한마디로 허락하여 궁성의 무관을 삼으니 공주와 호동의
기쁨은 한이 없었다.
  다음날 낙랑의 국경진지를 순찰하고 왕검성으로 돌아가는 최리왕 일행의
행렬에는 번들하게 낙랑의 무관복으로 마상에 앉은 늠름한 호동왕자가
유달리 보였고 그 옆에는 꽃수레를 탄 공주가 있었다.
  이리하여 무슨 신화와도 같이 공주와 샘물터에서 인연을 맺게된
왕자호동은 자명고를 찢은 후 낙랑왕 최리를 없애버리고 고구려를
통일해야겠다는 무사다운 결심과 함께 눈앞에 보이는 아리따운 공주의
모습을 바라 보면서 왕검성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漢將의 짝사랑
  최리왕 일행이 낙랑국경을 순찰하고 돌아온 왕검성은 고구려를 정복하기
위한 전쟁 준비와 호화로운 잔치로 떠들썩하였다. 
  낮이면 날마다 싸움터로 떠나는 군사들을 위하여 연무장에서 활쏘기와
칼쓰기가 벌어지고 밤이면 한(漢)나라에서 파견된 파달장군(巴達將軍)을
위하여 잔치가 벌어졌다.
  그런데 궁성에서는 이상한 소문이 공주(公主)궁에까지 흘러 들어왔다.
  오랑캐 장군 파달은 낙랑공주와 백년 가약을 맺게 되고 그렇게 되면
한나라에서 원병이 오게되어 고구려를 정복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공주궁에서 시녀 샛별에게 이런 뜬 소문을 듣게 된 공주는 넋을 잃은듯
그 자리에 맥이 풀려 쓰러졌다.
  생각만 해도 무서운 얼굴!  파달장군!
  잔인무도한 파달!  자기의 비위에 거슬리는 사람이 있을 때에는 그
목숨을 파리새끼 한놈보다도 쉽사리 없애어 버리는 파달이가 아니던가?
  그가 이몸의 낭군(郞君)이 되다니?
  생각만 하여도 몸서리 치는 노릇이다.
  오랑캐의 아내가 되느니보다 차라리 죽는 편이 좋을 거야!
  그는 품속에 간직한 비수에 손을 대며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리운 아슬라의 얼굴이 동동 떠오른다.
  간밤에 저 창밖 접동새 우는 능금나무 아래서 말없이 바라보며 힘껏
포응해주던 아슬라의 그 얼굴!
  늠름한 그 풍채!  어글어글한 그눈!
  자명고(自鳴鼓)가 보고싶다던 그 북소리같이 궁굴은 그 음성!  그
진실한 마음!  순결한 사랑!  아!  아슬라!  아슬라!  나는 어찌해야 좋단
말이냐!
  공주는 흩어진 머리를 가다듬으며 고개를 간신히 들고 샛별을 불렀다.
  별실의 문이 열리며 샛별은 능금 하나를 들고 나왔다.
  공주는 능금을 받아들고 칼로 구멍을 파서 종이쪽지 하나를 감쪽같이
숨겨 넣는다.
   샛별아 이것을 오늘밤도--- 
   공주님 아이 어쩌나--- 이 밤중에--- 
   귀여운 샛별 나의 심정을 알터이지, 오늘밤도 이것을 아슬라의 방(房)
앞 능금나무에다 달아매고 오란 말이야, 눈에 뜨이지 않도록 조심해---
샛별!
   공주님!
   샛별!
   공주님 제손을 꼭 잡아 주사이다.  그러면 무서움이 덜릴 것만 같아요
   샛별
  공주는 잡고 창을 열고 바래 준다.
   으앗!
  다음순간 비명을 지르며 공주와 샛별이 실내로 뛰어들 때 정원(庭園)의
나무 뒤에서 검은 그림자가 서서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공주와 샛별은 들창 안에서 머리칼을 하늘에 올린채 바르르 떨며
사라지는 그림자를 흘겨볼 뿐이다.
   저놈이 필시 무엇을 감시하는 꼴이고나
   필시 그런가 봐요.  어제밤도 저 나무 뒤에 어떤 그림자가 있었어요.
달빛속에 흐릿하지만 파달장군의 시종(侍從)일시 분명했어요
   옳지! 그런 꼬락선이야--- 비겁한 자들--- 
   공주님!
   샛별!  인제 아니가도 좋아!
   공주님!  저는 인제 무섭지 않아요.  저 밉살스러운 놈을 생각하니
웬일인지 제게 힘이 생겼어요
   샛별!  샛별!
  샛별은 공주의 부름에 댓구도 없이 창문을 뛰어나가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공주는 창곁에서 멍하니 밤하늘을 바라보며 아슬라의 얼굴을 그려본다.
  밤하늘에 뜬 조각달은 아슬라의 눈섭같고 반짝이는 별들은 영채나는
그의 눈동자와도 같이 아름답게 보였다.
  샛별이 능금나무에 달아놓은 능금속 글월을 보고 잠시 후이면 달려올
아슬라를 생각하니 여태까지 흐렸던 마음은 가신듯이 사라지고 금시
꽃밭이 되었다.
  공주의 가슴엔 한줄기 희망의 무지개가 뜨고 그 마음은 견우(牽牛)를
맞이한 직녀(織女)처럼 한없는 기쁨 속에 설레기 시작하였다. 
  그는 공손히 두 손을 모아 밤 하늘을 우러러 사랑의 축복을 빌었다.
  허공에는 아슬라의 얼굴--- 그리고 억센 두 팔뚝--- 포근한 품속--- .
  공주는 이러한 환상을 그려보다가 물결치는 숨결 속에서
석경(石鏡)앞으로 뛰어가 꽃 단장을 하기에 바빴다.
  이때였다.  왈칵 문이 열리며 샛별이 뛰어 들어온다.
   샛별!  어찌 되었니?
   공주님--- 저--- 저--- 
   어서 어서--- 
   되었어요.  감쪽같이 능금나무위에 호호--- 
   아이 좋아--- 이몸은 천하를 얻은것 같구나--- 아- 이밤이 어쩌면
이렇게 즐거울까?
  공주는 어쩔줄을 모르고 둥실 둥실 학무(鶴舞)를 추기 시작한다.
  이때에 문이 열리며 들어온 최리왕은 주연(酒宴)에서 얼근히 취한
눈으로 이 광경을 보자 뜻하지 않은 기쁨에 어쩔줄을 모르며
   야- 아!  내 집에 경사로다.
   낙랑왕실에 경사로다.
   귀여운 내 딸이 춤을 추다니---
   너는 그렇게도 이밤이 즐거우냐?
   암!  그럴터이지--- 
  공주는 비밀히 간직한 연서(戀書)라도 남의 눈에 뜨인 처녀처럼
부끄러움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그 자리에 고개를 떨어뜨리고 앉아
버렸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더니 어느새 기쁜 소식
   이 네 귀에까지 날아온 모양이지--- 하하하---
   인제 네게 말하거니와 천하에 명장인 파달장군과 혼약을 맺을
   것을 나는 쾌히 승낙했지--- .  왕실에 경사로다 애햄--- 
   예?  아바마마!
   인제 머지 않아 나는 왕중왕(王中王)이 될 몸이야--- .  글쎄
   파달장군이 너와 혼례만 치르면 漢나라의 십만 대군을 보내
   준다는 구나, 그렇게 되면 고구려 서울을 쳐들어가기 쯤이야
   --- .  왕자 호동이란 놈이 제 아무리 영걸이라 하지만 어림
   이 있을소냐 따라지 목숨이지--- 아하하----- 나는 공주 덕
   분에 왕중왕이 되렸다 으하하하--- .
   자!  고개를 들고 이것을---
   황홀한 진주 목거리! 
   너를 극진히 위하는 파달장군이 한(漢)나라에까지 불원 천리
   하고 사람을 보내어 마련해 온 보물이로구나.
   자!  이것을 사양말고 받아라. 
   혼례의 예물로 보내온 것이로다
   아바마마--- 저--- 저--- 
   자!  저렇게 풍악소리가 들려온다.  파달장군이 별궁잔치에서 공주를
기다리고 있단 말이어든--- .  자!  내가 친히 목거리를 걸어주겠노라!
   아바마마--- 아바마마--- 아니오이다
  공주는 걸어 준 목거리를 베끼려하나 효도(孝道)의 길에 벗어나 부왕의
분노를 살 것이 두려워 하는 수 없이 하라는 대로 맡겨둔다.
   아!  고울시고 고울시고 하늘나라 선녀인가 꽃동산의 공작인가!
앞맵시 보아도 고울시고 뒷맵시도 고울시고--- 자--- 나의 손에 의지하여
사뿐사뿐 걸어가자--- 
   아바마마--- 그러하오나--- 
   그러하오나 부끄럽단말이지? 으하하
   아직도 성례를 이루지 않은 몸으로서 그 위에 뭇 사내들의
주연(酒宴)에 얼굴을 들고 나서겠아오리까?
   으- 응 그러고 보니 그말도 지당하도다.
   왕실에서 예의범절로 다스린 몸인지라 기특한 말이로다.
   내가 취중에 막말을 한지고---
   그러면 밤이 깊었으니 태몽(胎夢)할 꿈이나 꾸면서 잘 자도록
   해라 아하하하--- 
  공주의 안타까운 심정을 알 리없는 왕은 너털웃음을 연상 터치며 활개를
치며 문을 나간다.
  다음 순간 공주는 찢어지고 터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허둥지둥 창 곁으로
간다.
  조금까지도 별이 반짝이던 하늘은 금시 변하여 우르렁거리며 부실부실
비를 뿌려주기 시작한다.
   이 빗방울 속에서 어둠길을 헤치고 아슬라가 올터이지--- .
   아!  이 안타까운 심정!
   땅을 쳐야 시원할까?  통곡을 해야 시원할까?
   오랑캐와 혼인을 아슬라가 안다면 그 얼마나 낙심할 것인가!
   아니 그것은 아니될 말이야--- .
   아니 나는 죽어도 싫어 싫어---.
   단 하루라도 아슬라의 곁을 떠나서는 못살 몸이야.
   그러자니 어이하면 좋단 말인가?
   그렇지--- 그렇지--- 아슬라가 오면 그를 달래어 이궁실을
   빠져 나갈까?
   평민으로 가장하여 어떻거나 그를 따라 인적이 없는 산중으로
   --- 
  이렇게 중얼거리며 허공을 바라 볼때 문을 두다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  아슬라가 왔구나---
   이 비를 맞으면서---
   혹시 누가 보지나 않았을까?
   그렇지 불을 꺼야지--- 
  문을 두다리는 소리에 불현듯 설레는 기쁨속에 달려가 문의 빗장을 끌려
놓고는 등불을 꺼버리는 것이었다.
  이윽고 서서히 문이 열리며 캄캄한 어둠속에 사나이 그림자가 나타난다.
  공주는 애타는 그리움에 팔을 벌리며
   기다렸어요.  무척 기다렸어요.
   달도 뜨지않은 비오는 밤이오이다.
   등불도 이렇게 꺼버렸사와요.
   자!  이리로 가까이--- 어서--- 어서--- 
   오!  그리운 님이여!
   나를 그처럼 기다렸다구?
   날더러 가까이 오라구?
   그럴터이지 이히히--- 공주!  공주!
   아니 그대가 누구란 말이오니까?  아니 아니--- 이손을 놓아요---
으아!
   나야--- 나야--- 
   아니--- 아니--- 
   나야--- 나--- 그대의 낭군인 파달이야--- 
   으아 파달장군--- 이 밤중에 어이하여 오셨나이까?
   쉬!  쉬!  큰소리를 내지말어---
   공주!  그대는--- 나의 아내가--- 아냐?
   나는 이렇게 그대를 미칠듯이--- 
   어서 이손을 놓아 주사이다.
   어서 돌아가 주사이다
   나는 못가!  못가!  비 내리는 이 한밤을 그대와 함께--- 
   소리를 칠 테야요--- 
   무어?  소리를 친다구?
   너무 하오.  너무 하오--- .
   공주!  공주!
   그럼 내가 싫단 말이요?
   그렇다면 어이하여 등불을 꺼버렸소?
   그렇다면 누구를 기다렸단 말이요?
   그 놈이 누구란 말이요?
   에-잇--- 
   듣기 싫어요.  어서 돌아가 주사이다
   그대의 정부가 누구란 말이야?
   당장에 이 칼로--- 그놈을--- 
   장군은 남의 일에 상관치 말아요
   상관치 말라구?
   나는 대왕께서 허락한 미래의 남편이야.  어째서
   상관이 없단 말이요?  
   미래는 모르오나 현재는 혼례를 하지 않은 몸! 
   어서 돌아가 주사이다
   공주!  이러기야?  정말 이러기야?
   이 손을 놓아요.  싫어요.  싫어요
   소리를 칠테야요
   나는 미칠듯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으아!  샛별!  샛별!
  파달은 질겁을 하여 손을 놓고 공주를 노려본다.
  공주는 이 기회를 타 파달의 손에서 뛰쳐 나와 겁을 먹고 뒷걸음질
친다.
  샛별은 자는듯 아무런 해답이 없다.
  파달은 죽은듯이 고요한 캄캄한 방안에서 인적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고
망두석 처럼 서 있다. 
  침묵이 흐흔다.  샛별은 나오지 않는다.  파달의 눈에는 불이 켜졌다.
  육체는 고기를 앞에 놓은 짐  처럼 공주를 향하여 떨고 있다.
  다음 순간 그는 다시금 애욕의 악마로 변하여 공주를 향하여 간다.
   샛별--- 샛별--- 
  공주는 샛별을 부르며 등에 불을 켠다.
  파달은 달려와 불을 죽이고 공주의 허리에 두팔을 감는다.
  이 순간 공주의 손에는 허공에 매어달린 설렁줄<처마 끝에 달아 놓고
사람을 부를 적에 흔들어 소리를 내는 종이나 방울을 울리도록 잡아
당기는 줄.(招人鐘)>이 잡혀진다.
  육중한 파달의 품속에 들어 쓰러지는 찰나 설렁(줄)은 소란한 소리로
왈가당 절가당 밤의 적막을 뒤흔들었다.
   샛별!  샛별--- 
  공주는 다시금 소리를 질렀다.
  파달은 손바닥으로 공주의 입을 막으며 짐승같은 야욕을 채우려 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설렁줄소리에 달려든 공주궁(公主宮)의 호위호반(護衛虎班)들은 예리한
창을 들고 문을 박차고 들어온 것이었다.
   공주님!  공주님!  어이한 일이오니이까?
  호반들은 연성 떠들석 하였다.
   호반들은 떠들지 마라 파달장군께서 부르신 것이야.  상감마마와
더불어 행차하셨다가 별안간 몸이 편치 않으셔서--- 잠시--- 이렇게--- 
   그렇지-- 그렇지--- 에헴--- 아야야야--- 아이 두(頭)야 아이
통(痛)이야--- .  아야 내--- 저--- 호위병을 불렀도다.  애헴--- 
   한(漢)나라에서 오신 존귀한 국빈이시니 조심히 모시고 가라
   예-이- 에- 
  설렁줄의 초인종소리와 호위병의 등장에 개망신을 하게 된 파달은
눈알이 뒤집힐듯 질겁을 하여 간(肝)이 콩알만하며 마치
병인(病人)모양으로 얼굴을 땅바닥에 파묻고 엎어져 있었으나 뜻밖에도
공주의 말이 이런식으로 나오게 되니 그는 도리어 호통을 하며 되살아
일어나는 것이었다.
   공주님!  자고 가라는 말씀은 참으로 고마운
   말씀이오나 우리가 혼례를 치를 때까지는 에헤
   헤헤--- 저--- 저---
   예의 법도를 지켜야 하오.
   에헴--- 그러면 안녕히---
   이놈들아 자!  가자!
   그러면 안녕히 가사이다.  호반들은 장군을 조심히 모시라
  파달은 위기일발로 개망신을 면하고 여러 호위병에게 부축되어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꽃피는 첫사랑
  왕실에서 예의 범절과 교양이 높은 공주는 원수에 대하여도 하늘같은
넓은 아량으로 꽃핀 정원에까지 부슬비를 맞으며 바래어 주었다.
  공주는 그제사 수건을 내여 이마에 흐르는 진땀을 닦았다.
  이때에 고목(古木)뒤에서 어른거리던 그림자가 나타난다.
  아아!  공주는 질겁을 하며 달아나려 할때
   나요!  나!  능금을 들고 왔소이다
   아!  아슬라!  아슬라!  무척 그리웠사와요, 무척 기다렸사와요
  공주는 사랑앞에는 예의도 수줍음도 없다는듯 아슬라의 품속에 뛰어
들었다.
  그리고 너무 좋아서 흑흑 느끼며 우는 것이었다.
  고목위에서는 능청맞게 접동새가 울어 주었다.
  공주는 아슬라의 손을 이끌고 공주궁으로 들어갔다.
  실내는 캄캄하였다.
  공주는 불을 켜려고도 하지 않고 창 곁으로 가서 안타까운 심정을
애소하듯 두팔을 벌렸다.
  호동은 수심에 잠긴 사람인양  멍하니 공주의 얼굴만 바라보고 섰는
것이 아닌가.
   어이하여 말도없이 바라만 보는가요.  어둠속에 어리는 그대가 그리워.
 헤매는 이손을 어루만져 주소서.  흘러간 그 옛날 진달래 핀 샘물터에서
샘물을 떠서 주던 손이오이다.  첫사랑을 바치려는 손이오이다.  아슬라!
아슬라!
   공주!  공주!  나는 출진령(出陣令)을 받은 몸이요
   예?  출진령?
   그렇소. 내일이나 모래는 싸움터로 나가야 할 몸이라오
   아!  아슬라!  아슬라!
   내가 자명고 파수(自鳴鼓 把守)로 남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것도 다 허사였어요.
   소녀가 부왕에게 사뢰어 자명고 파수로 간청을 하였지만
   그것은 한(漢)나라 사람이 아니고는 안된다는 분부였사와요.
   아슬라를 싸움터로 내어 보내려는 것도 필시
   파달장군의 장난일꺼야--- .
   우리 두사람 사이를 시기하는 파달은
   아슬라를 출진케하고는 소녀와 혼례를 하자는거야요.
   아!  아슬라 어이하면 좋단말야?
   오!  하늘이여 어이 하오리까?
   공주!  나는 싸움터로 나가선 안될 몸이야.
   나는 그대의 곁을 떠나고 싶지않어 공주!
   공주!  무슨 방도가 없을까?
   오호라--- 아슬라--- 좋은 수가 있어요
   좋은수가 있다고요?
   예!  아슬라는 소녀를 위하여 싸움터로 나가 주어요
   예?  싸움터로?  그러면 나가서 죽으란 말이요?
   아니--- 아니--- 싸움터에서 큰 공을 이루고 이기고 돌아오
   란 말이야요.  만일에 고구려를 무찌르고 전승 장군으로 개선
   할 때에 소녀가 혼인을 손을 모아 애원한다면 완고하신 부왕
   께서도 그때엔 허락해 줄 것이야요.  아슬라!  아슬라!  소녀
   를 위하여 우리의 사랑을 위하여 고구려를 무찌르고 돌아와
   주어요.  고구려의 왕자 호동을 뭇찔러 주어요!  아슬라!  아
   슬라!
   공주!  공주--- 고구려의 왕자 호동이가 그렇게도 원수요! 
   그렇게도 밉소?
   미워요.  원수야요.  아슬라 이칼로 어서 그놈의 목을 치고 돌
   아와 주어요.  그때까지 소녀는 순결한 몸으로 죽자하고 기다
   릴테야요.  어서 출진하여 승전장군이 되어 주어요.  어서 이
   칼로 왕자 호동의 목을!
   호동의 목을 ?  이칼로 아!  공주!  공주!
  아슬라는 공주를 힘껏 껴안으며 야릇한 운명에 몸부림을 치는 것이었다.
  창밖에서는 어느듯 닭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랑의 시간이 예나 이제나 다름없이 너무나도 짧았다.
  하고자 했던 말을 다하지 못한 것을 트이는 동천 하늘은 그들에게
알려주는 것이었다.  얼마나 슬픈 아침인가!  비정의 아침은 왔다.
  밤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반월궁(半月宮) 공주의 침실에서
원앙침(鴛鴦枕)에 검은 머리를 풀어 놓고 아슬라와 첫사랑의 꽃을 피운
밤은 그네들로 하여금 촛불없는 화촉(花燭)의 첫날밤이었다.
  꽃이 나비를 맞이한 기쁨!
  나비가 꽃속에 든 기쁨!
  생명를ㄹ 걸고 사랑하는 그들의 기쁨이 그 얼마나 아리따운 것이언만
그러나 어이하랴.
  날이 밝으면 그들앞에는 무서운 운명이 그리고 무서운 얼굴들이
미친개(狂犬)처럼 짖고 물어뜯을 것이 아닌가?
  꽃수놓은 비단요에 고스란히 누워 허공만 우러러보는 눈과 눈에는
기구한 운명을 탄식하는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 내리는 것이었다.
  간밤에 공주의 내실로 어떤 야심을 품고 왔다가 쑥스럽게도 소박을 맞고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들던 파달--- .
  게다가 아슬라와의 비밀을 알고 질투와 정욕의 불덩어리로 미친듯이
날뛰던 파달은 필시 그길로 부왕(父王)을 찾아 갔을 것이 의심할 여지조차
없다.
  그는 부왕앞에서 뭐라고 아뢰었을 것인가?
   공주는 정부(情夫) 아슬라하고--- 
  필시 이  게 귀에 담지도 못할 무서운 말을 징그러운 그입으로 뿜어
버리는 그순간 이말을 들은 부왕은 얼마나 놀랐을 것이며 얼마나 분노에
치를 떨고 있을 것인가?
  날이 밝으면 팔자(八字) 수염을 푸들거리며 공주의 내실로 달려들
부왕의 무서운 그 얼굴!
  무서운 두 눈!
  무서운 그 말!
  낙랑의 왕실을 더럽히고 외간 남자와 간통을 한 년이라고 뇌성벽력이
떨어지며 장검(長劍)을 빼어 올린 그 무서운 부왕의 모습이 눈에 훤하니
보이는 것이다.
  부왕이냐?  사랑이냐?
  사랑하는 아슬라에게 순결한 몸과 마음을 송두리째 바쳐버린 이제 와서
파달장군과의 혼인이란 생각만 하여도 소름이 끼치는 일이다.
  아슬라와의 사랑이 그리고 꽃다운 그의 일생이 짓밟히기 않기 위하여는
오직 한길이 있을 뿐이다.
  탈출!  궁성 탈출!
  황홀한 은별관을 벗어버리고 그리고 금이야 옥이야 고이 고이 키워준
양친마저 버리고 아슬라를 따라 기다리는 사람도 없이--- 정처도 없이---
그리고 기약도 없이 떠나는 오직 탈출--- 한 길이 있을 뿐이다.
  너무도 벅찬 일이었다.
  너무도 무서운 일이었다.
  이생각 저생각에 느껴울던 공주는 아슬라의 품속에 얼굴을 파묻고야
말았다.
   공주!  공주!  우지마오!
   아슬라!  이몸은 갈길을 택하였사와요
   갈길을?  어떻게?
   낭군을 따라 궁성을 떠날 것을--- 
   낭군을 따라  그러면 나를 따라 궁성을 떠난다고요?
   공주!  공주!
  아슬라는 애처러운 공주의 비장한 결심에 눈물겨운 마음으로 공주의
흩어진 머리를 고이 쓰다듬어 주며 백옥 같이 흰 얼굴에서 구슬같은
눈물방울을 씻어주니 공주는 살며시 눈을 감으며 보드라운 손가락에서
쌍가락지 한짝을 빼어 아슬라의 새끼 손가락에 말없이 끼워준다.
백년가약의 맹세로 하는 것이었다.
  이때 죽은듯이 고요한 침묵을 깨뜨리고 문앞에서 강아지가 콩콩짖는
소리가 허공을 물어 뜯는다.
  두사람은 불길한 예감에 벌컥 일어나 흩어진 옷을 주섬주섬 걸치고
약속이나 한듯이 창문으로 당황하게 달려가 왈칵 문을 열어제치고 창밖을
더듬어 보나 아무도 눈에 뜨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강아지만은 분명히 무엇을 본듯 한그루 고목(古木) 있는 쪽으로
향하여 콩콩 짖으며 따라가는 것이 아닌가?
  날이 밝기도 전에 놈들은 왔구나!  이러한 예감이 든 아슬라는 의관을
정제하기에 바빴고 공주는 아무 말도 없이 불이야 불이야(부랴 부랴)
침실문을 열어제치고 내실로 재빠르게 나가버린다.
  죽느냐?  사느냐?
  그들의 운명을 좌우할 최후의 막다른 시간은 이제 눈앞에까지
닥아(다가) 온 것이다.

  危機一髮
  시시각각으로 닥아오는(다가오는) 운명앞에서 탈출을 결심한 아슬라는
무관으로 의관을 정제하고 허리에 장검을 차고나자 그는 창곁에서
고구려의 하늘을 우러러 보며 경건하게 조국통일의 합장을 올리는
것이었다.
  어느 절에서 은은히 울려오는 쇠북소리!
  분명히 날이 밝기 시작하였다.
  쇠북소리에 소스라쳐 놀라는 아슬라는 날뛰는 표범마냥 창밖으로
뛰어나가기가 바쁘게 자명고실 가까운 거리에 우뚝 솟은 고루(高樓)로
뛰어 올랐다.
  먼동이 트는 하늘아래 훤하게 밝아오는 허공에는 어느듯 가랑비도
자취를 감추고 지금까지 어둠속에 자태를 감추었던 모든 것들이
복병(伏兵)했던 군사인양 머리를 들고 알숭 달숭(알쏭 달쏭) 나타나기
시작한다.
  고루(高樓)에서 굽어보면 서(西)쪽에 울창한 고목들--- .
  고목 옆에 가파른 바위절벽--- .
  바위절벽 위에 웅장한 자명고실--- .
  자명고실 밑에는 감옥(監獄)--- .
  절벽밑으로 흘러가는 대동강(大同江)--- 동쪽에 모란꽃 핀 모란봉--- .
  강변에 닻줄을 내린 나룻배 몇척--- .
  시시각각으로 분명한 자태로 나타나는 이러한 풍경을 눈에 불을 켜고
쏘아보는 아슬라의 머리속에는 바야흐로 결행해야 할 무서운 계교가
번개질을 하자 그는 칼집에 손을 대며 스스로 소리없이 외치는 것이었다.
  이제 자명고를 찢어 버리고 공주와 함께 저 배를 타고 황해(黃海)바다로
빠져 나가야 할 운명의 시간은 왔다.
  지금 고구려 군사들은 낙랑과의 국경에 집중하여 신기 자명고를
두려워하며 왕검성으로 진군할 계략을 세우고 있을 터이지--- .
  내가 이제 자명고를 찢어버리고 낙랑을 탈출하여 진군(進軍)을 앞둔
우리 고구려군사 앞에 불쑥 나타나면 그들은 얼마나 반가워 날뛸 것이냐?
  그들의 사기는 얼마나 떨칠 것이냐?  그때에 이몸은 마상(馬上)에 몸을
날려 선봉장(先鋒將)으로 비호같이 이 왕검성으로 달려들면 찢어진
자명고에 사기(士氣)를 잃은 낙랑군은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무너질
것이 아닌가?
  그때는 고구려가 통일되는 날--- .
  오랑캐는 한나라의 속국으로 삼백년이나 종살이로 신음하던 우리 불쌍한
겨레인 낙랑사람들은 통일과 평화를 찾은 기쁨속에 얼마나 행복할 것이냐?
  그렇지--- 통이리 되는 그날에는 이몸도 승전의 장군으로 그리운
궁성으로 다시 돌아가 어엿한 고구려 왕자로 탈을 벗고 공주앞에
나타난다면 그는 얼마나 놀라며 반겨줄 것이냐?
  그리고 이몸을 잘못알고 흘겨보던 부왕도 그리고 최리왕도 그때에는---
.
   아!  나에게 힘이 솟아난다.  그러나 저 자명고를 무슨 재주로 찢는단
말이냐?
  아슬라는 이러한 공상으로 가슴을 설레며 공주를 기다리고 있을 때 마침
울창한 나무밑에서 손짓을 하는 여성이 있다.
  허름한 옷에 죽장(竹杖)을 짚은 여인--- .
  눈이 뚫어지도록 자세히 바라보니 그가 바로 기다리는 공주인 것이다. 
   아!  공주--- 
  그순간 아슬라의 눈에는 불꽃이 뛰며 단숨에 고루의 층층다리를
뛰어내려 울창하게 하늘을 덮은 고목 아래로 달려갔다.
   아슬라!  아슬라!  어서 저 배를 타고 도망을 치사이다
   공주!1  잠깐만--- 
   어서 이길로 떠나야 해요.  어서--- 어서---
   이제 파달장군이 이리로 달려올 것이야요.
   지금 파달장군은 이몸을 찾고 있어요. 
   뒷문으로 간신히 빠져 이렇게 평민으로 변복을 하고 나오는
   길이오이다.
   자!  어서 어서--- 
   공주!  잠간만--- 잠간만
   어인 일이오니까?  아슬라!  아슬라!
   공주!  이몸은 한가지 청이--- 
   예?  청이?  무삼 청이오니이까?
   자!  보사이다!  이 보자기!
   이렇게 우리가 일생을 먹고살 수 있는
   금은 보화를 지니고 나왔사와요
   아니 그런 청이 아니오이다
   그렇다면 무삼 청이오니까?
   공실도 부왕도 버리고 따라가는 아슬라의 청이라면
   하늘에서 별이라도 따올 몸!  자!  어서--- 아뢰어 주사이다.
   공주!  진정 이몸을 생각한다면--- .  진정 이몸의 소원을
   들어주시려면 저기 솟아오르는 햇님에게
   손을 들고 맹세할 수 있겠나이까?
  이말에 공주는 햇님을 우러러 눈을 스르르 감고 한손을 살며시 올린다.
   공주!  놀라지 말고 들어주오.  고구려와 낙랑은 에로부터 한
   나라 한겨레--- .  지금 우리 고구려의 국토 낙랑은 오랑캐
   한나라의 앞잡이로 황송하오나 그대의 부왕 최리왕이 무고한
   낙랑 백성을 노예로 삼고--- .  백성들은 헐벗고 굶주려 우는
   데 왕실만이--- 그리고 한나라에 아첨하는 만조백관만이 주
   지육림(酒池肉林)에 풍악을 갖추고--- 
   그만--- 그만--- 아슬라--- 
   그러니까
   그러니까 어쩌란 말씀이오니이까?
   그러니까 만백성이 행복하게 살기 위하여는 두나라가 옛날같
   이 하나로 통일 되어야 할 것이며--- .  두나라가 통일되기
   위하여는 --- 저--- 저--- 
   그러니까 어쩌란 말씀이오니이까?
  모란꽃같이 새뽀얀 공주의 얼굴은 삽시간에 창백하여져 상기한 입술을
바르르 떨면서 아슬라의 얼굴만 애소(哀訴)하듯 그리고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어떠한 불길한 선고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공주!
   그러니까 어쩌란 말씀이오니까?
   그러니까 공주!  자-- 자--- 자명고를--- 
  이말이 떨어지자 무슨 불길한 예감이 떠오른듯 한걸음 두걸음
아슬라에게서 뒷걸음을 한다.
  아슬라는 공주에게 애소나 하는 듯이 한걸음 두걸음 따라가 오들 오들
떨고 있는 공주를 힘껏 포옹하여 버린다.
  이때 불쑥 울창한 나무밑으로 살금 살금 걸어오던 파달장군 일행이 이
놀라운 광경에 흠칠 놀라며 고양이 새끼같이 발걸음 소리를 죽이고 살금
살금 걸어와 고목뒤에 숨는다.
  이런 눈치를 채지못한 아슬라는 마침내 무서운 말을 뿜고야 말았다.
   공주!  자명고만 없다면 나라는 통일되오
   그러니 어쩌란 말씀이오니까?
   자명고를 이칼로--- 
  아슬라는 허리에 찬 칼집에서 쑥 비수를 빼니 예리한 칼날이 번끗한다.
   예?  아슬라!  이 무삼 짓이요?  이몸더러 자명고를 찢으란
   분부이시오니이까? 
   그렇소 나라의 통일을 바란다며는--- 
   낙랑의 신기 자명고를?  아슬라--- 
   그대의 사랑이 진정이라면--- 공주님--- 
   낙랑의 국보인 자명고를?
   공주가 고구려의 궁성에서 고구려의 왕자와 어엿한 백년가약
   을 바라신다면--- 
   예?  아슬라!  그러면 그대가 고구려의 왕자란 말이요.  그러
   면 그대가 불구대천의 원수--- .  왕자--- 호--- 호--- 호동
   이란 말씀이오니이까? 
   그렇소, 이몸은 틀림없는 고구려 왕자호동!  공주!  공주!  이
   몸을 용서하오
  공주는 눈알이 뒤집힐듯 무서운 눈으로 아슬라를 노려보며 뒷걸음을
한다.
  아슬라는 두팔을 벌리고 뒤따라간다.
   아슬라!  나에게로 가까이 오지마오.  소리를 지르겠소.  원수! 
   원수!  왕자호동!
   공주!  공주!
   에잇 고약한자!  거짓 사랑으로 이몸을 농락하고--- 이몸으로 하여금
자명고를 찢게 한 후엔 이몸을 헌 신짝처럼 짓밟아 버리고 그리고는
혼자만 홀몸으로 도망을 치려는 자!
   공주!  공주!  아니오이다
   이몸을 거짓 사랑으로--- 
   공주!  공주!  이옴은 진정으로 공주를 사랑하오
   뻔뻔한 거짓말--- 
   어서 이칼로 자명고를 찢어주오
   이몸에게 가까이 오지마오.  나의 원수!  소리를 지르겠소. 
   이손을 놓아주오.  사람을 부르겠소
   공주!  자명고를 찢고나서 이길로 배를 같이 타고 고구려로
   떠나갑시다 
   거짓말--- 거짓말--- 
   고구려 궁성에서 어엿한 백년가약(百年佳約)을--- 
   뻔뻔한 거짓말--- 
   이몸의 부왕은 반겨줄 것이오이다
   거짓말--- 거짓말--- 
   공주!  하늘을 두고 맹세하오.  저 해를 두고 맹세하오.  이몸은
진정으로 그대를--- 
   아!  아슬라!  아슬라!
   목숨보다도 그대를 더 사랑하오.  공주!
   아!  아슬라!  왕-- 왕-- 왕자님--- .  그것이 진정이오니
   까?
  무서운 원수를 노려보며 한걸음 두걸음 뒷걸음을 하며 분노와 증오심에
불타는 눈동자는 어느덧 애처러운 눈동자로 변하여 버리고 그눈에는
구슬같은 눈물이 방울 방울 흐르며 아슬라의 품속에 그 얼굴을 파묻고
느껴우는 것이었다.
  아슬라는 마치 산고(産苦)을 치른 산모(産母)인양 진땀을 흘리며 가슴이
터지도록 힘껏 공주를 껴안는 찰라--- .
   이놈아 꼼짝말고 섰거라.  고구려왕자 호동!
  청천벽력같은 고함소리가 터지는 순간 벌떼같이 와르르 쏟아져 나온
파달장군의 일당은 왕자 호동의 가슴에 포승을 지우고야 말았다.  이렇게
불의에 기습을 당하고 보니 천하에 검술을 떨치는 호동이라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칼집에서 칼을 빼지도 못하고 원통하게 그는 아람드리 고목에
강아지새끼처럼 비끌어 매여달리는 것이다.
  호동을 바라보는 공주!
  공주를 바라보는 호동!
  놈들은 다음 순간 호랑이나 사로잡은 사냥꾼처럼 미칠듯이 날뛰며
제마다 목구멍이 터지도록 악담을 퍼부며 곤장으로 미친 개 치듯 후려
갈기기 내기상을 하였다.
   저놈을 죽여라
   저놈의 눈알을 빼어라
   아하하하--- 그 맛이 어떠냐?  공주님 울지말고 저놈의 저꼴을 좀
보사이다.  아하하하--- 통쾌한지고--- .  자 우리의 원수 고구려 왕자
호동!  신기 자명고를 찢으러 온 자!  공주님을 농락한 뻔뻔한 놈!
저놈의 살더미를 오리 오리 오려내고 저놈의 앞가슴에 열두구멍을 뚫어라
 
   아니되오.  아니되오.  그대들은 물러나오
  파달에게 이러한 명령이 떨어지자 공주의 애소는 들은체 만체 놈들은
피묻은 곤장을 팽개치고 창검으로 호동의 가슴을 노리고 달려드는 것이다.
 
  어안이 벙벙하여 눈물만 머금고 있던 공주는 이순간 고목으로 달려가
호동의 앞에 당황히 팔을 벌리고 창칼을 제지하는 것이었다.
   아니되오.  아니되오.  아슬라는 이몸의 낭군이로소이다.  차라리
그칼로 이몸의 가슴을--- 자--- 
   공주님 비켜나 주사이다
   잔인 무도한 처사!  천벌을 무서워 하오소서.
   상감마마에게 사뢰지도 않고 이 무삼 짓이오니이까?
   파달장군님--- 장군님--- 
   저놈은 오늘밤 잔치에 술안주감이로소이다.
   이몸은 오늘밤 공주와 혼례를 할 몸
   예?  파달장군 그 무삼 말씀이오니이까?
   상감마마께서 --- 아하하하--- 그러니 자- 비켜나 주사이다
   아니되오, 아니되오.  장군님--- 
   오늘밤의 즐거운 사랑 잔치에 저놈의 피를 축배로 하고 이몸
   의 가슴이 후련할 것을--- .  그때에 상감마마에게 사뢰기로
   하리다
   장군!  소원이로소이다.  아슬라의 생명을 살려 주오소서.  저
   렇게 피투성이가 된 사람을 째리지 마소서
   공주님!  진정 그러시다면 이몸에게도 소원이--- 먼저 소장의
   소원을 저놈이 보는 앞에서 풀어주시겠나이까?
   아슬라를 살려 주오신다면--- 
   소장의 소원을 풀어 주오신다면--- 
   예--- 예--- 장군--- 장군--- 
  공주는 눈물을 흘리며 염불이나 하듯 손을 모고(모우고) 파달에게
애걸하는 것이다.
   공주--- 그러시다면 저놈에게 이렇게 말하여 주오.  공주는
   오늘밤 파달장군과 백년가약을 맺고 한평생을 낭군에게 바칠
   것을 하늘을 우러러 합장하시며--- 시원한 소리로 저놈의 귀
   에도 이몸의 귀에도 분명히 들리도록 공주님 소장의 소원이로
   소이다.  저놈 앞에 가까이 가서 저놈의 귀에 들리도록--- 
  공주는 가슴이 덜컥 내려 앉고 소름이 끼쳤다.
  순결한 마음과 몸을 스스로 바친 사랑하는 낭군 앞에서--- 이부를
섬긴다는 그 말을--- 하늘이 알면 금시 천벌이 내릴 말을--- 내 어이
내입으로 한단 말인가?
  공주는 이렇게 기구한 운명을 한탄하며 고개를 들어 호동을 바라보았다.
 선지피 방울이 흐르는 그 얼굴로 눈을 부릅뜨고 말없이 공주를 바라보는
호동은 터지는 아픔과 분노속에서도 고목처럼 태연하였다.
  이신보국(以身報國)을 천추에 자랑하는 고구려 무사도(武士道)의 정신을
한몸의 추태로 인하여 더럽힐 것을 생각하는 비장한 결심에서 였으리라.
  실상 소리를 지르며 추한 발악을 한것은 모진 매를 맞는 호동이가
아니라 비겁한 기습으로 호동을 박승지우고 추잡한 욕설과 야수적인
만행으로 승리를 자청(자처)하고 날뛰는 파달일행이 아니었던가?
  이러한 파달장군의 만행은 공주로 하여금 더욱 악감과 증오감을
일으켰건만 그러나 어이하랴!
  호동을 살리기 위하여는 표리가 부동하건만 파달이 시키는대로
아니하고는 못 백일(못 배길) 공주이기도 하였다.
  호동의 앞에까지 발걸음을 간신히 옮겨놓은 공주는 품속에서 수건을
끄내어(꺼내어) 들고 다시한번 호동의 얼굴을 우러러 보았다.
  그렇게도 풍채좋던 그의 얼굴에는 선지피가 흐르고--- 머리칼이 얼굴에
흩어지고--- 옷이 갈래 갈래 찢어지고--- 이 광경을 사랑어린 눈동자로
  어보는 공주는 복바치는 설음(설움)에 흐느껴 울면서
   왕자님!  야릇한 운명의 장난이오이다.  이몸은 그대를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친몸!  이몸은 임(님)을 위하여--- 지아비
   를 구하기 위하여--- 저 파달장군에 시--- 시--- 시집은---
   
   공주!  이몸은 고구려의 어엿한 무사!  공주는 백년가약을 맺
   은 나의 아내어늘 죽으나 사나 지어미와 지아비는 한마음 한   
몸됨이--- 천( )이어늘--- 고구려 왕자 호동이가 지어미를
   팔아 구차히 목숨을 건졌다는 오명을--- 그리고--- 그리고
   --- 낙랑의 공주가 이부를 섬겼다는 그 오명을--- 천추에 남
   길것을 원치 않으신다면--- 후세의 웃음꺼리가 될 것을 원치
   않으신다면---  공주!
  피를 씻고 머리를 가다듬어 주었다.
   공주님!  무엇을 하나이까?  어서 그논에게 선고를--- 
  호동를 연모하는 공주의 태도에 질투심에 불타는 파달장군은 칼집에
손을 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소리에 고개를 돌린 공주는 오만한 그 태도에 발칵 증오와 분노심이
복바쳐 그를 노려 보았으나 어찌할 방도가 없는 노릇이 아닌가?
  예사 일 같으면 부왕에게 사뢰 천하에 대사라도 이루어질 수 있는
공주의 숨은 힘도 있건만--- 그러나 이 일만은 부왕이 아무리 공주를
금이야 옥이야 위한다기로 어쩔 방도조차 없는 일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된 공주는 파달을 흘겨보는 눈으로 살며시 웃음까지 억지로
지어보이면서 호동에게로 다시 돌아선 것이다.
   이몸을 옥같이 부서지게 하소서
   공주!  이승에서 다 하지 못한 사랑 저승에서나 맺어보사이다. 
   자!  이놈들아! 나를 죽여라.  나의 고기를 먹어라.  나의 피
   를 마셔라.  네놈들 오랑캐가 낙랑 삼백년에 국토를 먹고 무
   고한 내나라 백성들의 피를 빨아 먹는것처럼--- .  자!  나를
   씹어 먹어라.  자!  나를 어서 죽여라
  이것이 세상을 하직하는 왕자의 소리다.  이것이 세상에 남겨 두는
고루려 무사의 넋이기도 하였다.
  옆에서 八字 수염을 실룩거리며 치를 떨고 파달장군은 급기야 분노가
폭발되자 칼을 왈칵 빼여올리고 호동의 목을 치려는 것이다.
  공주는 불현듯 파달의 손에 매어 잘리며 옥신각신하더니 간악(奸惡)한
힘에 노곤하게 지치어 공주는 애처럽게도 땅에 쓰러지고야 만다.
   자!  원수 호동아!  이제 네 소원을 풀어주마.  이승에서 다
   하지 못한 그 사랑은 내가 네놈을 대신하여 이어줄 것이니 공
   주는 내게 맡기고 마음놓고 가거라
  이렇게 악담을 배앝고(뱉고) 다시금 칼을 올리때 어디선가 요란한
경종(警鍾)소리가 천지를 뒤흔든다.  다음순간 북문(北門)쪽으로 말을
달려 오는 병부사(兵符使)가 고함을 지르며 이리로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찢어진 自鳴鼓
  이 소리에 깜짝 놀라며 그 쪽을 바라보는 파달은 당황히 칼을 멈칫하고
섰다.
  화살 같이 말을 달려온 병부사는 말에서 내려 서며 고구려 군사의
내습을 아뢰는 것이었다.
   병부요--- 병부!  고구려 군사가 왕검성으로 진격을 하고 있
   소, 어서 자명고실 문을 열어제치오
  뜻하지 않은 병보에 눈알이 뒤집힌 파달장군은 홍두깨처럼 뛰는 가슴을
헐덕거리며 마상에 높이 앉은 병부사를 향하여 소리쳤다.
   병부사!  그것이 정말인가?  고구려 군사가 왕검성으로 몰려
   온다고?
   그렇소!  우리는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오이다.  왕검성의 운명은
풍전등화(風前燈火)!  저 군사들은 무얼하고 있는거요?  저 자명고는
어찌된 것이요
  병부사의 뜻하지 않은 말에 반신반의(半信半疑)하는 눈초리로 병부사의
얼굴만 쏘아 보던 파달장군은,
   그런데 그대는 누구란 말인가?
   이몸은 얄루성에서 온 병부사!  그런데 저놈은 누구란 말이오니까?  저
고목에 포승을 진 놈이--- 
   저놈이 바로 고구려의 왕자 호동이요
   야!  뻔뻔한놈!  그러면 어째서 저놈을 아직까지도 저렇게 살려 두었단
말씀이오니이까?
   그래서 소장이 저놈의 목을 막--- 치려던 길에--- 
  파달은 다시금 잊어버렸던 호동을 노려보며 칼을 번쩍 올린다.
  경종소리가 점점 소란하게 울린다.
   잡아라.  잡아라
  성문쪽에서 고함치며 달려오는 군사들의 소리인양하다.
   아!  저소리 어느듯 고구려 군사가?
   그렇소 우리는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요.  저놈은 이몸이 단칼에
처리할터이오니 장군께서는 어서 자명고 문을--- .  그리고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잠시 존귀하신 몸을 한(漢)나라로 피하소서
   으--- 응--- 
  이렇게 대답대신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 파달장군은 바위언덕으로
당황히 뛰어 올라 호령을 하는 것이었다.
   이 병신놈들아--- 고구려군사가 저렇게 달려드는데 게서 무얼하고
육갑을 하는 것냐?  어서 이길로 성문으로 달려 가라.  성문을 지키라,
성문을 성문을--- 
  자명고실 파수와 고목 주위에서 서성거리는 군사들은 겁을 집어 먹으며
성문쪽으로 흩어져 간다.
  낙랑의 신기로 감추어 있던 자명고문이 파달의 열쇠로 인하여 찌르릉
찌르릉 소리를 내며 서서히 열린다.
  그때에 나타나는 자명고의 위용(偉容)--- 으리으리한 자명고--- .
  불상같이 말없이 앉은 자명고--- .
  낙랑국의 수호(守護)로 하늘이 주었다는 전설과 미신을 가진 이
자명고는 과연 적군이 국토를 침범할 때엔 뇌성벽력같이 저절로 울릴만한
어딘가 범하지 못랄 위용이 어린 북이 아닌가.
  숨결 가쁜 시간이었다.
  귀중한 생명이 좌우되는 아슬아슬한 시간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호동은 금시 목이 떨어지려는 순간에 비로소 숙원이든 자명고를 박승을
지고 바라보게되는 이 야릇한 운명!
  공주는 바야흐로 황턴갈 호동의 품에 매여 달려 울고 병부사는 창을
호동의 가슴에 겨누고 파달장군의 행동만 바라본다.
  파달은 호동을 바라보며 높다란 바위언덕을 한걸음 두걸음 내려온다.
  이때였다.
  호동의 가슴에 창을 겨누고 섰던 병부사는 별안간 칼로 박승을 선듯
베어버리고 호동의 무릎앞에 꿇어 엎드리고 고개를 든다.
   왕자님--- 이몸의 얼굴을 굽어보소서!
   아!  그대가 누구란 말인가?  사다한!  사다한--- 이것이 어찌된
일이냐?
   상감마마의 어명을 받들고 밀사로 온 몸!  왕자님을 모시고
환국(還國)하라는 어명--- 왕자님을 구하려고, 자명고를 찢으려고--- .
이렇게 변장을 하옵고--- 
  이말을 들은 공주의 뜻하지 않은 기쁨은 호동의 놀라움보다도 컸다.
   공주!  이기회에 저 저--- 자명고를--- 
   예--- 예--- 자명고는 소녀의 손으로
  공주는 품속에 지닌 비수에 손을 대어 본다.
  병부사는 창을 들고 파달을 기다리며 섰다.
  공주를 껴안은 호동!
  호동을 껴안은 공주!
  이광경에 놀라 날뛰는 표범처럼 달려온 파달은 눈에 불을 켜고 소리를
질렀다. 
   네 놈이 웬 놈이냐?  이게 무삼 짓이냐?  에잇--- 
   아하하하--- 못난놈--- 소장은 오랑캐의 고기를 먹으러 왔다.  이몸은
파달장군의 피를 마시러 왔다
  파달의 칼날이 허공에 번쩍이는 순간 그의 가슴에는 호동의 예리한
갈이--- .  그리고 공주의 비수는 자명고의 한 복판에 박히는 것이었다.
  쓰러지는 파달! 
  찢어지는 자명고!
   잡아라, 잡아라, 고구려의 염탐을 잡아라
  이렇게 소리치며 낙랑의 군사들은 이제사 여기저기 흩어져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안타까운 일이었다.  위기일발의 아슬 아슬한 탈출을 앞두고
공주는 자명고를 찢고는 그만 맥이 풀려 그아래 쓰러진것이 아닌가?
  이광경을 본 호동이가 그리로 달려가려하나 때는 벌써 늦다.
  그곳에는 수많은 낙랑의 군사들이 벌떼처럼 몰려 들었기 때문이다.
   왕자님!  어서 저말을 타고 강변으로 빠져나가소서.  그리고 배를
타고--- 
   그대는?  그리고 저 공주를--- .  어이한단 말이냐?
   공주는 이몸에게 맡기소서
   잡아라, 잡아라, 죽여라 죽여라--- 
   어서 어서--- 왕자님--- 
  창자가 끊어지는 슬픔으로 공주를 남긴채 호동은 다가오는
사지(死地)에서 말을 강변에 달리어 다달아 나룻배에 뛰어올랐다.
  화살이 날아오고 강변으로 군사가 달려든다.
  호동은 그리운 공주와 사다한을 남긴채 본의아닌 배를 혼자 타고 노를
저으며 대동강 물결을 차고 떠나는 것이었다.
  왕검성을 멀리 떨어진 강상(江上)에서 바라보니 자명고실 옆에서 수많은
군사를 상대로 용감하게 칼싸움을 하던 장사(壯士) 사다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전사!  분명히 --- .  전사한 것이다.  사다한은 생명을 건져주고 대신
만족하게 죽은 것이 아닌가?  고구려의 용감한 무사의 주검이여!
  그는 이렇게 중얼거릴 때 문듯 자명고실 옆 절벽위에 섰는 한 여인을
찾아 내었다.
  손을 젖고 섰는 여인!
  모란꽃을 뿌리며 홀로 섰는 여인!
  그여인이야말로 그의 그리운 낭군인 왕자 호동의 앞길을 축원하는
낙랑공주의 애처러운 이별의 모습인 것이었다.
  국경 산악의 밤은 깊어만 간다.
  바로 맞은 편에 낙랑의 산악을 바라보는 고구려 국경의 산상에 집결한
고구려 대군은 낙랑 진격의 영만을 기다리며 오늘도 불안속에 하룻밤을
꼬박 새는 것이었다.
  산골짝마다 고목(古木)아래마다 날이 밝으면 판가리 싸움터로 생명을
걸고 나설 수많은 군사들과 군마(軍馬)들이 창검을 옆에 세워 놓고
결전전야(決戰前夜)의 잠을 부르는 것이다.
  허나 잠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날이 밝으면 생명을 기약할 수조차
없는 그들이 말없이 돌베개에 누워--- 조국의 땅에 누워
이사통일(以死統一)을 맹세하는 비장한 눈과 눈에는 제마다 색다른
환상들이 별나비처럼 오고 가는 것이다.
  고향에 두고온 그리운 처자!
  낙랑의 신기 자명고!
  호동장군의 실종(失踪)!
  한번 칼을 들면  고구려 호반 이란 그 이름만 들어도 적군의 간장을
서늘케 한다는 용감무쌍한 고구려 군사였건만 이번 싸움에서만은 어느
싸움에서나 선봉장이었던 호동장군이 자취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낙랑에
자명고 있다는 소리에 제마다 마음 한구석에 불길한 예감을 일으킨 것이
아닌가?
  이렇게 불안한 마음에서 어느 호반들은 승전의 축배로써 마련된 큼직한
술독에서 연성 바가지 술잔을 들이키고는 그냥 큰 절이나 하듯
꼬꾸라지는가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여인의 머리채를 가슴에 얹고 눈물이
글성 글성한 호반도 있는 것이다.
  전쟁 전야에 있어서 이러한 불안과 불길한 예감이란 일찌기 연전연승의
전통을 자랑하는 고구려 군사에게선 그 그림자조차 엿볼 수 없던 것이다.
  그런데 고구려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전의 전야에 군사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고 보니 군사들보다도 불안감에서 눈에 불을 켜게 된 것은 그들을
인솔할 장군들인 것이다. 
  어느 절벽위 정각에선 맥빠진 군사들의 이러한 광경을 굽어 보던 몇
장군들이 작전계획을 둘러싸고 두가지 의견이 대립이 제마다 큰 입에서
불을 뿜기 시작하였다.
   군사의 사기란 천군만마보다도 강한 힘이라고 병서(兵書)에도 하였으니
좀 더 때를 기다림이 지당한 줄로 아뢰오
   지당하오나 부당한 말씀--- .  사다한이 낙랑궁성으로 떠나간지 어느덧
달포에 가까우니 우리 어찌 왕자님의 생환을 기약하리요.  듣자하니
오랑캐 파달이가 한나라에 청병하여 고구려를 정벌하려는 야망을
귀공(貴公)도 아신다면 그 어찌 진격의 지연을 고집한단 말이요?
   아니되오.  장군!  승산이 없는 싸움은 망국의 싸움!
   무엇이?  그대는 고구려 사람인가?  오랑캐의 앞잡이냐?
   나라를 망치려는 당신이야말로 천추에 고구려 무사도를 더럽힐 망국의
장군임을 알으라
  이렇게 옥신각신 싸움을 하는 동안에 결전의 음산한 밤이 훤하게 밝게
되자 급기야 낙랑통일의 진격을 준비하라는 전고(戰鼓) 소리와 소라 나팔
소리는 널려진 고구려 군사에게 무서운 긴장과 흥분을 뿌리며 방방곡곡에
전파되었다.
  하늘을 덮은 예리한 창검!
  전고에 날뛰는 군마와 군기
  결전을 맞으려는 눈동자--- 눈동자---
  진격령이 떨어지려는 찰라의 침묵---
  이제 낙랑통일의 진격령을 입에 담고 마상(馬上)에 몸을 실은 한 장군이
고구려 흥망의 운명을 지니고 대군앞에 나서는 것이다.
  그는 허공에 창을 올리며 외쳤다.
   용감한 고구려 군사여 보라!  여기를 보라!  항상 원수와의 싸움에서
선봉장이시던--- .  고귀한 왕자님의 몸으로 선봉장이시던--- .
호동장군은 오늘 싸움에 아니 계시다.  우리는 호동장군의 뒤를 따라야
한다
  이때였다.  막 진격령이 내리려하는 찰라!  앞산 산마루를 넘어
쏜살같이 말을 달려오는 낙랑의 무사 한사람이 있다.
  이 광경을 본 고구려 군사들은 일제히 활을 겨누고 눈에 불을 켰다.
  긴장과 흥분의 시선속에서 고구려군사의 진지에까지 달려온 낙랑의
무사는 손을 저으며 선봉장(先鋒將)의 기치로 뛰어드는 것이 아닌가?
  모든 군사는 연장을 겨냥한채 넋을 잃고 바라만 볼 뿐이다.
  선봉장 한사람이 창을 세우고 말을 몰아 달려가기가 바쁘게 낙랑 무사의
가슴패기에 창을 찌르고야 말았다.
   와!
하고 진지에서는 목구멍이 터지듯이 고함소리가 터진다.
  위기일발의 찰나였다.
  마상에서 날쌔게 몸을 피해 선봉장의 창을 빼앗은 낙랑군사는 허공에
창을 휘두르며 외치는 것이다.
   용감한 고구려 병사여!  나를 자세히 쳐다 보라!  이몸은 고구려
군사의 선봉자!  왕자 호동이다!
  이 놀라운 말이 떨어지자 칼을 빼여들고 달려들던 몇 장군은 뜻하지
않은 호동장군의 출현에 얼을 잃고 서로 바라만 볼 뿐이다.
  눈과 눈--- .
  얼굴과 얼굴--- .
  침묵과 환희.
  솟아나는 눈물--- .
  어느 장군은 마상에서 호동의 무릎에 엎드려져 복바치는 기쁨에 목놓아
울었고 어느 장군은 말에서 뛰어내려 머리를 땅에 떨어뜨리고 경배를 하고
나선 미친 사람마냥 땅을 치며 좋아서 날뛰었다. 
  감격과 눈물과 침묵속에 흐르는 긴장한 시간은 급기야 천지를 뒤흔드는
환호와 만세소리로 발칵 뒤집히고야 말았다.
  만세!  만세!
  호동장군 만세!
  왕자님 만세!
낙랑의 군복으로 변장한 무사가 호동장군임을 알게된 고구려대군은 기쁨과
놀라움에 복바치는 눈물을 흘리며 가슴이 터져라 하고 만세를 불렀고
창검을 허공에 휘두르며 고함을 질렀다.
  그 기쁨은 저승에서 어버이가 살아온 기쁨보다도 더 하였다.
  그 힘이란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은 힘보다도 더 하였다.
  빛나는 승전에는 반드시 용감한 군사가 있고 용감한 군사 앞에는 반드시
애국의 명장이 있어야 한다.
  간밤의 불안은 어둠과 함께 사라지고 먼동이 튼 동녘 하늘에는 비죽히
아침 해가 솟아난다.
  호동장군의 실종으로 인하여 땅에 떨어졌던 군사의 사기는 호동장군의
출현으로 인하여 금시 적군을 훌떡 집어 삼킬듯이 펄펄 뛰는 것이다.
  이 광경을 말없이 마상에서 바라보던 호동장군은 허공에 손을 저었다.
  소란한 진지에는 금시 죽은듯한 침묵이 흐른다.
  날개 돋은 용마(龍馬)를 타듯한 명장 호동은 불타는 가슴과 입에서
말마다 불을 뿜고 눈물을 뿜었다.
  승전의 북소리와도 같고 사자의 울음소리와도 같았다.
   용감한 고구려 병사여 들으라.  오랑캐 한나라에서 빼앗긴 고구려의
국토 낙랑을 이제야 통일할 날은 왔도다.  오랑캐의 종살이로 삼백년이나
갖은 학대를 받고 울던 그리운 낙랑의 동포와 얼싸안고 만나볼 날은
이제사 왔도다.  그대들은 아는가?  밀사로 간 사다한이가 왕검성에서
세운 천추에 빛나는 공로를!  이 낙랑의 신기 자명고가 찢어진 것을?
  이말을 들은 고구려 군사들의 눈알은 기쁨에 발까닥(발칵) 뒤집히고
진격의 첫 발자국을 떼려는 그들의 어깨에는 날개가 돋히는듯 가뿐하였다.
   만세!  만세!
   자!  가자!  오랑캐를 우리 강토에서 몰아내러 가자!  우리의 후손들이
천추만대로 찬양할 고구려 통일의 역사를 만들러 가자!  자!  말고삐를
쥐어라.
  창검을 억세게 쥐어라.
  진격이다 북을 울려라.
  우리는 벌써 이겼도다 자!  가자!
  진격령이 떨어지자 사기 충천한 고구려군은 천지를 뒤흔드는 전고소리와
함께
  호동장군은 선봉으로 낙랑의 국경산야를 넘어 일사천리로 왕검성으로
쏜살같이 달리는 것이었다.

  슬픈 사랑
  병부사(兵符使)로 가장한 사다한의 연극에 속아넘어간 낙랑의 왕실은
말벌이 둥지를 터친 것처럼 원한과 불안속에 떠들석하였다.
  고목아래 쓰러진 파달의 주검!
  갈래 갈래 칼부림을 맞은 자명고!
  게다가 호동의 탈출?
  이 얼마나 놀라운 사변인가?
  삽시간에 청천벽력 같이 하늘에서 떨어진 이 사변은 낙랑 삼백년의
보물을 한꺼번에 거느리고 간 셈이다.
  이 광경을 본 낙랑의 문무 백관은 너무 어이가 없고 맥이 풀려 서로
입을 딱 벌리고 바라만 볼 뿐이었고 이 흉보(凶報)를 들은 전방의 무장한
낙랑의 군사들의 사기(士氣)는 더할 나위없이 땅에 떨어지고야 말았다.
  일이 이렇게 되고보니 워낙 성미가 콩볶듯 하는 최리왕은 머리털 끝까지
왈칵 분노가 치밀어 자명고를 찢고 왕자호동을 도망시킨 죄로 그날로 당장
공주를 옥(獄)에 가두고 사형선고를 내리고야 말았다.
  자명고가 찢어지고 보니 고구려를 정복하려던 불타는 영웅심은 흔들리기
시작하였고 왕검성 밖의 백성들은 왕실을 원망하는 소리가 나날이 높아
갔다.
  게다가 하늘같이 믿고 있는 파달장군마자 하룻밤 사이에 황천의 객이
되고 보니 무슨 낯작(낯짝)으로 한(漢)나라에 고구려 정벌의 원병을
청한단 말인가?
  왕은 앞날의 일이 걱정이 되었다.
  왕검성을 탈출한 왕자 호동은--- 그리고 호동을 맞아 의기충천한 고구려
군사는 아무리 생각하여 보아도 그대로 있을 것만 같지 않다.
  왕은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왕검성을 뛰어 넘는 고구려 군사들 그리고 왕자 호동의 늠름한 무서운
얼굴이 불쑥불쑥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할 수록 원망스럽고 얄미운 것은 공주이다.
  부왕을 배반한 공주!
  낙랑을 배반한 공주!
  원수와 불의의 정을 맺은 공주!
  호동을 탈출케 한 공주!
  옥중에서 울면서도 호동을 그리는 공주!
  공주가 저지른 일을 생각하면 치가 떨리고 당장 목을 두토막으로 내어도
시원치 않을 무서운 죄상이었건만 그래도 공주의 사형을 결행하지 못하고
하루 하루 날을 물림이 왕의 쓰라린 심정이었다.
  그러나 날이 밝으면 공주의 사형을 왕이 친히 자기 칼로 결행할 것을
선포한 날이 아닌가?
  낙랑 삼백년의 영화를 자랑하는 왕검성의 밤은 상가집마냥 죽은 듯이
고요하다.
  왕은 잠자리를 걷어차고 미친듯이 창밖으로 뛰어 나왔다.
  울창한 고목들이 오늘따라 무시무시하게 활개를 벌리고 자기를 흘겨
보는 것만 같았다.
  흘러간 몇날전만 하여도 그 녹음 아래서 꽃같은 궁녀들과 풍악을 갖추고
꽃놀이의 술잔을 들던 이 울창한 고목들이건만 오늘밤은 그 가지마다 그
잎사귀마다 원한많은 낙랑백성들의 억센 주먹으로 변하여 성난 눈으로
변하여 흘겨만 보는 것같았다.
  왕은 달빛에 어둠길을 더듬어 가며 자명고실 밑에 자리잡은 옥으로
가까이 갔다.
  날이 밝으면 황천으로 갈 공주의 얼굴이나마 마지막으로 한번 보리라는
어버이의 눈물겨운 마음에서였다.
  발걸음 소리를 죽이고 살금 살금 옥문 앞에까지 가까이 갔다.
  고목에서는 접동새가 접동--- 접동--- 하고 그리운 임을 찾는듯 슬피
울어준다.
  옥안을 살펴 보니 캄캄하다.
  문듯(문득) 한구석을 살펴보니 그곳에는 달빛속에 흐릿하게 나타나는 한
여인의 모습!
  밤하늘의 뭇 별을 바라보며 합장(合掌)하는 거룩한 모습이 아닌가.
  왕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날이 밝으면 저승으로 갈 몸이 저렇게 이승에서 저지른 죄를
천지신명에게 뉘우치는 것이 아닌가?
  왕의 어두운 마음에는 한줄기 광명이 비치는 것만 같았다.
  몸은 비록 국법에 의하여 이승을 떠날지라도 저승에나마 좋은 곳으로
가리라는 신앙에서였다.
  왕은 서러운 마음을 가다듬어 큰 기침을 하고는 침을 배앝듯 투박하게
말을 부쳤다.
   이년아!  인제사 네 잘못을 뉘우치는가?
   아바마마--- 불효한 이 딸을 용서하오소서
   네 년은 나의 딸이 아니야.  나에게 일찌기 딸은 없었노라
   아바마마--- 날이 밝으면 영영 헤어질 이몸--- 제발 비옵나
   니 한마디 말을--- .  이몸이 저지른 죄를 용서하시고 이몸을
   아가--- 라고 이몸을 딸이라고 한마디만 불러주어소서
   아가라고?  내 딸이라고?  아하하하--- 이제 때는 늦었노라.
   내 그대에게 물어 보노니 무슨 남길 말은 없는가?  무슨 하고     싶은
말이나 없는고?
   아바마마--- 한가지 소원이--- 
   어서 말해 보라.  왕천으로 가는자의 마지막 소원이라면 무엇
   이나 이루어 주겠노라
   아바마마--- 불효 소녀는 호동왕자님과 백년가약을 맺은 몸
   무엇이?  백년가약?  그래서--- 
   이몸이 죽사오면 무덤의 비석에 고구려왕자 호동지처(好童之
   妻)라는 이름 이름 넉자를 색여(새겨) 주오소서
   에이--- 고약한 년!  요사스러운 계집--- , 황천가는 순간에
   나마 이승에서 저지른 죄를 천지신명에게 뉘우치는 줄만 알았
   더니 에- 잇--- 호동지처라고?
   이 천벌을 받을 계집아---
   원수 호동이가 이 애비보다 중하더냐?
   불의의 사랑이 저 자명고보다 중하더냐?
   자!  이제 날이 밝았다.
   네년이 죽을 때가 이제 왔도다.  그리고 이 아침에 낙랑군에
   출진령을 내려 고구려군을 전멸시킬 것이다.
   그리고 네년의 지아비라는 왕자호동의 목을-- .
   이칼로 네년의 목을 치듯이--- .  여봐라 아무도 없느냐?
  왕이 칼집에서 칼을 빼여들고 미친듯이 날뛰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니
자명고실쪽에서 무관 한사람이
   예- 이
하며 뛰어나오기가 바쁘게 땅에 코를 박고 왕앞에 엎드린다.
   이길로 문무백관을 이리로 오게하라.
   국적인 낙랑공주를 이칼로 친히 목을 치고 짐이 선봉으로 고
   구려 정벌의 길에 나서겠노라
  놀라운 왕의 말에 간장이 콩알만해진 무관은 자명고실 앞에
느러진(늘어진) 설렁줄(招人鐘)을 흔드니 요란한 방울소리가 왕검성을
뒤흔드는 것이다.
  공주는 머리를 단정히 가다듬고 다시 하늘을 우러러 합장을 하였다. 
   천지신명이시여! 죄 많은 이 계집아이를 자비하옵신 품안에
   받아주오소서
   이몸의 지아비 호동님을 위험한 자리에서 언제나 건져주오시
   고.  소녀와 이승에서 다 하지 못한 인연 저승에서나 맺어지
   게 하오소서--- 
  나라에 대사가 있을 때마다 울려오는 방울소리에 불길한 예감을 가진
문무백관들은 자명고실 앞뜰에 모여들어 서로 왕의 눈치를 엿보고 옥중의
공주를 번갈아 보았다.
  왕은 칼집에서 칼을 번쩍 빼여(빼어)들고 뇌성벽력으로 호령을 하였다.
   옥안에서 공주를 끌어내라
  옥사장은 공주를 앞세우고 조심 조심 왕의 앞에까지 나왔다.
  공주를 흘겨보는 최리왕!
  왕을 눈물로 바라보는 공주!
  그러나 공주는 태연하였다.
  아무런 불안도 공포도 없는 모습이었다.
   짐은 이제 국적의 목을 치고 이길로 고구려 정복의 영을 내리
   기로 하노라.
   낙랑의 운명은 경들의 두 어깨에 지워졌나니 이제 한목숨 나
   라에 바치고 낙랑군의 선봉에 설 장군은 이 앞에 나설지어다 
  문무백관들은 고개를 떨어뜨린채 서로 눈치만 보고 아무 말이 없다.
   어이 하여 말이 없는고?  추라장군은 어떠한고?
   저--- 저---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이몸은 이미 늙은 몸이오라--- 
   늙었다고?  못난자!  그러면 백호장군은 젊었으니 짐을 위해 전공을
세울터이지
   예--- 예--- 아뢰옵기 왕공하오나 저렇게 자명고가--- 자명
   고가--- 
   자명고가 찢어져 승산이 없단 말인가?  에잇--- 그러면 용마
   장군은? 
   예--- 예--- 저--- 저--- 소장은 불타는 충성지심(忠誠之心)
   금할길 없나이다
   그렇지 그럴터이지--- 과연 그대가 충신이로고--- .
   그러면 그대가 이번 싸움에 선봉장으로 고구려군을 전멸할지
   어다
   상감마마--- .  그러하오나 이 몸에게는 늙은 어버이와 처자
   가 달린 몸이오라--- 
   무엇이?  처자가 달렸다고?  에잇 버러지 같은 것들--- 간사
   한 것들--- 이것이 짐에 대한 충(忠)이란 말인고?
  이때였다.
  왕검성 밖에서는 낯설은 전고(戰鼓)소리가 은은히 들려오는것이 아닌가?
  전고소리는 점점 커지며 하늘을 진동하는 요한한 북소리로 변한다.
  터지는 만세소리--- .
   고구려 통일 만세!
  아우성 소리를 지르며 여기 저기서 도망을 치는 군사들이 엎어지고
자빠지고 수라장을 이루기 시작이다.
  왕은 도망을 치려고도 하지 않았다.
  공주를 베인 칼로 자신도 낙랑 삼백년의 운명과 함께 하려는 비참한
결심이 눈앞에 벙끗하자 공주를 노려보며 칼을 번쩍 올렸다.
  이때에 어디선가 낯익은 소리--- .
   공주!  공주!
  말발굽소리와 함께 터지는 숨결가쁜 소리였다.  칼을 받으려는 찰나
이소리를 들은 공주는 생명의 수호신(守護神)을 만난듯 부왕의 칼을
뿌리치고 소리를 따라가는 것이다.
   아슬라!  아슬라!  왕자님!  왕자님!
   공주!  공주!  어디 있소.  공주!
  공주를 찾는 호동!
  호동을 찾는 공주!
  그러나 얄  은 운명이었다.
  공주를 뒤따라온 최리왕은 공주의 가슴에 칼을 꽂고 자기도 그 칼로
자결하고야 만 것이다.
  고구려의 통일과 함께 낙랑 삼백년의 운명과 함께 쓰러진 최리왕과
공주의 주검이었다.
  호동은 절벽 밑으로 걸어가다가 소스라쳐 놀라며 발걸음을 멈추었다.
  절벽밑에 쓰러진 가엾은 여인!
   공주!  공주!  내가 왔소.  공주!  왜 말이 없소?
  호동은 공주의 시체를 흔들어 보고 안아보고 하다가 허공에 손을 저으며
일어서는 것이었다.
  에이 소란하여라.  저 북소리 만세소리--- 모두가 나에겐 통곡소리
같구나.
  아침해여 뜨지마라 온갖 새여 노래마라, 아!  사랑의 선물로 꺽은
이꽃은 황천으로 가는 길에 제물이런가?
  그렇지--- 이몸도 갈 때가 왔다!
  고구려는 이제사 통일이 되어 만백성은 저렇게 좋아서 행복에 날뛰게
되었나니 이몸이 이제 구차히 살아서 무엇하랴.  호동은 예리한 칼로
가슴을 찌르고는 공주의 피흐르는 가슴위에 쓰러지는 것이었다.         
   <끝>                       
 

 

 


<제 삼 화> 抱腹絶倒 (포복절도)
楊書房의 致富


  大監의 凶計를 물리친 이야기
옛날 평안도(平安道) 어느 조그만 고을에 정대헌(鄭大憲)이라는
토반(土班)이 살고 있었는데 선대(先代)로부터 물려받은 제법 적지않고
더욱이 글귀나 알아 보는 터이어서 이웃 사람들이 이 사람을 가리켜
정대감(鄭大監)이라고 불러 왔었다.  이 정대감댁 머슴으로
양극대(楊克大)라는 젊은 사람이 있었는데 근본이 없는 상놈의 집에서
태어나 무식은 할망정 영리하기가 짝이 없는 위인이었다.
  정대감이 다 늙어빠진 처지에 점잖게 여생을 보낼 생각을 하였더라면
별일이 없었을 것을 먹을 녹량이 충분하고 몸이 편하고보니 자연 생각나는
것이 부질없는 생각 뿐이라, 이 고을에 얼굴이 반반한 여자라면
논마지기나, 얼마간 떼어주고는 사오다시피 하여 데려다 소실을 만든
여자가 자그만치 열명이나 되었건만, 예나 지금이나 욕심은 한이 없는
모양이어서 하필 자기집 머슴 양서방의 처 옥분(玉粉)을 빼앗아 볼 욕심을
품게 된 것이 결과로는 해괴망측한 꼴을 보게 된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옥분은 얼굴이 유달리 아름다웠던 것은 물론이려니와 몸 맵시가 과연
여자다워서 조석으로 눈에 뜨일 째마다 끓어 오르는 욕정을 참을 길이
없어 주야로 생각하는 것이 옥분을 손아귀에 널(넣을) 궁리였다.
  함박눈이 내려붓고 모질게 추운 어떤날 이른 새벽 정대감은
기침하시기가 무섭게 머슴 양서방을 불러 들였다.
   다른것이 아니라 내나이 육순(六旬)에 몸이 점점 허약해지는 것 같아서
보약을 좀 다려 먹어야 하겠으니 자네는 오늘 깊은 산중에 찾아 들어가서
딸기 서말서되(三斗三升)를 따와야 하겠네
   네
  머슴 양서방의 공손한 대답이다.
   다행히 자네가 딸기 서말서되를 따오면 내 재산 절반을 자네에게 넘겨
줄 것이고 만약 따오지 못할 지경이면 자네것을 무엇이든지 나에게
줘야하네
   네
   그래 만약 말일세, 따오지 못할 지경이면 자네 처라도 내가 원한다면
내놔야하네
  엉큼한 정대감이 다짐을 주는 말이다.
   네, 분부대로 하오리다
  정대감은 기뻤다.  자기의 꾀에 양서방이 넘어가는 것이 고소하고
고분고분 들어주는 것이 여간 마음에 흡족하지가 않아서 미리 생색이라도
내 볼 심정으로 노자에 쓰라고 돈 스무량(二十兩)을 선듯 내놓았다.
양서방은 무엇을 생각하였던지 별로 근심스러운 빛도 없이 돈을
받아가지고 나오다기 가기처 옥분에게 귓속말로 몇마디 일러주고는 험한
눈길을 떠났다.
  며칠이 지났다.
  산으로 딸기를 따러 간 양서방이 이른 새벽에 돌아 왔다.
   대감님 지금 돌아왔사옵니다
   오냐 딸기는 따왔느냐?
   딸기를 따려고 깊은 산중을 헤매었사옵더니 한 곳에 이르러 많은
딸기가 있는것을 보았기에 막 따려고 하오니 뱀(毒蛇)이 어떻게나 그리
많던지 하마터면 물려 죽을번(뻔) 하였사옵니다
   뭣이?  이놈아!  동지 섣달 눈오는 겨울에 뱀이라니 웬 뱀이란 말이냐?

   그러하오면 동지 섣달에 딸기는 웬 딸기이오니까?
   음
  정대감의 신음소리다.  해서는 안될 말을 자기가 먼저 끄집어 내었던
것이 큰 잘못이다.  또 사실이 그러하니 별수없는 노릇이다.  다만
오랫동안을 두고 머리를 짜서 꾸며낸 자기의 꾀가 허사로 돌아 간것이
분하였다.  돈 스무량도 새삼스러이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해서
이것으로 단념할 정대감은 물론 아니었다.
 
  죽음을 면하고 집을 얻은 이야기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돌아 왔다.  정대감의 맏아들 현상(賢相)이
서울로 과거(科擧)를 보러 떠나게 되었다.  그래서 나귀에다가 책과 돈을
싣고, 양서방이 도련님을 모시고 서울을 다녀오게 되었는데 아들 현상이
막 떠나려고 할 때에 정대감은 아들을 조용히 불러 이렇게 타일렀다.
   양서방이 아무리 생각해도, 내 비위에 거슬려 한 집에같이 살 수
없으니 네가 양서방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 가다가 큰 물에 넣어서
없애버려라.  그래야 내가 마음을 놓고 살겠다
   아버님 말씀대로 하오리다
  이렇게 부자지간에 앙큼한 언약이 이루어진 줄은 꿈에도 모르고
양서방은 오래동안 마누라와 헤어지는 것이 섭섭한 것은 고사하고
화려하고 찬란한 서울을 구경하게 되는 것이 기뻐서 마누라 옥분의
눈물어린 작별인사도 받는둥 마는둥 총총히 길을 떠났다.
  서울길은 과연 멀었다.  정대감의 아들 현상의 머리에는 과거를 보는 것
보다 아버지의 분부대로 어떻게 하면 양서방을 죽여 없앨 것인가가 큰
고통거리여서 같이 며칠을 두고 걷는 동안에도 말한마디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양서방은 눈에 보이는 산천 정경이 하나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어서 여간 마음이 상쾌하지가 않았다.
  이윽고 안주(安州) 청천강(淸川江) 변에 이르렀다.  강을 건너 안주
읍내에 들어가서 주막(旅館)을 정하더라도 해가 서산을 넘지 않을것을
주인대감 아들 현상은 경치가 좋으니 어쩌니 하고, 굳이 강가에서
하룻밤을 자고 가자는 것이다.  아직 봄이라고 하나 야반에는 몸에
스며드는 찬 바람을 참기 어려울 것인데 현상이 굳이 고집하는데는
양서방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저녁 요기도 하지 못하여서 시장하기가 한이 없었으나 푸른 물이 세차게
흐르는 언덕에서 하늘에 총총히 뜬 별들을 바라보며 하룻밤을 지내는 것도
뜻 깊은 일인 것같아서 양서방은 별로 불평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현상도련님은 나귀를 언덕위 버드나무에 매어놓고 책과 돈을 언덕위에다
놓게 하고 자기는 머리를 책과 돈이 있는 쪽에 두고, 발을 물흐르는 쪽에
향하여 세로 누운후에 양서방은 도련님의 발밑에서 자되 물흐르는 방향과
같이 가로 누워 자라는 것이다.  양서방이 가만히 생각하니 이것이 무슨
곡절이 있는듯 해서 도련님이 시키는대로 누워서 곤히 잠드는 척 하였다.
얼마를 지난 후에 양서방은 조용히 일어나서 도련님의 머리위에 놓여 있는
책과 돈꾸러미를 자기가 누워자던 도련님 발밑에 바싹
다겨놓고(당겨놓고), 자기는 도련님 머리위에 가만히 드러 눕고 동정을
살피고 있노라니까 아니나 다를가(다를까) 코를 골며 자던 도련님은
   음!
하고 기지개를 하는 척 하면서 자기 발밑에 있는 것을 두발로 힘껏
차버렸다.
   첨벙!
  무엇이 물속으로 떨어지는 소리다.  다시 조용해지고 고요치 못한 밤이
흘러가 버렸다.  아침이 되었다.
  눈을 부시시 뜨고 일어난 도련님은 있어야 할 책과 돈이 없어진 것에
놀랐고, 의당 죽어 없어야 할 양서방이 코를 골며 자고 있는 것에 놀랐다.
 그래 황급히 양서방을 깨워 일으키는 것이다.
   여보게, 양서방, 일어나게.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인가.  응?
   무었이오니까?
  잠꼬대같은 양서방의 퉁명스러운 대답이다.
   돈과 책 말일세.  돈과 책이 없단 말일세
  그제서야 자리에서 일어난 양서방은
   간밤에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귀중한 책과 돈을 언덕위에 놓아 두면
도둑을 맞을 염려가 있기에 도련님 발밑에 갖다 놓았었는데, 도련님이
잠결에 그만 물속에 차넣은 모양인가 봅니다
  분한 일이다.  책이 없으면 과거를 보기 전에 무엇으로 공부할 것이며
서울이 아직 수백리이니 돈없이 어찌 갈 것이냐.  한심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양서방을 나무랠 수는 없어서 현상은 나귀를 타고 안주읍내로 힘없이
들어갔다.
  간 밤에도 요기를 못하였으니 사람이나 짐승이나 허깃증을 참기
어려웠다.  현상이 가만히 생각하니 주머니에 든 돈이 몇푼 안되는데
양서방과 같이 아침 요기를 할 수도 없고, 또 귀중한 책과 돈을
잃게하여서 미운생각으로 라도 밥을 먹여주고 싶지도 않아서 주막집이
건너다 보이는 어느 골목에서 문득 발을 멈추고 양서방에게 하는 말이
   여보게 내 지금 읍내 어느 친구를 잠시 만나고 올 것이니 자네는
이곳에서 나귀 고삐를 꼭 붙들고 기다리고 있되 눈을 꼭 감고 있어라
  눈을 꼭 감고 있으라는 것은 선비된 처지에 혼자만 밥을 사먹는 것이
계면쩍어서 이렇게 한 것이다.
   네
  양서방은 나귀 고삐를 한손에 꼭 붙들고 눈을 꼭 감았다.  현상은
안심이 된다는 듯이 주막집을 향해 걸어갔다.
  양서방이 눈을 살그머니 떠 보니, 도련님이 혼자서 주막집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옳지 됐다.  나도 생각이 있다
  고삐를 붙들고 사방을 휘돌아보고 있노라니까 마침 점잖은 노인 한분이
지나가는 것이다.
   여보슈 노인장!
   왜 그러슈?
  노인은 의아스러운 눈치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저는 평안도 사람으로 서울에 가는 도중에 노자가 떨어져 할 수없이 이
나귀를 파는 것이니 아주 싼값으로 사가시오
   얼마에 팔겠소?
   열량(十兩)만 주시오
  노인은 생각하니 그 나귀가 아무리 해도 스무량짜리는 되는 것인데,
아주 반값으로 팔겠다고 하니 에라 좋아라 하고 선듯 내놓았다.
   그런데 노인장 이 나귀의 고삐를 한뼘만큼만 짤라 주시오
   그건 무엇에 쓰시려우?
   팔기가 아까워서 그럽네다
  과연 애석한 것같았다.  그러나 고삐쯤이야 짧으면 새것으로 매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 노인은 허리춤에서 참칼을 꺼내어 나귀 고삐를
한뼘만큼만 짤라서 양서방을 주고는 나귀를 끌고 가버렸다.  양서방은 돈
열량을 허리춤에 간직하고는 한뼘되는 나귀 고삐를 손에 쥐고 아까
모양으로 눈을 감고 서 있노라니까 과연 도련님은 홍조가 된 얼굴로
주막집을 나와 이쪽으로 향해 걸어 오는 것이었다.
   아니, 여보게 나귀?
   여기 있읍니다
  양서방은 눈을 감은채 고삐를 쥔 손을 내밀었다.
   아니 나귀가 없단말이야!
   여기 있지 않습니까?
  여전히 고삐를 쥔 손을 내흔드는 것이다.
   눈을 뜨고 똑똑히 봐!
  소리를 왈칵 질렀다.  그제야 눈을 뜬 양서방은 자못 놀라는듯이
   제길할 어떤 못된 놈이 고삐만 짜르고 나귀를 훔쳐 갔군요.  도련님이
공연히 눈을 감고 있으라니까 이렇게 된 것이지--- .  그것 참!
  현상은 생각하니 기가 막히었다.  분한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건만 당장
죽여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서울까지 동행할 수도 없을 뿐더러
같이 있다가는 또 무슨 화를 당할지 알 수 없어서 그냥 집으로 돌려
보내기로 하였다.
   네 이놈--- 당장 물고를 내 버릴 것이로되 초로같은 인생을 가엾이
여겨 이대로 돌려 보내는 것이니, 너는 이길로 곧 집으로 내려가거라
   그러나 도련님 혼자서 어찌 서울로 가시렵니까?
   내 걱정은 말아라
  현상은, 양서방을 먼저 돌려 보내게 된 사연을 적어 부친께 전하려고
지필을 꺼내 쓰려다 문득 생각하니, 양서방이 이것을 가지고 무슨 조작을
할지 알수 없으므로 잠시 생각한 끝에
   네 이놈!  저고리를 벗고 뒤로 돌아 서거라
   에
  양서방은 저고리를 벗고 돌아 섰다.  현상은 붓에 먹을 찍어 양서방의
등에 이렇게 썼다.
  전략
  이놈으로 인해서 잃지 않을 책과 돈을 잃고, 잃지 않을 나귀를
잃었사오니 집에 돌아가는 즉시로 죽여 버리시옵소서---
  그리고는
   집에 돌아가거든 곧 대감을 뵈옵고 네 등에 쓴 이 글을 보여드려라.
알겠느냐--- 
   염려 마십시요
  이리하여 현상은 서울길로 떠나고 양서방은 집을 향하여 떠났다.  서울
구경을 못한 것이 원통하였지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하여도, 자기 등에 쓴 글이 궁금하였다.  자기를 칭찬하는 글이
아님은 뻔한 노릇이고,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기는 안되겠기에 글이나
알아보는 사람이 혹 행인중에 있지 않을가 하고 두리번거리며 길을 걷고
있노라니까 저편 쪽으로부터 대사(僧) 한분이 걸어 오는 것이 보였다.
   대사님.  청이 하나 있읍니다
   무슨 청인지 말씀하시지요
   이것 좀 봐주십시오
  양서방은 웃저고리를 벗고 등을 보였다.
   여사 여사(如此 如此) 하옵니다
   그러면 돈 닷냥(五兩)을 부처님께 바칠 것이니 그 글을 지우시고, 제가
부르는 대로 고쳐 써 주십시오
   그리 하옵지요
   대사가 먹과 붓을 준비하니, 양서방은
   전략 양서방으로 인해서 잃을 책과 돈을 얻었으며 잃을 나귀를
얻었으니 집에 돌아가는 즉시로, 기와집 한채와, 논밭을 주어 잘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써 주십시오
   그렇게 쓰겠읍니다
  양서방은 돈 닷량을 대사에게 주고,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대감님 이것 좀 보십시오
  다짜고짜로, 저고리를 벗고 등을 내밀었다.
   아니 네가, 왜 먼저 돌아와서 이게 무슨 짓을--- 등에 글을 썼군!
뭣이?  잃을 책과 돈을 얻고, 나귀를 얻고 응
  청천벽력같은 이야기다.  의당 죽었으리라고 믿어서 일간 옥분을 소실로
맞아들이려는 터에 이렇게 되었으니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나 그 공이
적지 않으니 아들의 말대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리하여 양서방은 큰 기와집에서 받은 논밭을 가지고 알뜰하게 살게
되었던 것이다.

  大監父子에게 復讐한 이야기
  이해 여름에 서울 갔던 현상은 낙방이 되어 집으로 돌아와 보니 길옆에
큰 기와집이 생겼는데 내용을 알아본즉 이리저리 하다는 것이다.  더 참을
수 없었음인지 부친께 여쭙고, 힘깨나 쓰는, 하인을 시켜 양서방을
잡아다가 오라줄로 꽁꽁 묶고 세겹으로 된 무명자루(袋)에다가 넣고, 다시
그 주둥이를 힘껏 묶어 꼼짝 못하게 한 후에, 앞산 밑 큰연못에 내버리게
하였다.
  양서방은 꼼짝할 수없이 죽을 판이었다.  앞산밑 연못가에 이르러
양서방을 넌(넣은) 자루를 내려놓고 하인 한사람이 자기 동료에게 하는
말이
   여보게 사실 말이지, 양서방이야 무슨 죄가 있나, 다 이것이 대감님의
부질없는 장난이지 뭔가.  대감님댁 도련님이 시키는 일이니 거역할 수
없이 이곳까지 메고 왔네마는 참아(차마) 물속에 던질수야 있나? 그러니
저 버드나무에 매어 달아놓고 가세
   자네 말이 옳네, 그렇게 하세
  두 하인이 자루를 연못가 버드나무가지에 매달았다.
   고맙네
  양서방의 말이다.  그러나 살아 나갈 길이 막연하였다.  마누라가 보고
싶었다.  눈물이 양볼을 적시었다.  그러나 어떻게 하여서든지 살아나가야
하겠다고, 이렇게 저렇게, 골돌히(골똘히) 생각하고 있는데 웬 사람하나가
버드나무 밑으로 지나가는데 지팡이 소리가 나고, 발자국 소리가 고르지
못한 것이 필시 장님인 것 같았다.  그래서 생각되는 것이 있어 큰
목소리로
   네눈 깜깜, 내눈 번뜩
   네눈 깜깜, 내눈 번뜩
  이렇게 염불 외우듯 외이는 것이었다.  지나가던 장님이 가만히
생각하니
  (네눈 깜깜이고, 내눈 번뜩이라, 이게 무슨 소리인고?  가만있자,
하여간 물어보리라)
   여보시오
  장님이 소리쳤다.  양서방은 사뭇 귀찮다는 듯이
   왜 그러시오?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오?
   눈뜨고 있소
   댁에서도 장님이요?
   그렇소
   나도 좀 눈뜨게 해주시오
   안되오, 초가삼간을 팔아서 이것을 사가지고 이 속에 들어앉아 이
주문(呪文)을 외우는 것이 벌써 아흐레째가 되어 이제는 눈이 다 떠서
앞을 환히 보게쯤 되게 된 터에 댁이 누구시라고 눈을 뜨게 해드리겠소.
원 미친놈 다 봤군!
   네눈 깜깜, 내눈 번뜩
  양서방이 예기했던 바와 같았다.  그래 신바람이 나서 더 큰 목소리로
주문을 외우는 것이다.  한편 장님은 몸이 달았다.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인 것이다.
   여보슈, 보아하니, 젊은 친구같은데 당신의 눈이 다 뜨거든 그 보물을
나에게 팔 수 없소?  쉰량(五十兩)을 드리리다
   그렇게 하슈.  나도 눈이 뜨면 이것이 소용없소
  양서방은 장님의 힘을 빌어 나무가지에서 자기가 든 자루를 풀어 땅에
내려놓게 하고, 다시 주둥이를 풀고, 자기 몸에 묶인 오라줄을 풀게 하여
자유스럽게 된 후 불쌍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장님을 묶고 자루에 넣어 그
이상한 주문을 외우게 한 후 다시 버드나무 가지에 매어달고는
   여보 장님.  쉰량은 이 다음에 주시오
   고맙소이다
  다시없는 적선인 것같이 말하고는 양서방은 이웃 고을 주막으로
향하였다.
  며칠후의 일이다.  죽은 줄로 알았던 양서방이 정대감 앞에 나와서 큰
절을 세번 하고는
   대감님의 높으신 은헤는 소인 백골 난망이옵니다.  대감님께서
염려하신 덕분으로 용궁(龍宮)에서 많은 대접을 받고 왔사옵니다
   아니 그것이 사실이란 말이냐?
   사실이옵니다
   그러면 어째서 벌써 돌아왔느냐?
   다름이 아니오라, 소인이 대감님의 높으신 은혜를 입어온 위에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용궁을 구경하고 또 많은 궁인들의 극진한 대접을
받기에는 너무 죄송스러워서 대감님과 도련님을 모셔가려고 왔읍니다
   기특하다.  언제 용궁에 가는 것이 좋겠나?
   내일 묘시에 가기로 궁인과 약속 했사옵니다
   그래라
   그러나 다시없는, 기회이오니 온 가족을 다 모시고 가고자 하옵니다
   그러지 그래
   용궁에 가본즉 이 세상에 없는 물건이 없사온데, 다만 맷돌이
없사옵니다.  그러하오니 맷돌을 많이 마련하시어서 식구 하나가 한짝씩
지고 가심이 좋을듯 하옵니다
   그러지 어디 빈 손으로 찾아갈 수 있겠나?
  정대감은 모든 하인을 시켜, 이날 안으로 어른 아이들은 막론하고
한짝씩 지고 갈 수 있도록 크고 작은 것을 만들게 하였다.
  이튿날 아침 일찌기 정대감댁 가족과 양서방 내외는 각기 맷돌 한짝씩을
지고 묘시에 늦지않도록 열을 지어 앞산 밑 연못가에 이르렀다.
   도련님께서 먼저 들어가십시오
   그러면 뒤따라 오십시오
  첨벙 하고 현상이 물속으로 뛰어 들었다.  등에 돌로 만든 맷돌을
지었으니, 물 속에 뛰어 들기가 무섭게 자취를 감춰버리는 것이다.
   저것 보십시오.  하도 좋으시니까 도련님께서 뛰어가시지 않습니까
   그런가보다
   어서 들어 가십시오
  대감님이 맷돌을 진채 물속에 뛰어 들었다.  며느리, 손자, 손녀 할것
없이 모조리 뛰어들었다.
  모두 물귀신이 된 것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나중에
양서방의 처 옥분의 차례다.  옥분이 막 뛰어들려고 하니
   여보 당신 정신있소, 없소?
하고 붙잡았다.  옥분을 데리고 집에 돌아온 양서방은 정대감 소실에게
각기 얼마씩을 주어서 제집에 돌려보내고 자기자신이 이집 주인 대감이
되어서 일생을 아무 군색없이 살았다 한다.

<끝>  

 

 


<제 사 화> 節佳妓話(절가기화:절개있는 아름다운 기생이야기)
風流監司


  평안감사 김시중(平安監司 金時仲)은 풍월(風月)을 몹시 즐기는
사람으로 그 당시에는 참으로 유명한 존재였다.  사람들은 그를 일컬어
풍류감사(風流監司)라고 불렀다.  그만치 그는 그당시에 감사라고 하는
높은 벼슬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독보적(獨步的)인 길을 걸어가고 있는
이채(異彩)로운 존재였다.
  그당시 사람들은 쥐꼬리만큼한 벼슬만 하나 차지하기만 하면 자기의
벼슬을 자랑하는 것이 먹고 하는 일이었고 자기가 차지하고 있는 권위를
최대한도로 이용하여 백성을 괴롭히는 것이 일이었다.
  그러나 김시중은 자기의 벼슬을 한번도 뽐내어 본 일이 없었다.  그는
되지못한 벼슬아치들이 그 쥐꼬리만큼한 벼슬을 자랑하고 뽐내고 하는
것을 보면 코웃음을 치며 오히려 그들을 경멸하고 멸시하였다.
  그는 딱딱한 관리도(官吏道)보다도 그윽한 인생의 향기(香氣)를
좋아하였다.
  그는 시간만 있으면 필묵(筆墨)과 종이를 준비하였다가 좋은 시를
지어서 이것을 혼자 소리내어 읊는 것을 유일의 낙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그가 조정(朝廷)과 국사(國事)에 대하여서 그 맡은
일을 게을리하거나 하면 또한 그렇지는 않았다.  자기의 취미는 취미대로
살리면서 또한 그가 맡은 일에 대하여서는 지극히 충실하였다.
  윗사람을 섬기되 결코 아첨하는 일이 없었고 백성을 다스리되 결코
무리하는 일이 없었고 백성을 다스리되 오히려 공생부사(共生父師?)하는
데가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백성들은 누구 하나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다.
  때마침 김시중이 성천(成川)땅으로 행차하게 되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도지사(道知事)나 내무장관(內務長官)의 초도순시(初度巡視)의
길을 떠나는 거나 마찬가지다.
  성천고을 원님 조경인(趙敬仁)을 선두로 온- 고을 사람들은 감사를
환영하기 위하여 성문 밖까지 나와서 서로 인산 인해를 이루었다.
  그것은 그들이 그를 환영하려는 뜻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도 시골서는
감사라는 말만 들었지 감사의 얼굴을 실제로 구경한다고 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이 먼 시골까지 소문에 높은
풍류감사 김시중의 얼굴을 어디 한번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이라도
하여보자 하는 생각때문에 더욱 그러하였던 것이다.  이윽고 수만 군중의
우뢰와 같은 박수 갈채를 받아가며 감사 김시중은 성천 고을에
도착하였다.
  이날밤 이 고을에서는 큰 잔치가 벌어졌다.
  이 고을이 생긴이래 처음보는 큰 잔치가 이 풍류감사 김시중을 위하여서
마련되었던 것이다.
  이자리에는 이고을에서 제법 내노라고 하는 일류기생들이 총동원하여
모여 들었다.  여니때(여느 때) 같으면 내가 제일 잘났노라고 뽐내고 빼고
건방지게 굴던 기생들도 이자리에서만은 그것이 통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다 제각기 있는 재주를 다하여서 혹은 노랫가락으로, 혹은 춤으로
혹은, 담소(談笑)로써 이 풍류감사의 흥을 돋구어 주려고 모두들 극성을
다 하였다.
  기생들이 이렇게 극성을 다 하는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 당시 기생들의
출세는 벼슬 높은 사람의 아내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 다투어 가면서 벼슬아치를 골라 잡아서 그의 총애를 받기 위하여
심혈을 다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이자리에 모시게 된 이 김시중이야 말로 그들이 일생을
통하여서 다시 한번 자리를 같이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진짜 벼슬높은
사람이다.
  거기다가 인물이 잘났고 또한 풍류를 이해하고 좋아 한다는 점에 더욱
매력을 느꼈던 것이다. 
  벼슬이 높겠다.  인물이 잘 났겠다.  또한 거기다가 풍류를 좋아하니
김시중이야말로 사나이가 가질수 있는 모든 좋은 조건을 모조리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시골에 살던 기생들이 서로 다투어 가면서 있는 재주,
없는 재주, 갖은 아양을 다 떨어가면서 김시중의 환심을 사보려고 하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일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다.  온갖 유명한 노랫가락소리가
들려오고 거문고와 장구 소리가 그 장단을 맞추어 주건만 이 풍류감사는
그 멋들어진 음악소리에 조금도 귀를 기울이는 것 같지 않다. 
  또한 내노라고 뽐내던 일류 무희(舞姬)들이 비장(秘藏)하였던 온갖 춤을
추면서 감사의 환심을 사보려고 노력하여 보았으나 그는 눈섭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그 좋은 노래와 춤이 그의 흥을 돋구어 주고 그의 환심을 사기에는
도저히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 많은 가수(歌手)들, 무희(舞姬)들은
이제 완전히 사기를 잃고 말았다.
  ( 흥!  허수아비 노래에다가 허수아비 춤!  그런 유치스러운 것을
가지고 나의 귀를 속이고 나의 눈을 속이려구? 어림도 없는 노릇이지 )
  김시중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사실 김시중의 예술적 양심으로 이
여인들이 노는 꼴을 보고는 참으로 가소롭기 짝이 없었다.  이 여인들의
예술에는 전혀 뼈가 없고 감정이 결여(缺如)되어 그냥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간파(看破)하였기 때문에 그는 하등의 흥미를 느끼지
못하였다.
  시간은 부질없이 흘러가고 밤은 점점 깊어가건만 김시중의 얼굴에는
시종여일(始終如一)하게 검은 구름만 돌고 있는 것이다.
  흥이 났을 때 이것을 감추기도 어려웁거니와 흥이 나지 않는데 억지로
흥을 낸다는 것도 또한 어려운 노릇이다.
  여기서 제일 입장이 난처하게 된 것은 이 고을 원님 조경인이였다.
그는 이따금 김시중의 얼굴을 쳐다 보았으나 아무 흥미없어하는 그의 얼굴
표정을 볼 때마다 참으로 민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적으나마 이고을 성주의 입장으로서 자기의 직접 상사요 평안남북도를
도맡아 다스리고 계신 평안 감사라는 높고 귀하신 어른을 초대한 이
마당에서 그의 흥을 돋구어 주지 못하고 그의 비위를 맞추어 드리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곤란한 문제였다.  관리로
볼때에는 치명상(致命傷)이 될 수도 있는 문제라 경우에 따라서는 어느
틈에 산골 같은데로 좌천이 되어 갈지도 모르는 문제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지금 바늘 방석에 앉은거나 다름없는 옹졸한 기분이니
  ( 이 오라질 계집년들!  그래 여태껏 먹고서 배운 재주가 노래와 춤인데
그래 우리 김시중 대감의 비위 하날 맞추어 드리지 못해? )
  조경인은 이제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지금 이자리에서 실력이 부족한 기생들을 책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또한 설사 책하였다 해서 없는 실력이 솟아 나올리도 만무할
일이었다.  그는 지금 울고 싶은 심정에 얼굴이 새파랗게 되어 연상
감사의 눈치만 보고 앉아 있는 것이다.
  하나 감사의 표정이 초저녁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다.
눈섭하나 가딱하지 않고 앉아 있는 김시중은 지금 자기가 이 좌석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잊어 버리고 몸은 비록 이자리에 있으되 정신은 지금 딴
세계이 가서 있는게 분명하다.
  ( 무슨 기적이나 나타나기 전에는 도리가 없어 무슨 기적이나 나타나
주었으면!  하나 내 어찌 기적을 바랄 수 있을까--- )
  조경인은 이제 완전히 실심낙담(失心落膽)하여 모든 것을 단념하여
버리고 흡사 실신(失神)한 사람처럼 우두커니 앉아 있다.
  바로 이때였다.  저만치 먼 끄트머리 자리에서 나(나이) 어린 기생
하나가 어슬렁 어슬렁 이쪽으로 걸어 오는 것이다.
  가까이 오자 그가 부용(芙蓉)이라는 기생인 것을 원님은 대번에 알 수가
있었다.
  부용이는 이 성천골 태생으로 일찌기 아버지를 여이고(여의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온 불쌍한 소녀였다.  부용이는 기생으로 들어온
그날부터 열심히 창(唱)과 무(舞)를 공부하였다.
  이 여자는 태생이 겸손한지라 이때까지 결코 내가 내노라고 뽐내어 본
일이 없었다.  그는 노래와 춤을 공부하는 한편 또한 시를 좋아하여 시
짓는 것에 취미를 가졌다.  뿐만 아니라 시작(詩作)에는 타고난 특별한
천재적 소질(天才的 素質)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 그의 예술을 이 시골 성천에서는 알아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이 고을 원님도 부용이를 이류(二流)나 삼류(三流)
기생정도만으로도 취급하여 주지 않았다.
  그러나 부용이는 이곳 시골에서는 비록 자기 재주를 몰라주되 반드시
때가 오면 사람을 만나서 자기 재주를 인정받을 때가 오거니 하면서
꾸준히 공부하여 왔던 것이다.
  부용이는 오늘 저녁 이 잔치가 처음 시작하는 때부터 여러 기생들이
노래하고 춤을 추고 하는 꼴을 다 보고 있었다.  또한 이 소위
명기(名妓)들이 짖고 까불고 하는 꼴을 보고 저 유명한 풍류감사
김시중이가 어떠한 태도를 취하고 있느냐 하는 것도 이때까지 낱낱이 보고
있었던 것이다.
   옳지!  이분이야말로 정말 풍류를 아시는 어른이매(어른임에) 틀림없이
나의 예술을 심사(審査)하고 평가(評價)할 수 있는 분은 바로 이
어른이로구나!  이때야말로 나의 값어치를 재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야!
 
  부용이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서서 원님 조경인의
앞으로 가까이 걸어 갔던 것이다.
   소첩이 하잘 것 없는 춤으로 대감의 객고를 조금이라도 풀어 드릴 수
있다면 다행일가(다행일까) 하나이다
  부용이는 원님에게 정중하게 큰 절을 한번 하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너 뜻대로 하여라
  원님 조경인은 내어 뱉듯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것이다.
  ( 날고 뛴다는 일류(一流) 기생들의 별 재주를 다 부려도 눈섭하나
가딱하시지 않던 대감께서 너 까짓거 춤을 춘다구 거들떠 보기나
하실라구--- )
  조경인은 기실 부용이의 춤에 아무런 기대도 가지지 않았다.
무용(舞踊) 예술에 대한 아무런 소양도 지식도 없는 그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 네 인물이 절색(絶色)이니 혹시 너의 인물에 혹(惑)하신다면
몰라도--- )
  그는 이렇게 생각하며 되어 가는 대로 맡기기로 하였다.
  부용의 춤은 시작되었다.  그러나 감사의 눈동자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은채 그의 시선은 딴 곳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이때까지 여러차례
춤 추는 것을 초저녁부터 보아 왔으나 별로 신통한 것을 못 보았던지라
이번에도 그꼴이 그꼴이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부용은 춤을 추다 말고 감사가 앉아 있는 자리 가까이 와서는 한손으로
고름을 접더니만 고름을 바로 감사의 눈동자를 스칠 듯이 한번 휘둘르는
것이다.  그것은 감사의 주목을 끌기 위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바람에 감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시선을 이 여인에게 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옳지!  되었다! )
  생각하며 부용은 다시 제자리에 돌아가서 이제 춤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극히 섬세하고 느린 율동(律動)으로 부터 시작되어 그 율동이
점점 굵은 것으로 또한 빠른 것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 흠! )
  감사는 한손으로 턱을 고이며 이 여인의 춤을 점점 흥미있게 보고 있는
것이다.  여자의 몸이 회전한 때마다 감사의 눈동자도 같이
회전(廻轉)하는 것이요 율동이 속도를 가하게 되면 그의 눈동자도 같이
급속도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다가 회전이 느리게 되면 그의 눈동자도 같이 느리게 돌아가는
것이다.
  ( 동작속에 생명이 있고 감정이 살아 있구나! )
  감사는 하마터면 이렇게 중얼거릴번 하였다.  그는 이 여인의 춤을 보고
정말 놀랬다.  감사가 놀라는 것을 보고 또한 놀란 것은 원님이었다.
같이 놀라기는 하였으나 그 놀라는 내용은 피차 전혀 달랐던 것이다.
감사는 이 여인의 춤이 살아있는 것을 보고 놀랐으며 여기에 반하여
원님은 이 보잘 것 없는 춤을 보고 감탄하는 감사의 모양을 보고 놀랐던
것이다.
  부용의 춤이 끝나자 감사는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박수를 치는 것이다.
이때까지 우울해 앉아 있던 감사가 몸을 일으키며 박수갈채를 보내는
바람에 원님을 비롯하여 모였던 청중도 일제히 박수를 치는 것이다.
  이때까지는 정말 침울하고 어두웠던 이 잔치가 순식간에 정말 명랑하고
밝은 잔치가 되어 버렸다.
  감사는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부용을 가까이 오라고 불렀다.
   네 이름이 무어냐
   부용이라 아뢰옵나이다
   음!  부용이 이름이 좋구나, 네 춤속에는 생명이 살아 있고 감정이
용솟음을 친단 말야, 내 일찌기 수색 수천의 춤을 구경하였으되 오늘
훌륭한 춤은 처음 보았어!  오늘저녁 수십명 되는 명기들이 왈 춤이라는
걸 췄으되 그건 춤이 아니라 허수아비의 기계적인 재주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어, 하나 너의 춤이야 말로 내가 이때까지 마음속으로 보고 싶었던
것이야, 참으로 반갑고 장하도다.  네 재주 자- 어디 또 한번 네 재주를
구경시켜 줄 수는 없을까?
   황송하오이다.  보잘 것없는 소녀의 서투른 재주를 그처럼 칭찬해
주시고 또한 다시 한번 보시고자 원 하신다 하오니 영광스럽고 즐거움
마음 금할 길이 없나이다
  부용의 춤은 꼬리를 물고 계속되었다.
  감사는 한가지가 끝나면 또 다른 것을 재청하는 것이다.  다른 것이
나올 때마다 감사의 감격과 흥분은 점점 더 새로워지고
격렬(激烈)하여지는 것이었다.
  오늘따라 부용의 태도 또한 심상치 않다.  이때까지는 그렇게 새침하고
조용하던 부용이가 오늘따라 어쩌면 그렇게도 용감하고 활발스러운지
모르겠다.  부용은 감사가 청하면 청하는 대로 연상 계속하여 새로운
춤으로 응수(應酬)하는 것이다.
  하나가 끝나면 또 재청을 하는 것이요 재청을 하게 되면 또한 새로운
춤을 더욱 멋들어지게 추는 것이다.
  부용이가 처음 춤을 추기 시작할 때에는 모였던 기생들이 부용을
멸시(蔑視)와 질투(嫉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렇게 연상
계속하여 새로운 춤을 신나게 추는 것을 보자 모든 기생들은 이제 그
뛰어난 재주에 도취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자기들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한가지 한가지 끝날 때마다 우뢰와
같은 박수를 던지는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밤이 새고 새벽이 되어도 끝이 날 것 같지 않다.
  자정이 훨씬 넘어서야 잔치가 끝났다.
  오늘저녁 잔치야말로 참으로 훌륭한 잔치였다.  초저녁의 삼엄하던
공기는 이제 완전히 부드러워졌다.  연회가 대 성황리에 끝나게 되자
누구보다도 좋아하는 것은 원님 조경인이었다.  부용이만 만일 없었더라면
그는 대단히 곤란한 입장에 있을 뻔 하였다.  평상시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부용이가 오늘 저녁따라 그에게는 큰 구세주(救世主)만 같았다.
  오늘밤처럼 부용이가 고맙게 생각되는 때는 없었다.
   부용아
  잔치가 끝나자 감사는 나직한 목소리로 부르는 것이다.
   네
   네 춤은 과연 일가(一家)를 이루었도다.  너의 춤을 내일 새벽까지
보아도 시원치 않겠다만 그럴 수가 없는게 천추의 한이로다
   보잘 것 없는 소녀의 춤을 그처럼 과분하게 칭찬하여 주시니 오히려
부끄럽사옵나이다
   아니다, 내 그냥 혀끝에서 나오는 칭찬이 아니라 너의 재주에는 내
진심으로 놀랬다.  그런데 부용아!
   네
   네가 말하는 음성을 들어 보니 쟁반에다가 구슬을 굴리는 것 같구나
   고분한 말씀
   아니야, 네가 춤도 잘 추려니와 소리도 잘 할거야
   대수롭지 않은 소리인가 하나이다
   아니야 내 귀는 속이지 못하느니라.  내 욕심이 과한것 같은지는
모르나 너의 소리를 한번 들어 보고 싶구나.  어때?  이왕 내친 걸음이니
이밤이 새기전에 너의 그 꾀꼬리같은 목소리를 한번 들어 볼 수가
없겠느네?
   대감께서 소원이시라면 그까짓 것 어려울 것 없나이다
   음!  고마워 헌데 여기 딴 사람들은 피곤할테니 돌아가 자게 하고 너와
둘이 나의 숙소에 가서 한곡조 들려줌이 어떠할꼬?
   좋을 대로 하사이다
  그날밤 부용은 감사를 따라서 그의 숙소까지 동행하였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방에서 부용은 거문고에 맞추어 구슬같은 목소리로 소리를 하는데
감사는 목침위에 비스듬히 기대어 듣고 있는 것이다.
  ( 과연 명창이로구나 춤만 잘 추는 줄 알았더니 소리도 잘 하는구나,
이런 시골에 두어두기는 참으로 아까운 인재로다 )
  감사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한곡조가 끝나면 또 한곡조, 그것이 끝나면
또 한곡조, 이렇게 청하는 대로 부르다 보니 열곡조도 더 불렀다.
  이러는 동안에 밤은 점점 깊어만 가고 있다.
   대감!
  어지간히 음악이 끝났을 때 갑자기 부용은 감사를 부르는 것이다.
   음
   소녀가 춤과 노래를 좋아 하는 이외에 또 한가지 좋아하는 것이
있나이다
   음, 그게 무엇인데?
   듣자 하니 대감께서는 시를 좋아 하시와 풍류대감이라는 별호까지 듣고
계시다 하오니 소녀도 시를 무척 좋아 하나이다
   흥! 그것 참 기특한 일이로군
  김시중은 이 여자에게서 또 하나의 뛰어난 재주를 발견하고 다시 한번
놀랬다.  춤을 잘 추고 소리도 잘 하려니와 이 여자의 작시(作詩)재주에는
무릎을 치면서 놀랬다.
  그날 밤이 새도록 그들은 피차 서로 운자(韻字)를 주고 받고 하면서
자연(自然)이며 풍물(風物)이며 동물(動物)등등에 걸쳐서 여러가지 시를
짓고 읊으며 하는 동안에 날이 새는 줄을 몰랐다.
  피차 약속한 것도 아니나 취미와 감정이 서로 맞다가 보니 자연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게끔 되었다.
  그 다음날도 또 그다음 날도 저녁때만 되면 부용은 감사의 부름을 받아
그의 숙소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여기서 밤이 깊어지는 줄도 모르고
그들은 서로 시를 짓고 읊고 하면서 실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다.
닷새째 되는 날 저녁에 그들은 금슬(琴瑟)을 같이 하였다.
  부용이 감사에게 몸을 바치게 된 것은 결코 보통 여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의 부귀영화나 혹은 벼슬에 혹하여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부용은 그러한 헛된 부귀나 영화나 또는 벼슬같은 것은 멸시하였던
것이다.
  그보다도 이 분이 가지고 있는 인생의 그윽한 향기와 풍류에 마음이
움직였던 것이다.  벼슬을 하게 되면 더욱 더 높은 벼슬을 차지하려는
것이 범인들의 통념(通念)이거늘 이 벼슬을 초개(草介)와 같이 여기고
인생의 그윽한 향기를 찾고 있는 그의 드높은 정신에 부용은 감화를
받았던 것이다.
  그후 며칠이 지났다.
   부용아!
   네
   재주가 많은 사람은 그 재주에 넘어 가기가 쉬우니라.  네 인물이
절색이고 노래를 잘 하고 춤을 잘 추고 시를 잘 짓고 하는 등 온갖 재주가
비범하고 보니 네 주위에서 뭇 사나이들로부터 많은 유혹의 손길이 뻗치게
될지도 모르니 여자는 이런 때 자기 몸 단속을 잘 하여야 하느니라
   알아 모시겠나이다.  소첩이 그날 저녁 백년해로 하기로 굳게 맹서하던
그때 그 일을 어찌 잠시라도 잊겠나이까.  백번 죽사와도 소녀는 대감의
소첩(小妾)이로소이다
   음!  장하도다.  내 너를 믿고 떠나니 갔다 돌아올 동안에 부디 몸성히
잘 있거라
   대감 그럼 속히 돌아오실 날 손꼽아 기다리겠나이다
  감사가 이웃 고을로 떠나는 날 부용은 그의 뒷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있는 것이다.
  감사는 이웃고을에 볼일이 있어 지금 가는 길이다.  거기서 며칠동안
볼일은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성천 땅에 다시 들려서 부용과 함께
평양까지 같이 갈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서로 금슬을 같이 한지가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으나 이만큼한
여자라면 족히 백년을 해로하여도 무방하다고 그는 생각 하였다.  부용이
또한 같은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며칠 후에 이웃 고을에서 볼일을 마치고 감사는 부리나케 성천땅으로
돌아 왔다.  그는 이제 부용을 데리고 평양 땅으로 가서 아기자기하게
살림을 하여 보려는 꿈을 가득히 가슴 속에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뜻하지 않던 큰 일이 생겼다.
  그가 철석같이 믿었던 부용이는 그가 며칠동안 이웃 마을에 가있는
동안에 어느 외간 남자와 정분이 나서 매일밤 그 사람을 자기 방에다가
재우고서는 새벽녘에야 그 사람을 돌려 보낸다는 소문이 온 성천 고을에
퍼지고 있는 것이다.
  실로 청천에 벽력같은 소리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다.
  ( 부용이가 내가 철석같이 믿었던 부용이가--- 설마 그럴 리야 없겠지
세상에 뜬 소문이라는 것도 있는 법이니까--- )
  그는 이렇게 선의로 해석하면서 사실을 부정도 하여 보았다.  그러나
가장 믿을만한 사람들의 입을 통하여 이 추잡스러운 소문이 계속하여 자주
들려 오는데는 도무지 울화가 치밀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 계집을 냉큼 묶어 오너라!  더러운 계집같으니라구
  드디어 김시중의 감정은 폭발하고 말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부용의
입을 통하여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고 만일에 정부(情夫)가 있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계집도 죽여 버리고 자기도 죽어버릴 각오였다.
  이윽고 부용은 노끈에 꽁꽁 묶여서 김시중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혀졌다.  한때는 그와 같이 원앙금침속에서 화려한 꿈을 같이 꾸던
부용이가 이제 한때 서방님이었던 김시중이 발앞에 꽁꽁 묶여서 꿇어
앉혀져 있는 꼴이란 참으로 처량하기 짝이 없다.
   부용아!
   네
   네 그래 내 없는 동안에 외간 남자와 정을 통하고 그를 밤마다 네
집에다 재워 보내었다는데 그게 사실이란 말이냐?
   네, 사실이옵나이다
   뭣이?
  이순간까지도 그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다.  또한 사실이드라도
부용이 입에서 사실이 아니라는 말만 들어도 시원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제 장본인의 입으로부터 모든 일이 사실이라는 자백을 들은
이상 이제는 도무지 어찌할 도리가 없는 노릇이었다.
   에기 이 망한 계집 같으니라구!  너도 역시 한개의 미천한 화류계의
천기(賤妓)에 지나지 않았구나!  너같이 더러운 계집을 내가 철석같이
믿기가 잘못이었지!
   ------ 
   이년을 당장 냉큼 들어다가 한 칼에 처참하여 버려라!
  평상시에는 그렇게도 부드럽고 온순하던 김시중의 목소리는 오늘따라
실로 사자의 소리와 같이 크고 거칠었다.
   대감!
  사령들이 막 두팔을 붙잡어 들고서 나가려는 순간 부용은 이때까지
수그렸던 머리를 쳐들면서 나직하게 말하는 것이다.
   소첩이 죽는 것은 원통하지 않사오나 죽기 전에 한가지 청이 있사오니
죽는 사람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 주시기 바라나이다
   그래!  무슨 청이냐?  어디 말해 봐!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시나 한수 짓고 죽었으면 원한이 없겠나이다
   좋다.  산사람의 소원도 풀어 주겠거늘 죽는 사람의 소원이야 못들어
주겠느냐, 자 여기 필묵과 종이를 가져 오너라
  이윽고 부용의 앞에는 붓과 벼루와 종이 한장이 놓였다.
   운자(韻字)는 대감께서 적어주기 바라나이다
   좋다
  김시중도 역시 풍류객인지라 직각 그 자리에서 붓을 잡더니 종이
위에다가 능(能)이라는 한자를 운자(韻字)로 커다랗게 써 놓는 것이다.
  김시중이 종이에다가 운자를 쓰기가 바쁘게 그의 붓을 받아 쥔 부용은
쏜살같은 속도로 다음과 같이 이십팔자(二十八字)의 시를 순식간에 지어서
적어 놓는 것이다.

     成川芙蓉 何所能 (성천부용 하소능)
     能歌能舞 又詩能 (능가능무 우시능)
     能之能中 又一能 (능지능중 우일능)
     月明夜半 換夫能 (월명야반 환부능)
     성천 부용이 무엇을 잘 하는 고
     노래를 잘 부르고 춤을 잘 추고
     또한 시를 잘 짓더라
     잘하고 잘하는 중에 또하나 잘하는게 있으니 
     달밝은 한밤중에 지아비 바꾸기를 또한 잘 하도다.

  부용이 지은 시를 읽어보자 김시중의 입 언저리에서는 가벼운 경련이
일어나는 것이다.
  동시에 땅에 꿇어 업디려 있는 부용을 말없이 물끄러미 내려다 보더니
   너의 소행(所行)을 보아서는 갈기 갈기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겠다.
하나 과연 너야말로 인생의 향기를 아는 멋있는 계집이로다.  너의
육신(肉身)은 미우되 너의 재주가 아깝구나.  너까짓것 하나 죽이면
무엇할고, 자 그 노끈을 풀어주어라
하며 조용히 눈을 감는 것이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바람에 사령들은
어쩔줄을 모르면서 비끌어 매었던 노끈을 풀어 주었다.
  꽁꽁 묶이었다가 자유로운 몸이 되자 부용은 숙였던 머리를 번쩍 들고
김시중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이다.  그 눈동자는 샛별처럼
반짝이는데 눈 가장자리에는 이슬이 맺혔다.  그것은 환희(歡喜)와 만족의
눈물이었다.
   대감!
   음!
   소첩의 지나친 연극을 과히 책하지 말아 주소서
   ------ 
   이때까짓 것은 모두가 소첩이 꾸며 만든 연극이었나이다
   뭣이?  연극이라니?
   이세상 사나이들이란 하두 믿을 수가 없사옵기에 소첩의 예술에 대한
대감의 이해와 또한 소첩에 대한 애정의 정도가 어느만큼 한지를 시험하여
보기 위하여 꾸며 낸 연극이었나이다
   ------ 
   대감을 두고 소첩이 어찌 외간 남자를 내집에 발을 들여 놓도록
하겠나이까.  소첩은 몇몇 아는 사람과 짜고 외간 남자와 정분이 나서
간통을 한 것처럼 헛소문을 터뜨렸나이다
   ------ 
   이렇게 헛소문을 터뜨려 놓고서는 대감께서 어느 정도로
분노(忿怒)하시냐 하는 것을 한번 시험하여 보았나이다.  그랬더니 과연
대감께서는 극도로 분노하시어 소첩을 묶어다가 죽여버리라 명령을
하셨나이다.  그처럼 분노하심은 소첩에게 대한 애정이 그만큼 뜨겁고
열렬하기 때문인줄 알아 그 순간 소첩은 마음 속으로 크게 기뻐하였나이다
 
   ------ 
   소첩을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로 소첩에 대한 애정이 극진하셨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었나이다
   ------ 
   다음은 소첩의 마지막 소원으로 시를 짓겠다 말씀 드렸을 때
대감께서는 서슴치 않고 그 청을 들어 주셨으며 그 다음 소첩이 지은 시를
읽어 보시고 나자 마자 소녀를 죽여 버리시려던 그 마음 다시 돌이키시고
비끌어 매었던 노끈을 풀어 주라 하셨나이다.  그것을 보고 소녀는
대감이야 말로 실로 풍류를 이해하고 인생의 멋을 아는 지아비인줄 또
한번 느꼈나이다
   ------ 
   실은 대감께서 과연 소녀의 지아비가 될 수 있나 없나 하는 것을
소녀가 시험하여 본 것이고 이제 대감께서는 그 시험에 합격한
셈이로소이다
  부용의 말하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던 김시중은 그만 달려 내려와서
왈칵 부용을 껴안고 말았다.
   부용아!
   ------ 
   너야 말로 정말 멋을 아는 계집이로다
  부용은 김시중의 가슴에 머리를 파묻고 사르르- 눈을 감는 것이다.
곁에 사람이 있거나 말거나 아랑곳 없이 그들은 오래 오래 서로 껴 안은채
움직일 줄을 몰랐다.
  지금 대동강 건너편에 아담스럽게 생긴 기와집 한채가 있다.  이집이
바로 그 당시 김시중이 부용에게 사주어 같이 살던 집이라는 사람도
있는데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다.
                         <끝>

 

 

 

<제 오 화> 靑春悲戀(청춘비련)
哀戀話

  < 1 >
  백제(百濟)와의 국경지대가 다시 시끌시끌해 졌으나, 그렇다고 해서
신라(新羅)의 백성들이 연중가절(年中佳節)인 한가위를 그냥 무의미하게
넘겨 버리지는 아니하였다.  내일은 싸움에 나가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던질지언정, 오늘만은 흥겨웁게 보내지 않으 수 없다는 듯,
고을마다 추석놀이가 성대히 행하여 지는 것이었다.
  노룻골이라고 해서 예외(例外)일 수는 없었다.
  신명나는 풍물소리가 골 안에 듣기 좋게 메아리지는 가운데,
아침나절부터 동구 앞 모래사장에는 씨름판이 벌어졌고, 마을 뒤 참나무
숲에서는 추천(그네)놀이가 열리었다.
  이 날의 씨름판에서 첫째를 차지한 사람은 이듬해 추석까지 젊은 축의
두령격이 될 뿐 아니라, 총각일 경우에는 동네 처녀들의 무한한 사모의
대상이 되는 것이었다.
  처녀들의 추천놀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으뜸을 차지한 처녀에게는
총각들의 은근한 시선이 두고 두고 던져 지는 것이다.  그러니만큼 이
날의 씨름판과 추천놀이는 연중 어느 가절의 놀이보다도 볼만하였다.
  씨름판이 끝나면, 젊은이들은 첫째를 차지한 새로운 두령을 중심으로
크게 자리를 벌려 달이 중천에 올 무렵까지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드디어는 둥실둥실 춤까지 추며 즐기는 것이었다.
  추천놀이 를 마친 처녀들은 남자들처럼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지는
아니하였으나, 그네들은 그네들대로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고, 달밤에는
다시 참나무 숲에 모여 이번에는 숨박꼭질이었다.  그러는 것이 예년의
관습으로 되어 있었다.
  숨박꼭질이라곤 하지만 오늘날 아이들이 하는 그런 소규모의 것이
아니었다.
  모든 인원을 두 패로 나누어서 한 편은 숨고 한편은 찾으러 다니는
것이다.  모조리 찾아 내면 교대를 하게 된다.  그러니만치 숨는 쪽은
뿔뿔이 흩어져서 꽁꽁 재주껏 숨어야 했고, 찾는 쪽은 또 이 구석 저
구석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지 않을 수 없었다.  멀리 숲 밖으로 빠져
나가는 것은 안되기로 되어 있는 것이었다.

  < 2 >
  뒷산 봉우리 위로 불그레한 빛이 피어 오르더니 보름달이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저녁 성찬을 마친 처녀들은 막 돋아 오르는 달을 바라보면서 즐거이
참나무 숲으로 몰려 나갔고, 오늘 씨름판에서 첫째를 차지한 바위쇠네 집
마당에 자리를 벌린 젊은이들은 손에 술잔을 들고 떠오르는 달을
맞이하였다.
  명년 한가위까지 마을 젊은 축의 두령이 된 바위쇠는 넓은  이마에 담뿍
달빛을 받으면서, 잔을 높이 들어 벌떡벌떡 잘도 마신다.  그 곁에
도사리고 앉은 검달이도 한 잔을 단숨에 비워 냈고, 좌중의 모든
젊은이들도 앞을 다투어 호음(豪飮)을 하였다.
  한 잔, 또 한 잔, 술이 거듭됨에 따라 판은 점점 흥그러워 갔다.
   그네 뛰기선 누가 첫째라노?
  검달이가 이런 소리를 꺼내자, 좌중은 신이 나는 듯 한층 더 떠들어
댔다.
   복사녀지 누구까봐
   복사녀가 언제부터 그네 잘 뛰노?
   뱃속에서부터 란다 와?
   에잇 지랄!
   하하하--- 
   호호호--- 
  웃음소리가 고요한 밤 공기를 흔들며 뒷산 골짜구니에 가서 은은히
메아리진다.  이 쪽 웃음소리를 따라라도 웃는듯 멀리 참나무 숲 속에서도
처녀들의 깔깔대는 소리가 들려 온다.
  달은 어느덧 산봉우리 위에서 성큼 솟구쳐 올랐다.
  젊은이들의 처녀들에 대한 시시닥거리는 소리는 그칠 줄을 몰랐다.
누구는 어떻다느니 아무개는 어떻느니- 떠들어 대고는 킥킥킥 괴상한
소리로 웃기도 하였다.  그러나 바위쇠만은 두령다운 위신을 지키면서
이따금 껄껄껄 호기있게 목줄기를 울릴 따름이었다.
  좌중의 화제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것은 역시 오늘의 추천놀이에서
으뜸을 차지한 복사녀(복숭아 여자)였다.  그네의 복스러운 얼굴과 박속
같이 하이얀 살결 얘기가 나올 때마다 젊은이들은 몸을 비비 꼬며
   으으응!
  혹은
   아유우!
하고 , 괜히 못 견디는 것이었다.  그럴적마다 바위쇠는 일부러 못들은
척하고, 잔을 입으로 가져가 벌컥벌컥 들이키기만 하였다.
  마당에 깔렸던 집 그늘이 말끔 걷히어 가고, 온 뜰안에 달빛이 환하게
쏟아져 내릴 무렵에는 술들도 어지간히 된 듯 구성진 노랫가락이 연신
쏟아져 나왔고, 마침내 벌떡 일어나서 둥실둥실 춤을 추기 시작하는
사람도 있었다.
  바위쇠는 술기가 얼근(얼큰)하게 오르자 가슴에 뿌듯이 사무치는
그리움을 어쩌지 못하였다.  아무래도 오늘 밤을 그냥 노래나 춤만으로
넘겨서는 안될 것 같았다.  슬그머니 자리를 일어서고 말았다.
  벌써 몇 해 전부터인지 모른다.  두고두고 가슴 속에 간직해 온
일념(一念).  씨름판에서 첫째를 차지하기만 하며는--- 하고, 바로 이
오늘이 오기를 얼마나 애태우며 기다려 왔던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오늘
이 밤을 헛되이 넘겨 버려서는 안된다.
  노래와 춤으로 신명나게 어울려진 일동들을 그냥 남겨 놓고, 슬며시
집을 빠져 나가는 바위쇠의 머리 속에는, 보름달보다도 더 뚜렸한 얼굴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바로 오늘의 처녀들의 주인공인
복사녀의 얼굴이었다.
  참나무 숲으로 통하는 비탈길을 막바로 올라갈 수는 없었다.  아무리
기운이 장사고 담대한 바위쇠일망정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제하지는
못하였다.  꼭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남의 눈에 띄일까 봐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았다.
  지름길로 해서 언덕마루로 올라가는 수 밖에 없었다.  언덕마루에 올라
타박솔(물기가 마른 소나무) 뒤로 몸을 숨기고 눈아래 퍼져 있는 참나무
숲을 유심히 내려다 보았다.  나무가 섬금성금 서 있는 숲 안으로 밝은
달빛이 좌악 흘러 들고 있었다.
  숨박꼭질은 지금 막 새 판이 시작된 듯 한 편은 그냥 그자리에 까아맣게
모여 섰고, 다른 편은 이리저리 거미새끼처럼 흩어지는 것이었다.
바위쇠는 바짝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그 중의 어느것이 복사녀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타박솔을 움켜 쥔 손에서 힘이 스르르 풀려
나가는 듯하였다.
  달은 어느새 중천 가까이까지 와 있었다.
  그러고 보면 숨박꼭질도 이번으로 마지막일는지 모를 일이다.  추석날
밤이란 일년 중에 다시없는 좋은 기회인데, 이 기회를 그냥 헛탕쳐
버린다면 생각할수록 온 몸에 조바심이 잦아 들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있을 때였다.
  까아만 그림자 두 개가 나무 그늘에 가렸다가 나타났다가 하면서 이
쪽을 향해 달려 오고 있었다.  어디 그럴듯한 곳을 찾아서 숨으러 오는
모양이었다.  한참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려 오던 두 개의 그림자는 제각기
방향을 달리하여 왼쪽 오른쪽으로 갈라지는 것이었다.
  오른쪽으로 미끄러진 그림자는 어느 덤불 속으로 숨어 들어가 버렸으나,
반대 방향으로 갈라진 그림자는 쉬임없이 달리고 있었다.
  달빛이 너무 밝은 탓만은 아니리라.  거리가 꽤 가까워진 탓만은
아니리라.  바위쇠의 두 눈은 크게 번쩍 뜨였고, 얼굴에는 화끈 피가 모여
들었다.  물론 달빛이 밝은 탓도 있겠고, 거리가 가가워진 까닭도
있겠지마는 그것은 틀림없는 영감(靈感)의 작용이었다.  달리고 있는
그림자가 바로 복사녀라는 것을 알아 볼 수 이었는 것은--- .
  우연이라면 이렇게 고마운 우연이 또 있을 수 있을까?  어쩌면 그네와의
사이에는 아름다운 인연이 숙명적으로 맺어져 있는지도 모르지---
바위쇠는 울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겨를(겨룰)도 없이 똑바로 복사녀가
달리고 있는 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복사녀와의 거리가 불과 얼마 되지 않을 만큼 가까워졌을때 그네는
인기척에 놀란듯 그 자리에 우뚝 멈추어 서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이
쪽을 조심스러이 살폈다.  그네가 놀랄까봐 바위쇠도 얼른 멈추어 섰다.
  우뚝 멈추어 서서 마주 바라보는 바위쇠와 복사녀.  한 쪽은 젊은이들의
두령, 한 쪽은 처녀들의 주인공.  휘영청 밝은 달빛이 두 사람 위로 곱게
내리고 있었다.
   복사녀!
  바위쇠의 입에서 뛰어 나온 첫 마디였다.  뜨거운 목소리였다.
   ------ 
  복사녀는 가만히 고개를 숙이며 옷고름을 만지작 거릴 따름이다.
   복사녀!  나 바위쇠여
하고, 복사녀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서는 바위쇠의 가슴 속은 그지없이
더웠으나 아까처럼 울렁거리지는 아니하였다.
  바위쇠가 다가오자 복사녀는 살쁘시 돌아 섰다.  치렁치렁 땋아 내린
머릿채 끝에는 댕기가 약산 나풀거린다.
  복사녀 곁으로 다가 간 바위쇠가
   복사녈 내가 얼마나--- 
하고, 말을 시작하려고 했을 때
   또 한 사람 찾았네!
   누구 누구 남았노오--- 
하는 고함소리가 저 쪽에서 들려 오는 것이었다.  그 순간-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있었는 듯 얼른 그 자리에 앉아버렸다.  어느새 그랬는지
바위쇠는 복사녀의 두 어깨를 잡고 있었다.
  어깨에 바위쇠의 손이 와 있는 것을 안 복사녀는 귀밑이 얼마나
화닥거리는지 견딜 수가 없어 허리를 약간 옆으로 틀었다.  그러자
바위쇠는 도리어 바싹 다가들어 그네의 가슴을 왈칵 안아버리고 말았다.
복사녀는 얼굴을 옆으로 돌리며 좀 꿈틀거리기는 했으나 결코 바위쇠의
가슴에서 빠져 나갈려고 몸부림을 치지는 아니하였다.  바위쇠는 복사녀를
안은 한 쪽 손을 풀어서 그네의 얼굴을 이 쪽으로 돌렸다.  복사녀의
얼굴은 순순히 바위쇠의 얼굴 앞으로 돌아 왔다.
  달빛을 받아 한결 더 탐스럽고 어여쁘게 보이는 복사녀의 얼굴.  그
입술--- 바위쇠의 입술이 복사녀의 그것을 가서 지긋이 누를려고 했을 때
    ---아직 아직 멀었다!
        복사녀도 남았다!
하는 고함소리가 꽤 가까이에서 늘려왔던 것이다.  복사녀는 놀란
토끼처럼 바위쇠의 품안에서 빠져 나가며
   딴 데로 갑시다
하였다.  정말 그러는 것이 얼마나 좋으냐.  바위쇠는 그네의 손목을 잡고
그늘진 곳으로 해서 숲을 빠져 나가 언덕마루마저 넘어 서 버렸다.
  언덕마루를 넘어 골짜구니를 타고 얼마를 갈라치면 거기에
애기소(沼)라는 못이 있었다.  조그마한 못이기는 했지만 거기에 고여
있는 물은 몇 길이나 되는지 알 수 없을만큼 깊은 것이었다.
  바위쇠와 복사녀는 말 없는 가운데 합의라도 된 듯 바로 이
애기소에까지 오고야 말았던 것이다.
  암석이 병풍처럼 둘려 있는 아래에 깊이를 모르는 물이 주름살 하나
없이 담겨 있고, 물 위에는 달이 한 개 소리도 없이 떠 있었다.  울창한
소나무 숲이 둘레를 싸고 있기 때문에 벌레 우는 소리가 가냘피 들려 올
뿐 사방은 고요할대로 고요하였다.
  바위쇠는 펑퍼짐한 반석에 가서 걸터앉았고, 복사녀는 옷고름을
만지작거리면서 그 곁으로 다가섰다.  두 사람은 잠시 아무 말이 없이 물
위에 ㄸ더있는 달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러나 바위쇠의 귀에는
복사녀의 조심스러운 숨소리가 들렸고, 복사녀 역시 바위쇠의 숨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얼마만이었을까?  가슴 속이 다시 부풀대로 부풀어 오른 바위쇠는
뜨거운 목소리로 사방의 적막을 깨고야 말았다.
   복사녀!
  그녀를 바라보는 바위쇠의 두 눈은 달빛 아래 이글이글 타고 있었다.
복사녀도 가슴속에 벅차오르는 뜨거운 기운을 어쩌지 못하여 황홀한
시선으로 바위쇠의 얼굴을 마주 바라보았다.  얼마나 그리웠던 얼굴인지
모른다.  남 몰래 마음속에 고이고이 간직해 온 오직 하나의 님.  그 님의
얼굴이 바로 여기 눈앞에서 이글이글 타고 있지 않느냐.
  복사녀는 바위쇠의 이글거리는 시선 앞에 오래도록 몸을 가누고 있을
수가 없어 그만 그의 가슴 속으로 무너지듯 달려 들고 말았다.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서로 말을 못해 온 바위쇠와 복사녀.  그러나 이미
말 같은 것은 소용이 없었다.  입술이 입술을 찾았고, 가슴이 가슴을
안았다.  이제는 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거저 노자근한(매우
노곤한) 공기만이 두 사람을 싸고 돌 뿐이었다.
  얼마 후에 바위쇠는 복사녀을 안은 채 반석 위에 나가 쓰러지며, 그네의
몸뚱아리를 손으로 더듬어 내려가고 있었다.
   결혼하고 나서 예, 아으으--- 결혼하고나서어--- 
  복사녀는 바위쇠의 가슴을 떠밀었다.  그러나 그녀의 팔에는 아무런
힘도 없었다.  그것은 반항도 아니었고, 애원도 아니었다.  그저 이런
경우에 취해지는 여자들의 무의식적 태도라고나 할까.
   아으으으--- 
  발이 비잉 돌아 가는듯 하였다.
  복사녀는 온몸에 바위쇠의 뜨거운 무게를 느끼며 두 눈을 지긋이 감아
버렸다.

  < 3 >
  그런 일이 있은 뒤로부터 바위쇠와 복사녀는 남들의 눈을 피하여 여러
차례 그 애기소에서 만났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밤이 깊어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고, 온몸에
이슬이 내리는 것도 상관 없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들의 단꿈을
언제까지나 그냥 내버려 두지는 아니하였다.
  시끌시끌하던 백제와의 국경지대가 본격적인 큰 싸움으로 발전하여
마침내 노룻골의 젊은이들에게도 징모(徵募)의 국령은 내리고야 말았던
것이다.
  바위쇠는 물론 검달이도 출정(出征)하게 되었고 그밖에 스무살 안팎의
몇몇 장정들이 나라의 부름을 받았다.
  내일이면 마을을 떠나는 날 밤, 바위쇠와 복사녀는 마지막으로 애기소를
찾아 올라 갔다.  못가의 잠든 반석 위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가슴속이
자꾸 얼어 붙는 듯 덜덜덜 떨리기만 하였다.  밤공기가 제법 선뜩해진
탓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도 그들 두 사람의 운명위에 검은 그림자가 와서
덮이는 듯한 불길한 예감 때문이었다.
   복사녀!  너무 근심하지 말어--- 
  바위쇠는 아랫배에 힘을 주며, 처량하게 앉아 있는 복사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싸움터에 나간다고 어디 다 죽는가, 걱정없어, 나 곧 돌아 올테여
   ------ 
   백젯놈들한테 죽을까 봐?  문제 없어, 까짓놈들 막 쳐없애고, 나 꼭
돌아올께
  바위쇠의 얼굴만을 하염없이 우러러 보고 있던 복사녀는 그만
   흑흑--- 
  느껴 울며, 바위쇠의 가슴 위로 쓰러지고 말았다.  쓰러져서 서럽게
서럽게 흐느껴 우는 복사녀의 들먹거리는 어깨를 내려다 보며 바위쇠는
   울긴 왜 울어, 응?
하였으나, 자기도 코허리가 시큰해 지는 것을 어쩌지 못하였다.
  바위쇠의 품안에서 한참 느껴 울고 난 복사녀는 눈물을 씻고,
옷매무새를 바로 잡았다.  그리고 무슨 큰 결심이라도 한듯 입을 발끈
다물며 품 속으로 손을 넣는 것이었다.  품속에서 나온 그녀의 손에는
조그마한 손거울이 한 개 쥐어져 있었다.  보름달처럼 동글한
석경(石鏡)을 바위쇠 앞으로 내밀며
   이것 받아 주세요
하였다.  바위쇠는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랐으나 그것을 넙쩍 받아
들었다.
   그것 볼 때마다 저를 생각해 주세요, 그리고 부디 몸조심 해요, 응
  바위쇠의 얼굴을 우러러 보는 복사녀의 두 눈에는 다시 서러운 이슬이
맺혔다.
  바위쇠는 가슴에 넘치는 뜨거운 기운을 어쩌지 못하여 왈칵 복사녀을
쓰러 안았다.  그녀의 따뜻한 체온을 온몸에 느끼면서 바위쇠는 은근한
목소리로
   고마워, 그런데 나는 뭣을 주면 될까?
하였다.
   나야 아무것도 안 작고 있어도 괜찮아요,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기다리겠어요, 부디 몸 성히 돌아오시기나 해요, 응
   그럼 돌아오고 말고, 꼭 돌아올테니 아무 걱정 말어
  서리라도 내릴듯 밤 공기가 여간 선득하지 않았으나 두 사람은 이제
조금도 그런 줄을 몰랐다.  밤이 깊어 가는 것도 잊고 있었다.
  출정하는 일행이 마을을 떠난 것은 이튿날 아침 나절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남녀 노소 할것없이 온통 모두 나서서 전송을 하였다.
  바위쇠는 동구 앞에 모인 사람의 무데기 속에서 복사녀를 찾을려고
두리번거렸으나 끝내 그녀의 얼굴은 보이지가 않았다.  가슴 한쪽이
흔들리는 듯 무너지는 듯 하였으나 어쩌는 수가 없었다.
  복사녀는 아무도 몰래 혼자서 뒷산 언덕마루로 올라 갔던 것이다.  거기
타박솔 뒤에 몸을 숨기고 서서 출정하는 일행을 살피고 있었다.  바위쇠가
동구 앞에 모인 사람들 쪽을 두리번거릴 때마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자근자근 깨물곤 하였다.  어느덧 그녀의 탐스러운 볼에는 두 줄기의
뜨거운 눈물이 소리 없이 흐르고 있었다.
  일행이 동구 앞을 떠나 벼가 누우렇게 물결치는 들녘으로 점점 멀어져
가더니 마침내 저 건너편 언덕 모롱이를 돌아 사라져 버리자 복사녀는
그만 그자리에 풀석 엎으러지는 것이었다.  엎으러져서는 어깨를
들먹거리며 서럽게 서럽게 흐느끼는 것이었다.

  < 4 >
  어느덧 가을도 저물어 가고, 온 들녘을 매운 바람이 휘몰아 치는 무렵
싸움터에 나갔던 젊은이들 중에서 단 한사람 검달이만이 살아서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은 무슨 큰 사건이라도 일어난듯 검달이네 집으로 모여
들었다.  검달이는 여러 사람들에게 싸움터에서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살아난 몸서리나는 경험담을 들려 주는 것이었다.
  그의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여러 사람들은 숨을 크게 쉬지 못하였다.
바위쇠네 부모를 위시해서 출정한 젊은이들의 가족들은 얼굴 빛이
무섭도록 험악해 갔다.  집 모서리에 모여 서서 검달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처녀들 중에는 복사녀도 섞여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핏기가
조금도 없었다.  아랫입술이 경련을 일으킨 듯 이따금 가느다랗게
떨리기도 하였다.
  검달이의 이야기에 의하면---
  바위쇠랑 검달이들이 끼어 있는 신라의 신졸(新卒) 일대(一隊)가
백제군의 본거지를 기습하기 위해서 진(陣)을 떠난 것은 달이 휘영청 밝은
깊은 밤중이었다.  기침소리 하나없이 산등성이를 타고 적진의 배후를
향해 가는 군졸의 대열(隊列)은 정연(整然)하였다.
  어느 산봉우리에 이르렀을 때 산줄기는 두 쪽으로 갈려져 나가고
있었다.  헌데 이상한 것은 오른쪽 줄기가 가가 뻗칠곳에도 불빛들이 빤짝
거리고 있었고, 멀리 왼 쪽 산맥이 뻗칠 곳에도 한떼의 불빛들이
가물거리고 있었다.  오늘 낮의 척후병(斥候兵)의 보고에 의하면 결코
그럴 까닭이 없는 데 이상한 일이었다.
  대열은 멈추어 졌고 병졸들은 모두 긴장하였다.  공론 끝에 결국 오른쪽
편에 산재해 있는 불빛들이 적의 본거지의 불이라는 것이 확인되었고,
거기를 습격하기로 결정이 내렸다.  그런데 아무래도 미심쩍은 것은
왼쪽으로 바라보이는 불빛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실오래기처럼 한줄로 이어져 있는 것이었다.  아마도 행군하고 있는
대열인 듯 싶었다.  그것이 이쪽으로 오고 있는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의문을 남긴 채 대열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산등성이에서
비탈을 타고 내려 적진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는 달도 어느덧 서천으로
기울어지고, 멀리 일렬로 움직이고 있떤 불빛들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이제 한시도 머뭇거릴 겨룰이 없었다.  돌격의 명령이 내리자마자
우렁찬 함성이 고요한 밤 하늘을 마구 흔들어 댔다.  풀속에서 뛰어 나온
군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의기충천하여 잠자고 있는 백제군의
진지를 향해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었다.  적막한 들판이 금새
일대수라장(一大修羅場)으로 화하고 말았다.
  바위쇠는 물론 검달이들도 용감하게 덤벼들었다.  삽시간에 적의 진지는
쑤셔놓은 벌집처럼 억망진창(엉망진창)이었다.  기습을 받은 백제의
군졸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거미새끼들 처럼 뺑소니를 치기에 바빴고, 놀란
말들은 껌충껑충 뛰어 오르면서 하늘을 향해 코를 마구 불었다.
  기습은 완전히 성공하였다.
  무수한 적을 무찌르고 유유히 귀영(歸營)의 길에 오른 병졸들은 마음껏
떠들어 댔다.  한바탕의 신명나는 싸움때문에 흥분될대로 흥분된 그들은
크게 소리를 지르고 웃기도 하였고, 휘휘 휘파함을 불기도 하였다.  나는
몇놈의 목을 날렸다느니 나는 어떤치의 사타구니께를 칼로 쳐버리기도
했다느니--- 제각기 무공담(武功談)은 그칠 줄을 몰랐다.
  그렇게 떠들어 대며 어느 산기슭을 돌아 가고 있을 때였다.
산등성이에서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고함소리와 함께 화살이 빗발처럼
마구 쏟아져 내려오는 것이었다.
  역습(逆襲)이었다.
  아까 산등성이에서 멀리 바라보이던 실오래기 같은 불빛의 군졸들에
틀림 없었다.  너무나도 방심(放心)을 하였기 때문에 대열은 무너져
버리고 제가끔 혼비백산하여 뿔뿔이 살길을 찾아 우왕좌왕하는 것이었다.
  더러는 바위에나 나무등걸 같은데에 은신하고 활시위에 화살을 가져가는
사람도 있고 하였다.
  바위쇠가 그런 무사(武士) 중의 한사람이었다.  빗발치는 적의 화살을
두려워하지 않고, 덤불 속에 은신하여 활시위를 힘껏 잡아 당기곤 하였다.
 그럴 때 마다 화살이 무서운 힘으로 산등성이를 향해 날라가는 것이었다.
  검달이가 바위쇠 곁으로 기어 갔을 때는 산등성이에서 활을 쏘기만 하던
백제군이 일제히 고함을 지르면서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산이
와그르르 무너져 내리는 듯한 무서운 기세였다.
  신라군은 끝끝내 맥을 추지 못하였다.  패주 또 패주였다.  바위쇠와
검달이도 죽어라 하고 달렸다.
  어떤 개울 가에 이르렀을 때 바위쇠의 안주머니에서 쨍그랑 하고
떨어지는 물건이 있었다.  석경이었다.  달빛에 번쩍이는 석경.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 하고 달리는 판인데 석경 하나 따위가 무슨
소용이랴.  그러나 바위쇠는 뜀박질을 멈추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냥
버리고 갈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바위쇠가 그것을 줏으러 가는 사이에
검달이는 벌써 얼마나 뛰었는지 몰랐다.
  검달이가 본진(本陣)으로 돌아간 것은 희끄므레 하게 새이고 있을
무렵이었다.  살아서 먼져 돌아와 있는 동료들의 수효는 불과 십여명 밖에
되지 않았다.  그날 검달이보다 늦게 생환(生還)하는 병졸들이 더러 있긴
했으나 끝내 바위쇠를 비롯해서 노룻골의 친구들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검달이의 이야기가 끝나자 마을 사람들은 일시에 큰 숨들을 내쉬었다.
출정한 젊은이들의  가족들은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하였고, 그렇지
않는 사람들도 우울한 얼굴로 곧장 장탄식(長歎息)이었다.
  복사녀는 검달이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거기서서 듣고 있질 못하였다.
 바위쇠가 떨어진 석경을 줏기위해서 뜀박질을 멈추고 돌아섰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녀는 눈 앞이 노오래지며 하늘과 땅이 한꺼번에 비잉
돌아가는 듯하여 비실비실 그 자리를 뜨고 말았던 것이다.
  검달이네 집을 나온 복사녀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길로 언덕마루를 향해 걸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그 이가 그 이가 정말 죽었단 말인가?  아아- 그 석경때문에 죽게
되었단 말인가?  그게 정말일까?  정말이라면 그 이를 내가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늘도 하늘도 무심하다.  너무하다.  그 이를
죽이다니, 죽이다니--- 
  복사녀의 오장육부는 마구 찢어지는 듯 하였다.  언덕마루까지 어떻게
올라왔는지 모른다.  멀리 동구앞 길을 바라보는 그녀의 두 눈에는
피보다도 진한 눈물이 아프게 아프게 맺히는 것이었다.
  동짓달 사나운 바람이 그녀의 머리칼을 사정없이 날리며 불어 갔다.
   저 길로 멀어져 가더니, 저 언덕모통이를 돌아 사라져 가더니--- 흐흑
  마침내 복사녀는 그 자리에 힘없이 엎으러지고 말았다.

  < 5 >
  바위쇠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부터 복사녀는 집안에서나
집밖에서나 통 말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찬바람에 섞여 희뜩희뜩
눈이 나리기 시작했으나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마을안 골목까지
호랑이가 내려와 쏘다녔다는 이야기가 동네를 시끌하게 했을 때도, 그저
그렇거니쯤 여기는 것이었다.
  밤이면 잠을 자지 않았고, 낮에도 집안일을 거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노상 실신한 사람처럼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이따금
방문을 안으로 걸어 잠그고, 아무도  모르게 방바닥에 엎으러져 오래오래
흐느껴 울기도 하였다.
  그녀의 부모는 여간 걱정이 아니었다.  무슨 곡절이 있거니쯤 짐작은
했지만, 일을 어떻게 수습했으면 좋을지 몰라 퍽으나 초조한 나날을
보냈다.
  그럴 무렵에 생겨난 것이 검달이와 복사녀와의 혼담이었다.  여러
모로(여러모로) 걱정이 되던 복사녀의 부모는 그렇게라도 얼른 처리해
버리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검달이가 복사녀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다
하였고, 검달이네 부모들도 복사녀라면 마을에서 제일 가는 처녀인지라,
여간 마음에 내키지가 않았다.  복사녀의 부모들도 찬성을 하였으니
혼인은 이미 결정적이었다.  남은 것은 다만 절차 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말이 들려도 복사녀는 이렇다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세상만사가
무의미하였고, 귀찮을 따름이었다.
  그 해 겨울은 여니해보다 눈이 많이 쏟아져 내렸다.  마을의 집집들은
물론 뒷산도 언덕마루도 온통 눈이 덮여 백금의 무더기인 듯 번쩍거렸고,
동구앞 들에도 백설은 은세계를 이루어 놓았다.
  섣달도 지나가고 새해의 정월도 저물어 갈 무렵 복사녀와 검달이의
혼인식은 거행되기로 결정이 되었다.
  마을 총각들이 모두 싸움터에 나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마침내
검달이가 복사녀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고 만 것이었다.  그리고 보면
검달이는 여간한 행운아가 아니었다.
  내일이면 복사녀는 검달이의 아내가 되는 날 밤이었다.  자정이 훨씬
넘었을 무렵까지 집에서는 음식 준비에 바빠다.
  집안 사람들이 모두 곤하게 잠들어 버리고 난 뒤, 복사녀는 이불 속에서
소리도 없이 빠져 나와, 방문을 살며시 밀고, 바깥으로 나갔다.  마루
밑에서 신을 찾아 신은 그녀는 눈이 깔려 있는 마당을  조심조심 걸어서
사립을 밀고 집을 나서 버리는 것이었다.
  자정이 훨씬 넘은 겨울 밤의 공기는 귀와 코를 도려내는 듯 하였으나,
그녀는 조금도 두려움 없이 마을을 빠져 나가, 뒷산을 향해 올라가는
것이었다.
   내가 검달이의 아내가 되다니--- 말도 아닌 소리다.  검달이?  흥!
  복사녀는 연신 자기의 운명을 비웃어 댔다.
  눈이 무릎을 묻는 골짜구니를 자꾸 기어 올라, 그녀는 마침내
애기소에까지 오고 말았다.  애기소.  아- 바위쇠와의 아름답던 사랑의
보금자리.  그 정답던 반석도 지금은 눈 속에 묻혀 보이지가 않는다.
깊이를 모르는 애기소의 물만이 이 추위에도 얼어 붙질 않고, 찰랑찰랑
넘치고 있다.
  복사녀는 아무렇게나 그 물 가에 퍼지고 앉았다.  이미 추위를 느낄
그런 감각은 온몸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가슴속에 다만 한 가닥 뜨거운
불길이 타오르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 불길은 지금 그녀의 목숨을 조금씩
조금씩 불사르고 있는 것이다.
   검달이에게로 시집을 가느니보다는 차라리 이 물 속으로 뛰어 들자.
이미 죽어서 저승에 가 있는 그 이를 따라 나도 가자.  가서 이 세상에서
이루지 못한 소원을 저승에서라도 이루어야지
  찰랑찰랑 넘치는 물을 노려보는 복사녀의 두 눈은 무섭도록 싸늘하였다.
 눈물 같은 것은 벌써 의미를 상실한지가 오래였다.  마지막 한번의
피나는 의지가 남아 있을 뿐이다.
  그녀가 죽음을 각오한 것은 검달이가 돌아온 바로 그 날
언덕마루에서였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닌듯 오늘까지
단행(斷行)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단행을 하지 못한데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감도 있었겠지만, 그것보다도 바위쇠가 혹시 살아서 돌아오지나
않을까 하는 실같은 한가닥의 희망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미 모든 것은
허물어지고 말았다.  내일이면 마음에도, 꿈에도 없는 검달이의 품에
안겨야 할 굴욕의 몸이 되고 만 것이다.  살아서 뭘 하겠는가?
  그녀는 어금니를 빠드득 깨물었다.  그리고는 일어서서 치맛폭으로
머리를 뒤집어 썼다.  눈 앞이 갑자기 깡깜(깜깜)해 졌다.  눈을 감았다.
깡깜하던 눈 앞에 보름달처럼 떠오른는 것이 있었다.  바위쇠의
얼굴이었다.
   아아 얼마나 얼마나 애태우며 기다리던 얼굴이냐.  이 얼굴 때문에
긴긴 겨울 밤을 얼마나 안타까운 몸부림으로 새웠더냐--- 아아 이 얼굴!
이 얼굴!
  복사녀는 아랫도리에 열이 벌겋게 오르는 것을 어쩌지 못하였다.  한
바탕 단꿈을 꾸고 난 뒤처럼 머리 속도 어지럽고 노자근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바로 이 때, 마을 쪽에서 두번째의 닭이 홰를 치며 울었다.
   날이 밝는다, 날이 밝으면 아아- 날이 밝으면--- 
  복사녀의 온몸에서 미친 듯이 솟구쳐 오르는 기운이 있었다.
  순간! 간장을 끊는듯한 비명소리와 함께
   툼벙!
  애기소의 잔잔한 물결이 깨어지고, 커다란 파문이 자꾸만 번져 나갔다.
그리고는 밤은 다시 무섭도록 고요해 졌다.
  슬픈 일이 많았던 노룻골의 겨울도 어느덧 지나가고, 산에서 눈 녹는
물이 쫄쫄쫄 흐르기 시작하였다.  산비탈 양지쪽에는 벌써 할미꽃이랄지
진달래가 봉오리를 맺었고 들녘에도 파릇파릇 새순들이 보기 좋게 솟아
올랐다.
  그런 어느 날.
  멀리 언덕 모둥이를 돌아 동구앞 길을 찔룩찔룩 걸어오는 웬 병신 같은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마침 밭갈이를 하고 있던 검달이는 저게 웬 사람이까 하고 그 수상쩍은
내객(來客)의 모습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게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아마 지나가는 나그네인 모양이었다.  그 초라한 행색의
나그네는 검달이에로 가까이 오더니
   아 이 사람아!
하고, 알은 체를 하는 것이었다.  검달이는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었다.
   나 바위쇠여
   응!  바위쇠?
  참으로 뜻밖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죽었다고만 생각했던 바위쇠가
살아서 이렇게 돌아오다니--- .
  마을은 발칵 뒤집혀졌고, 울음소리가 다시 쏟아졌다.
절룸발이(절름발이)가 되어 돌아온 그를 맞이하여,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바위쇠네 집안 사람들의 눈물.  혹시 우리 아무게도 살아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운 눈물들.  그리고 공연히 딸생각이 나서 쏟아지는
복사녀의 부모의 원통한 눈물.
  봄이 돌아왔건만 노룻골의 슬픔은 좀해서 풀릴 것 같지가 않았다.
  신라의 기습군이 역습을 당하던 그 날 밤, 바위쇠는 떨어진 거울을 집어
들다가 적군의 화살에 넙쩍다리를 맞았다.  그러나 죽을 힘을 다하여 뛴
보람이 있어 적군의 눈을 피하게 되었고, 어느 깊은 산중의 이름도
국적(國籍)도 없는 마을에서 화살에 맞은 다리를 치료하며 겨울을 났던
것이다.
  천명으로 살아서 고향에 돌아온 바위쇠는 무엇보다도 복사녀의 소식이
궁금하였다.  그래서 고향에 돌아온 이튿날 검달이를 찾아 갓다.
   이 사람아 검달이!  복사녀도 잘 있겠지?
   ----- 
  검달이는 대답이 없을 뿐 아니라, 이상스러운 빛이 두 눈에 떠올랐다.
일종의 질투와 저주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 사람 왜 말이 없나?
   흥!  복사녀, 죽은지가 언제라고
   뭣이!  복사녀가 죽어!  응!
   물에 빠져 뒤진지가 언제라고, 애기소에 빠져 뒤졌어!  뒤져!
   에익!
  어느새 바위쇠의 주먹은 검달이의 뺨을 가서 보기 좋게 갈겨 놓았다.
   으악!
하고, 나가 쓰러지는 검달이의 몸뚱아리를 바위쇠는 되는대로 마구 차
넘겼다.
   이놈 자식아!  니가 죽였지 니가, 니가 복사녈 못살게 했지!  응!  응!

  바위쇠의 목줄기에는 시퍼런 핏대가 몇 개나 몇개나 붉어져 올랐고,
온몸은 사시나무 떨듯 마구 떨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노여움의
화신(化身)인 듯 하였다.
  봄은 무르익어 가고 있건만 노룻골에는 앞으로 또 어떤 종류의 슬픔이
생겨날는지 모를 일이었다.
                           < 끝 >

 


야담
野談 : 민간에 널리 알려지지 아니한 야사의 구수한 이야기.
[unofficial historical story ]

 


<제 육 화> 復讐奇譚(복수기담)
異花 雪竹梅

  1.
  이조 중엽(李朝中葉)에서 조금 지난 시절이었다.  임금이란 이는 정사는
모르고 대궐 깊숙이 들어앉아서 주색에 침몰하고 날마다 풍류와 잔치를
일삼고 궁녀들의 춤과 노래속에 파묻히어 있었다.  간신적자는 정권을
잡고 흔들며 파당을 지어서 서로 싸우게 되었다.
  어떤 사람이 세도를 잡아서 그 일문이 모두 벼슬을 하는데
청수(靑水)라는 사람은 장안의 건달로 유명하였으나 역시 명문의 자손이라
아무런 자격도 없으면서 충청 어떤고을의 원님이 되었다.
  이 고을은 산수가 명미하고 경치도 훌륭하려니와 어염시수가 좋고
들에는 오곡이 풍등하고 산에는 백과(百果)가 있어서 살기 좋은 고장으로
유명하였다.  그래서 여기 사는 백성은 대개 잘 지내고 부자가 많았다. 
  그중에도 임원(林原)이란 사람은 이 고을에서도 유수한 부호인데 그 때
부호라는 것은 대개 세도를 부려서 서민의 재물을 뺏거나 부정한 행정을
해서 부자가 되기 일수인데 임원만은 정당하게 벌은 재상이었다.  또
부자라는건 대개(걔?) 인색한 법인데 임원은 그렇지 아니해서 인심을
얻었다.  그래서 거지란 거지는 이집에 단골로 다니고 또 지나가는
나그네도 임원의 소문을 듣고 와서 며칠씩 식객노릇을 하다가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집에는 손님이 떠나는 날이 없었다.
  다만 임원은 양반이 아니요 평민이라고 해서 이 고을양반들에게 늘
학대를 받고 지내는 것이었다.  양반이 아니면 성명이 없고 그 자손도 글
공부를 해야 벼슬도 못하고 아무리 똑똑한 이재라도 써먹을 수가 없는
억울한 세상이었다.
  임원에게는 딸과 아들남매가 있었다.
  딸은 열일곱이라는 꽃다운 아이로 얼굴이 달덩이처럼 동탕(動蕩)하여
미인으로 소문이 나서 여기저기 혼처가 물밀듯하지마는 이리 삐긋 저리
삐긋 혼인이 잘 되지 아니하였다.  양반의 집과는 혼인을 할 수 없고
상놈집 자식으로는 인물이 없고해서 고르고 고르는 중이었다.
   미랑(美娘)이를 어서 시집보내야 할텐데
   그러기 말야, 그러나 어디 똑똑한 사내자식이 있어야지
  미랑의 아버지 어머니는 늘 걱정을 하였다.
   중호(重浩)도 장가를 들여야지, 벌써 열 다섯살이 되었구려, 늦었지
뭐요
   늦었구말구, 나이 열다섯이면 호패를 찰텐데
  그때는 대걔 사나이가 열두 서너살이면 장가를 들고 계집애는
열서너덧살이면 의례히 시집을 보내는 것이었으니 그들 남매 미랑과
중호의 혼기가 늦었다는 것도 당연한 말이다.  이람도 예쁘려니와 그동생
중호도 누이와 같이 아름답게 생기었다.  언듯보면 중호도 미랑과 같이
여자 비슷하게 생기고 살결이 희고 예뻣다.  그리고 재주도 있고 똑똑해서
글방에서 사서 삼경을 다 배웠지마는 양반이 아니라 과거를 볼 수도
없었다.
   아버님, 저는 왜 글공부를 했어도 과거를 못봅니까?
   양반의 자손이 아니라서 그렇단다
   같은 사람인데 양반이라야 벼슬을 하고 그도다 더 잘난 인물이다로
상놈이면 썩어 버리니 그런법이 어디 있어요
   그러기 나라가 이렇게 망하는게 아니냐, 이번 새로 도임한 원님도
팔난봉이지만 양반의 집 자식이라고 원님이 되었단다
   정말 원통하고 분해요. 그럼 저는 뭘해야 좋을까요?
   농사나 장사나 했지 별 수 있니
  중호는 울었다 높은 학문을 배웠으나 써 먹을데가 없는 것이 지극히
원통하였다.
   양반의 집으로 양자를 가면 어떻게 속일 수가 있고 과거를 볼 수가
있는데- 가난한 양반에게 땅이라고 떼주면 될 수는 있지마는... 
  임원도 한탄스러워 이렇게 말하였다.
   그것은 싫어요.  남의집에 가서 벼슬을 하느니 이집에서 농사를 짓는게
나어요
   글쎄 네가 외아들이니 양자를 보낼수도 없고
   딴 고을에 가서 양반노릇은 할 수 없나요?
   그것도 할 수 없단다
   그런데 왜 우리는 양반이 되지 못했나요
   우리 선조도 고려때는 양반이었더란다.  그런데 고려가 망하고 이조가
되는데 이조에게 붙는 사람은 양반이 되고 이조를 반대하는 집은 다
평민이 되었단다
   그럼 지금 양반은 다 나쁜 사람들이로군요.  우리도 조상은 좋군요
   그럼- 사람이야 다 매일반이지 양반이니 상인이니 하고 가르는 것이
잘못이지
  아무리 못났어도 양반이면 상인에게 해라나 하게를 하고 수틀리면
잡아다가 때리고 돈이나 곡식을 욹어먹는 것이 보통이었다.  양반같지
아니한 토반(土班)의 행패는 더욱 심해서 평민들은 그 등살에 살 수가
없었다.
  임원도 원님이나 양반들에게 뜻기는 것이 굉장히 많았고 억울한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지마는 호소할 데가 없었다.
  청수는 이고을에 부임하자 위선 가장 비위에 맞는 이방(원님밑에서
일하는 아전) 하나와 친하였다.  악한 임금은 간신과 가까워지는 법이요
악한 상관은 악한 하관과 배가 맞는법이다.  탐관오리가 번창해서 나라를
어지럽게하는 세상이었다.  청수는 이방을 불러서 위선 이 고을의 명기를
수청들이게하고 또 한편 돈을 긁어 모을 방도를 의논하는 것이었다.  그저
토색질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고을 상놈중에서 누가 부자냐?
   네이- 임원이란 놈이 상인이지만 큰 부자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먹을 수 없니?
   네이- 그저 트집을 잡아서 끌어다가 때리고 족치면 됩니다
   트집을 어떻게 잡는단 말이냐?
   다 하는 수가 있읍니다
  이방은 원님의 귀에다가 대고 간사스럽게 뭐라고 속살속살한다.
   으응- 그렇게 예쁜 딸이 있다- 그거 꿩먹고 알먹는 격이로구나- 응-
하루라도 빨리!
  청수는 희색이 만면이다.
  며칠후이다.
  이방이 사령을 데리고 임원의 집으로 왔다.
   웬일이시오?
  임원은 이방에게 말하였다.
   원님께서 따님을 보시자고해서-
  같은 평민이건만 하대를 한다.
   왜요?
   글쎄 그 속내는 알 수 없지만 원님께서 미랑의 소문을 듣고 한번 보고
싶다고 하셔서- 아아 어디 중신(혼인소개)를 하시려는 모양입디다
   원님이 무슨 혼인주매란말요.  소용업다고 말씀하시오
   누구의 명령이라고 거역한단말요.  순순히 말할때 보내시오.  그렇지
않으면 잡아 갈테니
   아니 그런 법이 어디있단 말요.  아무리 원님이기로서니 규중처녀를
함부로 잡아간단 말요
  임원은 의심이 덜컥나서 하는 말이다.  원님이 미랑을 보자는데는 딴
배포가 있는 것을 짐작하기 때문이다.
   잔소리 말고 어서! 그렇잖으면 재미 적을테니
  떠드는 소리에 중호가 나왔다.
   왜 그러십니까?
   원님이 미랑을 보시자고 한다
   왜요?
   그걸 알 까닭이 있나?
   그건 할 수 없소
   뭣이?
  이방은 중호의 뺨을 후려갈기고
   들어가서 계집애를 끌어내라
하고 사령에게 명형하였다.
  벙거지를 쓰고 육모방망이를 옆구리에 찬 사령들이 우르르 방으로
들어가서 미랑을 잡아내었다.  미랑은 거꾸러지며 울며 불며 야단이었으나
여럿이 팔과 다리를 붙잡고 떠메어서 가마속에 집어넣었다.
  미랑의 아버지 어머니 중호가 모두 울며 덤비는 것을 다른사령이
방망이로 때리고 밀치는 통에 미랑을 태운 가마는 사라지고 말았다.
  임원과 중호 부자는 관가로 달려갔으나 역시 군노 사령들에게 매만 맞고
쫓겨나고 말았다.

  2.
  억울하기 짝이 없었지마는 호소할데가 없고 동네사람들은 동정을
하지마는 어쩌는 수가 없었다.
   기생도 아니요 규중처녀를 수청들이는 법이 어디 있노!
   이번 원님은 아주 호색가래
   아마 소첩을 삼으려는 게지
   그런 무지한 일이 어디 있담.  양반과 벼슬아치들 때문에 못살겠어
   돈과 땅을 바쳐야 미랑을 꺼내올꺼야
  이렇게 수군거리었으나 드러내놓고 크게 말도 할 수 없었다.
  임원은 아전을 통해서 돈과 땅문서를 바치었으나 미랑은 나오지
못하였다.
  미랑은 왠 영문인지 모르고 관가에 잡혀 들어갔는데 원님 청수가 가까이
보더니
   응- 과시 천하일색이로구나!
하고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방년이 몇인고?
하고 묻는다.
   열 일곱살에요
   흥 아주 한참피는 꽃이로구나, 오늘밤 내게 수청을 들어라
   옛? 저는 기생이 아닙니다
   알아! 그러니까 내 소첩노릇을 하란말야.  우리집 사람은 아직 한양에
머물러있고 나혼자 왔으니 뭐 이 관가의 안주인노릇을 하고 부귀영화를
누릴 수가 있단말야
   저는 죽어도 싫습니다
   허- 고집부려야 소용없어, 여기 한번 들어온 이상은 내 물건이니까
   원님은 백성을 다스리라는 것이지 규중처녀를 강간함은 옳지 못하다고
아뢰오
   호- 얼굴도 예쁘려니와 말도 잘 하는군
  밤이 되어 청수는 술상을 차려 오라고 해서 먹은 다음 토인이
이부자리를 깔고 문을 꼭꼭 잠근후에 옷을 벗고 미랑의 옷도 벗기면서
   자- 첫날밤을 치루자고, 아직 사내맛은 모르겠지!
하고 능글맞게 덤벼들었다.  미랑은 반항하고 소리쳐 울면서
   이게 무슨 짓예요.  정히 그렇다면 육례를 갖추어서 저를 데려오시든지
하지 이런 무례한 일이 어디 있어요
하고 발악하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응 그런 예법은 차차 할셈치고, 오늘밤은 그대로 즐기자.  상놈에게
출가하는 것 보다 이런 원님에게 몸을 바치는게 영광이 아니냐
  손목을 턱 잡고 끼어 안으면서 은근하게 말하였다.  미랑은 뿌리치고
   싫어요 난 죽어도 싫어요!
하고 소리쳤다.
  그러나 청수는 힘으로 미랑의 옷을 벗기고야 말았다.
  미랑은 발버둥을 치고 손으로 원님의 얼굴과 가슴을 밀었으나 결국 약한
여자라 강간을 당하고 말았다.
  그런데 청수가 정신없이 미랑을 능욕하고 있는데 미랑의 몸이 점점
차디찬 것을 느끼었다.
  그리고 꼼짝하지않고 있어서 아마 미랑도 이제는 단념학 좋아서 가만히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여인의 몸이 굳어진 것을 알고 입에
입을 대보니 숨소리가 없다.  그는 깜짝 놀래서 미랑을 흔들었으나 눈을
감은채 아무 반응이 없다.
  기절한 것인가 하고 주무르고 야단이었으나 소용이 없다.
  토인과 아전을 불러서 응급 치료를 해보나 깨어나지 않고
   숨이 끊어졌읍니다!
하고 아전이 말하였다.  옷을 벗은 미랑의 시체는 처참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청수는 그동안 모르고 시체와 관계하고 있었다.  이것을
생각하니 찬물을 끼얹는 듯 몸서리가 났다.  그는 비로소 가기가 너무
과도하게 했다는 후회의 가책을 받았고 처녀하나를 죽인것이 무서웠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새벽에 그 집으로 시체를 옮기게 해라.  자결을 했다든지 기절을
했다든지 좋도록 말해라
  그 이튼날 새벽에 임원의 집에는 미랑의 시체가 운반되었다.  이런
기맥힌 일이 어디 있을것인가.  청천의 력력도 분수가 있지 어제까지
멀쩡한 딸이 죽어서 송장이 되어 오다니 원통절통한 일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중호는 시체를 안고 통곡하였다.
   대관절 왜 죽었단말요?
  사령에게 물으니
   글쎄 원님께서 귀애하시는데 밤중에 자결을 했는지 기절을 했는지
모릅니다
고 대답하였다.
   그럴 리가 없다.  필유곡절이다
  임원은 미친듯 관가에 들어갔다.  군노사령이 막고 때리는 것도
무릅쓰고 들어가서
   이놈아! 내딸을 왜 죽였는지 말해라!
하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러나 원님은 나오지도 않고 들은척 하지도 아니하고 임원은 쫓겨
나오고 말았다.
  사흘후 미랑의 상여는 동네를 지나서 북망산으로 향하였다.  고을
사람들도 동정해서 눈물을 흘리었다.
   원님이 수청들라고 하는걸 듣지 않아서 인거야
   강간하는데 기절한거래
   자결을 했다고도 하던데
   아무튼 억울한 죽음이지 뭐야
   이번 원님은 아주 고약하대
  민심은 요란하였다.
  장례를 치루고 임원은 날마다 관가에 들어가 미친듯 호통을 치고
   원놈 나오너라 내딸을 왜 죽였는지 알자!
하고 소리쳤다.
  청수는 임원이 날마다 이렇게 미친 사람처럼 굴어서 소요스럽기도
하려니와 이렇게 하면 나쁜 소문이 더 퍼지는 것이 두려워서
   네 그놈을 잡아 가두어라
하고 명령하여서 임원은 마침내 잡혀서 옥에 갇히게 되었다.
   이놈아 왜 나를 가두는거냐?
  옥중에서도 미친듯 날뛰었다.
  그의 아내와 아들의 비통은 더 말할것이 없었다.  미랑이 참혹하게
죽은데다가 그 아버지까지 억울하게 옥에 갇히게 될때 분하고 원통하나
호소할데가 없었다.  그야말로 사또나 임금님이나 그 위에 가서
말해야겠는데 그런 길도 없으려니와 말한댓자 원님 편을 들것이요 소용이
없을것이 뻔히 아는 노릇이다.  백성의 억울한 것을 호소할데가 도무지
없었다.
  옥에서 나오게 하느라고 뒤로 아전들에게 운동한는데 돈과 전답이 많이
없어졌으나 아전들도 그럴듯이 말하면서 먹기만 하고 임원을 내주지
아니하였다.
  임원은 분통이 터져서 음식도 못먹고 잠도 자지 못해서 그만 병이 덜컥
나고 말았다.  그의 몸은 점점 쇠약해졌다.
   임원이란 놈이 다 죽어가는데 어찌 하오리까
  이방이 원님에게 물었다.
   음- 그럼 내보내야지, 또 여기서 그놈마저 죽으면 말썽이 많을테니

  3.
  임원은 떠메여 옥에서 나와 집으로 왔다.  그는 맥이 없고 다 죽어가는
것이었다.  중호는 애가 타서 용하다는 의원은 다 찾아가서 좋다는 약을
다 썼으나 백약이 무효로 점점 병은 침중해졌다.
  어느 비오는날 밤중이었다.  임원은 아내와 아들이 옆에 있는데 눈을
감고 죽은듯이 있다가 겨우 눈을 떠서
   중호야 원수를 갚아라
하는 말을 겨우 남기고 운명하고 말았다.
  중호와 그 어머니는 시체에 엎드려 한없이 울었다.  울고 울어도 원한이
풀리지 아니하였다.  한집안의 귀한 두 목숨이 생으로 억울하게 죽었으니
그럴 수 밖에.
  그들고 가까운 서민들은 동정을 하고 장례식에 참례했지만 원님의
불평을 노골적으로 할 수는 없었다.  말을 해도 잡혀가서 볼기를 맞는
것이었다.
  백성들은 관리들의 비행으로 갖은 억울한 일을 당하고 하고싶은
말이많지마는 말도 자유로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서로 쳐다보고 한숨만
쉬는 것이었다.  과연 불쌍한 백성들이었다.
  장례를 치루고 나서 중호와 그의 어머니는 맥이 탁 풀리고 텅빈 집에서
울기만 하였다.  그 어머니는 심화가 나서 누워버리고 말았다.  중호는
아버지가
   원수를 갚아라
하는 유언을 날마다 속으로 되풀이하였다.
  그 원수를 어떻게 갚을까 주야로 궁리해 보았다 원님에게 가서 그를 푹
찔러죽이는 것이 제일인데 칼을 품고 몇번 가 보았으나 얼씬도 못하게
경계가 삼엄하였다.  자칫하면 또 잡히어 갇히는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몇달후에 갑자기 원님 청수는 여기를 떠나서 한양으로 갔다는
소문이 들리었다.  원님이 떨어진줄 알았는데 웬걸 내직으로 영전이
되었다는 것이다.  세도도 있지만 여기와서 백성에게서 착취한 재물로
상관에게 뇌물을 주어서 높은 자리로 올라간 것이었다.  이렇게 악독한
관리라 권세를 잡아서 나라는 어지러워가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어
허덕이는 것이었다.
  중호는 원님 청수가 서울 한양으로 갔다는데 실망을 하였다.  그래도
여기 있어야 어떻게든지 원수를 갚을 기회가 있을터인데 먼데로
가버리었으니 기가 막히었다.
  그러나 어찌했든 그놈을 따라가서 어떻게든지 원수를 갚아야겠다고
생각하고 한양에 가기로 결심하였으나 병석에 누운 어머니를 홀로 두고
떠나기가 차마 어려웠다.  그렇다고 집에 그대로 엎드려 있을 수는
없었다.
   어머니 얼마동안 제가 한양에 갔다가 오겠읍니다
   한양에는 왜?
   그 원님놈을 만나서 원수를 갚고 오겠읍니다
   아니 나이 어린 네가 어떻게?  도리어 위험하지 않으냐?
   염려 없읍니다.  다 생각이 있읍니다.  다만 어머님을 혼자 두고
떠나기가 차마 죄송하고 불효 막심이오나 아버님이 돌아가실 때 유언도
있고요, 지하에 있는 누이를 생각해서도 기어이 원수는 갚아야겠읍니다
   오냐 그렇기는 하다마는.... 가면 몇달이나 걸리겠니?
   몇달 가지고는 안될 것입니다.  몇해가 걸릴지- 적어도 일년은 넘을
것입니다
   그동안 내가 죽지나 아니할지- 
   맘을 튼튼히 잡수시고 제가 원수를 갚고 올때까지 꼭 살아 계셔야
합니다
   오냐, 그럼 내 걱정은 말고 갔다가 오너라
  중호는 땅을 팔아서 노자를 두둑히 만들었다.
괴나리봇짐을 해서 등에 짊어지고 열여섯살된 소년은 집을 떠나게되었다.
  어머니는 간신히 일어나서 대문 밖까지 나와서 아들이 가는 것을
작별하였다.
  모자는 붙잡고 한참동안 울었다.  이웃집 수동이 어머니에게 집일을
신신당부하였다.
   웬만하면 어머니도 한양으로 모셔가도록 하겠으나 얼마동안만 참으소서

  중호는 그리운 집과 고향을 떠나서 들길 산길을 걸어갈 때 눈물이
발자국마다 고이는 것 같았다.
   오냐 맘을 독하게 먹자!
  한양길을 향해서 날마다 걸었다.  가다가는 주막에서 자고 산설고
물설은 타향의 길을 가면서 어머니를 위하여 하늘께 빌었다.  서울 근처에
가서는 어떤 산골짜기에 들어가서 입었던 옷을 다 내버리고 누이 미랑의
옷을 가지고 온 것을 바꾸어 입었다.
  머리는 칭칭 따아서 자주 댕기를 드리고나니 한다하는 처녀가 되었다.
중호는 이제부터 여자 행세를 하려고 한 것이다.  그래야 원님 청수에게
가까이 갈 수가 있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중호는 미랑을 닮아서 얼굴이 예쁘고 살결도 곱고 목청도 아름다워서
누가보나 사내로 생각할 수 없을만치 가쪽같았다.  한양성으로 들어오니
만호 장안은 어마어마하였다.
   음- 여기가 임금이 계시고 모든 정승들이 사는 곳이로구나, 우리
나라를 다스리는 수도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감개가 무량하였다.
  그보다도 여기는
   내 철천지 원수, 불공대천지 원수가 있는 곳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반갑고 피가 전신에서 끓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늙은이 내외가 사는 정갈한 집에 사처방을 얻어서
돈을 후히 주고 숙식을 하도록 하였다.
   처녀는 어째서 혼자 한양엘 왔노?
   저- 시골서 지내기가 갑갑하고 여기와서 발천(發闡)을 하려고요 뭘
했으면 좋을까요?
   글쎄 무슨 재주가 있는지..... 
   저는 가무(歌舞)를 배우려고 합니다.  그래서 기생이 될까 합니다
   응- 처녀같은 얼굴이면 훌륭하지
  그때 기생이란 지조가 있고 가무만 숭상해서 천대를 받지 아니하였다.
  중호는 노파를 보니 어머니 생각이 나서 견딜수가 없었다.  그래서 친
어머니처럼 대접하니 노파도 딸처럼 귀여워하였다.  그 노파와 수소문해서
가무를 가르치는 선생을 찾았다.  남자선생, 여자선생, 두 사람에게
노래와 춤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재주도 비상하지마는 일편단심 지성으로
배우니 그의 가무는 출중하게 날마다 장족의 진보를 하였다.
   참 우리가 많이 가르쳐 봤다마는 너같이 빨리 능숙해지기는 처음이다.
정말 천재로구나
  이렇게 배운지 일년이 되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열성껏 배웠다.
봄날이나 가을달밤 같은 때는고향에서 홀로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고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 모른다.
   이만하면 인제 기생으로서 나설 수 있다.  장안에서는 뽑히는 기생이
될 것이다
  중호는 조그만 집을 하나 장만해서 독립의 생활을 하기로 하였다.
그때는 기생이 무슨 요릿집이나 그런데 나가지 않고 집에 있으면 손님이
찾아오고 대가의 연회에나 대궐에 간혹 불려 들어가는 것이었다.
  중호는 집을 구하되 원님 청수의 집 근처로 하였다.  청수의 집은
소슬대문에 굉장하였고 조사한 결과 내직으로 상당한 지위에 있으며 역시
풍류남아로 기생집 출입이 잦다고 하였다.
  계집애 하인을 하나 두었다.  중호보다 한두살아래인 처녀인데 먼저
주인집 노파의 조카딸이었다.  집안이 간구해서 시집보내기전 시중을 하게
하였는데 다른집 같으면 보내지 않겠지마는 여기만은 전부터 잘알고
친한고로 보낸 것이다.
  중호의 예명은 설죽매(雪竹梅)라고 지었다.  눈속에 청청한 대나무와
눈바람 속에서도 피어나는 매화의 어기찬 지조를 상징하는 뜻으로 그렇게
지었다.  설죽매는 원체 유식한지라 글도 잘 짓고 글씨도 잘쓰고 그동안
그림도 배웠다.
   설죽매같은 기생은 장안에 없다!
  이런 소문이 차차 퍼졌다.  거문고 가야금도 일등 기생만 못지
아나하였다.
  살림하는 계집애 이름은 국희(菊姬)라고 하였다.
  퍽 얌전하고 예쁜 처녀이었다.

  4.
  설죽매와 국희는 딴방을 쓰고 따로 잤다.  그러나 조석상대를 하고
지내니 자연 정이 들고 말았다.  국희는 설죽매가 남자라는 것은 꿈에도
상상치 못하였다.
  설죽매의 소문이 나자 장안 풍류남아와 화랑들이 꿀종지에 개미 모이듯
하였다.  그들은 설죽매에게 반해서 어찌할줄을 몰랐다.  재색이 겸비한
기생은 드문데 설죽매는 가무니 서화니 음률이니 뭐나 다 잘하였다.
   설죽매!  설죽매!
  장안에는 설죽매로 소문이 파다하고 기생계에 꽃이요 뿔이 되었다.
  중호인 설죽매는 그렇게 유명해지는 것이 그다지 반가울 것도 없고
귀찮기만 하였으나 다만 청수를 만나자는 그것 뿐이었다.  오는 손님은
설죽매를 건드려 보려고 갖은 수단을 다 썼다.  패물이니 초피니
수달피같은 선사도 하고 돈을 물쓰듯하는 사람도 있었다.  장안의 부호가
자제도 있고 높은 벼슬아치도 있는데 대개는 훌륭한 남자이었다.
설죽매는 그들을 속이는 것이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여보 설죽매- 나하구 같이 삽시다.  살림은 그대가 원하는대로 차려
줄테니
  이렇게 말하는 사내가 한둘이 아니었다.
   단 하루밤만 자면 소청대로 뭐든지 들어 줄테요
  이렇게 몸이 닳아서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몇달이 지나도 청수는 오지
아니하였다.  그야 누구를 중간에 넣어서 오도록 할 수는 있지마는 그
보다는 제발로 걸어 들어오게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끈기있게
기다리었다.  그도 풍류남아요 더구나 자기집 근처니 아니올 리가
만무하다.
   아씨는 어쩌문 그렇게 사내들한테 환심을 세세요, 정말 부러워요
  국희가 어느날 밤 설죽매가 누워있는데 옆에 와서 말하였다.
   그런데 부러울 것 없다.  나도 얼마하다가는 그만 둘 작정이다.
여인이란 그저 시집가서 아들 딸 낳고 살림하는게 제일이니라
  국희는 이야기하다가 쓰러져 누워서 잠이 들었다.  색색자는 처녀의
얼굴은 한층 더 아름다웠다.
  국희는 잠결에 중호의 품으로 기어들었다.  중호는 무의식중에 국희를
꼭 끼어않았다.  잠이 깬 국희는
   난 시집안가고 언제나 아씨와 같이 살테야요
하고 정답게 말하였다.  그들은 서로 이상한 애욕이 통하는 것이었다.
   응- 우리 둘이서 살자
   아씨가 혼인하면 어떻게 해요?
   응 그럴 리가 없다
  포옹하는 그들은 서로 이상한 감촉을 받았다.
   어서 네방에 가서 자거라
   싫어요.  난 여기서 잘테야요
  국희는 그의 품으로 버썩 버썩 달려 들었다.  중호도 이제는 열일곱살-
한참때의 사내로 아리따운 처녀를 품에 안고 있으니 정욕이 발동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국희도 설죽매가 여자인줄 알면서도 이상하게 끌리는
것이었다.
  중호는 국희를 밀치면 또 덤벼들고 해서 밤새껏 잠을 못자고
고민하였다.
  여름 어느 날이었다.
  종내 청수가 설죽매의 집에 왔다.  같은 벼슬아치인 사람과 둘이서
놀러왔다.
  수인사가 끝난 후 청수는 설죽매를 한참 바라보더니
   어디서 많이 본듯이 낯이 익숙한데
하고 무슨 기억을 더듬는둣 하였다.  그도 그럴것이 전에 강간한 처녀
미랑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중호는 마침내 주야장천 생각하고 기다리던 원수를 만나니 반가우면서도
가슴이 울렁거리었다.  더구나 그가 유심히 처다 보는데는 그럴 리가
없지마는 혹시 본색을 눈치챌까하는 염려도 없지 아니하였다.
  술상이 들어온후 그들은 술을 마시고 나중에 설죽매의 가무와 음률을
보고 들은후에 청수는 호색적인 눈을 번쩍이며
   아- 이런 명기가 장안에 있는 줄을 몰랐군!
하고 감탄하기를 마지 아니하였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저는 장안에 저다지 고귀하신 화랑이 계신줄은
몰랐읍니다
  설죽매은 청수에게 추파를 건네며 아양을 떨었다.  사내를 녹이는
애교이었다.  밤 늦게까지 놀다가 갔다.
  그다음은 청수 혼자서 왔다.  나란히 붙어 앉아서 술과 음식을 먹는데
설죽매는 이 놈이 자기집 재산을 다 빼앗고 누이와 아버지를 죽인
원수라는 것을 생각하니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었으나 참고 기회를 보기로
하였다.  그후 청수는 몸이 닳아서 며칠에 한번씩 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정답게 어떤 때는 쌀쌀하게 하여서 몸이 바싹 달게되었다.
청수는 죽을둥 살둥 모르고 덤비는데 중호는 당장이라도 죽일 수 있지마는
좀더 애를 태우고 뺏긴 재산도 찾고 또 탄로가 안되도록 계획적으로
교묘하게 하려고 조급한 것을 참고 참았다.
  중호는 몰래 날쌘 칼을 갈고 갈아두었다.  그리고 청수가 은금패물이니
돈이니 많이 가져오도록 하였다.  장차 몸을 허락하고 소첩으로 살림을
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청수는 재물을 아끼지 않고 갖다가 바치었다.
  그만해도 중호는 자기집 재산을 찾고도 남았다.
   대관절 어느날이나 첫날 밤을 치룬단 말요
   예 좋은날을 택해서 오시게 하죠.  며칠만 기다리시오
   이거야 어디 사람 피가 마를 노릇이로군
  그래서 결국 날자를 정하고 말았다.
  그동안 이집은 팔고 중요한 물건은 국희의 집으로 옮기고
  모든것을 비밀로 하라고 하였다.
  그날밤이 되었다.
   국희는 어디갔소?
   집에 보냈어요.  오늘밤은 우리 둘이서 싫것 맘놓고 지냅시다요
   응- 잘 생각했어.  과년한 처녀가 바람나면 안 될테니까
  중호는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단둘이서 주안상을 차려놓고 마시고
먹었다.
   오늘은 전에없이 예쁜데
  화장을 농후하게 한 설죽매는 요염하게 예뻤다.
   그런데 얼굴에 바른분이 푸르게 뵈니 웬일요?
  사실 중호의 얼굴에는 살기가 등등해서 푸른 빛이 났다.
   암만해도 전에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얼굴야, 생각은 나지 않지만.....

   세상엔 비슷한 얼굴도 많겠죠
   자- 거문고나 한번 타오
   예- 
  설죽매는 거문고를 놓고 섬섬옥수로 타기 시작하였다.  애틋한
봉황곡(鳳凰曲), 비곡인 제류곡(堤柳曲), 원한이 사무친 황죽곡(黃竹曲)
등을 타고 맨 나중에 충천곡(衝天曲)을 타는데 이것은 장엄하고도 무서운
것이었다.  맨나중에 설죽매는 힘껏 줄을 타다가 하나를 홱 끊어
버리었다.
   아- 왜 그러우
   너무 힘껏 타다가 그랬어요
  청수는 웬일인지 가슴이 뜨끔하고 어떤 불길한 예감과 공포와 불안이
치밀었다.
   자- 그만 잡시다
   예- 
   그럼 옷을 벗읍시다
  금침을 깔고 청수는 옷을 벗고 설죽매도 겉옷을 벗고 속옷만 입었다.
품속에는 갈고 갈았던 칼이 들어있다.
  그들은 나란히 누웠다.  촛불은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흔들흔들하고
있다.  밤은 깊고 고요하다.

  5.
  청수는 설죽매를 끼어안고 입을 맞추고 야단이다.
  좋아서 어찌할줄을 몰랐다.
  설죽매는 가만히 떠밀면서
   한가지 부끄러운 소청이 있읍니다.  다른게 아니라 저희집에 대대로
내려오는 업원이 하나있는데 그것은 첫날밤에 남자가 여자위에 올라 와서
상관하면 반드시 그 사내가 복상시(腹上屍=배위에서 죽는것)가 됩니다.
그래서 첫날 밤만은 여자가 남자 배위로 올라가서 관계하는 전례의 풍습이
있읍니다.  오늘도 그렇게 해주세요
하고 말했다.
   허- 이상한 미신도 다 있군, 정히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청수는 이 아리따운 여인과 속히 육체의 관계를 하고 싶은 욕심뿐이라
그런것 저런것 분별한 새가 없었다.
  설죽매는 청수에게 올라가서 그 배를 타고 앉자마자 난데없이 뻔쩍이는
칼을 대며
   네 이놈아!  나를 몰라보겠니?
하고 날카롭게 부르짖었다.  중호는 인제 호랑이가 개를 삼키려고 타고
앉아서 으르렁 대는 것같은 쾌감을 느끼었다.
   아!  이게 무슨짓야, 아니 장난인가?
  청수는 놀래면서 반신반의 하였다.
   네가 **고을 원으로 왔을 때 미랑이라는 처녀를 강간해서 죽였지--- 또
그 아버지 임원을 잡아서 옥에 가두었다가 죽였지--- 이놈 나는 그 미랑의
사내 동생이요, 임원의 아들이다.  너를 만나서 오늘 이런 원수를
갚으려고 여복을 하고 공부를 해서 기생이 되었다.  이놈 알겠니, 너는
내손에 죽어야한다!
   아! 아! 네가 바로!
  청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그렇다- 너를 죽여 오장육부를 씹어도 시원치 않다!
   사 사 살려다구, 그럼 네 청이면 뭐나 다 들어주고 우리집 재산을 다
주마
   듣기싫다! 나는 다른것보다 네 피를 보고싶다!
   저 저 정말이냐?
하면서 갑자기 설죽매를 뿌리치고 벌떡 일어났다.  그 바람에 설죽매가
뒤로 둥그러지자 이번엔 청수가 그의 배를 타고 올라앉아서 손에 쥔 칼을
빼앗으려고 하며
   흥! 네놈한테 내가 죽을줄 알고!
하면서 호통을 친다.  칼만 빼앗기면 도리어 중호가 죽을 판이었다.  그는
다시 힘을 내어 청수를 박차버리고 일어섰다.  청수는 일어섰다.
용호상박이라더니 두 사람은 마주서서 으르렁대고 노려 보는데
   이놈아 네가 죽인 누이와 아버지의 혼령이 지금 나를 도우신다! 너는
내 칼을 받아라!
하고 칼로 찌르려는 무서운 기세다.  청수는 술도 취했거니와 너무도
뜻밖의 일에 부딛혀 흥분이 되고 또 양심의 가책도 있어서 공포에 떨면서
그 칼을 피하려고 비슬 비슬 하였다.
   이놈 네가 나를 죽이려다가는 네가 죽을테니 그 칼을 놓고
이야기하자.....
청수가 위협하는듯 애원하는듯 부르짖었다.
   뭣이 이놈아! 그래도 네죄를 생각지않고 살려고 하느냐? 나는 너를
죽이고 그 피를 마셔서 원수를 갚고야 말겠다
  살기찬 눈으로 쏘아보는 설죽매의 얼굴은 무슨 귀신같이 무섭게 보였다.
  여인의 머리와 옷은 흩으러지고 이를 가는 입이 무슨 요귀나 마녀같이
독하게 보였다.  청수는 소름이 끼쳐 전신을 떨었다.  그 설죽매가 바로
자기가 강간하다가 죽은 미랑의 그 무서운 얼굴과 똑 같았다.
  그는 문을 박차고 나갔으나 대문이 잠기어 마당으로 후원으로
도망하는데 설죽매는 유유히 그를 쫓아다니며 칼을 겨누었다.  호랑이게게
쫓기는 개나 뱀에게 쫓기는 개고리나 고양이에게 노림을 받는 쥐와
같았다.  청수는 숨이 차서
   야 야! 사람 살려라, 나를 살려다구!
하고 소리쳤으나 이집은 이웃에 들리지 않는 안윽한 집이었다.
   오냐 죽어서 저승에 가서 우리 누이와 아버지를 만나보아라! 거기가서
한번 더 혼이 나야한다
  중호는 비호처럼 달려 들어서 칼로 그 배를 찔렀다.
   아이쿠!
  중호는 다시 그 배를 타고 앉아서
   이놈아! 이 원수놈아!
하고 칼로 그 목을 찌르고 그 가슴을 찌르고 난도질을 하였다.
  청수는 입에서 피를 토하며 눈은 뒤집어졌다.
조금후에 아주 죽고 말았다.
   응-
하고 중호는 일어나면서 죽은 원수를 볼때 어깨의 무거운 짐이 벗어지는
것같고 시원하였다.  그리고 누이와 아버지의 혼령이 나타나는 것이
보였다.
   아버지! 누나! 원수를 갚았읍니다!
하고 울면서 소리쳤다.
  닭우는 소리가 멀리서 들리었다.  중호는 정신을 바싹 차리고 소매를
걷고는 청수의 시체를 끌어서 미리 뒤 울안에 깊이 파두었던 땅속에 넣고
그   옷이니 신이니 갓이니 전부 함께 파묻어 버리었다.  누가 보던지
이속에 송장이 들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하도록 감쪽같이 하였다.
  중호는 이제 할일을 다하였다는 듯 설거지를 하였다.  피묻은 데를 씻고
아무 표적이 없도록 해 놓았다.
  그리고는 간수해 두었던 남복을 갈아 입고 머리도 총각머리를 땋아서
검은 갑사댕기를 드리었다.  설죽매라는 여자가 금방 중호라는 남자로
변해 버리었다.
  새벽이 되어 동이 트자 이집에서 나갔다.  중호는 국희의 집으로 갔다.
  국희는 뛰어나오면서
   아니 왜 남복을 하셨어요?
하고 눈이 둥그레진다.
   지금까지 국희를 속여 왔지만 나는 남자요 나중에 가서 사정을 자세히
이야기할테니 그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말고 우리 살던 집에도 가지 말우,
그리고 내가 올때까지 시집가지 마시오.  어쩌면 나하구 백년가약을
맺을지 모르니...
  중호의 말에 국희는 반가운듯 부끄러운듯 붉어지는 얼굴을 푹 숙이었다.
 그날로 중호는 고향으로 와서 집을 팔고 땅을 팔고 모든 것을 정리해서
어머니와 함께 한양으로 이사하였다.  그리고 집과 터를 장만하고 국희와
혼인해서 행복스럽게 살았다.
                          <끝>

 

 

 

<제 칠 화> 名將逸話(명장일화)
將軍과 義盜

  山中奇人
  고려(高麗) 말년 공민와(恭愍王) 초년이었다.
최형(崔瀅,최영)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나이 이십오세였는데 인물이
뛰어나게 잘났다.  육척이 넘는 키에 힘이 장사이며 기개가 호협하고
국량이 웅대하여 기울어지는 나라의 형세를 한몸으로 지탱하겠다는 장한
뜻을 품고 모든 선비들의 문약(文弱)에 흘러 시(詩)니 부(賦)니 음풍
농월하는 꼴을 마땅치 않게 생각하였으므로 붓을 던지고 칼을 잡기를
결심하였다.  칼과 활을 벗삼아 죽총(竹叢:작은 대나무 숲)을 치달려 버들
푸른 정자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눈쌓인 높은 산에서 사슴을 쏘아잡고
휘파람 한소리로 호연한 기개를 뽐내는 것이 젊은 남아의 통쾌한
노릇이라는 호담한 생각으로 사냥 다니는 것이 가장 즐거운 일로 삼았다.
어느 늦은 가을, 활과 전동(전통-箭筒:화살통)을 메고 사냥을 나섰다.
송악산에서 여러날 돌아 다니다가 차차 뻗어져 삼각산까지 왔다.  그러나
좀체로 짐승을 만나지 못했다.  그렇게 오랬동안 돌아다녀도 토끼 한마리
못만나니 초조하기도 하고 지치기도 해서 낙엽 쌓여있는 바위 위에 앉아
쉬노라니까 마침 언덕밑 냇물가에 큰 사슴 한마리가 물을 먹고 있다.
새정신이 번쩍 난 최청년은 급히 활을 다려 겨냥을 바로 잡아 깎지손을
떼었다.  번개같이 나는 살이 사슴의 뒷다리를 맞혔다.  사슴이
고꾸라지더니 다시 일어나서 상한 다리를 질질끌며 달아난다.  그러나 그
닫는 걸음이 어떻게 빠른지 전동에서 화살을 뽑아 내는 사이에 벌써
사정(射程)밖에 벗어져 있다.  최청년은 급히 뛰어 사슴의 뒤를 쫓으며
둘  살을 쏘았다.  사슴의 배를 꿰뚫었다.  사슴은 거꾸러졌다.
발버둥질을 하며 딩굴다가(뒹굴다가?) 그만 낭떠러지에 굴러 떨어졌다.
최청년이 달려가서 사슴이 떨어진데를 내려다보니 양편 절벽이 몇백길이나
되는 깊은 구렁 밑에 가서 사슴은 네 발을 하늘을 가리켜고 쳐박혀있다.
깍아지른 듯한 절벽이 발을 부쳐 내려갈 수가 없다.  멀리 아래로
내려가서 골짜기를 따라 올라오기 전에는 도리가 없었다.  그리하자니
십리 길이나 실히 될 것같이 멀다.  도저히 남은 해로는 어둡기 전에 저
사슴 있는데를 대어갈 것같지 않다.  최청년은 어떻게 하나하고 서서
골짜기를 내려다보고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에 건너편 수풀을 헤치고 나타난 한 청년이 있었다.
   어- 오늘 내 식복이 터졌나부다.  사슴의 피와 고기를 실컨 먹을 일이
생겼군
하더니 꽁무니에 차고있던 긴 줄 사다리를 꺼내어서 한편 끝을 석벽위에
서있는 나무에다 감아 매고는 한편 끝을 골짜기 밑으로 내리고 그것을
타고 경각간에 골 바닥으로 내려간다.  그러더니 사슴을 타고 앉아
허리에서 칼을 빼어서 사슴의 염통자리를 찔러 피를 나게하고는 품에서
표주박을 꺼내어 사슴의 심혈을 그뜩 받아 죽 마시고 또 받아 먹더니
최청년을 치어다 보며
   사슴의 피를 잘 먹도록 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최청년은 그 광경을 보니 너무도 어이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 사람과 같이 내려갈 도리가 없다.  괘씸하고 분한 마음이
치밀지마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다만 내려다보고 큰 소리로 꾸짖었다.
   이놈아 보아하니 너도 산에 많이 다니는 놈인데 그래 남이 잡은 사슴의
피를 너 혼자만 먹는단 말이냐?
  그 사람이
   허허허 아무리 당신이 잡았다고 해도 당신이 조처할 수가 없어
내어버리는 사슴의 피를 내가 좀 먹었기로 어떻단 말이요.  당신이 여기
내려오신다면 내가 두말없이 물러나겠소.  그러나 당신이 나처럼 줄
사다리를 가지지 못한 바에는 저 아래로 내려가서 골을 따라 예까지
올라올 수 밖에 없지 않소.  그러자면 오늘해로는 못오실 것이 아니요.
이대로 버려두면 밤에 호랑이나 늑대가 와서 먹어 버릴 것이니 어차피
내버리는 것이 아니겠소.  그렇게 된 터에 내가 좀 먹는다고 무슨 잘못이
되겠소
  늠실 늠실 조롱을 한다.  그러더니 사슴의 다리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썩
베어내더니 날것으로 뭉텅 뭉텅 배어서 먹는다.  이일을 당한 최영청년은
당대에 호걸로 자처하여 누구에게든지 조롱이나 업신여김을 받아 본 일이
없던 한량으로 오늘 이와같은 모욕을 당하니 분한 마음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이놈 고얀놈 같으니 뉘 앞에서 감히 되지못한 아가리를 놀리느냐
너같은 놈은 할 수 없이 버릇을 가르쳐야 하겠다
하고 활에다가 살을 멕였다.  이것을 본 그 사람은 더욱 놀리는 말로
   여봅쇼.  너무 그렇게 뽐내지 맙시오.  내가 이 사슴처럼 당신 화살에
겁낼 줄 아시오? 어림도 없소.  어디 화살 있는대로 연발을 해서 내몸에
스치기라도 하면 내가 이 사슴을 져다 바치고 백배 항복을 하겠소
하는 것이었다.  최청년은 분이 더욱 돋구어져서 시위에 얹힌 살을
쏘았다.  이것이 어찌된 일인가.  그 사람은 슬쩍 비켜서고 화살은 사슴의
머리에 가 박힌다.  최청년은 당황했다.  활을 배운 이후에 처음 당한
일이었다.  이러한 재주있는 자를 만나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대로 말
수도 없다.  정신을 바짝 차려서 또 한대를 쏘았다.  이번에는 그 자가
몸을 훌쩍 솟구치더니 나는 살을 덤썩(덮썩) 쥔다.
   어- 무서운 활이다.  하마터면 내 가슴을 뚫을뻔 하였는데
하며 화살을 쳐들어 보이는 것이었다.  최영은 그만 맥이 탁 풀린다.  이
사람에게는 활로는 한낱 장난거리밖에 아무것도 아닌 것을 깨달았다.
멍하니 섰을 수 밖에 없다.  이것을 본 그 사람이
   이만하면 재주도 서로 알만 하니 우리 그만 사화(私和:나쁜감정을
풀어버림)합시다.  내가 이 사슴을 가져다 드리지요
하더니 그 줄사다리를 홱 잡아 젖히니까 나무에 매었던 것이 풀려진다.
그리더니 그 줄을 서름서름해서 최청년이 있는 편으로 훌쩍 치뜨리니까 그
줄 끝에 달려있는 쇠로 만든 낚시처럼 꼬부린 갈쿠리가 돌뿌리에 컥하며
박혀서 얽혀진다.  그것을 팽팽히 당겨보더니 사슴을 칡넝쿨로 짐빵을
해서 짊어지고 성큼성큼 올라온다.  최청년은 마음으로 굉장한 힘과
재주를 탄복하며 멀거니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柳春乭
  잠간사이에 다 올라온 그 사람은 사슴을 내려놓고 넙적 절을 하며
   소인은 유춘돌이라는 도둑질로 생업을 삼는 놈이올시다.  그러하오나
몇해를 두고 쇠약해진 이 나라를 바로잡아 일으켜서 저 무도한 원나라의
압박을 물리치고 자주독립된 나라을 만들수 있을만한 호걸을 만나기를
원했더니 오늘이야 서방님을 뵈오니 소인의 소원이 이루어졌읍니다
하는 것이었다.  최영은 모든 일이 뜻밖의 일이라 자연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비상한 일을 당할 때 신경이 집중한 무인의 눈이란
가장 예민한 법이라 먼저 그 자의 인물됨과 기색을 날카롭게 살피지 않을
수 없다.  긴장된 얼굴과 서릿발이 치는 눈으로 그 자의 아래위를 훑어
보았다.  키는 조그마하고 얼굴은 또렷하게 생긴 미남자이다.  어디 한곳
그와같은 절륜한 호용이 있어 보임직한 점도 없다.  그저 사근사근해서
다정스러운 인상을 준다.  나이로 보아서는 이십 전후밖에 더 보이지
않는다.  어느모로 보더라도 아무 적의가 없고 안상하다.  그것을 살핀
최형도 기색이 저윽이 부드러워져서
   네가 도둑질로 생업을 삼는다고 하니 도둑놈으로서 이 산중에 무슨
일이 있어 왔으며 보아하니 네 용맹과 무술이 뛰어난 재주인데 왜 하필
도둑질을 한단 말이냐?
   예-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그러하오나 소인은 지극히 천한 백정의
자식이옵니다.  백정의 자식으로 무술을 안들 무엇하오며 효용이 있은들
어디다 쓰겠사옵니까?  오직 소나 잡고 키나 얽어서 생업을 삼기에는 싫은
생각으로 배운 것이 도둑질이옵니다.  그러하오나 소인이 도둑질을 해도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한푼의 해도 끼치지 않습니다.  저 원나라 되놈의
것이나 왜놈의 재물을 훔쳐다 살아가옵지요.  그리하옵고 세상 사람들의
너무나 심한 천대를 받기 싫어서 이너머 산골에다 초막을 지어서 이
세상과 격리해서 자유로 살고 있사옵니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이 바른 일을 해야 하지않느냐, 비록 타국
사람의 물건이라도 평상시에 도둑하는 것이 옳지못한 일이란 말이다.
적대시해서 전쟁이라도 일어날 때에는 혹 살수도 있는 일이지마는
   예- 지금 서방님께서 말씀하신 그점을 소인이 깊이 생각한 바이옵니다.
 소인이 먼저도 말씀 여쭈었읍니다 마는 세상사람의 지독한 천대가 싫어서
심산궁곡에 외따로 살면서도 그래도 동족에게는 그 천대의 보곡을 해서는
안될 것을 깊이 명심합니다.  소인의 천대받는 것은 소인의
개인문제이옵지요마는 거기에도 불평이 있사온데 온나라가 되놈에게
짓밟혀서 상감님께서도 되놈의 손속에 꼼짝을 못하시고 그놈이 하라는
대로 하셔야 되오니 이 분풀이를 털끝만치라도 하고자 하는데에서 소인의
뜻을 정했던 것이옵니다.  더구나 되놈의 사신이라고 하는 놈들이 오기만
하면 갖은 토색을 다해서 우리나라의 좋은 물건만 뺏어가지 않사옵니까.
소인은 그 놈이 우리나라 땅을 떠나서 압록강만 건너 오면 뺏어가는
물품중에 가장 귀중한 것만을 훔쳐옵니다.  요만것으로 무슨 보복이라고
하오리까 마는 그래도 가장 작은 일이라도 소인이 혼자 힘으로 해왔던
것이옵니다
  이와같은 문답을 하는 동안에 짧은 가을 해는 벌써 서산에 걸려있다.
춘돌이가
   서방님께 여쭙기 황송하옵니다 마는 벌써 날이 저물어 가오니 산밑
인가까지 내려 가시기가 어려울듯 하옵니다.  소인의 집이 저 등너머
있사옵니다.  누추하오나 하룻밤 주무시고 가십소서
  최청년은 그래도 도둑놈의 집에 갈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아니다.  산에 다니는 사람이 날 저무는 것쯤이야 그리 걱정할 것
있느냐.  나는 염려말고 네나 가거라.  그리고 저 사슴은 네가 가져다
먹어라
하고 거절하였다.  춘돌이는 할 수 없다고 생각을 했는지
   죄송하온 분부이옵니다.  소인은 어느때든지 서방님이 필요하실 때에,
대령하겠사옵니다
하고 다시 하직 절을 하고 사슴을 지고 내려간다.  최영청년도 걸음을
빨리 하여 산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을해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어두워진다.  앞에 산등이 가로 막혀진다.  그 등을 넘지 않고는
갈 수 없으므로 길이 넘는 샛대를 헤치고 막 산마루에 올라섰을때 별안간
먹장같은 구름이 희미한 초생달빛을 가리면서 번개가 번쩍하더니 우르륵
천동을 한다.  곧 소나기가 쏟아질 것같다.  지척을 분별할 수 없다.
그러나 잠시도 지체할 수는 없다.  발을 자주 놀려 내려오는데 우- 하면서
소나기가 막 쏟아진다.  위선 급하니까 큰 참나무 밑에 들어섰다.  바람이
몹시 몰아친다.  비맞은 나무잎이 전신에 휩싸 덮인다.  뼈가 저리게
춥다.
  (어- 내가 너무 고집을 부리다가 이 소조를 당하는군.  그자가 간청할
때 따라가서 하룻밤 지날 것을)
하는 후회도 났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난데없는 불빛이 바로 마주
보이는 곳에서 반짝하고 없어진다.  절처봉생이었다.
  (여기 인가가 있는 것을 몰랐구나)
  입안의 말로 뇌까리며 그 방향으로 더듬어 걸어갔다.  큰 바위를 등지고
인가인 듯한 것이 있다.  그러나 아까 반짝하던 빛도 다시는 없으니
어느것이 바위인지 집인지 짐작도 할 수 없다.  그러자 또 번개가
번쩍한다.  그 번개빛에 눈에 띄는 것이 튼튼히 해놓은 울타리와
사립문이었다.  굳게 닫혀 있는 사립앞에 다가서서
   여보!
하고 불렀다.  그러나 비바람소리가 세차게 나는 때라 잘 들릴 리 없다.
두세번 불러보았으나 아무 대답이 없다.  사립문을 밀어 흔들면서 다시
한번 크게 불렀다.  무슨 방장인지 문에 가려있던 것이 걷히더니 불빛이
환해진다.  그러더니 방문을 열고
   거기 누가 오셨읍니까?
  명랑한 여자의 목소리가 난다.
   예 산에서 길을 읽고 향방을 몰라 하룻밤 드새우고 가려고 찾아
왔습니다
   아이 가엾서라.  이렇게 풍우가 심한데.... 
하면서 달려나와 사립을 열어준다.  최청년은 전후 체면을 돌볼 여가가
없어 들어서면서 건너다 보니 십칠,팔세나 되어보이는 선녀같이 예쁜
처녀가
   어서 마루로 올라오십시오.  옷을 저렇게 적시셨으니 오즉
추우시겠어요
   예 고맙소.  뜰에서라도 비만 피하면 좋겠으니 염려마오
   그것이 무슨 말씀이오니까.  아니오셨으면 모르겠으나 이 밤중에
더구나 이 심한 비바람에 뜰에 계시겠다는 말씀이 당키나 한 말씀입니까.
어서 올라 오십시오.  저희는 내외같은 일은 하지 않습니다
  손이라도 잡아 끌듯이 말한다.  최영도 하는수 없이 마루에 올라섰다.
흠빡젖은 옷에서는 물이 자꾸 뚝뚝 떨어진다.

  山賊의 누이
  처녀가 방으로 들어가더니 새로 꾸며둔 듯한 바지 저고리를 내놓으며
   우선 이 옷으로 갈아입으십시오.  빨아 꾸민 것이라 더럽지는
않습니다..... 젖은 옷을 벗으셔야 추위가 놓이시지요
  마치 친척이나 만난 듯이 친절히 말하는 것이었다.  나중에야 어찌되든
사양할 형편이 못된다. 
   지나가는 사람이 하룻밤 비나 피하고 가도 고마운 일인데 이같이
친절히 해주니 무엇이라 감사할 말이 없소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주인된 도리에 의당히 할 일을 할 뿐입니다
  최청년은 얼른 옷을 바꾸어 입었다.  방안에서 옷 갈아 입기를 기다렸던
처녀는
   어서 들어오십시오.  방이 누추합니다마는 추위를 진정하셔야 하지
않겠읍니까
하고 문을 열어 놓고 인도한다.  최청년은 속담에 절에 간 색시가
중시키는대로 한다는 격으로 별도리가 없다.  방에 들어서면서 방안을
살펴보니 놀라울만치 화려한 방치장이다.  분벽 사창으로 새로 보배를
하고 의장과 문갑도 고귀한 것들을 제자리에 깨끗이 놔두고 가장 구하기
어려운 서화로 꾸민 병풍이라든지 놋 촛대에 굵은 청심초를 켜놓아 낮같이
밝다.  처녀가 나가서 조금 있다가 밥상을 들고 들어와 손앞에 놓으며
   마침 제 오라비가 나가서 안 돌아왔는데..... 차려두었던 밥입니다.
과히 식지는 않았읍니다.  시장하실 터인데 위선 요기나 하십시오
하고 술까지 따뜻한 것을 잔에 가뜩 부어 놓는다.  최영은 너무도 의외의
친절한 대접을 받게되니 도리어 이상스러운 생각이 든다.
   대체 색시는 어떠한 사람이요?  이 첩첩 산중에서 혼자 집을 지키고
있으니.....
   어서 진지나 잡수십시오.  이야기는 나중에 드릴터이니
하고 또 술을 따라 놓는다.  여거푸 오, 륙배의 술에다가 밥을 달게 먹고
상을 물렸다.  아직 풍우는 그치지 않는다.  상을 물리고 나서 처녀가
공손히 앉더니
   물으시던 말씀을 이제 대강 말씀하겠습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제일
천한 무리 올시다.  그런데다가 부모가 구몰하게 되오니 남의 천대가 더욱
심하여 차마 배겨낼 수가 없었읍니다.  그래서 제 오라비와 의논하고
차라리 사람 안사는 곳에서 비록 심한 고독을 받드라도 자유롭게 살겠다고
하여 여기 와서 남매가 의지해서 이렇게 지내고 있은지도 벌써 삼년이
되었읍니다.  제 성은 유가이옵고 이름은 추향(秋香)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오빠되는 이는 어디를 가서 이렇게 늦도록 안돌아 오오?
   마침 무엇을 좀 사오겠다고 갔는데 오래지않아 올 것입니다
   풍우가 이렇게 심한데 오기 어렵지 않겠소
   늘 다니시어 익숙하니까 풍우쯤 몰아친다고 해서 오마한 것을 어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보아하니 이방은 색시가 쓰는 방같은데 다른 방은 없소?
   예 이방은 제가 거처하고 건너방은 오라비가 씁니다.  언제든지
오라비가 나갈 때면 문을 잠그기 때문에 부득이 제방으로 모셔들였읍니다
  그 영리하고 명쾌한 언어와 옷입은 맵시라든지 앉은 태도가 도시에서
세련을 많이 받은 얌전한 규수에도 지지 않을만하다.  영롱한 눈과
아름다운 입술이 가위 드물게 보는 미인이었다.  최청년은 마치 무슨
꿈이나 꾸는듯한 느낌이 일어난다.  그러나 체면을 돌보아 마음을 꾹
누르고 여러가지로 캐어 물어본다.
   나이는 몇살이나 되었소?
   열일곱살입니다
   그전에는 어디서 살았소?
   서울서 살았습니다
   여기서 무슨 생업으로 이렇게 살아가오?
   오라비가 벌이를 해오니까 이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수작하고 있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난다.  문 열라는 소리도
없었는데 누가 뜰에서 마루로 올라오는 것이었다.  추향처녀가 일어서면서
최청년에게
   아마 오라비가 돌아오나 봅니다
하면서 문을 열고 나서서
   오빠 지금 오셔요.  그런데 옷을 저렇게 적셔서 어떻게 해요
   오냐.  이 웃옷은 젖어도 관계찮다.  물방울이 굴러 떨어지고 스며들지
않는 우장옷이니까.  오늘 처음 얻어 입었는데 유삼에 대일 것이 아니다
하면서 웃옷을 벗어서 물을 홱 뿌리더니 추향에게 주며
   어디서 손님이 오셨느냐?  네방에 누가 계신 모양 같으니
   예 길을 잃으시고 우중에 찾아 오신 손님이 계셔서 오빠방은 문이
잠겼고 해서 부득이 제 방으로 모셔 들였어요
하는 추향이 대답에
   잘 했다.  이 풍우중에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으신 손님이면 오죽
고생을 하셨겠니.  그래 진지라도 차려드리지 않고.....
   예 오빠 저녁진지를 드렸어요.  오빠는 오시면 다시 짓더라도
   그래야지 참 잘했다.  너도 인제는 한집안 주부노릇 할만치 자랐구나.
내 걱정이 덜려진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사람이 깜짝 놀라며
   아! 서방님이 행차를 하셨습니다 그려.  그 험한 날씨와 어두운데
고생이 오죽 하셨겠습니까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낮에 사슴으로 해서 여러가지 사건이
있던 유춘돌이었다.  최청년도 밖에서 그들 남매가 얘기할때 어디서 듣던
음성이라고 생각하여 다소 의혹을 가졌던 바이었다.
   어- 이것이 바로 네 집이었더냐.  참 세상 일이란 기묘하게도 되는구나

   낮에 소인이 모시고 오려고 말씀을 드려도 거절하시게 날은 저물고 또
맹수들이 요사이 많이 나와 장난한다 하여 염려했읍지요마는 서방님께서야
설마 어떠시랴 하였었읍지요.  그러나 날씨가 폭풍우로 변하여서
근심하였습니다
   길을 잃고 폭풍우를 만나눈코를 못뜨고 지척을 분별할 수 없어 이뒤
산등에서 나무밑에 섰으려니까 네말 안들은 것이 후회도 너더라.  그래
결국 너의 집에 와 이처럼 신세를 지게되니 이것이 심상한 인연이
아닐까부다
  춘돌이가 추향을 돌아보며
   이애! 내가 늘 네가 어떻게하든지 우리의 주인되실 양반을 구해서 몸을
의탁하고 살아가보자고 이야기를하면서 찾던 호걸을 오늘이야 뵙게도어서
더할 기쁨이 없다고 내가 사슴지고와서 말하던 서방님이 바로 이
최서방님이시다.  네 다시 절하고 뵈어라
   절은 새삼스레 무슨 절이야 인제와서
  추향이는 조금도 수줍어 하거나 어색한 데가 없이
   오라비가 평생을 주인으로 모시려고 결심하였으면 저에게도 정성껏
받들어야하올 주인이시온데 어떻게 아무런 예가 없겠사옵니까
하더니 공손히 절을 한다.  최영도 앉아 받기가 안되어서 허리를 꾸부려
답례하였다.  춘돌이가
   이에 우리 남매가 이 세상에 나온 후 오늘처럼 기쁜 날이 없지않으냐.
네 재주껏 음식을 좀 차려라.  그래서 우리가 두고두고 원하던 주인을
모신 첫날을 기념하자
  추향이가 장문을 열더니 새로 지어두었던 의복일습을 내어 놓으면서
   서방님 이것은 제가 배운 솜씨로 지어두었던 것인데 치수도 어디다
표준할 수 없어 함부로 제생각 나는데로 마른 것이라 맞으실지 모르오나
제가 처음 뵈옵는 정성입니다.  잎어보심이 어떠하올지?
하는 것이었다.  춘돌이가
   참, 잘 생각한 일이다.  그러나 여자의 유념이란 남자로는 상상도
못하게 꼼꼼한 것이로구나.  어느틈에 이런것을 다 준비해 두었더란
말이냐
하고
   서방님 옷을 갈아 입으십시오.  제 정성이 이만한 것을 통촉해
주십시오
   오냐 입고말고 너희 남매만의 기쁜날이 아니다.  나에게도 다시 없는
즐거운 날이다
  추향이는 최영청년의 말이 끝나자 부엌으로 내려가고 최영은 새 옷을
갈아 입었다.

  義盜의 寶物
  춘돌이가
   술상 보아올 동안에 소인이 거처하는 방을 좀 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다소간 모아 둔 것이 있습니다
   그래 참 너 거처하는 방을 보고 싶었던 터이다
  유춘돌의 인도를 받아 최영청년은 건너방으로 갔다.  이 방이야 말로
당대의 비장품의 전당이었다.  방이 크기가 네칸이나 되임직한데 고려
국내에서는 얻어보기는 고사하고 들어도 못본 진기한 보물이 질서있게
벌려있다.  금은으로 아로새긴 교의에 호피(虎皮)를 깔아서 정면에
놓여있고 바른편에 옛 고구려의 지도가 걸려있다.  위선 춘돌이가
최청년을 정면 호피교의에 앉기를 권해서 좌정하였다.  다른 것보다
무인의 눈에 먼저 보이는 것이 무기였다.  맞은편 벽에 걸린 집을
영롱하게 꾸민 칼에 눈이 멈추고있으니 춘돌이가 얼른 그 칼을 벗겨다
최영에게 드리면서
   이것이 원나라 숭상르로 있는 탈탈(脫脫)이 지극히 사랑해 오던 보검인
이름난 칠성검(七星劍)이 올시다.  작년에 탈탈이가 요동을 순시할 때에
소인의 손으로 옮아온 것이옵니다
  듣기에도 놀라운 일을 예사롭게 말하고 있는 춘돌의 얼굴을 다시 한번
건너다 보지 않을 수 없다.  칼을 받아보니 칼집에는 금은으로 아로새긴
두마리의 용의 머리와 입에 진주로 박아 북두칠성의 형체를 이루워 있다.
금으로 만든 환(環)을 지그시 누르며 칼을 뽑으니 검광이 무지개빛같이
찬란해 지며 눈을 현황케 한다.  최영은 칼을 들어 공중을 한번 죽
그어보니
   휙
소리와 함께 번갯불이 지나간다.
   어! 참 보검이로다!
하는 탄사를 아니 발할 수 없다.  다시 칼날을 불빛에 자세히 비쳐보니
금으로 칠성검이라고 새겨있다.  칼을 꽂아 춘돌에게 맡기고나서 많이
진렬해놓은 여러 무기를 살펴보니 모두 명물 아닌 것이 없다.  큰 궤도
여러개 있는데 모두 단단히 잠겨있다.  그중에 한 궤짝을 춘돌이가 열더니

   서방님 이 궤속에 있는 것은 중국에서 오랜 세월을 내려오면서
도둑들이 도둑질할 때에 쓰는 기구와 그 방법을 설명해 놓은 비밀한
문헌들 입니다.  이것이 도척(盜拓)이 뒤에 내려오는 도둑의 종통을
전해온 것인데 인제와서 소인이 서방님을 모시게된 이후에는 필요가 없게
되었은 즉 돌려보내 주어야 할 것입니다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아주 없애 버리면 좋지않겠느냐
   안됩니다 도둑의 세상에도 의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종통을 매우
중하게 여깁니다
  그러더니 고구려 지도를 가리키며
   서방님께서는 이 나라를 더는 몰라도 우리 선조가 이룩했던 고구려의
옛강토를 찾아서 자유 독립된 국가를 이룩하시는 대임을 이루실 큰 사업에
주인이 되시기만 원합니다
  최영은 처음 만났을때 도둑놈이라는 말에 괘씸한 마음으로 대하던
마음이 일소해질뿐 아니라 그 애국지심과 넓고 큰 뜻에 감복하였다.  이
때에 추향이가
   오빠-
하고 부른다.
   오- 그동안 다 준비하였니
하고 두사람은 안방으로 돌아왔다.  정결하고 풍부한 만찬이 식탁에 그득
벌려 놓여있다.  자리에 앉은후 추향이가 술을 잔에 가득 따라 최청년에게
올린다.  최영이 잔을 받으며
   이 술이 예사 손 대접하는 술은 아니겠지.  이름을 지어 먹어야 하겠다

  추향이가 눈을 내리뜨고 얼굴이 붉어지며 대답을 못한다.  춘돌이가
   왜 대답을 못 여쭈느냐.  서방님께서 네 심지를 들어 보시려고 하신
말씀인데
  추향이가 겨우 고개를 들고
   서방님을 제 일생동안 받들려는 첫번 맹세하옵는 잔이옵니다
   어 고맙다.  이 인연은 예사의 연분이 아니라 하느님이 지시하신
연분이다.  길이길이 굳게굳게 지키자
하고 죽 술잔을 비우고 자기가 병을 달래서 찬잔을 부어 추향에게 주며
   네가 맹세하는 잔을 내게 주었으니 나도 그저 있을 수야 있겠니!  이
잔은 오늘날 너의 깊은 온정의 뜻을 가슴에 새겨 변함이 없기를 결심하는
표시이다.  사양말고 남김없이 마셔라
   아무리 못먹는다 하온들 이 잔을 사양하올 법이 있사오리까
하는 추향이는 더욱 경건한 태도로 다 마신다.  이것을 본 최영은 더욱
유쾌하여 추향더러
   네 오라비에게도 감사의 뜻으로 한잔 권하여라.  그리고 우리 삼인이
공동으로 오늘을 축복하는 잔을 들자
  이와같이 쾌락한 주석을 가을밤이 거의 샐 때에야 끝났다.  춘돌이는
   안녕히 주무십시오
하고 제방으로 건너갔다.  새금침을 내어펴고 서방님께 자리에 눕기를
청하는 추향의 민첩하고 영리한 모든 행동과 원래 아름다운 얼굴에 약간
주훈이 돌아 그 아리따운 태도는 일대 호걸인 최영청년의 풍정있는 신경을
흔들대로 흔들었다.  추향의 손을 끌어당겨 자리에 들어가니 그 다음 일은
두사람만이 알 일이다.

  崔瀅의 兩參謀
  변덕스러운 가을 날씨는 어제밤에 무슨 비바람이 있었더냐는 듯이 구름
한점없이 활짝개였다.  따스한 아침해가 높다랗게 올라온 뒤에 최영청년도
잠이 깨어서 일어났다.  추향의 정성스레 차린 아침밥을 마치고 난 뒤에
춘돌이가
   서방님 오늘은 좀 쉬십시오.  소인은 무슨 조치 할 일이 있어 좀
다녀와야 하겠습니다
한다.  최청년이
   이애, 그 서방님이니 소인이니 하는 말은 인제는 고쳐라.  네 누이를
내가 비록 소실이지마는 데려온터에 그런 말들은 아예 하지마라
   황송하온 말씀이옵니다.  차차 서방님께서 영귀하시오면 칭호도 자연
고쳐질 것이오니 아직은 저의 하는대로 버려 두십시오
  그리고 추향더러
   내가 가면 모레 일찌기 돌아올 터이니 그리알고 조심해서 서방님
모시고 기다려라.  그리고 내방문 열쇠를 너에게 맡기니 혹 심심하시거든
모아둔 귀중품이나 보시게 하여라
하고 열쇠꾸러미를 내어주고 나가버린다.  최영은 일어나 뜰아래 내려서서
주위를 살펴보니 석벽밑에 의지해서 굵은 통나무로 우리를 짜서 지은 집에
굴참나무 껍질을 기와처럼 이어놓아서 가까이 와서 보지 않고는 사람사는
집이라고 알아볼 수 없다.  추향이에게
   참 숨어살기는 십상 좋게 되었구나.  누가 이산중에 올 수도 없을뿐
아니라 설령 온다해도 멀리서야 어디 사람사는 집같이 보이겠느냐
   예 과연 그런가 보아요.  여기 와서 있은지 삼년이나 되어도 서방님
오신 것이 처음이야요
하는 추향의 얼굴은 하룻밤 사이에 더욱 화사하게 고와져서 사내의 마음을
충동한다.  최영은 추향의 허리를 덥석 안고 방으로 들어왔다.
   이애, 너와 이렇게 마주앉아 있으니 세상사가 다 꿈속 같구나.  그까짓
공명이니 사업이니 다 팽개치고 이곳에서 너와 일생을 이렇게 쾌락하게
지냈으면 무엇보다 행복된 생활이겠다.  너는 어떠냐?
   서방님,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니까.  저는 그말씀의 뜻을
모르겠습니다.  서방님께서 용속한 범부로 허송생활하시는 저의 주인이
되시게는 목숨을 바치어서라도 아니할 것입니다.  저는 본래 지극한
천인의 자식으로 아무것도 배운 것은 없습니다마는 오라비가 여러 해를
두고 일대 영웅을 모셔서 이 나라를 중흥시키는 큰 사업에 모든 것을
바치기로 맹세하고 저에게도 의리에 사는 것을 가르쳐 왔습니다.
오라비의 그 높은 뜻을 저는 꼭 배워 왔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저의
심혈에 넘쳐 흐르고 있습니다
  추향의 이와같은 비분강개한 말을 들은 최영은 두 주먹이 절로 불끈
쥐어진다.  한낱 나이어린 천민의 딸로 이와같은 굳센의지를 가진
절세미인이 자기의 애첩이 되어서 격려하는 것은 몇사람의 동지를 사귄
것보다도 강렬한 의지와 힘을 도와주는듯하다.
   어 네가 방가위지(方可謂之:진실로 그렇다고 이를 만하게) 최장군의
애첩될만한 여자이다.  나의 목숨이 있는데까지 중흥대업을 성취하고 말
것이다.  네 오라비와 한가지로 너는 나의 참모가 되어다오
  이와 같이 즐거운 하루 해를 보내고 밤에는 춘돌의 방에서 각색진귀한
보물들을 고루 구경하였다.  이튿날은 추향의 청으로 사냥을 나가서 큰
곰을 한마리 잡았는데 추향의 신출귀몰한 표창술은 놀라운 것이었다.
추향은 시문에 대한 공부도 상당한 조예가 있다.  여러 방면으로 토론하는
아취가 진진하였다.  제 삼일 되던 날 식전에 춘돌이가 돌아왔다.
최영에게 문안을 드리고 추향에게
   이해, 오늘은 이사를 해야  하겠으니 아침은 일찍 치우도록 하고 짐을
꾸려야 하겠다
하고 최영청년에게
   오래 전부터 서울 채하동에 집을 하나 사 두었습니다.  인제 서방님을
모시게 되었는데 이 산골에서 잠시인들 더 있을 까닭이 없사오므로 제가
가서 대개 정돈해놓고 왔습니다.  추향이가 삼년동안 귀양살이를 하였으니
애처롭기도 하옵고 서방님께서 큰댁내왕하시는 데도 편리하실 듯 하옵니다

  식후에 짐을 묶어 서울서 온 짐군과 교군으로 떠나서 서울(松都)
채하동으로 옮겨왔다.
  추향의 일거일동은 빈틈없는 영웅 최영의 입에 혀와 같은 애첩이었다
이사 온 이튿날 춘돌이가
   서방님 저는 항시로 모시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는
어느 때든지 대령하겠습니다.  이 집안에 있는 모든 것은 서방님께
드립니다.  마음대로 쓰십시오
  추향에게도 서방님 잘 받들라는 부탁을 하고, 나가버렸다.
  그후 최영은 더욱 춘돌이의 모아둔 병서에 잠심 연구하여 무과에
장원하고 출사하여 점점 지위를 얻게 되었다.
  오직 굳게 먹은 마음은 원나라의 기반을 벗고 자주독립하는 길로
기울였다.
  그래서 원나라와 관계되는 홍두적(紅頭賊:紅巾賊) 난리와 최유(崔濡)와
김용(金鏞)의 원나라를 배경으로한 반역시(興王寺의 變)에,
납합출(納哈出)의 침입했을때와 같은 여러번 큰 사건에 어느 때나 기민한
유춘돌의 정보 보고로 남먼저 사변의 기미를 알아서 처리해 나가는데 늘
빛난 성공을 하였던 것이다.
                       <끝>

 

 


< 제 팔 화 >
불력기담(佛力奇譚)
煩惱僧


  산고개턱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산촌에서는 저녁짓는 연기가 가볍게
덮였다.
  아까부터 산고개 마루에 구름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석양진 서쪽하늘을
마주 대하고 우뚝선 마을, 마을이래야 십여호가 띠엄띠엄 널려있는 산촌을
내려다 보고있는 승의(僧衣) 차림을 한 사내가 있었다.
  얼굴은 하루종일  산길을 걸어서인지 피곤한 빛이 가시지 않으나
눈동자는 새빨간 노을을 담은채 영롱히 빛났다.
  퇴색한 장삼을 걸친 등어리에 배낭을 메고 손에는 염주(念珠)를 든
중(僧)은 입으로 뭐라고 중얼거리며 마을을 뚫어져라 내려다 본다.
  (바로 이곳, 내가 여태껏 찾던 곳이 이곳임에 틀림없다)
  조용하기는 하나 중의 의미모를 이 말 한마디는 어떤 감격에 벅차서
떨려나오는 말소리만 같았다.
  아까보다 더욱 저녁연기가 안개처럼 차분히 산골에 가라앉고 사위는
인제 어둑어둑 어둠이 깃들기 시작하자 중은 마을을 내려가는 길로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마을서 얼마 거리를 둔 곳에 아담한 초옥이 한채 있었다.
  해가 진후 싸리로 엮은 울타리 밖으로 축 늘어진 해바라기가 몇송이
눈에 보인다.
  가까이 가면 안개처럼 주위에 펼쳐진 국화의 향기가 낭랑히 안에서
들려오는 글읽는 소리와 함께 사뭇 아름답다.
  굴뚝에서 실같은 저녁 연기가 피어오를 때쯤 산을 내려온 중은 집앞으로
걸어갔다.
   소승 문안드리오
  싸릿문 앞에 다가간 중은 집안을 향해 사람을 불렀다.
  여자가 부엌에서 밥짓던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밖으로 나왔다.
  아무리 줄잡아야 서른, 그러나 숫처녀처럼 아름다운 여인이다.
  여인이 싸릿문을 열자 중은 고개숙여 합장하고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하였다.
   누추한 곳이지만 어서 들어 오십사와요
  여자는 먼저 앞장 서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빗자루로 깨끗이 쓴 마당귀퉁이에 국화가 더욱 향기를 발한다.
   여보, 스님 한분이 밤 지낼 곳을 찾아 오셨어요
  여인은 글읽는 소리가 낭랑히 울리는 방안으로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글읽는 소리가 뚝 그치며 방문을 열고 젊은 주인 남자가 나왔다.
  사내를 마주대하는 중의 얼굴에 일순간 형용 못할 표정이 스쳤다.
그러나 중은 곧 마음을 진정하여 합장하며
   소승, 해는 져서 갈 곳이 없으므로 무례하게 이댁의 문을 두드렸나이다

하고 공손히 말하였다.
  승려의 처지로는 너무 겸손한 말이었다.
   어서 올라오십시오.  스님을 모시기에는 너무 집안이 누추하옵니다
  사내와 중은 방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깨끗한 방 구석의 조그마한
선반위엔 몇권의 책이 놓여 있을 뿐 별다른 세간도 없는 것 같았다.
  식사후, 중은 피곤함을 핑계로 일찌감치 아랫방으로 내려가 버렸다.
  은하수(銀河水)가 서쪽으로 기울어졌다.  밤이 얼마나 깊었을까 중은
어둠속에 몸을 일으켰다.  풀벌레 우는 소리가 마당에 가득 넘쳐 흐른다.
일어나 앉은 중은 어둠속에서 장삼을 입고 장지문을 열었다.
  달빛이 물결처럼 왁- 방안으로 밀렸다.  중은 염주를 든 채 달빛을 향해
꿇어앉았다.
  눈을 감고 염주를 하나하나 헤이며 중은 입을 가볍게 움직이며 들릴듯
말듯 이상한 주문을 외이기 시작했다.  달빛이 중의 얼굴에 부닥쳐
서기(瑞氣)를 발하는 것처럼 감돈다.
  중이 일어나서 주문을 외이는 바로 그시간, 일각을 틀리지 않고
웃방에서 남자와 같이 잠든 여자는 깊은 잠속에서 이상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통 이 세상에선 볼 수 없던 이상한 광경이었다.
  흙과 바위는 유황처럼 부글부글 끓었다.
  불구덩이에서 새빨간 불꽃이 피어오르는 연기와 함께 혀를 날름거렸다.
  그러나 여자는 자기 발밑이 펄펄 끓는 유황염초의 용액인데도 주위에
불꽃들이 옷깃을 매만지며 쓰다듬고 얼굴을 뒤덮는데도 그리고 연기가
자욱히 앞을 못보게 하는데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불꽃이 얼굴을
휩쓰는데도 뜨거움을 깨닫지 못했다.
  끓어 오르는 유황염초에 발이 푹푹 잠겨도 아무런 고통을 느낄 수
없었다.
  그대로 여자는 그 자리를 서성서성 헤매이었다.  자욱한 연기속에서
따글따글 쇠사슬 끄는 소리가 들렸다.
  이상한 발자국소리와 함께 쇠사슬소리는 점점 가까워 왔다.
  얼마 앞의 자욱한 연기와 불길속에서 네개의 비틀거리는 그림자가
쇠사슬에 엉킨채 눈에 띄였다.
  점점 가까워지는 그림자
   으악-
  비명소리와 함께 여인은 고개를 돌려 버렸다.
  앞서서 쇠사슬에 묶인 채 걸어오는 사내, 바로 남편이었다.
  살은 너덜너덜 피와 엉켜서는 벌겋게 타있었다.
  어리카락은 길게 자라 앙상한 어깨까지 덮이고 손발은 육주안 쇠사슬에
묶인채 몸을 움직일 때마다 몸서리 쳐지는 금속성(金屬聲)을 울렸다.
   과거보러 떠난 분이.....
  여인은 미칠 것처럼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으나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 뒤를 따라오는 세명의 원귀(怨鬼) 역시 쇠사슬에 묶였으나 여자의
남편을 앞세워 끌고 가는 것이 아닌가?
  허공을 향해 핏발 돋힌 흰자위가 무기미하게 고기비늘처럼 미물거리는
사내, 뒤따라 가는 세명의 원귀의 피묻은 뼈가 드러나 보이는 얼굴에는
증오와 원심의 표정이 무섭게 드러나 있다.
   여보.....
  여인은 자기 앞으로 다가온 남편을 향하여 힘껏 외쳤다.
  그러나 그 말 역시 입속에서 우물거리는 것에 불과 했을뿐 밖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여보, 당신이 웬 일이요?
  다시 외쳤으나 그것도 울음먹은 훌쩍거림과 함께 입속에서 굳어 버렸다.
 발바닥마저 땅에 붙어버린 것처럼 떨어지질 않는다.
  남편은 여인의 앞을 흰자위만 드러낸 동공을 허공에 내동당이 친채
그대로 앞을 나갔다.
  그뒤를 역시 세명의 귀신이 뒤 따를고, 아까 나타날 때처럼 그들은
무기미한 쇠사슬소리를 울리며 뭉클뭉클 피어 오르는 연기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
  여인의 이마에 땀이 비오듯 흐르며 손이 허공을 몇번 휘젓다가 잠이
깨었다.
  (나무아미타불)
  아랫방 중의 주문도 끝났다.
  잠이 깨자 여자는 옆에 누워있는 남자를 건너다 보았다.
  과거를 보려고 늘 글만 읽어 수척해진 남자의 얼굴이 어둠속에서
어렴풋이 드러났다.
   후-
  여자의 잎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 나왔다.  그러나 다시 자리에 눕는
여자의 얼굴에는 의미모를 심상치 않은 의혹(疑惑)이 깃들어 있었다.
  주문을 다 외운 중은 그대로 앉은채 들릴듯 말듯하게 엷은 한숨을
토로했다.  어느덧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중의 현몽(現夢)으로 여자에게 어떤 끔찍한 예감을 갖게했다.  끔찍한
예감을.... 중은 방구석에 있는 배낭을 주섬주섬 찾아들고 열어논
문밖으로 조용히 나갔다.
  마당은 달빛이 교교히 넘쳐 흘렀다.
  중은 짧은 달그림자를 끌며 웃방에 대하여 합장하고 조용히 집밖을
나갔다.  문밖에서 중은 그대로 선채 잠시 무슨 생각에 잠겨 있었다.
   스님
  어느새 기미를 알았는지 여자가 싸릿문 밖으로 따라나왔다.
   어?
  중은 놀라 멈칫하며 뒤로 돌아섰다.
  달빛을 마주봐서 그런지 여자의 얼굴은 몹시 창백해 보였다.
   스님, 새벽부터 떠나시나이까?
   내 길을 멀고 해서 일찌감치 떠나 봐야겠읍니다.  주인님 곤히
주무시는데 깨울 수도 없고하니....
   그래두..... 아직 첫닭도 울지 않았는데....
  여인은 중의 얼굴에서 무었을 찾으려는지 한참 중을 쳐다 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중의 얼굴은 무표정하였다.
   저- 스님 황송하지만 소녀가 꾼 조금전의 꿈을 좀 풀어 주십사와요
  중은 물끄러미 얼굴에 아무런 표정도 담지 않은채 여자를 내려다 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소승은 한낱 미천한 돌중이요, 돌중이 어찌 해몽(解夢)을 하겠소, 그런
해몽일랑 유명한 대사님들이나 할 수 있소
   그러하오나.....
   해몽은 할 수 없어요, 단 한마디 여쭐 말씀이 있소.  내 관상을 좀
볼줄 알아, 주인님 얼굴을 보니 올해 액운(厄運)이 있소.  올해 집을
등지고 멀리 가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중은 내배앝듯이 말하고는 획 돌아서서 발걸음을 휘적휘적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兄弟의 運
  이십여년을 뒤로 거슬러 올라 봄기운이 농후한 송도(松都)근처의
촌락이었다.
  마을 타작마당으로 쓰는 빈터에 쌓여 있는 북더기 위에서 두명의 어린
소년이 놀고 있엇다.
  열살쯤 되어 뵈는 소년과 동생인지 얼굴이 닮은 다섯살쯤 되어뵈는 애가
짚더미 위에서 따뜻이 햇빛을 받으며 희희거린다.
  한명의 중이 논둑길을 걸어 오다가 다리가 아픈지 타작마당으로 와서
저쪽 짚더미 밑으로 가 앉았다.
  중은 두 아이가 노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허-
하고 의미 모를 장탄식을 늘어 놓았다.
   얘들아 이리오너라
  중은 두명의 소년을 불렀다.  소년은 우르르 중 앞으로 달려 왔다.
  중은 두 아이의 얼굴을 한참 번갈아 내려 보다가 큰 아이에게 물었다.
   넌 이름이 뭐냐?
   혜륵(惠勒)이요
   혜륵? 좋은 이름이구나.  너는 무엇이라고 부르느냐?
  중은 또 작은 아이에게 물었다.
   혜성(惠星)
   그것도 좋은 이름이다
  중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눈은 쉬지않고 두 아이의 얼굴위를 스쳤다.
   너희 집이 어디냐?
  중은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물었다.
   우리집은 저기요
  큰 아이가 빤히 중을 올려다 보며 대답했다.
   오냐, 너희의 집으로 가자
  중은 아이들을 앞세우고 걸어갔다.
  아이들은 별 이상한 중도 다 봤다 하면서도 서로 번갈아 쭐레쭐레 앞장
서며 집안으로 향하였다.
  문안으로 따라 들어가자 아이들은 방안을 향해 소리쳤다.
   엄마 스님이 오셨어, 스님.....
  문이 열리며 부모 늙은이가 방문 밖으로 나왔다.
   스님 어서올라오십시오, 누추합니다만.....
  마루에 앉아 다리를 쉰 중은 곧장 자리를 일어났다.
   스님 벌써 가시렵니까? 하룻밤이라도 묵고 가시지.....
   그만 가봐야겠소이다.  그런데.....
  중은 잠시 주저했으나 다시 말을 이었다.
   저 큰 아이를 소승이 절에 데려가서 맡아 중으로 만들겠으니 소승에게
맡기실 수 없사옵니까?
  노인부부는 잠시 놀라더니 곧 기뻐 응낙하였다.
  (당시 고려(高麗)는 중이 최상층 계급에 속하므로 중이 된다는 것은
여간 힘들지 않았으며 또한 누구나 바라고 있었다)
  그날로 스님이 아이를 데리고 절에 들어갔다.
  춘하추동이 번갈아 바뀌기를 몇번을 거듭했다.
  절에 들어간 혜륵은 나이 열아홉살이 되었다.
  스님은 어느날 불경을 읽고 있는 혜륵을 방안으로 불러 들였다.
  방안에 들어와서 끓어앉은 혜륵을 묵묵히 건너다 보는 스님의 얼굴이
사뭇 경건(敬虔)했다.
   혜륵아 인제 나에게는 네가 더 배울 것이 하나도 없다.  내일 길을
떠나 원나라로 가거라.  원경(元京)에 마침 나와 서면(書面)이 있는
인도승(印度僧) 지공(指空)이라는 분이 계시니 가서 더욱 배워라
  너무도 뜻밖의 말에 혜륵은 할말을 찾지 못하고 스님 앞에 엎드려
버렸다.
   혜륵아 원대한 불도 앞에서는 한낱 인간의 사소한 정리는 버려야
하느니라.  내일 당장 길을 떠나거라.  떠나기전에 너에게 할 말이 있다.
몇년동안 오늘을 위해서 나혼자만이 알고 있던 것이다
  스님은 잠시 말을 뚝 그쳤다.  눈자위가 푸르르 떨렸다.
   혜륵아 잘 들어라.  내가 너를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하느냐? 너의
집앞 짚더미에서 네 형제가 같이 놀고 있었다.  그때 내가 너의 관상을
보니 너는 반드시 중이 될 상이었다.  그 다음 내가 네 아우를 봤을 때
너의 어린 아우의 머리에 살기가 감돌고 있는 것을 보았다.  좀 더 자세히
보니 네 아우의 머리에는 세마리의 원귀가 붙어다닐 상이었다.  혜륵아
놀라지 말아라.  그것은 네 아우가 살인을 할 상이다
   네?
  혜륵은 고개를 들어 경악의 눈초리로 스님을 올려다 보았다.
   하지만 아우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 않습니까?
   그건 문제가 아니다.  네가 그 살인을 막는 것이 문제가 된다.  네
아우는 지금부터 이십육년이 지나면 세사람의 인명을 빼앗고 지옥으로
빠질 것이니라.  너는 그때까지 원에 건너가서 불도를 정성껏 닦고
배워라.  그래서 네 불력(佛力)으로 그 살인을 막아야 하느니라.  만일
네가 그 사실을 막지 못한다면 불도는 너에게서 너무나 멀다.  살인을
막지 못하면 설혹 녜게 다른 신통력(神通力)이 있었다 치더라도 너는 아직
중생(衆生)을 면치 못한 탓이니라.  네 불력의 강도(强度)에 따라 한
인간이 중생의 죄를 지고 나락(奈落)으로 떨어지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결정된다
  그 다음날 혜륵은 스님을 이별하고 원(元)으로 향하는 길을 떠났다.
  남편이 과거를 보러가는 날이 며칠안으로 박두하자 여인은 통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불안속에서 떨고 있었다.
  산으로 들어가 어느 동굴속에 있는 중이 새벽녘 달빛을 받아가며 주문을
외일 때마다 그 시간 여인은 늘 꼭 같은 꿈을 꿔야만 했다.
  여자는 중이 떠날때 한 말대로 남편이 과거보러 가는 것을 한사코
막으리라고 마음 먹었다.
  과거보러 가는 것을 사흘 앞둔 날, 밤늦게까지 글을 읽는 남편의 옆에
여자는 한참 머뭇거리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여보 글을 그만 읽고 어서 주무세요, 그따위 글은 읽어서 뭘해.....
   임자는 그게 무슨 말이라고 하나?
  사내는 뒤돌아 보며 말하였다.
   그렇죠.  뭘 과거봐서 낙방될 것 같으면 글은 해서 뭘해요 농사나
짓지.....
   뭐? 임자는 말이면 다 하는 줄 아나?
   요새 세상은 보통 백성은 아무리 과거를 봐도 급제가 안된다고들
하더이다.  대가(大家)집 자식 쯤 돼야 과거 볼 맛두 나지.....
   닥쳐!  왜 재수없게 과거보러 가는 날이 가까웠는데.....
  여자는 입을 다물었다.  사내의 얼굴이 붉게 충혈(充血)되어 있는
까닭이었다.  조금 더 심하면 사내의 병이 발작할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내는 흥분하면 자기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었다.
  여자는 과거보러 남편이 떠나는 날까지 남편의 마음을 돌릴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과거보러 간다는 날 새벽 여자가 잠을 깼을때 남편은
자리에 없는채 이부자리는 싸느랗게 식어 있었다.  여자는 미친듯이
송도(松都)로 향한 산길을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며 기어 올라 갔으나
아침햇발이 막 드리우는 산골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여보---
하고 외쳤으나 그 소리는 산울림이 되어 파도처럼 출렁거릴 뿐 남편은
돌아오질 않았다.
  여자의 휘청거리는 다리가 산길을 내려오다가 여자는 낭떠러지에서 굴러
떨어져 끝내 자기말을 듣지 않는 사내를 원망하듯 손은 허공을 향해
굳어진 채 죽어 버렸다.

  駭怪한 應報
  과거날이 되자 송도는 시골서 올라온 선비들로 한창 흥청거렸다.
  과거날 아침 선비들은 일찍부터 경방궁(慶方宮) 문전으로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초헌(車召 軒 = 종이품<從二品>이상이 타는 높은
외바퀴수레)을 탄 어느 대감집 아들이 거드럭거리면서 거만히 사면을 휘휘
둘러보며 들어왔다.
  어느덧 경방궁 앞뜰은 선비들로 가득차고 북소리가 울린후 왕이 친히
은은한 음악소리에 맞춰 마당앞의 누각위에 올랐다.
  다시 북이 울리자 운자(韻字)가 내려지고 선비들은 돗자리를 깔고 앉아
종이위에 열심히 붓끝을 날리기 시작했다.
  선비들의 정성에 찬 글발이 단상위에 차곡 차곡 쌓였다.
  얼마후 장원급제를 한 선비의 이름과 장원시를 읽는 소리가 들려왔다.
군중속에서 이때
   아?
하는 놀란 소리가 가볍게 들렸다.
  바로 그 사내, 여자가 아무리 가지말라고 애원을 해도 뿌리치고 송도에
온 바로 그 사내였다.
  장원급제된 선비의 이름은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데 장원시는
조금전에 자기가 지어올린 시가 아닌가?
  사내는 눈앞이 아찔했다.
  어느덧 우르르 사람들은 궁밖으로 몰려 나갔다.  사내는 그들 틈에 밀려
나가면서 가슴이 마치 미친 사람처럼 두방망이질을 쳤다.
   요새 세상은 아무리 과거를 봐도 우리같은 평민들은 되지도 않는다고
하더이다.  대가집 자식쯤 해야 무슨 수로든지 급제가 되지.....
  아내의 목소리가 꿈속처럼 귀를 간지렀다.  가슴이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것 같았다.
  그는 자기가 군중에서 점점 뒤로 처진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혼자 궁밖에 남아 숨어서 급제한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자신을
깨닫지 못했다.
  불같은 증오심이 그의 가슴을 올바르게 하지 못했던 것이다.
  해가 궁궐의 높은 지붕너머로 넘어갈 때쯤 해서 궐문으로 호화롭게
단장한 말을 탄 사내가 나왔다.  뒤에는 수십명의 기병(騎兵)이 오위한 채
그들은 궐문을 빠져나와 고루거각이 즐비한 동촌(東村)으로 달렸다.
  사내는 말을 탄 남자를 보고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뻔 할만큼 놀랐다.
  바로 아침에 거드럭거리며 초헌(車召 軒)을 탄 채 과거장으로 들어온
남자가 아닌가?
   음.....
  사내의 입에서 분노를 억제치 못하는 신음소리가 빠져 나왔다.
  동촌으로 향해 달리는 일행을 사내는 몰래 뒤따랐다.  일행은 어느
궁궐같은 개와(기와)집으로 들어갔다.
  그것을 담밑에서 샅샅이 바라본 사내는 이를 뿌드득 갈며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다.
  그날밤 밤이 이슥해지자 사내는 날이 새파란 비수를 준비하여 품에
감추고 으슥한 뒤곁의 담을 뛰어 넘었다.
  꿈속처럼 모든 것이 몽롱한 가운데 증오심만이 사내의 가슴속에
가득찼다.
  사내는 남자가 자고 있을듯한 방문을 찾아 어둠속을 이리저리
헤매이다가 대청마루 건너편 방으로 다가갔다.
  집안은 등불마저 꺼지고 쥐죽은듯이 고요했다.
  방앞으로 살금살금 다가간 사내는 방문을 살며시 열었다.
  장지문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에 보니 잠자는 사람의 얼굴은 확실히 낯이
익었다.
  사내는 손마디마디가 후들후들 떨렸다.
  비수가 번쩍 쳐들렸다.
  달빛이 비수에 비쳐 번쩍하고 몸서리 쳐지는 빛을 발하였다.
  (..........)
  두개의 숨소리가 조용히 들릴뿐.
   휘이익
   으으윽
  칼이 잠자는 남자의 가슴에 가서 푹 꽂혔다.
  남자는 가슴에 꽂힌 칼을 빼낼려는 듯이 손으로 두어번 어둠을 위젓더니
눈을 까뒤집고 손가락이 방바닥을 긁어쥔채 점점 굳어갔다.
  가슴에는 시커먼 피가 달빛에 미물거리며 흘러내렸다.  피가 뭉클뭉클
흐를 때마다 칼이 가슴에 꽂힌채 서너번 끄떡끄떡 하였다.
  방바닥을 흘러 내려가던 피가 실신한 것처럼 숨을 헐덕거리며 우뚝
서있는 사내의 발을 휘감아 문있는 쪽으로 흘러가며 시커멓게 응결해
갔다.
  남자는 잠시후 입에서 귀신의 머리카락같은 실같은 핏줄기를 깨문 채
영영 굳어 버렸다.
  사내는 이제는 완전히 미친 사람모양 그자리에 우뚝 선채 초점잃은
동공(瞳孔)을 싸늘한 고기덩어리에 던지고 있을뿐 희뜩 사내의 비뚤어진
입술이 악마같은 웃음을 그렸다.
  그 단정한 용모에서 그런 악마같은 잔인한 미소가 그려지리라곤 너무나
뜻밖의 일이었다.  마치 수십년 동안 긔의 가슴 한 구석에서 잠을 자고
있는 나락의 마귀가 잠을 깬듯 사내는 온몸을 악마적인 희열에 불사른 채
잠시 그리고 서 있다가 열어논 문밖으로 나가서 조용히 담을 뛰어 넘었다.
  그길로 사내는 송도의 성문을 빠져나가 미친듯이 새벽길을 비틀거리며
도망해 갔다.
  밤이 되자 사내는 피곤한 몸을 이끌며 산속에 있는 초가집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배고픔과 피곤함을 느낄만큼 그의 정신이 정상적이
아니었다.
  집안에는 희미한 심지불이 켜져 있다.  마당에서 신발 끄는 소리가 나며
호롱불을 든 여인이 밖으로 나왔다.
   밤이 늦어 죄송하오만 하룻밤신셀 질까해서.....
  여자는 잠시 못마땅한 표정을 얼굴에 스치며 옆으로 비켜 섰다.
  사내는 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 있던 주인남자가 문을 반쯤 열고 역시 못마땅한 듯이   어
보다가
   들어 오슈
하고 퉁명스레 내뱉고는 방문을 닫아 버렸다.
  사내는 주인 내외가 거처하는 옆방에서 감자죽으로 배를 메꾸고 자리에
들었다.  잔뜩 피곤한 몸인데도 사내는 잠이 들지 않았다.
  잠을 자는지 깨어 있는지 분간못할 지경에서 사내는 웬일인지 몸에 땀이
쉴새 없이 흘러 옷을 척척 들어붙게 했다.  마치 무거운 돌더미 밑에 눌린
것처럼 몸이 느줄근이 아파왔다.
  어렴풋이 잠이 들었을까 사내는 또 무엇에 놀란듯 퍼뜩 잠이 깨었다.
  밤이 한창 깊었는가 보다.
  사내는 이상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옆방에서 소근대는 소리가 벽을
통해 희미하게 들려왔다.  사내는 번쩍 벽에다가 몸을 붙이고 전 신경을
벽 건너방으로 쏟았다.
   .....그러지 말고 잠든 후에 오랏줄로 묶어 버리면 되는거야.
삼천냥이 한꺼번에 굴러든단 말야.  저방은 튼튼하니까 정 안되면 밖으로
문을 잠궈 버리면 돼
   그건 안돼요.  젊은 놈이 발악을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니까.
 그러지 말고 새벽안으로 관가에 내려가서 나졸 몇을 데려오세요.  몸이
피곤하니까 새벽까지 깨지 않을 테니까요, 내말대로 하세요
   허어 글쎄.....
  사내는 더 이상 들을 것이 없었다.
  또다시 그의 머리는 혼란해지며 악마의 화신처럼 마음이 뒤틀려 왔다.
  사내는 조용히 문밖으로 나왔다.  뒷뜰로 돌아가서 도끼를 찾아 들고는
짚더미 뒤에서 주인 남자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주인남자는 살며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사내가 자던 방의 문고리를
살며시 잡아 당겼다.
  사내는 조용히 뒤로 다가갔다.
  주인 남자가 막 문을 열고 오랏줄을 든 채 한발 앞으로 들어갈려고 할
때였다.  휙 바람을 일으키며 도끼가 머리위에 바로 떨어졌다.
   악---
  주인남자는 짧은 비명과 함께 나무등걸처럼 앞으로 탁 꺼꾸러 졌다.
  머리통이 무참히도 박살된 채 피가 사내의 옷에 튀어왔다.
  주인남자는 꼼짝없이 깨어진 머리에서 피를 콸콸 쏟으며 죽어버렸다.
   아악
  남자의 비명소리를 듣고 여자가 뛰어 나왔다.
  사내는 휙 돌아서며 거침없이 도끼로 여자의 허리를 후려쳤다.
  피가 소낙비처럼 얼굴에 뜨거운 감촉을 주며 뿌려졌다.
  사내는 도끼를 땅에 떨어뜨리고 힘없이 서 있었다.
  온 전신에 묻은 검붉은 피가 지옥의 완장처럼 그대로 굳어 버렸다.
  사내의 귀가 멍멍해졌다.
  고향에 두고온 아내의 말소리가 들리는 것 같으나 그것도 잠간 뿐
사내는 몰려드는 피로를 억제할 수 없어 도로 방문을 열어 젖히고
들어갔다.
  바다밑처럼 가슴이 가라앉았다.
  안개처럼 잠이 몰려들었다.
  마을서 송도로 가는 산길위에 중이 석상(石像)처럼 우뚝 섰다.
  뉘엿뉘엿 하는 햇빛이 중의 그림자를 꾸불꾸불 길게 끌었다.
  중은 그대로 송도로 향한 산골길을 빛나는 눈동자로 주시하고 있다.
  저쪽 고개를 조그맣게 보이는 사람인 듯한 그림자가 기어올라 오는 것이
보였다.  둥근 눈을 감았다.
  시커먼 그림자는 점점 크게 다가왔다.  사내였다.  옷은 피가 뭏은
그대로였다.  머리는 산발된 채 눈은 이제 막 첫별이 나타난 하늘을
향했는지 고기 눈알 처럼 핏발이 돋혔다.  다리는 휘청휘청하며 짚신마저
벗겨진 발은 피가 엉켜 있었다.
  중은 그대로 눈을 감고 서 있었다.  눈시울이 씰룩거렸다.
  지팡이를 짚고 있는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사내는 이윽고 중의 앞에까지 다가와서는 딱 하고 걸음을 멈췄다.
  사내의 숨소리가 중의 얼굴앞에서 헐떡거렸다.  사내는 마치 바위에라도
막힌듯이 우뚝 선 채 어떻게 된 셈인지 한발도 꼼짝할 수 없었다.
  중이 천천히 눈을 떴다.
  번쩍하고 빛나는 눈동자가 바로 사내의 얼굴을 뚫고 나가는 것 같았다.
  중은 조용히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사내의 얼굴이 점점 핏기를 잃고
핼쑥해졌다.  무릎이 와들와들 떨렸다.  가슴이 뻐개지듯 숨이 찼다.
  그러기를 얼마동안 중의 주문이 끝나고 다시 눈동자가 사내를 노려보자
사내는 백지장처럼 하얀 얼굴에 잠시 파르르 경련을 일으키더니 그대로
스르르 쓰러져 드디어 죽어버렸다.
  자기의 뒤를 저주성(詛呪聲)을 지르며 따라다니는 세 원귀와 함께
사내는 지옥으로 굴러 떨어져 버린 것이었다.
  <나무아미타불>
  중은 무표정한 얼굴로 뒤를 돌아서서 그대로 마을로 내려가 버렸다.
  아내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고 사내마저 지옥의 불구덩이에 굴러
떨어져 죽어버린 집은 인제 텅텅비어 귀기(鬼氣)만 자아낼 뿐이다.
  중은 그 집마저 불을 질러 버렸다.
  화광이 충천하였다.
  불꽃은 혀를 날름거리는 집을 송두리채 삼켜 들이켰다.
  충천하는 불길속에 중이 홀연히 서 있는 것 같았다.
   아! 불도(佛道)란 내게 멀기만 하다.  눈앞에 무궁 무진한 길이 트인다

  중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일찌기 자기를 길러 주신 스승님, 자기가 원으로 떠나기전에 하신
말씀이 귀에 울렸다.
   설혹 네게 다른 신통력(神通力)이 있었다 치더라도 너는 아직 중생을
면치 못한 것이니라
  불꽃은 집을 덮었다.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갖기에는 내 불력이 너무나
사소하구나,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이라도 한낱 중생을 면치못한 내게
무엇을 주실까?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없고 그도다 더한 불도를 닦기
위해서 몸을 더욱 깊은 부처님의 품안으로 던지노라
  (대자연의 섭리를 깨달을 때까지 다시 불도를 닦자.  설령 그것이
영원한 길일지라도.....)
  불꽃이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올랐다.
  혜륵과 혜성 너무나 기구한 운명이었다.
                             <끝>

 


<제 구 화>
百濟哀話(백제애화)
悲愴의 賦


第一章 誅劒

  부소산 거창한 군창(軍倉)들이 탄다.
  十五만호를 자랑하는 사비성(泗비城) 화려한 도성이 송두리채
타는듯하다.
  영원히 꺼지지않는 연옥(煉獄)의 겁화처럼 검은 연기가 기둥이 되어
반공에 피어 오른다.
  그것은 七백년 백제의 사직이 무너지는 장송(葬送)의 향연(香煙)인듯도
싶다.
  백제의 의자왕(義慈王) 二십년 秋七월 보름.
  신라와 당나라의 군병들은 사비성 안으로 몰려들었다. 
  사비성중은 그대로 수라(修羅)의 지옥으로 변하였다.
  적병의 무자비한 칼과 창과 화산에 백성들은 무참하게 죽었다.
  사비성 백성들은 갈바를 몰랐다.
  여인들의 비단을 찢는듯한 부르짖음이 죽어가는 사나이들의 신음소리와
더불어 참혹한 조화를 이룬다.
  피의 냇물!
  시체의 산!
  인간이 할 수 있는 한의 잔인한 행동은 모조리 벌어졌다.
  거기에다 불까지 곁들였다.
  불이 타는 열풍(熱風)은 사비성 전체의 공간을 불어   혔다.
  더운 기운은 사람의 넋을 빼앗았다.
  찌는듯한 노염(老炎)에 병화(兵火)로 인한 뜨거운 불이 곁들였으니
사람들은 몸을 사릴 겨룰도 없이 타 죽었다.
  백제 전부가 그대로 불타고 있는듯 했다.
  왕은 이미 사흘전인 십이일 웅진(熊津=現 公州)으로 몽진(蒙塵)하셨다.
  왕으로부터 지켜 싸우라는 명령을 받은 왕자 태(泰)는 스스로 왕이라
일컬었다.
  태와 더불어 사비성에 남아 있던 태자 효(孝)의 아들 문사(文思)는
숙(叔)의 칭왕(稱王)을 마땅치않게 여기고 성을 나가니 성중의 백송과
군병이 많이 문사를 따라 나갔다.  백성과 군병이 태의 명령을 듣지
않으니 태는 드디어 성문을 열고 나당(羅唐) 양국의 군문에 항복하고
말았다.
  그러나 누구의 지휘를 받는 것도 아니었으나 백성들이 일어섰다.
  맨주먹에 가까운 백성들은 성중으로 몰려드는 적병을 맞아 싸웠다.
  지붕뒤에서 기왓장을 던졌다.
  흙을 파는 광이(괭이?) 쇠스랑으로 칼과 창에 대결했다.
  정규의 훈련을 쌓은 적병들도 백제 백성들의 열화와 같은 항전에는 겁을
먹고 한때의 난전을 면치 못했다.
  그 백성들에는 백제의 패잔병까지 합세했다.
  그러나 인구 백만을 헤아리는 큰 도성 사비의 최후는 가가왔다.
   금화(錦花)! 금화
  대궐에는 아직 불이 붙지 않았다.  그러나 도성이 타는 연기가 대궐안에
크나큰 적각들의 지붕을 덮고 있었다.
   금화는 어디 있소! 금화
  텅 빈 후궁을 관복 소맷자락으로 코에 스미는 연기를 헤치면서 이렇게
소리치며 바쁘게 헤매는 사나이가 있었다.
  머리에는 화관(花冠)을 쓰고 허리에 자주빛 띠를 두른 것으로 보아
일품(一品) 재상의 지위를 가진 것이 분명하다.
   금화
  몇개의 전각(殿閣)을 찾아 보았으나 허사였다.
  그가 후원의 마지막 제일 깊은 곳에 있는 전각의 분합문을 열었을 때
   오! 금화!
  그는 반가운듯이 이렇게 소리쳤다.
   금화, 내 목소리를 못들었소?  왜 대답이 없었소?
   아, 임자(任子)대감!
  전각안 중앙에 단정히 앉았던 여인 한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서는
사나이를 보고 자칫 놀란다.
  여인은 성장(盛裝)을 하고 있었다.
  세저(細苧) 웃옷에 비단 아래옷.
  머리엔 역시 화관을 쓰고 몸에는 한껏 치장한 찬란한 패물들이 눈을
황홀하게 한다.
   그렇소.  좌평(佐平) 임자외다
   어찌하여 오셨소?
  달, 꽃, 아니면 무엇이라 비유해야 할지 모를만치 아름다운 금화의
얼굴이 이렇게 묻는다.
   어찌하여라니?  금화는 모르오?  성중에는 벌써 나당 두나라의 군병이
들어 왔소.  이나라는 이제 망한 것이요.  자 어서 신라의 진문으로
갑시다.  이나라가 망한 것은 다름아닌 금화와 나의 공이요.  우리
두사람을 지휘하여 오던 신라의 김유신(金庾信)장군이 기다리고
있을것이요
  금화의 기품있는 가늘은 눈이 임자를 흘겨 보았다.  그 눈에는
경멸(輕蔑)의 빛이 있었다.
   대감! 대감은 백제의 사람이 아니요?
   응?  금화! 그것은 무슨 말?  내야 분명 백제사람이지! 금화는
신라사람이고---
   대감.  잘 아시었소
   금화.  대체 무슨 말이요.  이렇게 있다가 아직 성중에 남아있는
백제의 패잔병이라도 만나면 큰 일이요.  우리 두사람에 대한 백제 백성과
군병들의 원망이 크오.  어서 가오.  자 나와 함께 신라의 진중으로
가게하고.  나는 금화를 사모하오.  금화에게 왕의 총애가 하도 크시어서
감히 이 마음을 금화에게 말하지 못했을 뿐이요.  우리는 이제 터놓고
함께 살수 있지 않소.  나의 이 마음은 금화도 이미 오래전에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요
   나는 백제의 백성들을 기다리고 있소
  금화의 말은 가을날 서릿발처럼 싸늘 했다.
   금화 그것이 무슨 말이요? 내나 금화가 백제에게 한 일이 무슨 일을
했기에 이렇게 있겠단 말이요?
   백제 상감의 마음을 사로잡아---
   음!
   백제의 충신들을 모조리 죽이시게 하고---
   그렇소!
  임자는 비명처럼 몸을 떨었다.
   상감의 마음을 홀리어혐악한 지덕(知德)을 진압(鎭壓)한다 하고 백제
나라안의 쇠(鐵)라는 쇠는 모조리 걷어들여 큰 못(釘)과 쇠기둥을
만들어서 각처 명산(名山)에 박고 강물에 가라앉혀 병기를 만들 쇠를 없애
놓았소
   이제 새삼스러이--- 그 무슨---
   아니요, 또 있소.  상감께 큰 역사(役事)를 일으키시게하여
왕흥사(王興寺)와 태자궁(太子宮) 망해정(望海亭) 그 밖에 큰 집들과
지당(池塘)을 꾸미게 하여 백제의 국재를 말리어 버렸소
   -----
   그리고 독한 술과 이 금화 스스로는 물론이고 그 외의 수 많은
아름다운 계집으로 하여금 상감의 몸과 마음을 아주 폐인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소
   그것이 다 김유신장군의 지휘를 받아 이 임자가 그대를 상감께
천거하여 나는 밖으로 그대는 안에서 백제를 망하게 한 것이 아니요?
그러니 우리는 신라에 큰 공을 세운것이요.  자 어서 부질없는 말은 그만
하고 이 자리를 떠나오
  그러나 금화는 그 자리를 떠나려 들지않았다.
   지금 생각하니 무당(巫)년 노릇을 하여 사(邪)스러운 술법과 이 몸으로
상감을--- 그 어지시고 바른 마음을 가지신 상감을 속이고 백제를 이꼴로
만든 이 계집이 스스로 원수 같소
   아니 금화 그러면 지금 와서 후회를 하는 것이요?
  금화는 임자를 노려 보았다.
   여보 대감! 당신은 피도 없고 눈물이 없소? 저 도성에 들려오는 하늘에
사모치는 죽음의 비명을 당신은 못듣는단 말이요
   -----?
   나라가 망하는--- 죄없는 백성들이 죽어가는 저 소리를 나는 진정
못듣겠소
  임자는 애원의 빛을 얼굴에 띄우고 금화의 앞으로 다가 섰다.
   금화, 그러니 십년이요.  내가 그대를 처음 보던 때가 이제 십년이
되었소.  나는 그대를 상감께 천거하여 놓고 얼마나 그대가 주야로
그리웠는지..... 금화, 인제는 내마음도 알아주오.  이몸도 일국의
재상으로 정말 허다한 계집들을 품어 보았으나 그대만을 생각하는
마음이라 다 부질없는 노릇이었소.  내가 내나라를 배반한 것도 그대
때문이었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요! 자 금화
   듣기 싫소!
  금화는 꾸짖듯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백제의 대감이라는 당신이나 신라에 가서 싫도록 부귀를 누리시오
   금화 그럼 금화는 가지 않겠단 말이요
   그렇소.  금화는 이곳에서 백제의 백성을 만나려 하오!  몰려드는
적군에게 욕을 당할까 두려워 대궐 뒷문으로 피하여 달아난 무수한
비빈들과 궁녀들의 틈에 끼이지 않은 것도 이몸을 백제의 원한 품은
백성들에게 내어 주기 위함이었소.  아- 정말 적은 내 재주를 믿고 이러한
소임을 맡고 신라를 떠나오던 십년전 일이 원망스럽소
  금화는 그 고운 얼굴의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앉아서 스스로의 지나간 날의 죄의 심판을 받으려는 무당
금화의 얼굴은 성스럽게 보이기까지 했다.
   금화!  그래 진정 안가겠소?
   -----
   금화 마지막 부탁이요.  이 임자와 함께가주오
   -----
  임자는 금화의 뜻을 돌릴 수 없음을 깨달았다.
  임자는 정말 금화의 앞을 떠나기 어려운듯했다.
  멀리 대궐밖에서 아우성소리가 들려왔다.
  임자는 왈칵 겁을 먹고,
   금화!  할 수 없니 내 홀로 가오
하고 전각밖으로 나오려는데-----.
   그렇게 쉽게 가지는 못한다!
  말의 주인공이 적각의 앞문을 막는다.
   ?
  겁결에 임자가 바라보니 거기에는 갑옷 입은 한 사람의 백제의 장수가
피묻은 큰 칼을 짚고 서 있었다.
   신라로가 아니라----- 지옥으로 보내줄까?
  젊은 백제 장수의 원한 맺힌 눈이 임자를 노리고 있었다.
   너는 누구?
   너 간신 임자를 지옥으로 인도할 사자다!
  임자는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무엄하다.  나는 백제의 상좌평(上佐平=首相)이다!
  그러나 최후의 발악으로 한번 소리쳐 보는 임자였다.
   나라를 팔아먹고 상감마마께 요녀를 천거하고 충신을 모함하여
성충(成忠)대감, 윤충(允忠)대감을 돌아가시게 하고 흥수(興首)대감을
무고히 귀양가게 한 너.  상좌평?  이 칼이 너같은 상좌평의 피를 마시고
싶어한지 이미 오래다
  말을 마친 장수는 그 피묻은 칼을 비스듬히 어깨위로 들었다.
  그리고 한걸음 두걸음 전각으로 올라왔다.
   음! 상감을 매혹한 요녀 금화도 함께 있구나.  아 하늘이 나를 도와
너희들의 십년 쌓은 죄를-- 죄악의 형발을 받게 하는구나
  장수는 이미 적각안으로 들어왔다.
  임자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화관을 쓴 임자의 이마에서 수슬땀이 흐르고 있다.
  임자의 눈은 겁에 질려 뒤집혔다.
  금화가 눈을 떴다.  그러나 곧 다시 그 눈을 감았다.
   대체 너는 누구냐?
  임자가 물었다.
  장수는 천천히 임자의 앞으로 다가 가며
   오냐 너에게 마지막 선물로 이 얼굴을 자세히 보여주마.  지옥에
가거든 백제의 지체낮은 십삼품 흰띠 띠는 호반인 무독(武督) 지위밖에
안되는 계창(季昌)이가 너를 지옥으로 인도 하더라 일러라!
하고 머리에 썼던 투구를 벗어 젖혔다.
   오 너는 계창!
   그래 계창이다
   살려다오.  날 살려주는 값은 무엇이고 네 소원대로 하마
  계창은 더 바싹바싹 다가갔다.
  인제 임자의 등뒤가 바로 벽이다.
  절대절명!
   계창아. 날 살려다오.  뭐든지 다 주마
  계창은 좀더 높이 칼을 들었다.
   무엇을 주겠느냐?
   살려다오.  뭐든지---
   내가 꼭 네게서 받고 싶은 것은---
   무엇이냐?
   네 목숨
   살려--- 악!
  비스듬히 내려친 계창의 칼이 깊숙히 임자의 목과 어깨를 곁들여
찍었다.
  칼을 잡아 채니 쭉 뻗치는 임자의 피가 계창의 갑옷으로 튀어와 묻는다.
  임자의 손이 힘껏 벽을 쥐어뜯고 몸은 거꾸러졌다.
  임자를 두번 쳐다보지도 않고 몸을 돌이킨 계창은 단정히 앉아 눈감고
있는 금화의 앞으로 왔다.
   금화
  대답없이 얼굴을 드는 금화.
  후광(後光)이 비칠듯 아름다운 금화의 얼굴은 한가닥의 거리낌도 없는
맑은 얼굴이었다.
   너의 죄의 빚을 갚아야지
   -----
   엣다!
  계창이 지금 임자를 죽인 큰칼을 금화의 앞에 내던졌다.
   계집을 내손으로 치기는 싫다!
   -----
  금화가 계창을 쳐다 본다.
  눈!
  금화의 눈은 계창에게 깊은 존경의 빛을 띄우고 있다.
  금화가 칼을 집어 들었다.
  눈은 계창을 바라보는 그대로였다.
   금화는 빚을 갚겠소
  비로소 말문을 여는 금화였다.
   -----
  이번에는 계창이 말이 없다.
   백제에 몹쓸 짓을 많이한 빚을 지금 금화는 갚으리다
  금화가 피묻은 칼날을 넓은 소매자락으로 쭉   어 씻었다.
  순간!
  금화는 칼끝을 입에 물고 앞으로 고꾸라 졌다.
  금화의 목에서 뭉클뭉클 피가 쏟아져 나왔다.
  몸을 뒤틀던 금화의 숨이 끊어졌을때 계창은 금화의 목에서 칼을
뽑았다.
   내세(來世)에선 바르게들 살아라!
  내던지듯 말하고 계창은 전각 밖으로 나갔다.
  스무살이 얼마 넘지 않았을 젊은 장수였다.

   누님 분하외다
  여기는 사비에서 웅진으로 통하는 간도(間道).
  지름길 언덕이다.  서남쪽 사비성 하늘에는 아직도 검은 연기가
충천한다.
  말하는 사람은 어제의 모습대로 갑옷을 입고 있는 계창이었다.
   가슴이 메어지는 것 같구나!
  사비성쪽 하늘을 바라보는 계창의 눈에는 비분의 눈물이 고여 있었다.
  대답하는 사람은 계창의 단 하나뿐인 누이 천절(千節)이다.
  천절은 한숨을 쉬었다.
  서른안쪽 나이 밖에 안될 천절의 곱다란 아미(蛾眉)에도 비분을
머금었다.
   역적과 요녀는 이 손으로 베이고 왔으나--- 보오 저 불더미를--- 누님
   그 아름다운 도성이---
   화려한 궁전과 허다한 집들 다 불더미 속에 들었나 보오!
  계창은 주먹으로 눈물을 닦았다.
  천절도 소맷자락으로 눈을 매만진다.
   당나라의 힘을 빌어 겨레의 나라를 치는 신라가 밉구나!
   신라도 밉고--- 당도 밉소.  그러나 그 보다도 더 미운 것은 나라를
신라에 팔아버린 이 나라의 간신(奸臣)의 무리들이요.  그리고 어진
신하를 멀리하시고 눈앞의 즐거움과 편안함만 바라시어 간신의 무리를
용납하신 상감마마께도 원망의 마음 누를 길 없소
   계창(季昌)! 너는 그 무슨 말이냐?  무엄하다 너는 어느나라 백성이며
어느 상감의  신하이기에 감히 그런 말을---
  누이는 내색하여 오랍동생 계창을 꾸짖는듯 말했다.
   -----
   너, 이미 글을 배웠고 무술(武術)을 닦아 범상한 시정의 무리가
아니거늘 그 무슨 무엄한 말을 입에 올리느냐?  내 상감마마의 은혜를
입었고, 너 또한 말직(末職)일지언정 백제의 호반으로 상감마마의
신하아니란 말이냐?
   너무 분하여서--- 누님
   지금 너와 내가 저 불타는 사비성을 빠져나와 웅진에 파천(播遷)하신
상감마마를 따라가는 이 길은 무엇때문이냐?
   누님!
   상감마마를 원망하다니---
   아니 누님.  계창이 하도 비분하여 말을 삼가지 못했소
   사비성은 이미 적에게 빼았겼다.  그러나 백제는 아직도 북쪽의
여러성과 남쪽의 고을들이 남아있다.  아직도 백성들은 나라를 사랑하고
변방에는 남아있는 충신이 있을 것이다.  웅진으로 파천하신 상감마마를
따라가 섬기어 빼앗긴 사비성을 다시 찾는 날을 보려고 너와 내가 굳게
맹세하고 가는 이 길이 아니냐
  삼십에 이르려면 아직도 이, 삼년은 더 있어야 할 천절의 나이에 비하여
애띤 얼굴은 엄숙했다.
   누님, 계창의 허물이요.  다시는 않으오리다
  예절을 숭상하는 백제의 백성들은 스스로의 잘못을 깨달음에도 빨랐다.
  준절한 누이의 꾸짖음에 그대로 잘못했음을 승복하는 젊은 백제의
무인이었다.
   저 연기를 보아라!  저 연기 속에는 백제의 원한이 피어 오르고 있지
않느냐?  우리는 저 원한을 그냥보고 있을 수는 없다.  누이는 저 원한의
불구덩이에서 살아나온 이 목숨을 상감마마 섬기기에 바치려 한다
  천절의 말소리는 부드러워졌다.  그대신 그 맑은 얼굴엔 새로운 결심의
빛이 나타났다.
   누님 알았소.  계창 더욱 깨닫겠소
   고맙다!
   누님
  두 사람의 오누이는 새삼스럽게 두 손을 맞잡았다.
  듯과 피가 두 손을 통하여 흐르는 듯 했다.
  그 피는, 그 뜻은, 백제에 삶을 타고 날때 백제의 할아버지와 백제의
아버지, 어머니에게 물려 받은 백제의 피였고 백제의 뜻이었다.
  비분과 적개심을 가진 오누이의 눈들이 서로 말없이 거듭 맹세했다.
   상감마마께서슨내가 알고 있거니와 지극히 어지신 분이시다.
선대왕이신 무왕(武王)께 효도가 지극하시어 고구려와 신라에는
물론이려니와 멀리 당나라에까지 해동(海東)의 증자(曾子)라는 말씀을
들으신 분이다.  중년에 곤전마마 승하(昇遐)하시어 적적하신 성념을
틈타서 간사한 무리들이 그만 성총(聖聰)을 가리워 이렇게 되었다.
그러나 십년전만해도 그러니까 누이가 궁중에 있을때만 해도 밝은
다스리심과 충실한 국력으로 신라의 대야성(大耶城)과 무산(茂山),
감물(甘勿) 동잠(桐岑)등 사십여성을 쳐서 차지하여 크게 나라의 위엄을
빛내신 분이다
   계창도 잘 아오
   내가 성은을 입고 궁중을 떠나 집에서 나와 있은지 어언 십년.  누이는
한시도 상감마마를 잊은적 없었다.  그냥 그립고 그냥 어렵고 그냥
고마워서---.  누이가 대궐쪽 하늘을 바라보고 상감마마를 받들어
사모하옵던 봄 가을철이 지금 꿈만 싶구나
  천절은 가냘프게 한숨을 쉬고 스스로가 느끼지 못하는 눈물---.
  그것은 왕을 사모하여--- 다만 홀로 사모하여 온 여인의 애정의
결정(結晶)이었다.
  왕을, 그 어지시고 총명하고 용감하시던 십년전의 의자왕(義慈王)을---
그리고 지금 나라의 도성을 적군에게 잃고 변방의 옛서울 웅진성에
몽진(蒙塵)하신 지극히 기력이 쇠모 하시어 성격조차 달라지셨다는
의자왕을 못잊는 한 여성으로서의 변할줄 모르는 연모(戀慕)의 표적이기도
하다.
   누님!  계창은 누님이 불쌍하시어 못견디겠소.  누님이 홀로
상감마마를 사모하시며 보내신 십년의 세월이 슬프오
  계창의 말엔 오누이간의 지극한 정을 머금고 있었다.
  오누이간의 정이란 참 맑고 깨끗한 것이다.
  아무 바람이 없는 높은 사랑이 오누이간의 사랑이 아닐 수 없다.
  지금 계창은 그 높고 맑고 깨끗한 오누이간의 육친의 정으로 누이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상감마마를 사모하는 누이는--- 생각하면 참 분수에 지나치는 하늘
무서운 일이 아니겠니, 그러나 누이가 세상에 나서 아직 상감마마처럼
뛰어나신 남정네를 만나보지 못했다.  누이는 계집사람이어서--- 별수
없는 한 계집사람이어서 상감마마가 그립고나.  평생을 이대로 상감마마가
그리운 채로 살다가 말지언정 상감마마를 받들어 생각하는 것만으로
행복한 것을--- 누이는!
  어느덧 여인의 말소리는 그대로 하소연이었다.  푸념이랄까?
푸념이라면 참 아쉬운 푸념이다.
  오라비이기에 터놓고 말하는 하소연이며 푸념이다.
  남의 앞이라면 어찌 왕을 사모하고 왕을 못잊는다 감히 말할 수 있으랴?
  물환성이(物換星移) 십년을--- 이룰 가망없는 왕에 대한 애정을
간직하고 혼인의 기회조차 저버리고 그대로 세월을 보낸 여인의 호소였다.
   누님.  십년만에 이제 상감마마를 뵈오면 누님을 알아 보실줄 아오?
  계창이 누이의 애처로운 가슴을 짐작하여 보려는듯이 물었다.
   나는 십년전 궁중에서의 그날밤 일을 눈에 선하게 역력히 기억하고
있다.  상감마마의 부드러우신 말씀의 한마디 한마디가 지금도 귓가에
그대로 되살아 난다.  보산(寶算)이 오순(五旬)이 넘으셔서--- 그리고
간신과 요녀의 무리들이 총명을 가리워 주야로 행락(行樂)하심에 옥체
많이 손모(소모)되시어 신기 흐리셨다 듣자웠다.  누이를 알아보시든
못알아보시든지 누이는 그것을 가리지 않는다.  그냥 한번 용안을 우러러
뵈었으면 누이에겐 한이 없겠다.  옆에 두어두시면 더욱 고마웁겠다.
그것만으로 누이는 더 바랄것이 없다
  천절은 가벼운 그러나 깊이 서린 회포를 못이기는듯 또 한숨을 쉬었다.
  누이의 말이 너무 애처로운듯 들리어서 계창도 따라서 슬퍼졌다.
   누님 해가 벌써 높소.  이제 가지 않으려오?
  들을 덮어골짜기를 메꾸어 달려드는 헤아릴 수 조차 없는 나당 두나라의
군병이 포위하고 있는 사비성을 어젯밤에 탈출하여 중도에서 밤을
드새고---.
  지금은 늦은 아침.
   오 그래.  뜻밖에 말이 길었구나
  오누이는 일어섰다.
  다시 돌아다보니 사비성의 검은 연기는 더욱 굵게 피어올라 구름처럼
하늘을 덮고 있다.
  그 연기의 기둥과 그 연기의 구름을 바라보니 다시 용솟음 치는 분노와
비감이 두 사람의 가슴 속을 물결치는 것을 느낀다.
   계창아!
   네?
   이몸은 계집사람이어서 내손으로 이 원한을 갚지 못하는 것이 진정
한스럽구나.  너는 사나이--- 백제의 물을 마시고 자란 사나이가 아니냐?
지금 저 원한의 연기를 바라보고 누이의 몫까지 이 원한을 꼭 갚아야 한다

   누님!  이를 말씀이요?  누님의 그 말씀 계창은 뼈에 새겨 들으오
  저 연기 아래에서 양같이 온화하고 댓쪽처럼 바르고 인심후한 죄없는
백제의 백성들이 무자비한 적병의 칼날아래 무수히 죽고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가오!  누님
   가자
  오누이는 걸음을 옮겼다.
  원한의 사비성을 뒤로 두고 상감이 계신 웅진성 쪽 지름길 내리막을
걸어간다.

 

第二章 聖 代

  십년 전!
  의자왕 九년 봄.
  사비성 화려한 궁전에 봄이 드니 후원(後苑)의 기화이초(寄花異草)는
철을 맞아 다투어 아름답게 꽃 피었다.
  의자왕 5년 이후 해마다 백제의 강토는 넓어져 왔다.
  달솔(達率) 의직(義直)과 달솔 은상(殷相)이 거느린 백제의 군병은 정말
무적(無敵)의 상승군이었다.
  그야말로 치면 뺏고 나가면 무찔러 버리는 막강(莫强)의 군병이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백제는 상무의 나라였고 국민개병(國民皆兵)의
나라였으니 위으로(위로) 어질고 밝으신 의자왕이 계셨고,  재상이하
관원은 사(私)에 치우치지 않고 공(公)에 힘을 써서 강기가 엄정하고
상벌이 분명하니 그 나라의 군병이 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졸이 죽기를 영광으로 알게 용감했으니 지나간 5년동안에 신라의 서쪽
요충(要衝) 대야성 이하 40여 성을 뱄고 신라를 위협하여 백제의 위세를
천하에 떨쳤으며 한토(韓土)엔 말할 것 없고 동으로 일본을 비롯하여 남쪽
유구 탐라는 물론이요, 멀리 서해 건너 당나라까지 겉으로는 천자(天子)의
나라이라 허세를 부렸으나 은연히 백제를 두려워 했다.
  그 봄에---.
  남쪽 바다의 섬나라인 탐라나라에서 방물(方物)을 진헌하는 사신으로
도내(都內)가 사비성에 이르렀다.
  도내는 탐라나라의 왕제였다.
  도내에 대한 백제 조정의 대우는 극히 융숭했다.  상국(上國)으로
자처하는 백제였기 때문이었다.
  음식거처는 물론이려니와 침실에는 궁인을 골라 천침까지 시키는 극진한
대우였다.
  도내가 왕을 알현(謁見)하는 날의 의식은 장려(壯麗)를 극했다.
  대궐 정전앞에는 계품을 따라 상좌평(上佐平)이하 6부 좌평과
좌장우보(左將右輔)의 문무 백관이 갈라섰다.
  사도부(司徒部=禮部)의 악사들이 아뢰는 웅장하고 청아한 궁악(宮樂)이
흐르는 중에 왕은 도내의 정중한 하례를 받으시고 도내에게 술을 내리시어
먼길의 수고를 위로 하시었다.
  이렇게 도내를 융숭히 접대함은 백제와 신라와의 국교가 멀어지매
탐라를 신라에 멀게하고 백제와 더욱 화친케 하려는 백제의 외교적인
정책의 일부이기도 했다.
  탐라뿐이 아니었다.
  백제는 북쪽 고구려와도 맹약을 맺어 서로 위급할때에 원군으로
돕게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왕이 밝으시고 조정엔 어진 충신들이 많았으니 백제는 안으로
밖으로나라를 크게 빛냈던 것이었다.
  그날밤.
  백제에는 또 한번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그것은 장군 은상의 거느린 백제의 군병이 동쪽 신라의 석토성 이외의
일곱성(城)을 차지하였다는 승리의 소식이 들려왔던 것이다.
  대궐에서 이 소식이 들려나오자 사비성 백성들은 집집이 초롱을 내걸고
명절처럼 즐겁게 축하했다.
  사비성중의 어느 거리 어느 골목에도 쏟아져 나온 백성들의 행렬로
가득찼다.
  누가 인도하는 것이 아니었으나 그들은 대궐 앞 넓은 공터로 모이었다.
   만세!
   상감마마 만세!
  백성들이 감격에 벅차서 저절로 목이 터지라고 부르는 환호성은
사비성중에 드높아 대궐에 울렸다.
  그때 왕은 편전에서 아름답고 기품이 높으신 왕비마마와 더불어 멀리
들려오는 백성들의 환호성을 들으시고 극히 만족하시었다.
   곤전마마.  저 백성들의 흔희작약하는 소리 들으시오?
  왕의 말씀에--- 옥배에 술을 따르던 왕비마마께서는 고개를 드시었다.
   성은에 화답하는 백성의 뜻이라 듣자왔소
   지나친 말씀인가?  짐은 생각하오.  그러나 짐은 아직 조종의 성업을
더럼히지 않은 것이 다행이며 아래로 백성들이 즐거워하는 바를 더불어
즐길 뿐이요.  곤전마마.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요.  지금 저 백성들의
환호성이 그 어느 비할 바 없는 좋은 음률을 듣는 것 보다 짐에게는 더
아름답게 들리는 것이요
   신첩도 기쁘외다
  왕은 술잔을 드시었다.  단숨에 술을 마시고 나신 왕은 술잔을 상위에
내려놓으시고 그윽히 왕비마마를 바라보셨다.
  평소에 만기(萬機)를 몸소 살피시어 겨를 없는 날들을 보내시는
왕이시매 한가롭게 술잔을 드시는 일이 참 드물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내나라 건아들의 빛나는 전과를 들으시고 이날 그대로 넘기실 수
없었다.
  육부(肉部=御膳部)에 명하시어 간소한 주안을 들이어라 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왕비마마와 다만 두 내외분이 호젓하신 청아한 대작을 하시는
것이었다.
  성왕(聖王)의 간소하신 자축(自祝)이었다.
   민(民)은 천(天)이라 짐은 항상 백성을 보기 하늘같이 하였소.  하늘을
어기고 왕업이 있을리 없는 것이요.  그러기에 짐은 주야로
동동속속(洞洞屬屬)하여 스스로 편할 날이 없었소.  거기에는 곤전마마의
어지신 내조(內助)가 없으셨던들 어찌 오늘의 기쁨이 있었겠소.
곤전마마, 짐은 마마께 하례하오
  왕이 한껏 애정을 머금으신 눈으로 왕비마마를 바라보시니 왕비마마는
자못 수태(羞態)를 지으셨다.
   신첩이 무엇을 아오며 무엇을 상감마마께 도움이 되었다 하오리까?
다만 어의(御意)를 받자와 지나친 허물이 없었음은 다 성덕(聖德)의
소치인줄 아뢰나이다
  막 40고개를 넘으신 왕은 취흥과 애정을 이기지 못하시어 왕비마마의
옥인양 흰손을 덥석 잡으셨다.
   곤전마마!  곤전마마가 있으시어 짐은 살고있는 보람을 느끼오
  왕비마마는 살며시 왕의 손에서 스스로의 손을 뽑아 내셨다.
   상감마마!  이목을 삼가소서
  왕비마마의 말씀소리는 엄숙하시었으나 왕비마마의 아름다우신 눈은
지극히 행복의 빛을 띄우고 왕을 바라보시는 것이었다.

  그날 밤이 좀더 깊어.
  아마 술시(戌時)가 지났을 무렵이라 할까?
  모처럼만에 취흥을 얻으신 왕은 그 즐거운 봄밤을 그냥 보내시기
섭섭하신 생각이 드셨다.
  왕비마마를 침전에 들게 하시고 이내 후원에 홀로 납시었다.
  봄밤은 부는 바람조차 향그러웠다.
  곁들여 달빛이 은은하니 후원은 유수한 선경같이 그윽했다.
  지당가엔 어디서 풍기는지 아련한 화향.
   ?
  왕이 걸음을 연못가의 정자아래로 옮겨 오셨을 때.  왕은 문득 고이한
소리를 들으시고 걸음을 멈추시었다.
  그것은 은은히 슬프게 흐느껴우는 소리였다.  누가 들을세라 숨죽여
우는 울음소리였다.
  왕은 넌지시 정자안을 살펴보셨다.
  거기 울음의 주인공이 있었다.
  달빛이 그늘져서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왕이 정자위에 오르셨다.
  그러나 울음의 주인공은 왕이 정자에 올라 오셨음을 깨닫지 못하고 왕의
앞에 등을 둔채 아직도 흐느끼고 있었다.
  가까이 보니 울음의 주인공은 한사람의 여인이었다.
  모습으로 보아 젊은 여인이었다.
   ?
  그러나 곧 왕은
   에헴
  낮은 기침을 하셨다.
   앗!
  여인이 울음을 그치고 얕은 비명과 함께 소스라쳐 몸을 돌렸다.
   누구냐?  너는---
  왕은 역시 낮은 목소리로 물으셨다.
   용서하소서.  소녀는 하도 일이 급하옵기에 몸을 피하여 무단히 이곳에
들어왔나이다
  목소리가 심히 애띠다.
  후원에 들어감은 법도에 금하는 바이다.
  비록 궁중의 관원일지라도 마음대로 들어가지 못하는 금원(禁苑)이다.
  아마 왕을 후원을 지키는 관원으로 알았던지 여인은 우선 용서를 빌고
있다.
   이리 오너라
  왕은 달빛이 비치는 곳으로 옮겨서시면서 말씀을 하셨다.
  여인은 할 일없이 왕의 분부대로 고개를 숙인채 밝은 곳으로 나왔다.
   한번만 용서하소서
   얼굴을 들어라
  여인은 비로소 얼굴을 들었다.
   앗! 상감마마
  여인은 그제서야 앞에 섰는 사람이 왕인줄을 깨닫고 바쁘게 몸을
부복하고 전신을 벌벌 떨었다.
   아! 상감마마
  여인의 애띤 목소리가 그윽한 한탄을 머금고 또 한번 달빛속으로
흘렀다.
  두렵고--- 황송하고--- 무엇이라 형언할 수 있는 감격이 섞인
목소리였다.
   너는 누구냐?
   이몸, 후궁부(後宮部)의 침선녀(針繕女) 천절(千節)로 아뢰나이다
  여인의 목소리는 무엇에 힘을 얻었는지?  다소 낭랑한바 있었다.
  왕의 인자하신 천성을 아는 탓일까?
   천절!  고개를 들어라
  천절은 달빛속에 고개를 들었다.
  그림처럼 고운 얼굴이었다.
  왕이 취하신 중이어서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던 기막히게 예쁜 얼굴이었다.
   몇살이냐?
   열일곱살로 아뢰나이다
   열일곱
   네
   어느 때 궁중에 들어왔더냐?
   열다섯살에 들어 왔나이다
  그러면? 3년이 된다.  왕이 여색에 담백하시어 명색 후궁부가 있어서
유마행시의 아름다운 궁인들이 후궁에서 이때나 저때나 왕의 은총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왕은 그것을 거들떠 보시지 않으시니 자연히 후궁의
소식을 아실 까닭이 없다.
   여기는 어찌해서 들어 왔느냐? 
   몸을 사려 피해서 들어 왔나이다
   무슨 연고로 피했더냐?
  왕이 거듭 물으셨다.  그러나 천절은 잠시 대답이 없었다.
   무슨 연고로 피했더냐?
  그제서야 천절은 입을 열었다.
   소녀에게 탐라국의 사신이 머무시는 객관에서 사신께 천침을 들라는
외사부(外舍部=外交部)의 영이 있사옵기로 피했더이다
  천침이란 침석에 모시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천침?  천침의 영을 어찌해서 피했느냐?
   이몸 아직 숫계집이여이다
  참 당돌한 말이었다.
   속계집이어서 어떻다는 말이냐?
  왕은 천절의 대답하는 말에 기이한 흥미를 느끼시며 또 물으셨다.
   이몸, 계집은 절개를 무겁게 알라 배웠더이다
   누구에게 그렇게 배웠느냐
   이미 죽은 아비에게 배웠더이다
   음!
  왕은 깊이 마음으로 탄복 하시었다.
   그래서 울고 있었느냐?
  왕은 마음에 지금 어전에서 당돌하게 계집은 절개를 소중히 알도록
배웠다는 처녀 천절에게 저윽히 한 사나이로서의 어떠한 욕정이
움직이시는 것을 느끼셨다.
  아무도 없는 후원.
  봄이요, 밤이었다.
  황차 왕은 취하고 계셨다.
   네
   너 사모하는 사람이라도 있었더냐?
   -----
   네가 사모하는 사람이 있느냐?
   -----
  부끄러워서인가?  대답이 없다.
   어찌하여 대답이 없느냐?
   황송하여이다
   사모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냐?
  왕을 속이는 법은 없었다.
   -----
  정말 말못하는 천절.
   있다는 말이냐?
   있나이다!
  꺼질듯 얕은 목소리로 천절이 대답했다.  그러나 분명한 말이었다.
   절개를 안다는 숙계집이 사나이를 사모한단 말이냐?
   마음으로 사모하옵는 것은 죄가 아닌가 하나이다.  그 마음을 위하여
계집은 절개를 지키는 것이라 믿었나이다
  열일곱살이라는 천절의 대답은 사리에 당연했다.
  왕은 더욱 아찔한 흥분을 느끼시었다.
   누구냐?  네가 사모한다는 사람은?
   -----
  왕은 지그시 흥분을 누르시고 물으셨다.
   누구냐?
   -----
  또 대답이 없다.
  달빛속에 엎드려 있는 천절의 어깨가 가쁘게 들리고 있다.  천절의
가슴에 오고가는 상념의 괴로움을 나타내는듯 하다.
   누구란 말이냐
   그것은 아뢰옵지 못하겠나이다
   무엇?  말을 못하겠다?
  짐짓 노해 보이시는 왕의 목소리였다.
   천절의 죄 만사무석인가 하나이다
  천절이 말소리는 떨리었다.
  이렇게 총명하고 숙성한 처녀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사나이는 과연
누구일까?  왕은 그것이 알고 싶으셨다.
   말을 해보아라!
  왕의 목소리는 다시 부드러워지셨다.
   황공하여이다.  말씀 여짜옵기 진정 황공하여이다
   너와 짐 이외에는 아무도 업사.  어서 말을 해보아라
   여짜옵기 진정 두려워 하나이다
   무슨 말이든 가릴바 아니다.  짐이 너를 기특히 알고 있는 것이다
  천절은 손을 땅에 짚고 약간 몸을 들었다.
  왕을 쳐다보는 천절의 눈.
  낮이라면 그 눈이 지극히 사모의 정을 머금고 왕을 쳐다보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상감마마!
  천절의 목소리가 애처롭게 떨렸다.
   정말 하늘이 무서워서 이 말씀 못 며쭙겠나이다
   하늘이 무섭다니?
   진정 하늘이 무섭소이다
   어째서 사람이 사람을 사모하는데 하늘이 무섭단 말이냐?
   천절은 이나라의 한분밖에 안계신---  지극히 높으신 분--- 그 분을
사모하여 왔더이다
   한분밖에 없는 분이라면--- 그것은?
   상감마마!  천절을 죽여 주옵소서
   아 나라에 한분밖에 없는 분이라면---  그리고 지극히 높으신 분이라면
왕을 일컬음일까?
   그것은 누구?  짐!  여기있는 짐이란 말이냐?
  왕은 숨가쁘게 물으시면서도 잠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감마마!  진정 천절의 마음은 천절 스스로가 어찌할 수 없더이다.
상감마마!  천절은 죽을 죄를 졌나이다.  천절을 죽이시옵소서.  하늘이
무섭소이다
  가여운 한송이의 꽃봉오리!
  그 꽃봉오리가 머금고 있는 아직 피어나지 않은 향기.
  왕은 천절에게서 그러한 느낌을 받으셨다.
  지금 눈앞에서 그 꽃봉오리가 속임없는---  열일곱살 풋정을 호소하고
있다.
  왕의 격정은 정말 폭발하려는 직전에 있었다.
  왕비마마 이외의 계집사람을 모르시던 왕이시었다.
  그런데 웬일이냐?  지금 한번도 가져보시지 못했던 마음의 크나큰
흔들림은 진정 웬 일이냐?
  40이 넘으신 왕은 그 40평생에 처음 당해보시는 격렬한 마음의 충격을
누르고 있으시기에 숨이 가쁘셨다.
  천절을 굽어보시는 왕.
  왕을 쳐다보는 천절.
  달빛속이어서 눈을--- 눈동자를 서로 뚜렷하게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마음.
  마음이 오고 갔다.
   상감마마!  천절에게 죄를 주소서.  처음 진실로 처음에 상감마마를 먼
빛으로 뵙던 그 시각부터 천절의 마음엔 상감마마의 거룩하신 모습으로
가득 찼더이다.  외람하온 천절에게 죄를 주소서
   천절!
  술의 힘이랄까?  왕의 마음이랄까?  왕은 더 참으실 수 없어서 몸을
굽히시어 보기에도 가냘픈 천절의 몸을 힘껏 끌어안으려 하실 때---.
  (인기척)
  돌연한 인기척을 느끼시고 왕은 몸을 바로 가누셨다.
  서너사람의 갑옷입은 병졸이 정자아래로 다가왔다.
   거 누구?
  병졸들의 날카로운 수하의 호령.
  위사좌평(衛士佐平=宿衛大臣)의 거느리는바 숙위의 군병임이 분명하다.
   짐!  짐이다
  썩 밝은 곳으로 나서신 왕을 보고---.
   네이!
  병졸들은 황망히 땅위에 부복했다.
   웬일들이냐?
   위사좌평의 명령을 받들어 후궁부 궁인 천절을 나포하려고 기찰중으로
아뢰오
   궁인 천절을?
   네이 천절은 관부의 명령을 어기고 후궁부를 무단히 탈출하여
도주중으로 아오나 궁금(宮禁)단속이 엄중하매 아직 궁성중에 있으리라
추측하오.  혹시 이 금원(禁苑)에 잠입해 있지 않나 하여이다
   그러냐!  천절은 지금 짐의 앞에 있다
   네에?
  부복해 있던 병졸들은 비로소 왕과 더불어 함께 있는 천절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러나 지존의 어전이니 감히 어찌 손을 대랴?  잠시 생각하신 왕은
   천절이 관부의 명하는 바를 어기었으면 마땅히 법의 다스림을 받아야
할것이다.  천절을 이끌어 가거라!
  엄숙히 말씀하시고 다시 천절을 돌아보시며---.
   천절아 너 가거라!
  강잉히 말씀하셨다.
  그 말씀에는 왕의 가슴에 서린 만단상화를 머금고 있었다.
   상감마마!  천절 가겠나이다
  천절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어 정자 아래로 내려갔다.
  고래를 돌려 왕을 바라보며 내려갔다.
  천절이 정자 아래로 내려오니 병졸들은 몸을 일으키어 허리에 달았던
오라를 끌러 천절을 묶으려 했다.
   묶지말고 데려가게 하여라.  죄인이 가냘프다
   네이
  천절을 묶으려던 병졸이 왕명을 듣고 오라를 걷었다.
   천절!  앞서라
  병졸의 호령을 듣고 천절은 앞서서 걸어간다.
  병졸들이 그 뒤를 따른다.
   잠간만(잠깐만)!
  왕이 말씀하셨다.
   네이
   위사좌평에게 일러라.  짐의 별명(別命)이 있을 때까지 천절을
치죄(治罪)하지 말고 별실에 보호하라 하여라
   네이
  병졸들은 다시 천절을 앞세우고 걸어 간다.
  왕은 달빛속을 애처롭게 걸어가는 흰옷입은 천절의 모습을 한껏
바라보셨다.  당돌하게도 왕에게 사모의 정을 고백한 열일곱살 처녀의
뒷모습을---.
  이튿날 아침.
  조회가 끝난후.  왕은 친히 위사좌평을 가까이 부르시어 특지를 내려
천절의 형별을 면하게 하시고 따로 후한 상록(賞祿)을 주어 사가(私家)로
내어 보내셨다.
  천절에게는---.
  왕이시기 보다 그리운 분이었다.
  그 그리운 분의 너그러우신 처분에 천절은 얼마나 감읍(感泣)했는지
열일곱살 가슴에 더욱 왕의 모습이 굳게 아로색여(새겨) 졌던 것이었다.
  사가에는 천절이 대궐에 있을 동안 남의 손을 빌려 키워오던 어린 동생
계창이 있었다.
  부모없는 남매는 서로 한집에 모여사는 것이 즐거웠다.
  그러나 천절은 밤이나 낮이나 겨를을 얻으면 샘물처럼 끊임없이 왕에
대한 잊을 수 없는 사모의 정을 못이겨 괴로웠다.  그런 마음이 죄라
싶기까지 했다.
  40이 넘으신 왕은 나이로만 따지면 어버이라 할만하다.
  그러나 그분이 그리운 것을 어찌하랴!
   분수에 넘치는 그릇된 마음
  이렇게도 생각해 보았으나 그것은 순간이었다.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천절의 사모의 정은 더해갔다.
  마땅히 혼처가 여러번 나섰다.
  그러나 천절은 처녀인 그대로 살았다.
  천절은 계창과 더불어 호젓이 살아갔다.
  침선을 생계로 하여 아우 계창을 가르치니 백제에 이름 높은 큰 선비로
좌평벼슬을 지나신바 있는 여자신(餘自信) 선생의 문하에서 배우게 하였고
겨를에 사기(射騎), 창검의 술법을 익히게 했다.
  세월은 흘러갔다.
  그러나 대궐쪽 하늘을 바라보며 애끊는 사모의 정을 지니고 있는 천절의
마음엔 변함이 없었다.
  왕은 천절의 일을 아주 잊으셨는지 세월이 그렇게 길게 흘렀건만 천절의
외로운 그리움만 부질없이 그 세월과 더불어 애절하였을 뿐이었다.
   상감마마!
  허공에 불러보았다.
  철을 따라 꽃은 피고 지고 했다.
  그러나 천절의 가슴속엔 영영 꽃피지 못하는 슬픔으로 가득차 있었다.

 

第三章 昏 政

  달은 차면 이즈러지고 물은 차면 넘쳐 흐르는 법이다.
  이것이 무상(無常)한 인생세계의 변치않는 법측(법칙?)일는지도 모른다.
  빛은 백제에만 비치란 법이 없었던지 의자왕 십년 이후에는 백제에
그늘이 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왕비마마가 승하 하신 것이다.
  왕비마마는 본시 포류의 기질이신데다가 미녕(未寧)하시매 왕의
지극하신 약석(藥石)의 보살피심도 모르시는듯 가셨던 것이었다.
  왕의 슬픔은 크시었다.
  슬프시면 술을 드시었다.
  술을 드시면 밤을 새우시고 정사(政事)를 돌보지 않으셨다.
  간신이 그틈을 엿보고 왕의 마음을 맞추어 왕으로 하여금 주색에
빠지시게 하니 이는 좌평 임자, 충상(忠常) 등의 무리였다.
  후궁에서는 그칠줄 모르는 장야(長夜)의 연락(宴樂)이 벌어졌다.
  따르는 술은 감로(甘露) 같은 방순(芳醇).
  옥반에는 그대로 산해의 진미.
  단순(丹脣)에서 흐르는 곱다란 노래소리는 구궁(九宮)에 흘렀다.
  왕의 총희(寵姬)로 금화(錦花)가 있었다.
  금화는 신라의 계집이었다.
  백제의 미녀로는 은고(恩古)가 있었다.
  은고도 왕의 총애가 깊었다.
  금화와 은고와 그밖에 무수한 미녀들은 왕의 앞에 그 아름다움을
다투었다.
  왕은 취하시면 금화나 은고를 이끌고 침전에 드셨다.
  무르녹는 육체의 향기속에 왕은 세월을 잊으셨다.
   어 태평이로다
   어 천하는 짐을 위해 있나니---
  날이 새면 다시 끝없는 호화로운 잔치가 벌어졌다.
  금화는 신라의 무당이었다.
  신라 손급(飡級)의 지위로 천산(天山) 고을의 영(令)이었던
조미곤(租未坤)이란 자가 진격하던 백제 군병에 포로가 되어 좌평 임자의
집 종이 되어 있었다.
  조미곤이 틈을 보아 신라로 달아났다가 신라의 지장(智將)
김유신(金庾信)의 영을 받고 다시 백제로 돌아와 이(利)로써 임자를
꼬이어 임자로 하여금 신라 김유신과 태통을 하도록 해 놓고 임자에게
금화를 왕에게 바치게 하였다.
  금화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기이한 술법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용모
또한 경국절대(傾國絶代)의 아름다움을 지녔으니 즉시 왕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다.
  김유신이 금화를 백제로 보낸 것은 금화로 하여금 왕의 마음을 사로잡아
백제의 국력을 소모케 하고자 함이었다.
  김유신은 뒤에서 금화와 임자를 지휘했다.
  임자는 밖에서 금화는 안에서 백제를 좀먹어 들어갔다.
  좌평 성충은 왕의 행락을 직간하다가 옥에서 죽고 윤충(允忠)은 나라의
글러감을 보고 분사(憤死)했다.
  좌평 흥수는 고마미지(古馬彌知=長興)로 귀양을 갔다.
  어진자는 물러가고 간사한 무리들이 조정을 휩쓸었다.
  이렇게 십년을 지나서 백제에는 그 옛날 융성했던 모습은 찾아볼 길
없고 백성은 주리고 헐벗었다.
  군병들은 싸움에 쓸만한 병기를 갖지 못했다.
  이때.
  십삼만의 당병(唐兵)과 오만의 신라군이 동쪽 서쪽에서 일시에 백제로
쳐들어 왔다.
  신라군을 막던 계백(階伯) 장군은 황산벌(黃山原?)에서 패하여 죽었다.
  당병을 맞아 싸우던 의직(義直) 장군은 사비수(泗比?水) 물가에서
뭍(陸)으로 오르려는 적군과 격전 후에 전사했다.
  의자왕 이십년 칠월 십이일.
  왕은 십년 행락하시던 아름다운 사비를 버리시고 황망히 북쪽
웅진성으로 파천하시니 그 모습은 진정 참혹하시었다.
  공포에 떨며 목을 놓아 우시었다.
  교자도 차릴 겨를이 없으시어 말을 몰으셨다.
  왕을 따른 두어사람의 궁녀와 태자 효(孝)와 왕자 연(演)이 왕을
모시었을 뿐이었다. <-???
  진정 숨가쁜 도피행(逃避行)이었다.
  왕이 웅진으로 파천하시던 날 밤.
  왕은 마음이 떨리시어 신기(神氣)를 수습하지 못하셨다.
  옛 궁궐이엇던 관아(官衙)를 이궁(離宮)으로 삼아 들으셨다.
  모시어 받드는 내관도 없고 낯익은 신하도 없다.
  사비에서 따라온 태자 효(孝)와 왕자 연(演)이외엔 두어사람의
궁녀(宮女)가 지근(至近)에 모실 뿐이었다.
  십년행락에 몸과 마음이 다 쇠모하신 왕은 그 옛날 천하를 떨치시던
패기의 편린(片鱗) 조차 찾아 볼 수 없는 초라하신 모습이시었다.
  웅진의 수성대장(守城大將)이 받드는 저녁 수라를 받으셨으나 별로
드시지 않은채 낯설은 침전에 드셨던 것이다.
   아바마마 존체를 돌아보시어 편히 쉬사이다
  태자가 꿇어 앉아 왕에게 고하였다.
  태자의 옆엔 왕자 연이 역시 꿇어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다.
  수많은 비빈과 후궁의 궁녀를 거느리시던 왕이어서 태자 이외의 왕자가
사십여인이나 있었다.
  사십여인의 왕자들 중에서 지금 왕의 앞에 있는 아드님은 태자 효와
왕자 연 뿐이다.
   오냐!  자자.  그러나 잠이 오겠느냐?  마음과 몸이 온통
못견디겠구나!
   아바마마 신등이 불충하온 죄로소이다
  태자가 눈물을 지었다.
  왕의 등뒤에 시립한 두사람의 궁녀들은 벌써부터 눈물을 지으고 있었던
것이었다.
   너희들 물러가 자거라
  왕은 슬픔을 덜기 위하여 태자와 왕자를 물러가라 하시었다.
   네이
  태자와 왕자는 왕이 잠들게 하기 위하여 마악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던
때.
   아뢰오
  밖에서 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태자가 몸소 침전의 분합을 열었다.
  밖에는 십여사람의 군병을 거느린 웅진성 수성대장이 서 있었다.
   무슨 일이냐?
  태자가 물었다.
   상감께 주달할 말씀이 있소!
  수성대장의 말소리가 귀의 탓인지 무엄하게 들렸다.
   지금 옥체가 다소 미녕하시어 누우시려 하신다.  지급한 일이 아니거든
밝는 날 여쭈어라
   아니오.  태자마마가 관여하실 바 아니오.  상감 어전에 바로 주달할
일이요.  이미 성중의 장졸들과 의합(意合)된 바를 주달하려 하오
  확실히 무엄한 말투였다.
  강박(强迫)과 같은 말싸다.
  왕이 몸을 움직여 분합문 앞으로 나오셨다.
   무슨 말이냐.  말해라!
  힘 없으신 왕의 목소리다.
  수성대장이 국궁했다.
   상감마마 대세가 이미 기울어 도성이 적병에게 함락되고 이 웅진의
적은 군병으로는 적병을 대적할 길이 없소.  상감마마께서 이곳에
주련(駐輦)하시면 조만간 적병이 이 웅진으로 달려들 것이 분명한 일인가
하오.  사세가 거기에 이르면 화(禍)가 바로 상감마마께 미칠까 신은
염려외다
   그러면--- 짐에게 어찌하란 말이냐?
   신은 이미 수하의 장졸과 의견이 일치되어 밝는 날 사자(使者)를
사비의 나당 양군의 군문에 보내어 항복할 뜻으로 있사옵기 부질없이
승산없는 항전(抗戰)을 단념하시고 상감마마께서도 항복을 하사--- 
  수성대장의 말끝이 채 마치기 전에
   무엄하다!  어느 앞이라 네가 감히 항복을 말하느냐?
  태자가 목소리를 돋구어 꾸짖었다.
   태자마마는 말씀을 마오.  지금 소장은 상감께 주달하고 있소
   너는 가만 있거라!  말을 듣고 보자
  왕이 힘 없으신 말씀으로 태자에게 말씀하셨다.
   거듭 아뢰거니와 상감마마께서 친히 항서(降書)를 쓰시와 신에게
주시오면 신이 적진에 보낼까 하오--- 만일---
  수성대장은 말끝을 흐리었다.
   만일--- 어떻다는 것이냐?
   만일 신의 주달을 듣지 않으시면--- 할 수 없이 신은 상감마마를
위하여 본의는 아니오나 적진으로--- 상감마마를 모실 뿐이요
  수성대장은 말을 마치고 왕의 기색을 살폈다.
   이놈!  네가 상감마마를 적진에 팔아버리고 적국에 공을 세울
작정이냐--- 이놈 너는 아마 간신 임자의 무리가 아니냐?
  태자가 분기를 이기지 못하고 소리쳤다.
   그렇소.  나는 임자대감의 천거로 이 웅진성 대장이 된 것이요.
그러나 소리만 높인다고 일이 되는 것은 아니오--- 상감마마 신의 의견에
확답을 내리시옵기 바라오
   네놈 하늘이 무섭지 않으냐?
  태자가 또 소리쳤다.
  왕은 몸을 와들와들 떨고 계시었다.
  분기를 참으시기에 떨리는 것이었다.
   네가 누구의 신하이냐?
  왕은 일부러 부드럽게 물으셨다.
   상감마마의 신하인줄 아뢰오
  그런데 짐에게 항복을 말하느냐?
   사세가 그렇소
   짐이 듣지 않으면---
   황송하오나 부득이 구집(拘執)하여 유폐해 모시고 적진으로 갈 뿐이요
  태자가 소리쳤다.
   죽일 놈!
  태자는 벌떡 일어나서 벽에 걸었던 패검을 내려 뽑아 들었다.
  그것을 보자 수성대장도 칼을 뽑았다.
  분명한 반역이엇다.
   무엇을 하느냐?  너희들은!--- 상감을 별실(別室)에 가두어라
  수성대장은 뒤에 섰는 군병들에게 소리치고 전각으로 뛰어 올랐다.
  태자의 칼과 수성대장의 칼이 맞부딪쳤다.
  칼과 칼이 부딪쳐 불똥이 튄다.
  병졸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왕을 끌고 전각 밖으로 나가려 한다.
  왕자 연이 빈손으로 병졸들에게 덤볐다.
  왕을 모시던 궁녀들은 목을 놓아 울며 헤맬뿐 어찌할 바를 모른다.
  분기를 못참아 먼저 칼을 뽑은 태자였으나 검술에 있어서 수성대장의
적수(敵手)가 아니었다.  태자는 칼을 떨어뜨렸다.
  날카로운 칼이 바야흐로 태자를 해하려는 때.
  솟아 오른 것 처럼 전각안으로 달려들은 한사람의 장한(壯漢)은--- .
  보기 좋게 수성대장의 목을 쳐서--- 그 목은--- .
  천정(天井)에 매달려 있는 밝은 등롱 불빛을 뚫는 핏줄기와 함께 전각
바닥에 굴렀다.
  이어서 장한은 왕을 잡아 이끄는 병졸들을 닿는대로 베었다.
   악
   으악
  외마디 소리.  비명과 함께 병졸들이 짚단 쓰러지듯이 자빠졌다.
  혈연(血煙)이 뻗친다.
  모두 짧은 순간의 일들이었다.
  태자와 궁녀들--- 그리고 왕과 왕자 연은 넋을 잃고 장한의 솜씨있는
날랜 활약을 바라볼 뿐이었다.
  병졸들이 손한번 써볼 겨를없이 다 쓰러뜨린 장한은 이내 피묻은 칼을
버리고 묵연히 서 있으시는 왕의 앞에 부복했다.
   서부(西部) 변경을 지키던 신 달솔(達率) 흑치상지(黑齒常之)로
아뢰오.  신 상지 망극하와 여쭈울 말씀을 모르오
  흑치상지는 가쁜 숨결에서도 그의 눈에서는 더욱 눈물이 떨어졌다.
   오, 네가 흑치상지!  짐은 너의 입시(入侍)를 가상히 안다
  왕은 긴장이 풀리셔서 그대로 자리위에 털석 주저 앉으셨다.
   신은 도성이 위급하다는 급한 파발을 받잡고 수병(手兵)을 거느려
사비로 가옵던 길 이미 상감마마 웅진으로 파천하셨다 하와 다시 이곳에
당도하온즉 수문(守門)의 군병이 신의 입시를 막기로 신은 의아하와 우선
수문의 군병을 베이고 들어와 이에 이르렀소.  신 외람되이 어전에
용무(用武)하옴은 만사무지로 아뢰오
  흑치상지는 칠척이 넘는 거구의 소유자였다.  그 칠척 장신이 비분에
떨며 말했다.
  그는 백제에 이름 높은 용장이었다.
   짐은 너로 인하여 욕을 면했다
  흑치상지의 손을 잡고 왕은 느끼어 우시었다.
   신이 끌어온 군병이 아직 천명이 다 못되오나 우선 반역에 가담한 이
성의 군병을 처치하고 상감마마를 받들어 모시기에는 충분하오니 만만
신념을 편하게 하소서
  왕의 울음은 통곡이 되었다.
  어느새 들어 왔는지 침전 뜰가엔 흑치상지의 수병들이 숙연히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조종(祖宗)의 성업(聖業)을 이 지경을 만들고 짐이 무슨 낯으로 지하에
들어가 열성(列聖)께 뵈인단 말이냐?
  왕은 목메어 우시며 태자의 옆으로 가셨다.
  순간!
  누가 말릴 사이도 없이 태자가 떨어뜨렸던 태자의 패검을 집어 드시고
이내 그 칼로 스스로의 목을 찌르셨다.
   앗!  상감마마
   아바마마
  태자와 왕자 그리고 흑치상지 궁녀들이 함께 왕에게로 달려들었다.
   놓아라!  짐은 죽어야 하느니--- 십년행락하여 나라를 이꼴로 만든
짐은 죽어야 마땅하니라!
  여러사람의 동작이 민첩하여 왕이 입으신 상처는 깊지 않았으나 워낙
주색에 손모하신 몸이시어 숨결이 몹시 가쁘시다.
   누가 없느냐?
  흑치상지가 뜰을 향하여 소리쳤다.
   네이
  병졸의 몇사람이 청령하고 나선다.
   바삐 성중의 의원(醫員)을 불러라!
   네이
  병졸들이 달려 나갔다.
   놓아라!  짐은 죽는다
  왕은 칼을 더 깊이 찌르시려 하셨다.
  그러나 칼을 태자에게 뺏기셨다.
  기막혀 우는 울음소리가 전각을 울렸다.
  뜰안에 무리지어 섰는 흑치상지의 군병들도 소리 없이 흐느꼈다.


第四章 悲愴

  이튿날 부터.
  한두사람 북부(北部) 군현(郡縣)의 성주(城主)들이 약간씩의 휘하의
병마(兵馬)를 이끌고 웅진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백제의 모든 고을의 성주들에는 간신 임자의 무리가 많았다.
  임자가 국권(國權)을 농단할 때 임자에게 가까운 자들을 많이 쓰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멀리했던 까닭이다.
  지금 임자에게 가깝던 자들은 도성이 두려 빠지고 왕이 참혹한 몽진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세의 돌아감을 관망하하여 태도를 결정하고자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아직 왕에 대한 충성심을 그대로 갖고 있는 성주들만이 모였다
할 것이다.
  그들이 거느린 군병의 수효는 적었다.
  그러나 그들의 의기는 만만치 않아 만일 나당의 군병이 이르면 생사를
걸고 한번 싸울 결의가 굳었다.
  흑치상지는 모여 온 성주들을 통솔하여 군병을 조련하고 넉넉지 못한
병기를 다시 정비하여 다가오는 싸움에 대비했다.
  왕의--- .  상처는 경미했다.
  응급히 불려온 의원의 치료는 효력을 발생하여 다소의 출혈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왕의 입으신 상처에 있지않고 왕의 몸과 더불어 극도로 약해지신
마음에 있었다.
   짐은 왕재(王材)가 아니로다.  짐은 조종의 유업(遺業)을 망쳤도다.
짐은 죽어야 하느니라
  왕의 눈에 눈물이 마르실 때가 없었다.
   짐은 적신(賊臣)의 칼아래 죽어야 마땅한 것을--- 
   차라리 죽어서 짐의 허물로 인하여 목숨을 끊은 성충 이하 여러
신하에게 짐의 허물을 사과해야겠다
  이렇게 슬픈 말씀만 하시었다.
  흑치상지 이하 성주들은 차례를 정하여 번을 들었다.
  거듭 왕이 자살을 도모하실까 하여서였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짐을 지키고 있느냐?
  왕은 숙위(宿衛)의 성주를 꾸짖으셨다.
   상감마마.  어의(御意)를 진정하소서.  신등은 상감마마를 우러러
모시고 나라를 다시 회복하려 하나이다.  부디 자애(自愛) 하시와 신등의
충정을 살피소서
   싫다.  물러가거라.  짐은 홀로 있고 싶다.  물러 가거라
  극도로 신경이 예민해지신 왕은 사람을 두려워 하시었다.
  십년 정사를 돌보시지 않고 무수한 후궁의 아름다운 궁녀들의 풍만한
육체에 파묻혀 끝없는 욕정의 파도속에서 술과 노래로 세월을 보내시던
왕이 일조에 적국의 군병으로 인하여 도성을 버리시고 또 믿고있던
스스로의 수성대장의 모반으로 인하여 거듭 놀라심이 컸으니 왕의 마음엔
일종의 강박관념과 같은 심각한 회의의 감정이 생겨났던 것이었다.
  작은 음향에도 깜짝깜짝 놀라셨다.
  작은 일에도 짜증을 내셨다.
   상감마마 신념을 진정하소서
  숙위의 성주는 그냥 왕의 앞에 부복하고 너무도 참혹하게 변하신 왕을
우러러 볼 뿐이었다.
  자진(自盡)하시려던 이후에는 태자와 왕자에게 까지 사납게 대하시고
어전에 태자나 왕자가 나타나면 역시 공연한 꾸지람을 하셨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
  사흘이 지나 십육일 아침 사비에서 웅진으로 피해온 왕손 문사(文思)와
문사를 따라온 군병과 백성들의 보고는 왕을 더욱 실의(失意)의
나락(奈落)으로 몰아 넣었다.
  그것은 왕이 도성을 맡겼던 왕자 태가 스스로 왕을 일컬으다가 드디어
적진에 항복했다는 것이요--- 또 수많은 궁녀와 비빈들이
대왕포(大王浦)로 달아나 암석위에서 백마강(白馬江) 푸른 물결에 차례로
몸을 던져 죽고 도성은 그대로 불바다가 되었다는 비보였기 때문이었다.
   아 슬프고나!  진정 슬프고나!  짐은 모든것이 귀치않다.  부귀는
무엇이며 향락은 무엇이며 삶은 무엇이냐?  왕업은 무엇이란 말이냐?
만사가 다 구름이다.  물거품이다.  하잘 것없는 공허로다.  짐은 차라리
모반했던 수성대장의 뜻을 용납하여 신라의 춘추(春秋=太宗武烈王)와
당나라 이치(李治=唐高宗)의 군문에 항복하여 번거롭지 않은 마지막
가련한 생명을 이어 가련다
  흑치상지 이하로 성주들은 서로 마주보고 비분할 뿐 왕에게 대꾸할 말이
없었다.
 누구나 짐의 길을 막지말라!  짐은 적군의 진문앞에 항복하러 가련다.
춘추와 이치가 짐을 죽이면 죽을 뿐 살려주면 살 뿐이다.  이 괴로움과
슬픔보다는 그편이 차라리 얼마나 짐에게 편할는지 모르리로다.  누구나
나의 길을 막지 말라
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시어 그대로 계석아래로 내려 오셨다.
  왕의 하시는 것을 바라보는 성주들은 묵연히 어찌할 바를 몰랐다.
   상감마마!
  흑치상지가 몸을 일으키어 바삐 왕을 따라 계하에 내려가 걸음을
옮기시는 왕의 용포 소맷자락을 잡고 무릎을 꿇었다.
   상감마마!  신 흑치상지 죽음을 무릅쓰고 아뢰오.  상감마마는 아직도
백제의 하늘이시고 백제의 빛이시외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데 자고로
위급한 지경을 당한 나라가 하나 둘이 아니오며 도성을 빼앗겼던 군왕이
또한 하나 둘 뿐이 아니외다.  인간이 최선을 다하고 비로소 하늘의
도움을 기다릴 수 있다고 신은 생각하오.  신등 지금 일신의 존망을
생각하지 않고 다시 백제의 회복을 뜻하옴은 오직 상감마마께서 위에
임어(臨御)하여 계시기 때문이외다.  지금 상감마마 신등의 미충(微忠)을
버리시고 적의 군문에 항복하시면 신등은 뜻을 어디에 모아 적을
대항하오리까?  상감마마께서 지금 가시오면 신등에겐 하늘이 없어지고
빛을 잃은것과 다름없는 줄 아뢰오.  통촉하옵소서
  흑치상지의 말소리는 불을 뿜는 것 같이 들렸다.
  태자와 왕자 그리고 궁녀들도 마당에 내려와서 왕의 기색을 살핀다.
  성주들도 추연한 빛을 띄우고 흑치상지의 등뒤로 모였다.
  흑치상지의 말은 옳은 말이었다.
  왕이 계시므로써 비로소 그들의 적병에 대한 항전 의욕을 발휘할 수
있었고 단결이 되어있는 것이다.
  왕에 대한 충성심이 곧 그들의 항전할 의욕을 갖게 하였고 그들을
단결케 한 것이다.
  왕이 계시므로써 그들은 승패이둔(勝敗利鈍)을 가리지 않고 한몸의
존망을 돌아보지 않고 수효적은 군병을 이끌고 이 웅진에 모인 것이
아니냐?
  만일 왕이 적진에 항복하면 그들은 대들보없는 서까래처럼 흩어져 버릴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
   아니다.  짐은 세상에 모든 것을 다 못믿는다.  믿고 있었던 맹약의
나라 고구려에서도 소식이 없다.  고구려가 짐을 저버린 것이다.  짐은
아들에게 배반을 당했다.  사비성을 맡긴 짐의 아들 태는 짐이 없는
동안에 스스로 왕을 일컬었더ㅏ.  충신인줄 믿었던 임자는 간신이었고
짐이 총애하던 금화는 짐을 망치지 않았느냐?  짐은 외롭다.  무섭다.
짐은 왕이라는 자리가 싫어졌다.  짐은 춘추와 이치에게 이 목숨을 맡겨야
겠다.  그들에게 자비를 구하련다
  왕은 소매를 뿌리치고 걸음을 옮기셨다.
  쇠약한 왕의 걸음은 비틀비틀 몸을 잘 가누지 못하셨다.
  그러나 누구하나 왕의 앞을 가로 막는 자는 없었다.  모든 사람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왕의 뒤를 따를 뿐이었다.
   상감마마!
  누가 비통하게 불렀으나 왕은 돌아다 보시지도 않았다.
  왕이 이궁(離宮)의 삼문밖을 나서시매
   상감마마 신등도 가오리다!  모시고 가오리다.  잠시 걸음을 멈추시오.
 거마(車馬)를 차리오리다!
  왕의 뜻을 돌릴 수 없음을 알자 흑치상지는 할 수 없이 이렇게 말했다.
   누가 없느냐?  거마의 차비를 해라!
  명령하는 흑치상지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나라와 신하를 버리고 적진에 항복하려는 왕에게 오히려 충성심을
버리지 못하는 무부의 더운 눈물 이었다.
  흑치상지뿐이 아니라 성주들, 그리고 그들의 군병들도 다 눈물을
머금었다.
  태자 효(孝) 그리고 연, 궁녀들도 목놓아 울고 있었다.
  비참한 기운이 웅진성중을 덮고 있는 듯 했다.
  아침해는 동쪽 하늘에 높건만 그 해는 이미 백제의 해가 아니요 적국의
해다.
  그 햇살은 옛이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건만--- .

  계창과 천절이 지름길 내리막을 내려와 큰길로 나서서 멀리 웅진성이
바라보일때---
  웅진성문으로 부터 두사람을 향하고 나오는 긴 행렬을을 바라보고
의아한 마음을 갖는 계창과 천절이었다.
   계창아!  저 무슨 행렬일까?
  묻는 누이에게
   누님!  반드시 사비로 진격하려는 우리 군병의 행렬인가 보오.
상감마마가 몽진하신지 이미 오륙일이니 북부의 여러 고을의의 군병을
모아 다시 적군에게 빼앗긴 사비로 진군하는 행렬이 분명하오
  항복이란 계창의 마음엔 털끝만치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말!  그렇구나!
   누님 됐소.  당병에게 패하여 쫓겨온 계창이 죽지않은 보람이 있소.
이번에야 말로 계창은 군병의 행렬에 가담하여 마음껏 싸워 보겠소!
   오냐!  누이도 정성을 다하여 상감마마를 섬기겠다
  오누이는 끓어 오르는 흥분을 참을 길 없이 서로 바라보았다.
   어서 가오!  누님
   바삐 가자
  새로운 희망을 느낀 두사람은 걸음을 재촉했다.
  행렬은 점점 가까워졌다.
  계창과 천절은 더욱 걸음을 빨리 했다.
  천절의 얼굴이 상기가 되어 아름답다.
  계창의 얼굴엔 비분의 빛이 스러지고 환하게 밝다.
  행렬의 선두는 말을 탄 장군이었다.
  계창이 바라보니 틀림없는 흑치상지의 의연(毅然)한 모습이었다.
  흑치장군의 뒤를 보니 행렬의 중간쯤 말위에 누런 용포를 입으신 왕.
  계창은 흑치장군의 말앞에 무릎 꿇었다.
   장군!  무독 계창이요
  기쁨에 넘쳐 말하고 쳐다보니 흑치장군의 얼굴이 지극히 어둡다.
   ?
  생각하는데
   오 계창
  흑치상지의 말소리는 힘이 없었다.
  일찌기 서로 알던 사이였다.
  천절도 왕의 모습을 먼빛에 보고 길가 풀섶에 무릎꿇고 두손을 땅에
짚었다.
   장군!  계창은 싸움에 패하고 왔소.  그러나 이 손으로 간신 임자와
요녀 금화를 베이고 왔소.  사비로 진격하시는 행군이라 보오니 계창은
기쁘외다
   -----
  흑치상지는 외면을 하였다.
  흑치상지의 탄말이 멈추니 행렬은 스스로 멈추어 졌다.
   장군.  계창도 다시 싸우겠소.  계창으로 하여금 선봉에 서게 하여
주오
   계창!
  비로소 흑치상지가 말문을 열었다.
   네이
   진격이 아닐세!
   그러면?
   항복의 길일세
   네이?
  계창은 귀를 의심했다.
  백제의 보반이 항복을 말하는 것을 듣지못한 계창이었기 때문이다.
  항차 흑치상지의 입에서랴?
  천절도 의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
   항복이요?
   묻지말게--- 항복은 어의일세
  진정 기막히는 말이었다.
  아찔한 실망을 느끼고--- .
   항복이요?
   더 묻지 말게.  괴로워서 말을 못하겠네.  내 신하가 되어 상감마마를
모시고 갈 뿐일세
  이때 뒤에서 전갈이 왔다.
   어찌하여 길을 멈추느냐는 상감마마의 전갈이요
   도성을 탈출한 군교로 인하여 잠시 멈추었으나 곧 떠나겠다 여쭈어라!
  흑치상지가 전갈의 군병을 보내고 계창에게 빠른 말로 말했다.
   상감마마의 상심하심은 말하기 어렵다.  스스로 자문(自刎)하시려
하시기까지 하시어 경미하지만 상처를 입고 계시다.  웅진에는 충성된
성주들이 군병을 이끌고 모여와서 적군과 일전의 준비도 되었으나
상감마마께서 항복을 고집하시니 내 인신의 몸으로 어찌할 수 없이 지금
상감마마를 모시고 적진으로 가거니와 만일 적국에서 상감마마를 대우함이
무례할 때엔 나는 적진을 탈출하여 재기를 도모할 작정이다.  웅진에
모였던 성주들 중엔 항복하신다는 상감마마의 말씀을 듣고 병졸을 이끌어
지금 임존(任存)성에 계신 은솔(恩率) 부여복신(扶餘福信)장군의 아래로
달아난 몇사람이 있다 또 오산(烏山=禮山)에는 전(前) 좌평
자진(自進=道深)대감이 계시어 복신 장군과 반드시 합세하실 것이니
그대로 지금 항복하시려는 상감마마를 따를 생각은 말고 임존성으로 가게,
임존성은 우리백제의 북쪽요새로 비록 백만의 적병이 온들 난공불락할
험지일세.  할말이 많으이.  그러나 상감마마 또 꾸중이 계실까하여 그냥
가네
  흑치상지는 고삐를 당기어 말을 몰았다.
  행렬이 따라 움직였다.
  이윽고 왕이 타신 말이 계창과 천절의 앞을 지나 간다.
  천절!
  흑치상지와 계창의 말을 다 들은 천절의 가슴은 찢어지는듯 했다.
  십년을 그리우다가 지금 길섶에서 뵈옵는 왕의 참담하게 초췌하신
모습을 우러러 바라보는 천절!
   상감마마 십년전 대궐 후원에서 은혜를 입자온 천절이오이다
  천절이 고개만 들고 외쳤다.
  그러나 왕은 묵묵히 말이 없으시고--- 그대로 말을 몰아 지나가셨다.
  천절은 몸을 일으키어 왕을 따르려 했다.
  열일곱이 되기전에 어린애 천절 가슴에 아로색여졌던 왕에 대한 사랑의
회포를 갖고 십년 숨어 흐르는 지하수처럼 간직해 변치않던 사랑이 이제
혹발하는 분수처럼 터져 쏟아졌던 것이다.
  그러나 왕을 따르려던 천절은 소매자락을 잡는 계창으로 인하여
멈추어졌다.
   계창아 왜잡느냐?  이몸은 상감마마를 따르련다.  놓아라.  물이든
산이든 북이든 지옥이든 상감마마가 계신 곳이면 나는 따라가야 한다
   누님!
   놓아라!
   누님!  상감마마는 항복의 길을 가시고 있소!  계창은 항복을 버리고
싸움을 택했소.  계창은 임존으로 가려오
  항복의 행렬은 아직도 지나가고 있다.
   나는 상감마마를 따르련다
   누님!  상감마마는 적진으로 가시는 것이요.  계창도 상감마마를
모시고 가고 싶소.  그러나 상감마마를 모시는 충성보다 계창은 적군과
싸워서 잃은 나라를 찾는 싸움으로 충성을 하려하오
   누이는 상감마마가 계신 곳으로 가련다.  신라든 당나라든 상감마마
가시는 곳으로--- 
  뿌리치는 천절!
  놓치 않으려는 계창!
   누님!  계창과 함께 가시오
   계창아.  너는 임존으로 가거라.  상감마마는 누이를 잊으셨는지
모르나 누이의 가슴엔 날이 갈수록 더욱 더욱 그리움이 더한 것을
어찌하느냐?  누이는 상감마마를 모시는 충성을 하련다
  행렬은 다 지나갔다.
  길 위엔 하얗게 먼지가 인다.
   계창은 누님을 적진에 보내기는 차마 못하겠소
   나도 너를 떨어져 있기 어려울줄 안다.  그러나 이 가슴을 이 마음을
어찌하느냐.  평생 상감마마의 돌보심을 못받을 지언정 누이는 상감마마의
옆에 있고 싶다.  누이는 계집사람이어서--- 
  천절의 흥분이 좀 가라앉았다.
  오누이는 길가 풀섶에 앉아 서로 바라보았다.
   누님.  진정 가시려오
   저 참혹하게 형모가 초췌하신 상감마마를 꼭 따라가야겠다
  진정?
   상감마마가 불쌍하시다
  계창의 얼굴에는 비장한 결의가 떠 올랐다.
   누님.  가시오
   계창아!
  가라는 말엔 천절이 다시 계창을 바라본다.
  오누이!
  한 어버이에 태어나 한 젖을 빨고 자라 의지하고 살아온 오누이!
   너!  누이는 가야겠다.  몸조심해라
  천절은 몸을 일으켰다.
   누님 계창은 임존으로 가겠소
   나는 사비로--- .  상감마마를 따라--- 
   누님 몸조심 하시오
  오던 길은 함께 왔건만 지금 헤어져야 하는 오누이들의 가슴에는 만단
회포 구비 구비 서린다.
   어서 가시오.  이것이 생전의 이별이올는지--- 
   네가 먼저 가거라!
  막상 이별이라 하니 유연(油然)히 샘솟는 오누이의 정을 느끼는
천절이었다.
   누님이 먼저 가시오
   네가--- 
  두사람의 눈에는 다 눈물이 흘렀다.
  계창이 돌아섰다.
   누님!  잘 가시오
  계창은 달음박질로 걸었다.
  눈물이 어려 아무 것도 잘 보이지 않는다.
  돌아다 보지 않았다.
  길이 산기슭을 구비돈다.
  거기서 계창이 고개를 돌렸다.
  천절이 아직도 헤어진 자리에 그냥 서있고 멀리 고개를 넘는 왕의
항복의 행렬이 보인다.
   누님!
  계창은 입속으로 불러 보았다.
  몇걸음만 산기슭을 돌면 다시 누이의 모습을 못보리라.
  강잉히 계창이 걸음을 걸었다.
  서너걸음!
  인제 계창의 시야(視野)에 천절의 모습이나 왕의 행렬이 보이지 않는다.
  계창은 몸을 돌려 누이가 보이던 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누이 천절이 돌아서서 왕의 행렬을 따라가고 있다.
   누이도 울며 가리라!
  생각하니 눈물이 막 쏟아져 나온다.
   잘 가시오
  노까려 보고 계창은 돌아섰다.
  먼 하늘에 구름송이가 흘러간다.
   저 구름송이!  저 구름송이가 한번 바람결에 흩어 지면 다시 언제
모일까?
  계창은 이렇게 생각하고 얼굴에 흘러 내리는 눈물을 씻을 생각도 않고
걸음을 옮겼다.
  계창의 눈에는 돌아서서 왕의 행렬을 따라가는 누이의 가여운 모습이
역력히 보이는듯 했다.
  계창은 또 불러 보았다.
   누님!

< 끝 >

( 1996년 5월 21일 22시 25분. ...)

 


<제 십 화>
韓末逸話(한말일화)
金議官 叔侄


  1
  하필 동대문 밖 동적전(東籍田)에서 고종황제(高宗皇帝)의 친경(親耕)이
설행(設行)되는 날과 일본의 소위 원훈(元勳)이라는 늙은 이리같은
통감(統監) 이등박문(伊藤博文)이 서울에 도착하는 날과 겹질러서
마주쳤다.  하필이면 우연히 그렇게 된 것 같지마는 아무리 국운(國運)은
이미 기울었다 하여도 엄연한 일국의 지존(至尊)인데 국본(國本)인 농업을
장려하려고 군왕이 친히 쟁기를 잡고 농사를 짓는 국가적 성의(盛儀)를
거행하는 날자를 어제 오늘에 불시로 정하였을 리 없고 또 한편
이등박문의 내조(來朝)로 말할지면 호시탐탐, 이웃 나라를 집어 삼키려는
저희 나라의 국책을 띄우고 움직이는 국가의 대표이거늘, 이 역시 그
오고가는 것을 하루 이틀에 정하였을 리 없으니, 반드시 미리 양국 간에
연락이 있었을 터이라.  그런데 무엇때문에 꼭 이날을 택하여 황제의
친경과 이천만 국민의 뼈에 맺힌 원한을 품고 적시(敵視)하는
일사(일본사신)을 한날에 맞아 들이도록 일을 꾸몄는가 말이다.  여기에는
필연코 곡절이 있어, 일부러 꾸민 노릇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동적전은 장소가 비좁아서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없으니, 각학교의 각반에서 반장, 부반장, 둘씩만 내보내라는 지시요,
이등이가 들어오는 정거장에는 동적전에 보내는 몇십명 학생 외의
전교생이 다 나가서 출영을 하라는 것이었다.  지금같은 시절이 아니라,
서울안의 학교가 그리 많지 않다 하더라도, 소학교, 중학교, 전문학교까지
전교생이 동원 된다면 지금의 서울역--- 그때의 남대문역에서부터
이등이가 들어갈 왜성대(倭城臺)의 사처까지 좌우도열(左右堵列)로 사람의
성을 쌓게 될 것이니 굉장한 위의(威儀)를 보이자는 것이다.  임금의
거동이나 국가적 의례(儀禮)는 아주 초라하게 해서 집어 치우고, 나라를
뺏으려고 도끼 눈을 뜨고 손톱 날을 날카롭게 하여 가지고 오는
외국사신을 환영하는데에는 세계의 이목을 속이려는 얕은 계책도
있겠지마는, 첫째는 민심이 응하나 아니하나 어디 보자는 것이요, 둘째는
민중을 위압하는 틀을 세우자는 정책이었던 것은 다시 말할 것 없다.
이때의 한국정부라는 것은 허울만 남아 있었지,  샅샅이 파고 들어서
실권을 쥐고 있던 일본놈에게 좌지 우지 되고 있었던 것이다.
   너 왜 오늘 집에만 들어 앉었구, 동적전에두, 남대문 역에두 안나갔니?

  금방 정거장에서 들어온 김의관(金議官)은, 저녁밥 되기를 기다리면서,
땅거미가 짙어가는 사랑마당을 빙빙 돌고 있던 조카 진하더러 못마땅한
눈치로 말을 걸었다.
   동적전에두 못나갔는데, 무슨 정성에 그깐놈을 맞으러 나가겠에요?
작은 아버지께서 우리집 대표로 나가셨다 오셨으면 고만이죠.  김씨집
살일 났습니까
  진하는 잘못하면 코웃음을 칠뻔하였다.
  인제야 소학교 사학년인 열네살짜리로서는 엄청나게 숙성한 소리요,
어른으로서 들을 수 없는 괘씸한 말버릇이었다.
  김의관은 하도 기가 막혀서 당돌히 눈을 말뚱말뚱히 뜨고 마주섰는 어린
조카 자식을 눈길로 나무래며 한참 바라보다가
  (대가리의 피도 안마른 놈이 무엇을 안다고--- 썩썩 나가거라)라고
호통을 치려다가, 마음을 쑥 눌러서
   그런거 아냐.  네깐 놈이 뭘 안다구 중뿔나게 그러는거냐?  남하는대로
따라가야지
  이렇게 한마디만, 거칠어 나오려던 숨소리를 죽이며, 타 일러 놓고 획!
돌쳐 마루로 올라갔다.
  진하도 분통이 터지는 것을 참고 대문 밖으로 휙 나와서 어두어 가는
먼산만 바라보고 섰다.
  진하는 지금 어린 마음에 난생 처음으로 커다란 일을 하나 해내었거니
하는 으쓱한 마음에 잠겨 호기를 봄내고 싶었던 것이다.  정거장에 아니
나갔다는 것은 조그만 일이지마는, 이등박문이를 무시하였다는 일이, 즉
일본에 대항하였다는 것이 무시무시하게 커다란 일이라고 믿는 것이다.
  (흥!  작은 아버지두 한때는 지사(志士)였지마는--- )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고, 민충정공(閔忠正公)이
순절(殉節)하였을 때는 하룻밤을 통곡으로 새우던 그 작은 아버지는 간데
없고, 그것두 말씀이라고 하시는거야?  하며 진하는 어린 가슴을 바르르
떨며 분개하는 것이었다.
  하기는, 지금도 김의관은 고성낙일(孤城落日)에 마지막판인
정우회(政友會)를 사수하고 있는 것은 자기 뿐이라고 큰 소리를 치고
있다.  정우회는 적어도 전날의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의 정신과
투지(鬪志)를, 대한협회보다도 정통적으로 계승한 것으로서,
일진회(一進會)화 싸우는 굳은 결의와 지조(志操)는 결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것을 언제나 내세우는 김의관이었다.  이런 것이 진하에게도
은근히 자랑이었던 것은 물론이다.
  그러던 작은 아버지가, 통감 이등박문이를 마중 나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지마는, 그것은 회를 대표해서 마지 못해 그랬다 치더라도 진하가
정거장에 안 나갔다고 해서 그렇게 얼굴빛까지 달라지며 무엇이 잘났다고
쥐뿔같게, 남 하는대로 따라가지 않았느냐고 나무란 것은 기막히고 분한
일이다.
  항일투쟁은 어른에게 맡기고 너는 공부나 잘해라.  어린 것이 지금부터
그러한데 머리를 쓰고 속을 썩이게 되면, 공부도 제대로 하기 어렵고
일생을 두고 고생일 것이라고, 여기지름(여겨짐?)으로 그렇게 눌러버리는
것이라면, 또 다시 생각할 점도 있기는 한 일이다.  그러나 삼촌이
그렇게까지 조카자식의 장래를 염려하고 아껴 준다고 할 수 있을까?
김의관은 자식도 없지마는, 아들이 없어 하는 사람도 아니요, 조카자식을
맡았다해도 그저 와 있나 할뿐이지, 원체 가사에도 그렇지만 아랑곳을
하는 삼촌도 아니었다.
  (에이, 시끄러운 세상!  이런 꼴 안보구, 시골에 틀어박혀 있었더라면
도리어 좋았는걸!)
  숙성한 진하는, 어른처럼 시국을 비분강개하고 삼촌에게도 반항하는
분심만이 치밀어 올랐다.

2
   이제야 말이지, 월전에 송병준이가 나를 좀 만나자기에 가 보았더니,
그, 그러지말구, 이용구(李容九)를 한번 찾아가 보라더구먼.  온(원?)
말이나 되는 말이어야지
  저녁때면 사랑에 모여드는 축들을 앞에 놓고, 김의관은 의기 양양해서
자랑삼아 하는 말이었다.
   추파송정(秋波送情)도 있을법한 일이지만, 그래 조건은 뭐랍디까?
  그 누군가가 말을 받는다.
   조건이 무어거나 도대체 말 같아야 말이 되지
하며 주인은 코웃음을 친다.
   하지만, 영감의 개결(介潔)한 성품으론 그럴지 몰라도, 외곬으로만
생각할게 아닐듯한 것 같은데--- .  아무래도 점점 대세는 기울어져 가는
이 판국에, 누울 자리를 보구 다리를 뻗으랬다구, 미구에 닥쳐올 사태를
고려해 봐야지 않겠소.  한사람의 손으로 막아낼 대세(大勢)가 아니고
보니, 고집만 부릴게 아니라, 앞날의 보신지책이라는 것도--- 
  옆에 앉았는 김의관과 연상약한 중늙은이가 천천히 말을 하다가 뒤를
흐려버리고 만다.  좌중은 침통한 낯빛으로 모두 덤덤히 앉았다.  그
침통한 빛이라는 것은 시국을 비분해서라느니 보다는
  (무어 뻔한 일인데--- )
하고 더 앙버티어 보았댔자 별 수 없지 않느냐는 절망적이요
타산적이면서도, 체면상 그런 말을 꺼내기가 어려워서 그런 낯빛들을
지어보이는 것이었다.
   그야 내 자리는 벌써 마련되어 있으니, 염려말고, 이용구만
만나보라는거지마는--- 
  김의관의 안색에는 그리 침울한 빛도 없고, 걱정이 된다는 검은
그림자도 없이, 가볍게 도리어 자랑 삼아 하는 말이었다.  그 눈치로
보아서는, 아까,  말이 안되니까 거론(擧論)할 것도 없다 고 쾌쾌히
큰소리를 치던 것과는 다르다.  송병준이가 일진회에 포섭하겠다는 것을
거절한다는 말이 아니라, 오라는대로 가도 좋지마는 어떻게 혼자만
가겠느냐?  몇 안되는 식구지마는, 부하와 동료들을 적당한 자리에 앉히게
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이라면 생각해 볼 여지도 없다(있다?)는 말 같다.
   하여간 무슨말이 나오나 만나나 보시구려
  또 누구의 입에선지 이렇게 권고하는 소리가 창밖으로 새어 나왔다.
  사랑이래야 일자로 두간방 하나와, 장지를 격해서 달린 됫박같은 이편
끝방에는, 진하가 상노겸으로 대령하고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른들의 숙설거리거나 떠들어대는 소리가, 늘 그게 그 소리 같아서 별로
신통한 것도 없고 들어야 잘 터득이 되는 것도 아니니, 귀담아 듣자는
것도 아니나, 송병준이니 이용구니 하는 이름이 귀에 스치니 자연 그리로
정신이 쏠리는 것이었다.
  자강회를 당시의 내무대신 송병준이가 해산시킬 때 펄펄뛰던 작은
아버지다.
  그것은 고사하고 송병준이나, 이용구라면 삼척동자라도 모르는 애가
없다.  그 송병준이가 만나자는데 쭐레쭐레 가는 삼촌이 알 수가 없는
양반이요, 게다가 만나보고 온 이야기를 자랑삼아 하다니?  아니, 그것
때문에 저렇게모여앉아서 숙덕공론을 하는 것인 모양이지마는, 이용구도
만나보라고 권고하는데에 작은 아버지가 무어라고 대답을 하나 하고 귀를
바짝 기울이고 있었으나 작은 아버지는 거기에는 아무 대꾸가 없다.  의례
허세로라도 펄쩍 뛸줄 알았더니, 대답이 없는 것을 보면, 솔깃해 하는
모양이다.
  진하는 입을 비쭉하였다.
   송과 만나게 된 것은, 누가 중간에 나선건 아니요?
   아니!
하고 보면 송병준이와 어느새에 친해졌는지는 모르지만, 송에게 진정해서
그런 운동을 하고 다녔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들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이등이가 동경에 다녀온 뒤로는 좀 눈치가 다르대
  또 누구의 목소린지 한마디 화두를 돌렸다.
   왜?
  좌중은 눈들이 커다래졌다.
   이젠, 저는 차차 물러서려는 준비를 하는 눈치같더래
  이러한 중대한 정보를 알아내서 제공한다는데에 큰 자랑을 느끼는 말
소리였다.
   그럴지도 모르지,  성공자 거(成功者 去)니까
  시국에 무슨 중대한 사태가 또 벌어지지나 않을까 해서 긴장하였던
좌중은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에 이런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날이 긴박해 가는 시국을 들여다 보면 기막힌 일이지마는, 저희로서는,
더구나 이등이로서는 성공자인 것이다.  하여간 이등박문이같은 거물이 이
강산에서 자취가 사라진다는 것은, 그뒤에 누가 오나 마찬가지라 하여도
다행한 일이었다.
   후임에는 누가 올텐구?
   그야, 증니(曾 示+爾)가 올라 앉겠지
  부통감 증니황조(副統監 曾니荒助) 말이다.
  과연 이 정보는 적중(的中)해서, 그해 육월에 이등박문이는 갈리고
증니가 통감이 되었다.  증니야 이등이보다 인물이 수층 떨어지지마는 다
파먹고 빈 껍질만 남은 --- 네 기둥만 남은 집 한채 쓰러뜨리기에 증니
아니라 증니의 손자인들 못하겠는가.
  그것은 고사하고, 정작 송병준이가, 이용구를 시켜서
한일합방(韓日合邦)을 부르짖게 하고, 저도 이등이한테 긴하게 보이려고
앞질러 서두르다 도리어 이등이의 눈밖에 나서 내무대신을 내놓고
동경으로 가버렸으니, 김의관이 송병준이를 만난 것은 물론 그전의
일이겠지마는, 끈떨어진 망석중이가 되어버렸다.  그러니
요지막(요즈음)은 이용구를 만나고 어찌고(어쩌고)하는 문제도
식어버리고, 누구하나 그 문제를 다시 꺼내는 사람도 없이 잠잠하여졌다.
  그러는 동안에 일제는 한국의 경제권(經濟權), 사법권(司法權)까지를
마지막으로 뱄어갔지마는, 한편으로는 다행히도 이 해(隆熙三年,
西紀1909年) 시월 이십 육일에 동청철도(東淸鐵道) 할빈(哈爾賓:합이빈)
역두에서 이등박문이가 우리의 안중근 의사(安重根 義士)에게 쓰러지고
말았다.  여기에서 다행이란 말은, 우리의 적년(積年)의 원수를 갚었으니
말이요, 그보다도 또 하나의 큰 도둑 구명을 찾아서 장차 그 소위
대륙정책(大陸政策)이라는 만주침략(滿洲侵略)을 그 첫걸음에서 막아서
동양평화(東洋平和)를 위하여 그 공헌(貢獻)을 우리의 민족의 손으로
성취하였으니 말이다.  쉽게 해서 동양을 뒤흔들고 세계의 평화를
깨뜨리려는 강도의 우두머리를 잡은 셈이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이미
때를 놓쳐서 뺏길대로 다 뺏겼지마는, 문전에서 기웃거리는 그 강도를
뒤쫓아 간 우리의 안의사의 손으로 넘어뜨려서, 우선은 4억만 중국 백성이
베개를 높이 베고 편히 잘 수 있게 되었으니 다른 어느 동양사람보다 먼저
중국사람들이 고마워 해야 할 것이다.
  하여간에 이등이가 죽자, 학교에서 이 소식을 들은 지하는, 입가에
웃음이 피어오르는 것을 감추기에 애를 쓰면서도 속으로는
  (그거 봐라!)
하고 곧 입에서 만세라도 터져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비틀어진 정우회의
문패를 문전에 붙이고, 그 조고만 사랑방 속에 들어앉았던 김의관은, 이
소식에, 처음에는 당황하다가 차츰 차츰 얼굴빛이 반 죽게가 되었다.
이등이가 죽었다고 무슨 뼈저릴 일이야 없겠지마는, 일진회에 들어가려다
만것이 뉘우쳐지면서, 통감부의 벼락같은 탄압이 자기에게도 휩쓸려 올까
보아서 지레 겁을 집어 먹었던 것이었다.

3
  그후 반년 남짓 넘어 이듬해(庚戌年 - 1910年) 초여름 어느날이었다.
그동안에 진하는 소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1년생이 되었을 때다.
학교에서 파해 나와서, 삼촌 집에를 마악 들어 서려니까, 새파랗게 얼굴이
죽은 작은 어머니가 문간으로 마주 나오며, 오들오들 떠는 목소리로
   얘, 작은 아버지 못봤니?  지금 금방나가셨는데--- 
하고 말도 잘 어무르지 못한다.(더듬거린다?)
   아뇨.  왜 그러세요?
  진하는 심상치 않은 기색에 눈이 둥그레졌다.  소식적부터 아이가
없다는 것이 핑계로 싸움도 잦았고, 첩을 몇씩이나 갈아 들어가며,
근년에는 영 본집은 모른척 하다가, 남은 땅데기나마 다 없애고야, 인제는
할 수 없어 작은 어머니한테로 기어들어서 고개를 못들고 사는 처지라, 또
늙은 이 내외의 싸움이 벌어졌고나고, 진하는 예사로히 생각하면서도 하두
서두는 품에 놀랬다.  그러나 작은 어머니는 울음 섞인 목메인 소리로
   얘, 헌병대(憲兵隊)에서 모셔 갔단다!
하는 한마디에 진하는 눈이 번쩍 띈듯이, 손에 들었던 검정책보를 작은
어머니한테 내던지듯이 주고 곤두박질을 해서 문밖으로 나섰다.  진하의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다만 한가지, 작은 아버지가 헌병대에 잡혀 갔다니
친일파(親日派)는 아니로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얘, 너 헌병대 아니?  바루, 요리 나가셨단다.  남산 밑이란다
  삼촌댁은 허겁지겁 따라나오면서 전찻길로 빠지는 길을 가리켜 주었다.
  진하는 듣는둥 마는둥 뒤도 안돌아다보고 달음질을 쳤다.
  아무리 삼촌이라도 육친의 애정이나 정리로 문제가 아니다.  이 시절에
헌병대라면 목숨을 내걸고 끌려가는 생지옥이다.  한번 끌려가면 다시
살아 나올 가망은 없는데다.  거기를 오십이 넘은 중늙은이가 끌려갔다면
생주검이 되어 나올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이러한테로(이런 곳으로) 잡혀가니
작은 아버지는 진짜 항일과, 배일파이었던, 역시 애국지사이었고나! 하는
생각에, 진하는 감격 하였다.  그런 것은 모르고 이때껏 오해를 하고
미워하였던 것이 뉘우치고 죄송스러웠다.
  헐레벌떡 전찻길로 빠져 나가서 큰 길을 건너 사람이 복작대는 틈을
비집고 거슬러 올라가며 남산쪽으로 가는 길을, 좌우로 눈을 휘휘 돌려
찾으며 뜀박질을 하였다.  회색 학생복을 입은 조고만 소년은, 얼굴이
샛빨개지고 모자 차양밑에서는 땀방울이 비 오듯 하였다.  숨이 턱에 닿고
다리의 힘이 차차 풀리었다.
  그러다가 어쩐둥 왜성대(남산) 쪽으로 휘는 길 모퉁에서 작은 아버지의
뒷모양을 눈길 끝으로붙들었다.  진하는 마음이 덜컥하고 급작시리
가라앉으며 기운이 확 풀려서 뛰어 가던 발길을 느꾸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이만한 거리면,  원광으로 놓치지 않고 뒤를 달키에 알맞았다.
무엇보다도 작은 아버지가 수갑을 차지 않은 것이 다행하고, 데리고 가는
사람도 군모(軍帽)에 검정테를 두루고 육중한 환도를 차고 붉은 장화를
신은 정복한 헌병이 아니라, 평복을 입은 것이 좋았다.
  호젓한 관청거리인지, 사택 거리인지 일본사람의 거류지를 휘돌아서
두사람의 그림자가 사라진데는 보초가 섰는 대일본 제국 육군
헌병사령부이었다.  두 그림자를 놓친 소년은 그 보초가 무서워서
문전까지 가지도 못하고, 멀거니 바라만 보다가 그대로 돌쳐서고 말았다.
그때의 진하의 꼴은, 지나가는 인적 하나 없는 헤넓은거리를 혼자 어깨를
쳐뜨리고 비쓸비쓸거리는 초상집 개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집에서는 김의관의 같혀 있는데를 안 것만 다행해서 이튿날부터
하루 세끼 밥을 해 가기에 없는 하인을 불시로 얻어들이고 돈 구처를
하러다니고 하기에 작은 어머니는 밤잠도 못자고 얼굴이 반쪽만해졌다.
그러나 대관절 무엇때문에 붙들려 들어 갔는지, 언제나 끝이 날 일인지
알아야 말이지, 간신간신히 조석을 이어나가는 집안에서 초조하기란 짝이
없고 기가 막혔다.
  그러던 김의관이 일주일쯤되더니 풀려 나왔다.  집안에서는
반가우면서도 도리어 깜짝 놀랬다.  진하도 어리둥절하였다.  진하로서는
반갑다기 보다도 잔뜩 삼촌을 존경하는 새로운 감정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쉽사리 풀려 나온 것이 이상하게도 큰 기대에 어그러진듯이 서운한
것이었다.
   얼마나 고생하셨어요?
하고 물으면 김의관은 그저 가벼이 웃으면서
   응, 아무일 없었어.  저희가 설마 날 어쩔라구
하며 혼연히 대꾸하는 것이었다.   저희가 설마 나를 어쩔라구 하는 말은,
자기의 지체, 위신, 배경 등을 자랑하는 말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듣는
사람들은 곧이 들리지 않았다.  그저 의아하면서도  헌병대 라는데가
어떤덴데! 하고 가만히 눈치들만 보았다.
  그러는 동안에 차츰차츰 생활이 늘어가는 것이 눈에 띄우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어디서 돈이 새어나오나 이상하게들 생각하였다.
  소위 정우회라는 간판을 문전에 붙여 놓고도, 겨울이면 화롯불 하나없이
입을 혹혹 불고 앉아서 그럴듯한 고담준론(高談峻論)만 서로 경쟁적으로
터뜨리고 있었고, 여름이면 부채 한자루 없이 땀을 질질 흘려가며 바둑
장기로 배를 골려가며 세월을 보내던 그들인데 김의관이 그 무서운
헌병대를 다녀 나오더니, 살림이 늘어간다는 말에 누구나 눈을 다시 한번
떴다.  진하는 힘이 빠진다기 보다도 풀이 없어졌다.
  그런지 한달이 못되어서 김의관은 수표교다리 집을 내놓고
와룡동(臥龍洞)으로 새집을 사서 옮아 앉았다.  와룡동집으로 떠나왔을
때는 세간속에 정우회라고 큼직히 쓴 현판이 끼워왔기는 왔으나 광속에서
딩굴(뒹굴?) 뿐이요, 다시는 대문간에 내어 붙이지는 않았다.  아무도
거들 떠 보지도 않았고 그러한 문패가 있었던가를 생각하여 보려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영리한 진하만은,
  (흠, 이건, 정우회 문패를 팔아가지고 이 집 사왔나?)
하고 속으로 코웃음을 치며 눈치만 보아 왔다.
  그동안에 김의관은 별로 출입하는 일도 없이 한가로운 그날 그날을
보내고, 예전같이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다.  집도 전보다는 여간 커진
것이 아니고, 사랑채가 웬만한 살림살이를 할만큼 방이 셋이나 되건마는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이 쓸쓸하였다.  그러자 김의관과 마지막으로
헤어진 집 개성집이 스르르 달려 들더니, 사랑에서 몇밤 지낸 뒤에 이내
세간까지 옮겨 들이고 딴 살림을 채리기 시작하게 되었다.
  하기방학이 되어 저의 집 양주(楊州)에 나려갔다가 다니러 잠간 올라온
진하는, 점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전보다 살림이 늘어서 안채에도 늙은
식모를 하나를 두었기 때문에 삼촌, 식모는 그래도 의지가 되겠거니
싶었지마는, 작은 아버지가 헌병대에 붙들려 갈 때 얼굴이 파랗게 죽어서
혀끝이 얼어 붙어가는듯 하던 그 기막히던 형편을 생각하면, 집안
덩그런히 컸을 뿐이지, 우중충한 그 안채에 혼자 내버려 둔 작은 어머니가
가엾기(가엽기?) 짝이 없고, 작은 아버지가 또 다시 미워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그 돈이 어디서 나왔나?  남의 셋집을 내놓고, 이 와룡동 집을
사 오고, 개성 집을 다시 불러 들이고 한 그 돈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가 없다.  양주집에 가서 어머니한테 이야기를 해도
   그 누가 아니, 둘째 집이 잘 됐다니 좋지 않으냐
하시며 웃으실 뿐이요, 아버지는 그대로 눈만 껌벅껌벅 하시고 앉으셨을
뿐이었다.

4
  개학 밑이 되어 진하가 다시 서울로 올라온 바루(바로) 그 이튿날
아침이었다.  늦은 아침에 동무집에 놀러 가려고 동구안(돈화문 앞) 큰길
거리로 나서 보니, 어쩐지 다른 때보다 길이 쓸쓸하면서도 어수선한
공기였다.  어린애의 육감으로 이상하다 생각하였다.  조금 나서 걷자니
벽에 붙은 무슨 커다란 종이 조각 앞에 허연 사람 그림자가 웅게
중게(옹기종기?) 몰켜서서 무언지 열심히 읽고 있다.
  마치 언제 난리가 날지 모른다는 듯한 어수선한 세상인 것은 벌써부터
짐작하던 진하인지라, 깜짝 놀라서 쫓아가 보았다.
  대문짝 반만한 커다란 양지장(洋紙張=서양종이)이 나란히 붙어 있는
앞에 사람이 삼지위겹을 해 섰으니 글자는 커닿건마는 자세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중에 더 큼직한 제목인 조서(詔書)니 칙유(勅諭)이니
하는 두가지 광고문 같은 것이 나란히 벽에 붙어 있었다.  하나는 일본
천황의 한일 합방의 선포요 하나는 가엾게도 여기에 따라가는 한국 융희
황제의 눈물어린 포고문이었다.
  어른들이 웅성거리는 틈을 비집고 나간 진하는 어려운 한자문자로
씌었으나 글방공부를 한만큼 그것쯤을 끝까지 알아 볼 수가 있었다.
진하는 일변 읽으면서 일변 울분에 터져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한숨 쭉 읽고 난 진하는 비집고 들어갈때와 같이 급급히 빠져나오는
길로 미아리 쪽을 향하여 달려가듯이 발길을 옮겨 놓았다.  삼촌집에 들릴
새도 없었다.  집에서 눈만 끔벅거리며 세상이 어떻게 되나? 하고 반가운
소식도 아닌 무슨 소식을 조마조마 기다리며 앉았는 늙은 아버지에게부터
알려드리고 싶었다.  아버지가 듣는댔자 백발 노인이 목청을 놓고 통곡을
할 것 밖에 없는 것은 뻔한 노릇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린가슴에서
시원할 것만 같았다.  아버지를 맞붙들고 한번 시원히 울고나 싶었다.
  그바로 직후이었다.  세상이 한참 수선거리는 판인데, 작은 아버지 집은
소리없이 양주 큰 형님집 곁으로 떠나 내려왔다.  새집을 사 들었건마는
어쩐지 세상이 뒤숭숭하니 농촌으로 돌아 온다는 것이었다.  남들은
만주니 해삼위니 상해방면으로 망명을 하고 법석인데  일대의 정치가 가
아니라도  당대의 지사 로 자처하던 김의관이 여전히 소리없이
귀농생활(歸農生活)을 한다는 것도 쓸쓸하기만 하였다.
  그러나 세상은 - 세상이래야 고작 양주 일경이나 읍내 바닥에 지나지
않지마는 - 김씨집 중시조(重始祖)가 났다고 떠들던 김의관이 합병이 되자
다 없앴던 땅데기를 다시 마련해 놓고 처첩을 데리고 내려온 것을 보고
속으로는 코웃음을 쳤다.  물론 겉으로야 우리골에 큰손님을 새로
맞아들이는 것 같다고서 서로 칭하하였다.
  그러나 여기서도, 김의관이 금시발복한 것은 아니겠고 어디서 돈이
나와서 벼락부자가 되었는가고 장 거리나 주막에 모여 앉아서 김의관
이야기가 나오면 수군거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 길을 아는 사람만 알 노릇이었다.  어쩌면 김의관이
헌병대에 붙들려 갔다가 일주일이 못 되어서 무사히 풀려 나와서는
아무일 없었어 하고 싱글벙글 하다가는 차차 돈을 풀어 쓰기 시작하던 그
앞뒤 경위를 잘 아는 진하가 더 잘 짐작할지 모르겠다.
  김의관과 주축이 잦던 사람들은, 사촌이 땅을 산 것 보다도 더 배가
아픈듯이
   대관절 얼마씩이나 먹었을구?
하고 말을 꺼낼라치면
   고작해야 몇천원씩으루 입을 씻겼겠지, 일본놈의 그 바튼 솜씨에!
하고 이사람들도 많이 따져보려 들기에는 인색하였다.
   그래도 설마.  몇만원씩야 차례가 갔겠지.  사람대접을 하기루
   이사람아, 사람 대접두 사람나름이요, 저희(日人)들 눈에는 다 등급이
있거던,  하여간 헌병대 구치감 구경을 한 덕택에 집간이라도 지니게
되고, 땅 마지기를 작만해 놓고 배를 문지르고 살게 됐다면 상팔자 아니고
뭔가! 허허허
  대개 이런 따위수작이었다.  김의관은 그 상팔자에 한몫드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그 놈 합방(合邦) 덕 본놈! 하고
으르렁대는 데는 딱 질색이었다.  고향에서 세교(世交)가 있던
집안에서들도 그러한 비난을 하고 덤비니 마음이 편할 수는 없었다.
실상은 합방 덕을 본 김의관이기도 하였다.  애초에 일진회와 반대파인
정우회를 끌고 나갔기 때문에 합방을 단행하는 직전에, 요샛말로 하면
예비금속(豫備禁束)같이 불평분자를 붙들어 들여다 놓고 일편 위협을 하고
일편 회유(懷柔)를 하는 판에 견디다 못해서가 아니라, 첫마디에 네네하고
손을 들었는지 손도장을 찍었는지, 그런 소식까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마는,
하여간 그바람에 집이 나오고 개성집이 다시 현신을 하게되고 땅데기라도
장만하게 된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김의관이 자기의 고향에서도 이태(2년?)를 부지를 못하였다.
시골에 들어앉아서 할일은 없고 그래도 활동력과 명예욕은 남아 있어서
하기 쉬운 노릇으로 교육사업에나 전력을 하여볼까 하였었다.  또 사실
그때 시절에는 삼면(三面) 일교(一校)制로 세면에 보통학교를 하나 밖에
세우지 못하도록 왜놈의 총독부(總督府)가 교육과 지식까지를 극도로
제한하던 때이고 본즉 민간의 힘을 동원하여 보통학교 - 즉 지금의
국민학교(초등학교?)를 사립(私立)으로 세워보려고 무한 애를 썼어야
촌민들이 들어먹지를 않았다.
  다른 이유도 많지마는, 첫째 이유가 김의관더러 솔선해서 기부금을 많이
내라는 것이었다.
   당신은 거저 앉아서 나라가 망하는 덕택으로 누거만(屢巨萬)의 졸부가
된거 아니요.  아니 당신 단독으론들 학교하나쯤 못 세우겠소.  그래야 그
죄 땜도 될 것이 아니겠소
하고 노골적으로 덤비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김의관에게 그런 돈이
있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  만일 학교가 된다면 김의관의 여생을 학교에서
돌보아 주어야 할 형편이었을지 모른다.  일본 천황의 사금(賜金)이랍시고
입 틀어막기 위하여 준 돈이라야 고작 오천원인데 이것으로 빚갚고 서울서
집 장만하고 개성집 데려오는데 빚 갚아 주고 어쩌고 하여 흐지부지
쓰다가 시알다곱쯤 남은 것으로 땅 마지기나사두었던 것인데, 딱 합방이
되고 나니 서울에 처져 있기도 창피스러워서 집마자 팔아가지고
고향이랍시고 굴러 떨어졌던 것이다.
  그러니 처첩과 거기에 딸린 식구들을 데리고 내려와서 예전에 쓰던
솜씨로 씀씀이는 과하고, 촌민이나 군청이며 일본 경찰들에게 잘 보이자니
교제비가 들고, 또 더구나 학교 설립운동 한다고 운동비를 들여가며, 한
이태동안 한푼 버는 것은 없이 곶감 꼬치에서 곶감 빼먹듯이 쓰고 나니,
더 어떻게 지탱을 해 나갈 수 없는 곤경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생각다 못하여, 자 인제는 서울로 다시 올라가서
중추원참의(中樞院參議)나 운동해 보자하고 집과 남은 돈마지기를 팔아
들고, 큰마누라는 형님집에 떨어뜨려 두고 개성집과 서울로 다시
기어들었던 것이었다.
  이때부터는 염체불고하고 매일 같이 송병준이 집 사랑에 댁대령을 하여
살다시피 하였다.  그러나 송병준인들 한일 합방을 하기 위하여 한때
이용하고 부려먹기에 알맞은 인물이지, 꾀있는 토끼가 죽은 다음에야
사냥개가 소용이 무엇이랴 총독부인들 이제와서야 송병준이의 말쯤 무어
그리 대수롭다고 일일히 들어줄 리 만무하려니와 애당초에 송가부터
김의관따위의 청을 들어서 어수룩하게 총독부에 운동을 하여 줄 까닭이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김의관은
   내가 중추원 참의만 되는 날이면--- 
하고 중추원 참의만 되는 날이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올 것 같고
돈벼락이라도 맞을 것 같이 큰 소리만 땅땅 치면서 근 일년 무사 분주히
돌아다니고 나니, 전셋집 한 채나마 올라가고, 남의 집 현포(?)의 셋방
구석으로 기어드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셋방으로 옮아 들던 날 개성집은
하두 기가 막히고 울화가 터져서
   여보, 영감! 날(나)같은 주변성 없는 년이나 그래두 의관영감으루
모시지, 누가 이 세상에 일본말 한마디 할줄 모르는 당신을 중추원
참의를(로) 모셔간답디까? 아직두 정신 덜 차리셨구려.  어서 보따리
싸요.  시골서 마나님 기다리지 않소
하고 퐁퐁 쏘아대었다.
  진하는 그동안에 아주 몰라보게 자라서 제법 어른골이 백여갔다.
삼촌집에는 한달에 한번 들릴가 말가? 개성집은 귀여워하는 편이었으나
삼촌밑에 있기가 싫어서 여전히 하숙생활을 하여가면서, 발길이 점점
멀어져 갔다.
  학교는 원채 제동이라, 이학년에서 월반(越班)을 하여 사학년이
되어가지고, 이봄에 벌써 졸업을 하게 되었다.  졸업을 하면 동경 유학을
갈지,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될지 지금 망서리고 있는 판이다.

< 끝 >

1996년 5월 23일 10시 43분 !

 


<제 11 화>
海戰悲話(해전비화)
李星信의 最後 <제목,끝부분*>


  산, 산, 또, 산---
  산은 지금 향연이라도 벌리듯, 등어리가 으쓱하도록 단풍이 요란게게 타
오르고 있었다.  군봉(群峰)이 아득히 흐려간 너머 하늘로는 때마침
현란한 황혼이 무르익어 삼라(森羅)는 붉은 일색으로 휩싸인 채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었다.
  눈을 부비고 보아야 간신히 뜨이는 오솔길 옆, 보드랍게 마른 잔디위에
마치 돌인 양, 움직일 줄 모르는 채 앉아 있는 사람이 있었다.  체구가
날렵하게 크고 건장하면서도 안색이 매우 초췌한 그 청년은 초점을 잃은
시선을 들어 산, 아니 그 위 석양의 하늘, 보다도 그 너머 어떤 뼈저린
슬픔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윽고 청년은 천천히 둘레를 살피더니, 무겁게 몸을 일으키었다.  잠시
더 주위를 둘러 보다가 청년은 무릎을 간지럽히는 마른 풀을 헤치면서
골짜기로 내려 섰다.  잠시후 그에게 시원한 물소리가 들렸다.  반기듯
청년은 그 곳으로 가더니 덤썩 엎드린 채 벌컥거리며 물을 마시는 품이
몹시도 시장한 눈치였다.  입언저리를 닦으며 일어선 청년은 다시 산길로
되돌아 와서는 이번에는 좀 걸음을 빨리 하였다.  둘레거리는 품이 마을을
찾는 눈치였다.  길섶에, 바위틈에 철늦은 머루따위가 지척으로 뜨이건만
청년은 통이 모르는 눈치인 것이 우선 그의 복장, 여느 귀족으로서도 입지
못할 호화스러운 당사(唐絲?)였다.  문득 청년은 깨달은 듯 허리를
굽혔으나 손에 주어 든 것은 머루가 아닌 도토리 몇톨이었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한개를 입에 넣는다.  씹는가 싶더니 이내 그는 뱉아
버린다.
  손에 있던 것조차 힘없이 풀섶에 던져버린다.
  청년의 안면에는 어떤 적막한 설움과 함께 비로소 초조이 기색이 짙어
왔다.  고개마루를 돌았을 때 그러니까 그가 멀잖은 곳에인가 무엇을
발견했을 때는 창을 통해 흐르는 불빛을 보아야 했을만치 사위가 어둡고
있었다.
  청년은 얼굴에 밝은 환희를 보이며 달리듯 가물거리는 불빛있는 곳을
향했다.  불빛이 새어 흐르는 한 집앞에 당도하자 청년은
   여보시오, 여보시오!
  자못 다급하게 부르며 문고리를 흔들고 나서야 흠칫 자신의 음성이
지나치게 격했음을 깨닫는다.  방안에서는 의연히 기척이 없다.
   여보시오, 계십니까?
  그는 음성을 부드럽게 하여 나즈막히 다시 불러본다.
   누구요?
  그제야 방안에서 기척이 일며 이어 문이 열린다.  청년은 빠르게 방안을
  어 보았다.  놀란 눈으로 내다 보는 노인과 방안에는 역시 시선을
밖으로 준 채 쪼그리고 앉은 노인의 아내인 듯한 노파--- 방안에는 두
사람 뿐이었다.
   뉘시오?
   저 지나가던 사람인데 밤이 되고 해서--- 
   아 그러시오,  들어오우
  청년은 성큼 방안에 들어섰다.  메주 냄새가 역하게, 그의 코를 찔렀다.
 청년이 좀 가라앉은 심정으로 다시 시장끼를 느끼려는 때, 밖으로 나갔던
노파가 바가지에 감자를 소복히 담아서 가져왔다.
   원, 산중이라 드릴게 있어야지--- 
  연상 청년의 비록 때가 묻었으나 윤이 흐르는 비단옷에 시선을 주면서
노파는 변명하듯이 말을 되풀이 하였다.
   고맙습니다
  근 반 바가지를 비우고 나서야 청년은 감자가 매우 아리다는 것을
느끼며 물그릇을 들었다.
   자 이젠 이리 편히 앉으시지
   고맙습니다.  잘 먹었읍니다
  청년이 노인의 말대로 한 곁으로 물러 앉자 이어 졸음이 파도처럼
밀려와 전신을 휘감아 올렸다.  청년의 고개가 자꾸 앞으로 수그러짐을
보다가 노인 내외는 그를 조심히 눕혀 주었다.
  깊은 잠에 빠졌던 청년은 선뜩 불길한 예감에 눈을 떳다.  문쪽에
인기척이 일었다.  매우도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며 이내 무언지 스며드는
영자가 뜨였다.
  (아?)
  그는 하마터면 소리를 터질번(터칠뻔?) 했다.
  (공주다, 분명 공주가--- )
  청년이 마비된 듯 온 몸을 주체 못할 때 잠시 방안을 둘러 보던 여인---
온 몸을, 그리고 머리 위까지 두터운 천으로 가리운 여인의 시선이 몸에
미치자
   아!
  역시 낮으나 매우 격한 감탄성이 터질 듯이 빨간 입술을 들쳤다.
   태자마마!
   수잇!
  그는 일번 손을 입으로 가져가며 한손으로 달려 들려는 공주의 몸을
막아 밀쳤다.
   태자마마!
  공주는 아랑곳 없다는 듯이 전신을 그에게로 던지며 쌔근히 숨이 찼다.
   소녀는, 소녀는 기어코 찾고 말았군요.  이제 그러니 얼마만이던가,
태자마마께서 울며 불며 놓지 않는 소녀를 차디차게 뿌리치고 떠나신 이래
두삭--- 소녀가 얼마나 찾아 헤매었던지 아실는지--- 
  청년은 경황중에도 방안을 둘러 보았다.  다행히 노인 내외는 어디로
갔는지 방안에는 둘 뿐이다.
  비로소 그의 가슴에, 전신에 누를 수 없는 정열이 화끈히 달아 오른다.
그는 두팔을 들어 힘차게 그녀의 허리를 끌어 안는다--- 아니 순간 그의
전신에 어떤 전률이 찌르르 역류함을 느끼며 허리를 움켜 안으려던 팔은
거칠게 공주의 몸을 밀어내고 말았다.  청년은 어떻다 지향도 없이 벌떡
몸을 일으키었다.
   아아, 태자마마
  공주는 놀람으로 전신을 떨며 마치 두달전 그가 떠나 올 때처럼 달려
들어 그의 옷자락을 부여잡는다.
   이제 갈려면 날 죽여 주어요
  그때의 말고 똑 같은 말.
   공주--- 왜 이러오, 놓으시오
   안되어요.  차라리 죽이시든지---
   ----- 
  사뭇 거세게 등이 떨며 발앞에 쓰러지는 그녀를 바라보며 청년의 가슴에
어떤 벅찬, 뼈아픈 애욕과 함께 뜨겁게 밀려드는 회상이 있었다.
  저물어 가는 신라국(新羅國)의 태자 김충(金忠)과 그리고 동녘을
불사르며 용용히 피어 오르는 신흥 고려(高麗)의 낙랑공주(樂浪公主)가
그처럼도 애틋하게 달깃하게 빠져들었던 언젠가 흘러 가버린 먼 장면들---
  공주는 어여뻤다.  부드러웠다.  그는 공주를 결연히 밀치고 나선 이래
그처럼도 오랫동안 겪어 보았던 가슴이 뚫여버린 듯한 공허감과 적막감
그리고 아픈 고독감을, 그 참을 수 없던 애욕의 번민을 문득 기억한다.
청년은 기어이 참지 못하고 공주에게로 몸을 쓰러뜨리고 만다.  그는
공주의 전신이 찌릿이 피가 끓어 오르매 점점 고운 허리를 끌어 안는다.
그러다가 청년은 문득 문밖으로 귀를 모았다.  분명 어떤 기척이,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  무인으로서의 체험이 그에게 그의 전신을 휩싸 오는
어떤 살기를 번개같이 계시해 주었다.  순간 그의 가슴이 납덩이처럼
무겁게 굳어 왔다.
  (속았구나 공주의 간계에)
  그는 재빨리 공주의 몸을 밀치며 일어섰다.
   아,  왜 이리?
   놔라, 요망한 것!
  노기 찬 호령이 터지는 순간, 그의 발길이 문을 박찼다.
   와아--- 
  기다렸다는 듯이, 마당으로 내려 선 그의 주위에서 함성이 일었다.
   음--- 
  그의 손이 날렵히 허리의 칼에 닿았다.
   음?
  웬 일인가.  그는 전신이 얼어드는듯 함을 느끼며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몸부림치는 그의 머리위로 아찔히 바람을 끊으며 흐르는 섬광---
   악--- 
  눈을 부릅뜬 채, 청년--- 아니, 가버린 신라의 태자 김충은 혼곤히 땀에
젖어버린 상반신을 벌떡 일으키며 눈을 떴다.  충은 잠시 아리숭한 의식의
분기점에서 주위를 둘러 보았다.  고요하다.  함성도 가라 앉았다.  아픈
곳이 없다.  그리고 자기가 지금 쓰러져 있어야 할 곳은 찬 마당이어야
할터인데 이곳은 분명 아까 누웠던 방 한구석이다.
   응---?
  비로소 한겹 의식의 <베일>이 벗겨지며 그는 좀 더 선명한 시선을
돌린다.  고즈넉한 적요--- 밤바람 소리가 날카롭게 요란한 밖과 달라
아늑히 다사로운 방에는 아무도 없고 다만 아까 그대로 그 노인 내외의
순박하고 따스한 그리고 놀람에 찬 시선 넷이 그의 행동거지가 매우도
이상하고, 두려운 듯이 지켜 보고 있을 뿐이다.
  충의 입에서 기약없이 한숨이 새어 흐른다.
   제가 무어 잠꼬대라도 했는가요?
   웬 일이시오?
  분명 무슨, 잠꼬대속에 실언(失言)이라도 있었던가?  순간 충의 가슴이
섬뜩히 내려 앉는다.
   제가 무어라고 했읍니까?
   아니, 알아 듣질 통 못했구려----- 자꾸 소리를 지릅데다--- 
  충이 점차 마음의 안정을 가져오자 노인은 몇번을 주저하던 질문을
했다.
   대체, 젊은 분이, 아마도 귀하신 신분인 모양인데.  도둑이 들끓는 이
산중엘 뭘하러 가시우?
  충은 저도 모르게 고소를 지었다.
   노인께선 어떻게 이 산중에 사십니까?
  의외로, 그 말에 노인내외는 어떤 충격을 받는 듯했다.
   젊은이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오만--- 이 곳도 얼마전까진 그래두
이십여호가 어울린, 제법 마을다운 마을이었다우.  그런 것이 도둑들의
본거지가 이곳에 생기면서 동넨 망해 버렸구--- 
   참, 노인께선 장하십니다.  이렇게 남아 계시니--- 
   아니오--- 
  노인은 잠시를 더 주저하더니
   놀라지 마오.  우리 역시 말하자면 도둑의 무리인 것이라오.  아들놈
둘이 모두 산으로 가 버렸구려--- 우린 그 서슬에 떠나지도 못하고,
이꼴이구려
  충이 무어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말 저말이 오가는 사이에 어느덧 깊은 산중에도 여명이 걷혀오고
있었다.  노인은 무언지 잠시 생각하는 눈치더니 문득 
   생각컨대 젊은이는 신라의 귀족이 아닐까 보는데--- 고민이 많아서
가는 길이라면 바로 집 뒤로 솟은 흰눈 고개 너머에 계신
백로선사(白老禪師)를 찾아 보심이 어떻소?
   네 그 백로선사께서 이곳 가까이 계십니까?
   그렇지요,  아시오?
  (아아--- )
  충은 눈을 감은 채, 환희인지 슬픔인지 알 수 없는 신음을 씹었다.
  그실 충이 이처럼 고생스리 찾는 것이 바로 백로선사가 아니던가?  그느
ㄴ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듯 어느덧 시한(時限)을 건너 뛰어 과거의
사람이 되고 있었다.
   저 곳이 백로선사께서 산다는 집인가?
   예, 그러 하옵니다

                  *         *         *

   저 곳이 백로선사께서 산다는 집인가?
   예, 그러 하옵니다
  충은 천천히 발을 들어 백로선사가 산다는 초막으로 다가 갔다.  그것은
몇개의 기둥과 가마니로 엮어진 지극히도 엉성스런 초막이었다.
   계십니까
  그는 흔들면 쓰러질까 보아 조심히 싸리담을 두드렸다.  응답이 없다.
  (아무도 없는겐가)
  그는 기웃이 봉당을 넘겨다 본다.  그곳에는 낡은 미투리
한켜레(켤레?)가 놓여 있다.
  (있나 본데-)
   계십니까?--- 여보시오
  역시 부답.
   여보시오!
   거 뉘시오?
  스며드는 듯한 음성이 의외로 충의 등 뒤에서 났다.  충은 당황히
고개를 돌렸다.  백발이 윤기있게 길고 키가 짧달막한 도사 하나이
동자에게 짐을 들린 채, 충의 뒤에 서 있었다.
   백로선생이시오니까?
  충이 황망히 허리를 굽히자 도사는 빙긋이 웃음을 띄웠다.
   아니오, 선사께선 지금 안에 계시오
   예에?--- 
  충은 도사를 따라 방안으로 들어섰다.  방안은 외양보다 달리 깨끗하게
밝았고 무엇보다 의외로 느낀 것은 백로선사의 풍채였다.  윤기가 흐르는
긴 백발은 도사와 별 다름이 없었으나 그 체격이 장대한게 어느 모로나
천군만마를 능히 호령할 장수의 상모였다.
  충은 무언지 눌리는 듯한 압박감을 느끼며 공손히 앉았다.  백로선사는
잠시 충을 건너 보다가 다시금 눈을 감아 버렸다.
   이처럼 찾아 뵙는 까닭은 이몸이 고민이 있어 꼭 여쭈어 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이옵니다
   ----- 
   부디 높으신 말씀을 내려 주십옵시오
   그대는 뉘시오?
  묻는 건 선사가 아닌 도사였다.
   예, 신라의 한 청년일 뿐이옵니다
   결국 물으실 말이 뭔데--- 
  역시 도사의 말이었다.
   실은--- 내외로 변란이 많고 상하군민의 기강이 해이하여 신라의
장래가 보기 자못 흉흉하옵기 좀, 시원하게 알고라도 싶은 초조감과
울분심에서--- 
  잠간 침묵이 왔다.  충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백로선사의 마치 장님이
되어버린 듯이 잠겨진 채 뜨일줄 모르는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내
침묵을 깬 것은 도사였다.
   아마 선사님의 말씀을 듣기는 어려울거요.  내 일상 선사님의 말씀을
들은바 있는데이거라도 들어 주겠소?
   무슨 말씀이신지--- 
  대화는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
   선사님 말씀이 신라는 비유컨대 <사위는 달>이라고 몇번 말씀이
계셨지요
  그것은 오랫동안 체념되어 왔던 충으로서의 체관(諦觀)이기도 했으면서
그러나 그의 가슴에 쿵하고 떨어지는 거석처럼 전신이 아뜩했다.  충은
잠시 입을 벌리지 못했다.
   그러 하오면--- 
   결국, 문제는 젊은이의 의문이란, 뒤를 이을 천하가 무엇이냐는 것이
아니겠소?
  도사는 냉소하는 기색으로 충을 건너다 본다.
   아니오, 아니오!
  충은 어떤 분노와 모독감에 저도 모르게 벌떡 몸을 일으켰다.  마악
문을 박차려는 순간이었다.  비로소 백로선사의 눈과 입이 열린 것은.
   태자, 그대는 오느 후일 다시 나를 찾을 날이 있을 것이요---
  그러나 그 말은 충이 먼 후일 간신히 기억해 낸 구절이었다.
백로선사의 초막을 나왔을 때는 알 수 없는 울분으로 산길을
들짐승처럼굴르듯 내려 왔을 뿐이었다.
  그후 얼마 안 있어, 충은 고려의 왕과 함께 신라 땅을 밟은 왕의 장녀
낙랑공주를 만났고, 그런 후 얼마되지 못하여 다시금 그 백로선사의
초막을 찾아 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저물어가는 조락의 조국--- 보다도 충 개인에게 밀려드는 고뇌의 싹들.
그러니까 충이 다시금 초막을 찾은 것은 마침내 충이 불나비처럼 달려드는
공주를 안아 버린 환희와 회한의 밤을 보낸 다음날이었다.  그러나 그때
이미 초막은 빈 집이 되어 있었다.
  원래 백로선사의 거처가 봉래산(蓬萊山)이라는 말이 있다는
초동(草童)의 믿기 어려운 말을 들었을 뿐 실망과 공허를 안은 채 밤길을
달려 궁으로 돌아 오지 않을 수 없었다.  충이 동궁(東宮)에 이른 것은
이미 그믐달이 돋아 올 무렵이었다.
  피곤한 심신을 이끌고 중문으로 들어서자 그는 훤한 초롱불이 마당
한쪽에 있음을 보았다.  찌르르 어떤 환희와 그리고 번민이 휩쓸어
올랐다.
  (공주가 또 왔구나)
  순간 전신을 엄습하는 어떤 거센 분노와 함께 말방울 소리에 황급히
다가오는 초롱을 뒤로 한채 말을 몰아 되돌아 서고 만 것이었다.  막연히
북을 바란 채(북을 향하여) 그는 말을 몰았다.  언뜻 봉래산은 이미
궁예의 땅이라는 깨달음에서 발길을 다시 돌려 궁으로 돌아 왔을 때는
이튿날도 밤이 이슥해서였다.

                  *         *         *

  흰눈고개는 강파르고도 높았다.  고개를 다 기어 올랐을때는 이미 한
낮이 기운 때였다.  충은 땀이 배인 몸뚱이를 길섶 바위에 던진 채, 붉게
타오르는 눈아래 군봉의 절묘한 자태들을 멍하니 굽어 보았다.  어떻게
보면 아드윽히 멀고, 또 어찌보면 다가 들듯 가까운 봉우리들- 그것은
어느덧 몇몇 그리운 영자로 변한 채 군봉을 따라 눈앞에 부침명멸하는
것이었다.
  서라벌을 나선 이래 들어 보았던 그 수다한 자신에의 소문들--- 그리고
자기를 찾아 미친 듯이 헤맨다던 공주의 이야기, 또 고려왕이 남몰래
사람을 퍼뜨려 자기의 행방을 찾는다는 것--- 자기가 떠난 이래,
찾아나섰다던 지기(知己) 김승규(金昇奎)와 석영재(惜榮宰)와 또, 누구의
소식들---
  공주, 공주 공주, 고려왕, 자기를 찾아 필시 해를 가하려 헤매일 왕건의
부하들, 그리고 보고픈 승규 무리들.
  (왕건 제가 내 재주와 공주를 사랑함에서 날 찾는다지만, 제 필시 내가
구국운동의 유일한 지도자가 될까 해서 두려워서겠지---)
  이윽고 충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  험한 산길을 헤매기 다시 한식경이
돼서야 충은, 백로선사의 거처라는 초막을 찾을 수 있었다.  전에,
서라벌에서 보던 그 초막과 별 다름이 없는 초막이었다.  충이 뛰노는
가슴을 붙안은채 울타리 근처로 접근했을 때, 마당에 멍석을 깔고 따스한
양지에서 졸고 있는 낯익은 노인이 있었다.
  백로선사였다.
  충은 우선 반가웠다.  백로선사만 찾으면 뭔지 구국의 비방을, 그 힘을
얻을 수가 있을 듯만 싶은 심정이었다.
  잠시 충은 깨우기가 송구해서 백로선사의 그 힘과 어떤 위엄이 흐르는
모습을 건너 보고 있었다.
   왜, 안들어 오는 건가?
  조는 줄 알았더니, 의외로 백로선사는 눈을 여전 감은 채 손을 들어
충을 가리켰다.
   안주무셨읍니까?
  백로선사의 오만한(태자에 대한 전에도 그랬지만) 태도에 비하여 충은
한층 겸손해 가는 자신을 어쩌지 못했다.
  비로소 백로선사는 눈을 떴다.
   결국은 왔군
  백로선사는 빙긋 미소를 띄우며 고개를 끄덕인다.
   선사님, 저는---
   아, 자네, 자네 심정--- 허나 너무 어려, 어려---
  백로선사는 고개를 흔든다.  충은 말없이 그를 건너다 보는 수 밖엔
없었다.
   자넨, 지금 무지개같은 꿈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네.  꿈, 저 산을
태우는 (그는 그때 속으로 아래를 가리키며)단풍과도 같은 정열일세.
그러나 이걸 알게
  백로선사는 잠시 간격을 두었다가, 찌르듯 충을 건너보며
   신라가 망한 것이 무어 고구려나 백제의 고사(古事)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해.  말하자면 신라를 망하게 한 것은 어느 외적이 아닌, 순연한
신라자신이란 말일세, 모두가 제 모가지를 잘랐지--- 흐--- 
  백로선사는 잠간 웃는 듯 했다.
   신라의 백성들이 신라를 버렸고, 신라의 왕과 대신들이 신라를
꺾었네--- 알았나? 자네의 그 심정, 고구려, 백제의 왕성한 기운으로도
광복운동은 실패로 돌아 갔었네.  항차 이 신라야--- 이걸 알게, 신라는
이미 사위는 달이 아닐세.  이미, 서산을 넘어 선, 이미 이젠 신라는 없네

   선사님!
   아니야, 안된다니깐.  이제 신라는 존재치 않네.  태자, 아니 이젠
김충이지, 자네에게는 이제 또 다른 삶이 오는거야.  그걸 가르쳐 줌세.
나는 자네같은 사람이 고민을 안고 날 찾아 올 날을 기다린지 오래네
   선사님
  자, 이젠 더 입을 벌리지 말게.  자넨 이제부터 한낱 금강산의 춘, 하,
추, 동--- 이 무궁한 진리속에 파묻힌 미물이야 알겠나?
 충이 다시 입을 열려는 순간 백로선사의 지팡이가 그의 어깨를 세게
때리고 있었다.  눈에는 화끈 빛이 일었다.
   에익!
  분노와 절망에 뻐개지는 가슴을 안은 채 충은 분연히 되돌아 서고
말았다.  눈물--- 왈칵, 까닭 모를 더운 눈물이 순간 태자의 볼로
줄기지어 타내렸다.
  뒤에서 백로선사의 꼬장꼬장한 음성이 귀를 쑤시고 들었다.
   흠, 너는 더 고초를 맛보아야겠다.  좋다, 좀 더 고생을 겪어라.
마침내 느끼는 때거 오거든 너는 다시 내게로 오리라.  그 간지러운 옷도
벗을게고.  낙엽이 지고, 흰눈이 고요히 온 산과 산을 덮느니라

                  *         *         *

  배가 아파서 눈이 뜨였다.  해가 미처 자태를 내밀지 못한 사위는 이미
산새들의 뭔지 비창한 울음으로 향연을 이루었다.
  충은 힘없이 일어나 앉아, 잠시 배를 주무르다가 세수를 하러 냇가로
내려갔다.  세수를 하려다가 그는 잠시 맑고 잔잔한 물을 들여다 보았다.
말할 수 없이 초췌한 얼굴, 더럽히고 여기 저기 비참히도 찢기운 옷매,
희망도 없고, 힘도 없고, 그렇다고 어쩌자는 자세도 없는 이 꼴--- 패배자
패배자.
  왈칵 눈시울을 뜨겁히는 충격을 간신히 누르며 충은 몸을 일으키었다.
  (나는 죽어야 하지 않은가? 그러나 죽을 결단조차 없는가---)
  잘 보지도 못하던 이름모를 산열매로 배를 채우면서 어언 이렌가
여드렌가.  충은 어떤 의식의 혼미속에서 끝모를 수풀을 걷고 있었다.
멀리서 가까이서 애틋하게 또는 영롱하게 울려오는 산새들의 협주곡을
벗삼으며 걷다가 문득 좀더 이채로운 산새소리를 듣는다.
  (저건 좀 못듣던 소린데---?)
  왠지 한층 처량한 소리라고 느끼며 찰나, 그는 허리를 스치는 마른
풀사이로 몸을 던져 눕혔다.  엎드린 위로 시윗소리가 흐르며, 머리에서
두어간 떨어진 나무에 쩡, 화살이 박힌다.  충은 풀사이로 기어 재빨리
나무뒤로 몸을 숨기며 어느덧 손이 품속에 간직해 오는 단검(短劍)으로
간다.
   그럴 필요 없어, 이눔아, 으하하하
  그 소리는 충의 등 바로 뒤에서 났다.  그는 순간 자신이 여러 수상한
적에게 포위를 입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떤 공포와 그리고 증오감이
경황의 폭풍속에 피어 오른다.  풀포기를 헤치며 그에게로 접근해 오는
무리들은 때가 찌든 두툼한 누비옷을 입었고 길고 날카로운 칼들을 제가끔
사려들었다.  간 간 활을 멘 놈도 뜨인다.  머리는 모두 검은 두건으로
질끈히 동이었다.
  맥이 풀린다.  충은 반항을 버렸다.
  (내 필시 자객들에게 잡혔구나)
  어떤 괴로운 체념이 왔다.  두건들은 저희끼리 잠시 무어라 수군대더니
   그래, 끌고 가지
  그의 차림을 새삼   어보면서 상의가 끝났는가 싶더니 칼끝으로 충을
앞세운 채, 숲을 더듬기 시작했다.
  (날 어쩌려는 걸까? 왕건에게로 끌고 가려는 것이나 아닐까?)
  어느덧 그들은 강파른 벼랑을 낀 산협 소로를 지나고 있었다.  벼랑
아래로는 아뜩, 깊은 골짜기로 자욱한 안개가 감도는 밑에서 물소리가
가늘게 들려 왔다.
  (떨어지면 죽는다.  발만 삐긋하면---)
  두건들은 충의 차림이며 안색이 몹시도 초췌하고 피로해 있음을 보아
별로이 경계하는 기색이 없이, 저희끼리 농을 지껄이며 산모퉁이를
돌았다.  그때 바로 그때였다.  앞서 걷던 충이 문득 몸을 돌리는가 싶은
순간, 이어 벼랑밑으로 비명이 짜릿하게 멀어가며, 어느덧 충의 손에 칼이
잡혀 있었다.  잠시는 어수선한 긴장이 흘렀다.  비로소 자기들패의
하나이 죽었음을 깨달은 두건들은 얼굴이 창백해지며 몸을 도사려 충을
에워싸는 한편 예의 산새소리를 쳤다.  메아리가 아닌 응답이 왔다.  충은
빠르게 몸을 날려 앞길을 막아 선 놈을 찌르는 듯, 놈이 놀라 몸을 비키는
순간 몸을 빼쳐 산길을 달렸다.  어느덧 다시금 잔풀이 무성한 오솔길이
드러났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신호의 산새소리가 요란히 들려왔다.  충은
순간 돌뿌리에 채이듯 앞으로 넘어졌다.  일어 서려는 때 그는 자신이
올개미에 얽혀 있음을 알았다.  다시금 그는 끌려가는 몸이 되었다.
  그들이 충을 끌고 이른 곳은 예상과는 달리 도적들의 산채였다.
  충이 선 주위에 이,삼십명 험상궂은 두건들이 둘러 섰고 통나무에 걸터
앉은 몸집이 장대한 꼿꼿한 수염이 검고 짧다란 사내는 바로 도적의
괴수인 듯했다.  그의 살기찬 눈초리는 어떤 분노에 타오르고 있었다.
   네 놈이 내 부하를 죽였다지?
   -----
   넌 뭣하는 놈이지?
   -----
   뭣하는 놈이냐? 보아하니 농민은 아니구나
  충은 여전 입을 열 줄 몰랐다.
   넌 뭐냐 말이다.  말 못하느냐?
  괴수는 낯빛이 붉어 오며 주먹을 들어 충을 가리켰다.
   너는 이 무리의 괴수냐?
   어? 이놈, 이놈 말버릇 봐라
   죽이려면, 무사답게 죽여라
   무어? 이놈, 못할 말이 없구나.  너--- 이놈, 관군의 밀정이지?
   -----?
  충에게는 뜻밖의 질문이었다.
   그래서 나를 살리는 건가? 비밀을 캐려구?
   어서 대지 못할까?
  그래도 충은 좀처럼 무어라 상념의 갈피가 떠오르지 않았다.  괴수의
옆에 섰던 키가 크고, 복장도 좀 말쑥한 놈이 그의 귀에 무어라 말을
흘려넣자 괴수의 표정은 잠시 누그러지는 듯 했다.
   이거 봐라.  바른대로 말하면 네 목숨을 붙여주마.  넌, 관군의
밀정이지?
  귀에 한 말이 이 말인 듯 했다.
   아니다
   그럼 뭐냐 말이다
  충은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문득 가슴에 치미는 일생을 통해 처음
겪는 모욕감을 느낀 것이었다.
   정-말 않겠느냐?
   -----
   음 그럼 소원대로 죽여 주마
  괴수는 눈짓으로 한 놈을 불렀다.  잽싸게 생긴 두건 하나이(가) 긴
칼을 빼어 사리며 충의 앞으로 다가 나섰다.  둥그렇게 섰던 패들은
재미있는 구경이 났다는 듯이 이 모양을 바라 보았다.  어디선지 칼
한자루가 충의 앞에 던져졌다.  충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칼을
겨눈채 다가드는 놈을 바라보았다.  칼을 들 필요가 없을 듯 했다.  놈은
꽤 칼을 써 본 놈인 듯 했으나 정도(正道)를 닦지 못한 듯했다.  놈은
가만히 서서 칼을 들기를 기다리는 눈치다.  충이 칼을 집어 들자 주위는
의연히 고요가 흘렀다.
   야---압
  놈이 달려 드는 순간 충은 가볍게 몸을 틀며 칼을 휘둘러 손쉽게 놈의
칼을 멀리 휘날려 버렸다.  순간 주위에서 어떤 긴장된 경악의 신음이
흘러 나왔다.
   옛다
  충은 들고 있던 제칼을 던져 주었다.  두 눈에 살기가 돋은 채 몸을
일으킨 놈은 충에게서 받은 칼을 겨누며 거세게 다가 들었다.  충은 빈
손.
   어, 멈추어라
  괴수의 소리와, 놈이 번개같이 달려든 것은 그리고 충의 몸이 약간 뒤로
젖혀지며, 놈이 배를 움켜 잡은 채 피를 물며 꼬꾸라진 것까지도 거의
동시였다.
   와---아
  경악에 찬 감탄성이 적개심이 흐르는 주위를 휩쓸었다.  괴수도, 그리고
아까 괴수의 귀에 입을 갖다 대군(대곤)하던 키가 크고 눈이 감때 사납게
찢어진 놈(부괴수인 듯 한)도 놀라는 기색이었다.
   나와 겨뤄보자
  입에 냉소를 담은 채 걸어 나온 것은 예의 키가 큰 놈이었다.  충도
주위의 격동에서 받은 자극과 내부에서 끓어 오르는 어떤 참을 수 없는
흥분을 전신에 느끼며 칼을 잡았다.  둘은 칼을 겨눈채 마주 섰다.
서로는, 서로의 실력을 느끼었다.  칼이 부딪쳤다.  그런가 하면 떨어지며
다시 부딪쳤다.  빨랐다.  눈부신 묘기.
  막상막하--- 그러나 충은 당대 신라 수위의 검사임은 우선 신라전국이
알고 있는 터였다.  얼마 안 있어 양자의 차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여엇
한 소리에 상대는 칼을 떨어뜨리며 비틀거렸다.  상처는 없었다.  충은
뒤돌아 보지도 않은 채 눌린듯 고즈넉한 속을 돌아 섰다.  순간, 그는
몸을 비켜피했고 가슴을 바라고 날아 온 칼은 어깨를 뚫고 박혔다.
부괴수의 짓이었다.  모르는 결에 충의 손에서도 칼이 날랐다.  귀를
찢는, 전신에 소름을 일쿼주는 비명이 울려 왔다.  그 비명이 아련히
흐려가며 충은 의식을 잃었다---

                  *         *         *

  집채만한 보다도 큰 산더미 같은, 보다도 무거운 무엇이 목덜미를 타
누르는 압박에 괴롭게, 어느덧 태자는 의식이 아련히 돌아 오고 있었다.
   으--- 으음
  자신의 신음에 아리숭하던 의식이 언듯 선명해 왔다.
  (나는 살아 있구나---)
  우선 그의 뇌리를 긋고 달리는 상념이 이것이었다.  그러면서 충은
자신의 주위에 누군지 인기척을, 아니 그들의 대화를 언제부터인가 듣고
있었다.  눈은 감은 채---
   이놈, 참 가엾긴 해.  젊은 놈이 똑똑하게 생겼군
   정신이 좀 드나 본데---
   살아 나긴 하겠어--- 살아 났자 또 별 수 없는거지만
   근데 왜 죽여 없애지 않구 살려 내지
   이놈은 필경 관군의 첩자야.  허니까 살려 내서 오히려 그 내막을
알려는거지
   허, 고문깨나 당하겠군---
   이어 죽는 거지
  대화들은 마치 남의 얘기처럼 들어가며 혼몽한 의식의 미로에서
헤매더니 문소리가 나며 놈들의 나가는 기척이 느껴졌다.  한동안 마련한
의식상태가 지속되었다.  꿈처럼, 잠드는 것처럼--- 그때 또 문소리가
났다.  누군지 들어서는 기척이 왠지 좀 조심스러운 태도라는 것을
느낄만치 그때 충의 의식은 명료해 왔으나 그는 두 눈을 감은 채
무관심하려 했다.  들어 온 사람은 선채 잠시 소리가 없더니 이윽고 예의
조심스럽고 조용히 앉는 눈치였다.  머리에 손이 왔다.  충이 놀란 것은
그 손이 움찔 소름을 느낄만치 차게 느껴지도록 제 몸이 끓고 있는 사실이
아니고 보다 그 감촉이 놀랍게 보드랍다는 점이었다.
  (여자가 아닌가?)
  험궂은 산적굴에 이처럼 보드라운 손을 가진 여인이 산다는 것은 매우도
놀라운 일이었다.
  (괴수놈의 첩?--- 딸?)
  그런데 말소리가 들려 왔다.  낮고 산사람(山民)답게 거칠었으나
틀림없는 여자소리였다.  처음에는 잘 들을 수 없었으나 이내 음성은 커
왔다.
   ---첩자는 아닌 것 같에--- 어느 귀족이 아닐까--- 어차피 죽일
놈이로군--- 죽이기는 아까운 걸---
  이윽고 여인이 일어서는 기척이었고 문 여닫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다시 적요---
  충은 멀쩡한 의식을 회복할 수 있었다.  여인이 나가고도 얼마를 있다가
그는 눈을 떴다.  빙그르히 천정이 돌며 다가 드는 듯하여 그는 이내 눈을
감아 버렸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천정이 좀 아물거렸을 뿐 그다지
어지럽지는 않았다.  그는 누운채 고개만 돌려 주위를 자세히 살펴
보았다.  매우 더럽고 누추한 방이었다.  자신의 몸에 덮여 있는 이불깃이
새까만 때에 찌들어 있었다.  그리고보니 냄새도 여간 역한게 아니었다.
그는 미간을 누비며 일어서려 상반신을 들며 팔에 힘을 주었다.
   아---
  어깨죽지가 불붙는 듯 뜨겁게 아파옴을 느끼며 다시 몸을 더러운 자리로
떨구었다.  그러는데 다시 문께에 인기척이 일었다.  충은 무심코 문쪽에
시선이 갔다.  문이 열리며 들어서는 사람.
   아, 그 여자
  순간,
   어마
  그녀쪽에서 한층 놀람과 당황을, 그리고 시원스러운 눈동자 위로 환한
빛을 드러낸다.
   깨어났군
  충은 그 서늘한 눈매며 곧은 콧날, 보다도 오려붙인 듯한 입술에서 문득
낙랑공주의 자태를 느끼며 잠시 뇌리가 혼란했다.
  (정말 산사람 치곤 이쁘구나)
  둘은 시선을 마주 한 채, 잠시 굳어 버린 듯 서 있었다.  이윽고 여인은
가가와 앉으며 충의 이마를 짚어 본다.
   인젠 됐군---
  그녀는 누구에게라 할것없이 낮게 중얼거리며 미소를 짓는다.  충은
말없이 그녀의 거동만 보고 있고.
  그녀는 어디라 없이 촛점을 잃었던 시선을 들어 충을 바라 보았다.
충은 순간 전신이 아뜩했다.
  (저건, 바로 낙랑공주의 눈빛이다)
  언젠가 후원을 산책하는 충에게로 다가들던 공주의 애절한 눈매가
서언히 나타나며 지금 눈앞을 가려 선 그녀와 자꾸 겹쳐진다.
   당신은 첩자는 아니지요?
   -----
   귀족이시구려
   -----
   귀족이라도 괴수는 죽일거요
  충은 갸우뚱히 그녀를 치켜보았다.
  (왜 이 여자는 내게 이런 이야길 하는 걸까?)
   도둑이 되세요.  그러찮음 죽어요
  그녀는 일어날 듯 잠시 몸을 일으키다가, 그러다가 충을 한번 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리다가, 번개같이 몸을 들어 충을 끌어 안으며 쓰러졌다.
충이 놀랄 새도 없이 그녀는 얼굴을 맞부비다가 문 밖으로 나가 버렸다.
얼마를 충은 상념의 갈피를 찾지 못한 채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산여자답다---)
  언뜻, 자기도 모를 어떤 정열이, 삶에의 약동하는 의욕이 분수처럼
가슴으로 몰려 들었다.
  (그렇다, 나는 살아야 한다.  이것뿐이다.  살자 살자)
  충이 괴수앞으로 끌려 간 것은 이튿날 저녁 무렵이었다.  어제의 상처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쏟아질 듯 아팠으나 그뿐 그외의 상처는 없었다.
괴수는 아직 노기등등한 기색이었고, 그의 주위로 병장기와 그리고
형구(刑具)들이 즐비했다.
   너, 바른대로 묻는 말에 대답해야 한다.  그렇잖음 죽을 뿐이니라
   -----
  충은 체념의 빛이 짙은 안색이 안온한 채 어떤 결의가 드러나고 있었다.
   너는 관군의 첩자지?
   아니요
   아니라?
   첩자라면 이런 눈에 뜨이는 귀족의 복색을 했겠소?
   음---
  괴수는 잠시 그 새카만 턱수염을 문지르다가,
   그럼 넌 뭔가? 뭣하러 이 산중엘 왔는가?
  태자는 잠시 주저했다.
   넌 고구려국의 귀족이냐?
   아니, 난 신라의 한 말단 귀족이었소.  그러나 지금은 이미 한 생령일
뿐--- 날 무리에 끼워주오.  원수를 갚고 싶소
  충은 지금 자신이 하는 말을 통 깨닫지 못하였다.  그렇다고 별로이
생각해 둔 말은 더욱 아니었다.  어떤 삶에의 의욕만이 횃불처럼 그의
가슴에 이글거릴 뿐이었다.
   음---
  의외로 괴수는 만족한 듯 했다.  그날부터 충은 무리에 끼워졌다.  그때
충은 스스로 반지러운 비단옷을 벗어 버렸다.  그리고 억센 베옷을 몸에
감았다.  상처도 거의 아물었을 무렵 충은 무리를 따라 첫 작업에 나섰다.
 오늘은 충의 수완을 시험하는 날이었다.
  동해의 검푸른 해변으로 빠지는 좁은 고갯길 머리에 충은 앉아 있었다.
양 산비탈에는 지금 무리들이 숨어서 충의 거동만 바라 볼 뿐이었다.
   온다!
  충은 용수철처럼 뛰어 일어나 고개를 아래를 굽어 보았다.  까마득히
움직이는 띠끌(티끌)이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일곱개의 점이
고개를 오르느라고 움직거리고 있었다.
  충은 약간 가슴이 울렁거렸으나 상상외로 태연히 왔다.  이윽고
일곱개의 물건이 점점 다가오며 자태가 분명해 오자 그는 몸을 풀 사이로
숨기었다.  일행 일곱중 하나는 말을 타고 옷에 윤이 흐르는 것으로
상전인 듯 했고 네 사람은 큼직한 짐을 지고 있다.  나머지 건장한 체구에
가벼운 갑주까지 걸친 둘은 각각 환도를 잡은 채 각각 앞뒤로 호위를
한다.  큰 행렬이다.
  일행이 고개 모퉁이를 돌 즈음, 풀속에 엎디었던 충은 칼을 비껴 잡은
채 천천히 길가운데로 나섰다.  그리고 놀람에 낯빛이 질려오는 일행을
손을 들어 세웠다.
   무거운데 그 짐은 놓고 가거라
  그러나 그 말이 멎기도 전에, 재빨리 주위를 둘러 보고 교교히 인기척이
없음을 확인한 두 무사는 제각기 환도를 춤추며 충에게로 다가 오고
있었다.
  검술들이 괜찮았다.  충은 약간 뒤로 물러 섰다.  그 서슬에 힘을 얻은
둘이 와락 달려든 것이 실책이었다.  충이 저모를 어떤 전지(戰地)의
흥분으로 칼을 휘두르자, 동시에 둘의 허리가 꺾이며 피가 분수가 되어
비릿내를 풍기어 솟구쳤다.  그제야 말위의 상전이 오던 길을 되돌아 말을
모는 소리가 나며 짐군들이 짐을 버린채 목숨을 얻어 달아나기에 바빳다.
  그제야 산위에서 환호성이 일며 우루루 무리들이 나타났다.  순간 충은
아프게 가슴을 후비는 어떤 가책을 느끼며 눈앞이 아뜩했다.
  (내가 사람을 이유없이 죽였구나)
  밤이 이슥토록 그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옆에 곯아 떨어진 놈의
코고는 소리에 졸리다 못하여 밖으로 나섰다.  바람이 소슬했다.  달빛은
푸르게 밝고도 몸서리치게 찼다.  그는 벌레의 울음에 끌리듯 산길로 들어
섰다.
  벌레 울음, 서라벌의 가을, 아까 죽은 사람, 공주, 도둑, 지우(知友),
그리운 어머니, 아버지, 공주---
  문득 인기척에 고개를 돌릴 즈음 무언지 목을 조르며 매달리는 게
있었다.
  그 여자였다.  괴수의 첩이라는 여인.  그는 사뭇 아프게 목을 조르며,
얼굴이며 입술을 마구 부비며 풀숲으로 쓰러졌다.  얼결에, 아니 더욱
정확히 말해서 화끈히 솟구치는 욕정을 깨달으며 충도 풀로 쓰러져
버렸다.  계집은 쌔근히 가쁜 숨으로 한참을 홀로, 어쩔줄 모르고
당황하는 충의 몸을 애무했다.  계집은 몸을 꼬며, 가슴을 헤치며 충에게
눈짓으로 팔굽으로, 몸짓으로, 몽실히 부드러운 젖가슴과 두 다리로
그에게 요구했다.  격렬한 그리고 애절한 요구--- 충은 저모르게 빨려
들고 있었다.  자신을 포기하는 아련한 유열속에서 둘은 죽음처럼 취한
채, 숨이 가빠 왔다.  격랑(激浪)이 우뢰처럼 급박하다가 아득히 스쳐
갔다.  둘은 피로한 몸을 풀 속에 던진 채 그냥 마치 모든것이 끝난 듯이
누운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이름이 뭔고?
   버들아기
   버들아기라--- 
   당신은 어떤 사람이유 도대체---? 이름은 뭐유?
   이름--- 이미 말했잖아? 야기랑(郞)이라구
   피! 그건 가명이지요?
   글쎄--- 
  이튿날도 충의 칼은 몇번의 피를 보았다.
  (조국을 버린 사람같지 않은 사람--- 죽여두, 죽여두 그래 어쨌단
말이냐)
  충은 한번 눈을 흡떠 본다.
  두개의 싸움과 그리고 이어오는 야수같은 칼부림과 버들아기의
정염과--- 이렇게 열흘--- 보름--- 어느덧 한삭이 흘렀다.  어느 밤 충은
괴수의 방으로 불리웠다.  술상이 차려져 있었고, 버들아기가 괴수옆에
앉아 있었다.
   ---자네를 한달간 봐 왔네--- 놀라운 무옐세 놀라운 무예야---
  괴수는 이미 벌겋게 핏기가 오른 취안을 들어 충을 건너 보다가
   오늘 이처럼 부른 까닭은--- 좀 은밀히 상의할게 있어서이네---
  괴수는 잠시 말을 끊었다.  그리고 술을 한주발 목마른 듯 마시고는
금시 눈에 눈물을 담는 것이었다.  수년전 그의 아비가 죄없이 그 고을
군수에게 죽음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복수를 맹세하고 입산을 했고, 그
군수는 고려에 항복하고 여태 그 고을에서 군수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을이 예서 근 백리 남짓일세--- 내일이 바로 아버지께서 돌아 가신
날이야.  그래서, 나는 늘 벼루어 온 것일세, 언제구 내, 애비가 죽은 날
그 군수놈을 이 내 칼로 목을 쳐 주겠다구--- 그러나 알다시피 내
주위에는 사람이 귀했네--- 자네를 만나 그 얼마나 기쁜 줄 아나?
  밤이 깊도록 숙의가 있었다.
  이튿날 밤.  어둠을 타고 충과 괴수를 선두로 열명남짓이 뽑아낸 무리는
산을 내려왔다.  밤길을 달리기 한식경해서 그들은 커다란 담앞에
멈춰섰다.
   여길세
  괴수가 눈에 불을 일쿠며 말했다.
  그 옆에는 버들아기가 남장으로 말위에 앉았다.  부하 두엇이
쪽제비처럼 담을 타 넘어 섰고 대문께가 잠시 어수선하더니 이내 소리없이
문이 열리었다.  소리없이 십여 무리가 마당으로 들어 섰다.
  어느덧 충과 괴수와 그리고 버들아기는 군수의 방앞에 있었다.
버들아기의 손에는 횃불이 그리고 충과 괴수의 손에는 환도가 잡혀
있었다.  괴수가 문을 열어 젖혔다.  그 서슬에 먼저 기척이 인 것은
건너편 방이었다.
   여, 누구냐?
  그 방문이 열리며 어느새 칼을 잡은 두어 군졸이 뛰어 나왔다.  그러자
괴수가 먼저 칼을 번뜩였고 두 토막이 된 시체 둘이 충의 발앞에 쓰러지며
피를 뿜어 그의 옷을 적셨다.
   누구냐?
  비로소 군수가 잠을 깨어 소리를 치며 일어났다.
   쉬---
  방안이 일시에 밝아 왔다.
   으아?
  발가벗은 채 돼지같은 군수가 몸을 뒤치며 눈을 치떴다.  그러자 역시
알몸뚱이인 계집이 겁에 질린 낯빛으로 방구석에 가 섰다.  괴수가
나섰다.  버들아기도 따랐다.
   너 날 모르겠니?
   나를 모르겠니?
   누구---?
   흥, 죽일 놈, 이 찢어 먹을 놈,  내가 바로 이향춘대감의 아들이다.
알겠니? 이 여잔 돌아간 김춘의 딸이야---
   누, 누구?---
   더 말 말아라.  오늘이 우리 부친께서 억울하게 돌아가신 날--- 조용히
칼을 받아라
  그 다음은 간단했다.  괴수가 칼을 날렸고 어깨죽지에 피를 뿜으며
쓰러진 몸에 버들아기의 비수가 꽂혔다.
   와!
  밖이 소란해 왔다.  셋은 한번 시선을 모았다가 밖으로 나섰다.
칼소리---
  셋은 시체를 뒤로 하며 대문을 향했다.  부하들의 한 짓으로 이미 집은
불꽃에 싸이고 있었다.  한떼의 군졸이 꺾이고 잠시 고요한 새 그들은
부하를 앞세우고 이미 대문 근처에 이르렀다.  함성이 일며 뒤에 다시
한떼의 군졸이 달려 나왔다.  그때 충은 멈칫 말을 세웠다.  삽시에
괴수가 앞으로 지나치고 충만이 남았다.
   왜 이래요?
  멈칫 같이 말을 멈추는 건 버들아기였다.
   저 봐, 저 소리--- 아 저기야
   아, 저 애기말에요?
   그래, 타 죽겠어--- 
  충은 말을 내리려 했다.
   저 뒤를 봐요.  빨리!
  버들아기가 채찍으로 충의 말을 때렸고 순간 말은 펄쩍 뛰며 대문을
나서 버렸다.
   아, 저 애기--- 
  외치면서도 어느새 충은 밤길을 달리고 있었다.
   몇년전 괴수나 제 가족들은 모두 굶어 죽었어요--- 
  말등에서 버들아기가 한 말이었다.
   왜, 산채로 데려오지--- 
   아니, 우릴 잡으려구, 감옥에서 굶겨 죽였어요
  충은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충은 그 울음소리--- 깨는 듯한
아기의 울음소리를 귀에서 머리에서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가슴을 찢는 듯한 울음소리--- 충은 밤을 새웠다.  이튿날 그는
일어나지 못했다.  열이 사뭇 무섭게 올랐다.  헛소리가 나왔다.
버들아기의 간호가 극진했어도 열흘을 앓고야 미음을 들 수가 있었다.
  충은 지긋이 눈을 감은 채 머리로는 그 밤의 그 모습을 그리며 손으로
귀를 막고 있었다.  그때였다.  다급한 발소리가 일며 들어 선 것은
버들아기였다.  몹시도 당황한 기색이었다.
   이 봐요, 큰일 났어요.  저 아래서 큰 싸움이--- 
   아니 관군이야?
   아니에요, 헌데 장사들인가 봐요.  우리편두 위태해요--- 괴수와
두엇밖엔 안 남았어요--- 
   무어?
  오늘 아침 무리의 대부분을 먼 곳에 보내고 산채에 사람이 적던 것을
깨닫자 충은 칼을 쥐며 문을 박찼다.
  충이 버들아기의 손을 끌며 싸움터에 이르렀을 때는 괴수와 또한
부하만이 남아서 한명 남은 적과 마주 서 있었다.  충은 더욱 걸음을
날리어 싸움중에 들어 섰다.  그 순간---
   아아, 태자님!
   아, 승규!
  놀람도 찰나, 괴수의 칼이 섬광을 그었고
   아악---


                  *         *         *
         <<< 이 하 없 음 (편집오류로 추정됨) >>>
                  *         *         *

< 1996년 9월 11일 오전 3시 20분!>

 

 

<제 12 화>
望鄕哀話(망향애화)
阿非知의 九層塔 <제목이상>


  하나, 둘, 셋, 넷---
  분명히 느껴지는 살기(殺氣)가 넷이다.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 왔다가 다시 멀어진다.
  (쳇! 오늘만은 편히 쉴랬더니 또 귀찮아지겠군)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소리없이 자리를 일어선 시커먼 그림자 하나.
  밤.
  온 누리는 칠흑속에 잠겨버린 三경이다.
  이슬을 받으며 노숙(露宿)하던 그림자는 살기와 함께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넷을 따른다.
  그림자의 손에 들려진 지팡이는 앞길을 더듬고 있었다.
  마치 맹인(盲人)들이 나아갈 길 앞의 상대를 피하려고 더듬는 것처럼---
  그렇다.
  그림자는 바로 맹인인 것이다.
  (네놈중의 두놈은 장한(壯漢)이군.  그리고 두놈은 좀팽이다.  그중
한놈의 손엔 오랏줄이 들려있단 말이다.  병장기는 칼이다)
  맹인은 앞에 가는 살기 넷의 정체를 속으로 진맥해 보았다.
  육중하게 놓여지는 발소리와 잽싸게 움직여지는 발소리로 장한과
좀팽이는 구별이 갔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물건들이 옷깃을 스치는 소리를 듣고 오랏줄과
칼을 식별할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