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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에서 가장 산책하기 좋은 광진교의 낭만적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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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진교는 서울 광진구 광장동과 강동구 천호동을 잇는 총연장 1,056m의 다리로 한강에서 한강철교와 한강인도교 다음으로 1936년 건설되었다. 그러나 노후화로 1994년 철거되고나서 2003년 4차로로 다시 다리가 건설되었다. 광진교가 철거 되면서 그 서쪽 인근에 천호대교가 건설되었다. 위 사진은 2012년 4월 26일 찍은 사진으로 왼편에 보이는 것이 광진교이고 오른 편이 천호대교이다. 한강물이 파란색으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광진교는 2009년 "걷고 싶은 다리"라는 테마로 가운데 2차선만 차량으로 하고 양쪽으로 보행로와 자전거길을 마련하고 주변에 화단과 전망대를 설치하여 복합적인 문화 예술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개인적으로도 광진교는 깊은 사연이 있는 다리이다. 그 부분은 나중에 설명하려 한다.





4월 26일 오후 6시 넘어 산책길로 들어서는 길에 중간에 쉬는 자리도 미학적인 곡선으로 되어 있다.






올해 한국의 추위로 꽃들이 늦게 피기 사작하였다. 이제 철쭉이 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조팝나무의 하얀 꽃이 평화스러운 봄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천호대교가 광진교와 가까이 쌍둥이처럼 나란히 있다.





꽃잔디도 봄을 맞아 보라색으로 자태를 뽐낸다. 예전 북한산 기슭에서 단독주택에 살 때 마당에 있던 꽃잔디를 다시 만나는 듯 하다.



아직 몽우리가 일부 남아 있지만 이제 철쭉꽃이 제 철을 맞아 진분홍, 자주 색을 뽐낸다.



중간에 덩굴을 올려 동굴처럼 햇볓을 피할 수 있는 곳이 있다. 건너편에 삼각형으로 모양을 내서 지은 아파트도 보인다.









꽃동굴 내에 앉으면 건반처럼 음악이 연주되는 뮤직벤치도 설치되어 있다. 그 음악을 들으면서 오랬동안 쉬어 가고 싶은 기분이다.





보라색 철쭉이 늦게 온 봄을 반겨주고 있든 듯하다. 천호대교 바로 뒤로 올림픽대교 그리고 멀리 남산도 보인다.

이 평화스러운 분위기를 보면서 6.25사변이 일어나기 바로 전 해인 1949년 이 다리에서 일어난 일을 상기하여 본다. 당시에는 경기도에 속한 길동에서 걸어서 광진교를 넘어 왕십리의 무학여고에 다니던 여학생이 있었다. 그 소녀는 서울서 태어나서 자랐으나 12살에 아버지를 잃고 외삼촌이 살던 길동 외가로 옮겨 가서 살게 되었다. 그 소녀는 길동에서 광진교를 건너 왕복 25Km를 매일 걸어 학교에 다녔다,

그런데 1949년 흉년이 닥친 것이다. 친아버지처럼 잘 대하여 주던 외삼촌도 흉년으로 가족들의 식량도 문제가 되자 학교 수업료를 내주기 어렵게 되었다. 그 소녀는 학교 수업료를 못 낸다고 학교에 가서 수업도 못 받고 다시 돌아오는 길에서 광진교 밑에 흐르는 한강물을 보면서 투신 자살을 생각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그 소녀는 투신 자살을 단념하고 집으로 돌아 왔다. 그 때 그 소녀가 한강에 투신하였다면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다음에 6.25사변이 일어나고 피난을 가지 아니하고 길동의 집에 남아서 식량이 부족하여 다시 나무 껍질을 먹는 수모를 겪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그 소녀는 고등학교 중퇴 학력으로 국민학교 교사에 임용된 후 야간으로 수업을 마치어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게 되었다. 지금 81세이신 내 모친은 아직도 광진교 가까이 지나다 보면 한강에 투신을 고민하던 그 때의 기억을 떠 올리신다.




화단이 있는 공원 반대 편인 동쪽에 아이리스를 촬영한 것을 기념으로 남겨 놓았다. 북한공작원이던 김소연의 모습이 세련되어 보인다.



그곳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광진교 8번지라는 문화공간이 있다. 이쪽으로 점점 석양의 빛이 비치기 시작한다.



내려가는 입구 뒷 편으로 워커힐 호텔이 있는 동산이 보인다.



이병헌의 날렵한 모습이 당장 다시 움직일 것처럼 여기 그대로 서 있다.



여기서 동쪽으로 시선을 향하니 건설중인 구리대교가 보인다. 1970년 초반까지는 여기 강의 남쪽 면에 모레가 쌓여 있어 수영을 즐길 수 있었다. 광나루라고 불리우던 그 곳은 서울 시민에게 해수욕장 못지 아니한 환경을 제공하였다. 어려서 그 곳에서 수영하던 추억이 바로 전일처럼 떠 오른다.




내려가는 계단이 조형미가 있으면서도 물과 아슬아슬한 청량감을 준다.






문화공간 내부로 들어가면 상시로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아래 투명한 유리 아래 보이는 한강물로 인하여 그 곳에 서는 것이 두려워진다.




봄꽃을 화려한 색으로 그린 그림들이 봄과 잘 어울리는 분위기이다.



여기는 연주를 하는 공간으로 당일 연주가 없어 피아노를 보호하기 위해 문이 닫혀 있었다. 밖에서 사진을 찍다 보니 반대편 워커힐의 모습이 비친다. 위 공간에서 실내악을 들을 기회가 향후 있을지?



8번가 문화공간을 나오니 이제 올림픽 대교 방향으로 노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진동으로 말썽을 빚던 테크노마트 건물도 오른편 옆에 보인다.



아쉽게도 석양이 북서쪽 산 너머로 넘어가서 불타는 해의 모양을 잘 보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양은 봄날이 가는 것을 아쉬어 하는 듯 하였다.





하늘에는 초승달이 여자의 눈썹 모양으로 나타났다.




이제 해가 어두워지면서 올림픽 대교 방향으로 화려한 서울의 야경이 나타난다.



올림픽 대교 중간에 있는 조형물을 클로즈업하여 보았다. 위 조형물을 올리려다 공군 중령이 운행하던 헬리콥터가 갑자기 발생한 돌풍에 한강에 추락하여 사망하였다는 것이 아쉽다.

내 부모님 세대는 6.25 사변을 겪으시면서 많은 고생을 하셨다. 부친도 강원도 이북 미수복 지역 출신으로 중학교 선생을 하시다가 6.25사변 도중 남쪽으로 피난하여 국군 장교로 지원하셨다. 그러한 전쟁을 겪은 세대의 많은 분들은 보수적이다.

그러나 지금 2,30세대는 다시 사회의 변화를 바라는 진보 성향이 강하다. 중간에 있는 4,50세대들은 현실과 경제를 중시하는 중도경향이 강하다. 중도 경향의 사람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일자리 창출이다, 그리고 가장 싫어하는 것이 권력자들의 부패와 국민이 낸 소중한 세금을 불필요한 곳에 낭비하는 것이다. 2012년 4월 총선은 보수, 진보의 대립으로 정책선거라기 보다는 서로 흠을 잡는 선거가 되었다. 12월의 대선은 보수 진보로 편 나누기 보다는 중도의 의견도 존중하는 대한민국의 장래를 보는 정책 선거가 될지 기다려 본다.

2012년 4월 26일 해가 질 무렵 방문한 광진교에서 낭만적인 서울의 모습을 즐기면서 대한민국의 과거, 현재 그리고 장래를 생각하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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