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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살림집의 모습, 강릉 선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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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나라와 시대, 위치, 또는 그 집의 쓰임새에 따라 종류가 무척이나 다양합니다. 또 우리 조상들이 살던 집은 지방에 따라, 신분의 높낮이에 따라 그 모습과 특징이 모두 달랐답니다.
우리나라 고유의 양식으로 지은 전통 집을 ‘한옥’이라고 하는데, 한옥에는 기와집, 초가집, 너와집, 귀틀집 등이 있어요. 그 가운데 강릉에 있는 선교장은 조선시대 사대부의 살림살이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입니다.


                    [열화당] 


정면 네 칸, 측면 세 칸 크기의 일(一)자 구조로, 대청, 사랑방, 침방, 누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사랑채 앞에는 차양이 있어서 여름철 오후의 강한 햇볕과 눈, 비를 막을 수 있다.


강릉 선교장

강원도 강릉시 북평촌에 있는 선교장은 전주 이씨가 살고 있는 집입니다. 전주에서 살던 이내번(1703∼1781)이 이곳으로 옮겨와 처음 살기 시작해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왔다고 해요. 선교장이란 말은 집터가 뱃머리를 떠올리게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요.

강릉 선교장은 기와집의 모양을 갖춘 대표적인 집이에요. 반듯하다거나 짜임새가 있다기보다는 넓은 땅에 자연스럽게 세워져 너그러움과 활달함을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서울을 중심으로 발달했던 안채 구조와 강릉 지방 특유의 담과 담지붕 구조 등, 여러 지방의 특색이 한데 어우러져 있어서 그 가치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지요.

선교장은 안채, 사랑채, 사당, 정자, 행랑채를 골고루 갖춘 조선 후기의 양반집이에요. 집터 넓이만 3만 평에 이르고, 건물 수도 열 채가 넘지요. 주인마님이 쓰던 안채와 건넌방, 사랑채로 쓰이던 서별당이 있고, 주인이 주로 머물며 손님을 접대하던 열화당, 맏아들이 지내던 작은 사당, 별당 역할을 하는 동별당과 활래정이 있습니다.

 

                [솟을대문] 


솟을대문은 대문 양 옆에 붙은 행랑채나 담장보다 높은 대문을 말한다. 조선 시대 높은 벼슬아치들이 타던 수레인 초헌을 탄 채로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높게 만든 것이다.
차츰 양반을 상징하는 건물이 되어 초헌을 이용하지 않는 중하류층 주택에도 솟을대문을 짓는 경우가 늘어났다.

 

                [선교장 배치도]


동별당의 남쪽과 서쪽의 솟을대문 앞에는 따로 별채가 있어서 필요에 따라 사용할 수가 있었답니다. 게다가 열화당 뒤란에 우람하게 서 있는 나무들과 활래정 뒷산에 솟은 떡갈나무의 거대한 모습은 선교장 전체의 배경을 이루는 늙은 소나무와 어울려 우아함의 극치를 이루고 있습니다.

선교장은 조선 후기에 농사의 규모가 크고 수입이 많았던 사람의 집이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강릉 지방의 ‘ㅁ’자 형 집을 원형으로 삼아 가세가 번창하면서 열화당, 서별당 같은 자녀 교육 공간과 활래정, 동별당 같은 손님 접대 공간을 덧붙여 가며 거대한 주택을 완성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민가의 모습

민가는 지역이나 기후에 따라 그 모습이 아주 다릅니다. 그 가운데 초가는 우리나라 농촌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던 백성들의 집이에요. 지붕을 볏짚으로 엮어서 얹었기 때문에 기와집처럼 세련된 모습은 아니지만 초가지붕의 둥그스름하고 울퉁불퉁한 모습이 보는 사람을 편안하고 포근하게 해 줍니다.
벽은 진흙에 짚을 섞어 발랐으며, 큰방, 작은방, 부엌과 헛간이 대부분 옆으로 나란히 ‘한 일(一)’ 자 모양으로 붙어 있어요. 특히 제주도 지방의 초가는 강한 바람에 지붕이 날아가는 것을 막으려고 새끼줄로 지붕을 매어 두었답니다.


                 [낙안읍성 가옥]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위치한 낙안읍성 민속마을에는 초가 100여 채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 가운데 9동이 중요민속자료 제92호∼제100호로 지정되었다. 돌담과 싸리문에 둘러싸인 초가가 소담스럽다.

너와집은 나무나 푸른색 돌로 지붕을 얹은 집으로, 보통은 나무로 만든 것을 ‘너와’라고 부르지요. 너와집은 나무가 많은 산간 지방의 백성들이 짓고 살았는데, 나무로 얹은 지붕이 날아가지 않도록 돌을 올려 두기도 했답니다.
너와집은 나무와 나무 사이에 틈새가 있어 환기가 잘 되고 연기도 잘 빠져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눈이 덮여 따뜻하지요. 그렇지만 요즘은 산림 보호 등의 이유로 거의 사라져 가고 있답니다.

통나무를 ‘우물 정(井)’ 자 모양으로 쌓아올려서 벽을 만드는 귀틀집은 그 역사가 더욱 깁니다. 3세기에 펴낸 중국의 역사책 『삼국지』에는 “나무를 옆으로 쌓아올려 집을 짓는데, 모양은 감옥을 닮았다.”라는 기록이 있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눈이 많이 오는 울릉도 지방에서 귀틀집을 짓고 살았는데, 나무와 나무 틈새는 진흙을 발라 메우므로 바람이 들지 않아 따뜻하지요.
귀틀집을 만들 수 있는 곧은 나무가 드물기 때문에 두 개의 방만 귀틀로 짜고 부엌이나 외양간 같은 곳의 벽은 널빤지로 만들었어요.

이렇게 우리나라의 집들은 서로 다른 재료와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지만, 자연환경을 슬기롭게 이용하고 극복하는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삼척 신리 소재 너와집]


굵은 소나무를 잘라 만든 널판으로 지붕을 얹었다. 지붕 위에 작은 삼각형 구멍을 내어 집 안의 연기를 밖으로 뽑을 수 있게 만들었다. 강원도 삼척 신리 너와집은 큰 것과 작은 것 두 동이 중요민속자료 제33호로 지정되어 있다.

  

             [울릉 나리동 투막집]


귀틀집을 울릉도에서는 ‘투막집’이라고 부른다. 울릉도는 눈이 많이 내리므로 눈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도록 통나무를 포개 집을 지었다. 또 마당에 눈이 쌓여 옆방으로 가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억새나 싸리 가지로 ‘우데기’라는 벽을 만들었다.

            [투막집 내부]



한옥의 특징

한옥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마루와 구들을 갖추고 있답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의 특징이 뚜렷해 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마루에서, 추운 겨울에는 따듯한 온돌방에서 생활했지요.

온돌은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방바닥 밑의 구들장을 데워 방 안을 따듯하게 하는 장치입니다. 열을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게 만들었지요. 또 아궁이에 땐 불로 음식을 할 수도 있습니다. 아궁이 위에 가마솥을 걸게 만들고, 가마솥 주변에는 부뚜막을 만들어 조리 공간으로 사용하는 것이지요.

한옥의 창은 오늘날의 유리창과는 달리 창호지를 한 겹으로 발라 만들었어요. 따라서 빛과 바람이 잘 드나들어 방 안의 습도가 쾌적하게 유지되었지요.
그리고 안방의 아래쪽 벽 위에 다락을 설치해 귀한 음식에서부터 여러 가지 살림살이까지 필요한 물건들을 보관했어요. 다락을 응용한 것이 오늘날의 붙박이장입니다.

한옥은 이렇게 기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아름답기도 합니다. 한옥의 처마, 기둥, 난간 등은 모두 부드러운 곡선으로 만들고, 자연물의 무늬를 이용해 자연과 조화를 이루게 했답니다.

                  [온돌의 구조]


온돌은 불을 때는 아궁이와 난방 면인 구들, 연기를 배출시키는 굴뚝으로 이루어진다.


강릉 선교장

집은 서남향을 하고 있으며, 대문 좌우로 하인들 방이 죽 벌여져 있다. 그 가운데에 있는 솟을대문으로 들어서서 서쪽으로 가면 사랑 마당에 이른다. 강릉 선교장은 중요민속자료 제5호로 지정되었다/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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