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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 특별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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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 정체성 바로 세우기의 하나로 2008년 ‘고조선 단군왕검’ 우표를 시작으로 2009년 ‘부여 금와왕’에 이어 2010년 ‘고구려 주몽’ 우표를 발행한다.
고구려 주몽 이야기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참고하면 다음의 내용으로 정리된다. 금와왕이 태백산 우발수에서 한 여자를 만나 물으니, “저는 하백의 딸 유화로 천제의 아들 해모수라는 사람이 저를 유혹하여 사랑을 나누고 가더니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중매도 없이 혼인한 것을 꾸짖고 우발수에 귀양살이 하게 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금와왕이 유화를 방 안에 가두었더니 햇빛이 그녀를 따라 비추었다. 이로 인해 태기가 있어 알 하나를 낳았다. 왕이 알을 버렸으나 짐승들이 보호했다. 왕이 알을 깨뜨릴 수 없어 유화에게 돌려주자 천으로 싸서 따뜻한 곳에 두었더니 한 사내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왔다. 주몽은 영특하고 골격과 풍채가 기이했다. 그의 나이 겨우 일곱 살에 보통 사람들보다 월등히 뛰어났고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았는데 백 번 쏘면 백 번 맞히었다. 금와왕에게는 아들 일곱이 있었는데 늘 주몽과 함께 놀았으나 그들의 재주가 모두 주몽을 따르지 못했다. 왕의 아들들과 신하들이 주몽을 해치려 하자 주몽은 오이 등 세 사람을 벗 삼아 도망하였다. 엄호수에 이르러 물을 건널 수 없게 된 주몽은 물을 향해 자신이 천제의 아들이고 하백의 외손이라 외치며 방법을 묻자,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가 되어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 주몽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졸본천에 이르렀다. 그 지방의 토지가 비옥하고 산세가 준험함을 보고 도읍을 정하려 하였으나 미처 궁궐을 지을 겨를이 없어 비류수 가에 초막을 짓고 살았다. 국호를 고구려라 하고 고씨로 성을 삼았다.
고구려는 우리 역사상 가장 넓은 나라였으며, 중국 측이 주장하는 소수민족이 세운 지방정권이 아니라 중국의 통일왕조인 수, 당에 당당히 맞섰던 강력한 국가였다. 고구려는 중국적 세계질서에 맞서 중국의 동진을 막고 요동반도를 확보하여 백제와 신라가 성장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였고, 한반도의 생활권을 확보해준 나라였다.
주몽 특별우표
명 칭 주몽 특별우표
종 수 4종
발 행 일 2010년9월14일
발 행 량 각 54만 장(총 216만 장)
액면가격 250원
디 자 인 금와왕과 유화부인의 만남, 주몽의 탄생, 주몽의 도피, 고구려의 건국
우표번호 2758 ~ 2761
인쇄및색수 그라비어 6도
우표크기 40mm×30mm
인 면 40mm×30mm
천 공 13
전지구성 2 × 4 + 4(245mm×147mm)
용 지 그라비어 원지
원화작가 김동성
디자이너 박은경
인 쇄 처 한국조폐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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