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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의 옷을 입은 중국의 무령왕, 중원의 패자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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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에서 한반도까지 <33> 오랑캐의 옷을 입은 중국의 왕
"오랑캐 옷에 기마술을 써서라도 중산국을 차지하고 말겠다"
황금 허리띠와 장신구의 호복은 초원지역 문화
중원에 자리잡은 소강국 중산국…강한 군사력 바탕 중원지역 호령
조나라 무령왕 강력한 개혁정책 '호복기사'…기득권 잠재우고 군사개혁 성취
후손 혜문왕 때 중산국 무너뜨려 중원의 패자 등극


 
  한나라 시대 말타는 중국 관리를 표현한 유물. '호복기사'를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지난 2007년 연두에 당시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새해의 각오를 밝히면서 중국 전국시대 조나라 무령왕의 '호복기사'(胡服騎射)를 인용했다. 기병의 옷을 입고 말위에서 활을 쏘듯 만반의 준비를 잘해서 경제위기를 극복하자는 뜻이었다. 이와 같이 호복기사는 만반의 준비를 철저히 하자는 고사성어로 흔히 쓰인다. 하지만 원래 뜻은 다소 다르다. 이 고사성어에는 초원민족의 지혜를 통해 구습을 타파하고 자신의 국가를 주변의 위협에서 지키려 한 조나라 무령왕의 강력한 개혁정책이 숨어있다. 과연 조 무령왕은 무슨 생각에서 오랑캐의 옷을 입었을까.

■흉노와 중원의 틈바구니에서

 
  중국의 전국시대 조나라를 괴롭혔던 중산국의 독특한 동물형상 청동기 유물.
전국시대 중국 북방의 조나라를 통치했던 무령왕(기원전 340~295년)은 서서히 밀려오는 국가적 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북쪽에는 유목민족인 흉노와 동호가 발흥하고 있었고, 초원문화를 성공적으로 받아들여 강력한 군사력을 갖춘 작지만 강한 나라 중산국도 위협을 가해오고 있었다. 한편 중원에서도 진나라와 연나라 세력이 갈수록 조나라를 위협하고 있었다. 특히 중산국이 문제였다. 조 무령왕은 방자(房子)에서 중산국에 크게 패하자 답답한 가슴을 끌어안고 사방을 주유하다 현재의 산시(山西)성의 황화산(黃華山)에 올라가 천지신명에 맹세했다.
 
"오랑캐의 땅인 중산국, 반드시 내가 차지하리라!" 그리고 무령왕은 재위 19년 새해를 맞이하여 중산국을 없애고 중원의 패자로 서기 위한 중요한 결단을 내렸다.

무령왕은 신하들에게 "오랑캐의 옷을 입고 말위에서 활을 쏘는 기마술을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군신들은 오랑캐의 옷을 입으면 세상이 모두 비웃을 것이라며 격렬히 반대했다. 아마 이 이야기는 중국인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힌 듯 하다. 왜냐하면 중국 역사를 축약하고 정리해 죽간에 정리된 사마천의 '사기'에서 무령왕의 호복논쟁은 1000여 자가 넘게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흔히들 무령왕이 호복기사를 도입함으로써 중원에서도 기마병이 등장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원에서 기마병은 그 이전에 이미 출현했다.
 
 '한비자'의 조양자와 악양의 고사에서도 이미 기병이 등장하며, '손자병법'을 쓴 손무의 손자인 손빈이 쓴 '손빈병법'(한때 '손자병법'을 일부 고친 것이라 여겨지기도 했지만, 얼마 전 원본이 발견되면서 '손자병법'과는 다른 것임이 밝혀졌다)에도 이미 기병 전술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 무령왕이 굳이 호복기사를 들고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기득권 누르고 군사 개혁 성취

 
  흉노의 금제 허리띠
여기에는 단순히 '오랑캐 옷을 입자'는 것을 넘어서 구습에서 탈피해 새로운 국가로 변신시키겠다는 조 무령왕의 뜻이 숨어있다. 당시 중원에서 옷은 신분의 상징이었다. 당시 중국은 가운처럼 길게 늘어뜨린 관복을 입었는데, 허리띠와 관복의 색깔은 관직 등급을 표시하는 상징이었다. 그러니 군신들이 호복을 입는 순간 자신들의 지위가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할 만했다. 당시 중국에는 기병이 도입돼 있었지만, 중원의 평원지역에서 전쟁을 할 때는 여전히 주로 전차를 타고 상대 보병의 대오를 흩트리는 전법을 사용했다. 조 무령왕의 호복기사는 전차 위주의 부대에서 경기병 위주의 부대로 바꾸는 것을 의미했다. '호복기사'를 도입할 경우 기존 전차 위주의 전투로 경력을 쌓아온 장군들은 순식간에 모든 부대를 재편성하고 신기술을 도입해야 했으니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해야할 상황이었다. 그러니 반대가 심할 수밖에 없었다.

 
  전국시대 연나라 왕족 무덤의 초원계 허리띠 버클.
하지만 무령왕은 모든 반대를 뿌리치고 손수 바지를 입고 허리띠를 질끈 동여매 말 위에서 화살을 쏘며 군대를 조련했다. 결국 무령왕은 강력한 기마부대를 앞세워 중산국을 수차례 침공했고, 무령왕의 대를 이은 혜문왕 3년인 기원전 301년 중산국을 멸망시키고 중원의 패자로 등장했다. 명분을 앞세운 기득권자들을 뿌리치고 개혁을 성공적으로 주도한 무령왕은 위기를 국가 부흥의 기회로 바꾸었고, 전국시대 조나라 최고 성군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조 무령왕의 '호복기사'에서 말하는 호복이란 무엇일까? '사기'는 '호복기사'에 대한 논쟁만 자세히 기록했을 뿐, 어떤 옷이었는지 상세한 기록은 없다. 다른 역사기록을 참고할 때 호복은 머리에는 털모자를 쓰고 목에 금제장신구를 걸쳤으며, 발에는 황색 가죽신발을, 허리띠 버클은 장방형의 순금으로 만든 것이다. 당시 중국 북방의 흉노가 입었던 복식이다.

실제로 중국 옷에는 S자형의 허리띠 고리(hook)를 썼지만, 바지를 입었던 초원지역에서는 화려한 동물장식이 새겨진 허리띠 버클을 썼다.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무령왕은 스스로 오랑캐 옷을 입었던 것이다. 북방에서 중원과 유목민족의 사이에 존재한 조나라가 실리를 위해서는 다문화가 서로 공존해야함을 안 것이다.

원수는 미워도, 원수의 장점은 사랑하라
고고학 발굴을 하면 옷들은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허리에 찬 초원계 버클이 심심치 않게 발견돼 초원지역 옷의 전통이 중원에 들어왔음을 증명한다. 그런데 말을 타는 데 꼭 필요하지 않은 털모자나 금장식까지 초원지역의 것으로 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무령왕의 야심이 숨어있었다. 즉, 조나라가 유목민족을 적극적으로 포섭하기 위한 것이었다. 탁월한 군사력의 유목민족이 자신의 나라에서 차별없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무령왕은 현재 내몽고 호화호특 동남부에 있던 원양(原陽)이라는 마을의 군대기강이 흐트러지고 법이 잘 지켜지지 않자, 본보기로 그 마을을 없앴다. 대신, 그 자리에 기마병이 상주하는 마을인 '기읍'(騎邑)을 세웠다. 기읍이란 기병이 상주하면서 외적에 대비하는 일종의 국경의 군사화된 마을이다. 기읍을 세우면서 온 백성이 자신의 개혁을 따르도록 독려하고 또 기병을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기반을 만든 것이다.

조 무령왕이 원수처럼 지냈던 중산국의 왕릉이 1974~1978년 하북성 평산에서 발굴되었다. 그 결과 중원지역 청동기에 초원유목민족 양식이 잘 조화된 특유의 청동기들이 대량 출토되었다. 중산국은 원래 북방 초원지역 유목민족인 백적(白狄)의 후손이라는 역사기록이 제대로 증명된 셈이다. 중산국은 출신은 초원지역이지만 중원으로 진출해 중원과 초원의 장점을 조화시켜서 작지만 아주 강력한 나라를 이루었다.

중산국 주변의 위(魏) 한(韓) 조(趙) 연(燕)나라는 만 대의 수레를 가진 나라(萬乘之國 )였지만, 중산국은 천대의 수레를 가진 나라(千乘之國)였다. 작은 규모였지만 유목민족의 강력한 군사기술을 가졌던 중산국은 여러 중원 국가들의 골칫거리였다. 조 무령왕은 중산국을 멸망시키기 위해 그들의 장점인 유목민족의 군사기술을 적극 받아들였다. 원수를 없애기 위해서 원수의 가장 큰 장점을 배운 것이다.

중국의 전통적 역사서술은 중산국을 야만스럽게 묘사하며, '호복기사' 논란을 자세히 소개함으로써 중화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고고학적인 발굴의 예를 보면 많이 다르다. 전국시대~한나라의 중국 각지 귀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초원지역의 허리띠를 했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남쪽 광저우(廣州), 윈난(雲南)부터 허난(河南), 허베이(河北)에 이르기까지 중원 각 지역 초대형 고분에서는 예외없이 화려한 황금으로 만든 초원계 허리띠와 장신구가 출토됐다. 사실 '호복'은 당시 중국 귀족에게 초원전사의 힘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최근 우리 상황과 조나라의 사례

아무리 경제 발전이 좋다 한들 군사적 힘이 뒷받침이 되지 않는다면 모두 헛될 뿐이다. 세계적인 열강과 북한의 틈 사이에 있는 우리는 현실적으로 너무나 작은 나라다. 우리가 강소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조 무령왕의 지혜가 필요하다. 북방 초원민족과 중원 제후국 틈바구니에서 그는 구태를 벗고 '호복기사'라는 군사적 개혁을 이뤄냈다.

전국시대 열강과 초원민족에 둘러싸였던 조나라는 현재 우리 모습과 많이 닮았다. 구태를 벗고 국제정세 속에서 실익을 명확히 추구했던 그의 리더십으로 조나라는 전국시대 최고 강자로 등장했다. 천안함의 희생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는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힘을 강화해야 한다. '호복기사'와 같이 지금의 우리 상황을 나라가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로 만드는 것이 안타까운 젊은 영혼들을 위로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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