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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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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로리안의 순례자들,
                         괴테에서 토마스 만까지
 

 
드디어 욕심 많고 거친 모험가들이 퇴장한 뒤 베네치아 역사를 새로이 쓴 것은, 철저한 실용주의자였던 조상들과는 딴판인, 꿈꾸는 심미주의자들이었다. 상인의 시대가 물러가고 예술과 교양의 시대, 르네상스가 도래한 것이다. 그 뒤 18세기에 들어서면 베네치아는 풍요로운, 그러나 퇴폐적인 회춘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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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대는 12개의 극장, 300여 개에 이르는 상류 계급의 팔라초와 빌라, 광장과 운하 여기저기에 처마를 맞댄 200여개의 카페, 1만 척이나 되는 곤돌라(지금은 500척이라고 함)였다. 그 불길은 오페라, 연극, 투우, 수상 창 경기, 각종 호화 퍼레이드, 특히 카니발을 통해 활활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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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12월 말경부터 여름까지 이어지는 베네치아의 카니발은 베네치아에서는 단순한 축제나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적인 삶 그 자체였다. 카니발의 주역인 가면놀이는 통령과 로마 교황청 대사를 비롯한 귀족 귀부인과 수녀, 하인 하녀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참가하였다. 그리고 이탈리아 내외 여러 지역으로부터도 모여들었다. 카니발 기간에는 베네치아의 인구가 두 배로 늘어났었다고 한다. 그간 "베네치아는 단 한 사람 '가면 신사'가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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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는 노동 이상으로 집단적 성정을 잘 드러내며, 가면극만큼 베네치아 사람들의 기질과 멘탈리티, 그리고 정체성을 잘 나태내는 것은 없다. 그렇지 않아도 극장 무대와 같은 베네치아는 카니발 계절이면 극장도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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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은 속마음을 내비친다고 하나 그것이 얼마만큼 진실일까. 그것은 오히려 성직자와 상인의 얼굴, 선원과 군인, 귀부인과 집사의 얼굴, 다시 말해 신분에 따라서 조련된 표정, 말하자면 탈이 아니던가. "가면을 쓰고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가면극이야말로 마음의 심층적 리얼리티를, 정확한 자아를 드러내는 본얼굴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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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는 언제라도 침하될 도시이다. 베네치아의 고문서관에 소장된 치수 담당관의 기록에도 "우리의 아름다운 많은 섬들이 범람으로 인해 침하되어 소멸 직전 상태에 있다"는 구절이 있다고 한다. 바다 위 도시의 비현실성과 상실감, 육지를 꿈꾸며 미지의 세계로 향한 항해자의 노스탤지어, 베네치아인들이 디오니소스적인 가면놀이에 연중 몰두한 그 심산이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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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위기의 정념은 또한 언제나 유미주의적인 쾌락을 잉태하고 분출했다. 점잖은 바젤의 문화사가 부르크하르트도 "베네티아의 궁극적인 목적은 권력과 인생을 즐기는 일"이라고 지적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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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다 위 도시의 '사는 기쁨'에는 살롱 귀부인들이, 대개가 귀족의 정부인 교양 있는 妓女들과 함께 앞장섰다. 베네치아가 한창 문화의 완숙기를 누린 16세기, 그들 바람기 많은 여인의 수는 2,000을 헤아렸다. 그녀들을 찾아 씀씀이가 좋은 영국 남성, 여성 숭배의 프랑스 남성, 사교적인 에스파냐 남성, 연애박사 이탈리아 남성들이 베네치아에 모여들었다. 상류사회의 부인들은 검은 베일을 쓰고 즐겨 카페에 출몰했으며, 특히 카니발 기간에는 마음껏 '자유'를 누렸다. 낭만적인 곤돌라도 그녀들의 자유와 기쁨을 위한 소도구의 구실을 훌륭히 다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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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가 발산하는 독특한 매력에 제일 먼저 현혹된 것은 시인과 예술가 그리고 에피큐이언들이었다. 괴테에서 토마스 만까지. 그들은 모두 카페 플로리안의 단골이 되었다.루소는 1743년부터 다음 해까지 프랑스 대사의 비서로 베네치아에 머물며 매일 플로리안에 출입하였다. 괴테도 나폴레옹도 스탕달도 베네치아와 플로리안을 좋아하였으며 작곡가 로시니와 언제나 테이블을 같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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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런, 셀리, 쇼펜하우어, 프랑스의 여류작가 조르주 상드는 쇼팽, 리스트에 이어 세 번째 애인인시인 뮈세와 함께 플로리안의 단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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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에 이르러서도 뮤즈의 적자들의 플로리안 순례는 그치지 않았다. 작곡가 바그너는 그의 호사한 성격이 베네치아와 궁합이 잘 맞아 이곳에 머물러 있는 동안 아침식사를 대개 플로리안에서 하였다. 그 시간이 되면 모국의 거장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군악대가 성 마르코 광장에서 「탄호이저」서곡을 연주하였다. 지금 흐르고 있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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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에 이어 영국 작가 디킨스, 시인 브라우닝, 프랑스 작가 프루스트, 화가인 모네, 마네, 독일의 하이네, 니체, 오스트리아의 호프만스탈, 그리고 릴케도 베네치아와 플로리안 순례의 대열에 합류하였다. 토마스 만은 그의 탐미주의적 작품인 『베네치아에서의 죽음』(1912)의 구상을 플로리안에서 얻었으며, 이탈리아의 시인 단눈치오가 국제적 미술전이라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고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성사시킨 곳도 바로 플로리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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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시인과 작가, 예술가들이 베네치아에 대한 그들의 사랑을 토로하였다. 그 중에서도 오랜 세월 베네치아에 정주한 프랑스 시인 레니에는 베네치아를 읊은 시에서 이렇게 노래하였다.

 "참으로 여기는 기이한 아름다움이 떠도는 불가사의한 곳이 아닌가. 그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일락과 우수의 심정이 솟아오른다. 말해보아라, '베네치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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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페 플로리안은 창업 당시의 모습 그대로 여전히 성업 중이다.

올해로 개업 236주년이 되는 카페 플로리안을 어찌 내가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대낮의 노천 카페에 앉아 있으려니 아무래도 더워서 실내로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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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마르코 광장을 지나 바닥에 깔린 대리석 한 점 납작돌 한 점까지도 1,000년 베네치아의 영욕의 역사가 새겨진 비문이려니 골목길을 걷다가 나의 들뜬 설렘이 플로리안의 안락한 소파에 자릴 잡고 앉아 있으니 다소 진정이 되었다. 베네치아의 그 무엇이 나를 이토록 흥분하고 취하게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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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 베네치아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산 마르코 광장은 베네치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 그리고 플로리안은 그 광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셈이다."

 

1976년 카페 플로리안이 창업 당시의 모습 그대로 새로이 단장을 하고 국내외의 많은 시인, 작가, 예술가들을 초빙하여 창업 200주년을 자축하는 자리에서 베네치아는 위와 같은 찬가를 플로리안에 바쳤다고 한다.

 

플로리안의 커피 값은 커피가 가장 비싸게 팔리는 곳의 한 예가 되는 곳이다. 카페 플로리안에서는 단순히 커피라는 물질을 판매한 것이 아니라 문화를 가공하여 ‘체험’하도록 만들어 주는 까닭이다. 우리가 커피라고 말할 때에는 단지 카페인과 같은 물질의 약리적 효과만이 아니라 이 물질과 내적으로 깊이 연관된 문화까지 포함하여 이야기하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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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감옥을 탈출한 우리의 카사노바도 여기 어디쯤 앉아서 마지막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다가 귀부인들이 대기시켜놓은 배를 타고 영영 베네치아를 떠났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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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페 플로리안에서 마시는 달콤한 카푸치노. 20년 전 그날 지중해 정오의 햇살이 몹시도 눈부시게 작열하던 산 마르코 광장에서 느끼던 감회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얼굴이 빨갛게 익은 줄도 모르고 비좁은 골목길을 헤집고 다니던 기억이 어제만 같은데 그새 나는 많이도 늙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은 비밀스럽고 아름다운 악덕이 우리를 유인하는 이토록 아름다운 카페와 이 도시가 겪은 세월의 빛과 그림자를 이제사 겨우 해독할 수 있는 안목이 생겼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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