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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춘 가덕도 외양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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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춘 가덕도 외양포마을
-낙동강하고유적답사15
 
가덕도의 최남단에 있는 외양포마을로 이동하기 위해 대항마을을 먼저 찾있다. 

대항 본동에서 새바람을 받는다고 해서 부르는 새바지에서 고개를 넘으면 외양포가 나오는데 옛날 포구로서 나룻배가 닿는 곳이었다고 하는데, 이 포구는 대항(大項)의 바깥쪽 목()의 형태를 하고 있어 외항포(外項蒲)였을 것이나 지금은 외양포(外洋蒲)라고 부르고 있다.

 

대항마을과 외양포마을.jpg

가덕도의 최남단을 끼고있는 대항마을(왼쪽), 외양포마을(오른쪽 

 

대항마을은 부산시 최남단에 위치한 곳으로 가덕도의 마지막 마을이자 가장 큰 항이라는 의미로 한곡이라 불리운다고 한다. 매년 3-5월 120년 전부터 가덕도 전통 어로법으로 숭어들이가 유명하고 특산물로는 숭어, 전어, 대구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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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비지고개에서 바라다 본 대항마을  

 

대항 본동에서 새바람을 받는다고 해서 부르는 새바지에서 고개를 넘으면 외양포가 나오는데 옛날 포구로서 나룻배가 닿는 곳이었다고 하는데, 이 포구는 대항(大項)의 바깥쪽 목()의 형태를 하고 있어 외항포(外項蒲)였을 것이나 지금은 외양포(外洋蒲)라고 부르고 있다.


 

 

외양포마을 항공map[1].png
외양포마을의 네이버 항공사진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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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비지고개를 넘어 내려다 본 외양포마을

 

외양포마을은 러일전쟁 시기, 일본군 제4사단 휘하 진해만요새사령부가 주둔했던 곳이다. 탄약고와 포진지, 벙커 등 아픈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외양포마을에는 일본군사시설 유적과 유구는 어떤 곳에 비해 수 가 많고 남아있는 상태도 양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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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양포 마을의 건물

 
마을의 건물은 대부분 1주택 2가구로 가구마다 지붕 색깔이 다르다. 즉, 건물은 하나지만 지붕 색과 모양은 가구별로 각각이다. 마을을 곳곳에 그런 집이 많은데 사령부 대장사택도 그렇고, 장교막사도 그렇다. 여러 가구가 한 건물을 나누어 쓰다 보니, 어떤 가구는 새로 함석지붕을 얹었고, 어떤 가구는 옛 기와지붕에 에폭시 방수처리를 했다. 이처럼 일본군 진지와 막사, 주택, 우물에 이르기까지 외양포는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부산의 마을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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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양포 마을에서 볼 수 있는 1주택 2가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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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양포 마을의 건물 중에는 Blue색의 지붕이 많이 눈에 띤다.

 

그 이유는  해방이 후 이 일대가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되고 토지와 가옥들이 국방부로 귀속됨에 따라 비롯된다.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일본군은 이곳에 포대 진지를 구축하면서 주민을 모두 쫓아내고 마을 전체를 군사기지로 만들었다. 해방 후 되돌아 온 주민들은 일본군 막사를 가옥으로 사용하고 전답을 일구며 산다. 가옥이나 전답은 국가에 임대하는 형식이라 개발은 전혀 이뤄지지 않아 시간을 거슬러 일제감점기에 멈춰 선 듯하다.

  

현재 마을에 남은 건물은 그때 세운 적산 가옥(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소유한 건물이나 재산)이다. 해방되고 고향에 돌아온 사람들이 헌병 막사며 장교 사택, 무기고 등을 수리하여 살아왔는데 현재 23호, 33세대가 산다. 주민들이 살고 있는 집들 대부분은 모두 그 시절 요새사령부 관련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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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사건물과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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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레이트 지붕, 함석벽의 사무실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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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헌병대가 사용한 우물이었던 '헌병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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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내부 
이 마을에는  일본군 헌병대가 사용한 우물이라고 해서 '헌병샘'이라 불리는 일본식 우물을 비롯 총 8개의 일본 우물이 아직도 남아있는데 대부분은 사용불가다.
 
 
외양포마을2.jpg
지붕에 일식기와에 골함석을 외장재로 사용한 포대사령부 사무실로 사용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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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양포 일본군 군사시설 안내판
마을 뒷편으로 오르면 외양포 일본군 군사사설을 알려주는 안내판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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司令部發祥之地'라는 요새사령부건립비
'司令部發祥地(사령부발상지)'라고 적힌 표지석이다. 또한 '司令部發祥地'라는 글씨 옆면에는 작은 글씨체로 '明治三十八年四月二十一日築成'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 내용대로라면 일본 연호 '明治三十八年'은 서기 1905년이므로, 이곳의 일본군 포진지는 1904년에 마을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킨 후, 공사를 시작하여 1905년 4월에 완공하고 '진해만요새사령부'가 이곳에 주둔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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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양포포진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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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mm유탄포가 설치되었던 흔적이 원형으로 남아있는 포진지

 

포진지는 폭18m, 길이 78m의 장방형의 평면으로 바닥을 평며으로 정비하고

동쪽 산록을 절개하여 자연적으로 축대를 형성하였다. 남, 북, 서쪽 경계는 인위적으로 축대를 쌓고 그 위에 흙을 덮고 대나무를 심었다. 공중에서  조망하지 않으면 내부가 보이지 않도록 함에따라 외부에서 엿볼 수 없도록 엄폐시킨 것이다. 이러한 지형적인 이유로 육로는 물론 해로 어느 곳에서도 맨눈으로 확인하기 쉽지 않다

 
 

外洋浦砲台 1.jpg
이 사진은, 일제강점기시대에 발행된 「마산요새 병영 연습포대」그림 엽서로 이러한 대포가 여기 외양포포대에도 설치되어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280mm유탄포의 최대사거리는 7,800m로 태평양전쟁을 대비하여 설치하였다. 1909년 외양포의 사령부가 마산으로 옮긴 뒤 해안으로 접근하는 적함에 대한 방어목적이었다. 이곳에는 6문의 280mm 유탄포가 설치되어 일본이 폐망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그런가하면 마을을 형성하는 군막사도 당시에는 삼나무 숲을 조림해 위장하였다. 이렇게 일제는 외양포를 완벽하게 '숨은 요새'로 구축하였다. 그리고 러시아 함대를 향해 일제히 포격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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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약고 2의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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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약고의 내부 모습

 

실제로 요새 위에서면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가하면 외양포를 둘러싼 주위 봉우리에는 일본 해군의 관측소(觀測所)와 대공포 기지를 만들어 포진지를 방어했을 만큼 완벽한 지형적 잇점을 갖고 있었다.  

 

대한해협과 진해만 사이에 자리한 섬의 숙명은 일본의 침략대상이 되었다. 한 마을 전체가 일제강점기 때 모습을 그대로 가진 외양포 마을은 일제 침략의 기억이 아직 속속들이 남은 곳이다. 외양포마을의 아름다운 풍광 뒤에 그런 아픈 역사가 배어 있음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일제의 침탈과 그로 인한 상흔을 고스란히 안고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현상태로 놓아 두기보다는 원형을 정비하고 보존하여 뼈아픈 식민지시대 역사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교훈의 장소로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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