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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때 팔만대장경 폭격 거부 김영환 장군 해인사서 추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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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때 팔만대장경 폭격 거부 김영환 장군 해인사서 추모재
영화 ‘빨간 마후라’ 실제 모델
[중앙일보]2009.11.13 01:28 입력 / 2009.11.13 11:39 수정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8월의 어느 날. 공군 제10전투비행전대장 김영환(사진) 당시 대령(1921~54)에게 폭격 명령이 떨어졌다. “지리산 토벌대에 쫓겨 가야산에 숨어든 인민군 900명을 소탕하기 위해 폭격하라”는 지시였다.

자신의 편대를 이끌고 출격한 김 대령은 폭탄 투하 지점이 팔만대장경을 보관한 해인사라는 점을 알게 되자 기수를 그냥 돌렸다. “빨치산 몇 명 죽이기 위해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을 불태울 수 없다”며 항명한 것이다.

상부에 호출된 김 대령은 “영국 사람들은 ‘셰익스피어와 인도는 바꿀 수가 없다’고 말한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셰익스피어와 인도를 다 주어도 바꿀 수가 없는 보물 중의 보물이다. 전쟁으로 이것을 불태울 수는 없었다”고 소명했다고 한다.

유네스코 등재 세계문화유산과 세계기록유산인 해인사 장경판전(국보 제52호)과 고려대장경판(팔만대장경·국보 제32호)이 민족의 유산으로 남게 된 사연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은 공군이 역사자료발굴위원회를 운영해 올 4월 그 보고서를 내면서 확인됐다.

김 대령은 준장으로 진급한 두 달 뒤인 54년 3월 강릉에서 비행훈련 중 악천후 속에 실종, 34세의 나이에 순직했다. 서울 출생으로 일본 간사이대 항공과와 조선경비대 보병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한 그는 48년 공군을 창설한 7명 중 한 명이다.

제7대 국방부 장관을 지낸 고 김정렬 장군의 친동생이다. 그의 일대기는 한국전쟁 당시 공군 전투조종사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빨간 마후라’로 제작돼 유명해졌다. 형수가 만들어줘 매고 다닌 그의 빨간 마후라는 이후 공군의 상징이 됐다.

해인사(주지 선각 스님)는 올해 처음으로 ‘고 김영환 장군 호국 추모재(齋)’를 14일 오전 10시30분 해인사에서 연다. 이 추모재는 공군 창설 60주년(2009년), 한국전쟁 60주년(2010년), 고려대장경 탄생 1000년(2011년)을 기념하는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추모재에는 조계종 스님과 한국전쟁 참전 유공자 등 20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해인사는 6000여 명의 서명을 받아 김 장군에게 문화훈장을 수여하도록 정부에 요청하기로 했다. 해인사 측은 “추모재를 통해 김 장군의 문화재 사랑 정신을 널리 알릴 것”이라고 밝혔다. 해인사는 2002년 절 입구에 그의 공적비를 건립했다.

황선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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