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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민 정치 컨설턴트의 2017 대선 전망 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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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1991년 설립한 ‘민(MIN) 컨설팅’대표>

30년간 정치를 현장에서 관찰하고 수많은 선거를 이끌었다.

전략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승리를 위한 캠페인 방법을 몸으로 익혔다.

세계 최고의 전략컨설팅 회사를 꿈꾼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가 민주주의라고 믿고 있다.

‘힘든 일은 있어도 나쁜 일은 없다’는 인생관으로 버틴다.

책과 영화, 커피를 사랑하며 걷는 것을 즐긴다.

‘2017 오디세이아’를 통해 차기 대선을 향한 여정을 독자들과 함께한다. <격주 연재.>

 

‘역사는 과거의 정치고, 정치는 현재의 역사다.’ - 존 로버트 실리

 

‘기록은 기억을 지배 한다’.

카메라 광고 카피이기도 한 이 문장은 반박하기 어려운 진리처럼 들린다.

홍상수 감독 역시 ‘인간의 기억은 믿을 게 못 된다’는 메시지를

영화를 통해 반복해서 보여준다.

그에게 사람의 기억이란 제멋대로 각색한 ‘각자의 왜곡’일 뿐이다.

그는 우리에게 ‘일기를 쓰라’고 충고(?)한다.(북촌방향)

 

그러나 ‘본 대로’ 기록했다고 진실이 되는 것도 아니고,

‘들은 대로’ 말했다고 사실이 되는 것도 아니다.

기억이 기록을 이길 수도 있다.

 

<자유의 언덕>에서

홍상수는 ‘기록의 일본’과 ‘기억의 한국’을 대비시키지만

기록(주인공 일본인의 편지)조차도 뒤죽박죽 뒤섞여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무엇을 보았느냐보다 어디에서 보았느냐가 중요하고

그보다는 어떻게 기억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역사는 실존적으로 기억된다.

결국 나라의 역사든 개인의 삶이든 ‘기억’과 ‘해석’을 통해 재구성된다.

정치는 역사가 되고, 역사는 정치가 된다.

 

박정희에서 박근혜까지 ‘한국적인 삶’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같은 세대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 인식도 공유한다.

 

6·25, 4·19, 5·18, 6·10 등과 같은 역사적인 날을 통해

1950년, 1960년, 1980년, 1987년을 기억한다.

엄청난 인명 피해가 난 사건을 통해 기억하기도 한다.

사라호 태풍, 대연각 호텔 화재,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세월호 참사로 1959년, 1971년, 1994년, 1995년,

그리고 2014년을 기억한다.

 

1988년 서울올림픽, 2002년 월드컵과 같이

국가적 스포츠 행사로 기억하기도 한다.

좋아하는 뮤지션의 음반이 발매된 해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고

응원하는 야구팀이 한국시리즈 우승했던 해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다.

작가들은 어느 소설이 발표된 해로 기억하고

영화인들은 개봉된 영화를 중심으로 그해를 기억한다.

 

1997년은 이른바 ‘아이엠에프(IMF) 사태’가 터진 해이고

김대중이 네번의 도전 끝에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된 해이기도 하다.

입시제도가 바뀐 해를 기억하는 세대도 있다.

 

알고 보면 모든 해는 다 ‘역사적’이다.

역사적 사건이 있었거나, 역사적 승리가 있었거나,

역사적 기술이 태어났거나, 역사적 제도가 도입되었거나,

역사적 인물이 죽었거나, 역사적 회담이 있었거나,

역사적 판결이 있었거나, 역사적 사고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방식으로 역사를 기억한다.

 

한국에서의 대통령 선거는 정신건강(?)을 건

실존적 선택 2017년 역시 그럴 것이다한국인들의 시간 기억방식은

‘○○○ 정권 때’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대통령 돼야 하는가?

대통령 된 이들은 무엇이 달랐나?

국민은 어떤 대통령을 원하나

여야 경쟁력 후보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답해보고자 한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기자인 장폴 뒤부아가 쓴

‘프랑스적인 삶’이라는 소설이 있다.

 

출간 즉시 프랑스 전역에서 압도적인 공감을 얻어내며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기도 한 이 소설로 그는

100년 전통의 페미나 문학상을 수상했다.

1950년생인 그는 이 소설에서 한 프랑스 남자의 자화상을

다섯 번이나 바뀐 정권의 변천사 속에서

밀도 있게 그려낸 것으로 평가받았다.

 

책의 목차가 인상 깊다.

9장으로 구성된 목차가 대통령 이름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1.샤를 드골  2.알랭 포에르(1)  3 조르주 퐁피두  4.알 랭 포에르(2)

5.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   6.프랑수아 미테랑(1)   7. 프랑수아 미테랑(2)

8. 자크 시라크(1) 9.자크 시라크(2).

(알랭 포에르는 짧은 권한대행을 두번 역임했다.)

 

이런 제목 이런 목차의 소설이라면 한국이 제격이다.

‘한국적인 삶’이라는 소설의 목차가

1.이승만  2.윤보선  3.박정희  4.최규하  5.전두환  6.노태우  7.김영삼

8. 김대중  9.노무현 10.이명박. 11.박근혜로 되어 있다고 상상해 보라.

한국 현대사를 생각한다면 얼마나 극적인 소설이 될지 상상이 될 것이다.

 


내가 쓴다면

1.박정희로 시작해서 9.박근혜로 끝낼 것이다.

이들이 우리 국민의 정신세계에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프랑스는 비교가 될 수 없다.

 

한국에서 대통령 선거는 단순히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건강(?)을 건 실존적 선택이다.

 

2017년 역시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인들이 시간을 기억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식이

‘○○○ 정권 때’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익숙한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백억년과 백만년을 비교하는 것보다는

백억원과 백만원을 비교하는 것이

훨씬 쉽고 빠르게 이해되지 않는가.

 

같은 시대를 살면서 같은 것을 보았다고 해서

기억이 같은 것은 아니다.

다른 처지에서 봤다면 기억도 다른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의 역사는 공산주의, 북한, 종북과 싸워 온

전쟁의 기억이지만 반공과 싸워 온 역사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가난과 싸워 이긴 땀과 눈물의 기록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독재와 싸워 이긴 피의 기록이기도 하다.

 

일부의 선각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는

인식을 하기가 쉽지 않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국가의 발전이 나의 발전의 근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1980년대 와서야 비로소 ‘국민이 국가’임을 자각했을 것이다.

 

생존·민주·개방의 시대, 그리고 다시…

 

사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대한민국은

 ‘생존’의 시대였다.

북한과 싸우고 가난과 싸웠다.

전쟁 중에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가족들과 헤어졌다.

고아와 과부, 그리고 불구가 된 사람들이 도처에 있었다.

1968년까지 청와대 앞까지 ‘무장공비’가 쳐들어오던 시대였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뭐든지 해야 했다.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로 가야 했고,

뜨거운 중동의 사막으로 가기도 했다.

베트남에는 미국을 대신해서 싸우러 갔다.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우자’는 슬로건보다

이 시대를 잘 설명할 수는 없다.

국가도 개인도 살아남아야 했다.

 

영화 <국제시장>은 이 시대를 잘 묘사했다.

흥남에서 아버지와 헤어진 주인공 덕수가

국제시장의 잡화가게 ‘꽃분이네’를 팔지 않고 버틴 것은

아버지와 거기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앵커이자 저널리스트인 톰 브로코는

<위대한 세대>(The Greatest Generation)라는 책에서

1910~1920년대에 태어난 미국인들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세대라고 했지만

마셜 골드스미스의 말대로

그 당시는 사지 멀쩡한 백인 남자들은 다

중산층이 될 수 있었던 시대였다.

 

20세기에 전 세계를 통틀어

진정으로 가장 위대했던 세대는

이 땅에서 1920~194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이 세대는 이어령의 표현대로

‘조국보다 먼저 태어난 사람들’이다.

(그는 강연에서 ‘나보다 늦게 태어난 나의 조국’이라는 표현을 썼다.)

 

식민지에서 태어나 분단과 전쟁을 겪었고

지독한 가난과 싸우면서도

자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뭐든지 했던 세대,

독재에 저항하지는 못했지만

민주화운동을 하는 자식들은 자랑스러워했던 세대다.

 

이들은 ‘국민’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세대다.

권리보다 의무가 먼저였던 세대,

애국가와 태극기로 상징되는 국가에 대한

무한한 충성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세대다.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는 늙어서 바다를 바라보며 말한다.

“내 꿈이 뭐였는지 아나?”

부인이 묻는다. “뭔데요?”

“선장.” “처음 듣는데요.”

“한 번 말했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되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말할 수 없었던 세대였다.

말했다고 해도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았을 테지만…….

 

1980년대는 ‘민주’의 시대다.

1차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와

2차 베이비부머(1968~1974년생)가

주축인 40~50대는 ‘시민’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세대다.

부당한 억압을 집단적으로 거부하고

시민의 권리를 가지려고 했던 첫 세대다.

 

1차 베이비붐 세대는

70년대 말부터 저임금 착취구조에 저항하면서

노동3권을 스스로 쟁취해 나갔다.

이들은 독재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 싸웠다.

1985년 2·12 총선에서 신민당 돌풍의 진원지였으며

1987년 6월 항쟁의 주역이었다.

수많은 ‘시민단체’를 결성했으며 2차 베이비붐 세대와 함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까지 민주화운동가들을

차례로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세대였다.

 

권리는 싸워서 얻는 것임을 알았다는 점에서

아버지 세대를 확실히 뛰어넘었다.

두렵지 않아서가 아니라

‘두려움 없이 얻는 것은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싸운 것이다.

 

영화 <변호인>은 이기적이며 겁 많은 지식인이

자각을 거쳐 투사로 나아가는 과정을 잘 그려냈다.

“이라믄 안 되는 거잖아요”라는 대사에

그 시대의 분노가 담겨 있다.

 

1987년 6월10일 시작해서 6월29일 군사정권의 항복으로 끝난

6월 항쟁의 진정한 주역은 통일민주당을 이끌던 양김도 아니고

재야, 학생운동권도 아니다.

 

그들은 이미 역사의 기록으로 남았지만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아무도 승리를 예상하지 못하던 6월10일 오후 6시에 전국에서 동시에

경적을 울려준 이름 모르는 시민들이 그들이다.

 

승용차·버스·택시·트럭을 몰던 운전자들의 경적을 신호로

군사정권은 사실상 끝났다.

 

독일 통일과 사회주의 몰락으로 문을 연

1990년대는 ‘개방’의 시대였다.

세계무역기구(WTO)와 ‘세계화추진위원회’가 출범하던

1994년과 1995년은 상징적인 해였다.

지난 40년간 대한민국을 지배하던 ‘군인의 시대’가 끝나고

‘기업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1995년 전두환, 노태우의 구속은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권력의 주체만 바뀐 게 아니다.

가난도 독재도 경험하지 않은

풍요의 신인류 X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가 불러낸 그들은

‘국민’도 아니고 ‘시민’도 아닌 ‘소비자’였다.

 

‘우리가 대한민국을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있는

‘국민 세대’권리보다는 의무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고,

 

‘우리가 대한민국을 바꿨다’는 자부심이 있는

‘시민 세대’권리와 의무 모두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우리가 대한민국이다’라는 자부심이 있는

‘소비자 세대’는

의무보다는 권리를 먼저 찾는 첫 세대의 탄생이었다.

 

지금의 2030대는 ‘머리는 우파, 몸은 좌파’

65살 이상 되는 세대는 젊었을 때,

마을에 텔레비전 한 대와 전화기 한 대가 있던 시대였다.

정부가 주는 정보조차도 부지런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던 시대였다.

국가 중심의 사고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40~50대가 어렸을 때는 집집마다 티브이와 전화기가 한 대씩 들어왔다.

지금의 20~30대는 티브이와 전화기를 한 대씩 갖고 다닌다.

모든 것을 선택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세대는 풍요롭게 태어났으나

풍요롭게 살 수는 없는 불행한 세대다.

 

국민 세대가 ‘머리도 우파, 몸도 우파’였고,

시민 세대는 ‘머리는 좌파, 몸은 우파’였다면

지금의 2030대는 ‘머리는 우파, 몸은 좌파’인 세대다.

 

지금은 상위 0.01%가 1.74%, 0.1%가 4.46%, 1%가 12.97%, 10%가 48.05%의

소득 점유율을 보이고

하위 70%가 18.87%에 불과하고

하위 40%는 2.05%라는 믿을 수 없는

소득 점유율을 보이는 극단의 시대다.

(김낙년 교수의 한국의 개인 소득 분포)

비정규직이 607만명이나 되고, 계약직 사원이 주인공인 드라마

<미생>에 완전 공감하는 슬픈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젊은이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영화 <카트>에서 “반찬값이나 벌자고 나왔는데”라는

회사 임원 말에 주인공은 절박하게 반박한다.

“저 반찬값 벌러 나온 거 아니에요. 생활비 벌러 나온 거예요.

” 상위 1%의 눈에 반찬값도 안 되는 그 돈은

‘아들 휴대폰 바꿔주기로 한 돈’이고 ‘수학여행 보내줄 돈’이다.

 

이 나라는 다시 생존의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옛날에는 훨씬 더 힘들었지만

모두가 함께했고 희망이 보였지만

지금은 혼자 싸워야 하고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지금 대한민국은 지역갈등과 이념갈등의 불이

세대갈등, 계층갈등으로 옮겨 붙는 중이다.

같은 시대를 산다고 해서

시대에 대한 기억이 같은 것은 아니다.

사람은 시대를 몸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지면을 통해 2017년 대선을 향한

긴 여정을 시작하려고 한다.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가?

대통령이 된 사람들은 무엇이 달랐는가?

국민은 어떤 대통령을 원하는가?

어떤 이슈가 중요한가?

 

승리하기 위한 각 진영의 전략은 무엇인가?

여야의 경쟁력 있는 후보는 누구인가?

나라면 어떤 전략을 조언할 것인가?’

등이 이 힘든 여정에서 내가 답하려는 질문들이다.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


(pji2alah/16.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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