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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김석수] SBS, 언론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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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시리즈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기억하겠지만 언론의 문제를 다룬, 좀 황당한 소재의 시리즈물이 있다.

언론사가 뉴스거리를 만들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다는, 이 영화가 다소 황당무계하다는 생각을 한 바 있었는데 세상일을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전혀 근거없는 소재는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곤 했다.

‘언론은 사회의 공기’다. 이 말은 언론사의 공적 기능을 말한다. 그만큼 여론을 형성하는데 ‘언론사’의 중요함을 강조한 압축표어이자 격언인 것이다. 그리고 이 격언에는 언론은 공적 이익, 즉 공익을 지향하는 자율적인 시민사회의 주요 구성원임을 말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언론사에서 자율이란 자기제어장치가 풀리게 되면 상상을 초월한 해악을 끼치게 된다. 자그마하게는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데서부터 크게는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하기도 한 것이 언론의 힘인 것이다.

그리고 언론의 힘은 아무도 대표성을 부여해주지 않은 자발적 권력이다. 아무도 권력을 부여하지 않은 자발적 권력, 그것은 시민단체를 포함한 시민사회의 주요구성원들이 갖는 권력의 속성, 즉 시민사회권력의 속성이다.

그럼에도 시민사회권력은 자임하긴 하지만 그 권력의 크기는 ‘자임’만으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바로 시민사회 전체구성원의 동의와 승인이 있는 만큼의 권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시민단체가 ‘사회적 영향력’이란 권력을 갖는다면 그것은 해당 시민단체의 공신력에 비례한 권력이고, 신문이나 방송이 권력을 갖는 것은 독자나 시청자들에 대한 영향력만큼의 권력을 갖는 것이다.

그것이 시민사회권력의 속성이다. 이 사실에 무지한 일부 인사들이 시민단체나 언론사에 국민의 대표성을 언제, 누가 부여해주었느냐는 엉뚱한 말을 늘어놓을 때마다 시민사회성숙의 더딘 행보를 실감하게 되지만 , 그렇다고 시민사회권력이란 엄연한 권력실체가 사라지거나 부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민사회의 한 구성원인 언론사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영향력만큼의 권력을 가지고 공익을 지향해야 하지만 그 힘의 크기는 평상시의 공신력에 비례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해당 언론사가 시민들에게 얼마나 동의 받을 수 있는 보도와 논평에 충실해왔는지 여부에 따라 그 권력의 영향력은 정해지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다.

문제는 이 당연한 원리를 sbs가 망각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일전에 sbs가 ‘뉴스추적’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김대중 전대통령에게 숨겨놓은 딸이 있다는 내용을 방영한 바 있다.

숱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잔뜩 부추길만한 예고 내용이 이미 인터넷을 통해 여기저기 알려져 있어 시청률은 꽤 높았을 것으로 짐작되나, 정작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제작진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내용은 김 전대통령이 오래 전에 ‘첩’을 두었고, 그 ‘첩’의 딸을 측근들이 보살펴왔으며, 대통령 임기기간 중에는 국정원을 통해 진승현게이트를 만들어 내는 등 대통령의 사생활보호를 위해 국가기관이 나섰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수준이었다.

물론 그 보도의 진실은 당사자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보도내용을 부인하는 김전대통령 측의 주장이 옳을 수도 있고, sbs 제작진의 추측과 짐작이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sbs 보도가 얼마나 공익에 충실했는가에 있다. 퇴임한 최고권력자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기관이 동원되었다면 공권력을 사유화했다는 측면에서 당연히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법적 단죄가 추상같이 이뤄져 후일을 경계하는 계기가 된다면 이는 ‘크나 큰 공익’랄수 있겠다.

그럼에도 방영 다음날 김 전대통령 측과 그의 딸로 알려진 문제의 여성이 방영내용에 대해 다소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 발표가 있었고, 이를 바라보는 나의 관점은 의혹의 당사자들이 으레 나타내는, 예상된 반응이라기보다는 오히려 sbs의 제작의도가 의혹으로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퇴임한 전 대통령의 사생활이 당장의 국가적 목표와 이익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이라면 모를까 단순한 호기심을 자극하여 시청률을 올리자는 정도의 문제의식으로 비춰진다면 이는 사회 공기로서의 언론사의 역할과 기능은 아니지 않을까.

시큰둥한 관점에서 보자면 과거 연예인등의 신변잡기나 다루던 ‘선데이 서울’이 방송으로 부활한 것이거나 방송의 연예가중계프로그램내용을 보도부문에서 다룬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일 정도라면 방송에 대한 지나친 마타도어일까.

더구나 축첩제라는 과거의 그릇된 관행 - 오늘의 시점에서 잘못된 것 일뿐 과거시제에서는 가진 자들의 일반화된 관행인 - 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어서 이를 바로 잡자는 고발과 캠페인을 위해 김 전대통령이 대상이 되었다면 이 또한 사회공익적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21세기 지금, 한국사회에서 그릇된 축첩제가 일부에 남아있을지 몰라도 이를 전국민을 상대로 캠페인을 벌여야 할 만큼 절박한 주제가 아님은 모두 다 아는 상식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성매매의 그릇된 관행 - 이 역시 네덜란드같은 나라에선 합법화하고 있으니 논쟁이 필요한 부분이긴 하다 - 이 사회적 문제로 되고 있는 상황에서 축첩제 고발과 캠페인은 어딘지 모르게 초점을 잘못 맞췄다는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다.

지상파 방송전파는 국민의 것이다. 특정방송사와 그 관련종사자들만의 소유물이 아니라 국민의 소유인 것이다.

그런데 돈내고 자유롭게 볼 수 있는, 즉 어느 정도의 사익을 인정해주는 케이블방송이라면 모를까 국민의 전파를 이용하면서 공익보다는 시청율이라는 자사이기주의에 치우친 방송을 내보낸다면 이는 공영방송 중심체제를 가지고 있는 우리의 방송환경에서 지상파방송사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경계의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므로 sbs는 불필요한 전파낭비와 국민우롱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공익을 지향하는 자세를 명확히 곧추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둘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 하나는 김 전대통령의 사생활보호를 위해 진정 국가기관이 동원되었는지 여부를 sbs가 끝까지 파헤쳐 밝혀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겸허히 책임지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다른 또 한 가지의 방법은, 명백한 증거없이, 추후 그 근거를 밝혀낼 목적이라기 보다 시청률제고를 위해 일단 터트려놓고 보자는 식의 방송결정이라면 그 또한 국민에 대한 사과가 뒤따를 필요가 있다. 국민의 전파를 사용한 황색언론의 폐해는 허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든 sbs는 국민들이 공영방송정책하의 민영방송에게 그 정체성에 걸 맞는 행동을 주문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누가 뭐래도 정보화시대라는 말이 상징하듯 방송과 통신, 그리고 영상(비주얼)의 시대다. 그러나 이 추세적 흐름도 그에 걸맞는 내용(컨텐츠)이 갖춰지지 않으면 정보화시대는 전진과 생산, 그리고 건설이 아니라 후퇴와 소모, 그리고 파괴의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번 방영건에 대해 sbs의 성의있는 자세를 기다리는 국민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sbs가 인식하고 그에 상응한 조처가 있어야 하리라 본다. 그랬을 때 방송에 대한 국민신뢰는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책임지는 자세가 어디 sbs뿐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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