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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부버(Martin Buber)의 <나와 너(Ich und Du)>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나와 (Ich und Du)>

 

철나던 시절, 27 처음 했을 때의 감동이 이제는 남아 있지 않치만, 내게 인간이 무엇이고 인생이 무엇인가를 성찰 시킨 권의 책이 있습니다.

 

독일의 (정확히 말하면 이스라엘의) 철학자, 마르틴 부버 (Martin Buber) Ich und Du  (나와 ) 라는 책입니다. 그때는 번역서도 없었던 시절이라 독일어로 원서를 읽었는데 비교적 쉽고 이해하기 좋았던 책입니다.

 

나에겐 위대한 비참한 있다는 이야기인데 명쾌하게 인간을 이해 있었답니다.

 

책은 내게 인간이 무엇이고 인생이 무엇인가로 고민할 시간을 줄여준 책이었고, 보다 일직 접했다면 좀더 멋진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책입니다.

 

일독을 권하면서, 나이 들어 감흥이 사라지기 전에 27 전으로 돌아가 다시 정리 , 미리 내가 읽고 했던 인간과 인생에 대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마르틴 부버의 >

 

1878년에 오스트리아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난 마르틴 부버는 독일에서 성장하며 학교를 다녔고, 나치당에 의해 추방 당한 이스라엘에 정착하여 대학교수로서 후학들을 가르치며 일생을 보냈습니다. 미국 UN 이스라엘을 승인하자 유태인들은 팔레스타인들을 몰아내고 팔레스타인들이 살던 집을 접수하여 살기 시작했지요.

 

공교롭게도 마르틴 부버가 접수하여 집이 '에드워드 사이드 (Edward Said)' 집입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기회 있을 마다 유태인의 팔레스타인 탄압의 예로 이야기를 하곤 했답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1935 예루살램에서 태어나 2003년에 사망하기 까지 프린스턴 대학을 나온 영문학자로서, 문학평론가로서, 그리고 어린 시절 이스라엘 병사에게 돌을 던지는 팔레스타인 전사로서 치열한 삶을 살았던 분이지요.

 

마루틴 부버는 이스라엘에서 대학교수로 1965 생을 마감하면서 아랍인들에 대한 반성으로 아랍계학생 장학금을 만들도록 유언을 남기기도 했답니다.

 

<나와 >

 

인간과 인생에 대한 냉철한 이해를 <나와 나>, <나와 너>, <나와 그것>으로 대비하여 설명 함으로써 인간과 인생의 접근을 용이하게 만들었지요. 덕에 천주교, 개신교, 유대교 하다못해 불교에서 까지 마르틴 부버의 <나와 > 인용하여 교리를 설명하곤 합니다. 하여 많은 천주교신자는 마르틴 부버가 신부님인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개신교에서는 마르틴 부버가 목사님인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더군요.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해했던 <나와 >와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이해하였기에 많은 부분 다른 이해가 있을 있음을 미리 말하고 넘어갑니다.

 

<나와 >

 

나에겐 <위대한 모습의 나> 그리고 <비참한 모습의 나>의 모습이 있습니다.

 

<위대한 >

 

우선, 천상천하유아독존의 모습으로 탄생한 필연적인 나의 위대한 모습이 있습니다. 때론 태몽으로 주위의 온갖 축복 속에 태어나 세상에 나의 존재를 울음으로 알린 고귀한 존재이지요.

 

그리고 삶의 주인공으로서 고귀한 나만의 색체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걸음 한걸음 조차도 삶이라는 거대한 휴먼드라마의 주인공으로서 기품 있게 걸어가려고 스스로 마임을 정하기도 합니다.

 

세상이라는 극장 속에서 이외의 삶을 처다 보는 유일한 관객이기도 하지요. 나의 논평과 나의 인지만이 유일한 세상극장의 평가 물일 뿐이지요.

 

마지막으로 신이 있다면 신이 나에게 가장 축복이자 가장 실수이기도 것이 나의 자유로운 사고입니다. 나는 스스로 어떤 사고를 하여도 되는 유일한 절대자입니다. 나는 사고 속에서 누구를 범하여도 되고 차마 입으로 표현 못할 상상을 하여도 됩니다. 정말 위대하고 고귀한 않인가요?

 

<비참한 >

 

허나 즐거워 만은 없군요.

 

우선, 나는 어쩌면 나의 부모들의 일순간 동물적인 성적 환락의 부산물일수도 있습니다. 나는 어쩌면 기대되지 않은 예기치 못한 존재일수도 있습니다. 살면서 '저게 태어나서 ......' 내지는 '이럴 라면 만들었냐 ......' 라는 식의 비참한 말들을 쏟아 냈을 수도 있는, 나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아주 우연적인 비참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하긴 내가 순간에 없어진다 해도 세상은 변함없이 돌아갈 것이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열심히들 살아갈 겁니다.

 

그리고 삶의 주인공인줄 알았던 나는 피동적이고 눈치를 보지 않으면 살아갈 없는 비참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며칠만 호젓하게 사라져도 주위의 사람들은 분명 가출신고를 것이고, 직장에서는 무단 근무지이탈 등으로 엄청난 재제조치가 가해질 겁니다. 80518 회원 여러분들만 하여도 이제는 노란 장미에게서도 자유롭지 못하시지요^^

 

수많은 눈들로 인하여 나는 제약 받고 절제되는 비참한 존재입니다. 자유롭고 싶다고 나체가 되어 길거리에서 날뛰면 분명히 정신병원이든 파출소든 격리조치가 취해지겠지요. 그리고 철저히 다른 주인공들을 위해 나는 죽어라 처절한 조연만 연출하여야 하는 비참한 존재입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나의 사고와 표현조차도 구속 받고 있는 비참한 존재입니다. 나는 그리스 신화를 들먹이며 나의 위험천만한 사고를 오이디프스 컴프랙스나 엑랙트라 컴프랙스로 위장하여 거창한 기만을 떨지 않고서는 금단의 선을 사고에서 조차 넘을 없는 비참한 존재라는 겁니다.

 

<인생>

 

우리 인간은 거창한 태몽을 가지고 태어났어야만 했던 필연적인 존재이며 언제나 돋보이고 주목 받는 주인공이며 나의 평가가 언제나 무한히 미치는 아주 자유로운 사고를 지닌 모습으로 우리의 삶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그러나, 내가 태어나서?’ 조리는 우연적 태생의 존재로 피동적으로 이곳 저곳 눈치를 보며, 들러리 서듯 조연으로 살아가며, 함부로 생각조차 하지 못하며 살아갈 수도 있다는 자체가 인생이지요.

 

<나와 >

 

위대한 나의 요소들을 인식할 위대한 너가 있음을 느끼게 되고 위대한 나를 구하듯 위대한 너를 받아드리는 것이 인간인 내가 다른 인간인 너와의 대비된 관계 속에서 조화롭게 인생을 살아갈 있겠지요.

 

<나와 그것>

 

나만이 오직 위대한 필연적인 존재성을 가져야 하고

나만이 오직 위대한 주체적 삶의 주인공이어야 하고

나만이 오직 위대한 평가를 남발할 있는 유일한 세상 관객이어야 하고

나만이 오직 위대한 자유로운 사고를 얼마든지 있어야 한다는.

 

그런 나에게 있어 너는 존재할 없고

오직 보잘것없는 그것만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

 

지난 1980 한국에서,

 

전두환에게 <나와 > 관계가 있었다면 5.18 학살은 없었을 겁니다.

전두환에게는 자신만이 위대하고 싶었던 <나와 그것> 관계만 있었기에

 

금남로 에는 창자가 터지고

둔부가 날아가 뇌수가 흐르는

<그것>들의 시체가 부러져 있었습니다.

 

뒤로는 한국에서

 

우리 모두는 무슨 무슨 사고로 한두 명쯤 죽었다는 소리쯤에는

하나 꿈쩍 않는 <나와 그것> 관계가 전염병처럼 번지고 말았지요.

 

<나와 > 관계가 회복되어

인간이 인간답게

서로의 위대한 모습을 존중하며

온전한 인생을 구가하는

그런

한국이 되었으면 좋겠군요.

 

http://cafe.daum.net/80518

 

노란장미 이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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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ta Ana & San Bernardino National Forest

Santa Ana & San Ber

 

이번주는 Santa Ana & San Bernardino National Forest에 있는 인프라를 점검하고 호텔방에서 이사진들을 함께 나누고자 올립니다.

남부 캘리포니아의 산불로 화재의 연기가 Santa Ana & San Bernardino National Forest에서 바라본 샌버나디노와 리버사이드 쪽이 연기자욱하게 보입니다.

사막지대인 캘리포니아는 겨울엔 초록이 만발하고 여름에는 초라합니다. 강우량이 겨울에 집중되기도 하구요. 산임자가 자랑하는 저택을 산봉우리에 지어 놓았군요.

철강회사 주인이기도 한 집주인이 그나마 자신의 개인길을 포장해 놓아 여기까지는 쉽게 올라왔습니다.

집이 근사하지요. 제가 가고자하는 댐과 저수지는 더 산골로 비포장을 달려야 하는데 ...

"남가주 에디슨 전기회사 소속이거나 산림국소속이거나 공적인 일이 아닌 자가 지나가면 이 지역 셰리프가 감시카메라 지켜보고 잡아간다" 길을 막아놓고 엄포를 적어 놓았군요. 글투가 총이라도 쏠 테세입니다.

산꼭대기에 백수십년전에 만든 댐과 저수지가 있습니다. 물도 약수가 따로 없지요.

낙차를 이용해 전기는 전기데로 알들하게 쓰고 물은 물데로 샌드박스를 설치해서 모래를 걸러내서 식수로 사용하고 ... 이것도 서부개척역사의 한부분이지요. 수십마일에 달하는 터널을 싼 인력만으로 만들었던 사람들이니 .. 

어 이거 작동을 않하고 있네. 시설점검 좀 해볼까요?

군청공무원이 작동주기가 아니라서 ... 하며 작동을 시도하고 산림국 직원들이 대기를 합니다.

작동을 하는구만 ... 합격!

Santa Ana 강은 메말라 허연 모래바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겨울 집중강우때는 제법 강의 형태를 갖추지요. 때로는 홍수도 나구요.

윙윙거리는 송전선 ... 어마어마한 에너지 시설들이 즐비합니다. 일반에게는 공개할수 없으니 상상만하시길 ...

nardino National Fo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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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 개척 역사의 현장 - 쌔꼬야 팍

미국 서부 개척 역사의 현장 - 쌔꼬야 팍

黃醬

2007.05.16
 

제 블로그를 방문하시는 분들이 하나 둘 늘어 참 반갑고 기쁩니다. 오늘은 어느분이 다녀가셨나 궁금하기도 하여 점심때면 늘 들어와 보게 되는 군요. 방명록이나 꼬리글을 선듯 선듯 달아주시지는 않치만 왼쪽에 '최근 방문자' 리스트가 궁금쯩은 해소를 해 주는군요. 다들 바쁘실 터이니.

 

제가 하는 일중엔 콜로라도 부터 하와이까지 미국 남서부의 댐을 비롯한 에너지 인프라스트락쳐에 대한 정기적인 기술안전점검을 하는 임무도 있는데요. 지난주에는 갤리퍼니아 세꼬야 내쇼날 팍 근처의 툴리 리버에 있는 시설 점검을 하고 왔습니다. 연방공무원인 제가 인스팩터로 나온다고 시골 주공무원과 카운티 군청 공무원들이 마중나오고 안내를 하게 되거든요.

 

저도 오래전에 플로리다에서 군청공무원을 한적이 있어 연방공무원 무서운줄 알거든요. 긴장감이 흐를수 밖에는 없게 되지요. 점검에서 불합격을 받거나 지적을 받으면 나머지 일년이 참으로 지옥이거든요.

운전을 하던 소심해 보이던 군청 공무원인 영감님이 비포장길 또랑에 차 앞 왼쪽바퀴를 바뜨리고 안절 부절을 못하더군요. 다소 멀찌감치 떨어져 한장 찍었는데. 적나라한 과정을 찍자니 미안하기도 하여 더는 못 찍겠더라구요.

 

저를 비롯하여 주공무원 군청공무원 전기회사직원들 10명정도가 뒤 오른쪽 바퀴에 매달려서 차를 쉽게 빼내기는 했는데 재미 있기도 하고 이곳을 들르시는 분들 꼬리글이라도 남기시라고 사진 몇장을 보안규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내에서 올립니다. 미국 서부개척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백년도 넘는 신기한 시설들이 많이 있고요. 아름다운 미국의 산하가 꿈처럼 펼쳐질건데 즐겁게 감상하시고 글 남겨주시면 줄기 장장 올릴수도 있다는거 아시지요?

 

경치좋은 시골 발전시설에 그늘에 차를 세우고 점검준비완료.

 

아니 이제서 뭘 고치는 거야? 눈가리고 아옹?

 

캘리포니아는 기본적으로 사막지대입니다. 백수십년전 서부개척의 역사와 함께하는 증거하나, 나무통 수로가 장장 5마일 가까이 새꼬야 팍을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부분 부분 패칭을 하긴 했지만 인스팩션을 늘 통과하는 신통한 고물단지 입니다. 

이게 가깝게 본 나무때기 관수로랍니다.

댐 구탱이에서 바라본 새꼬야 팍의 한 골짜기

어느 댐이라도 물고기가 댐 위 아래로 왔다 갔다 할수 있도록 물고기 수로를 만들고 운용하지 않으면 큰일이 나지요. 인간과 물고기가 함께 사는 세상 ... 이곳도 예외는 않이지요.

올해도 변함없이 Inspection 보조역을 맡아준 미국 농림부 산림국 이지역 담당자인 Tom이 함께했습니다. 작년보다 부쩍 더 나이들어 보이는군요. 2년뒤면 정년이라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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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들 놓고 흙집 짓는 '토수'를 아시나요?

구들 놓고 흙집 짓는 '토수'를 아시나요?
구들연구소를 찾아서... 외길 걸어온 무운선생
텍스트만보기    이상원(onesam) 기자   
▲ 구들연구소 입구에 있는 팻말.
선친 김두봉 선생을 염두하신듯 해방전후사박물관 예정지 팻말도 보입니다.
ⓒ 구들연구소 제공
나무로 집을 짖는 '목수'를 모르는 분들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구들을 놓고 흙집을 짖는 토수를 들어본 분들은 그리 많치 않을 것 같군요. 여기 친환경 주거문화를 한국식으로 복원하고 지켜나가는 성공적인 구들연구소가 있습니다.

구들연구소는 강원도 속초 못미쳐 강현에 위치하여 있고 인터넷에 회원이 천명도 넘는 카페(http://cafe.daum.net/sowoozee3/)도 있답니다. 그 연구소와 카페를 이끄시는 분은 오랜 세월 '토수'일을 해오신 무운 김명환 선생이십니다. 무운 선생은 제 부친의 지인이시고 학생시절 한번 뵌적도 있는 분입니다.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 무운선생의 선친을 언급하여도 될듯합니다. 사회주의계열의 입장에서 독립운동을 하셨고 주시경 선생과 더불어 한글학자로 유명하셨던 조선독립동맹 주석 김두봉 선생이 무운 김명환 선생의 선친이십니다. 선친 덕분에 무운 김명환 선생은 험난한 질곡의 세월을 살아오셨을 것이라 능히 짐작이 가시지요?

특이한 가족사를 지니신 무운선생이 '토수'의 외길을 걸어오신 걸 저도 얼마전에야 알았습니다. 제가 일전에 기사로 올린 지운 김철수 선생의 기사를 보시고 소식을 주셔서 무운 선생의 카페 회원이 된거지요.

무운 선생은 토수중에서도 전통가옥에 물과 불과 바람을 이용하여 난방을 하는 구들을 전문적으로 시설하시는 토수입니다. 물론 구들연구소 카페를 돌아보다 보면 흙을 이용하여 지은 봉토집, 돌을 이용하여 지은 돌벽집, 그리고 해외여행을 통해 수집한 흙집에 대한 사진과 자료가 풍부한것을 느끼게 됩니다.

▲ 손수 구들 놓기 실전 교육중인 무운 선생.
ⓒ 구들연구소 제공
무운 선생은 현대감각에 어울리는 흙집과 구들을 과학적이고 실증적으로 한국의 주거문화에 접목시키는 일도 꾸준하게 해오고 계십니다.

구들의 원리를 '막고-터고, 죽이고-살리고, 밀고-당기고, 나누고-합치고, 빠르고-느리고, 펴지고-오르고, 세고-약하고, 거슬리고-순하고'로 무운 선생의 경험어린 쉬운언어로 풀어 누구나 쉽게 이해할수 있도록 분류하여 정리를 해 놓았습니다. 구들공사에 쓰이는 자재를 세부적으로 다루어 설명한것도 보는이의 입장에서 고맙기가 그지없습니다.

불아궁이, 재아궁이, 함실아궁이, 개량아궁이, 부뚜막 등이 정감어린 시골 고향의 어린시절로 안내하기도 합니다. 고래켜기도 줄고래, 부채고래, 허튼고래 등 무운선생이 평생 구들을 놓는 토수로서의 경험과 기술을 거의 완벽하게 체계화시켜 정리를 해놓았다고 느껴집니다. 하다못해 구들에 쓰일 화목의 선택과 화력에 대한 정리는 무운선생의 꼼꼼한을 엿볼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여내미의 높낮이며 연도의 형상 그리고 굴뚝과 구새, 연통에 대한 정리는 학술적인 차원에서도 쉽게 접하기 힘든 자료들이기도 합니다. 10가지로 세분화시킨 구들을 이용한 따순방을 놓는 구들방법과 예는 이미 구들이 학문적인 차원에 들어선 느낌입니다.

12가지로 실전 구들놓기를 보다보면 '토수'라는 직업이 '목수'이상의 기술과 경험이 필요하고 섬세함을 요구하는 직업임을 느끼게 합니다.

그외에도 방바르기 기술에는 진흙, 종이, 소강, 콩땜, 쎄락, 천등으로 바르는 기술이 있습니다. 자연순환 구들온수난방기술과 구들구조형 난로기술 등은 특허를 신청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구요. 아자(亞字)·만자(卍字)·십자(十字) 구들은 말 그대로 신비한 구들이구요. 무운선생의 건축일지는 흥미진진하기까지 합니다.

▲ 무운선생이 직접 지은 돌집으로 굴뚝을 통해 구들이 잘 들어서 있음을 보인다.
ⓒ 구들연구소 제공

회원가입 단서에 표절을 않겠다는 다짐을 받는것을 보니 요즘 비슷한 상업용 웹사이트에서 무운선생이 인생을 정리하듯 정리하고 모아놓은 자료들을 무단표절하기도 하여 심기를 많이 어지럽히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그동안 시공했던 구들을 원리적으로 분류하고 체계화시켜 일반에게 꾸준하게 교육도 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1월 26일부터 28일까지 3일간 구들연구소가 있는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답리에서 29번째의 구들교육을 카페회원들을 대상으로 인자(引字) 하단다동(夏單多冬) 고래놓는 법을 중심으로 교육합니다.

▲ 28기 교육생들과 함께... 구들놓기 실전교육후 만들어진 구들에 불을 집히고 교육생들과 함께한 무운선생.
ⓒ 구들연구소 제공

사랑하는 아내와 한적한 시골에 자연친화적인 아담한 흙집을 손수 지어 살아보실 마음이 있는 분이시라면 부부가 함께 참가해도 좋을 듯 합니다.

옛 어른들이 하시던 말씀이 불현듯 떠오릅니다. '왕대밭에 왕대난다.' 풍지박산난 김두봉 선생의 가계에서 그분의 자제중에 한분이 오늘 그분의 평생의 업이었던 '토수'를 들고 우리 앞에 등장했습니다.

환경을 전공한 필자의 입장에서 무운 선생의 흙집은 아토피의 악몽에 쌓여있는 분들에겐 희망의 등불이 될것이라 굳게 믿어 봅니다.
정해년 첫 구들교육

이번 구들 교육은 [인자(引字)'하단다동(夏單多冬)'고래놓는 법 )] 중심으로 교육을 합니다.
일시 : 2007년 1월26일(금)17:30~28일(일)12:30분까지(2박3일) ***첫날 교육은 19:30분부터
장소 :구들연구소http://www.gudeul.net/(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답리 117)
연락 : 018-623-8848, (033)-672-0173, (033) 673-8848
회비 : 250,000원(2박3일에 대한 숙식및 교재 수료증교부) **부부 참가시에는 100,000원 추가됨
특전 : 참가자에 한해서 동양화 반절지 1점 드림
강사 : 無耘 (김명환)
접수방법 및 확인요령 : 이메일 sowoozee@hanmail.net 로 접수하시고
입급은 농협 331015-52-012941 예금주:김명환 (입금자순으로 15명)
접수마감 : 1월 24일까지(식당 예약관계로 기간엄수)
주의 : 우천 불구 실시함

[교육내용]
구들 이론/삼륜과 오행 상생상극
부뚜막 아궁 만들기
함실 아궁 만들기
개량형 아궁 만들기
줄고래와 허튼고래놓기
대동고래 놓기
연기 새지 않는 흙방 바르기
갈라지지 않게 흙방 바르기
거중기 만들기와 돌벽쌓기
봉토/토굴 파는 법
매듭법
2007-01-14 18:53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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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수치의 역사 한자락

숨겨진 수치의 역사 한자락
친일파 청산의 이유가 선명해졌던 순간 

얼마전 미국 TV 방송국 History Channel 에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콰이강의 다리를 포함한 버마 철로 건설에 동원되었던 포로들의 이야기를 방송하였습니다. 동남아에서 일본군의 전쟁 포로가 되었던 유럽군인들의 증언이 많앗던 내용이었지요.

그런데 그 내용은 우리네 부모님들이나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서도 흔히 들을 수 있었던 한국에서 벌어졌던 끔찍한 만행을 넘어서고 있엇습니다. 중국과 동남아 등지에서도 그들이 저지른 온갖 잔혹한 일들을 막연히 알고 있었지만 이처럼 살아 남은 사람들의 증언을 듣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답니다.

퇴근 후 저녁식사를 기다리며 잠시 틀었던 TV방송 인지라 식사가 준비되었다고 하는 소리가 들리자 막 끄려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들린 “Korean”이란 단어에 갑자기 머리끝이 섬뜩하여 눈과 귀가 고정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한국의 많은 분들이 알고 계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전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고 살펴본 역사의 한자락이었습니다. 무려 25만명이나 되는 유럽군인들이 동남아에서 일본군에 체포되어 전쟁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들 중 몇 만명이 버마 철로 건설현장에 끌려가 노역을 하였답니다. 많은 포로들이 하루에 1000칼로리도 안되는 쌀죽으로 연명을 하며 영양 부족으로. 그리고 말라리아와 콜렐라와 같은 풍토병으로. 또 탈출하려 시도했다는 등의 죄목으로 총살당하여 일부 부대는 전체 포로인원의 47%까지 죽어 나갔다는군요.

뼈만 앙상하게 남은 포로들을 하루에 2시간씩 재우며 일이 좀 늦어지면 대나무로 구타하고 아주 쉽게 총살했답니다. 대나무로 얼기 설기 지은 포로들의 잠자리는 하루에도 몇차례씩 쏟아지는 몬순 소나기를 피할수 없었답니다.

이 포로들을 담당하는 일본군 간수들은 일본 정예군이 아니었다는군요. Second Ranked Troup 이라 표현할걸 보니 군대로 치면 질이 떨어지는 부대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부대에는 한국에서 징용당해온 한국인들이 제법 있엇다는군요.

그런데 그 중에서 가장 혹독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던 일본군 간수가 바로 일본군으로 징용나온 한국사람 이었답니다. 포로들이 Mr. Blood 라고 불렀다 하니 제게는 ‘흡혈귀’쯤으로 이해가 되는 군요. 그 Mr. Blood 는 일본이 패전을 하자마자 포로들에게 잡혀서 교수형에 쳐해졌다는 군요.

살아오면서 사소한 일상들 조차도 쉽게 진실이 왜곡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가해자가 쉽게도 피해자로 둔갑되기도 하지요. 한국사람들은 일본이라고 하면 분노가 삭혀질 수 없는 피해자로 인식되어야만 하는줄 알고 살았답니다.

90의 나이를 바라보는 노인이 된 살아남은 그 네델란드 노인이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일본군으로 징용나온 그 한국인 간수가 자행했던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문을 증언하는 그 방송 내용을 보며 같은 한국인으로서 너무나 수치스러워움을 느꼈습니다.

일본의 침략 만행에 피해자이면서 그 만행에 협력한 한국인들의 심리연구와 다른 나라들의 경우는 어떠한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 오랜세월이 지났지만 우리가 무슨 이유로 친일파를 척결하려하는지 그 이유가 선명하여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잘 알려진 사실인데 저만 모르고 있었나요? 잘 모르셨다면 우리 함께 고민해 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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