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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崇禮門)은 쥐띠? 1396년 9월 24일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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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태조(10권) 5년(1396 丙子/明 洪武 29년) 9월 24일(己卯) 2번째 기사에 따르면,



築城役訖, 放丁夫. 其春節所築, 有因水湧頹?者,

以石城築之, 間以土城; 雲梯爲雨水所衝,

以致?毁處, 復築之; 又置雲梯一所, 以分水勢,

石城有低下者, 加築之. 又作各門月團樓閤.

正北曰
肅淸門
,

東北曰弘化門, 俗稱東小門
.

正東曰
興仁門, 俗稱東大門
.

東南曰
光熙門, 俗稱水口門
.

正南
崇禮門, 俗稱南大門
.

小北曰
昭德門, 俗稱西小門
.

正西曰
敦義門, 西北曰彰義門
.


성 쌓는 역사를 마치고 정부(丁夫)들을 돌려보내었다. 봄철에 쌓은 곳에 물이 솟아나서 무너진 곳이 있으므로, 석성(石城)으로 쌓고 간간(間間)이 토성(土城)을 쌓았다. 운제(雲梯)도 빗물로 인하여 무너진 곳이 있으므로 다시 쌓고, 또 운제(雲梯) 1소(所)를 두어서 수세(水勢)를 나누게 하고, 석성(石城)으로 낮은 데가 있는 데는 더 쌓았다. 또 각문(各門)의 월단 누합(月團樓閤)을 지었다.

정북(正北)은 숙청문(肅淸門), 동북(東北)은 홍화문(弘化門)이니 속칭 동소문(東小門)이라 하고, 정동(正東)은 흥인문(興仁門)이니 속칭 동대문(東大門)이라 하고, 동남(東南)은 광희문(光熙門)이니 속칭 수구문(水口門)이라 하고, 정남(正南)은 숭례문(崇禮門)이니 속칭 남대문이라 하고, 소북(小北)은 소덕문(昭德門)이니, 속칭 서소문(西小門)이라 하고, 정서(正西)는 돈의문(敦義門)이며, 서북(西北)은 창의문(彰義門)이라 하였다.


숭례문 / 펜화 / 김영택 作

【태백산사고본】 3책 10권 5장 B면
【영인본】 1책 96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군사-관방(關防) / *건설(建設) / *재정-역(役)





기록대로라면 崇禮門은 올해처럼 쥐의 해인 丙子秊, 1396년 9월 24일(己卯) 命名해서 戊子秊, 2008년 2월 10일(庚辰, 陰曆正月初나흘) 612歲를 일기로 卒한 것이 됩니다. 

태조 5년의 다른 기록들을 보면, 4월에는 심한 가뭄이 들었다가 7월에는 큰 물이 나 백성들이 어려움을 겪어 도성 축조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태조는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병 치료를 위해 충청에 있는 온천에 다녀왔습니다. 7월까지 명나라 사신이 오랜 동안 머물러 계속 연회가 이어졌고, 8월 13일 현비가 사망하여 능묘를 보러 다녔습니다. 개국 초기인데도 끊임없이 왜구들이 출몰하여 수급을 베었다는 기록이 많았는데 한번에 120척의 왜선들이 당도하기도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이해 11월 23일 위그르에서 귀화한 "판삼사사(判三司事) 설장수(?長壽)에게 계림(鷄林)을 관향(貫鄕)으로 삼게 해 주었다."는 기록이 있어 당시 조선초기에 관직이 귀화인들에게까지 개방적었다는 데 놀랐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망실된 崇禮門에 대한 우리 모두의 상처가 오래갈 것 같아 걱정입니다.



마음의 의사 證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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