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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왕릉비 사라진 조각 200년 만에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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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동부동의 한 주택 마당 수돗가에서 빨랫돌로 사용되다 2일 발견된 신라 문무왕릉비의 윗부분. 현재 시멘트에 박혀 있는 상태다. 경주=연합 ☞ 사진 더 보기

 경주시 가정서 빨랫돌 사용
수도검침원이 일하다 발견


1일 오전 경북 경주시 동부동의 한 주택. 수도검침원이 마당 수돗가에서 검침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수돗가 바닥에 시멘트로 박혀 빨랫돌 등으로 사용되던 큼지막한 돌덩이 하나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한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 검침원은 평소 알고 지내던 김윤근 신라문화동인회 부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들은 다음 날 오전 이 주택을 찾았다. 사진을 찍은 이들은 점심시간에 국립경주박물관을 찾아 “중요한 비인 것 같다”고 전했다. 오영찬 학예연구관 등 박물관 연구원 3명은 서둘러 현장으로 달려갔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이영훈 관장과 김승희 학예실장이 사진 속 비문을 살펴보았다. 한쪽 면에서 200여 자의 한자를 확인했다. 한자의 서체, 음각한 형식이 경주박물관에 있는 문무왕릉비의 아랫부분과 동일했다. 현장으로 달려간 오 연구관 일행의 판단도 마찬가지였다.

문무왕릉비의 사라졌던 조각이 200여 년 만에 다시 발견되는 순간이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경주의 한 주택에서 신라 문무왕릉비의 부서진 윗부분을 발견했다”고 3일 밝혔다. 표면이 훼손되고 가장자리 등 일부는 마모가 심했지만 비문은 확인이 가능한 상태였다.

문무왕릉비는 682년 경주 사천왕사에 세워졌으나 언제부턴가 비가 부서졌으며 1796년 부서진 조각을 확인했다는 내용이 경주부윤을 지낸 홍양호(1724∼1802)의 ‘이계집()’에 기록돼 있다. 이 조각들의 탁본은 청나라 금석학자 유희해(·1793∼1853)에게 전해져 그의 저서 ‘해동금석원()’에 내용이 실리기도 했다.

그러나 19세기 들어 비의 부서진 조각들은 다시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다 1961년 비석의 아랫부분이 경주 동부동에서 발견돼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경주박물관은 이번에 발견한 비의 윗부분을 박물관으로 옮겨 보존처리할 계획이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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