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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쓸데없는 입시논쟁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물리학과 법학, 대략 보수와 진보. 이렇게 많이 다르면서도 명문대 교수라는 공통점을 지닌 김대식·두식 형제가 몇 년 전 쓴 『공부논쟁』을 다시 꺼내 봤다. 특목고·자사고 폐지논쟁을 비롯해 수능 절대평가 전환 등 대입을 둘러싼 혼선으로 시끌시끌한 요즘, 생각 다른 두 교수가 교육문제를 어떻게 다른 시각으로 바라봤는지 문득 궁금해져서다.
 
‘이공계 위기는 허구’라며 ‘창의성 떨어지는 전교 1등의 의대행을 오히려 좋아해야 한다’는 등 출간 당시 화제가 됐던 김대식 서울대 교수의 발언 외에 장인DNA와 장원급제DNA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왔다. 장인DNA란 말 그대로 좋아하는 일을 스스로 깊게 파고드는 사람이고, 장원급제DNA는 꽂히는 건 없지만 늘 100점을 받는 호기심 제로의 인간형이다. 지금까지는 장원급제DNA의 시대였다. ‘공부 잘하면 뭐든지 잘한다’는 전제 아래 장원급제DNA가 과학자 같은 장인DNA의 일자리까지도 다 차지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굳이 4차 산업혁명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지금 필요한 건 장원급제DNA가 아니라 장인DNA다. 시키는 대로 성적 잘 받고 스펙 잘 만들어 그럴듯한 대학 간판을 딴 사람보다 창의성이나 공감 능력, 자발적 동기 부여 같은 로봇과 차별화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바뀐 세상에서 더 경쟁력이 있다는 얘기다.
 
미래를 고민하는 전문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대학에서 배운 것(혹은 대학 간판)으로 평생 먹고사는 ‘평균의 시대는 끝났다’며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MIT 미디어랩 조이 이토 소장은 『더 빨라진 미래의 생존원칙 9(나인)』에서 오래된 트럭을 고치는 동안 세상은 신형 랜드스피더(영화 ‘스타워즈’의 공중부양차량)가 돌아다니는 공간으로 바뀌었다는 비유를 든다. 세상은 급변하는데 시대에 뒤떨어진 엉뚱한 문제에 매달리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걸 꼬집는 말이다.
 
딱 우리 얘기 같지 않은가. 입으로는 다들 창의적 인재 양성을 운운하지만 교육과 관련한 모든 논의가 결국 명문대 관문 뚫기를 위한 입시 방법의 변화에만 맞춰져 있으니. 장인DNA를 어떻게 키울까 고민해도 부족한 시간에 장원급제DNA만 붙잡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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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9.06 01:5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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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수대] 맘충에게 살충제를 뿌렸더니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요즘은 무슨 벌레가 그리 많은지. 맘충(어린 자녀 키우는 엄마)·급식충(급식 먹는 중·고등학생)·한남충(한국 남자)·틀딱충(틀니 사용할 정도의 노인)…. 징그럽고 세상 쓸모없다며 손가락질하는 걸로는 참을 수 없어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라며 벌레퇴치제를 여기저기 뿌려댄다. ‘노키즈존’은 맘충(엄마)과 유충(아이)을 동시에 내모는 강력한 퇴치제 중 하나다. 문제 있는 벌레 몇 마리만 골라내는 게 아니라 맘충과 유충이 발붙일 싹을 자르고 재생산 고리를 끊어 아예 개체 수를 줄인다는 점에서 때론 살충제 역할까지 한다.
     
    노키즈존의 이 같은 뛰어난 효과가 알려지면서 벌레퇴치제의 쓰임새는 점점 늘어난다. 최근엔 노키즈존의 미투상품(성공한 제품을 그대로 따라 해 내놓는 상품)인 ‘노틴에이저존(No teenager zone)’까지 등장했다. 노키즈존은 효과가 좋긴 해도 사용할 때 맘충의 소음을 유발해 시끄럽다는 단점이 있었는데, 급식충을 겨냥한 노틴에이저존은 별반 시끄럽지도 않아 소리 소문 없이 널리 쓰이고 있다. 부산의 한 유명 커피전문점을 시작으로 PC방에서 서울 압구정동의 유명 버블티 카페에 이르기까지, 이러다간 노키즈존의 인기를 조만간 넘어설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상하다. 벌레퇴치제 덕분에 효과적으로 벌레를 차단했다고 생각했는데 벌레가 줄기는커녕 점점 더 눈에 많이 띄니 말이다. 맘충이 안 보이니 급식충이, 급식충을 차단하니 틀딱충이 출몰하는 식이다. 게다가 메갈충(페미니스트 여자) 같은 전에 없던 신종 벌레까지 속속 생겨나니 그야말로 문 밖으로 발도 못 내밀 만큼 온통 벌레 세상이 돼버렸다. 그 많은 벌레를 다 피하려면 온갖 퇴치제를 뿌려대며 나 홀로 방 안에 앉아 있는 수밖에 없다. 어라, 온갖 문제를 일으키는 벌레를 쫓았을 뿐인데 왜 내가 독방에 갇혀 있는 거지?”
     
    한 세기 전 스위스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는 (대상이 존재하기에 그렇게 묘사하는 게 아니라) 관점이 대상을 창조한다고 했다. 『언어인간학』에서 김성도 교수도 언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라며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세상이 다르게 만들어진다고 했다. 벌레로 가득 찬 세상은 그렇게 불리는 온갖 ‘충’들이 만드는 게 아니라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만든다는 얘기다.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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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8.30 02:17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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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수대] 축복 받은 사람만 늙는다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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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음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에 가장 칭송받는 미덕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늙음은 가장 감추고 싶은 치부라 하겠다. 오죽하면 영화 ‘은교’에서 70대 시인 이적요가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고 했을까.
     
    나이 듦을 형벌로 받아들일 정도로 노인에 대한 차별(혐오)이 만연한 요즘, 의미 있는 선언이 하나 나왔다. 미국의 뷰티·패션 매거진 ‘얼루어’가 9월호 표지모델로 70대의 영국 배우 헬렌 미렌을 내세우면서 “안티에이징(노화 방지)이라는 표현은 부지불식간에 노화를 싸워서 이겨내야 할 대상이라는 메시지를 주기에 더 이상 쓰지 않기로 했다”고 밝힌 것이다. 미셸 리 편집장은 “젊음이 아름답다고 나이 듦이 추한 건 아니다”며 노인차별(에이지즘)에 반대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정반대로 움직인다. 사회가 성숙해질수록 성차별이나 인종차별 등 나와 다른 이에 대한 공공연한 차별을 금기시하기 마련인데 유독 노인차별은 점점 더 심해진다. 젊음에 대한 강박을 부추기는, 어쩌면 죽는 것보다 늙는 걸 더 두려워하는 사회 분위기 탓이다. 편견과 차별은 늘 나와 다른 집단을 향하지만 노인차별만큼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 자신의 미래를 가리키고 있는데도 말이다.
     
    젊음이 워낙 큰 미덕으로 받아들여지다 보니 동안이라거나 젊어 보인다는 말은 누구에게나 듣기 좋은 큰 칭찬이 된다. 하지만 『나는 에이지즘에 반대한다』를 낸 작가 애슈턴 애플화이트는 “칭찬이 아니라 차별”이라고 주장한다. 젊음은 좋고 늙음은 나쁘다는 식의 나이 불평등을 자연스럽게 여기고 젊음에 집착하도록 만든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지난 4월 TED 강연에선 “나이 듦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이라며 “자연스러운 일생의 변화를 부끄러운 문제나 두려운 질병처럼 만들어 결국 화장품회사와 제약회사만 돈을 번다”고도 했다. 그러고 보니 화장품 중에서도 교묘하게 차별을 담은 게 비싸게 팔린다. 화이트닝이 그렇듯 안티에이징 역시.
     
    누구나 죽는다. 하지만 축복받은 사람만 늙을 수 있다. 젊든 늙든 이 점만 기억하면 서로 혐오하기보다 존중하며 좀더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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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8.23 02:27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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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수대] 계란을 이렇게 먹기 어려워서야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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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계란 사 먹기가 왜 이리 힘든지. 2016년 말부터 이어진 조류독감(AI) 여파로 지난 10년간 큰 변동 없이 한 판(30개, 특란 기준)에 5000원대를 유지하던 계란값이 연초부터 고공행진을 거듭, 무려 1만원에 육박하더니 이번엔 살충제 성분 검출로 계란 유통이 사실상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껑충 뛴 가격 탓에 올 들어 팔자에도 없는 미국 계란, 태국 계란까지 맛본 보람도 없이 산란계 살처분으로 인한 공급 부족에다 살충제 사태마저 겹치면서 앞으로 값이 얼마나 더 오를지 가늠하기조차 어렵게 됐다. 아예 식탁에서 사라질 판이다.
     
    계란은 없어도 그만인 평범한 식자재가 아니다. 필요한 영양 성분을 다 갖춘 완전식품인 데다 맛도 좋아 한국인의 밥상에서 웬만하면 빠지지 않는다. 게다가 빵의 주재료이기도 하다. 수요는 점점 늘어만 가는데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니 이러다간 계란 한 줄(10개) 값이 소고기 한 근(0.6㎏)과 똑같았던 광복 직후의 고가 음식 반열에 다시 오르게 될지도 모르겠다.
     
    계란값이 지난 10년 동안 워낙 안정적으로 유지돼 온 탓에 잠시 잊고 있었지만 알고 보면 계란만큼 드라마틱한 가격 부침을 겪은 식자재도 드물다. 양계산업이 발달하지 못한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계란은 특별한 날에나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그러다 국산 씨닭 개발에 성공해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가격이 뚝 떨어졌다. 심지어 1979년엔 경기침체로 계란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자 계란값이 형편없이 폭락하기도 했다. 양계업자들이 스스로 감산을 결의하고 생산가보다 낮은 값에 홍콩과 사우디아라비아 등에 수출까지 했는데도 속절없이 떨어지는 가격을 붙잡지 못했다. 이 계란 파동은 몇 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저온 저장시설마저 전혀 없어 당장 팔지 못하면 내다 버릴 수밖에 없었기에 가격 조절이 더 어려웠다.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계란은 대표적인 값싼 단백질 공급원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니 10년 전 중국에서 가짜 계란이 나왔다고 했을 때 다들 놀랄 수밖에. 중국인의 ‘남다른’ 스케일에 입이 벌어지는 한편 그렇게 싼 계란을 가짜로 만들면 뭐가 남을까 싶어서였다. 그런데 계란값이 급등하다 못해 식탁에서 사라질 위기를 겪다 보니 정말 인공 계란이라도 먹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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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8.16 02:04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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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수대] 경험을 사고파는 시대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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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團塊·덩어리) 세대가 세상을 떠나는 시기가 되면서 명품 그릇 처리에 골머리를 앓는다는 얘기를 어느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자식들은 취향이 다르다며 물려받고 싶어 하지 않는데 중고시장엔 이미 수십만 세트가 풀려 있어 더는 팔 수도 없다고 한다. 그러니 제아무리 값비싼 명품 브랜드라도 결국은 싸구려와 똑같이 쓰레기장에 버려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한때는 분명 모두가 탐내던 식기였을 텐데 왜 이렇게 처치 곤란 애물단지 신세가 됐을까.
     
    답부터 얘기하자면 소비의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전후에 태어나 성장일로의 삶을 살아온 단카이 세대의 소비는 과시형이었다. 남들이 가진 건 나도 가져야 하는 건 기본이요, 남들 없는 것도 하나쯤은 소유해야 했다. 자신의 취향보다도 남들이 알아주는 브랜드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남과의 비교우위에서 만족을 찾는 소비였던 셈이다. 단카이 세대의 자녀 세대가 소비의 중심으로 떠오른 일본에선 지금 남들 보여 주려고 ‘더 크게, 더 고급스럽게’를 외치던 브랜드 지향 소비에서 탈피해 나만의 가치를 중시하는 소비로 옮겨가고 있다고 한다. 객관적으로 얼마나 가치 있는(혹은 비싼) 물건이냐가 아니라 나에게 얼마나 의미 있는 물건이냐에 따라 소비를 결정하다 보니 물건 그 자체보다 물건과 얽힌 경험이 점점 더 중요해진다는 얘기다.
     
    사실 일본뿐 아니라 한국도 마찬가지다. 물건만이 아니라 경험까지 함께 팔아야 싸든 비싸든 사람들이 지갑을 연다. 이렇듯 경험을 사고파는 식으로 소비 패턴이 점점 바뀌면서 책 한 권도 특별하게 파는 서점이 등장했다. 최근 부산에 문을 연 복합휴양단지 아난티 코브의 ‘이터널 저니’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크기의 3분의 1 공간에서 무려 2만 권 넘는 책을 팔면서 그 흔한 도서검색대 하나 없다.
     
    일부러 이런 불친절한 서비스를 택한 이유도 바로 ‘경험’에 있다. 서가를 구경하면서 발견의 재미를 느끼라는 것, 그렇게 우연한 발견으로 산 한 권의 책은 어디서나 살 수 있는 평범한 책이 아니라 이 공간에서의 경험이 담긴 특별한 책이 된다. 책을 파는 게 아니라 경험을 파는 셈이다.
     
    책 한 권 파는 데도 스토리가 필요한 시대다. 사람은 오죽할까. 생각이 많아진다.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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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8.10 02:42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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