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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닦는 물 ‘핑거볼’ 원 샷, 일제시대 양식당 실화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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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KIOSK에서 만나는 근대 생활사 읽을거리 3권 (e북 보기)

서울 세종로에 있었던 우리나라 최초의 요릿집 ‘명월관’. 고단했던 당시 청년들은 “땅을 팔아서라도 명월관 기생 노래를 들었으면 여한이 없겠다”고 하기도 했다.

먼지 쌓인 옛 신문을 들춰보면, 생각지도 못 했던 보물같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변사의 꺼이꺼이하는 목소리에 관객이 함께 울고, 독립군을 숨겨주던 기생의 애국심이 애잔하던 시대의 기억들. 중앙일보가 46년간 켜켜이 쟁여놓은 이야기들 속엔 이런 기억들도 꼭꼭 박혀 있다. 1920년대부터 해방 때까지 그 시대 현장을 살았던 사람들이 1970년 중앙일보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통해 육성으로 들려준 우리 근대 생활과 문화 이야기를 엮은 3개의 e북을 소개한다. e북은 J KIOSK에서 볼 수 있다. (e북 보기)


『명월관』

손님으로 온 이완용·최남선 회상


◆『명월관』 이난향=일제 시대 기생은 ‘말귀를 알아듣는 꽃’으로 불렸다. 그래서 ‘해어화(解語花)’다. 『명월관』은 일제시대 기생이었던 다동권번 이난향씨가 권력에 젖어 쌀쌀 맞기만 했던 손님 이완용부터 쇳소리를 내는 ‘복덕방 목침’ 육당 최남선 선생에 이르기까지 손님들의 모습을 회상하며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야기다.

  궁중에서 베푸는 잔치인 ‘진연’은 기생들의 과거시험이었다. 순종을 위한 진연을 앞두고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연습하고, 손님의 질문에는 꼭 합당한 대답을 하는 총기를 부리기 위해 배우고 또 배우던 그들이지만… 바람은 소박했다. 좋은 상대를 만나 행복한 짝을 만나는 꿈 말이다.

『나의 무성영화시대』

‘아리랑’ 여주인공 신일선의 삶


1926년 신일선씨가 여주인공을 맡은 영화 ‘아리랑’의 한 장면. 신씨는 이 영화로 당대의 인기스타로 떠오르며 청년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나의 무성영화시대』 신일선= 『나의 무성영화시대』는 여배우 신일선씨가 꽃다운 나이 15세에 공전의 히트작 나운규의 ‘아리랑’ 헤로인으로 캐스팅됐던 이야기로 시작해 쓸쓸한 여배우의 말년까지를 기술하고 있다.

 1920~30년대 영화 제작 과정, 36살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춘사 나운규 이야기가 생생하게 전달된다. 지은이는 천상 배우였다. “옥상에서 악사들이 나팔을 불면, 저절로 어깨가 들먹거리고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여자의 일상은 평범치 않았다. 결혼도 하고 두 아들을 낳았지만 여배우를 ‘첩’ 쯤으로 여긴 남편에게 소박맞는 장면에선 가슴이 짠해진다.

『경성 양복장이 레스토랑 …』

양식 전파과정 코믹하게 소개


◆『경성 양복장이 레스토랑에 가다』 이중일=식전식후에 손 닦으라고 떠놓은 물 ‘핑거볼’. 한 손님이 이 물을 쫙 들이켜자 그 테이블에 앉았던 6명의 손님들도 원 샷을 했다. 이 일화는 일제시대 ‘조선호텔’의 양식당 ‘그릴’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경성 양복장이, 레스토랑에 가다』는 해방 후 문을 연 양식당 ‘미장 그릴’의 주인 이중일씨가 썼다. 1920년 상경해 웨이터가 된 후 목격한 한국사회 양식 전파 과정을 코믹하게 그렸다. 북어는 생선도 아니라며 무시하던 일본인들에게 블라인드 시식으로 북어 요리를 대접해 “최고급 도미요리”라는 찬사를 받은 후 ‘북어’라고 밝히는 대목은 통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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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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