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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戀情/정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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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戀情



                                     정 명 숙



 어제 마트에 갔다가 과일코너에서 홍옥을 보고 반가워서 배달을 부탁했다. 내가 자란 고향집과 시골 과수원에 있던 홍옥사과를 보면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1940년 중소도시였던 우리 집은 오빠 셋이 음악을 좋아해서 기타, 아코디온 만도린, 하모니카가 있었다. 지금도 문득문득 오빠들의 합주하던 유행가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큰오빠는 일본 비행사학교에 둘째오빠는 명치대 정경학부 유학생이 여서. 방학 때면 우리 집은 언제나 시끄러웠다.

 여름이면 앞마당 사과나무아래 자리 잡고 합주하면 동네처녀들 가슴 설레게 했다. 그때 그 노래가 지금도 내 가슴에 있어 사과나무를 볼 때면 생각나는 노래들이다.

 -사과나무 아래서 내일 또 만납시다./빨간 사과에 입 맞추며 쳐다 본 파아란 하늘, 사과마음 난 알아요 등이다. 가을이 되면 홍옥 사과 잠깐 나왔다 사라지고 재래종사과 이제 어디에서도 찾아 볼 길이 없다.

 국광, 홍옥, 축, 홍로, 인도, 아사히, 데리샤스, 아오리, 부사, 시노사키 모두가 품종개량으로 들어 온 일본 것들이다. 우리 집 사과 품종이 홍옥과 국광 말고 무엇이 또 있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추억때문인지 맛 있었던 것 같다. 우리 집은 아들 셋, 딸 셋인데 시골집 외양간 엔 우리 형제자매 이름 딴 송아지가 있었고, 사과나무도 각자 이름 붙인 나무가 있었다. 아버지가 일찍 자수성가한 남쪽사람이여서 퍽 가정적이였던 것 같다. 늦가을 메주 쑬 때쯤이면 뒷마당에 큰 솥 걸고 다리던 사과 엿 맛 어디서도 맛 볼 수 없다.

 몇 해 전 뉴욕 케네디공항에 내렸는데 빨간 사과 포스터가 시야에 들어왔다. 뉴욕 사는 친구에게 물었더니 뉴욕시의 심볼 마크라 한다. 저녁 때 호텔식당에 갔더니 과일바구니에 정물화같이 탐스러운 사과가 있어서 얼른 하나 집어다 깎는데 껍질이 마치 가죽 같다. 맛이 있을 것 같지 않았지만 호기심에 한입 떼 물었다가 곧 뱉어버리고 말았다. 뉴욕사과는 빛 좋은 개살구였다.

 소설가 김이석은 1961년 문장작법에 문장의 맛이란 사과맛과 같다고 했다. 젊은이들에게 강논하며 시, 소설, 수필이 곧 작가자신의 분신이여서 읽고 난 후에 느껴지는 여운에 산뜻함을 사과 맛이라 했다. 나도 그런 수필을 쓰고 싶다.

 내 어린 날 기억 속에는 사과에 얽힌 일본노래들이 많다. 오빠들이 즐겨부르던 노래여서

인데, 가극 윌리암 텔이 오스트리아의 심술쟁이 대관 게스라에게 아들의 머리위에 얹은 사과를 활로 쏘아 맞추라는 짓궂은 명령을 내렸는데 무사히 사과를 명중하자, 스위스가 그것을 계기로 독립하게 된다는 이야기는 그 후에 알게 되었다.

 가끔 TV나 영화 같은데서 주인공이 말에 매달려 달리는 씬에서는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가 윌리암 텔 서곡이 흐른다.

 과일중에서 사과는 꽤나 미묘한 심볼이다. 성서에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 백설공주이야기등 사과만큼 상징이 되기 쉬운 과일이 없어서인지 소설, 영화, 노래속에 자주 등장한다. 아마 그것들은 옛날 능금재래종일 것이다. 뉴욕의 사과도 아메리카 개척 때 야생재래종이 아닐까 생각한다.

  1992년 백두산 가는 길에 맛 본 사과나무에 배를 접목시킨 사과배는 그 후 어디에서도 볼 수가 없었다. 일찍이 그 사과배를 탐내 일본북해도 농과대학에서 1935년경 품종개량형식으로 가져다 심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백두산근처의 토양에서 밖에 자라지 않는 것이라 한다. 맛있고 좋은 것은 어디서든 품종개량이라는 명목으로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일본이 지금 쌀도 꽃도 그들의 손에만 가면 개량돼 나오고 마는데 사과배 만큼은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우리나라에 사과가 들어 온 것은 황해도와 함경도로 100년은 되었다는데 아마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서였던 것 같다. 어제 집에 들어 와 보니 사과한상자가 택배로 와 있다. 주소를 보니 경북 영주의 하늘목 농장 김용주, 강부자 였다. 몇 년 동안 소식이 없던 상명대 제자에게서 온 것이다. 남편의 건강을 위해 낙향한 것이다. 전화를 했더니 김선생의 건강한 목소리로 반긴다. 좋아졌다는 소리가 너무 기뻤다. 공기 좋은 소백산자락에 와서 한 달쯤 쉬어가라는 것이다.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다. 이래저래 사과로 인해 행복한 요즘 이다.

 여행길에 싱가포르에 들렸더니 백화점식품부 냉장고 상단 고급과일코너에 우리나라 사과와 배가 대접 받고 있어 으쓱했다.

 오늘은 홍옥사과 들어 온 김에 난로에. 군고구마같이 구워주시던 아버지처럼 전자렌지에 구워 보려한다. 어머니가 긴 병으로 고생하는 동안 막내인 내가 안스러워 자상하게 다독거려주시느라 만든 사과구이 맛을 나는 오늘도 잊지 못하고 있다. 마치 새콤달콤한 첫사랑의 맛처럼 내 가슴에 있다. 빨갛게 익은 홍옥 속을 파내 꿀을 넣으며 잘 구워 손자들에게 갖다 주려고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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