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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를 읽는 또 다른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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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에 관한 책을 몇 권 읽었었다.

시오노 나나미의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를 비롯해서필립 보빗의 『군주론 이펙트』김상근의 『마키아벨리』그리고 곽준혁의 『마키아벨리 다시 읽기』가 그 책들이다여기에 박홍규의 『왜 다시 마키아벨리인가』를 덧붙인다.

 

박홍규는 마키아벨리가 오해받고 있고그 오해의 정도는 국내에서 심하다고 보고 있다(당연히 시오노 나나미의 시각이 특히 위험하다고 보고 있다더불어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에 대한 시각도 그렇다). 그는 『군주론』이 아닌『리비우스 강연』(『로마사논고』라는 제목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를 중심으로 마키아벨리를 읽어야 하며『군주론』도 교활한 독재자를 위한 책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국내에 지금까지 그런 시각의 책은 없었다는 식으로 쓰고는 있지만사실 먼저 읽은 마키아벨리에 관한 책들은 시오노 나나미의 것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박홍규의 시각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지는 않다(내가 그런 책들을 찾아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박홍규의 『왜 다시 마키아벨리인가』를 읽으면서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것은마키아벨리에 대한 해석이 정말로 다양하다는 것이다극단에서 극단으로그 중간에 있는 사람들마저 사항마다 조금씩 다른 시각으로 마키아벨리를 읽는다물론 그냥 편리한 대로 마키아벨리를 읽고마음대로 재단하는 것은 아니겠지만처해 있는 조건과 생각편견 등으로 마키아벨리는 극단적으로 다른 사람이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그래서 사실은박홍규의 『왜 다시 마키아벨리인가』에서의 마키아벨리에 대한 해석도 그 가운데 하나로 읽을 수 밖에 없다이는 마키아벨리라는 인물과 그의 책들에서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며또한 그만큼 마키아벨리가 풍부한 자양분이 된다는 얘기도 된다.

 

그럼에도 박홍규의 마키아벨리 읽기가 중요한 것은마키아벨리를 정형화하지 않고우리나라의 상황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강조한 점이다물론 대부분의 저자들이 그런 현재 시점에서의 마키아벨리 읽기를 주장하고 있지만중요한 것은 저자들이 보는 현재가 어떤 현재이냐는 것이다박홍규의 현재가 의미 있는 만큼 그의 마키아벨리 읽기도 유용할 것이다그가 더 나은 세상이라고 하는 것을 동의할 수 있다면그의 마키아벨리에 대한 해석에 대해서도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박홍규는 현실주의자이자 공화주의자혹은 혼합정(군주정귀족정민주정)에 대한 옹호자로서의 마키아벨리의 면모에 대해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데그 과정에서 좀 납득이 가지 않는 것도 없지 않다그건 마키아벨리가 군주의 덕목에 대해 쓴 『군주론』과 로마사 역사를 통한 공화정의 가치를 이야기한 『리비우스 강연』이 서로 잘 호응하지 않기 때문인데군주를 옹호하는 쪽에서 보면 후자가 이상하고공화정에 대한 옹호주의자 쪽에서 보면 전자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그래서 박홍규는 마키아벨리가 말한 군주가 그 군주가 아니란 식으로 설명하고 있다마키아벨리의 군주는 뛰어난 군주즉 인민적 군주로 오히려 공화제(republica)의 지도를 의미한다는 것이다군주는 있으나 군주제는 아니라는 얘기다좀 이상한 논리다마키아벨리를 현대의 민주주의의 가치에 조금이라도 적용시키기 위한 약간은 인위적 해석도 있다다시 한번 마키아벨리는 해석하는 사람들에 따라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는 걸 알 수 있다사실 그래서 매력적인 인물사상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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